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권, 3권, 4권의 3장까지(1)

* 안녕하세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웹진편집부에서 알려드립니다.

6월부터 격주로   한철연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에 선정된 팀의 활동 상황을 웹진을 통해 공개하기로 하였습니다. 세미나에서 다룬 내용을 소개하고 풀어내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권, 3권, 4권의 3장까지

 

다자인多字人

1. <형이상학> 1(A)권

<형이상학> 1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람은 본성상 알고 싶어 한다”라는 문장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이 앎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의 단계를 ‘감각’, ‘기억’, ‘경험’, ‘학문적 인식과 기술’ 네 단계로 구분하여 감각과 기억까지는 동물도 가능하지만, 경험의 단계 다음부터는 오직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라고 말한다. 학문적 인식과 기술은 “경험에서 얻은 많은 생각들로부터 성질이 같은 것들에 대해 하나의 일반적 관념”이 형성될 때 생겨난다. 예를 들어 칼리아스나 소크라테스 같은 개별적인 개개인에게 이런저런 치료가 통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경험에 속하지만, 보편적 관점에서 개인의 체질을 분류하고 그에 맞는 치료가 어떤 것인지 판단하여 그에 맞는 치료와 그것이 통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기술(의술)에 속한다.

비록 실제 행위에 있어서 경험을 가진 자들이 경험 없이 이론을 가진 사람보다 더 능숙할 수는 있더라도 학문적 인식과 기술이 더 높은 단계인 이유는 경험만을 가진 사람들은 결과가 그렇게 된다는 사실은 알더라도 이유를 알지 못하는 반면, 학문적 인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은 이유와 원인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자들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유경험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기술은 경험보다 우위에 놓인다.

나아가 기술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필요에 의해, 어떤 것들은 여유 있는 삶을 위해 있다. 그리고 앞의 기술보다 후자의 기술을 발명한 사람이 더 지혜롭다. 그들이 가진 인식들은 유용성이나 필요에 의해 있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활동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필요에 종속된 기술보다, 그 자체가 목적인 학문, 앎 자체가 목적이 되는 자유로운 기술과 학문이 더욱 지혜로운 것으로 본다. 이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를 최고 단계의 앎으로, 어떤 원리들과 원인들에 관한 학문적 인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 지혜, 즉 철학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반적인 견해로부터 출발한다. 이에 따르면 지혜는 1) 가능한 모든 것을 알고, 2) 알기 어려운 것을 알며, 3) 엄밀하고, 4) 원인들을 뛰어나게 가르치며, 5) 자기 목적적이고, 6) 지배적 위치에 있다. 이러한 특징들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를 ‘가장 보편적인 인식’이자 ‘첫째 원리들과 원인들에 대한 이론적 학문’이라고 규정한다. 또 이 특성들에 따라 이 학문은 신이 소유하기에 가장 알맞다는 뜻에서 신적이며, 이것이 신적인 것들을 다룬다는 이유에서 신적이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것을 주재하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이고 일종의 원리라는 점에서 그러한 학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요성을 따지자면 어떤 학문도 그것보다 더 필요하나,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원인들에 대한 논의로 네 가지 종류를 제시한다. 첫째, 실체와 본질(형상인), 둘째, 질료이자 기체(질료인), 셋째, 운동이 시작되는 출처(작용인), 넷째, 그것과 대립하는 원인, 즉 지향 대상과 좋은 것(목적인)이 바로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제시한 네 가지 원인의 관점에서 그 이전 철학자들이 이야기한 ‘원리’ 혹은 ‘원인’에 대해 검토한다. 선대의 철학자들은 질료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원인들에 대해서 많은 주장과 논의를 내세웠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그들의 방법은 적절치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그들이 내세운 논의가 어떤 한계와 문제가 있는지를 밝혀낸다.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 대해 형상에 대해 말한 철학자들이 제일 본질에 가깝게 접근했다고 말하면서도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플라톤은 질료인과 형상인 만을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중점으로 비판한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이데아론은 개별자와 떨어져 설명에 대상을 늘렸을 뿐이며, 그 자체의 증명에도 분명한 것이 없고, 운동과 변화에 관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혹여 이러한 이데아가 수라고 하여도 이것이 원인이 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포함하여 선대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미숙했으며, 네 가지의 원인을 두루 파악하지는 못했다.

(계속)

『논어(論語)』「옹야(雍也)」의 여러 해석 가능성에 대하여(1) [건국대학교 논어 강독팀]

* 안녕하세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웹진편집부에서 알려드립니다.

6월부터 격주로   한철연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에 선정된 팀의 활동 상황을 웹진을 통해 공개하기로 하였습니다. 세미나에서 다룬 내용을 소개하고 풀어내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논어(論語)』 「옹야(雍也)」의 여러 해석 가능성에 대하여(1)

 

 건국대학교 철학과 학부 김종범

 

 

『논어』라는 텍스트에 관하여

 

『논어』는 동양철학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고전 중 하나이다. 또한 그 내용은 겉보기에는 이해하기 쉬운 격언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렇기에 『논어』는 동양철학을 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큰 부담감 없이 시도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동양철학을 거대한 체계가 있는 철학 사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래전 사람의 삶의 지혜를 담은 명언 모음집으로 치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논어』는 단순히 오래된 격언 모음집이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논어』라는 텍스트 안에서는 일관된 사상적 체계가 있다.

