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11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사각거리는 빛은 꿈을 담고

흥얼거리는 빛은 우리의 마음을 잠식한다.

고요하고 고요한 침묵의 방은 어둠을 헤치고

새롭게 뜨는 태양을 향해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갈구한다.

빛은 소리없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하얀 빛은 똑하고 물보라를 일으키고

어둠은 사랑스럽게 빛에 의해 더더욱 찬란해져 빛으로 빛난다.

쉽게 내어주는 우리의 시간은 어둠과 빛의 무지개빛 공기로

가득해져 간다.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이시대와철학2015-12 꿈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6년 신년회 안내[ⓔ시대와철학 알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6년 신년회>

 

안녕하세요!

고단하고 힘든 2015년 청양띠의 을미년(乙未年) 해가 저물어 가고
2016년 병신년(丙申年) 원숭이띠의 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희망해 봅니다.
2016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신년회 일정을 알려 드립니다.

일시 : 2016년 1월 14일(목) 오후 3시
장소 : 서교동 태복빌딩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의실

신년회의 구체적인 일정은 추후에 다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2년 간의 한철연 연구협력위원회 4기의 활동이 다 마무리되고
2016년 새해부터는 5기의 새로운 연구협력위원회가 구성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4기 연구협력위원회를 음으로 양으로 응원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회원 여러분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회원 여러분!
남은 올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10

재밌는 상상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나의 머리는 나무 그늘 아래 바람을 훔치는 기타가 되고

나의 검은 상상은 희망으로 넘치는 목이 기다란 술병이 되고

나의 두 다리는 바다를 항해하는 검은 고래의 꼬리가 되고

나의 얼굴은 영원한 우주를 무한히 헤엄치는 비행기가 되고

나의 입은 복슬복슬 먹이를 찾는 절실하지도 않은 부리가 되고

그렇게 절실하고도 절실하지도 않은 나의 두 눈에 반짝이는 우주를 반짝반짝 담는다.

우리는 무엇을 닮고 있는가?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이시대와철학2015-11 재밌는 상상

 

음란한 시대정신: 국정 교과서와 첫사랑

음란한 시대정신: 국정 교과서와 첫사랑

 

이지영(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첫사랑은 그것이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때에 아름답다. 그것의 과거 시제가 현재를 침범할 때,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비루한 현재만 부각된다. 피천득은 <인연>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뜬금없이 철학 웹진에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드라마들에 등장하는 이상 징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첫사랑은 불치병이나 출생의 비밀 못지않은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치병, 출생의 비밀, 재벌가 실장님 등이 등장할 때 사람들이 보이는 짜증섞인 반응에 비교한다면, 첫사랑은 늘 모두를 설레게 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단골 소재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몇년 간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첫사랑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예전과는 좀 다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첫사랑 드라마 <겨울연가>의 경우만 해도, 고등학교 시절 만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십여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충분히 납득할만 하다. 다만 거의 서른이 된 주인공들이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과의 에피소드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매우 놀라워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시절이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부 시절의 일들도 매우 어렴풋하게 중요한 몇몇 장면들만 기억날 뿐, 그렇게 생생한 강도로 선명하게 디테일들을 기억하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몇 년만 지나도 요새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뭐, 기억력의 경우 개인차가 심할 수 있을테니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드라마들은 뭔가 수상하다. 첫사랑의 나이가 아주 어려졌다. 첫사랑인지 아닌지도 잘 분간하기 힘들만큼 어린 시절, 초등학교나 심지어는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로 연령대가 낮아졌다.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그녀는 예뻤다> 역시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을 15년만에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몇 달 전 방영되었던 <킬미 힐미>에서는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 만나서 함께 지내던 아이 둘이 트라우마로 둘 다 그 시절 기억을 잃어버렸으나 뭔가의 끌림으로 다시 시작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였다. 그와 동시에 방영되었던 비슷한 소재의 다중인격을 다룬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에서도 10대 초반 시절의 강렬한 인연이 바탕이 되어 성인이 된 주인공들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현재 방영중인 조선 건국을 다룬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이방원 (유아인) 과 러브라인을 형성하게 되는 분이 (신세경)의 인연 역시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온 주인공들의 사랑 (<풍선껌>, <너를 사랑한 시간>, <로맨스가 필요해 2012>)의 경우에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의 첫사랑 아니면 무엇인지 확인하기 힘든 인연이 성인이 된 이들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드라마적 요소로 등장한다. (작년 드라마 <힐러>의 두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이 외에도 아마 당장 기억나지 않는 드라마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이야기를 시작하기엔 충분할 만큼 많다.

