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데올로기』1·2(2019), 『정신의 오디세이: 자유 의지의 역사』(2021) 등을 저술한 전 동아대 철학과 교수 이병창 회원이 영화와 소설, 철학 등 광범위한 문화 비평을 담아내는 코너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8-반성 개념[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8-반성 개념

1)

앞에서 칸트는 판단형식이 그 자체로 가지는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 의미는 구체적으로 도식을 통해 주어졌다. 칸트는 이런 판단형식을 마치 좌표축처럼 생각하면서 어떤 경험과 어떤 판단형식을 관계시켰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경험이 충분히 주어지기 전에는 어느 판단형식에 속할지를 가리기 힘들며, 판단형식을 결정하기 위해 충분한 경험은 무한히 지연되므로, 칸트의 인식론은 물 자체뿐만 아니라 심지어 현상에 대한 인식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 우리의 인식에서 우리는 잘못된 인식에서 참된 인식으로, 현상의 표면적 인식에서 그 내부 본질에 대한 인식으로 발전해 나가는데, 헤겔은 칸트의 좌표축 개념을 넘어서서, 인식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헤겔은 이점을 논리학에서 “내용의 자기 운동”이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그것은 하나의 판단형식이 그 스스로 다른 판단형식으로 이행한다는 의미이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듯이 헤겔 역시 여기서 간단하게 생각했다. 판단형식이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면, 하나의 판단형식은 어떤 사태에 부합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만일 판단형식이 현재 주어진 사태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 판단형식은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문제 되는 논의는 예를 들어 ‘철수가 죽었다’가 잘못이고 오히려 ‘영희가 죽었다’가 진리라고 말할 때처럼, 동일한 판단형식이 적용되는 구체적 내용 자체가 바뀌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판단형식 즉 범주 자체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철수가 죽었다’가 아니라 ‘누구나 죽는다’와 같은 판단으로의 변화이다. 이런 판단의 변화는 판단형식 즉 범주 자체의 변화를 동반한다. 즉 개별긍정 판단에서 일반긍정 판단으로의 변화이다.)

헤겔은 판단형식 즉 범주 자체의 변화 가능성을 반성 개념을 통해 개념화했다. 여기서 우리는 반성 개념에 관한 좀 복잡한 논의를 거쳐나가야 할 것 같다.

2)

철학사에서 반성 개념에 관한 논의는 칸트가 촉발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그는 지나가는 투로 또는 주변적 문제를 다루는 투로 이 반성 개념을 논했다. 이 개념 쌍은 칸트 순수이성 비판 2편 원칙의 분석론 끝에 대상을 현상체와 가상체로 구별하는 3장 끝에 부록으로 다루어졌다. 그는 이 부록에 “라이프니츠 반성 개념의 모호성‘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칸트가 여기서 다룬 반성 개념으로는 네 가지가 있다. 동일성과 차이, 일치와 모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질료와 형식이다. 이 개념은 개념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유사한 좌우나 선후, 명암과 같은 개념과 같이 비교에서는 나오는 비교개념이지만, 위의 네 자기 반성 개념은 어떤 특수한 맥락에서가 아니라 존재자 일반에 사용되는 개념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 개념들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그는 현상계를 다루는 선험적 분석론을 끝내고 물 자체를 다루는 선험적 변증론으로 이행하는 중에, 그러니까 분석론 2부 원칙론, 3장에서 현상체와 가상체를 구별하는 근거를 다루면서 그것에 덧붙여 이 반성 개념을 다루었다. 그래서 전체 논의 핵심은 반성 개념들을 현상체에 적용하느냐, 가상체 즉 물자체에 적용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다.

여기서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동일성과 차이의 개념에만 집중한다면, 칸트는 위와 같이 현상체와 가상체를 구분한다는 관점에서 라이프니츠를 동일률을 비판한다. 라이프니츠는 ‘두 사물의 모든 성질이 동일하다면 동일한 사물이다’라고 말한다. 즉 HaGa.. & HbGb..이면 a=b라는 것이다. 칸트는 그렇다면 물방울이나 나뭇잎은 서로 동일한 성질을 지니니, 하나의 물방울이나 나뭇잎만이 있다는 말인가 하면서 반론을 전개한다.

실제로 라이프니츠의 주장과 달리 다수의 물방울이나 나뭇잎이 존재하는 까닭을 생각해 보면, 동일성과 차이라는 반성 개념을 현상체에 적용하는 것과 가상체에 적용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두 물방울에 관해서, 우리는 그 두 낱[개]의 내적 차이(질과 양)를 죄다 도외시한다 할 수 있더라도, 그 두 낱[개]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보이는 사실은 두 물방울을 수적으로 다른 것으로 간주하기에 족[충분]하다”(순수이성비판, A319, 최재희 역, 박영사, 개정판, 1883, 248쪽)

즉 물방울의 성질은 동일하더라도 장소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공간은 직관 표상에 속하고 성질은 지성의 표상에 속한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는 장소조차도 성질처럼 지성에 속한다고 보면서, 여기에 동일률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지성 표상과 직관 표상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 구분에 따르면 성질 즉 본질의 동일성과 상관없이 직관에서의 차이가 즉 현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3)

그러므로 칸트는 논리적 비교와 선험적 반성을 구분한다.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비교하는 일은 개념들의 객체가 어디에 속하느냐 즉 가상체로서 순수 오성에 속하느냐 혹은 현상체로서 감성에 속하느냐 하는 것을 돌보지 않고 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개념을 우리가 대상에 적용하려 하면, 그런 개념이 어느 인식능력의 대상일 것인가, 순수오성[지성]의 대상일 것인가 혹은 감성의 대상일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선험적 반성이 필요하다.”(순수이성비판, A 325, 최재희 역, 249쪽)

칸트는 여기서 논리적 비교를 선험적 반성과 구분한다. 논리적 비교 이전에 선험적 반성이 필요한데, 그것은 비교의 대상을 직관의 차원(시공간성, 현존)에서 볼 것인지 아니면 지성(성질, 본질)의 차원에서 볼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위의 예를 들자면 물방울의 성질을 비교할 것인지 아니면 그 현존을 비교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선험적 반성이 없다면, 반성 개념에서 모호성이 출현한다. 그것이 라이프니츠의 동일률이 일견 옳은 듯 보이지만, 우리의 현실적 경험과 대립하는 이율 배반에 빠지는 이유라는 것이다.

“이런 반성이 없고 보면, 나는 개념을 자못 불확실하게 사용하는 것이 되고, 비판적 이성이 승인할 수 없는 사이비 종합적 원칙이 발생한다. 이런 원칙은 선험적인 모호성에 기본하고 있다. 즉 순수 오성의 대상을 현상과 뒤섞는 데에 있다.”(순수이성비판, A 325, 최재희 역, 249쪽)

칸트의 논의는 여기서 그치고 말았다. 그는 위의 네 가지 반성 개념을 가지고 논의했지만, 사실 그는 판단형식으로서 범주를 적용하는 문제를 다루었을 뿐이고, 반성 개념 자체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하지 않았다.

칸트는 선험적 반성론에서는 위에 제시된 네 가지 반성 개념을 단순히 ‘비교개념’이라고만 보았다. 이 비교라는 개념은 반성 개념을 설명하지 못한다. 비교되는 것은 서로 동일성과 차이가 규정된다는 것이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반성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성 개념은 비교로부터 설명되지 않으며, 오히려 비교는 반성 개념을 전제로 할 뿐이다.

사실 철학사 전체에서 반성 개념에 대한 분석은 결여되었다. 반성 개념은 로크에 이르러 내적 직관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즉 사물의 성질을 경험하는 것이 외적 직관이라면, 내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내적 직관, 즉 반성이라 한다.

로크에서 반성은 더 고차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다. 즉 내적 관념을 다시 관찰하는 것이다. 합리론 철학에서 반성은 이런 고차적 반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니, 이것이 의식에 대한 의식 즉 자기의식이라는 개념으로 발전된다.

내적 관찰이든 더 고차적 자기의식이든 반성은 직관적이라고 규정되면서, 외적 직관과 동일한 유형으로 환원되었을 뿐, 반성이 지닌 독자적인 의미는 상실되었다.

4)

칸트에 이르면 반성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칸트는 판단력비판에 이르러 구성판단과 반성판단을 구분한다. 구성판단은 추상적 범주를 구체적 경험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식론적 판단에 속한다. 반면 반성판단은 개별적 경험을 일반적인 개념에 귀속시키는 것인데, 이는 미적 판단이 지닌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즉 예를 들어 어떤 다양한 자연의 현상을 자연의 합목적성이라는 통일적 원리에 귀속시킬 때, 이것은 반성판단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신 우연적인 것으로서 인식하는 하나의 결합에 있어서의 이 법칙적 통일은, 객체의 합목적성으로 표상되기 때문에, 가능적 경험적 법칙 아래 있는 사물들에 관해서는 판단력은 단지 반성적이요”(판단력 비판, 이석윤 역, 박영사, 재판, 2001, 27쪽)

여기서 반성판단은 일반에서 개별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개별에서 일반으로 올라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며, 우연성을 포함한다. 이는 지성(오성)의 작업이라기보다는 상상력의 작업이다.

칸트가 이를 반성이라고 한 것은 반성(reflexion: 굴절)이라는 말 자체에 충실한 표현으로 보인다. 여기서 개별에 대해 일반이 근거로 작용하므로, 근거에서 나온 것으로부터 다시 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니, 즉 굴절, 반사라고 하겠다.

칸트가 앞에서 선험적 반성이라고 규정했을 때 그것은 어떤 대상을 어떤 차원에 귀속시키는가 하는 문제였으니, 개별에서 보편으로 올라가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칸트는 반성 개념을 굴절, 반사라는 의미로 사용하면서 반성 개념을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단서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함축된 의미를 더 분석하지는 않았다.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제시한 반성 개념의 단서를 발전시켜 위의 네 가지 개념을 반성 개념으로 규정한 당사자는 곧 헤겔이었다.

5)

헤겔에서 반성이란 곧 어떤 것이 자기에 대립하는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좌가 좌인 이유는 우에 대해 대립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우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아버지인 것은 아버지가 지닌 나이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대립물인 아이에 대해서 아버지이며, 아이가 없다면 그는 아버지도 아닐 것이다. 밝은 것은 어두운 것에 대해서 밝으며, 어두운 것은 밝은 것에 대해서 어둡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것은 차이에 대해 동일하며, 차이가 없다면 동일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무차별한 존재들이 있다. 학교, 수3, 코끼리는 서로 무차별하며 그러기에 그들 사이에 어떤 동일성도 발견하기 어렵다. 그것은 질료나 형식도 마찬가지다. 질료는 그 형식의 질료이며, 형식은 그 질료의 형식이다.

어떤 것이 자신에 대립하는 타자에 대립해 규정된다면, 그 자신의 규정 속에 이미 타자의 규정을 포함한다. 타자는 이미 그 자신의 규정을 포함하고 있으니, 자기 자신의 규정은 자기 자신의 부정인 타자를 다시 부정하면서 규정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의 규정은 독자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반성된 것, 되돌아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반성 규정에는 부정성, 그것도 이중 부정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를 부정하면 타자가 되지만, 자기 속에 이미 타자가 들어 있으니 자기의 부정은 곧 자기의 타자의 부정이며, 그러므로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성 규정 속에는 무한한 순환이 들어 있다.

이와 같은 반성 개념은 일정한 틀을 전제로 한다. 그 틀 속에서 어떤 것과 그 타자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으며, 그런 대립은 배타적인 통일을 형성한다. 즉 X=P or -P이다. 이 배타적 통일 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것들의 관계를 구조주의는 변별적 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반성 개념은 구조주의적 사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알튀세는 마르크스의 철학을 헤겔적 논리로 이해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헤겔적 총체성과 자신의 구조적 총체성 개념을 구분했는데, 헤겔의 반성 개념과 구조주의의 변별적 차이가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기절초풍하지 않았을까?

헤겔 형이상학 산책7- 칸트를 삐딱하게 보기[흐린 창가에서- 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7- 칸트를 삐딱하게 보기

1)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를 언어의 분류틀로 보았으나, 칸트는 판단형식을 규정하는 개념으로 보았다는 것을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변화인데도, 철학사에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언어는 존재와 상응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니,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어의 분류틀로부터 곧바로 형이상학적 존재론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 핵심은 사물의 종적 본질이 주어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칸트의 경우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았다. 판단형식 즉 주어와 술어의 관계에 관한 한, 그것이 존재와 어떻게 상응하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칸트는 이 문제를 범주를 통해 경험을 구성하는 선험철학을 통해 해결했다. 칸트의 선험철학에 대해 이 자리에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헤겔의 형이상학적 혁명인데, 헤겔의 혁명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칸트의 선험철학이 지닌 한계다.

문제는 칸트가 12개의 범주를 마치 하나의 좌표축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즉 직관을 통해 주어지는 표상이 식을 통해 좌표축의 하나의 범주에 위치하게 되면, 어떤 판단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b, a-b, a-b, … 등과 같이 두 개의 직관 표상이 규칙적으로 후속한다면, 이는 인과 범주의 도식이므로, 이는 가언판단을 발생시킨다. 반면 ab, a, ac…과 같이 하나의 직관 표상은 반복하지만, 다른 직관 표상은 발생하기도 하고 발생하지 않기도 한다면, 이 경우 정언판단이 생긴다.

