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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과 만화 – 폐허 산책하기 1편: 서론. ‘유시민/진중권’과 ‘웹툰 <덴마>’라는 새해의 두 폐허와, 역사의 두 천사 [여기가 로도스다, 춤추자!]

벤야민과 만화 – 폐허 산책하기 1편: 서론.

‘유시민/진중권’과 ‘웹툰 <덴마>’라는 새해의 두 폐허와, 역사의 두 천사

 

이상하(한철연 회원)

 

1.

누구나 1월 1일 새해엔 또 좋은 일이 있을 거라 믿으며 ‘해피 뉴 이어’를 외치고 새해의 소원을 비는 신성한 제의를 하기 마련이다. 이제 2020년이라는 나름 기념비적인 새해가 찾아온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나가고 있고, 이젠 운동이든 공부든 무엇이든 새해에 빌었던 소원과 결심이 다소 흐트러지거나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즈음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올해에 새해 소원이 무너지거나 포기할 일 자체가 없었다. 내가 마음을 굳건히 먹고 소원을 달성키 위해 온몸으로 실천해서가 아니라, 새해 첫날부터 황량한 두 폐허를 목격하게 되면서 새해에 대한 희망이나 소원 자체를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칫 올해도 소원 따위 마음먹고 기대해봐야 마음만 다치고 작년과 비슷하게 뻔한 반복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공포심리가 악몽같이 나를 짓누른 것이다.

이렇게나 나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 새해 첫날의 두 폐허란, 첫 번째로 새해기념 ‘100분 토론’이었다. 유시민과 진중권은 한때 나뿐만 아니라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고 실천하려는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진보의 아이콘으로 여겼던, 아니 더 과격하게 말해서 진보적 시민들의 아이돌이었다. 유시민의 책 『거꾸로 보는 세계사』나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어린 시절에 읽고서 세상을 기존 시점과 좀 다르게 봐야겠다는 마음을 품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한국에서 수십만 명 이상일 것이고, 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독서 시장에서도 유시민과 진중권의 신간을 소비해 왔다. 그러나 한때 같은 진보정당에 소속되어 노유진의 정치카페 같은 인기 팟캐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던 이 대중 지식인들은, 작년 조국 사태에서부터 완전히 갈라섰다. 물론 여기까지는 수많은 운동과 진보의 역사를 두고 보면 그리 특별할 일은 아니다. 같은 정당이어도 정파는 다를 수 있고 추구하는 노선은 당연히 더더욱 다를 수 있으니까. 분열은 어쩌면 진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기에.

허나 이 유시민/진중권의 갈등이 극에 달해 폭발한 새해 토론은 이 둘의 갈등이 진보 운동의 노선 차이나 목표하는 이상의 차이와는 다른 것임을 명백히 드러냈다. 한때 자기 소속 정당의 보수성에 비판과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국회에 정장이 아닌 청바지를 입고 입장하는 파격으로 신선했었던 정치인 유시민은 이제 죽었고, 남은 건 오로지 노무현-문재인 계파의 돌격대장 또는 대변인으로서 자기편에 불리한 건에 대해선 침묵하거나 감추기 급급하고 자기 외의 다른 편은 다 나쁜 놈이라는 진영논리의 함정에 빠져버린, 자기 자신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어용 지식인의 한계를 유시민은 낱낱이 보여줬다. 진중권 또한, 10년 전에는 영화 <디 워>에 대한 비평 논란이나 황우석의 거짓 논문에 대한 폭로 국면에서 수많은 국민이 자신을 비난하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지속하는,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의 일이 아닌 일에도 옳지 않다며 참견하는 지식인’다운 일기당천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이 새해기념 100분 토론에서 보여준 진중권의 모습은, 교수라는 직위와 기득권을 억울하게 빼앗겼다면서 자신을 비판한 대중을 그저 스스로 생각 못 하는 홍위병으로 몰아붙이고 비하하는 엘리트주의자의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심지어 토론 도중에 상대방 말 끊기를 하는 등 기본적인 매너도 최악인, 그야말로 이게 토론인가 싶은 황량한 폐허를 새해 첫날부터 목격해버렸다. 그리고 이 첫 번째 폐허에서 난 평소 안식 또는 구원으로 여겨온 만화의 세계로 도피하려 했으나, 곧이어 네이버 웹툰에서도 또 하나의 망한 댓글의 잔해로 가득한 폐허를 보았다. 바로 10년간의 연재 끝에 완결 없이 완결 나버린 양영순의 웹툰 <덴마>에 대한 이야기다.

 

 

2.

나의 이 두 폐허라는 감상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분들도 있을 듯하다. ‘유시민과 진중권은 한때 한국의 진보, 대중 지식인의 아이콘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양영순과 <덴마>가 무슨 한국의 문화 예술계의 상징도 아니고, 만화계의 대표라고 말할 정도의 위상인가?’라고 말이다. 90년대 한국에서 서태지를 문화 대통령이라 대중과 언론에서 호명하고, 2000년대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걸그룹 춘추전국의 시대를 연 것 같은 영향력과 대표성을 만화계에서 양영순이 가진 적이 있었던가? 물론 양영순의 <덴마>는 단 한 차례도 네이버 요일 웹툰 안에서도 1위를 한 적도 없고 단행본이나 신문연재 부수로 무슨 붉은매처럼 백만 권을 판 전적도 없다. 그러나 유시민과 진중권 또한 이 보수적인 한국 정치판에서,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책에서 말하듯 국가의 기원부터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의 대중적 상징으로 성장하고 널리 활용되었듯이, 양영순도 데뷔작인 성인만화 <누들누드>부터 최근의 스페이스 오페라 <덴마>까지 마이너하고 파격적인 만화 분야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기억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세게 말해 본다면, 일본 만화체의 아류 또는 표절작이거나 한번 보면 두 번 다시 볼 생각이 안 드는 진부한 학원물로 차고 넘치는 이 한국 만화-웹툰계에서, 스타워즈 시리즈같이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마이너 장르로 무려 10년의 장기연재를 해온 양영순에게 나는 무조건적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방탄 소년단에게 팬덤 아미가 있듯이, 나는 열성적인 양영순의 팬덤, 이른바 ‘덴경대’란 이름의 열성적 독자 중 한 명이었다. <덴마> 작중에 등장하는 ‘백경대’라는 일종의 중세 유럽 영주의 기사 같은 경호원 집단을 패러디한 ‘덴경대’ 독자들은, 양영순 작가의 연재 지각이 계속되자 독자들 스스로 웹툰이 업로드되면 즉시 알려주는 덴경대 어플을 만들기도 하고, 연재 말기에 작가가 그리기 어려운 단체전투 액션 신을 스킵 해버리자 자신들이 직접 액션 신을 그려서 팬사이트에 올리기도 하는 등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생비자(prosumer) 개념으로 진화하여 2차 창작을 즐기는 충성스러운 독자들이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도 웹툰계에서 일종의 컬트 집단이 된 덴경대는 괜히 다른 웹툰 댓글에 가서 이런 수준 낮은 만화 말고 깊이 있는 양영순의 <덴마>를 보라고 무리한 영업을 하는 등 흔한 팬덤의 부작용도 있었지만, 마치 BTS의 팬덤 아미가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2차 창작을 통해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메시지를 전 세계에 공유하고 전파하듯, 분명 한국의 웹툰 소비자들이 진화하고 있다는 명확한 풍경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양영순의 무리한 스토리 진행 및 그동안 깔아둔 수많은 떡밥, 복선에 대한 아무런 수습도 없는 무책임한 완결 덕분에 이 수많은 충성스러운 팬덤 백경대는 완전히 극한의 안티로 돌아서게 되었고, 이제 <덴마>의 댓글란은 그야말로 엉망진창, 댓망진창으로 가득하여 하나의 거대한 폐허더미가 되고 있다. 이 또한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상품에 대해서 그저 무시하거나 소비를 중단하는 것이 아닌, 더 적극적으로 소비 파업, 불매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한 어떤 소설 제목처럼, 양영순과 <덴마>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물신’처럼 여겨지며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될 정도로 고평가되었던 만큼 퇴락도 끝이 없는 무저갱처럼 지하의 지하로 떨어졌다.

 

 

3.

지금 시대에 그다지 좋지 않은 비유일 수 있지만, 나에게 이 두 폐허의 풍경은 마치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첫사랑을 사창가에서 스치듯 다시 만난 듯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단순히 양영순 혼자만의 과실일까. 물론 양영순은 무책임한 작가로서 자신을 믿어준 독자들에게 백번 사죄해야 마땅하지만, 나는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덴마>의 이 형편없는 폐허 같은 완결은 현재 네이버 웹툰을 비롯해 퇴락하고 있는 한국 웹툰계에 대한 하나의 징후 또는 증상이 아닐까. 더이상 신선하면서도 깊이 있는 신작이 나오지 않기에 그저 수익을 위해서 기존의 인기작가를 휴재 후 미리보기 유료연재를 하라고 쥐어짜거나, ‘신과 함께’나 ‘치즈 인 더 트랩’ 같은 예전에 인기 있던 명작을 재연재하는 네이버웹툰. 이는 덩치만 공룡같이 커지고 전 세계로 수출 중이라 자랑하는 이 한국 웹툰계가 내부적으로 매우 부실해졌다는 상징적인 증상이 아닐까 나는 의심해본다. 그리고 이것이 과연 웹툰계만의 일이었나 거꾸로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나 음악 같은 문화 계열뿐만이 아니라 한국경제와 정치야말로 새천년의 지난 20년간 과연 무엇이 새로웠던가. 계속 재탕에 삼탕은 아니었나.

노무현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씁쓸하게 발언한 이후, 부동산 토건 귀족과 재벌 대기업 위주의 한국경제는 정말이지 구조적으로 전혀 변하지 않았고, 한국의 정치 또한 지역주의 정서와 구도는 여전하고 정치인-국회의원을 나를 잘먹고 잘살게 해주는 일종의 먹고사니즘 메시아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한국이라는 총체적 폐허 속에서 상념에 잠기다가 이쯤 되면 니체의 철학 개념 중 하나인 영원회귀에 대한 가장 비관적이고 악몽스러운 해석이 떠오른다. 수십만 년이 지나도 이 세계는 눈곱만큼도 변하지 않고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이 내일도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는, 삶이란 그저 반복일 뿐이고 어떠한 노력도 실천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미래를 바꾸지 못한다는 극한의 허무주의적 해석이 나를 새해 첫날부터 악몽처럼 짓눌렀다.

그래서 나는 이 반복되는 악몽으로부터 또 한번 도피했다. 새해 정치 토론쇼에서 나의 위안이자 구원이었던 만화의 세계로 도피했듯이, 또 다른 구원이었던 도서관, 독서의 세계로. 그 와중에 우연치 않게 새해의 첫 독서로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의 유언장이자 역사철학이 담겨 있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등 몇 권을 읽었다. 물론 번역서였음에도 그 내용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두 권의 해설서를 같이 읽게 되었다. 김진영 선생님의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와 한상원 선생님의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이 두 권의 해설서를 통해 벤야민 속을 이리저리 산책하고 방황하면서, 나는 그저 망해버린 폐허라고 생각했던 새해 첫날의 두 풍경이 그저 폐허나 악몽인 것만은 아니겠다고 다시금 생각해봤다. 이것이 이 글을 시작한, 씁쓸하나 희망적인, 매우 개인적 감상이 많이 첨가된 서론, 첫 시발점이다.

김진영 지음,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포스트카드, 2019. 사진출처: https://image.aladin.co.kr/product/18013/59/cover500/k072534740_1.jpg

 

 

4.

“역사의 시간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근거없는 천박한 낙관주의와 공허하고 무책임한 허무주의를 넘어,

미래의 구원(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정당화하고

망각하려는 시도들에 맞서 망각에 저항하고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미래로 ‘도약’하려는 ‘몫 없는 자들’의 서사를 재구성하려는

역사철학의 가능성은 어디에서부터 찾아질 수 있는가.”

― 한상원 저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뒤표지 중에서.

 

“역사가는 과거로부터 희망의 불꽃을 가져와 점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빼앗긴 전통을 회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래의 내 아이들의 얼굴이 아니라 과거의 우리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의 얼굴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 김진영 저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뒤표지 중에서.

 

벤야민 같은 특유의 통찰력과 흡입력 있는 문장, 게다가 드라마틱한 인생 여정의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인기 많은 스타 철학자에겐 번역서 못지않게 한국의 해설서도 수십 권이 나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두 권을 고르게 된 것은 이 뒤표지의 문구 덕분이다. 누구나 연말에는 자신을 자책하며 이제 과거는 잊자고 다짐하고, 연초 새해에는 미래엔 새로운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쉽게 기대한다. 하지만 새해 첫날에 이제 뭔가 좋은 기대를 품으려고 하자마자 내가 보게 된 것은 한때 내가 10년 전부터 오래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 몰락한 두 거대한 폐허였고, 난 그것들을 이젠 떠나보내고 잊어야 하는지 스스로를 책망하며 크나큰 실망으로 가득 찬 1월을 보냈다. 허나 그건 한상원이 꼬집듯이 근거 없고 천박한 낙관주의와 무책임한 허무주의라는 미래에 대한 두 극단을 내가 겨우 24시간 만에 왕복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진정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과거를 그저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벤야민을 따라서 망각에 저항하는 회상의 기억 투쟁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로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폐허 속에 우리가 잊고 살았던 희망의 불꽃이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르기에.

한상원은 이렇게 역사철학이라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희망을 불러오기 위해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의 서문 격인 ‘들어가며’에서 ‘역사의 두 천사’를 불러온다. 한 천사는 우리가 흔히 아는 불사의 존재이며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에서 묘사한 ‘거룩한 천사들’이다. 세속 국가에 사는 인간은 언젠가 신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영원한 미래를 향하는 거룩한 천사의 시선을 따라 현재의 고통과 수난을 끝없이 감내해야만 한다. 왜? 이 고통과 수난들은 신의 왕국이 지상에 도래하는 최후의 순간, 종말의 순간이 오면 모두 보상받거나 가혹한 심판을 받을 것이기에.

한번 지나간 사건은 다시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지 않고 오로지 미래를 향해서 직선적으로 운동하는 이 기독교적 종말론의 시간관은, 천 년 전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립해놓은 역사의 원칙이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오히려 굉장히 친숙한 관점이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까 힘든 지금의 수험생활을 참아야 하고, 좋은 직장에 가야 하니까 사랑도 취미도 접어둔 채 취업에 올인해야만 하고, 미래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저축과 대출을 하고 뼈 빠지게 수십 년간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시간에 대한 관점은 아우구스티누스와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딱 백 년 전 1920년에 그려진 또 하나의 새로운 천사, 앙겔루스 노부스와 그에 대한 벤야민의 해석은, 오히려 천 년 전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보다 훨씬 지금의 우리들에게 낯설고 신선하며, 또한 두렵게도 느껴진다.

한상원 지음,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에디투스, 2018. 사진출처: https://image.aladin.co.kr/product/13141/90/cover500/k212532405_1.jpg

 

5.

