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은 큰 바위 얼굴 같다”[김성리의 성심원 이야기] -4

“내 얼굴은 큰 바위 얼굴 같다”[김성리의 성심원 이야기] -4

김성리(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풍경3학교에서는 오지 말라고 해도 그래도 실실 가니까 또 별 말이 없어. 그래서 좀 더 다녔다. 응, 오다가다 가다말다 했제. 큰 언니는 얼굴에 표가 자꾸 나. 나는 7살에 병이 들었다카는데 내가 스스로 안 거는 아매도 초등학교 1학년 때였지 싶다. 뭐 병이 들었다 해도 그기 무슨 병인지 얼매나 심각한 건지는 몰랐제. 바닷가에 있는 바위는 넓고 크다 아이가. 바닷가에 놀러가서 큰 바위에 어짜다 닿으모 그 부위가 빨갛게 불키는 기라.

그리 긁었던 기억은 없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말하모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밤에 그 왜 큰 가마솥 안 있나? 그 솥 밑에 붙어 있는 검정을 긁어 와서 잘 때 되모 불킨 데에 솔솔 흩어서 뿌려주더라. 그라모 다음 날 아침에 보모 그 불킨 기 흔적도 없어. 그래도 바위에 닿으모 또 불키고, 검정은 그때뿐이고…. 그래도 그기 유일한 약이었던 것 같다. 그거 말고는 소록도 가기 전까지 약을 묵거나 바른 기억은 없어.

시간이 가니까 불키는 것 말고도 인자 무릎 우로 종기가 한두 개 나는 기라. 그래도 안 보이니까 그런 건지 그럭저럭 슬슬 다니고 때로는 친구들하고 놀기도 했다. 아매도 국민학교 4학년 때였지.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바위를 펄쩍 거리며 옮겨 다니며 노는데 그만 바람에 치마가 훌렁하고 날리는 기라. 친구들이 그만 봤다. 다리에 소소하게 빨갛게 불키 있는 거를. 치마를 얼른 덮었는데 친구들이 더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대.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학교에 가니까 역시 담임이 나오라쿠는 기라. 친구들이 담임에게 말했지, 뭐. 담임이 치마를 걷어보더마 인자 진짜 학교 오지 마라하고 집에 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집에 왔지 뭐, 어짜겄노. 오지 말라는데, 안 가야지. 또 언니하고 나하고 둘이서 산에서 놀다가 해가 지모 내려오고 그랬다. 뭐 먹었냐고? 산에 가모 묵을 거 천지다. 다래가 꼭 목화송이처럼 하얗게 보이는데, 그런 기 여기저기 많았다. 밥만 없지 묵을 거는 많아서 언니하고 나는 산에서 있는 게 편했다.

그런데 인자는 그것도 안 된다고 하더라. 산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자꾸 눈치가 보이더라. 사람들이 자꾸 소록도에 가라고 하는 기라. 우리 아버지 엄마도 어쩔 도리가 없어. 버틸 재간이 있어야지. 면사무소에서도 오고 지서에서도 오고 마을 사람들은 내내 ‘왜 안 보내노? 언제 보낼 끼고?’ 하면서 우리 엄마 아버지를 자꾸 뭐라카고 한께 우리 부모님도 버틸 재간이 없었어. 언니하고 나 안 보내고 데리고 있을라고 얼매나 애를 썼다고. 그래도 더는 못 버텨. 성한 둘째 언니하고 내 밑으로 줄줄이 있는 남동생들을 생각하모 안 보낼 수도 없는 기라.

내가 12살 때, 1952년도에 소록도로 갔다. 동생들이 있으니까 아버지 엄마는 못 오고 나하고 언니하고 둘이 손잡고 갔다. 부모님은 좀 있다가 우리 보러 왔제. 언니라 해도 정신이 그러니 내가 언니 손을 꼭 잡는 기 아이고 우리 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다녔다. 견내량 다리를 건너 버스 타고 가다가 들키모 아무 데나 차 세우고 내리라 하고 그라모 내리고, 그래서 언니하고 손잡고 걷다가 차가 오면 손들어서 타고, 또 쫓겨 내리서 걸었다. 묻고 물어서 처마 밑에 자고 해서 이틀 만에 소록도에 닿았다. 여관에 갔는데 나가라 해서 길에서 잤다.멀면 멀고 가까우면 가깝고, 게가 그렇더라.

내가 갔을 때에는 소록도에 마을이 7개 있더라. 어데, 소록도는 구역을 나누어서 병 상태에 따라서 다리게 살게 해. 병 상태가 양호한 한센인은 중환자들이 있는 부락에 가서 시중을 들어야 해. 나는 나이가 어리도 병상태가 양호하다고 중환자들이 있는 부락에 가서 시중을 들어라 하데. 가서 물도 떠 주고 밥도 멕여 주고 잔심부름도 하는데, 제일 못할 기 대소변 수발드는 기라.

그 사람들은 화장실을 못 가.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중환자들이 있는 부락이었거든. 우리 언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까 일은 안 했제. 나는 병표가 마이 안 나고 그리 안 깊어서 굳이 소록도로 안 가도 되는데 우리 언니 혼자 못 보내니까 같이 간 거거든. 우리 부모님이 큰 딸이 걱정돼서 막내딸을 딸리 보내면서 맘이 어땠을꼬. 동네 사람들도 언니보고 난리지 나보고는 그리 안 했어.

밤새 요강에 오줌을 싸고 그래. 그라모 나는 아침에 일찍 해뜨기 전에 일어나서 그 요강을 비워야 돼. 그래도 다행인 게 똥은 딴 데 쌌어. 똥은 거름이 되거든. 오줌도 따로 모았어. 아무 데나 버리모 안 되고 그 모아 놓는 데에 갖다 버리야 하거든. 밤새 요강이 가득 차니까 어두컴컴한 새벽에도 일어나야 해. 빨리 안 가모 욕도 하고 난리가 나. 내가 빨리 요강을 비워야 또 싸지. 모아 놓는 데는 사람들이 있는 데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어. 그게까지 오줌이 가득 찬 요강을 들고 가모 오줌이 막 내손으로 손목으로 타고 흘러내리.

손이랑 손목에 오줌이 마를 날이 없더라. 그때 겨우 12살인데…. 겨울이 너무 힘들었어. 날은 춥지. 요강은 무겁지. 오줌이 가득 찬 요강을 두 손으로 받치 들고 저 멀리까지 가모 팔이랑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아무리 살살 걸어도 오줌은 출렁거리고 흘러 내리. 아무리 빨리 걷고 빨리 움직이도 거리가 멀고 하니까 요강을 비우고 가모 욕이 들려. 내가 안 가모 오줌을 못 싸니까 오줌이 누고 싶은 사람은 참으면서 욕이 나오는 기지. 하하하. 욕 듣는 기 싫어서 빈 요강을 들고 종종거리기도 하고 뛰기도 했어.

한겨울에는 손목이랑 손가락이 얼어 터지는 것 같애. 그라고 요강을 씻는 것도 내가 했거든. 그때 따신 물이 있나. 그냥 찬물에 씻는데 너무 춥고 손이 시린께 오줌 냄새도 안 나. 누가 나를 씻기 주는 것도 아이고, 맨날 손이랑 손목이 틀어서 보기 숭했어. 겨울에는 튼 데가 터지서 피도 나고 가렵기도 하고 그렇는 기라. 그게 오줌이 흘러 내리모 따갑고 씨리고, 그라다가 딱지가 앉고, 어짜다 딱지가 떨어지모 또 피도 나고 그랬어.

더러버도 어짤 기야. 안 하모 안 되는데. 소록도에 간 이상 나가지도 못해. 온통 바다인데 어데로 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인자 그때 마음은 기억이 잘 안 나. 그냥 마음이 아파. 12살짜리 계집애가 오줌 가득 든 요강을 들고 찬바람 속을 발발 떨고 가던 기억만 또렷하고 자꾸 떠올라. 그래도 그기 있던 사람들이 나 어리다고 마이 예삐해 주고 잘 해줬다. 오줌을 참고 있으모 성을 내도 평소에는 참 따뜻하게 대해줬어.

어데로 가나 성질머리 더러운 사람은 있어. 그런 사람들 성질낸 거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잘하나 잘못하나 성질 내는데 거기에 동조할 필요가 없는 기라. 그 사람 천성이라. 그런 사람은 잘해 주도 툴툴 못해 주모 성을 뭐같이 낸다. 그런 사람의 성질에 내가 움직이 봤자 나만 손해라.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넘겨야 해.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기 어딨노.

풍경2내가 살던 부락에서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어. 환자들이 스스로 밥을 못하니까 단체로 밥을 해서 줬거든. 나도 식당에서 밥 먹었제. 그때 내 나이가 16살이었어. 날짜도 안 잊혀져. 4월 27일 주일이었어.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점심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았다고 가서 나물을 뜯어 오라 카더라. 요강 비우는 것보다는 나물 뜯는 일이 안 좋나. 오랜만에 홀가분하게 가서 나물을 뜯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놀래서 허겁지겁 갔는데 그래도 점심시간에는 좀 늦었어. 마이 안 늦고 쪼금 늦었어.

그래도 규칙을 어긴 게 돼서 감독관한테 불리 가서 종아리를 맞았어. 근데 좀 세게 때려졌는가봐. 그만 뼈가 부러졌던가봐. 종아리도 좀 터지고. 자꾸 덧나. 진물도 나고 안 낫는 기야. 그래도 오줌 요강은 들고 다녔제. 워낙 중환자도 많고 나는 부모도 없이 정신없는 언니하고만 있응께 자꾸 일을 해야제. 아팠지. 얼매나 아팠다고. 그게는 사지 있는 사람은 아프다고 봐 주는 것 없어.

날이 지나가니까 온몸이 불덩어리라. 열이 너무 심해서 어떤 날은 까무라치기도 하고 그랬어. 보다 안 되니까 다리를 끊자 하대. 치료법이 뭐가 제대로 없었어. 살면 사는 기고 못 살고 죽으모 죽는 운명이지. 의대가 있는 데에 병원이 있었어. 아이라, 지금 겉은 의대가 아니고 진짜 의사는 몇 안 되고 거기서 흰 가운 입고 의사 도와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있는 데를 의대라고 불렀어. 해부도 하고 그랬제.

수술실 천장에 커다란 거울이 있었어. 둥글고 큰 거울인데 수술대 위에 누워서 보면 내 얼굴까지 다 보여. 수건으로 얼굴도 안 덮어줬어. 전신마취가 어데 있노. 그냥 허리 아래만 마취해. 수술하면서 저거끼리 웃는 소리, 말하는 소리 다 들어. 그라고 기계 덜그덕 거리고 다리 자르는 소리도 들리고 보였어. 봤지. 거울로 보다가 기절해버렸지, 뭐.

눈 뜨니까 당가에 거꾸로 매달아 놨어. 오른 쪽 다리가 없대. 링겔도 없고 눈 뜨고 물이라도 넘기모 사는 기고 안 그라모 죽는 기라. 나중에 이야기 들은께 몇 시간 동안 눈도 안 뜨고 못 깨어났어. 사람들이 죽었다고 해부실로 옮길라고 했는데, 우리 언니가 가슴이 따뜻하다고, 아직 안 죽었다고 내 가슴 위에 엎드려서 안 비켰어. 사람들이 나를 못 옮겨가게 내 위에 팍 엎어져서 “우리 동생 안 죽었다.”고 울고불고 했던 모양이야. 울 언니가 날 살린 셈이지.

열이 너무 마이 나고 오랫동안 열에 시달리고 나니까 얼굴 살이 축 늘어지대. 그냥 살이 축 늘어지고, 지금 나 봐라. 얼굴이 이리 축 처져서 바위 얼굴 같다 아이가. 웃기는 와 웃노? 내가 예삐다고? 니 거짓말도 잘 한다. 눈도 깜짝 안하고 입도 안 삐뚤어지고 그리 거짓말을 하나? 허허허 우리 아버지가 나 다리 잘리고 난 뒤에 와서 내 얼굴 보더니 “얼굴이 큰 바우 얼굴 같다.” 이라대. 그래가 내가 보니까 진짜 그렇더라. 그 전에는 좀 예뻤겠제? 처음에는 시간이 좀 지나모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안돌아 오더라.

며칠 누워 있었던 것 같애. 열도 내리고 몸을 좀 움직일만 하자 또 요강 비우러 다녔지. 옳은 치료도 없고 누가 있어서 나를 돌봐 주겄노. 우리 언니야 내 옆에 껌딱지 마냥 붙어 있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이라. 목발이 어데 있노? 나무 작대기 하나 주워서 그거 짚고 절뚝거리고 다녔지 뭐. 맞을 때 양쪽 종아리를 맞았거든. 응? 점심시간에 늦었으니까 맞았지. 그게는 규칙이 하도 엄해서 딱 정해진 대로 움직여야 해.

왼쪽 다리도 마이 아팠어. 그래도 그 다리로 안 움직이모 어떻게 해? 누가 밥 먹여주나? 작대기 짚고 오줌이 흐르는 요강 들고 아픈 다리에 힘을 주고 절뚝거리고 다니다 보니 그마 왼쪽 다리도 탈이 났어. 너무 아프고 또 열이 나. 봄에 오른쪽 다리 자르고 난 후로 여름 내내 떨리기도 하고 열도 나고 춥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슬펐냐고? 잘 모리겄다. 슬펐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해 가을에 왼쪽 다리도 마저 잘랐다. 방법이 없었다니까. 요새하고 달랐어. 그라고 그게는 소록도다. 소록도가 어떤 데인지 알기나 하나? 지금 소록도는 그때 소록도가 아이다. 지금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모 우리 인생 아무도 모린다. 나도 가끔씩은 꿈이던가 생시던가 싶기도 하다. 어찌 다녔냐고? 처음에는 엉덩이로 밀고 다니다가 좀 있으니까 나무다리를 해 주더라. 응, 그때도 의족이 있었다.

지금 의족하고는 마이 달라도 걸어 다닐 수는 있었다. 나무로 동구랗게 홈을 파서 그게다 다리를 넣고 끈으로 묶어 다녔다. 처음에는 무겁고 불편해도 그게 아니모 못 걷는다 아이가. 그라께 열심히 연습했다. 나무다리로 다니면서 심부름도 하고 요강도 비우고 우리 언니도 돌봐주고 그리 했다. 나 때린 사람도 미안타 하더라. 그리 될 줄 몰랐다고, 일부러 그리 한 거는 아이라고 하더라. 그라모 됐지. 일부러 그라는 사람이 어데 있노. 미안하다고 했으니까 됐다. 으응, 원망 안한다.

갑자기 사진은 무신 사진이고? 에이, 안된다. 니 얼굴 베린다. 커다란 내 얼굴이 니 옆에 있으모 니 얼굴 베리서 안 된다. 너무 붙이지 마라. 얼굴을 저리 좀 옆으로 해봐라. 니 얼굴이 고운데 나 때문에 베리모 어짤라고 자꾸 옆에 붙어쌌노. 사진? 올리도 된다. 누가 나를 알겄노? 어데다 사진을 낸다꼬? 내 이야기하고 같이 올린다고? 그리해라. 괜찮다. 응,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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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의 습관을 버려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6-2

?<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의 습관을 버려라>[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6-2

박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이 글은 박은미의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2013, 소울메이트 출판사>의 내용을 개제한 것임을 밝힙니다.

