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합리성이 없는 정치 [시대와 철학]
최소한의 합리성이 없는 정치
정동훈(성공회대 대학원)
모두의 주목을 받은 화제의 보궐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에 대한 조금 이른 중간평가를 해도 적절할 것 같다. 처음 이 글을 쓰려고 했을 때 생각보다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지? 라는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다. 비판할 주제가 너무 많아서 1주에 3번씩 글을 써도 6개월은 버티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마 6개월이 지나기 전에 6개월 치를 새로 쌓아줄 것이다. 악재를 더 큰 악재로 잊게 만든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만큼이나 엉망이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첫날부터 지금까지를 평가하면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최소한의 합리성이 없는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개인적인 정치 성향이 좌측이다 보니 보수 정부의 정책 내용에 찬성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나 나의 성향이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보수 정부의 정책이라도 정책 결정의 맥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보수 정부라면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정책들이 있다. 이해가 어려운 경우에는 보통 보수당원인 지인들에게 설명을 부탁하고 들어보면 의사결정의 맥락을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정책 결정은 보수당원들에게 물어봐도 이해할 방법이 없다. 보수당원이나 관계자들도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본인의 소속정당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결정들이 임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구태여 예시를 나열하지 않아도 아마 문득문득 떠오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는 최소한의 합리성이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 집권을 했던 세력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지고 통치를 했다. 예를 들어 현재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파키스탄은 군부의 성향이 폭력적이지만 주변국과의 분쟁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역시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이 이어져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이 집권세력이 가지는 최소한의 합리성이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임기 초부터 지금까지 국제정치는 물론 국내적으로도 분야를 불문하고 제대로 설명이 가능한 정책이 거의 없다. 몇몇은 자신들이 내세운 주장을 어떻게든 관철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있다. 최근 치러진 보궐선거가 가장 시의성 있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에서 유죄로 판결이 나와서 보궐선거를 진행하는데 거기에 그 원인이 되는 인물을 다시 출마시켜놓고 그것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심지어 승리를 바라는 모습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공화정 체제를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번영까지 일구어낸 선진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연이어 일어나는 현실은 매우 불행하다. 심지어 한국이 공화정이 아니라 왕정이었더라도 집권세력이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을 남발하는 현실은 집권세력은 물론 최종적으로 국민에게도 득 될 것이 전혀 없다. 정말로 안타까운 지점은 이보다 더 비합리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일어나면 그에 대한 평가가 무색하게 며칠이 지나면 더 비합리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패턴의 반복이 윤석열 정부의 현재라는 것이다. 앞으로 개선의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많은 이들의 평가가 그렇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치는 수준이 낮아지고 국민은 고통받는다. 더욱 충격적인 진실은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아직도 3년이 넘게 남았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합리적 정책을 기대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우리 공동체에 비합리적 이해가 팽배해질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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