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와 시민불복종의 문제[고전은 숨쉰다]

시민불복종과 관련한 소크라테스의 역설.

공자는 “나이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논어 위정편 4장)”고 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 나이에 사형이라는 극형을 선고 받고 독배를 든다. 과연 그는 그런 극형을 선고받을 만큼 뭔가 심각하게 법도를 어건 것일까? 그의 죄목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영적인 것들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이 죄목으로 봐서는 그가 윤리적· 종교적인 면에서 심각하게 법도를 어겼다는 혐의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 죄목은 구실이고, 그가 기소된 진짜 이유는 당시 집권을 한 민주정권의 정적들 중 일부를 이들이 젊은 시절에 소크라테스가 교육시킨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유력하게 제시되곤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죄목이 부당하다고 여겨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하고자 했고, 또한 선고 후에도 크리톤과 대화하는 가운데 배심원들의 판결이 정의롭지 못했다는 생각을 넌지시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크리톤≫ 50c, 54c). 하지만 그는 친구인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물리치고 독배를 든다. 그가 탈옥을 거부한 이유는 ≪크리톤≫에서 접할 수 있는데, 여기서 그는 국가와 법의 명령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식의 견해를 제시했던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악법, 즉 정의롭지 못한 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철학자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변론≫에서는 악법은 단호히 지키지 않을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이를테면 아테네 법이 철학하는 것을 금한다면, 소크라테스는 이에 불복종하고 철학함을 그의 사명으로 부여한 신에게 복종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 준다. 그리하여 그는 시민불복종과 관련해 ‘소크라테스의 역설’이라 해도 좋을 큰 논란거리를 후세에 남겼다.

그가 보여준 일견 모순된 측면들은 그를 완고한 준법정신의 화신으로, 혹은 시민불복종의 선구로 해석되게 했고, 전문 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의 수준에서도 격론을 불러일으켜 왔다. 과연 소크라테스의 실제 입장은 무엇일까? 그는 시민불복종을 어떻게 보는 것인가? 그는 악법이나 악한 법적 명령도 지켜야 한다는 보는 것인가, 아닌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사전에 없다

악법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악법도 법인가 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왜냐하면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악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명시적으로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음을 보여주는 전거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더욱이 그는 당시 아테네 법이 악법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크리톤≫ 54c).

그는 자신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법이 아니라 배심원들의 잘못된 판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그건 훗날 누군가가 ≪크리톤≫의 일부 내용을 참작해서 만들어 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가 ‘악법도 법이다’ 혹은 ‘악법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지켜야 한다고 본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인 ≪크리톤≫과 ≪변론≫은 이런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일차적인 자료일 뿐 아니라, 우리가 왜 국가와 법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시민불복종의 권리가 있는가 하는 정치철학적 혹은 법철학적 문제 뿐 아니라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위의 두 대화편을 악법 즉 정의롭지 못한 법이나 그런 법적 명령에도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초점을 맞춰 살펴볼 것이다.

≪크리톤≫과 ≪변론≫에서 상충되는 측면들

≪크리톤≫과 ≪변론≫에서 시민불복종 문제와 관련해 상충된 것으로 보이는 점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크리톤≫ 자체 내에서 그런 점을 짚어보고, ≪크리톤≫과 ≪변론≫ 사이에서도 그런 점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크리톤≫은 의인화한 법률과 국가가 등장하는 지점(50a6)을 중심으로 전반부(46b-49e)와 후반부(50a-53a)가 구분된다. 후반부는 특히 복종의 의무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여기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법률과 국가가 시민을 어린이와 노예에 비유하여 연설하는 대목이다(50c-51c). 그 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조국이 무언가를 겪어내라고 지시하면 두들겨 맞는 것이든 투옥되는 것이든 잠자코 겪어내야 하며, 조국이 당신을 전쟁터로 이끌어 당신이 부상을 당하거나 죽게 되더라도 지시사항을 이행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이 정의로운 것이다… 나라와 조국이 지시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행하거나, 아니면 정의로운 것이 본래 어떠한지에 대해 나라를 설득해야 한다”(51b-c).

여기서 ‘…무엇이든 이행하든가 아니면…설득해야 한다’는 구절은 해석하기에 따라 시민불복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위 인용문은 국가와 법의 명령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이렇게 이해되는 게 옳다면 소크라테스는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도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철학자가 된다.

그러나 ≪크리톤≫ 전반부에는 후반부와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있다. 거기서는 정의의 원칙들이 제시되는데 가장 기본적인 정의의 원칙은 “결코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49b)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톤≫의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는 상충되는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변론≫에서도 ≪크리톤≫ 후반부와 다른 논조를 접하게 된다.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철학―고발자들은 철학하는 일을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을 그만둔다는 조건 아래 배심원들이 자신을 석방해주되 계속 철학을 하다가 붙잡히면 죽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조건으로 자신을 석방하고자 한다면 배심원들보다는 철학함을 자신의 사명으로 부여한 신에게 복종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29c-d).

소크라테스가 해온 철학적 활동은 사람들이 몸이나 돈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혼이 훌륭하게 되도록 혼에 대해서 마음을 쓰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런 일 말고 “다른 일을 하진 않을 것이며, 설령 몇 번이고 죽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30a-c)라고 결연한 의지를 보인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대해선 단호히 복종을 거부할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이처럼 목숨보다도 철학을 더 귀하게 여긴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배심원들이 그를 석방해주되 철학을 금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해보자.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처신했을까?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철학을 금하는 법적 명령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불복종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단지 가정적 상황이다. 그리고 아테네의 재판 절차상 현실적으로는 배심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을 금하는 조건으로 석방을 제의할 수도 그런 판결을 내릴 수도 없었다. 브릭하우스와 스미스는 이런 점을 주목하여 소크라테스가 시민불복종의 한 사례를 보여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편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 금지령의 예를 통해 소크라테스가 크게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예가 가정적 상황 속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여기서 분명히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현실 속에서 그가 크게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을 받았을 때 그가 단호히 복종을 거부했으리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의지는 ≪변론≫의 또 다른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과두정의 주요 인물인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를 한때 교육시킨 바 있다고 해서 과두정을 옹호하는 인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실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30인 과두정권의 명령을 거부한 일도 있었다.