“앙겔루스 노부스라고 불리는 파울 클레의 그림이 있다. 그림에는 한 천사가 묘사되어 있는데, 그는 그가 응시하는 것에서 멀어지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눈은 찢어져 있고, 그의 입은 열려 있으며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는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얼굴을 과거를 향해 돌린다. 사건들의 연쇄가 우리 앞에 나타나는 곳에서, 그는 폐허들로 뒤덮여 있으며 이 폐허들을 그의 발 앞에 쌓아놓는 유일한 파국을 본다.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죽은 자를 깨우고 파괴된 것들을 모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사의 날개를 사로잡은, 그가 날개를 닫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폭풍이 천국으로부터 불어온다. 천사 앞에 있는 폐허의 더미가 하늘을 치솟을 정도로 쌓여가는 동안, 이 폭풍은 그의 등이 향하고 있는 미래로 그를 끝없이 몰아넣는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폭풍이다.”

―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 중에서,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22∼23쪽, 한상원 번역.

파울 클레(Paul Klee)가 1920년에 그린 이 그림 앙겔루스 노부스, 새로운 천사를 벤야민은 뮌헨의 어느 갤러리에서 21년에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서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남긴 최후의 글인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서 이 천사의 이미지에 대한 그의 고유한 사유, 시간관을 전개한다. 한상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새로운 천사는 진보라는 미래를 향해 부는 폭풍에 떠밀려서 ‘강제로’ 과거에서 미래로 운동하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거룩한 천사가 인간을 신이 있는 영원한 미래로 인도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다. 게다가 이렇게 미래로 떠밀리는 와중에서도 천사의 시선은 과거의 잔해를, 즉 과거 속에서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들을 향해있다. 미래로 부는 진보라는 폭풍은 과거로부터 떠나가라고 천사를 압박하지만 천사는 이 폭풍의 망각하라는 압박에 저항하며 하나의 ‘망각의 탈압박’을 시도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분명 우리가 흔히 아는 천사와는 다른 새로운 천사다. 과거의 불의와 수난으로 인해 희생된 자들을 그저 잊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며 추모하며 이 지옥같이 반복되는 현재를 중단시키기 위한 희망의 불꽃으로 삼는 과업이 바로 벤야민이 말하는 역사가의 일이다. 어떤 이는 이에 대해서 삼풍백화점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과거의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제 그들을 놓아주고 마음에 묻어 주는게 그들과 당사자들을 위한 게 아니겠냐고 되묻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마치 지금의 ‘역사와 현실‘이 과거의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듯 현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올해 초 경향신문에서 이슈로 제기한 것과 같이, 한국은 하루에 세 명씩 산업재해로 죽고 있지만 이에 대해선 당사자 가족 정도가 아니고선 모두 망각하고 관심을 두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다들 알다시피 한국은 자살자가 OECD 국가 중 1위를 다투는 나라지만 언젠가부터 자살은 정말 극적인, 속된말로 팔리는 스토리가 아니고선 뉴스에서 아예 다뤄지지도 않는다. 어쩌면 바로 이렇게 망각 되는 과거에 대해 저항하고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고 재구성하기 위해서 역사가의 기억 투쟁과 수집 투쟁이 필요하다고, 기자나 역사가, 학자 같은 지식-권력을 독점한 전문가만이 아니라 대중이 누구나 수집가, 역사가가 되어야 하고 진보라는 미래로 부는 폭풍에 맞서서, 자본주의 또는 경제성장이라는 폭주하는 열차의 비상 브레이크를 당겨야 한다고 벤야민은 말한 게 아닐까.

 

 

6.

흔히 독서란 책에 써진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벤야민은 앞서 말한 새로운 천사에 대한 사유처럼 반대로 생각했다. 독서란 바로 써지지 않은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이는 흔히 말하는 행간을 읽어내는 좀 더 수준 높은 독서 만이 아니라, 과거를 망각하려는 폭풍에 천사가 저항하듯 텍스트 안에서 억압되고 고통받으며 망각 된 것들을 읽어내는 시선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 것은 아닐까. 기존의 역사 교과서에서 광개토대왕이 만주를 정복했다 같은 무슨 왕이 무슨 업적을 이뤄냈다는 그 기록 속에서 누가 희생되었는지 누가 망각 되었는지는 결코 교과서의 글 속에서 말해주지 않는다. 비단 고대사가 아닌 최근의 현대사를 따져보더라도 매우 대표적인 사례가 있지 않던가.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가난을 극복했다고 가르쳐 왔으나 그 경제개발 속에 얼마나 많은 소년공, 여공들의 피땀 어린 희생이 망각 되었는지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너도 지금보다 더 잘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하는 말처럼 더더욱 자기를 위해서 지금의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라는 이른바 노-오력하라는 지상명령에 시달린다.

이렇게 스스로를 사람이라기보다는 ‘인적 자원’으로 여기고 더 높은 연봉, 더 안전하고 더 행복한 미래라는 꿈을 향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달려가는 대다수 한국인들은 IMF 사태 이후 지난 20년간 정말 끝없이 자기 계발을 하고 끝없이 노력하고 끝없이 힐링을 원한 끝에, 피폐해졌다.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광장이나 거리로 나가든 삶의 기쁨으로 충만하고 행복해 보이는 한국인의 얼굴을 찾아내기란 남녀노소 나이 불문하고 스피노자가 『에티카』 마지막에서 영원한 행복에 대해서 말했듯이 참으로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지금 시대를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은 나뿐 아니라 이미 폐허나 다름없다. 이성복 시인이 이미 30년도 더 전에 ‘그 날’ 시에서 말한 구절을 패러디해보자면,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안 아픈 척 건강한 척 행복한 척만 하고 있느라 더욱 병들고 있는 사실이 엄혹한 한국인들의, 어쩌면 21세기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사는 세계인들의 내적 폐허나 다름없는 현실이 아닐까. 그래서 이 폐허가 된 마음에 새로운 신앙이, 종교가 침투한다.

그리고 폐허란 기본적으로 더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내다 버려진 공간이다. 글의 앞부분에서 말한 100분 토론 영상의 댓글이든 엉망으로 끝난 웹툰 <덴마>의 댓글이든, 그리고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가 삶의 최선이라 믿고 옆집 사람이 고독사해도 세 달 넘게 아무도 모르는 현대인들의 마음이든, 바로 이 폐허라는 말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보기는 힘들 듯하다. 하지만 나는 한상원이 벤야민을 읽으며 아우구스티누스와 파울 클레라는 역사의 두 천사의 이미지를 상반된 것으로 날카롭게 구분했듯이, 유시민과 진중권의 토론 같지 않은 토론과 완결 없는 완결 웹툰 <덴마>라는 두 폐허의 이미지도 구분해서 다르게 접근하는 흉내를, 버려진 폐허들에서 잔해를 줍는 수집가의 태도를 이 연재 글을 통해서 모방해보려 한다. 어쩌면 유시민과 진중권이라는 한때 진보의 대중적 상징에 대해서도 어떤 이는 이미 조용히 차곡차곡 묘비를 새길 준비작업으로 산책과 수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들의 오랜 인기와 상당한 팬덤으로 볼 때 그건 재벌 걱정만큼이나 쓸데없는 걱정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나는 그쪽 걱정은 할 필요 없이 내가 사랑했던 폐허인 웹툰 <덴마>에 대해서 다시금 산책하고 수집해서 기억을 재구성해본다면 그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벤야민이 남긴 유산, 사유-이미지라는 개념의 힌트에 근거해서 말이다.

 

 

7.

“벤야민은 사유가 이미지와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미지가 가진 구체성, 즉 실제 생활들, 눈에 보이는 것들, 만지고 있는 것들, 바로 그것들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유 이미지가 학문이나 철학의 영역을 외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삶 속에서 행사되어야 하고 피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각적 자유, 사유 이미지, 이미지 사유이자 변증법적 이미지입니다. 메트로폴리스, 대도시에서는 이러한 이미지 사유가 구체적으로 총체화되어 나타납니다. 메트로폴리스는 근대성의 자유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인데, 그 경제 논리가 아무리 첨예하고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육체성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육체성을 담지하고 있을 때에만 근본적으로 행동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 故 김진영 선생님의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310쪽에서 인용.

분명 벤야민이 그렇게 강조한 대로 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망각하라는 폭풍에 저항하며 고통받고 희생당한 자들의 과거를 기억하려는 과업은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유가 단지 사유로만 그친다면 육체를 정신의 감옥으로 보던 플라톤 시절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인용에서 김진영 선생님이 말씀하시듯, 사유 이미지라는 개념을 통해 사진 같은 새로운 기술을 다뤄서 매체 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하는 벤야민은 바로 그런 한계에서 벗어난다. 이미지가 가진 구체성, 구체적 삶 속에서 사유가 행사되어야만 그 사유에 피가 돌고 살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사유가 이미지와 만나서 구체적으로 활동하는 변증법적인 이미지의 대표적 사례는 바로 수많은 터치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감상하고 터치로 나의 감상과 사유를 댓글로 남길 수 있으며 심지어 음악이나 영화와는 달리 수월하게 일상 속에서 2차 창작을 할 수 있는 웹툰이 아닐까.

그 수많은 웹툰 중에서도 분명 미래 우주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가 보아도 비극적인 현대인과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풍자로 가득한 양영순의 <덴마>가 벤야민이 말한 구체성을 가진 사유 이미지의 매우 적절한 사례가 아닐까 나는 감히 이 연재 글을 통해 해석하고 기억해보려 한다. 물론 양영순이 딱히 벤야민을 읽었거나 벤야민의 철학을 자기 작품 속에서 녹여내거나 외부화하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허나 이전 문단에서 벤야민이 말했듯이, 독서란 바로 써지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음 달부터 매달 한편씩 <덴마> 에피소드와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연결 짓는 시도를 주로 한상원과 김진영을 참고하면서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1. 덴마 만드라고라 에피소드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난이라는 행복

      -도피한 삶에서 즐거움은, 행복은 있을 수 있는가?

  1. 덴마 야엘 로드 에피소드와 맑스의 해방서사라는 혁명.

      -해방된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면 혁명은 더 추진력이 붙는가?

  1. 덴마 더 나이트 에피소드와 벤야민의 반복되는 현재를 중단시키는 지금시간.

      -도저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끔찍한 현재의 반복을 멈추는 힘은, 희망은 어디서 오는가?

 

이 세 편의 연재 글을 통해서 천천히 이야기할 테지만, 조금 성미 급한 사람들을 위해서 미리 연재 글의 결론을 스포일러 하자면, 두 책의 제목을 패러디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희망은 과거에서, 앙겔루스 노부스-새로운 천사의 시선을 통해서 온다… 계속.

“차별철폐 동아시아 연대를 만들어갑시다” – 반인종주의정보센터(ARIC) 대표, 재일조선인 3세 량영성(梁英聖)씨 인터뷰 [나인당케의 단상들]

“차별철폐 동아시아 연대를 만들어갑시다”

– 반인종주의정보센터(ARIC) 대표, 재일조선인 3세 량영성(梁英聖)씨 인터뷰

 

(정리: 한상원/ 통역: 최성문)

 

량영성 씨는 198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제주도 출신으로 일본 오사카에 정착하였으며, 그의 가족은 이후 3대째 일본에서 살고 있다. 량영성 씨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조선학교’에 다녔다. 조선학교는 재일교포 중, 국적을 ‘조선’으로 표기한 조선인들의 자치학교로, 아직도 일본에서는 다른 외국인학교와 달리 정식학교로 인가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 내 극우단체 재특회(在特会)의 조선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가 극심해지고 그에 대항하는 카운터스 운동이 등장하던 2013년, 그는 반인종주의정보센터(ARIC)를 세워 40여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캠퍼스 내 헤이트워치 감시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현재 히토쓰바시 대학(一橋大学) 언어사회연구 박사과정생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그의 책 『혐오표현은 왜 재일조선인을 겨냥하는가』가 번역되어 있다. 필자는 도쿄도 후추(府中)역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통역에는 요코하마 국립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생 최성문 선생이 수고해주었다. 그중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여 옮긴다.

 

–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과 반인종주의 운동을 소개해주십시오. 한국에서도 혐오발언 문제가 심각하고 이를 규제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이 진행 중인데,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규제법안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제 생각에 2016년에 제정된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은 문제가 많은 법입니다. 한국이 참고한다면 미국이나 유럽의 50년 전에 기본적으로 차별을 정의한 이념법, 금지법을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선진국가들 중에서도 독특한 국가인데, 미국, 유럽 등 다른 선진국가들에서는 네이션의 중요한 요소로서 인권의 진보적 가치를 두지요. 프랑스는 군주를 처벌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일본이라면 혁명이나 민주화 운동이 한 번도 사회를 바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종주의와 관련해서도 근본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인종주의정보센터(ARIC) 대표, 재일조선인 3세 량영성(梁英聖)씨 출처: 필자

 

헤이트 스피치가 이렇게까지 창궐하는데 일본 정부가 어떠한 대처도 하고 있지 않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예컨대 프랑스는 루이 국왕을 죽이고 인권을 천명하는 공화주의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했고, 노예해방 내전을 벌였고, 공민권운동도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이런 국가들에서는 ‘역시 차별은 안 된다’는 규범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규범이 일본에는 없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과 그 이후의 독재정권 타도하는 투쟁 등을 거치면서, 이것이 내셔널리즘, 네이션이라는 한계는 있으나, 인권 개념을 국가가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본은 현재 전후 처음으로 재특회 등등 풀뿌리 극우 운동 등이 형성되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독일의 경우, 국가가 나치즘을 부정하기 때문에 네오나치 운동은 반국가적인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일본은 천황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전쟁 책임을 거의 지지 않고 있습니다. 반(反)차별 정책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되면서 조선인들의 국적도 박탈했습니다. 사실 이런 나라에서는 극우운동이 성립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보신 것처럼 국가가 이미 차별을 하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년간 극우가 발흥했습니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이 일본의 2016 헤이트 스피치법을 참고로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악법입니다. 한국이 참고하려면 차라리 두 가지 측면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는 ‘원칙적 측면’으로 기본적 차별금지법을 가능한 한 보편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이념법’을 제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긴급적 측면’인데요. 당면한 차별을 멈추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한국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동아시아가 처한 수준에서 EU가 제정한 것과 같은 차별금지법을 한국, 대만 등이 아시아의 선진국으로서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중장기적으로 그렇게 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 상당히 문제가 많지만, 어쨌건 재특회를 규제하려는 법인데…

규제하려는 법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재특회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도, 사쿠라이 마코토(재특회 전 회장)가 일본제일당 만들어서 선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재특회는 일본에서 평판이 나빠져서 옛날보다 인기가 없습니다. 옛 중심인물들이 재특회를 버리고 선거 활동을 통해서 차별적인 활동을 하는데, 그에 대해 일본 정부는 재특회에 대해서도, 일본제일당에 대해서 모두 방치하고 있습니다.

 

 

– 실질적으로는 규제하지 않는다, 그럼 일본 정부가 이걸 도입한 이유는 ‘보여주기식’인 건가요?

재일조선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는 특히 2009년부터 2011년 사이가 절정이었습니다. 교토의 조선고교 습격 사건, 필리핀인들의 자녀인 당시 14세 소녀 노리코 강제소환 촉구 시위 등 ‘습격형’ 헤이트 스피치가 심각해졌지만, 매스컴은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 해당 법안이 만들어진 것은 직접적으로는 2013년 2월 처음으로 <아사히신문>이 ‘헤이트 스피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재특회 데모를 비판한 데서 기인합니다. 이것이 2013∼2014년 사이 급속도로 문제시되어 2014년 즈음부터 야당이 인종차별금지법을 만들려 했습니다. 2015년 법안이 제출됐고, 결과적으론 아베 정권이 제정한 셈이죠. 그러나 실은 헤이트 스피치가 2013년부터 큰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최대 이유는 카운터(대항) 운동의 존재였습니다.

