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20-낭만주의적 예술 형상으로서 가상[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Spread the love

헤겔미학산책20-낭만주의적 예술 형상으로서 가상

 

1) 가상

앞에서 근대가 시장 관계가 일반화된 사회라 했다. 이 시대 정신을 절대적 주관성의 정신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것을 표현하는 종교적 형식 즉 내재하면서 초월하는 신과 이 시대 인간의 파토스와 죽음에 관한 생각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 시대 정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형식인 낭만주의 예술 형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근대에 들어와 소외된 정신이 등장하면서 예술 형식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헤겔에서 예술은 정신을 표현하는 기호이다. 상징주의 시대 예술 기호는 그 의미를 수수께끼처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고전주의 시대 예술 기호는 그 의미를 이중화하여 보여주는 기호 즉 닮은 꼴, 현상이었다. 헤겔에 따르면 이제 소외된 정신의 시대 등장하는 예술 기호는 가상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가상[Schein]은 본질이 자기를 비추는 거울에 비추어진 그림자, 영상을 말한다. 그 거울 속에 본질의 영상이 맺히지만, 그것은 이제 자신이 다른 것의 영상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못한다. 그 점에서 가상은 현상과 구분된다. 현상 역시 본질이 비친 영상이지만 그것은 자신이 마치 자립적인 실재처럼 또는 진실된 것처럼 나타난다.

 

현상은 사실 거짓 영상이면서도 자신이 진실된 실재라고 믿는 것이며 반면 가상은 자신이 거짓 영상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오히려 진실된 실재 본질 자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현상과 가상의 이런 관계는 자신을 실재처럼 보이게 만드는 무대 장면과 다양한 소원화 장치를 통해 그런 환상을 깨는 무대 장면의 관계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눈동자

낭만적 예술 형상인 가상은 그것이 어떤 형상인 한에서 구체적인 자연성을 지니지 않을 수 없지만, 어떤 형상이 이미 자기 부정성을 지닌다는 것은 구체적인 형상이 더 이상 자연 그대로 머무르지 못하고 이미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 정신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의 현존재는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감각적인 것을 비감각적인 것으로, 즉 정신적인 주관성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 진리는 단순히 상상에 의해 산출된 이상이 아니라, 스스로 유한한 즉 외면적이고 우연한 현존재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을 신성한 주관성으로 자각한다. 즉 자신 안에 무한히 머물며 또한 이런 무한한 자신을 자기에 대해 존재하게 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1]

 

절대적 주관성 즉 신은 예술적 형상 속에 내밀하게 존재하므로 이런 내밀성은 자주 영혼을 들여다보는 눈으로 표현된다. 고전적 신상은 눈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서 신은 자기를 외부로 전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안으로 들여다 보일 내면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징적 신상에서는 눈을 가지지만 그 눈은 신의 눈으로 세계를 조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낭만적 신상에서 그 신은 유한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면서 그 눈을 통해 그 속에 감추어진 내밀한 신적 존재를 암시한다. 여기서 눈은 내면을 들여다 보는 통로다. 라파엘로 시스티나 마돈나 상에서 표현된 성 모자의 눈동자를 보라.

3) 시간성

고전주의 예술 형식인 현상에서 내용(의미)은 그 형상(기호)과 닮은 꼴로 합치한다. 내용은 형상 속에 남김없이 드러나며, 형상은 내용을 드러내면서 자기를 이상화한다. 반면 낭만주의적 가상에서 내용과 그 형상 사이에 다시 분리가 일어나니, 이때 형상은 더 이상 이상화된 형상이 아니고 다만 실제 그대로 유한한 형상에 불과하다. 반면 내용은 이런 유한한 형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 무한성이다.

 

여기서 표면적으로 보면 내용과 형상이 분리되는 상징적 예술 형식이 다시 부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징과 가상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상징은 그것을 지시하는 내용에 대해 다만 외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양자의 관계는 수수께끼적인 관계이다.

 

반면 낭만적 가상은 형상에 속에 이미 자기 부정성이 들어 있으니 이를 통해 내용이 자기를 비추어준다. 이런 자기 부정성은 개별적 현상으로 충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자기 부정성은 개별적 현상의 연속적인 운동을 통해 드러날 뿐이다. 낭만적 가상은 내용이 자기를 타자화하고 다시 자기 내로 복귀하는 운동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낭만적 예술의 근본적 특징인 시간성이 드러난다. 상징적 예술이나 고전적 예술은 시간성을 결여한다. 그것은 정신이 드러나는 영원한 한 순간일 뿐이다. 그러나 낭만적 예술은 고정된 순간이 아니라 시간적 운동 속에 자기를 표현한다. 미술이 음악을 지향하고 음악이 문학적 서술을 지향하는 것도 낭만적 예술에 필수적인 시간성 때문이다.