이 정권이 살라미스 사람 레온을 부당하게 사형에 처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포함해 다섯 사람에게 그를 연행해 오도록 지시했을 때, 그는 이 일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아 연행에 가담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일을 회고하며 배심원들에게 “만약 그 정권이 빨리 무너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는 이 일로 해서 처형되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32c-d).

이 예도 브릭하우스와 스미스는 시민불복종의 사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시민불복종이 성립하려면 30인 과두정권이 적법하게 집권하고 적법하게 명령을 내렸다고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정권이 적법하게 집권하거나 적법하게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레온의 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적법성 여부와 상관없이 정의롭지 못한 명령에는 단호하게 복종을 거부했으리라는 것이다. 실상 그는 레온의 연행이 불법적인 일이어서가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고 불경건한 것이어서 명령을 거부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시민불복종과 관련해 소크라테스의 일관된 모습 찾기

적어도 ≪변론≫의 두 예와 ≪크리톤≫ 전반부에서 나오는 정의의 원칙은 소크라테스가 악법을 지켜선 안 된다는 입장, 즉 시민불복종의 입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크리톤≫ 후반부에 나타난 의인화한 법률과 국가의 입장 즉 법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식으로 준법을 중시하는 입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크리톤≫ 후반부가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이 부분의 의인화한 법률과 국가를 소크라테스의 대변자처럼 봄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같은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대화편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왜 달라졌는가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점을 피하는 한 가지 방식은 후반부에서 의인화한 법률과 국가의 견해를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크라테스는 법률과 국가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웨이스가 이런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녀는 법률과 국가가 등장하는 후반부를 탈옥을 권유하는 크리톤을 설득하기 위한 ‘고상한 거짓말’ 즉 한갓 수사적 연설로 이해한다. 이러한 해석은 크리톤이 이해력이 부족하고 비철학적이어서 소크라테스가 그와 철학적 논의를 하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크리톤을 철학적 논의가 불가능한 인물로 보는 것이나, 소크라테스가 단지 설득만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고 보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의문이다. 소피스트들을 상대로 논쟁하는 때에는 이들의 논리를 역으로 이용해 설득만을 위한 논의를 전개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런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크리톤≫과 같은 플라톤의 초기대화편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웨이스의 해석에서는 ≪크리톤≫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단절적으로 보는데 이것도 적절한 이해로 보이지 않는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소크라테스가 전반부에서 정의의 원칙에 관한 논의를 한 후에 후반부에서 그 원칙들에 근거해서 탈옥의 문제를 검토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크리톤≫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관계를 웨이스처럼 단절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연속적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런 해석들 사이에도 큰 관점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가 시민불복종의 옹호자로서 일관된 모습을 지닌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우선 소크라테스를 시민불복종을 부정하는 철학자로 보는 해석부터 검토해보기로 한다.

브릭하우스와 스미스는 ≪크리톤≫의 전반부에 나오는 정의의 원칙도 ≪변론≫의 두 예도 시민불복종의 예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특히 정의의 원칙을 철저한 준법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하기까지 한다. 이런 해석은 일단 수긍이 잘 안 간다. 왜냐하면 “결코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복종해선 안 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결국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는 셈이 되니 말이다.

그러나 브릭하우스와 스미스는 소크라테스가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정의롭지 못한 짓이 아니라 정의로운 일로 보았다고 해석한다. 법이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준법 자체는 정의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크리톤≫의 전반부와 후반부 다 철저한 준법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두 부분 사이에 상충되는 점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문제는 소크라테스가 준법 자체를 정의로운 것으로 보고, 그래서 정의롭지 못한 법에 복종하는 것까지 정의로운 것으로 보았다는 그들의 해석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변론≫의 두 예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적법하게 내려진 명령이라 하더라도 정의롭지 못한 명령에는 단호히 불복종할 의지를 갖고 있으며 실제로 불복종 행위를 할 철학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 1권의 논의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에게 “그러나 그들(통치자들)이 제정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스림을 받는 이들로서는 이행해야만 하고, 또한 이게 정의로운 것이겠군요?”하고 묻는다. 이 물음은 옳게 제정되지 못한 법, 곧 정의롭지 못한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를 묻는 것인데, 논의 맥락을 볼 때 소크라테스는 이 물음에 대해 부정적 답을 갖고 있다.

즉 정의롭지 못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정의롭지 않은 것이라면 그로서는 불복종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 된다. 그러니까 ≪변론≫과 ≪국가≫의 예들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옳다면 ≪크리톤≫의 정의의 원칙도 시민불복종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그러면 브릭하우스나 스미스와 달리 소크라테스를 시민불복종의 옹호자로 보고, 웨이스와 달리 ≪크리톤≫의 전후반의 논의에 단절이 없다고 볼 때 이 대화편의 후반부는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크라우트는 ≪크리톤≫의 후반부에서 준법을 가장 강력하게 강조한 부분(50c-51c)이 “나라와 조국이 지시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행(복종)하거나, 아니면 정의로운 것이 본래 어떠한지에 대해 나라를 설득해야 한다”(51b-c)는 결론에 이르고 있음을 중시한다. 설득이라는 선택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법에 대한 불복종의 여지를 남기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전반부에서 언급된 또 하나의 정의의 원칙, 즉 “합의한 것들은 이행해야 한다. 그것들이 정의로운 한에서.”란 원칙도 중시한다. ‘그것들이 정의로운 한에서’라는 단서는 불복종의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크라우트의 견해는 주목할 만한 견해이긴 하나 그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있어서 여기서는 그 논의로 들어가는 것은 생략하고, 그 대신 기존의 해석과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크리톤≫의 후반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가 “신이든 인간이든 더 훌륭한 자에게 불복종하는 것은 나쁘고 수치스런 것이라는 점을 나는 알고 있다”(≪변론≫ 29b)는 말을 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인용문에서 더 훌륭한 자에는 신과 인간에 더하여 법률이나 국가도 포함될 수 있을 텐데, 이들의 명령들이 서로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소크라테스는 더 상위의 훌륭한 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변론≫에선 재판과정에서 철학할 것을 지시한 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인가, 철학을 금하는 법적 명령(배심원들의 명령)에 따를 것인가의 기로에서, 그는 주저 없이 법적 명령에 불복종하고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쪽을 택하고자 했다. 여기서 신의 명령이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언급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 법적 명령에 불복하고자 했다기보다, 철학함이라는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위해 그렇게 했다. 그가 지키고자 한 것을 단순히 철학하는 일보다는 비판적 사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차원으로 확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크리톤≫에서는 법이나 국가의 명령과 상충되는 신의 명령이 상정되어 있지 않다. 이 대화편의 후반부를 이해할 때 이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서는 국가나 법의 명령이 무엇이든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법의 명령과 신의 명령이 상충되는 경우에도 오직 법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크리톤≫에서는 국가나 법의 명령과 상충되는 신의 명령이 상정될 상황이 아니어서 준법이 강조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크리톤≫에서는 왜 신의 명령이 상정되지 않은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던 ≪크리톤≫의 상황은 ≪변론≫의 상황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미 재판에서 그는 국가의 법적 명령에 복종하기보다는 철학하라는 신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했고, 몇 번을 죽게 된다 하더라도 철학을 그만둘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는 그가 사형에 처해진다 해도 철학을 그만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그 결과 그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는 사형 대신 해외 추방형을 택할 수도 있었고, 이는 당시 아테네 사람들도 원했던 것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거부했다. 추방되어 신의 명령대로 철학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변론≫37c-38b).―≪크리톤≫에서는 탈옥해서 다른 나라로 갈 경우 철학하며 지낼 수 없으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그러니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법정의 사형선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친구인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하지만,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혹 탈옥이 신의 뜻이라고 그가 생각했다면 ≪크리톤≫에서도 법의 명령과 상충되는 신의 명령(탈옥하라는 명령)이 상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명령이 상정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는 탈옥이 신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이 점은 이 대화편의 마지막 구절에서 확인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신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니, 그대로 하세나.”라는 말로 탈옥 반대 논변을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시민불복종론에서 본 소크라테스의 탈옥 문제