 

지금의 행동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

문제는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험공부하기 싫다고 하지 않으면 성적이 낮게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도 철학적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이 하고 싶은 생각 방향이나 행동 방향은 늘 자신에게 편한 방식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편한 방식으로 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고 싶은 대로의 행동’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대로의 행동은 그 행동에 맞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 하려면 ‘그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을 투입해야 한다. 좋은 시험성적을 원하면 ‘시험공부’라는 원인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코넬 대학 존슨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행동과학과 교수(?2014 Samuel Curtis Johnson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

코넬 대학 존슨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행동과학과 교수(?2014 Samuel Curtis Johnson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가 이렇게 머리 쓰면서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편한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놓고는 자신에게 이로운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런 것을 두고 철학에서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라고 한다.

소망적 사고란 생각을 하고 싶은 대로 끌고 가는 것을 말한다. 마땅히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이유 없이 자신의 소망에 따라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의 방식은 대체로 소망적 사고인데, 철학은 이 소망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소망적 사고를 해도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굳이 소망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망적 사고를 하면 일단 마음은 편해지지만 이후에 지속적으로 불편이 야기되고 합리적인 해결이 안 되어 문제가 더 장기화되기 때문에 소망적 사고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 소망적 사고는 결국은 나를 더 힘든 길로 몰아가고 말기 때문이다.

(출처: http://skyfm.tistory.com)

(출처: http://skyfm.tistory.com)

어느 날 로또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 지금까지 나를 괴롭혀 온 사람이 나를 불편하지 않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 어딘가에 나만을 헌신적으로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소망적 사고이다. 오히려 로또가 되는 것은 번개 맞는 확률보다 낮고, 지금까지 나를 괴롭혀 온 사람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생각패턴과 행동패턴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내가 그 혹은 그녀를 헌신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한 나만을 헌신적으로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소망적 사고의 문제를 타인과 갈등을 겪을 때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갈등상황에서 우리는 ‘그 사람은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고 그는 그가 원하는 행동을 하는데, 결과는 나의 행동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고 그의 행동은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나는 그의 마음에 맞게 행동을 바꾸고, 그는 나의 마음에 맞게 행동을 바꾸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에 맞게 내 행동을 바꿀 의사가 없다. 거꾸로 내 행동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상대방이 야속할 뿐이다.

우리는 내 행동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상대방이 나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방이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 마음에 들어해달라고 요구하면 화를 내게 된다. “도대체 너는 왜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그리도 안 해주느냐?” 하면서 원망을 한다.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굉장히 원망하면서도 자신은 그 사람의 마음에 맞게 행동을 변화시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우에는 자신이 행동하는 대로 상대방이 받아들여주길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수용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중논리이다. 자신에게 적용하는 논리와 타인에게 적용하는 논리가 일치하지 않을 때 이중논리를 구사한다고 한다. 상대방이 나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수용해줄 의사가 없다. 나는 되고 너는 안된다는 식이기 때문에 이중논리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중논리를 마음 편하게 구사하면서 상대방은 마땅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을 바꾸어야 하고 또 마땅히 내가 하는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등을 겪는다는 것은 내가 하는 행동과 상대방의 마음, 상대방의 행동과 나의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내 행동에 맞추거나 내 행동을 상대방의 마음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면 어느 편이 쉬운가? 상대방의 마음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다.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행동뿐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행동이지 상대방의 마음이 아니다.

바랄 수 없는 것과 바랄 수 있는 것을 잘 구분해야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려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원인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해오던 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결과,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이 하기 쉬운 행동을 해놓고서는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기를 비합리적으로 소망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지해온 습관대로 행동하면 그동안 겪어왔던 결과만 다시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바랄 수 있는 것과 바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은 아주 중요하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나의 행동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은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길 바라고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바랄 수 있는 것과 바랄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해야 유효한 고민, 필요한 고민을 할 수 있다. 바랄 수 있는 것과 바랄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면, 바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어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바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쓸모없는 바람을 가지는 것을 그만 중단하게 된다.

바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바랄 수 없는 것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면 그 바람의 정도가 약해진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에 여러분의 6살짜리 조카가 “저는 맛있는 건 많이 먹고 싶은데, 화장실은 정말 정말 가기 싫어요.”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화장실에 가야 또 다음에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위와 장을 비우게 될 것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여러분은 그런 허황된 소망을 가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논리적 불가능성을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쓸모없는 바람에 덜 휘돌리게 되기 마련이다. 바랄 수 없는 것이 왜 바랄 수 없는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인식하고 나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느라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어느 설문조사에서 남자들은 세련되면서도 검소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세련되려다보면 소비를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검소하기는 어렵다. 남자들은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감각이 좋아서 저렴한 비용에 세련되게 하고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세련되려면 옷이며 액세서리 구두 등을 다양하게 착용해보고 감각을 키워야 하는데 검소하게 한다고 해도 얼마나 검소할 수 있겠는가? 이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가지기는 실로 어려운 것이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여자가 성격이 안 좋다면? 결국 남자들은 그 세련되고 검소한 사람이 성격도 좋고 외모도 좋고 데이트비용도 내며 애교까지 많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여자들이 책임감 있고 소신 있으며 나에게만 다정다감하고 그러면서도 근육질에 키까지 큰 남자친구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책임감 있고 소신이 있으면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설사 자신의 여자 친구라 할지라도 그 원칙을 어길 경우 비판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여자친구에게만 다정다감하겠는가? 여자친구에게 다정다감한 사람은 다른 여자에게도 다정다감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다정다감함의 특성을 한 명에게만 발휘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발휘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은 나에게 만족할까? 내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그 사람은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을 원하기 마련이다. 바랄 수 없는 것은 바라지 않을 수 있도록 생각을 조절하고, 바랄 수 있는 것은 효과적으로 잘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현명한 길이다. 바라봤자 되지도 않는 일을 바라느라 정작 필요한 일은 하지 못하는 우매함은 이제 그만 날려 버려야 한다.

헤겔미학: 예술을 알지니 예술이 너희를 자유케 할 것 같으냐? <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5

헤겔미학:?예술을 알지니 예술이 너희를 자유케 할 것 같으냐? <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5

이관형(한국예술종합학교)

 

 

근대(modern)?혹은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비판은 사상의 영역에서는 주로 동일성을 향한다.?이때 집중포화를 받은 것은 헤겔이다.?이 강의는“1)동일성이 무엇이며 동일성이 왜 문제가 되는가? 2)동일성에 기초한 철학이라고 비판 받는 헤겔의 예술관의 특징은 무엇인가?”를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나마 살펴보고자 한다.?이를 살펴봄으로써 철학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개념적 파악이 아니라 미감을 통해)?동일성이 과연 극복 가능한지를,?숨이 막히도록 촘촘히 짜인 근대적 삶의 굴레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는지를?(답을 내린다기 보다는 오히려)?되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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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헤겔 미학은 그의 철학체계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그런데 그의 철학체계를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그의 체계를 흔히?‘동일성’의 체계라고 한다.?그러므로?‘동일성’이 무슨 말인지라도 알아봄으로써 그의 체계에 대한 이해를 갈음하고자 한다.?지나치게 피상적·도식적인 이야기가 되겠으나 체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헤겔미학은?‘앙금없는 찐빵’, ‘소없는 만두’일 것이다.1)

1)?파르메니데스의 동일성 논리?-?존재의 옹호와?(개념을 통한)?존재 분할의 반대

-존재의 희미한 빛:?존재의 원초성을 옹호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존재의 찬란한 빛:?존재의 종국적 완성인 동일성,?평등성,?충만성의 옹호

“존재는 쪼갤 수 없다.?왜냐하면 모든 것이 같기 때문이다.?그리고 존재의 응집을 막을 수 있도록 여기 또는 저기에 보다 강한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또 덜 강한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오히려 존재자에 의해 충만되어 있다.”

-“그것들(인간의 잘못된 견해들)에 따라 두 형식들을 명명한다.?이것들 중에 하나는 있으면 안 되는데 이 점에서 그것들은 오류에 빠지고 있다.?그리하여 그것들은 형태를 대립시키고 특징들을 서로서로 분리시킨다.”(파르메니데스 단편)

2)?플라톤의 동일성 논리?-?파르메니데스적 존재의 이데올로기화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 이후 자연철학의 전개-생성(헤라클레이토스),?양(피타고라스),?질(엠페도클레스),?원자들의 양적 결합(데모크리토스)-를 통해 그리고 마침내 아낙사고라스에 의한 존재의 운동에 대한 분리적 파악(운동주체nous와 운동내용)에 이르러 이러한 분리된 자연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원초성)는 이데아가 된다.?즉 진,?선,?미 자체라는 이데아로 규정된다.?현실은 이데아의 모사이기 때문에 진선미의 원형과 같기도 하고(同)?다르기도(異)?하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 이데아와 같은 측면은 긍정·강화하고 다른 측면은 부정·억제하여 원형인 이데아로 부단히 다가갈 수 있다.?이 변증법적 운동을 이끄는 힘은 이데아가 지닌 에로스적 견인력이다.?에로스의 운동과정은 감성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감성을 넘어서는 데에 있다.?이러한 운동이 일어나는 곳은 사회(polis)이며 사회는 통치자,?군인,?생산계급이 피라미드 구조로 조직된 노동 분업의 체제이다.?이에 대해 하이데거는?“파르메니데스에 의해 열림을 시작한 존재가 플라톤에 의해 망각되기 시작했다”고 비판한다.

3)헤겔의 동일성 논리?-?시민사회의 이데올로기?

독일관념론(Der deutsche Idealismus)은 이상주의로도 옮기지만 이데아주의로도 옮길 수 있다.?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의 역사라는 화이트헤드의 말이 생각난다.?헤겔은 훨씬 풍부하고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자신의 철학체계를 완성시켰지만 그 골격은 플라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DSC09008-1헤겔의 논리학의 내용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와 무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질은 엠페도클레스의 질개념을,?무한성은 아낙시만드로스의 개념을,?대자존재(F?rsichsein)는 아낙사고라스의 주관성개념을,?양은 피타고라스의 수와 데모크리토스의 양적 원자론을 다루고 있다?···여기까지가 존재론이다.?본질과 현상,?동일성과 비동일성의 카테고리는 플라톤의 철학을 서술한다.?이에 이르러 존재는 본질과 가상 사이의 반사관계로 발전한다.?이데아의 세계는 본질적 세계이며 현상의 세계는 이데아를 반사 또는 반성할 뿐이다.?이러한 논리의 전개는 이념(Idee)의 차원으로 고양된다.?헤겔은 이념이 생명,?인식(진과 선),?절대이념으로 나누어 전개한다고 본다. ···?생명의 이념은?···?인식의 이념으로 이행에 그 의미가 있다. ···?절대이념은 진과 선의 통일이며 생명은 절대이념에 이르기 위한 단계와?···?절대이념의 운동을 위한 장···이다.?헤겔의 절대이념은 주관성인 의지(선)와 객관성인 대상(진)?사이가 막힘없이 소통되는?···체계인 것이다.”2)

 

2.헤겔 미학의 특징3)

헤겔의 철학체계를 크게 논리학,?자연철학,?정신철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예술을 다루는 곳은 정신철학의 맨 뒷부분 절대정신에서이다.?즉 자연과 정신의 발전도정을 거치는 이념의 자기전개가 가장 최고점에 이르러서다.?플라톤 식으로라면 진선미의 이데아에 도달하는 것이다.?예술은 종교,?철학과 더불어 절대정신의 영역에 속한다.

1)예술은 이념의 감각적 현현(Scheinen)이다.

헤겔의 철학은 자유의 이념의 전개과정에 대한 서술이다.?그러므로 예술,종교,?철학은 자유의 이념이 실현되는 지점이다.?그렇지만 이 삼자 간에도 위계는 있다.?삼자 각각에 해당하는 정신능력은 직관,?표상,?사유이다.?예술은 직관을 통해 이루어지며 감각과 대상에 여전히 의존적이다.?그러므로 삼자 중 가장 하위의 것이다.?표상은 직관보다 우월한 것이지만 직관의 내면화일 뿐이다.?표상은 감각적·대상적 직관을 내면으로 옮겨 놓은 것일 뿐 표상의 내용에는 여전히 감각적인 상이 자리한다.?종교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에 대한 표상을 믿는 데서 성립한다.?그러므로 아직 순수하게 정신적인 것은 아니다.?철학은 사유를 통해 절대자를 개념적으로 파악한다.철학에 이르러서야 신은 그것이 외적인 것(직관)이든 내적인 것(표상)이든 어떠한 감각성·대상성에 의존하지 않고 정신의 순수하고 내면적인 활동(사유)을 통해 파악된다.

2)미학은 예술철학이다.?즉 예술미만을 그 대상으로 한다.?헤겔은 자연미에 대한 예술미의 우위를 주장한다.?예술은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므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라는 점이며 정신적인 것이 자연 산물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술미가 자연미보다?한층?고차적이라는 점만은 이미 주장할 수 있다.?왜냐하면 예술미는?정신으로부터 태어나고 또 거듭 태어난?미이며,?정신과 그 산물들은 그만큼 더 자연과 그 현상들보다 고차적이며,?또 그만큼 더 예술미가 자연미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실로?형식적으로?보면,?인간 머리를 스치는 어떠한 저급한 착상이라도 그 어떤 자연 산물보다?우월하다.”4)

3)내용미학이다.?이념의 내용이 감각적 소재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 예술이다.?그러므로 예술이 드러내고자 하는 아름다움(예술미)의 이념은 다른 말로 이념의 감각적 상,?즉 이상(das Ideal)이다.?각 시대별로 나타난 예술미의 이념,?즉 이상에 대한 개념적 파악이 미학 혹은 예술철학이다.

예술의 형식은 그 내용(즉 이념)에 따라 각 시대적으로 상이하게 규정된다.다른 한편 예술은 이념의 감각화이므로 감각화하는 질료(소재)의 차이에 따라서 각각의 장르를 형성한다.

4)예술형식론과 장르론

상징적 예술형식-이상의 추구,?정신이 자연에 못 미침.

고전적 예술형식-이상의 성취,?정신과 자연의 조화.

낭만적 예술형식-이상의 초월,?정신의 자유는 자연의 제한을 초월함.

①상징적 예술형식

예술형식의 역사는 상징,?고전,?낭만의 삼 단계로 발전해왔다.?상징적 예술형식의 시대는 이상을?‘추구’한다.?신적인 것(절대자)은 아직 분명하게 규정되지 못한다.?이념은 개별 예술작품 속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신적인 것의?“구상화에 대한 한갓된 찾아 헤맴”?내지?“그것을 이루려는 분투와 애씀”만이 있을 뿐이다.?절대자는 개별성의 구체적인 형태 대신에,?정신의 제대로 된 표현이 될 수 없는 어떤 이질적인 자연대상으로 치환될 수 있을 뿐이다.?상장이란 본질적으로 이러한 부정합성을 통해 특징지어진다.?상징을 통해 표현된 것은 낯선 것,?이질적인 것에 머문다.?따라서 이 단계에서 지배적인 미적 범주는 미가 아니라 숭고이다.?왜냐하면 신적인 것을 질적으로 형상화할 수 없는 무능력은 양적인 극단으로,?즉 과도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상징적 예술형식의 전형적인 장르는 건축이다.?즉 상징적 예술은 신들을 위한 장소만을 제공할 뿐,?그 신들을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하지 못한다.

