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21-낭만적 종교 예술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21-낭만적 종교 예술
1)
낭만주의 미학은 중세 종교적 구원에서 출발하여 기사도 정신을 거쳐, 근대 세속적 성격 예술로 나간다. 이런 분류는 예술 작품이 다루는 주제를 중심으로 분류한 것인데, 이는 헤겔이 이 시대 시간적 흐름을 고려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간적 흐름과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흔히 이 시대 예술을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계몽주의 등과 같이 시간적으로 분류하는 것과 대비된다.
헤겔은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종교 구원을 다루는 예술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첫 번째가 그리스도의 수난의 역사에 관한 형상화이며, 두 번째가 기독교적 정신인 종교적 사랑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세 번째는 교회의 정신을 다룬다.
종교 예술에 관한 헤겔의 설명은 여러모로 고딕 예술을 중점을 다룬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헤겔은 종교 예술은 고딕 이전 로마네스크나 그 이후 르네상스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예술을 포함하고 있다. 헤겔은 종교 예술이 각 시대마다 보여주는 양식상 차이에 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러 시대에 걸쳐 등장하는 기독교 종교 예술이 지닌 공통성에 주목한다. 여기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종교 예술을 주로 고딕 예술과 관련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2)
흔히 고딕의 시대라고 불리는 시대는 11세기에서 13세기에 걸친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 유럽 사회는 전반적으로 변화했는데, 새로운 경작 기술을 바탕으로, 부역 노동은 생산물 지대로 전환했다. 잉여가 축적되면서 수공업이 분리되며 상업적 교역이 발전하고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귀족의 사치품을 매개하는 원격지 무역이 부활했다. 영주권이 집중되면서 그 가운데 왕과 대영주의 권리가 신장되었다.
왕은 웅장한 교회를 세우는 등 교회를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교회는 왕과 대 영주를 위해 이데올로기적인 지원과 관료층을 제공했다. 이를 위해 수도원 학교와 대학이 세워졌다. 이 시기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과의 접촉을 통해 그리스 고전 학문이 유럽으로 들어와 스콜라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런 역사적 정신적 변화를 바탕으로 여러 예술작품이 형성되었는데 이 시대 예술 작품을 통칭하여 고딕 예술이라 일컫는다.
이 시기 등장한 고딕 예술은 종교적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이나 고전적 예술형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헤겔은 여기서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하는데, 그 이전 시대 예술은 영원하며 부동하는 신 자신의 모습을 정지된 상태에서 보여주는 것이었으나 고딕 예술은 신이 일으키는 역사를 그 운동하는 과정 가운데서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와 성모, 사도, 신도들이 겪는 수난과 참회 그리고 영광의 삶이 펼쳐진다.
3)
기독교적 종교 예술 대표적으로 고딕 예술이 보여주는 가장 근본적 특징을 헤겔은 특칭성[Partikularitaet]이라는 개념에서 찾고 있다. 즉 그 모습이 과거 신의 모습에서 보여졌던 숭고하거나 이상화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리스도를 그리던 신도를 그리던 간에 그 모습이 우연하며 개별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 어느 작품이나 사실성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연하고 개별적인 모습 자체가 신의 모습은 아니다. 특칭적인 모습 가운데서 신적인 면모가 출현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겪는 삶 속에서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 삶은 곧 수난과 참회, 영광을 보여주는 것인데, 대체로 긍정적인 최종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 등장하는 부정적 요소가 강조된다.
또한 이런 삶의 운동하는 장면은 제단화에서 보듯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거나 하나의 장면 속에 응축되거나 몽타쥬되어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런 특성은 고딕 시대 대표적 화가 시모네 마르티니의 작품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1]
부정적 장면 그리고 응축 등 기법이 사용되는 가운데 처음에 사실적인 모습은 파괴되면서 기이하게 일그러지고 심지어 조악하며 야만적으로 보이니 그 때문에 이 시대 예술은 고딕적이라고 불리어지게 된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만 본다면, 그런 가운데서도 사실성을 잃지 않으니, 이 두 가지 대립된 속성 때문에 자주 이 시대 종교 예술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사실성에 주목한 사람들은 이런 종교 예술 속에 그리스 고전 문화의 영향을 찾게 되며, 로마네스크니 르네상스니 하는 이름이 붙여진다. 반면 왜곡된 형상의 측면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 예술을 고딕[또는 게르만적]이니 바로크니 하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2]
4)
실제로 로마네스크 조각과 고딕 조각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의 부조는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변하는 스페인 산티아고 폼포스텔라 성당의 현관 부조이다. 후자는 고딕을 대표하는 프랑스 파리의 사르트르 성당의 현관 부조이다.