끝으로 오늘날의 시민불복종론에 입각해보다면,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거부하고 독배를 든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롤즈가 시민불복종의 요건으로 거론하는 것을 정리해보면, 불복종은 공개적, 비폭력적, 양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불복종자는 처벌을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소크라테스는 시민불복종의 요건들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롤즈가 말하는 요건들은 당연히 수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요건들은 소크라테스의 행위를 이해하는 데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변론≫에서 보는 재판 상황에서 그가 한 이야기에 따를 경우, 법정이 그를 석방시켜주되 철학을 금하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는 그 명령에 불복종했을 것이다. 우선 그는 불복종행위로서 철학하는 일을 일반범죄자처럼 은밀하게 하지 않고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했을 것이고, 처벌을 피하고자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불복종의 자세는 레온에 대한 부당한 체포 명령과 관련해서 그가 실제로 보여주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변론≫의 두 예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시민불복종의 요건들에 맞게 불복종 행위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한 철학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옳지 않은 법적 명령에도 복종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점은 ≪크리톤≫에서 보게 된다. 거기서 그는 사형 판결이 정의롭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50c, 54c), 탈옥을 거부하고 그 판결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탈옥을 거부한 것을 시민불복종의 요건들에 비춰서 검토해 보자. 그 요건들에 비춰볼 때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 감옥에 있던 소크라테스가 법정의 판결에 불복종하고 탈옥을 했다면 그것은 시민불복종이라고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선 그 일은 비폭력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해도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교도관에게 뇌물을 써서 감옥을 나오고 변장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양심적인 것으로 보기도 힘들뿐더러, 그렇게 탈옥하는 그에게는 처벌을 받으려는 의지가 있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탈옥해 해외로 간다는 것은 아테네 법정에서 내리는 일체의 법적 처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탈옥했다면 그는 일반 범죄자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고, 시민불복종자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가 법정의 사형판결에 불복종하여 탈옥을 감행하지 않은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정의롭지 못한 판결에 복종하여 독배를 들고 탈옥을 거부했다고 해서 그를 시민불복종의 옹호자가 아니라고 본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그는 분명 시민불복종의 선구라 할 수 있다. 다만 롤즈도 그랬듯이 그는 시민불복종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기백(정암학당 연구원) /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11월 6일 개강[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11월 6일 개강

니체, 푸코, 들뢰즈 등 12명의 현대철학자

프레시안 기사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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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일찍 왔다.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 우리가 신을 죽인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도 방황 중이다. 이것은 아직 인간의 귀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니체는 탄식했다.
19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그는 1900년, 20세기의 문이 열리기 직전에 세상을 떴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일찍 온 21세기의 철학자였다.20세기 초반, 과학기술생철학, 실존철학, 현상학, 윤리학, 해체론, 후기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팍팍한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자유와 삶의 근거를 갈망하며 새로운 소리를 손으로 더듬거리고만 있다.?그런 사람들의 손을 잡고자 니체 계열의 사상가 열두 명의 향연을 마련하고자 한다.

니체를 비롯해서 쇼펜하우어, 베르그송,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데리다, 레비나스, 푸코, 들뢰즈까지
열두 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의 노래에 여러분을 초대하니
이 노래를 가슴으로 듣기를 희망한다.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진행하는 <우리 눈으로 본 서양철학사>의 3번째 강좌가 오는 11월 6일 시작됩니다.
지난해 시작된 이 강좌 시리즈는 지금까지 2차례의 서양근대철학사 강좌(10강 및 8강)와 마르크스주의사상사 강좌(16강)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니체를 비롯한 현대 철학자 12명의 사상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강좌 : 우리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일시 : 2012년 11월 6일 ~ 12월 18일 까지(11월 27일 휴강),
2013년 1월 8일 ~ 2월 12일 까지 (매주 화요일, 12강)

-시간 : 오후 7시30분-10시

-장소 :
서울마포구 서교동 민족의학연구원 2층 강당(약도 참조)

-수강료 : 24만원(
커플 수강료: 36만원, 두 분이 함께 신청하실 경우) 개별 강의 수강료는 3만원

-수강 신청: 수강료를 계좌로 입금 하신후
이메일 혹은 전화연락을 주시면 등록이 가능 합니다. (계좌 : 국민은행, 292501-01-121940, 예금주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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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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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찾아오는 방법 : 지하철 2호선 합정역 2번출구로 나와 뒤돌아보면 빵집과 옆으로 샛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10분정도 걸어오면 왕복 4차선 도로가 나옵니다. 거기서 편의점이 있는 오른 쪽으로 30M 지점에 태복빌딩(민족의학연구원)이 있습니다. 그 건물 2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강의 일정
1강 : 11월 6일 쇼펜하우어: 의지와
조화될 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 (박은미, 건국대 교양학부 강의교수)

