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종말! 그리고 그 이후는? 2-① [4人4色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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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서리아 (성신여대 연구교수)

 

삼식이의 비애
어느 저녁나절, 5, 60 대로 보이는 여성들 몇 명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소곤거린다.
“000은 삼식이 때문에 못 나온대. 그냥 우리끼리 갑시다.”
“아휴. 삼식이가 있대? 쯧쯧. 그래, 우리끼리 가요.”
삼식이? 나는 그저 삼식이가 누구 집 아들의 이름이겠거니 했다. 소곤거리던 여자들의 나이로 보아 아마도 늦둥이를 두어서 저녁 나들이가 여의치 않은 가보다 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다 얼마 후 우연히 다른 자리에서 삼식이가 ‘삼식(三食)이’ 인줄을 알고 나서는 배꼽이 빠지게 한참을 웃었다. 삼식(三食)이, 집에서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중년 남자를 일컫는 말이라니.
전통 사회에서 가족을 중요시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가족을 통해 일용평상(日用平常)의 도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생활 자료의 생산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본 공동체로 간주되었다. “남자는 밭 갈고, 여자는 길쌈하고” 라는 유가 경전의 언급이나,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남자는 평생토록 일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는 수고를 해야 하는 벌을 내리는 야훼의 말에서처럼 남자와 여자가 분업을 함으로써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불문율처럼 간직되어 온 바깥일을 맡은 남편과 집안일을 맡은 아내, 뭐 이 정도 구도쯤은 되어야 그래도 평등할 수 있다는 게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바깥일에만 종사하던 남편은 은퇴한 이후 더 이상 나갈 ‘바깥’이 없다. 그러니 집에 들어앉아서 꼬박꼬박 세 끼 밥만 챙겨 먹을 수밖에. 그렇다고 은퇴한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여자 일인 집안일까지 할 수도 없다.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래서 점점 더 간 큰 남자만 되어 가고, 뭇 여자들의 비아냥거림, 불만은 커져만 간다.
금융위기를 맞고 경제성장이 둔화된 최근, 이러한 상황은 자꾸만 늘어가고, 전통적인 가족 안에서 누렸던 가장의 권위에 대한 향수는 짙어만 간다. 세상이 변했으면 그만큼 가족에도 가족의 일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변해도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그런 실체로서의 가족, 남녀가 각기 맡아야 할 역할 분담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 삼식이의 비애, 그 끝은 어디일까?

가족 = 보금자리?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거칠고 삭막한 사회로부터의 안식처, 지친 몸과 마음에 위안을 줄 수 있는 보금자리” 와 같은 전통적인 가족의 이미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만큼 어필될 수 있는 말일까? 신문, TV, 라디오 할 것 없이 온갖 미디어들은 가족이 아닌 가족의 모습을 보도한다. 뺏고 때리고 내쫒는 노인 학대부터 술 마시고 발로 차고 때려 부수는 아동 학대, 방임, 아내 구타에 이르기까지 온갖 폭력성이 난무하는 장소로서의 가족의 모습들이 방송꺼리로 이용된다.
<바람난 가족>, <결혼은 미친 짓이다>, 우리 삶을 이루어 가는 것들 중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이런 단어들에 해괴해 보이기까지 하는 수식어가 붙고도 그리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미 우리가 가족이나 결혼을 전통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결혼, 가족, 출산, 양육 등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가족제도는 서서히 물러나고, 결혼도 출산도 혈연 가족을 이루는 것도 모두 오랫동안 숙고해야 할 것으로 되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족을 꾸리는 일은 이제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일이 아니다. 꼼꼼히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하고 타협하고 협상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제 “애? 너나 많이 낳으세요”라고 당돌하게 말하면서,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이 되기도 하고, 결혼 자체를 회피하는 싱글족이 되기도 한다.
결혼을 선택하더라도 결혼을 일생일대의 계획이며 그래서 한 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는 그런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검은 머리 파뿌리’ 라든가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고 산다’는 등의 말들의 실효성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황혼 이혼’ 이란 말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이혼 보험이 필요한 일본 사회
가족 사회학자인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현대 사회의 이런 세태 속에서 이미 엄청나게 변해버린 일본 가족의 모습을 진단하고 있다. ‘이젠 가족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민법개정안들이, 변화한 일본 가족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 이해한다. 페미니즘의 영향, 애정의 고도성장에 대한 경제의 저성장이 가져 온 이혼률 증가 등은 가족 내에서의 구조 조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대국이 된 일본, 거기에는 일본 특유의 가족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가족’이라는 제도가 국가와 기업의 질서를 보강하는 데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부부 중심의 가족을 이루고, 이렇게 성별 분업의 형태를 이룬 부부 중심의 가족이 경제가 고도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경제가 저성장기로 접어든 현재, 일본에서는 가족 구성원은 물론 가족의 의미들이 점점 변화되어 간다. 결혼하지 않는 싱글이 늘어나고 별거 5년이면 이혼 사유가 정당화될 수 있고 폭력이나 외도 등의 한 쪽 배우자의 잘못이 아니라 사랑하는 감정이 사라진 것만으로 이혼 사유가 되는 사회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이혼 보험이 상품화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보험이란 것이 어떤 사태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 난 것에 대해 손해를 보상하는 것이라면, 이혼을 통해 손실이 난 경우에도 보험 상품이 성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야마다 교수가 궁리해 본 이혼 상품의 내용은 이러하다. 이혼한 여성은 그 동안 남편이 벌어들이던 급여를 더 이상 손에 넣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그것을 손실 이익으로 보고 이에 상응하는 보험금을 받는 것이다. 자녀나 남편의 경우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이혼율이 증가하는 세태를 반영해보면 이것처럼 적절한 보험이 없을 듯싶다. 물론 야마다 교수는 이혼 보험이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전제로 해도 보험금을 노린 위장결혼과 이혼 등의 보험사기 사건을 막을 수는 없고 보험회사에서 위장이혼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가족, 그것이 사라진 이후에는 무엇이 올까?
이미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게 된 가족이 붕괴되는 것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해체, 이 말은 근대 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 가족을 둘러싸고 불안감과 공포감을 조성해왔던 말이다. 대가족이 붕괴되고 핵가족이 산출되는 시점에도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을 불안해했고 지금 다시 혈연 가족이 붕괴되어 가는 상황에 대해 초조해 한다.
<불량 가족>, <가족의 탄생>, 이런 드라마나 영화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이면 부모와 미혼 자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왜 그런 관계가 아닌 사람들의 관계가 자꾸 거론되고 있는가에서 오는 불편함이다. 그들은 남인데, 왜 가족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묶을 수 있다고 하는가가,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불펴한 사람들이 갖는 생각이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 제목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지금 해체하려는 가족은 혈연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친밀성을 떠올려 보면 가족은 ‘친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 이라 재정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가족이란 단지 혈연관계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친근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일컫는 개념이 될 것이다.
가족이 사라진 그 이후에 무엇이 올까? 그것은 아마도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된, 다시 새롭게 정의된 ‘가족’일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서 이루어진,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루어진 형태 뿐만 아니라, 장애자 가족, 한 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등을 모두 포함한 열린 의미의 ‘가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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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두번째 책은, 야마다 마사히로 지음, <우리가 아는 가족의 종말>(장화경 옮김, 그린비 펴냄)으로 김세서리아(성신여대 연구교수), 조주영(서울시립대 박사과정), 이현숙(자유기고가), 주승일(그린비 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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