량영성씨의 저서 『혐오표현은 왜 재일조선인을 겨냥하는가』(2018) 출처: https://image.aladin.co.kr/product/16626/10/cover500/8990062861_1.jpg

 

종래 일본의 반차별운동은 기본적으로 자이니치 또는 피차별인종이나 소수자 당사자들이 그들의 조직이나 개인 차원에서 차별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타입이었는데요. 사회운동은 그러한 운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올드타입 운동은 ‘피해자를 케어’하는 운동이었으나 반면 카운터 운동은 ‘가해자를 억압하여 차별을 그만두게 한다’는 방식으로 전환됩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피해자가 (신분상 불이익 등으로)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가해’ 자체가 범죄이자 악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카운터 운동의 대대적인 성장이 <아사히신문>에 의해 보도가 되면서 2013년에 ‘사회악’으로서의 차별이 최초로 가시화된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카운터 운동이 먼저 있고 나서, 그것을 보도하는 매스컴이 나오고, 그것이 또 사회문제화되어 겨우 야당이 법안제정에 나선 것입니다.

아베 정부는 야당에게 헤게모니를 주지 않으려 하면서도, 이 법안의 내용을 가능한 무력화하기 위해 2016년 법안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 통과시킵니다. 차별받는 피해자의 범위를 ‘본국 외 출신자’로만 한정을 두어, 오키나와 출신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냅니다. 또 구체적인 처벌 조항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가 의지가 없다는 것이죠. 차별이 발생해도 그에 반대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일본에서 차별금지법을 만들어낸 것은 한계는 있지만 분명 운동의 성과이기는 합니다. 카운터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특히 도쿄나 관동지역의 경우에는 축구와 록 음악 등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구의 ‘안티파(Antifa)’ 문화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건 그것대로 좋은데 다만 문제가 있다면, 미국이나 독일의 안티파는 되지 못한 것이죠. 독일은 실제로 네오나치 집회를 저지하는 행동이 가능합니다. 반면 일본은 실질적인 극우 집회 저지는 불가능합니다. 사람 수가 적고 그런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운터 운동을 ‘카운터’ 운동 이상으로 하는 것, 즉 카운터 운동을 발전시키는 한편 운동을 래디컬화하는 제3의 사회운동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 한국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 일베 등 극우 사이트의 혐오 표현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이를 규제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 규제 논쟁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학술적으로도 혐오 표현 규제에 반대하는 주디스 버틀러와 규제에 찬성하는 제레미 월드론의 저서가 나란히 번역되면서 논쟁이 촉발되기도 했지요. 반차별 운동에 참여하시는 선생께서는 이러한 논쟁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 나라의 역사나 사회에 따라서 차별금지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차별금지법 제정이 2006년으로 늦어진 이유는 이미 형법상 민중선동죄가 있었고, 역사교육을 통해 충분한 시민교육을 하고 있었으며, 국가에 의한 진상규명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 반인종주의 법안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가해자 나치 전범 처벌과 같은 개별 이슈들에 대해서는 투쟁이 존재했고 승리해왔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1964년의 공민권이 포괄적 차별금지를 규정합니다. 인종, 성, 연령, 장애 등이 포함되고, 흥미로운 것은 예비역을 차별금지 범주에 넣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의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억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죠. 그 이후 블랙팬서당에 대한 학살과 탄압이 벌어지면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사고가 사회운동 쪽에도 널리 퍼지게 됩니다.

결국 (역사부정이나 혐오 표현을 처벌하는 독일식 모델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식 모델 중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이러한 논쟁 중에, 어느 쪽이 좋은가를 추상적으로 사고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출처: https://image.aladin.co.kr/product/8833/79/cover500/8997779664_2.jpg

 

버틀러의 책 『혐오 발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버틀러를 좋아하는 분들이 실천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연구자들은 버틀러가 헤이트 스피치 규제를 거부한다고 생각하지만, 잘 읽어보면 버틀러는 ‘국가가 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대학이 하는 스피치 규제는 찬성’합니다. 버틀러는 Gesetz[법률]를 통한 규제는 반대하지만, Recht[법/권리]를 대학, 기업, 지역사회에서 수행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가 얘기했듯 근대사회의 물상화는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사적 노동으로부터 사회 총노동을 성립시켜야 하는 모순이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물상화 시키므로, 인간도 부르주아/공민으로 분열시킵니다. 따라서 ‘시장의 인격’, ‘부르주아’로서의 권리에 대해 대항하면서, 국가 구성원의 공적인 인권 주체(공민)에도 반대하는 의미에서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이 필요합니다. 일본, 한국에는 이 개념이 부재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상품 계약 주체도 아니고, 원자화된 물상화의 인격화로 승인된 국가의 구성원도 아닌, 공동체적 시민성의 자발적 연대, 결합, 투쟁 속에 형성되는 시민성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혐오 발언을 규제한다면, 어떤 차원으로부터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차원에서의 규제인지, 국가적 강제의 차원인지도 구분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자율적 규제, 즉 어소시에이션에 의한 규제가 필요하며, 운동 속에 반차별 규범을 국가가 시행하도록 만들고, 사회가 국가를 흡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아까도 설명했듯이, 일본형 반차별 운동의 특징은 피해당사자의 입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행동이 차별로 됨은 피해자가 그것을 차별이라고 발언해야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는 차별의 진의를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이었습니다. 고립감, 두려움 등으로 피해자가 ‘그것은 차별이다’라고 공개 발언하지 못하면, 제3자는 나서지 말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했습니다.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무엇이 차별이고 차별이 아닌지에 대한 ‘진리’가 피해자의 ‘고백’에만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민권(citizenship)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해자조차 ‘자신의 손실을 항의하는 시장의 부르주아적 주체’로 규정하는 부르주아적 인권(시장에서 물상화된 인격) 개념일 뿐입니다. 이것이 일본이라는 기업사회의 비밀입니다.

반면 시민권(citizenship)에 근거하여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은, 가해자에게 가해자의 책임을 지게 하며, 가해자가 가진 자연권[표현의 자유]을 억제한다는 것, 그것이 포인트입니다. 기존의 일본형 반차별운동은 피해자의 입을 통한 발설로 차별을 규정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자연권 억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피해자가 얼마나 요구하든지 간에, 가해자의 자발적 반성을 요구하는 것뿐, 그가 ‘차별할 자유’를 빼앗는다는 논리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푸코가 말한 (자유주의적 통치성 속에서) ‘인권의 공리주의’의 논리를 보여줍니다. 인권 개념을 공리주의적인 도구로 쓰는 발상, 다시 말해 정의를 오직 ‘개임의 룰’로만 이해하는 인권 개념 말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시장에서의 공정경쟁 외에 어떤 규범도 인정하지 않는 사고로 이어집니다. ‘평등’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범이 없습니다. 노동에서의 차별이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이죠. 이것도 일본형 기업사회의 문제를 보여줍니다.

 

 

– 한국의 진보진영조차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의 반인종주의 활동가로서 한국의 시민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나 재일조선인 인권문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며, 한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아시아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U와 비교했을 때 아시아에는 지역 차원에서 전쟁이나 분쟁을 방지할 수 있는 국제관계가 없습니다. 현재의 국가 간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일본의 위안부 부정이라던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정 등이 국제적인 영토문제와 결부되어 지역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차별금지정책은 전후 세계에서는 반파시즘과 차별금지를 보장하여 국제평화 유지에 기여할 것입니다. EU의 기반에 있는 것은 ‘반차별=반파시즘’이라는 규범을 통한 평화 유지입니다.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도 일본 정부가 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차라리 아시아 수준에서 차별금지를 국제적인 룰로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각각의 나라에서 시민권의 원칙을 성립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예컨대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 부정은 ‘차별금지’로써 억제할 수 있습니다. 위안부 부정 그 자체가 역사부정일 뿐만 아니라, 성차별을 선동하고 있으며 나아가 계급차별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삼층집을 짓는다면 먼저 토대가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역사갈등 문제를 직접 푸는 건 토대 없이 삼층집을 세우는 것과 같아요. 좀 먼 길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차별금지정책을 시행하고, 시민권의 원리를 각국에서 제정해서 아시아 각국의 공통언어로 ‘차별반대’를 제정하지 않으면 역사 문제를 말할 공통언어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혐오는 국내 소수자의 문제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한국 여성차별(미소지니) 살인의 억제 등 긴급한 과제이기에 그것을 위해 혐오 표현의 규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나아가 이를 국제적인 파시즘 억제 전략으로 확대하여 차별금지법을 먼저 한국, 대만에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역사부정이나 파시즘화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의 관계를 사유하는데, 역사를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측면이 아니라 차별금지라는 시민권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다른 길이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운동의 전략 차원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공통언어로서 ‘시민권(citizenship)’과 ‘반차별’이 필요합니다. 반파시즘 위안부 문제 등에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독도 문제 등 영토문제에도 민족주의 논리로만 반대하게 된다면 극우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극우에 반대하는 데 있어서 ‘인권’은 소소해 보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권(citizenship)으로써 차별반대 논리, 이것을 지침으로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다가오는 올림픽에서 욱일기 응원을 허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어떻게 반대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로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서경덕 교수의 방식, 즉 역사 언어로 비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틀리지는 않지만, 약점을 말한다면 역사적으로 엄밀히 따질 때 지금의 히노마루(일본 국기)도 문제 삼아야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는 욱일기가 문제 되는 것도 차별금지 문제라고 봅니다. 실제로 10년 전부터 가두 연설방식의 헤이트 스피치에서 욱일기가 문제시되고 있는데, 역사적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이 10년간에 걸친 ‘차별=욱일기’라는 연관 증거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차별’의 상징으로 하켄크로이츠가 있는 것처럼 욱일기도 차별의 상징으로 규정할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역사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 차별의 상징으로 욱일기를 금지하자고 주장하면 됩니다.

이처럼 역사 문제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차별의 논리로 풀어서 얘기합시다. 그게 아마 일본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또 한국 내 극우 반대 논리로도 써먹을 수 있습니다. 이영훈의 책 『반일종족주의』를 보면 한국 뉴라이트 특징은 민족주의 비판에 있는 듯합니다.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오히려 좌파에 의해 점령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극우는 아마도 시장원리에 근거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 성장 같은 것들 말입니다. 식민지 시기를 정당화하는 것도 경제, 독재정치 정당화도 경제입니다. 따라서 한국 뉴라이트를 비판할 때도 역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완전히 극우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뉴라이트가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근거한 뉴라이트를 논박하려면 역시 시장을 넘어서는 논리, 시민권이라는 논거가 중요할 듯싶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는 오늘날 무엇을 뜻하는가? [나인당케의 단상들]

♦ 아래 글은 『똑똑똑 녹유』 제14호(2019. 12)와 <ⓔ 시대와 철학>에 중복 게재됨을 밝힙니다. <ⓔ 시대와 철학> [나인당케의 단상들] 코너에 게재할 수 있게 원고를 보내준 필자와 게재를 허락한 『똑똑똑 녹유』 편집팀에 감사드립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는 오늘날 무엇을 뜻하는가?

 

한상원(한철연 회원)

 

[이 글은 녹색당 유럽당원모임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똑똑똑 녹유>에 기고된 글이며, 허락을 통해 중복게재합니다.]

 

 

들어가며: 독일 통일과 정치적 주체화 과정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다. 그리고 이듬해 동독과 서독은 역사적인 통일에 합의한다. 올해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의 역사적인 장소인 브란덴부르크에서는 대규모 축제가 열렸다. 거대한 지구본과 레이저 쇼로 장식되고 인기 가수들의 노래와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채워진 이 호화로운 축제는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과정을 하나의 ‘스펙터클’로 전시하고 싶은 독일 주류 사회의 욕망을 반영한다. 그것은 행사 마지막에 펼쳐진 거대한 불꽃놀이에서도 드러난다.

그림1 2019년 11월 9일 장벽붕괴 30주년 기념행사. 사진출처: dpa/Annette Ried, www.rbb24.de

그러나 독일 통일 과정은 단지 두 분단국가의 재결합과 하나의 국가형성이라는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분석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우리가 동시에 기억해야 할 사실은 동독의 권위주의 정권의 퇴진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 과정이 드러내는 또 다른 측면이다. 즉 그것은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라는 구호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인민의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정작 인민의 목소리를 묵살해온 정치체제에 대한 인민 자신의 저항 과정이자 정치적 주체화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독일 통일은 (최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흔히 언급되는 바와 같이 단순하게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독 인민의 자주적인 결정과 정치적 행동에 의해 이뤄진 사건이었으며, 따라서 이 사건은 ‘국가의 결합’ 이전에, 억압적 정치체제의 종식을 가져온 ‘아래로부터의’ 주체화 과정의 관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복잡한 사태에 직면한다. 오늘날 ‘우리가 인민이다!’라는 구호는 자유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의한 장벽의 붕괴, 즉 타자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호는 난민과 이민자의 유입에 반대하면서 국경통제를 요구하는 우익 포퓰리즘 정치세력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아가 통일 이후 독일도 피해가지 못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오늘날 ‘인민(Volk, people)’의 범주는 상실되었거나, 기껏해야 이러한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의 기형적 정치운동에 동원되며 보수적 민족주의와 타자 혐오에 젖어 있는 수동적인 군중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이끌었던 ‘우리가 인민이다!’라는 구호의 현주소를 추적해보는 것은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을 진단하고 성찰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니콜라이 교회에서 본홀머 슈트라쎄로: 1989년 가을의 인민

 

동독 주민들의 자유화 시위는 80년대 후반 간헐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9월 4일부터 라이프치히에서 이른바 월요시위(Montagsdemonstrationen)가 매 주 열리게 된다. 니콜라이 교회에서 열리는 예배를 중심으로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광장에 집결한 시위대는 언론의 자유와 여행의 자유 그리고 자유선거를 요구했다. 이 시위의 정점은 10월 초, 독일민주공화국(DDR) 건국 40주년 기념일을 전후로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에서 드러나게 된다. 10월 4일 드레스덴(Dresden) 중앙역에 5천 명의 시위대가 모였고, 건국일인 10월 7일에는 플라우센(Plausen)에서 1만 명이 참여하는 더 큰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경찰은 최루탄, 물대포, 곤봉 등 폭력적인 방식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다음날인 8일에는 다시 드레스덴에서 1천여 명의 시위대가 정권에 항의했다.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베를린을 방문 중인 가운데, 이처럼 동독의 건국 40주년 기념식은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속에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명예가 짓밟혔다고 생각한 당국과 호네커 국가평의회 의장은 그해 여름 중국 베이징을 핏빛으로 물들인 천안문 항쟁 방식의 진압을 검토하였고, 군부의 투입과 진압작전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음을 은밀히 암시하면서 시위대가 겁에 질리기를 유도했다. 즉 시위대와 당국 양측 모두 이 사태가 중국의 천안문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 위험에 대해 알고 있었고, 따라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러나 시위대는 위축되지 않았다. 10월 9일,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다. 이날의 월요시위에는 무려 7만 명이 라이프치히 시내에 운집했다. 만약 경찰의 발포나 군부대의 투입이 일어났다면 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유혈사태로 이어졌을 것이다. 당국은 결국 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지 못했다. 시위는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시위대는 자신감에 가득찼고, 자신들의 승리를 장담했다. 주민들의 자신감이 상승하자 시위의 규모는 더 커졌고 그 다음주 월요일인 16일에는 12만 명, 그 다음주인 25일에는 무려 32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그림2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를 외치는 동독 시위대. 사진출처: https://www.maz-online.de

이러한 시위의 결과 호네커는 사임한다. 동독 당국은 더 이상 시위대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다. 여행 자유 조치를 취함으로써 여론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던 정부는 11월 9일 전국에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조치를 발표한다. 애초에 익일(10일)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던 이 조치는 정부 대변인으로 기자회견장에 나온 귄터 샤보프스키(Günter Schabowski)의 역사적 실수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는 기자들에게 이 조치가 “즉시(sofort), 지체 없이(unverzüglich)” 시행될 것이라고 잘못 말한 것이다.