고백하건대, 나는 드라마 매니아이다. 거의 종류를 막론하고 왠만한 건 다 본다. 영화 철학을 연구하는 필자가 온갖 드라마들을 매일 본다고 이야기하면 의외라는 눈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유치하고 식상한 클리쉐들로 가득 찬 수준낮은 드라마를 아방가르드한 영화를 연구하는 인간이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곤 한다. 사실 드라마는 나에게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복잡한 철학적 미학적 논의들과 피곤한 세상사를 잊게 해주는 마취제이자, 머리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비워서 다시 일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치하고 빤한 클리쉐들도 나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즐거운 드라마들이 이상한 징후들을 내뿜으며 나에게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첫사랑 판타지가 꼭 미취학 아동 시절, 아니면 최소한 청소년기 이전에 이루어져야만 그 순수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시절의 첫사랑은, 요즘 아이들의 조숙함을 생각한다면 너무 늦은 때묻은 사랑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중년의 사랑이나 노년의 사랑은 뭐란 말인가. 흉측하게 때묻은,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냥 그런 너저분한 남녀상열지사란 말인가? 아, 이건 뭔가 불편하고 불쾌하다는 생각이 넘실거린다. 개개인에게 있을법한 원형적인 첫사랑의 기억은 물론 소중한 것이지만, 이에 대한 집착은 ‘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랑 역시 어차피 일종의 정신병 아닌가. 이런 개운하지 않은 기분은 그저 이 사회가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중년이나 노년을 배제하고 있다는 그런 에이지즘(Ageism)적 차별 때문일까 라고도 생각해 보았으나, 연령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는 첫사랑에의 집착은 그렇다고 보기엔 도가 지나치고 뭔가 더 이상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이 현상에 대해 이렇게 원인을 말했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피상적인 인간 관계만을 맺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신뢰하고 사랑할 만한 대상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맞는 말일 것 같다. 이런 측면 역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어투를 빌어 표현하자면, 그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뭔가 그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고 말해야겠다.

