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데올로기』1·2(2019), 『정신의 오디세이: 자유 의지의 역사』(2021) 등을 저술한 전 동아대 철학과 교수 이병창 회원이 영화와 소설, 철학 등 광범위한 문화 비평을 담아내는 코너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5-칸트의 논리학 혁명[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5-칸트의 논리학 혁명

1)

문제의 발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범주로 분류한 것이다. 여기서 주어로 사용될 수 있는 것들 때문에 결국 실체 개념이 제시되었다. 실체는 자기를 통일하는 하나이며, 그럼으로써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개별자를 징검다리로 해서 시간상 지속하는 진정한 실체는 곧 종적 본질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은 좀 불분명한 것 같다. 플라톤의 형상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도 개체들이 지닌 질료적 속성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플라톤을 비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비추어 본다면 본질이란 질료들의 통일적 관계 자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헤겔의 철학적 출발점도 다름 아닌 이런 본질 개념에 있다. 헤겔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개별자가 아닌 이런 본질적 존재이다. 본질적 존재가 곧 자기를 통일하면서 무로 해체되는 것을 막으면서 자기를 지속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속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실체라는 말을 좋아했다면, 헤겔은 이 실체가 자기를 통일하는 힘을 지닌 존재라는 측면에서 아예 주체라고 이름을 붙였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분명하게 본질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료적 속성의 상호적 관계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본질을 다시 힘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속성의 상호적 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 그사이에 양자를 매개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본질이란 이런 매개하는 힘과 다르지 않다.

헤겔은 이 힘을 그의 시대 등장한 미분적 차이의 개념에 기초하여 두 가지 힘의 대립적 관계로 규정했다. 이 두 가지 힘이 곧 표출하는 힘과 수축하는 힘이다. 이를 동양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미분적 차이는 곧 음양의 동정이다. 음양의 동정으로부터 만물이 실체로서 자기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헤겔이 형이상학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근거를 따지다가 범주라는 개념에 이르렀고 이 범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실체라는 개념으로 빠져들었다. 이쯤하고 다시 이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2)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범주론에서 구별된 10개의 범주는 대체로 언어를 분류한 틀로 보인다. 그런데 언어가 의미하는 것이 곧 대상이니, 이런 분류는 대상을 분류한 것으로 보아도 된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특히 5장에서)에서는 범주론에 제시되었던 범주들이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형이상학적 개념이란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주1) 범주론과 형이상학 5장을 비교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괄호 밖이 범주론, 괄호 안이 형이상학이다. 실체(8절), 양(13절), 질(14절), 관계(15절), 장소, 시간, 상태(20절), 행동, 능동(12절), 수동(12절) 형이상학에서는 범주론에 다루어지지 않은 개념 원인. 필연성 등이 다루어지며, 또한 동일성과 차이, 대립과 배치, 앞과 뒤 등 반성 개념도 포함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는 어디까지나 언어(존재자)의 가장 일반적인 류에 속하는데, 이와 같은 범주의 의미는 칸트에 이르러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칸트에서 범주의 의미는 이제 판단형식과 관계된다. 언어와 판단형식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런 차이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우선 칸트가 판단형식과 관련해 범주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알다시피 칸트는 소위 12개의 판단형식을 제시했다. 칸트 자신은 이런 판단형식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으로부터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나 배웠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판단형식은 네 가지뿐이다. 전칭긍정 판단, 전칭부정 판단, 특징긍정 판단, 특칭부정 판단이다.

그런데도 칸트는 대담하게도 네 가지 판단형식을 12개의 판단형식으로 확장하였다. 우선 칸트가 제시하는 관계 판단(정언, 가언, 선언)이나 양상 판단(개연, 실연, 필연)을 보자. 이는 전통 논리학에서는 일종의 복합판단이므로, 독자적인 판단형식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칸트는 이를 기본적인 판단형식으로 받아들였다. 또 분량판단이나 성질판단도 이상하다. 분량판단에서 전통 논리학에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 전칭판단과 단칭판단이 구분되며, 성질판단에서는 전통 논리학에서 배제한 무한판단을 받아들인다.

3)

칸트가 왜 이렇게 판단형식을 부풀렸을까? 이는 형식 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칸트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칸트의 독단이었을까? 그 이유는 칸트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일반논리학은 인식의 모든 내용을 무시한다. 즉 인식과 객체의 모든 관계를 도외시한다. 그래서 한 인식이 딴 인식에 관계할 무렵의 논리적 형식만을 다룬다. 즉 사고 일반의 형식만을 다룬다. 그러나 (선험적 감성론이 증시했듯이) 순수 직관이 있는 동시에 경험적 직관이 있기 때문에, 대상의 사고에도 순수한 사고와 경험적 사고가 구별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인식의 모든 내용을 무시하지 않는, 논리학이 존재하겠다. 왜냐하면 대상의 순수한 사고에 관한 규칙만을 포함하는 일반논리학은 경험적 내용을 소유하는 모든 인식을 배척하겠기에 말이다. 선험적 논리학은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바 기원을 다루기도 하겠으나 이런 기원이 대상에 귀속될 수 없는 한에서 다루겠다.”(순수이성비판, A판, 80)

칸트의 말을 자를 수가 없어서 인용이 길어졌지만, 그 내용은 간단하다. 형식 논리학에서 판단형식은 다만 형식일 뿐, 어떤 내용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선험 논리학에서 판단형식은 일정한 내용을 갖는다.

이 내용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내용이 아니라, 판단형식 자체에 고유하게 들어 있어서 경험을 규정하는 내용이다. 즉 ‘s는 p이다’라는 단칭 판단형식은 경험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든가, ‘백두산이 지리산보다 높다’ 등과 같은 경험적인 명제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판단형식이다. 이 판단형식은 경험적 내용을 갖지 않는다. 또한 ‘S는 p다’라는 사물의 종을 주어로 하는 정언 판단형식은 예를 들어 ‘사람은 죽는다’ 또는 ‘산은 언덕보다 높다’라는 경험적 내용을 갖지 않는 일반적 형식이다.

그러나 ‘s는 p다’라는 단칭 판단형식은 ‘S는 p다’라는 판단형식과는 판단형식 자체에서 어떤 차이를 갖는다. 이 차이가 곧 판단형식 자체에 속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 판단형식 자체에 속한 내용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예에서 주어지는 내용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판단형식이 그 자체로 고유한 내용을 갖는다는 선험 논리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의 복합판단에 속한 관계 판단이나 양상 판단이나, 무한판단과 전칭판단도 하나의 고유한 내용을 지닌 판단형식이다. 칸트는 이런 이유로 판단형식을 12개의 기본적 판단형식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겠다.

4)

이처럼 판단형식에 고유한 의미가 있다는 선험 논리학의 관점은 논리학을 혁명적으로 전환하는 엄청난 충격적인 사건이다. 판단형식이 그 자체 의미를 지닌다면, 형식 논리학의 근본 관점과 충돌되기 때문이다. 이 혁명적 사건이 칸트를 넘어가면서 헤겔 논리학의 출발점이 되었으나, 우리는 여기서 헤겔로 바로 뛰어넘기보다 헤겔이 칸트의 혁명을 받아들이다가 갈라지는 지점까지 더 추적해 보기로 하자.

칸트는 선험논리학의 관점에서 각 판단형식에 고유한 내용을 추구하면서 이를 범주로 규정하면서 범주표를 만들었다. 이 범주표는 A판 106쪽에 실려 있다. 보기 쉽게 아래에 표를 만들어 보았다.

분류

판단형식

범주

분량

단칭판단

단일성

특칭판단

수다성

전칭판단

전체성

성질

긍정판단

실재성

부정판단

부정성

무한판단

제한성

관계

정언판단

실체

가언판단

인과

선언판단

상호작용

양상

개연판단

가능성

실연판단

현존(우연)성

필연판단

필연성

이 범주표를 보면, 누구나 쉽게 범주의 의미가 판단의 형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평범한 말과 같지만,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의 의미를 언어의 종류에서 찾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게 얼마나 혁명적인 주장인지 짐작될 것이다.

판단형식이란 곧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관계가 곧 계사[Sein]이니 거꾸로 말하자면 판단형식의 차이는 곧 계사[존재]의 차이이며, 계사[존재]가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 즉 언어의 차이는 어떤 개별적 존재자 사이의 차이를 다룬다. 그러나 칸트에서 범주의 차이는 계사[존재]의 차이이니, 쉽게 말해서 하나의 경험[주어 경험]과 다른 경험[술어 경험]이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규정하는 차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칸트는 여기서 범주의 의미를 개별자[언어 또는 대상]에 관한 것에서 개별자들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자를 다루었다면 칸트는 이제 존재[계사]를 다룬다는 것이다.

5)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는 언어의 류이면서 동시에 존재자의 류가 된다. 언어가 의미하는 것이 곧 존재자이니, 이런 전환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가 이제 판단형식에서 나온 범주를 경험 세계를 규정하는 일반적 범주로 전환한다면, 여기서는 누구나 금방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유에 속하는 판단형식이 세계의 일반 구조란 말인가? 사유와 세계가 일치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그림이론이 아니라면, 이와 같은 주장을 단순히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판단형식과 이런 동일성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세계를 인간이 전체적으로 경험하여 그 근본구조를 밝혀냈기에 사유의 근본구조가 성립하게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원시인부터는 제쳐놓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우리까지 사유의 근본구조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가 아직 세계의 근본구조를 안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동일성이 가능한 것은 칸트와 같이 사유가 세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판단형식으로부터 칸트의 인식론적 혁명으로 나가는 길은 이처럼 단순하다. 여기서 칸트 자신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러므로 선천적인 개념으로서의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은 그것에 의해서만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에 의거한다. 대저 그럴 적에는 범주는 필연적으로 즉 선천적으로 경험의 대상에 상관한다. 왜냐하면 범주에 의거해서만, 경험의 그 어떠한 대상은 일반적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A판, 126쪽)

판단형식에서 범주를 끌어낸 데서 인식론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 나가는 길은 단순하지만, 혁명적인 길이었다. 판단형식 즉 범주가 이처럼 경험을 규정하게 되면, 판단형식 즉 범주가 이제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된다. 이런 전환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론에서 형이상학으로 간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 언어로부터 존재자로 나갔으나 칸트는 판단형식 즉 계사[존재]로부터 경험 세계로 나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존재자의 일반적 규정을 다루지만, 칸트의 형이상학은 이제 과학으로 전락한다. 즉 보편적 경험의 세계를 규정하는 원리가 되었다.

6)

판단형식이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이것이 경험을 선험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라면, 실제로 경험이 판단형식을 통해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까? 이 과정이 바로 칸트의 선험적 연역의 과정인데, 그 핵심에는 도식이라는 개념이다.

칸트에서 판단형식 즉 범주의 의미 내용은 이 도식에 의해 규정된다. 이 도식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자. 칸트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니 말이다. 범주표처럼 도식표도 있다.

분류

판단형식

범주

도식

분량

단칭판단

단일성

시간계열(수)

특칭판단

수다성

전칭판단

전체성

성질

긍정판단

실재성

시간내용

충실

부정판단

부정성

공허

무한판단

제한성

관계

정언판단

실체

시간순서

지속

가언판단

인과

후속

선언판단

상호작용

공존

양상

개연판단

가능성

시간총괄

혹시

실연판단

현존(우연)

정시

필연판단

필연성

상시

(위의 도식표는 칸트의 작품이 아니라 순수이성비판 번역자 최재희 선생의 작품이다. 번역본 180쪽에 나온다) 주2) 범주와 도식의 관계는 마치 논리적 판단을 컴퓨터 언어로 전환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컴퓨터 언어는 이진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칸트는 이런 범주 즉 판단형식을 경험에 어떻게 적용한 것일까? 그는 마치 이 도식표를 하나의 좌표처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어떤 경험이 다른 경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들어오면, 그것은 어떤 판단형식의 좌표 중 어떤 지점 즉 어떤 범주에 귀속된다. 그런데 경험의 다른 관계가 출현하면, 그것은 또 다른 좌표 다른 범주에 찍히게 된다.

헤겔의 불만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칸트의 선험철학에 경악하면서 따라온 헤겔이 칸트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칸트가 이처럼 도식표를 하나의 좌표처럼 이용했다는 것인데, 헤겔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4-본질에서 힘으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4-본질에서 힘으로

1)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등장하는 실체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실체는 자기를 통일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지속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실체는 개체를 통해서 자기를 재생산하는 가운데 지속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진정한 실체는 개별자가 아니라 종적 본질이다. 종적 본질은 개별자를 징검다리로 해서 자기를 지속한다.

여기서 지속이란 곧 시간적 지속을 의미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는 무규정성이 들어 있고 이는 시간적으로 존재를 해체하는 힘이다. 이 해체하는 힘에 대립해서 시간적으로 자기를 지속해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곧 종적 본질이 지닌 자기를 통일하는 힘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이 시간적 지속이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미 짐작했겠지만, 헤겔의 형이상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그의 본질[Wesen] 개념이 다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고 그런 점에서 플라톤과는 대립한다.

서양철학사에서 플라톤주의의 역사는 길지 않다. 그것은 근대 초에 반짝 빛을 보았다. 서양철학사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지배했다. 스콜라철학이 지배한 중세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에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부활이었다.

그럼, 이제 헤겔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정신현상학 서문 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들여다보자.

