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언 리치(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1.  <피, 빵, 시>, 에이드리언 리치(上)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

 

정유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1970년 5월 1일 뉴욕에서 열린 ‘제2차 여성연합대회(Second Congress to Unite Women)’에는 전에 없던 긴장이 감돌았다. “연보라색 골칫거리(Lavender Mena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스무 명의 여성들이 행사장 앞에서 소란을 피우며 훼방을 놓았다. 이 여성들은 주류 페미니즘 운동이 레즈비언들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큰소리로 항의하였다. 티셔츠에 적힌 “연보라색 골칫거리”라는 글귀는 미국에서 제2물결 여성운동을 선도적으로 이끌던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이 레즈비언 운동을 비난하며 연보라색 골칫거리(Lavender Menace)라고 이름붙인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베티 프리단과 그녀가 회장으로 있던 전미여성기구(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는 여성의 평등권을 보장받기 위한 운동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 시기에는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을 국회에 통과시키기 위한 운동이 가장 주요한 이슈였다. 따라서 전국여성단체의 운동을 주도하던 회원들 중 일부는 레즈비언들이 젠더 이슈보다는 섹슈얼리티를 의제로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여성운동이 확장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주류 페미니즘과 레즈비언 페미니즘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에서 에이드리언 리치의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Compulsory Heterosexulity and Lesbian Existence)‘이 1980년 <기호들(Signs)>지에 발표되었다. 이 글은 발표와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이성애를 여성 억압의 주요 원천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레즈비언 페미니즘에 주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연보라색 골칫거리(LAVENDER MENA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항의하는 여성들

 

여성 억압의 원천으로서 강제적 이성애

에이드리언 리치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내재적인 욕망을 자연적인 것으로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거나 의문시하지 않은 데에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은 남성과의 결혼이 아무리 불만족스럽고 억압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인생에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리치가 보기에는 이성애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자 제도이며, 여성 억압의 근원이다. 남성적 권력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제어하면서 유지된다. 캐틀린 고프(Kathleen Gough)를 인용하면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남성적 권력의 작동 방식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하고, 강제적으로 섹슈얼리티를 남성에게 향하도록 하는 것, 여성들의 생산력을 제어하기 위해 여성들의 노동을 명령하고 착취하는 것, 여성들의 아이들을 통제하고, 그녀들에게서 아이들을 빼앗는 것, 여성들을 신체적으로 구속하고, 여성들의 운동을 막는 것, 여성을 남성들 사이의 거래의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 여성들의 창조성을 속박하고, 사회의 지식과 문화적 성과의 거대한 영역에 여성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억압의 형태는 단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불평등과 재산 소유의 문제로만은 해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해방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지 남성과 동등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이성애라는 제도에 대해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에 있어 ‘대부분의 여성은 선천적으로 이성애자이다’라는 가정은 이론적으로 정치적인 장애물이다. 이러한 가정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레즈비언 존재가 역사에서 누락되어 왔으며 질병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며, 레즈비언을 고유한 존재로 보기보다는 예외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이며, 만약 당신이 자유롭고 ‘선천적인’ 이성애자로 생각한다면 여성에게 이성애란 ‘선호’가 아닐 수 있고, 오히려 강제적으로 부여되고 관리되고 조직되고 선동되고 유지되어온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애를 하나의 제도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경제적 시스템 또는 인종주의라는 계층 질서가 육체적 폭력과 허위의식을 포함한 다양한 힘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성애가 여성의 ‘선호’나 ‘선택’이라는 것에 의문을 던지는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이성애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페미니스트에게는 특별한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보상은 매우 클 것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생각, 새로운 길로의 탐험, 거대한 침묵으로부터의 균열, 인간적 관계에 대한 새로운 확신과 같은 보상을 가져다 줄 것이다.”