2강 : 11월 13일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연효숙, 연세대 외래교수)

3강 : 11월 20일 베르그송: 직관, 즉 내재적이고 심층적 의식의 생성과 변전으로서 권능 – 신비주의자, 권능의 구현자 (류종렬, 창원대 외래교수)

4강 : 12월 4일 하이데거: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시도, 그리고 나치즘 (서영화,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5강 : 12월 11일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6강 : 12월 18일 화이트헤드: 존재의 계보 – 화이트헤드의 발생학적 생성 (최종덕, 상지대 교수)

7강 : 2013년 1월 8일 사르트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이순웅, 숭실대 외래교수)

8강 : 1월 15일 메를로퐁티: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 (조광제, (사)철학아카데미운영위원)

9강 : 1월 22일 데리다: 해체란 무엇인가 – 글쓰기와 차이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10강 : 1월 29일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문성원, 부산대 교수)

11강 : 2월 5일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박민미, 대진대 외래교수)

12강 : 2월 12일 들뢰즈 :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김범수,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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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강사 선생님들이 미리 밝히는 강의 요지입니다

1. 쇼펜하우어: 의지와 조화될 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분류되지만 정작 자신은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았던 철학자이다. 니체는 허무주의자로 이해되기는 하지만 운명애를 말하는 철학자이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닮은 듯 다른 두 철학자는
모두 삶을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삶을 긍정해낼 방법으로 각각 동고(同苦, 고통을 함께 함)와 운명애를 주장한다. 두 사람 모두 이성이 아닌 의지에 주목했는데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부정을. 니체는 의지의 긍정을 주장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관조하는 자’가 될 것을, 니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초극해가는 ‘초인’이 될 것을 주장한다. 현대철학의 중요한 개념인 ‘의지’에 대한 두 철학자의 다른 접근은 현대철학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꼭 넘어야 할 산이다. 자신의 이성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지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현대인들에게 의지의 관조, 동고나 초극은 궁금한 그 무엇일 것이다.

2.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흔히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 니체의 망치에 의해 소크라테스 이래 전통 서구 철학의 중심 가치는 해체되고 뒤집혔다. 니체는 이성 우위의 철학적 전통에 감성을, 로고스 중심주의에 미학적 가치를 내세웠다. 또한 니체는 도덕의 계보를 진단하여 새로운 도덕적 가치를 제시하였다. 그의 철학을 통해 서양 근대까지의 시대가 마감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셈이다. 흔히 현대를 ‘포스트의 시대’라고 한다면, 이러한 포스트 시대의 새로운 가치의 지평을 열어 준 장본인 역시 니체이다.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도 각기 니체 철학이 보여준 영감을 통해 철학의 독특한 색깔을 지니게 되었다. ‘신은 죽었다’의 외침과 초인의 등장이 현대인의 삶에 어떤 울림과 의미를 줄지 생각해 보면 흥미진진할 것이다.

3. 베르그송: 직관, 즉 내재적이고 심층적 의식의 생성과 변전으로서 권능 – 신비주의자, 권능의 구현자

일반적으로 니체와 베르그송은 생철학자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니체의 생은 도덕을 기준으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인격을 중심으로 한다면, 베르그송의 생명은 자연 내재의 깊이 있는 근원적인 의식을 토대로 삼고서, 이 내재적 본성으로서 의식의 표출이자 생성의 인격을 중심으로 한다. 니체가 인간의 의지의 권능에 의해 현재의 고착된 삶을 전복하고 새로운 인격인 초인을 추구하였다면, 베르그송에서는 내재적 권능의 발현이 어떤 사람에서도 발현될 수 있으나, 이는 권능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에 달려있으며, 이를 실현하는 자를 신비주의자라 한다. 니체에서 초인이 출현이 지난하듯이 베르그송에서 신비주의자는 드물고 어렵다. 그런데도 두 철학자는 새로운 인격상을 구축하려 했다.

4. 하이데거: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시도, 그리고 나치즘

하이데거는 그동안 문학가로 알려져 왔던 니체를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 내에서 본질적인 사상가의 지위로 격상시킨다. 그런가하면 니체는 서구 형이상학과 기독교를 ‘힘에의 의지’라는 사상으로 해체한 망치의 철학자로 알려져 왔지만, 하이데거는 니체를 서구 형이상학의 완성자이자 니힐리즘의 완성자라고 평가한다. 한편 하이데거가 1933년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을 10개월 남짓 역임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나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1936년부터 4년간 니체에 대한 강의를 통해서, 하이데거는 나치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 본 강의에서는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서부터 나치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적 입장을 니체 철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을 통해 생각해 보려 한다.

5.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이번
강연은 언어분석철학자로만 알려진 비트겐슈타인을 쇼펜하우어 계열의 삶의 철학자로 소개하려고 한다. 참혹한 1차 대전의 참호 아래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를 썼다. 수학과 언어의 한계는 삶의 문제와 분리할 수 없다. 언어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유아론과 본질주의와 같은 문법적 환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비트겐슈타인은 진정한 서양의 선사이다. 기이한 그의 삶과 철학을 그의 번득이는 통찰과 단호한 침묵과 연결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6. 화이트헤드: 존재의 계보 – 화이트헤드의 발생학적 생성

니체 도덕의 계보는 실체론적 도덕 기원에 대한 반거였다. 화이트헤드의 존재론 역시 전통의 플라톤 실체 존재론을 부정하고 과정 존재론을 제시하는 반거이다. 실체 기원론에 대한 부정은 그 두 철학자 사이에서 공통되는 존재-인식론적 계보학의 출발이다. 본 강의는 니체로부터 현대
생물학까지를 관통하는 통합적 시선을 통해 ‘과정(process) 사유’를 잉태하게 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바라본다.