“앞에서 표현한 대로 실체는 그 자체에서 주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든 내용은 자기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자기 내로 반성한다. 현존이 지속성을 지니면서 실체가 되면 그것은 자기 동일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정신현상학, 39쪽)

위의 구절에서 헤겔은 현존이 지속성을 지니게 되면 실체가 된다고 한다. 이런 지속성이 가능한 것은 자기 동일성 때문이다. 헤겔의 ‘자기 동일성’은 추상적 자기 동일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헤겔은 자기 동일성이 있으므로 “스스로 해소되려는 것”에 대항하여 자기를 지속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이 자기 동일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자기를 통일하는 힘’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 자기를 통일하는 힘 때문에 헤겔은 실체는 곧 주체라고 한 것이다. 실체가 곧 주체라는 주장은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핵심적인 개념인데, 위의 구절을 보면 헤겔이 얼마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2)

헤겔이 이렇게 자기를 지속하는 존재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현상학에서 지성 장에서 자기의식 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헤겔은 플라톤주의를 비판하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만한 여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제 그 부분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정신현상학에서 그 과정은 상당히 장황하므로, 이 자리에서는 상세하게 그 과정을 소개하기보다, 간단하게 정리해서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지각 장에서 헤겔은 사물에 개별적 우연적으로 속한 성질과 필연적 일반적으로 속한 속성을 구별한다. 이어서 지성 장에서는 그 사물에 고유하게 속하는 본질을 찾으려 한다. 인식의 발전에서 소피스트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비판했던 이유는 바로 소피스트가 단순한 일반적 필연성과 사물의 고유한 본질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 필연성에 불과하다. 고유한 본질, 객관적 본질을 파악하는 독자적인 인식 기관 예를 들어 본질 직관 능력과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고유한 본질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일반적 필연성이 각 사물에 하나뿐이라고 한다면, 쉽게 그것이 곧 고유한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각 사물에는 여러 개의 일반적 필연성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사람에 관해서 우리는 직립 보행이라는 일반성과 의식이라는 일반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 둘 가운데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즉 그 고유한 본질이 될까?

이런 난점에 부딪혀 헤겔은 우선 플라톤적 사유를 소개한다. 헤겔에 따르면 플라톤은여러 가지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이데아(고유한 본질)가 될 수 있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곧 선의 이데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선의 이데아는 세계를 최선의 세계로 만든다. 그것을 위해서 각 사물은 자신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최선을 위해 사물을 통일하는 것이 곧 이데아이다.

그런데 헤겔은 이런 플라톤적 사유에 반대한다. 만일 선의 이데아가 없다면, 여러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어느 것이 이데아인지를 전적으로 우연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물의 고유한 본질이 우연에 맡겨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헤겔은 플라톤적 사유가 부딪힌 난점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등장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사물을 지속적으로 존립하게 하는 것이 곧 그 사물의 고유한 본질이 된다고 보았다. 그런 지속성은 사물의 통일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본질이란 곧 일반적 필연성의 상호 통일성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즉 일반적 필연성 가운데 어떤 개별적인 요소가 아니라 이런 일반적 필연성 사이의 통일적 연관이 그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본질 즉 종적 본질이 된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수용한다. 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본질은 곧 일반적 필연성의 내적 통일이다. 이런 통일성 때문에 그것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된다. 그런데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단순하게 수용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미분적 차이의 개념과 연결한다.

3)

생각해 보자. 단순화를 위해 어떤 사물에 두 가지 서로 대립하는 일반적 필연성이 있다고 하자. 이 두 가지 필연성이 상호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헤겔은 그 당시 등장한 미적분학을 통해서 이 두 가지 필연성의 상호 통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어 함수 Y=X²의 미분 함수는 dy/dx=½X이다. dx와 dy의 분수 관계는 대립적 관계를 의미하며, 이 미분 함수가 전개되면, 그 적분 함수는 X<0인 경우는 하강 곡선이며 X>0인 경우는 상승 곡선이 된다.

헤겔은 미분적 차이 개념을 일반화하여, 이를 ‘무제약적 일반자’라는 개념으로 수용한다. 여기서 무제약적 일반자(미분적 차이)가 자기를 전개하여 사물(적분 함수)에 이르는 과정을 헤겔은 이중적인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무제약적 일반자가가 자기를 펼치는 과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결과인 사물이 자기를 수축하여 무제약적 일반자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두 과정은 매 순간 동시에 상호적으로 일어나면서 무제약자가 사물을 산출하는 운동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힘으로 불리는 것이다. 이 운동의 한 가지 계기 즉 자립적인 물질들이 펼쳐져서 제각기 존재하게 되는 운동은 힘의 표출이며 반대의 계기 즉 이 자립적인 계기들이 지양되어 사라지게 하는 운동은 표출에서 자기 내로 수축하는 힘이거나 또는 본래적인 힘이다.”(정신현상학, 85쪽)

두 힘은 서로 떨어져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두 힘은 상호작용하면서 얽혀있다. 헤겔은 이를 힘의 유희라고 설명한다. 두 힘의 얽힘에 관한 다음과 같은 헤겔의 표현을 보라.

“예를 들어 촉발하는 것이 일반적 매체로 정립되고 그에 반해서 촉발된 것은 수축된[ 힘으로 정립되었지만, 그러나 역시 전자[촉발하는 것]가 일반적 매체 자체가 되는 것은 오직 그에 상대되는 것이 수축된 힘이기에 가능했다. 또는 이 후자[촉발된 것]가 오히려 전자[촉발하는 것]에 대해 촉발하는 것이며 전자를 비로서 매체로 만드는 것이다. 전자[촉발하는 것, 매체]은 다만 이런 타자[수축된 힘]에 의해서만 [촉발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규정을 가지며, 타자[촉발된 것]로부터 촉발하는 것이 되도록 촉발되는 한에 있어서만 촉발하는 것일 뿐이다.”(정신현상학, 86쪽)

무제약적 일반자는 어떤 존재나 원소[Element]가 아니다. 그것은 펼쳐지는 힘과 수축하는 힘의 통일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태극과 같다고 하겠다. 헤겔은 이 통일적 힘이야말로 사물의 진정한 본질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힘이 사물에 내재하면서 사물을 내적으로 통일하면서 사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힘이 곧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실체가 된다.

결국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하면서 이를 근대의 미분적 차이라는 개념으로 전환한 것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3-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3-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1

1)

전환점은 칸트였다. 사람들은 칸트의 선험철학만 안다. 하지만 정작 칸트가 했던 중요 작업은 망각한다. 그 작업은 바로 범주를 판단 형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칸트의 위대한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범주를 처음으로 주목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는 사물이 아니라 언어를 분류하는 최고의 유다. 그는 언어를 주어에 해당하는 것과 술어에 해당하는 것들을 구분한 최초의 언어학자다. 그런데 일파만파라 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개념을 언급하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어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정한 개념이다. 그 개념의 핵심은 “주어 속에 있지도 않고 동시에 주어의 술어가 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어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라고 하였다. 여기서 실체[Substance]는 주어[Subject]와 같은 의미가 된다. 그런데 제1 실체인 개체는 이 규정에 적합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하나의 주어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것으로 규정한 종적 본성, 즉 제2 실체는 그 자신이 술어가 될 수 있으므로, 이 규정을 위배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잘 알지 못하니 범주론 다음에 형이상학을 쓴 것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의식에서 따져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주요 문제 중의 하나는 이 범주론에서 실체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형이상학에서 주요 문제의식은 왜 술어가 될 수 있는 종적 본성(예를 들어 사람이나 개 등)이 실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라는 개념을 주어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개념과 달리 규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대부분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종적 본성과 단순한 보편자(또는 이데아)를 구분해서 전자는 실체로 반면 후자는 실체가 아니라고 했다는 점에,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알고 싶은 것은 형이상학에서 실체를 어떻게 규정했는가인데,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알고 싶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김덕천의 논문에서 필자가 기대하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논문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 나타난 실체 개념의 개별성 문제― 형이상학Ζ를 중심으로 ―>(카톨릭 철학, 7호)이다. 여기서 김덕천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서는 종적 본성이 오히려 더 근원적인 실체라고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범주론의 제1 실체와 대비를 이루는 형이상학의 제1 실체로서, 존재의 구조학‧원인론‧발생학에 있어서의, 보편학과 지식에 있어서의 근본개념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플라톤의 이데아들과는 달리 개별 실체 속에 내재한, 개별 실체와 다름이 없는, 개별 실체의 자체적(kath’hauto) 원인이 되는 주체의 구성원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가톨릭 철학, 7호, 428쪽)

즉 개별 실체의 통일성을 유지해 주는 내적인 구성원리가 곧 종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조대호 교수가 번역한 『형이상학』(나남, 2012)에 관련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떤 것으로 이루어진 합성체는 그 전부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더미와 같은 상태가 아니라 음절과 같은 상태로 있다. … 결과적으로 합성체에 대해서 살이나 음절에 대해 말한 것과 동일한 논변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곧 본성을 말한다] 요소가 아닌 어떤 것이며 바로 그것이 이것을 살이게 하고 이것을 음절이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각자의 실체이다.”(345쪽, 1041b 11-29)

조대호 교수는 주에서 이 구절에서 말한 그것을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만들어주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라고 주장한다.(『형이상학』, 346쪽 주 250) 이어서 주 251에서 그는 “있음의 첫째 원인은 특정한 질료가 종적인 규정성을 가진 어떤 개별자로 있게 만들어주는 원인을 가리킨다”(『형이상학』, 346쪽)라고 말한다. 여기서 종적 규정성을 가진 개별자라만 아리스토텔레스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원인을 말할 것이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관련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본성도 있는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즉시 하나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하나이게 만드는 원인이나 있는 것의 한 부류를 하나이게 만드는 원인이 달리 어디에도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각각은 직접적으로 있는 것이자 하나인 것일 뿐, 있는 것이나 하나를 유로 삼아 그것 안에 있지도 않고 개별적인 것들과 떨어져서 분리 가능한 것으로서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형이상학』, 367쪽, 1045b5-9)

이 두 구절에서 김덕천이 지적한 것처럼 소위 종적 본성은 개체를 하나로, 통일하는 원리로 규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종적 본성이 실체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274쪽 1029a5-10에서 실체가 기체[基體]에 대해 술어가 되지 않지만 다른 것들은 그것에 대해 술어가 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 핵심 이유는 그렇게 보면 “질료가 실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형이상학에서 제시한다. 276쪽, 1029a30을 보면, 이제 “‘분리 가능성’과 ‘이것’은 주로 실체에 속한다”고 말한다. 즉 개체를 다른 개체로부터 분리하여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곧 실체라는 것이다.

어떤 개체가 다른 것과 분리하여 개체로 존재하려면, 개체 자신은 내적인 통일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분리 가능성이라는 규정은 곧 통일성, 하나라는 규정과 상통하니, 이것을 통해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체라는 규정 자체를 바꾸었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3)

종적 본성을 이처럼 개체를 통일시키는 구성원리로 이해하게 된다면, 개체가 ‘분리 가능하며’ ‘이것’이 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통일적 구성원리는 개체를 하나로 즉 단일한 개체로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체의 규정은 오래전부터 타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규정이 들어 있다. 그것은 개체이면서 동시에 자립적으로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범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주어가 되는 것으로 규정한 것이 아닐까? 자립적으로 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술어가 아니라 주어가 될 수 있다. 종적 본성은 개체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면서 동시에 있는 것, 자립적으로 있는 것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위에서 인용된 형이상학의 구절 가운데 두 번째 구절 즉 1045b5-9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임과 있음을 등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밑줄 그은 부분) 하나란 곧 내적인 통일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될까?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보자. 어떤 것이 내적으로 분열된다면, 그것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분열은 다시 분열을 낳고 그 끝에 가서는 무규정적인 어떤 것 즉 무로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어떤 것을 내적으로 통일한다면, 그것은 소멸에 대립하면서 자기를 지속하는 것이 될 수 있고 이런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거꾸로 말해 어떤 것이 존재하려면 내적으로 통일하는 원리가 계속 힘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임, 내적 통일성과 존재 또는 지속성(자기 동일성)은 서로 공속하는 개념이니, 종적 본성이 개체를 내적으로 통일하는 구성원리가 된다면, 그 종적 본성은 개체를 지속적으로 또는 자기 동일적으로 존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적 본성은 개체를 실체로 만들어주는 원리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종적 본성이 개체를 실체로 만드는 원리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그것은 종적 본성 자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범주론에서 종적 본성이 독자적 실체 즉 제2 실체라는 주장과 어긋나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와 달리 형이상학에서 제2 실체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만 것이 아닐까? 사실 개체로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이 소나 이 말이 실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되지만 사람 자체, 소 일반, 말의 본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아무도 그런 존재를 본 적은 없다.

조대호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이라는 논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가 실체가 되지 못한다고 단정했다고 한다. 물론 조대호 교수는 보편자와 종적 본성을 구별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정한 것은 단지 보편자가 실체가 아니라는 주장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자가 실체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 거론한 것 모두가 종적 본성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종적 본성 역시 보편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종적 본성이 개체를 실체로 만드는 원리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종적 본성 자체가 독자적인 실체라고 주장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자가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를 들어보자.

“왜냐하면, 보편적으로 일컬어지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실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각자의 실체는 각 대상에 고유하고 다른 것에 속하지 않지만, 보편자는 공통적이기 때문인데, 그 본성상 여럿에 속하는 것을 일컬어 보편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것의 실체이겠는가? 모든 것의 실체이거나 아무것의 실체도 아닐 터인데 모든 것의 실체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것 하나의 실체라면 다른 것들도 그것과 똑같을 것인데 그 까닭은 그것들의 실체가 하나이고 본성도 하나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체에 대해 술어가 되지 않은 것이 실체라고 불리지만, 보편자는 항상 어떤 기체에 대한 술어가 된다.”(『형이상학』, 328쪽, 1038b8-11)

조대호 교수의 주장과 달리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종적 본성에 실체로서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까지 이야기에서 이 지점에 이르러 대반전이 일어난다.

