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下) [톡,톡,씨네톡]
이 글은 2018년 5월 9일 이대 철학과 영화제에서 상영한 <토지와 자유>를 보고, 20분 정도 스페인 혁명의 사상적 의의에 대해 발표하고, ‘예스터데이’ 뒤풀이 자리에서 간략하게 토론한 글을 수정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下)
이규성(한철연 회원,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2. 무정부주의와 가장 현실적인 욕망
무정부주의는 원래 민중의 협동심과 공감능력을 믿는 성선설을 선호한다. 특히 개체의 자발성과 활력을 강조하며, 생명에 대한 외경심도 존중한다. 자발성을 누르는 모든 권력을 비난한다는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초월적 지배자나 권력 혹은 제일 원리를 의미하는 아르케(arche)를 부정한다는 反권력주의(Anarchism)를 의미했다. 이에 비해 레닌주의는 민중의 혁명성을 찬양하면서도, 자발성의 한계를 강조하고, 합리적 조직능력과 지도력을 갖춘 주체적 의식성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이를 퇴행적 부패의 원인으로 규정했다. 《토지와 자유》에 나오는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자와의 갈등에는 두 이념 간의 사상적 차이가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독립운동사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무정부주의자들과도 교류한 한국 민족 해방군 일 천명{지도자는 대한독립군 총재인 大倧敎 宗師 서일(徐一, 1881~1921)}이 이르쿠츠크에서 공산주의 군대에 포위되어 무장해제를 강요받아 교전 끝에 반절이상 사상자가 발생하고, 후퇴하는 중 만주 군벌 친일 마적 떼의 습격으로 거의 괴멸되자 자결한다.(자유시 사변).
스페인 내전은 1934년 선거에 의해 민주 세력이 집권하자 프랑코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 가 독일과 이태리의 군사 지원에 힘입어 일으킨 쿠데타로 시작한 내란이다. 우익 세력은 군부와 왕당파 및 스페인 가톨릭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모두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나치즘), 이태리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에 친화적. 이에 비해 민주 공화파(스페인 인민전선)는 개혁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코민테른 산하의 공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등으로 구성. 타국의 급진주의 행동가들도 혁명 운동에 참여하여 국제여단을 구성. 사회주의자인 헤밍웨이도 기자이자 전투원으로 참전. 스페인 내전은 거의 모든 현대적 이념들이 각축하는 가운데,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혁명운동. 그것은 국제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으며, 2차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되었다.
“스페인 사회혁명의 중심에는 세계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스페인에서 꽃피었던 신념의 추종자들, 곧 무정부주의자들이 있었다. 자유주의적 공산주의, 혹은 국가 없는 공산주의를 믿는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경찰, 왕실, 돈, 세금, 정당, 가톨릭교회, 사유재산을 사라져야 할 것으로 보았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상호부조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본능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본능을 자유롭게 펼침으로써 공동체와 작업장을 민중이 직접 운영하면 된다고 믿었다.”1)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궁극적으로는 근대국가 폐지라는 무정부주의 이상을 채택하지만, 과도기로 설정된 당 중심의 국가체제를 인정한다. 혁명 초기에 레닌은 국유화를 통해 토지를 재분배하고, 시장경제를 용인하며, 주요 산업을 국유화했다.(이를 자본주의적 길이라고 명명). 모든 평의회(소비에트)는 당 정치 위원회에 종속되어야 했다. 후에 국가 주도로 집단농장화를 강제 시행하여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사회주의 목표를 이탈한다. 