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철폐 동아시아 연대를 만들어갑시다”
– 반인종주의정보센터(ARIC) 대표, 재일조선인 3세 량영성(梁英聖)씨 인터뷰
(정리: 한상원/ 통역: 최성문)
량영성 씨는 198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제주도 출신으로 일본 오사카에 정착하였으며, 그의 가족은 이후 3대째 일본에서 살고 있다. 량영성 씨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조선학교’에 다녔다. 조선학교는 재일교포 중, 국적을 ‘조선’으로 표기한 조선인들의 자치학교로, 아직도 일본에서는 다른 외국인학교와 달리 정식학교로 인가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 내 극우단체 재특회(在特会)의 조선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가 극심해지고 그에 대항하는 카운터스 운동이 등장하던 2013년, 그는 반인종주의정보센터(ARIC)를 세워 40여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캠퍼스 내 헤이트워치 감시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현재 히토쓰바시 대학(一橋大学) 언어사회연구 박사과정생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그의 책 『혐오표현은 왜 재일조선인을 겨냥하는가』가 번역되어 있다. 필자는 도쿄도 후추(府中)역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통역에는 요코하마 국립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생 최성문 선생이 수고해주었다. 그중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여 옮긴다.
–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과 반인종주의 운동을 소개해주십시오. 한국에서도 혐오발언 문제가 심각하고 이를 규제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이 진행 중인데,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규제법안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제 생각에 2016년에 제정된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은 문제가 많은 법입니다. 한국이 참고한다면 미국이나 유럽의 50년 전에 기본적으로 차별을 정의한 이념법, 금지법을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선진국가들 중에서도 독특한 국가인데, 미국, 유럽 등 다른 선진국가들에서는 네이션의 중요한 요소로서 인권의 진보적 가치를 두지요. 프랑스는 군주를 처벌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일본이라면 혁명이나 민주화 운동이 한 번도 사회를 바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종주의와 관련해서도 근본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인종주의정보센터(ARIC) 대표, 재일조선인 3세 량영성(梁英聖)씨 출처: 필자
헤이트 스피치가 이렇게까지 창궐하는데 일본 정부가 어떠한 대처도 하고 있지 않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예컨대 프랑스는 루이 국왕을 죽이고 인권을 천명하는 공화주의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했고, 노예해방 내전을 벌였고, 공민권운동도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이런 국가들에서는 ‘역시 차별은 안 된다’는 규범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규범이 일본에는 없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과 그 이후의 독재정권 타도하는 투쟁 등을 거치면서, 이것이 내셔널리즘, 네이션이라는 한계는 있으나, 인권 개념을 국가가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본은 현재 전후 처음으로 재특회 등등 풀뿌리 극우 운동 등이 형성되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독일의 경우, 국가가 나치즘을 부정하기 때문에 네오나치 운동은 반국가적인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일본은 천황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전쟁 책임을 거의 지지 않고 있습니다. 반(反)차별 정책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되면서 조선인들의 국적도 박탈했습니다. 사실 이런 나라에서는 극우운동이 성립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보신 것처럼 국가가 이미 차별을 하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년간 극우가 발흥했습니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이 일본의 2016 헤이트 스피치법을 참고로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악법입니다. 한국이 참고하려면 차라리 두 가지 측면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는 ‘원칙적 측면’으로 기본적 차별금지법을 가능한 한 보편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이념법’을 제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긴급적 측면’인데요. 당면한 차별을 멈추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한국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동아시아가 처한 수준에서 EU가 제정한 것과 같은 차별금지법을 한국, 대만 등이 아시아의 선진국으로서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중장기적으로 그렇게 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 상당히 문제가 많지만, 어쨌건 재특회를 규제하려는 법인데…
규제하려는 법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재특회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도, 사쿠라이 마코토(재특회 전 회장)가 일본제일당 만들어서 선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재특회는 일본에서 평판이 나빠져서 옛날보다 인기가 없습니다. 옛 중심인물들이 재특회를 버리고 선거 활동을 통해서 차별적인 활동을 하는데, 그에 대해 일본 정부는 재특회에 대해서도, 일본제일당에 대해서 모두 방치하고 있습니다.
