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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천 하룻밤 이야기]

이판사판

2023. 09. 08. 백로(白露)

– 아침 오솔길 가장자리의 풀잎에 이슬이 맺는다.

— 결로(結露)는 더운 쪽이 찬 쪽을 만나 결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인류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려는 방식은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은 지층이 보존하였던 유물 정보들이다, 돌에서 쇠의 시대로 전환과정에서 구리와 청동을 지나 철기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1200년경이라 한다. 각 시대의 지층과 같이 기념물(추억들)의 특성이 우리에게 전설로서 전승되는 것은 전쟁에서 이겼다는 영웅들의 신격화이다. 그러면 신격화는 철기시대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인데, 그러한 계보학적 전승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줄줄이 엮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이 계보학의 전승이 세대마다 부자 세습의 연결이 잘 안 되는 것은 이집트의 기록된 고왕조들(기원전 3천년경)의 승계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요(堯)에서 순(舜), 그리고 우(禹)로 넘어가는 것도 세대의 변화보다 다른 계보의 등장인 셈이다. 생명이라는 종의 역사에서 인간이 스스로 위대하고 여기고, 자연에 대해 지배력을 갖는다는 생각하는 것은 도구로서 돌을 넘어서, 열을 통해 새로이 제작하는 쇠(구리와 철)의 시대에 와서일 것이다. 청동이나 철을 다루듯이 자연의 대상들을 다룬다면, 그 자연에 대해 다른 것들도 잘 다룰 수 있는지를 고민하였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기원전 6세기 정도라고 한다.

맑스주의자는 이 시기에 철기가 일반화까지는 아니라도 생산도구로서 인민들에까지 퍼진 시대라 한다. 이 시기 이전에 현자는 세상을 알기 위한 떠돌이로서 양떼를 몰든지, 소나 말을 몰든지 하면서 천막을 가지고 자치적이고 자주적인 부분을 지니며 소그룹으로 다녔다고 한다. 알레고리로서 이야기를 보태면 고대 그리스의 아르고선원들이 이야기나, 유명한 오디세이 이야기도 초기 철기시대의 도래 이지만, 상부들이 전쟁의 도구로서 청동기를 잘 다루었던 시기에 주인공들의 이야기라 한다. 그런데 6세기 정도에는 농사의 도구에도 철기가 보태지면서 생산력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 발전을 했다고 한다. 그런 시기에서야 떠돌이 거지, 걸승이 등장할 수 있다고 여긴다. 유비적으로 공자의 주유도 그러하고, 싯달다의 고행 후 평생의 걸승도 그러하고, 고대그리스의 소크라테스 주변에 헤라클레스를 본받은 퀴니코스 학자들도 그러하다.

이런 철기 문화에서 거푸집을 통해서 동일한 물건들을 재생산하는 방식은 인간의 지성과 예지의 사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하였다. 거푸집이 튼튼하고 영구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비슷한 것과 다른 것들을 생산할 수도 있었으리라. 물레를 돌리면서 만드는 항아리는 거의 비슷한 것을 만들지만, 거푸집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거의 닮은 것을 만들어내는 좋은 거푸집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닮음을 보다 정확하게 만들어가는 긴 과정에서 서구에서는 르네상스시기에 언어와 논리에서도 닮음을 재현하듯이, 도구들도 다시 만들어도 동일한 것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시기를 철학에서 일반개념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일반화로 만든 개념들은 거푸집의 동일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여겼다. 물론 일반관념보다 거푸집과 같은 모형의 관념이 먼저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관념은 현실의 변화와 동떨어져 있었는데 비해, 개념들은 사물과 현실에 접근하였다.

물론 이런 개념적 생각에는 가설적으로 이어온 관념과 공리(공준)의 완전함이 먼저라는 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 인정의 뿌리는 깊다. 영웅시대 이래로 앞에서 있었던 것 다음으로(시간적) 뒤이어 오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암묵적이고 실질적으로 인정해온 것이다. 그 실질적 이어짐의 과거의 깊이 또는 기원이 무엇인지를 모르지만 있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지금도 이어지고 다음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실천한다. 이런 이어짐을 5관(안,이,비,설,신)을 통해서는 알 수 없고, 또한 보이지 않지만 있는 것이라 한다. 이런 생각 다음으로, 사람들이 사는 터전에서 여기와 저기는 마치 앞과 뒤,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을 구분하는데, 이런 터전에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5관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전설따라 삼만리에서 지평선의 끝을 따라가면 낭떠러지가 있다는 생각도, 평면의 시작과 끝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직시하면서 사람이 사는 터전의 전체가 볼 수 없는 것이라 여겼고, 데모크리토스는 ‘빈 것’이라하고, 그러고 나서 공간이라는 일반화의 개념이 생긴다고 여긴다. 볼 수 없는 공간이라는 관념이 생길 것이다.

시간을 볼 수 없듯이, 터전을 이루는 공간을 볼 수 없는 것이고 여긴, 그리스 사유가 인류사에서 철학의 기원이 되는 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지적 분자들이 머리를 짜내고, 깊이 토론하고, 생각을 교환했기에 발생한 것이라 한다. 뭔가를 알고 노력하며, 거지같이 지내는 떠돌이들이 어디를 안 가 보았겠는가. 현자들이 지성과 예지를 합하여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아도, 그 당시의 상식(5관)으로서 해명할 수 없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네 가지 정도로 규정했다. 시간, 공간, 원자, 영혼(프쉬케)이다

로마에 항거한 이들이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은 한 두 사건들이 아니었다. 노예의 항쟁으로 스팔타쿠스(기원전 73년)도 있었고(몇킬로의 거리에 십자가를 매달았다던가?), 프랑스인 조각가이면 꼭 한번 작품으로 거쳐 가는 로마에게 저항한 항쟁자 베르셍제토릭스(기원전 50년경)도 있었고, 유다왕국에서 나자렛의 예수(전04-후31경)의 저항도 있었다. 이런 시대의 과정에서 누구는 전사에, 누구는 열사에, 누구는 성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후대의 이야기꾼(역사가)들이 것이었고, 파라독사들 중에서 이익이 챙기는 경우에 더욱 미화하고 재미있게 이야기가 전승되었던 것이다. 21세기에는 “해리 포터(Harry Potter, 1997-2016)”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1954-1955)”이 휩쓸 듯이, 넷 플릭스에서 “오징어게임”은 짧은 시기에 전 세계의 이야기 거리로 만든 것도 파라독사의 이야기 거리이다. 그럼에도 실재와 현실에서는 여전히 여러 갈래들 사이에 부조화도 있고 갈등도 있으며, 그 보다 깊이에서는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음에도 겉보기로서 표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들릴 뿐이다. 사람들은 예전의 현자처럼 거지로서 떠돌이라는 것은 사라졌다고 여길 것이다. 왜? 그래도 여전히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는 젊은이들 또는 탐험가들도 있고, 그리고 명상과 관조를 추구하는 공동체를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철기의 시작으로 걸승이 가능했던 그때나, 사적 소유가 엄격하여 담 넘어 사과 하나 먹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 엄하더라도, 걸승이 움직이고 사유하는 세계는 현실을 직시하는 세계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이,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영혼이 실재한다는 것을 느끼는 현자는 세계(코스모스)를 연결하고 연대하는 역동적인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인류의 기나긴 욕망과 그 작업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실재적이고 현실적 판(평면)위에서 지속하고 있다.

이 현실의 찰나의 평면만을 공간이라고 아는 이는, 공간이 잘려져서 마치 종잇장처럼 또는 원반처럼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유에서 그 평면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두께를 갖는 불럭과 같은 것을 지닌 평면이다. 말하자면 현실태의 평면은 갓난애들로부터 현 찰나에 숨을 거두는 이들까지 두께가 있고, 먹고 싸고 자고 일하는 평면 위룰 말한다. 터전, 영토라는 말은 도덕적, 정치적 표현의 일부일 것이다. 시간적으로 평균하여 그 두께 있는 평면은 0세- 87세(평균연령)까지의 과정이며, 평면의 두께에는 여러 나이뿐만이 아니라 여러 색깔의 인종과 여러 직업(임무)에 종사하는 이들과, 그리고 거지(무소유)로서 떠돌이들도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공간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 평면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찰나에도 태어나는 이가 있고, 세상을 뜨는 이도 있지만, 이 흐르는 공간(코스모스)은 여전히 평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철학적으로 보아, 대통령 김대중은 정치를 아는 분이다. “정치는 생물과 같아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역동적이다. 그리스 인들이 공간이 생물처럼 움직이고, 그 판이 역동적으로 울렁거리면 진동하고 파동을 친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있었다. 이 파동 속에서 어느 경우에 파고가 높아서, 그 파고 위를 타고 가는 한 두 계열들이 선두에 서서 시대의 사명과 운명을 걸머질 때, 혁명이 솟아나는 것이다. 조용한 평면은 어쩌면 투쟁 속에서 준안정상태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가만히 있는 평면이 아니라 움직이며 살아있는 듯한 공간. 그 공간을 지성과 이성(로고스)이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예지와 누스(Nous)로 추구하는 자들이 사유한다. 이 잘려진 평면 위에 점과 같은 존재들이 현재 사는 각 개체이며, 이들의 집합을 전체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고가 평면 위에 개념과 명제로 그림을 그리듯 세상을 서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평면은 두께가 있고 진동하며 움직인다. 그런 평면의 두께가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과거의 지층과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두께의 변화과정에서 안중근이 살았던 평면과 전봉준이 살았던 평면과도 뗄 수 없는 과정이기에, 시간의 경과와 과정도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 시간도 마찬가지도 공간처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과 별개로 있는 것이다. 이런 공간과 시간을 관통하여 느끼는 것은 영혼이리라.

