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64- 척도 관계의 계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64- 척도 관계의 계열
1)
헤겔 존재론 3편 척도 장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복잡해 그 체계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 보면, 척도 개념이 규칙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두 정량의 관계가 척도를 이룬다. 예를 들어 비중과 같은 것인데 비중은 무게와 부피의 관계다. 두 척도의 관계가 척도 관계이다. 척도 관계들이 서로 배열될 때 예를 들어 도미솔과 같은 동일한 주파수의 배가에 의한 결합도 있지만, 예를 들어 산과 알칼리 또는 일반화해서 화학적 결합과 같은 결합도 있다. 전자가 단순한 친화성이라면 후자는 선택적 친화성이다.
산과 알칼리 또는 화학적 결합은 두 척도의 선택적인(또는 배타적인) 결합이다. 여기서 결합하는 두 측면은 각기 척도이다. 즉 두 물질은 각기 비중(무게와 부피)을 지니면서 서로 결합하는데, 이 결합에서 무게는 단순히 혼합되지만, 부피는 서로 뒤섞이니 즉 상호침투적이다. 헤겔은 이때 부피의 측면을 대자 존재의 측면 즉 질적인 측면이라 하고 무게의 측면을 양적인 측면이라 한다.
이제 이렇게 선택적 친화성을 통해 결합한 산물은 일정한 계열을 이룬다. 대표적인 것이 일산화질소[NO], 이산화질소{NO2], 질산이온[NO3-]이다. 이것들은 질소와 산소의 결합 즉 척도 관계다. 이것이 곧 이제 우리가 다룰 척도 관계의 계열이다.
이 계열은 상대 극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출현한다. 위에서 산소를 반대 극에 둔 질소의 계열을 살펴보았는데, 수소를 반대 극에 둔 계열을 살펴볼 수도 있다. 그러면 물(H2O), 암모니아(NH3)와 같은 계열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상 이야기를 간단히 말하자면, 두 양의 관계로서 척도, 두 척도의 관계로서 척도 관계, 척도 관계들의 관계로서 척도 관계의 계열이라는 식으로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2)
지금까지 척도 관계로서 선택적 친화성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이제 척도 관계들이 이루는 계열을 살펴볼 차례다. 척도 관계의 계열을 이루는 각 항은 각기 하나의 척도 관계이며, 그것들은 한편으로 고유한 질을 지닌다. 예를 들어 일산화질소와 이산화질소는 각기 다른 고유한 질을 지닌다. 전자는 몸에 유익하지만, 후자는 치명적이다.
이런 질적 차이는 서로 선택적으로 결합한(또는 부정적으로 통일한 것) 결과로 다른 것에 대해서 특정화한 것이니, 여기서 타자와의 관계는 곧 자기와 관계이어서 자립적이다. 쉽게 말해 그 결합이 견고하다. 이런 선택적 결합체 즉 척도 관계는 다른 척도 관계에 대해 질적인 차이를 지니며, 각자 특정한 것이고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이행하는 것은 비약적이다.
“관계로 이루어진 척도의 자기 관계는 그것의 양적 측면에 속하는 외면성이나 가변성과 상이하다. 이 관계적 척도는 자기 관계하는 것이니, 이는 양적 측면에 대립하는 하나의 존재하는 질적 토대이니, 동시에 그런 관계적 척도는 자기의 외면성 속에서는 연속하지만, 질 속에서는 이 외면성을 특정화하는 원리를 내포했어야 지속하는 물질적 기체가 될 수 있다.”(논리학 재판, GW21, 364)
그런데 다른 한편 이 척도 계열의 각 항은 양적 차이를 지닌다. 이산화질소는 산소에 대해 질소가 하나이며, 이산화질소는 두 개, 질산이온은 세 개다. 이런 양적 변화는 연속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나는 연속성에는 정량의 연속성과 다른 측면이 있다. 자연수에서 수는 연속적인데, 각 수가 앞이나 뒤의 수에 대해 갖는 관계는 균등하다. 반면 음정의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보이는 연속성은 각 음정에서 앞이나 뒤의 음정에 대해 갖는 관계는 차이가 있어 불균등적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자연수처럼 배가되는 음정이 있는데 그게 조화를 이루는 음정 도미솔이다.
