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8-외적인 반성과 규정하는 반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 운동8-외적인 반성과 규정하는 반성
1)
앞에서 정립하는 반성[ㄴetzende Relexion]과 전제하는 반성[voraussetzende Reflexion]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판단이 지닌 두 측면이다. 한 측면은 본질에서 현존을 끌어내서 판단(정립)하는 작용이다. 이렇게 정립된 것이 곧 ‘그 자체 부정적인 것[an sich Negative]’인 가상이다. 다른 측면은 개별 현존에서 다시 그 근거가 되는 일반 본질을 찾아가는 판단 작용이다. 이는 현존을 전제로 본질에 이르는 길이다.
이 두 측면은 사실 동일한 판단의 두 측면이며 서로 이면이면서 교차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 두 측면을 인식의 발전 과정으로 설명했다. 현존하는 가상은 이미 본질에 의해 규정된 것 즉 정립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정립은 감추어진 것이었다. 그러한 정립이 의문시되면서 감추어진 본질을 자각하여 제시할 때 이것이 전제하는 작용이다.
정립하는 반성과 전제하는 반성은 서로 순환한다. 이런 순환은 인식의 운동에서 항상 일어난다. 인식은 어떤 주어진 개별자로부터 귀납하여 일반적 본질에 이르지만, 이런 귀납은 순환적이다. 왜냐하면, 어떤 주어진 것은 감추어진 일정한 본질을 통해서 이미 선택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귀납이란 자기가 이미 감추어놓은 본질에 다시 이르는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은 전제하는 반성 운동을 통해 찾아진 본질은 주관적으로 미리 설정한 것에 불과하니 헤겔은 이런 반성은 ‘외적인 반성’에 그친다고 한다.
“반성이 지양하면서 자기에 전제하는 직접적인 것은 단적으로 다만 정립된 것이며 그 자체로 지양된 것이어서, 이는 자기 내로 되돌아옴[본질]과 상이하지 않으며, 그 자체 다만 이런 자기 내로 되돌아옴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정립된 것은 동시에 부정적인 것으로서 규정되니, 이는 일자[직접적인 현존]와 직접 대립하는 것이며 타자[본질]와도 직접 대립하는 것으로서 규정된다. 대립한다. 그러므로 반성은 특정한[bestimmt: 주관적인] 것이 된다. 반성은 이 규정성[Bestimmtheit]에 따라서 전제를 가지니 자신의 타자로서 직접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니, 이런 반성은 외적인 반성이다.”(헤겔 논리학, GW11, 252)
이런 외적인 반성은 자신이 출발하는 지점이 “자신의 타자로서 직접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실 그것이 이미 그가 주관적으로 선택된 즉 이미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2)
이런 외적 반성은 순환적이다. 외적 반성은 현존을 한번은 직접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다른 한 번은 본질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전자는 그가 의식하고 있는 측면이다. 후자는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측면이다. 그는 진정으로 직접 경험에서 출발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미리 선택해놓은 것에서 출발한다.
“외적 반성은 이런 규정 속에서 이중화되어 한번은 전제된 것으로서 또는 자기 내로 반성하여 직접적이 되는 것으로서[현존] 존재하며 다른 한 번은 자기에 부정적으로 관계하는[가상] 반성으로서 존재한다.”(헤겔 논리학, GW11, 252-253)
이런 외적인 반성은 직접적인 것을 전제로 해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앞에서 말한 전제하는 반성 또는 칸트가 말한 반성 판단과 같다. 헤겔도 그러므로 주석에서 “칸트가 특수자가 주어진 경우 그것에 대해 일반자를 찾으려는 것이라는 의미를 할당한 반성은 이미 밝혀지듯이 다만 외적 반성과 흡사하다”라고 말한다.
칸트의 반성 판단에 속하는 미적 판단은 칸트 자신은 순수하게 직접적인 것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믿었다.