영혼만이 시간과 공간과 별개로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인간들 각자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느끼고 있는 것이다. 먹고 자고 싸고 일하며, 노력하며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 느낌은 오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포함하여 또 다른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스에서 공감성이니, 불교에서 여섯째 식(육식, 칠식..)이니 하지만, 나로서는 다섯을 포함하여 관통하는 다른 어떤 것인데, 지각작용(perception)이라 부른다. 영혼이 이런 지각작용으로 등장하였는데, 사람들은 다섯 기능에 보태어 한 기능을 더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오관과 따로, 신체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따로 만드는 이들이 돈 받고 종교를 만드는 자들인데, 불교에서 사판승과 같다. 이런 사판승에 저항하는 이를 이판승이라 한다. 서양 종교에서 사제들과 목사들과 달리 수도원에서 청빈, 노동, 순명을 따르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사가 이판승인 셈이다. 이판승과 같은 이어짐은, 독립운동에게 만주에서 뭐했냐고 물으면 그냥 개장사 했지라고 할 때도, 사판승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국경 없이 무장투쟁하면서 지낸 시절을 그냥 이야기로 전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는 돈 받고 가르치지 않았고, 싯달다도 돈 받고 설법하지 않았으며, 예수도 돈 받으려고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야기를 남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솔직하지 못하고 이익을 챙기는 이들은, 이 두께있는(볼 수 없는) 평면을 종잇장과 단면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들을 매우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또한 위기가 기회라고들 떠들고, 전쟁이 자기를 살린다고들 한다. 이 자른 평면의 사고자들은 사적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지, 공동체와 인민에 대한 생각도 이익의 창출로서만 생각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잉여착취를 위한 제도, 즉 제국주의와 제국을 고수하려는 것과 같다. 이런 부류의 사고는 현실이라는 평면 위에, 수탈과 착취를 위한 평면을 그리기에 두께도 없지만, 또한 시간의 과정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이 얇은 평면위에 사람과 사물들을 나열시키고 그리고 위계질서로서 제도를 만들어 그 꼭대기에 앉아 있다고 여긴다. 거기에 현재 위계상으로 사판승과 같은 윤석열이 있다고들 하며, 그 위에 일본이, 그리고 또 그 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안다. 그 평면을 잘라서 사고하는 이들이 백선엽의 동상을 세우려는 속좁은 이성의 사고, 파라노이아 광기에 빠져있다(푸꼬가 광기의 이야기를 잘 썼다). 이에 비해 볼 수 없지만 실재하고 있는 공간의 평면의 두께 속에는 현실의 두께만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시간을 포함하는 과거의 두께도 있으며, 홍범도, 안중근, 전봉준도 있고, 그 속에는 이순신도, 강감찬도, 을지문적도…  단군도 있다. 파라독사라고 하더라도, 다른 이야기로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보다 흥미진진하고 가슴을 울리는 파라독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법률 조문이라는 명제들로 이어진 문장들을 외우는 것과 같은 사판의 외우기가 공부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럼에도 외워서 적용하는 이긴다는 속좁은 이성의 머리는 위계질서 속에 꼭대기에 있다고 한다. 그 꼭대기가 누구 밑에 있는지를 아는 이는 다 안다. 볼 수 있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있고, 영혼도 있다고 했다. 그 영혼(프쉬케)의 문제는, 속좁은 사고의 전체와 부분에서 전체가 먼저 있다고 여기는 것인데, 그 전체라는 것이 프쉬케를 사유하는 자에게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공간, 시간, 영혼, 전체는 볼 수 없는 것인데도, 이것과 연관하여 살고 있는 신체는 어떤 능력을 개발하고 작동하려 하는지를 고민했던 이들이 걸승과 같은 이들이었다. 내가 이판승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사판승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 항거, 항쟁하였다. 이판과 사판의 투쟁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독립 운동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이판사판의 투쟁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전체라는 것이다. 그 전체를 지금도 볼 수 없지만, 8천5백만을 사유해 보고, 21만 평방킬로가 넘는 터전을 사유해보라. 미친(파라노이아)사고가 고작 5천만과 9만 평방킬로미터를 사고하는 탐만치(貪慢癡)에 빠진 자들이라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이 공유하는 느낌은 인민의 미덕이며, 기본 심급이다. 권력을 엎어버리는 것도 인민이라는 의미에서 최종심급도 인민이다.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은 달리 말하기, 달리 사유하기, 달리 실천하기에 있다. 두께가 거의 무한정한 터전이 우리 안에 있다. 이 생명의 터전을 벩송은 다양체라 부르고, 이 다양체는 다발(묶음)로 되어 있다고 한다. 묶음들의 계열 중에서 먼저 솟아나는 계열의 혁명의 선두 일 것이고, 이들이 투사와 전사이다.

나는 이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며, 내 벗도 좋아한다. 그 만치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 파라노이아에 빠지 않았던 헤라클레이토스와 소크라테스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만물은 투쟁 속에서 생겨난다고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56T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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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

윤구병이 이오덕1을 좋아하는 이야기에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범(우리말이다), 호랑(虎狼)이가 아니다. 범, 즉 밤(ᄇᆞᆷ)은 산넘어 일하고 늦게 돌아오는 오마니를, 엄마 떡 하나하나 먹듯이 다리와 팔과 그리고 온 몸을 먹어 치운다. 이 범 또는 밤이 애들에게 찾아가 문 열어 달라고, 이런저런 속임수로 동생에게 문을 열게한다. 방안에 빛으로 보아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도망 나온 자매는 밤을 이기는 빛으로서 해와 달이 되었다고 한다.> 밤은 낮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대결의식을 넘어서, 밤과 낮의 교대의 이야기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 단군 신화에서 범과 곰이 등장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의 전승에서는 굴(자궁)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지를 사유하는 것이 윤구병은 현자라고 생각한다. 누가, 우리의 파라독사가 신앙 없는 이야기로 악마의 이야기처럼 만들었던가. 입말을 통해 면면이 이어져 왔었고, 한글로 팔천오백만이 공유하는 평면의 두께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파라노이아(편집증)의 집단이 위계질서의 꼭대기에서 조문(코드)를 가르친다고 하는데, 두께 있는 평면과 기나긴 시간의 기억이 넘실거려 큰 파고의 높이를 만드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혁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들뢰즈는 혁명은 어느 시대 어느 평면에서든 일어난다고 생각했으며 “혁명의 미래에 대한 질문은 나쁜 질문입니다.”(p.176)고 한다(들뢰즈, 「정치들 II (Politiques II, 1977)」) 혁명은 현재 평면 안에 있다. 혁명은 평면을 잘라서 계산하고 배치하는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의 역동성과 현실 평면의 두께 울렁임이,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의 횡축과 공간의 가로축이 만나는 순간에 파고의 마루를 형성할 때이다. 벩송 자유의 실현은 간헐적이고 폭발적이라 한다. 그 자유를 혁명으로 바꾸어 읽으면 같은 이야기이다. (5:12, 56TKH)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입추(立秋): 파라독스 [천 하룻밤 이야기]

파라독사들: 여러 사건의 생성

– 2023, 08, 08, 화요일

— 입추(立秋): 아무리 더위가 심해도 가을은 온다: 순환은 또 다른 회귀이다.

여섯 살 꼬마가 산타클로스 할배가 선물을 갖다 준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른 애들을 만나면 할배가 아니라 부모가 전날 갖다 놓은 것이라는 것을 안다. 믿음과 사실은 다르다. 열여덟까지 세상이 가장 큰 것도 있고 무한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무엇보다도 크고 완전하고 무한하며, 모든 것을 포함하여 충만하다고 믿는다. 선을 그으면 무한히 가지. 누구도 무한히 가지 못하지만, 무한히 선이 가고 있지. 중고등에서 데카르트의 좌표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을 배우면서도 계산하며 답을 찾는데 메이다가, 학력고사를 마치고 나서 조용히 생각해보니, 그 무한히 나아간다 또는 무한히 자른다는 것이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신이 무한하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산타 할배와 같고, 무한을 넘어서도 하나님을 넘어서도 계산할 수 있을까? 한계 또는 경계를 넘는다는 것이 인간의 현실 또는 현존의 문제거리일까 공안이지 화두일까?

청춘의 젊은이에게 아버지의 아버지(할배)가 있고, 할배의 할배(한할배)가 있고, 그 큰 한아비의 한아비가 단군이며, 단군의 할배는 환(桓)이다고 말하면, 에이 그것 전설이잖아. 학문적으로 파라독스 같은 이야기이지. 그런데 예수의 아버지를 거슬러 그리고 다윗으로 다윗을 거슬러 아브라함으로, 또 올라가서 아담이 있지, 아담은 누가 낳았는데, 신(하나님)이 만들었지. 그러면 그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그러면 그 이상을 묻으면 안 된다고 한다. 서양 신학이런 완전한 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해석하는 것을 독단론(dogmatisme)이라 한다.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라고 묻는 것은 학설(doctrine)이라 한다. 학설적으로 완전하고 충만한 것을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던 이들은 퀴니코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이다. 학설을 완전한 것이 자체적으로 있는 거야. 그리고 자체적으로 있는 것을 묻지 않기로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오르간)의 불문율이야. 더 이상 묻지마.

하늘나라에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는 맛있는 과일이 있고 선녀들이 있으면, 누구도 아프지 않고 즐겁고 상괘하게 지낸다. 한 젊은이가, 에이 그거,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잖아 라고 한다. 그래 들뢰즈가 답하기를 파라독사야. 불교에서 극락세계에서는 석가모니와 사리자(舍利子) 마하가섭가섭(摩訶迦葉), 아난존자(阿難尊者), 수보리(須菩提)가 둘러 앉아 얼마나 오랫동안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하는 하는지를,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은 항하사(恒河沙 1052)수 만큼 해를 거듭해야 사람으로 태어나고, 불가사의(不可思議 1064)수 만큼 거듭해야 아라한으로, 무량대수(無量大數 1068)해야 부처가 된다고 설을 풀고 있다고 하면, 불교 설화잖아. 그래 파라독사야. 가이야에서 만년을 지나 우라노스시대로, 천년을 지나 크로노스시대로, 그리고 천년을 지나 제우스와 함께 지상을 지배하는 신들이 올림푸스에서 노닐고 있었는데로 이어가면, 그거 그리스 이야기 잖아. 그래 파라독사라고. 산타클로할배이야기보다 재미있지, 하늘 나라에 하느님과 18계급의 천사가 있고, 예수는 하나님 옆에 앉아 있다고 하면, 그거 ‘말되네’, ‘말씀이야’ 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 파라독사야.