4)

실체는 통일성의 원리이고 개체를 존재하게 한다고 했을 때, 이때 존재는 단순한 현존은 아니다. 그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적 변화는 존재를 무로 전락시킨다. 실체는 통일성의 원리로 분열을 막고 개체를 지속하게 만든다. 여기서 지속성은 곧 시간적인 자기 동일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엄밀하게 개체 자체가 지속하지는 못한다. 개체는 종적 본성과 더불어 많은 우연적 성질을 담지하고 있다. 이 우연성은 시시각각 변화하다. 개체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때 여기서 지속하는 것은 다름 아닌 종적 본성이다. 실체는 우연적 개체가 아니라 개체의 종적 본성 자체이다.

물체를 예로 들어보자. 물체는 고정불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소멸 중에 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 속에서 물체의 고유한 구조는 계속 유지되니, 시간적 지속하는 것은 그 물체의 본성이다.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속적으로 존재할 때 사실 우연적 속성을 담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체성이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종적 본성이 단순히 개체로서 아리스토텔레스 당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어서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지속하는 것이 바로 종적 본성이 된다.

본성 또는 종적 본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의미하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종적 본성은 개체를 통해서 존재할 뿐이다. 개체란 본성 또는 종적 본성이 존재하는 시간적 현존일 뿐이다. 개체를 징검다리로 해서 종적 본성은 실제로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우연적 성질을 담은 개체이지만, 지속하는 것은 개체의 종적 본성이고, 그것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본성과 보편자를 구분하는 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보편자는 사물의 필연적 속성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사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없다. 그러나 본성이나 종적 본성은(양자의 차이는 시간성의 차이일 뿐인데) 통일의 원리가 되면서 자기를 지속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거꾸로 수많은 보편자 가운데 이처럼 어떤 것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지닌 것만이 비로소 본성 또는 종적 본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지속적 존재, 자기 동일성으로서 실체라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속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에서 이런 실체 개념의 전거를 발견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위의 인용 구절에서 간접적으로 그런 실체 개념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시 위의 인용 구절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보자.

“그것이 어느 것 하나의 실체라면 다른 것들도 그것과 똑같을 것인데 그 까닭은 그것들의 실체가 하나이고 본성도 하나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로서는 해석하기 난감한 부분인데, 그 의미를 이렇게 새겨볼 수 있지 않을까? 보편자는 a, b, c.. 등의 개체에 공통적으로 속한다. 이 보편자가 실체라면, a, b, c 등을 통해 지속한다. a, b, c 등은 우연적 차이만 지닐 뿐 서로 동일한 것이 된다. 그런데 단순히 보편자인 경우, 그것은 a, b, c 에 공통적으로 속하지만, 이것들은 서로 다른 물체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물체에 속하는 보편자가 실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흰색은 백합꽃이나 설탕, 그리고 눈에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서로 다른 물체이니, 흰색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 제2 실체였던 종적 본성을 형이상학에서 진정한 실체로 격상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대호 교수 자신도 비록 그 자신은 긍정하지 않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 가운데 “범주론에서 둘째 실체로 일컬어졌던 종은 오히려 형이상학에 이르러 첫째 실체의 지위를 얻는다고 주장”(조대호,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 443쪽)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5)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정리해 보자. 실체는 곧 통일성의 원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자신을 존재하게 한다. 이때 존재는 단순한 현존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것은 지속성을 지니므로 실체가 된다. 지속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은 실체가 되지 못한다.

물체의 수준에서 그 본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여기서 실체는 약화된 실체이다. 그러나 생물체에 이르면 세대를 넘어 자기를 지속하니, 더 완전한 실체가 된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2-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2-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1

1)

앞에서 헤겔 논리학이 실제 다루는 내용은 형이상학과 동일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헤겔은 처음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붙였다가는 나중에 가서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빼고, 논리학이라는 이름만 내세웠다고 했다.

그런데 보통은 논리학을 ‘logic’이라 한다. 헤겔은 ‘Wissenschaft der logic’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였다. 번역하기가 좀 곤란하다. 직역하자면 ‘논리학의 학문’이라고 해야 하는데, ‘학’이라는 말이 중첩되어 그저 ‘논리학’이라고 번역한다. 오해를 피하려 ‘논리의[에 관한] 학문’이라고 번역하기도 한지만, 불필요한 현학적 태도일 것이다. 앞으로 그저 ‘논리학’으로 번역하자. 문제는 왜 헤겔이 형이상학적 내용에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이다.

여기에 여러 문제가 개입한다. 특히 논리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이 문제 된다. 헤겔은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약 25년 전쯤에서부터 우리 속에서 철학적 사고의 방식이 겪었던 전면적인 변화나 이 시기 정신이 자의식이 자신에 관한 도달하게 된 좀 더 고차적인 입장은 아직 논리학의 형태에 거의 이렇다 할 영향을 입히지 못한 상태에 있다.”(초판 서문, 5쪽) [주1]

[주1] 앞으로 인용문은 헤겔의 논리학의 경우에는 장 절과 페이지만 표시하겠다. 원전은 G. W. F. Hegel, Wissenschaft der Logik(1832), Th. 1, Bd, 1, GW Bd. 21, Hrsg. Friedrich Hogemann & Walter Jaeschke, Felix Meiner, 1985이다. 이 책은 재판본이다. 앞으로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초판본은 1812년 발간되었고 1826년 헤겔은 초판본이 거의 소진되었다는 연락을 받고(무려 15년 걸쳐 겨우 1000부 정도가 팔렸다니!) 1829년에 들어가서야 계약이 이루어져서 재판을 위해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개정 분량이 상당히 많아서 개정 작업은 1831년에야 비로소 끝났다. 그것도 1부 1권 존재론에 그쳤다. 1부 1권 개정판은 1832년 발간되었다. 안타깝게도 헤겔은 1부 2권 본질론, 2부 개념론은 개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해 여름 헤겔은 콜레라를 피하려 시골 별장에 가서 작업했는데 개강 때문에 베를린으로 돌아오자 콜레라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임석진 교수가 번역한 판본은 초판본이다. 내가 대학원 시절 읽었던 원전은 라슨 판 재판본이다. 임석진 교수의 번역판을 받았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왜 임석진 교수가 재판본이 아닌 초판본을 번역했는지 지금도 의아스럽다. 재판본을 번역했으면, 읽고 인용하는 데 번역본을 참고로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재판본이 상당한 개정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 골격에서 초판본과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번역본을 읽었다고 해서 헤겔 논리학을 오해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

 

이 글을 쓴 게 1812년이니 그 25년 전은 1787이 된다. 이 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2판에 발간되었다. 이 선험철학은 “정신이 자의식이 도달한 고차적 입장”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헤겔이 칸트의 인식론적 혁명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헤겔은 칸트의 인식론적 혁명을 단순히 인식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리학조차도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아직 이런 변화가 실현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2)

헤겔이 논리학의 변화를 기대할 때, 이 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내려오는 일반 논리학 즉 형식논리학을 말할 것이다. 헤겔은 곧이어 이 형식논리학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헤겔은 형식논리학을 “시든 잎사귀”에 비유한다.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솟아오르기 시작한 새로운 정신[이 시대 자유의 정신을 말할 것이다]이 논리학 속에서는 아직 그 흔적을 새기지 못했다. 그러나 정신의 실체적 형식이 변화된 마당에 전시대의 교양의 형식을 보존하려 한다는 것은 전혀 헛된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형식은 이미 뿌리로부터 새로이 움트기 시작한 새로운 싹에 의해서 밀려나 버린 시든 잎사귀와 같다고 하겠다.”(초판 서문, 6쪽)

헤겔이 일반 논리학을 이처럼 조롱하는 이유는 그 논리학이 형식논리학이기 때문이다. 논리학이 형식적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과 같아서, 소위 띄어쓰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일반 논리학’은 띄어 쓰지만 ‘형식논리학’은 붙여 쓰니 말이다.

논리학이 형식적이라는 말은 논리학은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세계로부터 경험을 통해 주어진다. 논리학적 형식은 그 자체로는 내용이 전혀 없는 순수한 것이다. 형식논리학은 하나의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 변형하는데, 표현되는 형식은 바뀌더라도, 내용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각각의 형식은 비록 다르게 보이지만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유클리드의 기하학적 순수 공간에서 도형을 이리저리 이동하더라도 그 도형이 전혀 변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형식논리학을 대신하여 헤겔이 제시하는 새로운 논리학은 “사유를 고찰하는 데서 내용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내용은 자체 내에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오로지 그런 형식을 통해서만 영적 생기를 지닌 내용이 된다.” 거꾸로 “형식 자체는 다만 어떤 내용이 그 속에서 비추어지는 가상[Schein eines Inhalts]으로 다시 말하자면 이 가상[Schein: 내용]에 외적인 것[형식]이 가상[Schein]으로 전환된다.”(2판 서문, 17쪽) [주2]

[주2] 위의 구절 가운데 뒷 문장에서 헤겔은 가상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 문장은 함축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이해하기가 까다롭다. 여기서 ‘가상’이라는 말은 마치 거울처럼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에 대해 마주하고 있는 것 즉 본질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용 속에서 형식이 스스로 떠오르며, 형식은 자기를 내용 속에서 드러낸다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관계가 형식논리학에 대립하는 새로운 논리학의 기본 개념이 된다.

이렇게 “논리적 고찰 속으로 내용을 끌어들인다면”, 헤겔 말대로 논리학은 세계와 독립적인 사유의 법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세계가 되며 거꾸로 “논리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개념, 즉 사태가 된다.”(2판 서문, 17쪽) 그러니 헤겔 말대로 논리학은 세계의 가장 내적인 본질을 밝히는 형이상학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3)

하지만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어떻게 내용에서 형식이 탄생하고, 형식이 내용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전자는 마치 물활론처럼 들린다. 후자는 신의 창조론을 의미한다. 헤겔을 물활론자나 창조론자로 이해하면 쉽겠지만, 그렇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인간인 헤겔이 어떻게 신의 창조과정을 안다는 말인가? 또 물활론이라면 전적으로 자발성 또는 우연성에 맡겨지는 것인데, 자발성을 학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더구나 헤겔은 이런 새로운 논리학이 칸트의 선험철학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당혹하게 된다. 알다시피 칸트는 일반 논리학에서 나온 범주를 경험을 구성하는 범주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칸트 선험철학의 전제는 일반 논리학이다. 칸트는 한 번도 논리학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헤겔은 칸트의 선험철학적 정신으로부터 새로운 논리학 즉 내용을 지닌 논리학으로 전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데도,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으니, 정말로 당황스럽다. 칸트의 철학으로 칸트의 전제를 비판하는 헤겔의 태도는 우리를 아찔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헤겔이 이해하는 칸트의 비밀을 이해해야 한다. 칸트가 말하지 않은 것을 헤겔은 칸트의 뜻으로 알았으니 말이다. 칸트 비밀의 핵심에 범주라는 개념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범주라는 말을 이해하려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나는 범주라는 말 자체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아서, 고대철학을 하는 분을 만나기만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범주론이 무엇을 다루었느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 범주론을 읽으면 되는데, 유감스럽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직접 읽을 자신이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위키피디아를 참조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 범주론’ 항목은 내가 희망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의 물음은 이런 것이다. 사물이나 생물은 유와 종으로 분류된다. 그 최고의 류를 범주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범주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분류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내가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는 10가지다. 범주를 중세에 라틴어로 ‘praedicamenta’라고 부른다고 한다. [주3]

[주3] 어원적으로 범주는 술어라는 말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주어가 될 수 있는 것 곧 실체이다. 중세 번역어에 오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은 전 프래디카멘타와 프래디카멘타로 나누어지는 데, 전자에서는 동의어와 파생어, 주어[subject]에 대해서[of] 말해지는 것과 주어 안에[in] 있는 것의 구분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에 중요한 것은 후자이다. 후자는 다시 네 가지로 구분된다. 주어에 대해 말해지지만 주어 안에 있지는 않은 것과 주어에 대해 말해지지는 않지만 주어 안에 있는 것, 주어에 대해 말할 수도 있고 주어 안에 있기도 한 것, 마지막으로 주어에 대해 말할 수도 없고 주어 안에 있지도 않은 것이다. 이 네 번째가 곧 실체라는 범주가 된다.

이상에서 언급된 것만 보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이 사물을 분류하는 범주를 다룬 것은 아니고 다름 아닌 언어를 분류하는 범주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사실은 열 가지 범주를 다루는 프래디카멘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열 가지 범주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상태, 행동, 능동, 수동이다. 이 열 가지 범주는 절대로 사물을 분류하는 최고 유로서 범주가 될 수가 없다. 이 범주는 우리의 언어의 문법적 범주이다. 판단은 주어와 술어로 나누어진다. 주어가 되는 것이 곧 실체이며, 양은 주어의 외연을 말한다. 질과 관계(형용사) 상태와 행동(동사)은 모두 술어를 문법적으로 분류한 것이다. 시간과 장소, 능동과 수동은 문법적으로 양상을 표현하는 범주가 된다.

4)

이처럼 범주가 문법적 범주라는 사실은 더 나가서 주어가 될 수 있는 실체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 실체와 제이 실체로 나누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제일 실체는 개체다. 여기서 실체는 “주어에 대해 말해질 수 없으며, 주어 안에 있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하나를 실체를 거론한다. 그게 제이 실체라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인간이나 개와 같은 종적 본질이 된다. 이것은 주어에 대해 서술될 수 있는 술어의 일종이다. 그런데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실체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많은 문장에서 종적 본질이 주어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실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은 흔히 사용하는 문장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문장도 자주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처럼 종적 본질을 단순한 보편적 술어와 구분해서 실체에 포함했는데,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용주의적, 경험주의적 철학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원칙에 어긋나도 사실이 그러하면 받아들인다는 정신이다.