대체 뭘까? 가끔씩 그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현듯 ‘그 이상한 기운’이 뭔지 알 것만 같았다. 왜 지금 알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때문이었다. 99 퍼센트의 국민을 좌파로 몰고,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을 좌편향 빨갱이로 몰고 있으며, 국정화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없다고 하는 이 황당하고 끔찍한 메카시즘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시점이 바로 나로 하여금 ‘그 이상한 기운’을 파악하게 만들었다. IMF 이후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경제 침체와 경제적 불안정은 정치적 보수화를 가속화시켰고, 그 결과 우리 모두가 맞닥뜨리고 있듯 현 정권은 역사의 시계를 1970년대로 되돌리고 있다. 국정화 문제는, 우리집 아이의 표현을 빌자면, ‘박근혜의 공약대로 전국민을 대통합시키고 있다’고 할 만큼 보수와 진보를 넘어 모두가 반대하는 문제임에도 강행시키는 저 대담함은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추친력 아니던가. 모두가 다 아는 이런 시국에 나는 왜 첫사랑 드라마들 이야기나 하고 있는 것일까. 첫사랑에의 집착이라는 전국민적 정서가 혹시 박정희에 대한 첫사랑과 유사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대통령이라는 중요한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박씨 왕조의 공주로 인식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를 선택한 국민들의 선택은 박정희의 경제 성장에 대한 첫사랑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야 현재의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 여자가 대통령으로 뽑힌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 아닌가. 결국 국민들이 선택한 것은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이다. 박정희라는 첫사랑에 대한 집착이 결국은 박근혜 정권이라는 시대착오적 결과를 자아낸 것이다. 정치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첫사랑이라는 과거의 판타지에 대한 집착이 현재를 갉아먹는 것이 2015년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는 시대정신(Zeitgeist)이라니. 이 첫사랑 판타지에 대한 집착은 더 이상 순수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이것은 병이다. 특히나 10세 이전의 첫사랑에 대한 집착은, 현재의 이상한 기운 속에서 박정희라는 판타지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생각하니, 그저 병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점잖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집착이 너무나도 강해서 이는 음란한 도착증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10세 이전에 만났던 첫사랑 꼬마아이는 그 사이 많은 세상 풍파를 겪으며 더 이상은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니며 나 역시 그 때의 내가 아니다. 6-70년대 경제를 살렸다는 (물론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그냥 군말없이 일단은 인정하기로 하자.) 박정희 정권이 가고 우리나라 경제를 둘러싼 상황은 그때의 상황과 조금도 같지 않다. 이러한 모든 중요한 세상사의 변화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기억 속 판타지의 대상에 집착하는 것은 거의 시체애호증(necrophilia)이나 소아성애자(paedophilia)의 변태적 도착증과 너무나도 유사하지 않은가. 징그럽다. 소아성애증 말이 나온 김에 최근의 아이유 ‘제제’ 논란이 떠오른다. 아이유의 해석이 소아성애를 부추기므로 음원을 폐지하라는 사람들이 3만명에 이른다는 기사를 보고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다. 소아성애증의 대상이어야 하는 아이유가 그 시선의 관계를 뒤집자 광분하는 꼴이라니.. 진정 사회에 해로운 도착증 환자들은 저기 다른 곳에 있는데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럼 과거는 다시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그런 대상인가? 아니다. 우리는 늘 그 과거의 영향권 하에서 살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과거는 현재의 우리를 규정한다. 과거는 그저 아무 쓸데 없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굳이 철학자들의 이름과 논의들을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과거는 현재 속에 공존하고 있으며 현재를 규정하는 막강한 존재론적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과거를 현재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면하고 인식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첫사랑이든 아니면 과거사이든 간에. 왜 우리 사회는 지금 과거를, 그것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던 과거를 현재에 아주 음란한 방식으로 반복하게 되었는가. 이 무슨 징그러운 반복강박인가. 어린 시절의 첫사랑에의 실패를 계속 반복하는 강박적 증상의 원인은 대체 무엇인가. 그 원인 역시 과거에 있다. 지금껏 우리는 과거를 제대로 대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의 개념을 조금 이용한다면, 과거에 대해 제대로 된 애도(mourning)를 하지 않은 탓일지 모른다. 첫사랑을 잃고 엉엉 울며 소주잔에 의지하는 것만이 애도는 아니다. 데리다에게 애도란 그저 지나간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애도란 과거를 현재에 불러내어 정당하게 인식하고, 그럼으로써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 과거와는 다른 변화된 미래를 여는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는 과거를 정당하게 대우한 적이 없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행위를 한 인물들은, 조선시대식 어휘로 표현한다면 역모를 꾀한 것이고 이는 3대를 멸해야 하는 중죄이거늘, 우리는 그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챙긴 부와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놔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군정기의 혼란과 미국의 이익 때문에 시작이 되었건, 일본에 혈서로 충성을 맹세했던 전직 일본군이 나라를 18년이나 통치했던 이유 때문이었건, 그들의 자손들이 여전히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건 간에 말이다. 바로 그 자손들이 이제 자신들의 더러운 과거를 맑고 깨끗하게 세탁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계속하여 유지하고 강화할 바탕을 마련하고 있다. 그들에게 과거는 그 어떤 현재의 반대보다도 강력한 현재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4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 닥터 후(Doctor Who)의 타임머신 타디스(Tardis)도,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의 드로리안(Delorean)도 없는데 우리 모두가 원치않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 하수상한 도착적 정권은 전 국민을 원하지도 않았던 시간여행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타임머신의 시간을 어떻게 1970년대가 아닌 2015년으로 재조정할 것인가. 데리다가 말하는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은 대체 어떻게 열 수 있다는 말인가. 뻔한 답이지만 우리의 과거를 절대로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도 세탁하고 싶어하는 얼룩진 과거를 제대로 활짝 펼쳐서 김치국물 얼룩 하나까지도 모두가 볼 수 있게 하고, 그에 대해 정당한 대우 (doing justice)를 해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아마도 페티쉬라 할 수 있을만한 첫사랑에 대한 도착적 정신병은 음란함의 정도를 넘어 우리 나라 자체를 거대한 폐쇄 정신 병동으로 변하게 만들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는 박씨 가문의 인물들을 현재까지 두 번 만났다. 피천득의 인연을 다시 떠올린다면, 우리에게 한번의 기회가 더 있는 것이다.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인 세번째 만남은 결코 성사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화폐 또는 상품유통[자본론강독]-20