②고전적 예술형식

상징적 예술형식은 내용에 적합한 형상화를 이룰 수 없는 무능력의 산물이다.?이에 반해 고전적 예술형식에서 이런 무능력은 극복된다.?아름다운 것 혹은 미적 이상은 비로소?‘성취’된다.?표현되어야 할 대상과 표현된 것이 완전하게 일치함으로써 고전적 예술형식은 미의 이상 내지 예술의 이상의 진정한 실현을 이룩한다.?따라서 이 단계는 예술의 정점,?미의 정점이다.?형태는 더 이상 낯선 것,?이질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식으로 자기화된다.?절대자는 더 이상 생소한 자연적 형태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 신체의 형태를 통해 개별성으로 표현된다.?왜냐하면 그리스인들은 신들을‘절반의 인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신들을 신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따라서 가능한 최고의,?이념의 감각각 현현이며,?그러한 한에서 예술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종교를 위한 어떤 부가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종교이다.?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종교적 의식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예술 장르는 조각이다.?조각에서는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이제 신적인 것은 건축에서와는 달리 그것이 거처하는 공간을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그리스 신상들 속에서 자신을 위한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③낭만적 예술형식

정신의 발전은 고전적 예술형식에서 성취한 미와 예술의 조화와 완성을 넘어서?‘초월’한다.?즉 낭만적 예술형식에서 예술은 완성이 아니라 해체된다.외견상 이러한 해체는 이미 상징적 예술형식에서 볼 수 있었던 내용과 형식의 대립 및 차이로 되돌아 가는 것이DSC09009-1다.?그렇지만 이러한 새로운 부조화는 예술 이전 단계로의 퇴행이 아니라 예술 일반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 내지 넘어서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상징적 예술형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념과 형상의 불일치와 분리,?부조화가 일어나지만 양자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상징에서는 이념의 결핍이 형상화의 결함을 수반하는 데 비하여 낭만적인 것에서 이념은 정신과 심정으로서 그 스스로 안에서 완성된 것으로 나타나야 하며 이와 같은 더 고차적인 완성에기반하여 이념은 자기의 진정한 실재성과 현상을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서 찾고 또 완성시킬 수 있음으로써 외적인 것과의 통일에서 벗어난다.?장르적으로 낭만적 예술형식은 삼차원적 자연성의 최초의 지양인 회화로 시작하여 시간성 안에서의 순수 내면의 울림인 음들의 질서인 음악을 거쳐,?정신적인 것을 말을 통하여 표상하게 하는 시문학(poesie)에 이르러 종국에는 해체되기에 이른다.

 

3.예술의 종언?

미의 추구인 예술은 이미 고전적 예술형식의 단계로서 종언을 고한다.?그렇다면 숭고로서의 예술은 어떻게 되는가??숭고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절대자 역시 앞서 살펴본 대로 예술이 아니라 철학을 통해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그렇지만 절대자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으로서 예술은 사라지지도 사라질 수도 없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우리는 더 이상 예술작품을 신적으로 경배하지는 않는다.?여전히 고대희랍의 신상들을 탁월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마리아가 아무리 존귀하고 완벽하게 예술적으로 묘사되어 있다하더라도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이제 우리는 그러한 예술작품 앞에 더 이상 무릎을 꿇지 않는다.”(헤겔)

“예술은 절대이념의 영역,?즉 자유의 영역이다.?그러나 그 자유는 철학적 사유의 그것에 필적할 수는 없다.”

 

1) ?동일성에 대한 논의는?“이준모,『밀알의 노동과 공진화의 교육』,?한국신학연구소(1994)”에 의한다.

2) ?이준모, 33쪽

3) ?권대중,?헤겔의 미학, (안에)?미학대계 제1권,?서울대출판부.?주로 이 글을 요약함.

4) ?Hegel,?『Vorlesungen ?ber die ?sthetik?Ⅰ』, in Werke in zwanzig B?nden 13, S.14,?이창환 역(미출간)

 

행복에 이르는 길-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행복에 이르는 길-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시대와 철학 편집위원장)

도봉도서관 인문독서아카데미 2014년 6월 27일 금요일

덕 윤리란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 와중에서도 칭찬과 명예를 듣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비난과 불명예로 시달리는 자들도 있습니다. 20대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을 끝까지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여승무원이나 여선생님의 용기와 희생은 사람들의 귀감이 됩니다. 반면에 칠순을 바라보는 연륜에도 승객과 배를 버리고 도망간 선장이나 희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고위 공직자, 피해자인 어린 학생의 마음에 상처를 주더라도 조난 구조에 방해가 되더라도 취재경쟁에 열을 올리는 기자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세월호

이처럼 관련자들의 용기와 비겁, 칭찬과 비난, 명예와 불명예, 한마디로 미덕과 악덕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됨, 성품이 문제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역사관이나 애국심 논란도 이러한 미덕과 악덕의 범주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악덕과 미덕의 논란은 개인의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에 유교가 있다면 서양의 전통에 덕 윤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덕 윤리를 대표하는 고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 이전에 서양 시민의 윤리관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 요지는 신이 없어도 엄격한 도덕법칙이나 이기심에 호소하지 않고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지성(정신)과 좋은 습관을 바탕으로 윤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강연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우선 고전 그리스어를 우리말로 훌륭하게 번역한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창우·김재홍·강상진 옮김, 이제이북스, 2006)입니다. 그 시대적 배경과 철학적 분위기를 알고 싶다면 <지중해 철학 기행>(클라우스 헬트, 이강서 옮김, 효형출판, 2007)을 추천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소크라테스)

 

서양 고대의 그리스 문화에서 윤리학의 중심 주제는 행동이 아니라 사람됨이며 더 나아가 삶 자체입니다. 다시 말하면 칸트처럼 도덕률에 합치하는 올바른 행동이나 벤덤처럼 쾌락의 양을 늘리는 행동이 아니라 ‘좋은 삶’이 주제입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마케도니아 궁전의 시의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의학과 생물학에 밝았습니다. 동식물에 정통했던 그는 동물적인 생명(zoe)과 인간다운 삶(bios)을 구분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산다는 것은 심지어 식물에게까지 공통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영양을 섭취하고 성장하는 삶은 갈라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감각을 동반하는 삶이 뒤따를 것이지만 이것 또한 분명 말과 소, 모든 동물들에 공통되는 삶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성(logos)을 가진 자의 실천적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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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철학 기행>(클라우스 헬트, 이강서 옮김, 효형출판, 2007)

이러한 인간다운 삶과 관련해서 클라우스 헬트는 <지중해 철학 기행>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 비오스, 즉 삶의 영위는 일정한 습관에 토대를 둔다. 이 습관은 우리에게 본성으로 부여된 것일 수도 있지만 획득될 수도 있다. 특정한 습관을 갖는 것이 과연 좋으냐를 두고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근거를 댈 수 있다. 이처럼 대화를 나누고 근거를 대는 능력을 그리스어로 ‘로고스’라고 한다. 인간은 로고스를 지닌 동물, 로고스를 지닌 생명체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고전적인 인간의 정의로서, 2000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다.”

좋은 삶은 좋은 것을 겨냥합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것(최고선)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eudaimonia)이라고 부릅니다. 이와는 반대의 의견도 있습니다. 칸트의 도덕철학을 현대 민주적 절차주의로 발전시킨 존 롤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정의론>에서 행복보다는 정의가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진리가 사상 체계의 제일 덕목인 것처럼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일 덕목이다. 이론이 아무리 효율적이고 질서정연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면 개혁되거나 폐지되어야 한다. 각 사람정교하고 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기각되거나 교정되어야 하듯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은 사회 전체의 행복이라도 능가할 수 없는, 정의에 기초를 둔 침해불가능성을 갖는다.”

통상적으로 행복은 개인적이라면 정의는 사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주의적 행복을 이야기한 것에 그치고 만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윤리학은 정치학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폴리스(그리스 도시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의 행복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으뜸가는 학문, 가장 총 기획적인 학문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치학이 바로 그러한 학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폴리스 안에 어떤 학문들이 있어야만 하는지, 또 각각의 시민들이 어떤 종류의 학문을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를 정치학이 규정하기 때문이다.”, “또 정치학은 나머지 실천적인 학문들을 이용하면서, 더 나아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고 무엇을 삼가야만 하는지를 입법하기에 그것의 목적은 다른 학문들의 목적을 포함할 것이며, 따라서 정치학은 목적은 ‘인간적인 좋음’일 것이다. 왜냐하면 설령 그 좋음이 한 개인과 한 폴리스에 대해서 동일한 것이라 할지라도, 폴리스의 좋음이 취하고 보존하는 데 있어서 더 크고 더 완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좋음을 취하고 보존하는 일이 단 한 사람의 개인에게 있어서도 만족스러운 일이라면, 한 종족과 폴리스에 있어서는 더 고귀하고 한층 더 신적인 일이니까. 따라서 우리의 탐구는 일종의 정치학적인 것으로서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길게 인용된 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자신의 탐구를 윤리학(?thik?)이라고 부릅니다. 에티케는 성품과 습관을 의미하는 에토스(ethos)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즉, 좋은 성품의 사람이 되려면 좋은 행동을 하도록 습관이 길러져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그의 윤리학은 개인의 행복에 그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국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미덕(탁월함, aret?)을 향한 올바른 지도를 받으려면 올바른 법률에 의해 길러지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에서 올바른 일을 하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데에 강제적인 규제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삶을 사는 데는 국가에 의한 강제적인 법률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 따르면 “다중은 말에 따르기보다 강제에 따르고, 고귀한 것에 설복되기보다 벌에 설복되기 때문이다.” 폴리스의 입법자들은 시민들의 교육과 종사할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동의 보살핌이 폴리스가 제정한 법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를 고려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의 목적을 ‘인간적인 좋음’(agathon)이라고 한 이유가 명백해집니다. 그래서 그에게 인간은 정치적(사회적, politikon) 동물인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에게 좋은 삶은 국가 안에서의 시민적인 삶이지 국가에서 벗어난 개인의 삶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좋은 사람은 시민의 의무를 다하는 덕을 갖춘 사람이지 자신만의 안녕과 평온을 추구하는 무책임한 개인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철학자 중에서 개인주의적인 자유주의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공동체주의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를 바탕으로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는 <덕의 상실>의 저자인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와 <다문화주의>를 주창한 찰스 테일러,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해진 마이클 샌델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고려하면 마이클 샌델이 왜 시민의 미덕을 강조했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승객을 버리고 도망간 선장과 무책임한 고위공무원들은 시민의 미덕, 특히 사회적 리더로서의 의무를 저버렸기에 그토록 지탄과 원망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정치적인 것을 가르친다고 선전하는 소피스트들은, 실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학은 수사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학은 목적은 지식(앎)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윤리적인 덕도 지식이 아니라 활동(ergon)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그는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 선생님과 스승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인 <프로라고라스>에서 소크라테스는 덕은 앎(인식)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아는 자가 가장 좋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한 최선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리더를 플라톤은 철인왕(哲人王)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적인 좋음은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입니다. 그 좋음이라는 것도 완전한 삶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아는 것보다 좋은 행동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는 지식 중심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친구와 진리 둘 다 소중하지만, 진리를 더 존중하는 것이 경건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데는 지식보다는 좋은 습관이 요구됩니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드는 것도 아니며 하루가 봄을 만드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듯 하루나 짧은 시간이 지극히 복되고 행복한 사람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덕은 행위의 축적에 의해, 다시 말해서 습관에 의해 획득됩니다.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약 폴리스에서 입법자들이 시민들에게 좋은 습관을 들이게 하면 좋은 시민들이 육성될 것입니다. 이러한 폴리스는 ‘좋은 정치체제’(politeia)를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행복한 사람은 잘 행위하는 사람이고 잘 사는 사람이다. 행복은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입니다. 따라서 행복은 단순히 외적인 운명이나 우연에 의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간적 삶에 추가적으로 필요할 뿐이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누구나 배움과 노력을 통해 인간적인 덕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연이나 운명에 의해 주어지는 것과 달리 이러한 행복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일 수 있습니다. 소나 말 등 동물을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점에서 아직 어린이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 그 나이에는 덕에 따른 행동을 ‘완전하게’(성숙하게)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좋은 습관을 쌓지 못한다면 나이가 반드시 성숙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처참하게 물욕만 남은 비겁한 늙은이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운이 좋지 않더라도 활동이 결정적이라면 “지극히 복된 사람들 중에서 누구도 비참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가증스러운 일이나 비열한 행위들을 하지 않을 테니까. 또 우리는 진정으로 좋고 분별 있는 사람은 모둔 운들을 품위 있게 견뎌 낼 것이라고, 현존하는 것으로부터 언제나 가장 훌륭한 것들 행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혜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습관을 들이고 경험을 쌓아야 얻을 수 있으므로, 경험이 부족한 청년이 아니라 성숙한 어른의 덕목입니다. 성숙한 어른은 경험 많은 의사처럼 최고의 규범이나 이론을 곧바로 현재 상태에 적용하지 않고,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여 여기에 알맞게 규범을 적용합니다. 레시피대로가 아니라 손맛으로 요리하는 숙련된 요리사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그 상황에 어긋나는 극단적인 행동 방식을 억제하고 중용(中庸)의 태도를 취합니다. 다시 말해서 중용이란 과함이나 부족함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mesotes)’입니다. 이 가운데를 수학적인 도식으로 계산해낼 수 있는 평균값이 아닙니다. 중용은 그 상황에 맞게 새롭게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용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탁월함(미덕)입니다. 초보자와 달리 원숙한 지혜로운 어른이야말로 원칙과 상황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냅니다. 이는 새로운 이상에 사로잡혀 조급한 마음으로 당장이라도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미숙한 청년의 태도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중용이 타락하면 이 말은 자기 세력을 강화하는 데 비범한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노회한 정치가나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변신하는 영리한 기회주의자, 그리고 나서지 않고 엎드려 복종하는 비겁한 사람들의 처신을 치장하는 데 쓰일 뿐입니다.

