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항거한다.”[베를린에서 온 편지 11]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항거한다.”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나는 전에 쓴 글 <극단의 시대>(http://ephilosophy.kr/han/?p=46285)에서 유럽에 거주하는 무슬림 청년들의 극단주의화 경향과 유럽 내 반이슬람, 반외국인 정서가 양극을 이루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우려는 끔찍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유럽 역사상 가장 끔찍한 언론에 대한 테러가 일어났다. 전 세계가 이 테러에 분노하고 있고, 희생된 사람들에게 추모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양심의 선언은 처벌의 대상, 폭력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표현의 자유의 원칙은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죽은 이들에게 추모의 뜻을 밝히고, 야만적인 폭력으로 본인들의 의사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모든 형태의 종교 근본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이 큰 원칙에 우리 모두가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나는 다만 몇 가지 세밀한 논점들에 대한 논평을 덧붙이고자 한다.
2012년 9월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주요 근거지를 가지고 있던 극우 민족주의 단체 프로 도이칠란트(Pro Deutschland)는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서 당시에 전 세계 무슬림과 아랍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던 모하메드 풍자 비디오를 상영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프로 도이칠란트와 대립하며 이미 거리 시위에서 폭력을 동원해 대항했던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살라피스트 단체들은 이 상영회를 격렬히 비판하며, 상영회가 강행되면 테러공격을 자행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양측의 폭력충돌이 우려되고 테러위협이 제기되던 상황에서 메르켈 정부는 안전을 구실로 모하메드 풍자 비디오 상영회를 불허하여 상황을 종료시킨다. 그러자 중도좌파진영인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은 강력히 반발하며, 정부의 상영 불허조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비판했다.
이 상황은 오늘날 표현의 자유가 직면한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과거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온갖 형태의 권력에 의한 억압에 저항하던 피억압자들과 진보적, 계몽주의적 지식인들, 그리고 권력자들을 조롱하고 성적 금기에 도전했던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의 구호였다. 이제 제1세계와 중심부 국가들에서 정치적, 성적, 종교적 표현의 자유가 상당부분 허용되는 상황에서 간혹 등장하는 표현의 자유 논쟁은 더 이상 피억압자, 소수자, 약자의 권리에 관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 이제 논란은 이 소수자와 약자들에 대한 혐오선동을 일삼는 배타적 민족주의자들과 극우세력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독일에서는 나치를 찬양하는 것이 불법이다. 그러나 일부 네오나치들은 여전히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며, 홀로코스트가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할 권리, 그리고 유태인과 외국인들을 비난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슬림들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와 혐오를 드러내는 모하메드 풍자 비디오를 공공장소에서 상영하며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모독할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가? (이를 한국의 경우에 대입해본다면, 일베와 같은 극우 인터넷 사이트 이용자들이 특정 지역인들과 여성, 장애인들 등을 모욕할 표현의 자유를 그대로 존중해주어야 하는가?) 질문을 이렇게 던진다면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 계몽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세속주의의 가치를 들고 구체제의 억압적 사회질서와 관습들을 옹호하던 종교권력에 대항해 싸웠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과 공화주의자들은 부르봉 왕가와 귀족들뿐 아니라 특권을 누리던 성직자와 교회와도 싸워야 했다. 오늘날에도 유럽의 공화주의적, 사회주의적 좌파 진영은 동성결혼, 안락사, 낙태 등의 이슈로 언제나 보수적인 교회에 대립해 왔다.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교권주의에 대항하는 세속주의자들의 무기였다. 그렇게 해서 “계몽(세속주의적 비판정신과 표현의 자유)”이 “신화(비합리적이고 억압적인 교권주의적 종교권력)”에 대항하여 오늘날 자유롭고 개방적인 유럽을 만들어냈다고 많은 세속주의자들은 생각하고 있으며, 68혁명 이후 등장한 <샤를리 에브도> 같은 세속주의적 좌파 언론 역시, 신성시되는 모든 가치들을 가차없이 조롱하는 것이 1968년의 급진적 문화대혁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속도로 진행된 세계화 속에 이제 유럽은 자신들이 겪은 이 수백 년간의 문화적 충돌들, 그리고 그 타협물인 세속적인 관용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 관한 경험을 갖추지 못한 수많은 제3세계 출신 이주민들과 공존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프랑스는 인구의 10% 가까이가 무슬림인 것으로 추정되며, 독일의 경우도 터키인 이주자들이 이미 하나의 주요 사회세력으로 인정될 만큼 커다란 비중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무슬림들에게 여전히 세속적인 표현의 자유, 그리고 모독의 권리, 불경하고 불온한 것에 대한 사회적 관용은 그들이 경험, 학습하지 못한 낯선 문명이다.
