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거제도라네”[김성리의 성심원 이야기] -3

“내 고향은 거제도라네”[김성리의 성심원 이야기] -3

김성리(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나가 7살에 병이 들었다. 내 우로 언니가 둘 있었는데, 큰 언니가 먼저 병이 들었다. 울 언니는 얼굴에 병 표가 마이 나서 학교도 못 가고 집에만 있었고, 나는 병 표가 얼굴에는 안 나고 다리에 나더라. 그것도 무릎 우로 나서 치마로 감추모 안 보였다. 큰 딸도 한스러운데 셋째 딸까지 그 험한 병에 걸리고 보이 울 아부지 엄마 맘이 어땠겠노. 내가 펄쩍거리고 뛰다가 행여라도 다리에 난 병 표가 들킬까봐 울 엄마는 나보고 뛰지도 못하게 했다.

7살에 병이 들어도 나는 내가 병든 줄을 몰랐다.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나를 환자 취급 안 했거든. 어린 기 병 걸린 게 맘이 아파서 내말은 무슨 말이든지 전부 다 들어줬다. 국민학교도 갔다. 집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학교를 가니까 자연적으로 알게 되더라. 나도 모리게 자꾸 손이 치마로 가서 잡고 있었제. 펄쩍 거리고 뛰다가 다리 병표가 들킬까 무서버서 체육시간이 되모 자꾸 뒤로 가는 기라.

하루는 공부 마치고 집에 갈라고 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부르더라. 가니까 손을 펴 봐라, 손을 뒤집어 봐라 하데. 요리조리 보다가 고마 치마를 걷어 보라는 기라. 나는 안 걷을라꼬 자꾸 움찔움찔 했다. 그래도 어짜겄노 그마 다리 병표를 봤는 기라. 담임 선생님은 아무 소리 안 하고 “내일부터 집에 있어라.” 하고 나가더라. 응, 그 말은 인자 학교 오지 말라는 기지. 혼자 터벅터벅 걸어와서 말하니까 울 엄마도 집에 있으라카더라. 그 길로 학교도 못 가고 집에만 있었다.

뭐라고? 원망스럽지 않냐고? 모리겄다. 그때는 내가 큰 죄를 지은 것만 같고 또 선생님이 오지 말라니까 가모 안 되는 걸로 생각했고. 그래도 그때는 울 엄마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괜찮았다. 학교는 우리 아버지가 우기서 보내줬다. 엄마는 문맹이다. 내 우에 작은 언니는 나하고 큰 언니 때문에 참 마이 힘들었다. 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밖에 나가모 잘 놀아주지도 않고 그랬다.

대성당 앞 벚나무

대성당 앞 벚나무

집에만 있으께 참 심심하더라. 학교를 안 갈 때는 몰랐는데 다니다 안 다니니까, 아이고 그 참 심심하데. 동네 아(이)들이 학교 갈 때는 집에 있다가 길에 아(이)들이 안 보이모 산으로 놀러갔다가 바닷가로 내리왔다가 그리 하다가 또 아(이)들이 학교서 올 때쯤 되모 집에 콕 들어왔다. 죄 지은 것도 없지만 어린 맘에 산으로 바닷가로 쏘다니면서 사람들 눈에 안 보일라고 애 마이 썼다.

큰 언니는 얼굴에 볼긋볼긋하게 나더라. 얼굴에 그리 나께 할 수 없이 학교도 못 가제. 집에 있으께 병이 나도 자연히 밥을 해 묵게 되는 기라. 작은 언니는 학교 가고 나는 어리고, 또 내 밑에 남동생은 마이 어린 기라. 아부지하고 엄마는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밖에서 일을 했다. 그라니까 큰 언니가 엄마 노릇을 해 줬제. 병들어도 언니가 집에 있으께 부모님도 그리 부지런히 날뛰었고, 우리 식구는 밥 안 굶고 쌀밥도 묵고 했다.

하루는 언니가 물양동이를 이고 우물에 물을 뜨러 갔다 아이가. 근데 우물가에 있던 여자들이 언니를 보고 소리 지르고 물을 끼얹고 난리를 피웠는 기라. 와 그랬겠노. 물 못 떠가게 그라제. 병 걸리 갖고 물뜨러 오께나 저거한테 병 옮는다고 그 난리를 피웠제. 여자들이 떼거지로 달리 들어서 언니를 이리저리 흔들고 옹기를 집어 던지고 물을 바가지 채로 갖다 붓고 물담아 이고 다니는 옹기를 발로 차고…… 휴우 휴이….

물에 흠뻑 빠져갖고 혼이 나가서 들어왔는데, 그날로 언니가 병이 났다 아이가. 그만 시도 때도 없이 발작을 하는 기라. 여자 셋만 있으모 그마 혼이 나가는 기라. 그마 셋이 지나만 가도 그래. 그라이 집에만 있는데 울 부모 맘이 어땠겠노. 어데 가서 따지지도 몬하고 누구한테도 말 몬했다. 그날 들일 갔다가 들어오셔서는 언니 그 꼴 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앉아 쉬지도 않고 일만 하더라.