그러나 철학자로서는 이런 경험적 실용적 정신에 머무를 수가 없다. 왜 다른 보편적 술어와 달리 종적 본질을 드러내는 술어는 주어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헤겔 형이상학 산책 1-변명[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1-변명1

1)

내 삶에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헤겔 논리학을 이해하는 일이다. 헤겔의 논리학은 헤겔 연구자가 흔히 신의 언어라고 말하는 사변적 언어로 쓰였으니, 그 신을 믿는 신도들의 마음에 이심전심으로 전해져 왔다. 그 비밀의 영역은 일반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내가 철학이라는 학문에 뜻을 두고 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공부하고자 했던 것은 후설 현상학이었다. 현상학에 뜻을 두었던 것은 청년 시절 내 영혼을 사로잡았던 철학이 바로 실존주의이었고 실존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방법론인 현상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했던 시대가 80년대 초이었으니 누구도 시대의 요구에 등을 돌릴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이때 후배 하나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헤겔의 변증법만 제대로 안다면 세상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혁명가 레닌이 철학 노트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데, 아직 그 원전을 찾아보지 못했다. 그 말에 홀려서 헤겔의 논리학을 대하게 되었으나, 솔직히 말해 그건 범인으로선 접근이 불허된 신의 영역이었다.

그로부터 무려 50년이 지나갔다. 아직도 나는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50년 간 헤겔을 연구했음에도 풍월은 커녕 말도 아직 더듬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세상을 들어 올리고 싶다는 야망은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언젠가는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을 이해해, 일반인들도 이 비밀의 영역에 잠시 들러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욕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나이가 많다.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한다. 무엇보다도 눈과 귀와 체력이 무너지고 있어, 얼마 가지 않으면, 더는 읽고 쓰는 것조차 어렵지 않을까 우려한다. 나는 그간 하던 많은 일을 이미 내려놓았다.

남은 힘을 기울여, 나의 아마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작업을 시작하고자 한다. 원래 이 일을 계획하기로는 몇 년 전이다. 같은 헤겔 학도였던 김우철 선생과 헤겔 논리학 본질론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고, 함께 책을 읽는 일이 끝나면, 이 일을 시작하고자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은 코로나로 희생되고 말았으니, 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선생의 죽음과 더불어 그 의욕도 사라졌다. 그간 매달렸던 헤겔 미학에 대한 해설이 끝나자, 논리학의 해설에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되살아났으니, 이게 내가 지닌 운명인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50년간 이책 저책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결과 헤겔의 논리학을 나름대로 약간은 이해하는 바가 생겼으니, 이거라도 남겨 놓으면 후대에 청포를 입고 오는 사람이 있어 딛고 설 계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여 이제 헤겔의 논리학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 없이 늘어놓으려 한다. 먼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변명부터 올린다.

2)

실제 내용은 헤겔 논리학에 관한 설명이지만, 거창하게도 형이상학 산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헤겔이 대학에 처음 강사가 되었던 게 1801년이었다. 그해 겨울 학기에 헤겔이 개설한 강좌의 제목이 ‘논리학과 형이상학’이었다. 오늘날 생각하면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무관할 것처럼 보인다. 형이상학은 세계의 근원적 본질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논리학은 인간의 사유의 일반 원리를 다룬다.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사유는 서로 대립하는 데 왜 논리학이 형이상학과 연관되는 것일까?

논리적으로 사유하기만 한다면, 세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일까? 논리에 맞지 않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런데 논리학을 공부해 본 사람은 안다. 나는 철학과 입학해서 처음 논리학을 배웠는데, 거의 기계적인 작업이었다. 차라리 나중에 배운 기호 논리학의 경우 수학적 추론의 흥미라고 끌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2000년간 내려왔다는 논리학은 정말 따분한 작업이었다.

논리학은 타당한 사유와 부당한 사유를 구분하고 자주 사람들이 빠져드는 부당한 오류 추리를 막을 수 있다는 실용적 목표가 있기는 했으나, 그런 실용적 목적이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왜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법을 모르는 사람이 말을 더 조리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논리학을 모르더라도 더 논리정연하게 사유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런 사람이 세계의 본래 모습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철학 하는 사람의 글을 보면 문장이 비논리적인 경우가 더 많다. 철학을 하다 보면 자연히 비논리적 문장을 쓰게 되는 것은 철학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철학처럼 비논리적인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위대한 철학자 헤겔이나 하이데거의 문장을 읽어보라. 하다못해 논리 철학의 대가인 콰인의 논문을 읽어보아도 논리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를 내보이면서 이게 둘로 보이는 사람이 철학자라고 자주 우스개처럼 말해진다.

그런데 헤겔은 논리학과 형이상학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보았던 게 틀림없다. 그러기에 강의 제목을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도대체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3)

헤겔은 다음 학기인 1802년 여름학기 강의 예고에서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의 저서를 발간하겠다고 했다.  그는 1804/5 강의 수고 ‘논리학,  형ㅇ이상학, 자연철학’을 남긴다. 아마도 정서한 것을 보니, 이게 발간 원고로 보인다. 어떻든 발간되지는 않았다.  이 수고는 헤겔 서고판, 전집7권에 실려 있다. 그 제목만 보면, 훗날의 논리학과 자연철학의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이 누락되어 아직은 사상이 형성 중이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1805년에 헤겔은 그 대신 철학 체계 전체를 건드리는 저서를 발간할 계획을 세웠고 그 서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 서문이 아주 길어졌고 철학 체계에 관한 저서는 포기되면서 그것이 1807년 발간된 정신현상학이 되었다.

1807년 헤겔은 예나를 떠나 밤베르크로 이주해 밤베르크 신문을 편집했다. 1807년 밤베르크 신문에 실린 정신현상학 광고를 보면, 헤겔은 곧이어 논리학과 자연철학, 정신철학을 포괄하는 철학 체계를 발간하겠다고 했으나, 이 계획은 계속 미루어진다.

헤겔은 1808년 11월 밤베르크 신문사를 떠나 뉘른베르크 김나지움 교사가 되었다. 이 시기 헤겔은 니트함머의 권고를 받아서 김나지움에서 강의를 위한 논리학 교재를 계획했다. 헤겔은 니트함머의 권고에 대답하면서 시간을 주면 먼저 자기의 논리학을 완성한 다음에 교재를 만들겠다고 했다.

김나지움에서 철학 강의를 위해 교재(수고)가 작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부분이 논리학에 관한 것이다. 다행히 이 논리학은 국내 위성복 교수가 번역해 ‘김나지움 논리학 입문’(용의 숲, 2008)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했다. 그 제목만 보면 나중에 등장하는 논리학과 기본적 구조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으니(객관 논리 존재론과 본질론, 주관 논리 개념론), 이 시기에 이미 어느 정도 헤겔의 논리학의 골격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그가 논리학을 위한 작업을 그치지 않았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1811년 니트함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 해(1812년) 부활절까지는 논리학이 발간될 것이라는 희망을 적어놓았다. 실제 1812년 부활절에 발간된 것은 겨우 논리학 1부 1권 존재론에 그쳤다. 존재론과 함께 보낸 본질론은 출판사 사정으로 그해 년 말에 가서야 발간되었으나, 개념론은 헤겔이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이전하는 1816년에 가야 발간되었다. 5년이나 뒤늦게냐 2부가 발간되었다는 사실로 보면, 헤겔이 좀 서두른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1811년 헤겔은 결혼했고, 그의 혼외 자식인 루드비히를 부양하기 위해 프로만에게 양육비를 보냈어애 했고, 김나지움을 벗어나 대학으로 나가고 싶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저서였고, 그 저서는 당시 학계의 분위기 상 논리학이나 형이상학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가 쓸데 없는 고민을 한 것 같다.

4)

흥미로운 것은 헤겔이 1812년 초판 논리학을 발간했을 때, 이제 더는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논리학이 더는 형이상학이 아니라는 뜻인가? 1812-16년 사이 발간된 그의 논리학 초판 서문이나 서론을 읽어보면, 기존의 형이상학이 사라졌다는 한탄은 있지만 그렇다고 논리학이 형이상학이라는 주장은 명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논리학은 이제 학문과 관련해서 제시된다. 즉 논리학은 다른 구체적 학문 즉 자연철학이나 정신철학과 구별되는 일반적인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형이상학 역시 존재로서 존재 즉 일반적 존재를 다루는 학문이므로, 헤겔의 논리학이 기존의 형이상학인 것은 틀림없다고 보겠다.

논리학이 발간된 후 그가 스스로 쓴 출간 광고문에는 논리학이 새로운 형이상학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철학에 일찍이 너무 성급하게 추방된 신비를 진정하게 해명된 형이상학을 통해 다시 부여하고”

헤겔의 논리학 1부 존재론과 본질론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면,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존재와 본질을 다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은 명백히 형이상학적인 책이다.  이런 1부 객관 논리학에는 기존의 논리학과 관련된 어떤 부분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2부인 주관 논리학의 경우는 그 첫째 장에서 개념과 판단, 추론을 다루므로, 굳이 말한다면 논리학이라 해도 되겠지만, 존재와 본질을 다루는 객관 논리학을 논리학이라 부른 것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명백히 형이상학 책에 대해 논리학이라는  말로 부르니, 공자가 알면 정명론을 부정했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것을 통한으로 간직한 홍길동이 생각난다. 형이상학을 형이상학이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아니면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고 나로서는 헤겔이 형이상학이라는 말 대신 논리학이라는 말을 선택한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된다. 헤겔로서는 형이상학이나 존재론보다 논리학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 점을 앞으로 말하려 하나, 일반인이 이해하기로는 내용상 논리학보다는 오히려 형이상학이라는 말로 규정하는 것이 더 쉽게 다가갈 것 같다. 그래서 논리학이라는 말 대신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는 것을 밝히느라 글이 좀 길어진 것 같다.

영화 패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영화 패싱

1)

‘패싱’이란 말은 흑인이 백인 행세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가 넬라 라슨의 동명 소설 패싱을 영화화한 것이다. 넬라 라슨은 1929년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시기는 미국 산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흑인 중산층이 형성된 시기다. 넬라 라슨은 어머니가 백인이고 아버지가 흑인인데, 백인 어머니가 백인과 재혼하여 백인 가정에서 살았다. 그녀의 경험이 이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

영화 감독은 레베카 홀인데, 이 작품이 그녀의 첫 작품이라 한다. 넷플렉스 오리지날로 발표됐다. 영화는 소설을 각색하면서 구성을 약간 바꾸었지만, 그 흐름이나 중요 장면은 변함이 없이 소설에 충실한 편이다. 다만 소설에서는 결말을 모호하게 처리했지만, 영화는 결말을 명백하게 함으로써 감독의 입장을 드러낸다.

영화 패싱은 빛에 관한 영화다. 두 명의 여인 아이린과 클레어가 등장한다. 둘 다 흑인이지만 피부가 희다. 클레어는 패싱을 통해 부유한 백인 남자 존과 결혼했다. 존은 남아프리카 출신이며 흑인을 혐오하며 즐겨 검둥이라는 모욕적 언어를 사용한다. 아이린은 비록 패싱에 성공했지만 백인 세계 속에서 외롭고 또 외롭다.  

아이린은 흑인 남자 브라이언과 결혼해 두 아이가 있다. 브라이언은 성공한 의사이고 아이린은 중산층의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 다만 브라이언은 흑인이 구타당하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미국을 탈출해 브라질로 가고 싶어 하지만, 아이린은 브라이언을 가로막아 왔으며 미국 중산층 백인이 누리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분노한 브라이언이 언제 안온한 삶을 파괴할지 내심 두려워한다.

2)

아이린은 어릴 때 뉴욕 할렘가에서 클레어와 같이 자라나 가까웠으나, 클레어가 백인 아버지가 죽은 다음 백인 고모의 집으로 간 이후 만나지 못했다. 어느 여름날 햇볕이 뜨거워 숨 막히던 아이린은 백인이 드나드는 호텔의 찻집으로 도피한다. 거기서 12년 만에 클레어를 만난다.

영화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색깔을 제거하고 흑백 장면으로 일관한다. 전체 장면에서 빛과 어둠이 강하게 대조된다. 한편으로 빛과 어둠은 삶의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을 의미한다. 백인이 드나드는 호텔 찻집은 아주 밝은 색이고 반면 아이린이 사는 집은 어둠이 깔려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백색의 빛은 너무나 밝아서 사람을 강박하는 것 같다. 뜨거운 여름 햇볕은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 정도다. 영화에서는 검은색도 빛을 낸다. 흑인의 재즈 파티에서 감독은 검은색을 많이 쓰는데, 이때 검은색은 자유로운 생명의 리듬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마치 아프리카의 검은 숲을 의미한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패싱에 대해 비판적이며 심지어 경멸적이다. 패싱에 관해 아이린은 자기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아이린은 늘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있다. 그녀는 흰색의 드레스와 모자를 쓰고 다니며, 집안의 가구나 장식 등은 백인 중산층의 집안의 모습과 다름없다. 아이린의 내면에는 백인 중산층의 삶에 대한 선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반면 클레어는 “위험의 모서리에 올라서 있는, 언제나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뒤로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는” 성격이다. 가난한 백인의 딸로 자라나고 백인 고모들의 하녀처럼 산 클레어는 적극적으로 패싱을 통해 흑인의 세계와 단절하고 백인과 결혼하여 백인의 삶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클레어는 행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백인의 백색의 빛 속에 가두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3)

클레어는 다시 흑인의 삶을 되찾고자 한다. 그 때문에 어릴 때 친구인 아이린을 통해 할렘의 세계로 들어오고자 한다. 클레어는 아이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클레어에게 흑인의 삶은 자신의 고향이며, 그것에 대한 향수는 “통증과 같이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클레어에게는 흑인의 눈이 있다. 그 눈은 “신비스럽고도 무엇인가를 감추는” 눈이다.

내가 이 영화를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클레어의 내면에 있는 욕망이 단순히 흑인적인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의 삶에 있는 자유로운 생명의 힘이 아닐까 한다.

