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노동을 두려워하랴[노동이야기]- ④
노동자가 노동을 두려워하랴[노동이야기]-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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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 원(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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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폐기물 공장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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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에 의하면 외국인 근로자가 근로연수생 명목으로 들어올 때 1500-3000달러를 들여야 한다. 그 비용이 희한하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200만원 이상, 송출회사, 대사관 부로커들이 ‘먹는다’.
그들은 자기 조국을 위해 일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을 키워준 것은 그들의 이웃과 가족이다. 교육받고 일 할 준비 했으나 그곳에는 일자리가 없어 외국에 왔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차별들을 감수한다.
겨울에는 일이 없다. 몇 개 있는 일자리는 대단히 열악한 것으로, 일 년 내내 그곳을 마다하지 않고 나갔던 외국 사람들의 몫이다. 내국인들은 그곳에 하루 일 갔다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용역회사가 일 배치하는 패턴이 있다. 자주 오는 사람이 우선이고, 어떤 현장에 계속 나가는 사람에게 그 현장에 우선권을 준다. 나 같이 가끔 가는 이들은 금, 토요일에나 일이 돌아온다.
노동자들도 천차만별이다. 금, 토요일은 경마장에 간다. 일주일 일 했으니 주머니들 두둑히 가지고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차비도 안 남기고 다 쓰고 온다.
이번 겨울, 나는 용역회사에 나가 하루 일했다. 방수회사에서는 겨울이라서 외부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일한 날, 중국동포 두 명, 키르키즈스탄에서 온 사람들 두 명, 나 이렇게 5명이 폐기물 처리공장으로 배치되었다.
중국 동포 김 씨는 특별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술을 좋아해서, 현장에서 고철을 주워가는 고물상 주인이 항상 현장에 사다 놓는 소주를 아침부터 마신다. 그는 앞 서 말한, 열악한 환경의 현장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몇 년째 다니고 있다.
키르키즈스탄에서 온 둘 중 한 명은 작년에도 같이 일적 적 있다. 푸른 눈에 키가 크다. 그에게, ‘카레이스키(혼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아리안’이라고 답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리스 철학의 원류와 니체의 [비극의 탄생] 해석의 문제로, BC 15세기 그리스에 들어와 아티카 문화를 발전시킨 고대 ‘아리안’들에 대해 관심 관심이 있어, 지금도 그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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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하는 일은 항상 똑같다. 컨베어 벨트 옆에 마련한 의자에 앉아 쓰레기 주어내는 일 네 사람, 컨베이어벨트에 올리기 전 폐기물에서 미리 나무 토막 등 큰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작업이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 한 적 있다. 쇠붙이 등을 골라내는 전기 자석 장치에 의해 콘덴샤가 폭발하면 대단히 놀라게 된다.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고 불이 붙기도 한다. 또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올라오는 것들은 만지는 것 자체만으로, 아니 보는 것만으로도 파상풍 걸릴 듯하다. 여름이면 악취가 진동한다. 겨울이면 차가운 얼음덩어리 쓰레기를 주워내는 통에 손에 동상 걸리는 듯하다.
이렇게 처리된 쓰레기는 태워 스팀으로 만들어 옆 제지공장에 보내고, 남은 모래와 자갈은 다시 사용한다. 플라스틱과 물렝이(연질의 플라스틱)는 재사용 분리하지 않는다. 쓰레기들과 함께 연료를 분사해 태운다. 그 과정에서 스팀을 만들어 옆 한솔제지에 공급한다.
나는 컨베이어벨트의 처음 공정, 포크레인이 쓰레기더미를 파내 흩어놓으면 굵은 쓰레기를 주워내는 곳으로 배치되었다. 작업할 것들은 산허리를 파헤치고 나온 생나무들, 집을 허문 뒤 나오는 목재들이었다. 컨베이어벨트 작업보다는 비교적 쉽다. 포클레인 기사는, ‘왔다갔다 하지 말고 잘 주어 내. 이거 하려고 (용역회사에서 작업자) 부른거니까’, 라는 등 잔소리도 심했다. 하우스 덮개 같은 큰 물건은 쇠스랑으로 찍어 끌어내었다.
태국에서 온, 이름을 이야기하는데 도통 외울 수 없는 이와 함께 일했다. 옹박이라 이름 붙였다. 바싹 마른 몸매에 순박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 몸에서 기운이 얼마나 센지, 내 몸통 반 만 한 나무도 휙 집어던진다. 옹박은 회사에서 월급 주는 것이 아니다. 고물상에서 이곳에 한 사람 배치했다. 고철을 주어 모으되, 쓰레기도 주워낸다.