들루즈는 ‘말 되네’가 바로 의미(sens)를 갖는다는 뜻이라고 하였는데, 파라독사 같은 난센스(non-sens)가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 난세스는 사실도 아니고 진리도 아닌데, 그 믿음을 크리스트교 신학자들은 독단(dogma, 교리)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 속에서, 선택받은 자들 속에서, 푸꼬 표현으로 정신 나간 자들(aliénés) 속에서는 자기들끼리 모여, 마치 공자는 맹자의 손자인 것처럼, 스스로 진리라고 한다. 그래, 그 이야기가 의미있다(sens). 다른 것은 의미 없고(non-sens)이다. 의미는 무의미를, 처음에는 겉보기 또는 현상으로, 그리고 거짓 또는 착각으로, 나쁨 또는 허무로, 천년을 지나가면서 무의미가 악마처럼되었다. 19세기에 언어분석철학자들이 대상과 사실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모두 넌센스라고 생각했었다. 러셀은 고대철학에서 거짓말쟁이 역설이, 논리학에서 수학에서 언어학에서 등등 넌센스가 넘친다는 것을 알았다. 어, 그 이야기는 넌센스이네, 그래 그 모든 전설따라 삼천리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들 모두 파라독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도 여섯 꼬마에게 그것보다 유용한 것도 거의 없다.

하늘나라 이야기가 넌센스이고 파라독사인데도 왜 의미가 있다고 하는가? 그것을 믿는 이들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하는 시절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꼬마애가 산타할배가 의미 있듯이, 청춘기(헤베, ἥβη, 젊음, 혈기, 용기)에는 완전하고 위대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무협지 등이 청춘에게 읽히고 있었던가. 그가 자연에 순환에 대해, 요즘으로 대기의 순환에서 엘리뇨와 번개를 잘 관찰하여보면 달리 생각하는 길을 발견한다. 자연을 진속하게 대하면 달리 사유하기가 등장한다. 중국의 [대학]에는 ‘격물치지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는데, 젊은 시절에 학교 교육과 달리 자연(본성)에서 사회에서 격물(格物)에서부터 스스로 깨쳐나갈 길을 찾는 것이다. 자연과 사회에서 자연이 먼저 이며 앞서[앞에가 아니라] 있다. 겉멋만 들은 검사들은 수신제가를 말할 것이지만, 젊은이는 사물의 진수를 아는 것이 먼저이다. 불교에서도 싯달다가 여섯 해 동안 고민고민 끝에 처음으로 젊은이들을 만나서 한 이갸기가 [념처경(念處經)]인데 그 속에서 ‘신수심법’의 네 단계의 노력과정을 통해 선업을 쌓기를 이야기 한다. 그 ‘신’은 신체에 관한 것인데,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격물과 닮은 데가 있다.

스스로 가정과 동네를 떠난 삶을 살아가는 시기에, 헤베(청춘기)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한다. 사회는 제도 속에서 규율과 훈육에 따라 살아가가는 과정을 촘촘히 순서를 만들어, 그 순서를 따라야 살아가는 것으로 체제를 만들었다. 너희들 덜 고생시키려고. 이 체제 속에서 벗어나면 낙오자(루저)니, 못난이(개돼지)니, 타락자(소외자)니, 결국에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 정도로 여긴다. 삶은 산업사회 속에서 제도만이 아니라, 절후를 간직하며 사는 풍토와 터전이 기본 토대로 있고, 그 위에 도구의 사용으로 산업이 있고, 그리고 자고 먹고 싸고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유쾌하게 삶을 사는 놀이도 하거나 구경도 하면서 교양 문화를 지니며 산다. 자연, 산업, 문화 등이 중첩되어 있다. 청춘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삶의 긴 과정에서 자신의 길을 살아가는 방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세상에 현실적인 평면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국가라는 체제를 꾸리는 쪽에서 보면 5천만은 평면위에 보이지 않는 그물 속에 있다. 체제는 어장관리를 하듯이 그물을 줄이고 넓히면서 적당히 키우고 그 에너지를 제도 속에 소비하기를 바란다. 열심히 살아서 제국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밧데리가 아닐까? 이런 이야기는 파라독사 일까? 하늘나라 속에서는 진짜이고, 그물 속에서 삶은 넌센스일까? 들루즈가 말하기를, 환의 이야기든, 옥황상제 이야기든, 보살세상의 이야기든, 제우스 이야기든, 예수이 이야기든, 이런 이야기들은 파라독스(paradoxa)인데, 그 논리(추리) 속에 성숙되어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간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은 독사(doxa)라는 것이다. 현실의 평면 위에 오천만은 누구의 에너지를 위한 소모품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명상하며 사유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 반성의 토대에 가장 기본적으로 자연이 있다. 24절기가 있다. 서양철학에서 자연을 본성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이상하게도 자연과 인간, 자연과 삶, 자연과 신이라는 주제가 먼저(앞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버리고 파라독사에 빠져서, 위대함, 완전함, 충만함, 연속성, 동일성, 불멸성, 영원성을 말하면서 철학한다고 설레발친다. 이런 이라는 넌센스(non-sens)를 철학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 비신자에게 던지는 공안 정도이다. 청춘에서 청년으로 공안을 넘어서 선문답으로 가면 여러 경우를 한자리에 놓고 추론하기를 배운다. 그리고 삶의 문제거리를 화두로 삼아 장년이 되어 자기 길을 스스로 깨닫는 데로 향한다. 공자는 그 나이 쯤이면 불혹이라 하고, 세상사에서는 그 나이에 자기 얼굴에 다쓰여있다고 한다.

넌센스의 이야기와 달리, 현실 세계의 평면을 잘 생각해보라. 5천만은 현재의 평면과 같은 설국열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그 열차의 칸들 속에 어디서 어떤 이들이 내릴지 모르고, 어떤 이들이 탈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열차는 하나의 현실 평면과 같다. 한배를 탔다고들 하지만 배는 가는 곳까지 주변은 물이다. 열차는 철로 위로만 달리지만, 현실 평면 위의 삶은 매끈한 공간 위로 달린다. 어디에서 내리면 반천리 금수강산의 어느 터전 위에 있을 것인가? 그 내린 지점이 어느 현존들과 같이 할 것인지를 모른다. 열차 칸 안에서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바깥에 대해 잘 모르고 있듯이. 그럼에도 산업사회를 넘어서 규소(디지털)시대로 가면서도 잘 모르니깐, 굴을 파고 은둔하는 이들도, 터전을 만드는 이들도, 열차와 관계없이 영토 위를 이리저리 쏘다니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리좀처럼 연결될 수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하늘에 번개가 치듯이, 터전의 평면 위에 서로 간에 드문 벙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저항과 항거는 지금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작은 리좀의 연결이 지방에서도 나라에서도 세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맑스의 포이에르바하 테제 11번의 해방만이 아닐 것이다. 그 세계가 하늘나라이며 화엄의 세상일 것이다.

이 삶의 평면 위에서, 깊이 탐구하는 이들이 넓게 리좀을 연결할 수 있다. 살아있고 움직이는 리좀들이 터전에서 매끈한 면 위에서 마주칠 것이다. 그 마주침이 한꺼번에 연결되는 것은 하늘의 번개가 동일하지 않듯이, 이 땅위에서도 동일한 벙개를 형성하지 않을 것이다. 벩송의 말대로 자유와 혁명은 간헐적으로 솟아나며, 폭발적이라 한다.

(3:10, 56SKB) (3:26, 56SKH)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어떤 두려움 – 프랑크푸르트학파 100주년에 – [내게는 이름이 없다]

어떤 두려움 – 프랑크푸르트학파 100주년에 –

 

행길이(한철연 회원)

 

‘어떤 두려움’

 

올해는 프랑크푸르트학파 100주년이다. 비판이론 1세대의 아도르노, 2세대의 하버마스, 3세대의 호네트 등 뛰어난 학자들을 배출하면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 학파의 전통은 계승보다는 비판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선배의 이론을 수용하기보다는 비판적으로 극복하면서 이론적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 선배와 후배, 스승과 제자 간에 대립과 단절의 계기를 지닌 채 비판적으로 연합하는 것이 이 학파의 정체성이자 전통인 것이다. 하버마스의 입장이 아도르노와 다르듯이 호네트도 하버마스와 같지 않다.

철학자마다 입장이 다른 까닭은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 그가 처한 역사적 조건이 상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배 세대들이 망명 유대 지식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난은 하버마스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전체주의 시기 하버마스는 철없는 소년이었고, 게르만 민족의 범죄적 역사를 의식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도 되지 못했다. 그는 의사를 꿈꾸던 착실한 소년에 불과했다.

소년기의 무구함을 벗어나게 된 계기는 뉘른베르크 재판이었다. 소년은 자기가 속한 민족공동체가 인류 최악의 범죄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하였다. 하버마스는 의사의 길을 접고 철학의 길로 들어섰다. 신체의 병을 치유하는 것보다 정신의 질병을 다스리는 것이 더 중대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을까? 대학에 입학한 하버마스는 선배 아펠의 도움으로 비판적 문제의식을 넓혔고, 졸업 무렵에는 비판적 저널리스트의 길을 가고자 했다. 하이데거 철학의 근저에 흐르고 있던 전체주의적 정신에 대한 비판적 논평을 게재하여 호응을 얻던 차였다.

