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담론 비판(1)-범 모더니즘 비판 [한국현대미술사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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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편집자)

민중미술의 이론적인 입장은 우선 외래의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모더니즘은 비단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를 중심으로 한 그린버그식 후기모더니즘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본격 모더니즘이나 20세기 중반의 후기모더니즘, 그리고 그 이후 6-70년대를 풍미한 반(反)모더니즘적인 미니멀리즘, 팝 아트, 개념미술 등을 지시한다. 그 바탕에는 한국 현실의 당시의 역사적 ? 정치적 ? 사회경제적 상황을 철저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특정 상황에 입각한 예술 사회학적 입장이 작동하고 있었다.

민중미술 진영의 논객들이 보여주었던 이러한 태도는 그러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상황의 긴박함에 의거해 일정하게 정당화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현실 상황이 일변할 때(예컨대, 쉽게 전망할 수는 없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문민정부에 의거한 민주화가 달성된다거나 소련 해체를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든가 하는 상황의 변화) 지속적으로 예술적 창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일을 도외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예컨대『한국현대미술운동사』(돌베개, 1991)라는, 민중미술에 대해 비교적 소상한 역사적 보고와 더불어 필자 나름의 입장을 담은 비판적 평가를 담은 책을 낸 최열은 이렇게 말한다.

“미학과 이념의 부재는 여전했고 현대주의[즉 모더니즘]에서는 미니멀리즘이라 해서 최소한의 예술, 가령 가능한 한 그리지 않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색면이나 흔적만 남기는 방향으로 획일적인 형식주의가 만연하였다. 거기에 동어반복적이고 현학적인 용어를 개입시켜 철학적 근거를 조작해 나가는 논리부재의 이론이 성행하면서 동양 고전을 교묘하게 차용, 사이비 동양사상을 과시하여 새로운 미학적 이념을 형성해 낸 듯한 인상을 꾸며 냈다.”(160쪽)

이 글은 특히 한국에서 1970년 후반기에 해외진출과 더불어 힘을 발휘했던 흔히 모노크롬 회화로 불리는 단색회화의 흐름을 직접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단색회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모더니즘의 진영에서 제시한 여러 단색회화에 대한 해석들을 보자면, 한국의 단색회화가 결코 서구의 모더니즘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동양 전통 내지는 한국 전통의 사상에 입각한 것인 양 분식(粉飾)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적 미니멀리즘’, ‘범자연주의’, ‘우주적인 흰색’ 등의 개념을 조성해서 일종의 사이비 형이상학적 놀음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작태’에 대한 최열의 공격은 그 자체로 볼 때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와 대립해서 과연 민중미술에 대해 어떤 확고한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는가이다. 최열이 소개하고 있는 민중미술 이론가 중 최고의 선배격인 김윤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그저 일시적으로 상상의 세계, 추상적인 가교의 미적 질서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의미의 해방이 아니라 삶을 위협하고 현실의 구체성을 가리고 있는 장막으로부터 진실을 체감하고 확인케 함으로써 인간과 현실의 풍부함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예술은 언제나 구체적인 생의 진실과 자유 그리고 휴머니즘에서 규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협하는 갖가지 요소는 예술에 대한 폭력에 다름없다.”(김윤수, 「폭력과 예술」(『다리』, 1972. 2.)에서. 최열(1991), 162쪽에서 재인용.)

휴머니즘적인 예술론이 제시되고 있다. 예술에 대한 김윤수의 관점이 상당히 깊이가 있음을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술을 인간 해방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이 글에서 김윤수는 인간 해방을 두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인간 삶 일반이 지닌 추상적인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삶의 구체적인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전자를 모더니즘적인 해방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리얼리즘적인 해방이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해방은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철학에서도 본질적인 구분이다. 우연한 탄생과 필연적 죽음 사이에서 영위되는 인간 삶 자체가 지닌 부조리함으로부터의 해방이 전자의 방향이라면, 구체적인 사회역사적인 현실에서 주어지는 사회적인 모순으로부터의 해방이 후자의 해방이다. 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자의 해방은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조건과의 투쟁이고, 후자의 해방은 인간 존재의 현실적인 조건과의 투쟁이다. 이 두 가지 투쟁은 본래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후자의 투쟁, 즉 현실적인 조건과의 투쟁이 주된 목표로 설정될 수 있거니와, 김윤수는 이러한 점을 예술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김윤수가 두 가지의 투쟁이 본질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것인 양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러한 김윤수의 민중미술적인 투쟁 전략은 70년대 초 당시의 박정희 독재와 긴밀하게 결합되었거나 혹은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전개되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질곡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서 어쩌면 필연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조건과의 투쟁 역시 함부로 방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이를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인류가 낳은 풍부하고 깊이 있는 문화예술의 유산의 힘을 적으로 돌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상당히 정곡을 찌르는 듯한 필설을 통해 민중미술의 전략을 설정한 이러한 김윤수의 기본적인 입장은 역시 민중미술의 이론가인 원동석에게 연결되어 그 실천적인 원리가 이렇게 제시되고 있다.

“민족의 실체는 민중이며 문화의 주체자도 역시 민중이다. 살아 있는 민족문화의 발현은 주체자가 스스로 민중이 되는 창조적 활동에 의해서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 민중미술이란 민중 속에서 진실을 찾고 이를 확인하려는 예술이며 민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민중의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의식적으로 강조함으로써 개발되는 것이다.”(원동석, 「민족주의와 예술의 이념」(1975)에서. 최열(1991), 163쪽에서 재인용.)

