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만 품격 있는 드라마[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신사만 품격 있는 드라마[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한유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많은 자취생들이 그러하듯 나도 TV없이 PC로 방송을 다운받아 본다. 그러다보니 비교적 신중한 선택과정을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는 편이다. 나름 사전 정보를 얻어 볼만한 것들을 추려낸 후 다운받는 것이다. 더군다나 근래엔 PC의 건강(?)을 위해 유료다운로드를 선호하고 있기에 이러한 선택과정이 보다 까다로워졌다. 이러한 와중에 재밌다는 평이 압도적인 드라마. ‘파리의 연인’부터 ‘시크릿 가든’까지 호흡을 맞춰온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PD의 신작인 ‘신사의 품격’은 소위 중박 이상은 기대할 수 있는 안전빵으로 보였다. 물론 김은숙 작가 드라마라 기대 반 염려 반이긴 했다.

김은숙 작가는 그동안 캔디의 변형인 평범녀가 테리우스의 변형인 차도남의 뻔뻔하기까지 한 솔직한 대시에 의해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려왔다. 다만 캔디와 테리우스가 30, 40대라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아마 김은숙 작가 자신의 나이대를 반영했기 때문이리라. 하여튼 김은숙 작가가 그리는 평범녀는 예쁜데다 개념인에 자기 일에 적극적인 실력파지만 대부분 가난하다. 그리고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 재벌남은 잘생긴데다 학벌도 좋다. 청산유수의 말솜씨와 풍부한 독서량, 그리고 훌륭한 작업멘트까지 겸비했기에 만나는 여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여주인공인 평범녀의 ‘평범함’에 반하고 만다. 그런데 이 재벌남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그 풍부한 재력으로도 절대 고치지 못한 희귀병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내면의 상처 때문에 생긴 병이다. 이 상처를 평범녀가 사랑의 힘을 통해 감싸주고 따라서 병도 낫게 된다. 10년쯤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는 꽤 흥미진진했다. 아니 더 솔직히 인정하자면 ‘시크릿 가든’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선 확실히 먹어주는(?) 이야기였다.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 사진출처: SBS‘신사의 품격’은 그간 그려온 김은숙의 미중년 테리우스에 대한 판타지를 극대화시킨 드라마다. 무려 4명의 개성강한 미중년들이 등장해서 매력발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도 왜 ‘시크릿 가든’처럼 뜨지를 못하는 것일까? 우선, 이번엔 작가가 그간 지적받아온 자신의 약점을 가리려고 꽤 노력했다. 매번 등장했던 재벌남 대신 그저 부유한 남자들이 나오고, 대신 재벌에 준하는 재력을 가진 여성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아주 가난하던 여주인공이 아니라 정규직 공무원 여주인공이 나온다. 살고 있는 집도 세 들어 살고 있긴 하지만 멋지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는 그 수가 너무 얕아서 문제다. 상황이 다른데도 곧 재벌남과 평범녀의 그 불균등한 연애관계를 연상시키는 관계에 돌입한다. 즉, 여주인공의 굴욕적 상황이 이어지다 연애가 시작되면서 그 관계가 역전된다. 그런데 여주인공에게 굴욕적이던 상황을 남주인공이 재연하면 그것은 애교가 되고, 멋진 장면이 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김은숙 드라마였다. ‘신사의 품격’도 이 패턴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런데도 ‘시크릿 가든’처럼 ‘욕하면서도 계속 보는 맛’, 즉 ‘중독성’이 ‘신사의 품격’에는 없다. 작가 특유의 톡톡 쏘는 대사도 몇 년째 계속 듣다보니 이젠 김빠진 콜라처럼 밍밍해졌고, 별 지향 없고, 내용 없는, 그저 그런 연애담도 지겹다. 무려 장동건, 김하늘이 주인공인 로코(로맨틱 코미디물)인데, 전혀 설레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문제점을 짚자면, 제목에 나타났듯 이 드라마에선 신사들만 품격을 갖출 수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은 일도 운동도 열심히 하고 멋지게 연애도 하지만 우정을 최우선으로 둔다. 그런데 여자들은 우정은커녕 서로 시기하고, 경계하고, 질투하느라 바쁘시다. 품격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우리 이 불쌍한 여자들에 대해 좀 살펴보도록 하자.

쿨한 언니도 남편에겐 의부증 아내일뿐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등장하는 주요 여성 캐릭터는 4명이다. 우선, 짝사랑 전문가이자 아마추어 야구 심판이자 고등학교 윤리선생인 서이수(김하늘 役). 서이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거인인 실력보다 미모가 부각된 프로골퍼 홍세라(윤세아 役), 88사이즈에서 44사이즈로 변신한 뒤 무조건 최윤(김민종 役)만 쫓아다니는 임메아리(윤진이 役), 소유한 빌딩 일일이 세는 게 귀찮아서 블록으로 세는 청담마녀 박민숙(김정난 役).

이 중에서 가장 ‘쿨’한 캐릭터는 박민숙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가장 돈이 많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하자면 김은숙 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쿨할 수 있는 조건’, 즉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력, 그 재력으로 꾸준히 관리하는 미모와 좋은 학벌과 지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녀는 인간관계에서도 항상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쿨한 언니’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통할 정도다. 다만 이 언니! 쿨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그게 바로 결혼생활이다. 민숙의 친구들은 다들 연하의 뽀송한 남편을 가진 민숙을 질투해서 민숙의 이혼을 바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민숙은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속이 상하면서도 친구들 앞에서는 남편과 닭살커플을 연기한다. 그리고 은근슬쩍 남편을 다시 용서하면서 “이 세상에서 제일 꼬시기 어려운 사람이 내 남편”이라는 비참한 대사까지 남긴다. 그녀는 전형적인 ‘트로피 허스번드’에 불과할 것이라 예상했던 이정록(이종혁 役)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정록의 바람기를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붙일 아이가 없어서 남편의 바람기가 더 심한 것 같다는 민숙의 혼잣말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불임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위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항상 당당하고 똑똑한 언니인데 남편에게는 그저 의부증 말기 부인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여자하고는 밥 안 먹어요

서이수는 김은숙 작가가 변형을 시도한 또 다른 캔디이다. 그녀는 귀여운 주책을 부리고, 다른 여자들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올바른 캐릭터이다. 심지어 눈치 없는 동료 선생님이 속을 긁어놔도 그녀는 맞받아치지도 않고 웃으며 넘긴다. 그래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동성들과 사이가 좋은 여성으로 등장한다(그녀가 유일하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여성은 자신을 버리고 재혼한 엄마이다). 말하자면 곰 스타일의 여성만이 여우 스타일의 여성들에게 배척받지 않는다는 낡아빠진 관계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서이수를 제외한 다른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여자의 적은 여자’ 모드 안에 매몰되어 서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댄다. 그 관계는 밥이나 먹겠느냐는 홍세라에게 “여자하고는 밥 안 먹어요.”라고 임메아리가 대답하는 것으로 대표된다. 물론 임메아리는 박민숙과 친밀한 관계이지만, 이는 두 여자가 연애문제와 돈 문제로 결코 충돌할리 없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러한 충돌의 여지가 있는 여자들끼리는 작가 특유의 대사빨로 팽팽한 접전을 선사한다. 박민숙과 홍세라 사이의 신경전과 대화, 홍세라와 후배 사이의 대화와 몸싸움 등이 그러한 장면들이다. 별다른 갈등의 원인이 없는데도 서로 앙숙이라도 된 듯 대하는 태도가 드라마 안에서 그저 여자들 사이의 흔한 일처럼 다뤄져 정작 현실의 여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꿈보다는 사랑이 급하다?

임메아리는 부잣집 막둥이로 태어나 부모님과 오빠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다만 학창시절 통통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고, 또 그걸 그렇게 놀려대던 오빠의 친구 최윤을 짝사랑만 하는 게 괴로움이라면 괴로움이다. 최윤은 메아리에게 묻는다. 24살이면 네 주변 친구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할텐데, 너는 왜 그렇지 못하고 자신만 쫓아다니냐고. 그러자 메아리는 울면서 자신도 꿈이 있지만 사랑이 너무 급하니까 그것부터 쫓느라 그렇다고 대답한다. 물론 내가 메아리 또래는 아니지만, 나 또한 그 시절을 얼마 전에(?) 겪은 사람으로서 정말 공감대 0%의 대사였다. 가방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서 디자인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도 없고, 관련된 일을 알아보려 하지도 않는 그녀가 이해되는 20대가 몇이나 될까? 그녀가 그렇게 카페 알바나 하면서 최윤바라기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부족하지 않은 경제적 지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용돈은 벌어야 하는 처지라고 말하지만 우선, 으리으리한 집이 있고, 미국으로 유학도 부담 없이 다녀왔고, 비싼 옷과 가방, 구두가 즐비하다. 결국 그녀는 인생에 별로 급한 게 없기 때문에 그나마 가장 급한 게 최윤을 쫓아다니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최윤에게만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최윤 주변의 여성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관철시키려 한다. 드라마에서 누구보다도 귀엽고 예쁘게 그려지지만 그녀는 그저 조금 더 착한 ‘빵꾸똥꾸’이다.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 사진출처: SBS홍세라는 어떤가? 그녀는 결혼이 싫다. 자신은 아직 골프선수로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더 많다. 미모로만 부각된 자신의 진짜 실력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결혼해서 안주하게 되고, 그 꿈을 묻어버리게 될까봐 두렵다. 남자친구는 그런 그녀의 의견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헤어졌다. 그 후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연습도 하고, 좋은 스텝도 꾸리려 한다. 하지만 스텝은 일을 거절하고, 빚 문제도 생긴다. 드라마에서 홍세라가 거절당하는 이유는 그녀의 화려한 이미지와 언론 노출 때문이고, 경제적인 문제는 그녀의 씀씀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난 그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나마 자신의 꿈을 위해 가장 열심인 여자는 왜 꼭 싸가지가 없는 듯 그려지고, 왜 꼭 돈은 밝히지만 경제관념이 없어서 궁지에 몰려야 하는가?