이 기자회견을 본 동베를린의 주민들은 본홀머 슈트라쎄(Bornholmer Straße)의 검문소로 달려간다. 수많은 시민들의 요구에 검문소는 통행을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동베를린 시민들은 1961년 장벽 건설 이래 처음으로 서베를린으로 자유로이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장벽이 붕괴한 것이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의 영토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킨 장벽은 그 기능을 상실했고, 이듬해까지 대부분의 장벽이 철거되기에 이른다.

니콜라이 교회에서의 월요시위부터 본홀머 슈트라쎄에서의 장벽 통과에 이르기까지의 이러한 일련의 정치적 변화 과정에서 등장한 상징적인 구호가 바로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이다. 이 구호는 1835년 발표된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üchner)의 희곡 『당통의 죽음(Dantons Tod)』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뷔히너는 이 구호를 통해 인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법률은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호소한 바 있다.

이 구호를 통해 동독의 시위대는 ‘인민 공화국’의 정치인들이 언제나 입에 올리는 ‘인민’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당국의 정치가들에게 ‘인민’이라는 기표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동원해야 할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대는 ‘바로 우리가’ 인민이라는 사실을 외침으로써, 이 ‘텅 빈 기표’에 실질적인 내용과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랑시에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것은 ‘치안(Polizei)’의 논리로 동원된 ‘인민’이라는 기표가 실질적으로 배제하는 바로 그 인민들, 즉 ‘몫 없는 자들’이 자신들 스스로를 ‘인민’, 곧 공화국을 이루는 보편적 주체로 선언함으로써 이 치안의 논리에 저항하는 ‘정치(Politik)’의 논리를 보여준다. 그것은 따라서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이며, 이러한 주체화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 자들을 발화하는 자들로 만듦으로써 기존의 사회적 공간에서 전개되던 감각적인 관계를 전복, 새로운 감각의 공동체를 출현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듬해인 1990년 10월 3일 동서독 외무부장관 사이의 협정을 통해 체결된 독일의 통일은 그야말로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동독 주민들의 거대한 정치적 주체화의 경험이었다. 국가 간의 협정도,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도 아닌, 동독 주민들의 급진적 정치화 과정이 바로 30년 전 1989년 가을 일어난 장벽 붕괴를 이끌어낸 것이다.

 

 

인민과 새로운 포퓰리즘: 오늘날의 쟁점

 

1989년 역사의 주체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동독 주민들은 새로 탄생한 통일된 독일 연방공화국에서 자신들이 정당한 주체로 대우받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엇나갔다. 통일 이래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 격차는 커져만 갔고, 동독 지역의 소외와 낙후성은 개선되지 않았다. 통일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경제적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동독 주민들의 임금과 생활수준은 여전히 서독 주민들의 70~80% 가량으로 조사되고 있다. 여전히 동독 지역 주민들의 57%가 자신을 ‘2등 시민’으로 느낀다는 보고도 있다. 그 사이 동독 주민들이 느끼는 배제와 박탈의 감정은 커져만 갔다. 그들은 서독에 주요 기반을 두고 있는 독일의 두 거대 정당들 – 기민연(CDU)과 사민당(SPD) – 이 자신을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여긴다. 이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누가 이들을 대변할 것인가?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은 현재, 동독 주민들이 느끼는 차별의 감정은 쉽사리 외국인 배제와 독일 민족주의의 강화를 촉구하는 우익 포퓰리즘 정치의 성장을 낳았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우리가 인민이다’를 자신들의 선거구호로 채택했다. 이미 연방의회 제3당을 차지한 AfD는 올해 9월 구동독 지역인 작센과 브란덴부르크, 10월에는 튀링엔 주 지방선거에서 제2정당으로 부상했다.

AfD의 선거광고. 사진출처: https://www.demokratiegeschichten.de/wir-sind-das-volk/

이 구호가 우익 포퓰리즘 운동의 전유물이 된 것은 이미 2014년, 라이프치히 시위 25주년을 맞아 드레스덴에서 다시금 ‘월요시위’를 시작한 페기다(PEGIDA)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AfD의 부상, 그리고 2018년 (과거 칼 맑스 시(Karl-Marx-Stadt)라 불리던) 켐니츠에서의 대규모 우익 시위대에서 이 구호는 그 현실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다수의 ‘진보적’ 혹은 ‘좌파적’ 비판가들이 AfD나 페기다 시위에 대해 가하는 비판은 이들이 ‘네오 나치’ 혹은 ‘파시즘’, ‘극우 인종주의’ 세력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에 해악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주로 의회주의에 기반을 둔 자유 민주주의를 최상의 정치체제로 정의하며, 이에 대해 저항하고자 하는 포퓰리즘적 목소리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하는 태도와 결부돼 있다. 만약 그러한 가치판단이 사실이라면 독일 사회, 나아가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자국 내에 존재하는 이들 ‘극우 파시즘’ 세력을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마치 독일 형법 130조가 – 표현의 자유 논란에도 불구하고 – 나치 찬양이나 인종혐오 등의 선동(Volksverhetzung)을 금지하고 있듯이 말이다.

AfD와 페기다를 ‘악’으로 묘사하는 이러한 총체적 가치판단이 놓치고 있는 물음은, 어째서 현재의 동독 주민들에게 이들이 강한 호소력을 갖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서독인들은 이들이 동독에 사느라 ‘민주주의의 훈련’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고 쉽게 답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1989년 자유화를 요구하면서, 천안문 방식의 폭력적 진압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민이다!’ 구호를 외치고 권위주의적인 호네커 정부를 끌어내린 사람들에게는 합당하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페기다 시위 참여자의 40%가 과거 라이프치히 월요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들을 손쉽게 민주주의의 ‘적’인 ‘네오 나치’, ‘파시스트’ 세력으로 단정짓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2018년 출간된 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For a Left Populism)』는 우익 포퓰리즘에 대한 이러한 일면적 가치평가를 비판한다. 먼저 무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인해 자본, 특히 금융자본의 경제적 권력이 국제적인 규모로 급속도로 확산되는 가운데 국민국가의 실질적 효력이 축소되면서, 주권의 담지자로 규정되었던 ‘인민’이라는 범주가 사실상 퇴조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포스트 민주주의’ 내지 ‘포스트(탈) 정치’의 상황은 다시금 ‘잃어버린 (인민)주권’에 대한 갈망을 낳았다. 반면 199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만 속에 유럽 전역에서 집권할 수 있었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담론과 타협, 우경화하면서 토니 블레어 식의 ‘제3의 길’을 선언하였다. 독일에서도 1998년 집권한 슈뢰더 사민당 정부는 하르츠IV 등 기존 사회국가의 복지정책을 대폭 축소하고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을 도입해 거대한 반발을 낳았다.

즉 좌우를 막론하고 기존 의회정치세력은 ‘신자유주의적인’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이는 대중적 분노와 박탈감을 야기했다. 오늘날 우익 포퓰리즘 확산은 바로 좌우를 막론하고 신자유주의 의제들을 수용한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이러한 대중적 분노를 그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페는 우익 포퓰리즘 정당들을 통해 제기되는 대중의 요구들이 상당부분 ‘민주적인’ 요구들이라고 도발적으로 지적한다. 즉 그것은 권력에 대한 ‘인민’의 통제, 곧 ‘인민주권’에 대한 요구인 것이며, 따라서 여기에 대해 ‘정치적’ 답변이 제시되어야 한다. 문제는 우익 포퓰리즘 세력이 내놓는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적 답변이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좌파는 이들을 대신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담론을 제기해야 한다. 무페는 이를 통해 건설되어야 할 운동이 정치적 주체로서 ‘인민’을 호명하며, 그러한 인민의 잃어버린 주권에 대한 요구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인민주의)적’ 요소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무페의 주장은 포퓰리즘이라는 기표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기존의 담론들과 단절하면서, 오히려 좌파 정치세력들이 ‘포퓰리즘’ 운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주도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즉 ‘기득권’에 대항하는 ‘인민’이라는 전선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 이 전선을 좌파적으로 재전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골칫거리로 여기는 전반적인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그녀의 주장은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필자는 그녀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아쉽게도 그녀에 대한 반론을 이 자리에서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1989년 ‘우리가 인민이다!’를 외치며 호네커 정부를 전복시킴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거듭난 구동독 지역의 ‘인민’이 어째서 30년이 지난 오늘날 동일한 바로 그 구호를 통해 AfD와 같은 우익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출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페가 제시하는 현실 분석과 전망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10월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의 초대로 독일을 방문한 무페는 좌파당 당수 카티야 키핑(Katja Kipping)과 바로 이 점에서 논쟁을 벌였다. 무페는 ‘어째서 노동계급이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는가를 이해해야 한다’면서, 우익 포퓰리즘 정당을 ‘극우 파시즘’으로 규정하면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과 선을 긋게 된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좌파는 이들 대중에게 계속 대화를 걸면서, 그들의 ‘포퓰리즘적’ 요구, 즉 ‘인민적’ 요구에 공감하는 가운데 이를 좌파적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영국에서도 브렉시트에 찬성한 사람들 중 16%가 코빈에게 투표했는데, 이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며 따라서 브렉시트에 찬성한 사람들을 모두 ‘파시스트’로 부르고 조롱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무페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은 오늘날 필요한 것은 우익 포퓰리즘 세력의 구호로 전락해버린 ‘우리가 인민이다!’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이 구호를 새로이 재전유하는 일일 것이다. 과연 ‘우리’란 누구인가? 즉 누가 오늘날 ‘인민’의 범주에 포함되는가? 이 물음에서 우익 포퓰리즘은 마이너스(-)의 정치를 선보인다. 그들은 이민자와 난민, 무슬림, 유태인, 그리고 모든 외국인은 ‘인민’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 좌파 포퓰리즘은 플러스(+)의 정치를 제시해야 한다.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 즉 노동자와 외국인, 난민, 성소수자와 여성 등이 서로의 요구들을 기표연쇄를 통해 헤게모니적으로 구성하며 함께 투쟁할 때 현재의 억압과 소외, 차별과 불평등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 40여 년간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해온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파국으로 드러난 현재의 상황에서, 정치적 전선은 ‘신자유주의 이후’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그것은 오늘날 CDU와 SPD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브렉시트와 제레미 코빈(영국) 사이에서, 트럼프와 샌더스(미국) 사이에서, AfD와 디 링케 혹은 녹색당(독일) 사이에서, 마리엔 르펜과 멜랑숑(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선이다. 과연 신자유주의 이후 정치질서의 원천은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적 국가주권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적이고 수평적인 인민주권이 될 것인가? 이 전선에서 ‘주권자 인민’은 우익 포퓰리즘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상으로 호명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것이 장벽 붕괴 30주년인 오늘날의 정세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이라고 믿는다.

 

 

보론: 천안문, 라이프치히 그리고 홍콩. 어떤 30년 전이 반복될 것인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은 동시에 천안문 항쟁 30주년을 뜻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호네커 정부는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 앞에서 열린 월요시위를 천안문 방식으로 진압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0주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인민이다!’ 구호를 계승하고 있는 것은 홍콩의 시민들이다. 30년 전 천안문 시위대와 마찬가지로, 라이프치히 시위대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인민 공화국’이 끝없이 인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배제하고 있는 ‘인민’이 바로 자신임을 제시하면서 치안의 질서에 대항하는 정치를 드러내고 있다. 홍콩 경찰이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고, 중문대와 이공대에서의 잔인한 진압작전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현재, 중국 정부와 인민군의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이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홍콩은 과연 30전 년의 천안문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라이프치히 시위와 장벽 붕괴를 반복할 것인가. 거대한 폭력 앞에 선 홍콩의 민주화 시위대는 벤야민이 말한 ‘과거의 현재화(Aktualisierung)’를 보여주고 있다. 즉 그들은 잊혀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순간마다 역사의 한복판에 벌거벗은 채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 ‘인민’의 전통을 현재적인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다.

그림4 사진출처: Hong Kong Free Press (www.hongkongfp.com)

최근 한국에서는 중국 유학생들이 대학가의 홍콩 지지 대자보를 찢고 지지 학생들을 모욕한 일이 있었다. 그들이 정치적 반대자를 비난하기 위해 여성과 위안부에 대한 모욕적 발언을 사용한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럼에도 어쩌면 그들은 예전에 아편전쟁을 일으킨 전범 제국주의 국가들의 내정간섭으로부터 사회주의 중국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애국자일 수도 있다.

나는 ‘사회주의’ 중국을 수호해야 한다고 믿는 그들에게 맑스의 문장들을 되돌려주고 싶다. 『헤겔 법철학 비판』을 쓴 청년 맑스는 ‘국가’를 숭배하기 이전에 그 국가가 과연 ‘인민’의 의지에 의해 구성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보았고, 그런 의미에서 급진적 민주주의자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헤겔은 국가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을 주체화된 국가로 만든다. 민주주의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여 국가를 객체화된 인간으로 만든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국가는 […] 인민의 특수한 내용이자 특수한 현존의 형식에 불과하다.”

『공산당 선언』에는 이런 문장도 등장한다. “한 마디로 코뮨주의자들(공산주의자들)은 도처에서 현존하는 사회적 정치적 상태에 반대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이 문장은 많은 면에서 마오의 조반유리(造反有理)를 닮았다. 억압받는 자의 저항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마오의 그 정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회주의의 대의를 옹호하는 중국인이라면, 이 순간 홍콩인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진압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1949년 권력을 장악한 그들의 선조를 이어받은 것은 인민에게 탱크를 보내는 권력자들이 아니라, 1989년 천안문과 라이프치히, 베를린에서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었으며, 오늘날에는 홍콩인들이 그러한 ‘인민’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6:30 AM [나인당케의 단상들]

6:30 AM

 

한상원(한철연 회원)

 

새벽 6시 반. 아침식사가 되는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사창시장을 가봤는데 문 연 식당이 없다. 부산할매 수육국밥집은 문을 열었고 사람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이 집은 국물이 너무 짜다. 결국 다시 봉명동으로 와서 동네 국밥집에 가기로 한다. 새벽 5시부터 열지만, 손님 없을 때는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셔서 깨우는 게 난감한 순대집이다.