영화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클레어가 흑인 세계로 들어오자, 아이린은 위험을 느낀다. 아이린은 브라이언이 클레어에게 매혹당할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린은 자신이 지키조하 했던 중산층의 삶이 깨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아이린은 클레어에게 흑인을 혐오하는 그녀의 남편이 클레어의 정체를 알면 어떻게 하냐면서 클레어를 막으려 했으나, 클레어는 이미 결심한 게 있다. 클레어는 아이린에게 그러면 남편을 떠나 흑인의 세계로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아이린은 그게 더 두렵다. 그러면 자기는 브라이언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아이린이 남편인 브라이언과 클레어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절망하는 장면이다. 아이린의 시선은 창밖을 향한다. 밝은 창문을 뒤로 하여 브라이언과 클레어의 모습은 어둡다. 이 어둠은 한편으로 아이린의 시선을 가로 막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브라이언과 클레어를 가깝게 묶어주는 힘이다.   아이린은 두 사람을 보고 절망하지만 클레어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 오고 있다.  
출처: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Film2&document_srl=4048076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마침내 일이 벌어진다. 아이린은 클레어를 초청하지 않았지만, 브라이언이 클레어를 초청했다. 파티에서 브라이언은 클레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혼자 소파에 앉아 브라이언과 클레어를 보던 아이린은 절망해 창가에 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운다. 외로워하는 아이린을 보고 클레어가 아이린이 있는 창가로 다가갔을 때, 클레어의 남편 존이 파티 장소에 찾아와 클레어에게 사기꾼이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다가간다.

갑자기 카메라는 창밖에 떨어진 클레어를 멀리서 비추어준다.  클레어의 등 위로 백색의 눈이 덮인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단순한 아이린의 실족으로 처리하고 만다. 그러나 소설 작가나 영화 감독은 이 사실을 다르게 설명한다.

클레어가 떨어지기 전에 아이린은 창가에 있는 클레어에게 손을 뻗었는데 소설에서는 그게 클레어를 보호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클레어를 민 것인지 모호하게 했다. 소설에서 아이린은 자신이 혹시나 민 것이 아닐까 스스로 의심하지만, 전체 흐름은 오히려 클레어가 스스로 뛰어내린 것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아이린의 손이 확실히 클레어를 민 것으로 보이고, 아이린이 자기 손을 감추려 하는 모습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아이린의 죄의식을 분명하게 한다.

4)

클레어의 죽음은 물론 억압적인 백색의 지배를 의미한다. 영화는 처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백색으로 시작해서 점차 그림자가 들어오면서 사물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끝날 때 영화는 다시 사물의 모습이 흐려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백색으로 되돌아간다.

클레어의 죽음은 또 다른 의미층을 지니는데, 그것은 클레어의 실패이다. 클레어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 실패는 백인 세계 속에 성공적으로 패싱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백인의 세계 속에 녹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힘이 그 내부에 은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클레어의 눈 속에 감추어진 신비한 무엇이다. 곧 자유로운 생명의 리듬일 텐데 그 힘이 백인 사회에 대해 분노를 억누르고 있던 브라이언을 매혹한 힘이다. 

그러나 이 힘은 동시에 클레어가 백인의 삶에서 다시 흑인의 세계로 되돌아오도록 강제했던 힘이다. 그 힘은 현실 속에서는 결코 자신을 실현하지 못하는 자기 파괴적인 힘이니, 클레어의 삶은 처음부터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아이린의 삶은 백인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클레어처럼 백인의 세계 속으로 잠입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삶 전체는 백인의 삶을 모방한다. 아이린은 말하자면 문화적 차원에서 패싱한 셈이다.

현실에서 아이린의 삶은 성공했다. 그녀는 백인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실현했다. 그 때문에 클레어는 아이린을 존경한다. 하지만 아이린의 삶은 자신의 본질을 억누르고 제거한 결과 얻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아프리카의 숲을 버렸다. 그리고 살아남은 것이지만, 그 삶이란 결국 백인의 세계에 종속된 삶일 수밖에 없다.

소설 작가는 소설에 들어가기 전에 흑인 시인 카운티 컬런의 시 구절을 소개한다. 여기 인용해 보겠다.

3세기 떨어져 있다네

그녀의 아버지가 사랑했던 풍경들로부터

향기로운 작은 숲과 계피 나무

나에게 아프리카란 무엇인가?

우리도 마침내 아이린을 따라 백인의 세계에 도달했다. 민주화와 근대화를 이루었다. 20세기 초 흑인 사회가 할렘 르네상스를 일으켰듯이 우리 역시 백인 문화를 소화한 한류를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본래 우리의 고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소설가 넬라 라슨은 검은 생명의 리듬에서 자신의 고향을 찾았다. 우리에게 고향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헤겔미학산책60-셰익스피어 비극과 몰리에르 희극(최종회)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60-셰익스피어 비극과 몰리에르 희극

 

1)

이제 헤겔의 극시론 가운데 마지막 부분인 낭만주의 시대 비극[1]과 희극을 살펴 볼 차례다. 그는 여기서 근대로 들어가는 입구인 바로크 시대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프랑스 혁명 이후 헤겔 당대에 등장한 괴테, 실러 등의 극시를 곁들여서 다루고 있다.

우선 근대 비극을 다루자면, 헤겔은 고전 희극을 분석할 때도 그러했지만 근대 비극의 원리를 파악할 때도 고전 비극에 비추어서 파악한다. 근대 비극의 첫 번째 원리는 근대 비극에서 인물은 주관적 개인일 뿐 더 이상 고전 비극에서처럼 실체적 목적을 실행하는 생동적 개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대 비극의 인물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처럼 사랑과 같은 주관적 목적을 위해 행위할 수도 있고, 아예 어리석음, 질투나, 야망과 같은 범죄적인 목적을 추구하기도 한다. 또는 괴테나 실러의 시민극에서 보듯이 그 주인공이 물론 국가나 일반적 선을 위해 행위할 수도 있지만 추상적인 일반성에 그치면서 그것을 실행하는 수단은 “외적이며 인위적이어서”[2] 여전히 주관적 개인을 벗어나지 못한다.

 

2)

두 번째 원리로 그럼에도 근대 비극의 인물은 고전 비극의 인물과 닮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고대 인물이 자신의 목적을 정당하다 믿으면서 주저 없이 단호하게 행동하는 파토스적 성격이듯이 근대 비극의 인물 역시 행동에 있어서 철저함을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현실 앞에서 주저하면서도 끝내 “내적으로 굳건하고 일관된, 자기 자신과 자기목적을 단호하게 견지하며”[3], 그것은 어쩌면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맹목적 광기처럼 보인다. 이런 인물은 “심지어 몰락에 이르러서도 꺾임 없이 강인하고 태연하다.”[4] . 그 힘은 거의 무한성에 가까운 힘을 보여준다. 헤겔은 이를 ‘성격적 위대성’이라 규정한다.

이런 인물은 그런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그런 목적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인물은 자연적으로 태어나기를 그런 목적을 추구하는 성격을 지녔다. 그는 근대 사회에 등장한 다양한 성격 가운데 하나이지만 특별하게 강한 의지를 지닌 존재일 뿐이다

세 번째 원리는 우연적 충돌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런 주관적 목적의 대립 때문에 갈등하게 된다. 이 대립은 고전 비극에서처럼 실체 자체의 근본적 분열에 기인하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이 대립은 외적인 여건과 외적 우연성의 작용이다. 이 우연성은 근대 비극의 인물에게는 “냉혹하게 다가오며 범죄적 본성을 지니기도 하는”[5] 운명이다.

헤겔은 근대 비극에 등장하는 서로 대립하는 다양한 성격의 차이를 세 가지로 파악한다. 첫째는 “사랑과 명예, 명성, 지배욕, 포악함” 등과 같은 특정한 따라서 추상적인 열정들 사이의 대립이다. 헤겔은 이런 추상적 성격을 구체적인 생동성 속에서 표현한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 그는 그들이 자신을 마치 예술작품처럼 이론적 객관적으로 관조하도록 만드는 이미지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그들 자신의 자유로운 예술가로 만들며… 그들은 개별적, 현실적이며 직접적 생동적이고 또 대단히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요소 요소에서 고상함과 괄목할 만한 표현력, 내면의 깊은 감정, 순간적으로 산출되는 이미지와 비유의 창안력, 수사능력을 갖추고 있다.”[6]

 

두 번째는 인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적 분열이다. 인물은 이중적 열정에 속하고 있어서 이 이중성은 인물을 “ 하나의 결단, 하나의 행동으로부터 또 다른 결단 혹은 행동으로 내몬다.”[7] 구체적인 예로서 괴테의 청년기 작품 ‘괴츠’에 나오는 바이스링엔, ‘스텔라’에 나오는 페르난도, ‘클라비고’의 클라비고 등을 들고 있다.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도 마찬가지 작품이다.

헤겔은 셰익스피어에서 주로 발견되는 첫 번째 종류의 대립을 보여주는 극시에 대해서는 지극히 찬양적인 반면, 근대 비극에서 자주 발견되는 두 번째 경우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4)

네 번째 원리는 이런 파국이 도래하기는 우연적이지만, 이미 자연적 성격 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 비극의 결말에서 주인공에게 도래하는 파멸은 세속적인 것의 무상함만을 보여주거나 공허하고 잔혹하고 외적인 슬픔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 힘은 이미 주인공의 내적 본질 속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며 그 본질이 실현되는 결과이다. 우연성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결과가 발생하게 하는 외적인 계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햄릿에서 결말에 그가 우연하게 죽기 이전에 이미 그의 죽음은 그의 성격 속에 예고되어 있다. 햄릿에게 ‟유한성의 모래톱은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줄리엣의 죽음 역시 줄리엣에게 예고되어 있으니, 헤겔에 따르면 줄리엣은 ‟우연한 세계의 골짜기에 있는 연약한 장미처럼 거친 폭풍우에 의해 … 꺾이게”[8]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근대 비극의 대단원은 고전 비극의 대단원과 닮았다. 근대 비극에서 주인공의 몰락은 외적인 우연성을 계기로 하니, 그것은 냉혹한 운명이다. 그러나 냉혹한 운명이 객관적 정의인 한, 비극의 인물은 파멸에 이르러 마침내 객관적 정의를 자신에게 정당한 정의로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인물은 내적 상태의 변화를 겪는다. 이런 상태 변화가 곧 비극의 목적인 ‘불멸의 지복’이다. 이런 대단원은 고전 비극에서 분열된 실체가 마침내 상호 균형을 얻으며 주인공은 자신에 대립하는 파토스를 긍정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회복되는 것이 후자에서는 실체적 통일성이지만, 전자에서는 소외된 사회적 정의라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성격의 주관성에 곁들여 개인이 자신의 개인적 운명과 화해했음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 즉각 요구된다. 이러한 만족은 심정이 자신의 현세적 개성의 몰락의 대가로 한층 높은 지복이 보장되었음을 인지할 경우에는 종교적일 수 있고 … 또한 모든 관계 및 불행에 맞서 자신의 주관적 자유를 불굴의 에너지 속에서 보존할 경우에는 형식적이되 현세적일 수 있다.”[9]

 

5)

극적 행위가 주관적 목적을 따라서 일어나고, 그것이 벌이는 충돌은 우연적인 상황에 의해 일어나는 것일 뿐이라는 점에서는 근대 비극은 오히려 그리스 비극보다는 그리스 희극과 더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 희극과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근대 비극이 전혀 희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런 극적 인물의 자멸을 통해 민족적 실체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격의 충돌과 파멸은 우연적인 사건이지만, 그 우연성은 내적 필연성의 실현이라는 근대비극의 특징은 사실 근대 사회의 본래적 모습이다. 근대 사회는 시장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소외된 사회다. 각자는 주관적 정의에 따라 행동하면서 그 행동의 결과는 시장에서 상호 교환되고, 최종적으로는 이런 상호 교환을 통해 각자에게 정당한 객관적 정의가 실현된다. 이런 정의는 각 개인에게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지배로 다가오기에 이 정의는 우연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정의는 본래 그 자신에 내재하는 정의의 실현일 뿐이며 그런 점에서 이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러므로 고대 희극에서 우연적 충돌이라는 개념과 근대 비극에서 우연적 충돌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고대 희극에서 도시 국가가 해체된 이후 개인의 인격은 출현했지만 개인은 전적으로 맹목적인 충돌이 벌어지는 속에서 살아간다. 결국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힘에 의해 최종적으로 승리한 황제의 자의이다. 개인은 이런 황제의 자의가 보여주는 변덕스러운 지배에 전전긍긍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인격이 실현되는 자유 속에서 자신을 낙천적으로 긍정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모습이다. 다가오는 사회가 바로 황제의 변덕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고전 희극의 등장 인물이 낙천적인 가운데서도 어두운 기미를 보인다.

반면 근대 비극에서 이미 새로운 상호작용적 시장 사회가 출현했다. 이 시장 사회는 더 발전되면서 근대 사회로 이행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연적 충돌은 비록 그 자체로서는 비극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근대 비극에서 인물의 몰락은 보이지 않는 힘인 사회적 정의가 자기를 관철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근대 비극의 인물은 파멸 속에서도 오히려 긍정적이다. 햄릿이나 줄리엣의 파멸이 전적으로 어둡고 비통한 것만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히려 햄릿이나 줄리엣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헤겔은 “우리를 엄습하는 이 쓰라림은 고통스러울 뿐인 화해, 불행 속의 불행한 지목이다”[10]라고 말한다.

