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44-화성과 선율 그리고 정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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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44- 화성과 선율 그리고 정신

 

1) 음악의 핵심

음악의 핵심은 무엇일까? 흔히 서양 음악이나 근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의 핵심은 화성에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화성악적인 찬란함을 보여주는 기악이나 관현악을 음악의 최고봉으로 삼는다. 하지만 일반인에게서 이런 화성악적 음악은 어렵다. 많은 비 서양, 비 근대 음악은 화성악적인 요소가 드물고 주로 선율을 통해 전개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율은 마음을 사로잡으니, 성악이나 오페라, 가요 등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화성이냐, 선율이냐 하는 논쟁에 대해 헤겔은 어떻게 답하고 있을까? 이런 물음이 헤겔의 음악 장르 분석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음악론을 읽어보면 누구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화성과 선율의 의미를 알아 보아야 하는데, 이 점과 연관하여 헤겔은 미리 사과하면서 시작한다. 음악에서 “세부 기교의 규정 즉 음의 양적 관계, 악기, 조성, 화음” 등이 중요하지만 자신은 “이 영역을 답사한 경험이 거의 없으므로, 일반적 관점과 단편적인 언급들에 그칠 뿐”[1]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가 음악의 구체적 기법을 잘 모른다는 것을 말할 뿐, 그가 음악을 즐기지 않거나 음악의 원리를 모르거나 음악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심지어 음악의 구체적 기법에 관해서도 일반인이 이해하는 간단한 원리 정도는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음악에 관한 한 헤겔보다 더 모르니 그저 그의 언급을 따라 살펴보는 데 그치기로 하겠다.

 

2) 음악의 형식

음악은 소리가 주관의 내면성 속에서 공존하고 계기하는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성립한다. 소리가 공존하고 계기하는 관계는 피타고라스 이래 일찍부터 탐구되어 왔다. 템포, 박자, 리듬을 거쳐 화성에 이르는 음들의 관계는 수학적인 비례를 통해 규정된다.

그 출발점에 있는 템포는 대체로 인간의 심장 박동의 규칙성에 따른다고 보는데, 헤겔은 이를 단순한 자아의 반복을 통해 자연의 흐름을 규제함으로써 인간의 자아가 “자기를 지양하여 객체로 되며 다시 대자존재로 되돌아 와서” “자기 관계하는 것”[2]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박자는 세부 단위로 템포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니 빠르고 느린 등 음악 전개의 속도를 규정한다. 헤겔은 이런 박자를 건축의 열주나 창문이 배치된 간격에 비교하면서 인간은 “이런 박자를 통해 자기를 재 발견하며 그 속에서 만족을 얻는다”[3]고 한다.

박자는 음의 강약 즉 악센트와 결합하면서 규칙적인 리듬이 된다. 리듬에 이르러 음악적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리듬은 인간의 활동의 리듬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삶의 다양한 형식, 춤추거나 의식을 거행하거나 행진하는 등의 리듬은 음악적 리듬과 합치한다.

리듬은 음색과 결합된다. 음색은 악기가 내는 음향학적인 배음들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배음의 관계는 악기마다 독특하며 여러 악기의 음색은 서로 어울리거나 대립한다. 헤겔은 교향곡에서 여러 악기들이 서로 응답하면서 교차하는 것이 마치 “연극적인 연주, 일종의 대화처럼”[4] 들린다고 말한다.

음악형식과 관련해 최후로 헤겔은 화성을 설명한다. 일정한 비율로 추상화된 음들의 관계에 따라 음계가 형성된다. 여기서 음정의 배치가 중요한 데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 곧 으뜸음이다. 으뜸음에 따라 결정되는 음들의 배치 방식에 따라서 화성이 결정되고 이는 다양한 감정과 연결된다.

 

“”그것들의 으뜸음을 통해 특정한 특성을 갖는데, 이 특성은 다시 나름대로 특정한 방식의 감정 즉 한탄, 기쁨, 슬픔, 고무적 선동 등에 상응한다.”[5]

 

전체적으로 보아서, 리듬과 화성 등은 음들의 관계를 다루는데, 여기에는 수학적인 비례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수학적 비례 법칙이 지배한다는 측면에서 헤겔은 음악과 건축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건축이 얼어붙은 음악이라면 음악은 생동하는 건축이라는 것이다.

 

3) 선율

음악의 리듬과 화성이 음악을 풍부하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며 그 자체로서 감정적 즐거움이나 카타르시스를 주기는 한다.

하지만 헤겔은 음악에 이런 측면만 있다면 그것은 마치 내용이 없이 공허한 형식에 탐닉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경우 음악은 본격적으로 예술이 될 수 없으며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요소 안에 정신적 것이 표현될 때 비로소 참된 예술로 고양된다는 것이다.