하지만 하버마스의 학문적 재능을 알아본 아도르노가 조교직을 제안하면서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로 이끌자 그는 비판적 저널리스트의 꿈을 접고 학문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하버마스는 독일 국민들을 권위주의적 전체주의 체제의 하수인으로 만든 모든 정신적인 것들을 일소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구제하는 철학적 투쟁에 평생 헌신한다.

전후 서독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과거의 야만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마스는 전체주의 체제의 지적 선봉대들과 그 후예들이 반공주의적 자유주의를 구실로 권위주의적 정신을 퍼뜨리고자 하는 데에 큰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1980년대 초 서독 지식 사회가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세우며 전체주의의 부활을 시도하자, 하버마스는 ‘역사가 논쟁’에 뛰어들어 이들의 반민주주의적 의도를 낱낱이 폭로하는 비판 활동에 힘썼다. 독일 시민들은 하버마스의 비판을 수용함으로써 과거의 망령에게 혼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독일의 행운을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현 정부는 ‘민주주의를 제거한 자유’를 정치적 이상으로 삼고 있으며, 적잖은 사람들이 거기에 호응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에 대항하는 비판적 담론이 활기차게 제기되지도 못하는 데다가 시민들 사이에 확산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건 한숨과 조롱 그리고 역정뿐이다. 과거의 망령들이 하나둘 무덤에서 나와 활개를 치고, 권위주의 체제가 부활에 성공하는 것 같아 참으로 두렵다. 과한 두려움일까?


 

고(故) 김우철 교수의 「『자본』의 변증법적 모순구조」(1993)에 대한 논평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노동력 소유자의 주체는 노동력 사용자의 주체인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본을 이해하는 열쇠이다.1

 

박종성(건국대, 한철연 회원)

♦ 이 글은 『시대와 철학』 제33권 4호(2022년 겨울호, 12월 31일 발간)에도 기고글로 동시 게재합니다.

 

이 글은 고(故) 김우철 교수의 「『자본』의 변증법적 모순구조」(1993)2에 대한 논평이다. 먼저 김우철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첫째, 『자본』에 적용된 변증법적 방법의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본다. 이 두 가지 문제의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변증법적 모순과 형식 논리적 모순의 구별, 변증법과 유물론의 관계(‘중층적 모순’)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자본의 내적 논리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본의 내적 논리 규명의 이론적 과제는 본질과 현상, 추상과 구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문제는 모순이라는 주제로 압축된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의 긍정적 이해 속에서 그것의 부정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모순의 인식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우철 교수는 둘째, 『자본』의 서술에서 ‘논리적 모순’의 지위를 살펴본다. 맑스가 자본의 일반 정식, 즉 ‘화폐-상품-화폐’(좀 더 분명히 말하면 화폐’일 것이다. – 논평자)를 처음 제시한 후 다음과 같이 자본의 모순규정을 주장한다.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할 수도 없고 또 마찬가지로 유통에서 발생하지 않을 수도 없다.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해야 하는 동시에 유통에서 발생해서는 안 된다.”

 

위 인용문은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 형식 논리학의 모순은 ‘A는 (A인 동시에) A가 아니다’ 혹은 ‘A는 B인 동시에 B가 아니다.’ 위 인용문은 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자본의 모순규정은 특수한 상품인 ‘노동력’3으로 위 문장의 논리적 모순은 해소된다. “사용가치 자체가 가치의 원천”인 특수한 상품인 노동력에 주목해야 한다. 화폐-노동력의 교환은 가치법칙을 따르는 동시에 따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 화폐-노동력의 교환은 가치법칙을 따르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이지만 화폐-노동력의 교환은 가치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력의 ‘사용가치’이다. “노동력이 그 자체 상품이 되고 이 특수한 상품의 경우 자신의 교환가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용가치가 바로 교환가치를 창조하는 힘이라는 데서 생겨난다.” 그러니까 노동력의 가치 크기는 자신이 사용되는 데서 창조되는 가치 크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화폐-노동력의 교환에서 가치법칙(등가교환)을 따르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인 반면, 가치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은 노동력의 ‘사용가치’, 곧 생산과정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가치이다. 따라서 위 인용문은 현상적으로 ‘A는 B인 동시에 B가 아니다.’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A’는 B이고 A”는 B가 아니다.’의 구조이다. 즉 자본의 ‘논리적 모순’은 새로운 탐구로 이행하기 위한 문제 제기이다. 노동력의 가치와 사용가치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전제하지 않으면 결코 성립할 수 없는 상호제약 관계이다. 그러니까 교환과정에서 등장하는 ‘상품’은 가치를 갖지 않고서는 사용가치로 실현될 수 없으며 또 사용가치를 갖지 않고서는 가치로 실현될 수 없다.

노동력의 사용가치(A’)와 가치(A”) 사이에는 상호제약적, 내적 연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용가치와 가치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결국, 변증법적 모순은 형식논리의 언어로 충분히 표현될 수 없다. 다시 말해 A’와 A”의 내적 통일성은 동일성(A)으로 환원될 수 없고 단순히 상호 무관한 것들(A와 B)도 아니다. 그래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모순을 정식화한다.

 

“공속해야 할 내적 필연성과 상호무관한 자립적 존재는 이미 모순의 기초이다.”

 

그래서 자본의 모순은 궁극적으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와 사용가치가 상호종속적인 동시에 상호자립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왜 노동의 이중성(사용가치, 가치)은 상품교환 사이에서 모순으로 정립되는 것인가?

김우철 교수는 이러한 점을 살펴보기 위해 셋째, ‘상품의 모순과 그 전개과정’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바로 사용가치와 가치의 모순이다. ‘가치’는 상품을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위선으로 가득 찬 매우 기묘한 물건”으로 만든다. 그러나 “가치 대상성에는 한 조각의 자연 소재도 들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가치란 무엇인가? “노동생산물의 가치 관계는 노동생산물의 물리적 성질이나 그로부터 생겨나는 물적 관계와는 절대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며 여기서 그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는 사물들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상품가치 속에 표현되고 있는가? 구체적 유용 노동은 상이한 형태인 추상적 인간 노동(교환의 기초, 사회관계의 기초)을 매개로 해서만 사회적 성격을 인정받는다.

이제 모순의 실현과 해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사용가치로부터 가치가 완전히 자립된 형태인 화폐는 자신의 고유한 기능(가치척도, 유통수단, 지불수단)에서 볼 때 인간의 자연적 욕구를 위한 사용가치를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모든 생산자의 사회관계를 매개하는 보편자가 바로 화폐이다. 화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화폐는 그 자신 상품으로서 어느 누구의 사유 재산으로 될 수 있는 외적인 물체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힘이 개인의 사적인 힘으로 된다.”

따라서 자본의 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화폐-상품-화폐’에서 사용가치와 가치의 상호공속성은 가치에 대한 사용가치의 종속으로 의미가 바뀐다. 그래서 화폐는 “과정 전반을 포괄하는 주체”이자 자기 매개적 주체이며, 자신의 대립물을 자기 바깥에 갖지 않는 ‘절대자’이다. 이제 화폐는 한편으로 살아 있는 노동을 지배하는 가치, 곧 과거 노동이 자본가 속에서 인격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는 단순한 대상적 노동력, 곧 상품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하여 김우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논의를 결론짓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오로지 자본의 통제와 주도 아래에서 발휘되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자본의 내재적 생산력처럼 나타난다.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 소유자의 사회적 지배력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물신주의, 이것이 바로 자본이 이룩한 업적이다.”(209쪽).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 소유자의 사회적 지배력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노동력 소유자의 주체는 노동력 사용자의 주체인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자본을 이해하는 열쇠일 것이다. 자본 소유자의 사회적 지배력으로 전도된 노동자들의 사회적 생산력을 다시 전도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그곳으로

 

박종성 지음

가치가 삶의 목적인 이곳에서

사용가치가 삶의 목적인 그곳으로

 

사용가치 자체가 가치의 지배를 받는 곳에서

사용가치 자체가 가치의 원천인 곳으로

 

추상적 인간 노동이 사회관계의 기초가 되는 곳에서

구체적 유용 노동이 사회관계의 기초가 되는 곳으로

 

추상적 인간 노동을 매개로 해서만 구체적 유용 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인정받는 곳에서

추상적 인간 노동을 매개로 하지 않아도 구체적 유용 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인정받는 곳으로

 

노동력의 가치가 사용가치를 종속하는 곳에서

노동력의 가치와 사용가치가 서로 함께 하는 곳으로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

사물들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는 곳에서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

인간들의 관계라는 현실적 형태를 취하는 곳으로

 

판매를 위한 구매가 유통과정인 곳에서

구매를 위한 판매가 유통과정인 곳으로

 

자본으로서의 화폐가 지배하는 곳에서

화폐로서의 화폐가 지배하는 곳으로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지배하는 곳에서

산 노동이 죽은 노동을 지배하는 곳으로

 

모든 생산자의 사회관계를 매개하는 보편자가 지배하는 곳에서

 

그렇지 않은 곳으로,

 

그곳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고(故) 김우철 교수(1960 ~ 2021.12.09)

‘주술과 흔적에 저항하는 삶의 이야기’ – 서평: 쓰시마 다쓰오(이문수 옮김)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바오출판사, 2022) [최종덕의 책과 리뷰]

주술과 흔적에 저항하는 삶의 이야기

서평: 쓰시마 다쓰오(이문수 옮김)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바오출판사, 2022)

 

최종덕(독립학자, philonatu.com)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도 볼 수 없다”

바이츠체커 전 독일 대통령 종전 40주년 연설문에서

 

히틀러는 세계사에서 가장 포악하고 공포스러운 정치권력자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히틀러의 무소불위 전권은 히틀러 개인의 독재력에 있지만, 독일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로 인해 가능해졌다. 히틀러가 어떻게 독일 국민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나치에 저항하는 독일인들이 왜 드러나지 않았는지 답답하면서도 궁금했는데,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이라는 한 권을 책을 읽으면서 나의 답답함과 궁금함이 풀렸다.