헤겔은 근대 비극의 결말이 꼭 불행으로 끝날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차피 우연적 충돌에 의해 대단원이 내려진다면 행복한 결말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근대 사회에서 주관적 정의의 몰락은 곧 객관적 정의의 실현이니, 비극에서처럼 객관적 정의가 암시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현되어 구체적인 모습을 띄고 나타나더라도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11]

 

6)

마지막으로 헤겔은 근대의 희극을 다룬다. 그는 근대의 희극은 희극이라기보다 익살극이라 한다. 대표적으로 몰리에르의 희극을 볼 때, 거기서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수행하지만 자기가 기대하는 목적과 반대되는 결과에 이른다. 고대 희극과 달리 주인공 자신은 이런 가운데서 자기를 긍정하는데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불만에 빠져 다시 자기의 목적을 획득하려고 허우적거리는데, 이것은 관객의 비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헤겔은 몰리에르의 근대 희극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더 높이 평가한다. 그 주인공은 몰리에르 식으로 비웃음과 풍자를 터뜨리도록 하지 않으며 마치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처럼 낙천성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양자의 차이점을 간과할 수 없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리스 사회의 해체기에 살았고 그가 부딪힌 것은 맹목적 운명이 지배하는 사회였다면 셰익스피어는 마침내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 완성되는 근대 시장 사회를 향하여 다가가는 시대에 살았고 이 시장 사회는 비록 소외된 방식이기는 하지만 객관적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파네스의 주인공이 낙천적이지만 몰락의 비애감을 드러낸다면,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은 낙천적이면서 밝고 세속적으로 긍정적이다.

 

“온갖 실패와 그르침을 괘념하지 않는 심정의 유쾌함, 확신에 찬 방종, 자만, 근본적으로 즐거운 숙맥 내지는 주관성 일반의 대담성이 다시 기조를 형성하며, 또한 이를 통해 한층 깊은 충만함과 내면성을 갖는 유머 속에서 고대인의 경우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분야에서 가장 완벽하게 성취했던 것을 다시 산출한다.”[12]

 

헤겔이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헤겔이 실제 예로 들고 있는 폴스타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폴스태프는 셰익스피어의 <윈저 성의 명랑한 부인들>(1602년)이라는 소극의 주인공이다.

간단하게 그 줄거리를 소개한다. 전쟁이 끝나고 윈저로 돌아온 존 폴스태프 경은 배 나오고 뚱뚱하고 비겁하고 변명 잘하고 떠벌리기 좋아하고 낭비벽 심하고 무일푼인 술주정꾼이다. 그는 남편 있고 재력 있는 두 여자, 포드 부인과 페이지 부인을 유혹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오히려 두 부인과 그들의 남편의 계략에 빠져 모욕당하고 만다. 그는 광주리에 실려 더러운 강물에 던져지기도 하고, 하녀의 모습으로 변장해 간신히 빠져나가기도 하며, 숲에서는 장난꾸러기 요정들의 습격을 받는다.

폴스태프는 자신의 사악한 성격을 따라서 좌충우돌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거리를 취하고 스스로 자신을 우스꽝스럽고 가련한 존재로 여기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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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60회에 걸친 헤겔미학 산책을 종료한다.


[1] 헤겔은 근대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비극을 근대 비극 또는 ‘낭만적 비애극’이라고 지칭한다. 그가 ‘낭만적 비애극’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벤야민에서처럼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대 흔히 비애극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으므로, 그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그저 낭만주의 시대 또는 근대 비극이라는 이름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2] 미학강의 3권, 564쪽

[3] 미학강의 3권, 570쪽

[4] 미학강의 3권, 572쪽

[5] 미학강의 3권, 571쪽

[6] 미학강의 3권, 568쪽

[7] 미학강의 3권, 569쪽

[8] 미학강의 3권, 573쪽

[9] 미학강의 3권, 572쪽

[10] 미학강의 3권, 573쪽

[11] 미학강의 3권, 573쪽 참조

[12] 미학강의 3권, 578쪽

헤겔미학산책59- 그리스 희극, 아리스토파네스와 발자크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59- 그리스 희극, 아리스토파네스와 발자크

 

1)

앞에서 헤겔이 제시한 그리스 비극의 기본 특징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의 이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 그리고 니체의 비극론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았다. 이제 극시의 유형 가운데 두 번째 유형인 그리스 고전 희극에 관해 살펴볼 차례다. 헤겔은 희극의 특성을 주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을 중심으로 파악한다.

 

2)

헤겔에서 그리스 시대 비극에 대립하는 희극은 비극의 특성과 대조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헤겔은 그리스 희극의 특징을 세 가지 요소로 들고 있다. 첫 번째 요소는 희극에서 주인공은 더 이상 실체적 목적을 위해 행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주관적 목적을 위해 행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대표적 예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이라는 희극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자기 빚을 없애기 위해 변론술을 배운다.

두 번째 요소는 주인공은 설사 실체적 목적을 실행하더라도, 지극히 취약한 무력한 수단을 통해 수행할 뿐이다. 이런 예 역시 아리스토파네스에서 찾을 수 있는데, 헤겔은 ‘뤼시스트라테’을 들고 있다. 여기서 여인은 전쟁을 없애기 위해 남자들과의 성관계를 거부한다.

세 번째 요소는 우연적 사건이다. 희극적 주인공은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몰락은 비극에서처럼 인륜적 실체의 분열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몰락은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이나 수단 자체가 본래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며, 이런 허망한 것은 우연한 충돌을 통해 청산될 뿐이다. 주인공의 자멸을 통해 다시 회복되는 것은 곧 실체적 힘이다.

 

“[희극의] 세 번째 요소를 이루는 것은 외적 우연들의 사용인데 상황들은 이것들의 다양하고 특이한 분규를 통해 출현한다. 그리고 이 상황 속에서 목적들과 그 실행, 내적 성격과 그 외적 상태들은 희극적 대조를 이루며 또한 마찬가지로 희극적으로 해결된다.”[1]

 

희극의 이런 특징은 아리스토파네스의 대표적 희극 구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인공 스트렙시아스는 돈을 밝히고 색을 즐기는 전형적으로 세속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사치스러운 아내와 말 경주에 탐닉하는 아들 때문에 큰 빚을 지고 파산 직전에 있다.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빚쟁이에게 돈을 갚지 않는 방법을 찾는다.

스트렙시아스는 “현명한 영혼을 가꾸는 학원”의 소피스트 두목인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변론술을 배운다. 그 변론술은 “옳든 그르든 간에 이기는 법을 가르쳐 준다.”[2]  그들이 모시는 신은 이제 제우스가 아니라 구름이다. 그 여신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3] 신이며 궤변을 가르치는 신이다.

그러나 스트렙시아스는 워낙 머리가 나빠 소크라테스의 변론술을 배우지 못한다. 스트렙시아스는 대신 아들 페이딥피데스를 보내 싫어하는 그를 억지로 배우게 한다.

드디어 빚쟁이가 나타나자 스트렙시스는 소크라테스로부터 배운 황당한 것을 질문하면서 어리둥절한 빚쟁이를 무식하다고 하면서 쫓아내고 만다.

 

3)

그런데 아들인 페이듭피데스에게 스트렙시스가 얻어맞는다. 스트렙시스는 술자리에서 아들에게 시모니데스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는데, 아들은 그 노래가 시대에 뒤떨어진 노래이고 요즈음은 에우리피데스의 노래를 부른다고 거부한다. 스트렙시스가 아들에게 화를 내자, 아들이 그를 때린 것이다. 스트렙시스는 아들을 고발한다고 날뛰지만 아들은 소크라테스로부터 배운 논증 방식을 써서 그의 주장을 꺾어놓는다.

마침내 스트렙시스는 소크라테스가 가르친 지식이란 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렇게 한탄한다.

 

“아, 바보 천치. 나는 돌았어. 소크라테스 덕택으로 제신을 저버리려 하다니. 하지만 오 헤르메스님, 저를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고 나를 벌하지 마시며 지껄이고 수다를 부리는 미친 저를 용서하십시오.”[4]

 

희극은 그가 소크라테스가 주관하는 학원의 지붕에 불을 지르면서 끝난다.

이상의 극에서 잘 보듯이, 주인공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술을 통해 돈을 갚지 않으려는 목적을 추구한다. 그는 성공하는 듯했지만, 아들이 동일한 수단으로 그에게 대항함으로써 자멸하고 만다. 그가 기대했던 아들이 오히려 그를 파멸시킨다는 것은 우연적 상황의 중첩이지만, 희극적 대조를 보여준다. 극은 주인공이 실체성에 호소하면서 끝난다.

 

3)

이상의 내용을 보면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실체적인 것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스트렙시스가 소크라테스의 학원의 지붕에 불을 지르면서 “횃불이여, 타오르는 불길을 뿜는 것은 네 의무다”[5]라고 외칠 때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런 심정이 노출된다.

헤겔 역시 희극의 이런 실체성을 인정한다.

 

“즉 희극의 묘사를 통해 이를 테면 즉자 대자적으로 이성적인 내적으로 전도되고 붕괴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되며 오히려 반대로 어리석음과 불합리, 잘못된 대립과 모순들은 현실에서도 승히할 수 없으며 또한 궁극적으로 존속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6]

 

그런데 그리스 희극 작가가 등장할 시기에 이미 그리스 도시국가라는 실체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국가이면서도 혈연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민족국가인데, 초기에 양자는 상호 보완적이었다. 즉 국가는 개인으로 해체되는 경향을 혈연이라는 자연적 통일성을 통해 단결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런 국가에서 개인의 자립성이 심화되면서 혈연적 통일성은 상실되고, 국가는 개인으로 해체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등장하는 것이 도시 국가 사이의 계급적 분열, 도시 국가 사이의 내전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 희극 작가가 인륜성, 신, 진리의 복권을 주장한다면 이것은 이미 사라진 과거로 돌아가려는 복고적 경향성을 의미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철학이 스파르타를 이상화하며, 내적 조화와 통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복고성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아리스토파네스도 희극에서 최종적으로는 실체적인 것의 복권을 주장했다면, 그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복고적이라는 말이 되는 것일까?

헤겔은 아리스토파네스 및 그리스의 희극을 이와 같이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 점은 그가 제시하는 희극의 개념과 관련된다.

 

4)

헤겔은 희극을 논하면서 처음부터 ‘우스꽝스러운 것[Laecherliche]’과 ‘희극적인 것[Komische]’을 구분한다. 그 어느 것이나 토대가 되는 것은 곧 ‘상반적인 것’이다. “현상이 자체 내에서 자신의 스스로 지양되도록 만드는 모순, 목적이 그 실현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사장하도록 만드는 모순”, 또는 “어리석은 난센스, 우둔함”이나 “진부하고 몰취미한 것” 마지막으로는 “극히 중요하고 심오한 것들도…일상적 관점과 모순되는 완전히 무의미한 측면이 보이는” 등[7]의 현상은 모든 희극의 토대가 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희극의 토대는 대체로 웃음에 관한 부조화 이론가[8]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풍자 되고 조롱 되면 헤겔이 말하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는데, 이는 그런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 즉 작가나 관객이 자신이 우월하다는 입장에서 그런 현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9]. 즉 이 경우 “웃음은 만족스러운 영리함의 표현… 즉 그들이 현명하기도 하다는 표시일 뿐이다”[10]

앞에서 예로 들었듯이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은 실체적인 것, 진리, 신을 대변하면서 그의 극중에 등장하는 사람들 즉 그리스 시민들이나 그 정치적 지도자인 소피스트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대체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이런 풍자와 조롱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헤겔은 그리스 희극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니라 희극적인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희극적인 것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헤겔에 의하면 희극적인 것은 자멸하는 개인을 조롱하거나 풍자하지 않는다. 우수꽝스러운 것에 대립하는 희극적인 것에 관한 헤겔의 개념은 프로이드나 바흐친 등으로 이어지는 웃음의 해방이론이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로이드는 억압된 무의식이 농담이나 웃음으로 표출된다고 했다. 바흐친은 중세에서 억압된 민중의 내적 욕망이 다양한 익살극으로 분출한다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중에서 주인공은 자멸하면서도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낙천성을 지니고 있으니, 희극적 개인은 이를 통해 자기 확신 속에서 평온하며 정신의 절대적 자유, 명랑성을 획득한다고 말한다. 자멸하는 개인의 낙천성, 그것이 헤겔이 말하는 희극적인 것인데, 이런 그 낙천성은 감추어진 욕망의 분출이며 이른바 실체의 세계라는 억압적 질서에 대한 반항이 아닐까 한다. [11]

 

“무릇 희극적인 것에는 그 자신의 모순을 철저히 극복하여 이를 테면 그 속에서 괴롭고 불행하게 머물지 않는 주관성의 끝없는 낙천성과 자기 신뢰, 그 희열과 편안함이 속하며 또한 자기 확신에 찬 이 주관성은 그 목적과 실현의 해체를 감당할 수 있다.”[12]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이 진력하는 유한성에 진지하게 매이지 않는다는 점, 오히려 그 위로 넘어가며, 또한 실패와 상실을 당하고서도 내적으로 공고하고 확신에 차 있다는 점을 통해 스스로를 한층 높은 본성들인 것으로 공표한다.”[13]

 

5)

이런 점에서 헤겔은 희극적 개인은 “비극의 종착점을 즉 내면에서 절대적 화해를 구한 밝은 심정을 자신의 토대이자 출발점으로 삼는다”[14]고 한다. 비극의 종착점이라면 예를 들어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와 같은 존재를 말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 저지른 죄를 짊어지고 자신의 눈을 찔러 처벌함으로써 마침내 자기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며 이를 통해 그는 복수의 여신의 추적을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는 존재를 말할 것이다.

그가 여기서 깨닫는 것은 곧 자신의 유한성의 한계이며 거꾸로 말하자면 이를 통하여 무한한 신적 주관성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 무한한 주관성은 곧 새로이 등장하는 시대의 신 즉 기독교적 신의 모습이다.

