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스러운 성가聖歌 제프 버클리 [악(樂)인열전]①

[악(樂)인열전]

연재를 시작함에 앞서
처음, 이 연재 의뢰가 들어온 지는 꽤 오래됐다. 작년 초겨울인 거로 난 기억한다.
계속하여 미루다가 드디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됐다. 그동안 나의 게으름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추어인 내가 음악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말 할 수 있는 ‘음악’이란 무엇인가? 내 역량 안에서 음악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한 음악’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음악은 ‘나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체험’이다.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음악은 내가 보고 있는 세계를 바꿀 힘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매번 일어나기 싫은 아침이었지만 <예스>와 함께한 아침은 웅장했다. 그리고 점심시간마다 <리암 갤러거>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러 잡생각을 실내화 마냥 던져버렸고, 야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지친 마음을 <빌 에반스>가 대신 울어주었다. 그들은 내가 걷는 길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나에게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해준 동행자들이었다.
우리는 음악을 듣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건 그 동행자들을 손쉽게 고를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원한다면 언제나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을 나의 세계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이어폰을 꽂고 있을 때만큼은 나와 동행자 단 둘뿐이며, 어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유일한 순간이며, 나만의 여행을 떠나는 순간이다. 음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 여행의 경험을 말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 나만 느꼈던 그것을 말해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마다 후기를 적는 것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본 연재에서 나의 경험들을 전달하고 싶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동행자들, 그중에서 처음 음악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새로운 친구 한 명 소개받는 느낌으로 이 글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성性스러운 성가聖歌 제프 버클리

이 현(건국대 철학과)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1966.11.17~1997. 5. 29)

처음 소개할 동행자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인 제프 버클리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때다. 나에게는 정말 음악을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특히 제프 버클리를 좋아했다. 항상 버스 뒷 구석에 그 친구랑 나란히 앉자 한쪽씩 이어폰을 끼면서 같이 이 노래를 들었었다.
“들으면 행복하면서 너무 슬퍼”
그 친구의 평이 너무 인상 깊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제프가 나의 곁에 있게 된 것이

Jeff Buckley – Hallelujah
https://youtu.be/y8AWFf7EAc4

<가사>
Well I’ve heard there was a secret chord
That David played and it pleased the Lord
But you don’t really care for music, do you?
Well it goes like this:
The fourth, the fifth, the minor fall and the major lift
The baffled king composing Hallelujah
Hallelujah(X 4)
Well your faith was strong but you needed proof
You saw her bathing on the roof
Her beauty and the moonlight overthrew ya
She tied you to her kitchen chair
And she broke your throne and she cut your hair
And from your lips she drew the Hallelujah
Hallelujah(X 4)
But baby I’ve been here before
I’ve seen this room and I’ve walked this floor
You know, I used to live alone before I knew ya
And I’ve seen your flag on the marble arch
And love is not a victory march
It’s a cold and it’s a broken Hallelujah
Hallelujah(X 4)
Well there was a time when you let me know
What’s really going on below
But now you never show that to me do ya
But remember when I moved in you
And the holy dove was moving too
And every breath we drew was Hallelujah
Hallelujah(X 4)
Maybe there’s a God above
But all I’ve ever learned from love
Was how to shoot somebody who outdrew ya
And it’s not a cry that you hear at night
It’s not somebody who’s seen the light
It’s a cold and it’s a broken Hallelujah
Hallelujah (X 12)

노래 자체는 매우 단조롭다. 기타와 보컬 단 두 가지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조에 감미롭고 절제된 기타선율과 제프의 담백하고 절절한 보이스는 곡 전체를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고, 그 모습은 마치 성령의 빛으로 가득한 성당 내부와 같다. 성당 안쪽은 텅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친 빛들 덕분에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성당은 밝지 않으면서 어둡지 않다. 비어있으면서 가득 찬 공간. 성(聖)적 공간은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다.
원래 이 노래는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 1984년에 발매한 그의 앨범 Various Positions의 B면 1번 수록곡이었다.