 

1933년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이후 총리와 대통령직을 통합한 총통으로 스스로 지위를 높였다. 히틀러가 스스로 지위를 높일 수 있었던 권력 즉 무제한에 가까운 권력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에 가능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의 혼란정치와 대공황에 이은 파탄경제로 인해 독일 국민대중은 새로운 정치 권력의 탄생을 원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히틀러라는 악마를 낳게 했다. 히틀러는 민족공동체, 고용확대, 경기회복이라는 선전으로 절망에 빠진 독일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다. 아리아인의 ‘국민동포’라는 민족공동체 부양 구호는 독일 국민에게 엄청난 호소력을 얻게 된다.(18쪽) 이 책에 나온 일반 여성의 회고록을 인용한다.

 

“우리들이 바라는 건 오직 일과 빵이었어요. 배가 고파서 데모도 했지요. 그러나 그건 히틀러가 총리로 되기 전의 일이지요. 히틀러는 단번에 모든 걸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게 일자리가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국민 대중이 모두 히틀러 지지지가 될 수밖에요.” (책 26쪽)

 

실제로 독일 국민들은 물질적 부의 혜택을 느끼고 있었다. 독일의 상징인 고속도로 아우토반 건설과 더불어 도로를 가득 채울 자동차 산업 등이 국민기업으로 확장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노동복지정책과 레저산업이 구체화되었다. 1936년 개최된 베를린 올림픽은 대중들의 자부심과 히틀러의 인기를 최고로 올렸다. 이렇게 이어진 변화는 눈에 띄게 나타났으며, 이런 변화속도를 의도한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기획은 성공적으로 실현되었다고 한다. 나치 기획의 성공은 절대 독재이면서도 압도적인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데서 이뤄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중의 압도적 지지는 실제로는 일종의 마취 현상이었다. 유럽침탈의 장치인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려는 민족공동체의 허상을 실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으로서 나치는 적군과 아군을 엄격하게 차별하는 악의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대인을 구원하거나 동조하는 일체의 행위를 악의적 행동으로 규정하여 그런 행동을 증거 조사 없이 기소할 수 있는 특별법, 소위 ‘악의법’을 1934년 통과시켰다.(60쪽) 자국민에 대한 언론 통제를 하면서 라디오 등의 외국방송 청취 일체를 금지했고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 가혹할 정도의 처벌을 했다. 히틀러는 청소년에 대한 의식교육을 가장 중시했다. 1936년 540만 명을 넘어선 국가 청소년 조직 히틀러 유겐트는 히틀러 독재 권력을 가장 옹호하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막상 독일 대중들은 히틀러가 청소년을 “교체할 수 있는 부품”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32쪽)

 

국민대중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1938년 나치 지도부는 포그롬Pogrom기획을 앞세워 나치를 반대하는 일체의 저항세력을 공개적으로 처벌하는 대박해를 시작했다. 이로써 국고 파탄을 유대인의 물적 자원으로 메꾸는 전시경제를 치밀하게 시행했다. 나치의 포그롬 대박해는 가시적인 약탈과 폭력을 합리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청소년을 중심으로 고발과 밀고를 일상화하는 생활습관을 만들어 놓았다.

 

독일에 점령당한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는 나치 저항 지하단체들의 활약이 많았는데 왜 독일 내부에서 저항 운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의구심의 뿌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폭적인 대중지지의 위력 때문에 저항하는 세력이 은밀한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은밀한 저항을 독일 작가 바이젠보른(Günter Weisenborn 1902-1969)은 “조용한 봉기”라고 표현했다. ‘시민의 용기’ Zivilcourage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284쪽)

 

저항의 용기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기도였다. 암살 기도는 실패했으나 저항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은 상당한 악의 대가를 받게 되었다. 히틀러는 전국적인 무차별 보복을 시작했다. 7천 명 이상이 체포되고 그중에서 200명 넘게 나치에 의해 처형당했다. 히틀러의 증오에 찬 폭정은 국민을 완전히 압도했다. 정말 무서웠다.

 

그런 공포사회 속에서도 저항그룹은 활동했다. 그들의 활동은 처절한 삶의 저항이었다. 그래서 백장미그룹을 포함한 그들의 저항 운동은 전후 오늘날까지 건강한 시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유대인과 반체제 인사들을 외국으로 이주하는 데 도움을 준 ‘에밀 아저씨’ 구원 조직은 매국노라는 오명까지 얻으면서도 진정한 인간애를 실현해 나아갔다. 뮌헨 의과대학 학생이었던 한스 숄과 그의 여동생 조피의 저항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게 되었다. <백장미 통신>이라는 삐라 활동을 하던 슈모렉 그룹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나치에 체포, 사형되어 죽음으로 저항의 삶을 마쳤다. 그 외 다양한 계층의 지하집단이 주도한 비밀단체들의 저항 결사 편지와 통신문을 읽어가면서 나는 이 책의 페이지를 가슴으로 넘기고 있었다.

크라이자우 저항 서클의 지도자였고 그래서 1944년 나치로부터 사형당한 트로트Adam von Trott는 나치에 대한 공공연한 반대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22쪽) 이 말은 아픔의 현실을 담고 있다.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나치 치하의 독일 사회에서 저항세력은 오히려 매국노로 치부되었고 밀고의 대상으로 되었다. 청소년의 심리를 교묘하게 역이용한 나치의 히틀러 유겐트와 전통의 침략전쟁 옹호 그룹이었던 극우세력에서부터 실업과 가난에 빠진 일상인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 나치의 민족공동체라는 주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저항세력은 당연히 매국노와 반역자라는 낙인을 찍히게 되었다.

 

1945년 히틀러는 죽고 전쟁은 끝났지만, 그 주술의 잔재 효과가 따라서 금방 끝나질 않았다. 이 책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은 나치 세력에 저항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상으로 종전 그리고 나치 이후 사람들의 관념과 습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치 이후의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압축한 글을 하나 인용해보기로 하자.(241-242쪽)

 

1945년부터 1947년 사이에 네 모자는 16제곱 미터에 불과한 좁은 다락방에 살며 처음 몇 개월 동안은 그릇 하나로 소금에 절인 청어나 감자를 먹고 빨래를 하는 적빈의 생활을 감내했다. 그런 중에 딸 코르넬 리가 통학 도중 전차 운전수가 “아버지는 전사하셨니?”고 묻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코르넬리가 “아닙니다. 히틀러에 반대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더러운 배신자의 새끼로구나!” 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해댔다.

 

나치에 저항운동을 하던 “유족의 다수는 빈곤에 허덕이면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배신자’로 낙인찍은 세간의 차가운 눈초리에 가위눌렸거나 혹은 고통스럽고 끔직했던 과거를 봉인하고 싶었다거나 하는, 유족들이 침묵을 지킨 데에는 저마다 사정이 있었다.”

 

패전 이후 독일 정부는 처음에는 나치 공무원들을 계승한 전후 동/서독 공무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예를 들어 1952년 치러진 전국여론조사 결과 나치 시기에 저항단체들의 운동을 긍정적으로 본 응답율이 45%에 지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가 표현했듯이, 독일 패전 이후 7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독일 국민 다수가 히틀러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263쪽)

 

특히 전범을 처리해야 하는 판검사의 사법계에서 판사의 66%, 검사의 75%가 전 나치 당원이었기 때문에 정의로운 전범 처리에 심각한 장애에 부딪혔다. 예를 들어 히틀러 선서를 한 독일인이 전시(나치 시기) 중에 나치에 대한 저항 운동 자체가 이적 행위이며 국가반역이라는 나치 잔재 검찰의 법정 옹호들이 횡행했었다. 나치 저항운동을 국가의 반역행위라고 주장한 레머를 재판하는 그 유명한 1951년 레머 재판에서 레머는 오히려 나치 잔재인 검찰들의 지지를 받았다. 재판 방청객이 연일 천 명이 넘을 정도로 관심을 받게 된 레머 재판은 당시 검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항운동의 역사적 정당성과 합법성이 확정되는 계기로 바뀌었다. 전후 독일 정부는 나치 친정인 그들 검찰에게 권한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는 점이다.(270-3쪽)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일제 잔재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한국 정치와 나아가 최근 무소불위의 한국 검찰 권력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독일은 전쟁을 끝낸 패전 국가이지만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을 끝냈지만, 여전히 전쟁 중 휴전 국가이다. 독일은 과거 히틀러 마약의 약해져가는 잔여효과를 처리하면 될 것이다. 반면 한국 사회는 지금도 지우지 못한 일제 흔적과 한국전쟁 여파인 색깔 주술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흔적과 주술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검찰 권력과 그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우리 내면의 자화상을 깨부수는 오늘의 저항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 책에서 깨닫게 되었다.

<끝>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 ⑤ [내게는 이름이 없다]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행길이(한철연 회원)

 

우정, 최고의 기쁨

 

“전 생애에 걸친 축복을 만들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을 갖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혹은 공적 삶을 살지 말 것을 충고하였다. 폴리스적 삶의 양식이 무너진 시대에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쾌락보다는 고통을 가중시킨다. 정치 영역은 이미 권력을 독점한 군주의 손아귀에 장악되었다. 군주는 권력을 분점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군주의 지배권을 분할받으려는 시도로 인지되어 파멸의 고통을 면치 못할 수도 있게 된다. 권력을 추구하면서도 군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줄타기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에피쿠로스는 공적 행위인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쾌락의 지속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 되니 적이 생기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갈 것을 권고하였다.