매일같이 새벽녘 사직대로 큰 길가에는 곳곳에 출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 있다. 오늘처럼 새벽바람이 추운 날에는 두터운 검은 패딩을 입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 여성부터 50대 중년 남성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린다. 이윽고 도착한 전세버스들은 맨 앞에 행선지를 적어놓고 있다. ‘청호나이스’, ‘LG기공’ 등을 적어놓은 버스들에 올라탄 사람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패딩에 몸을 담그고 잠이 든다. 팔짱을 끼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희끗 보여주다 버스는 다시 문을 닫는다.

내가 사는 봉명동이나 인근 사창동 등에는 새벽녘 출근하는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쓰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려인들이거나 그들을 따라 온 현지 출신의 가족들이다. 이른 경우는 새벽 4시에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3교대라 출근시간이 일정치 않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저 출근 버스들도 24시간을 운행한다.

이윽고 순대집에 도착하니 속칭 ‘노가다 복’을 입은 60대 아저씨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들이 신고 온 워커화에는 새하햔 먼지들이 가득 묻어있었다. 갑자기 하이데거와 고흐의 구두 에피소드가 생각나 혼자 키득거렸다. 새벽녘 순대국에는 이제 노동하러 가는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기운을 돋아주는 힘 같은 게 느껴진다.

 

여기 청주에 사는 분들, 그것도 나름 지역 시민단체 활동도 하고 계신 분들도 내가 봉명동 공단입구에 산다고 하면 ‘근데 거기는 공기가 더럽지 않아요?’ 하고 묻는다. 사실 여기서 충북대 인문학관까지 1킬로미터 안밖이기 때문에 여기 공기가 더러우면 충북대 학생들도 다 그 공기를 마시는 셈인데. 그리고 충청권 전체가 발전소, 소각장 등의 영향으로 공기질이 매우 나쁘기 때문에 어딜 가나 큰 차이도 없는데. 그리고 청주 최고 부자들이 사는 지웰시티는 바로 SK하이닉스 공장 길 건너에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왠지 어떤 편견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식당 사장님이 틀어놓은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이런 대사를 한다. ‘저랑 밥 먹으러 가요. 냄새 안 나는 청국장집이 있어요. 청담동에.’ 나는 이 단어들의 조합이 매우 징후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청국장은 당연히 냄새가 난다. 그러나 청담동이나 강남에 사는 그들이 먹는 청국장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냄새를 싫어한다. 마치 영화 <기생충>의 박사장 가족처럼. 이 대사는 ‘공단 입구 지역은 공기가 더럽다’는 속설처럼 우리가 가진 무의식의 어떤 지점을 드러낸다.

우리 시대는 ‘냄새나지 않는 청담동 청국장’과 같은 어떤 신기루를 좇고 있다. 언제쯤 새벽녘 대로에서 출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작업하러 가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대우받는 날이 올까. 갑자기 노회찬 의원이 그리워진다.

도시와 제국의 싸움 [나인당케의 단상들]

 

 

도시와 제국의 싸움

한상원(한철연 회원)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도시와 국가가 같은 개념이었다. 그리스어로는 polis, 라틴어로는 civitas는 모두 도시와 국가를 뜻했다. 이는 ‘도시국가’별로 정치단위를 가졌던 고대적 언어관습이다(아마 이와는 상관 없겠지만, 독일어에서도 도시Stadt와 국가Staat는 모음 길이만 다른 거의 유사한 발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시란 자율성을 가진 정치적 자치공동체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을의 확장인) 도시가 이루는 자율적, 독립적 공동체로서 폴리스를 예찬한다. 그러나 고대의 도시국가 체제는 마케도니아와 로마라는 대제국의 출현으로 붕괴되었다. 도시는 제국으로 흡수된 것이다. 

그러나 도시는 중세의 한복판에 재등장한다. 북부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 시민들은 영주로부터 자치권을 사고 공동방위를 통해 자치도시(코뮌) 공화국을 수립한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한 피렌체는 대표적인 자치도시 공화국이었다. 맑스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당시의 도시공화국(생캉탱)의 자유에 얼마나 분개했는지, 그에 맞서 코뮌의 시민들이 어떻게 상호방위를 실행했는지 엥겔스에게 쓰고 있다. 훗날 벤야민은 이 편지를 인용하며 이렇게 적는다. “최초의 코뮌: 도시.”

최근 중국 대륙에 대항하는 홍콩 시민의 저항을 보면, 마케도니아와 로마와 같은 대제국에 흡수되는 것에 저항하는 도시국가(폴리스), 또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항하는 중세 자치도시(코뮌)의 기운이 느껴진다. 특히나 홍콩인들이 최근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도시의 자치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앙집권적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이 21세기 도시공동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도시는 제국으로부터 살아남아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을까. 오늘날 홍콩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나는 나인가? 내가 나라면, 나를 표현하라!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나는 나인가? 내가 나라면, 나를 표현하라!

 

박종성(한철연 회원)

 

 

내가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글을 쓰는가?

아니다, 나는 세계 속 현존을 내 생각에 마련해 주려고 글을 쓴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생각이 당신에게서

당신의 휴식과 당신의 평화를 빼앗을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을망정,

내가 이러한 생각의 씨앗으로부터

가장 피 터지는 전쟁과 많은 세대의 몰락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알망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생각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당신이 하고자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그것은 당신의 일이고 나는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331)

 

 

이 글에서는 맑스의 가치 형태 분석을 차용하여 슈티르너의 인간다움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일반적 가치형태에서 상품들이 등가형태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듯이, 인간다움이라는 대상성의 힘에 눌려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유령적 대상성의 힘, 가치의 거울이 우리 자신을 재현하고 있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유령적 대상성이라는 이상을 현실화하지 말고, 자기 가치를 표현하는 삶을 위해 고정된 대상과의 관계를 폐지하고 새로운 대상과의 관계, 곧 자아의 자기실현을 창조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라는 명령이 등장한다. 힘의 사용은 소유를 가능하게 한다. 자아의 자기실현은 자기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아가 자신이 자신에게 명령하므로 자유이다.

먼저 슈티르너의 의심을 들어보자. 고정된 대상성을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은 ‘의심’이다.

 

 

보편적 이성이라는 유령적 대상성

 

더 현대다운 철학 혹은 시대가 우리를 대상성(Gegenständlichkeit)의 힘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지 않기 때문에, 더 현대다운 철학 혹은 시대가 자유를 성취 했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가?(94)

 

맑스의 대상성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모든 가치 형태의 비밀인 제1가치형태, 즉 단순한 가치형태는 “xA(상대적 가치형태) = yB (등가형태)”이다. 여기서 등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건들의 물리적 속성이 다른데 같다는 것은 추상노동, 평균적 인간, 추상적 인간을 전제하고 있다. A는 자신의 가치를 B를 통해 표현한다. 다시 말해 A의 거울은 B이고, B는 ‘대상성’(Gegenstandlichkeit), 곧 ‘가치의 거울’(Wertspiegel)이다. xA = yB; 아마포 20미터= 저고리 1벌이다. 여기서 ‘저고리 1벌’은 ‘유령적 대상성’, ‘가치 영혼’(Wertseele)이다. 맑스는 등가형태를 대상성, 곧 상대적 가치형태가 ‘마주’본다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슈티르너가 비판하는 대상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략하게 말하면 개인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다. “나는 세계와 마주하여(gegenüber) 더 이상 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사랑이 나를 나타낸다.”(330) 사랑이 나를 나타낸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인간다움=‘추상화된 본질’(197)이라는 의미이고 참된 인간=국민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고정관념은 “머릿속에서 ‘유령으로 출몰한다(spukt) 그리고 “가장 괴롭히는 유령(Spuk)은 인간(der Mensch)이다.”(80) 일반적 본질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A = C 이고 B = C이다. 따라서 A = B인데, 다시 말해 나는 단지 인간일 뿐이고 너는 단지 인간을 뿐이다. 고로 나와 너는 같다.(196)

 

A, B는 개별자, 개인인데 C라는 ‘인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한다. 그러니까 ‘인간’, ‘추상적 본질’, ‘참된 인간’ 등등은 맑스의 용어로 ‘유령적 대상성’이고 ‘가치의 거울’이다. 또한 민중들과 국가들을 ‘인류’와 ‘보편적 이성’(allgemeinen Vernunft)으로 변용시키는 것은 노예근성을 더 강하게 생성한다고 비판한다.(267) 자아와 비아의 관계는 역설적이다. 비아가 강해지면 자아는 약해지고 비아가 위대하고 신성하면 자아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 된다. 가치의 거울은 ‘보편적 이성’, ‘인간다운 사회’, ‘인류’, ‘인간다운 가치’이다. 달리 말해 일반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일반적 이성’으로 변용시킨다는 것, 그것은 맑스의 화폐형태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슈티르너가 말하는 변용을 화폐형태의 발생에서 제3형태인 일반적 가치형태와 상응시키면 어떻게 될까?

화폐형태 분석의 제3형태는 일반적 가치형태(Allgemeine Wertform)이다. 이는 아래와 같다.

이전의 가치형태와는 달리 일반적 가치형태에서 등식 전체의 성격이 변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다시 말해 단순(하나의 상품)하고 통일된(동일한 상품) 표현이라는 점이다. 이는 전개된 가치형태의 무한정성, 잡다함이 해소되고 공통된 어떤 것인 가치, 사회적인 것, 추상노동을 전제한다. 이는 상품 A의 가치표현이 완성되지 않고, 통일성이 없다는 제2형태인 전개된 가치형태의 결함을 극복한 것이다. 맑스의 표현으로는 “다채로운 모자이크”의 결함을 극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개된 가치형태는 동일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신하게 한다. 그런데 동일성을 전제했을 때, 통일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통일성은 일반적 가치형태에서 나타난다. 이제 특정 상품의 몸으로 현현한 화폐형태가 등장한다. 왕의 출현이다! 왕이 승인하지 않으면 상품사회에서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슈티르너의 용어로 ‘일반적 본질’이라는 통일성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 것, 곧 가치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참된 인간’, ‘국민’, ‘인류’, ‘보편적 이성’(allgemeinen Vernunft), ‘인간다운 인간’, ‘인간다운 사회’, ‘인간다운 가치’, ‘유령들’, ‘고정된 대상’, ‘숭고한 신성한 것’(Hochheiligen), 동등성, 신성한 표상(Vorstellung), ‘보편적 인권’, ‘일반적 본질’, ‘추상화된 본질’, ‘현실적 유적존재’(wirkliches Gattungswesen), ‘본질규정’ 등등이다.

 

 

 

새로운 인간성은 이념의 현실화가 아니라 힘의 표현이다.

 

맑스에 따르면, 가치는 금이라는 자신의 동등성, 하지만 ‘머릿속에서 유령으로 나오는’(Köpfen spukt) 것에 불과한 동등성(Gleichheit)을 통해 내보인다.(자본, S. 110–111) ‘인간다운 가치’는 동등성인데 동등성은 인간다운 정신의 동등성(190)이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신성한 표상’이라는 ‘이상의 현실화’(411)를 비판한다. 그는 개인들의 존재 이유를 ‘이념의 현실화’(Verwirklichung der Idee)(411)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맑스의 ‘현실적 유적존재’를 비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슈티르너를 그토록 비난한 맑스 또한 계급투쟁이라는 진부한 말 대신, 공산주의를 다시 묘사한다. 공산주의는 더 이상 “현실이 스스로를 가져다가 맞추어야 하는 이상”이 아니라 “현존하는 질서를 폐지해 버리는 현실의 운동”이다. 어쩌면 맑스는 슈티르너를 공격하면서 그와 공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슈티르너는 고정된 대상과의 관계를 ‘폐지의(Auflösens) 관계’(79)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대상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정된 대상의 파괴자이자 새로운 대상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관계는 ‘자아의 자기실현’(Selbstverwertung)(302)이다. 그래서 그는 소크라테스가 잘 쓰던 말을 다음과 같이 변주한다. “네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라!”(Verwerte Dich!)

그러면서 그는 “에고이즘과 인간성(인도주의 정신 Humanität)은 같은 의미”(200)였어야 한다고 아쉬워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국민이라는 것은 내 특성(Eigenschaft)이다. 그러나 인간다움이 내 특성일지라도, 나는 내 특성으로 흡수되어 없어지지 않는다. 나는 내 유일성에 의해 비로소 인간에게 실존(Existenz)을 준다.”(271) 내 특성으로 흡수된다는 것은 나다움이 사라진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다움에서 나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다움에서 비로소 인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동등성(Gleichheit)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오로지 세계보다 상위에 있는 힘(Macht)이고자 하고, 세계를 내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데, 다시 말해 세계를 향락할 수 있게 만들고자 한다.”(356) 세계와 내가 교류하는 목적은 향유이다.

잠시 맑스로 돌아가 보자. 단순한 가치형태, 전개된 가치형태에서 상대적 가치형태인 상품 A가 자신의 가치를 상품B로 표현한다. 전자가 능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등가형태인 상품 B는 수동적 역할을 수행한다.(김수행,<자본>, 60쪽.) 그런데 일반적 가치형태에서는 등가형태를 통해서만 상대적 가치형태의 가치를 재현할 수 있다. 이를 표현적(expressive) 관계가 재현적(representative)관계로 대체된 것이라고도 한다. 슈티르너 또한 이러한 재현적 관계를 표현적 관계로 뒤집어 놓고자 한다. 그는 고정관념에 속하는 ‘소명’보다는 “자신이 존재하는 곳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갖고자 한다.(366) 힘의 존재는 분명히 힘의 표현(Äusserung)(366)이다.

 

어떤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란 이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별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200)

 

힘의 표현은 힘의 사용이며 이는 소유와 연결된다.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소유한 힘만큼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슈티르너의 저작 제목 『유일자와 그의 소유』을 상기해 보자. 소유라는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을 음미해 보자.

 

네 힘을 사용하라. 물론 이러한 명령(Imperativ)에 다음과 같은 의미가 놓여 있을 수 있다. 곧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먼저 자신의 소명을 바라보지 않고 현실적으로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그가 소유한 만큼의 힘을 모든 순간에 모두가 사용하는 것이다.(366)

 

‘명령’의 어원은 ‘명령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imperare이다. 도덕 철학에서 “너는 ∼해야 한다”의 명령 형태를 지닌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이전의 ‘에고이스트 사랑’에 관한 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에고이스트는 자기 자신에게만 의무가 있다. 따라서 “네 힘을 사용하라”라는 명령은 자신이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소명이라는 외적 명령이 아니라, 나의 힘은 나의 것이니까 힘을 소유한 자신이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이는 소명이라는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을 염려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기를 벗어난 노력과 염려(Sorgen)는 자기폐지(Selbstauflösung)”(39)이다. 그의 저작이 출판되고 83년 뒤, 1927년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자신의 존재에 있어서 자신의 존재를 문제삼는다”는 인간의 본질적 성격을 ‘실존’이라고 했다. ‘자신의 존재를 문제삼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염려(Sorge)의 방식으로 관계한다는 것, 곧 자신의 본래적이고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이다.