Leonard Cohen – Hallelujah
https://youtu.be/ttEMYvpoR-k

이 곡을 낸 이후 존 케일(John Cale),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 밥 딜런, 본 조비 등등 다양한 커버들이 나왔다.

John Cale – Hallelujah
https://youtu.be/-gi3J8nPKPE

Rufus Wainwright – Hallelujah
https://youtu.be/PBo-n_17XU0

Bob Dylan – Hallelujah
https://youtu.be/u7JrHD6YAto

Bon Jovi – Hallelujah
https://youtu.be/RSJbYWPEaxw

레너드 코헨은 이 곡을 작사하기 위해서 수년간 고민을 했다고 한다. 가사를 완성시키기 위해 한 구절만 80개의 초고를 썼으며, 성(聖)적이고 성(性)적인 가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성(聖)스러움과 성(性)적인 것은 정 반대에 있어 보인다. 그런데 어쩌면 “신성은 금기의 매혹적 양상”이라는 바타유의 말처럼, 이 둘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반대에 있으면서 동시에 본질적으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Ecstasy of St. Teresa, Bernini. 1598-1680>

많은 커버 중에 가장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커버는 제프의 커버이다. 코헨으로부터 ‘원곡보다 뛰어난 리메이크’라며 찬사받은 바 있다. 1997년 발매된 Grace의 6번 트랙인, 이 커버는 사실상 곡의 주인이 레너드가 아니라 제프라고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테크닉의 훌륭해서? 아니면 그의 타고난 목소리 때문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곡에 대한 해석이다. 제프는 이 곡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이다. 제프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할렐루야는 숭배하는 사람, 우상, 신에게 바치는 경의의 표시가 아니에요.” “하지만 오르가슴의 할렐루야라고 할 수 있죠.” 그렇기에 성가(聖, 性-歌)는 관능적인, 환희의 노래이다. 정말로 우연하지만, 이 둘이 한국어 발음에서 같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Halleluja”는 무엇을 위한 송가인가? 제프가 연주한 ‘비밀스러운 코드’(secret chord)는 ‘사랑’을 위한 소리이다. 성(聖, 性)인 사랑은 모두 자신을 뛰어넘어 있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얻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어쩌면 완전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늘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 노래에 대해서, “당신은 노래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할렐루야의 가사는 곡 씹으면 씹을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신학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 노래는 (제프의 말했던 것처럼) 사랑, 오르가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엌 의자에 묶어 머리를 자르는 장면은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성서에서 머리카락은 영광을 상징하고 그런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몰락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장면은 몰락임과 동시에 상승하는 순간. 엑스터시의 순간이다. 사랑의 순간은 바로 이 순간 아닐까? 당신을 추구하기 위해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 말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나를 버리는 순간이며, 행복하면서 동시에 슬픈 것이 아닐까?

“love is not a victory march, It’s a cold and it’s a broken Hallelujah”
사랑은 승리의 행진은 아니에요. 그것은 차가운데다 부셔져 있지요. 할렐루야

제프 버클리는 1966년 11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팀 버클리와 메리 귀베르사이에서 태어났다. 팀 버클리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메리 귀베르와 이혼했고, 메리는 이후 재혼하여 제프는 양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제프는 양아버지의 성을 따라 스코티 무어헤드(Scotty Moorhead)로 개명하기도 했었다. 팀 버클리와는 8살 때인 1975년에 다시 만났는데, 이것이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만다. 만나고 얼마 뒤 팀 버클리는 약물중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제프는 버클리라는 성을 되찾았다.

