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2007년 8월부터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던 일로 많이 지쳐 있을 때였고 자활 사업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몸으로 하는 일이니, ‘마음은 좀 쉬자’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들어갔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2008년이 되었다. 봄이 되자 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 홈페이지를 뻔질나게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소식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해보았다. 언제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교육이 예정되어 있음은 확실하다고 했다. 마음 조이며 기다리던 어느 날, 드디어 모집공고가 났고 참가 신청서를 냈다.
시민 인문학 강좌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경희대학교 실천인문학센터에서 주관하는 소외계층을 위한 강좌이다. 철학, 글쓰기, 예술사, 문학, 역사의 5과목이 12강으로 짜여 있다. 2학기로 나누어 매주 목요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두 과목 수업을 하고, 격주로 토요일에 예술사 수업과 현장체험학습이 있다.
둘.
6월 24일 오리엔테이션과 26일 입학식을 거쳐 우리는 경기광역 4기로 입학하였다. 지난 기수의 졸업생들과 기관에서 함께 축하해 주러 왔고, 몇 분의 교수님들 그리고 6개월간 함께 공부할 경기 남부 권역의 자활사업 참여자들 20여명이 자리를 하였다.
서로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였다. 오고 싶어서 왔다는 사람도 있고, 권유로, 때로는 마지못해 왔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전 수료생에게 들은 글쓰기 숙제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사람도 몇 있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문득 얼마 전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전략) 여전한 무기력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서
생각한다
맑은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필요해…
쉬고 싶어…
그 물속 깊숙이 웅크리고 있으면
눈을 뜨지 않아도 돼
숨을 쉬지 않아도 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후략)
[양수]라는 제목을 붙였던 짧은 글이다.
시작 전부터 이번 교육에 대한 느낌은 매우 특별했다. 기대로 설레던 입학식 날, 문득 양수 속 태아의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충분히 즐기겠다는 각오를 인사말과 함께 이야기했다. 나는 수업은 물론 뒤풀이 자리까지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단거리 주자의 출발 선상 같은 내 진지함이 조금은 과해 보였는지, 교수님은 더러더러 놓치기도 하면서 여유있게 즐기라고 말씀하셨다.
셋.
수업의 문을 여는 7월 첫째 주 목요일 첫 시간은 철학수업이다. 현재를 거스르지 않고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삶은 나름대로 편했지만, 철학 수업은 그 편함을 건드린다. ‘그게 참된 편안함이냐고…’ 고요한 수면에 던져진 돌이 만든 파문처럼 마음이 복잡해졌다. ‘불의와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 뒷골목 좁은 길을 디디며 겨우 의탁하는 내 한 몸도 벅찬 일인데…’ 그러나 며칠 만에 고민을 접고 평상으로 돌아올 때쯤 다시 듣게 되는 철학 강의는 또 다시 마음을 긁는다. 외유내강의 강의는 자꾸만 외면하고 싶던 것들 쪽으로 고개를 돌려놓았다. 철학 수업의 기본 전제는 각자 개개인의 삶 자체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며 우리 스스로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면서 평등하게 존귀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게 한다. 시대의 화두, 품격 있는 삶(well-being)은 품위 있는 죽음(well-dying)을 준비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각인시키면서…
진지하고 충만한 두 시간이 지나면 저녁식사 시간이다. 밥 먹는 시간은 언제나 떠들썩하고 즐거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문학과 글쓰기 수업이다. 교수님은 글쓰기를 일상화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제시하신다. 제출한 글은 본인의 동의를 얻어 함께 읽었다. 아픔이 느껴지는 학우들의 글을 보면서 저렇게 힘든 삶도 있음을, 내 아픔은 오히려 어리광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사실, 처음엔 학우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사람 만나는 일을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 외톨이 성격 탓이다.
글쓰기를 통해 보이는 상처들은 이전의 것들과 같지 않았다. 귀 기울여 듣는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시간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없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가식 없는 마음의 손들이 돌아와 따뜻하게 맞잡았다. 글쓰기 외에도 이덕무, 길재를 비롯한 옛 선비들의 글을 읽었고, 손택수, 안도현 등의 서정적인 시를 읽었으며, 나카지마 아츠시와 강희맹의 단편들을 함께 읽고 즐거워했다.
토요일에 진행된 예술사 시간에, 우리는 라스코 동굴 벽화를 보았고, 황소의 의미를 들었다. 독특한 발상의 현대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엿보기도 하였으며, 茶 매니아 교수님의 차 강의도 재미있게 들었다. 먹고 사는 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예술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여유가 되어 돌아왔다. 또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즐거움은 배가됐다.
10월 첫 주에 시작된 2학기는 문학과 역사 수업이다. 문학 수업 첫 시간엔 1학기를 마친 소감을 돌아가며 얘기하게 되었다. 각자의 소감들이 나왔고, 그때마다 교수님은 문학작품들 속에서 발췌한 비슷한 이야기들을 곁들여 위로하거나 공감을 표하신다. 그런 방식의 수업이 2학기 내내 이어졌는데, 수많은 시와 산문을 읽고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으로 문학을 이야기하는 문학의 숲이었다. 시를 읽다 보면 마음속에선 어느새 시의 불이 붙곤 했다. 마음속에서 이는 맹렬한 겨울 들불이었지만, 써놓고 보면 번번이 졸렬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문학에 이어지는 입담 좋은 교수님의 역사 수업은 단군조선의 건국을 시작으로 조선의 건국, 세종의 문화정치, 그리고 또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고 한탄하곤 하시던 근현대사 이야기들을 줄줄 풀어내시면 우리는 옛날 얘기를 듣듯이 재미나게 들었다. 재미에 빠져 있다 보면 역사와 시대에 대한 차가운 의식이 서늘하게 스쳐가곤 했다.