칸트의 선험철학은 후일 구조주의적 사유의 모범이 된다. 구조주의 역시 경험적 자료를 일정한 좌표축 위에 설정하니, 예를 들어 한식은 기본적으로 밥, 국, 반찬의 공존하는 구조 속에 있다. 반면 서양 음식은 시간적 구조 속에서 전채와 주식, 후채로 구분된다. 음식의 좌표축을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때, 만일 음식을 한 상에 차려서 내온다면, 그것은 한식 범주에 속한다. 반면 음식을 시간적 차례에 따라 내오면 그것은 양식 범주에 속한다. 동일한 음식이라도 그것이 속하는 범주가 다르면 규정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과인을 한식에 포함되면 반찬이 되지만 양식에 포함되면 후채가 된다.

2)

칸트와 같이 범주를 좌표축으로 본다면, 어떤 경험은 그 도식을 통해 곧바로 어떤 범주에 귀속된다. 우리는 어떤 것이 실체인지, 또는 인과 관계가 있는지를 경험하는 순간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이 경험은 다양한 경험이 시공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기에 일정한 정도 시간 공간이 경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 공간이 경과 하기까지, 아무런 판단이 일어나지 않다가, 어느 정도 경과 하면 갑자기 어떤 판단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곧 의문이 생겨난다. 약간의 시공간이 경과 하는 동안에는 우리는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는 것일까? 그러면 대체 어느 정도의 시공간이 경과 해야 하나? 심지어 실체 판단이니 인과판단이니 하는 것은 영원히 기다려도 결코 내려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어떤 것이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지속하다가도 그 한계를 넘어서면 중단할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규칙적으로 후속하다가도 갑작스럽게 그런 규칙성이 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 일정한 한계 정말로 어디까지인지를 결정할 수는 없으니, 영원히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의 선험철학은 현상계에 대해서조차도 영원히 판단이 내려지지 않게 될 수도 있으니, 이것이 바로 칸트 선험철학의 한계가 된다. 헤겔이 부딪혔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헤겔은 칸트 인식론이 부딪힌 문제가 단순히 물 자체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현상계에서조차도 인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선험철학을 살리면서도 칸트가 부딪힌 인식 불가능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없을까? 어떻게 보면 인식 즉 어떤 경험에 관한 판단 즉 인식은 순차적으로 내려지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 경험이 제한된 경우는 피상적인 판단이 내려졌다가, 경험이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이루어진 다음에 비로소 좀 더 진실에 가까운 판단이 내려지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런 순차적 인식이 우리가 실제 삶과 역사 속에서 얻어지는 인식이 아닌가?

칸트 인식론의 문제는 물 자체의 인식 불가능성이라기보다 현상계의 인식 불가능성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판단이 경험이 더 풍부해짐에 따라서 다른 판단으로, 더 피상적인 판단에서 더 진실한 판단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만이 판단형식이 사태와 무관한 외적 형식이라면, 이런 판단형식이 아무리 바뀐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인식의 발전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판단형식이 고유한 내용을 그리고 경험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이런 판단형식이 경험을 매개로 하여 더 진실한 판단형식을 발전하는 것도 원리상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런 이행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3)

바로 이 지점에서 헤겔의 논리학이 출현한다. 그러기에 헤겔은 판단형식의 이행에 관해 초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보다 오히려 학문적 인식 속에서 자기를 운동하게 하는 것은 오직 내용의 본성일 뿐이다. 왜냐하면, 내용이 스스로 행하는 반성이야말로 내용의 규정 자체를 비로소 정립하고 산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초판 서문. S. 7-8)

(유감스럽게 국내 논리학 번역본이 초판을 번역한 것이어서 인용하기 힘들다. 앞으로 인용문은 전부 전집 21권(재판본 논리학)으로 하겠다.)

“개념의 내재적 발전을 뜻하는 정신의 운동이야말로 인식의 절대적 방법이며 동시에 내용 자체의 내재적 혼이다.”(초판 서문, S. 8)

“내용은 자체 내에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오로지 그런 형식을 통해서만 영적 생기를 지닌 내용이 된다는 사실이며, 형식 자체는 다만 어떤 내용이 거기서 빛나는 가상으로 전환하여, 그럼으로써 이렇게 빛나는 내용에 외적인 형식은 그러한 [내용이 빛나는] 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2판 서문. S. 17)

“[칸트 철학은] 사유 규정이 … 그 자체에서 무엇인지 즉 사유 규정의 상호 대립과 상호 관계는 고찰의 대상으로 되지 않았다.”(2판, 논리학의 구분, S. 48)

“내용의 자기반성 운동”, 또는 “내용의 내재적 혼”, 형식은 “내용이 거기서 빛나는 가상”이란 표현은 헤겔이 논리학에서 자주 강조하는 말이다. 여기서 내용이란 어떤 판단이 지닌 내용인데, 그것은 판단의 구체적 의미라는 뜻이 아니라 그 판단이 형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의미를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용은 판단형식을 규정하는 범주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범주에서 다른 범주로의 이행을 헤겔은 자기 운동 즉 내재적 혼이 이끌어가는 운동이라고 한 데 있다. 즉 칸트 철학이 간과한 “사유 규정의 상호 대립과 상호 관계”이 중요한 핵심이다. 헤겔은 사유 규정 즉 범주의 이행을 “무한한 형식” 또는 “[자기 운동하는] 개념”(2판 논리학의 구분, S. 48)이라고 하기도 했다.

범주 즉 판단형식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하나의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운동하는 것일까? 아무도 범주가 마치 소나무나 새처럼 또는 인간처럼 생명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헤겔이 내용이 즉 판단형식이 자기 속에 혼이 있어서 스스로 운동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내용의 자기 운동을 이해하는 단서는 반성 개념에 있다. 칸트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12개의 판단형식에 12개의 범주를 대응시켰다. 그런데 철학적 사유 속에 흔히 떠돌고 있는 개념들 가운데에는 판단형식에 대응하지 않는 개념들도 있다. 칸트는 그런 개념으로서 네 가지 개념 쌍을 거론했는데, 곧 동일성과 차이, 일치와 모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질료와 형식이다.

이런 개념 쌍은 철학이 출발한 이래로 철학자들이 즐겨 다루어왔던 개념인데, 사실 그 정체가 모호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처럼 언어적 범주도 아니다. 그것은 주어도 술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칸트의 범주처럼 판단형식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칸트는 판단형식을 12개에서 더 늘려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개념들은 사물로부터 추상화된 개념에 속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추상적 개념이라면 다른 것과 분리된 채 고유하게 의미를 지니지만, 위의 개념 쌍은 항상 상대적으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네 가지 개념 쌍은 이와 유사한 개념들 예를 들어 공간적인 좌우, 시간적인 선후, 질적인 차원에서 명암 등의 개념들에서 보듯이 어떤 비교 가운데서 나오는 것인데, 이런 개념 쌍은 대상 전체에 적용할 수 있기에, 형이상학 영역에서 다루어졌던 개념 쌍이다. 대체 사유 속에 떠돌고 있는 이 개념 쌍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4)

이 개념 쌍을 이해하는 단서도 역시 칸트가 마련했다. 다만 그는 지나가는 투로, 마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흘려서 다루었다. 이 개념 쌍은 칸트 순수이성 비판 2편 원칙의 분석론 끝에 대상을 현상체와 가상체로 구별하는 3장 끝에 부록으로 다루어졌다.

프로이트는 꿈에서 중요한 것은 항상 꿈의 주변에 있으면서 가치 없고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데 있다고 했다. 이점을 발전시켜 나중에 지젝은 사물을 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런 주변에 있는 것을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칸트에서 순수이성비판을 넘어서는 길은 칸트가 부록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다룬 데 있다. 헤겔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삐딱하게 보면서, 바로 이 반성 개념에서 새로운 논리학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던 것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6- 존재자의 형이상학에서 존재의 형이상학으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6- 존재자의 형이상학에서 존재의 형이상학으로

1) 칸트의 혁명

앞에서 칸트가 판단형식과 범주를 연결했다는 것을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개별 언어를 분류하는 틀이었던 범주가 칸트에 이르면 판단형식을 규정하는 고유한 내용으로 규정되었다. 범주가 언어의 틀에서 판단의 틀로 바뀐 것일 뿐인데, 이게 뭐 큰일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일으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유의 역사에 유사한 사건이 또 있다. 데카르트의 좌표이다. 데카르트는 우리 흔히 아는 수학의 XY축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무리수라는 개념이 개입한다. 고대 철학자는 유리수와 무리는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수라고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무리수를 유리수 사이에 끼워 넣어 수의 연속성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통일적인 좌표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콤파스를 이용한 간단한 작도를 통해 무리수를 직선상에 위치시킬 수 있으니, 이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이 좌표축을 통해 기하학과 대수학의 통일할 가능성이 생겨났으며, 라이프니츠 뉴턴의 미적분학이 출현했다. 미적분학이 근대과학을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니, 과히 데카르트의 좌표 혁명이라고 말할 만하다.

칸트가 범주를 판단형식과 관계시킨 것도 이런 사유의 혁명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그가 일으킨 사유의 혁명을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자.

2) 형식 논리학

우선 기존의 논리학은 판단의 형식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판단형식은 주어, 술어가 관계를 맺는다. 이 주어 술어의 관계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기존 논리학에서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개념 논리학뿐만 아니라 최근에 발전된 다양한 기호논리학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양화 논리학은 주어와 술어를 함수로 표현하지만, 그것은 표현의 문제이고, 그 함수가 주어 술어의 관계에 대한 어떤 해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양화 논리학이 주어나 술어의 양을 다룬다 하더라도 이것은 주어 술어의 관계와는 무관하다. 그저 복합판단을 표현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개념 논리학이든 기호논리학이든 논리학의 출발점은 명제 또는 판단이다.

최근 발전된 새로운 기호논리학의 업적이라면, 판단형식의 겉모습을 파헤친 데 있다고 하겠다. 표면적으로 단순한 주어 술어 관계로 표현된 많은 판단은 복합적인 판단으로 분석되었다. 이런 작업은 흔히 분석철학에서 언어의 거짓된 모습을 제거하고 언어의 진정한 모습을 발굴해내는 방법이라고 지칭되었다. 소위 언어분석의 철학이 여기서 시작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특칭판단이나 전칭판단이 그렇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라는 판단은 ‘소크라테스가 죽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죽고, … 등등’으로 표현되어야 할 복합판단을 단순화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심지어 부정판단조차 기본적 판단이 아니라 긍정판단에서 나온 직접추론(대당관계) 즉 부정하는 사유의 결과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지 않는다’는 판단은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판단은 부정된다’라는 추론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논리학은 마치 레고를 쌓는 것처럼 보인다. 그 작업은 판단의 내용 즉 주어 술어 관계와 무관하게 판단 자체를 이리 쌓았다 다시 해체하고 달리 쌓은 것이 된다. 이 작업은 내용과 무관한 내용에 전적으로 외면적인 작업이므로, 순수한 형식적 작업이 된다.

이 형식적 작업을 지배하는 규칙이 있다. 그것은 곧 순수한 비어 있는 공간에서 이리저리 물체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순수한 비어 있는 공간이 곧 사유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형식은 아무리 바꾸어도 여전히 내용은 같은 것이 되어야 하니, 즉 동어반복이 지배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동어반복의 비어 있는 공간을 벗어나면 잘못된 사유가 된다.

그러므로 논리학은 일종의 사유 유희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쌓았다가 부수고 다시 쌓은 아이의 유희와 마찬가지 유희일 뿐이니 이런 논리학이 세상을 파악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진리를 얻는 것은 사유와 무관한 경험일 뿐이다. 여기서 사유의 세계와 경험의 세계는 단적으로 구분된다.

3) 판단형식의 차이

그러나 칸트가 판단형식을 범주로 규정하면서 논리학에 관한 이런 생각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판단형식이란 곧 주어와 술어의 관계이다. 판단형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곧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판단에 여러 가지 형식이 있다는 것은 주어와 술어가 관계하는 여러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판단에서 주어는 대상을 지시하고 술어는 어떤 일반성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면 주어와 술어의 관계 즉 판단의 형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흔히 ‘이것은 빨갛다’에서 술어의 의미인 성질은 주어의 대상에 ‘속한다’고 말하는 데 이 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은 소금이다’라고 할 때, 술어인 ‘소금’은 ‘빨갛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어 대상에 ‘속한’ 것일까? 오히려 여기서는 주어의 대상이 술어인 소금이라는 유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의 판단들은 언어분석의 작업을 통해서 드러나게 될, 겉보기와 다른 판단형식을 감추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이것은 소금이다’라는 판단이 다른 기초 판단으로 분석 가능할까? 그런 분석의 예를 들자면 ‘이것은 흰색이고, 사각형이며, 짠맛이 난다’와 같은 복합판단일 텐데, 이런 분석은 본래 ‘이것은 소금이다’라는 판단과는 다른 종류가 아닐까? 위의 복합판단은 흰색, 사각형, 짠맛이 이것에 속한다는 의미이지만, 아래 판단은 이것이 소금에 속한다는 판단이니, 전혀 방향이 다른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환원주의자는 모든 판단형식은 기초적 판단으로 환원 가능하며, 기초적 판단에서 주어 술어의 관계는 ‘속한다’와 같은 것으로 일정하니, 판단형식을 더 문제 삼을 바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판단형식은 서로 환원될 수 없는 차이를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철학은 기본적인 판단형식 자체에 어떤 종류가 있는지를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판단형식의 차이는 각기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분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4) 범주적 관계

판단에서 주어와 술어를 관계시키는 것이 계사 즉 ‘이다(또는 존재)’라는 말이다. 존재란 곧 관계이다. 판단형식을 통해 존재의 다양한 모습이 제시되는데, 그것이 곧 범주다. (앞에서 우리는 칸트가 12개의 판단형식을 통해 12개의 범주를 끌어내는 것을 보았다.)