7. 사르트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변증법적 이성 비판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말하는 ‘무’는 인간의 자유의 근거이다. ‘무’란 무엇인가를 부정하는 힘이다. 인간은 저마다 누가 뭐래도 ‘아니야’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주체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가 관습적으로, 혹은 신이라는 이름으로 선포된 인간에 대한 본질적 규정을 거부한다면, 이런 주체가 곧 실존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포하며 ‘초인’에 대해 말한 데 대해 사르트르는 ‘무화하는 힘을 가진 실존’으로 응답한 것이다.

8. 메를로퐁티: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

서양 근대 철학에서 데카르트 이래 그어진 주체-대상의 이분법은 나와 타자가, 나와 세계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야기했다. 주체-대상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문제에 대해 니체가 육체의 중요성을 선언했다면,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을 통해 육체와
감각 및 인식의 관계를 정교하게 논증했다. 메를로퐁티가 현대회화의 역사는 형이상학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는 화가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깊이, 색, 선, 운동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탐구 속에서 우리는 ‘세계의 살’로서의 몸으로 연결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9. 데리다: 해체란 무엇인가 – 글쓰기와 차이

데리다는 단지 서양 근대 철학만이 아니라, 서양 철학 대부분이 그리고
지식 체계 대부분이 이성 중심적으로 그래서 로고스 중심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비판한다. 그 비판의 근거로 ‘차이를 만드는 차이’로서 ‘차연’을 제시한다. 이것은 흔적, 유보, 원문자와 같은 다양한 용어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데리다는 이를 철학자들의 논의 속에서 ‘소문자 a’에 대한 언급 내지 역할을 추적하면서 나아간다. 이성 중심주의적, 로고스 중심주의적 체계 안에 ‘흔적’처럼 남아있는 그리고 작용하는 ‘차연’의 가능성을 소문자 a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이성 중심주의적 체계를 해체하려고 한다. 이런 발상은 데리다 고유의 것이기는 하지만, 과거 철학사를 거슬러 가면, 하이데거도 니체도 그런 발상의 근간이 되는 것을 이미 제시한다. 그러나 데리다는 하이데거보다는 니체가 차연의 가능성을 먼저, 제대로 파악하여 철학자의 ‘웃음’, ‘유희’, 등을 사용하여 주장했음을 인정한다.

10.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레비나스의 철학은 이성 중심의 전체성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니체 철학의 정신과 함께 한다. 특히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비롯하여 존재론 중심의 서구 철학을 극복하고자 한다. 존재론은 세계에 대한 명료한 파악을 지향하며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동일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우리 삶의 근본적인 면모는 그런 테두리 밖의 타자와 맺는 관계에서부터 성립한다. 타자는 우리에게 이미 다가와 있지만 우리가 장악하지 못하는 낯선 자이고, 우리 삶은 이 낯섦을 궁극적으로 떨쳐버릴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삶의 가장 우선적인 국면은 이런 타자의 부름과 거기에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 꾸려진다. 이것이 존재론에 앞서는 윤리적 관계다. 서구적 계몽이나 이성의 횡포는 이와 같은 타자적 측면을 무시하는 뻔뻔함에서 비롯한다고 레비나스는 생각한다.

11.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푸코는 니체의 ‘계보학’을 이어받고, 니체의 계보학을 더 철저하게 구현한다. 니체의 계보학은 사건이나 제도, 이념이나 가치 발생의 의미, 목적, 유용성이 우연적으로 교체되고 재배열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기호에 대한
해석학이다. 푸코는 니체의 생각을 이어받아 계보학적 방법론을 구축한다. 푸코는 서구 근대인의 사유의 역사 속에 끊임없이 작동하는 권력망에 주목한다. 그는 광기, 범죄, 성욕에 대한 역사를 서술하면서 전통적인 역사학이 지향해 온 거창하고 거시적인 총체적 담론 체계를 확립하려고 하지 않고, 미시적 비판 형식과 방법을 취한다. 그리고 광기, 범죄, 성욕에 대한 서구 근대인의 사고 방식에 대해 보여주는 과정에서 푸코는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권력의 촘촘한 그물망을 폭로한다.

12. 들뢰즈 :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20세기는 들뢰즈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푸코의 말이다. 이 말을 하게 된
배경은 질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이라는 저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는 남들이 이미 자신의 철학을 구축했을 시기에 앞선 시대의 철학자들을 연구하는 재미없는 학자였다. 그 시기동안 그는 베르그송, 흄, 니체,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중 니체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은 들뢰즈가 그 당시까지 다져왔던 여러 철학자들의 존재론을 ‘차이’와 ‘반복’이라는 개념으로 엮으면서 하나의 철학으로 확장시킨다. 들뢰즈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무엇과 무엇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다른 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이다. 그런데 이 차이는 궁극적으로 반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들뢰즈는 반복을 말하면서 영원회귀의 반복을 제시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긍정과 기쁨의 철학을 들뢰즈가 사용하면서 미래의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로 발전시킨 것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영원회귀의 반복은 이름 없는 평민들, 익명으로 불려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에 해당한다. 이 과정은 신이나 영웅에 의해 형성되었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시도일 것이다. 들뢰즈의 영원회귀의 반복, 그것은 지금 도래하고 있는 세계의 이정표일 수 있지 않겠는가. 문명의 발달로 이성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던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파시즘을 쓰라리게 겪었다. 이 잔혹한 경험으로 인해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확신이 흔들렸다. 이 믿음은 이제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 믿음에는 본래부터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 니체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그의 때가 온 것일까?구조주의 등으로 불린 이질적인 사조들이 니체라는 샘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 니체가 ‘내 말은 귀를 갖지 못했구나!’라고 탄식했지만 20세기에 그가 한 말의 ‘귀’들이 수도 없이 출현했다. 우리는 니체의 말과 그 ‘귀’들을 새로이 읽으며 서양 현대 철학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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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청춘의 고전 시즌2]-①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청춘의 고전 시즌2]-①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전호근(경희대학교)
김민수(서울교대 시간강사)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전호근 교수)
전호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너는 홍대 앞 클럽 가니? 나는 홍대 앞에서 철학한다.’라는 다소 시대상을 반영한 도발적인 문구로 상상마당+한국철학사상연구회+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청춘의 고전>이 지난해 ‘영화+철학’으로 시즌1을 마친데 이어 올해 ‘그림+철학’으로 시즌2를 시작하였다. 시즌2의 제목은 ‘그림에 say’이다. 그림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전호근 교수가 강의 중에 말했던 바와 같이,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이 없다면 부차적인 것이거나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인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선 감상자의 미적 체험이 없이는 보일 수 없는 그림을 누군가가 말로서 대신 체험하게 해 준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밖에 부는 바람 때문일지 아니면 시대적 요청일지, 여하튼 아직은 모를 어떤 힘에 의해 ‘그림에 say’라는 실험이 시작되었다.