이제 척도 관계의 계열을 보자. 위에서 일산화질소, 이산화질소, 질산이온 등은 자연수처럼 진행하여 마치 균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척도 관계의 계열은 그 앞뒤의 관계가 불균등하며 중간이 비어있는 경우도 많다.
“그와 같은 대자 존재는 본질적으로 양의 관계이므로 외면성이나 양적 변화에 열려 있다. 그런 척도 관계는 하나의 틈을 갖는다. 그런 틈 안에서 이 척도[관계]는 변화에 대해 무차별하며 그 질을 변화하지 않는다.”(논리학 재판, GW21, 365)
그러므로 이런 척도 관계들의 계열을 보면, 연속적이기는 하지만, 정량[수]의 연속성과 달리 마치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이어지는 연속성이다. 헤겔은 이와 같은 연속성을 ‘마디 선[Knotenlinie]’이라고 말한다.
4)
이런 마디 선의 개념과 더불어 척도 관계의 계열이 지닌 특성이 드러난다. 이미 앞에서 정량을 다룰 때 질과 양의 상호이행에 관해 서술했다. 자연수는 양적으로는 앞의 수와 연속되어 있다. 이런 연속성의 측면에서 보면 그 수는 개수이다. 예를 들어 다섯 개는 네 개에 하나 더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총수 다섯 개를 우리는 다섯이라는 수적 언어로 표현하는데, 이 다섯이란 고유한 질적인 규정을 지닌다. 그러므로 그것을 총수[Einheit] 즉 통일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 결과 양이 변화하면 질이 변하고 질이 변화면 양이 변화하게 된다.
그런데 헤겔은 여기서 마디 선과 더불어 다시 양질 변화를 언급한다. 여기서 일산화질소에서 이산화질소 양적인 변화는 동시에 고유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질적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양적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연수 또는 정량에서 질량 변화와 달리 척도 관계에서 질량 변화는 차이를 지닌다. 우선 척도 관계는 선택적 친화성의 관계를 통해 자기 관계하며 자립적인 질을 이루고 있으므로 하나의 척도 관계가 다른 척도 관계로 이행하는 것은 자기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척도 관계가 변화하는 원인은 외적인 상황, 조건 때문이다. 즉 “무규정적인 타자, 우연성, 외적 상황”(논리학 초판, GW11, 216) 때문이다.
이런 외적 상황과 조건이 작용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척도 관계에 대신해서 새로운 척도 관계가 나올 때 그것은 이전의 척도 관계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전의 척도 관계로부터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현하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365).
또한, 이런 척도 관계의 계열에서는 그 계열은 불균등하므로 중간이 비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이 변화가 점진적 내적이지 않다. 이 변화는 우연적이며 비약적이다.
5)
이와 관련해서 헤겔은 자연에는 우연과 비약이 없다는 주장을 검토한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자연은 점진적, 내적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우리 눈에 비약이 보이는 것은 사실 이미 미소한 것이 출현해서 그 크기가 성장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그 미소한 것의 출현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 때문에 자연에 갑작스러운 비약이 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자연이 척도 관계들의 계열인 한, 이 관계들이 우연하고 비약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헤겔은 심지어 도덕이나 국가조차도 이런 양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비약이 존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덕적으로 경솔함은 대부분 사소한 잘못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소한 경솔함이 엄청난 도덕적 불법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국가도 일정한 크기가 지속 증가하더라도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크기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이루기도 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로마가 팽창하다가 갈리아나 중동을 정복하면서 더는 공화국 체제로 유지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예를 들어 볼 수 있다.
여기서 나온 대로 자연에 우연적 비약을 인정한다는 헤겔의 주장은 흔히 헤겔의 체계가 개념적 필연성을 인정한다는 주장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자는 모순적이지 않다. 개념의 필연성은 개념적 존재 즉 정신적 존재에서 출현하는 것이다. 반면 자연은 아직 비정신적 존재이니, 여기서 개념의 필연성이 아니라 우연적 비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자주 자연과 사회 및 정신에 적용되는 변증법을 동일시하는데, 이는 헤겔 변증법에 대한 오해이다. 변증법은 각각의 영역에서 고유하게 발전한다. 그러므로 자연의 변증법적 발전 방식과 사회나 정신의 발전 방식이 동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만일 정신이나 사회도 그것의 양적인 측면 즉 자연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자연 자체와 마찬가지로 우연성과 비약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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