또한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힘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소유한 만큼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힘은 소유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힘이 미치지 못할 때, 소유는 사라진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 소유를 가능하게 한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가 단 한번 언급한 ‘개인적 소유’에 대한 음미가 다시금 필요하다. 곧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킨 것만으로는 소유를 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 개인이 무엇을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어떨까! 따라서 현실적으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보다 근원적이다. 잠재태가 현실화되는 것, 곧 현실태로 표현되어야만 자기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다움’에 대한 비판, 그것은 새로운 인간성을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라로 귀결된다. “네 힘을 사용하라”는 자기결단이고 자기의지이므로 자기전권위임이다. 자기전권위임은 자유이다. 나는 나인가? 그렇다면 나니까, 나를 표현해 보자. 그리고 자문해 보자. 난 자유인가? 그대는 어떤가?

에고이스트 사랑은 자기 힘의 증가이고 호혜주의이다.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에고이스트 사랑은 자기 힘의 증가이고 호혜주의이다.

 

박종성(한철연 회원)

 

  1. 에고이스트의 사랑은 자기 힘의 증가이다.

 

우리는 앞서 에고이스트의 사랑은 “자기 유용성(Eigennutz)에서 나 자신의 유용을 위해서만 합의에 동의한다.”(351)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 사랑은 자기 유용성이지만 ‘서로 서로’ 사용하므로 ‘서로에게’ 자기향유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사랑하는 이에 대한 의무는 결국 나에 대한 나의 의무이고 이것이 에고이스트의 사랑이다. 그런데 이러한 에고이스트의 사랑은 자기 유용성이고 상호적 자기 향유라고 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 힘의 증가를 지향한다.

 

“그리고 내가 같은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나는 개인이 실현할 수 있었던 권능보다, 합의를 통해 내 힘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공동의 권능을 통하여 내 힘을 더 강화하기 위하여, 의심할 바 없이 그와 의사소통을 한다. 이러한 유대에서 나는 내 힘의 상승만을 본다. 그리고 오로지 유대가 증가된 힘인 한에서만, 나는 유대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유대는 어떤 –연합(Verein)이다.” 349

 

이렇듯 에고이스트의 사랑은 자신의 힘의 증가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힘의 증가라는 조건에서만 유대를 유지하므로, 이러한 조건에 어긋나면 에고이스트는 유대, 혹은 연합을 중지할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에고이스트 사랑은 자기 유용성이 사라지거나 폐지되는 관계를 지양한다. 유대, 연합의 관계 맺기는 힘의 증가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힘의 증가는 왜 일어나는가? “나는 모든 감정이 있는 존재와 공감(Mitgefühl)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그들의 기분 좋음이 또한 나를 기분 좋게 한다.”(324) ‘공감’하는 존재이기에 힘의 증가도 가능하다. 공동의 권능을 통하여 나의 힘을 증가시키는 것, 그것이 유대이자, 연합이다. 연합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에고이스트 사랑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앞서 에고이스트 사랑은 ‘서로 서로’간의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제 슈티르너가 말하는 에고이스트 사랑의 내용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선 낭만적 사랑과 에고이스트의 사랑을 구별해야 한다. 에고이스트의 사랑은 이미 그 내용을 파악하였다. 그렇다면 낭만적 사랑은 무엇인가? 낭만적 사랑은 위선이고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은 사랑’이라는 자기기만, 대상을 위한 대상의 사랑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을 ‘애국심’이라고 설교했다. 우리의 모든 낭만적 사랑은 같은 양식으로 움직인다. 말하자면 언제나 위선 혹은 오히려 어떤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은 사랑’(uneigennützigen Liebe)이라는 자기기만(Selbsttäuschung), 대상을 위한 대상의 관심은 나를 위한 것-정확히 말해서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um Meinetwillen)-이 아니라 대상을 위한 것이다.” 327

 

우리 시대에 ‘위선’,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은 사랑’, 곧 ‘자기기만’, 대상을 위한 대상의 사랑을 위하여 맹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2007년 7월,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의 제정ㆍ공포에 따라 행정자치부에서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여 새로운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규정하였고,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이다. 초기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이고 1974년 이후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 맹세는 지난 1972년 당시 문교부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암송하도록 해 왔다. 그런데 국가가 개인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전근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35년 만에 시대흐름을 반영한 내용을 담게 됐다고 한다. 과연 시대의 흐름을 반영했을까? 이 맹세는 충성의 맹세를 일방적으로 ‘고취시키는 교육’이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교육을 신성한 것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번에 썼던 ‘국민교육헌장’의 내용을 상기해 보자. 이러한 교육은 ‘자기결정’에 의한 것, 곧 나다움이 아니라, 신성한 것에 굴복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훈육되는 것이고 신성한 것, 곧 “조국과 민족”이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인데, 이는 ‘자기 굴복’, ‘자기비하’이다. 이러한 신성화에 대해 슈티르너는 신성한 대상에 대한 ‘신성모독’, ‘탈신성화’, ‘아무것도 아님’이라는 선포를 통해 ‘나다움’을 찾고자 하였다.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는 대상의 사랑, 조국애이다. 이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슈티르너는 그러한 고정된 자아로 자신을 이해하지 말고 ‘창조적 무’라는 유일자로 자신을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슈티르너의 주장으로 이 맹세문을 나를 위한 맹세문으로 변주하면 어떨까?

 

나는 유일한 존재로서 내 유일성 앞에 자기결정과 자기의지의 자율성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존재해야만 하는 나에 대한 관심보다 나를 위한 나의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에고이스트 사랑은 그런 것이다. 자기 힘을 증가시키는 관계 맺기가 에고이스트 사랑이니까. 보다 정확히 에고이스트의 사랑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에고이스트의 사랑은 ‘호혜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이 점에 관해 조금 더 주목해 보자.

 

  1. 사랑은 호혜주의이다.

우선 슈티르너가 ‘호혜주의’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해 보자.

 

교류는 호혜주의(Gegenseitigkeit)이고, 개별자의 행위이며, 개별자의 콤메르키움(commercium)이다. (239)

 

강당처럼, 그렇게 교도소는 틀림없이 일종의 사회, 협동조합, 공동체를 만들지만(예를 들어, 노동 공동체), [241]결코 어떤 교류도, 어떤 호혜주의도, 어떤 연합(Verein)도 만들지 못한다.

 

정리하면, 교류, 호혜주의, 연합, 콤메르키움(commercium)은 하나의 묶음이다. 콤메르키움은 상업, 교류를 뜻한다. 이렇듯 호혜주의는 교류, 연합의 원리이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맥락에서 교류, 호혜주의, 연합, 콤메르키움을 같은 범주로 분류하고 사회, 협동조합, 공동체를 다른 범주로 구분한다. 전자는 ‘자기 유용성’에 의지하면서 ‘호혜주의’를 요구한다. 그럼 후자의 범주는 어떤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 “‘친절’(Liebesdienste), 자비, 연민 등등”이다.

 

차라리 나는 그들의 ‘친절’, 자비, 연민 등등에 의존하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자기 유용성에 의지하고자 한다. 인간의 자기 유용은 호혜주의를 요구하고(당신이 나에게 하듯, 그렇게 나도 너에게), 아무것도 ‘헛되이’ 행동하지 않고, 노력하여 획득하고 –보상을 치르고 얻을 것이다.(347)

 

또한 에고이스트 사랑은 “상대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사랑”이다.

 

사랑은 확실히 도로 돌려줄 수 있지만, 상대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사랑(Gegenliebe)에 의해서만 지불될 수 있다(“가는 호의가 있으면 오는 호의가 있다”;속담).348

 

  1. 에고이스트 사랑은 취득자의 사랑이다.

 

또한 슈티르너가 말하는 사랑은 ‘주는 사람, 선물을 주는 사람, 애정이 깊은 사람’(Liebevollen)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얻는 사람’(Nehmenden), 혹은 무엇을 자기 것으로 하는 사람, 곧 ‘취득자’(Aneignenden)(346)의 사랑이다. 슈티르너는 ‘Nehmenden’와 ‘Aneignenden’단어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곧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학위를 취득하다.”는 것은 학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서 독일어 ‘Aneignenden’에 주목해 보자. 이 단어의 동사 ‘aneignen’는 ‘무엇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를 영어 본에서 ‘appropriator’로 옮겼다. 자기 것으로 하는 사람에 원인을 두고 있는 그런 사랑이다. 이 단어는 맑스의 <자본>에서, “자본이 노동자의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가져가고 노동의 결과물을 자본의 소유로 이전하는 모습을 말할 때 주로 섰다.”([생각하는 마르크스], 백승욱, 북콤마, 97쪽)

다르게 생각해 보자. ‘Aneignenden’을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면 어떨까? 이를테면 ‘취득자’는 자신이 자신의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가져와 자기 능력의 결과물을 자신의 소유로 이전하는 그런 사람이다. 더 이상 주는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취득자의 사랑이다. ‘취득자’는 ‘소유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취득자는 자기 유용성의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가져와 그 능력의 결과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형식적으로 주어진 법률적 주어짐, 주어진 권리가 아니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슈티르너는 주장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자기 유용성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

무엇이 모두의 소유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에게, 다시 말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사용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사회적 소유는 쓸모없다. 사회적 소유는 개인의 소유로 전용되어야 쓸모 있다.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공적인 것을 사적인 것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드는 것이 보다 근원적이지 않을까?

유일자를 설명하거나 의미하는 많은 말들 중에 유일자는 취득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일자는 취득자이고 소유자이다. 어떤 능력의 소유자는 자신의 창조자이다. 이것이 나다움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취득자인가? 다시 말해 나는 무엇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인가? “너는 너의 창조물(Geschöpf)로 존재”하는가?(39) 나는 나를 창조하는 창조자이자 내가 창조한 창조물인가?

에고이스트(Egoist) 사랑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에고이스트(Egoist) 사랑

 

박종성(한철연 회원)

 

1. 에고이스트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고 자기 유용성이다.

 

에고이스트 사랑을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간디의 일화를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 간디 생애 말년에 어떤 서양기자가 간디에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평생 남들을 위해서 자기희생적인 생애를 살아왔느냐”라고. 이 질문에 간디는 뭐라고 했을까? 간디는 자기희생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간디는 자기가 남들을 위해서 살았다고 보는 것은 전혀 오해인데, 그 이유는 남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내 이웃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내 조국이 독립해야만 자기 자신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고 투쟁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간디는 에고이스트이다. 현상적으로는 타인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에고이스트이다.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이 에고이즘인데, 에고이즘(egoism)을 흔히 이기주의로 번역하기 때문에 에고이즘이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느낀다. 그러나 자아(ego)는 ‘자기 존중 혹은 자기 중요성’(self-esteem or self-importance)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에고이즘은 자아주의이고 에고이스트는 자아주의자라고 번역할 수 있다. 슈티르너는 기존의 에고이스트라는 말의 의미와는 사뭇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에고이스트를 ‘유일자’라고 말했다. 곧 유일자는 자아주의자이다. 그럼 자아주의자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분명히 인간이 “이타적”행위를 할 때조차, 개인의 모든 행위의 근본 원인은 자기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아주의자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는 나에게 모든 것이고 나를 위하여(Meinethalben) 모든 것을 한다.(179)

 

예를 들어 가족 사랑이 보통 ‘효성’(Pietät)으로 이해되었듯이, 가족사랑은 어떤 종교적 사랑이다. 마찬가지로 조국에 대한 사랑(Vaterlandsliebe)을 ‘애국심’이라고 설교했다. 우리의 모든 낭만적 사랑은 같은 양식으로 움직인다. 말하자면 언제나 위선(die Heuchelei) 혹은 오히려 어떤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은 사랑’(uneigennützigen Liebe)이라는 자기기만(Selbsttäuschung/self-deception), 대상을 위한 대상의 관심은 나를 위한 것-정확히 말해서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um Meinetwillen)-이 아니라 대상을 위한 것이다. 327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애인과의 사랑은 어떨까? “그러나 내가 애인의 이마 위의 슬픈 주름살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로, 그래서 나를 위하여, 나는 애인의 이마에 입 맞추어 통증을 제거한다.”(325) 이렇듯 심지어 사랑도 자기 유용성이다. 다시 말해 에고이스트간의 사랑은 자기 유용성이다. 또한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은 사랑’은 ‘자기기만’이다. ‘애국심’은 자기기만이고 대상을 위한 대상의 관심이다. 그래서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다. 흔히들 ‘Eigennutz’(selfishness)를 이기주의로 번역하는데, 슈티르너는 이 단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그가 이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에고이스트가 무엇에 합의하는 이유는 자기 유용성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의 이익(meines eigenen Nutzen)을 위해서만, 곧 자기 유용성(Eigennutz)selfishness에서 합의에 동의했다. 351

 

이제 ‘Eigennutz’(selfishness)는 ‘내 자신의 이익’(meines eigenen Nutzen)이고 영어로 my own benefit을 의미한다. 또한 Eigennutz단어에 해당하는 영어는 selfishness인데 이는 self(자기) + ish(적인) +ness 성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단어를 ‘자기 유용성’으로 번역하였다. 자기 유용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슈티르너의 글로 돌아가 보자.

 

나는 물론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단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에고이즘의 의식으로 인간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사랑이 나에게 자연스럽기 때문에, 사랑이 나를 즐겁게 하기에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 나는 어떤 ‘사랑의 계율’도 알지 못한다. 나는 모든 감정이 있는 존재와 공감(Mitgefühl(fellow-feeling))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Qual)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quält), 그들의 기분 좋음(Erquickung)이 또한 나를 기분 좋게 한다(erquickt).(324)

 

자기 유용성의 이해관계, 관심은 세계를 자기 소유로 하는 것이다. “세계가 –내 소유로 되도록, 내 자기 유용성(Eigennutz)은 세계를 자유롭게 하는 것에 관심(Interesse)이 있다.”(342) 이러한 자기 유용성은 성인에 이른 ‘자기중심적 관심’(egoistisches Interesse)에서 가능하다.(14) 또한 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유용성에 따른 사랑은 상호간의 관계이다. 존재와의 공감이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은 자기 유용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자기 유용성은 다른 존재와의 공감 속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기 유용성은 언제나 상호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조금 더 확인해보자.

 

2. 사랑은 자기 유용성이지만 서로 서로사용하므로 서로에게자기향유이다.

 

에고이스트 사랑이 자기 유용성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곧 자기 유용성은 에고이스트 서로에게 해당한다는 것이다. 자기 유용성이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에고이스트의 사랑이 아니다. 다시 말해 유용성, 이용이 자기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에고이스트 상호간의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서로 서로(zueinander) 어떤 관계만을 맺고 있는데, 그 관계는 사용할 수 있음,(Brauchbarkeit/usableness) 쓸모가 있음(Nutzbarkeit/utility), 유용(Nutzens/use)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einander) 아무런 의무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당신에게 의무가 있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껏해야 내가 나에게 의무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331)

 

에고이스트의 사랑은 자기 유용성(Eigennutz/selfishness)에서 솟아나고, 자기 유용성의 침대로 몰려들어 다시 자기 유용성에 이른다.(328)

 

나는 세계와 인간을 이용한다네 (benutze(utilize))!(330)

나는 내 열정의 자양분을 위한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애인을 선택하지 않는다. 애인은 항상 다시 내 열정의 자양분으로 원기가 난다. 애인에 대한 모든 내 염려는 내 사랑의 대상에만 해당되고, 내 사랑을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만 해당되며, ‘열렬하게 사랑받는 사람’에게만 해당된다.(330)

 

이렇듯 슈티르너는 사람의 관계를 ‘서로 서로’ 유용성으로 보고 있다. ‘서로 서로’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유용성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유일자의 의미가 확장된다. 유일자는 단독자가 아니라 서로 서로의 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자에게 “교류(Verkehr)는 세계향유(Weltgenuss )이고 내 -자기향유(Selbstgenuss)의 일부를 이룬다.”(358) 서로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자기향유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다. 에고이스트간의 관계는 서로에게 자기향유를 위한 수단이다. 슈티르너에게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이용하는 것인데, 그에게 이용한다는 것은 사랑의 대상을 향유하는 것이다. “내 사랑의 대상을 향유한다(geniesse)”(330) 그러니까 사랑의 대상을 이용하는 것은 향유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말하자면 ‘서로 서로’(zueinander) 이용한다는 것은 서로간의 자기향유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사용’은 향유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자기향유가 사람의 관계이므로 사랑도 서로의 자기향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슈티르너가 강조하듯이 ‘서로에게’ 의무가 없다. “내가 당신에게 의무가 있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껏해야 내가 나에게 의무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고이스트 사랑의 의무 또한 대상을 위한 의무가 아니라 나의 의무이다.

