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의 생성 철학(4) – 왕명 좌파와 그 한계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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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의 생성 철학(4)-왕명 좌파와 그 한계

1)

이규성의 책 황종희- 내재의 철학 가운데 뒷부분(6장)은 양명 좌파로 알려진 현성파의 철학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이지가 집중적으로 논의되는데(7장),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이 책이 쓰인 시기 즉 90년대 중반의 시대적 분위를 잘 보여준다.

89년 민주화 이후 그런 가운데 급진적 노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사회적으로 평등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었다.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적 변혁의 전망에 들뜨기 시작했다. 이런 전망에 기초해 남북의 통일을 향한 염원도 고조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치적 실패(군부의 선거를 통한 재집권)로 좌절한 지식인들은 마침내 필사적인 투쟁을 전개했으니, 이 시기 많은 청년이 좌절과 분노 속에서 목숨을 던졌다. 다른 한편 국제적으로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하면서, 기왕에 고조된 심정은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거렸다.

이런 시기 이규성은 양명학의 형이상학에 기초하지만, 유교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던 황종희의 철학에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양명 좌파를 통해 제시된 평등주의적 경향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식은 이규성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아래는 186-188쪽에 걸쳐 주장된 이규성의 논리를 정리한 것이다.

① “어느 경우에는 기존 문화의 전반적인 파괴가 지배적이고 어느 경우에는 문화의 비판적 계승이 지배적이다.”

② “모든 유형의 저항들의 인성론적 기초는 … 저 원융한 흐름을 추구하는 무의식일 것이다.” “서로 융통하는 우호성을 상징하는 행위를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요구한다.”(여기서 ‘원용한 흐름’ ‘서로 융통하는 우호성’은 현성파의 무차별성과 평등성을 의미한다.

③ “명대 이지의 급진주의도 분명 이러한 방향을 어렴풋이 암시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④ “그러나 이러한 실마리 적 암시도 육상산과 왕양명 및 현성파의 예비적 전개가 있어야 했다.”

⑤ “황종희 철학의 외재적 근거는 저들에게 있는 것이 될 것이다.”(황종희는 현성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통해 자기의 보수적 논리를 확립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2)

현성파의 근본 입장은 무차별성이나 평등성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가 하나의 기가 운동한 상태라고 한다면, 각 사물은 발산하면서 수렴하고 다시 발산하니 어떤 고정된 본체를 지니지 못하고 서로 연결되며, 그런 가운데 만유는 이 기의 운동이 전개하는 하나의 매듭에 지나지 않으니 서로 무차별하며 평등하다.

이런 우주 개념에 따르자면, 인간에게서 성과 욕정도 하나의 운동 단계일 뿐이며 성을 대변하는 지배 계급과 욕을 대변하는 피지배 계급도 평등한 무차별적 존재일 뿐이다. 이미 세계는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은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존재하고 또 일정한 시기가 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각자는 우주적 기의 운동 속에 참여하여 자신의 현존 자체에서 만족하니 “현재의 마음이 곧 올바른 생각이며”(황종희, 197, 왕심재 재인용), 현재에 만족한다. 이것이 곧 현성 즉 ‘현재 이루어져 있다’라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욕망과 현재, 민중, 쾌락을 긍정하는 입장이 되며, 그런 만큼 지배 질서와 도덕을 거부하는 저항적 의식이 된다. 왕심재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라.

“그러므로 도란 본질이며, 천덕인 양지여서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이 양지를 따라서 즐겨 타인과 같아지게 되면 마음이 충만하게 퍼져 열리게 되어 천지는 변화하고 초목은 번성한다.”(황종희, 197, 재인용)

이런 입장에 서면 도덕 질서라는 명분으로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입장은 거부된다.

“작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 것을 최상의 진리로 삼는다. 새가 울고 꽃은 지며 산은 치솟고 냇물은 흐른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여름에는 시원한 갈옷을 입고 겨울에는 모피옷을 입는다. 지극한 도는 남김없이 드러나 있다.”(황종희, 198, 왕심재 재인용)

