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 ㊱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㊱
[제 3 권]
* <국가>는 크게 서론(제1권), 본론1(제2권-제4권), 본론2(제5권-7권), 본론3(제8권-제9권), 에필로그(제10권) 등 다섯 부분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서두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제2권에서 제4권까지는 각 권들 간에 내용상의 단절 없이 이어져 있어서 지금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제3권 역시 제2권 중간쯤(375a)에서 시작된 이상국가론의 서두 부분의 내용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아래는 제4권 끝(445e)까지 이어질 그 이상국가론의 전체 목차이다.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논의는 이제 본격적인 이상국가론에 진입하여 수호자의 교육론 가운데 시가 교육 부분을 다루면서 시인들이 시를 지음에 있어 지켜야 할 내용들로서 신들에 관한 것을 마무리한 후 수호신과 영웅들에 관한 것을 다루기 시작한다.
- 본론 1, B. 정의로운 나라와 정의로운 개인(제2권 375a- 제4권 445e)
<제2권> 후반(375a-383c)
1. 정의로운 나라의 수립(375a-434d)
1-1 수호자의 성향(375a-376c)
1-2 수호자의 교육(376c-412b)
1-2-1 시가 교육(376e-403c)
1-2-1-1 무엇을 말해야 할 것인가 – 시인들이 지켜야 할 규범(376e-392c)
1-2-1-1-1 어린이를 위한 설화와 허구(376e-377d)
1-2-1-1-2 신들에 관한 것(376e-383c)
* 신은 선하다(376e-380c)
* 신은 단순하고 거짓말을 할 수 없다(380d-383c)
<제3권>(386a-417b)
1-2-1-1-3 수호신과 영웅들에 관한 것(386a-391e)
* 용기(386a-389a)
* 정직과 절제, 경건(389b-391e)
1-2-1-1-4 인간에 관한 것(392a-392c)
1-2-1-2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392c-398b)
1-2-1-2-1 이야기 투와 모방(392e-398b)
1-2-1-2-1 가사, 선법, 리듬(398c-401a)
1-2-1-3 시가 교육의 목적(401b-403c)
1-2-2 체육 교육(403c-412b)
1-3 수호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412b-427c)
1-3-1 수호자들의 선발과 자격(412b-414b)
1-3-2 건국 신화(414b-415d)
1-3-2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 사유재산의 금지(415d-417b 제3권 끝)
<제4권>(419a-445e)
1-3-2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 사유재산의 금지(제3권에 이어 계속, 419a-421c)
1-3-3 수호자들의 임무(421c-427c)
1-4 정의로운 국가의 주요 덕목 : ‘지혜’, ‘용기’, ‘절제’, ‘정의’(427d-434c)
2. 정의로운 개인과 영혼(434d-445e)
2-1 혼의 세 부분(434c-441c)
2-2 정의로운 개인의 주요 덕목 : ‘지혜’, ‘용기’, ‘절제’, ‘정의(441c-445e, 제4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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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386a-417b)
1-2-1-1-3 수호신과 영웅들에 관한 것(386a-391e)
* 용기(386a-389a)
[386a-b]
*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 ‘신들과 어버이γονεύς를 공경하고τιμήσουσιν 서로 우정φιλί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신과 관련하여 어릴 적부터 들어야 할 것과 듣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폈다고 말한다.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이제 그들이 용기 있는 사람들ἀνδρεῖοι이 되려면 그들 자신이 죽음θάνατος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들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저승Ἅιδης의 일들이 실제의 것들이고 또 무서운 것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전투μάχη에서 패배하여 노예δουλεία가 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은 결코 나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설화를 들려주는 사람들을 감독해야ἐπιστατεῖν 하며 그들에게 저승의 일들을 무조건 험하게 말하지 말고μὴ λοιδορεῖν 오히려 찬양ἐπαινεῖν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δεῖσθαι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는 진실ἀληθῆ도 아니거니와 장차 전사들로 될 사람들을 위해 유익ὠφέλιμος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386c-387a]
*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설화 가운데 위와 같이 저승과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시구ἔπος 를 비롯해 그런 유형의 것들은 모두 삭제해야ἐξαλείφω 한다고 말하고 그 구체적 사례들로서 여섯 가지 시구들을 인용하여 열거하고 있다. 그 사례들은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한탄하는 장면은 물론 파트로클로스가 비명을 지르며 하데스로 사라지는 모습 등 하나같이 죽음과 하데스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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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살폈듯이 시가 교육에 있어 내용적 규범과 관련한 부분은 신과 관련한 부분, 수호자 및 영웅과 관련한 부분, 인간과 관련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이곳의 논의가 수호자 및 영웅과 관련한 논의로 시작되는 부분임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신과 관련한 논의가 앞에서 마무리되었다고 말한 후 불쑥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지금까지의 논의 방식을 뒤돌아보면 크게 어색할 것도 없다. 