 

본고에서는 4월 30일 진행된 『논어』 강독에서 논한 「옹야」11-20 강독의 내용에서 구성원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온 부분을 공유하고 몇몇 부분에서는 그에 대한 추가적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강독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온 부분으로는 「옹야」13, 18, 19, 20이 있다. 구체적으로 「옹야」13, 18에서는 스터디 구성원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논어』 텍스트 안에서의 정합성을 바탕으로 해석의 타당성을 논하고자 하고, 「옹야」19, 20에서는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논어』의 일관된 사상적 체계의 부분들에 대하여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옹야」13

아래 인용은 「옹야」13의 원문과 스터디 시작 전 스터디 구성원들이 미리 번역해온 문장이다.

 

子謂子夏曰:「女為君子儒無為小人儒。」(자위자하왈:「여위군자유무위소인유。」)

재국: 선생이 자하에 이르길, “너는 군자다운 선비가 되고 소인 같은 선비가 되지 말아라

종범: 선생님께서 자하에게 일컬어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의 유학자가 되고 소인의 유학자가 되지 말아라.

서진: 선생님께서 자하를 가리켜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다운 유자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되서는 안 된다.”

수진: 선생님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 너는 군자같은 선비가 되도록 하고, 소인같은 선비가 되지 말아라.

 

「옹야」13에서 크게 논할 수 있었던 부분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군자유(君子儒)’와 ‘소인유(小人儒)’에서 ‘군자의’와 ‘소인의’로 해석할 것인지 혹은 ‘군자’와 ‘소인’을 ‘군자다운’과 ‘소인다운’으로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전자로 해석할 때는 ‘군자’와 ‘유’ 그리고 ‘소인’과 ‘유’ 사이에 소유격을 의미하는 ‘지(之)’가 생략된 것으로 판단한 것이며 후자로 해석할 때는 ‘군자’와 ‘소인’이 ‘유(儒)’를 수식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는 의미이다.

「옹야」13에서 논할 수 있었던 다른 부분은 ‘유(儒)’의 의미이다. 스터디 구성원의 경우 이에 대한 해석으로 ‘선비’, ‘유학자’, ‘유자’의 번역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는 총 3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하나는 가장 떠올리기 쉬운 의미로 조선 시대 선비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논어』라는 텍스트가 만들어질 시기에 그 선비들이 공부할 사서가 아직 성립되기 이전이므로 조선 시대 선비의 이미지로 ‘유’가 해석될 수는 없다. 두 번째 의미는 많은 동양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제사 전문가로서 ‘유’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의미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로 그저 글에 관심이 많았던 학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군자유’와 ‘소인유’에 대한 해석과 ‘유’의 의미는 그 둘을 관련지어 생각할 때 그 의미가 더 잘 드러난다. ‘군자유’와 ‘소인유’를 ‘군자의’와 ‘소인의’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유를 제사 전문가로 이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자연스럽다. 제사 전문가로서 제사를 지낼 때 그 제사를 실제로 지내는 사람이 군자인 것을 추구하고, 소인인 것을 거부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해하면 「팔일(八佾)」6과 연관을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팔일」6에서는 계씨를 모시는 염유에게 계씨가 태산에 제사를 올리려고 하자(분수에 맞지 않은 제사를 올리려고 하자) 제사를 말릴 수 있는지 묻지만 염유는 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위 문장에 따르면 염유가 계씨를 모시는 것은 소인의 유인 것이며 이는 추구할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군자유’와 ‘소인유’를 ‘군자다운’과 ‘소인다운’의 의미로 해석하면 유를 제사 전문가로 이해해도 글에 관심이 많았던 학자로 보아도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정확히 ‘군자다운’ 것과 ‘소인다운’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와 관련하여 「이인(里仁)」11과 16에 연관을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두 구절에서 군자는 ‘덕(德)’과 ‘의(義)’를 강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이와 대비하여 소인은 ‘편안함’과 ‘이익’을 강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군자유’와 ‘소인유’의 의미는 ‘덕’과 ‘의’를 강조하는 글공부 혹은 제사 전문가가 되고 ‘편안함’과 ‘이익’만을 위한 글공부 혹은 제사 전문가가 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계속)

우리 곁에서 빛나는 별 [정순야의 청춘 웹툰]

(e)시대와 철학의 첫 웹툰 시리즈! 정말 감사하게도 정순야 작가께서 흔쾌히 아름다운 웹툰 작품을 연재해 주기로 했습니다.  ‘우리 곁에서 빛나는 별’ ~ 우리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선과 시선이 전 정말 좋네요. 앞으로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참고로 본 웹툰의 저작권은 전적으로 작가 본인에게 있으니, 함부로 허락없이 무단 전재하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