판단형식이 곧 주어 술어의 관계이고 그것이 곧 범주라면, 관계 범주(예를 들어 선언판단이나 가언판단)가 그런 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언뜻 보아도 이해된다. 그러나 나머지 범주들에서는 그것이 판단형식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질의 범주는 술어와 관계하고 양의 범주는 주어와 관계한다고 보지 않는가?

그러나 범주를 판단형식으로 본다면, 질이나 양의 범주조차 주어 술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된다. 술어의 부정은 개별 술어가 ‘이 세계에 없다’라는 의미에서 부정이 아니라 개별 술어가 ‘이미 판단에서 제시된 주어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에서 부정이다(나중에 헤겔은 ‘특정적 부정bestimmte Nega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또한, 특칭이란 주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이 세계에 다수 존재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술어에서 제시된 속성 속에 그런 대상이 다수 존재한다’라는 의미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5)

판단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주어와 그 지시 대상, 술어와 그 의미는 서로 상응한다. 그런데 판단의 주어 술어 관계를 이루는 계사는 어떠한가? 그 계사는 단순히 어느 경우에나 ‘이다’이고 이 세계 속에 이런 ‘이다’에 대응하는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존재[Sein]는 존재자[seiendes, dasein]의 전체가 아니다. 존재는 계사 즉 ‘이다, 또는 임’를 말하며, 존재자는 ‘있는 것, 있음’을 말한다. 우리 말로 이다와 있는 것은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게르만 계통 언어에서는 다같이 sein(be) 동사에서 나온다. 존재는 칸트에 이르면 세계를 구성하는 범주가 된다.

모든 판단형식에서 계사는 ‘이다’이더라도 그 구체적 의미는 다르다. 그 구체적 의미는 칸트에서 보듯이 범주를 통해 규정되는데, 이렇게 계사를 범주로 확장해 보더라도 그것이 경험으로부터 직접 주어지거나 추상을 통해 형성된 개념은 아니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세계 속에는 부정성이란 없다. 모든 존재자는 그 나름대로 긍정적 존재이다. 이 세계 속에 특칭적 존재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은 있어도 ‘여러 철학자’라는 존재는 없다. 가언적 관계는 세계에도 유사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계에 존재하는 인과적 관계가 가언적 관계와 다르다는 사실은 철학사에 널리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우연성 역시 세계 속에는 없다.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일회적 사실이고, 이것을 우연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다.

사실 그런 관계가 직접 경험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라면 인식론이라는 골치 아픈 철학이 생겨났을리도 없을 것이다. 결국, 이 관계는 사유 자체에 고유한 관계로 볼 수밖에 없다. 주어 술어를 결합하는 것이 사유라면,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다. 이 사유를 통해 이루어진 관계는 자의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다. 세계의 진정한 모습은 이런 판단의 관계와 무관한 것이 아닐까?

이런 문제가 칸트가 해결하려 했던 것이고, 그 결과가 바로 선험적 연역이다. 여기서 칸트의 선험적 연역에 관해서는 추후 살펴보기로 한다. 이렇게 판단의 관계사 사유라고 보면, 여기서 지금까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논리학의 역할이 바뀌게 된다는 것만은 짚어두고 가자.

앞에서 말했듯이 형식 논리학에서는 판단은 통째로 경험을 통해 주어지며, 주어진 판단을 결합하는 논리적 형식은 즉 추론의 형식은 내용이 없다. 그러니 논리학은 세계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사유의 형식에 머무를 뿐이다.

그러나 다양한 판단형식을 통해 다양한 관계가 제시된다. 판단형식에서 주어 술어 관계는 구체적 내용을 지닌 것이면서도 사유의 관계이다. 판단형식이 이렇게 구체적 내용을 지니고 있으므로 어떻든 이 판단형식은 세계의 모습에 연루된다.

물론 그것은 올바른 것일 수도 있고 잘못된 것일 수도 있으나 이런 옳고 그름이 판단형식이 구체적 내용을 지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형식 논리학에서 사유의 형식에 대해 옳고 그름을 묻지는 않는다. 그것은 규칙에 합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따질 뿐이다. 그러나 판단의 형식에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묻지 않을 수 없으니, 판단형식은 세계에 개입한다. 그러기에 칸트는 일반논리학과 구분하여 자기의 논리학을 선험적 논리학이라 한다.

판단형식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논리학의 영역 자체를 확장한다. 즉 논리학은 추론에서 판단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렇게 확장된 논리학은 구체적 내용을 지니면서 세계에 연루된다. 이렇게 구체적 내용을 지니게 된 논리학, 세계에 연루된 논리학이 헤겔의 논리학의 출발점이 된다.

6) 형이상학의 혁명

지금까지 언어와 세계의 관계는 언어와 그 의미 사이의 관계였다. 이런 관계를 통해서는 세계 속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발견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형이상학은 모든 존재자가 지닌 일반성을 다루었으며, 그런 존재자의 일반성은 언어의 범주를 통해 제시되었다.

그러나 칸트처럼 판단형식을 범주로 보게 된다면, 그리고 이 범주가 자기를 주어 술어의 관계로 전개했다면, 그리고 이 판단형식 즉 계사 즉 ‘존재’가 세계와 연관한다면, 이제 세계 속의 존재자의 전체가 아니라 이 존재가 형이상학적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칸트의 형이상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구분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하이데거 역시 형이상학은 존재자의 일반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의 존재를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존재자의 존재란 존재자의 관계이며, 그런 한 하이데거 역시 칸트가 열어놓은 형이상학의 길을 걸어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혁명가 칸트의 모습을 단순히 그의 선험철학에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의 혁명적 모습은 형이상학 자체의 양상을 바꾸어 놓은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의 형이상학은 곧 존재의 형이상학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5-칸트의 논리학 혁명[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5-칸트의 논리학 혁명

1)

문제의 발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범주로 분류한 것이다. 여기서 주어로 사용될 수 있는 것들 때문에 결국 실체 개념이 제시되었다. 실체는 자기를 통일하는 하나이며, 그럼으로써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개별자를 징검다리로 해서 시간상 지속하는 진정한 실체는 곧 종적 본질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은 좀 불분명한 것 같다. 플라톤의 형상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도 개체들이 지닌 질료적 속성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플라톤을 비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비추어 본다면 본질이란 질료들의 통일적 관계 자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헤겔의 철학적 출발점도 다름 아닌 이런 본질 개념에 있다. 헤겔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개별자가 아닌 이런 본질적 존재이다. 본질적 존재가 곧 자기를 통일하면서 무로 해체되는 것을 막으면서 자기를 지속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속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실체라는 말을 좋아했다면, 헤겔은 이 실체가 자기를 통일하는 힘을 지닌 존재라는 측면에서 아예 주체라고 이름을 붙였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분명하게 본질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료적 속성의 상호적 관계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본질을 다시 힘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속성의 상호적 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 그사이에 양자를 매개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본질이란 이런 매개하는 힘과 다르지 않다.

헤겔은 이 힘을 그의 시대 등장한 미분적 차이의 개념에 기초하여 두 가지 힘의 대립적 관계로 규정했다. 이 두 가지 힘이 곧 표출하는 힘과 수축하는 힘이다. 이를 동양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미분적 차이는 곧 음양의 동정이다. 음양의 동정으로부터 만물이 실체로서 자기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헤겔이 형이상학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근거를 따지다가 범주라는 개념에 이르렀고 이 범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실체라는 개념으로 빠져들었다. 이쯤하고 다시 이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2)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범주론에서 구별된 10개의 범주는 대체로 언어를 분류한 틀로 보인다. 그런데 언어가 의미하는 것이 곧 대상이니, 이런 분류는 대상을 분류한 것으로 보아도 된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특히 5장에서)에서는 범주론에 제시되었던 범주들이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형이상학적 개념이란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주1) 범주론과 형이상학 5장을 비교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괄호 밖이 범주론, 괄호 안이 형이상학이다. 실체(8절), 양(13절), 질(14절), 관계(15절), 장소, 시간, 상태(20절), 행동, 능동(12절), 수동(12절) 형이상학에서는 범주론에 다루어지지 않은 개념 원인. 필연성 등이 다루어지며, 또한 동일성과 차이, 대립과 배치, 앞과 뒤 등 반성 개념도 포함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는 어디까지나 언어(존재자)의 가장 일반적인 류에 속하는데, 이와 같은 범주의 의미는 칸트에 이르러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칸트에서 범주의 의미는 이제 판단형식과 관계된다. 언어와 판단형식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런 차이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우선 칸트가 판단형식과 관련해 범주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알다시피 칸트는 소위 12개의 판단형식을 제시했다. 칸트 자신은 이런 판단형식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으로부터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나 배웠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판단형식은 네 가지뿐이다. 전칭긍정 판단, 전칭부정 판단, 특징긍정 판단, 특칭부정 판단이다.

그런데도 칸트는 대담하게도 네 가지 판단형식을 12개의 판단형식으로 확장하였다. 우선 칸트가 제시하는 관계 판단(정언, 가언, 선언)이나 양상 판단(개연, 실연, 필연)을 보자. 이는 전통 논리학에서는 일종의 복합판단이므로, 독자적인 판단형식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칸트는 이를 기본적인 판단형식으로 받아들였다. 또 분량판단이나 성질판단도 이상하다. 분량판단에서 전통 논리학에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 전칭판단과 단칭판단이 구분되며, 성질판단에서는 전통 논리학에서 배제한 무한판단을 받아들인다.

3)

칸트가 왜 이렇게 판단형식을 부풀렸을까? 이는 형식 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칸트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칸트의 독단이었을까? 그 이유는 칸트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일반논리학은 인식의 모든 내용을 무시한다. 즉 인식과 객체의 모든 관계를 도외시한다. 그래서 한 인식이 딴 인식에 관계할 무렵의 논리적 형식만을 다룬다. 즉 사고 일반의 형식만을 다룬다. 그러나 (선험적 감성론이 증시했듯이) 순수 직관이 있는 동시에 경험적 직관이 있기 때문에, 대상의 사고에도 순수한 사고와 경험적 사고가 구별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인식의 모든 내용을 무시하지 않는, 논리학이 존재하겠다. 왜냐하면 대상의 순수한 사고에 관한 규칙만을 포함하는 일반논리학은 경험적 내용을 소유하는 모든 인식을 배척하겠기에 말이다. 선험적 논리학은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바 기원을 다루기도 하겠으나 이런 기원이 대상에 귀속될 수 없는 한에서 다루겠다.”(순수이성비판, A판, 80)

칸트의 말을 자를 수가 없어서 인용이 길어졌지만, 그 내용은 간단하다. 형식 논리학에서 판단형식은 다만 형식일 뿐, 어떤 내용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선험 논리학에서 판단형식은 일정한 내용을 갖는다.

이 내용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내용이 아니라, 판단형식 자체에 고유하게 들어 있어서 경험을 규정하는 내용이다. 즉 ‘s는 p이다’라는 단칭 판단형식은 경험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든가, ‘백두산이 지리산보다 높다’ 등과 같은 경험적인 명제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판단형식이다. 이 판단형식은 경험적 내용을 갖지 않는다. 또한 ‘S는 p다’라는 사물의 종을 주어로 하는 정언 판단형식은 예를 들어 ‘사람은 죽는다’ 또는 ‘산은 언덕보다 높다’라는 경험적 내용을 갖지 않는 일반적 형식이다.

그러나 ‘s는 p다’라는 단칭 판단형식은 ‘S는 p다’라는 판단형식과는 판단형식 자체에서 어떤 차이를 갖는다. 이 차이가 곧 판단형식 자체에 속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 판단형식 자체에 속한 내용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예에서 주어지는 내용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판단형식이 그 자체로 고유한 내용을 갖는다는 선험 논리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의 복합판단에 속한 관계 판단이나 양상 판단이나, 무한판단과 전칭판단도 하나의 고유한 내용을 지닌 판단형식이다. 칸트는 이런 이유로 판단형식을 12개의 기본적 판단형식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겠다.

