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修辭)[퍼농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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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사(修辭)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던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언어론적 전회를 일군 천재적 철학자였다. 언어론적 전회란 의식이나 언어 자체의 의미를 묻기보다는 오히려 언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기능으로 작용하는지를 묻는 언어 게임에 관한 문제이다.

 

 

그럴 때 언어란 사물의 지칭이나 지칭 대상 너머에 있는 실체의 표상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 누가 어떻게 사용하고 교환하고 수용하는 수단이며 매개이다. 게임의 도구이다. 흔히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 혹은 화행 이론(話行理論, speech-act theory)이라는 것이다. 우린 그런 의미에서 언어의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며 언어를 수단으로 행위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철학은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의 지성이 걸려 있는 마법에 대항하는 전투이다.

철학에 대한 정의로서 가장 공감하는 말이다. 철학은 미혹된 마법에 대항하고 깨어나도록 만드는 전투이다. 그 수단은 언어다. 그러나 마법에 걸리게 된 것도 언어 때문이 아닐까. 언어가 우리의 세계이고 한계라면 우리는 마법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난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마법에서 깨어나게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법에서 깨어난 현실은 무엇일까. 마법에서 깨어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마법에서 깨어났다면 어쩌면 다시 마법을 걸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말이다. 삶은 마법적인 환상은 아니지만 환상도 필요로 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럴 때 철학이란 더불어 정치란 마법으로서 꿈을 심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꿈을 깨면서 동시에 꿈을 주는 것이다. 꿈을 깨면 현실이지만 꿈을 꾸면 현실이 바뀌기도 한다. 꿈을 꾸지 않을 때 우리의 현실은 메마른 사막이 된다. 말이란, 곧 언어란 나의 세계이다. 우리는 말을 나누며 언어의 세계 속에 사는 동물이다.

 

 

어떤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한다. 이 말은 형식 논리로 본다면 모순을 담고 있다. 그것이 진리이고 옳은 말이라면 싸가지 없이 들리지 않아야 한다. 옳은 말은 옳게 들려야 한다. 근데 왜 싸가지 없게 들리는 것일까.

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미묘한 어투와 뉘앙스와 타이밍도 문제였겠지만 상대는 누구이며 그 상대에게 어떤 언어와 어떤 방식으로 말할 것이며 상대는 어떻게 수용할까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修辭)에 관한 문제다. 마법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주역 건괘(乾卦)의 구삼(九三)효 「문언전(文言傳)」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군자는 덕을 증진하고 업적을 만든다. 진실과 신뢰가 덕을 증진시키는 근원이고 말을 닦아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업적을 만드는 근원이다.(君子, 進德修業, 忠信, 所以進德也, 修辭立其誠, 所以居業也.)”

‘수사’란 말은 ‘말을 닦아 진정성을 세우는 것’이라고 번역한 ‘수사입기성(修辭立其誠)’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수사’란 자신의 진정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사회정치적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과 진정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영향력과 효용적 결과를 만든다.

수사적 기술이란 내면적 진정성을 드러내어 신뢰와 영향력을 형성할 뿐 아니라 효용적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말한다. 남송 시대 주자(朱子)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비록 진실과 신뢰의 마음이 있다고 해도 말을 닦아 그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정치적인 입지를 가질 수 없다.”(雖有忠信之心, 然非修辭立誠則無以居之.)

진리는 권력을 필요로 한다. 진리는 수사를 요구한다. 사회 활동가였던 제이슨 델 간디오(Jason Del Gandio)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책에서 혁명을 꿈꾸고 사회 변혁을 원하는 급진주의자들에게 수사를 공부도록 권하고 있다.

그는 수사를 노동으로 규정한다. 물질세계의 변혁을 위해서 노동이 필요하듯이 비물질적인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도 노동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수사란 변혁을 위한 노동이다.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말하자면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의 지성이 걸려 있는 마법에 대항하는 전투”이기도 하며 동시에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세상에 마법을 거는 기술적 노동이기도 하다. 마법을 통해 세상은 새롭게 창조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인내와 전략이 필요한 섬세한 노동이다. 현실을 고려하고 오랜 시간의 누적적 과정을 거쳐서 젓갈을 곰삭히는 듯한 절제의 노력이 필요한 노동이다. 수사적 노동은 그래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전제한다.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듯이, 제이슨 델 간디오는 이렇게 선언한다. “만국의 수사가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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