Halleluja가 수록된 <Grace>는 1994년에 발매된 그의 첫 정규앨범이자, 마지막 정규앨범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 ‘팀 버클리’와 마찬가지로 요절했다. 1997년 5월 29일 친구와 레드 제플린의 노래를 부르며 울프 강을 걷다가 갑자기 옷을 다 입은 채로 물에 뛰어들었다. 친구가 한눈판 사이 제프는 사라졌었고, 이후 수색 작업이 진행되었으나 결국 6월 4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Grace>는 얼터너티브 포크 록의 정수로 남아있다. 그의 아버지 ‘팀 버클리’도 엄청난 천재였지만 그는 그를 한 편으로는 뛰어넘었다. 제프는 자신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정규 데뷔 이전까지 시네(Sin-é)를 비롯한 뉴욕의 클럽들을 돌며 레드 제플린, 밥 딜런, 누스랏 파테 알리 칸, 레너드 코헨 등의 커버 곡들을 연주하면서 자신을 갈고닦았다. 그러면서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자신의 색채로 버무리는 연습을 꾸준히 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제프의 커버는 원곡자들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연습 과정을 거쳐 첫 자신의 소리를 담은 것이 였다. 1994년 첫 데뷔 당시 그는 롤링 스톤 매거진에서 “어떤 곡을 가져다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이제 그 수업은 끝났어요.”라고 말했다. 이제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의 매력은 독특한 감수성이다. 묘한 슬픔과 거침이 함께 공존한다. 그의 째지한 리듬감 덕분에 슬프지만 절대 처지지 않았고, 그의 목소리 울림은 거기에 깊이감과 우아함을 입혔다.
첫 번째 트랙 [Mojo Pin]이 그의 보컬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다. 속삭인 듯하면서 절규하는 그이 보컬은 앨범의 시작부터 사람들을 휘어잡는다. 타이틀 곡인 [Grace]는 다이나믹한 전개와 게리 루카스(Gary Lucas)의 기타가 일품이다. 서로 다른 기타 2대를 다른 리프로 구성했는데, 그 위에 버클리의 보컬 기교가 극한까지 이르렀다. [Lover, You Should`ve Come Over]는 그의 자작곡으로서 도입부의 오르간 소리가 인상적이다. 포크의 감성을 제프만의 감성으로 잘 표현했다. 의 곡의 구성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지 알 수 있다. [Last goodbye]와 [So Real]은 전형적인 포크 록의 형태를 띠고 있고, [Corpus Christi Carol]은 중세 교회 성가를 편곡해서 성스러운 느낌을 주는가 하면, [Eternal Life]과같이 헤비메탈 스타일의 곡도 있다.

Mojo Pin
https://youtu.be/Svo7LZbnUVw

Grace
https://youtu.be/A3adFWKE9JE

Lover, You Should`ve Come Over
https://youtu.be/HxfE6PJmGS8

Last goodbye 

https://youtu.be/3MMXjunSx80

So Real
https://youtu.be/EcaxrqhUJ4c

Corpus Christi Carol
https://youtu.be/pRyHLrsqO0c

Eternal Life
https://youtu.be/7eiqlE98bPI
(앨범 자체가 명반이기에 전곡을 한번씩 다 들어봤으면 좋겠다.)

그의 노래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늘 사랑이었다. 가사 전체가 다양한 사랑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당시 유행처럼 퍼진 염세주의를 거부했다. 그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마냥 행복하고 밝은 사랑은 아니었다. 그의 사랑은 “이별을 포함한 사랑”이었고, “얻을 수 없는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사랑은 마냥 행복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마냥 행복하지 않기에 우리는 사랑으로 버티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늘 양가적이다. 그렇기에 제프의 사랑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그 태도는 기쁨도 아니고 체념도 아니다. 사랑의 양가성을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임에 가깝다. 우리의 삶이 행복하면서 너무 슬픈 것처럼 말이다.

다음에 문장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라캉의 사랑’의 쓴 장 알루슈는 그의 책에서 ‘사랑하기 혹은 사랑받기의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은 “스스로를 축축하지만 불타오름 없이 연소되는 장작으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