4)

이처럼 판단형식에 고유한 의미가 있다는 선험 논리학의 관점은 논리학을 혁명적으로 전환하는 엄청난 충격적인 사건이다. 판단형식이 그 자체 의미를 지닌다면, 형식 논리학의 근본 관점과 충돌되기 때문이다. 이 혁명적 사건이 칸트를 넘어가면서 헤겔 논리학의 출발점이 되었으나, 우리는 여기서 헤겔로 바로 뛰어넘기보다 헤겔이 칸트의 혁명을 받아들이다가 갈라지는 지점까지 더 추적해 보기로 하자.

칸트는 선험논리학의 관점에서 각 판단형식에 고유한 내용을 추구하면서 이를 범주로 규정하면서 범주표를 만들었다. 이 범주표는 A판 106쪽에 실려 있다. 보기 쉽게 아래에 표를 만들어 보았다.

분류

판단형식

범주

분량

단칭판단

단일성

특칭판단

수다성

전칭판단

전체성

성질

긍정판단

실재성

부정판단

부정성

무한판단

제한성

관계

정언판단

실체

가언판단

인과

선언판단

상호작용

양상

개연판단

가능성

실연판단

현존(우연)성

필연판단

필연성

이 범주표를 보면, 누구나 쉽게 범주의 의미가 판단의 형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평범한 말과 같지만,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의 의미를 언어의 종류에서 찾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게 얼마나 혁명적인 주장인지 짐작될 것이다.

판단형식이란 곧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관계가 곧 계사[Sein]이니 거꾸로 말하자면 판단형식의 차이는 곧 계사[존재]의 차이이며, 계사[존재]가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 즉 언어의 차이는 어떤 개별적 존재자 사이의 차이를 다룬다. 그러나 칸트에서 범주의 차이는 계사[존재]의 차이이니, 쉽게 말해서 하나의 경험[주어 경험]과 다른 경험[술어 경험]이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규정하는 차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칸트는 여기서 범주의 의미를 개별자[언어 또는 대상]에 관한 것에서 개별자들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자를 다루었다면 칸트는 이제 존재[계사]를 다룬다는 것이다.

5)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는 언어의 류이면서 동시에 존재자의 류가 된다. 언어가 의미하는 것이 곧 존재자이니, 이런 전환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가 이제 판단형식에서 나온 범주를 경험 세계를 규정하는 일반적 범주로 전환한다면, 여기서는 누구나 금방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유에 속하는 판단형식이 세계의 일반 구조란 말인가? 사유와 세계가 일치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그림이론이 아니라면, 이와 같은 주장을 단순히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판단형식과 이런 동일성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세계를 인간이 전체적으로 경험하여 그 근본구조를 밝혀냈기에 사유의 근본구조가 성립하게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원시인부터는 제쳐놓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우리까지 사유의 근본구조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가 아직 세계의 근본구조를 안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동일성이 가능한 것은 칸트와 같이 사유가 세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판단형식으로부터 칸트의 인식론적 혁명으로 나가는 길은 이처럼 단순하다. 여기서 칸트 자신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러므로 선천적인 개념으로서의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은 그것에 의해서만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에 의거한다. 대저 그럴 적에는 범주는 필연적으로 즉 선천적으로 경험의 대상에 상관한다. 왜냐하면 범주에 의거해서만, 경험의 그 어떠한 대상은 일반적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A판, 126쪽)

판단형식에서 범주를 끌어낸 데서 인식론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 나가는 길은 단순하지만, 혁명적인 길이었다. 판단형식 즉 범주가 이처럼 경험을 규정하게 되면, 판단형식 즉 범주가 이제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된다. 이런 전환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론에서 형이상학으로 간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 언어로부터 존재자로 나갔으나 칸트는 판단형식 즉 계사[존재]로부터 경험 세계로 나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존재자의 일반적 규정을 다루지만, 칸트의 형이상학은 이제 과학으로 전락한다. 즉 보편적 경험의 세계를 규정하는 원리가 되었다.

6)

판단형식이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이것이 경험을 선험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라면, 실제로 경험이 판단형식을 통해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까? 이 과정이 바로 칸트의 선험적 연역의 과정인데, 그 핵심에는 도식이라는 개념이다.

칸트에서 판단형식 즉 범주의 의미 내용은 이 도식에 의해 규정된다. 이 도식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자. 칸트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니 말이다. 범주표처럼 도식표도 있다.

분류

판단형식

범주

도식

분량

단칭판단

단일성

시간계열(수)

특칭판단

수다성

전칭판단

전체성

성질

긍정판단

실재성

시간내용

충실

부정판단

부정성

공허

무한판단

제한성

관계

정언판단

실체

시간순서

지속

가언판단

인과

후속

선언판단

상호작용

공존

양상

개연판단

가능성

시간총괄

혹시

실연판단

현존(우연)

정시

필연판단

필연성

상시

(위의 도식표는 칸트의 작품이 아니라 순수이성비판 번역자 최재희 선생의 작품이다. 번역본 180쪽에 나온다) 주2) 범주와 도식의 관계는 마치 논리적 판단을 컴퓨터 언어로 전환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컴퓨터 언어는 이진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칸트는 이런 범주 즉 판단형식을 경험에 어떻게 적용한 것일까? 그는 마치 이 도식표를 하나의 좌표처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어떤 경험이 다른 경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들어오면, 그것은 어떤 판단형식의 좌표 중 어떤 지점 즉 어떤 범주에 귀속된다. 그런데 경험의 다른 관계가 출현하면, 그것은 또 다른 좌표 다른 범주에 찍히게 된다.

헤겔의 불만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칸트의 선험철학에 경악하면서 따라온 헤겔이 칸트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칸트가 이처럼 도식표를 하나의 좌표처럼 이용했다는 것인데, 헤겔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4-본질에서 힘으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4-본질에서 힘으로

1)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등장하는 실체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실체는 자기를 통일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지속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실체는 개체를 통해서 자기를 재생산하는 가운데 지속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진정한 실체는 개별자가 아니라 종적 본질이다. 종적 본질은 개별자를 징검다리로 해서 자기를 지속한다.

여기서 지속이란 곧 시간적 지속을 의미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는 무규정성이 들어 있고 이는 시간적으로 존재를 해체하는 힘이다. 이 해체하는 힘에 대립해서 시간적으로 자기를 지속해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곧 종적 본질이 지닌 자기를 통일하는 힘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이 시간적 지속이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미 짐작했겠지만, 헤겔의 형이상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그의 본질[Wesen] 개념이 다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고 그런 점에서 플라톤과는 대립한다.

서양철학사에서 플라톤주의의 역사는 길지 않다. 그것은 근대 초에 반짝 빛을 보았다. 서양철학사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지배했다. 스콜라철학이 지배한 중세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에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부활이었다.

그럼, 이제 헤겔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정신현상학 서문 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들여다보자.

“앞에서 표현한 대로 실체는 그 자체에서 주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든 내용은 자기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자기 내로 반성한다. 현존이 지속성을 지니면서 실체가 되면 그것은 자기 동일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정신현상학, 39쪽)

위의 구절에서 헤겔은 현존이 지속성을 지니게 되면 실체가 된다고 한다. 이런 지속성이 가능한 것은 자기 동일성 때문이다. 헤겔의 ‘자기 동일성’은 추상적 자기 동일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헤겔은 자기 동일성이 있으므로 “스스로 해소되려는 것”에 대항하여 자기를 지속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이 자기 동일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자기를 통일하는 힘’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 자기를 통일하는 힘 때문에 헤겔은 실체는 곧 주체라고 한 것이다. 실체가 곧 주체라는 주장은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핵심적인 개념인데, 위의 구절을 보면 헤겔이 얼마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2)

헤겔이 이렇게 자기를 지속하는 존재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현상학에서 지성 장에서 자기의식 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헤겔은 플라톤주의를 비판하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만한 여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제 그 부분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정신현상학에서 그 과정은 상당히 장황하므로, 이 자리에서는 상세하게 그 과정을 소개하기보다, 간단하게 정리해서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지각 장에서 헤겔은 사물에 개별적 우연적으로 속한 성질과 필연적 일반적으로 속한 속성을 구별한다. 이어서 지성 장에서는 그 사물에 고유하게 속하는 본질을 찾으려 한다. 인식의 발전에서 소피스트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비판했던 이유는 바로 소피스트가 단순한 일반적 필연성과 사물의 고유한 본질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 필연성에 불과하다. 고유한 본질, 객관적 본질을 파악하는 독자적인 인식 기관 예를 들어 본질 직관 능력과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고유한 본질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일반적 필연성이 각 사물에 하나뿐이라고 한다면, 쉽게 그것이 곧 고유한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각 사물에는 여러 개의 일반적 필연성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사람에 관해서 우리는 직립 보행이라는 일반성과 의식이라는 일반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 둘 가운데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즉 그 고유한 본질이 될까?

이런 난점에 부딪혀 헤겔은 우선 플라톤적 사유를 소개한다. 헤겔에 따르면 플라톤은여러 가지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이데아(고유한 본질)가 될 수 있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곧 선의 이데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선의 이데아는 세계를 최선의 세계로 만든다. 그것을 위해서 각 사물은 자신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최선을 위해 사물을 통일하는 것이 곧 이데아이다.

그런데 헤겔은 이런 플라톤적 사유에 반대한다. 만일 선의 이데아가 없다면, 여러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어느 것이 이데아인지를 전적으로 우연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물의 고유한 본질이 우연에 맡겨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헤겔은 플라톤적 사유가 부딪힌 난점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등장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사물을 지속적으로 존립하게 하는 것이 곧 그 사물의 고유한 본질이 된다고 보았다. 그런 지속성은 사물의 통일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본질이란 곧 일반적 필연성의 상호 통일성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즉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어떤 개별적인 요소가 아니라 이런 일반적 필연성 사이의 통일적 연관이 그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본질 즉 종적 본질이 된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수용한다. 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본질은 곧 일반적 필연성의 내적 통일이다. 이런 통일성 때문에 그것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된다. 그런데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단순하게 수용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미분적 차이의 개념과 연결한다.

3)

생각해 보자. 단순화를 위해 어떤 사물에 두 가지 서로 대립하는 일반적 필연성이 있다고 하자. 이 두 가지 필연성이 상호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헤겔은 그 당시 등장한 미적분학을 통해서 이 두 가지 필연성의 상호 통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어 함수 Y=X²의 미분 함수는 dy/dx=½X이다. dx와 dy의 분수 관계는 대립적 관계를 의미하며, 이 미분 함수가 전개되면, 그 적분 함수는 X<0인 경우는 하강 곡선이며 X>0인 경우는 상승 곡선이 된다.

헤겔은 미분적 차이 개념을 일반화하여, 이를 ‘무제약적 일반자’라는 개념으로 수용한다. 여기서 무제약적 일반자(미분적 차이)가 자기를 전개하여 사물(적분 함수)에 이르는 과정을 헤겔은 이중적인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무제약적 일반자가가 자기를 펼치는 과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결과인 사물이 자기를 수축하여 무제약적 일반자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두 과정은 매 순간 동시에 상호적으로 일어나면서 무제약자가 사물을 산출하는 운동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힘으로 불리는 것이다. 이 운동의 한 가지 계기 즉 자립적인 물질들이 펼쳐져서 제각기 존재하게 되는 운동은 힘의 표출이며 반대의 계기 즉 이 자립적인 계기들이 지양되어 사라지게 하는 운동은 표출에서 자기 내로 수축하는 힘이거나 또는 본래적인 힘이다.”(정신현상학, 85쪽)

두 힘은 서로 떨어져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두 힘은 상호작용하면서 얽혀있다. 헤겔은 이를 힘의 유희라고 설명한다. 두 힘의 얽힘에 관한 다음과 같은 헤겔의 표현을 보라.

“예를 들어 촉발하는 것이 일반적 매체로 정립되고 그에 반해서 촉발된 것은 수축된[ 힘으로 정립되었지만, 그러나 역시 전자[촉발하는 것]가 일반적 매체 자체가 되는 것은 오직 그에 상대되는 것이 수축된 힘이기에 가능했다. 또는 이 후자[촉발된 것]가 오히려 전자[촉발하는 것]에 대해 촉발하는 것이며 전자를 비로서 매체로 만드는 것이다. 전자[촉발하는 것, 매체]은 다만 이런 타자[수축된 힘]에 의해서만 [촉발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규정을 가지며, 타자[촉발된 것]로부터 촉발하는 것이 되도록 촉발되는 한에 있어서만 촉발하는 것일 뿐이다.”(정신현상학, 86쪽)

무제약적 일반자는 어떤 존재나 원소[Element]가 아니다. 그것은 펼쳐지는 힘과 수축하는 힘의 통일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태극과 같다고 하겠다. 헤겔은 이 통일적 힘이야말로 사물의 진정한 본질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힘이 사물에 내재하면서 사물을 내적으로 통일하면서 사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힘이 곧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실체가 된다.