‘인문학의 위기’ ‘철학의 위기’라는 세간의 표현이 무색하게 홍안의 청년에서부터 백발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수강생들이 자리를 꽉 메운 강의실의 풍경에 전호근 경희대 휴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다소 놀랐다. “이렇게 많이 올지 몰랐습니다.” 다산, 연암, 추사의 원전 강독 강좌에 정평이 난 전호근 교수(이하 전교수)가 대중 강연 속으로 나와서 처음 던진 인사말이었다.“인문학은 어려운 학문입니다. 그리고 제 강의도 그렇습니다.”라고 운을 떼며 전교수는 곧바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인문학이 기성복을 사듯 몸에 맞는 적당한 것을 쉽게 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옷을 지어서 입는 것이라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 가며 직접 옷을 지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전교수의 설명이었다. 물론 그 옷을 만드는 과정에는 애써 짠 옷을 풀었다가 다시 짜는 실패의 경험도, 서툰 바느질에 손끝이 찔리게 되는 아픔의 경험도 함께 들어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 겪는 어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일상생활에 쫓기면서 기성복을 골라 입듯이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고전은 불편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멀리 있으면서도 낮선 ‘어떤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전은 진리만을 말할 뿐인데, 진리와 멀어지게 된 거리가 고전을 어렵게 만든다. 고전 읽기의 어려움 정도는 현존 상황에 대한 익숙함 정도와 비례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논어(論語)』를 예로 들어, 역사적으로 분서갱유를 당한 과거의 금기가 오늘날에도 ‘공자가 죽어야한다’ 혹은 ‘공자는 멍청이의 원조이다’라는 터무니없는 말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언급하면서, “우리가 고전을 어떻게 읽느냐가 바로 ‘고전’의 수준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좋은 책이란 현실이 진리를 외면할 때 금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역사적으로 우리의 선대 지식인들이 어떻게 고전을 읽어왔는지 안다면, 그 앎 속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1. 세한도에 머문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

전교수가 세한도에서 읽은 것은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이었다. 전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은 다름 아니라 성리학의 ‘리(理)’이며 이것이 사대부의 정신이었는데, 그 마지막 정신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창밖의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추사는 단지 ‘그림’만을 잘 그리는 제자보다는 먹이 스며들듯 정신이 깃든 ‘문자향’을 잘 드러낸 제자를 편애하였다는데, 그 이유를 전교수는 추사가 그 어느 것보다 더 높게 추구한 불멸의 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교수는 ‘추사의 세한도가 왜 명작인가?’라는 물음에 대에 대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단지 ‘그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교수가 강의 자료로 가져와 보여준 추사의 세한도 그림에는 우선 흰 여백이 있었다. 그리고 여백 한 가운데에 갈필로 그려진 소나무 두 그루와 문이 정면으로 나 있으면서 비스듬히 놓인 집이 있었고, 왼쪽에는 잣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그림의 제목인 세한도(歲寒圖) 글씨가 있었고, 그 옆으로 제자인 이상적(李尙迪)에게 준다는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이어서 추사(秋史)의 또 다른 대표적 호(號)인 완당(阮堂)이라는 글씨와 함께 본명인 정희(正喜)라 씌여진 낙관이 찍혀 있었다. 오른쪽 하단에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 낙관처럼 찍혀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떤 세찬 바람은 없었다. 4층 강의실 너머로 가로수들을 심하게 흔드는 바람보다 훨씬 더 거센 제주도의 바람이 불었을 법한데, 세한도에 바람은 없었다. 추사의 정신 속에는 바람이 이미 지나간 이후였다.

전교수는 세한도가 그려진 때가 세밑 겨울이 아니라 의외로 여름이었다고 한다. 나무도 실제 소나무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조선 문인화의 정수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언급하면서, ‘진경(眞景)’은 “눈에 보이는 단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둘러본 이후에 생긴 ‘참눈’으로 일체를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참눈’은 바로 문인(文人)의 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수는 겸재(謙齋)가 진경으로 산수를 보았듯, 추사가 세한을 보듯, 우리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진경(眞景)으로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전교수는 하나의 예를 들었다. 예는 봉은사 판전현판(殿板, 1856) 글씨로 낙관부의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 암시하듯 추사의 마지막 글씨이다. 전교수에 따르면, 이 글씨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보면 그저 초등학생 친구가 쓴 글씨로 “똥 싸질러 놓은 듯한 글씨”일 뿐이다. 이 말은 예전에 초등학생이었던 전교수의 딸이 추사의 글씨를 보고 했던 말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무거운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붓의 무게마저 내려놓은 노인의 마음으로 보면 “해탈하고 나서야 알 듯한 글씨”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전교수의 어느 벗이 일전에 대화를 나누다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예를 들면서, 전교수는 “그림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삶을 통한 체험의 무게와 작품의 내면에 깊이 닿는 ‘순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체험의 무게가 무겁지 않으면 작품 내면의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작품을 뚫고 나가는 ‘해탈’인데, 추사의 마지막 작품에는 그 ‘해탈’의 경지 즉,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도달한 경지가 있다는 것이 전교수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전교수는 이런 설명은 아무리 애써 말해도 작품을 보는 감상자에게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작품 앞에 마주선 감상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 속에서 느끼는 그 ‘순간’을 반드시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말이란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추사의 세한도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그림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어쩌고 저쩌고’ 말(say)하는 것은 어쩌면 아무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서 혹은 램브란트의 말년의 자화상 앞에 설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하였다. 흔히들 모나리자에 대해서 색채의 원근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혹은 눈썹이 없어 미완성 때문이라는 등등의 말, 램브란트가 빛을 만들기 위해서 계란 흰자를 사용했다는 등의 말로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경험의 ‘순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수는 고흐가 친구와 함께 미술전시관에 갔다가 램브란트의 작품 「유대인 신부」(1665년 작) 앞에 서서 몇 시간을 꼼짝 안하고 서 있다가 친구에게 “내가 이 그림을 2주 동안 계속 감상할 수 있다면 나의 수명 중에 10년을 줄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작품을 볼 때에는 그러한 ‘순간’의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덧붙여, 전교수 “나의 경우에는 10분쯤 줄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며, “어쨌든 10년이든 10분이든 수명을 줄여도 좋다고 인정한다는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면서 청중과 호흡하는 강의를 진행해 나갔다.