화폐 또는 상품유통[자본론강독]-20

정리 : 신준하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 1절 가치의 척도

 

이제부터의 논의에서 금은 화폐상품으로 간주한다.

금은 모든 상품에 대해 질적으로 동일하고 양적으로 비교 가능한 가치표현의 재료로, 즉 가치의 일반적인 척도로 기능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단위 측정의 근거가 금이 화폐라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주지하고 있는 사실, 모든 상품에 내재한 공통적 속성 – 상품에 대상화된 인간노동- 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금이라는 하나의 특수한 상품이 대표적인, 공통적인 가치척도인 화폐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가치척도로의 화폐를 가치척도의 필연적인 현상 형태로 생각해야 한다.

화폐가 가치척도로 기능함에 따라 늘어서있던 상품의 행렬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금이라는 화폐와 상품의 비교만이 남는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는 단순한 또는 개별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의 모습을 띠고, 전개된 상대적 가치표현은 화폐상품의 독특한 상대적 가치형태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그 가치형태의 모습은 ‘상품의 가격’이라는 형태로 사회에 출현한다. 다만, 화폐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 화폐가 다른 상품들을 상대로 통일적인 상대적 가치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등가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어 반복적 관계일 뿐이다.

이제 화폐와 가격의 문제에 대해 고려해본다. 중요한 것은 상품의 가격 또는 화폐형태는 상품의 가치형태 일반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물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점이다. 가치는 상품에 내재하며, 그것을 가치척도로 재고자 할 때 관념적인 금과의 상상된 관계에 의해 표현된다. 상품의 주인이 자신의 상품가치에 가격이라는 형태를 부여한다 할지라도, 아직 그의 상품이 금으로 전환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상품의 가치는 여러 크기의 상상적 금량이라는 동일한 명칭의 양으로 전환된다. 다만 상품의 가치를 배제한 채, 척도로의 가격이라는 사회적 형태만을 고려한다면 가격의 문제는 “화폐 재료”로부터 비롯한다. 즉, 특정상품의 가치는 동일한 양의 노동량을 포함하는 상상 속의 화폐상품의 양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논리적으로 유통되는 화폐상품의 재질이 복수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상품만이 가치척도로의 지위를 유지한다. 이중의 가치척도가 가치척도의 기능과 모순 된다는 것이다. 이제 금이 가치척도로의 견고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금량을 가치들의 도량단위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도량단위는 세부적으로 분할된 도량표준으로 발전한다.

출처: www.salon.com

출처: www.salon.com

 

결국, 지금까지 고찰한 화폐의 기능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노동의 사회적 화신으로, 가치를 측정하는 가치척도로의 기능이며, 또 하나는 고정된 무게라는 속성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금의 양을 측정하는 도량표준으로의 기능이다. 맑스가 보기에 화폐형태를 고려할 때 우리는 이 두 기능을 분리해서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화폐가 도량표준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도량을 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노동생산물로의 금 역시 잠재적으로 가변적인데, 이는 금이 가치척도가 되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의 가치가 변동하더라도 (가치가 전환된 형태인) 여러 가치의 금량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상품가격이 오른다면, 그것은 나머지 요소들은 고정된 상태에서 상품가치가 올랐거나, 화폐 가치가 떨어진 것이고, 상품가격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상품가치가 내렸거나, 화폐 가치가 오른 것이다. 금의 가치가 변해도 도량표준으로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문제는 없는 셈이다. 한 가지 고려할 것은 문화적, 관습적 요소들에 의해서 화폐의 명칭이 그 무게 명칭으로부터 분리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결국 도량표준의 화폐명칭은 실제 무게와 동일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이름을 획득하고, 법률에 의해 규제된다. 이제 “1쿼터의 밀은 1온스의 금과 가치가 같다”고 표현하지 않고, “3파운드 17실링”의 가치가 있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3파운드 17실링”이란 것은 그러한 가격을 가진 상품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물의 명칭은 사물의 성질과 관련성을 가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화폐의 명칭들에서 우리는 상품의 가치 관계의 흔적들을 찾을 수 없다. 가격은 상품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의 화폐명칭이기는 하지만, 그 외현된 이름으로부터 가치관계의 논의를 시작할 수는 없다. 나아가 화폐형태와 상품 사이의 관계를 단순한 상대적 가치형태와 그것의 등가형태의 표현으로 간주하기도 어렵다. 즉, 가격이라는 형태는 상품의 가치와 더불어 수요/공급 등의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변화되어 출현하기에, 상품가치량의 지표로의 가격은 상품과 화폐 교환 비율의 지표이나,