임메아리는 결혼이 하고 싶어서 안달인데다 최윤의 아이가 있어도 키우겠다고 하는 ‘착한’ 여자이기 때문에 예쁘게 그려진다. 홍세라는 결혼도 아이도 싫고,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나쁜’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으로 빚도 못 갚고, 헤어진 남자친구가 대신 갚아주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비참함을 겪어야 한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쿨하게 돈을 빌려줬던 박민숙은 자신과 홍세라의 관계보다 남편의 친구인 임태산과의 관계가 더 긴밀하다는 말을 남겨서 홍세라에게 상처를 준다. 쿨했던 민숙 언니가 다시금 남편에게 묶여버리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남자친구 임태산(김수로 役)은 헤어졌는데도 멋지게 돈을 갚아주는 의리 있는 신사로 남는다.

이 드라마의 네 여자를 다시 정리해보자. 서이수는 답답한 곰 스타일 캔디, 홍세라는 자존심을 뺐기고 길들여지고 있는 여우, 임메아리는 인생에 급한 게 사랑밖에 없는 공주님, 박민숙은 의부증에 묶여버린 언니. 신사들은 점차 성장해가며 품격을 갖춰가는 반면, 숙녀들은 계속해서 퇴보해가고 있다. 김은숙 작가가 재벌남을 빼고 등장시킨 그저 부유한 정도의 신사들은 사실 그 재벌남의 매력을 쪼개서 만든 것에 지나지 않고, 경제적으로 급을 올려준 평범녀서이수는 그래봤자 캔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 작품에서 조금 특이하게 등장시킨 부유한 여성캐릭터 박민숙도 불임임이 밝혀지면서 전통적 성역할의 덫에 걸려버린다.

언제쯤에야 욕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김은숙 작가 드라마를 볼 수 있을까? 내 생각엔 앞으로 그녀의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듯하다.

속 편하게 살자, 유창복의 『우린 마을에서 논다』/나태영 [보고 듣고 생각하기]

[보고 듣고 생각하기]

속 편하게 살자

유창복이 쓴 『우린 마을에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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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태영(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21세기 대한민국 자살률이 세계 3위이다. 리투아니아, 크로아티아 다음이다. 박노자한테서 들은 이야기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비율 세계 1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만이 넘는다. 그 분이 3인 가족 가장이시면 2700만이나 되는 분이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사신다.

부자감세가 이루어진다. 반대로 간접세는 올라서 서민증세가 이루어진다. 남북긴장 은 심화되고 있다. 죽음(死)강 사업으로 환경과 농지가 파괴되고 홍수증가가 예상된다. 큰 건설회사만 신났다. 4대강 사업으로 지어진 시설들을 없애고 4대강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데 드는 돈이 4대강 사업에 쓴 돈보다 세 배 더 든다고 한다. 큰 건설회사만 또 신났다. 이명박 정권은 한미매국협정(한미에프티에이)졸속 재협상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다. 도무지 신나는 일이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같은 신나는 일이 벌어져야 이 나라 서민이 즐거울 텐데, 올해 이 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지 않는다. 답답하다. 숨이 막힌다.

그나마 이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줄만한 참말로 신나는 일이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 마을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같이 광적으로 신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해줄만한 일이 성미산 마을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농촌 인심을 21세기 대한민국 거대도시 서울에서 일상적으로 맛볼 수 있다. 티비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성미산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부부는 지금 맞벌이 부부이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 둘레 아주머니에게 우리 아이를 맡기면 된다. 임산부가 병원에서 애를 낳아야하는데, 남편이 옆에서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럼 네 살박이 큰 애를 옆집에서 재워 준다. 우리집에 갑자기 손님이 왔는데 밥이 없다. 그럼 둘레 집에서 밥을 얻어올 수 있다. 서로 품앗이가 이루어진다.
『우린 마을에서 논다』, 유창복 지음, 또 하나의 문화, 2010.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했다. 부자는 높은 수준 문화예술을 향유한다. 반면에 빈자는 그러지 못한다. 이로써 부자와 빈자 간에 구별짓기가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성미산 마을에서는 그러한 구별짓기를 막을 수 있는 활동이 이미 이루어졌다. 바로 이 책 글쓴이 짱가 유창복씨가 주축이 되어 주민과 함께 성미산 마을극장을 만들었다. 짱가가 극장장이다. 이 극장 규모와 시설은 서울시 대학로에 있는 일반 극장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뛰어나다. 이 정도 수준 마을극장은 대한민국 최초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 극장에서는 일반 극장과 달리 전문 예술가들이 출연하기도 하지만 마을 주민이, 마을 어린이가, 마을 노인이 주인공으로 공연에 참여하기도 한다. 입장료는 대학로 연극 공연비의 약 30 – 40프로 수준이다. 무료 프로그램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자일지라도 뜻만 있다면 성미산 마을극장에 들어가 고급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다. 티비 광고에도 쓰인 적이 있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라는 동요가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성미산 마을이다.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배우와 관리자로 일하시는 단비 아빠가 했던 말이 내 뇌리에 남아있다. “삶이 곧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死)강 사업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현대 농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들 먹을거리가 우리 몸을 괴롭히고 있다. 우리 몸의 질병을 키우고 있다. 우리 성격을 거칠게 만들고 있다. 우리 꿈나무를 병들게 한다. 후손에게 물려줄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이를 예방하는 일을 톡톡히 하는 단체가 성미산 마을에 있다. 바로 마포두레생협이다. 마포두레생협은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해주고 생산자에게는 꾸준한 수입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이를 통해서 도시와 농촌이 하나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이순신장군 한산도대첩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세계 4대 해전 맨 앞을 차지하는 한산도대첩을 말이다. 성미산 마을에는 3.13대첩이 있다. 생협은 주도적으로 성미산을 지켰다. 2003년에 서울시가 마을에 있는 성미산에 배수지를 지어 성미산을 파괴하려할 때 울끈 불끈 힘내어 성미산을 지켰다. 물론 많은 수의 마을주민들과 함께 말이다. 지하철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을 상대해서 성미산을 막아냈다. 자세한 내용은 『우린 마을에서 논다』 이 책에 나와 있다. 여러분이 책을 사서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지금 성미산은 또 한 번 위험에 맞서고 있다. 홍익대학교가 성미산에 홍익초중고를 지으려 한다. 산의 약 30프로를 파괴하고서 말이다. 홍익대학교는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 부동산회사에 불과할 뿐이다. 성미산 마을 사람들은 과거에 성미산을 지킨 긍지와 자부심으로 저들과 싸우고 있다. 문화활동을 통해서 저들과 싸우고 있다. 즐기면서 저들과 싸우고 있다. 성미산 마을 사람들이 홍익대학교를 상대로 해서 싸우는 것을 보면 나는 기분이 좋다. 신이 난다. 백범 김구선생이 그리도 바라시던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마을에서 펼쳐지고 있다. 문화의 큰 힘을 성미산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유연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이 왜 옳은지 나는 옴 몸으로 깨닫는다. 주민들이 성미산을 꼭 지켜내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슬프게도 홍익대학교가 성미산에 홍익 초중고를 지었다. 아뿔싸!!!!

이 외에도 많은 단체가 이 책에 등장한다. 글쓴이 유창복씨는 성미산 마을 역사를 소설처럼 재미있고도 쉽게 썼다.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가 이 책에 많이 나온다. 성미산 마을에서 벌어지는 갈등도 나온다.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고쳐서 이루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진솔하게 글을 쓴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글쓴이 둘레에서 여러분이 글쓴이를 도와주었다.