2. 추사, 태사공, 공자의 세한(歲寒)

“우리가 세한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단지 그림의 이렇고 저러한 면이 아니라 그 그림 속에 담긴 추사의 생각을 보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전교수는 세한도의 발문(跋文)을 읽기 시작하였다. 세한도의 발문은 단지 천만리 밖 먼 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책을 구해다가 추사의 유배지인 제주도에 가져온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기록한 단순한 발문이 아니다. 발문에는 추사가 느낀 세한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 발문이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와 집 한 채가 있는 그림과 함께 세한도라는 작품이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추사의 발문에는 옛 성인인 태사공(太史公)과 공자(孔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낀 세한의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태사공은 이르길, ‘권세와 이익으로 만난 관계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고 나면 사귐 또한 끝난다.(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流)’고 했다. 그대 또한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스스로 도도히 흐르는 권세와 이익의 밖에 있으니 그렇다면 그대는 권세와 이익으로 나를 보지 않는 것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렸단 말인가?” 이 말은 곧, 태사공의 시대에도 그렇고 추사 당대에도 그러하듯, 세상의 도도한 흐름은 오직 권세와 이익을 좇아 그것을 얻기 위해 마음과 힘을 그토록 허비하는데, 그러한 권세와 이익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바다 멀리 초췌하고 바싹 마른 늙은 추사에게 오기를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좇아가는 듯 하는 제자 이상적을 고맙게 여겨 추사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우리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전교수는 태사공의 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감내해야 했던 세한의 계절은 곤궁함이고 누추함이고 고독함이었다. 전교수는 “우리는 누구를 볼 때, 그 사람이 이룬 훌륭한 성취만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을 모른다.”고 언급하면서 추사의 실질적인 삶은 비참했다고 언급한다. 전교수는 비참했던 추사의 제주도 유배 생활은 당시 그가 남긴 수많은 서간들에 잘 드러나 있다고 언급하면서, 가족들과 친지들에 보낸 서간들에는 기가 막히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숱한 풍토병과 눈병에 시달려 약을 구해달라고 하는 등등의 구구절절한 내용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추사는 겨울에는 한풍으로, 여름에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고난과 역경의 삶을 연명해야 했었다. 추사의 세한도에 담긴 단아하고 굳건한 정신은 단지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배로 올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풍파, 즉 세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세한의 계절에서부터 비롯해서 세한의 계절을 이기고 난 이후에 생겨난 것이 흔들림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그 정신이 흔들림 없이 표현된 것이 다름 아니라 세한의 이후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 그리고 고즈넉한 집이다. 이렇게 보면, 추사의 세한도에는 세한의 계절을 모두 거치면서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극복한 숭고미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 정신에는 세한의 계절에 놓인 세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태사공에 이어서 전교수는 발문에 적힌 공자의 말을 읽어나갔다. “공자께서 이르시길,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고 하셨다. 이 말은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을 태사공이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뒤에야 비로소 깨끗한 선비가 드러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언급하면서 인용한 것이며, 이 말을 다시 추사가 발문에서 인용하여 적은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해 추사는 발문에서,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을 통틀어 시들지 않으니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歲寒之前) 그대로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일 뿐이고,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歲寒然後)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일 뿐인데, 성인께서는 단지 날씨가 추워진 뒤의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칭찬하셨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이어서 제자인 이상적이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그리고 추워진 후에도 변함없는 것을 언급하면서, 추사는 “그렇다면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것이 없겠거니와 이후의 그대는 또한 성인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적고 있다.

 

전교수는 세한지전(歲寒之前)과 세한연후(歲寒然後)를 구분하면서, 소나무와 잣나무가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도 여전히 굳게 푸르른 것은 변함없는 ‘인(仁)’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전교수는 직접 강의 자료로서 준비해온 사마천의 「백이열전」 중의 한 글을 읽으면서 탐욕스러운 재물에 목숨을 걸기보다는 인덕을 쌓고 깨끗하게 행동했던 백이, 숙제(伯夷, 叔齊)의 ‘인(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공자의 70명 제자 중 유독 배우기를 좋아하고 성품이 훌륭했다는 ‘안연(顔淵)’의 ‘인(仁)’을 이야기했다. 비록 백이, 숙제는 굶어 죽고, 안연도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여 끝내 일찍 죽고 말았지만, 깨끗한 선비는 세상의 권세가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부귀를 가볍게 여겼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전교수는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이후에야 그 속에서 깨끗한 선비가 드러남을 백이, 숙제, 안연을 통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이렇듯, 추사가 태사공과 공자와 함께 느낀 세한의 의미는 곧, 세한의 계절을 겪은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문인(文人)의 정신이다.

3. 날씨가 추워진 이후(歲寒然後)에 먼 곳에서 찾아온 벗.