결국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하면서 이를 근대의 미분적 차이라는 개념으로 전환한 것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3-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3-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1

1)

전환점은 칸트였다. 사람들은 칸트의 선험철학만 안다. 하지만 정작 칸트가 했던 중요 작업은 망각한다. 그 작업은 바로 범주를 판단 형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칸트의 위대한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범주를 처음으로 주목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는 사물이 아니라 언어를 분류하는 최고의 유다. 그는 언어를 주어에 해당하는 것과 술어에 해당하는 것들을 구분한 최초의 언어학자다. 그런데 일파만파라 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개념을 언급하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어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정한 개념이다. 그 개념의 핵심은 “주어 속에 있지도 않고 동시에 주어의 술어가 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어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라고 하였다. 여기서 실체[Substance]는 주어[Subject]와 같은 의미가 된다. 그런데 제1 실체인 개체는 이 규정에 적합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하나의 주어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것으로 규정한 종적 본성, 즉 제2 실체는 그 자신이 술어가 될 수 있으므로, 이 규정을 위배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잘 알지 못하니 범주론 다음에 형이상학을 쓴 것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의식에서 따져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주요 문제 중의 하나는 이 범주론에서 실체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형이상학에서 주요 문제의식은 왜 술어가 될 수 있는 종적 본성(예를 들어 사람이나 개 등)이 실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라는 개념을 주어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개념과 달리 규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대부분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종적 본성과 단순한 보편자(또는 이데아)를 구분해서 전자는 실체로 반면 후자는 실체가 아니라고 했다는 점에,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알고 싶은 것은 형이상학에서 실체를 어떻게 규정했는가인데,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알고 싶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김덕천의 논문에서 필자가 기대하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논문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 나타난 실체 개념의 개별성 문제― 형이상학Ζ를 중심으로 ―>(카톨릭 철학, 7호)이다. 여기서 김덕천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서는 종적 본성이 오히려 더 근원적인 실체라고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범주론의 제1 실체와 대비를 이루는 형이상학의 제1 실체로서, 존재의 구조학‧원인론‧발생학에 있어서의, 보편학과 지식에 있어서의 근본개념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플라톤의 이데아들과는 달리 개별 실체 속에 내재한, 개별 실체와 다름이 없는, 개별 실체의 자체적(kath’hauto) 원인이 되는 주체의 구성원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가톨릭 철학, 7호, 428쪽)

즉 개별 실체의 통일성을 유지해 주는 내적인 구성원리가 곧 종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조대호 교수가 번역한 『형이상학』(나남, 2012)에 관련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떤 것으로 이루어진 합성체는 그 전부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더미와 같은 상태가 아니라 음절과 같은 상태로 있다. … 결과적으로 합성체에 대해서 살이나 음절에 대해 말한 것과 동일한 논변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곧 본성을 말한다] 요소가 아닌 어떤 것이며 바로 그것이 이것을 살이게 하고 이것을 음절이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각자의 실체이다.”(345쪽, 1041b 11-29)

조대호 교수는 주에서 이 구절에서 말한 그것을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만들어주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라고 주장한다.(『형이상학』, 346쪽 주 250) 이어서 주 251에서 그는 “있음의 첫째 원인은 특정한 질료가 종적인 규정성을 가진 어떤 개별자로 있게 만들어주는 원인을 가리킨다”(『형이상학』, 346쪽)라고 말한다. 여기서 종적 규정성을 가진 개별자라만 아리스토텔레스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원인을 말할 것이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관련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본성도 있는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즉시 하나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하나이게 만드는 원인이나 있는 것의 한 부류를 하나이게 만드는 원인이 달리 어디에도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각각은 직접적으로 있는 것이자 하나인 것일 뿐, 있는 것이나 하나를 유로 삼아 그것 안에 있지도 않고 개별적인 것들과 떨어져서 분리 가능한 것으로서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형이상학』, 367쪽, 1045b5-9)

이 두 구절에서 김덕천이 지적한 것처럼 소위 종적 본성은 개체를 하나로, 통일하는 원리로 규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종적 본성이 실체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274쪽 1029a5-10에서 실체가 기체[基體]에 대해 술어가 되지 않지만 다른 것들은 그것에 대해 술어가 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 핵심 이유는 그렇게 보면 “질료가 실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형이상학에서 제시한다. 276쪽, 1029a30을 보면, 이제 “‘분리 가능성’과 ‘이것’은 주로 실체에 속한다”고 말한다. 즉 개체를 다른 개체로부터 분리하여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곧 실체라는 것이다.

어떤 개체가 다른 것과 분리하여 개체로 존재하려면, 개체 자신은 내적인 통일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분리 가능성이라는 규정은 곧 통일성, 하나라는 규정과 상통하니, 이것을 통해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체라는 규정 자체를 바꾸었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3)

종적 본성을 이처럼 개체를 통일시키는 구성원리로 이해하게 된다면, 개체가 ‘분리 가능하며’ ‘이것’이 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통일적 구성원리는 개체를 하나로 즉 단일한 개체로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체의 규정은 오래전부터 타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규정이 들어 있다. 그것은 개체이면서 동시에 자립적으로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범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주어가 되는 것으로 규정한 것이 아닐까? 자립적으로 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술어가 아니라 주어가 될 수 있다. 종적 본성은 개체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면서 동시에 있는 것, 자립적으로 있는 것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위에서 인용된 형이상학의 구절 가운데 두 번째 구절 즉 1045b5-9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임과 있음을 등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밑줄 그은 부분) 하나란 곧 내적인 통일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될까?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보자. 어떤 것이 내적으로 분열된다면, 그것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분열은 다시 분열을 낳고 그 끝에 가서는 무규정적인 어떤 것 즉 무로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어떤 것을 내적으로 통일한다면, 그것은 소멸에 대립하면서 자기를 지속하는 것이 될 수 있고 이런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거꾸로 말해 어떤 것이 존재하려면 내적으로 통일하는 원리가 계속 힘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임, 내적 통일성과 존재 또는 지속성(자기 동일성)은 서로 공속하는 개념이니, 종적 본성이 개체를 내적으로 통일하는 구성원리가 된다면, 그 종적 본성은 개체를 지속적으로 또는 자기 동일적으로 존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적 본성은 개체를 실체로 만들어주는 원리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종적 본성이 개체를 실체로 만드는 원리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그것은 종적 본성 자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범주론에서 종적 본성이 독자적 실체 즉 제2 실체라는 주장과 어긋나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와 달리 형이상학에서 제2 실체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만 것이 아닐까? 사실 개체로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이 소나 이 말이 실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되지만 사람 자체, 소 일반, 말의 본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아무도 그런 존재를 본 적은 없다.

조대호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이라는 논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가 실체가 되지 못한다고 단정했다고 한다. 물론 조대호 교수는 보편자와 종적 본성을 구별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정한 것은 단지 보편자가 실체가 아니라는 주장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자가 실체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 거론한 것 모두가 종적 본성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종적 본성 역시 보편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종적 본성이 개체를 실체로 만드는 원리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종적 본성 자체가 독자적인 실체라고 주장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자가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를 들어보자.

“왜냐하면, 보편적으로 일컬어지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실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각자의 실체는 각 대상에 고유하고 다른 것에 속하지 않지만, 보편자는 공통적이기 때문인데, 그 본성상 여럿에 속하는 것을 일컬어 보편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것의 실체이겠는가? 모든 것의 실체이거나 아무것의 실체도 아닐 터인데 모든 것의 실체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것 하나의 실체라면 다른 것들도 그것과 똑같을 것인데 그 까닭은 그것들의 실체가 하나이고 본성도 하나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체에 대해 술어가 되지 않은 것이 실체라고 불리지만, 보편자는 항상 어떤 기체에 대한 술어가 된다.”(『형이상학』, 328쪽, 1038b8-11)

조대호 교수의 주장과 달리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종적 본성에 실체로서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까지 이야기에서 이 지점에 이르러 대반전이 일어난다.

4)

실체는 통일성의 원리이고 개체를 존재하게 한다고 했을 때, 이때 존재는 단순한 현존은 아니다. 그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적 변화는 존재를 무로 전락시킨다. 실체는 통일성의 원리로 분열을 막고 개체를 지속하게 만든다. 여기서 지속성은 곧 시간적인 자기 동일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엄밀하게 개체 자체가 지속하지는 못한다. 개체는 종적 본성과 더불어 많은 우연적 성질을 담지하고 있다. 이 우연성은 시시각각 변화하다. 개체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때 여기서 지속하는 것은 다름 아닌 종적 본성이다. 실체는 우연적 개체가 아니라 개체의 종적 본성 자체이다.

물체를 예로 들어보자. 물체는 고정불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소멸 중에 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 속에서 물체의 고유한 구조는 계속 유지되니, 시간적 지속하는 것은 그 물체의 본성이다.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속적으로 존재할 때 사실 우연적 속성을 담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체성이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종적 본성이 단순히 개체로서 아리스토텔레스 당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어서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지속하는 것이 바로 종적 본성이 된다.

본성 또는 종적 본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의미하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종적 본성은 개체를 통해서 존재할 뿐이다. 개체란 본성 또는 종적 본성이 존재하는 시간적 현존일 뿐이다. 개체를 징검다리로 해서 종적 본성은 실제로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우연적 성질을 담은 개체이지만, 지속하는 것은 개체의 종적 본성이고, 그것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본성과 보편자를 구분하는 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보편자는 사물의 필연적 속성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없다. 그러나 본성이나 종적 본성은(양자의 차이는 시간성의 차이일 뿐인데) 통일의 원리가 되면서 자기를 지속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거꾸로 수많은 보편자 가운데 이처럼 어떤 것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지닌 것만이 비로소 본성 또는 종적 본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지속적 존재, 자기 동일성으로서 실체라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속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에서 이런 실체 개념의 전거를 발견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위의 인용 구절에서 간접적으로 그런 실체 개념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시 위의 인용 구절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보자.

“그것이 어느 것 하나의 실체라면 다른 것들도 그것과 똑같을 것인데 그 까닭은 그것들의 실체가 하나이고 본성도 하나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로서는 해석하기 난감한 부분인데, 그 의미를 이렇게 새겨볼 수 있지 않을까? 보편자는 a, b, c.. 등의 개체에 공통적으로 속한다. 이 보편자가 실체라면, a, b, c 등을 통해 지속한다. a, b, c 등은 우연적 차이만 지닐 뿐 서로 동일한 것이 된다. 그런데 단순히 보편자인 경우, 그것은 a, b, c 에 공통적으로 속하지만, 이것들은 서로 다른 물체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물체에 속하는 보편자가 실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흰색은 백합꽃이나 설탕, 그리고 눈에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서로 다른 물체이니, 흰색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 제2 실체였던 종적 본성을 형이상학에서 진정한 실체로 격상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대호 교수 자신도 비록 그 자신은 긍정하지 않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 가운데 “범주론에서 둘째 실체로 일컬어졌던 종은 오히려 형이상학에 이르러 첫째 실체의 지위를 얻는다고 주장”(조대호,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 443쪽)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5)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정리해 보자. 실체는 곧 통일성의 원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자신을 존재하게 한다. 이때 존재는 단순한 현존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것은 지속성을 지니므로 실체가 된다. 지속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은 실체가 되지 못한다.

물체의 수준에서 그 본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여기서 실체는 약화된 실체이다. 그러나 생물체에 이르면 세대를 넘어 자기를 지속하니, 더 완전한 실체가 된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2-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2-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1

1)

앞에서 헤겔 논리학이 실제 다루는 내용은 형이상학과 동일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헤겔은 처음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붙였다가는 나중에 가서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빼고, 논리학이라는 이름만 내세웠다고 했다.

그런데 보통은 논리학을 ‘logic’이라 한다. 헤겔은 ‘Wissenschaft der logic’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였다. 번역하기가 좀 곤란하다. 직역하자면 ‘논리학의 학문’이라고 해야 하는데, ‘학’이라는 말이 중첩되어 그저 ‘논리학’이라고 번역한다. 오해를 피하려 ‘논리의[에 관한] 학문’이라고 번역하기도 한지만, 불필요한 현학적 태도일 것이다. 앞으로 그저 ‘논리학’으로 번역하자. 문제는 왜 헤겔이 형이상학적 내용에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이다.