전국에서 올바른 삶을 추구하는 분들이 혹은 단체가 성미산 마을을 보고 배우려고 견학을 오신다. 그러려면 차비며 음식값이며 비용이 많이 든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게 되면 그런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당신 방에서 편하게 성미산 마을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내용은 충실하다. 성미산 마을로 견학 오실 분들은 오시기 전에 이 책을 읽고 견학을 준비하시면 견학이 더 뜻있는 견학이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오죽 흡족하셨으면 조한혜정 교수가 이 책 뒷표지에 극찬의 말을 남겼겠는가? 오죽 흡족하셨으면 박원순 서울 시장이 책 뒷표지에 극찬의 말을 남겼겠는가? 성미산마을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이다. 성미산 마을은 지금도 기적을 만들고 있다. 울끈 불끈 힘내서 말이다. 키득 키득 쪼개면서 말이다. 독자 여러분 기대하시라. 개봉바악두—

 

 

우리 재산 우리 손으로 지키자, 지주형의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나태영 [보고 듣고 생각하기]

[보고 듣고 생각하기]

우리 재산 우리 손으로 지키자

지주형의『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글: 나태영(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아님 밤중에 홍두깨”
“아이엠에프(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문에 교통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왜요?”
“사람들이 너무 긴장해서 교통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 발생 후 직장 동료와 내가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눈 대화내용이다. 아이엠에프 사태는 너무도 어이없이 당하게 된 사건이었다. 우리가 죄 지은 것도 없었는데 가혹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달러에 비해서 우리 돈 가치가 약 두 배 떨어졌으니 애써 모은 우리 재산이 하루아침에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사건이었다. 경제학자들도 미리 알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동남아에 주식을 투자했던 주식분석가들 소수는 알고 있었다. 간혹 아이엠에프 사태를 미리 말하는 사람이 소수 있었으나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우리 경제 튼튼하다고 기사 내보내서 그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왜 아이엠에프 사태가 발생했을까요? 왜 막지 못했을까요? 그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 사태를 왜 예측하지 못했을까요?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아이엠에프 사태가 발생한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드디어 갑갑했던 내 속을 확 풀어주는 책이 나왔다. 지주형이 지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이 바로 그 책이다. 미국은 작정하고 아이엠에프 사태를 최대한 미국에 이익이 되도록 했다. 미국한테 피로 맺은 나라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외환 위기 당시 박영철 금융연구원장은 “미 재무부는 위기를 아시아로 확대하지 않고 타이에서 문제를 끝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미국이 동아시아의 금융 위기를 방조함으로써 이 지역에 구조 개혁과 시장 개방을 관철하고 미국 자본의 투자 기회를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약속했던 자본 시장 개방이 더디게 진행되자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외환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거나 동남아의 위기가 한국에 확산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을 이유가 없었다. 198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에서처럼 위기를 한국의 시장 개방을 가속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일설에 따르면 1997년 7월 CIA는 한국에 50여 명의 요원을 급파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샅샅이 조사하고 돌아갔고 같은 시기에 한국에 상주하는 15명의 CIA 요원들도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고 한다. (…) CIA는 8월에 이미 한국의 외환 위기 가능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외환 위기와 관련해 어떠한 경고도 하지 않았고 외환 위기의 확산을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다.’ (171~173쪽)

지주형은 원래 이 책 제목을 『신자유주의의 지구 정치경제와 한국 자본주의의 전환』 으로 하려고 했다. 이제는 우리나라 일만 잘 해결한다고 해서 우리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지구 전체의 정치경제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든 또 아이엠에프 사태를 당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력이나 복지를 삭감하는 것을 ‘군살빼기’라고 했습니다. 사회의 군살들을 빼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저항에 부딪치니까 바깥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래서 1990년대 넘어가면서부터 지구화가 일어나죠. 민족 국가 단위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확장됩니다. 국내에서 싼 임금으로 쥐어짜는 게 안 되니까 더 싼 임금이 있는 다른 나라로 자본이 이동하는 것이죠.’(남구현, 작은책www.sbook.co.kr, 2012년 6월호, 95쪽)

이 세상에서 거래되는 돈 액수가 물건 거래 액수보다 약 7천배 많다는 이 초현실적인 현상을 어찌 이해해야 될 지 난감할 뿐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세월은 흘러간다.
‘먼저 새로운 지구 정치경제의 ‘카지노 자본주의’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금융의 지구화는 실물 산업부분에 대한 투자보다는 자유로운 금융투자에서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거대한 도박판을 만들어냈다(Strange 1997). 외환투기와 파생금융상품거래같이 불확실한 미래의 가격 변동에 대한 예측과 베팅에 기초한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예를 들면 국제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 대비 연간 전 세계 교역량이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외환거래가 가격변동성에 기인한 실수요와 무관한 단기차익의 원천으로 이용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하루 외환거래량은 연간 국제무역량의 20배가 넘는다.’(70쪽)

‘금융투자를 통한 축적과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부분에 대한 투자 사이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예를 들면 금융자본은 산업과 고용창출이 아니라 이윤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기 때문에 주당이익배당dividend을 늘리고 투자 자원을 감소시켜 오히려 산업투자를 제약하기가지 한다.(71쪽)

이 세상 정치경제를 잘 알면 우리는 좋은 결과를 이룰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무상 급식만 해도 빨갱이 얘기가 나오고 그러는데 제가 있었던 독일은 무상 급식 정도가 아니라 박사 학위까지 다 무상 교육입니다. 의료도 다 무상이고요.’

‘각종 제도들이 만들어져 있어 콜이나 대처 이런 사람들이 등장해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에 대해서 복지의 불가역성이라고 말합니다. 복지는 한 번 도입하면 거꾸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복지 자체에 불가역성이라는 괴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 유럽에서 연금 삭감하고 거꾸로 가려고 그러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다 들고 나옵니다.’

‘실제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유럽에서 노동자 총파업이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노동자들과 학생, 대중들의 투쟁이 격렬하게 터져 나왔기 때문에 거꾸로 돌리지 못한 겁입니다.’(남구현, 작은책www.sbook.co.kr, 2012년 6월호, 94, 95쪽)

지주형이 글 쓰는 방식

이 책은 경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좀 어려운 책이다. 다만 아이엠에프 사태 글은 쉽게 읽힌다. 무협지 읽히듯이 쉽게 읽힌다. 이 지구에 신자유주의가 생겨난 배경 내용이 어렵다. 그래서 지은이는 쉬운 부분부터 읽으라고 권한다. 어려운 책이라서 지은이는 독자들을 많이 배려해준다. 가끔씩 내용을 요약해준다. 지주형은 원인-결과 틀로 문장을 이어간다. 촘촘하게 차근차근 문장을 이어간다. 단락과 단락 연결도 매끄럽다. 끈기만 있으면 경제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는 이 세상 정치경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아이엠에프 사태 당했다. 우리가 잘 몰랐기 때문에 한미매국협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우리는 앞으로 한미매국협정 그만둘거야.”라고 팩스 한 장만 보내면 한미매국협정은 없던 일로 된다. 6개월 뒤에 그리 된다. 미국 대통령이 반대할 수도 없다. 한미매국협정 협정문에 똑똑히 적혀있다고 이해영은 말한다. 하지만 이 땅에 이러한 사실마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아는 사람들도 과연 그리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는 미국과 소수 재벌에게만 이익이 되는, 다수 서민에게 재앙이 되는 한미매국협정을 지속시키려고 한다. 지지도가 높은 안철수는 한미매국협정에 대해서 자신 의견을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은 한미매국협정 폐기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협정문 조금 고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답답하다. 미국은 아이엠에프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길을 알면서도 우리에게 그 길을 알려주지 않은 나라이다. 대한민국 혈맹이라는 미국이 말이다.

아이엠에프 사태 때문에 하루아침에 우리 재산이 절반이 되었다. 그 이후 이 땅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절반이 넘게 되었다. 이 땅 사람 가운데 절반 넘는 사람들이 항상 불안하게 산다. 자살률이 오이시디(OECD, 경제협력 개발기구) 국가중 1위가 되었다. 애낳지 않으려는 비율이 또한 오이시디 국가중 1위가 되었다. 오죽 세상 살기 힘들면 사람들이 종족 보존을 피하려 하겠는가? 한매매국협정이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서서히 더 무서운 피해를 볼 것이다. ‘IMF사태 후 10년 간의 결과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한미FTA입니다.(『한미FTA 핸드북』, 11쪽, 송기호, 녹색평론l사, 2007년) 이 책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이 어렵지만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 누구도 우리 재산을 지켜주지 않는다. 이명박대통령각하가 우리 재산 지켜주신다. 꿈 깨시라. 대다수 국회의원들도 우리 재산 지켜주지 않는다. 국회위원 딱 한 번만 해도 그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한 달에 120만원씩 연금 받는다. 굳이 우리 재산 지켜주려고 목숨 바칠 이유가 없다. 물론 진보당 국회의원과 민주당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가운데 35프로 빼고 말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재산 지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더불어 한미매국협정 관련 책도 읽어야 한다. 네이버에 이해영, 우석훈, 송기호, 홍기빈 치면 한미매국협정 책 제목 나온다. 우리 재산 우리 손으로 지키자.

그들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그들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장윤경(애견 훈련사)

 

나는 올해 32살의 여성 애견훈련사이다. 개와 고양이, 새나 병아리 심지어는 길에서 주운 쥐를 키우겠다며 집에 들고 와 어머니를 기겁시킨 일도 있었던 것을 보면 어려서부터 나는 동물을 참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많은 동물을 키웠다. 그들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에 웃고 우는 유년기를 보냈으나 중학교 이후 내게 주어진 삶은 동물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 훈련소에서중학교 진학과 함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화실의 그림공부는 내 생활의 일부분으로 시작해 점점 내 생활의 전부가 되어갔다. 활동적이지 않은 성격 탓이었겠지만, 그림을 그리느라 대여섯 시간을 줄곧 앉아 있어도 좀이 쑤시지 않았고,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운 좋게도 세차고 드센 비바람 한 번 만나지 않고 고무 튜브에 몸을 맡긴 채 잔잔한 강물을 따라 흘러가듯 흘러가 도착한 곳은 예술 고등학교였다. 딱히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해보니 적성에 맞았다. 어쩐 일인지 별 노력 없이도 그림을 잘 그렸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 한 번 없이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돌이켜 보면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고 기대도 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아니 분명 꽤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서 전문 화가가 되어야 하겠다든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어떤 미래를 가지게 될지 같은 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내 어머니, 당신이 꿈꾸고 계획해 놓은 내 미래의 청사진을 듣는 순간, 웬일인지 그 길이 내 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입에서 ‘교수’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런 것은 결단코 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강렬하게 나를 덮쳐왔던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꿈이었지, 나의 꿈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그 길을 벗어났고, 길을 잃었던 것이 분명하다.

