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16- 고전적 예술 형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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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16- 고전적 예술 형식

 

1) 자기 관계

상징적 예술 형식에서 설명했듯이 정신이 추상적이고 무규정성 상태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 정신을 표현하는 예술 형식은 수수께끼와 같은 상징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추상적 무규정적 정신은 자각될 수 없는 것이기에 형상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정신 즉 민족 국가 또는 도시 국가는 자신을 개별적으로 구체화한다. 이런 정신은 자각이 가능하게 된다. 자각은 이제 감각적인 형상으로 표현되니 그것이 곧 정신의 닮은 꼴 또는 정신이 비추어진 영상이다. 헤겔은 이런 영상을 현상적 기호라 부른다.  

 

헤겔은 정신의 감각적 형태 즉 정신의 영상은 인간적 형상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신이 인간의 집단 의지를 의미하는 한 그런 정신은 인간 자신의 표정과 자세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예술 작품에서 동물적 형상은 사라지거나 아테네 여신의 어깨에 있는 부엉이처럼 점차 부차적인 요소로 전락한다.[1] 

 

정신의 닮은 꼴, 정신이 비추어진 모습 즉 영상 또는 현상이 곧 고전적 예술 형식이다. 여기서 고전적 예술 형식의 근본적인 원리가 밝혀진다. 그것은 곧 형상과 그것이 의미하는 정신의 일치이다. 이런 일치는 다시 말하자면 곧 형상은 정신의 ‘자기 관계’이며, 정신이 ‘자기를 해명하는 것[das sich selbst Deutende]’, 정신이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것[das sich selbst Bedeutende]’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헤겔은 이런 일치, 자기 관계로부터 고전 예술의 다양한 느낌을 끌어내는데, 이 느낌에 대한 헤겔의 표현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곧 밝음과 명료성, ‘거침없는 자유’ 와 자립성, ‘무한한 확실성과 고요[Sicherheit und Ruhe]’,  ‘근심 없는 지복[Seligkeit]’과 명랑성[Heitrlichkeit]과 같은 느낌이다. 헤겔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영원한 진지함, 동요 없는 평안이 신들의 이마에 왕관을 올린다.”[2]

 

“정신은 전적으로 외적인 형상 속에 침잠한 채로 나타나며, 또한 동시에 그런 외적인 형상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내에 침잠해 있다. 그것은 마치 가사적인 인간 사이에서 불멸하는 신이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3]

 

2) 이상화와 미

정신과 형태가 일치한다면 이를 통해 형태를 이루는 개별적 요소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인 연관을 맺는다. 흔히 그리스 예술에서 이런 유기적 연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곧 황금 분할의 비율이라 하는데 헤겔은 단순한 수적인 규칙보다는 오히려 이런 비율이 정신적인 것을 표현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예를 들어 헤겔은 그리스 조각 작품의 두상이 지닌 비율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얼굴은 입과 광대뼈가 들어가고 이마가 나옴으로써 정신적 특성을 얻는다. 이를 통해 앞으로 나온 이마는 필연적으로 두개골의 전체 구조를 규정하는 요소가 되는바, … 오히려 이마에서 코를 지나 턱밑까지 하나의 선이 그어지고 이 선은 뒷머리에서 이마의 정점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선과 직각을 혹은 직각에 가까운 각을 형성한다.”[4]

형태가 이처럼 유기적 연관을 맺게 되면서 이런 유기적 연관과 무관한 개별성에 속하는 형태의 측면은 순화되고 그 결과 형태는 이상화된다. 이런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은 곧 영웅의 모습이다.

 

“우리는 신들의 구체적 개별성에서 유한자의 갖가지 궁핍으로부터 초연한 정신적 기품과 고결이 드러난다는 것을 본다. 순수한 내면 존재, 각종 규정성으로부터 추상적 해방은 어쩌면 숭고성으로 이끌릴 법도 하지만 …정신의 숭고성마저도 아름다움 속으로 직접 이행한다. … 이 점이 신들의 형상에서 고결의 표현 곧 고전적 의미에서 미적 숭고성의 표현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5]

 

헤겔에서 미는 여기에서 보듯이 조화와 균형, 비례를 의미하니, 예술 가운데 오직 고전적 예술만이 이런 미적인 것을 가지게 된다. 그 외 상징적 예술과 낭만적 예술에서 정신의 표현은 오히려 미적인 것과 충돌하게 된다.