그 역의 관계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이 동일한 이상, 사회적 노동 시간이 동일하다면, 그 상품의 가치량은 동일하게 상품에 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가격으로 사회적으로 외화된 형태로 출현할 때는 사회적 조건이 그 거울 관계를 왜곡시킨다. 결국, 가격과 가치량 사이의 양적 불일치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가격 형태에 내재하는 것으로 이 질적 모순은 거의 언제나 존재한다. 가격형태만을 가지지 가치가 없는 것(양심, 명예), 상상적 가격형태(미개간지) 등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상품이 그 가치를 고려할 때, 현실의 물질적 형태에서 벗어나 상상의 금과 비교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때의 금은 관념적인, 상상적인 금이지만, 주인이 상품에 가격이라는 형태를 부여하길 원한다면, 상품이 등가물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상의 금은 실제의 금으로 대체되어 출현해야 한다. 사실상 관념적 가치 척도에는 hard cash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금이 현실의 금으로 전환되는 순간, 노동생산물이라는 가치 형태가 그것이 그대로 반영되기보다 필연적으로 변형되어 ‘가격’이라는 모습을 가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9

가을과 겨울의 중간 사이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가을과 겨울의 중간 사이

삶은 깊은 것도 얕은 것도 아닌 중간 사이다.

깊어질 것 같은 가을 위에 어느 사이 옅어지는 겨울이 하나둘씩 쌓이고

우리의  추상의 모호함은 눈 위에 소복히 쌓인다.

소리없는 외침의 갈망은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는 발자국을 남기고

남겨진 발자국 위에 흰  북소리가 덮는다.

표현할 수 없는 공기를 가두어 공기라고 하고

온데 간데 없는 흔적은 흔적조차 없는데 흔적이라고 하고

우리는  바람 사이로 흩어지는 가을과 겨울의 중간 사이를 닮았다.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이시대와철학2015-10-김설미향

[서평] 해방 후 3년: 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해방 70년-분단 70년이 되는 해에 ‘해방 후 3년’을 돌아보는 이유

조한성, 『해방 후 3년: 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생각정원, 2015

 

 

조배준(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원)

 

분단과 전쟁으로 귀결된 ‘가능성의 역사’

1945년 이후 육십갑자가 지나고 십년이 더 흘렀다. 당시 한반도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날’은 일제로부터 ‘해방(解放)’되었다는 환희를 느끼기에 충분했지만, 점령군이 된 강대국들 사이에서 민족의 미래를 온전히 우리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불안감도 엄습했을 것이다. 식민지 상태를 벗어났더라도 진정한 주권을 확보한 독립 국가를 건설하기까지 예상되는 수많은 난관을 짐작해보면 그들에게 진정한 광복(光復)은 요원했으리라. 그런데 정부는 올 해가 ‘광복 70주년’임을 강조하면서도 그 숫자가 동시에 ‘남북분단의 역사’를 가리킨다는 것은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8.15 해방 이후 정확히 3년이 되는 날에 대한민국이 건국되기까지, 즉 적대적 분단시대가 도래하기까지 한반도의 사람들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이념들의 정글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암울한 식민지 터널의 끝에서 염원하던 해방이 도래했지만, 우리는 왜 분단이라는 또 다른 터널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처럼 독립의 완결과 분단의 극복은 서로 중첩되고 연결된 역사적 과제로서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남아 있다. 친일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에서 후대 세대에게 민족국가의 진정한 독립을 운운하기가 어렵다면, 진정한 광복 역시 한반도의 분단이 지속되는 한 완수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의 역사를 한국만의 관점에서 거칠게 요약하자면 ‘건국․압축성장․민주화’의 과정이겠지만, 한반도 전체로 보자면 그것은 곧 ‘분단․전쟁․적대적 대립’이 낳은 구조적 산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통일된 민족 국가의 건설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로 다른 두 체제로의 분단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해방 후 3년’은 남북이 각각 성공한 ‘건국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분단으로 귀결되고 만 ‘실패의 역사’이다.