이규성에 따르면 황종희는 이런 현성파의 논리에 대해 비판했다고 한다. 현성파를 따르면, 자칫 “광기와 방탕이라는 하나의 길로 들어간다”라는 것이다. 황종희는 그 때문에 유행에 머무르지 않고 주재를 다시 회복하려 했으나, 이규성에 따르면 “현성론에 대한 황종희의 우려와 대항은 사대부 계급의 헤게모니 장악과 관련된 정치적 성격의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이규성의 판단에서 이규성이 황종희보다는 차라리 현성론에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어떻게 보면 현성파는 기존 질서나 도덕에 대해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그 스스로 이에 저항하는 행동으로 나갈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기의 운동에는 이런 양태도 있고 저런 양태도 있으니, 우주적 기와 합일하는 인간으로서는 기의 움직임을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항한다는 행동 자체가 기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현성파는 내적 망명이나 현실 도피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활동을 전개한 철학자가 이지다. 그는 물론 이론적 활동에 그쳤지만, 적어도 그런 비판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특출하다. 이규성 역시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이지의 비판은 곧 도리를 가르치는 것은 거짓된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는 입장에서다. 이는 사회의 지배적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오히려 동심 즉 자연적 마음을 그대로 두면, 기의 운동에 합일하여 살아가면서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독서인들은 겉으로는 도학을 하고 속으로는 부귀를 추구한다. 유자의 우아한 옷을 입었으나 행동은 개돼지와 같다. … 재주와 학식이 없는데도 성인 도학을 강학한다는 이름으로 부귀를 요구하지 않으면, 종신토록 빈곤하고 천할 것이기 때문이다.”(황종희, 226, 이지 재인용)

“도덕적 인격은 특권 집단의 비특권 집단에 대한 거리와 부정에 기초한 고립된 인격이라면, 동심은 인격의 자기 위세가 없는 ‘자기도 없고 타인도 없는’ 마음이다.”(황종희, 236)

4)

이지 자신은 도덕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질서도 부정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동류이고 동체”라는 의식을 지녔으며, 제반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부정한 대동 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런 비판적이며 동시에 평등한 의식은 아무런 실질적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이지가 기존의 도학을 비판한 것은 그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소위 회의주의의 역설에 붙들리게 된다. 회의주의는 어떤 주장도 진리가 될 수 없다고 회의하지만, 회의 자신은 스스로 진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회의한다는 것 역시 하나의 주장이며 회의주의 자신의 논리에 따라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이런 회의주의의 역설은 기존의 도학을 비판하는 이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존의 도학이 우주적 기에 대한 하나의 강요라면 이지의 비판 역시 하나의 개입이니, 그 역시 하나의 강요가 아닌가?

회의주의가 결국 판단중지에 이르러 현실을 방임하고 말았듯이 이지 역시 마찬가지로 방임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성파의 근거는 곧 우주와 합일한다는 것에 있는데, 이는 결국 우주적 기의 운동이 되는 대로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수동적 태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이지는 결국 현실을 벗어나 중이 되고 말았다.

이규성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현성파가 주장하는 무차별성과 평등성은 이규성이 철학적으로 추구하던 개방성과 소통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성파에 따르면 그저 우주적 기의 운동이 흘러가는 대로 그것이 발산하고 수렴하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이는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거꾸로 현실을 옹호하는 이론이 되어 버린다. 이규성으로서는 이런 현실 방임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규성은 현성파에 대립하는 황종희의 입장을 옹호할 수도 없다. 황종희는 현성파와 동일한 형이상학적 전제 즉 기 일원론에 기초해서 전통 질서를 옹호하고자 했는데, 일단 여기서 질서는 하나의 양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주희와 같은 주리론자에게서 보이는 것과 같은 강력함을 발휘할 수 없다. 더구나 이규성 자신이 90년대 초반에 가졌던 평등주의적 성향은 황종희에게서 나타나는 억압적 질서를 인정할 수도 없었다.

현성파나 황종희나 모두 양명학적 형이상학에 기초한다. 그것은 하나의 기가 운동하여 전체를 관통한다는 형이상학인데 이런 입장은 황종희처럼 정통 질서를 한정적인 방식으로 옹호하던가 아니면 현성파처럼 비판적이지만, 방임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기 일원론은 이규성이 바라는 대로 개방성과 소통성의 근거가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사회를 지향해 나가는 적극적인 힘이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좀더 적극적으로 개방성과 소통성을 옹호하는 형이상학을 발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규성은 90년 중반 그가 기울어졌던 양명학을 떠나게 된다.* 그 후 그는 왕선산의 기철학으로 방향을 전환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 이규성은 베르그송의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베르그송에 대한 언급은 그의 저서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양명학의 형이상학은 많은 점에서 베르그송을 닮았다. 이규성이 양명학을 떠난 것은 베르그송을 떠난 것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한국의 어떤 베르그송 학자는 회고하기에 말년에 이규성이 베르그송에 대해 비판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비판을 그의 저서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규성이 빠졌던 딜레마는 어쩌면 90년대 중반 지식인이 부딪혔던 딜레마와 닮았다. 평등한 사회주의에 관한 관심은 고조되었으나 정작 사회주의 진영은 무너지고 만 그 황당함 앞에 지식인은 당혹에 빠졌는데 이규성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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