 

4) 일상성

헤겔에 따르면 낭만적 예술 형식은 더 이상 신을 주제로 삼지 않는다. 과거 상징주의 예술이나 고전주의 예술은 시대 정신은 신을 직접인 주제로 삼는다. 이런 예술 형식에서 예술은 신을 상징하거나 신을 드러내는데 목표를 둔다.

 

그러나 낭만주의 예술 형식에서는 신은 항상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출현할 뿐이며, 여기서 예술이 소재로 삼는 것은 유한하고 우연한 세속적인 현상일 뿐이다. 신은 이런 유한하고 우연한 현상에 내재하거나 이런 현상이 부정되는 운동을 통해서만 드러날 뿐이다. 예를 들자면 그리스도의 죽음이거나, 인간이 세계 속에서 겪는 세속적 운명이 예술의 주제로 될 뿐, 신은 그 어디에서도 직접 드러나는 법은 없다. 

 

상징적 예술형식에서나 고전적 예술형식에서, 신을 표현하는 감각적 형상은 지극히 제한되었고 예술적 소재는 한정적이다. 반면 낭만적 예술 형식에서는 현실의 모든 것이 예술적 소재로 다루어진다. 왜냐하면 그 어느 것이나 자기 부정성을 통해 신적인 것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정신은 근대에 들어와 그 이전 시대에 비해 비할 바 없이 깊어졌고 거꾸로 이런 정신을 표현하는 감각적 형상의 범위는 무한정 넓어졌다고 한다.

 

일체의 유한하고 규정된 것이 낭만주의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으므로, 그런 소재는 일상적인 현실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과거에 간과된 소재도 이제는 훌륭한 예술적 소재가 될 수 있으니 예술가는 어떤 일상적 현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정신의 원칙이 내적으로 깊어질수록 그만큼 더 관심, 목적, 그리고 감각의 범위는 무진장한 것이 되며 그리하여 정신은 무한히 증가된 내용을 갖는 내적, 외적 충돌과 분열들, 여러 단계의 열정들, 그리고 극히 다양한 국면의 만족들로 전개된다.”[2]

 

낭만주의 예술은 가장 철저한 리얼리즘 예술이다. 낭만적 예술은 현실의 자기 부정성을 추구한다. 이런 부정성은 외적인 부정성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존재하는 부정성이니, 그런 점에서 자기 부정성이다.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성이 현실 그 자체에서 존재하는 것이려면, 작가는 현실에 대해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 세부에서까지 찾아 들어가고 그 유한성과 규정성 속에서 있는 그대로 현실을 파악해야만 그 속에서 부정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이런 점에서 낭만주의 예술은 ‘초상화적인 것[Portrartig]’이라고 한다. 또는 ‘일상적인 것 속에서 고향을 두고 있다[Heimatlichkeit im Gewoehnlichkeit]’고 말한다. 헤겔은 낭만주의 예술이 리얼리즘적인 경향성을 지니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낭만적 예술의 무한한 주관성, 절대성은 그 현상 속으로 침잠하지 않고 자신 안에 머물며 바로 이로 인해 그 외면성을 고립적으로[fuer sich] 갖지 않고 타자에 대해 관계하는 것으로서[fuer Andres] 즉 자유롭게 방임되어서 어떤 것에 희생되기도 하는 외면으로서 갖는다. 나아가서 이런 외적 요소는 일상성과 경험적 인간의 형상을 반드시 띠어야 하는바 까닭인즉 여기서는 … 신 자신이 유한한 시간적 현존재로 내려오기 때문이다.”[3]

 

5) 비미적인 것과 숭고

낭만주의 예술에서 예술의 소재가 되는 외적인 현존은 자립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자기 부정성을 지닌 것이니, 그것은 유한성과 규정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고전주의에서 예술적 현존은 이상화되면서 자립성을 지닌 것이 된다. 그것은 균형과 조화를 지니고 고요하게 머무른다. 반면 낭만주의에서 예술은 이런 유한성과 규정성 때문에 고전주의적 미학에 비추어 본다면 균형과 조화를 결여한 비-미적인 것[Unschoen], 즉 추한 것을 포함하게 된다.