 

3) 총체성의 결여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전 예술은 자기 연관, 유기적 통일성과 미라는 보편성의 측면만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개별성의 측면을 가지니, 이런 개별성은 추상적인 개별성이 아니라(그런 개별성은 이상화하는 가운데 제거된다) 보편성을 표현하는 개별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폴론 신은 월계수를 쓰고 리라를 든 모습으로 묘사되거나 아테네 여신은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를 들고 나온다. 여기서 월계수나 리라, 그리고 투구와 창 방패는 그 자체로는 개별성이지만 그것이 아폴론이나 아테네 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징표로 사용될 때, 헤겔은 이를 특수성이라 한다. 여기서 보편적 신성과 개별성은 매개 없이 직접적인 결합으로 결합되어 있다.

 

개별성과 보편성과 직접 매개 없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그런 특수성이 이루는 전체 집합은 유기적인 통일성을 형성하지 못한다. 이로부터 헤겔은 그리스 신들이 지닌 다양한 한계를 제시한다.  신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은 상당히 혼란스럽고 중첩되며, 불완전하다. 

 

하나의 신도 여러 특수한 징표를 갖는다. 예를 들어 아폴로 신은 리라 외에 활을 들고 나오기도 하고, 아테네 여신은 투구를 쓴 것 외에 어깨에는 올빼미가 앉아 있기도 한다. 동일한 본성을 여러 신들이 대변하니, 군신으로 아레스와 헤파이토스가 분열하며, 빛의 신은 아폴론과 헤르메스로 분열하며 여신은 아르테미스, 아테네, 아프로디테로 분열한다. 또한 여러 신들 사이에는 아직 어떤 통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우스는 신들의 통일성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개별적인 한 신에 불과하고 그의 명령은 다른 신들을 완전하게 굴복시키지 못한다. 신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불화가 존재하며, 제우스조차 이 불화 속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것이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푸스의 의미이며 신들의 잡다성은 로마에서 만신전의 형태로 여전히 유지된다.  

 

4) 상호 균형

그리스 정신이 보편성과 개별성이 직접적으로 결합된 결과 여기서 그리스 정신은 다시 두 가지 대립된 원리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보편성이 국가의 원리라면, 개별성은 곧 혈연의 원리이니, 그리스 도시 국가는 시민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면서도 여전히 혈연의 원리인 민족성을 버리지 못한다. 즉 민족 국가이다.

 

두 가지 원리가 직접 결합된 결과 두 원리는 상호 균형을 이룬다. 이런 상호 균형은 정적인 방식이 아니며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일어나는 균형이니, 여기서 두 원리가 서로를 침해하고 그 결과 서로의 몰락에 의해 다시 균형이 회복되는 운동이 일어난다.

 

그리스 정신의 특징인 특수성은 앞에서 말한 신의 징표로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특수성은 그리스적 인물이 지니는 특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와 그에 대립하는 클레온은 모두 그리스적 정신이 지니는 특수성을 대변한다. 안티고네는 그 가운데 혈연의 원리를 대변하며, 클레온은 국가의 원리를 대변한다.