그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무에타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말에서 한 단어만 알아들었다. “무에타이!”, 하더니, 시범을 보인다. 팔끔치로 가격하고 무릎을 들어올려, 밖으로 뺀 자세에서 상대 옆구리 가격하고는, 번개같이 뒤돌아서며 상대의 머리를 가격하는 흉내를 낸다. 몇 년 수련했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손가락 세 개를 내 보였다. 3년 수련할 경제력이 있다면 그도 태국에서는 비교적 경제 형편이 좋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의 시범 답례로 양가 태극권을 시연했다. 그가 내가 시연한 것이 태권도냐고 했다. 내가 태극권이라고, 중국 기(氣) 운동이라고 말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상명대에 가장 좋은 만화도서관이 있다. 각국의 만화들이 있다. 평소, 도서관으로 걸어가서 만화도 보고 책도 보다가 점심 먹고 나서는 한적한 곳을 찾아 태극권을 했다. 운동 안하고 나이 들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극권을 돈 내고 배운다는 것은 노동자에게 불가능하다. 비용뿐만 아니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태극권 선생도, 중국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나 태극권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문화도 향유할 수 있는 사람, 부자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에타이 덕분에 점심 먹으며 나에 대한 태국 사람들의 호의어린 눈길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옹박이 마구 자기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을지라도, 내가 무에타이를 좋아한다, 태국 사람들 무술 최고다, 라고 했다는 등의 말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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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단 짜기?
어디에나 가난이 펼쳐져 있다. 집 뒤에 목욕탕 겸 찜질방이 있다. 용역회사에서 만났던 사람들 몇 명을 본다. 잠잘 곳이 없어 찜질방에서 생활한다 해도 그들은 노동하는 사람, 노동자이다.
40대 신씨는 힘이 좋아 6미터짜리 강관을 두 개씩 메고도 날아다녔다. 어느 노인은 ‘저녁은 대개 빵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덜 쓰고 저축하기 위해서다. 잘 먹지 못하는 탓에 그는 체중이 50킬로도 안 나가 보였다.
찜질방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함께 일했던 김씨이다. 그와 손 맞춰 며칠을 함께 계단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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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거푸집 짜는 것은 3차원의 사고를 필요로 한다. 평면도를 보고 입면을 생각하고 다시 전체 계단을 상상해야 한다. 김씨와 함께 만들었던 계단 도면은 높이 580cm, 상하 계단넓이 사이 20cm를 뗀, 한 쪽 넓이 120cm 양 넓이 합 260cm, 오도리바(계단참) 네 개의 비교적 큰 지하계단이다.
ⅰ) 계단 오름 방향 하부 벽체 거푸집을 준비한다. 계단을 향해 마주선다면 오른쪽이 오름 측이 된다. 후미당 세움 벽체 넓이 180cm, 높이130cm으로 합판을 잘라 준비하고, 여기에 계단 시작부 높이 30을 더해서 높이 160cm이 되도록 판넬을 만든다.
ⅱ) 계단벽체(후미당 하부), 전면, 좌측에 준비한 판넬과 철재 폼을 이용하여 외부 거푸집에 고정시킨다. 철재 폼은 타이가 잘 맞는다. 그러나 목재 판넬은 외부 폼과 이가 잘 맞지 않는다. 따라서 세파타이(안밖의 이가 맞지 않는 부분에 쓰는 변형타이)를 사용한다.
각 벽체가 콘크리트 타설시 밀리지 않도록 강관파이프를 가로 세로로 고정시킨다.
ⅲ) 상방향 후미당(계단 밑바닥)을 올릴 작업을 한다. 아시바(밭침대)를 설치하면서 시다오비끼(밑밭침) 9cm, 네다(횡목) 9cm을 고정시킨 후, 치수대로 합판을 잘라 후미당을 완성한다.
ⅳ) 첫 번째 오도리바를 설치한다. 아시바를 사용하여 시다와 네다를 설치한 후, 가로260cm, 상방향 96cm, 하방향 130cm이 되도록 합판을 잘라 고정시킨다.
지금까지 한 작업을 네 번 반복하면 네 개의 오도리바와 계단 총 높이(590cm)의 계단하부 거푸집이 완성된다.
이제 계단 상부거푸집을 짜 올려야 한다.
ⅴ) 계단 상부 벽체 거푸집(사끼리)을 설치한다. 보폭, 보고 부분을 계단모양이 나오도록 나나미(사끼리)로 잘라 판넬을 짜 붙이는 작업이다. 이 때 철재 거푸집폼을 사용하여 공중에 떠올린 상태로 외부 거푸집에 고정시킨 후, 그 아랫부분에 베니야를 잘라 판넬을 짜 붙인다. 일곱 계단을 높이와 폭에 맞도록 잘라 판넬을 짠 후, 세파타이를 이용해 외부 거푸집과 기존 설치한 계단 상부 폼에 고정시킨다.