행복한 삶이란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과 관련해서 세 가지 종류의 삶을 제시합니다.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삶, 정치적인 성취를 이루는 삶, 지성적인 관조(명상)를 하는 삶이 그것입니다.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짐승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며 완전히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입니다. 정치적인 명예나 덕을 추구하는 삶 역시 불완전할 뿐입니다. 명예는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의존할 뿐이며 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고 큰 불행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정치권력과 이성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 외에도 그는 부를 추구하는 삶을 언급하다가 이를 재빨리 취소합니다. 그가 보기에 부를 추구하는 삶은 일종의 강제된 삶일 뿐이며, 부란 다른 것을 위해 수단일 뿐이니 진정으로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조적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성이 ‘인간’인 한에서, 인간에게 있어서도 지성을 따르는 삶이 가장 좋고 가장 즐거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철학(philosophia)하는 삶이 그런 삶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그의 덕 윤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의 시민에는 노예와 여자가 제외됩니다. 당연히 그리스어를 하지 못하는 야만인도 제외됩니다. 그의 시민이란 좋은 집안에 태어나, 잘 양육을 받고, 행운이 뒷받침되는 남성 어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장유유서(長幼有序)를 강조하는 유교도 같은 문제점을 앉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공동체주의자들은 전통적 공동체주의에서 수직성과 배타성을 제거한 새로운 공동체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를린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는가 [베를린에서 온 편지 5]

베를린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는가 [베를린에서 온 편지 5]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훔볼트 대학교의 나치 희생자 추모비

<사진1> 훔볼트 대학교의 나치 희생자 추모비

재작년 겨울이었다. 학교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따스한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학교 본관건물 뒷마당을 걷고 있었다. 눈이 내려 교정 전체가 새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본관 뒷마당 한쪽 구석에는 히틀러 파시즘에 맞서 저항하다 죽음에 이른 훔볼트 대학교 학생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비석 역시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이날 비석 바로 앞에는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높여 있었다. 새하얀 눈에 덮인 비석과 꽃다발의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애잔하게 추위에 떨고 있었지만, 색색의 꽃송이들은 지금도 누군가 희생된 자들, 쓰러져간 자들을 추모하고 있음을 꿋꿋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파시즘과 세계대전, 유태인 학살 그리고 분단과 냉전이라는 독일 현대사의 흔적들을 잊지 않고 간직하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벽에서는 파시즘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벽화를, 거리에서는 조각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바로 이렇게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들의 흔적들을 보존하려는 베를린의 노력은 이 도시가 현재 전 세계인들로부터 각광을 받는 새로운 현대예술의 메카이자 관광도시로 급부상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예컨대 베를린에서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Kaiser Wilhelm Ged?chtniskirche)는 이 도시를 새로 찾은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전달될까?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사진2>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거대한 교회와 호화로운 궁전이 주요 관광지로 손꼽히는 여느 유럽 도시들과는 달리, 베를린의 전통적인 관광지인 이 교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맞아 파괴된 상태 그대로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1895년 완성된 이곳은 프로이센 황제 빌헬름 2세가 독일 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그의 할아버지 빌헬름 1세를 기리기 위해 만든 교회다.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계기로 독일은 소연방들로 분열되어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봉건적인 잔재 속에서 낙후된 상태를 타파하고 급속한 근대화와 공업화를 이룩하여 유럽 최강대국으로 급부상하였다. 이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이러한 독일 통일과 그 이후 독일의 번영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으며, 그에 걸맞게 113m의 높이와,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큰 교회당을 가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대국 독일의 위용을 자랑하던 이 교회는 2차 대전 당시의 폭격으로 크게 훼손되었고,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예배당과 잘려나간 첨탑의 꼭대기는 급격한 근대화 이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나아가 파시즘과 전체주의를 향해 치달아 결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폐허와 분단이라는 처참한 상태로 전락해버린 현대 독일의 역사에 대한 독일인들의 트라우마를 반영하는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이 트라우마를 가리기 위함이었는지, 전쟁 이후 서베를린 당국은 도시 전체의 재건에 맞추어 교회 역시 재건축을 시도했다. 그러나 서베를린 시민들은 2차 대전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교회를 훼손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시당국의 재건축 계획을 좌절시켰다. 결국 이 교회는 오늘날까지도 폐허가 된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전쟁의 참상을 널리 알리기 위한 기념 교회로 관리되고 있다. 그것은 독일이, 그리고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과거를, 그리고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홀로코스트 기념비

<사진 3> 홀로코스트 기념비

시내 중심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은 베를린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을 상징하는 이 건축물 바로 옆에는 지난 2005년 세워진, “살해된 유럽의 유태인들을 위한 기념비”, 일명 “홀로코스트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축구장 두 개 크기인 13,100 m² 면적의 부지 위에 총 2711개의, 서로 다른 크기로 죽은 자의 관을 형상화한 모양의 조각들이 세워져 있고 관광객들은 각 조각상들 사이로 이동하면서 이곳을 관람할 수 있다. 이곳이 지어질 때 ‘과연 시내 한 복판에, 그것도 그렇게 넓은 땅 위에 꼭 유태인 기념비를 지어야 하는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이렇게 시내 중심이자 베를린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독일 연방의회 건물 바로 인근에, 그것도 드넓은 부지 위에 조성된 이 기념비들은 독일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과거의 비극을 잊지 않고 여전히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노이에 바헤

<사진 4> 노이에 바헤

이 홀로코스트 추모비에서 멀지 않은 곳이자 (서울의 종로처럼) 베를린에서 가장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거리에는 훔볼트 대학교, 국립 오페라 극장, 베를린 돔과 같은 주요 역사적인 건물들이 몰려 있다. 그런데 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이러한 역사적 유적들 한 가운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조각상이 건물 안쪽에 전시되어 있다. 보통 노이에 바헤(Neue Wache)라고 불리는 이 건물의 내부에는 독일의 저명한 사회주의자이자 여성 반전 예술가인 케테 콜비츠(K?the Kollwitz)가 조각한, 쓰러진 병사 아들을 안고 있는 피에타상이 놓여 있다. 일체의 조명이 없는 커다란 건물 내부에는 어둠이 깔려 있고 오로지 입구와 천장의 틈새를 뚫고 온 햇빛만이 이 피에타상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우리가 전쟁에 내보내려고 아이를 낳은 건 아니다!” 라는 말을 남긴 콜비츠는 그 자신이 당시 열여덟이던 둘째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어머니였으며, 이 피에타상은 따라서 콜비츠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강한 호소력과 무게감은 이러한 그녀 자신의 슬픔과 상처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쾰른의 콜비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녀가 만든 반전 판화에는 “전쟁은 결코 다시는!(Nie wieder Krieg!)”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그 스스로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로서 전쟁의 폭력과 광기를 비판하고 반전을 호소하는 그녀의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해 그 호소력을 조금도 상실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이 발사한, 시신의 뼈까지 태워버리는 악마의 무기 백린탄을 실은 미사일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이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우크라이나 반군이 군항기로 오인해 저격한 민간 비행기에 탄 2백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들이 전원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오는 이 순간에도 케테 콜비츠가 조각한 피에타 상의 어머니는 아들의 주검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반제 회의가 열린 저택

<사진 5> 반제 회의가 열린 저택

6백만 명의 유태인과 소수자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라는 참담한 비극이 탄생한 곳은 베를린 남동쪽에 위치한 커다란 호수 반제(Wannsee) 인근의 별장이다. 1942년 1월 20일, 나치 친위대(SS)의 제국보안국 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는 나치 당, 친위대, 경찰의 고위 간부들을 이곳으로 소환한다. “유태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을 논의하는, 이른바 “반제 회의(Wannsee Konferenz)”의 시작이었다. 이 별장은 지금은 유태인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치의 거물급 고위직 간부들이 아우슈비츠, 다카우 등 죽음의 수용소에서 행해진 가스실 대량학살이라는 끔찍한 “최종해결책”이 논의된 곳이라서 그런지, 이곳의 정문을 들어서면 음산하고 오싹한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내부에서는 나치 시기 선전부 장관 괴벨스(Goebbels) 등에 의해 이뤄진 유태인 혐오 연설을 소개한 당시의 신문 기사, 유럽 전역에서 희생된 유태인들의 현황 등이 전시되어 있고 관람 코스의 맨 끝에는 이곳에서 유태인 대학살을 결정한 나치 친위대와 게슈타포의 최고 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를 비롯한 나치 전범의 후손들이 자신의 할아버지, 선조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들이 글과 영상의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반제 회의에서 회의록을 작성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점령지역 유태인들뿐 아니라 동맹국, 중립국, 적국 등지의 유태인을 모두 합쳐 총 1천 1백만 명의 유태인들을 제거할 계획을 수립했다. 하인리히 히믈러를 비롯한 대부분의 회의 참석자들은 전쟁 이후 열린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전범재판을 받지만, 회의록 작성자이자 유태인 수송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도주하여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하다 1960년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들의 집요한 추적 끝에 체포되어 이스라엘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이 재판을 기록한 한나 아렌트는 오로지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하는 아이히만에게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하고, 전체주의적 지배란 이처럼 무반성적이고 모든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벗어난, 자율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주체들이 등장하는 “익명의 지배”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우리가 익명의 지배라는 현대 사회의 메커니즘이 강요하는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 반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분명한 평가와 관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한 사회의 노력은 끔찍한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반제 저택의 유태인 기념관에서 본, 하인리히 히믈러의 손녀가 진술한 내용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학교에서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나치 범죄자로 배울 때 친구들이 자신의 얼굴을 쳐다본 순간을 기억하는 하인리히 히믈러의 손녀는, 그러나 자신은 나치 정권을 수립하고 유태인 대학살에 기여한 자신의 할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으며, 독일이 두 번 다시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행한 잘못들이 낱낱이 알려져야 하고 자신도 이 일에 동참할 것이라 말한다. 과연 한국에서 친일파 조상을 두고 그들의 권력과 재산을 물려받아 지금도 기득권 지배세력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사진 6>

이 사진은 내가 사는 동네의 이웃집 대문 앞에서 찍은 것이다. 독일의 가정집이나 공공건물 앞에서는 이러한 작은 장식들이 바닥에 새겨져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 건물에 살다가 나치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다. 사진에 나온 집의 경우엔 1891년생인 아르투어 단넨바움이 1920년생인 딸 일제, 1925년생인 게르다와 함께 살다가 셋 모두 테레지엔슈타트에 있는 수용소로 끌려가 결국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그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독일의 자세는 오늘날 과거사를 정당화하고, 이를 군국주의적 헌법 재해석과 재무장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일본의 아베 정권과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만이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국무총리 후보가 되고, 일본 식민지배를 미화한 극우 성향의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옹호한 사람이 교육부 장관 후보가 되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사회 전체의 노력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과 투쟁의 쟁점이 된다. 지나간 일 무엇 하나도 이 땅에서는 쉽게 기억되지 않는다. 현재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미화하거나 망각하려고 시도한다. 이에 맞서 ‘잊혀져선 안 될 것 들’을 ‘잊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는 현실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그러나 역사를 망각하는 한, 비극적인 역사는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기억하기 위해 싸우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과거를 대하는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벤저스》, 《저스티스 리그》, 《왓치맨》과 《불안한 현대 사회》: 현대의 불안, 약자의 연대? <벙커1> 1

《어벤저스》,?《저스티스 리그》,?《왓치맨》과?《불안한 현대 사회》:?현대의 불안,?약자의 연대??<벙커1> 1

유현상(숭실대 강사)

 

 

 

 

1. B급 문화로서의 슈퍼 히어로 영화

-?코믹스 혹은 만화는 판타지나?SF?장르와 더불어 전형적인?B급 문화에 속하는 영역

어벤져스-?한동안?B급 문화는 일부 매니아들의 문화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대중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고 있음

– B급 문화의 부각은 대중들의 눈높이를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현상

-?아이들이나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들이 즐기기 위한 판타지로도 적절

-?만화를 원작으로 한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B급 문화의 복합적 요소 구비

– B급 문화의 한 장르로서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대체로 선악의 구도가 단순

-?슈퍼 히어로들은 그들의 초능력과는 달리 정치적 이해관계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무능력하기까지 함

-?아동기적 상상은 한편 인간의 근원적 불안 의식을 원형적으로 보여 줌

-?슈퍼 히어로에 대한 상상은 불안 의식의 원형

-?슈퍼 히어로의 이중고는 현대인들이 처한 이중고와 다르지 않음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부터 야기되는 내부의 적과 그들이 물리쳐야 할 거대 악(惡)

-?그들의 연대(solidarity)는 거대 악을 넘어서는 악,?혹은 거대 악들의 연합에 상응하는 전술

-?그들의 연대가 전략이 아니고 전술인 이유는 일시적인 연대이기 때문

-?슈퍼 히어로들의 캐릭터는 본질적으로 연대에 맞지 않음

-?이타적이고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한 할약을 하지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일상적 삶은 외면

-?슈퍼 히어로들의 고립된 일상은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연상하게 함

 

?2.?초능력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슈퍼 히어로의 등장에 대한 근원적 관심은 최초의 표현 방식이 아니라 상상의 문제

-?인간의 능력과 힘으로 대응할 수 없는 삶의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의 한 형태

-?자연 현상에 대한 신화적 설명과 유사성을 갖춤

-?플라톤의?『국가』에 등장하는 전설?‘기게스의 반지’와 우리나라의 전래 동화인?‘도깨비 감투’?이야기는 일종의 초능력을 얻게 되는 인간이 슈퍼 히어로가 아닌 인간의 욕망을 지적하는 내용

–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을 상징

-?초능력은 그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

-?초능력은 슈퍼 히어로들의 능력이자 슈퍼 악당들의 능력

-?슈퍼 히어로에 대한 요청은 거대 악,?즉 슈퍼 악당의 존재에 의해 설득력을 갖춤

-?인간의 무력과 한계 상황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은 맞서야 할 대상을 더욱 강력한 것으로 인지하게 함

-?슈퍼 히어로에 대한 요청은 상상 속에서 바로 그러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판타지

-?슈퍼맨의 경우 자연마저도 변화시켜 인간을 구원

 

3.?슈퍼 히어로,?하지만 소외된 약자

-?슈퍼 히어로라는 존재는 거대 악이 사라지는 순간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

-?슈퍼 히어로들을 끝까지 응원하는 것은 아이들과 직접적인 도움을 받은 여성

-?대개의 영화에서 슈퍼 히어로의 진정한 적은 정치권력

-?근원적으로 영화 속 슈퍼 히어로들 역시 소외로부터 자유롭지 않음

-?현대의 소외된 현실은 모든 이들의 삶에서 근원적인 문제

-?슈퍼 히어로들에게 초능력은 동경의 대상이자 소외의 원인

-?소외는 환대받거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

-?역할의 상실,?존재감의 무시,?성과에 대한 불인정 등등은 모두 그 구체적인 형태

-?인간의 수단화를 보여 주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

-?소외 문제를 가장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독일 철학자 칼 마르크스

-?하지만 그 이전에 역시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인간을 오직 목적으로만 대하고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라는 언명을 함

-?칸트의 언명은 직접적으로 소외를 경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을 도구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선구적으로 주장

-?슈퍼 히어로들은 현대인들이 처한 불안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줌

-?슈퍼 히어로들의 소외는 그들이 평범한 인간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4. 현대 사회의 상황

-?캐나다의 철학자이자?『불안한 현대 사회(2001)』(The Ethics of Authenticity, 2000)의 저자인 찰스 테일러는 현대의 상황에 대해?‘불안’이라는 말로 함축

-?테일러는 불안의 원인으로?‘개인주의’, ‘도구적 이성의 지배’,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의 상실’?등을 제시

-?현대가 안고 있는 불안의 원인들은 인정을 방해하고 소외를 초래

-?인정의 문제는 근대 철학 이후에 등장한 중요한 주제 중 하나

-?타자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그 타자가 나와 대등한 존재이상이어야 한다.?따라서 인정의 문제가 개개인의 생존과 구체적으로 결부된 역사적 조건은 근대 이후

 

5. 인정의 정치

-?테일러는?[자아의 원천들]에서 근대적 자아의 정체성이 지니는 특징적인 구성요소를 타인들의 복지를 고려하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모든 사람이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

-?근대적 자아,?혹은 근대 이후 인류가 지니게 된 이러한 생각들은 개인주의적인 배경과 더불어 인정의 문제를 구체화시키는 배경

-?자본주의의 고도화가 이루어지고 시장의 지배가 강화될수록 인정의 문제는 더욱 절실한 문제

-?현대 사회가 다문화하고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의 문제에 대한 적극적 접근을 요청

-?테일러는 인정(recognition)의 문제를 현대 정치의 핵심으로 보았다.

-?인정은 관계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개인들 간의 문제이며 공동체와 개인의 문제다.