무엇이 될지, 무엇을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혼란과 방황의 대학 시절을 보내다 힘든 시기에 힘이 되어준 지금의 남편과 생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첫 번째 반려동물인 개 캐니를 집으로 데려왔다. 라브라도 종인 캐니는 아주 영리한 개였고, 우리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캐니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예뻤던 나는 둘째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침 캐니가 다니던 훈련소에서 태어난 쵸콜렛색 라브라도가 디키 주니어라는 이름으로 캐니의 동생이 되었다. 아파트에서 대형견 두 마리를 키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줄을 매고 나선 산책길에서, 사람이 지나갈 때면 혹여 작은 피해라고 줄까 염려해 목줄을 꼭 부여잡았지만 큰 개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얻어먹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특히 뉴스에 개에게 물려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당한 사람의 사건이 보도되기라도 한 다음 날이면 소중한 맹인 안내견으로 쓰여도 충분할 정도로 순한 개들이었건만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면전에서 대놓고 참기 힘든 말을 듣기도 했고 그로 인해 행인과 언성을 높이는 일도 일어났다. 몇 년간 지속된 그런 일에 서서히 지쳐갔고, 결국 우리는 두 마리의 우리 가족을 위해 이사를 결심했다.

도시 외곽의 넓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우리 부부는 보다 많은 반려견들을 식구로 받아들였다. 예닐곱 마리의 대형견을 능숙하게 통제하며 돌아다니는 젊은 여자는 어딜 가나 눈에 띄었고, 예상치 않은 반려견 훈련부탁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부탁을 접하면서 스스로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훈련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흐르는 강물에 다시금 뛰어들기는 했지만, 그것은 다른 그 누구의 결정이 아닌 바로 나의 뜻과 의지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번 여행에는 믿음직한 남편 또한 함께였다. 사랑스러운 반려견들을 키우면서 손에 잡기 시작했던 애견 훈련에 대한 공부는 이때부터 전문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외국 서적을 주문해 사전을 뒤적이고 밑줄을 치고, 노트를 해나가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세계적인 훈련사들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그들의 노하우를 배워 나갔다. 그때까지의 실제 대형 반려견들과의 생활 또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우리 부부는 세계 애견 연맹인 FCI가 공인한 한국애견연맹이 주관하는 훈련사 자격 시험에 합격했다. 프로 훈련사가 된 것이다.
▲ 훈련소의 개들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한 나의 일, 애견훈련사가 되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고 그 어려움은 지금도 이어지는 듯하다. 다른 이에게 이끌려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뛰어든 이 강 위에서 세찬 비바람도 만나고 드센 여울목도 만나는 중이다. 프로 훈련사로서의 초년병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보다도 애견훈련이 천한 직업이라고 여기는 듯 함부로 말하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부모님과 친지들조차 나의 직업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말과 태도를 취하곤 했었고 사실 그것은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건 큰 상처였다. 거기다 애견 조련은 나의 첫 직업이었고, 조련사로서의 생활은 학교 졸업 후 난생처음 하는 사회생활이기도 했다. 나는 사람, 특히나 내게 자신들의 개를 맡기거나 그러고 싶어 하는 견주들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견주들을 대하는 일이 어색했고 나는 말재주가 전혀 없었다. 개들을 돌보는 일, 견종에 따라 달라지는 훈련 방식과 그 과정, 그러한 훈련 과정을 통해 달라지는 개들의 상태를 멋지게 설명하지 못했을 뿐더러, 이후 견주들에게 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물어보는 전화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들이 프로로서의 나의 능력을 알아주고, 또 평가해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묵묵히 개들을 받고, 돌보고 훈련시키고, 돌려보냈다. 초년병 시절 나는 내가 과연 전문 훈련사로서 유능한지 무능한지 자신이 없었다. 남편이 함께 했지만, 나는 한 사람의 독립적 전문 훈련사이기도 했으므로, 내 능력에 대한 초조함에 휩싸여 몇 번이나 이 길을 들어선 것을 후회했다. 그것은 매우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그 심적 부담에서 벗어날 방법은 예전에 튜브를 뒤집고 강에서 나와 멀리 도망간 것처럼 도망치는 방법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이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 삶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두었을 때에는 잘되면 내가 잘나서요, 못되면 네가 못나서라고 책임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내가 결정한 일에서 내가 도망치면 나는 다시는 한 사람의 주체적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재기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일에서 다시 실패한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며 나의 역량부족인 까닭이라는 사실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나는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 잡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채우고 다시 도전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은 적어도 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능숙한 애견훈련사가 되었고 우리 부부의 훈련소의 규모도 많이 커졌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움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견주 중에는 애견훈련소에만 보내면 자신의 개가 가진 모든 문제가 사라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개가 사람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들은 리모컨 달린 인형이 아니다. 애견 훈련은 반려견을 기계로 키우는 훈련이 아니다. 애견 훈련사로서의 내 철학은, 내가 맡은 개들이 훈련을 통해 반려견으로서 주인과 어우러져 실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한 가정의 가족으로서 생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견훈련이 기계처럼 딱딱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명령어에 무조건 복종하게 하는 훈련보다는 마치 자신의 주인이 사랑하는 개에게 말하고 개가 그 말을 따르는 것처럼 편안한 훈련을 한다. 그것을 추구하기에 새로운 개가 오면 원래 처음부터 우리집 가족이었던 냥 집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적응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 내 옷은 심지어 외출용 옷에도 개털이 묻어 있기 일쑤고, 모임을 가지기 전 날 미리 세탁해서 말려둔 옷을 입고 나가도 개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특히 검은색 옷은 금기 의상이다. 양말이며 옷, 이불 등등에 이르기까지 검은색만큼 개의 털을 돋보이게 해주는 색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의를 표하러 갈 때가 참 곤란하다. 신기하게도 밖에서 검은 옷을 바로 사 입고 가도 어느 사이 옷 여기저기에 털들이 붙어있다. 그러한 사실이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가볍고 예의가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나란 사람이 제정신이 박히지 않았다는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내 앞에서 뒤에서 소곤대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참 속상하다. 속상한 마음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탓을 개에게 돌리고 싶을 때도 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울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 때 녀석들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나도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을 만큼 우울한 날이면 그런 녀석들을 다 물리치고 혼자 우울하게 방문을 닫곤 하지만, 그럼 뭐하나. 그토록 냉정히 저희를 뿌리친 내가 방문만 열고 나와도 또다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사랑을 표현해대는 것을. 난 늘 생각해왔다. 반려동물들은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다고. 그것이 반려동물을 집으로 데려온 이상 그 생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라고. 나의 매정함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나를 사랑해주는 그들을 보면 나 역시도 그들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것이 반려 동물과 인간이 서로 어우러져 사는 이유인 것이며, 우리는 준 사랑과 받은 사랑 모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인간인 것이다. 견주들이 길에다만 개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훈련소에 개를 버리기도 한다. 연락이 끊어지거나, 때로는 개를 적당한 곳에 버려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이 많이 아프다. 필요할 때만 반려 동물을 취하고 귀찮아지면 매정하게 버리는 사람들은 내게 사랑의 의미와 그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개들과의 생활은 나를 보다 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삶의 스승 아닐까. 나는 내가 개들로 인해 행복하고 나로 인해 개들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개도 그러하기를 그 무엇보다도 희망한다.

 

 

아버지의 눈빛으로 아들의 사랑으로, 영화 ‘맨인블랙3’ /강지은 [보고 듣고 생각하기]

[보고 듣고 생각하기]

아버지의 눈빛으로 아들의 사랑으로

영화 ‘맨인블랙3’

?글: 강지은(편집주간)

 

그들이 돌아왔다

?

맨인블랙MIB, 그들이 돌아왔다. 검은 수트에 검은 선글라스. 자체 발광하는 A급 배우 윌스미스와 토미리 존스.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를 고르는 나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블록버스터이지만 1편부터 맨인블랙은 신선함을 주는 코미디 블록버스터였다.