앞서 보았듯이 소크라테스는 시가 교육을 다루면서 겉으로는 들려주어선 안 될 것과 들려주어야 할 것을 큰 틀로 삼아 논의를 전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의 측면을 들여다보면 전자의 형식을 통해 기존의 전통적 가치관을 비판하고 있고, 다른 한 편 후자의 형식을 통해서는 새로운 대안 내지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드러난 것이 신의 선성을 기초로 하는 플라톤의 새로운 신학이자 종교관이다. 플라톤은 이제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신들에 이어 영웅들에 관한 기존의 설화들을 비판하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용기와 절제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방식으로 정차 수호자가 될 젊은이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논의 단계가 수호자 선발 이전의 기초 교육 단계라는 점에서 그 덕목들은 아직 지혜와 정의라는 덕목까지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 덕목들은 수호자의 선발 이후 자세하게 논의하게 될, 이른바 정의로운 나라와 개인이 갖추어야 할 4가지 덕목들 즉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바탕이 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로 이곳 서두에서 용기는 일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여 점차 ‘동료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387d), ‘웃음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388e) 등 구체적인 행위 사례들로 표현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용기를 다루는 제4권에 가면, 이러한 용기에 대한 구체적 예시들은 좀 더 일반화된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다. 즉 ‘용기란 일종의 보전 즉 고통과 즐거움, 욕망과 공포에 처해서도 끝끝내 소신을 보전하여 지니는 것’(429c-d), ‘두려워할 것들과 두려워하지 않을 것들에 관한 바르고 준법적인 소신의 지속적인 보전과 그런 능력’(430b)이다.
* 앞서 신들과 관련한 논의에서 언급되었듯이, 신들이 선하고 서로 다투지 않는 한, 젊은이들은 그 신들을 본받아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소크라테스가 이곳 서두에서 젊은이들을 ‘신들과 어버이를 공경하고 서로 우정을 중시하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특히 어버이에 대한 공경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동양적인 정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도(378b) 소크라테스는 우라노스와 크로노스 관련 이야기를 비판하면서 설사 아버지가 부정의한 짓을 저질러도 응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제5권에 가서도 수호자들은 자기가 만날 모든 사람을 형제나 누이,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과 딸, 자손 혹은 선대로 여겨야 한다고 말하면서 아버지들에 대한 공경aidos과 돌봄, 어버이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고 있다(463c-d, 465b). 게다가 <법률>에서는 어버이를 살해하거나 때리는 불경한 자에 대한 처벌은 하데스에서의 처벌보다 결코 부족해서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비록 거류외인이라 할지라도 부모를 때리는 자를 막아설 경우 경연의 특별석에 초대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영구히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플라톤 역시 신과 어버이를 섬기고 이웃과 우애롭게 지내는 것을 사람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플라톤의 가르침은 하늘을 섬기고 타인을 사랑하며(敬天愛人)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라(孝悌)는 동양 유가의 가르침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사실 중국이나 고대 그리스 같은 농경사회에서는 경험이 생존의 기초이고 농사가 협업을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나이 든 사람을 존경하고 이웃과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지냄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전쟁에서도 경험과 협업이 승패를 좌우한다. 특히 고대 그리스 귀족들에게 명예가 다름 아닌 전쟁 영웅이 되어 후대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일반 시민들 또한 훌륭하게 살다 죽은 후 자식들과 형제들이 자신을 잘 기억해주는 것을 명예로 여겼을 것이고 그만큼 그것을 담보해줄 자식들과 형제들의 존재와 그들 간의 결속 또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 ‘저승의 일들을 무조건 험하게 말하지 말고 오히려 찬양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말은 플라톤 자신이 저승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과 견해를 달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호메로스 시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죽은 다음의 세계 즉 내세에 대한 인식은 희박했고 다만 죽은 자의 망령이 때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믿었는데 저승은 그 망령들이 머무는 곳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교단을 위시하여 디오뉘시오스 신앙과 엘레우시스 비교(秘敎)가 아테네에 유입되면서 점차 아테네인들의 의식 속에 내세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고 이생에서의 행위들에 대한 저승에서의 인과응보와 영혼의 불멸에 대한 신앙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기원전 5세기 말에 이르면 엘레우시스 비교에서 주장하는 이생의 죄에 대한 정화의식이 크게 유행하였다. 