 

“화성은 … 박자나 리듬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이미 본격적 음악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이 산책하는 실체적 토대이자 합법칙적 마당이며 터일 뿐이다. 음악의 시적인 요소인 영혼의 언어는 내면의 열락과 심정의 고통을 음으로 분출한다.”[6]

 

“이런 분출 속에서 감정의 자연 폭력을 완화하여 자신을 그 너머로 제고한다. 까닭인즉 그 언어는 당장의 감동에 휩싸인 내면의 상태를 내면 자체의 청취, 자신 곁의 자유로운 머무름으로 만들며 또한 바로 이를 통해 심정을 기쁨과 고통의 핍박으로부터 해방하기 때문이다.”[7]

 

즉 음악은 그 속에 영혼의 언어가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음악은 자연적 감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며,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그런 가운데 음악은 정신적 높이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적 높이에 도달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선율 즉 멜로디의 역할이다. 이 선율은 음의 운동이지만, 그 운동은 이제 수학적 비례 법칙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신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런 선율은 수학적 비례 법칙에 엄밀하게 종속하는 음악의 형식 즉 리듬, 화성을 넘어서 독립적으로 떠돈다.

음악은 “영혼의 가장 내적인 주관적이고 자유로운 삶과 운동을 내용으로 삼으므로 자유로운 내면성과 양적인 근본 관계 사이에 가장 심각한 대립으로 분열된다. 하지만 음악은 이런 대립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것을 자신 속에 수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난제도 지닌다.”[8]

이제 “일체의 모순과 불협화음이 호출되면서”, 이런 모순 대립 속에서 다시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가운데, “선율적 평온의 승리를 축하한다.” 헤겔은 이런 투쟁은 “화성적 관계가 지닌 필연성”과 “비상[飛翔에 자신을 맡기는 판타지의 자유의 투쟁”[9]이라고 한다. 이런 투쟁을 통해서 정신은 감정에 지배되는 “우연적 자의의 주관성을 벗어나” “자기의 참된 독자성을 드러낸다”[10]고 한다.

리듬과 화성의 법칙을 따르는 음악은 엄밀하게 수학적이다. 그러나 선율에 이런 불협화음과 우연적인 요소가 있으므로, 음악은 산만성을 지닌다. 마치 만화경이 무한히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음악은 자유롭게 유희하는 듯 보이며 그 결과 산만한 느낌을 준다. 음악의 자유로움은 재즈나 산조와 같은 비정형 즉흥적 음악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체로 음악은 통일성을 준수하거나 주관적인 생동성을 띠고 나가면서도 자의적으로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가 하면, 같은 방식으로 이리저리 구부러져 가다가 변덕스럽게 정지하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갑자기 삽입하기도 하며, 다시 흐르는 듯한 음조 속에 자기를 내맡기기도 한다. …음악은 이미 주어진 형태들 밖에서 움직이므로 음악을 붙드는 그러한 자연의 영역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법칙과 형태의 필연성은 주로 음들 자체의 영역에 해당한다.”[11]

 

음악은 선율 때문에 산만성을 가지지만 이런 요소는 다시 극복되면서 선율의 평온이 회복되어야 한다. 헤겔은 선율과 화성의 관계를 ‘자세와 골격의 관계’에 비유한다. 즉 견고한 골격이 부적절한 자세와 운동을 막고 적절한 자세와 운동을 지지하듯 화성은 선율 움직임의 자유를 위해 지지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4) 선율과 정신

문제는 이런 선율과 정신의 관계이다. 헤겔은 선율은 근본적으로 닮음이라는 고전적 형상화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헤겔은 오히려 그 관계를 상징적인 관계로 보면서 건축과 음악을 다시 한번 비교한다.

건축의 공간은 외적인 형태를 갖는다. 이 형태는 자연법칙에 구속되지만 형태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 즉 덩어리는 정신과 관계해서 상징적인 관계를 가진다. 건축은 기능적 합목적성에 따라서 신전이며 왕궁이나 주택이 된다.

음악의 경우 헤겔은 그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음악은 차라리 감정의 요소만을 표현할 수 있으며 건축이 자신의 영역에서 신상을 오성적 형식의 열주들 … 로 에워싸듯이, 그 자체로 언표된 정신적 표상을 감정의 선율적 음향으로 감싼다.”[12]

 

“지극한 깊이의 내면성과 영혼뿐만 아니라 극히 엄격한 오성 역시 음악을 지배하며, 그리하여 음악은 서로에 대해 독립적으로 되기 쉬운 이 두 극단을 자신 속에서 통일한다.”[13]

 

여기서 건축이 정신을 에워싸듯이 음악 역시 정신을 에워싼다고 말한다. 에워쌈에서 매개적 역할을 하는 것은 곧 선율이다. 즉 선율 자체는 리듬이나 화음을 넘어서 전개된(불협화음까지 포함한) 음의 특정한 관계이며 이로부터 어떤 감정이 출현한다. 이렇게 선율에서 표현되는 감정은 자체 내에 어떤 정신적인 것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에워싸는 방식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니, 건축과 마찬가지로 상징적 관계를 갖는다.