공자는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사람이 알아주지 못해도 노엽게 생각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냐(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라고 말했다. 사람이 알아주지 못해도 노엽지 아니한데, 날씨가 추워진 이후(歲寒然後)에도 먼 곳에서부터 벗이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아마도 추사는 멀리서부터 찾아온 제자 이상적과 그가 스승의 오래된 벗으로부터 구해 온 책들을 보며, 젊은 시절에 청나라 연경에서 함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기쁜 시간을 함께 보낸 스승과 벗들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전교수는 강의의 마무리 즈음에 이르러, ‘먼 데서 찾아 온 벗’이라는 화두를 꺼내며 ‘1984년 5월 어느 날… 버디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라고 적힌 강의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 1984년 5월 어느 날은 전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직접적인 체험이 담겨 있는 날이었다. 전교수에 따르면, 그날은 종로 어느 골목에서 젊은 날의 전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는데, 그 이유는, 코를 따갑게 만들며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자욱한 최루 가스 때문이었다. 아울러 전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그 날은 또한 때마침 방문하여 종로 인근에 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그 가스로 인해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다. 그때, 요한 바오로 2세가 어느 연설장에서 한 첫 말이 “버디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전교수의 추측에 따르면, ‘버디 있어’라고 잘못 발음한 것을 보니 누가 원고를 대신 써준 것이 아니라, 교황이 직접 썼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오면서 “2,500년이라는 시공간을 관통해서 왔었다”고 말하였다. 전교수에 따르면, 요한 바오로 2세는 논어를 읽고 감명이 들어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를 첫 인사말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 벗을 너무 즐겁게 반겨서 최루 가스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전교수가 개인적 체험을 거론한 것은 단지 주관적일 뿐인 한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었다. 전교수는 사마천의 어느 한 문장을 기억하여 말하면서, 역사가는 “지나간 일을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述往事思來者)”라고 말하였다. 즉, 역사가의 서술 작업은 과거를 정확하고 진실하게 기술함으로써 과거 속에 올바른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역사 서술은 문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적 존재이자 역사적 존재인 인간이 역사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우리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더러 아울러 미래 또한 아무런 전망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교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4.19세대들은 후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데 성공했다면, 5.18세대들은 후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 속에 담긴 성과와 과오를 알려주는 데 실패했다고 언급했다.

전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당대의 뛰어난 사람을 벗으로 사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당대의 뛰어난 벗이 있어 직접 찾아갈 수 있다면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러나 만약 당대의 뛰어난 벗이 없다면, 옛 사람을 벗으로 사귈 수 있다”고 말한다. 옛 사람을 벗으로 사귀는 것이 곧 역사를 읽는 것이자 역사 속에 오래도록 남은 고전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이덕무(李德懋)가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운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늦은 시간까지도 강의실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에게 “우리는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이 물음에 대해서 “만약 이 기준에서 볼 때, 우리가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면, 우리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먼 곳’이란, 단지 지리적으로 이동 거리가 먼 곳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벗이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권세와 이익을 쫓아 자신의 온 정열을 쏟으면서도 벗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먼 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먼 곳’이란, 시공간적 의미에서, 단지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의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래 전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그의 생각을 문헌을 통해서 읽고 헤아리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벗은 아주 가깝게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고전이란 바로 우리가 벗으로 여긴다면 아주 가까울 수 있으면서, 그 반대로는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언급한다.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 추사에게 찾아온 벗은, 먼 곳에서부터 어렵게 책을 구해서 제주도로 찾아온 제자 이상적뿐만 아니라, 그 책을 전해준 당대의 벗들, 그리고 그 책 속에 담긴 아주 오래된 벗들이었다. 이 벗들을 만나 즐거운 마음에, 세한연후(歲寒然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知) 된다는 공자의 말을 빌어, 추사는 비록 거리는 멀리 있지만 가까이 온 벗을 반긴 것이다. 그러면서 그 반가운 마음을 추사는 세한도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이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이 그해 연경에 찾아가 추사의 벗들에게 그 마음을 보였을 때, 그 벗들 또한 즐겁고 반가운 마음에 서로들 찬시(讚詩)를 덧붙여 썼던 것이다. 우리도 세상살이의 풍파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벗들은 세한연후에야 비로소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더라도 바람이 지나간 연후에는 벗이 찾아온다.

전교수는 강의 중반부에서 “예술가가 외롭고 고독한 존재인 줄 알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고 말을 하였는데, 어쩌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임을 정녕 몰라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진지한 ‘순간’을 삶에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혹은 불편한 진실로 여기고 살아간다. 전교수의 말 속에는 전교수가 추사의 ‘세한도’를 통해서 전해주고 싶은 결론이 암시되어 있었다. 즉, 우리가 외롭고도 고독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세상의 추운 한파를 견뎌 낼 때, 세한연후(歲寒然後)에는 먼 곳에서 벗이 오는 기쁜(樂)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강의실 밖에는 여전히 봄꽃을 시샘하는 세찬 바람이 불어 가로수는 흔들렸다. 하지만, 세한도 안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강의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안 전교수는,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라는 시대적 화두를 던지며,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라는 말로 강의를 끝마쳤다.

4. 세찬 바람을 뚫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온 벗

이윽고 강의의 여운이 남겨진 가운데, 청중의 질문 순서가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은 “못된 사람이 잘 사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이에 대해 전교수는 “못된 것은 못된 것이라고 서술하는 것이 역사이고 사마천은 그렇게 했다. 사마천은 역사 속에 미래를 담은 것인데, 지금의 우리 상황은 사마천의 시대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역사를 서술하는 것 이외에도,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하였다. 두 번째 질문은 “이상적이 가져온 책은 추사가 원했는가? 아니면 이상적이 알아서 가져온 것인가?”였다. 이에 대해 전교수는 “둘 다 맞다고 할 수 있다. 추사는 연경에 있던 벗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최신의 책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제자 이상적이 그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답하였다. 그 외에 세 가지 질문이 더 이어졌고, 전교수는 차례대로 답하였다. 질문자 중에서는 일산에서 고등학생과 함께 온 어머니도 있었다.

소위 인문학의 위기, 철학의 위기를 겪는 동안 학자들은 현실과 대중에 다가가지 못했던 자기반성을 시도하였고, 이제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멀리 있는 것으로만 여겼던 ‘벗들’을 찾아 나섰다. 춘삼월이라 하지만 아직 봄꽃을 시샘하는 세찬 바람이 불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바람을 뚫고서 상상마당 4층 강의실로 우산을 접듯 바람을 접고 ‘벗들’이 들어왔다. 벗이 있어서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만약 그렇다면 마치 제자 이상적이 먼 곳에서 찾아왔을 때 추사가 세한도를 건네며 고마움을 표현했듯이, 이제 우리의 선학자들도 ‘벗들’에게 어떤 울림의 말을 해서 고마움을 표현할지 기대해 볼 일이다. 울림이 클 때 벗들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學而時習之說也). 다음 두 번째 강연은 4월 14일 6시에 상상마당 4층 강의실에서 열리며, ‘구스타프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과 여성의 몸’이라는 주제로 이현재 서울시립대 HK교수가 강연자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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