저승을 오히려 찬양하도록 요구해야 된다는 플라톤의 말은 이미 아테네에 뿌리내린 그와 같은 당대 내세관을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플라톤은 제10권에서 죽은 다음 다시 이생으로 돌아온 에르(Er)를 통해 저승에 존재하는 죽은 혼들의 모습과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영혼의 불멸은 물론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인과응보가 저승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요컨대 저승이 무조건 험한 것이 아니라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심판이 정의롭게 이루어지는 한, 저승은 그만큼 찬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가 이곳에서 용기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저승조차 오히려 찬양의 대상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이 갖는 의미는 ‘죽음과 저승이 실제 두렵고 혐오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수호자라면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정도의 당위적 인내 수준을 이미 넘어서 있다. 오히려 플라톤은 대화편 여러 곳에서 죽음과 저승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죽음이 요구될 경우 기꺼이 다가설 수 있는 적극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올바르게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죽는 것을 수행(연습)meletēma하는 것이고, 죽어 있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가장 덜 두려운 것’(67e)이며 그것은 곧 철학자들이 열망하는 것으로서 ‘몸으로부터의 영혼의 풀려남과 분리’λύσις καὶ χωρισμὸς ψυχῆς ἀπὸ σώματος(67d)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법률> 제5권에서도 ‘살아 있음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것은 혼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고 저승의 일 모두가 나쁘다는 것도 그곳의 신들과 관련된 것이 우리에게 최대로 좋은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727d)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제8권에 가서도 하데스가 오히려 인간 종족에게 가장 좋은 신이라 여기고 존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혼과 몸의 결합이 그것의 분리보다 나은 점이 없기 때문이다(828d). 이런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변명>에서 죽음에 대해 좋은 기대를 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41c). 혹자는 플라톤의 이러한 주장이 자살을 부추기는 것일 수 있다고 비판하지만, 플라톤에게 죽는 연습으로서 철학이 종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의롭게 사는 연습이다. 소크라테스가 <변명>에서 죽을 의향이 있다고 말했을 때도 그 말의 취지는 저승에서의 삶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이승에서 부정의한 심판을 받아 죽은 자들과 서로 겪은 일들을 견주어보고 그가 지혜로운 자였는지 아닌지를 탐문 하려는데 있었다(41b). 흔히 말하듯 well dying은 well being에서 나오는 것이다. 혼과 몸의 분리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생에서 정의롭게 살지 않는 한, 죽어서 분리된 혼은 저승에서 결코 정복(淨福)을 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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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b-387c]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와 다른 시인들에게 위와 같은 구절을 삭제할지라도 화를 내지 않도록μὴ χαλεπαίνειν 간청할 것이며 그러한 시구들이 시적일수록 그만큼 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로 하여금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인ἐλεύθερος 즉 죽음보다는 노예 신세를 더 두려워할 사람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것들과 관련된 모든 무섭고δεινός 두려운φοβερός 이름들, 이를테면 코퀴토스Κωκυτος, 스튁스Στύξ, 지하세계에 사는 자들ἔνεροι, 송장ἀλίβας 등 모든 이들을 몸서리φρίκη치게 하는 것들도 거부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수호자들을 너무 조급하거나θερμότεροι 나약하게μαλακώτεροι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와는 반대되는 유형의 것들을τὸν ἐναντίον τύπον 이야기하고 지어야 한다ποιητέον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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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죽은 호메로스에게 간청한다는 표현은 시적 표현이거나 호메로스를 찬양하는 후예들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코퀴토스와 스튁스는 하데스에서 흐르고 있는 강들로 전자는 통곡의 강, 후자는 증오의 강으로 일컫는다.