그런데 이 책의 필자(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는 그 실패의 역사에서 ‘가능성의 역사’를 확인하려고 한다. 그는 “해방 후 3년은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었고,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만들 수 있었”던 시기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 해방공간의 이야기 속에서 미래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안에 일치된 노선이나 어떤 합의점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마다 신봉하는 가치를 절대시하고 너무나 다른 민주주의‘들’을 말했으면서도 그 실패의 역사에는 새로운 사회 구조를 지향했던 강렬한 열망이 숨어 있다. 그런 점에서 그 혼돈의 과정은 각 민족 지도부의 시행착오와 좌충우돌 또는 점령군의 전횡과 억압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곳곳에서 야만적 폭력이 횡행했지만, 적어도 당시는 개인적 삶과 정치공동체의 혁신을 함께 꿈꿀 수 있을 정도의 희망은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조국을 ‘헬(hell) 조선’이라는 말로 요약하는 젊은이들이 태반인 2015년의 한국에서 그 시대가 품었던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위한 희망”은 간절하게 그리운 것이다. ‘자살률 세계 최고, 출산율 세계 최저’로 대변되는 오늘날 한국 청년 세대들의 절망적 시대 인식을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는 단지 정권교체로 일어나는 역사적 진보나 퇴행의 수준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 인민들과 정치공동체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미래 전망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민족의 통합을 말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뜬 구름 잡는 얘기로 간주되고, 국가 시스템은 위급한 상황에서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스레 확인시켜 주고, 정치는 혐오나 냉소의 대상이 되어 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른바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 찬란한 ‘광복 70년’의 해에 한국현대사의 출발점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7인의 민족지도자, 그들의 선택과 분열의 한계

필자는 해방 후 정치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7명의 민족지도자들, 즉 여운형, 박헌영, 송진우, 김일성, 이승만, 김구, 김규식이 어떤 정치적 열망 혹은 야망을 표출하며 새로운 국가의 건설로 나아가려 했는지를 추적한다. 필자는 이 7명의 언급 순서는 “해방 후 활동을 개시한 순서나 귀국한 순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이 대표하는 각 세력의 제반 조건 및 활동 방향의 배경과 그 결과를 요약하며, 1947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종료 시점까지 즉, 분단으로 가는 폐쇄회로에 갇히기 전까지 그들의 ‘차이’를 강조한다. 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을 미리 준비하며 자주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국내에서 노력했던 여운형, 일제강점기 한국 최고의 공산주의 이론가이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였던 박헌영, 국내 우파 민족주의 세력을 대표하던 송진우, 항일무장투쟁의 전설적인 지도자로 이름을 떨치던 소련군 장교 출신의 젊은 지도자 김일성, 미군정의 적극적인 후원을 이끌어내며 급부상하고 있었던 이승만, 임시정부를 이끌며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세력을 대표하던 김구, 중도우파 입장을 대표했던 김규식의 존재는 오늘날의 한반도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정치적 세력들을 대변한다.

물론 이 책은 서술 과정에서 때로는 논리적 비약이나 압축을 부득이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제한된 분량의 대중교양서에서 각 인물들의 성취와 한계를 분명히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보다 저자가 더 경계하고 있는 점은 ‘해방 후 3년’은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되어 있었다는 시각이다. 냉전의 서막을 알리며 한반도에서 맞붙은 두 강대국 사이의 힘겨루기 속에서 어떻게 분단을 피할 수 있었겠냐는 논리이다. 미소의 분할 점령과 모스크바 3상회의, 미소공동위원회 등 세계 질서 재편의 흐름 속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도 그저 강대국 입장의 대리인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비록 그 ‘세계 체제의 규정력’이 막강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해방 후 3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미․소가 만든 세계 질서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면서 하나하나 소중하게 만들어간 역사”라고 강조한다.