유럽에 몰려오는 아랍, 터키, 아프리카계 무슬림들은 대부분 유럽 문화 속에 동화되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의 공동체들을 형성하며 제1세계 내 타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은 그들의 공동체적 동질감을 높여주는 수단이었고, 백인 현지인들에게 시달리는 차별과 소외의 감정을 보상해주는, (맑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믿는 신앙이 유럽 현지인들에 의해 조롱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이 느낄 박탈감은 어떤 것이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는 더 이상 “신화”에 맞선 “계몽”으로 군림하기보다는, 낯선 “타자”의 등장 앞에서 깊은 자기성찰에 직면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종교권력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이라는 세속주의자들의 구호가 만약 타자, 그것도 소외받는 소수자들의 종교에 대한 조롱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유럽의 세속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들(다양성, 개방성, 인권)에 스스로 반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현재 <샤를리 에브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에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물론 나는 <샤를리 에브도>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 그리고 <샤를로 에브도>에 대한 야만적인 테러행위에 단 한 점이라도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이 그들의 만평에 내재된 타종교에 대한 적대감의 표출,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인종주의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Je ne suis pas Charlie).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항거한다.” 이것이 이번 상황에서 내가 취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물론 내가 샤를리가 아닌 이유는 극우파 국민전선(FN)의 창설자 장 마리 르펜이 말하듯이 이 잡지가 아나키스트-트로츠키스트 성향의 좌파여서가 아니라(르펜의 호들갑과 달리, <샤를리 에브도>는 90년대 이후 정치적으로는 온건해졌으며, 상업주의화되어 정치적 메시지 전달의 선명성보다는 상업적 스캔들을 더 즐긴다는 비판을 이전부터 받아왔다), 소수자들이 믿는 타종교에 대한 조롱이 톨레랑스에 대한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톨레랑스야말로 세속주의자들이 보수적인 교권주의자들에 맞서 싸우면서 쟁취하려 해왔던 것이 아니었는가?
현재 유럽 각국의 극우세력들은 앞을 다투어 이번 테러를 비난하면서 “이번 일은 예상된 귀결이고, 바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내일 당장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라며 이슬람과 이주민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적대감을 선동하고 있다. 독일에서 매주 월요일 드레스덴에서 벌어지는 페기다(PEGIDA,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의 약자)의 반이슬람, 반외국인 시위대 규모는 3만에 육박하고 있으며 드레스덴을 넘어 전 독일로 확산되는 추세다.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에게 적대적인 독일 국수주의 극우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율은 이미 테러사건 이전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극우세력들의 인종주의적 증오선동과 일상에서 느끼는 억압과 차별이야말로 무슬림 청년들이 더욱 더 유럽의 세속주의적 문화가 아니라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주장들에 동조하게 되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선 3천 명 이상이, 독일에서만 600명의 이주민 자녀들이 이슬람국가(IS)의 지하드에 동조하고자 시리아로 떠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유럽으로 돌아왔다. 독일에서 떠난 사람들 중 180명이 독일로 돌아온 것으로 추산된다. 돌아온 사람들이 어떤 종교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 그들이 여전히 이슬람국가 측의 지령에 따르고 있는지 등은 미지수다. 독일인들은 겁에 질려 있으며, 이 기회를 틈타 극우세력이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 정부는 인터넷 감시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끔찍한 악순환이다.
만약 유럽사회가 이슬람 인구를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공존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장을 경계하고 테러에 단호하게 반대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무슬림들의 신앙이 왜 극단적인 성향으로 전도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4년부터 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머리에 두르는 수건) 착용이 금지되었다. 2011년부터는 길거리에서 부르카(온 몸을 가리는 두건)를 착용하고 얼굴을 가리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국가가 개인의 옷차림마저 규제하는 것은 극단적인 사생활 침해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규제는 신앙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프랑스의 세속주의 세력, 즉 공화주의적, 사회주의적 좌파는 항상 이 문제에 침묵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세속주의 원칙에 따라 이 조치들에 찬성해왔다. 그러나 진정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타종교가 신성시하는 선지자를 알몸으로 그리고 모독할 권리 그 이상으로, 소수자들이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권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믿음에 대한 비판의 권리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권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는 한 시사잡지의 만평을 보고 느낀 격분을 야만적인 학살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러한 행동을 사주한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에게도 분노한다. 그러나 유럽 사회는 수많은 이슬람권 이주민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근본주의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적 차별 선동을 중단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의 공존을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다시금 혐오와 차별선동에 대해서는 그 스스로의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 이것만이 표현의 자유가 애초에 지키고자 했던 사회의 다양성과 관용적 질서를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물론 이 예외는 결코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되며, 시민사회의 힘을 통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민사회의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시금 소수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보편적 연대의식이다. 이 연대의식의 성장은 억압받는 타자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는 <샤를리 에브도>가 표현해온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이고 인종주의적 시선에 비추어볼 때 적합한 구호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샤를리 에브도>의 희생자들을 슬픔과 분노 속에 추모하면서도, “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에 만족할 수 없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로 이를 대신해 “나는 아흐메드다(Je suis Ahmed)”라는 구호를 외친다. 아흐메드는 사건 당시 숨진 아랍계 경찰관의 이름이다. 그 역시 선지자 모하메드와 무슬림을 조롱하는 <샤를리 에브도>의 논평에 수치심을 느꼈을 무슬림이었다. 그러나 그는 <샤를리 에브도>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죽었고, 따라서의 그를 기리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폭력적 침탈에 항의하면서, 소수자 무슬림의 권리 역시 방어하는 의미를 갖는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폭력에 항의하며, 동시에 타자화된 소수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