대부분 영화에서 외계인은 소탕해야 마땅한 존재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외계인은 일종의 제국으로서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맨인블랙의 외계인은 지구가 좋아 또는 자신이 살고 있는 행성의 불화를 피해 이민 온 이방인들이다. 게중에는 불법 이민 온 외계인들도 더러 있다. 지구는 외계인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 외계인들을 감시하고 단속하는데 그걸 담당한 형사들이 검은 수트의 맨인블랙이다. 지구의 문명은 이 외계인들이 가지고 온 뛰어난 문명 덕택에 진화를 이루었다. 영화의 작동방식은 낯선 이방인을 필요에 의해 받아들이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핵심 영역에서 배제하는 인간사회와 꼭 닮았다. 그러나 외계인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살아간다해도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나기 마련인데 영화에서는 유명한 배우나 가수가 바로 외계인들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왠지 나도 설득당하는 기분이었다. 맞다. 그들이 외계인이 아니었던들 그리 뛰어난 재주를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

1편은 어떤 영화든 그렇지만 시리즈의 기본 설정을 모두 보여주는 베이스이다. 맨인블랙도 헐리우드의 영웅을 그리는 영화이니 당연히 악당이 등장한다. 1편의 악당은 바퀴벌레 외계인. 은하계를 손에 넣기 위해 우주에서 납작한 비행접시를 타고 날아왔다. 바퀴벌레가 달큰한 음식물을 좋아하는 것처럼 이 바퀴벌레 외계인도 설탕물을 좋아한다. 또 동족이 발에 밟혀 내장이 터지는 것을 제 몸 아파하는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감성도 지녔다. 은하계를 찾으러 온 또 다른 우주인들이 지구 밖 우주공간에서 지구를 폭파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급박한 상황. 맨인블랙 콤비는 외계인의 뱃속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않고(사실 어떤 유기체의 뱃속에 유기체가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활약을 펼쳐 바퀴벌레 외계인이 탈취한 은하계를 구해낸다. 그런데 은하계는 지구를 포함해 수십억 개가 넘는 거대한 별의 집단인데 그게 어떻게 뺏고 뺏기는 물건처럼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맨인블랙의 상식을 뒤집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우주란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크기라는 선입견에 얽매여 있으면 결코 자신이 처한 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 또한 자신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불교에서 속계의 모든 인연을 벗어나 해탈할 수 있는 길은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난 무아지경이다. 나도 없고 대상도 없는 상태. 결국 대상이 내가 되는 역전이 벌어지면서 나와 타인의 구분이 없어지는 대자대비의 부처가 되는 길을 불교는 이야기한다. 맨인블랙에서 은하계는 고양이의 목에 매달린 방울 속에 있다. 방울 속에 우주가 있으니 우주란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내 마음을 내가 어찌 못하는 현대인에게 ‘마음먹기에 달렸어’라고 속삭인다. 영화의 엔딩은 어쩌면 신일지도 모르는(부처님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손이 우주의 구슬을 가지고 놀다 주머니에 넣는데 그 속에도 구슬 우주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광대한 우주라는 것도 신들의 눈으로 보면 작고 앙증맞은 유리구슬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의 유대 vs. 가족?

맨인블랙 1편의 주인공 파트너 요원 K(토미리 존스)와 요원 J(윌 스미스)는 능력에 맞추어 이루어진 단짝이다. 맨손으로 외계인을 잡은 뉴욕 경찰 제임스(윌 스미스)를 MIB 요원으로 캐스팅한 자가 K이다. 둘은 좌충우돌 부딪힐 때도 많지만 결정적인 순간 나쁜 외계인을 물리치는 데에 기가 막히게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요원 K는 비록 무뚝뚝하지만 똑 부러지는 원칙과 행동 속에 믿음과 신뢰가 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요원 J는 원칙대신 동정과 사랑으로, 기준 대신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궁합이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K와 J는 불일치 속에서 일치점을 찾아나가고 서로의 장점과 약점을 알고 이해해주는 인간적 유대를 1편과 2편에서 지속한다.

1편에서는 요원 K가 주축을 이루는 이야기의 중심라인이었다면(1997년) 2편(2002년)에서는 둘 이 대등한 중심점을 갖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3편에서는 요원 J의 과거사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1편에서 요원 J는 맨인블랙 요원 신참으로서 요원 K의 목숨을 사리지 않는 투혼에 감동받는다. 2편에서는 맨인블랙을 떠났던 요원 K를 요원 J가 다시 데리고 옴으로써 둘의 관계가 이전의 관계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2편에서는 샤크라의 빛을 손에 넣어 우주를 정복하려는 나쁜 촉수 외계인에 맞서 그 빛을 과거에 수호하려했던 요원 K가 요원 J를 돕는다. 맨인블랙의 실세가 된 J는 거북하게 원칙을 들이대는 K가 없으니 날개를 단 셈이지만 도무지 손발이 맞는 파트너를 찾을 수가 없어 난감하다. 카오스에도 인간이 알 수 없는 질서가 있기 때문에 카오스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성격이 좋은 파트너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예쁜 파트너라고 하더라도 손발이 맞아야 일을 할 수 있다. K와 J는 다시 합심하여 지구를 구한다. 인간적인 유대는 그렇게 생겨나고 유지된다. 출신 성분이나 인종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3편의 맨인블랙은 이러한 인간적 유대를 스스로 버렸다. 전편들에 비해 볼거리가 적은 것도 아니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 대목에서 힘이 빠질까. 그렇다고 막장 SF처럼 “내가 네 애비다”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K와 J는 처음부터 인종이 달랐으니 부자지간의 연을 맺기는 어려운 관계다. 하지만 이번 3편에서 K는 양아버지의 존재로 그려지며 J의 성장과정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J는 어릴 적 지구의 위기를 구하는데 일조를 한 아버지의 죽음에 자책감을 느낀 K를 보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K를 향한 연민의 감정을 드러낸다. K는 J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며 그의 아들 J의 곁에 선다. 이제 맨인블랙은 아버지와 아들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읽혀진다. 아버지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엄한 법을 들이대고 아들은 반항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길을 따라간다. 숨겨왔던 부자지간의 인연을 말하려고 수화기를 든 K의 얼굴엔 한없는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비장미가 드러난다. K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아니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결심한다. 자신이 달 감옥에 가둔 나쁜 외계인이 탈출해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는 지금 이 순간, K는 아예 그를 없애버리려 과거로 떠난다.

?

세계 최고의 미국, 미국인

?SF의 볼거리 생각거리를 총동원한 맨인블랙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미국과 미국인의 우월함을 한껏 과시한다. 맨인블랙은 소련보다 먼저 달에 우주인을 쏘아올리던 1969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영화에는 텔레비전으로 우주선 발사 장면을 보는 미국인,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놀이공원이 등장한다. 영화는 텔레비전을 집에 소유한 단란한 핵가족의 풍요로움을 여러 차례 화면에 등장시킨다. 그리고 전편들에서 뛰어난 지구인들은 거의 외계인이라는 설정이 미국인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스토리 라인에 현대 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을 등장시켜 그를 MIB 요원으로 설정한다. 이제 지구를 지키는 훌륭한 지구인은 MIB 출신이다. 게다가 영화의 흥미진진함을 반감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예지력을 가진 외계인이 조력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블록버스터의 정석은 영웅이 악당을 물리쳐 승리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과정에서만큼은 영웅도 좀 얻어맞고 관객은 그런 장면을 보며 “그가 죽을지도 몰라, 어쩌지”하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예지력을 가진 털모자의 외계인은 슬쩍슬쩍 정답을 흘리고 다니며 영화보는 맛을 떨어뜨린다.

 

그래도 MIB

?그래도 맨인블랙은 재미있다. 영화가 보는 이들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거나 인생을 되돌이켜 보게 해주어야만 명작은 아니다. 순간순간 빵 터지는 재미도 필요하고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도 있어야 하고 멋진 배우도 있어야 한다. 너무 무리한 주문인가? 맨인블랙은 이들을 고루 갖춘 블록버스터이다. 외계인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코믹적인 감각도 전편을 걸쳐 유지하고 있다. 우주가 어떤 거대한 존재의 구슬에 지나지 않는다는 1편의 엔딩과 지구는 무수히 많은 우주의 외계생명체에겐 물건을 담아두는 수많은 사물함 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2편의 엔딩은 내가 최고라는 지구인들의 오만함에 썩은 미소를 날린다. 또 한 가지, 영화 《아이 로봇》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그 자체 초콜릿 복근과 팔뚝 근육을 자랑하는 윌 스미스도 감탄을 자아낸다. 윌 스미스는 집에서 비디오게임을 하는데 왜 꼭 런닝 속옷만 입을까. 팬들에 대한 보답 말고는 답이 없다. 어찌 되었든 오늘도 외계인의 공격으로부터 안심하고 편안하게 잠잘 수 있게 해준 《맨인블랙3》는 재미있다.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임종국 평전』/나태영 [보고 듣고 생각하기]

[보고 듣고 생각하기]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정운현이 쓴 『임종국 평전』
글: 나태영(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특유의 씨익 웃음’(240, 241쪽)

책 얼굴에서 임종국 선생이 웃으신다. 웃으신다. 해맑게 웃으신다. 장마비 내린 뒤 방긋웃는 햇님처럼 밝게 웃으신다. 달님이 시기할 정도로 밝게 웃으신다. 나도 덩달아 웃는다. 『임종국 평전』 책 얼굴 디자인 한 사람 참말로 멋지다. 은은한 바탕색에 개구쟁이같이 웃는 임종국선생 사진을 책 얼굴에 멋지게 올렸으니 말이다. 당신이 해맑게 웃을 수 있었기에 친일문학론을 쓸 수 있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친일문학론』을 쓸 수 있었다. 벼락이 떨어져도 임종국 선생은 당신 서재를 뜨지 않으셨다. “죽어서 하느님 앞에 가서 너 다시 태어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면, 연자맷돌에 온 몸이 갈리더라도 다시는 태어나지 않겠다”(456쪽)고 말했을 정도로 선생 삶은 감당하기 힘든 삶이었다. 그런데도 선생은 당신 서재를 뜨지 않으셨다. 벼락이 선생을 무서워했다.

 

임종국 선생은 왜 『친일문학론』을 썼는가?

‘한 일본군 병사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는 전쟁에 졌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 조선이 독립하게 돼서 기쁩니다.”

순간 그 일본군 병사는 마치 죽일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

“20년 후에 다시 만나자!”