 

하지만 낭만주의 예술에서 이런 비-미적인 소재는 진정한 낭만적 예술의 이념을 드러내는 계기에 불과하다. 이런 비미적인 것은 곧 이행하고 마는 우연한 것이니, 이러한 비-미적 예술 소재는 절대적 주관성의 정신을 드러내려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고전주의 예술은 외적 형상에서 미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균형과 조화를 지니면서 이상화된 형상이다. 그러나 낭만적 예술은 외적 형상에서는 비미적인 것이지만, 절대적 주관성을 드러내면서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여기서 정신적 아름다움이란 정신이 조화와 균형을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신적 아름다움은 곧 자신이 절대적 주관성인 신적 존재라는 의미이니, 이 아름다움은 숭고한 아름다움에 속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상징주의 시대 등장한 숭고성이 다시 출현하는데, 상징주의 시대 숭고성은 마법적인 방식으로 신과 합치에 이르는 것이라면, 낭만주의 시대 숭고는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는 데서 존재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숭고는 무상의 죽음을 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성과 같은 숭고이다.

 

6) 음악성

그러므로 헤겔은 낭만주의 예술은 두 세계를 갖는다고 한다.  그 하나는 절대적 주관성의 내적인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것의 영역이다. 헤겔은 이 두 세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낭만적 예술은 외면성이 이제 다시 독자적으로 활보하게 만들며, 이런 점에서 … 각양각색의 소재들이 자연적 우연성을 갖는 현존재 그대로 거침없이 표현되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동시에 단순히 외적인 소재로서는 무차별적이고 저급한 것이며, 오직 그 속에 심정이 집어넣어지고 … 내면의 내밀성[Innigkeit]을 언표할 때만 본래의 가치를 지닌다는 규정을 지닌다.”[4]

 

이처럼 외적인 현존의 부정을 통해 떠오르는 절대적 주관성을 헤겔은 마치 음악과 같은 것에 비교하고 있다.  

 

“이런 관계 속에서 내면은 정점에서 표출되면서 외면성 없이 외화된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채 흡사 자기만을 듣는 듯하며 대상성도 형상도 띠지 않은 음조 자체이고, 물위를 떠도는 것이며 세계 위에 울려 퍼지는 울림이니, 세계는 자신의 현상 속에서 그것도 이질적 현상 속에서 다만 영혼의 내적 존재를 비추는 그림자만을 받아들이고 또 이런 내적 존재를 반영할 뿐이다.”[5]

 

“그러므로 낭만적인 것의 기본 음조는 음악적이며 특정한 표상 내용을 갖는다는 점에서 서정적인 것이다.”[6]

 

헤겔은 이런 점에서 낭만적 예술은 한편으로 무한히 다양한 소재를 받아들이는 보편성과 다른 한편으로 모든 외적 현존이 지양되는 순수한 내적 심정의 심연이 공존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7) 낭만적 예술과 종교

 낭만주의에서 내용은 예술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고전적 예술 형식에서 예술은 신을 드러낸다. 여기서 신은 자신을 외적으로 현현하므로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자각되며, 예술 없이는 자각되지 않는다. 예술이 부차적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 예술은 상징적 예술과 같은 위치에 있지만 그럼에도 양자에 차이가 있다. 

 

상징적 예술에서 신적 존재는 먼저 종교를 통해 표상[환상]으로 주어지지만, 이런 표상은 소수의 사제에게서나 가능한 것이며 대중에게서는 불가능하다. 대중은 상징적 예술을 통해 신적 존재에 접근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상징주의 시대에는 종교에 봉사하는 데 이런 봉사는 부차적이면서도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낭만적 예술에서 절대적 주관성의 정신은 자기 매개적인 존재이다. 이런 자기 매개 속에서 외적인 존재는 그 자체에서 자기 부정성을 지닌 것이기에, 우연하며 잠정적인 것으로 주어지므로, 이것은 예술의 소재가 되기는 하지만, 이런 예술을 통하지 않고서 절대적 주관성은 자기 매개를 통해 즉 사유를 통해 자기를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사유는 일반 대중에게도 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대중에게 예술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이로써 예술은 낭만주의 시대 말기 즉 근대에 이르러 일반 대중에게서도 잊혀지면서 예술의 종말이 다가온다.

 

[1] 미학강의 2, 140-141쪽

[2] 미학강의 2, 148쪽

[3] 미학강의 2, 156쪽

[4] 미학강의 2, 150쪽

[5] 미학강의 2, 150쪽

[6] 미학강의 2, 151쪽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