나는 나이가 없어서 그때는 그 심정을 몰랐제. 한참 살고보이 인자는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이 병은 옮는 기 아이다. 우리 식구 여섯 중에 큰언니하고 나만 걸린 거 보모 모리나. 걸릴라 쿠모 다 안 걸맀겄나. 내 밑에 남동생은 나보다 나이가 마이 적었다. 엄마는 일 나가서 안 들어오고 동생은 배가 고파서 운다. 달래도 안 되고 배가 고프니까 자꾸 칭얼거리기도 하고……

암죽을 먹이야 하는데 나도 얼라 아이가.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생쌀을 입에 넣고 씹었다. 꼭꼭 씹어서 먹이기도 하고, 내가 씹은 쌀을 밥그릇에 담아 겨우겨우 불을 때서 끓여 먹이기도 했다. 내가 어리지만 생쌀을 그대로 주모 안 되겄고 굶길 수도 없고 그래서 그리 했는데, 그래도 내 맘 한 구석에 겁이 나서 엄마가 들어 오모 그 말을 못 했다. 말할 용기가 없는 기라. 혹시라도 어린 남동생이 병에 걸리모 어짜노 싶어서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그 동생은 병 안 걸리고 건강하게 잘 산다. 이기 옮는 병이모 우리 남동생은 걸리도 내가 쌀을 씹어 먹인 만큼 병이 걸리야 하는 거 아이가. 큰언니? 그때는 우물가에서 그 일을 당한 후로 병이 점점 들어서 그냥 멍하니 있는 기라. 아가 울어도, 그거를 암죽을 끓이가 먹이야 되는데 그것도 안 될 정도로 그리 병이 깊어가더라고. 내 맘에 쌀을 씹어 먹이모 그기 암죽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방지축 뭐가 뭔지도 잘 모르고 날 새모 산에 간다. 산에 가모 봄이면 진달래가 온 천지다. 그거 뜯어서 입에 넣어 보모 싸~ 한 기 맛이 있었다. 맨날천날 산으로 들로 바닷가로 다니다가 배고프모 집에 와서 밥 한숟가락 묵고, 동생 울모 업어주고 그랬다. 나는 별로 힘들지도 않고 학교 안 가는 게 그리 서럽지도 않더라. 심심한 거 하고 친구들 옆에 가기 힘든 것만 빼모 그리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 큰언니가 자꾸 문제가 생기는 기라. 우물가에서 그라고 온 뒤로 대문 밖을 안 나가는데 얼굴에 나는 기 더 표가 나. 점점 마이 나고, 나는 얼굴에는 안 나는데 왜 그리 얼굴에 나는지. 병 표도 마이 나고 정신도 나가고, 동네 사람들 눈에 우리 언니는 같은 동네에 있으모 안 되는 사람인기라. 저거 때문에 언니가 정신이 그리 됐는데……

내 눈에도 언니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더라. 집에 있다가도 갑자기 소리 지르고 벌벌 떨고, 그라모 나는 어째야 할지 몰라서 덩달아 겁이 나고 그랬다. 아마 우리 부모님 마음이 마음이 아니었을 기라. 지옥이 따로 있겄나, 그기 지옥이지. 하기사 그보다 더한 지옥이 기다리는 걸 나는 몰랐지.

사람들이 처음에는 모린 척 하다가 점점 수군거리고, 언니를 소록도로 보내라는 기라. 우리 부모님은 애써 못들은 척 해도 마이 힘들었제. 가까이 지내서 걱정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니까 “인자 아(이)들을 그마 보내야 안 되겄나?”하고, 집에 오는 것도 좀 뜸해지는 것 같더라. 그때는 순경이 병자들을 잡아가기도 하고 그랬다.

그라다가 인자는 순경이 우리 집으로 온다. 뭐하러 오겄노?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문디 있다고 신고하니까 순경이 나오지. 빨리 잡아서 보내라고 신고하는 거지. 아버지 엄마는 들일하다가도 멀리서 순경이 우리 집으로 가는 거 보이모 어떤 때는 소리치고 어떤 때는 쫓아온다. 그라모 나하고 큰언니는 뒷산으로 내빼는 기라. 그냥, 그냥 산으로 들어간다. 언니하고 쪼그리고 있다가 해지모 집으로 들어가제.

하루는 집에 있는데 순경하고 동네사람들이 몰리 오는 기라. 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아(이)들 없다. 왜 이라노?”하고 두 팔을 쫙 벌리고 버티고 서서 큰 소리를 지르는 기라. 응, 우리보고 빨리 달아나라는 뜻이지. 언니하고 나는 뒷문으로 돌아서 또 산으로 간다. 가다가 보니까 우리 아버지가 앞으로 퍽 고꾸라지고 있는 기라. 순경이 집안으로 들어 올라고 아버지를 사정없이 밀친 기라.