이에 따라 스탈린 체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의 당이 지배하고, 과도하게 정치화된 국가체제는 ‘전체주의적 관료주의’(트로츠키)를 닮게 되어, 급진주의 사상가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무정부적 혁명 이념이 물물교환을 인정할 정도로 순진하여, 복잡한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현실화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왜곡된 관료주의적 사회주의 이념을 수정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스페인을 달군 뜨거운 혁명의 시대가 이처럼 큰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란 어렵지 않다. 부를 공유하고, 공장도 노동자들이 소유하며, 토지의 주인 또한 농민이고, 비록 아직은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방식일지라도 예전에 비해서는 한층 직접적이 된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요컨대 이상주의자들이 1세기 넘게 꿈꿔온 세계가 펼쳐진 시대였기 때문이다.”2) 소규모 연합체들의 연합체를 국가로 생각하는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는 1910년대 이회영, 신채호, 유자명, 백정기 등 한국 독립 운동가들이 광복 이후 건국 방략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것은 억압과 착취가 현존하고, 정치적 공포가 남아있는 한, 현실에서 완전히 주어질 수 없는 것일지라도 백일몽처럼 나타나 실천적 사상을 이끌어 갈 것이다. 헤밍웨이의 ‘노인’은 ‘바다’의 푸른 정신을 가지고 반동세력(상어)이 뜯어 먹어 가시만 남은 청새치(이념)를 잡아 가지고 돌아와 강건한 실천을 상징하는 사자의 꿈을 꾼다. 현실적 실패는 있어도 이상을 향한 의지는 패배를 모른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노인과 바다》의 메시지는 《토지와 자유》의 메시지와 유사하다. 《전쟁과 평화》에서의 톨스토이가 민중을 지나치게 이상화하여 역사의 주체라고 주장한 것도 초월적 지배 권력이 민중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진실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망은 조직 권력에 대한 충실과 분리된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악의 세력에 저항하는 산하대지[山川]의 생명을 바탕 삼은 심성은 자유주의도 레닌의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민중적 생명 공생주의를 지향한다. 친일파에게 빼앗긴 토지를 되찾아 무상으로 재분배하는 서희를 통해 땅은 재물이 아니라 상생을 위한 일시적 공유물이라는 동학사상이 재천명된다. 생명의 사회적 실현[氣化]은 평등한 자유를 실현하는 생명주의 윤리이자 불교적 연민을 현세에서 구현하는 심미적 진실이었다. 恨의 정서는 악행으로 왜곡될 수도 있지만, 부정당한 인생을 다시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진실을 품은 긍정의 정서이다. 이 또한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의 생명 사상과도 상통한다. 유토피아를 향해 진격하는 세르반테스의 행동주의 정신인 돈키호테도 대지 품에서 공생하던 황금시대를 꿈꾸고, 그것을 부분적이나마 실현하는 제자 산초 판사를 남기고 죽는다. 스페인의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산초 판사들이라 할 수 있다.
장발장의 고난과 사업을 통해 자본주의의 윤리적 책무를 강조하는 빅톨 유고는 레미제라블의 1장에서 라이프니츠와 같은 카발라적 생명철학으로 ‘지렁이와 소크라테스의 동일성’을 설파하고, 민주 공화파의 정치해방과 사회적 연대성을 옹호한다. 초인의 초월성[차이성]만을 본 니체와 하이데거는 다수성과 평등한 동일성의 진리를 대중적 가축 떼의 사상으로 폄하한다. 이에 비해 동학의 초인은 민중의 고통과 같아지는 내재적 동일성을 실현한다. 즉 생명에 대한 내적 자각과 세속성의 분별을 극복한 내외(자아와 세계)의 통일성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데카르트와 같은 인위적으로 고립시킨 자아의 자명성에 근거한 철학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한다>는 민중적 지성을 발전시킬 필요성이 나온다. 스페인 내전기의 공화파의 자유를 향한 욕망은 부조리한 현실에 사는 모든 사람의 ‘희망’(스페인 내전을 다룬 앙드레 말로 소설의 제목)이다.