– 실질적으로는 규제하지 않는다, 그럼 일본 정부가 이걸 도입한 이유는 ‘보여주기식’인 건가요?
재일조선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는 특히 2009년부터 2011년 사이가 절정이었습니다. 교토의 조선고교 습격 사건, 필리핀인들의 자녀인 당시 14세 소녀 노리코 강제소환 촉구 시위 등 ‘습격형’ 헤이트 스피치가 심각해졌지만, 매스컴은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 해당 법안이 만들어진 것은 직접적으로는 2013년 2월 처음으로 <아사히신문>이 ‘헤이트 스피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재특회 데모를 비판한 데서 기인합니다. 이것이 2013∼2014년 사이 급속도로 문제시되어 2014년 즈음부터 야당이 인종차별금지법을 만들려 했습니다. 2015년 법안이 제출됐고, 결과적으론 아베 정권이 제정한 셈이죠. 그러나 실은 헤이트 스피치가 2013년부터 큰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최대 이유는 카운터(대항) 운동의 존재였습니다.
량영성씨의 저서 『혐오표현은 왜 재일조선인을 겨냥하는가』(2018) 출처: https://image.aladin.co.kr/product/16626/10/cover500/8990062861_1.jpg
종래 일본의 반차별운동은 기본적으로 자이니치 또는 피차별인종이나 소수자 당사자들이 그들의 조직이나 개인 차원에서 차별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타입이었는데요. 사회운동은 그러한 운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올드타입 운동은 ‘피해자를 케어’하는 운동이었으나 반면 카운터 운동은 ‘가해자를 억압하여 차별을 그만두게 한다’는 방식으로 전환됩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피해자가 (신분상 불이익 등으로)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가해’ 자체가 범죄이자 악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카운터 운동의 대대적인 성장이 <아사히신문>에 의해 보도가 되면서 2013년에 ‘사회악’으로서의 차별이 최초로 가시화된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카운터 운동이 먼저 있고 나서, 그것을 보도하는 매스컴이 나오고, 그것이 또 사회문제화되어 겨우 야당이 법안제정에 나선 것입니다.
아베 정부는 야당에게 헤게모니를 주지 않으려 하면서도, 이 법안의 내용을 가능한 무력화하기 위해 2016년 법안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 통과시킵니다. 차별받는 피해자의 범위를 ‘본국 외 출신자’로만 한정을 두어, 오키나와 출신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냅니다. 또 구체적인 처벌 조항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가 의지가 없다는 것이죠. 차별이 발생해도 그에 반대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일본에서 차별금지법을 만들어낸 것은 한계는 있지만 분명 운동의 성과이기는 합니다. 카운터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특히 도쿄나 관동지역의 경우에는 축구와 록 음악 등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구의 ‘안티파(Antifa)’ 문화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건 그것대로 좋은데 다만 문제가 있다면, 미국이나 독일의 안티파는 되지 못한 것이죠. 독일은 실제로 네오나치 집회를 저지하는 행동이 가능합니다. 반면 일본은 실질적인 극우 집회 저지는 불가능합니다. 사람 수가 적고 그런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운터 운동을 ‘카운터’ 운동 이상으로 하는 것, 즉 카운터 운동을 발전시키는 한편 운동을 래디컬화하는 제3의 사회운동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 한국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 일베 등 극우 사이트의 혐오 표현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이를 규제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 규제 논쟁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학술적으로도 혐오 표현 규제에 반대하는 주디스 버틀러와 규제에 찬성하는 제레미 월드론의 저서가 나란히 번역되면서 논쟁이 촉발되기도 했지요. 반차별 운동에 참여하시는 선생께서는 이러한 논쟁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 나라의 역사나 사회에 따라서 차별금지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차별금지법 제정이 2006년으로 늦어진 이유는 이미 형법상 민중선동죄가 있었고, 역사교육을 통해 충분한 시민교육을 하고 있었으며, 국가에 의한 진상규명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 반인종주의 법안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가해자 나치 전범 처벌과 같은 개별 이슈들에 대해서는 투쟁이 존재했고 승리해왔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1964년의 공민권이 포괄적 차별금지를 규정합니다. 인종, 성, 연령, 장애 등이 포함되고, 흥미로운 것은 예비역을 차별금지 범주에 넣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의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억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죠. 그 이후 블랙팬서당에 대한 학살과 탄압이 벌어지면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사고가 사회운동 쪽에도 널리 퍼지게 됩니다.