이 때 각 보폭 보고 계단 콘크리트 두께 15cm가 나오는지(이 부분이 허공에 떠 있어야만 콘크리트가 이 부분에 들어간다)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ⅳ) 전방 벽체를 다음 오도리바(세 번째 오도리바) 높이까지 설치한다. 대개 폼 치수가 부족하거나 남는다. 부족하게 폼을 올린 후, 치수 높이까지 합판을 잘라 판넬을 짜서 보강한다. 오도리바에서 콘크리트 타설할 치수 15cm를 허공에 띄워, 외부 거푸집에 폼을 고정시킨다.
ⅶ) 내림계단(두 번째 오도리바로 올라가는 법면-왼쪽 방향) 벽체(사끼리)를 설치한다. 이때 콘크리트를 타설했을 때 오도리바 세로 방향이 140cm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업(ⅴ, ⅳ, ⅶ)을 한번 더 반복하면 계단 내부 벽체 거푸집이 완성된다.
ⅷ) 계단폭 120cm가 되도록, 그리고 콘크리트 높이 15cm를 채울 수 있는 높이로 법면 네 군데에 게꾸미 고정대를 설치한다.
목수가 작업을 끝내면 철근공이 작업을 한다 철근작업이 끝나면,
Ⅸ) 완성된 계단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채울 폭 26cm, 높이 17cm 간격으로 게꾸미(계단 밭침)를 설치한다.
일 끝나면 김 씨와 나는 거의 매일 ‘슈퍼 했’다. 나는 대개 맥주나 막걸리를, 그는 소주를 마셨다. 그는 당시에 목수 송출회사의 숙소에서 기거했다. 목수 송출회사란 두목 노동자가 만든 회사로, 용역회사와 다르다. 목수 예닐곱 또는 열 명이 소속돼 있어 두목 노동자가 이들을 시켜 작은 현장에서 도급노동도 하고, 대 건설회사 직영 형식으로 목수들을 ‘대여’한 다음, 회사에서 팀장 수당을 받는다. 도급노동이 불법이므로 대기업 건설회사들이 찾아낸 방법으로, 일종의 파견노동 형식을 제공하는 것이 송출회사의 역할이다.
하루는 김씨가 술 취한 채 일하러 왔다. 온전한 날에도 가끔 의견 충돌하는데, 술 취한 그와는 불안해서 함께 일 할 수 없었다. 나는 반장에게, ‘말 못할 사정으로 집으로 가야겠다’고 말하고는 그냥 돌아왔다. 그 뒤로 그 회사에 일하러 가지 못했다. 기본급 받는 회사에서 일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씨에게는 남쪽에 가족이 있었다. 그의 사정을 듣자면, 아이들 공부 중이라서 겨울이 가장 문제라고 했다. 여느 노동자처럼 겨울 일 못하면 생활비는 빛이 되어, 다음 해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지금 그는 송출회사 숙소를 나와, 용역회사에서 일을 다닌다고 했다. 일 다니며 이곳 찜질방을 숙소로 삼는다. 그는 올 겨울 내내 일했다. 오늘만 쉬는 중이다. 내가, “겨울에 일해서 다행이네요, 겨울에 일하면 힘들기야 하지…” 라고 말하자, 그는 “억지로 일하는 거지요, 일 시작해서 아침 열 시 까지는 손이 시려워 어찌할 줄 모르죠”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나는 김씨의 의중을 알 수 있다. 일 없는 것이 문제이지, 노동자가 고생하는거야 문제될 거 없다. 김씨는 겨울에 일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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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푸집 기능사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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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그냥 놀아요. 용역회사 가끔 나가봐도 일이 없어요.”
“일 안하고 어떻게 살아요? 생활비는?”
“거푸집 기능사 자격증이 있어요. 그 덕분에 회사에서 기본급을 받아요.”
“그 자격증이 어떻게 소용되죠? 어떤 식으로 시험을 봐요?”
“우리 포스코 현장에서 일한 적 있잖아요, 거기 형틀 반장이 있었어요. 도면 들고 다니며 스미(먹줄) 놓은 거 대조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라고 지시하던 사람이 형틀목공 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죠. 연줄이 있다면 그 사람처럼 월급쟁이 할 수도 있죠. 또는 회사에 소속해서 일 할 수도 있어요. 각종 공사 응찰시 기능공 자격증이 필요하거든요. 기본급이 얼마 안되는 대신, 일하면 일당을 따로 받는 식이죠.”
거푸집 기능사 자격증 시험은 5시간 30분을 준다. 시험 문제는 ‘현치도를 작성한 후, 내경 480 cm, 외경 530cm, 높이 560cm의 원형 거푸집 반쪽을 짜라’고 했다. 시험문제 도면은 수직재 16개, 띠장 12개, 연결재 9개가 있다. 필요한 재료를 받았다. 현치도를 그리기 위한 켄트지랑 목재들이다.
