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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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2)

이정호(방송통신대 교수)
주제 1: 고대 그리스인의 사랑

 

1. 우주론적 에로스(2)

우주를 생성하는 힘으로서의 에로스는 수많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는 오르페우스교에서도 발견된다. 빌라모비츠(Wilamowitz-Moellendorff)처럼 신비주의 일체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오르페우스교가 그리스인들의 생활에 미친 의의마저도 부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물론 오르페우스(Orpheus)는 변방 트라키아의 신이고 또 그와 관련한 문헌들에는 후대에 자의적으로 덧붙여진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하는 오르페우스교 역시 구제 신앙과 정화의 방법을 공유하고 있는 당대의 여러 유사 교파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르페우스교는 그러한 오르페우스 관련 여러 교파들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그것이 갖고 있는 몇 개의 근본적인 특징들은 멀리 아르카익기(die archaische Zeit)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르페우스교 관련 문헌으로서 세계의 생성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는「라프소디아·테오고니아(Rhapsodia Theogonia)」라는 시편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작품은 물론 로마 제정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거의 헬레니즘기에 쓰여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 속에는 그 시기 훨씬 이전에 쓰여진 것들을 수록하고 있고 그것을 입증하는 주목할 만한 증거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아리스토파네스 (출처:www.historyforkids.org)

 

기원전 414년 즉, 오르페우스교가 민간의세속적인 기복제사로 변질되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던 시대에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완성된 모습을 갖추고 있는 희극 「새(Ornithes)」를 상연했다. 이 작품의 파라바시스(parabasis: 코러스가 작가의 이름으로 관객을 향해 말하는 부분)에는 흥미롭게도 새로이 세계의 지배자가 된 새들의 코러스가 인간들에게 새의 기원을 가르치면서 새가 신들 보다도 오래된 존재라고 노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게다가 코러스는 인간을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만든 한갓 작은 인형이나 그림자와도 같은 무상한 족속으로 그리고 있다. 그 작품의 693-99행을 보자.(천병희 역 참고)

태초에 카오스와 밤과 검은 에레보스와

넓은 타르타로스가 있었고, 대지도 하늘도 없었소. 에레보스의

끝없이 넓은 품속에서 검은 날개의 밤(Nyx)이 최초의 무정란을 낳자

거기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움을 일깨우는(potheinos) 에로스가 나오니

등은 황금날개로 빛나고 빠르기가 회오리바람처럼 빨랐지요

에로스가 날개달린 카오스와 밤에 동침해 넓은 타르타로스에서

우리들 새 종족을 부화하여 처음으로 햇빛 속으로 데리고

올라왔지요. 에로스가 모든 것을 섞기 전에는 불사신의 종족은

없었소. 상이한 것들이 서로 섞이자 하늘과 오케아노스와

대지와 온갖 축복받은 신들의 종족이 생겨났지요. 이렇듯

우리는 모든 불사신들보다 훨씬 연장자들이라오. 우리가

에로스의 자손이라는 것은 많은 증거에 의해 명백하오(693-704)

여기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오르페우스교의 「라프소디아·테오고니아」에 실린 신들의 계보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이 점은 「라프소디아·테오고니아」에 실린 신들의 계보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살던 시기보다 훨씬 이전의 것임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 속에 얼버무려지듯 포함된 오르페우스교의 시는 헤시오도스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세계가 하나의 알에서부터 생겨났다고 하는 오래된 오르페우스교의 관념은 헤시오도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새로운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또 바로 그 알에서 에로스가 나왔고 그 에로스가 세계 생성의 주된 원천으로서 카오스와 만나 이 후의 모든 생식을 이끄는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극 중에서 새들이 이 신들의 계보를 왜곡해서 자기들의 근원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아리스토파네스의 대담한 착상이다. 그러나 새들이 세련된 방식으로 에로스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매우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새는 에로스와 같이 하늘을 날아 에로스가 그러하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기를 좋아한다. 사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성인 남성들이 매력적인 소년을 손에 넣기 위해 프로포즈를 하면서 작은 새를 선물로 주었다. 그 시절의 도자기 그림에서도 그러한 모습은 많이 발견된다. 결국 형태가 없는 카오스조차 새들의 어머니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로부터 훨씬 뒷시대인 기원전 3세기 어쩌면 그 이후의 시대에 쓰여진 오르페우스교 관련 문헌으로 「오르페우스 찬가(Orphei hymni)」가 있다. 이것은 소아시아의 오르페우스교 신도들이 예배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전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 중 여섯 번째 노래는 오르페우스교 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프로토고노스(Protogonos: 최초에 태어난 사람)에게 바쳐지고 있다. 여기에서도 또 세계의 기원으로서 알이 나오고 프로토고노스도 그 알에서 부화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프로토고노스는)…

황금의 날개를 자랑하며

숫소의 소리를 갖고 태어났다

신들과 인간들의 기원

오르페우스교 신도들은 이 프로토고노스에게 다양한 신격을 부여했는데 위의 싯귀 몇 줄 뒤에는 프로토고노스가 다름 아닌 에로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논의한 에로스의 우주론적 지위를 더듬어 보면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에로스를 노래하고 있는 그 책의 58번째 찬가를 보면 이미 우리의 귀에 익숙한 울림이 들려오고, 그 속에서도 에로스신의 우주론적 성격이 쉽게 발견된다.

이른바 신화적 사유를 넘어 자연학과 철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만물의 아르케로 떠오를 지수화풍이 이미 그 에로스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불멸의 신들도 사멸하는 인간들도 갖고 노는 자….

세계 생성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자,

하늘의, 바다의, 땅의,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낳는 바람의

(3 이하)

이와 같은 에로스의 우주론적인 관념은 신화의 시대에서 자연학의 시대를 거쳐 이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오랜 기간 남아 있었다. 기원전 2세기 루키아노스(Lukianos)는 무용을 예찬하는 「춤에 대해서(Peri och?se?s)」라는 책에서 별들의 윤무(Reigen)에 작용하는 춤의 여신을 이야기하면서 그 여신이 태초의 우주 생성기에 태고의 에로스와 동시에 태어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대략 9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에로스에 대한 헤시오도스적인 관념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여러 종류의 그리스·이집트의 마술관련 문서(Zauberpapyri)들에서도 시대도 출처도 다양한 여러 가지 내용들이 뒤섞여 있긴 하지만 그곳 역시 여기에서 나타난 것과 동일한 성격의 에로스가 등장하고 있다.(Preisendanz 교정본, IV 1748) 그곳에서도 에로스는 “세상 모든 것의 생식을 주관하는 자”, “우주를 만들어내는 자”, “빛을 가져오는 자”로 그려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바다로부터 오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 Pelagios라는 이름도 붙여져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모든 사물이나 신들이 바다로부터 발생했다고 하는 관념이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에로스의 우주론적 성격에 관한 우리의 짧은 논의를 괴테의 「파우스트(Faust)」 제2부 “고대 발푸르기스의 밤(klassischen Walpurgisnacht)” 끝부분에 나오는 세이렌(Seir?nes)의 노래 한 구절로 마무리하도록 하자.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키는 여자의 얼굴을 한 새로 나온다.

세상 모든 것들의 시작 에로스, 그 에로스가 지배하도록

– So herrsche denn Eros, der alles begonnen.

 

(2. 아프로디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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