 

레즈비언 존재(lesbian existence), 레즈비언 연속체(lesbian continnum)

강제적 이성애라는 제도 내에서는 레즈비언이라는 존재가 비가시화되고 삭제된다. 이런 가운데에서 레즈비언의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리치는 레즈비언주의(lesbianism)이라는 용어보다는 “레즈비언 존재”“레즈비언 연속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레즈비언 존재라는 말을 통해 리치는 레즈비언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는 것과 더불어 레즈비언 존재의 의미가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레즈비언 연속체라는 말을 통해 단지 여성이 다른 여성에서 성적으로 이끌리는 것뿐만 아니라 한 여성의 인생이나 역사 속에서 여성들과 동일시해왔던 경험까지로 레즈비언의 의미를 확장시키고자 한다. 이처럼 확장된 의미에서 레즈비언 연속체는 여성들이 우애와 즐거움을 나누는 일상적인 관계의 영역까지 확대된다. 따라서 여성들이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여성들은 가부장제 속에서는 비가시화되고 삭제되고는 하는 레즈비언 연속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레즈비언 연속체의 발견을 통해 여성들은 여성들을 서로서로 북돋아줄 힘을 발견하고 해방의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여성들이 레즈비언 연속체로 존재할 가능성-여자아이가 엄마의 젖을 빠는 것에서부터, 엄마가 된 여성이 어렸을 적 엄마의 모유 냄새를 회상하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에 이르기까지, 버지니아 울프가 묘사한 클로이와 올리비아의 관계처럼 함께 실험실을 공유하는 두 여성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성들이 90세에 죽어가는 여성을 쓰다듬어주고 어루만져주는 것에 이르기까지-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레즈비언과 동일시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레즈비언 연속체의 안과 밖을 오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를 연결하기

후에 에이드리언 리치는 이 글을 썼던 동기에 대해서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 사이의 틈을 연결하는 다리를 그려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했듯 주류 페미니즘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을 오히려 자신들이 일궈나가는 정치적 목표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여겼으며,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주류 페미니즘이 여성해방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남성들이 일궈낸 제도 속으로 편입해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을 불만으로 여겨 갈등이 첨예해지는 상황이었다. 이 갈등 속에서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이었던 리치는 레즈비언의 의미를 확장하여 페미니스트들도 포괄할 수 있는 레즈비언의 의미를 구성하고자 하였으며, 가부장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의 공통적 목표로 설정하였다.

물론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시도였다. 레즈비언의 의미를 여성과 여성들 사이의 일상적 관계 형성, 그리고 심지어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로까지 확장시키는 바람에 레즈비언의 고유한 정치적 의미는 오히려 약화되었으며,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를 공통의 젠더 이슈로 연결시키면서 남성 게이와 레즈비언의 동맹 또한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리치의 글은 여전히 현재적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공적인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 성역할을 고정시키고 임금차별하는 것 외에도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금지하는 것을 통해 기능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에게는 언제나 여성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언제나 사랑해 왔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을 통해 새로운 사랑, 대안적 사랑의 가능성을 여는 것 또한 우리시대의 페미니즘에게 깊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가 수록된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 모음집 <피, 빵, 시(Blood, Bread, and Poetry)>

 

에이드리언 리치의 페미니즘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가 이 발표되던 1980년에 에이드리언 리치는 만 51세였고, 세 아이의 엄마였으며, 동시에 레즈비언이었다. 1950년대까지 최상위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자 유명한 여성 시인으로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아내와 엄마로서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하였지만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시달렸었다. 그러던 중 1966년에 리치의 가족이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리치는 반전운동, 시민권 운동, 그리고 무엇보다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면서 리치는 자신의 고립감과 우울감의 원인을 가부장제와 연결시켜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남편을 떠났다. 이후 자메이카 출신의 소설가인 미쉘 클리프(Michelle Cliff)와 레즈비언 연인관계를 지속하였다. 뛰어난 시인이었지만 가정이라는 삶 속에 갇혀 있던 그녀에게 페미니즘은 정치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라는 에세이는 그녀의 삶의 전환을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글은 우리에게 여전히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이 가부장제로 인해 보이지 않고 가려져 있으며, 이 숨겨진 사랑의 발견이 우리에게 더 많은 만남과 창조성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