-?인정의 문제에 대해서 테일러가 핵심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마땅한 인정이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테일러는 인정의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으며,?현대에서의 정체성의 문제는 진정성의 개념과 더불어 고찰해야 한다고 보았다.

-?정체성이 인정의 문제와 연관되는 이유는 마땅한 인정에의 결여가 정체성의 왜곡에서 비롯되기 때문

-?정체성 왜곡의 형태는 인정에의 요구를 주장하는 다양한 현대 정치의 진영에서 제시

-?여성주의 입장에서는 가부장제 문화가 여성의 정체성을 왜곡하고,?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하는 그룹에서는 백인 우월주의가 흑인의 정체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강요

-?정체성의 왜곡이 마땅한 인정의 결여를 초래

-?테일러는 마땅한 인정과 정체성의 요구는?‘평등한 품위의 정치’와?‘차이의 정치’에 의해서 발전되었다고 이해

-?평등한 품위의 정치는 차이의 정치에 대해 비차별의 원리를 위배한다고 비판하며,?차이의 정치는 평등한 품위의 정치가 사람들을 참되지 않은 동질성의 틀로 밀어 넣어 정체성을 부정

-?평등한 품위의 정치를 보여주는 절차적인 자유주의는 개인적인 목적과 소수의 집단적인 목적 사이에서 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이 테일러의 생각

-?다민족 사회에서 상이한 문화에 대해서 테일러는 상이한 문화들을 살려 두는 것만이 아니라 그 가치를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

-?승인의 방식이나 태도가 결코 시혜적이거나 평등한 존경의 관점은 배척

-?테일러는 다른 문화에 대한 가치 평가 혹은 마땅한 인정을 위해서는 지평 융해의 접근을 역설

-?다른 문화에 대한 섣부른 존경이나 호의적인 태도 역시 오만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한 태도는 또한 이미 그러한 호의적인 평가를 할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며 이러한 입장에서의 평가는 다분히 균질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테일러는 가다머의 지평 융해의 방법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테일러의 표현대로?‘세계적인 차원과 뒤섞인 각각의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다른 문화에 대해서 좀더 개방적인 입장에서 연구를 착수해야만 할 것이다.

-?테일러는 헤르더의 말을 빌어 다양한 문화는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위대한 조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 동의

-?테일러가 말하는?‘인정의 정치’는 크게 다양한 개인의 정체성과 인정에 관한 문제와 다양한 문화의 정체성과 인정의 문제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개인의 경우에 정체성과 인정의 문제가 자기 표현을 바탕으로 한 대화적인 진정성이 핵심이라면,?문화의 경우에는 지평 융해를 통한 비교문화 연구가 핵심

 

6.슈퍼 히어로의 연대와 약자들의 연대

-?모든 형태의 연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연대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

희망 버스-?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자 연대는 단순한 일차적 연대

-?현대 사회에서는 연대의 주체들이 처한 상황과 문제의식이 모두 차이를 보일 수 있다.?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인 관계의 양상도 빠르게 변화한다.?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연대의 현실적 요청은 더욱 증가

-?슈퍼 히어로들의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현실의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테일러는 진정한 연대는 자발성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파악

-자발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초는 개인들이 자기 결정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함

-개인적인 자기실현만을 도모하려는 삶의 태도에서는 진정성이 출현할 수 없고 진정성이 없는 개인은 자기 결정의 자유를 행사하지 못함

-연대는 물질적 삶의 조건 만이 아니라 모든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인정의 획득을 필요로 하는 사람 혹은 공동체가 취할 수 있는 인정 투쟁의 효과적인 전략

-연대란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한 정치적인 삶의 이슈에 대해서 공동의 행동을 결의하는 것이다.?여기서의 결의는 각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약속하는 정치적 판단의 공표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진정한 연대성은 삶의 고통에 대한 일정한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하여 객관적 해결책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 ‘연대감’에 대한 인식은,?다양하게 규범화된 역할들을 통해 우리가 서로에게 관련되는 방식을 넘어서 우리는 다양한 측면을 지녔지만 함께 결합되고 근본적으로 평등한 인간 존재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직관이다.?약자의 권력에 합법성을 부여하고,?뒤바뀜과 위반의 순간에 돌발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이와 같은 근원적 공동체이다.”(찰스 테일러)

 

 

 

나비의 삶인지 나의 삶인지? : 『장자』에서 보는 인간의 삶 <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4

나비의 삶인지 나의 삶인지? :?『장자』에서 보는 인간의 삶 <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4

전호근(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우언의 철학자,?장자

 

 

왜 우언인가?

[장자]는 전편의 대부분이 우언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우언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장자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그렇다면 장자는 왜 이런 식의 우언 형식을 택했는가??우언은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고,?저렇게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치적 박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입니다.?장자 텍스트의 행간에는 물음표가 많이 있습니다.?장자가 던지는 질문이 도처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피(彼)와 시(是)를 주제로 한 이야기에서 장자는?‘저것’과?‘이것’이 각자의 관점에 따라 바뀐다고 지적합니다.?이것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이것이고 저것이 저것이지만,?저것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저것이 되고 저것이 이것이 된다는 거죠.?그리곤 다시 이것과 저것을 말하고 있는?‘나’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여기서 나는 피(彼)인가,?시(是)인가??이처럼 세상에서 원칙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할 뿐만 아니라 그런 회의를 하고 있는 자신마저도 의심하는 치열한 사유를 보여줍니다.

제물론의 유명한 호접몽 이야기도 그래서 가능한 것입니다.?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가볍게 날아다녔는데 그렇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워낙 꼭 맞아서 전혀 장자인줄 몰랐다지요.?그리고는 나비와 장주는 반드시 구분이 있을 터인데,?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이처럼 꿈을 통해서 현실까지 의심하는 방식은 장자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서사구조입니다.?심지어 꿈 속의 꿈 이야기를 하지요.?한자?‘覺’은 잠에서 깬다는 뜻으로 읽을 때는?‘교’로 발음하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으로 읽을 때는 것은?‘각’으로 발음하는데요,?장자는 잠에서 깨는?‘교’를 통해서 잠에서 깬 사람이 꿈을 비로소 허상인 줄 알게 되는 것처럼,?깨우침 곧?‘각’을 통해서 우리가 의심의 여지없이 현실이라고 여기는 삶도 사실은 허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우리가 사는 세상을 꿈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올바른 것이 사실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그렇지만 장자는 이조차도?‘거짓일까?’하고 빠져나감으로써 끝까지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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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느 편이야?

장자가 문헌이나 학자들에 따라 송나라 사람이나 위나라사람,?또는 초나라이라고 기록이나 주장이 엇갈리는 것은 장자가 활동한?‘몽(蒙)’이라는 지역이 이들 세 나라가 번갈아 가며 점령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그런 특수한 조건은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때그때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게 됩니다.?초나라가 다스리는 상황에서?‘초나라 고홈’이라고 외치면 생존하기 어렵겠지요??그렇다고 무작정?‘초나라 만세!’를 외치면 위나라가 점령할 때 어떻게 살겠어요.?생각이 많아질 수밖에요.?초나라가 들어와서 초나라가 좋으냐고 물어보면 좋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이처럼 여러 나라가 번갈아 지배하다 보니 한 나라를 꼬집어 좋다고 말할 수 없고 그저?‘좋은가?’하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사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많은 분들이 이 나라의 불행한 현대사에서 장자와 같은 경험을 해 봤을 겁니다.?예를 들어 이청준 작가의 단편작품 중에서 점령군이 어둠 속에서 주민에게 총을 들이대며 어느 편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상대방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국군인지,?인민군인지 알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목숨이 걸린 대답을 해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칸트의 정언명령처럼 거짓말은 하면 안 되니까 사실대로 대답하시겠습니까??아니면 그냥 총든 편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사실 요즘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다만 요즘은 총 들고 묻는 게 아니라 돈 들고?“너 어느 편이냐고”묻지요.?그러면 많은 사람들이?‘돈든 편’이라고 대답하지요.?총보다 돈이 더 무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이런 고민이 장자가 우언을 창작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장자가 살았던 시대는 시공간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없을 뿐 더러 때로는 말을 바꾸기도 해야 살아남는 세상이었던 겁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자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바로 이런 이유로 고도의?‘문학적 장치’가 필요하게 됩니다.?그러므로?[장자]는 글쓴이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열려 있는 텍스트’로 보고 그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식인의 운명

이처럼 장자의 우언은 지극히?‘정치적’인 이유로 탄생한 것입니다.?그러므로 단순히 재미를 위한 문학적 장치로서의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생존을 건 정치적 고민이 담겨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참 어렵지요.?예부터 자신이 쓴 글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이른바?‘문자옥’이라고 하죠.?공자나 맹자처럼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천하를 돌아다니는 것은 지식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당시 권력자들은 사람을 너무나 쉽게 죽였거든요.?예를 들어 진나라 헌공은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음식을 개에게 먹인 후 개가 죽자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그 음식을 기어이 사람에게도 먹어보게 한 후 사람이 죽자 비로소 독이 들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후대의 현군으로 알려진 당나라 태종도 아끼던 신하이자 당시의 문장가였던 장온고를 순간의 오해로 하루아침에 죽이고 말지요.?물론 그 뒤에 크게 후회하고서는 사형을 청할 때에는 반드시 세 번 주청하도록 한 이른바?‘삼복주제도’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오지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명망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오히려 늘 시대의 시험을 받아야 했습니다.?후한말기의 채옹은 동탁의 부름을 받고 몸이 더럽혀 지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의 사람이 됩니다.?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런 시대에 살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늘 질문을 하게 됩니다.?나는 과연 보편적 가치관을 지키면서 시대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가하는 물음을 갖게 되지요.?일제강점기 이 나라의 지식인들 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친일행위를 했다고 한 사람들이 많지요.?그런 지식인은 아주 작은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시대적 상황에 대한 변명을 이해한다손 쳐도 그렇게 변절하면서 살아남든가,?아니면 죽든가 둘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것은 선택입니다.?물론 그 시대에 독립운동 자금도 조금씩 대주고,일본에 비행기도 만들어 바치고 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도 있지요.?지금에 와서 그러한 친일행적을 처벌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이전에 그런 사실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지요.

장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런 시대적 배경 하에서?‘우언’의 방식으로 남겼습니다.?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우언은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고 저렇게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장자의 의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장자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한 마디만 하고 끝내면 알 수 없는데 같은 이야기를 두 번,?세 번 반복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언의 방식을 취했더라도 자세히 읽으면 장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자]의 제1편 첫 장에 등장하는 우언은 물고기가 새가 되는 이야기입니다.?첫편의 제목은?‘소요유(逍遙遊)’인데?‘유(游)’는?‘논다’는 뜻입니다.?온 천하가 전쟁에 미쳐 날 뛰는 시대에 어떻게 노는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요??놀 뿐만 아니라 낮잠 자는 이야기를 합니다.?장자는 소요유편에서?‘소요’를?‘침와(寢臥)’?즉, ‘낮잠 잔다’는 말과 짝을 이루어 쓰고 있거든요.?결국 장자는 첫 편부터 낮잠 자면서 노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노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가치 기준을 바꿔야만 가능해집니다.?만약 맹자라면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는데 무슨 노는 얘기인가하고 비판했을 것입니다.?맹자는 절대로 노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사람이거든요.?소요유편에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는 대붕(大鵬)의 이야기입니다.?이 이야기는 장자에 세 번 등장합니다.?그러므로 대붕의 이야기를 세 번에 걸쳐 읽다 보면 장자의 생각을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자의 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묻다

 

허망하고 또 허망한 존재 이야기

[장자]?제물론편 제5장의 주인공은 그림자입니다.?아니 그림자의 그림자입니다.?그림자는 영(景)이고 그림자의 그림자는 망량(罔兩)입니다.?망량의 경우는 비슷한 명칭인 이매망량(?魅??)이 춘추좌씨전에 나오는데 이매는 산귀신이고 망량은 물귀신으로 풀이됩니다.?장자의 망량은 발음만 같고 장자가 그림자의 우의를 담아서 만든 말입니다.?망량(罔兩)의 망(罔)은 허망하다는 뜻인 망(亡)의 가차입니다.?양(兩)은 둘이라는 뜻이죠.?그러니 망량은 망이우망(亡而又亡),?허망하고 또 허망한 존재입니다.?그림자는 실체의 입장에서 보면 허망한 존재입니다.?그런데 그 그림자에 붙어 있는 곁그림자는 더더욱 허망한 존재라는 것입니다.?마치 꿈속의 꿈처럼요.

곁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는 그대가 걸어가다가 지금은 멈추고,?또 조금 전에는 앉아 있다가 지금은 일어서 있으니,?어찌 그다지도 일정한 지조가 없는가?”

그림자가 말했다.

“나 또한 무언가 의지하는 것이 있어 그리 된 것인가??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여 그리된 것인가??나는 뱀의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 같은 것에 의지하는가??어떻게 그런 줄 알겠으며,?어떻게 그렇지 않은 줄 알겠는가?”

[罔兩이?問景曰 ?에?子行하다가?今에?子止하며??에?子坐하다가?今에?子起하니?何其無特操與요?景曰 吾는?有待而然者邪아?吾所待는?又有待而然者邪아?吾는?待蛇??翼邪아?惡識所以然하며?惡識所以不然이리오]

장자는 즐겨 여러 동식물을 의인화하여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나무나 새종류가 자주 등장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람의 신체 일부를 의인화하기도 하죠 소요유의?‘견오와 연숙’의 예도 그렇죠.?견오는 사람의 어깨를,?연숙은 도와 이어져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씀드렸지요.?바로 앞서 읽었던?‘구작자와 장오자’의 예도 까치와 오동나무를 의인화한 것입니다.?여기서는 그림자를 의인화한 것입니다.?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허상입니다.?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그림자가 실체로 등장합니다.?이 실체에는 그림자가 붙어 있습니다.?바로?‘그림자의 그림자’가 그림자에게?‘일정한 지조[특조(特操)]’가 없다고 따집니다.?특조(特操)의 조(操)는 조행(操行),?곧 행실을 일정하게 지키는 것입니다.?흔히 조심(操心)이라는 말을 쓰는데 요즘은 조심이라는 말이 그저 신중한 태도를 뜻하지만 본래 조심은 맹자에 나오는 존심(存心)과 같이 마음을 붙들어 둔다는 뜻으로 쓰입니다.?존심이나 조심의 결과가 조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일정한 마음의 결과 일정한 행실이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곁그림자는 그림자에게?왜 이렇게 일정한 지조없이 가다가 말다가 앉았다 일어섰다 하냐고요.?결국 당신을 따라하려니 피곤하다는 것이죠.?그러자 그림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어디 난들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는가.나 또한 내가 의지하고 있는 그 무엇이 움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다고 말이죠.?사실 그림자니까 당연히 실물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죠.?그래서 실물이 움직이면 그림자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장자가?‘그림자의 그림자’를 등장시킨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보통 그림자는 부수적인 것이고 실물은 알맹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림자의 그림자’,곧 곁그림자 입장에서 보면 그림자가 실체입니다.?곁그림자의 존재의 근거는 그림자라는 것이죠.?그런데 사실은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라 실물의 허상에 지나지 않지요.?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실체라고 생각했던 그림자가 사실은 실물의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실체라고 생각하는 실물,?곧 우리의 몸뚱이 또한 또 다른 실체의 허상이 아니겠느냐는 거지요.?우리가 생각하고 욕망하고 행동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라는 주체가 사실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장자는 말하고 있는 겁니다.?제4장에서 장오자가 꿈에 술 마시고 즐겁게 놀던 자가 아침에 잠에서 깨면 슬피 운다는 이야기를 했죠.?그리고 그 꿈을 깨어나는 것이 생리적인 깨어남이라면 우리의 현실,?곧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꿈같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대각’이라고 했습니다.?꿈 속의 꿈과 마찬 가지로 그림자의 그림자 또한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고 있는 우리의 존재를 뿌리째 흔들어 놓기 위한 장자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장자는 궁극적으로 실체와 허상을 마주 세우기 위한 기획으로 우리가 실체라고 생각하는 실물조차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여기서 빛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따져 묻습니다.?하지만 그림자라고 하면 빛은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빛이 없고 그림자가 없다면 우리는 빛을 인식할 수 없을 겁니다.?마찬 가지로 그림자만 있다면 그림자를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요.?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따지는 과학적 사유는 이 대목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과학적으로 따지면 실물이나 그림자나 곁그림자나 모두 실체입니다.?모두 현상이니까요.그러니 과학적 사유는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존재의 근거를 따져 묻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곁그림자→그림자→실물의 입장을 모두 성찰하는 내용입니다.?우리는 어떤 것을 존재의 근거라고 규정짓지만 그런 규정을 짓는 순간 그 존재의 근거라는 하는 존재의 근거를 또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존재의 근거,?존재의 근거의 근거,?존재의 근거의 근거의 근거,?이런 식으로요.?그런데 곁그림자는 허망하고 또 허망한 존재라서 망량,?곧 망이 두 번 겹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망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하지만 그보다 더 허망한 존재를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망망망,?망망망망,?이런 식으로요.?이런 식의 수많은 허망과 허망의 연속을 장자는 자생자화(自生自化)라고 하였습니다.?그런 자생자화의 또 다른 표현이 물화(物化)입니다.?장자의 다음 이야기는 스스로 체험한 물화의 경험담인 호접몽(胡蝶夢),?나비의 꿈입니다.