1905년 러시아 2월 혁명 전의 짜르 체제에서 사회모순에 대한 저항을 유대인에 전가하는 상황에서 무고하게 살인자로 몰린 야콥 복(Yakov Bog)의 재판과 저항을 그린 소설 《수리공The Fixer》(국내 번역: 김재현 옮김, 〈키에프의 신화〉, 한신문화사, 1987. 광주항쟁 직전에 영화가 방영된 적이 있음)은 스피노자 철학을 밤 세워 읽고 자신의 수난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적 변화를 경험한다. 정치적인 것을 자신과 관계없는 특정 인간에 한정하던 이전의 비정치적 관점이 아무도 정치적인 것과 분리될 수 없다는 인간 조건을 인식하게 된다. “모두가 유대인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변화하여, 저항의 길을 가는 자유의 꿈을 꾸게 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인간관의 전신인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신체적 욕망이 공포와 슬픔이라는 수동성에서 기쁨이라는 능동적 구조로 변화되고, 아울러 이성을 통해 타인과의 유익한 관계를 확산해 가는 관계의 사상을 인식함으로써 자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을 설파한다. 공포와 슬픔은 폭정과 이를 축복하는 종교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리스 유물론을 시로 표현한 루크레티우스(Lucretius, BC, 96~55)의 《De rerum natura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우주는 생명의 여신 비너스의 령으로 충만한 생명계임을 주장, 원자들은 그 안에서 존립)의 기본 주장이며, 이 명랑성의 회복은 스피노자와 마르크스의 인성론의 목표였다. 야곱 복은 감옥 속에서 자신의 내적 변화의 귀결을 간수장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의 목적은 타인을 위해 자유를 창조하는 것이다(The purpose of freedom is to create it for others).”(《The Fixer》, Penquins Book, p. 286. / 〈키에프의 신화〉, 304쪽). 이제 철학은 자유에의 욕망을 도덕적 양심의 근원적 실재로 보는 관점을 우리의 역사적 교훈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맹자는 거지도 발로 차면서 발을 주면 받지 않는다 했다. 이 부정의 의지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 현실일 것이다.
【참고】 로베스피에르는 개인들의 정치적 자유의 이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적 사회관계에서 농민과 노동자는 엄연히 노예상태로 존속했다. 사회주의는 이 상황을 극복하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로베스피에르는 당시의 경제적 사회관계가 민주주의의 대의에 심각한 장애가 되며, 평민이 상공업자의 지배에 만족하거나 그것을 요구하는 한, 프랑스 혁명은 군사독재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부르주아 세력에 의해 단두대로 사라진 다음, 귀족과 대 부르주아가 지배력을 회복하게 되면서, 로베스피에르의 예언은 들어맞게 된다. 그의 사후 이를 깨달은 사람들이 생기는데 바쿠닌과 같은 무정부주의자,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의 노동영역에서의 사회적 관계가 갖는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의 사회 이상(사회주의)을 <경제해방> 혹은 <사회해방>으로,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정치해방>으로 하는 두 해방의 이념을 제시했다. 민주주의는 이 두 가지 민주화를 목표로 갖는다. 전자는 기존 사회주의의 장점을 발전시키고, 후자는 기존의 부르주아 자유주의가 성취한 민주주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사회적 민주주의, 인민 민주주의, 구체적 민주주의로 불렀다. 레닌도 그것을 사회 민주주의로 불렀다. 러시아 혁명 이후 민주주의를 진부한 부르주아 사상으로 몰고, 사회주의와 대립시키는 왜곡이 일어나 양자는 분리되게 되었고, 사회 민주주의는 유럽의 점진적 사회당의 이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혀지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 퍼진 레닌주의는 경제해방과 정치해방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론과 당 조직론을 더 한다. 그러나 이 레닌주의 체제는 파리코뮌의 자유정신을 계승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근대국가인 억압적 기계 장치로 보일 수 있었다. 스탈린 체제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빌미가 되었다. 중국혁명사에서도 공산당의 창시자인 진독수(陳獨秀)의 민주주의 요구는 우경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혀 오늘의 시진핑 체제에 이르기까지도 복권되지 않고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무정부주의 전통이 강한 카탈로니아 지역과 그 수도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무정부주의와 러시아와 연결되어 조직화되어 있는 공산주의자와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말은 무정부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공통된 것이지만, 레닌주의는 당 권력의 군사적인 수직적 합리성에 대한 신앙 때문에 물리적 혁명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국가 권력형 범죄를 양산했다. 레닌의 사상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고한 관료주의 국가 범죄 때문에 정신적으로 패배한 이념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코뮌은 인민공사(人民公社)로 불렸는데, 위로부터의 조직화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나 실패로 끝나고, 진정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민간 급진주의가 문화혁명 기간에도 나타났다. 모택동과 보수적 당권파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민간 급진주의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자본주의적 요소를 시회주의에 이르는 과도적 단계로 활용한다는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을 따르는 현 중국 체제는 유교부흥 운동과 결합되어 관료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역시 정치민주화를 넘어서는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의지는 자유에의 욕망을 가진 개인들의 연합을 통해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
1) Adam Hochschild, 이순호 옮김,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갈라파고스, 2016, 80쪽.
2) 위의 책,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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