 

“그의 먼눈은 밝아지고 그의 사지는 쾌유되어” “죽음 속에서 이러한 변용은 … 현대적 의미에서의 화해이기도 하다…. 그것은 신이 은총으로 용서하는 죄인의 모습이자 …기독교적 종교적 화해는 영혼의 변용으로 존재한다. 영원한 구원의 생물로 정화된 영혼은 그 현실과 행동들 너머로 솟으니, …영원하고 순수한 정신적 내면의 지복에 대한 확신으로 굳건히 대처하기 때문이다.”[15]

 

자기 내로 복귀하는 유한한 인간이 주관적 목적을 추구하다가 자멸하면서도 자신을 긍정하는 희극적 개인의 토대이자 출발점이다. 그는 현재로서는 몰락하지만 앞으로는 자기의 자립성을 확보하게 될 이행기적 인간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희극적 개인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그리스 쇠락의 거대한 징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현상하는 것의 지배자가 된다”[16]고 말한다.

 

‟그러나 …주관성의 이러한 승리 속에는 그리스 쇠락의 거대한 징후 역시 들어 있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파네스는 한편으로 신들의 진정한 본질과 인륜적 현존재 다른 한편으로 그 의미 내용을 실현해야 할 시민적 개인적 주관성 사이의 절대적 모순을 노정하기 때문이다.”[17]

 

6)

헤겔이 주장하는 이 점을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에서는 특이하게도 정론과 사론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서로 논쟁을 벌인다. 스트렙시스의 강요에 의해 아들 페이딥피데스가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변론술을 배우게 되는 장면에서 그 논쟁은 시작한다. 페이딥피데스가 그들의 논쟁을 들어보고 원하는 대로 선택하라는 취지이다.

정론은 관객 앞에서 인륜적 사회의 참된 질서에 관해 옹호하는데, 사론은 그것을 일일이 반박한다. 대체로 전자는 절조와 같은 사회적 덕목이고 후자는 색욕(“이불 속에서 기분 좋게 하는 법”)과 같은 개인적 행복을 추구한다. 그 논쟁에서 정론은 사론에게 패배하고 페이딥피데스는 사론을 배우기 시작한다.

사론의 반박을 살펴보면 정론이 덕목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시대에 뒤진 것이며, 겉으로는 덕목을 추구하는 체하지만 실제로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파네스가 풍자하고 조롱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겉으로는 정의를 사회적 덕목을 추구하는 것처럼 은폐하는 자, 자신을 이처럼 사회적 덕목으로 정당화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민중을 오도하는 소피스트나 정치적 지도자이다. 그것은 이미 아리스토파네스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질서, 참된 진리가 이미 낡은 것이며, 개인적 행복이 추구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내심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헤겔이 아리스토파네스를 통해 제시한 자멸적이면서도 자기 확신에 찬 개인을 슐레겔 등이 제시한 아이러니적 인간의 모습을 해석할 여지도 있다. 슐레겔의 아이러니의 작가는 자기가 만든 것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유한한 세계를 벗어나 무한한 자유에 이른다. 이 자유는 실제로 실현된 자유가 아니라 유한한 세계를 벗어나는 자유, 주관적 자유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고정된 것을 넘어선 무한한 자유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파네스의 욕망을 추구하는 주인공은 자기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연에 부딪혀 자멸할 뿐이며 그의 목적인 주관적 욕망에 머무른다. 그는 결코 세계를 벗어나려는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로마 말기나 중세 초기에 등장한 인격적 존재, 창 하나를 들고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보는 기사와 닮았을 뿐이다.

 

7)

아리스토파네스의 모습은 마치 발자크를 연상시킨다. 발자크 역시 구 시대 귀족적 질서를 옹호했지만 이미 그런 귀족의 세계에 부르주아적인 이익 추구가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 표면적으로는 귀족의 타락에 대한 풍자이지만 다른 한편 내심에는 다가오는 욕망의 세계에 대한 긍정이다. 그의 작품 제목이 ‘인간 희극’인 것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아리스토파네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가오는 세계에 대한 표면적인 부정에도 불구하고 내적 긍정이 시대의 타락에 대한 준열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희극의 자멸하는 주인공이 스스로에 대해 낙천적인 이유가 아닐까?


[1] 미학강의 3권, 536쪽

[2] 희랍극전집 3권, 28쪽

[3] 희랍극전집 3권, 36쪽

[4] 희랍극전집 3권, 68쪽

[5] 희랍극전집3권, 68쪽

[6] 미학강의 3권, 536쪽

[7] 미학강의 3권, 534쪽

[8] 18세기 칸트, 장 파울, 졸거 등 대부분의 이론가는 웃음은 다양한 부조화에서 나온다고 본다. 헤겔도 이 이론을 따른다.

[9] 이런 입장은 현대에 들어와서 대표적으로 베르그송이 취하고 있다. 베르그송은 웃음은 가볍게 처벌함으로써 교정하려는 의도를 가진다고 말한다.

[10] 미학강의 3권, 534쪽

[11] 류재국,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의 지향성에 관하여, 연극공연연구 30호, 2017. 그러나 여기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회적 덕목, 사회지도자이고, 비판하는 자는 주로 개인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억압의 해방이라는 측면도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 미학강의 3권, 534쪽

[13] 미학강의 3권, 559쪽

[14] 미학강의 3권, 558쪽

[15] 미학강의 3권, 557-558쪽

[16] 미학강의 3권, 537쪽

[17] 미학강의 3권, 5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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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58-니체와 헤겔의 그리스 비극론 [흐린 창가에서- 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58-니체와 헤겔의 그리스 비극론

 

1)

앞에서 그리스 비극을 둘러싼 아리스토텔레스의 헤겔의 논점을 파악해 보았다. 그 논점은 비극의 효과와 그 전개 과정의 관계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심리적 효과를 강조하면서 기꺼이 우연성을 용인했으나 헤겔은 비극의 필연적 전개를 강조하면서 파토스적 성격과 실체적 분열을 강조했다.

그리스 비극과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논의는 니체에 의해 제기되었다. 니체에 따르면 초기에 비극은 극적 전개가 없었고 다만 합창단만이 존재했다. 이 합창단은 음악과 춤, 그리고 서정적인 노래를 통해 극을 전개했는데, 니체는 이 가운데 특히 음악의 차원을 분석하는데 주력한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단순히 비극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두 종류 즉 조형 예술과 음악 예술을 낳는 예술적 충동 자체를 다루는 철학적 논의를 담고 있다. 그 핵심 문제는 음악이 이미지를 낳는 과정인데, 니체는 이 문제를 비극의 합창단을 분석하는 가운데 던지고 있다.

 

2)

비극을 미학적으로 분석하기 전 니체는 예술의 자연적인 두 충동을 제시한다. 하나는 아폴론적 충동인데, 이것은 흔히 그리스 고전적 미학이라고 지칭되는 사물의 이상적 비례, 상호 조화로운 세계를 낳는 예술적 충동이다. 이는 주로 조형예술에서 드러나는 이미지 형상의 원천이다.

그리스에서 아폴로적 예술 충동에서 서사시가 발전된다. 원초적 일자 속의 부조리와 모순 속에서 인간은 예술적 충동을 통해 아름다운 이미지의 세계를 꿈꾼다. 그 꿈의 형상이 곧 호머의 서사시인데, 그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부동 불변의 세계이지만, 부조리와 모순이 지배하는 바다인 삶의 세계에서 일시적인 위안의 섬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위협적인 파도는 곧 섬의 해안을 침식해 버린다.

이에 대립하는 또 하나의 충동이 있으니, 그것이 디오니소스적 충동이다. 이 충동은 사물의 근원적 일자, 끊임없이 자기를 생성하며 파괴하는, 자기 모순적이며 동시에 자기 창조적인 존재와 합일하는 충동이다. 이것은 개인이 자기의 자아를 넘어 근원적 일자와 합일하는 도취의 상태이며 원초적 환희의 세계이다. 이런 합일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맹목적 의지로서의 세계이다.

 

“디오니소스적 음악가는 어떤 이미지도 갖지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이 근원적 고통이며, 이것의 근원적 반향일 뿐이다.” [1]

 

이 충동은 조형예술에 대립하는 또 하나의 예술적 형상을 낳는데, 그것이 바로 음악의 형상 즉 선율이다. 여기서 음악적 선율을 근원적 일자에 대한 직접적인 반향이며, 그 자체로는 이미지나 개념을 갖지 않는다.

니체가 음악적 선율이 디오니소스적 충동에서 나온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비극의 탄생 후반부에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을 예로서 끌어들이는데, 바그너의 음악이 고전 음악의 화성을 넘어서 고대 음악이 지닌 선율이 강조되며 그 속에 특히 불협화음이 지속된다는 것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선율은 협화음으로 이루어진 화성의 규칙을 지니지만 그 내부에 이미 불협화음을 포함하고 있으며 마치 불협화음의 바다 위에 화성의 음들이 포말처럼 떠있는 듯하다. 니체는 이런 선율이 지닌 이중성을 가리켜 음악을 디오니소스적 형상화라고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파악하기 어려운 이 근원적 현상은 그러나 오직 직접적인 방식으로만 이해될 수 있으며, 음악에서의 불협화음이라는 경이로운 의의를 갖는 것에서 직접 파악된다. “[2]

 

3)

디오니소스적 충동에서 나온 음악적 선율은 비극으로 전개되기 전 우선 서정시가 된다. 음악적 선율이 디오니소스적 의지의 직접적 반향으로서 감정적 상태에 머무른다면, 서정시에서는 그런 음악적 반향이 이미지와 개념을 통해 다시 형상화된다. 니체는 그리스 서정시의 선구자 아르킬리코스에서 서정시가 솟아나오는 과정을 아름답게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도취한 열광자 아르킬로코스가 쓰러져 잠들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고산의 초원에서 정오의 태양 아래 잠들어 있는 그의 모습을. 그리고 이제 아폴론이 다가와 월계수로 그를 만진다. 잘들어 있는 자를 사로잡고 있는 디오니소스적 음악적 마력이 자신의 주위에 형상의 불꽃을 발산한다. 이것이 바로 최고로 발전했을 때 비극과 주신찬가로 불리게 되는 서정시인 것이다.”[3]

 

근원적 일자가 곧 생성하는 의지라면 음악적 감정은 그 본질적 의지의 현상이다. 이 감정이라는 음악적 마력이 자신의 주위에 만들어낸 형상의 불꽃 즉 직관과 개념이 곧 서정시인데, 이런 형상의 불꽃은 아폴로의 월계수가 신비하게 시인을 건드리는 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음악 즉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형상 즉 아폴론적인 것은 그 이전 삶과 서사시에서처럼 서로 외면적으로 관계하지 않는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아폴로적 형상 속에서 내부에서 그것을 생성하는 힘이며, 여기서 나온 형상은 상호 침투하면서 다시 근원적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되돌아 간다. 니체는 그 관계를 약간 신비하게 아폴로의 월계수 잎이 건드리는 것으로 같이 표현한다.

 

“따라서 우리가 서정시를 형상과 개념을 통해 음악을 모방하는 불꽃으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형상과 개념의 거울에 어떠한 것으로 나타나는가 라고. 음악은 의지로 나타난다.”[4]

 

4)

음악과 서정시에 관한 이런 설명 끝에 마침내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설명한다. 비극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최초에 비극은 인물의 연기 없이 합창단의 노래로만 이루어졌다.

니체는 이 합창단을 이상적 관객을 표현한다고 보는 윌리엄 슐레겔의 주장을 비판한다. 아직 비극의 구체적 내용이 전개되기 전에 이미 합창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또한 합창단이 현실과 꿈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에 있으면서 현실의 침입을 막아주는 성벽이라는 쉴러의 주장도 비판적으로 본다. 그런 관계는 삶과 아폴론의 관계이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형상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 위에 니체는 이 합창단을 디오니소스의 신도들이 빠져들었던 도취 상태 즉 근원적 일자와의 합일 상태로 규정하며, 합창단의 주된 역할은 관객을 자기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연의 심장으로 되돌려지게” 하는 것이다.[5]

비극의 구체적 내용은 이런 디오니소스적 상태에서 떠오르는 형상이다. 그것은 마치 음악적 선율에서 서정시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떠오르는데, 비극에서 그 형상은 단순한 직관과 이미지가 아닐 이제는 하나의 개념이며 삶의 지혜가 된다. 즉 그것은 “자연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지혜”[6]를 고지한다.

관객은 합창단 속에서 자기를 재발견하면서 그 스스로 근원적 일자와 합일한다. 그런 상태에서 비극의 시인이 표현한 삶의 지혜를 마치 그 스스로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체험한다.

 

“사티로스 합창단은 무엇보다도 디오니소스적 대중이 떠올리는 환영이며, 무대 위의 세계는 사티로스 합창단이 떠올리는 환영이다.”[7]

 

이런 환영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서사적 음유시인이 보는 것은 아니다. 그 환영은 무대 위에 재연된 삶을 그 자신이 직접적으로 체험함을 통해 그가 직접 겪는 삶이다. 이제 무대 위에 나타난 비극의 구체적 내용은 아폴론적 형상이며, 그 자체 정확성과 명쾌성을 지닌다.

 

“디오니소스 신은 아폴론적인 현상 속에 객관화는 것이지만, 이 아폴론적 현상은 더 이상 합창단의 음악처럼 영원한 바다, 종횡으로 얽힌 삶, 불타는 생명이 아니며…. 이제 무대로부터 명료하고 확고한 서사적 형상이 디오니소스 시종에게 말을 한다.”[8]

 

하지만 그것은 삶과 떨어진 환영이 아니라, 삶 속에서 출현한 환상이니 “마치 어두운 벽에 던져진 빛의 형상”과 같다. 니체는 이를 다시 설명하면서, 마치 태양을 직접 바라보면 잠시 후 눈에 검은 반점이 생기듯 무대 위의 형상은 “자연 내부의 가공스런 것을 들여다 본 눈이 만들어낸” “빛나는 반점”[9]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의 구체적 내용 속에는 아폴론적 명확성과 명랑성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비애의 검은 호수에 비치는 밝은 구름과 하늘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10]고 한다.

