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와 정신분석 5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Spread the love

호퍼와 정신분석 5

 

1)

앞에서 20년대 후반 호퍼의 욕망 구조에 대해 언급했다. 다리, 망사르 집, 등대 그림 등에서 보듯이 실재로 가는 길은 차단되었고 그는 이에 대응하여 상상계적인 동일시를 통해 실재로 다가간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는 호퍼의 생애에서 어쩌면 가장 행복했을 수도 있는 신혼기였다. 호퍼는 1924년 9월 같은 동료 화가인 조(Josephine Nivison)과 결혼했다. 그리고 1925년 삽화가로서 상업적 활동을 포기하고 그림에 전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그의 그림이 팔리기 시작했다. 이런 시기에 그가 상상계적인 동일시에 빠졌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호퍼 자신의 전기를 통해서 그의 욕망 구조를 짐작해 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호퍼의 생애에서 그런 부분에 관한 연구는 없다. 그런데도 몇 가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그의 부모이다.

 

2)

호퍼의 부모는 침례교도로서 상당히 경건한 삶을 했다고 알려진다. 부모는 결코 강압적이지 않았고 그림에 대한 호퍼의 관심을 격려해주었다. 그럼에도 호퍼의 부모의 청교도적인 태도는 호퍼에게 강한 영향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호퍼는 1906 이후 3년간 파리에서 생활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파리로 온 예술가들은 파리의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의 무정부적인 삶에 휩쓸려 들었다. 호퍼는 파리의 인상주의 그림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파리의 예술가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부모가 정해준 집과 미술관을 오가며 혼자서 인상파의 그림을 습득했다고 알려진다.

무엇보다도 그가 나중에 자신이 살았던 집과 유사한 집을 그리면서 이름을 청교도라고 붙인 데서 이런 청교도적 영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집은 흰색 나무 판넬로 이루어진 단순한 맞배 지붕 형태이며, 이런 집은 후일 호퍼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3)

호퍼의 그림에서 파리 시절 초기에는 거의 유일하게 인상파적으로 밝고 경쾌하며, 붓터치가 자유로운 그림이 그려졌다. 파리 이전 습작기에서나 1909년 그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 어느 때나 그의 그림은 무겁고 어두우며 이제 붓터치를 알 수없이 평면화 된 색채가 지배하게 된다. 파리 시절 이 경쾌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어두워졌을까?

그가 막 미국으로 돌아왔던 시기에 그린 그림 ‘여름 실내(Summer Iinterier: 1909)’는 그의 마음에서 무언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이 그림에서 왼편의 짙은 갈색의 침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은 상당히 밝은 색조를 이루고 있다. 그 한 가운데 이불보와 함께 침대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진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상의만 걸치고 하의는 벗은 모습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숙이고 있어 얼굴은 윤곽만 보이지만 오뚝한 콧날이 인상적이다. 얼굴은 검게 칠해져 마치 뒤로 묶은 머리카락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녀는 무언가 충격을 받았으며, 그 앞에서 무기력하게 내팽개친 모습이다.

 

4)

대체 이 여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꿈을 꾸다가 침대에서 떨어진 듯하다 볼 수도 있는데 상의를 걸치고 있다는 것이 그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녀를 덮친 이후 갑작스럽게 떠난 것인가? 검은 얼굴은 그렇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침대를 제외한 나머지 밝은 색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목은 ‘여름 실내’인데, 이 제목으로 보면 호퍼의 삶에서 여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호퍼가 실연 이후의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기 호퍼는 독일에서 온 한 여성을 사귄 것으로 알려진다. 호퍼는 그녀에게 상당한 애착을 느낀 듯한데, 그녀는 호퍼에게 깊은 감정은 없었고, 그러기에 쉽게 떠나고 말았다. 한 두 번 편지 교환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더 이상 관계는 발전하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그림을 보면, 그림에서 미끌어진 여성은 호퍼 자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호퍼는 독일계 여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호퍼가 육체적으로 무기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호퍼의 무기력은 호퍼에게 여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심적으로 억압하는 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기 그는 상당기간 극복할 수 없는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그의 친구 Walter 는 말한다. 

“[그는] 며칠 동안 이젤 앞에 앉아서 불행감을 느끼며 손가락을 들어 주문을 깰 수도 없는 상태에서 살았다”

 

5)

여기서 호퍼의 욕망 구조를 추측해 보자. 호퍼는 청교도 가정에서 심적 억압을 느꼈다. 그것은 거꾸로 그만큼 그의 마음의 표면 아래서 실재의 욕망이 일렁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절만해도 그의 의식계는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면서 어둡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온한 상태였다.  파리 시절 호퍼가 앞에서 말한 연애에 빠졌을 때, 그의 욕망 구조는 가장 안정적이었다. 이때 경쾌하고 밝은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호퍼의 실연은 그에게 심적인 충격을 주었고 그 때문에 그럭저럭 유지되어온 그의 상징세계는 균열하면서 이런 균열의 틈 속으로 마그마와 같은 욕망, 실재에 대한 욕망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분출하는 실재에 대한 욕망 앞에서 그가 취한 태도가 곧 상상적인 동일화이다. 1925년 그려진 ‘철로 가의 집’에서 기괴할 정도로 솟아 있는 망사르 집이 실재에 대한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1927년 ‘등대 언덕’에서 그려진 솟구친 등대는 상상적 동일화를 의미한다.

그의 욕망 구조가 상상적 동일화 단계로 진입하는 시기 1924년 호퍼는 조와 결혼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이미 42살이고 동갑이니 호퍼보다 조가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호퍼와 조의 관계는 욕망 구조의 측면에서 본다면 부부의 욕망 관계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하지 않는 점이 눈에 뜨인다. .

 

6)

호퍼와 아내의 관계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호퍼의 친구인 사진가가 1960년에 찍은 사진이다. 이 집은 호퍼가 바닷가 South Truro에 그가 직접 지은 집이다. 이 사진에서 호퍼는 무척이나 확대되어 있고 반면 조의 모습은 뒤쪽에 아주 조그마한 크기로 등장한다. 마치 그의 등대 그림에서처럼 거대한 조는 위압적이다.

이 그림을 보면 호퍼는 마치 압도적인 가부장적 존재이고 반면 조는 그에 종속되어 존재감 자체가 희미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의 진정한 의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조가 뒤에서 아이와 같은 호퍼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호퍼는 아이와 같고, 조를 어머니처럼 따른다. 조가 없으면 호퍼는 짜증을 내면서 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호퍼는 사춘기 소년이 항상 그렇듯이 자기 자신을 압도적 힘을 지닌 존재로 확신한다. 하지만 그의 확신은 그의 배후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니, 이 관계를 라캉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곧 상상적인 동일화의 심적 구조에 속한다고 하겠다.


« 지난 글: 호퍼와 정신분석 4 – ‘등대’

» 다음 글 : 호퍼와 정신분석 6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