건축적으로 본다면, 로마네스크와 고딕은 판연하게 구분된다. 하지만 조각을 놓고 보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 양자 모두 한편으로는 사실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양식화되어 있어, 약간의 정도 차이만 보여줄 뿐이다.
이런 이중성을 헤겔이 어떻게 지적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현재 우리의 국면에서는 형상이 일상적인 것이자 주지의 것으로 머물며, 그 형식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무차별적인 특징적인 것, 즉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그리고 이 면에서 대단히 자유롭게 취급될 수 있는 것이다.”[3]
“왜냐하면 개체적 주관성과 신의 화해는 직접 등장하는 조화가 아니라, 무한한 고통, 헌신, 희생으로부터 그리고 유한하며 감각적이며 주관적인 것의 절멸로부터 비로소 등장하는 조화이기 때문이다.”[4]
3)
이런 수난과 참회를 통해 다시 복귀한 신성이 곧 성령이니, 신이 전개하는 역사로서 예술은 마침내 성령의 표현으로서 예술로 발전하게 된다. 기독교적 성령의 본성은 무한한 사랑의 감정이다. 헤겔은 이 사랑을 개념적으로 규정하면서 “타자의 자기 속에 자기를 망각하는 동시에 이런 망각 속에서 비로서 자신을 소유하는 것”[5]이라고 규정한다.
기독교적 사랑은 한 개인의 다른 개인에 대한 인간적 사랑은 아니다. 이 사랑은 곧 절대자 즉 신 자신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내면적으로 집약된 무한한 심정 즉 “그 무궁무진함을 직접 심정의 단순한 심연으로 끌어 모으는” 내밀한 사랑이다. 또한 이 사랑은 모든 개인에 대한 일반적인 사랑 즉 “그 내용의 일반성에 의해 고양되고 담지되는” 사랑[6]이다.
헤겔은 무한한 일반적 사랑을 표현하는 예술의 어려움을 말한다. 고전적 예술이라면 이런 심정을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신성은 우연하고 개별적인 인간 속에 머무르니, 특칭적인 인간의 모습 속에 무한한 사랑, 순수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인류에 대한 사랑보다는 성모 마리아의 아기 예수나 죽은 예수에 대한 사랑이 더 자주 표현되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아기 예수나 죽은 아들에 대한 사랑은 모성애라는 자연적인 감각적 형상을 갖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성애의 자연적인 내밀성은 철저히 정신화되어 신적인 것을 본래의 내용으로 삼지만, 그 정신적 내용은 그윽하면서도 무의식적인 것으로 남는다.”[7]
라파엘의 마돈나 상이다. 마돈나의 눈은 헤겔이 말하는 그윽하고 무한한 모성애를 잘 표현한다.
4)
종교 예술은 그리스도의 수난사나 내밀한 사랑의 정신의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종교 예술은 사도나 신도의 삶으로까지 확장된다. 순교의 고통, 참회와 개종, 신도에게 펼쳐진 기적 등이 예술적 표현 대상이 되는데, 헤겔은 이런 유형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유형 대상 중의 하나가 곧 마리아 막달레나[8]라고 말한다.
페르지노의 십자가 1480, 예수의 발 아래 기도하는 사람이 마리아 막달레나이다.
[1] 시모네 마르티니(1284-1344)는 고딕 후기에 이탈리아 시에나에 살았던 대표적 고딕 화가이다. 그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림(1315)은 성경의 이야기를 파노라마 식으로 전개하면서 하나의 그림 속에 중첩해서 표현하고 있어 운동감이 느껴진다.
[2] 예를 들어 아놀드 하우저의 주장을 들어보자.
[3] 미학강의 2권, 181쪽
[4] 미학강의 2권, 182쪽
[5] 미학강의 2권, 165쪽
[6] 미학강의 2권, 164쪽
[7] 미학강의 2권, 168쪽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Feel free to contrib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