성심원 산책로

성심원 산책로

마음이 아프고 눈물 나고 그런 것 보다 큰언니하고 나는 겁에 질려서 계속 산으로 산으로 들어간다. 정신이 나간 언니 손을 꼭 잡고 안 잡힐라고 정신없이 뛴다.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 어데 나무 밑에 덤불 밑에 쪼그리고 그리 있다가 어두워지모 엉금엉금 내려 왔다. 해가 있으모 못 내리오제. 동네사람들이 우리 보모 그냥 안 두지. 어짜든지 우리를 동네에서 쫓아 버리야 저거가 병 안 걸린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떤 때는 어두워져도 안 가고 우리 집 마당에 버티고 있기도 하고.

응? 아이다. 다른 집에도 병자가 있었다. 그때 그리 흔한 병도 아이지만 드문 병도 아니었다. 그 사람들? 다 소록도로 가든가 집을 떠나든가 했제. 우리는 아버지가 어짜든지 멀리 안 보내고 옆에 가까이 두고 병을 낫게 할라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큰언니하고 나를 어데 보내라고 해도 못들은 척하고 버틴 거지. 그라고 우리 집이 그래도 좀 먹고 살았거든. 그라니까 아주 함부로 하지는 못했제. 그래도 결국은 떠나왔제.

고향? 생각 마이 나제. 어릴 때 떠나와도 이상하게 기억이 잘 난다. 봄이 되모 도다리 쑥국이 일품이다. 니가 어째 도다리 미역국을 아노? 니도 거제도라고? 거제도 어데고? 고향 사람 만났네. 맞다. 도다리 넣은 쑥국하고 미역국은 지금도 생각난다. 희한하게 쑥하고 도다리가 어울린다. 된장 약하게 풀어 넣고 캐온 쑥하고 싱싱한 도다리가 있는 국은 봄이 되모 생각난다. 미역국도 도다리 넣고 끓이면 국물이 진하고 참 시원타.

하이고, 너거 할머니도 숭어 간 맛을 알았네. 숭어 간, 그거 안 묵어 본 사람은 모린다. 나도 어릴 때 숭어 어장이 옆에 있었다. 어린 마음에 숭어 간을 한번 훔쳐 묵어 봤는데, 맛있는 기라. 몇 번 훔쳐 묵었지. 하하 흠, 참 맛이 있다. 숭어 한 마리에 간은 한 개제. 꼭 밤톨 맨치 생긴 게 싱싱한 숭어 간은 탱탱하다. 소금에 콕 찍어 묵으모 쫄깃한 기 참 맛이 있다. 보통 탁주하고 같이 묵는데, 술도 사람에 따라 발효하는 기 다른 기라.

누룩도 보통 요새 파는 누룩이 아이다. 그 누룩이 곡식 아이가. 물에 불리서 만들어 윗목에 두모 한 3일 뒤에는 발효하는 기라. 어데, 3일 후에 발효되는 기 정상이다. 더 오래 두모 술맛도 없고 술 색깔도 안 좋다. 그런데 더 빨리 발효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 갖고 술을 담가도 담가는 사람에 따라 술이 잘 익기도 하고 잘 안 익기도 한다. 술이 사람에 따라 다리게 발효되는 기지. 말하자모 술이 사람 가리는 기라.

칼치 회 묵어 봤나? 그거는 안 묵어 봤고나. 칼치는 바다에서 올라 오모 바로 죽는다. 칼치 잡는 배에서나 맛볼 수 있다. 그래도 금방 잡아갖고 금방 들어 오모 묵어도 괜찮다. 칼치는 반짝반짝한다. 맞다, 그렇제. 칼치는 비늘을 벗기야 된다. 칼치 비늘은 호박잎으로 마무리 하모 된다. 호박잎으로 몇 번 쓱 문지르모 된다. 뼈채 썰어서 된장에 함께 묵으모 그 맛이 기차다. 고소하고 참 맛있다. 에이, 고등어 회는 비리다. 비리서 별로라.

내 노래 한 번 해볼까?. “서러운 내 인생 흐르고 흘러가도 잊혀지지 않고 이 내 몸이 서럽고 서러워 한 세상 살아도 서러운 세상”. 나는 노래하는 기 좋다. 가수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옛날에는 한 번 부르모 한 번에 몇 곡씩 연달아 불렀다. 노래를 부르고 있으모 서러움도 잊어뿌고 눈물도 안 나고 괜찮다.

니는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여게 뭐할라꼬 오노? 니가 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기 걱정이다. 저게 박카스 있다. 박카스 묵어라. 저게 마이 안 있나. 한 개만 묵지 말고 마이 가져가라. 고마 한 박스 가져가라. 목마르고 할 때 묵으모 좋다. 또 갖다 준다. 걱정하지 말고 가져가서 차 가면서 묵어라. 뭐 할라고 또 온다고, 안 와도 된다. 니가 너무 힘들다 아이가. 내 걱정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