그렇지만 에피쿠로스가 사회생활 자체를 금한 것은 아니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활동 이외의 사회생활을 통해 얻는 우정은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우정이 주는 쾌감은 사회생활을 통해 얻는 즐거움 가운데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키케로에 따르면, 에피쿠로스는 ‘우정이란 쾌락과 떼어놓을 수 없고, 우정이 없이는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고 두려움 없이 살지도 못하며 심지어 유쾌하게 살 수도 없기에 우정도 갈고 닦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자기 철학의 기본 입장에서 벗어나는 말을 할 정도로-“모든 우정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 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에피쿠로스에게 우정은 인생에 있어서 즐거움의 커다란 원천이었다. 에피쿠로스와 제자들은 그가 근근이 마련한 작은 안뜰에 모여 우정을 나누었다. 그의 정원에서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사회에서는 감히 볼 수 없었던 풍경이 그의 정원에서는 자연스럽게 벌어지기도 했다. 즉 고대 그리스의 고급 창녀들인 헤타이라들이 드나들며 남성 구성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담론을 나누었던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여성은 더 이상 남성의 노예로 취급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그의 적대자들은 에피쿠로스를 창녀와 수작이나 부리는 자로 비방하곤 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노예와 어린이들(학단 구성원들의 자녀들)도 친구로 대우하면서 상냥한 편지를 남기기도 하였다.

“대지 전체가 고통 속에서 산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가장 많은 선물을 선사받았다.” 그것이 바로 우정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누구나 고통의 삶을 경험하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우정은 홀로 맞는 죽음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원천이다. 죽음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고적함의 고통은 누구에게든 보편적이다. 홀로 죽음의 고통이 보편적이라는 각성은 모든 인간을 외로운 존재로 남겨두지 않고 친구로 삼게 하는 동기가 된다.

자유시민들의 우정 어린 공동체라 할 수 있는 폴리스가 소멸한 이후에 우정의 기쁨을 전파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에피쿠로스의 안뜰은 폴리스의 몰락으로 인해 고립되어 버린 인간들에게 새로운 우정의 공동체를 사적으로 선사하였다. 흔히 우리는 친구들이 반드시 우리를 실제로 도와주기 때문에 우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정이 지속되는 이유는 실제의 도움보다는 “친구들이 우리를 도와주리라는 믿음”에 있다. 이 믿음이 깨지면 세상은 분열과 고립의 고통으로 넘쳐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며 늘 적대자들에게 둘러싸여 불안 속에 살게 된다. 하지만 우정의 삶은 이러한 고립의 환난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폴리스의 연대적 삶이 소멸된 불안한 상황에서 안전과 평화를 제공해줄 수 있었던 공간은 에피쿠로스가 제안한 우정의 정원이었다. 비록 이 공간은 사적 관계를 기초로 하여 형성된 것이기는 했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비정함이 초래하는 삶의 고통에 꺾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정원 속에 모인 이들은 우정의 기쁨을 아래와 같이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정이 춤추면서 세상의 주위를 돈다. 그리고 소리친다. 모두 일어나라! 그리고 노래하자!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우리 시대와 에피쿠로스

 

러셀에 의하면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모험 가득한 행복을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세계에나 어울릴 법한 병약자의 철학이었다. 소화불량에 걸리고 싶지 않으면 적게 먹어라. 다음 날 아침이 걱정된다면 과음하지 말라, 정치와 사랑과 격렬한 열정을 동반하는 모든 활동을 삼가라.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운명의 인질이 되지 말라.” 고통에 침잠하지 말고 그 속에 잠재된 쾌락을 능동적으로 관조하는 법을 배우라. “육체의 고통은 분명히 커다란 악이지만, 격심한 고통이라는 것은 짧은 법이고, 길고 긴 고통이라는 것은 정신훈련을 하거나 고통 속에서도 행복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참아낼 수 있다.”

어찌보면 소심하기 그지없는 철학이다. 그런 까닭에 얄팍한 위로와 단발적 힐링에 열광하는 부박한 시대에 에피쿠로스는 자칫 힐링의 멘토로 부각될 수 있다. 더구나 시민적 연대의 전통과 사회적 보호의 수단이 점차 훼손되고 있는 와중에 현대인의 고통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에피쿠로스가 살던 시대도 극심한 고통으로 마음을 종잡을 수 없는 고난의 시대였다. 지금과 유사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의 미망은 올바른 해답이 될 수는 없었다. 사회적 고통을 해결해줄 구조적 대응은 요원한 형국이다. ‘위로의 구루’가 재림하여 힐링의 향유를 피워대면 사람들은 언제든 ‘좋아요’를 누르며 힐링을 소비할 태세다.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제안하는 위로의 즐거움은 ‘좋아요’와 같은 손쉬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처방은 정신의 자기성숙을 통한 고통의 극복이다. 정신훈련을 통해 굳건한 정신을 가진 주체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고통도 극복되는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도 같은 방법이 적용될 수 있을까? 시대적 조건이 유사하다는 점에서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과거에 수행했던 역할은 오늘날에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이 얼핏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성향은 다르다. 더구나 사람들은 욕망의 무제한적 표출을 동력으로 작동하는 체제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렸다. 욕망의 무분별한 추구로부터 초연해지는 평정한 영혼의 상태(ataraxia)를 권고하는 에피쿠로스가 과연 현대인의 삶을 인도하여 즐거움의 항구에 안착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무래도 모를 일이다.


‘정당한 적(justus hostis)’ 개념: 슈미트의 위대한 통찰과 나의 반론 [나인당케의 단상들]

‘정당한 적(justus hostis)’ 개념: 슈미트의 위대한 통찰과 나의 반론

 

한상원(한철연 회원, 충북대)

 

그림 칼 슈미트의 저서 <대지의 노모스(Der Nomos der Erde)>

Carl Schmitt / 출처: 위키피디아

 

1.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칼 슈미트가 <대지의 노모스>에서 기술한 ‘정당한 적(justus hostis)’과 ‘전쟁 길들이기(Hegung des Kriegs)’라는 개념들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슈미트의 주장은 이렇다. 국제질서는 도덕 규범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따라서 ‘정당한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간주하는 세력은 상대를 부당한 적으로 간주하게 되고 따라서 적에 대한 잔혹한 응징을 정당화한다. 오히려 교전 당사자를 ‘정당한 적’으로 규정하는 관점만이 전쟁의 극단적 폭력성을 억제하면서 ‘전쟁 길들이기’를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실제로 그러하다. ‘깡패국가(rogue states)’를 응징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을 명분으로 중동을 군사적으로 침공하고 폭격했던 미국과 나토, 그리고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있는 돈바스 지역의 ‘자치공화국’들을 승인하며 해당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러시아의 푸틴 모두 자신들을 정의의 수호자로, 상대방을 부당한 침략자이자 범죄자로 규정하면서 각자의 군사적 팽창을 정당화한다. 만약 바이든과 푸틴이, 서방과 러시아가 서로를 악마화하지 않고 (각자가 추구하는 질서에 대한 상이한 개념을 가진) ‘정당한 적’으로 규정한다면, 지금의 끝이 보이지 않는 충돌의 위험이 줄어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2.

‘정당한 적’이라는 개념은 이처럼 정치의 도덕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제하고 있다. 이를 국내정치에 대입해봐도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 촛불시위 이후 등장한 민주당 정권은 자신을 ‘촛불 혁명의 계승자’로 자처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혁명 이후 실행되어야 할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했다. 자신들은 불의한 세력을 응징하는 정의의 심판자이며, 반대편은 심판되어야 할 불의한 적폐 세력이다.

그런데 이 패러다임은 정부와 여당으로 하여금 모든 권력을 잡고도 자신을 영원히 정의의 심판자 역할로 이미지화하면서, 자기 편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불의들, 예컨대 권력형 성범죄, 입시비리 등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반성적인 태도로 일관하도록 만들었다. ‘정의로운’ 세력이 실은 ‘불공정’을 자행하는 ‘내로남불’이라는 비아냥에 직면한 것이다. 이제 이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과반수가 ‘정권교체’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답하고 있고, 상대진영 대권주자는 이제 똑같은 적폐청산 프레임을 이용해(‘민주당 적폐 청산’) 자신의 권력획득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처럼 거대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적폐로 규정하면서 정작 시민들의 실질적인 삶과 관련된 핵심적인 쟁점들을 흐리는 이 상황은, 본질적으로 정치를 도덕으로 환원해서 정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심판하는 행위로 이해하게 될 때 벌어지는 해프닝에 가깝다.

 

3.

이러한 논의구도를 조금 더 확장했을 때, 역사적으로 벌어진 수많은 ‘혁명적 폭력’들의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 이후 벌어진 공포통치나 모스크바 재판과 같은 사건들은 혁명 이후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자신들의 정적을 ‘인민의 적’으로 악마화함으로써 벌어졌다. 여기서도 정치는 도덕화되며 ‘정의’의 이름으로 적을 ‘심판’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이 작동한다. ‘정당한 적’이라는 관념이 결여된 채 벌어지는 ‘숙청’의 잔혹함은 정치의 도덕화가 실은 매우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폭력(발리바르가 말하는 ‘극단적 폭력들’)을 동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그리고 슈미트와는 다른 관점에서, 그러나 상통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아렌트는 ‘고통’과 ‘연민’이 정치의 주제가 되었을 때 정치가 그러한 고통에 대한 응징으로 변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폭력적으로 돌변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상대가 ‘비인간적 범죄자’라는 도덕적 분노는 ‘인류의 적’으로 규정된 상대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어째서 정치적 갈등이 쉽게 폭력으로 전환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사실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슈미트의 ‘정당한 적’이야말로 다원주의적인 자유민주주의에 융합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실제로 무페가 ‘적대(antagonism)’를 비폭력적이고 다원주의적인 ‘경합(agonism)’으로 승화시켜 자유민주주의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가장 결정적으로 참조했던 것은 슈미트였다.

 

4.