▲ 임종국 평전, 정운현 지음, 시대의 창 펴냄

그로부터 꼭 20년 후인 1965년 여름, 한일회담 반대 데모로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꼭 20년 후에 만나자”더니, 정말 20년 만에 쪽발이 놈들이 다시 몰려오게 되는구나! 그놈들은 일개 병사조차 “20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는 장관이란 사람이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타령을 하는 판이었다. …

회담이 타결되기도 전에 그런 타령부터 나온다면, 그것이 타결된 후의 광경은 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물밀듯이 일세日勢는 침투해올 것이요, 거기에 영합하는 제2의 이완용이, 제2의 송병준이, 제2의 박춘금이가 얼마든지 또 생겨날 것이다. 묵은 친일파들이 비판받는 꼴을 본다면, 제2의 이완용, 박춘금이 그래도 조금은 주춤하겠지? 이런 생각에서 친일문학론을 쓰기로 작정했다.(237, 238쪽)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다. 318년 후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점했다. 2012년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지 7주갑(420년)이 되는 해이다. 대통령 이명박은 2008년 7월 15일 일본 후쿠다 총리와 정상 회담을 했다. 이 회담에서 일본 총리가 “다케시마의 내용을 일본 교과서에 싣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 이명박은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임종국 선생이 『친일문학론』을 쓴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대통령이 지닌 역사의식이 참으로 낮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 이런 대통령이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된다. 그리 되려면 『친일문학론』, 『친일파는 살아있다』, 『임종국 평전』 이 세 책이 이 나라에서 많이 읽혀야 한다. 학교 선생님과 이 나라에서 여론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열심히 해 주길 기대해 본다.

선생은 『친일문학론』을 내면 책이 많이 팔릴 것이라고 확신 했다. 뭔가 지식인 사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선 출판사들이 책 출판을 꺼렸다. 용케도 나서는 출판사가 있어서 어렵사리 책이 출판되었다. 하지만 반응은 그리 신통치 못했다. 『친일문학론』에서 이야기 대상이 된 당사자들과 그들과 관련된 인간들이 서로 이 책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선숙의 증언에 따르면, 평화출판사 이전에 몇몇 출판사에 출판을 제안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고대 동문인 신일철, 민영빈 등은 “나중에 안 좋다”며 책 출간을 말리기도 했다고’

‘허 사장은 초판 1000부를 찍으려다 500부를 더 얹어 1500부를 찍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 허사장의 예측이 맞았다. 초판 1500부를 소화하는데 꼬박 13년이 걸렸다. 1979년 10?26이 난 뒤에 가서야 겨우 재판을 찍었다. 하나 놀라운 사실은 초판 1500부 가운데 500부는 국내에서 소화되고 나머지 1000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허 사장은 전했다.’(253, 254쪽)

‘문단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나섰으니 상식적으로 본다면 언론도 대서특필하고 또 당사자들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명예훼손이니 어쩌니 난리법석을 피웠을 만도 하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모두 빗나갔다. 마치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언론도, 문단도 모두 의외로 조용했다.(물론 전연 보도가 안 된 건 아니다. 다만 비중이나 관심도가 낮았다는 애기다).’(255, 256쪽)

『친일문학론』이 많이 팔리지 않게 되어 임종국 선생은 크게 실망한다. 지식인 사회의 무반응이 그를 더 힘들게 했을 것이다. 이혼, 힘겨운 밥벌이 등이 그를 힘들게 했다. 임종국 삶을 알게 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사진은 많은 것을 말한다. 글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임종국 평전』 452쪽 사진은 선생의 삶이 힘들었음을 잘 말해 준다. 이 책을 쓴 정운현은 그 사진 밑에 이렇게 썼다. ‘죽어서는 ‘바람’이 되고자 했던 종국, 요산재 옆 눈밭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임종국을 만든 사람들?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다. 거북선을 만든 나대용 장군, 조선 최고의 해전 전문가, 정걸 장군, 물길 연구에 삶을 바친 어영담 등이 그들이다. 임종국을 만든 사람들은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보다 더 많다. 임종국 할머니, 할아버지, 임종국 엄마, 아버지, 김대기, 임경화 등이 그들이다. 임종국 아버지 임문호는 호연지기의 대명사이시다.

‘끝으로 종국이 부친 임문호의 친일 행적을 친일문학론에 싣게 된 경위를 알아보자. 이에 대해서는 경화의 증언이 있다(순화도 같은 증언을 했다).

“1966년 1월쯤이라고 생각됩니다. … ‘아버지! 친일 문학 관련 책을 쓰는데, 아버지가 학병 지원 연설한 게 나왔는데, 아버지 이름을 빼고 쓸까요? 그러면 공정하지가 않은데…’ 하자 아버지께서는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고 하셨습니다.”(366쪽)

평화출판사 허창선 사장은 『친일문학론』을 이 세상에 낸 사람이다. 재혼한 아내 이연순과 김대기, 임경화는 임종국선생 말년 5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백기완 선생은 감옥에서 『친일문학론』을 퍼뜨린 사람이다. 이근성, 서화숙, 나문순은 기자로서 임종국 선생을 언론 매체에 알린 사람들이다. 백기완 선생은 “한국의 진보는 임종국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리영희 선생은 임종국 선생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임종국 선생을 크게 칭찬한 사람이다.

‘당대의 지성’ 리영희(1929년생, 77세, 전 한양대 교수)는 지난 1984년 한길사에서 펴낸 『분단을 넘어서』에서 “임종국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와는 일면식고 없지만 이 분이 펴낸 『친일문학론』은 앞으로 세워질 독립기념관의 현관, 제일 눈에 띄는 위치에 진열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독립기념관은 1987년 8월 15일 개관됐기 때문에 리영희의 글은 미래시제이다.)(294쪽)

이외에도 임종국을 만든 사람들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선생을 사랑한 사람, 선생을 존경한 사람, 선생을 애틋하게 바라본 사람, 그들이 임종국을 만들었다. 그들이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임종국선생은 이 사회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선생이 어려움 속에서도 친일파 청산에 나섰기 때문에 이 땅에서 『친일인명사전』이 나오게 되었다. 이 땅 친일파 후손들이 친일인명사전이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 땅 친일파 국회의원들이 친일인명사전 나오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이 땅에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있었다. 김호룡씨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네티즌 모금운동을 맨 처음 제안했다.

‘2004년 1월 8일 오후에 시작된 『친일인명사전』 제작비 국민모금은 만 4일이 채 지나지 않은 12일 오전 11시 30분 이미 1억원을 넘어섰다. …

이번 캠페인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7일자 정운현 칼럼 ‘다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 아래 독자의견으로 붙은 ‘참세상(kimhr)’이란 네티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비용을 모읍시다’라는 글이 도화선이 됐다.’(《오마이뉴스》, 홍성식, 2004. 01.12)

이 켐페인은 시작된지 열 하루만에 5억원의 사업비를 민족문제연구소에 안겨놓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7억원이 모금되었다. 그리하여 친일파 국회의원이 막았던 『친일인명사전』이 바로 이 땅에 나오게 되었다. 임종국 선생이 땅 속에서 ‘특유의 씨익 웃음’을 지으실 것 같다.

 

호방하고도 섬세한 시인 임제(林悌)선생이 황진이와 당신 직계 자손 임종국(林鍾國) 죽음을 슬퍼하며 이 시를 지었나보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난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몸은 곤궁하나 시는 썩지 않네』, 송재소 씀, 한길사, 147쪽

 

나도 시간 내서 임종국 선생 묘소에 한 번 들러야겠다. 정운현이 쓴 『임종국 평전』을 한 권 들고 선생 묘소에 한 번 들러야겠다. 선생께 『임종국 평전』에 싸인 해주십사 부탁하러 당신 묘소에 한 번 들러야겠다. 독자 여러분도 그리 해주세요.

 

 

작은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의무급식이야기[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이수진(학부모)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 새댁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올해는 우리 아이가 무상급식이 안된다는 데요, 얘기 들으셨어요?”

“아니, 왜? 작년엔 받았잖아. 학교에서 별소리 못 들었는데”

“유치원하고 중등은 지원이 없구, 초등만 준다는데요. 지역신문에 났어요.”

 
ⓒ오마이뉴스학교에서 학부모 운영위원을 하고 있고 지역에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일을 하다 보니 종종 학교 문제에 관한 문의 전화를 받곤 한다. 느닷없는 전화를 끊고 이래저래 알아보니 참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작년에 3개월간(9월-12월) 유치원 만5세가 경기도교육청 예산 지원으로 의무급식(무상급식)의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급식비를 100% 지원해주었으나 올해는 예산 부족으로 지자체에서 40%(약 1억 8천만 원)을 부담하고 경기도 교육청이 60%(약 2억7천만 원)을 분담하여 의무(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시에서는 예산부족이라는 이유로 대응자금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예산편성안함). 해당 교육청에 알아보니 교육청 담당 장학사가 여러 차례 시장을 찾아 갔으나 거절하였다고 한다.