여기에 여러 문제가 개입한다. 특히 논리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이 문제 된다. 헤겔은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약 25년 전쯤에서부터 우리 속에서 철학적 사고의 방식이 겪었던 전면적인 변화나 이 시기 정신이 자의식이 자신에 관한 도달하게 된 좀 더 고차적인 입장은 아직 논리학의 형태에 거의 이렇다 할 영향을 입히지 못한 상태에 있다.”(초판 서문, 5쪽) [주1]

[주1] 앞으로 인용문은 헤겔의 논리학의 경우에는 장 절과 페이지만 표시하겠다. 원전은 G. W. F. Hegel, Wissenschaft der Logik(1832), Th. 1, Bd, 1, GW Bd. 21, Hrsg. Friedrich Hogemann & Walter Jaeschke, Felix Meiner, 1985이다. 이 책은 재판본이다. 앞으로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초판본은 1812년 발간되었고 1826년 헤겔은 초판본이 거의 소진되었다는 연락을 받고(무려 15년 걸쳐 겨우 1000부 정도가 팔렸다니!) 1829년에 들어가서야 계약이 이루어져서 재판을 위해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개정 분량이 상당히 많아서 개정 작업은 1831년에야 비로소 끝났다. 그것도 1부 1권 존재론에 그쳤다. 1부 1권 개정판은 1832년 발간되었다. 안타깝게도 헤겔은 1부 2권 본질론, 2부 개념론은 개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해 여름 헤겔은 콜레라를 피하려 시골 별장에 가서 작업했는데 개강 때문에 베를린으로 돌아오자 콜레라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임석진 교수가 번역한 판본은 초판본이다. 내가 대학원 시절 읽었던 원전은 라슨 판 재판본이다. 임석진 교수의 번역판을 받았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왜 임석진 교수가 재판본이 아닌 초판본을 번역했는지 지금도 의아스럽다. 재판본을 번역했으면, 읽고 인용하는 데 번역본을 참고로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재판본이 상당한 개정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 골격에서 초판본과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번역본을 읽었다고 해서 헤겔 논리학을 오해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

 

이 글을 쓴 게 1812년이니 그 25년 전은 1787이 된다. 이 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2판에 발간되었다. 이 선험철학은 “정신이 자의식이 도달한 고차적 입장”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헤겔이 칸트의 인식론적 혁명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헤겔은 칸트의 인식론적 혁명을 단순히 인식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리학조차도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아직 이런 변화가 실현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2)

헤겔이 논리학의 변화를 기대할 때, 이 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내려오는 일반 논리학 즉 형식논리학을 말할 것이다. 헤겔은 곧이어 이 형식논리학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헤겔은 형식논리학을 “시든 잎사귀”에 비유한다.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솟아오르기 시작한 새로운 정신[이 시대 자유의 정신을 말할 것이다]이 논리학 속에서는 아직 그 흔적을 새기지 못했다. 그러나 정신의 실체적 형식이 변화된 마당에 전시대의 교양의 형식을 보존하려 한다는 것은 전혀 헛된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형식은 이미 뿌리로부터 새로이 움트기 시작한 새로운 싹에 의해서 밀려나 버린 시든 잎사귀와 같다고 하겠다.”(초판 서문, 6쪽)

헤겔이 일반 논리학을 이처럼 조롱하는 이유는 그 논리학이 형식논리학이기 때문이다. 논리학이 형식적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과 같아서, 소위 띄어쓰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일반 논리학’은 띄어 쓰지만 ‘형식논리학’은 붙여 쓰니 말이다.

논리학이 형식적이라는 말은 논리학은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세계로부터 경험을 통해 주어진다. 논리학적 형식은 그 자체로는 내용이 전혀 없는 순수한 것이다. 형식논리학은 하나의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 변형하는데, 표현되는 형식은 바뀌더라도, 내용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각각의 형식은 비록 다르게 보이지만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유클리드의 기하학적 순수 공간에서 도형을 이리저리 이동하더라도 그 도형이 전혀 변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형식논리학을 대신하여 헤겔이 제시하는 새로운 논리학은 “사유를 고찰하는 데서 내용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내용은 자체 내에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오로지 그런 형식을 통해서만 영적 생기를 지닌 내용이 된다.” 거꾸로 “형식 자체는 다만 어떤 내용이 그 속에서 비추어지는 가상[Schein eines Inhalts]으로 다시 말하자면 이 가상[Schein: 내용]에 외적인 것[형식]이 가상[Schein]으로 전환된다.”(2판 서문, 17쪽) [주2]

[주2] 위의 구절 가운데 뒷 문장에서 헤겔은 가상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 문장은 함축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이해하기가 까다롭다. 여기서 ‘가상’이라는 말은 마치 거울처럼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에 대해 마주하고 있는 것 즉 본질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용 속에서 형식이 스스로 떠오르며, 형식은 자기를 내용 속에서 드러낸다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관계가 형식논리학에 대립하는 새로운 논리학의 기본 개념이 된다.

이렇게 “논리적 고찰 속으로 내용을 끌어들인다면”, 헤겔 말대로 논리학은 세계와 독립적인 사유의 법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세계가 되며 거꾸로 “논리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개념, 즉 사태가 된다.”(2판 서문, 17쪽) 그러니 헤겔 말대로 논리학은 세계의 가장 내적인 본질을 밝히는 형이상학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3)

하지만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어떻게 내용에서 형식이 탄생하고, 형식이 내용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전자는 마치 물활론처럼 들린다. 후자는 신의 창조론을 의미한다. 헤겔을 물활론자나 창조론자로 이해하면 쉽겠지만, 그렇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인간인 헤겔이 어떻게 신의 창조과정을 안다는 말인가? 또 물활론이라면 전적으로 자발성 또는 우연성에 맡겨지는 것인데, 자발성을 학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더구나 헤겔은 이런 새로운 논리학이 칸트의 선험철학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당혹하게 된다. 알다시피 칸트는 일반 논리학에서 나온 범주를 경험을 구성하는 범주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칸트 선험철학의 전제는 일반 논리학이다. 칸트는 한 번도 논리학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헤겔은 칸트의 선험철학적 정신으로부터 새로운 논리학 즉 내용을 지닌 논리학으로 전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데도,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으니, 정말로 당황스럽다. 칸트의 철학으로 칸트의 전제를 비판하는 헤겔의 태도는 우리를 아찔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헤겔이 이해하는 칸트의 비밀을 이해해야 한다. 칸트가 말하지 않은 것을 헤겔은 칸트의 뜻으로 알았으니 말이다. 칸트 비밀의 핵심에 범주라는 개념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범주라는 말을 이해하려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나는 범주라는 말 자체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아서, 고대철학을 하는 분을 만나기만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론이 무엇을 다루었느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 범주론을 읽으면 되는데, 유감스럽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직접 읽을 자신이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위키피디아를 참조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 범주론’ 항목은 내가 희망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의 물음은 이런 것이다. 사물이나 생물은 유와 종으로 분류된다. 그 최고의 류를 범주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범주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분류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내가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는 10가지다. 범주를 중세에 라틴어로 ‘praedicamenta’라고 부른다고 한다. [주3]

[주3] 어원적으로 범주는 술어라는 말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주어가 될 수 있는 것 곧 실체이다. 중세 번역어에 오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은 전 프래디카멘타와 프래디카멘타로 나누어지는 데, 전자에서는 동의어와 파생어, 주어[subject]에 대해서[of] 말해지는 것과 주어 안에[in] 있는 것의 구분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에 중요한 것은 후자이다. 후자는 다시 네 가지로 구분된다. 주어에 대해 말해지지만 주어 안에 있지는 않은 것과 주어에 대해 말해지지는 않지만 주어 안에 있는 것, 주어에 대해 말할 수도 있고 주어 안에 있기도 한 것, 마지막으로 주어에 대해 말할 수도 없고 주어 안에 있지도 않은 것이다. 이 네 번째가 곧 실체라는 범주가 된다.

이상에서 언급된 것만 보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이 사물을 분류하는 범주를 다룬 것은 아니고 다름 아닌 언어를 분류하는 범주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사실은 열 가지 범주를 다루는 프래디카멘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열 가지 범주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상태, 행동, 능동, 수동이다. 이 열 가지 범주는 절대로 사물을 분류하는 최고 유로서 범주가 될 수가 없다. 이 범주는 우리의 언어의 문법적 범주이다. 판단은 주어와 술어로 나누어진다. 주어가 되는 것이 곧 실체이며, 양은 주어의 외연을 말한다. 질과 관계(형용사) 상태와 행동(동사)은 모두 술어를 문법적으로 분류한 것이다. 시간과 장소, 능동과 수동은 문법적으로 양상을 표현하는 범주가 된다.

4)

이처럼 범주가 문법적 범주라는 사실은 더 나가서 주어가 될 수 있는 실체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 실체와 제이 실체로 나누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제일 실체는 개체다. 여기서 실체는 “주어에 대해 말해질 수 없으며, 주어 안에 있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하나를 실체를 거론한다. 그게 제이 실체라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인간이나 개와 같은 종적 본질이 된다. 이것은 주어에 대해 서술될 수 있는 술어의 일종이다. 그런데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실체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많은 문장에서 종적 본질이 주어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실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은 흔히 사용하는 문장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문장도 자주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처럼 종적 본질을 단순한 보편적 술어와 구분해서 실체에 포함했는데,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용주의적, 경험주의적 철학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원칙에 어긋나도 사실이 그러하면 받아들인다는 정신이다.

그러나 철학자로서는 이런 경험적 실용적 정신에 머무를 수가 없다. 왜 다른 보편적 술어와 달리 종적 본질을 드러내는 술어는 주어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헤겔 형이상학 산책 1-변명[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1-변명1

1)

내 삶에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헤겔 논리학을 이해하는 일이다. 헤겔의 논리학은 헤겔 연구자가 흔히 신의 언어라고 말하는 사변적 언어로 쓰였으니, 그 신을 믿는 신도들의 마음에 이심전심으로 전해져 왔다. 그 비밀의 영역은 일반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내가 철학이라는 학문에 뜻을 두고 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공부하고자 했던 것은 후설 현상학이었다. 현상학에 뜻을 두었던 것은 청년 시절 내 영혼을 사로잡았던 철학이 바로 실존주의이었고 실존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방법론인 현상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했던 시대가 80년대 초이었으니 누구도 시대의 요구에 등을 돌릴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이때 후배 하나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헤겔의 변증법만 제대로 안다면 세상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혁명가 레닌이 철학 노트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데, 아직 그 원전을 찾아보지 못했다. 그 말에 홀려서 헤겔의 논리학을 대하게 되었으나, 솔직히 말해 그건 범인으로선 접근이 불허된 신의 영역이었다.

그로부터 무려 50년이 지나갔다. 아직도 나는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50년 간 헤겔을 연구했음에도 풍월은 커녕 말도 아직 더듬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세상을 들어 올리고 싶다는 야망은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언젠가는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을 이해해, 일반인들도 이 비밀의 영역에 잠시 들러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욕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나이가 많다.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한다. 무엇보다도 눈과 귀와 체력이 무너지고 있어, 얼마 가지 않으면, 더는 읽고 쓰는 것조차 어렵지 않을까 우려한다. 나는 그간 하던 많은 일을 이미 내려놓았다.

남은 힘을 기울여, 나의 아마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작업을 시작하고자 한다. 원래 이 일을 계획하기로는 몇 년 전이다. 같은 헤겔 학도였던 김우철 선생과 헤겔 논리학 본질론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고, 함께 책을 읽는 일이 끝나면, 이 일을 시작하고자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은 코로나로 희생되고 말았으니, 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선생의 죽음과 더불어 그 의욕도 사라졌다. 그간 매달렸던 헤겔 미학에 대한 해설이 끝나자, 논리학의 해설에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되살아났으니, 이게 내가 지닌 운명인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50년간 이책 저책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결과 헤겔의 논리학을 나름대로 약간은 이해하는 바가 생겼으니, 이거라도 남겨 놓으면 후대에 청포를 입고 오는 사람이 있어 딛고 설 계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여 이제 헤겔의 논리학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 없이 늘어놓으려 한다. 먼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변명부터 올린다.

2)

실제 내용은 헤겔 논리학에 관한 설명이지만, 거창하게도 형이상학 산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헤겔이 대학에 처음 강사가 되었던 게 1801년이었다. 그해 겨울 학기에 헤겔이 개설한 강좌의 제목이 ‘논리학과 형이상학’이었다. 오늘날 생각하면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무관할 것처럼 보인다. 형이상학은 세계의 근원적 본질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논리학은 인간의 사유의 일반 원리를 다룬다.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사유는 서로 대립하는 데 왜 논리학이 형이상학과 연관되는 것일까?

논리적으로 사유하기만 한다면, 세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일까? 논리에 맞지 않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런데 논리학을 공부해 본 사람은 안다. 나는 철학과 입학해서 처음 논리학을 배웠는데, 거의 기계적인 작업이었다. 차라리 나중에 배운 기호 논리학의 경우 수학적 추론의 흥미라고 끌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2000년간 내려왔다는 논리학은 정말 따분한 작업이었다.

논리학은 타당한 사유와 부당한 사유를 구분하고 자주 사람들이 빠져드는 부당한 오류 추리를 막을 수 있다는 실용적 목표가 있기는 했으나, 그런 실용적 목적이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왜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법을 모르는 사람이 말을 더 조리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논리학을 모르더라도 더 논리정연하게 사유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런 사람이 세계의 본래 모습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철학 하는 사람의 글을 보면 문장이 비논리적인 경우가 더 많다. 철학을 하다 보면 자연히 비논리적 문장을 쓰게 되는 것은 철학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철학처럼 비논리적인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위대한 철학자 헤겔이나 하이데거의 문장을 읽어보라. 하다못해 논리 철학의 대가인 콰인의 논문을 읽어보아도 논리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를 내보이면서 이게 둘로 보이는 사람이 철학자라고 자주 우스개처럼 말해진다.

그런데 헤겔은 논리학과 형이상학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보았던 게 틀림없다. 그러기에 강의 제목을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도대체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3)

헤겔은 다음 학기인 1802년 여름학기 강의 예고에서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의 저서를 발간하겠다고 했다.  그는 1804/5 강의 수고 ‘논리학,  형ㅇ이상학, 자연철학’을 남긴다. 아마도 정서한 것을 보니, 이게 발간 원고로 보인다. 어떻든 발간되지는 않았다.  이 수고는 헤겔 서고판, 전집7권에 실려 있다. 그 제목만 보면, 훗날의 논리학과 자연철학의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이 누락되어 아직은 사상이 형성 중이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1805년에 헤겔은 그 대신 철학 체계 전체를 건드리는 저서를 발간할 계획을 세웠고 그 서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 서문이 아주 길어졌고 철학 체계에 관한 저서는 포기되면서 그것이 1807년 발간된 정신현상학이 되었다.