ⅰ) 자와 콤파스를 사용해서 켄트지에 내경 480, 외경 530이 되도록 수직재와 띠장, 연결재를 평면화 해서 그린다.
ⅱ) 현치도 위에 띠장 재료를 올리고, 컴파스를 사용해서 도면에서 따 올린 후, 직소톱을 이용해서 자른다. 연결재도 같은 식으로 원형이 되도록 잘랐다. 작업 순서대로라면 수직재를 자동대패로 가공해야 하지만 수험생들이 자동대패에 몰려있어 시간을 벌기 위해 띠장과 연결재를 먼저(우선) 가공했다.
ⅲ) 자동대패를 이용하여 수직재를 두께 25mm, 넓이 52mm로 가공했다.
ⅵ) 기계대패로 수직재를 외경52cm, 내경 48mm로 마름질했다. 대패질하기 편하도록 현치도보다 1mm씩 줄였다.
작업중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 기계대패가 고장났으니, 다 썼으면 내것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는 ‘실어도(초짜)’다. 기계대패는 힘주어 쓰면 탄소가 타서 금방 고장난다. 타인 연장을 빌려 쓰면 탈락이다. 그 사실을 말해 주었는데, 그럴지라도 빌려달라 했다. 초짜가 시험보러 오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외국인일 경우 기능공 자격증으로 비자를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ⅴ) 수직재를 560mm씩 자른 후, 이것을 네 개씩 띠장 상단 중단 하단, 세 개에 고정시켰다. 고정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수직재 이가 잘 맞지 않으면 불합격이다. 서로 맞을 때까지 정교하게 대패질했다.
ⅵ) 띠장에 연결한 수직재 모듬, 도합 네 개를 연결재로 고정시켰다.
형틀이 완성되었다. 점검해 보니 합격 가능했다. 시험문제, 현치도, 형틀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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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기본급 받는다거나 회사 관리자가 되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이를테면 그 자격증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하자. 이런 건물 때문에 고생하는 후손들은 몇 십 년, 몇 백 년 후 이렇게 말 할지도 모른다. “배고파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일을 했다고? 속없는 인간들이 살았었군. 굶어 죽었어야 옳지. 그래, 배고프다고 무기공장에서도 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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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 안하는 겨울, 노동자는 운동해야 한다
체력은 쓰지 않으면 아주 빨리 사그러진다. 일주일만 방구석에 쳐박혀 있어보라. 걷기에도 힘들어진다. 석탄 캐는 노동자가 옷에 석탄가루로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랴만, 일을 하래도 몸이 안 따라주면 애달프다. 평소 육체를 단련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하기 위한 운동은 맨손 체조가 제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불필요한 근육은 노동하기 불편하다. 근육이 걸리적거려서 두터운 옷 입은 듯, 움직이기 둔하기 때문이다. 끌로드 르 르슈의 영화 [우리와 같은 타인(Les Uns et Les Autres-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에 맨손체조하기 좋은 동작들이 있다. 이 영화는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를 중심에 두고, 2차 대전의 와중에 있는 네 예술가의 인생 여정을 사실과 상상을 교차하여 그리고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글렌 밀러, 에디뜨 삐아프, 루돌프 누레예프가 그들이다. 감독이 가장 큰 공로자임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작곡가까지 포함하여 걸출한 여섯 명의 천재가 등장하는 셈이다.
르 르슈의 영화 초반과 후반부, 유니세프 자선 공연에 위 네 사람의 예술가들(과 후손들)이 볼레로를 연주하고 누레예프 역의 배우가 차라리 운동에 가까운 춤을 춘다. 춤의 요점은 하체에 있다.
두 발바닥을 밖으로 벌려, 왼 발은 오른 쪽에, 오른 발은 왼 쪽으로 교차시킨 다음, 무릅을 적당히 굽히고 앞 뒷발 을 편히 벌린다. 발 뒷끔치를 볼레로 리듬에 맞추어 오리내리기를 반복한다. 때로는 앞, 뒷발을 좌우로 움직이기도 한다. 배우의 손동작을 따라 하기에 여의치 않아, 스트레칭하듯 자세를 취한다.
볼레로가 중요 모티프가 되는 영화가 또 하나 있다. 줄리 앤드류스가 주연한 [텐]이다. 또다른 여주인공은 볼레로가 성애(性愛)에 가장 적합한 음악으로 묘사한다. 음악이 어떻게 감성을 자극하는지, 어떻게 엑스타시(Ex-tasis)를 가능하게 하는지 여부는 각 사람의 정서에 따라 틀리겠으나, 어쨌든 감성해방의 기능이 있음은 분명하다.
볼레로 체조(춤)는 온 몸이 뻐근할 정도로 운동량이 많다. 그러나 이 동작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가 음악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다가 안죽겠다고 떼쓸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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