“사유하는 반성은 외적인 반성으로 여겨지는 한에서 사실상 단적으로 주어진 것 즉 그것에 낯선 직접적인 것으로부터 나가서 자신을 단순히 형식적인 활동으로 즉 내용과 소재를 외부에서 받아들이고 독자적으로는 다만 그런 내용에 의해 제약된 활동으로 고찰한다.” (헤겔 논리학, GW11, 255)
그러나 사실 헤겔이 말한 대로 이런 반성 판단 즉 외적인 반성은 이미 주관적으로 선택된 것에서 출발하는 순환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칸트 이후 철학자들은 반성 판단을 그런 외적인 주관적인 반성에 그친다고 보고, 진정한 본질을 찾기 위해서는 반성을 떠나서 절대적인 고찰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낭만주의 철학자들은 절대자를 직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헤겔은 그들이 반성을 “절대적 고찰방식의 반대 극이며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간주한다”(헤겔 논리학, GW11, 254-5)라고 말한다. 그러나 헤겔은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보듯이 절대자에 관한 이런 직관주의적 인식론을 밤에는 모든 소가 검게 보인다고 하면서 비판했다.
3)
헤겔은 인식이 개념을 통해 일어나는 선험적 인식인 한에서 반성적 인식일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반성이 처음에는 외적 반성이더라도 마침내 절대적인 반성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절대적 반성은 곧 반성을 통해 얻어지는 본질이 단순히 외면적 주관적인 본질이 아니라 사물 자체의 고유한 본래적 본질 즉 객관적 본질이 될 수 있게 하는 반성이다.
“그러나 반성에는 또한 절대적 반성의 개념도 있다. 왜냐하면, 반성이 자기의 규정 작용 속에서 다가가는 일반자, 원리 또는 규칙과 법칙은 출발점이 되는 그런 직접적인 것의 본질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 직접적인 것은 무실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런 직접적인 것으로부터 되돌아오는 것 즉 규정하는 반성이 비로소 직접적인 것을 그 진정한 존재에 따라서 정립하는 것으로서 여겨지며 그런 규정하는 반성이 직접적인 것에서 수행하는 것 즉 그런 반성으로부터 유래하는 규정은 그런 직접적인 것에 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래적 존재로서 여겨지기 때문이다.”(헤겔 논리학, GW11, 254)
헤겔은 이런 객관적 본질에 이르는 반성을 ‘절대적 반성’이나 ‘내재적인 반성’ 또는 ‘규정하는 반성[bestimmende Reflxion]’이라는 개념으로 서술한다. 헤겔의 논리학 본질론에서 반성 운동의 명운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 규정하는 반성이며, 이는 본질론이 존재론과 개념론을 매개하는 장이니, 논리학 전체를 짊어지고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으니, 이제 이 개념이 지닌 정확한 의미를 탐구해 보기로 하자. 도대체 어떻게 반성 운동이 외적인 반성에 그치지 않고 규정하는 절대적 반성이 될 수 있는 것일까?
4)
헤겔은 1편 가상의 2장에서 반성을 다루다 그 3절에 이르러 규정하는 반성 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때 그는 지금껏 논의하지 않았던 ‘반성 규정[Refleionbestimmung]’이라는 개념을 끌어낸다.
이 반성 규정은 나중에 ‘본질 규정[Wesenheit]’이라고 하므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 절 바로 다음 1편 3장에서 다루게 될 ’동일성‘과 ’차이‘, ’대립‘과 ’모순‘이라는 규정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는 먼저 이런 반성 규정이 존재론에서 다루었던 질적 규정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질적 규정에서 어떤 규정은 그 자체에서[an ihm selbst] 자신의 타자로 이행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그 자체에서 파란색으로 이행한다. 이런 이행은 질적 판단에서 긍정 판단에서 부정 판단으로의 이행이다.
“존재의 영역에서 현존은 그 자신에서 부정을 지녔던 존재이며 이런 부정은 그 자체 직접적인 것이었으니 존재는 그 부정의 직접적인 받침대이자 지반이다.”(헤겔 논리학, GW11, 255)
그러나 반성 규정에서 어떤 현존 즉 규정은 마찬가지로 타자와 관계하지만, 여기서 관계는 반성의 관계에 있다. 즉 어떤 것은 자신의 타자를 통해 규정될 뿐이다. 예를 들어 왼쪽은 오른쪽이 아닌 것이며, 아버지는 아들의 아버지이다.