1807년 헤겔은 예나를 떠나 밤베르크로 이주해 밤베르크 신문을 편집했다. 1807년 밤베르크 신문에 실린 정신현상학 광고를 보면, 헤겔은 곧이어 논리학과 자연철학, 정신철학을 포괄하는 철학 체계를 발간하겠다고 했으나, 이 계획은 계속 미루어진다.

헤겔은 1808년 11월 밤베르크 신문사를 떠나 뉘른베르크 김나지움 교사가 되었다. 이 시기 헤겔은 니트함머의 권고를 받아서 김나지움에서 강의를 위한 논리학 교재를 계획했다. 헤겔은 니트함머의 권고에 대답하면서 시간을 주면 먼저 자기의 논리학을 완성한 다음에 교재를 만들겠다고 했다.

김나지움에서 철학 강의를 위해 교재(수고)가 작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부분이 논리학에 관한 것이다. 다행히 이 논리학은 국내 위성복 교수가 번역해 ‘김나지움 논리학 입문’(용의 숲, 2008)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했다. 그 제목만 보면 나중에 등장하는 논리학과 기본적 구조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으니(객관 논리 존재론과 본질론, 주관 논리 개념론), 이 시기에 이미 어느 정도 헤겔의 논리학의 골격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그가 논리학을 위한 작업을 그치지 않았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1811년 니트함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 해(1812년) 부활절까지는 논리학이 발간될 것이라는 희망을 적어놓았다. 실제 1812년 부활절에 발간된 것은 겨우 논리학 1부 1권 존재론에 그쳤다. 존재론과 함께 보낸 본질론은 출판사 사정으로 그해 년 말에 가서야 발간되었으나, 개념론은 헤겔이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이전하는 1816년에 가야 발간되었다. 5년이나 뒤늦게냐 2부가 발간되었다는 사실로 보면, 헤겔이 좀 서두른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1811년 헤겔은 결혼했고, 그의 혼외 자식인 루드비히를 부양하기 위해 프로만에게 양육비를 보냈어애 했고, 김나지움을 벗어나 대학으로 나가고 싶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저서였고, 그 저서는 당시 학계의 분위기 상 논리학이나 형이상학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가 쓸데 없는 고민을 한 것 같다.

4)

흥미로운 것은 헤겔이 1812년 초판 논리학을 발간했을 때, 이제 더는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논리학이 더는 형이상학이 아니라는 뜻인가? 1812-16년 사이 발간된 그의 논리학 초판 서문이나 서론을 읽어보면, 기존의 형이상학이 사라졌다는 한탄은 있지만 그렇다고 논리학이 형이상학이라는 주장은 명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논리학은 이제 학문과 관련해서 제시된다. 즉 논리학은 다른 구체적 학문 즉 자연철학이나 정신철학과 구별되는 일반적인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형이상학 역시 존재로서 존재 즉 일반적 존재를 다루는 학문이므로, 헤겔의 논리학이 기존의 형이상학인 것은 틀림없다고 보겠다.

논리학이 발간된 후 그가 스스로 쓴 출간 광고문에는 논리학이 새로운 형이상학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철학에 일찍이 너무 성급하게 추방된 신비를 진정하게 해명된 형이상학을 통해 다시 부여하고”

헤겔의 논리학 1부 존재론과 본질론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면,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존재와 본질을 다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은 명백히 형이상학적인 책이다.  이런 1부 객관 논리학에는 기존의 논리학과 관련된 어떤 부분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2부인 주관 논리학의 경우는 그 첫째 장에서 개념과 판단, 추론을 다루므로, 굳이 말한다면 논리학이라 해도 되겠지만, 존재와 본질을 다루는 객관 논리학을 논리학이라 부른 것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명백히 형이상학 책에 대해 논리학이라는  말로 부르니, 공자가 알면 정명론을 부정했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것을 통한으로 간직한 홍길동이 생각난다. 형이상학을 형이상학이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아니면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고 나로서는 헤겔이 형이상학이라는 말 대신 논리학이라는 말을 선택한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된다. 헤겔로서는 형이상학이나 존재론보다 논리학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 점을 앞으로 말하려 하나, 일반인이 이해하기로는 내용상 논리학보다는 오히려 형이상학이라는 말로 규정하는 것이 더 쉽게 다가갈 것 같다. 그래서 논리학이라는 말 대신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는 것을 밝히느라 글이 좀 길어진 것 같다.

영화 패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영화 패싱

1)

‘패싱’이란 말은 흑인이 백인 행세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가 넬라 라슨의 동명 소설 패싱을 영화화한 것이다. 넬라 라슨은 1929년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시기는 미국 산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흑인 중산층이 형성된 시기다. 넬라 라슨은 어머니가 백인이고 아버지가 흑인인데, 백인 어머니가 백인과 재혼하여 백인 가정에서 살았다. 그녀의 경험이 이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

영화 감독은 레베카 홀인데, 이 작품이 그녀의 첫 작품이라 한다. 넷플렉스 오리지날로 발표됐다. 영화는 소설을 각색하면서 구성을 약간 바꾸었지만, 그 흐름이나 중요 장면은 변함이 없이 소설에 충실한 편이다. 다만 소설에서는 결말을 모호하게 처리했지만, 영화는 결말을 명백하게 함으로써 감독의 입장을 드러낸다.

영화 패싱은 빛에 관한 영화다. 두 명의 여인 아이린과 클레어가 등장한다. 둘 다 흑인이지만 피부가 희다. 클레어는 패싱을 통해 부유한 백인 남자 존과 결혼했다. 존은 남아프리카 출신이며 흑인을 혐오하며 즐겨 검둥이라는 모욕적 언어를 사용한다. 아이린은 비록 패싱에 성공했지만 백인 세계 속에서 외롭고 또 외롭다.  

아이린은 흑인 남자 브라이언과 결혼해 두 아이가 있다. 브라이언은 성공한 의사이고 아이린은 중산층의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 다만 브라이언은 흑인이 구타당하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미국을 탈출해 브라질로 가고 싶어 하지만, 아이린은 브라이언을 가로막아 왔으며 미국 중산층 백인이 누리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분노한 브라이언이 언제 안온한 삶을 파괴할지 내심 두려워한다.

2)

아이린은 어릴 때 뉴욕 할렘가에서 클레어와 같이 자라나 가까웠으나, 클레어가 백인 아버지가 죽은 다음 백인 고모의 집으로 간 이후 만나지 못했다. 어느 여름날 햇볕이 뜨거워 숨 막히던 아이린은 백인이 드나드는 호텔의 찻집으로 도피한다. 거기서 12년 만에 클레어를 만난다.

영화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색깔을 제거하고 흑백 장면으로 일관한다. 전체 장면에서 빛과 어둠이 강하게 대조된다. 한편으로 빛과 어둠은 삶의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을 의미한다. 백인이 드나드는 호텔 찻집은 아주 밝은 색이고 반면 아이린이 사는 집은 어둠이 깔려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백색의 빛은 너무나 밝아서 사람을 강박하는 것 같다. 뜨거운 여름 햇볕은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 정도다. 영화에서는 검은색도 빛을 낸다. 흑인의 재즈 파티에서 감독은 검은색을 많이 쓰는데, 이때 검은색은 자유로운 생명의 리듬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마치 아프리카의 검은 숲을 의미한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패싱에 대해 비판적이며 심지어 경멸적이다. 패싱에 관해 아이린은 자기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아이린은 늘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있다. 그녀는 흰색의 드레스와 모자를 쓰고 다니며, 집안의 가구나 장식 등은 백인 중산층의 집안의 모습과 다름없다. 아이린의 내면에는 백인 중산층의 삶에 대한 선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반면 클레어는 “위험의 모서리에 올라서 있는, 언제나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뒤로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는” 성격이다. 가난한 백인의 딸로 자라나고 백인 고모들의 하녀처럼 산 클레어는 적극적으로 패싱을 통해 흑인의 세계와 단절하고 백인과 결혼하여 백인의 삶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클레어는 행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백인의 백색의 빛 속에 가두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3)

클레어는 다시 흑인의 삶을 되찾고자 한다. 그 때문에 어릴 때 친구인 아이린을 통해 할렘의 세계로 들어오고자 한다. 클레어는 아이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클레어에게 흑인의 삶은 자신의 고향이며, 그것에 대한 향수는 “통증과 같이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클레어에게는 흑인의 눈이 있다. 그 눈은 “신비스럽고도 무엇인가를 감추는” 눈이다.

내가 이 영화를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클레어의 내면에 있는 욕망이 단순히 흑인적인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의 삶에 있는 자유로운 생명의 힘이 아닐까 한다.

영화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클레어가 흑인 세계로 들어오자, 아이린은 위험을 느낀다. 아이린은 브라이언이 클레어에게 매혹당할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린은 자신이 지키조하 했던 중산층의 삶이 깨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아이린은 클레어에게 흑인을 혐오하는 그녀의 남편이 클레어의 정체를 알면 어떻게 하냐면서 클레어를 막으려 했으나, 클레어는 이미 결심한 게 있다. 클레어는 아이린에게 그러면 남편을 떠나 흑인의 세계로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아이린은 그게 더 두렵다. 그러면 자기는 브라이언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아이린이 남편인 브라이언과 클레어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절망하는 장면이다. 아이린의 시선은 창밖을 향한다. 밝은 창문을 뒤로 하여 브라이언과 클레어의 모습은 어둡다. 이 어둠은 한편으로 아이린의 시선을 가로 막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브라이언과 클레어를 가깝게 묶어주는 힘이다.   아이린은 두 사람을 보고 절망하지만 클레어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 오고 있다.  
출처: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Film2&document_srl=4048076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마침내 일이 벌어진다. 아이린은 클레어를 초청하지 않았지만, 브라이언이 클레어를 초청했다. 파티에서 브라이언은 클레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혼자 소파에 앉아 브라이언과 클레어를 보던 아이린은 절망해 창가에 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운다. 외로워하는 아이린을 보고 클레어가 아이린이 있는 창가로 다가갔을 때, 클레어의 남편 존이 파티 장소에 찾아와 클레어에게 사기꾼이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다가간다.

갑자기 카메라는 창밖에 떨어진 클레어를 멀리서 비추어준다.  클레어의 등 위로 백색의 눈이 덮인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단순한 아이린의 실족으로 처리하고 만다. 그러나 소설 작가나 영화 감독은 이 사실을 다르게 설명한다.

클레어가 떨어지기 전에 아이린은 창가에 있는 클레어에게 손을 뻗었는데 소설에서는 그게 클레어를 보호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클레어를 민 것인지 모호하게 했다. 소설에서 아이린은 자신이 혹시나 민 것이 아닐까 스스로 의심하지만, 전체 흐름은 오히려 클레어가 스스로 뛰어내린 것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아이린의 손이 확실히 클레어를 민 것으로 보이고, 아이린이 자기 손을 감추려 하는 모습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아이린의 죄의식을 분명하게 한다.

4)

클레어의 죽음은 물론 억압적인 백색의 지배를 의미한다. 영화는 처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백색으로 시작해서 점차 그림자가 들어오면서 사물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끝날 때 영화는 다시 사물의 모습이 흐려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백색으로 되돌아간다.

클레어의 죽음은 또 다른 의미층을 지니는데, 그것은 클레어의 실패이다. 클레어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 실패는 백인 세계 속에 성공적으로 패싱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백인의 세계 속에 녹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힘이 그 내부에 은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클레어의 눈 속에 감추어진 신비한 무엇이다. 곧 자유로운 생명의 리듬일 텐데 그 힘이 백인 사회에 대해 분노를 억누르고 있던 브라이언을 매혹한 힘이다. 

그러나 이 힘은 동시에 클레어가 백인의 삶에서 다시 흑인의 세계로 되돌아오도록 강제했던 힘이다. 그 힘은 현실 속에서는 결코 자신을 실현하지 못하는 자기 파괴적인 힘이니, 클레어의 삶은 처음부터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아이린의 삶은 백인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클레어처럼 백인의 세계 속으로 잠입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삶 전체는 백인의 삶을 모방한다. 아이린은 말하자면 문화적 차원에서 패싱한 셈이다.

현실에서 아이린의 삶은 성공했다. 그녀는 백인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실현했다. 그 때문에 클레어는 아이린을 존경한다. 하지만 아이린의 삶은 자신의 본질을 억누르고 제거한 결과 얻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아프리카의 숲을 버렸다. 그리고 살아남은 것이지만, 그 삶이란 결국 백인의 세계에 종속된 삶일 수밖에 없다.

소설 작가는 소설에 들어가기 전에 흑인 시인 카운티 컬런의 시 구절을 소개한다. 여기 인용해 보겠다.

3세기 떨어져 있다네

그녀의 아버지가 사랑했던 풍경들로부터

향기로운 작은 숲과 계피 나무

나에게 아프리카란 무엇인가?

