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기 『자본론』 [내가 읽는 『자본론』]

나의 무기 『자본론』

 

최재식(경희대 철학과)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독어판 서문에서 순진한 독일 독자들에게 일갈하는 대목이다. 『자본론』이 나온 지 벌써 150여 년이 지났지만, 또 내가 지금 살아가는 곳은 『자본론』의 배경인 유럽이 아니라 대한민국 땅이지만, 이 일갈은 2020년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물론 전 세계 사람들 모두에게도 ̄ 유효한 언명이다. 『자본론』의 문제의식은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각자가 살아가는 조건이 다른 만큼, 『자본론』도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나는 나의 조건에서,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자본론』을 읽고, 그에 관한 글을 쓸 것이다. 본격적으로 그러기에 앞서, 나와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과 『자본론』에 관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현재 전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반대한다. 또한 『자본론』이 가진 문제의식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모순은 지금까지 결코 해소된 적 없으며, 앞으로도 자본주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자본론』을 읽어서 이런 ‘빨갱이’가 된 건 아니다. 『자본론』은 나의 그러한 사상적 입장을 날카롭게 벼릴 수 있게 해주는 숫돌이지, 결코 경전이 아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가졌기에 굳이 그 두껍고 문체도 건조한 『자본론』을 꾸역꾸역 읽은 것일 게다.

그럼에도 『자본론』은 내 인생의 책 중 한 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 가졌던 여러 문제의식에 공명해주는 가장 강력한 책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 사회에 의문을 가지고 살았다. 처음에는 그냥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었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철이 들어가면서 ‘그냥 그런가봐’ 하면서 복권당첨을 꿈꾸며 자기 앞에 닥친 일에만 신경 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남들보다 덜 철이 들었나보다. 부러움과 동정은 세상에 대한 분노로, 세상에 대한 분노는 인생에 대한 의문으로, 인생에 대한 의문은 체제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내 주변 환경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내 주위에는 항상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다. 사회는 항상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도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런 사회의 선전이 곧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명문대 출신들에게 고액과외를 받을 때 그들은 동네 허름한 보습학원을 전전했고, 다른 친구들이 방학마다 해외여행을 다닐 동안 동네PC방에서 시간을 때울 뿐이었다. 나름 여유로운 형편의 친구들은 집에서 용돈도 받으면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할 때,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제대로 된 자기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다. 그러니 그들은 대학은 꿈도 못 꾸었으며, 중·고등학교도 어영부영 다니고 바로 사회로 나가야 했다. 그런데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나는 이 말이 정말 싫다.

대학에 와서 더 적나라하게 느꼈다. 지갑이 두꺼운 사람과 지갑이 얇은 사람은 생각하는 게 다르다. 요즘 시대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들 한다. 그런데 진짜 밥을 굶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봤다. 단 몇 천원이 아쉬워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비싼 서울 방값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서 고시원을 전전하고 친구 하숙집에 몰래 얹혀살다시피 하는 대학생이 2020년 대한민국에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에게 미래는 밝은 꿈이 아니라 어두운 현실이다. 20대의 꿈도 지갑이 두꺼워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러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노력만으로 이러한 삶을 벗어나려면 인간으로 살기를 포기해야 한다. 학교 수업 외 모든 시간 노동을 해야 하고, 그러면서 공부도 해야 한다. 점점 가진 자에 대한 부러움은 시기로 변했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은 내가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절망적인 고민으로 변해갔다.

더 가진 자에 대한 시기와 덜 가진 자에 대한 동정은 돈 못 별면 사람대접 못 받는 세상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그랬다. ‘내 고민의 근원에는 자본주의가 있구나.’ 그렇게 살아왔다. 어쩌다 『자본론』을 읽게 되었다. 그냥 열심히 읽었다. 무언가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읽었다. 1권을 다 읽었다. 별 답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일상의 당연했던 문법들이 낯설어졌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실을 설명할 하나의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200년 전 태어난 털북숭이 독일인 아저씨에 공명하는 순간, 그 순간 나는 『자본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자본론』을 철 지난 헛소리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미 나는 보았다. 여전히 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어디선가는 4차산업혁명을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현상에 불과하다. 세상이 어찌되든 간에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와 같은 대학생들 역시 정교하게 따져본 적도 없고 투철한 계급의식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미래에 임노동자가 될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기업체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겠는가? 결국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른 빈부격차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고 해소될 여지도 없어 보인다. 아직까지 『자본론』은 현재 그리고 어느 정도의 미래까지 우리가 처했고 처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는 동의하는 사람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들을 앞에 두었을 때의 나의 심정을 이 글의 맨 앞에 인용한 문구가 대변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자본론』을 펼쳐들고 읽으라 강제하고 싶었다. 당신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게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당신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비극이 필요한지 알고 있냐고, 왜 남들 살라는 데로 살아야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처음의 분노처럼 계속해서 감정이 끓어 넘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론』은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담은 책도 아니고, 진리가 담긴 경전은 더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고민하기보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기회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치열하고 엄밀하게 고민하고 사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쓴다. 나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배우면서 나 자신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바람이 크다.

맨손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순 없다. 나 혼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도 없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끊임없는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도구가, 무기가 필요하다. 나는 『자본론』이 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자본론』은 무려 시대의 삶을 바꾸었다. 그런 책은 드물다. 자본주의가 살아있는 한,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계속되는 한, 『자본론』은 그 대안을 모색하는 길잡이로서 가장 유의미한 논의로 남을 것이다. 지난 150년간 그래왔으며,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자본론』이 제기한 문제의식의 원인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수억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수천만의 사람들이 하루 1달러로 연명하는 세계가 지속되는 한 『자본론』의 생명력은 결코 다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세계 전체를 망라하는 경우가 아닌 우리 삶의 작은 조각에서도 『자본론』은 우리의 무기가 되어준다. 대학 못 가면 인간 대접 못 받는 사회가 절망적이라면, 그래서 꾸역꾸역 대학 갔더니 졸업하고 취직도 안 되는 현실이 지긋지긋하다면, 인간을 돈으로만 보는 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면, 겨우겨우 취직하니 일만 하다 죽을 것 같다면, 이 이상한 삶을 끝장낼 무기로 『자본론』을 사용해보자. 답을 얻지는 못해도 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는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은 나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자, 내 친구들을 위한 약속이기도 하다. 나는 집도 없이 한 끼 한 끼 겨우겨우 먹고 살아가는 내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자본론』을 나의 무기로 삼아 나아가겠다. 언젠가 세상은 나아지겠지만, 또 나아져야만하겠지만, 그 과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갈려나가는 순간의 연속일 터이다. 그 희생과 헌신에 나의 보잘것없는 노력도 함께할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