“반성 규정은 존재, 질의 규정성으로부터 구별된다. 이 존재의 규정성은 일반적으로 타자에 직접 관계한다. 정립된 존재도 타자에 관계하지만, 이때 타자는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질의 부정성은 존재하는 것으로서 부정성이다. 존재가 그 근거와 지반을 이룬다. 그러나 그에 반해 반성 규정은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을 근거로 삼는다.”(헤겔 논리학, GW11, 256)
즉 본질의 영역에서 하나의 현존은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을 통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 ‘자기 내 반성’은 다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질은 자기 내에서 부등하며 따라서 이행하는 것이며 타자로 소멸하는 계기이다. 그에 반해 반성 규정은 부정으로서 정립된 것이며 그 근거에 부정적인 것을 가지고 있는 부정이며 자기 내에서 자기와 부등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본질적이며 비 이행적인 규정이다.” (헤겔 논리학, GW11, 256)
“정립된 것은 자신을 규정으로 고정하는 데 그 이유는 반성이 반성을 통해 부정된 존재에서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성을 통해 부정된 존재는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규정은 존재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동일성을 통해 성립한다. …반성의 자기 동일성은 부정적인 것[타자]을 부정적인 것으로 즉 지양되거나 정립된 것으로서[부정함] 가지므로 부정적인 것에 존립을 주는 것이다.”(헤겔 논리학, GW11, 256)
5)
여기서 자기 내로 반성한다는 것은 자기의 타자를 부정하는 것을 통해 자기가 규정된다는 것을 말한다. 질적인 규정과 반성 규정은 부정성의 차이가 있다. 질적 규정성에서 부정성은 타자로 이행, 특정한 부정[bestimmte Negation]이다. 반면 반성 규정에서 부정은 부정의 부정[die Negation des Negatives]이며, 자기로 복귀하는 것이니, 그런 한 타자와 관계하면서도 각자는 자유롭다.
“반성 규정은 이처럼 자기 내로 되돌아온 것이므로 자유로운 본질 규정으로 나타나니, 이 본질 규정은 공허 속에서 서로 견인하거나 반발하는 것 없이 떠도는 본질 규정이다. 이 본질 규정 속에서 규정성은 자기 관계를 통해서 고정되었으며 무한히 고정되었다. 그것의 규정되어 있음은 그 이행과 단순한 정립됨을 자기에 종속시키거나 그것의 타자로의 반성을 자기로의 반성으로 구부러지게 한다.”(헤겔 논리학, GW11, 256)
“반성 규정은 정립된 것이며 부정이지만, 이런 부정은 타자에 대한 관계를 자기 내로 구부려 되돌아오게 하니 이런 부정은 자기 자신과 동일하며 자기 자신과 자기의 타자가 통일된 것이 다만 이를 통해 본질 규정으로 된다.”(헤겔 논리학, GW11, 257)
하나의 현존과 다른 현존 사이의 이런 반성 관계 속에서 그들은 서로 동일하거나 차이를 지니며, 서로 대립하거나 모순한다. 반성 규정은 본질론 영역에서 다루어진 현존 사이의 반성 관계를 규정하는 일종의 메타 규정성이다.
6)
이제 헤겔이 반성 개념을 두 차원에서 사용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하나의 차원은 현존을 본질과 관계하여 반성 운동을 말한다. 이때 제시된 것이 외적 반성과 규정하는 반성이다. 다른 하나는 본질의 영역에서 현존 사이의 차원에서 사용한다. 이런 현존은 서로 반성적 관계 속에 있으며 이를 통해 동일성과 차이라는 반성 규정을 지닌다.