 

5)

니체의 논의는 음악적 예술, 또는 서정시를 설명하는 미학적 이론으로서는 흥미롭고도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비극을 실제로 파악하는 문제에서는 니체의 논의는 비판 받는다. 특히 니체의 논의는 비극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이며 또한 니체의 논의는 주로 합창단의 성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과연 합창단의 성격이 니체가 가정하듯이 디오니소스적 음악적 상태인지가 문제 된다.

헤겔 역시 그리스 고전 비극을 논하면서 합창단의 성격을 분석한 바 있다. 헤겔은 합창에 서정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니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합창이 마치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헤겔은 합창은 관조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는 이상적 관객, 평가하는 관객이라는 슐레겔의 관점과 유사하다.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입장은 슐레겔의 관점과 구분된다. 왜냐하면, 헤겔은 합창단이 관객을 대변하면서 극중 인물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평가하는 의식을 의미한다고 보는 해석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이 입장은 니체도 비판했던 윌리엄 슐레겔의 입장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슐레겔과 헤겔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헤겔은 비극이 실체적 분열의 상태에서 전개되는 충돌과 대립을 다룬다는 것에서 합창단의 성격을 규명한다. 헤겔에 따르면 합창단은 아직 분열되기 이전의 민족적 실체를 대변한다. 합창단은 분열된 민족적 실체를 다시 본래대로 되돌리고자 하는 관객의 소망을 대변한다. 비극의 관객은 더 이상 행동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실체적 통일성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합창단이 대변하는 관객이 이처럼 복고적 소망을 지니고 있으므로, 슐레겔이 말한 이상적 관객처럼 평가의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합창단은 극중 인물의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인물의 행위에 대해 평가하지도 경고하지도 않는다. 다만 합창단은 인물의 행위를 관조적으로 지켜보면서 그에 대해서 감정적 반응에 머무른다. 즉 주인공의 행위에 대해서는 경악하거나 행위의 결과로 얻어지는 처벌에 대해서는 탄식한다.

헤겔은 이런 합창은 그리스 비극이 일어나는 일종의 배경이라고 한다. 마치 신이 신전 안에 있듯이, 극장이 대지 위에 있듯이 극의 인물은 이런 민족적 실체를 대변하는 합창을 배경에 두고 행위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합창은 근본적으로 서정적이다. 헤겔은 이 서정성은 합창이 사용하는 언어의 운율이 서정시의 형식인 패안과 디티람보스라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합창단의 성격은 서정적이라 하더라도 니체가 말한 것처럼 근원적 일자와의 합일 상태는 아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이상적 관객도 아니며 오히려 어쩔 줄 모르고 다만 감정적으로만 반응하는 관객일 뿐이다.

실제로 이는 헤겔이 그리스 비극의 대표로 삼는 안티고네나 오이디푸스에서 합창단의 노래를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6)

오이디푸스에서 마지막 합창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조국, 테바이 사람들이여, 명심하고 보라.

이 이가 오이디푸스이시다.

그이야 말로 저 이름 높은 죽음의

수수께끼를 풀고, 권에 이를 데 없는 사람,

온 장안의 누구나 그 행운을 부러워했건만

아아, 이제는 저토록

격렬한 풍파에 묻히고 마셨다.

그러니 사람으로 태어난 몸은 조심스럽게

마지막 날 보기를 기다려라.

아무 괴로움도 당하지 말고

삶의 저편에 이르기 전에는

이 세상 누구도 행복하다고 부르지는 마라.”

 

합창은 영웅의 몰락을 한탄한다. 이번에는 안티고네의 마지막 합창을 보자. 합창은 안티고네가 죽는 장면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렇게 오래 지닌 다나에의 아름다움도

하늘의 빛을 버리고

청동의 벽으로 싸인 방에

무덤처럼 으슥한 그 방에 갇힌 몸이 되었다.

그러나 오오 내 딸이여 그도 고귀한 혈통으로서

그러나 운명의 신비로운 힘은 두렵기도 하고나

거기서는 부도 아레스도 성벽도

바다를 때리는 검은 배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번에는 클레온의 몰락 앞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지혜야 말로 으뜸가는 행복,

신들께 향한 공경은 굳게 지켜져야 한다.

교만한 자들의 큰 소리는 언제나 큰 천벌을 받고

늙어서나 지혜를 배우게 된다.

 

합창단은 그 누구나 동정하며 그 누구에 대해서도 공감할 뿐, 적극적으로 옳다고 주장하거나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감정적인 반응인데, 그런 점에서 이상적 관객도 디오니소스적 상태라고도 볼 수 없을 것이다.


[1] 비극의 탄생, 95쪽

[2] 비극의 탄생, 286-287쪽

[3] 비극의 탄생, 94쪽

[4] 비극의 탄생, 106쪽

[5] 비극의 탄생, 115쪽

[6] 비극의 탄생, 119쪽

[7] 비극의 탄생, 121쪽

[8] 비극의 탄생, 128-129쪽

[9] 비극의 탄생, 130쪽

[10] 비극의 탄생,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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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57-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의 그리스 비극론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57-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의 그리스 비극론

 

1)

극시의 종류에 관해 헤겔은 희극과 비극, 그리고 희비극으로 구분하며, 역사적 발전에 따라서 고대에는 비극이 없었으니[1] 그리스(고전) 비극과 근대(낭만적) 비극으로 구분한다. 종류와 역사를 조합하면 네 가지 극시가 나오는데, 헤겔의 경우 모든 극시를 파악하는 전범은 그리스 비극이다. 여기서 변형하여 희극이 설명되고, 다시 고대적인 극시를 발전시켜 근대적인 극시가 설명된다.

이미 앞에서 그리스 비극를 전범으로 한 헤겔의 극시론을 소개했다. 헤겔의 극시론은 자주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시론이나 니체의 비극론과 비교되는데, 여기서 이들의 입장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2)

비극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 전반적인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가 모방에서 나왔다는 데서 출발하여, 서사시와 비극이 모방 대상이나 모방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서사시는 ‘우리들 이상의 선인’을 대상으로 하며, 주로 ‘서술체’이며 ‘장중한 운율(6보격)을 통해 전달된다. 반면 극시에서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묘사하니(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묘사한다) 서사시와 크게 다를 바 없으나, 묘사의 방식은 ‘실연’이어서 서사시와 다르다. 비극의 언어는 대체로 운문으로 된(3보 또는 4보격) 대화와 노래로 구성된다.

비극은 “일정한 크기를 지닌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는 데”에 있다. 여기서 비극은 ‘사건의 결합으로서’ 플롯을 가지고, 드라마적 형식을 취한다. 어떤 것이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플롯상 반전이나 발견이 있어야 한다. 이런 플롯은 필연적이어야 한다. 행위는 인물의 “성격과 사상”에서 나와야 하며 행위는 필연적으로 반전과 발견[2]으로 이끌어져야 한다. 성격과 플롯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은 플롯이다[3].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독특한 심리적 효과를 자아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른바 공포와 연민이라는 비극적 효과를 제시한다. 이 효과가 관객의 감정을 카타르시스 함으로써 관객은 비극을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3)

이상 소개된 전반적 논의에서 플롯을 지닌다는 것과 심리적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에서 핵심을 이룬다. 그는 두 가지 주장 가운데 후자 즉 심리적 효과를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의 철학이 전반적으로 목적론적(기능주의적)이고, 그것은 비극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므로 그런 선택은 그로서는 불가피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좋은 비극이 되기 위해서 그 심리적 효과가 플롯 즉 구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야 한다.

 

“공포와 연민의 감정은 장면에 의하여 환기될 수도 있고 사건의 구성 자체에 의하여 환기될 수도 있는데 후자가 더 훌륭한 방법이며 더 훌륭한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이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을 제안한다. 우선 “덕과 정의에서 탁월하지는 않는”[5] 따라서 관객과 유사한 정도의 사람이 불행을 겪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관객으로부터 연민을 얻을 수 있다. 둘째로 보통 사람에게서 가장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은 바로 “친근자(가까운 혈연) 사이에 일어나는” “살인이나 이와 유사한 행위”[6]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통 사람이 이런 공포스러운 사건을 저지르게 되는 데에 어떤 필연성을 상정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그는 이런 사건이 그에게 일어나는 데에는 어떤 우연성이 개입한다고 말한다[7]. 이 우연성은 작품마다 다양한데,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가 자기 자식을 죽이는 것은 분노이며,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것은 무지 때문이다.

 

“덕과 정의에 있어서 탁월하지는 않으나 악덕과 비행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과실 때문에 불행을 당한 인물이 곧 그러한[비극의] 인물이다.”[8]

 

비극의 전개 과정에서 우연성이 강조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에서 인물의 성격이 지니는 파토스적 측면이나 비극이 결말에 이르러 생겨나는 해소의 측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결여된다.

 

5)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은 경험을 통해 귀납적으로 전개했기에 설득력을 지니지만, 그 가운데 이미 그의 목적론적 철학이 노골적으로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바로 비극을 심리적 효과로부터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심리적 효과를 강조하다 보니,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는 원인은 우연성이나 과실에 두고 말았으니, 결과적으로 비극의 극적인 전개에서 일어나는 필연성을 간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은 후일 사건의 우연성이 강조되는 근대 비극에 전범을 주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고대 비극에 대한 충분한 설명인가는 의심스럽다. 이 점은 헤겔이 고대 비극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필연성을 강조했다는 것과 대비된다.

헤겔은 극적 전개의 필연성을 강조하기 위해 우선 등장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보통의 인간이 아닌 영웅적 인물로 삼았다. 그는 개인적 목적이 아니라 실체적 목적을 수행하며 자신의 실체적 목적이 지닌 의무, 법, 정당성을 확고하게 믿으면서 일체의 주저 없이 단호하게 수행하는 영웅이다. 그런 실체적 목적은 그의 자연적 태생이나 주변 환경과 생동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비극적 영웅의 파토스이다.

또한 그런데 그리스 시대 인륜적 실체 자체가 두 대립하는 원리로 분열되어 있어서, 영웅이 수행한 행위는 필연적으로 자신과 대립하는 실체적 원리를 침해하며 그 결과 필연적으로 그것에 대립하는 행위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행위는 필연적으로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가 자기가 맞서 싸우는 것의 위력 속에 있으며, 그들 자신이 자신의 고유한 실존에 적합하려면 의당 존중해야 마땅할 바로 그것을 침해한다.”[9]

 

또한 헤겔은 이런 충돌이 필연적으로 다시 해소되는데, 왜냐하면 본래 인륜적 실체 자체가 두 대립하는 원리의 상호 균형을 통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서로 대립하는 극단적 행위는 서로 충돌하면서 서로 해소되어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적 성격은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또는 그 정당성을 파악하지 못한) 원리를 침해한 것에 대해 자신의 무지를 들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지만 그 범죄는 오히려 그에게서는 영예이다. 그는 정당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인은 자신의 무지에 의해 행위한 것도 비록 그의 고의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인 한, 그에 대해 책임을 진다[10]. 그러므로 관객은 범죄를 저지르는 성격적 개인의 파멸에 대해 차라리 경탄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편파성은 지양되어야 한다면 개인은 하나의 파토스로서 행동했던 한에서, 희생되고 제거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개인은 단지 이 하나의 [파토스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이 개인이 이런 하나의 [파토스적] 삶으로서 독자적으로 확고하게 타당하지 않는다면 그 개인은 이미 파괴된 것과 다름 없다.”[11]

 

헤겔은 비극에서 사건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일차적 본질로 삼은 공포와 연민이라는 효과에 관해서는 별로 말이 없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한편으로 영웅의 행위 자체가 나름대로 실체적 원인을 가지므로, 관객 역시 그 목적에 공감하면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반면 영웅의 행위에 대립하며 영웅을 파멸시키는 것 역시 하나의 실체적 목적이기 때문에 관객은 그 앞에서 공포감을 느낀다.

전반적으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이고 헤겔의 비극론에서 주인공은 파토스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양자의 결정적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은 당대의 비극에 대한 직접 경험에 기초한 만큼 비극을 설명하는 데 설득력을 지닌다. 반면 헤겔의 비극론의 전제가 되는 파토스적 인물과 실체적 대립은 그가 항상 고대 비극의 모범이라 생각하는 안티고네나 오이디푸스와 같은 제한된 비극에는 탁월한 설명력을 지니지만 그런 설명이 나머지 대부분의 비극에도 적용될 것인지는 문제가 있다.


[1] 헤겔에서 극시는 개인적 자아가 성숙한 이후 등장하니, 아직 개인의 자아가 출현하지 않은 고대에는 극시가 없다.

[2] 반전과 발견은 비극에서 대립이 충돌로 발전하고 다시 해소되는 전환을 의미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예를 든다. 반전의 예: 오이디푸스에서 사자가 오이디푸스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오이디푸스를 기쁘게 하려 했지만, 오히려 오이디푸스의 죄가 드러난다. 발견은 무지의 상태에서 지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인데,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한 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3] “비극의 제1원리 또는 비극의 생명과 영혼은 플롯이고 성격은 제2위인 것이다.” (시학, 53쪽)

[4]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천병희 역, 문예출판사, 1976, 84쪽

[5] 시학, 78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덕한 자가 불행해지거나, 악한 자가 행복해지는 것 또한 극악한 자가 불행해지는 것은 모두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한다.

[6] 시학, 85쪽

[7] 시학, 90쪽 참조

[8] 시학, 78쪽

[9] 미학강의3, 555쪽

[10] 법적 책임은 고의성이 전제된다. 하지만 정치적 책임은 고의성을 넘어서 그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책임지게 되니, 그리스 비극에서 죄와 책임의 문제는 정치적 책임에 가깝다고 보겠다. 비극의 주인공은 대체로 정치적 지도자, 영웅이니 법적 책임을 넘어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생각은 당연하다고 보겠다.

[11] 미학강의3, 5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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