결국 (역사부정이나 혐오 표현을 처벌하는 독일식 모델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식 모델 중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이러한 논쟁 중에, 어느 쪽이 좋은가를 추상적으로 사고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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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의 책 『혐오 발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버틀러를 좋아하는 분들이 실천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연구자들은 버틀러가 헤이트 스피치 규제를 거부한다고 생각하지만, 잘 읽어보면 버틀러는 ‘국가가 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대학이 하는 스피치 규제는 찬성’합니다. 버틀러는 Gesetz[법률]를 통한 규제는 반대하지만, Recht[법/권리]를 대학, 기업, 지역사회에서 수행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가 얘기했듯 근대사회의 물상화는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사적 노동으로부터 사회 총노동을 성립시켜야 하는 모순이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물상화 시키므로, 인간도 부르주아/공민으로 분열시킵니다. 따라서 ‘시장의 인격’, ‘부르주아’로서의 권리에 대해 대항하면서, 국가 구성원의 공적인 인권 주체(공민)에도 반대하는 의미에서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이 필요합니다. 일본, 한국에는 이 개념이 부재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상품 계약 주체도 아니고, 원자화된 물상화의 인격화로 승인된 국가의 구성원도 아닌, 공동체적 시민성의 자발적 연대, 결합, 투쟁 속에 형성되는 시민성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혐오 발언을 규제한다면, 어떤 차원으로부터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차원에서의 규제인지, 국가적 강제의 차원인지도 구분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자율적 규제, 즉 어소시에이션에 의한 규제가 필요하며, 운동 속에 반차별 규범을 국가가 시행하도록 만들고, 사회가 국가를 흡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아까도 설명했듯이, 일본형 반차별 운동의 특징은 피해당사자의 입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행동이 차별로 됨은 피해자가 그것을 차별이라고 발언해야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는 차별의 진의를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이었습니다. 고립감, 두려움 등으로 피해자가 ‘그것은 차별이다’라고 공개 발언하지 못하면, 제3자는 나서지 말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했습니다.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무엇이 차별이고 차별이 아닌지에 대한 ‘진리’가 피해자의 ‘고백’에만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민권(citizenship)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해자조차 ‘자신의 손실을 항의하는 시장의 부르주아적 주체’로 규정하는 부르주아적 인권(시장에서 물상화된 인격) 개념일 뿐입니다. 이것이 일본이라는 기업사회의 비밀입니다.
반면 시민권(citizenship)에 근거하여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은, 가해자에게 가해자의 책임을 지게 하며, 가해자가 가진 자연권[표현의 자유]을 억제한다는 것, 그것이 포인트입니다. 기존의 일본형 반차별운동은 피해자의 입을 통한 발설로 차별을 규정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자연권 억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피해자가 얼마나 요구하든지 간에, 가해자의 자발적 반성을 요구하는 것뿐, 그가 ‘차별할 자유’를 빼앗는다는 논리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푸코가 말한 (자유주의적 통치성 속에서) ‘인권의 공리주의’의 논리를 보여줍니다. 인권 개념을 공리주의적인 도구로 쓰는 발상, 다시 말해 정의를 오직 ‘개임의 룰’로만 이해하는 인권 개념 말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시장에서의 공정경쟁 외에 어떤 규범도 인정하지 않는 사고로 이어집니다. ‘평등’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범이 없습니다. 노동에서의 차별이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이죠. 이것도 일본형 기업사회의 문제를 보여줍니다.