그러나 이처럼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슈미트의 주장은 문제가 없는 걸까? 과연 정치는 도덕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가? 나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첫째로, 민주주의 정치는 원자화된 개인이 집단적으로 벌어지는 정치적 행위의 장에 참여함으로써 그 사회의 주권자로 거듭나는 주체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과연 개인이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 속에 ‘정의에 대한 헌신’이나 ‘타자에 대한 연대감’과 같은 도덕적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러한 주체화 과정을 단순히 ‘전능한 주권자와의 직접적 동일시’로 이해하고 이를 만장일치적인 박수갈채 행위 속에 가능하다고 간주하는 슈미트의 관점에서는 물론 도덕의 요소가 결합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인이 어떻게 주체로 호명되는가라는 관점에서는 ‘어떻게 ‘올바른’ 사회를 만들 것인가’와 같은 규범적이고 도덕적인 요소가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로,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주권국가들 사이의 국제법 질서를 하나의 헤게모니적 체제로 이해할 때, 그러한 헤게모니 질서는 특정한 규범적 가치에 대한 신뢰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로마가 로마의 패권을 유지했던 것은 단지 로마가 전쟁을 잘 수행했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시민권’과 ‘로마법’이 가진 가치에 대한 믿음이 종속민들로 하여금 로마의 동맹세력이 되도록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국제관계에서도 일정한 도덕적 요소를 갖는 가치에 대한 믿음이 수행하는 물질적 효과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셋째로,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인권선언’과 같은 국제인권규범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어느정도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슈미트는 1919년의 파리 강화조약의 결과로 생긴 국제연맹, 그리고 2차 대전 후 만들어진 국제연합을 비난하면서, 그 토대가 되는 세계시민주의를 ‘제국주의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로 비난한다. 이러한 비난이 완전히 거짓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국제연합은 강대국의 이해관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슈미트라면 따라서 유엔 결의를 통해 공표된 세계인권선언을 정치의 도덕화이자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중립화로, 곧 정치의 탈정치화로 비난할 것이다. 또 인권선언이 가진 추상성과 모호성으로 인해 ‘인권’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이 전개될 것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실제로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인권선언과 같은 공적으로 선언된 이념이 갖는 ‘정치적’ 실재성에 관해서 슈미트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 것인가? (발리바르와 랑시에르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이러한 인권선언이 수많은 배제된 개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권리를 얻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정치를 지배에 대한 ‘대항정치’의 관점에서 사유하지 않는 슈미트에게서 그러한 물음은 제기되지 않는다. 제기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치를 사회적 지배(아렌트가 말한 ‘사회적인 것’)에 대항하는 개인들의 주권적 연합으로 규정하고, 민주주의 정치는 그러한 연합이 실행되기 위한 ‘주체화’의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필히 정치와 도덕이 맺는 환원적이지 않고 몹시 복잡한 변증법적 관계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5.

결론적으로, ‘정당한 적’과 ‘전쟁 길들이기’라는 슈미트의 통찰은 우리에게 ‘정치의 도덕화가 낳는 폭력’에 대한 유용한 깨달음을 주지만, 이를 통해 정치와 도덕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다고 믿은 슈미트의 관점은 온전히 수용될 수 없다. 정치는 (심지어 슈미트가 말하는 ‘적/동지’의 구분이라는 의미에서도) 일정한 ‘가치지향’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후감 : 2022 대선에 끼어든 생체 부적 – 트리버스(Robert Trivers),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다시 읽고 – [최종덕의 책과 리뷰]

독후감 : 2022 대선에 끼어든 생체 부적

– 트리버스(Robert Trivers),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다시 읽고 –

 

최종덕(한철연 회원, 독립학자)

 

  1. 자기기만의 습성을 가진 사람들

습관적 기만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전형은 자신의 거짓말 행위의 기만을 기만으로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습관적 기만행위가 가능한 이유는 스스로 자기기만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기억을 조작한다는 뜻이다. 기억을 짜맞추어 자신을 재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성곽에 갇힌 좁은 세상의 경험을 확대하여 다른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상의 기만행위를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남들이 기만적이라고 확정 판단한다. 이런 증상은 자기기만의 전형적인 현상이다.(책 232쪽)

광신도적 주술사나 그런 주술에 점입될 준비가 되어 있는 일반 광신도 모두 예외 없이 자기기만 증상의 사례들이다. 자기기만 증상자는 어리숙하게 굴기도하면서 주변 상황파악을 못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행동에 수치심을 갖지 않고 뻔뻔한 행동을 하는 데 능해진다. 특히 사회적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자기기만 증상을 같이 갖고 있을 때 기만의 사회적 악폐는 더 심각해진다. 이런 경우를 권력형 자기기만 현상이라고 부른다.

권력형 자기기만 증상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도그마를 생산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도그마를 강력하게 강요하며 그런 도그마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도그마 권력을 위배하는 사람들 모두를 악마화시킨다. 예를 들어 현재(2022년 2월) 대선후보로 나선 권력형 자기기만 증상자는 현 정권에 대한 적폐 수사를 한다거나 검찰청 앞에 모인 국민을 사법처리하겠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즉 자기기만 증상자는 자신의 거짓 합리화만이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는 상대방을 미리 위협하고 강한 공격을 서슴치 않는다. 저자 트리버스는 이런 증상을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고 말했다.(책 117쪽)

 

  1. 자기기만의 주술적 성향

자기기만의 병증은 극도로 편향된 주술적 성향으로 전개된다. 자기기만의 주술적 성향이란 자기 개인의 불안정한 내부 심리상태를 우주적 특권으로 대체하는 가상세계에 빠지는 경향을 말한다. 트리버스는 이를 “우주적 의식의 특권화”라고 표현했다.(책 461쪽) 박근혜씨의 ‘우주 기운 운명론’이 그러했고, 윤석열씨의 ‘왕(王)자 그리고 이마 흰털 생체 부적’이 그러하듯이, 그들의 주술성 자기기만 심리상태의 특징은 자기소집단의 서열을 공고히 하며 자기를 정점으로 따르는 소집단 구성원에게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데 있다. 권력집단 기만성이 외부로 탐지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남 탓을 하고 분리주의를 유도하며 결국 자화자찬과 상대비난에 함몰한다는 것을 책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책 463쪽)

트리버스의 이 책은 자기기만의 사회-진화심리학적 배경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기만의 성공여부는 자신의 기만이 들통 나지 않도록 즉 남이 자신의 기만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것에 달렸다. 인간에게서 이러한 기만형질은 인간의 언어 능력보다 더 오래된 진화적 형질이라고 한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상대의 기만을 알아채는 심리적 형질도 따라서 진화되었다고 트리버스는 말한다. 나아가 권력형 기만자의 자기기만 혹은 타자 기만행위에 대하여 기꺼이 속을(기만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우리 인간의 또 다른 심리적 형질이다. 여기에 현실적인 문제가 놓여 있다.

 

  1. 보통 사람들, 도덕성과 경쟁심의 이중트랙을 볼 수 있는 눈

권력형 기만증상자의 기만행위를 기꺼이 수용하는 개인들의 심리상태를 트리버스는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모습은 우리 인간 자신의 또 다른 이면이다. 권력 기만자의 증상이 일반 사람들에게 전염되면서 우리들조차 자기기만의 플라시보 효과를 탐미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기만에 전염된 우리 보통 사람들을 비난만 해서는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 그들이나 똑같은 진화의 호모 사피언스이다.

대한민국 현실 선거 정치와 연관하여 말해 보자. 대선에 나선 민주당 사람들이 말하기를, 윤석열 후보는 기만행위가 많아서 민주당이 결국 선거에 이길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들었다. 그런 말은 호모사피언스의 진화생물학적 현실을 모르는 오판으로 끝날 수 있다. 권력형 기만집단도 언제든지 승리할 수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만집단의 행위와 그 여파는 우리들 일반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기만이라는 플라시보 효과에 기꺼이 그리고 능동적으로 동참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놓치거나 무시하면 아무리 진심어린 이재명 백 명을 가져와도 선거에 이길 수 없다. 도덕과 진리로 볼 때 상대방보다 낫다고 해서 선거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인성은 두 개의 형질 궤도 위에서 나타난다. 하나의 궤도는 남들과 함께 하는 도덕심이며, 다른 하나는 남을 해치는 약육강식의 경쟁심이라는 궤도이다. 두 개의 궤도로(이중 트랙) 진화된 양면성의 호모 사피언스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냉정한 인식 위에서 만든 응급형 선거정책을 생산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결실이 올 것이 분명하다.

 

  1. 확증편향과 인지부조화를 다룬 이 책,

이 책은 기존 임상심리학에서 많이 연구해 온 확증편향과 인지부조화의 문제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편향된 정보해석, 편향된 기억, 편향된 판단, 편향된 추측 등의 편향확증의 문제를 자기기만의 상태와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허풍과 기만의 심리를 노출하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게 되는 심리 상태, 우월감에 도취되어 공동체 분열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상태, 권력형 기만증상을 이용하여 확대생산하는 주변정치인들의 동조 양상, 습성대로 행동한 후 반성없이 얼버무리는 기만행위, 너무 잦은 미성숙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을 갖지 못하는 인지부조화의 상태를 자주 보아온 우리들, 이 책에서 서술된 수많은 사례들이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우리 독자는 씁쓸하다.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 ④ [내게는 이름이 없다]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 ④

 

글: 행길이(한철연 회원)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

 

김훈의 『강산무진』에는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무기력함이 끔찍할 정도로 냉정하게 조탁되어있다. 죽음의 두려움이 주는 고통은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경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죽음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인간은 기쁜 인생을 살기 위해 태어났다. 그런데 인간은 두려움 때문에 기쁜 인생을 향유하지 못한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은 자기 삶의 최종적 파멸로서의 죽음이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이란 살아있는 우리 인간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런 작용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은 감각에 의존하는데, 죽으면 이러한 감각을 잃게 된다.” 즉 죽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기쁘게 되지도 않고,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게 된다. 우리가 죽게 되면 죽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고통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죽음에 대한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고통이란 죽음을 경험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에 대한 고통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닥쳤을 때라도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기에 죽음이 두려운지 조차도 느낄 수 없다. 그러니 죽음이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한순간도 죽음을 경험할 수 없으니 죽음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공포와 동요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유령과 같은 허상을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의 공포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