우리도 마침내 아이린을 따라 백인의 세계에 도달했다. 민주화와 근대화를 이루었다. 20세기 초 흑인 사회가 할렘 르네상스를 일으켰듯이 우리 역시 백인 문화를 소화한 한류를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본래 우리의 고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소설가 넬라 라슨은 검은 생명의 리듬에서 자신의 고향을 찾았다. 우리에게 고향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헤겔미학산책60-셰익스피어 비극과 몰리에르 희극(최종회)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60-셰익스피어 비극과 몰리에르 희극

 

1)

이제 헤겔의 극시론 가운데 마지막 부분인 낭만주의 시대 비극[1]과 희극을 살펴 볼 차례다. 그는 여기서 근대로 들어가는 입구인 바로크 시대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프랑스 혁명 이후 헤겔 당대에 등장한 괴테, 실러 등의 극시를 곁들여서 다루고 있다.

우선 근대 비극을 다루자면, 헤겔은 고전 희극을 분석할 때도 그러했지만 근대 비극의 원리를 파악할 때도 고전 비극에 비추어서 파악한다. 근대 비극의 첫 번째 원리는 근대 비극에서 인물은 주관적 개인일 뿐 더 이상 고전 비극에서처럼 실체적 목적을 실행하는 생동적 개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대 비극의 인물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처럼 사랑과 같은 주관적 목적을 위해 행위할 수도 있고, 아예 어리석음, 질투나, 야망과 같은 범죄적인 목적을 추구하기도 한다. 또는 괴테나 실러의 시민극에서 보듯이 그 주인공이 물론 국가나 일반적 선을 위해 행위할 수도 있지만 추상적인 일반성에 그치면서 그것을 실행하는 수단은 “외적이며 인위적이어서”[2] 여전히 주관적 개인을 벗어나지 못한다.

 

2)

두 번째 원리로 그럼에도 근대 비극의 인물은 고전 비극의 인물과 닮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고대 인물이 자신의 목적을 정당하다 믿으면서 주저 없이 단호하게 행동하는 파토스적 성격이듯이 근대 비극의 인물 역시 행동에 있어서 철저함을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현실 앞에서 주저하면서도 끝내 “내적으로 굳건하고 일관된, 자기 자신과 자기목적을 단호하게 견지하며”[3], 그것은 어쩌면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맹목적 광기처럼 보인다. 이런 인물은 “심지어 몰락에 이르러서도 꺾임 없이 강인하고 태연하다.”[4] . 그 힘은 거의 무한성에 가까운 힘을 보여준다. 헤겔은 이를 ‘성격적 위대성’이라 규정한다.

이런 인물은 그런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그런 목적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인물은 자연적으로 태어나기를 그런 목적을 추구하는 성격을 지녔다. 그는 근대 사회에 등장한 다양한 성격 가운데 하나이지만 특별하게 강한 의지를 지닌 존재일 뿐이다

세 번째 원리는 우연적 충돌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런 주관적 목적의 대립 때문에 갈등하게 된다. 이 대립은 고전 비극에서처럼 실체 자체의 근본적 분열에 기인하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이 대립은 외적인 여건과 외적 우연성의 작용이다. 이 우연성은 근대 비극의 인물에게는 “냉혹하게 다가오며 범죄적 본성을 지니기도 하는”[5] 운명이다.

헤겔은 근대 비극에 등장하는 서로 대립하는 다양한 성격의 차이를 세 가지로 파악한다. 첫째는 “사랑과 명예, 명성, 지배욕, 포악함” 등과 같은 특정한 따라서 추상적인 열정들 사이의 대립이다. 헤겔은 이런 추상적 성격을 구체적인 생동성 속에서 표현한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 그는 그들이 자신을 마치 예술작품처럼 이론적 객관적으로 관조하도록 만드는 이미지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그들 자신의 자유로운 예술가로 만들며… 그들은 개별적, 현실적이며 직접적 생동적이고 또 대단히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요소 요소에서 고상함과 괄목할 만한 표현력, 내면의 깊은 감정, 순간적으로 산출되는 이미지와 비유의 창안력, 수사능력을 갖추고 있다.”[6]

 

두 번째는 인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적 분열이다. 인물은 이중적 열정에 속하고 있어서 이 이중성은 인물을 “ 하나의 결단, 하나의 행동으로부터 또 다른 결단 혹은 행동으로 내몬다.”[7] 구체적인 예로서 괴테의 청년기 작품 ‘괴츠’에 나오는 바이스링엔, ‘스텔라’에 나오는 페르난도, ‘클라비고’의 클라비고 등을 들고 있다.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도 마찬가지 작품이다.

헤겔은 셰익스피어에서 주로 발견되는 첫 번째 종류의 대립을 보여주는 극시에 대해서는 지극히 찬양적인 반면, 근대 비극에서 자주 발견되는 두 번째 경우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4)

네 번째 원리는 이런 파국이 도래하기는 우연적이지만, 이미 자연적 성격 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 비극의 결말에서 주인공에게 도래하는 파멸은 세속적인 것의 무상함만을 보여주거나 공허하고 잔혹하고 외적인 슬픔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 힘은 이미 주인공의 내적 본질 속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며 그 본질이 실현되는 결과이다. 우연성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결과가 발생하게 하는 외적인 계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햄릿에서 결말에 그가 우연하게 죽기 이전에 이미 그의 죽음은 그의 성격 속에 예고되어 있다. 햄릿에게 ‟유한성의 모래톱은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줄리엣의 죽음 역시 줄리엣에게 예고되어 있으니, 헤겔에 따르면 줄리엣은 ‟우연한 세계의 골짜기에 있는 연약한 장미처럼 거친 폭풍우에 의해 … 꺾이게”[8]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근대 비극의 대단원은 고전 비극의 대단원과 닮았다. 근대 비극에서 주인공의 몰락은 외적인 우연성을 계기로 하니, 그것은 냉혹한 운명이다. 그러나 냉혹한 운명이 객관적 정의인 한, 비극의 인물은 파멸에 이르러 마침내 객관적 정의를 자신에게 정당한 정의로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인물은 내적 상태의 변화를 겪는다. 이런 상태 변화가 곧 비극의 목적인 ‘불멸의 지복’이다. 이런 대단원은 고전 비극에서 분열된 실체가 마침내 상호 균형을 얻으며 주인공은 자신에 대립하는 파토스를 긍정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회복되는 것이 후자에서는 실체적 통일성이지만, 전자에서는 소외된 사회적 정의라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성격의 주관성에 곁들여 개인이 자신의 개인적 운명과 화해했음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 즉각 요구된다. 이러한 만족은 심정이 자신의 현세적 개성의 몰락의 대가로 한층 높은 지복이 보장되었음을 인지할 경우에는 종교적일 수 있고 … 또한 모든 관계 및 불행에 맞서 자신의 주관적 자유를 불굴의 에너지 속에서 보존할 경우에는 형식적이되 현세적일 수 있다.”[9]

 

5)

극적 행위가 주관적 목적을 따라서 일어나고, 그것이 벌이는 충돌은 우연적인 상황에 의해 일어나는 것일 뿐이라는 점에서는 근대 비극은 오히려 그리스 비극보다는 그리스 희극과 더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 희극과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근대 비극이 전혀 희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런 극적 인물의 자멸을 통해 민족적 실체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격의 충돌과 파멸은 우연적인 사건이지만, 그 우연성은 내적 필연성의 실현이라는 근대비극의 특징은 사실 근대 사회의 본래적 모습이다. 근대 사회는 시장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소외된 사회다. 각자는 주관적 정의에 따라 행동하면서 그 행동의 결과는 시장에서 상호 교환되고, 최종적으로는 이런 상호 교환을 통해 각자에게 정당한 객관적 정의가 실현된다. 이런 정의는 각 개인에게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지배로 다가오기에 이 정의는 우연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정의는 본래 그 자신에 내재하는 정의의 실현일 뿐이며 그런 점에서 이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러므로 고대 희극에서 우연적 충돌이라는 개념과 근대 비극에서 우연적 충돌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고대 희극에서 도시 국가가 해체된 이후 개인의 인격은 출현했지만 개인은 전적으로 맹목적인 충돌이 벌어지는 속에서 살아간다. 결국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힘에 의해 최종적으로 승리한 황제의 자의이다. 개인은 이런 황제의 자의가 보여주는 변덕스러운 지배에 전전긍긍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인격이 실현되는 자유 속에서 자신을 낙천적으로 긍정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모습이다. 다가오는 사회가 바로 황제의 변덕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고전 희극의 등장 인물이 낙천적인 가운데서도 어두운 기미를 보인다.

반면 근대 비극에서 이미 새로운 상호작용적 시장 사회가 출현했다. 이 시장 사회는 더 발전되면서 근대 사회로 이행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연적 충돌은 비록 그 자체로서는 비극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근대 비극에서 인물의 몰락은 보이지 않는 힘인 사회적 정의가 자기를 관철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근대 비극의 인물은 파멸 속에서도 오히려 긍정적이다. 햄릿이나 줄리엣의 파멸이 전적으로 어둡고 비통한 것만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히려 햄릿이나 줄리엣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헤겔은 “우리를 엄습하는 이 쓰라림은 고통스러울 뿐인 화해, 불행 속의 불행한 지목이다”[10]라고 말한다.

헤겔은 근대 비극의 결말이 꼭 불행으로 끝날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차피 우연적 충돌에 의해 대단원이 내려진다면 행복한 결말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근대 사회에서 주관적 정의의 몰락은 곧 객관적 정의의 실현이니, 비극에서처럼 객관적 정의가 암시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현되어 구체적인 모습을 띄고 나타나더라도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11]

 

6)

마지막으로 헤겔은 근대의 희극을 다룬다. 그는 근대의 희극은 희극이라기보다 익살극이라 한다. 대표적으로 몰리에르의 희극을 볼 때, 거기서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수행하지만 자기가 기대하는 목적과 반대되는 결과에 이른다. 고대 희극과 달리 주인공 자신은 이런 가운데서 자기를 긍정하는데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불만에 빠져 다시 자기의 목적을 획득하려고 허우적거리는데, 이것은 관객의 비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헤겔은 몰리에르의 근대 희극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더 높이 평가한다. 그 주인공은 몰리에르 식으로 비웃음과 풍자를 터뜨리도록 하지 않으며 마치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처럼 낙천성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양자의 차이점을 간과할 수 없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리스 사회의 해체기에 살았고 그가 부딪힌 것은 맹목적 운명이 지배하는 사회였다면 셰익스피어는 마침내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 완성되는 근대 시장 사회를 향하여 다가가는 시대에 살았고 이 시장 사회는 비록 소외된 방식이기는 하지만 객관적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파네스의 주인공이 낙천적이지만 몰락의 비애감을 드러낸다면,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은 낙천적이면서 밝고 세속적으로 긍정적이다.

 

“온갖 실패와 그르침을 괘념하지 않는 심정의 유쾌함, 확신에 찬 방종, 자만, 근본적으로 즐거운 숙맥 내지는 주관성 일반의 대담성이 다시 기조를 형성하며, 또한 이를 통해 한층 깊은 충만함과 내면성을 갖는 유머 속에서 고대인의 경우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분야에서 가장 완벽하게 성취했던 것을 다시 산출한다.”[12]

 

헤겔이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헤겔이 실제 예로 들고 있는 폴스타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폴스태프는 셰익스피어의 <윈저 성의 명랑한 부인들>(1602년)이라는 소극의 주인공이다.

간단하게 그 줄거리를 소개한다. 전쟁이 끝나고 윈저로 돌아온 존 폴스태프 경은 배 나오고 뚱뚱하고 비겁하고 변명 잘하고 떠벌리기 좋아하고 낭비벽 심하고 무일푼인 술주정꾼이다. 그는 남편 있고 재력 있는 두 여자, 포드 부인과 페이지 부인을 유혹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오히려 두 부인과 그들의 남편의 계략에 빠져 모욕당하고 만다. 그는 광주리에 실려 더러운 강물에 던져지기도 하고, 하녀의 모습으로 변장해 간신히 빠져나가기도 하며, 숲에서는 장난꾸러기 요정들의 습격을 받는다.

폴스태프는 자신의 사악한 성격을 따라서 좌충우돌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거리를 취하고 스스로 자신을 우스꽝스럽고 가련한 존재로 여기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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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60회에 걸친 헤겔미학 산책을 종료한다.


[1] 헤겔은 근대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비극을 근대 비극 또는 ‘낭만적 비애극’이라고 지칭한다. 그가 ‘낭만적 비애극’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벤야민에서처럼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대 흔히 비애극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으므로, 그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그저 낭만주의 시대 또는 근대 비극이라는 이름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2] 미학강의 3권, 564쪽

[3] 미학강의 3권, 570쪽

[4] 미학강의 3권, 572쪽

[5] 미학강의 3권, 571쪽

[6] 미학강의 3권, 568쪽

[7] 미학강의 3권, 569쪽

[8] 미학강의 3권, 573쪽

[9] 미학강의 3권, 572쪽

[10] 미학강의 3권, 573쪽

[11] 미학강의 3권, 573쪽 참조

[12] 미학강의 3권, 5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