여러 단체와 조직이 서로 다른 정치적 이상을 지향하며 난립하며 경쟁하던 당시 상황에서 저자는 민족통일국가가 수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시점으로 정당통일운동과 정부통합이 시도되었던 해방 이후의 4개월여 시간을 꼽는다. ‘각정당행동통일위원회’라는 상설 회의기구가 만들어졌던 데에서 보듯이 당시 단일한 정치적 의결기구를 건설하기 위한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좌우익으로부터 조정자 역할을 위임 받게 된 이승만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우익인사로만 채우면서 이 정당통일운동의 성과와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그 후 중경 임시정부와 조선인민공화국의 좌우익 ‘통일합작운동’이 기대를 받기도 했지만, 큰 뜻으로 화합하지 못하고 단기 정략적인 입장만을 내세운 각 세력의 태도로 인해 역시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또한 신탁통치에 대한 격렬한 입장의 대립 이후 한국민주당, 국민당,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이 참여한 ‘4당 합의’도 우익 정당들의 중도이탈로 수포로 돌아갔다. 여운형과 김규식으로 대변되는 좌우세력이 다시 만났던 ‘좌우합작운동’에서도 박헌영이 주도한 좌익 세력의 비타협적인 입장은 걸림돌이 되었다.

이처럼 통합된 힘을 창출하지 못했던 연속된 분열과, 지리멸렬하게 소멸해 버린 자생적 정치역량의 표출 가능성을 돌아보면서, 저자는 민족의 역량이 결집될 수 있었던 기회의 상실을 탄식한다. 미소공동위원회가 공전되면서 ‘예정된 미래’로서의 분단이 다가올 때,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쳐 합의를 종용했다면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의 의견을 고집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각 세력의 합치된 의견이 단일한 정치력으로 승화되었다고 해서 극동지역에서 맞붙은 세계체제의 강고한 규정력을 극복할 수 있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역사적 성과는 이후의 분단 극복 과정과 통일의 전망을 위해서 중요한 자산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추측해볼 수 있다. 당시 이념적 대립을 넘어 민족적 합력이 단기간이나마 창출될 수 있었다면, 외세의 영향이나 체제의 통합보다 사람들 사이의 통합이 분단 극복의 과정에서 최우선이라는 민족적 가치가 명징하게 부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는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자마자 미소의 동아시아 전략에 종속된 극단적 이념 지향의 미로 속에서 전선의 최전방이 된지 2년도 채 안 되어 잿더미가 되었다.

 

대한민국 탄생 시기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이런 점에서 해방 후 3년은 오늘날 세습 통치와 수령론에 근거한 극단적 폐쇄사회인 북한 체제와, 반세기 넘게 친일친미기득권 세력의 후예들이 건국세력의 적통을 참칭하며 여타의 다른 세력을 ‘좌빨종북’으로 매도하는 한국정치사의 근원적 모순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건전한 보수 민족주의 세력, 열려 있는 사회주의 세력, 중도좌․우 세력 등이 한반도의 정치 지형에서 설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되고, 극단적인 체제경쟁과 적대적 군사대치가 각 통치 세력들에게 활용되기도 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3년간의 정치적 진통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공간의 정치 지형이 응축하고 있던 공화의 이념, 민주주의의 다양한 논리들의 스펙트럼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공화’와 ‘민주’의 개념이 아주 제한적이고 편향적인 의미로 축소되어 통용되는 문제의 극복과도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분단의 지속 과정에서 두 체제가 적대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키워 온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분단은 우리 삶과 국가의 특징적 ‘변수’로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익숙한 제반 조건으로 간주되기 일쑤이다. 북한을 불가해한 타자로 대상화시켜 ‘통일대박론’의 도구적 가치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간편한 사고방식이며, 분단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는 문제와 통일을 연결시킨다는 생각은 아주 낯선 생각인 것이다.