감정적 선율이 정신적 표상을 어떻게 에워쌀 수 있을까? 헤겔은 음악이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을 다루면서 세 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첫 번째 방식은 감정을 무한하게 즉 내밀하게 만듬으로써 정신적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음악은 [조형예술처럼] 가시화를 위해 작업하려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내면성을 내면에 포착하는 일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음악은 내용 자체의 실체적 내적 심연이 심정의 심연으로 파고들도록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내용의 생명과 역동을 개별적 주관의 내면에서 묘사하되, 주관적 내밀성 자체를 그 본격적인 대상으로 삼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여기서 헤겔은 음악은 오직 감정만을 묘사하는데 그치지만 다만 그 감정은 자연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무한히 순수하게 되니, 헤겔은 이를 곧 내밀한 감정이라 한다. 이것은 예를 들어 승리의 기쁨을 무한히 고양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며, 영웅의 죽음 앞에 느끼는 연민을 가장 깊게 표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와 음악 사이의 연관성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는 “영혼상태의 … 생생하기 그지 없는 직접적 표출이자, 심정의 ‘아’와 ‘오’이며” “영혼의 자기 생산. 영혼의 영혼으로서의 객관성”[14]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감정적 언어는 음악적 선율의 출발점이 된다.

이런 관점을 확대하면, 관념을 표현하는 언어의 청각적 특징이 음악의 출발점으로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실 많은 노래는 특히 오페라에서나, 판소리 등에서 보듯이 언어의 청각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물론 언어의 리듬과 화성이 음악의 리듬과 화성과 완전하게 평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자는 대립 속에서도 평행한다.

이런 점에서 노래는 가사에 옷을 입힌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음악과 내용의 관계는 표상과 언어의 관계로 환원된다. 표상과 언어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기호적 연관일 뿐이니 이 역시 상징적이다.

세 번째는 음의 전개와 내용의 본성이 상응하는 경우이다. 어떤 면에서는 내용의 본성은 조형 예술의공간적 방식보다는 시간적인 음악적인 방식이 더 적합하게 상응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내용은 서사적 시간적 요소를 가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음악은 내용을 내용의 내적 관계와 친화적인 음의 관계 속에 감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는 경우, 음악도 빠르게 나가는 경우를 말할 것이다.

 

5) 음악의 한계

위의 세 가지 경우 가운데 음악에서 핵심적 방식은 역시 첫 번째 방식이다. 음악은 감정을 순수하고 무한하게 표현하면서 정신을 표현하니, 그런 한에서 음악 자체는 낭만적 예술이 된다. 주관의 내밀한 감정은 낭만주의 시대 와서 비로소 예술적 표현의 주요 내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표현하는 내용은 주로 낭만적 정신이고, 그 질료 역시 가상적인 성격을 지니므로, 낭만주의 시대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발전한다. 음악은 주관의 내밀성이라는 낭만적 정신을 무한한 감정을 통해 표현한다. 무한한 감정 자체는 낭만적이지만, 그 감정과 그 시대의 정신적 실체 사이의 관계는 상징적이다. 양자 사이에는 직접적 관계는 없으며 그 관계는 모호하다. 이 경우 내용과 감정은 비밀스러운 상징처럼 서로 구분할 수 없게 얽히게 된다. 내용은 감정 속에서 “비밀스러운 심연으로서 살아간다.”[15]

음악은 한편으로 고양되고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서 그 어느 예술보다 탁월하다. 다른 한편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정신의 내용은 감정에 그치고 그 나머지 실체적 내용은 수수께끼처럼 감추어져 있으며, 정신의 풍부한 내용을 모호하게만 표현된다.

그 결과 음악에서 아주 짧은 테마는 무척이나 깊은 감동을 주지만, 조금만 길어지면 같은 것이 되풀이 되는 것과 같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고전 관현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신적 실천적 훈련을 쌓아야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것은 음악이 지닌 장점과 한계는 음악가를 대표하는 오르페우스의 신화에서 잘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으로 하데스까지 감동시켜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해내지만, 그의 음악은 자기 내에 머무르면서 음악의 정신적 가치를 알지 못하는 디오니소스 신도 바카이에 의해 살해된다. 음악이 지닌 한계 때문에 음악은 불가피하게 시문학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1] 미학강의 3권, 145쪽

[2] 미학강의 3권, 171쪽

[3] 미학강의 3권, 172쪽

[4] 미학강의 3권, 182쪽

[5] 미학강의 3권, 186족

[6] 미학강의 3권, 190쪽

[7] 미학강의 3권, 190쪽

[8] 미학강의 3권, 168쪽

[9] 미학강의 3권, 194쪽

[10] 미학강의 3권, 192쪽

[11] 미학강의 3권, 150쪽[번역은 필자 자신이 수정한 것임]

[12] 미학강의 3권, 146쪽

[13] 미학강의 3권, 148쪽

[14] 미학강의 3권, 157쪽

[15] 미학강의 3권,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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