 

나비의 꿈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가,?나비가 내 꿈을 꾸는가

111제물론편 제6장의 주인공은 장자 자신입니다.?아니 나비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어떤 학자는 장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장주라는 이름까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대목은 장자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사실?[논어]가 공자의 저작이 아닌 것은?‘자왈(子曰)’이라는 표현에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자왈’은 선생께서 말씀하셨다는 뜻인데 공자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 리는 없으니까요.?그런데?[맹자]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어떤 사람은 맹자가 스스로?‘맹선생’이라고 호칭했을 리 없으니?[맹자]는 맹자가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맹자 사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요. [맹자]가 맹자의 자저가 아니라는 근거 중의 하나입니다.?하지만?[맹자]를 읽어보면?[맹자]는 아무래도 맹자가 직접 지은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맹자]의 문장은 직접 기술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의 생생함이 있거든요.?아무튼 장자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목이?[장자]에는 여러 차례 나오고 그 때문에[장자]?또한 장자의 자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그러나 자연사물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 신체의 일부까지 의인화하여 즐겨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것이 장자입니다.?장자는 단순한 대화록이 아니라 문학 작품입니다.따라서 얼마든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이 대목만 굳이 다른 이야기와 달리 볼 필요는 없겠지요.

사실 이런 식의 다양한 문학 장치가 등장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장자는 공자나 맹자와는 처지가 달랐기 때문입니다.?공맹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면서 잡혀 가지 않으면 좋은데,?장자는 자칫 잡혀가기 쉬운 처지였기 때문에 보호 장치가 필요했던 것입다.?그 중의 하나가 꿈입니다.?자신의 삶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지요.이후 남가일몽,?일장춘몽,?구운몽 등과 같이 꿈을 매개로 신분차별이나 남녀의 차별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억압을 넘어설 수 있는 해방구로 삼은 이야기들이 많이 창작되었습니다.?꿈이라는 장치를 자유로운 공간으로 삼은 것입니다.?그래서 호접몽은 꿈 이야기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이 대목을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연관지어 풀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데카르트의 경우는 애초에 회의가 목적이 아니라 회의를 어떻게 하면 끊어버릴까 하는 아주 불순한(?)?목적을 가지고 회의한 사이비 회의주의자입니다.?장자와는 다릅니다.?아니 반대편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또 주체를 강조했던 데카르트는 인간 이외의 동물은 기계와 같다고 보았습니다.?동물을 발로 차면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은 종을 쳤을 때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장자와는 많이 다르지요.?일단 장자에게는 불순한 목적의 회의라든가 그런 게 없습니다.?동물을 기계로 보지도 않고요.둘을 비교하면 아마 서로 화를 낼 겁니다.?장자는 자신마저도 상대적인 세계에서는 나비와 같은 존재라고 보는 겁니다.?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하는?‘물화(物化)’는 장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물화란 내가 주체고 상대가 대상이라는 인식을 넘어선 결과입니다.?내가 온전히 상대와 같아진다는 것은 곧 나의 소멸을 의미합니다.?나를 버려서 상대를 이루는 것,?그것이 장자의 물화(物化)?개념에 가깝습니다. ‘물화(物化)’에서‘물(物)’자를 빼고?‘화(化)’자만 남기면 오히려 이해하기가 쉽습니다.?소요유 제1장에서?‘화(化)’는 살아 있는 존재가 사멸하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던 것을 돌이켜보시기 바랍니다.

어젯밤 장주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팔랑팔랑 가볍게 나비였는데 스스로 즐겁고 뜻에 꼭 맞았는지라 장주인 것을 알지 못했다.?이윽고 화들짝 깨어 보니 갑자기 장주였다.?알 수 없구나.?장주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장주와 나비는 분명한 구별이 있을 테지만 이처럼 장주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주가 되는 것,?이것을 물화(物化)라고 한다.[昔者에?莊周夢爲胡蝶호니???然胡蝶也러니?自喩適志與라?不知周也호라?俄然覺하니?則??然周也러라?不知케라?周之夢에?爲胡蝶與아?胡蝶之夢에?爲周與아?周與胡蝶은?則必有分矣니?此之謂物化니라]

장자가 꿈을 꿉니다.?유명한 호접몽(胡蝶夢)입니다.?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닙니다.?사람이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을까요??그런데?‘적지(適志)’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뜻에 꼭 맞아서 전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자기가 장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비가 된 것이죠.?사실?난다는 표현은 인간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쓰이지요.?장자의 첫 이야기가 대붕의 플라잉 신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이 대목은 바로 장자 자신의 플라잉 신입니다.?대붕은 구만 리의 하늘을 타고 납니다.?그리고 장자는?‘물화’,?곧 나비가 됨으로써 하늘을 납니다.?구만 리의 하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나비의 날개는 아주 가벼우니까요.

날 수 없는 인간에게 난다는 것은 자유의 획득을 뜻합니다.?빌리 엘리어트라는 소년이 춤추는 것을 보고 로열 발레단 심사위원이 묻죠. “너 춤 출 때 기분이 어떠니?”?하고요.?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늘을 나는 것 같아요.”?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난다는 것은 춤의 가장 높은 경지가 아닐까요??두 개의 다리와 두 개의 팔 그리고 하나의 몸뚱이라는 육체적 속박을 벗어나는 것이 춤의 궁극적 경지임을 암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물론의 마지막 이야기 나비꿈은 소요유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바로 앞에서 장자는 그림자와 꿈 이야기를 통해서?‘곁그림자→그림자→실물’, ‘꿈속의 꿈→꿈→현실’의 대비를 통해서 모든 사물이 서로 종속적으로 연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그리고 그런 종속의 맨 위에 있는 실물과 현실을 부정합니다.?겉으로 보기에 더 이상 종속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종속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는 겁니다.?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힘이 약한 자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그렇다고 힘이 센 자가 자유로우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힘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순간 더 큰 힘에 의한 지배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논리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죠.

이를 테면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섬나라 멜로스를 정복했죠.?침공하기 전에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여자와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 죽이겠다고 최후통첩을 합니다.?하지만 멜로스의 지도자들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합니다.?그 결과 멜로스는 아테네의 공격에 의해 멸망당합니다.?멜로스 사람들은 죽어가면서 너희는 너희가 우리를 대한 방식대로 또 다른 침략자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외칩니다.?실제 그렇게 되었죠.?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멸망시켰으니까요.?적어도 멜로스 사람들은 아테네가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자기들이 멜로스를 대한 방식대로 멸망당했으니까요.?이처럼 강약의 논리를 따르면 강자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장자는 자유란?‘상대를 대등한 존재로 받아들일 때’?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나비의 꿈에서 장자는 앞의 두 경우와는 다른 플롯을 제시합니다.?서로 종속되는 것으로 그렸던 그림자와 꿈 이야기와는 달리 나비꿈에서는?‘장자의 꿈↔나비의 꿈’?이라는 식으로 둘을 마주 세우고 있습니다.?제물론에서 자주 등장하는?‘저것’과?‘이것’의 논리를 문학적 장치로 활용한 것입니다.?저게 허상이면 이것도 허상이고 상대가 부정되면 나도 부정된다는 말입니다.?이 대목에 등장하는 장주인 줄 몰랐다[不知周也]?든지 알 수 없다[不知]는 식의 말은 우리가 확신하는?‘주체’라는 것이 사실은 언제든지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표현입니다.?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장자는 주체고 나비는 대상입니다.?그런데 장자는 나비꿈으로 주체와 대상을 마주 세우더니 결국에는?“장주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주체와 대상의 역할을 전도시킴으로써 현실의 질서와 가치관의 전복을 시도한 것이지요.

이 대목을 감상할 때는?‘나’와?‘나비’를 짝으로 마주 세우는 장자의 방식과 함께 소요유와 제물론을 짝으로 놓고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붕새의 어마어마한 비상과 나비의 가벼운 날갯짓을 함께 느끼는 것이지요.

번역을 살짝 바꿔서 읽어보겠습니다.?앞의 번역은 장자라는 인물을 삼인칭으로 놓고 번역한 것이고,?다음은 그것을 나라는 일인칭으로 바꿔서 번역한 것입니다.?나로 바꿔서 번역해야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마주 세우려는 장자의 의도가 더 잘 읽힙니다.

 

어젯밤 꿈에 나는 나비가 되었다.

팔랑팔랑 가볍게 잘도 날아다니는 나비였는데

나에게 꼭 맞았는지라 내가 나인 줄 전혀 몰랐다.

이윽고 깨어보니 틀림없는 나였다.

알 수 없구나.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내가 된 것인가?

 

끝.

이재원 단편소설-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 가장 진실한 것이다[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 단편소설-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 가장 진실한 것이다[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설화산에 산재한 여러 암자와 굿 당,?그리고 절마다 모셔진 미륵들과 그 옛날 미륵에게 소원을 빌던 사람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고보살,?혹은 연화의 소원과 그녀에게 현신(現身)했다는 미륵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옛 사람들은 특별히 정으로 형체를 조성하지 않은 돌에도 미륵이라 이름 붙였다.?미륵 관찰자가 되어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 해도 미륵이라 지칭하는 돌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미륵은 미래 세계에 도래할 부처이다.?불자가 아니라면 우선 미륵이 도래한다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른다.?누가 이 태평성세에 미륵 세계에 관심을 가질까??그러나 현실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미륵 부처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미륵은 더 나은 세계를 바라는 사람들의 부처이다.?고통당하는 사람은 지금의 현실보다 더 나은 세계를 바랄 것이다.?이 때 미륵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더 나은 현실을 주관하는,?따라서 당대 세계를 주관하는 부처로 변모된다.

이렇게 해서 인간 삶과 유리된 사상이나 종교는 없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그것이 교조화될 때에만 본래의 생명을 잃고 인간 삶과 유리하게 된다.?사실 봉건시대에 농민 혁명이 일어나면 그 중심에 미륵 사상이 있었다는 주장은 아주 흔하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용화사 미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다.?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도 아니다.?다만,?이야기꾼으로서의 어떤 직감 같은 것 때문이었다.

미륵님이 절을 세운 분에게 현신,?현몽하여 땅에 뭍혀 있던 부처를 찾아내 모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순전히 사람을 관찰하는 입장에서였지,?종교적 관심이 아니었다.?꿈에 미륵이 현신한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다고 말 할 수 있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행복한 사람이 미륵을 생각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바랐는가??어떤 염원을 하면서 살았길래,?삶에서 어떤 질곡을 만났길래 미륵불을 만났을까??이런 관심은 특히 사람들이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다.

나는 한동안 노동의 노역에서 벗어나 있었다.?설화산 월정사 밥을 얻어먹으며 책 읽거나 아무 일도 안 하거나,?잠자고 싶으면 자고,?취하고 싶으면 취하고,?걷고 싶으면 산길을 걷고는 했다.?그러다가 사람을 만나면 말 붙이기를 좋아했다.

월정사 주변 밭을 가꾸는 노인과도 자주 이야기했다.?노인이 쓰는 사투리로 보자면 이 지방 사람은 아니다.?그러나 노인의 이야기 내용을 보자면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노인을 도와 함께 밭의 잡풀을 뽑기도 했다.?노인의 이야기는 줄거리를 잡기 쉽지 않았다.?그러나 내가 아는 월정사 정보는 모두 그에게서 들은 것이다.

노인에 의하면 원래는 만신이 월정사를 일으켰다.?그리고는 월정사를 팔고 안성 어디에 가서 절을 크게 일으켰다는 것,그 후임으로 오신 지금의 스님은 대단히 성실해서 아침,?저녁 예불을 쉬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말끝에 노인은?“용화사 시님 굿이야말로 보기 좋았지러”,?했다.?나는 한참만에야 그 이야기의 뜻을 알아 차렸다.?그리고는 되물었다.

“스님도 굿을 해요?”

“아,?하디.?굿 해 달래는 사람이 있으믄 하디.?미력(미륵)?앞에다?(음식)?진설 하고서리 밤새 했디.?사람덜이 백설치듯 했디.?미력 파내고서리.?거 박씨덜이 섬기던 미력이었거덩,용화사 짓고는 스님이 되었디.”

“미륵을 파내요??땅 속에 있었던 것을 파내었다는 말씀인가요?”

“파냈디.?미력이 현신(現身)해서 파냈디.?시집 갔더래서,?시님이.?미력이 자꾸 선몽하니끼니 시집 못살고는 나와서 용화사 지었디.”

“미륵이 현몽을 했다면 꿈에서 보았다는 뜻인가요?”

“꿈인디 생새인디는 모르디.?현신해서,?선몽해서리 절 지었디.”

“지금도 살아계세요?”

“몇 년 전 죽었디.?지금은 동생이 살고 있디.”

나는 미륵이 현몽하여 스님이 찾아냈다는 이야기가 궁금했다.?그러나 할아버지에게 그 일을 상세히 듣기는 어려웠다.무엇보다도 할아버지의 이야기 내용을 선 후 순서를 맞추어 이해하기 어려웠다.?제정신으로 말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기도 했다.?그러나 궁금증을 풀 만 한 상대가 별로 없었다.댓걸음에 용화사로 달려갔으나 절은 텅 비어 있었다.