* 고대 그리스에서도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가 되면 신분이 귀족일지라도 모두 적국의 노예가 되었다. 그래서 노예들 가운데는 지적 수준이 높은 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귀족 집안에서 가정교사를 맡거나 대토지 소유주의 마름 노릇도 하면서 안정된 삶을 누리거나 부를 축적한 자들도 있었다. 또 일부는 이를테면 출판업 즉 원본 파퓌로스를 필사·복제하여 널리 배본하는 일을 맡아 후대에 고대 문헌들이 전승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실은 유명 파퓌로스를 보면 그것을 펴낸 주인의 이름과 내용을 필사한 노예의 이름이 말미에 적혀 있기도 하다. 어떤 노예가 필사했느냐에 따라 사본의 권위와 구매자의 욕구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387d-e]
*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이름난ἐλλόγιμος 인물들의 통곡ὀδυρμός이나 비탄οἶκτος 또한 삭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훌륭한ἐπιεικής 사람은 자신의 동료ἑταῖρος이기도 한 훌륭한 사람 역시 죽음τὸ τεθνάναι을 두렵게 여기지 않을οὐ δεινὸν ἡγήσεται 것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φημί. 그러므로 마치 무서운 일을 동료가 당하기라도 한 듯이 통곡하는 것은 동료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훌륭한 삶에 있어πρὸς τὸ εὖ ζῆν 스스로 가장 자족할 수 있는μάλιστα αὐτὸς αὑτῷ αὐτάρκης 사람이어서 누구보다도 타인 의존도가 적고 그에 따라 자식υἱός이나 형제ἀδελφός 또는 재화χρῆμα나 그런 유의 다른 어떤 것들을 빼앗기더라도 가장 덜 두려워ἥκιστα δεινὸν 할 것이고 어떤 불행한 사태συμφορά가 닥치더라도 덜 통곡하고 가장 온유하게πρᾳότατα 견뎌낸다φέρει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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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사람은 자신의 동료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믿는 한, 동료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이하며 두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 살폈듯이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좋은 것 즉 혼의 해방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의 경우 동료의 죽음을 두고 그가 마치 당한 것으로 여겨 통곡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플라톤은 여기서 훌륭한 사람을 일컬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스승 소크라테스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실제로 <변명>과 <크리톤>, <파이돈> 등 여러 곳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훌륭한 사람의 경우 가장 자족αὐτάρκης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일컬을 때도 그가 염두에 둔 사람 역시 소크라테스였을 것이다. 여기서 자족할 수 있다는 것은 제2권에서의 자족 개념(369b) 즉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사회 분업적인 기능을 다 잘할 수 있다는 의미의 자족이 아니라 여기 표현 그대로 불행한 사태συμφορά나 힘든 일을 맞이해도 타인에 대한 의타심 없이 자기 혼자 스스로 온유하게πρᾳότατα 잘 견뎌낼 수 있다φέρειν는 의미의 자족 즉 내적 조건으로서 자립심 내지 의지의 강함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자식과 형제, 그리고 재화는 삶의 외적 조건들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삶이 곤경에 처했을 때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기보다는 자기를 도와줄 자식이나 형제의 부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화의 결핍을 탓한다.