우리시가 예산부족으로 내세운 대응투자금 40%는 정확히 1억 8천 6십 8만 8천 원으로 우리시 전체예산의 0.04%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그 돈이 없어서 2억 7천 만원을 날려버리고 급식비를 내고 밥을 먹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중학교에도 똑같이 적용 돼서 중학교에도 우리시만 급식비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이런 사실을 주민의 의사를 묻는 공청회나 의견수렴의 절차 없이 시가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지역신문 귀퉁이에 난 기사를 보지 못했다면 영문도 모르고 당할 일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아줌마들 사이에서 오가고 난 후 유치원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서 시청에 문의 전화를 하고 민원을 내기로 했다. 다른 시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보조를 받아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는 데 왜 우리시만 못한다고 하는지 민원을 내니 돌아 온 답변 은 더욱 가관이다. “예산이 부족하다”, “일방적인 도교육청의 밀어붙이기 행정이었다”며 수요예측이 가능했던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도 않은 채, 학부모들에게는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3월말에 추경예산을 잡는 시의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학부모들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유치원은 공립과 병설 유치원 학부모들이 연락을 해서 까페를 만들고 시청 앞에서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중학교 학부모들은 학부모회 회장들이나 학부모운영위원이 긴급하게 연락을 해서 회의를 열고 ‘의무(무상)급식을 바라는 학부모임’을 만들어 서명 작업과 일인시위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신속하게 모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지역이 워낙 좁은 까닭도 있지만 그동안 학부모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어느 정도는 마련되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인구 20만이 되지 않는 경기도의 작은 중소도시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촌지역이였다가 일명 신도시가 들어오면서부터 도농복합지역으로 바뀐 곳이다. 그렇다보니 신도시로 이주한 입주민과 기존 지역민과의 의식차도 있고 생활차이도 있다. 수도권이라고 하지만 농촌지역에 가까워 시청에 들어가면 지역 토박이 성씨(姓氏)를 쓰는 공무원들이 대부분일 정도였고 공무원들이 어찌나 권위적이던지 민원을 넣으러온 시민들에게 불친절은 기본이고 고압적 자세로 업무를 봐주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서울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은 수시로 민원을 내고 전화를 걸어 공무원과 싸우는 일이 잦았고 시를 상대로 소송을 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시민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게 됐고 많지는 않지만 지역공동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지역에서 일을 하다보면 답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워낙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라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 거의 대부분 보수당 당원들이고 이들은 자기의 생각 없이 무조건 당의 입장으로 말한다. 무상급식만 하더라도 인터넷에서나 올라오는 말들이 서슴없이 시의원입에서 튀어 나온다.

예를 들면 ‘무상급식 하느라 예산이 전부 애들 밥먹는데 들어가서 시에 돈이 없다. 그래서 아직 도로를 못 만든다’라고 아파트 대표자들을 불러 모아놓은 자리에서 이야기 한다. 참고로 그 도로는 10년째 공사 중인 곳이다. 무상급식은 작년부터 이루어 졌는데 그전에는 왜 그 도로를 완성하지 못했느냐고 물으면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니냐, 뭐 그렇다는 얘기지 어떻게 그걸 일일이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한다. 또 어떤 시의원은 ”무상급식하면서 급식질이 떨어져서 아이들이 맛이 없어 밥을 못 먹는다고 하더라“란 이야기도 한다. 학부모회 일을 하기 때문에 급식실 영양교사들을 만날 일이 있어 그 분들에게 물어보면 ”의무(무상)급식을 하고 나서는 예산이 안정화 돼서 오히려 급식질이 좋아졌다’고 한다. 무상급식을 하기 전에는 급식비를 못내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예산이 불안정하고 급식비를 못낸 아이들까지 먹여야 하므로 예산이 늘 부족했었다고 했다.

의무(무상)급식을 놓고 헛된 곳에 돈을 쓴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장의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듣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각자 자기가 사는 곳에서 서명 작업을 받기로 하고 헤어진 중학교 학부모회 회장님들은 그 후 다시 모이질 않았다. 학교 측에서 정치적 문제가 개입된 것 같으니 학부모들에게 그 모임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였단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순수한 행동이 아니라 무상복지, 무상급식이라는 정치적 문제라나 뭐라나.

그렇다고 의무(무상)급식을 바라는 학부모 모임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위축되지는 않았다. 뜻있는 학부모들이 계속 활동하기로 해서 일인릴레이시위도 계획대로 진행됐고 서명 작업도 받아서 제출했다.

우리시에서 의무(무상)급식은 아직도 예산편성을 기다리는 중이나 유치원생은 곧 편성이 돼서 의무급식을 먹게 될 것 같고, 중학생은 좀 더 시위가 필요할 듯하다.

3월이라 해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지하철역 앞에서 일인시위에 참여하게 된 나는 지나가시면서 ‘수고하십니다’ 한마디 해주시는 아저씨들이 있어 가슴이 따뜻했고, 일인시위 한다고 아침부터 일부러 지하철역까지 나와 준 아줌마들이 있어 어깨가 으쓱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참고로 12년 2월 현재 경기도교육청 소속 30개 시군교육청 가운데 14개시(대부분 경기외곽지역)에서 대응투자을 하지 않아 의무급식을 하고 있지 않으며 4월까지 몇 개의 시가 대응투자 예산을 세워 이후 집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꼼수’에 속지 말고 닥치고 페미니즘[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황 주 영(서울시립대학교)

논점 일탈한 나꼼수의 변명

나꼼수 ‘비키니 응원’과 ‘코피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일이 벌어지니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 시점은 ‘나꼼수 봉주 5회’가 업데이트 되었고, 거기에서 김어준씨는 저간의 상황을 요약하면서 김용민씨와 주진우씨 각각의 발언에 대해서 해명을 했다. 해명의 내용은 1) 원래 그런 사람들 아니다, 2) 김용민의 성욕감퇴제 관련 발언은 비키니 응원사진이 올라오기 전에 녹음한 방송분이므로 잘못 엮인 것이다, 3) 성희롱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우리의 발언은 모두 ‘가카’를 겨냥한 것이다, 4) 성희롱은 권력관계에서 나오는 것인데 비키니 응원 여성과 자신들 사이에는 아무 권력관계가 없으므로 사건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과 3)은 나꼼수 콘서트에서 김어준씨 스스로 말했듯이, 변명이 되지 않는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의 가해자들 중 많은 이들이 고학력에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한없이 자상하고 점잖은 분들이다. 의도가 없었다? 그렇겠지. 지하철에서 의도치 않게 남의 발을 밟아도 우리는 자연스레 사과를 한다. 그게 뭐 어렵다고. 왜 남성들에게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성폭력에 대한 사과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어쩌다 한 한 번의 실수가 아니기 때문인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뿌리깊이 박혀있고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언행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에 대해 사과를 하면 자기 존재와 일상 전체를 걸고 사과하는 셈이라서 그런 걸까? 게다가 자신들의 발언은 모두 가카를 향한 것이라는 변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의를 위해서라면 여성비하적인 발언 정도는 괜찮다는 뜻일까? 2)는 사실 관계가 그러하다면 인정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발언이 비키니 응원 여성과 관련되지 않았을 뿐, 방송을 청취하는 (김어준씨 말에 따르면 ‘동지’일 수도 있을) 여성들이 김용민씨의 발언 속에서 한낱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에서는 달라지는 게 없다. 게다가 많은 여성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비키니 응원 여성’에 대한 나꼼수 멤버들의 성희롱이 아니라, 여성 일반에 대한 나꼼수 멤버들의 남성중심적 관점이었다.

따라서 4)의 해명도 기각된다. 김어준씨가 말하는 권력관계에는 성폭력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과 남성 사이의 성적 불평등은 빠져있다. 비키니 응원 여성과 나머지 다른 남성들 사이에는 불평등한 관계가 있다. 이 여성이 아무리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드러내도 그 자발성은 성적 불평등이라는 이 조건 속에서 완전한 자발성이 되기 어렵다. 마돈나가 여성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획기적이었어도, 그 몸을 훑는 카메라의 시점은 가부장적인 남성의 시선이라는 것은 이미 수없이 언급되지 않았던가. 남성은 그러지 않는데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김어준씨가 말하는 그 ‘생물학적 완성도’를 드러내는 것을 응원의 방식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여성과 남성이 권력에 있어서 서로 다른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는 걸 말해준다. 나아가 재차 강조하면, 여러 여성들이 문제 삼는 것은 ‘비키니 응원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 아니다. 여성을 “남성의 정치적 활동의 사기 진작을 위한 대상 정도로 전락시킨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삼국카페 공동 성명서> 중 인용.)

 

페미니즘 비판으로 물 타는 마초들의 꼼수

 

김어준씨는 ‘나꼼수 봉주 5회’에서 현재 이 사안에 대한 논의 수준이 낮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발언을 거의 그대로 옮겼으며, 주술호응이 되도록 하는 정도만 수정함.)

“<저 세 놈의 남자새끼들이 마초라서 그랬다>에서 한 발짝도 더 안 나갔다. 마초라는 혹은 쇼비니스트에, 성적 감수성이 졸라 둔한 새끼들, 남자새끼들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한계 내에 있는 거다. 그 틀에 맞춰서 욕을 한다. 실제로는 우리를 쇼비니스트로 만드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을 해석할 틀, 언어가 없다.”

안타깝게도 나꼼수 멤버들은 성적 감수성과 성인지적 사고가 부족한 마초 맞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마초 아닌 인간이 몇이나 된다고, 마초라고 지적받았다고 해서 너무 그렇게 기겁할 거 없다. 쫄지 마~) 뭘 좀 안다고 마초가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다. 페미니스트도 제대로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마초가 아니기 위해서 매순간 노력해야 한다.