월정사에서는 예불이 끝나면 신도 몇 명이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절에서의 식사라 하면 무엇보다도 조계사의 점심 공양이 생각난다.?점심 공양 법회에는 세 부류의 대중들이 있다.?법당에 모인 신자들은 찬불가 대원들이다.?법당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은 이들은 일반 불자들이다.?그리고 마당 한켠을 가로지르는,?공양간을 향해 길게 줄 지어선 이들은?<밥 줄>로 불리운다.?배식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다.식사는 물론 무료이다.?몇 천 명의 대중이 모두 불자는 아니다.?남루한 차림의 사람들도,?아주 지저분한 옷차림의 노숙인으로 보이는 이도 있다.?또는 수입이 없어 점심 얻어먹으려는 사람들도 있다.?그 동네만 아니라 인근의 빈민들에게 하루도 거르지 않는 조계사 점심은 유명짜하다.?한 끼니만 먹고 산다고 하는 사람들을 그곳에서 흔히 보고 들었다.?조계사에도 미륵이 있다.?북문 앞,?커다란 돌덩이가 미륵이다.

월정사 식사는 조계사의 그것만큼이나 소박하다.?공양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 동네,?박 씨 성 집안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이곳이 박 씨 집성촌이기 때문이다.?나는 대개 남자들과 함께 식사했다.?그러나 그 날은 구태여 할머니들 틈에 끼어 식사하면서 넌지시 질문했다.

“용화사 미륵이 땅에 묻혀 있었는데,?스님 꿈에 현몽하여 파내었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예요?”

할머니들이 질세라 한마디씩 한다.

“스님이 시집가 살았지유.?그런디 미륵님이 현몽하시더래유.”

“미륵님은 돌로 만들었으니 얕히 묻히면 넘어지거든.?그래서 넘어지지 않게 깊이 묻었거든.?그런데 스님이 미륵님 발 밑을 더 파낸 거지,?잘 보이도록.”

“토사 밀려있지,?나무랑 풀이 엉켜있지,?꼴이 아닌디,?스님이 파내고 다듬어 지금처럼 단장했지유.”

“우리 동네 사람 누구나 미륵님을 섬겼지유.?우리 큰시숙이 미륵뎅이거든유,?박치성씨라구,?치성 들여서 낳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유.?시어머니가 치성 디리구 미륵님이 선몽허셔 태어나셨대유.?그분두 무슨 일이 날라치먼 미륵님이 선몽허셨대유.”

“오호,?시숙님이 용화사 스님이 절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나요?”

“맞아유,?용화사 출입이 잦았지유.?그러나 저간 사정은…”

설화산 상봉 아래쪽에서 세 갈래 줄기가 뻗어내리다가 작은 봉우리가 다시 솟아올라,?돌머리 마을 뒤까지 이어져 있다.월정사와 용화사는 지척으로,?남쪽을 향한 첫 번째 봉우리가 완만히 내려앉으며 형성된 평평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설화산에 대한 또 다른 주장도 있다.?이 또한 우연히 들은, 환경운동 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설화산처럼 처참하게 뭉개지는 산은 호서 지방에서 그 하나로 충분했으면 좋겠다.?산신령도 떠났을 것이다.?그 산에서 어찌 살겠는가?”

설화산 동남쪽은 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북쪽은 완전히 망가져있다.?수십 년간 골재 채취하기 위한 석산개발 탓이다.?환경운동가의?<산신령>이란 말,?그리고 산신령이 떠났다는 말도 허투로 들을 일이 아니다.?이 또한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산이 인간 삶에 요긴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병 치료하러 산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무수하고 산에 들어가면 굶어죽지 않는다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도 산이 인간 삶에 꼭 필요하다는 반증이다.?북쪽 산은 사막처럼 망가지고 흉측해졌다.?멀리서 보면 천 길 낭떠러지만 드러내고 있다.

석산 주변에 분진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당대의 사람들이야 할 수 없이,?오갈 데 없어서 산다 하지만,?누구도 그곳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자의 반,?강요에 못 이겨 사람들은 떠났다.?사람들이 떠난 폐허가 된 곳에서 산신령으로 대변되는 일상적 신비로움도 떠나고 만다.

그러나 이 환경 운동가와 미륵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참혹해졌다.

“천국에서야 모두 평등하다지만,?미륵이 미래 뿐 아니라 현세에서 용화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헛된 희망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일 뿐이다.”

나는 두 번 다시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용화사 미륵은 천 년의 이끼를 쓰고 있다.?두상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다.?그러나 신체는 별로 다듬지 않았다.?언뜻 보면 하체는 그저 평범한 돌덩이 같다.?그러나 여러 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미륵의 신체에도 정교하달 것까지야 없지만,?정성들여 다듬은 흔적이 있다.?이를테면 법복 자락을 표현하려 쪼은 선이 있다.?법복,?도포의 선은 어깨에서 무릎까지 흐르고 있다.?소맷동은 무릎 근처에서 다시 솟구쳐 가슴 앞,?두 손 모은 손목에까지 이어진다.?미륵을 쪼은 석공이 그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작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랬다.?과거 어느 한때,?설화산 골짜기 박씨 종산 어귀에 미륵이 숨 쉬고 있었다.?나무와 풀숲이 가리고 있었으나 거기 이토록 친근감을 주는 미륵,?돌덩이가 있었다.

용화사 주변을 둘러보다가,?법당 옆에서 앞서 보지 못했던 고연화보살의 행적을 기록한 현판을 찾아낼 수 있었다.?이름을 보자면 현판을 쓴 사람은 스님 같지는 않다.?현판에는 최보살의 약력이 적혀 있었다.

<속명 고연화,?법명 청심화(靑心花)는?1928년 충남 광천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명산대천을 찾아 기도하며 전통 종교를 섬기던 중 여기 용화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치니 이를 축하하여 현판을 드린다.?오서산인 금천.>

현판의 내용은 할머니들이 한 이야기와 조금 다르다.?고보살은 시집을 나와 곧바로 여기 용화사로 온 것이 아니다.?명산대천을 찾아 수련했다면 면벽하는 스님의 공부 방식과도 다르다.?월정사에서 보게 되는 동네 할머니에게 용화사 오기 전의 스님의 행적을 묻곤 했으나,?더 이상 신통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그 대신에 근동에 미륵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나는 일삼아 미륵 순례를 시작했다.

어느 마을,?어느 산 귀퉁이,?어느 절에나 미륵이 있었다.?더러는 세련되어 보이기도,?더러는 그저 돌덩이와도 같았다.가장 세련된 형태의 미륵은 송암사에 있었다.

송암사 미륵은 대웅전 앞 반듯한 터에 자리잡고 있었다.?그러나 분위기는 용화사 미륵과 완전히 달랐다.?송암사 미륵은 아주 잘 다듬어진 것이었다.?이목구비가 뚜렷했을 뿐 아니라,?신체의 균형도 적절했다.?한눈에 보아도 불교가 번성했던 시기의 것이요 솜씨 있는 석공이 정성들여 다듬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자주 송암사에 들렸다.?여러 번에 걸친 묘각(妙覺)?노스님과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다.

송암사는 고찰이 아니다.?노스님에 의하면 송암사가 생긴 것이 육십 년 전이라고 한다.?그렇다면 이토록 오래 된 미륵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스님이 추측하는 미륵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았다.

이곳 송암사는 원래 큰 절터였으리라는 것이다.?이처럼 뛰어난 조각품은 대단히 드문 것으로,?대규모 불사가 있던 시절에나 형성이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불교를 중시하던 시대가 지나고 절은 점차 쇠락하다가 드디어 없어졌다.?특히 이조 말엽,?한양에서 큰 벼슬을 하던 이 씨 성을 가진 양반이 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집성촌을 이루자,?절터 돌들마저 마을을 세우는 데 쓰였다.?이 씨 집성촌 마을을 돌아가며 조성한 석축을 볼라치면 부도에나 쓰였음직한 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짐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송암사 노스님은 자신이 이곳에 터를 잡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평생 선방을 떠돌다가 칩거할 토굴을 찾았다.?평소에도 기도 발 잘 받는대서 설화산을 맴돌았으며,?마침 처분하기를 바라는 이 절을 인수해서 개축했다는 것이다.

노스님과 절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돌아가신 용화사 스님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고보살!?잘 알아.?내가 여기 오기 전 보살 한 분이 송암사에 있었지.?그분하고 고보살이 함께 동사(同事)한 적이 있었지.그래서 내가 고보살,?잘 알지.

동사하다가,?언제부터인가 고보살이 여기는 인연이 아니라 하고 여기서 나가 용화사를 지었지.?용화사 가서도 한참 머리를 쪽을 진 채로 살았어.?나중에야 머리를 깎았지.”

“쪽지고 살았다니,?그게 무슨 말이예요??스님이라면 당연히 머리를 깎고 살지 않나요?”

“보살이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거든.?불자 여신도를 가리키는 의미지.?그런데 스님은 아니지만 수도하는 여자에게 붙이는 이름이기도 하지.?고보살이 신 기운(神氣),?무당들한테 있는 신기운이 있었다는 것이지.?그러니까 불교 승려라기보다는 불교와 무속을 혼합하여 섬기는 사람,?보살이었다는 거지.”

“이를테면 무당 같은 것인가요?”

“무당과도 다르지.?무당은 절에 와도 산신당에만 가거든.?고보살은 부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거든.?무당은 신 기운을 가지고 있지.?보살수업은 아주 다양해서 불교와 무속 모두 수용하기도 하지.?일종의 종교 혼합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그래서 보살이라 부르면 무당과는 차별화되는 것이지.”

“고보살이라고 해야 하나,?아니면 현판에 적힌 대로 청심화스님이라고 해야 하나,?하여튼 그 용화사 스님이 신기가 있었다는 말이군요.?그렇다면 시집살이를 안하고 나온 것도 신기운 때문이었나요?”

“저간의 사정은 확인할 수 없지.?그러나 시집살이를 못 한 것은 남편이 일찍 죽었기 때문이었지.?그러나 신기가 있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시집살이 할 수 있겠어??지금도 자주 결혼생활 청산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잖아?”

“그렇겠네요.?부잣집이라서 며느리 병치레를 할 수 있는 집이라면 몰라도.?그런데 고보살은 여기 송암사에서 왜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무엇인가 갈등이 있었겠지.”

“이를테면 어떤 갈등인가요?”

“원래 땅주인은 고 보살이 아니었거든.?여기 송암사 계시던 보살이 남편과 사별한 후 이곳 땅을 마련했지.?고보살은 자식이 없었지만 어린 남동생이 있었고,?송암사 보살은 자식이 둘 있었거든.?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자 의견이 잘 안 맞았겠지.”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잖아요.?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죠?”

“원래 무슨 일이든 다 그래요.?입에 풀칠은 해야 하는 게 우선이지.?처음에는 그럭저럭 해 나갈 수 있었을 거야.?그러나 아이들 커지고 점점 더 입에 들어갈 것,?몸에 걸칠 것이 커지겠지.?자연히 보살 두 사람 머물기에는 이모저모로 절이 좁았겠지.?그러니까 두 동사자의 의견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고 보살은 이곳이 인연이 아니라고 떠난 거겠지.”

“그렇다면 고보살은 이곳 송암사 재산 형성이나 불사에 조금도 기여하지 못했나요?”

“송암사 자리가 원래는 미륵님만 계신 산이었겠지.?두 동사자가 풀을 치우고 마지(부처님에게 올리는 공양식)나 올릴 만큼 미륵님 주위를 다듬었지.?매일 기도하러 오르고 내리기 힘드니까 아예 초막을 짓고 기거했을 것이고.?미륵님이 영험하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초막에서 서까래 올린 집을 지을 수 있었거든.?또 신도들을 주로 상대한 것이 고보살이었거든.?그러니까 고보살이 송암사를 일으키는 데 기여한 것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고보살이 쫓겨난 셈일 수도 있겠군요.?아니면 독립해서 돈을 혼자 만지고 싶었나?”

“뭐 그렇게 돈,?돈 할 것은 없고,?인연이 아닌데 어쩌겠어.”

“조금 어려운 질문인데,?이런거예요.?돌머리 마을 사람들은 고보살 꿈에 미륵이 현신해서 절을 지었다고 알고 있거든요.그런데 왜 하필이면 미륵님이 고보살한테만 현신했나??현신하는 데 특별한 매카니즘은 없는가,?또 어떤 연유로 그렇게 평생 염불하며 살았는가??이런 것이 궁금해요.”

“아 그야 우리 모두 다 불심이 있는 것 아닌가??공덕을 드리면 미륵님도 현신할 수 있는 것이고.?우리 모두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거지.”

“그게 납득되지 않아요.?고보살이 꿈에 미륵을 보았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거예요.?그 이유가 뭘까?”

스님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

“그래 처사는 왜 그런 일에 관심이 많우??무슨 일을 하우?”

내 직업이 뭘까??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수입과 신분이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강사도 직업에 들어가나??나는, ‘강사예요’?라고 말했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을 강의해요?”

나는 우물거리는 소리로, “철학이요”라고 답했다.

스님이 말했다.

“고보살 전쟁으로 남편이 일찍 죽었지.?가족 잃은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려워.?사람마다 틀릴 수 있지만서두.?이런 이야기는 참 곤란하지만,?가족 잃고 실성한 사람 여럿 봤어.?고보살이 탈속하게 된 계기를 여러 번 들었지.?남편 여의고 나서 정신없이 걸었다는게야.?목적도 없이,?밥 먹는 것도 잊은 채…?닿은 곳이 오서산이었다지.?고보살 친정이 광천이거든.?오서산은 광천에 있고.?아는 곳이란 한정되어 있게 마련이니,?실성한 듯,?친정 동네로 갔는지도 모르지.?그곳 산에서 보살 수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아픔을 치유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박치성에 대해서 동네 할머니들한테 들은 것이 있었다.박치성이 박 씨 종 터를 고 보살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였다.?나는 노스님에게 마을 할머니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짧게 하고 나서 박치성이고 보살에게 땅을 나누어 준 이야기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노스님이 말했다.

“종산을 잘라 파는데 웬 말들이 없겠어??박치성씨가 나서서 자기 종친들을 설득했겠지.”

나는 갑자기 어떤 묘한 생각이 나서 다시 스님에게 물었다.

“박치성씨가 용화사 스님을 좋게 생각하셨나보죠?”

“고보살이이 총명하기야 짝이 없었지.?송암사 동사자와 헤어져 시집으로 들어가서는 동생을 공부시키며 인근 아이들을 함께 모아 가르쳤지.?박치성씨가 고보살을 예뻐했던 것은 사실이지.?그러나 박치성씨가 막되어 먹은 사람이 아니지.?고보살을 박치성씨가 많이 도와준 것은 사실이로되,?어떤 흑심으로 도와준 것은 아닐 거야.”

나는 다시,?용화사에서 본 현판을 생각하고는 오서산인 금천에 대해서 물었다.

“용화사 현판을 쓴 이가 오서산에서 살던 사람인가 봐요,?오서산인 금천이라고 썼거든요.?고보살과 금천이 어떻게,?어떤 관계였는지 혹시 아세요?”

“잘은 몰라.?뭐 친정 사람들이 금천이라는 사람 소문 듣고 그와 딸 병세 의논했을 수도 있고,?연화가 금천으로부터 일편 병 치료 받고 일편 수업 하구,?그런 식의 관계였는지 모르지.”