[388a-c]
*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시가에서 이름난ὀνομαστός 남자들의 애가(哀歌)θρῆνος를 가려내어 그것을 여인γυνή들이 노래한 것으로 돌려놓는다면, 그것도 진지한σπουδαῖος 여인들에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남자들 중 모든 못난κακός 자들이 그렇게 노래한 것으로 돌려놓는다면ἀποδίδωμι 그것은 옳은ὀρθῶς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수호자로 양육될 사람들이 그와 유사한 짓을 하는 것에 대해 경멸하게δυσχεραίνωσιν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 및 다른 시인들에게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일이 없도록 부탁할δέω 것이라고 말하고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여러 군데 인용하여 비판한다. 인용된 사례들 가운데에는 아킬레우스나 프리아모스Πρίαμος 같은 신들의 자손이나 훌륭한 사람들이 동료나 자식의 죽음을 두고 비탄하는 모습은 물론 신들 중 가장 위대한 신 제우스가 그의 아들 사르페돈Σαρπηδών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
* 애가(哀歌)θρῆνος는 말 그대로 망자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노래이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시가에는 이름난 남자들이 노래한 애가가 많이 실려 있는데 정의로운 나라에서의 시가 교육 과정에서는 그러한 내용을 삭제하거나, 굳이 실어야 한다면 진지하지 못한 여인들과 못난 남자들이 노래한 것으로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 역시 플라톤이 기존 시가에 대한 검열과 변조를 용인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에게는 이미 훌륭한 사람들이 죽음을 슬퍼했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그것은 있는 사실을 고의로 왜곡하고 변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진실을 밝히고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 남자들의 애가를 여인들이 노래한 것으로 돌린다는 말에서 혹자는 여인들에 대한 차별을 읽어내기도 한다. 실제로 당대 아테네에서는 비록 귀족일지라도 여성은 시민권을 가질 수가 없었고 반드시 결혼하여 출산과 집안일을 맡아야 하는 기계 정도로만 여겨졌다. 플라톤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남성으로서 그 한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대 민주정의 우상으로 여기는 페리클레스조차 여인들의 덕이란 다만 남자들의 입에 오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여기서 일반 여성들 외에 애가와 무관할 정도의 진지한 여성들의 존재도 함께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수호자의 자격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여성 또한 수호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조차 여성에게 참정권이 허락된 것이 20세기 이후의 일임을 고려하면 기원전 5세기 플라톤의 그와 같은 제안은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 신들 중 가장 위대한 신 제우스조차 자기 아들 사르페돈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슬퍼하는 장면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운명관을 설명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즉 고대 그리스 신들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가장 위대한 제우스조차 이미 정해진 운명moira을 거스르지 못한다. 가사자들의 죽음은 신들이 최초 자신들의 권한 영역을 분할 할 때 운명의 신 앞에서 맹세한 불가침의 서약 그대로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부여된 고유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게 서로에 대한 침범이 불가능adynaton하지는 않지만 침범할 경우 그들은 하나같이 복수nemesis의 신으로부터의 응징nemein을 각오해야만 한다. 요컨대 운명의 신이 정한 최초의 분배 즉 각자의 몫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각자의 운명이자 당위이며 동시에 또 누구로부터도 침해받지 않는 각자의 권리이기도 한 것이다.
[388d-e]
* 소크라테스는 들을 가치도 없는ἀνάξιος 이러한 이야기들을 젊은이들이 귀담아 듣는다면σπουδῇ ἀκούοιεν 그들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나무라기는커녕 사소한 고난πάθημα에도 전혀 부끄럼도, 참는καρτερός 법도 없이 애가를 부르며 통곡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앞의 주장ὁ λόγος이 지적해주었듯이 결코 그래서는 안 되며 더 나은 다른 주장에 설득되기 전까지는 그 주장에 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388e-389a]
*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시가 속에서 신들이나 위인들이 죽음이나 불행을 비탄하는 모습은 물론 이제 그들이 웃음γέλως에 사로잡히는 모습까지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젊은이들을 ‘웃음을 좋아하는 사람’φιλόγελως으로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심한 웃음에 자신을 내맡기게 하여 강한 변화μεταβολή를 유발시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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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8e에서 언급되고 있는 ‘앞의 주장’은 전후 맥락상 바로 앞에서 거론된 언급이 아니라 387d에서 소크라테스가 제기한 주장 즉 ‘훌륭한 사람은 자신의 동료이기도 한 훌륭한 사람 역시 죽음을 두렵게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하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 위와 같이 용기의 구체적 예시들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죽음이나 불행을 비탄하지 않는 것’, ‘웃음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 등은 하나같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안정된 혼의 상태를 가리킨다. 웃음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게 웃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수호자는 냉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용기와 관련하여 이곳에서 제기된 구체적인 설명들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일종의 예비적 논의로서 제4권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용기를 규정하기 위한 바탕이 된다. 다시 말해 ‘용기란 일종의 보전 즉 고통과 즐거움, 욕망과 공포에 처해서도 끝끝내 소신을 보전하여 지니는 것이다’(제4권 429c-d) 이제 시가 내용 중 용기와 관련한 이야기는 절제와 관련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또한 나중에 다루어질 절제의 덕에 대한 예비적 논의의 성격을 갖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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