– 한국의 진보진영조차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의 반인종주의 활동가로서 한국의 시민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나 재일조선인 인권문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며, 한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아시아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U와 비교했을 때 아시아에는 지역 차원에서 전쟁이나 분쟁을 방지할 수 있는 국제관계가 없습니다. 현재의 국가 간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일본의 위안부 부정이라던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정 등이 국제적인 영토문제와 결부되어 지역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차별금지정책은 전후 세계에서는 반파시즘과 차별금지를 보장하여 국제평화 유지에 기여할 것입니다. EU의 기반에 있는 것은 ‘반차별=반파시즘’이라는 규범을 통한 평화 유지입니다.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도 일본 정부가 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차라리 아시아 수준에서 차별금지를 국제적인 룰로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각각의 나라에서 시민권의 원칙을 성립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예컨대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 부정은 ‘차별금지’로써 억제할 수 있습니다. 위안부 부정 그 자체가 역사부정일 뿐만 아니라, 성차별을 선동하고 있으며 나아가 계급차별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삼층집을 짓는다면 먼저 토대가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역사갈등 문제를 직접 푸는 건 토대 없이 삼층집을 세우는 것과 같아요. 좀 먼 길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차별금지정책을 시행하고, 시민권의 원리를 각국에서 제정해서 아시아 각국의 공통언어로 ‘차별반대’를 제정하지 않으면 역사 문제를 말할 공통언어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혐오는 국내 소수자의 문제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한국 여성차별(미소지니) 살인의 억제 등 긴급한 과제이기에 그것을 위해 혐오 표현의 규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나아가 이를 국제적인 파시즘 억제 전략으로 확대하여 차별금지법을 먼저 한국, 대만에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역사부정이나 파시즘화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의 관계를 사유하는데, 역사를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측면이 아니라 차별금지라는 시민권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다른 길이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운동의 전략 차원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공통언어로서 ‘시민권(citizenship)’과 ‘반차별’이 필요합니다. 반파시즘 위안부 문제 등에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독도 문제 등 영토문제에도 민족주의 논리로만 반대하게 된다면 극우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극우에 반대하는 데 있어서 ‘인권’은 소소해 보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권(citizenship)으로써 차별반대 논리, 이것을 지침으로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다가오는 올림픽에서 욱일기 응원을 허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어떻게 반대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로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서경덕 교수의 방식, 즉 역사 언어로 비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틀리지는 않지만, 약점을 말한다면 역사적으로 엄밀히 따질 때 지금의 히노마루(일본 국기)도 문제 삼아야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는 욱일기가 문제 되는 것도 차별금지 문제라고 봅니다. 실제로 10년 전부터 가두 연설방식의 헤이트 스피치에서 욱일기가 문제시되고 있는데, 역사적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이 10년간에 걸친 ‘차별=욱일기’라는 연관 증거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차별’의 상징으로 하켄크로이츠가 있는 것처럼 욱일기도 차별의 상징으로 규정할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역사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 차별의 상징으로 욱일기를 금지하자고 주장하면 됩니다.
이처럼 역사 문제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차별의 논리로 풀어서 얘기합시다. 그게 아마 일본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또 한국 내 극우 반대 논리로도 써먹을 수 있습니다. 이영훈의 책 『반일종족주의』를 보면 한국 뉴라이트 특징은 민족주의 비판에 있는 듯합니다.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오히려 좌파에 의해 점령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극우는 아마도 시장원리에 근거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 성장 같은 것들 말입니다. 식민지 시기를 정당화하는 것도 경제, 독재정치 정당화도 경제입니다. 따라서 한국 뉴라이트를 비판할 때도 역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완전히 극우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뉴라이트가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근거한 뉴라이트를 논박하려면 역시 시장을 넘어서는 논리, 시민권이라는 논거가 중요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