민족의 실체를 민중이라고 한 점에서 원동석은 민족 개념을 민중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민중적 민족’으로 정립하고 있다. ‘민중적 민족’ 개념과 대립되는 또 하나의 민족 개념이 있다. 그것은 ‘국가적 민족’ 개념이다. 국가적 민족 개념은 국가주의적인 하향적 정치 체제에서 흔히 동원되는 민족 개념이다. 히틀러가 제시한 아리안주의, 스탈린이 제시한 슬라브 민족주의, 박정희가 이순신을 내세워 강조했던 민족주의, 현재 북한에서 작동하고 있는 민족주의 등이 그러하다. ‘국가적 민족’은 그 자체 민중으로서의 민족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볼 때, 1975년 당시 이미 이렇게 민족의 실체를 민중으로 본 원동석의 민족 개념은 80년대 한국 사회를 진동시킨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계급투쟁의 측면을 바탕으로 역시 분단과 외세의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면서 당시 큰 이슈가 되었던 민족투쟁의 측면을 아우를 수 있는 제언이라 할 수 있다.

원동석이 말하는 민중이 주체가 되어 민중의 현실 속으로 파고드는 예술을 제안하는 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민중적인 진실’이라는 것이다. 인용문에만 의거해서 볼 때, 민중의 진실에 관해서는 요령 있게 제안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원동석은 민중의 진실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인 소외, 즉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에 의해 오히려 억압받고 지배받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엄혹한 사상 검열과 탄압의 상황에서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민중 개념을 정확하게 발설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원동석은 한국의 예술보다 한국의 정치사회 상황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을지 모른다. 직접적인 정치사회적인 저항이 불가능한 시절, 그 우회 전략으로서 예술을 공격 대상 영역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예술에 대한 그의 애착을 간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원동석이 1970년대 후반의 상황에서 위 인용문이 담긴 ‘민족주의와 예술의 이념’이라는 글을 발표한 것은 그 역사적인 의의가 대단하다 할 것이다. 뒤이어 발표된 원동석의 글에 대해 최열은 그 핵심을 이렇게 정돈하고 있다.

“원동석은 또한 1977년에 이르러 「한국추상미술의 외세주의」제하의 논문을 발표하여 형식주의와 획일주의에 빠진 현대주의 미술에 대한 격렬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는 추상미술의 이웃 없는 내면세계의 자아를 충족시키려는 자유는 관념의 유희이며 공허한 것이라고 하면서 추상미술은 서구의 것이건 우리의 그것이건 모두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을 밝혀 놓았다.”(163쪽)

최열의 이 해석에 의하면, 원동석이 추상미술의 모더니즘을 ‘이웃 없는 내면세계의 자아 충족’이라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술가 자신의 유아론적인 세계에 침잠해 들어가는 것이 바로 추상미술의 모더니즘이라는 것이다. 모더니즘에 대한 이러한 원동석의 규정에 대해 설사 모더니즘을 주창하는 자라 할지라도 쉽게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원동석이 모더니즘적인 예술관이 그렇게 내면세계의 자아를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 한편으로 대대적인 자본주의의 흐름과 적대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은 가능할 것이다.

만약 모더니즘 미술이 결국에는 자본주의의 상품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그러한 비판을 피해가고자 한다면, 오늘날 한국의 민중 미술 역시 자본주의적인 상품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비판함직한 반모더니즘적인 서구의 개념 미술에서 예술의 자본주의적인 상품화를 적극적으로 비판했다는 사실 등을 통한 반박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민중미술 진영의 논객들은 당시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모더니즘 계열의 한국 현대 미술가들을 전격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정확한 입지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의 모더니즘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민중적 리얼리즘의 입장과 아울러 외세배격의 민족자주의 입장도 일정하게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원동석이 저 앞에서 ‘민족의 실체는 민중이다.’라고 하고, 또 여기에서 ‘추상미술은 서구의 것이건 우리의 그것이건 모두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는 취지의 제언을 했던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김윤수나 원동석의 입장에 대해 최열은 이상적 순수주의에 입각한 듯 선언적이고 개념일변도의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현실과발언’ 및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의 선언문이 보여 주는 미술운동의 성격은 매우 도덕적인 예술가의 현실에 관한 비판 및 그것을 통한 기여로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 그것은 그러나 기존 미술계의 고답적이고 폐쇄적이며 도피적인 유희, 자족적 탐미라는 형태에 대한 거부이며 기존질서, 즉 정치 ? 경제 ? 사회적 과제에 대한 정확한 검증 없이 소박한 체제내적 변화를 기본 속성으로 하는 개량주의 혹은 문화주의적 차원의 한계를 고스란히 진 것이었다.”(최열, 「현단계 민중미술의 위상」(『동덕여대신문』, 1986. 8. 30) 중에서. 최열(1991), 170쪽에서 재인용.)

1979년과 1980년을 거치면서 창립된 ‘현발’과 ‘광자협’의 입장에 대해 최열이 ‘소박한 체제내적 변화를 기본 속성으로 하는 개량주의 혹은 문화주의적 차원의 한계를 고스란히 진 것’이라고 진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 글을 쓸 당시인 1980년대 말의 상황이 일변했기 때문이다.

‘힘전’ 탄압 사건에 이어 1985년 ‘민미협’(민족미술협의회)이 결성되어 상당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어서 1987년 6월 항쟁이 있고 난 뒤 ‘민미협’에 일정하게 대립하면서 1988년 ‘민미련건준위’(민족민주미술운동전국연합 건설준비위원회)가 뜨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개량주의’ 혹은 ‘문화주의’ 등의 딱지는 이른바 ‘배신자’ 비슷한 뜻을 지닐 정도로 나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최열은 ‘민미협’보다 ‘민미련건준위’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민미협’의 입장을 이렇게 폄하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다음 호에 ‘민중미술 담론 비판(2)-민중미술 양식의 문제’가 이어집니다.(편집자)

조광제(사)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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