 

3. 사랑은 따로 또 같이’, 자기 유용성이란 수단이고 동시에 자기향유라는 목적이다.

 

사람의 관계를 상호간의 유용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람의 관계를 ‘따로 또 같이’라는 관계로 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에고이스트의 사랑은 ‘따로따로’ 자기 유용성이면서 동시에 ‘함께’ 자기향유이어야 한다. 함께하는 자기향유는 에고이스트 간의 동등한 자율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함께하는 자기향유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에는 사랑의 관계 또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다. 잠시 사람 관계를 서로간의 사용으로 이해하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떠올려보자.

칸트가 <윤리 형이상학 기초 놓기>(I.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in: Digitale Bibliothek Band 2: Philosophie, 75면)에서 실천적 정언명령의 정식으로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Person)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도 인간성(Menschheit)을 단지 수단으로서 사용하지(brauchest)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하라”(Handle so, daß du die Menschheit, sowohl in deiner Person, als in der Person eines jeden andern, jederzeit zugleich als Zweck, niemals bloß als Mittel brauchest.) [강조는 옮긴이]

 

이 글에서 옮긴이가 강조한 부분에 주목해 보자. 곧 ‘…만’, ‘항상 동시에’ ‘사용하다’라는 중요한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 문구는 왜 들어가 있는 것일까? 칸트가 “인간성을 단지 수단으로서 사용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하라”는 것은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하라”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칸트는 사람 관계에서 상호 수단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성을 단지 수단으로서 사용하지말”라는 말은 “인간성을 수단으로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상호 수단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수단적인’ 이란 말은 ‘나의 욕구와 행복과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이란 의미이다. 슈티르너의 사랑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칸트의 정언명령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관계가 오로지 상호 수단적으로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수단으로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를 슈티르너의 사랑에 대한 논의로 가져와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사랑은 자기 유용성이라는 수단이고 동시에 자기향유라는 목적으로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자기향유라는 목적은 자아 외부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자아 안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칸트가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 모두의 실천이성의 자율성을 존중하라는 말이라면, 슈티르너는 각자의 자아 안에 자기향유라는 목적이 동등하게 존재하고 이것을 “완전한 자유로운 자기결정(Selbstbestimmung)에 의하여 행위가 완전히 내 것이 되는 것”(117), 자아의 상호 존중, 그것이 에고이스트 사랑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 자유이다. 왜냐하면 “자유는 자기결정에 의한 자유, 자기 자신에 의한 자유”(172)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의 사랑은 자유로운가? 다시 말해 완전한 자유로운 자기결정이었는가? 나는 그대에게, 그대는 나에게 따로 또 같이 자기 유용성이었고 자기향유이었는가?

유일자의 소유(Eigentum)란 무엇인가?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유일자의 소유(Eigentum)란 무엇인가?

 

박종성(한철연 회원)

 

  1. 소유는 소유자가 뜻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앞서 ‘유일자’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간략히 말하면 유일자는 나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나다움의 추구는 자기결정이며, 자신의 의지를 추구하는 것, 자기에게 유용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또한 유일자의 나다움은 자기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다움은 고정된 자아를 끊임없이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슈티르너 책 제목 “유일자와 그의 소유”에서 소유의 의미, 곧 ‘유일자의 소유’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맑스가 주장하는 ‘개인적 소유’의 의미와 연결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전의 글에서 소유는 ‘힘’과 관계 맺고 있음을 다시 상기해 보자. 아래의 글을 다시 음미해 보자.

 

내 힘(Macht)은 내 소유(Eigentum)이다.

내 힘은 나에게 소유를 준다.

내 힘은 나 자신이고 내 힘에 의하여 내 소유이다.[203]

 

슈티르너는 소유를 힘과 연관시키고 힘에 의한 내 소유를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소유는 어떠한 내용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대략적으로 정리하면서 그 의미를 요약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그는 소유를 ‘자신의 사용’(Eigennutz)과 연관시킨다.

 

“세계가 –내 소유로 되기 위하여, 나 자신의 사용은 세계를 자유롭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342)

 

소유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와 교류하고자 한다. 그에게 세계는 “내가 마음대로 처리하는(schalte und walte) 내 소유이다.”(102) 결국 세계가 자신의 사용으로서 관계 맺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에게 소유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소유로서 사용할 수 있었던 수단과 조직만을 얻으려고” 애쓴다.(348)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그 당시의 문명 비판을 하는데, 말하자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음을 문명화된 세계의 유행품(Modeartikel)이라고도 부른다는 것이다(65) 그래서 그는 다시 묻는다.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음(Uneigennützigkeit)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65) 이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이 한다.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음은 소유자로서의 우리가 우리의 목적과 우리의 소유를 뜻대로 처리할 수 있는(schalten können) 어떤 목적이 중지하는 곳, 다시 말해 어떤 목적이 하나의 고정된 목적 혹은 하나의 -고정 관념이 되는 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66) 그래서 그는 이러한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다시금 소유로 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소유는 감각적 재산뿐만 아니라 정신적 재산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소유의 현실화는 다름 아닌 ‘권능’에 따라서 작동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인간의 재산들, 곧 감각적 재산들뿐만 아니라 정신적 재산들은 내 것이고 나는 내 –권능(Gewalt)의 척도에 따라 소유자로서 그것들을 마음대로 처리한다(schalte).(274)

 

또한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슈티르너는 프루동을 비판한다. 이를테면 바로 그 땅의 유용은 여전히 그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nach Belieben schalten kann) 그의 소유라는 것이다.(276) 나아가 “소유는 어떤 것(물건, 동물, 인간)에 대한 무제한의 지배에 대한 표현이다. 그것에 의하여 ‘나는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Ich schalten und walten kann nach Gutdünken).(279) 여기서 ‘지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배는 “힘”또는 능력(die »Kraft« oder Dynamis)이다. 또한 지배는 추상적 인간의 지배가 아니라 ‘개개인이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배(Herrschaft)[“”또는 능력(die »Kraft« oder Dynamis); 강조는 옮긴이]는 인간에 속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개개인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der Mensch)이 개개인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왕국, 즉 세계는 인간의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개개인(Einzelne)이 소유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모든 것, 즉 세계를 소유물로서 지배한다.(151)

 

  1. 소유는 개개인이 실질적 주인이 되는 것이고 개개인의 힘과 능력의 현실화이다.

 

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슈티르너는 ‘힘’을 ‘능력’(dynamis)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dynamis’는 철학사적 연원을 갖는 말로 그리스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모순된 두 가지 뜻으로 분화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하는 의미에서 현실태와 대립되는 가능태를 의미한다. 가능태란 어떤 형상으로 결정되지 않은 경향, 단순한 잠재성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 현대에 이르러 잠재력을 뜻하게 되었으며, 능동적 에너지 곧 어떤 현실적 결과를 생산해 낼 수 있는 힘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에게 소유 개념은 현실적이고 실질적 결과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슈티르너가 염려하는 것은 ‘너의 고유한 자아’(Dein eigentliches Ich)이다.(31) 고유하다는 것은 남과 구별되는 나만의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주장하는 “너의 독특함(Absonderlichkeit)이나 특질”(Eigentümlichkeit)(228쪽;이 단어는 한번 사용된다)을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잠시 ‘소유’(Eigentum)라는 말을 음미해 보자. 왜냐하면 슈티르너가 소유를 ‘특질’이란 단어와 연관시키는 것은 그의 소유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소유라는 단어는 영어로 property인데, 이 영어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proprius이다. 이는 ‘남의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것인’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 어원은 ‘고유한’, ‘독특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독일어 Eigentum의 형용사형 eigentümlich는 ‘소유의’라는 뜻과 함께 ‘고유한’, ‘독특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결국 소유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하는 자신만의 독특성을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추론과 함께 앞서 확인했듯이 소유를 ‘힘’과 ‘능력’이란 말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종합하면, 소유자는 형식적으로 주어진 소유가 아니라 힘과 능력에 따른, 혹은 그 편차에 따른 실질적 소유자를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이에게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 힘과 능력에 따라 그 성취도는 다를 수 있다. “자신의 주권과 권리를 요구하는 주장이 소유적 자유주의의 출현이다. 이와 달리 프랑스 혁명은 모든 인간은 property가 있든 없든 평등하다는 주장에서 출발했다. 자기를 대표할 소유가 없는 자라고 해도 소유가 있는 자와의 사이에 차별이 있으면 안 되며, 그것이 자유이고 평등이라는 생각이다. 그 때의 자유는 property에 기초하지 않는다.”(백승욱 지음, <생각하는 마르크스>, 북콤마, 2017, 95)

이렇게 볼 때, 슈티르너의 소유 개념은 영국식 소유 개념과 맞닿아 있다. 앞서 우리는 슈티르너가 소유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보다 현실 영역으로 논의를 구체화하면 어떨까?

 

  1. 소유: 슈티르너와 맑스가 이해하는 자본가

 

슈티르너는 시민계급의 정부(지배)하에서는 노동하는 자들은 소유하는 자들, 곧 자본가의 수중에 놓이게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자본가를 국가의 재산이라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zu ihrer Verfügung haben), 특히 돈과 재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자들로 이해한다.(126) 그래서 “국가란 –부르주아 국가이고, 부르주아계급의 재산이다.”(Der Staat ist ein – Bürgerstaat, ist der status des Bürgertums.)(같은 쪽) 이러한 자본가에 대한 이해를 맑스의 견해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맑스는 <자본>1권(167쪽 두 번째 단락에서 168쪽 첫 단락까지)에서 자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화폐소유자는 이 운동[가치의 증식; 옮긴이]을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담당자(Träger)로서 자본가가 된다. 그의 몸 또는 그의 주머니가 화폐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다. 그리고 그 유통의 객관적 내용, 곧 가치의 증식이 그의 주관적 목적(subjektiver Zweck)이다. 자신의 모든 행동의 동기를 단지 추상적인 부를 더 많이 벌어들이는 데 두는 한 그는 자본가(Kapitalist)로 기능하는 것이며 또한 인격화된 자본으로, 곧 의지와 의식을 부여받은 자본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사용가치는 결코 자본가의 직접적 목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개별적인 이익 또한 자본가의 직접적인 목적이 아니며, 오히려 이익을 얻기 위한 쉬지 않는 운동만이 자본가의 직접적인 목적이다.”(167f., Michael Heinrich, <Wie das Marxsche «Kapital» lesen?>, Teil 2, 강조는 미하엘 하인리히(M. H.))

미하엘 하인리히는 유통 G – W – G‘의 객관적 내용을 자신의 주관적 목적으로 만드는 사람, 따라서 가치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본가라고 한다. 미하엘 하인리히는 위 구절을 두 가지 해석하는데 우선 한 가지만 살펴보자.

(1) 이용할 수 있는 화폐의 소유자 역시 자본가인데, 그는 오직 이용할 수 있는 화폐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verfügen)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맑스가 정확하게 서술했듯이, 자본가는 화폐소유자(Geldbesitzer)이어야 한다. 하나의 사물을 실제로 자유로이 처리하는 사람은 그 사물의 소유자가 아닐지라도 그 사물의 점유자(Besitzer)이다. 그러니까 화폐를 이용하기 위해 화폐를 꾸어준 그 사람 역시, 혹은 지배인에게 낯선 능력이라는 가치증식을 위임한 그런 사람도 자본가로서 기능한다.

슈티르너나 맑스는 자본가를 화폐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verfügen) 있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다. 슈티르너에게 맑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가혹하리만큼 비판하였는데, 이러한 자본가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혹은 “국가란 –부르주아 국가이고, 부르주아계급의 재산이다.”라는 슈티르너의 견해에 대해 맑스의 비판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독일이데올로기>의 완역과 함께 충분히 논의해 볼 일로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1. 소유는 개인적 소유이다. 그런데 현실은?

 

요약하자면 유일자는 나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유일자의 소유는 개인적 소유를 의미한다. 이때 말하는 개인적 소유는 힘과 능력을 의미하면서 단순히 형식적으로 주어진 소유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현실화되는 소유를 의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소유 개념을 통하여 보다 유일자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말하자면 유일자는 다른 사람과 구분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힘과 능력에 따라서 자신을 나타낼 수 있고 그것이 그의 ‘특질’(Eigentümlichkeit)이며 그를 소유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맑스가 <자본> 1권 7편에서 말하는 ‘개인적 소유’(individuelle Eigentum; 이 단어는 그가 한번 밖에 사용하고 있지 않다)와 공명할 수 있지 않을까?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화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소유가 현실화 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실질적 소유, 곧 개인적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슈티르너는 자신의 시대,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비판한다. “노동자는 향유를 위해 노동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척도에 맞추어 자신의 노동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없다.”(126) 이전의 글에서 보았듯이 슈티르너는 “우리의 소유를 가치 있게 만들어라, 너 자신을 알라가 아니라, 너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라!”라고 주장하였다. 유일자의 나다움은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곧 개인적 소유의 현실화를 실제로 이루어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인간이 기계와 같은 노동에 얽매이게 된다고 하는 사실은 노예제와 흡사한 것이 된다. 공장노동자(Fabrikarbeiter)가 12시간 이상을 죽어라고 노동해야 할 경우, 그는 인간이 되는 것을 빼앗긴다. 모든 노동은 인간이 만족해야 한다는 목표를 지녀야만 한다. 그 때문에 인간 역시 노동에 있어서 전문가(Meister)가 되어야 하며 인간은 하나의 총체성으로서의 노동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압정공장에서 꼭지만 끼우고 철사를 빼내기만 하는 등등의 일만을 하는 사람은 기계적으로 기계처럼 일을 한다. 즉 그는 불완전한 단편으로 머물 뿐, 결코 전문가가 되지 못한다. 그의 노동은 그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단지 그를 피곤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노동은 그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목적도 없으며, 만들어진 산물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즉, 그는 다른 어떤 사람의 손아귀에서 노동하게 되고, 그 사람에게 이용당한다(착취당한다exploitiert).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이런 노동자에게는 교양 있는 정신의 향유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기껏해야 조잡한 오락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에게 있어서 교양이라는 것은 봉쇄되어 있다.(131)

 

얼핏 보면 맑스의 글로 오해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의 노동은 어떤가? 총체성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기계와 같은 노동인가? 교양이 있는 정신의 향유인가? 우리는 사회를 이용하는가? 아니면 사회가 우리를 착취하는가? 이 책에서 ‘공장노동자’란 단어는 한번 언급된다. 그렇지만 가벼운 말이 아니다. 18세기 이래, 공장의 숙련공을 수공업에서 일하는 도제나 비숙련 육체노동자와 구별하게 해주는 말로 등장했다. 이미 1845년의 프로이센 기업 규정에는 도제와 보조 노동자를 위한 규정을 명확하게 공장 노동자로 확대시켰다. 이것은 수공업과 공장 노동이 기업(Gewerbe)이란 개념 아래 통합된 데에서 도출된 귀결이었다.(코젤렉 개념사 사전 10, 142-7) 나아가 공장 노동자들은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가장(pater familias)에 대한 가족 구성원(Glied der famlilia)처럼 인식되었다. 또한 군주국가의 모델 역시 노동자의 입지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가장-종, 군주-신하, 사령관-졸병이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과도한 요구는 19세기 말까지도, 그리고 이를 넘어서까지도 ‘부르주아’ 사회 하부에서 봉사하는 계층이라는 케케묵은 개념이 근대 산업사회 체제 안으로 이월되었다는 사실을 타나낸다.(같은 책 176-7쪽) 짧은 그의 말을 오래 음미해 보자. 소유는 개인의 실질적 소유이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역사는 희생의 역사 이후에 향유의 역사이고, 인간의 역사 혹은 인류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역사이다.[197-198]

나다움과 국가기계의 힘 관계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나다움과 국가기계의 힘 관계

 

박종성(한철연 회원)

 

1. 왜 나답지 못하는가?