본질과 현존 차원의 반성 운동은 수직적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현존과 현존 사이의 반성 관계는 수평적이라 할 수 있다. 양자는 그러면 어떤 관계인가? 현존 사이의 반성 관계는 다양한데(즉 차이와 대립, 모순 관계) 이 반성 관계를 통해 현존이 현존하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 현존의 공간은 존재론에서 질의 공간이나 양의 공간과 구별되는 공간이며 반성 관계를 통해 규정되는 공간이다. 반성에 두 차원이 있다는 사실은 아래 글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반성은 자기 내에서 지속하는 규정 작용이다. 본질은 이런 규정 작용 속에서 자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구별된 것은 단적으로 정립된 것이며 본질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구별된 것은 정립된 것이 아니고 자기 내로 반성된 것이다. 부정으로서 부정은 이런 자기 자신과의 동일성 속에 있으며 자기의 타자 즉 자기의 비 본재 속으로 반성되는 것이 아니다.”(헤겔 논리학, GW11, 257)
여기서 헤겔은 정립의 측면과 자기내 반성의 측면을 구별한다. 전자는 본질과 가상의 차원이다. 후자는 현존 사이의 관계 차원이다.
그런데 두 차원은 서로 관계하는 것이 아닐까? 즉 본질이 열어주는 것이 바로 현존의 공간이 아닐까? 하이데거는 존재가 현존재가 살아가는 세계를 열어준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헤겔에서도 본질이 현존의 세계를 개시하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거꾸로 현존의 공간을 통해 그것이 열어준 본질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즉 그 본질이 내재적인지 외적인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헤겔의 말은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이를 통해 반성 규정[반성 관계]은 규정된 가상을 즉 가상이 본질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인 본질적 가상[반성 운동]을 이룬다. 이런 이유로 규정하는 반성은 반성이 자기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의 자기 자신과의 동일성은 지배적인 것으로 된 부정 속에서 상실된다.”(헤겔 논리학, GW11, 257)
여기서 헤겔은 규정하는 반성은 반성이 자기를 벗어나 더는 반성이 아닌 것으로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규정하는 반성을 통해 본질이 현존에 내재하게 되면 여기서 개념 운동이 시작되는 주체 개념이 출현하기 때문이다.이 개념은 자기 실현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며 이를 헤겔은 “지배적으로 된 부정” 즉 주체라고 한다.
문제는 이 두 차원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 하는 철학적 논의다. 본질과 공간은 어떻게 연관되는가? 이 문제는 헤겔 논리학에서 핵심 문제인데 헤겔은 이 문제를 바로 다음 장 즉 본질 규정 장에서 다루고 있으니, 일단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후로 미루기로 하자.
6)
헤겔은 존재의 영역에서 직접 주어지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반성적 관계를 통해 규정된 것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본다. 많은 철학은 이런 직접 주어지는 것이 궁극적인 진리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철학은 가장 직접 주어지는 것을 찾아서 고대 철학의 지각 경험에서 근대 철학의 감각 경험으로 다시 현대 분석 철학 등에서 제기하는 요소적 감각 경험으로 나갔다.
그러나 헤겔은 이런 직접 주어지는 경험은 지각이든 감각이든 요소적 감각이든 실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는 정신현상학 감각적 확신 장을 읽어보면 너무나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는 이미 후일 콰인 등이 제시한 지시적 불확실성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헤겔은 칸트 선험적 인식론을 따라서 모든 인식은 개념의 체계를 토대로 출현한다고 본다. 칸트는 이런 개념적 인식이 물 자체에 대한 불가지론에 부딪힌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헤겔은 오히려 그 개념적 체계가 개별자들에 대해 외면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며 본래적이어서 물 자체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그는 이런 개념적 인식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본질에 즉 물 자체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정립된 것이 더 높은 것이다. 왜냐하면, 현존이 정립되면, 현존은 그것의 본래적 모습 즉 부정적인 것이며 단적으로 다만 자기 내로 되돌아오는 것에 관계된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립된 것은 본질과 관계해서 정립된 것 즉 자기 내로 되돌아간 것[본질]을 부정하는 것이다.” (헤겔 논리학, GW11,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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