송암사 노스님의 대답이 그럴 듯 하고 또 자신감이 있는 어투여서 나는 미륵이 현신했다는 고보살의 꿈을 끈질기게 화제로 꺼냈다.?그리고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물었다.?노스님은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로 괴로워한단 말이지??그 사람이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아 잠자고 일어났더니 조금 괜찮네,?그러거든??꿈도 그런 거야.?그러니까 꿈이란게 감정을 누구려 주는게야.?고보살두 그런 경우가 아니겠나??송암사에서 고보살이 과부보살과의 관계가 바늘방석이라면 당연히 꿈꾸겠지.?괴로우니까 괴로움을 눅이려고.?과부는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읇었을 게고,?고보살이 귀찮었겠지.?그런 눈치 알고 고보살이 고민한다지만,?마땅히 수도할 곳이 없다??여기 저기 토굴 자리를 찾다가는,?들었거나 알고 있었거나,?용화사터 미륵님을 기억해 냈겠지.?그리고 고 보살은 자기 갈망을 꿈으로 보게 되겠지.”

나는 혼잣말처럼 조그맣게 말했다.

“그러니까,?꿈에 미륵이 현신한다는 것은 현재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요,?동시에 현재의 소망을 꿈으로 표출한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무엇인가 미진했다.?이야기꾼으로서의 내 상상력을 보탠다 해도 미진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정에서 돌아와 미륵 앞에 토굴을 꾸린 연화의 변한 모습에 박치성은 놀란다.?특별히 영민했던 연화는 눈에만 이상한 광채를 발할 뿐 초췌하기 짝이 없다.?그러면서도 연화는 애잔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박치성은 미륵 앞에 앉아있던 연화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박치성은 꿈을 꾼다.

미륵 앞에 연화가 앉아 있다.?박치성이 그 자리에 함께 있다.미륵이 연화에게 묻는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연화가 대답한다.

“누구에게 나를 빼앗기지 않고 살도록 도와주세요.”

박치성은 몸 둘 바를 모른다.?연화의 소원이 자기의 속마음을 드려다 보는 것 같지 때문이다.?혹시나 박치성의 열정 때문에 수도생활을 하지 못할는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연화가 미륵에게 그런 소원을 말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그는 자기의 감정이 새삼 두렵다.?혹시 어떤 식으로든,?착취적 의도는 없었는지 새삼 자신을 돌이켜 본다.

미륵이 연화에게 대답한다.

“내 너를 불쌍히 여겨 소원을 들어주마.”

박치성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리를 뻗고 다시 잠에 빠진다.?미륵이 옆에 있으니 자기가 어떤 두려운 행동,?이를테면 연화를 안아 본다거나 하는 행동은 안 하리라고 안심하는 것이다.

나는 고 보살이 틀림없이 미륵님과 만났으리라,?친견했으리라 생각해 본다.?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실성한 여인은 정신을 차리자 송암사 미륵 앞으로 돌아왔다.?전쟁 없는 세계가 미륵의 세상이다.?미륵이 그를 불렀을까,?그녀의 소망이 미륵을 현몽하도록 했을까?

어쨌든 그녀는 다시 미륵 앞으로 돌아왔다.

연화가 동사자 과부와 송암사를 일으킨다.?몇 년이 지나 과부와 갈등을 빚어 고민하던 연화는 지금의 용화사 터 미륵을 만난다.?그리고는 미륵을 찾아 소원을 빈다.?연화의 처지는 다급하다.?사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과부 보살과 대면하기 정말 괴롭다.?이제 연화는 매일 용화사 자리 미륵을 꿈꾼다.?이 터가 꼭 필요하지만 근동에 쩡하게 세력을 떨치는 박씨 문중을 향해 땅을 팔거나 나누어 달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다.?꿈에 현몽하는 미륵만이 연화의 위로요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연화는 날마다 눈뜨면 미륵 터로 달려간다.?기도하는 연화의 몸은 땀에 젖는다.?인적이 드문 저녁나절이면 연화는 미륵 옆 개울에서 목욕한다.

무료함을 달래려 산천경개를 구경하러 산책길에 오른 박치성은 우연찮게 목욕하는 연화의 벗은 몸을 본다.?연화는 여전히 그 빛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박치성은 이제 아득히 그의 정념 속에서만 잠자던 연화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난다.?박치성은 연화의 주위를 맴돈다.?용기를 내어,?그리고 견딜 수 없어 연화에게 다가간다.?그리고 연화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날이 갈수록 박씨 종손의 고통은 더해 간다.

이윽고 연화의 소원을 알게 되자 박씨 종손은 이제는 더더욱 사랑을 고백할 수 없다.?박치성은 자기네들 종 터를 염원하는 연화에 대한 자기의 우월한 지위를 결코 이용할 수 없다.그의 양심과 그가 가진 사상이 그의 내면의 감정을 다잡아 주는 것이다.

박치성은 이제 밤마다 꿈을 꾼다.?연화가 미륵과 함께 있다.박치성이 옆에 있다.?연화는 그를 향하여 자세를 바로잡는다.?그러고는 말한다.

“제가 비록 쪽을 지고 살되,?출가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선생님 또한 이를 모를 리 없소.?어려서는 남편 잃은 제가 병들었고,?어른이 되어서는 수도에 몸을 들인 터라 남자를 알 기회가 없었으되,?저 또한 목석은 아니외다.?선생님을 원하기도 합니다.?그러나 선생님과 연을 맺게 되면 간신히 다잡은 나의 수도생활을 포기해야 하오.?그리고 수도생활을 포기한다면 내가 정상인으로 살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되오.?그러니 어쩌겠소.?고통을 알지만 선생님이 나를 잊을 수밖에.”

박치성은 꿈속에서 눈물을 철철 흘린다.?연화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고마워서,?그리고 연화 자신의 처지가 딱함에도 불구하고 연화를 사랑하는 자기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이 고맙고,?또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애닯아서이다.

박치성은 문중의 어른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몇 평 안 되는 땅을 나누어준 들 박씨들이 묏자리 쓸 곳이 없는바 아니요,?우리 박씨들이 섬기던 미륵이라 하나 누가 더 가까이서 보살핀다 하면 우리 문중에 득이 되면 될지언정 손해볼 리 없다는 식이다.

그리고 마침내 연화는 박씨 종산 미륵 터 옆에 자리를 잡는다.?비록 고연화가 절 이름을 내세를 뜻하는 이름이되 미륵님이 가진 현세적 의미와도 통하는 용화사라 붙였지만,?미륵은 연화와 박치성 측에서 보자면 현세에서 분명한 도움을 준 부처이다.?연화와 박씨 종손은 삶의 고통과 사랑의 고통을 미륵님 덕분으로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혼자 사는 여자를 차려진 밥상으로 아는 현실에서 남 녀 간의 우정이 비록 에로스의 유혹을 받을지라도,?평등 세상을 향한 걸음일 터일 것이니.

 

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12

그림자 박물관[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12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크기변환_그12

열쇠가 너무 많아 박물관의 열쇠를 찾아내기가 어려웠어.
그런데 아침해가 방긋하고 올라오자 열쇠 하나가 빤짝하는거야.
문을 열자 죽어 있던 그림자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살아났어.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죽음에 대한 단상(斷想)-1?[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죽음에 대한 단상(斷想)-1?[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나이를 먹을수록 자주 가는 곳이 있다. 하나는 결혼식장이고, 다른 하나는 장례식장이다. 젊은 시절에는 친구들 결혼식장을 다녔지만, 이제는 친구 자녀들의 결혼식장이다. 결혼식장은 선남 선녀가 사랑을 다짐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하는 자리이니까 보는 사람도 즐겁다. 젊었을 때는 나도 그런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즐거웠고, 나이를 먹어서는 나도 저런 사랑과 결혼을 한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추억을 되돌릴 수 있어 기쁘다. 하지만 장례 식장을 다녀올 때는 마음이 무겁다. 축하해주러 가는 길이 아니라 슬픔을 위로하고 함께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래도 부모님 연배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지만 주변 친구들이나 그 부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주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자식 세대들의 죽음을 대할 때는 그 아픔이 더 크다.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듯, 그런 고통은 참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친동생의 딸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 때, 올 해 친구의 다 큰 아들의 죽음을 대했을 때는 그 고통을 그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참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깝게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중학교 시절부터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얼굴들, 오래 전이어서 이제는 그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부모의 죽음, 세월호의 죽음들… 아, 생명은 이렇게 죽을 밖에 없는 것인가? 일전에 대학 동기의 모친상을 다녀오고서 잠시 잊고 있었던 죽음을 생각해본다.
 
오래 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암송하던 시 <제망매가>이다.
 
죽고 사는 길이
이 세상에 있으므로 두려운데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가버렸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리저리 떨어질 이파리처럼
같은 가지에 났어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 극락세계에서 만날 나는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월명사, 제망매가)
 
그 당시는 별 생각 없이 외웠지만 지금 다시 보니 죽음에 관한 성찰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의 우발성,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이파리 같은 생명의 유한성, 태어난 곳은 하나이고 분명해도, 죽고 난 후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후의 세계는 과연 있는 것인가? 죽음 이후에 대한 인간 지식의 완벽한 무지, 죽음 이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극락과 천국에서의 만남을 위해 도를 닦고 선을 행하겠다는 윤리적 결단,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극락정토는 있는 것일까? 죽음은 삶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이 짧은 시 안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죽음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배에서 태어난 누이가 먼저 간 것을 슬퍼하며 쓴 시이지만 어찌 이것이 오누이만의 사별에 한정될 수 있겠는가?
 

1. “죽고 사는 길이 이 세상에 있으므로 두려운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어두운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람들의 통속적인 생각을 넘어선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그의 철학은 변증법의 시작을 알린다. 그의 잠언은 이렇다. “삶은 죽음이다.” “시작은 끝이다.” 만물의 시작에서 종말을 이야기하고,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어두운 철학자의 말을 사람들이 깨닫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죽음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삶이 없다면 죽음도 없는 것이고, 시작이 없다면 끝도 있을 수 없다.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오직 사물의 한 면만을 보려고 한다. 탄생과 소멸,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를 그는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불교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지혜를 더 깊게 해준다. 불교의 가장 기본 철학인 사성제(四聖諦)는 고(苦)에서 시작한다. 고는 어디서 오는가? 생명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모든 생명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데서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이 탄생하면서 이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먹어야 되고, 먹기 위해서 일해야 되고, 이 몸이 힘들다 보면 병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면 결국 이 생명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모든 고통은 이 몸을 타고 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자연법칙과 같은 필연성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사물의 한 면만 보는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꽃이 영원히 피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불교는 이런 생명의 고통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난세에 몸과 생명을 보존하려 했던 중국의 도가들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양생을 위한 수련에 힘쓴다. 하지만 열심히 수련해 동안을 유지하고 장생불사의 건강하던 도인의 몸도 한 순간에 호랑이의 먹이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양생법이 해답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몸과 생명이 낳고 죽는 그 까닭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장자』 외편에는 부인상을 당한 장자가 죽은 부인의 시신을 앞에 두고 덩실 덩실 춤을 추는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 혜자가 문상을 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 한다. 아무리 부인이 죽으면 사내들은 뒷간에 가서 웃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춤까지 추는 것은 심하지 않은가? 이 때 장자가 말을 한다. “그렇지 않네, 아내가 죽었을 때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나? 그러나 그 시작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 본래 삶이란 게 없었네.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던 것이지.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그것이 변하여 기(氣)가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되었지. 이제 다시 죽음이 된 것인데, 이것은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의 흐름과 맞먹는 일. 아내는 지금 ‘큰 방’에 편안히 누워 있지.”(『장자』) 삶과 죽음에 관한 우주의 영원한 이치와 작용을 깨달은 장자가 어찌 곡을 할 것이고, 어찌 춤을 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토아의 현인들도 죽음에 대한 이런 깨달음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엄연한 진실과 그로 인한 고통의 감정을 강조한다. 사도 바울은 어두운 사망의 골짜기를 헤맬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통렬하게 일깨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모든 생명은 곧 죽을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 이 고통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오직 우리를 창조한 신에 귀의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철학과 종교는 죽음이라는 엄연한 사실과 그로 인한 고통을 해결하려는 몸짓의 표현이리라. 아침 이슬과 같은 이 생명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법을 깨닫게 하거나, 이 유한한 생명을 창조한 무한한 신의 존재에 귀의하거나 이다. 혹은 우주의 영원한 이법 속에서 삶과 죽음의 물리적 법칙을 깨닫는 것이다. 가을 날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당신은 눈물이 흐르는가? 돌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모습을 보면 당신은 슬픈가?
 
2. 죽음은 어떻게 오는가? (죽음의 우발성과 우연성)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가버렸느냐.” 천수를 누리다가 돌아가신 분을 문상 갈 때는 비교적 마음이 가볍다. 모든 죽음의 이별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천수를 누리고, 갈 때를 알면서 돌아가신 경우에 우리는 호상이라는 말을 한다. 이런 호상을 맞이할 때는 산 사람들의 마음도 무겁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예측한단 말인가?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고 나간 사람이 사고로 갑자기 죽을 때처럼 죽음은 종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를 ‘위험 사회’로 규정한다. 이런 위험은 곳곳에 널려 있다. 거대 도시에서 교통사고, 건물 붕괴, 화재 등의 재난은 다반사다. 재난 사고에 취약한 우리의 경우는 이런 사고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래서 더 위험한 것이다.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 재해도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로 더 빈발해진다. 미국 같은 경우는 종종 총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 행위로 멀쩡한 시민들이 다치거나 죽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고는 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간다. 우발적인 죽음으로 인한 갑작스런 이별을 대할 때 우리는 어떤가? 벌써 두 달이 넘도록 전국을 난타하고 있는 세월 호 대 참사는 갑작스럽게 닥쳤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 죽음을 대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산자들은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산자들은 자신들의 이 비통한 마음을 죽은 자들에게 투사를 한다. 그래서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은 영들은 필시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영혼결혼식도 하고 천도 제를 지내기도 한다.
 

울리히 벡/ 출처: blog.joins.com

울리히 벡/ 출처: blog.joins.com

 
이런 우발적인 죽음과 달리 자발적인 죽음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세계 제 1위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살을 자발적인 죽음이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비록 자신이 선택한다 할지라도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기 결정은 아니다. 자살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선택할 수밖에 없는 타살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선택에 관한 라캉의 유명한 예가 있다. 밤길 골목에서 강도를 마주친 어떤 사람이 “죽을래 돈을 내 놓을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외양은 선택의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상으로 그가 선택할 다른 여지는 없다. 돈을 내놓기 싫다고 하면 죽을 수도 있고, 죽고 나면 돈도 뺏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할 때는 그것 외에는 달리 선택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으로 봐야 옳다. 때문에 높은 자살 율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자율의 형식을 가장한 타율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자발적인 죽음도 있다. 이른바 영웅적인 죽음이 그렇다. 설령 죽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감히 죽음과 대결하고 그 죽음을 넘어서는 죽음이다. 자기 생을 통해 타인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영웅들의 죽음이 그렇다. 생명보존의 욕구는 모든 생명체의 자연적 본능이다. 그런데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위험한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이루어지는 영웅적 선택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형태의 죽음은 죽음을 미리 앞서 예비하는, ‘죽음에 대한 선구적 결단’으로 묘사한다. 이런 결단은 오직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에게만 가능하다. 인간만이 자신의 신체가 소멸되는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 아마도 인간 정신의 위대함은 이런 자발적이고 영웅적인 죽음에서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의 신체는 소멸해도, 그의 정신은 산자들의 기억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