 

우리는 앞서 유일자의 개념을 통하여 유일자는 나다움을 추구하는 자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나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결정(Selbstbestimmung)에 의한, 자기 자신에 의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 일어난다.[172] 그렇다면 자기결정에 대한 갈망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가? 그것은 자기부정(Selbstverleugnung) 때문에 일어나는 갈망이다. 자기결정에 대한 갈망은 자기부정에 대한 부정이다. 또한 슈티르너가 이해하는 ‘자기부정’은 ‘자기폐지’이고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음(Uneigennützigkeit)[65, 228]이며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는 사람[220]이다. 나아가 가장 완전한 자기 부정은 자신의 의지, 자기의지(Eigenwillen)의 지배 자체이다.[172] 결국 나다움은 자신의 자아를 인정하는 사람이다. 달리 말하면 유일자는 ‘구속되지 않은 자아’(das zügellose Ich)이며 우리 근원이고, 항상 우리 내부의 비밀로 남아있다.[219]

그런데 자기부정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가? 그것은 “나의 단념(Resignation), 나의 자기부정(Selbstverleugnung), 나의 용기 없음(Mutlosigkeit)에 의해 –겸 손(D e m u t)”[슈티르너는 여러 가지 강조를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이렇게 철자를 늘려 쓰는 것도 일종의 강조 표현이다.]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344] 그러니까 자기부정은 그 자체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순적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쪽이 강해지면 다른 쪽은 약해지는 것을 모순으로 본다면, 자기부정은 자신의 ‘단념’, ‘용기 없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슈티르너는 다시금 나다움을 찾기 위해 “자신의 대담한 행위, 자신의 의지, 자신의 가차 없음과 두려움 없음”으로 자신을 이끈다.[220]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나다움의 철학은 ‘자기부정’, ‘자기폐지’,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음’에서 자기인정, 자기실현, 자기에게 유용함으로, 자신의 의지로 향하고 있다. 나다움의 철학이 지향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나의 문제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나다움의 철학이 ‘충동’(Trieb)과 어떻게 연결되어 논의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아래의 인용문을 보자.

 

자기를 벗어난 노력과 염려(Sorgen)는 자기폐지(Selbstauflösung)를 추구하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충동(Trieb)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다.(39)

 

먼저 위 문장을 음미해 보자. 슈티르너는 분명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충동’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슈티르너가 말하는 제대로 이해된 충동이 있다는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앞 문장만으로 이해하면, 우선 자기를 벗어난 노력과 염려는 ‘자기폐지’이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자기폐지는 자기부정이고 나다움의 포기이다. 그러니까 자기실현은 자기를 벗어나지 않은 노력과 염려이며, 이것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충동이고 나다움의 실현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제대로 이해된 충동은 자기중심적 염려와 노력이다.

 

2. 나다움은 자기중심적 충동(Trieb), 자신을 추구하는 충동이다.

 

‘충동’이란 단어로 표상되는 것, 이를테면 성충동의 ‘충동’ 개념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와 같은 충동 개념을 괄호치고 먼저 슈티르너가 말하는 충동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목적이다. 그가 말하는 충동 개념을 더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을 확인해 보자. 그가 말하는 충동은 다양하게 논의된다. 말하자면 충동은 “자신을 추구하는 충동들”(selbstsüchtigen Trieben)”[107]이 자기중심적 염려와 노력이고 제대로 된 충동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나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규칙 없고 법칙이 없는 충동(Trieben), 욕망, 소망, 열정이라는 일종의 심연(Abgrund)은 광명과 인도의 빛(Leitstern)없는 일종의 카오스이지 않는가!(178)

 

슈티르너는 인간에 대한 흔하고 전통적인 질문에 위와 같이 대답한다. 그에게 충동은 “규칙 없고 법칙이 없는 충동(Trieben), 욕망, 소망, 열정”이다. 질서보다는 혼돈을 자신의 충동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다양하게 대답하는 것, 심지어 ‘일종의 심연’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단일한 인간존재에 대한 규정을 피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말하는 존재론이 ‘창조적 무’라는 것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충동 개념은 ‘동기’(Antriebe)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나아가 그는 소크라테스부터 시작되는 마음의 정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충동을 ‘가장 다양한 욕망’(Gelüste/appetites)의 그릇일 뿐이라고 한다.[18][Gelüste의 어원인 Lust의 의미는 쾌감, 유쾌; 즐거움, 욕망 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충동은 ‘동기’이고 “자신을 추구하는 충동들”, ‘자기중심적 충동’이고 자기중심적 염려와 노력이며 “규칙 없고 법칙이 없는 충동(Trieben), 욕망, 소망, 열정”, 곧 “일종의 카오스”, ‘가장 다양한 욕망의 그릇’이다. 이것이 제대로 된 충동이다. 그런데 충동의 문제와 관련되어 다음 글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충동은 ‘힘’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제, 자기중심적 충동(Trieb)이 충분한 힘(Kraft,강조는 옮긴이)을 갖지 못한 어떤 개인의 경우에, 그는 가족의 요구에 어울리는 결혼에 따라 결혼하고, 가족의 입장과 조화를 이루는 어떤 자세를 취한다 기타 등등.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가족을 공경 한다.’(242)

 

3. 자기중심적 충동은 충분한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충동에 결정적인 것은 ‘힘’의 문제라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충동(Trieb)이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 어떤 개인의 경우에, 그는 가족의 요구에 어울리는 결혼에 따라 결혼”을 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충동은 ‘힘’과 맞닿아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충동 그 자체만으로는 자기중심적 충동, 자신을 추구하는 충동들이 현실화 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나다움, 자기실현은 힘의 소유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유한 힘의 현실화를 통하여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슈티르너의 책 제목이 ‘유일자와 그의 소유’라는 것을 떠올려 보자. 그러면 유일자는 힘의 소유자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힘(Macht)-그것은 나 자신이고, 나는 힘이 있는 자(Mächtige)이고 힘의 소유자(Eigner)이다.”[231] 나다움은 –소유자(Eigners)의 묘사일 뿐이다.[188] “나는 나의 권능(Gewalt)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유일자(Einzigen)로 이해할 때, 나는 나의 힘의 소유자이다.”(412) 또한 자유는 자기결정(Selbstbestimmung)에 의한[172] 것이고 이것이 나다움이다. 이렇게 볼 때, 나다움은 항상 힘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하는 “그는 가족의 요구에 어울리는 결혼에 따라 결혼하고, 가족의 입장과 조화를 이루는 어떤 자세”는 무엇일까? 그것은 ‘효성’이라 할 수 있다. 혹은 지금까지의 교육과 교양, 도덕적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요구가 아니라, ‘가족의 요구’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내 위에서 나를 지배하는 어떤 힘, 이러한 것이 신성한 것이다. 어떤 힘이 이렇게 신성한 것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신성한 것이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들이 그렇게 인정하고 그렇게 자신들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신성한 것을 자신의 지배자로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앞서 확인했듯이 유일자, 혹은 나다움은 ‘나의 권능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소유자 자신은 유일자 속에서 자신의 창조적인 무(Nichts)로 되돌아간다.”[412] 나다움을 지배하는 지배적인 어떤 것은 창조적 무라는 슈티르너의 존재론에서 해체되고 지양된다. ‘창조적 무’라는 개념을 아래의 글과 함께 음미해 보자.

 

나는 매순간마다 자신을 그때그때 최초로 정립하거나 창조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립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할 뿐이고, 내가 나 스스로를 정립하는 순간(Moment)에만 다시 내가 정립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할 뿐이다. 다시 말해 나는 창조자인 동시에 창조자의 창조물인 것이다.[167]

 

자아는 전제되지 않고 매 순간 스스로를 정립하는 순간에만 정립된다. 이러한 자아의 창조적인 힘으로 자아가 정립됨으로써만 자아는 존재한다. “자아라는 존재의 핵심은 그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힘이고 이러한 힘에 따라서 자신의 창조물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것이다.”[R. Ruzicka, Selbstentfremdung und Ideologie, Zum Ideologieproblem bei Hegel und den Junghegelianern, Bonn 1977, S. 96] 유일자는 끊임없는 창조적 무에서 생성, 소멸, 다시 생성하는 것이다. 자아의 힘은 소유이고 나에게 소유를 주는 자아의 힘이 자기 자신이며, 자아의 힘은 자아의 힘에 의하여 나의 소유라는 자아를 정립한다.

 

나의 힘(Macht)은 나의 소유(Eigentum)이다.

나의 힘은 나에게 소유를 준다.

나의 힘은 나 자신이고 나의 힘에 의하여 나의 소유이다.[203]

 

이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자아의 힘과 비아(非我)의 힘의 관계에 의하여 자아로 정립할 수도 있고 자아로 정립될 수도 없다. 비아의 대표적인 모습은 국가, 곧 국가기계, 경찰행정이다.

 

4. ‘구속되지 않은 자아와 국가기계

 

앞서 확인했듯이 유일자는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난다. 요약하면 유일자는 나다움을 추구하는 자이다. 그리고 나다움은 자기결정에 의한 것이다. 자기결정은 자유이다. 이렇게 보면, 나다움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나다움은 소유자의 묘사일 뿐이라는 점이다. 나다움을 추구하는 모습 중 하나가 ‘구속되지 않은 자아’(das zügellose Ich)[219]이다. 이 말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 “자신의 대담한 행위, 자신의 의지, 자신의 가차 없음과 두려움 없음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사람”[220]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다움, 힘, 자유의 문제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의무, 국가의 자기유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유로운 활동에 대한 억제이다.

 

국가기계(Staatsmaschine)는 자신의 고유한 동기(Antriebe)를 결코 따르지 않는 단일한 정신의 톱니바퀴 장치(Räderwerk)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모든 자유로운 활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국가는 국가의 검열, 국가의 감시, 경찰 행정에 의해 억압을 할 수 있고, 이러한 억제(Hemmung)를 국가의 의무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억제가 자기유지(Selbsterhaltung)의 참된 의무이기 때문이다.”[250]

 

이처럼 국가는 자기 결정하는 유일자처럼 자신의 동기를 따르지 않는다. 국가는 ‘단일한 정신의 톱니바퀴 장치’를 움직이므로 ‘국가기계’이다. 자기유지가 국가의 참된 의무이다. 국가의 자기유지는 검열, 감시, 경찰 행정에 의한 억압으로 드러난다. 말하자면 자유가 나다움이고 ‘자기결정’이라면 국가는 검열, 감시, 경찰 행정에 의한 ‘자기유지’이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자기유지(Selbsterhaltung)는 인간의 역사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자기유지는 자기파괴로 이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의 자기유지는 나다움의 파괴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주목할 만한 것은 ‘경찰 행정’이다. 이 말은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데, 슈티르너가 말하는 경찰 행정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경찰 행정”(Polizei)에 속하는 것은 군인, 모든 종류의 관료, 예를 들어 사법부, 교육 등등, 간단히 말해 모든 국가기계이다.[126] 여기서 말하는 ‘경찰 행정’(Polizei)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찰’이 아니다. “‘Polizei’은 흔히 경찰을 의미하지만 18세기에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씌어졌는데, 오늘날의 내정(內政)이라든지 국가행정이라고 할 만한다.”(강성화, 『헤겔 『법철학』』,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3, 99쪽)

이렇게 볼 때, 슈티르너가 말하는 경찰 행정은 국가기계이다. 그런데 여기서 경찰 행정이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국가권력이 하나로 집약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국가기계는 권력이 아니라 권력‘들’이다. 국가기계의 힘은 다양한 힘으로 편재된다. 따라서 유일자는 다양한 힘으로 편재된 힘들과의 관계 속에 끊임없는 ‘반역자’일 수밖에 없다. 힘들이 두루 퍼져 어느 곳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나다움의 추구 또한 단일한 형태로 나타날 수 없다. 푸코 또한 이러한 힘들의 편재 때문에 혁명보다는 저항을 권고했다.

또한 슈티르너는 국가기계, 곧 경찰 행정을 자기 내면의 감시, 양심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인간을 일종의 ‘비밀-경찰 행정-국가’(Geheimen-Polizei-Staat)로 만들어왔다. 간첩과 엿듣는 사람인 ‘양심’은 마음의 모든 가벼운 움직임을 감시하고,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인간에 ‘양심의 문제’, 다시 말해 경찰 행정의 일(Polizeisache)이다.”[97쪽] 여기서 국가기계는 우리가 앞서 보았던 국가기계의 의무, 곧 감시, 검열, 경찰 행정에 의한 억압이라는 ‘처벌’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과는 다른 맥락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외형적인 처벌에서 내면적인 훈육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팬옵티곤(panopticon)’을 떠올릴 수 있다. 경찰 행정은 벤담의 팬옵티곤처럼 내면의 감시자로 보편화된다. 철두철미하게 완전히 경찰 행정의 성품(Polizeigesinnung)을 꽂아 넣는 사람은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는 사람, ‘자기부정’(Selbstverleugnung)을 연습하는 사람이다.[220]

다시금 질문해 보자! 나는 얼마나 나다운가? 나는 자유를 추구하는가? 나는 자기결정적인 존재인가? 나는 자기결정적인 나의 힘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인가? 나는 내 안에 또 다른 경찰 행정의 품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가? 분명한 것은 “내가 ‘순종해야’(kuschen)만 하는 동안에” “국가가 광채가 나는 데 반해, 나는 결핍에 시달린다.”[234]는 것이다. 힘의 관계에서 나의 힘과 국가의 힘은 이렇듯 모순적이다. 국가의 자기유지는 나다움의 자기부정이다. 자기부정은 나다움이 아니고 자기부정의 부정이 나다움이다. 국가의 자기유지의 부정이 나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