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시간, 기도 [시가 필요한 시간]

열두 번째 시간, 기도

 

마리횬

 

 

 

‘무언가를 빌다’라는 뜻의 한자어, 빌 기(祈)에 빌 도(禱)로 이루어진 말, ‘기도’입니다. 종교의 유무에 따라 어쩌면 자칫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단어일 텐데요, 그런데 이문재 시인의 시 <오래된 기도>에서는 조금 다른 ‘기도’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하는 것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게 기도가 될 수 있지?” 라고 반문이 드는 것들이 있죠. “음식을 오래 씹는 게 기도하는 거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이 시에서 ‘기도’라고 말하고 있는 행동들을 가만히 살펴 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다름아닌 ‘잠시 멈춤의 상태’, 곧 일상의 빠른 흐름에서 순간의 시간, 일부의 시간을 떼어내는 행위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노을이 지는 때라면 곧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찾아왔음을 의미합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로 오늘을 보내버리기 전에, 잠시 멈춰 노을을 한 번 바라본다면, 그 짧은 순간만큼은 잠시 하루를 돌아 볼 시간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음식을 오래 씹는 것 역시, 별 의미 없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한 번쯤 천천히 음식을 오래 씹는다면, 아무래도 그 순간만큼은 잠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조금이라도 갖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어떤 ‘멈춤의 상태’, 마구 흘러가 버리는 시간에 잠시 ‘매듭’을 지어보는 것. 시인은 그러한 시간이나 순간들을 ‘기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또한 관심 없이 지나가버릴 수 있는 사소한 존재, 생명, 주변의 자연에 한 번 더 따뜻한 눈길을 주는 것 역시 ‘기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버스에서 혹은 길에서, 아이들에게 눈 마주쳐 준 적 있으신가요? 피어있는 꽃을 잠시 바라보셨나요? 그럼 여러분도 기도를 하신 겁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기도라는 것이 과연 어떤 거창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며,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주변에 숨쉬고 있었던 기도의 순간들. 그래서 시인은 이 기도를 ‘오래된 기도’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미처 알지 못한 순간에도 이미 이 오래된 기도를 해오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한병철 교수의 <시간의 향기(문학과지성사, 2013)>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오는데요, 최고의 행복은 아름다운 것 곁에 사색에 잠겨 머무르는 데서 생겨난다. … 완전히 자기 안에 고요히 있는 사물을 바라보는 것. 진리에 대한 사색적 헌신. 이것이야 말로 인간을 신의 곁으로 데려간다.”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사색적 헌신’은 이문재 시인의 시 속에 담긴 여러 모양의 ‘오래된 기도’와 결코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름다운 것 곁에 잠시 머무르는 것, 사색에 잠기는 것이 바로 우리가 누려야 할 최고의 행복이며, 우리들에게 필요한 오래된 기도인 것이죠.

어떻게 한 주가 흘렀는지 모르게 벌써 주말을 맞이하고, 어느새 4월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이유, 모든 것이 점점 가속도가 붙은 듯 흘러가버리는 이유. 한병철 교수의 표현을 빌면, 흘러가는 시간을 묶어주는 ‘사색적 헌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금이 우리 삶에 기도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외출도 자제하게 되고, 어쩔 수 없는 멈춤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죠. 한 편으로는 그 동안 우리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 곧 친구와 만나 나누는 소소한 일상의 대화나, 반가운 얼굴들과의 악수, 계절마다 걸었던 벚꽃길 등.. 아무렇지 않게 누렸던 일상들이 이제 와 보니 매우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멈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여전히 바쁜 하루, 분별없이 흘려 보내는 오늘을 살고 계신가요?

내일은요 잠시 가만히 눈을 감아 보시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보시고, 또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도 불러보고, 노을이 질 때 잠시 걸음을 멈춰 보고, 갓난아기와 눈도 맞춰보고, 차를 타지 않고 한 번 걸어도 보고,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바라 보는… ‘오래된 기도’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와 함께 들어볼 노래 소개해드릴게요.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ost 중 <나의 피아노> 라는 곡, 이병우 기타리스트의 연주로 들으면서 잠시 머무르는 것, 사색적 헌신의 시간을 한 번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2주 후에 찾아오겠습니다.

이병우 – 나의 피아노 https://youtu.be/559T9wiwwCE


필자 마리횬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