김용민씨가 방송에서 ‘정봉주의 좆이 되겠다’는 발언을 했을 때는 아슬아슬했다. 더군다나 ‘생물학적 완성도’라니. ‘생물학적’이라는 표현이 여성의 몸에서 동물성을 강조하고, ‘완성도’라는 말이 남성중심적인 판단 기준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뇌구조가 이상한 건가? 이런 표현을 떠올릴 수 있는 김어준씨가 마초적이지 않다면 대체 누가 마초적인지 되묻고 싶다. 만약 비키니 응원 사진을 올린 것이 나이든 여성이거나 장애 여성이거나 비만인 여성이었다면, 다시 말해 ‘생물학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소위 ‘정상성’에서 벗어난 여성이었다면 나꼼수 멤버들은 무슨 농지거리를 했을까? 이런 질문을 해보면, 이들의 농담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농담이 아님을 금새 알 수 있다. 김어준씨는 이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했다. ‘대상화’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에 대해 김어준씨와 페미니스트들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김어준씨는 남녀 쌍방 간에 대칭적인 대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중심적 시각에 따라 여성이 주체가 아닌 한갓 대상으로 취급되는 것을 대상화라 일컫는다. 후자는 남성과 여성이 가부장제적 상징질서 내에서 이미 비대칭적 권력관계에 놓여있음을 전제한다. 성적 대상화는 결코 중성적이거나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누가 누구를 어떤 성별 권력관계 하에서 어떻게 대상화하느냐 하는 것을 자문해보지 않는 김어준씨의 수준 또한 그리 대단하지가 않다.

결국 ‘나꼼수’는 언급과 변명만 했을 뿐 사과는 하지 않았다. 혹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열폭(열등감 폭발의 준말로 인터넷 신조어)해서 싫고 나꼼수는 쿨해서 좋다는데, 필자 눈에는 나꼼수는 쿨한 척 하면서 열폭 중이다. 어느 블로거 말대로 ‘미안하다, 씨바, 다신 안 그럴게!’라고 나꼼수답게 사과하면 그만인 것을, 이미 닳고 닳은 논리를 끌어다 대면서 제3자를 자처하고 있다. 김어준씨는 ‘전지적 가카시점’에서 사태를 관망하면서, 모든 것이 다 논의되어야 사회적 비용을 치른 만큼 사회적 이득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수준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고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한다. 자신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듯 태도를 취할 뿐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아 날개를 접고 있는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김어준 씨에게 빙의했다.

나꼼수 멤버들은 비키니 응원 여성을 ‘골빈 년’으로 만드는 폭력적인 상황을 비판하면서 그 여성 뒤로 몸을 숨기고, 당사자가 아닌 체 한다. 한 개인 여성을 보호하는 제스쳐를 취함으로써 집단으로서의 여성과 여성운동을 물 먹인다. 기가 막힌 전략이다. 거기에 더하여 몇몇 미묘한 발언들은 이번 건이 나꼼수 멤버들을 겨냥한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의 꼼수임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을 해석할 언어와 틀은 기껏해야 ‘음모론’이 전부다. 가카와 이하 보수세력을 겨냥한 언행이란 거다. 김어준씨는 자신이 더 큰 적, 더 큰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항하는 그놈의 ‘대의’ 뒤로 또 슬며시 숨어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비키니 입은 여성은 쿨하고 발랄하고 섹시한, ‘남성들의’ 정치적 동지가 됐고, 광우병 촛불집회 때부터 지금껏 정치활동을 하며 그 의식을 노동, 환경, 여성문제에까지 확장해온 삼국카페 회원들은 보수언론에 속아 넘어간 물정모르는 여자들이 됐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음모론이 향한 칼끝이 여기라니!

 

페미니즘으로 쟁점화 되기를 바라며

 

다행히도(?!) 나꼼수 멤버들은 (이번에 배운 건지 정말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지간한 진보적 남성 지식인에 비해서는 약간 더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방송에서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판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가해자의 의도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여성이 이런 이슈에 민감할 권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기들은 배운 남자라고 항변했다. (이 정도 기본 지식을 가지고 칭찬받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배운 여자들은 배운 남자들만큼 못 믿을 사람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진보적인’ 혹은 ‘비판적인’ 배운 남자들은 더 그렇다. 대학에서, 진보적 운동 단체들에서, 운동권 학생회에서 중심적인 활동을 했던 수많은 남성들과 교수들이 자신의 여성 ‘동지들’을 성폭력 피해자로 만들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걸 김어준씨가 모르진 않겠지.

삼국카페는 공동성명서에서 여성을 치어리더로 삼는 남성중심의 ‘반쪽 진보’인 ‘나꼼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믿음, 동지의식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심정으로 오래 몸담았던 진보적 집단에 등을 돌렸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여성운동을 시작했던가! 나꼼수 멤버들이 다른 남성들에 비해 1그램 정도 낫다거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변한 게 없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사실 이번 일에 대한 (나꼼수 멤버를 포함한) 남성들의 반응은 너무 빤하기 때문에 새삼 놀랄 것도 없다. 페미니스트들이 봐야 할 것은 저 삼국카페 회원들이 낸 공동성명서이며, 그들과 페미니스트 이론 사이의 격차, 그들과 비키니 응원 여성 및 그녀를 모방하며 나꼼수를 지지하는 여성들 사이의 격차, 그리고 이 후자의 여성들과 페미니스트 사이의 격차다.

김어준씨의 말대로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은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 내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여러 방식으로 수정보완하려는 노력들도 있어왔다. (이런 걸 언급하지 않은 걸 보니, 아마 김어준씨는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에 관심을 끊었나보다.) 문제는 그 파급력이다. 현재 페미니즘이 20대 여성들에게 매력이 없는 건 이전 세대들과 지금 20대의 삶이 크게 다른 데 비해 페미니즘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은 더 이상 20대 여성들의 삶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큰 변화나 도약이 없는 것은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여성들의 삶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아를 실현하는 데 있어 그 누구보다 많은 독려를 받으며 자란 젊은 여성들은 소위 알파걸이라고 불리고 엄친딸을 지향하며 산다. 이들은 제2의 수퍼우먼이지만 선배들이나 엄마처럼 지독하게 혹은 청승맞게 애쓰지 않는다. 여성성을 한껏 뽐내면서도 학업이나 일에서 좋은 성과를 내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 싸워야 할 상대는 남성이 아니다. 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애교로 의존하는 척 하면서 구워삶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하는 여성들은 물론이고 현재 20대의 많은 여성들도 여전히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저런 특별법이 마련되었어도 여성들은 여전히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아직도 임노동과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과 관련된 현장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이라면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이 아직도 절실할 것이다. 이건 김어준씨가 스포츠 중계하듯이 ‘피해자 프레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와 줘야 되는데 안 나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어준씨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도구화하기로 결정한 그 여성을 골빈 년으로 만드는 폭력”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 폭력이 피해자 프레임 페미니즘의 콜래트롤 데미지(부수적 피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어준씨가 간과한 또 하나의 부수적 결과가 있다. 그게 바로 비키니 응원 여성이나 코미디언 곽현화, MBC 이보경 기자와 같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걸 원하는 여성이야 없겠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피해의식도 없는 아주 당당한 여성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거칠고 민감한 페미니스트와도 거리를 두고 싶고, 고통스러워하고 청승맞은 피해자와도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고 어떤 여성들의 ‘피해의식’을 비꼬는 패러디물을 만들고, 나꼼수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비키니 응원에 참여한다. 이들은 개인이다. 이들은 여성 집단에 대해서 아무 고려도 하지 않는다. 이 여성들은 한편으로는 이른바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적 존재로 자신을 등장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는 대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성적 존재로 노출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 자기가 처해있는 성적 입장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는다. 이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피해자 프레임과 더불어 속박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아를 실현하면서 살라는 일종의 강령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포섭되고, 남성중심적 권력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이다. 게다가 이는 부수적인 게 아니라 결정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도구화’ 되는 것도 스스로 ‘도구화’ 하는 것도 모두 거부하고,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피해의식’에서 출발해 그것을 정치적 활동의 역량으로 확대하면서, 하이힐 신고 아스팔트를 걸으며 가카 퇴진을 외치고, 시위대에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플래시 몹을 선보이는 등 ‘발랄한’ 시위 방식을 보여주었다. ‘대의’를 위해서 어떤 취약 계층을 배제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이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사유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 프레임을 넘어선 이야기들을 제시하는 페미니즘 이론과 여전히 피해자 프레임을 필요로 하는 여성운동 및 여성의 현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느 쪽과도 관계되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들과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도 페미니스트 의식을 지니고 있는 여성들 사이에 어떤 공통성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나꼼수를 이길 순 없다. 우리에겐 그만한 명성도 권력도 미디어도 없다. 게다가 그런 ‘팬덤’도 없다. 나꼼수의 지지자들은 이미 동지도 지지자도 아니다. 그들은 마치 아이돌의 팬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들 믿고 배신하지 말자’며 팬심을 다지듯이, 다 필요 없고 김총수가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고 그 판단에 맡기고 우리는 한 길만 가자고 서로를 도닥이는 분위기다. 이렇든 천군만마를 가진 나꼼수는 꼴페라고 만날 욕만 들어먹는 여성들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사과한다면 잘해야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정도겠지만, 이런 소릴 할 캐릭터들이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민감할 권리는 있어도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을 권리는 없다며, 조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논점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 돌리면서 회피해 가는 이런 담론에 또 휘둘릴 필요 없다. 그러는 대신 담론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나 대의가 뭐냐, 여성문제는 사소한 일이냐 하는 케케묵은 논쟁은 그만두자. 이런 쟁점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어떤 쟁점을 다루든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마주보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협상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