강의실 수업 이외에 우리는 간간히 현장학습을 했다. 처음 나간 곳은 [어둠속의 대화] 체험이었다. 우리 일상의 주변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에 빛을 배제한 것이다. 시각과 인식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볼 수 있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예술사 교수님의 친절한 해설을 곁들인 관람을 했다. 예술이란 푯말은 때로는 껄끄러웠고 때로는 향기로웠다.
늘 챙기고 배려해야 하는 주부입장에서 누군가로부터 챙김 받고 배려 받는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아무래도 1박2일 코스로 다녀온 문학기행이다. 우리는 운길산의 유서 깊은 사찰 수종사를 거쳐 오래 전부터 소망하던 곳인 가평 아침 고요 수목원을 둘러보았다. 그 중 가장 인상에 남은 시간들은 한옥 체험장인 취옹예술관에서의 밤이었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깔린 이불속에 발을 묻고 둘러 앉아 초청 시인의 특강과 함께 11월의 시들을 읽었고, 배깔고 엎드려 우리는 시를 지었다.
오는 동안 모두들 조금씩 들떠서, 하도 웃고 떠들어 대니 그 웃음소리들이 온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통에 글은 제대로 써지지 않았지만, 써지지 않는 대로도 좋은 것이었다. 그래도 글을 제출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1학기 초기 글쓰기 시간을 생각해 보면 큰 변화인 것이다. 각자 쓴 글에 대한 시인의 조언을 듣고 나서 우리는 자유롭게 먹고 마시기로 했다. 사무실에선 술과 음료, 안주와 간식들을 푸짐하고 살뜰하게 챙겨 왔지만, 그것들은 그 날 그 자리에서 엑스트라 역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와 대화들 때문이었다. 매 순간순간을 가만 두지 않던 에피소드들… 오고 가는 길 내내 어린 소년 소녀들이 되어 웃음 떠들썩하던 행복한 여행이었다.
그 후, 다시 한 번 역사 기행을 다녀온 후 우리는 곧 졸업식을 했다. 졸업을 앞두고 모두가 서운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지만, 마음을 합쳐 함께 졸업 작품으로 택한 어설픈 춤을 연습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공동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유대는 더욱 끈끈하게 다져졌다.
넷.
돌아보면, 밥 한 그릇과 맞바꾸어지는 내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들과는 달리, ‘밥과 바꿀 수 없는 시간들’이라서 행복했고 소중했다. 모든 순간순간에 스스로 정성스러워졌다. 수업이 있는 날은 게으른 얼굴에 분도 좀 바르고, 변변치 않은 것들 중에서나마 조금 더 깨끗한 옷을 골라서 입으려 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타는 1호선 전철은 금정역을 출발하는 순간, 순간이동을 했다. 세상의 빛과 공기가 달라졌고, 현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길가 풍경들 위에선 축제를 알리는 무수한 마음의 깃발이 펄럭였고, 나는 늘 봉실봉실한 구름을 타고 다녔다.
행복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은 향기롭고 신선한 천국의 숲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때 묻은 작업복을 벗고 깨끗하고 순한 옷을 입은 채, 새처럼 떠들고 꽃처럼 웃었다. 항아리 위로 넘치는 물처럼 마음속을 채우고 넘쳐 오른 행복감은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흘러, 우리는 끝없이 서로 ‘감사하면서 사랑한다고…’ 이전엔 결코 쓰지 않던 말들을 하고 또 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비슷한 교육들을 받기도 할 것이지만, 어느 곳에서의 교육에서도 지금과 같은 의미는 두 번 다시 찾기 어려우리라. 부모님 슬하에 있던 어린 시절처럼 안온한 시간들이었다. 다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숲의 향기가 온몸과 마음을 적셔, 종내 나도 한그루 향기로운 나무가 되었던 느낌이다. 내 일상은 서늘하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지루함이나 피로를 알지 못했다. 딛는 발자국마다 에너지가 넘쳐흘렀고, 마음속에선 꽃이 피고 또 피었다.
함께 수업 듣던 언니가 졸업식을 한다는 말에 누군가 그걸 배우면 어디에 취직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보더라고 했다. 우리는 웃었지만 생각해 보니 남은 것은 사람과 추억이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다들 얼마만큼씩은 외로운 구석도 없지 않지만, 선뜻 마음 열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일상이다. 인문학 수업으로 맺어진 우리는 있는 대로 마음을 열고, 서로 제 일처럼 걱정하고 좋아 한다. 때때로 문자로 계절이 오고 가는 일을 전하며 낭만을 일깨우기도 하고,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도 한다. 공부를 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는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난 몇 개월의 행복은 참으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이었다. 얼마 전 우리는 첫 동문 모임을 가졌다. 한 달이 조금 덜된 시점이었지만, 우리는 쏟아질 듯 반가움들을 토해 내었고 계속 글을 써서 일 년에 한권씩 우리들의 문집을 만들자고 약속을 하였다.
어느 책 속에 있던,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행복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이나 한겨울에 봄날의 햇볕을 당겨오는 것처럼 거창한 것들이 필요한 일이 아님을 다시 생각하며, 긴 겨울 끝자락에 만나는 향기로운 후리지아 꽃처럼 내 앞에 펼쳐질 따뜻한 봄날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 2008년 인문학 수업은 정녕 행운의 열쇠였다. 내게 인문학은 삶의 자활(自活)이기에…
**이 글은 2009년 『녹색평론』 3-4월호에 실렸던 것을 발췌,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편집자)
남자연(경희대 시민인문학강좌 졸업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