 

신에 대한 두려움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

 

죽음 다음가는 공포는 신에 대한 공포다. 모두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인생이 불행해진 이유가 신이 불경한 자기 행동에 분노하여 징벌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제사장들에게 재물을 제공하면서 신의 전조를 읽어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하여 엄청난 비합리성이 판을 치는 불의한 사회가 되어버린다. 종교적 권고는 심지어 자기 자식을 신에게 공양하는 범죄를 신성한 의례로 여기게 하는 미혹을 유포시키기도 했다. 루크레티우스의 말처럼 “종교로 인해 우리가 이르게 되는 악의 심연(Tantum religio potuit suadere malorum)”은 인간의 삶을 고통에 휩싸이게 만든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신이 인간의 행위에 분노하거나 기뻐하는 등의 감정을 함부로 남발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신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신은 불멸의 축복을 받은 존재다. 따라서 그의 불멸성과 축복에 어울리지 않는 속성들, 즉 걱정, 근심, 분노 등을 신에게 갖다 붙이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신은 인간과 같이 근심하거나 걱정에 휩싸이고 분노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자기에게 악한 자들은 신의 징벌을 통해 불행해지고, 자기에게 선한 자들은 신의 축복에 의해 행복해진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려는 인간이나 하는 것이지 지성적 존재인 신이 취하는 것일 수 없다. 따라서 신은 우리 인간이 무슨 짓을 하든지 아무런 감정을 내보이지 않으며, 아무런 징벌도 상도 내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즐거움의 항구

 

나이를 먹을수록 활력과 정열은 예전 같지 않다. 의욕은 있으되 청년의 정력적 활동을 따라가기란 역부족이다. 주변에서는 활력을 갖고 젊게 살기 위한 노력을 주문하면서 젊은이들 못지않게 열심히 활동하는 노년들을 보여준다. 이른바 청년 시절의 삶을 노년에서도 반복하기를 권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년 같이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한 노년의 삶이랄 수 있을까?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젊은 사람을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노인을 행복하다고 해야 한다. 젊은이는 혈기왕성해서 운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하지만 노인은 항구에 정박하듯 제 나이에 닻을 내린다. 하여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즐거운 일이라 감사히 여기며 [그 경험을] 안전한 곳에 가져다 둔다.”

 

에피쿠로스가 보기에 청년보다는 노인이 더 행복할 수 있다. 청년은 언제나 자기 운수의 행로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만한 방향으로 가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행복을 판별한다. 하지만 노인은 좀처럼 운수의 향방에 따라 자기 인생의 복됨을 결정하지 않는다. 노인은 항구에 굳건히 정박한 배처럼 운수가 어떤 변덕을 부리든 상관하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경험을 관조하면서 그 속에서 얻은 기쁨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행복감을 느낀다. 비록 새벽잠이 없어서 매번 외로운 아침을 맞이하지만 그로 인해 하루가 시작되는 신비로움을 고요히 응시할 수 있고, 두뇌 활동이 예전 같지 않아 빠른 독서는 하지 못해도 느릿한 독서는 구절마다 배인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만든다. 젊은 시절 성급하게 놓쳐버린 경험의 다양성은 노년이 주는 완상의 기회 덕분에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좋은 일들을 잊고서 그는 오늘 이미 노인이 되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과거의 즐거움을 기억하는 사람은 젊음을 유지할 수 있지만 새로운 쾌락만 추구하려는 사람은 금세 늙는다는 말이다. 에피쿠로스에게 쾌락이란 대체로 완상과 관조의 경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을 청춘의 즐거움 속에서 살게끔 만든다. 고통의 제거란 생의 경험 속에 내재된 기쁨의 요소를 발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관조를 통해 자신이 겪은 경험 속에 내재한 좋은 일들을 간수하지 못하고 망각하게 되면 그는 고통의 심연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청년이어도 노년의 고통을 겪는다. 반면에 경험 속에 내재한 좋을 일을 고통의 순간 속에서도 관조할 줄 알면 노인이어도 청년을 살게 된다.

에피쿠로스에게 나이가 듦에도 젊게 사는 인생이란 청년의 삶을 모방하며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노인답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첫 걸음은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경험을 완상하며 즐거움의 계기를 발견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갈 때 젊은이의 그것과는 다른 삶의 활기를 얻게 될 것이다. 항구에 닻을 놓고 생의 즐거움을 완상하는 것. 이것이 청춘을 사는 노년의 방법이다.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 ③ [내게는 이름이 없다]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 ③

 

글: 행길이(한철연 회원)

 

고통의 제거

 

“우리는 본성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필연적인 육체적 육망들은 충족시키는 반면, 해로운 욕망들은 완강히 거부할 때 우리는 본성에 맞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삶이다. 이것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태어나자마자 쾌락을 얻으면 만족하고 고통을 혐오한다. 이는 이성과는 무관하게 본성에 이끌려 그렇게 되는 것이다’라는 쾌락주의의 공통적 전제에서 도출되는 입장이다. 고대의 쾌락주의에는 에피쿠로스 학파말고도 아리스티포스의 퀴레네 학파도 있었다. 퀴레네 학파가 육체적 쾌락의 무한한 증진을 추구한 것과 달리 에피쿠로스 학파는 육체적 쾌락 뿐만 아니라 정신적 쾌락도 추구하였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고통이 결핍에서 온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쾌락은 고통의 제거에서 비롯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고통스러운 것들의 제거가 쾌락 크기의 한계이다.” 즉 고통을 제거한 이후에는 더 큰 쾌락을 얻기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육체적 쾌락을 무한히 증가시키기를 원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한다. 에피쿠로스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흔히 우리는 육체적 쾌락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육체는 무한히 지속되지 않는다. 육체가 유한한데 쾌락이 무한할 리는 없다.”

허기라는 고통이 소박한 식사를 통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음식에 대한 욕망을 줄기차게 추구한다. 형태를 달리한 즐거움이 증가된 쾌락의 경험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새로운 형태의 ‘쾌락’을 추구하다보면 새로운 고통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기의 맛’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쾌락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우 우리는 성인병이라는 고통을 겪게 된다. 쾌감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무분별하게 추구하게 되면 “쾌락을 가져다주는 수단이 쾌락보다는 고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위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위가 무한한 용량을 가진다’라는 잘못된 의견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잘 새겨야 하겠다.

 

소박한 쾌락주의

 

허기와 갈증과 추위와 더위에 시달릴 때 그것의 욕구를 채워주면서 더 이상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춥지도, 덥지도 않게 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만족스러운 쾌감을 느끼게 된다. 고통이 사라짐으로써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의 제거 그것이 곧 쾌락이다. 시시해보이지만 부정하기는 힘든 소박한 사실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얻은 새로운 형태의 쾌락이 우리를 만족시킨다 해도, 그것을 위해 감수한 노력과 애타는 시간 등을 감안해 우리가 얻은 즐거움의 양을 계산해 본다면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그것이 나의 노력과 힘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스러운 노동의 성과를 착취해 얻은 기쁨이라 해도, 그가 품고 있는 불만은 공동체적 삶의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에피쿠로스적 관점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양이란 우리가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을 얻는 것에 국한된다. 진정으로 배고플 때 먹고, 정말로 목마를 때 마셔야만 한다. 그럴 경우에만 진정 쾌감을 얻을 수 있다. 자연적 필요가 아니라 인위적 충동에 의해 쾌락을 추구할 때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고통의 대가도 치러야 한다.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계속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일도 아니고,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도 아니며, 물고기를 마음껏 먹거나 풍성한 식탁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선택과 기피의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고 잘못된 생각을 몰아내면서 멀쩡한 정신으로 따져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가장 큰 선은 사려 깊게 판단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육체의 자연적 욕구를 충족시킨 이후에는 더 나은 생계를 위해 필요한 수단을 확보하느라 노력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삶은 인위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삶이다. 그것은 삶의 균형을 상실한 사람들이나 할 만한 어리석은 짓이다. 에피쿠로스의 제자 메트로도로스가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일생 동안 생계 수단을 모은다.” 되도록 많은 재산을 모음으로써 우리가 배고픔, 목마름, 추위 등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 해도 우리가 육체를 지닌 인간인 이상 우리는 갈증, 허기, 추위 등의 고통에서 영구히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죽음의 약을 마신 육체적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존재적 지위를 깨닫지 못하기에 우리는 더 많은 재산을 원한다. 하지만 일단 우리에게 신과 같은 풍요가 허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의 욕구는 자연적 필요를 채우는 데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자연적 필요를 채우는 데에는 그리 많은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단지 소박한 몇몇의 것들만 있으면 된다. 이러한 사실을 강렬히 깨달은 사람이라면 욕망의 어리석은 타력에 제 몸과 정신을 맡기지 않고 자기 절제의 의식을 가지면서 살아갈 수 있다.

 

“사치스럽지 않고 단순한 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건강을 주며, 우리가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에 주저하지 않게 해준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사치스러운 것들과 마주쳤을 때 우리를 강하게 만들며, 우리가 행운(tyche)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자연적 필요를 충족시켰을 때 얻는 쾌락에 만족하는 삶이 익숙해지면 사치스러운 것을 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마음의 동요가 없다면 그러한 행운을 과감히 무시하더라도 번민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오히려 홀가분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이러한 기쁨과 쾌락은 오직 인위적 욕구의 절제를 알고, 의연함으로 스스로를 제어하는 이만이 얻게 되는 보상이다.

고전문헌학자 앙드레 보나르는 한 고인의 말을 인용하며 에피쿠로스의 삶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밥 한 술 뜨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등짝을 눕히고 자는 것, 이것이 바로 에피쿠로스다. 그는 새벽이 되면 벌써 비단 친구들뿐만 아니라 제우스 신하고도 토론할 태세를 갖추었다.’ 이것이 적잖은 사람들이 방탕의 화신이자 난봉꾼으로 몰아세운 이의 진면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