 

그들은 자신이 대변하는 특수성을 직접 매개 없이 대변하므로 단호하고 영원히 이를 대변한다. 그 때문에 각자는 자신이 대립하는 원리에 의해 파멸에 이른다. 국법을 어기고 혈연인 오빠를 묻어준 안티고네는 클레온의 명령에 의해 감옥 속에서 죽는다. 조국의 배반자를 처단하려는 클레온은 가족의 원리를 위배하면서 그의 아들과 아내가 죽게 된다. 이런 상호 파멸을 통해 서로 대립된 두 원리는 다시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4) 신과 인간

보편성과 개별성의 직접적 매개 없는 결합은 예술 작품 속에서 보편적 신과 개별적 인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신 모습 자체가 인간의 모습을 닮았으며 인간적 영웅은 곧 신적인 존재가 된다. 인간과 신은 함께 살아가며 인간의 행위가 신의 행위를 촉발하며, 거꾸로 신의 행위가 인간적 행위를 유발한다. 신은 인간의 삶 속에 들어와 수시로 개입하며 심지어 인간이 신의 세계 속으로 끌려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상호 침투와 중첩에도 불구하고 신과 인간이 영원히 구분된다. 신이 인간적인 삶 속에 개입하더라도 그것이 신의 신성을 해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이 신의 개입을 요구하더라도 그 책임은 항상 인간 자신에게 돌아간다.

 

헤겔은 이런 예로서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여러 얘기를 소개한다. 그리스 진영에 퍼졌던 흑사병은 아가멤논이 아폴로 신전의 제사장 크리세스의 딸을 포로로 하고 크리세스의 간청에도 풀어주지 않자, 아폴로의 분노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또한 헤겔은 아킬레스의 죽음에 관한 오디세이아의 서술을 소개한다. 

 

“그리스인들은 종일토록 싸웠으며 제우스가 싸우는 자들을 뜯어 말렸을 때 그들은 비로소 고귀한 시신을 배로 옮겼으며 또한 울먹이면서 시신을 씻고 향유를 발랐소. 그러자 바다에서 신의 울부짖음이 일었는데”  “어머니[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죽은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불사의 바다 님프들과 함께 바다에서 나왔소”[6]

 

헤겔은 이 인용문 끝에 아킬레우스에게 다가간 것은 인간적인 것 즉 흐느끼는 여인인 어머니이며 또한 이는 그들 자신의 본 모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행위 자체가 신의 행위로 서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5) 예술과 종교

그리스 예술의 기본 원리는 예술과 종교의 관계에서도 관철된다. 예술과 종교는 동일한 그리스 정신의 원리를 표현하지만 그 표현방식은 다르다. 종교는 마음 속의 환상을 통해 표현하며 예술은 물질적 형상을 통해 표현한다. 마음속의 환상과 물질적 형상은 서로 대응하니, 예술과 종교는 서로 상응한다.

 

우선 예술은 표현을 위한 소재를 종교 속에서 찾는다. 예술이 신과 신화를 표현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념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일 뿐이며 예술이 봉사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곧 그리스 도시 국가이다.

 

민중은 이미 이념에 관한 어떤 환상을 마음 속에 가진다. 하지만 이는 무의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니, 이런 환상이 물질적 형상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민중은 자기 마음 속의 환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종교는 예술을 통해 비로소 자기를 표현할 언어를 발견하니, 예술가는 민중에게 예언자이며 교사가 된다.

 

예술가는 소재를 종교에서 찾으니 이미 종교적으로 전승된 것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종교적 전승이 없다면 예술은 성립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술가는 이런 전승된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는 이런 전승된 것을 소재로 이념을 현상화하면서 이를 아름다운 형상으로 만들어내니, 이런 작업은 한편으로 예술가의 독창적인 창조에 속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는 이미 전승된 것을 조탁한 것이라 하겠다.

 

그리스 예술 형식에서 인간과 신이 중첩되어 있듯이 예술과 종교 역시 중첩되어 있다. 그리스 종교는 <정신현상학>에 나오는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곧 예술 종교이다.


[1] 인간적 형태를 취한다고 해서 의인화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지혜가 아테나 여신으로 표현될 때, 아테나 여신은 지혜의 의인화가 된다. 하지만 고전 예술에서 지혜는 아테나 여신이 지닌 여러 속성 중의 하나이며, 아테나 여신은 그 자체가 하나의 주체로서 활동한다. .

[2] 미학강의 2권, 91쪽

[3] 미학강의 2권, 91쪽

[4] 미학강의 2권, 415쪽

[5] 미학강의 2권, 89-91쪽

[6] 미학강의 2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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