물론 필자가 다소 민족 개념을 엄밀하지 않게 남용한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이 책만의 아쉬움이 아니라 계속 함께 고민할 화두로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서평을 마무리하며 저자의 서술 의도를 다시 한 번 옮겨 본다. “해방 후 3년의 역사에서 우리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고, 역사의 가능성을 돌이켜보는 것”을 통해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의 가능성’을 확인하자. 그리고 지금, 우리의 선택은 어떤 역사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대학에 적을 둔 일반 학자들이 연관성 높은 기존의 논문을 아주 포괄적으로 엮어 출간하면서 전문학술서를 표방하는 데 비해, 민족지도자들의 ‘선택’을 비교적 공정한 시각에서 비교하면서도 선명하게 유지된 필자의 문제의식은 광복 70년을 맞이하는 올 해에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부활이 가시화된 요즘,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탄생’이 어떤 역경과 희생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강조하며 그것을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객관적이냐’의 문제가 다시 뜨거운 논쟁 속에 휘말릴 것이다. 해방 후 3년, 어렵게 탄생했고 숱한 과제를 안고 있던 당시 신생 대한민국에서도 “새로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싸움은 독재와 민주주의의 싸움이자 분단과 평화통일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은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한, 지지부진하더라도 결국은 국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신생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앞에 놓인 운명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민주주의의 확산과 발전, 친일세력과 기획주의자들에 대한 과감한 역사적 청산, 봉건적 잔재와 부정부패를 일소한 시민사회의 발전, 부가 독점적으로 세습되지 않는 민주적 경제발전, 한반도 평화의 유지와 민족통일의 달성. 이 과제들은 비극적이게도 70여년 전과 다름없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숙제이며,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앞에 놓인 문제들이다.

해방 후 3년

[도봉도서관강의]인간의 성(性)과 욕망의 주체(2)

인간의 성(性)과 욕망의 주체(2)

 

김우철(호원대 외래교수)

 

4. 욕구, 요구, 욕망

아기의 울음은 처음에는 배고픔이라는 본능적 욕구(need)를 전달하는 표현수단에 지나지 않다. 하지만 울음에 대해 엄마가 보이는 사랑의 응답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아기의 울음은 이제 엄마의 사랑에 대한 요구(demand)로 점차 바뀌어간다. 그러니까 배가 고파서 운다기보다 엄마의 사랑이 그리워서 운다는 뜻이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욕구의 주체는 이리하여 점차로 요구의 주체로 바뀌어 간다. 특히 언어교육이 이루어지고 초보적 수준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짐에 따라 아이와 엄마 사이에는 이런저런 요구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된다.

아이의 성장과정이 늘 행복한 경험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기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첫 번째 상실의 아픔은 바로 젖떼기(離乳)이다. 태어나서 매일같이 마음껏 빨아오던 젖가슴이 이제 아무리 울고불며 찾아도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이 상실의 아픔을 통해서만 아기는 엄마의 젖가슴과 젖꼭지가 나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게 된다.

젖떼기 시기에 아이가 자지러지듯 울며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욕구의 만족이 아니다. 그것은 엄마와의 일체감 속에서 맛보았던 ‘사랑의 만족감’이다. 곧 엄마 품에 안겨 엄마 목소리와 숨소리를 들으며, 엄마 시선을 마주보며, 젖꼭지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면서 달디단 젖을 먹던 그 행복한 느낌을 되돌려달라는 요구이다. 그러나 아이의 요구는 이제 좌절을 맛보게 된다. 욕구야 앞으로도 이러저러하게 충족되겠지만, 한때 경험했던 완전한 사랑의 만족감은 영원히 상실되고 만다.

이처럼 사랑에 대한 요구가 좌절되는 경험을 통해 아이는 엄마와 자신 사이에 놓인 간극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젖떼기나 배변 훈련을 통해서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양육 과정 속에서 엄마가 아이의 요구를 외면하고 거절하는 일은 더욱 자주 일어난다. 이것은 아이가 보기에 엄마가 더 이상 자신만을 사랑하거나 자신에게서 충분한 만족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아이에게는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엄마는 진짜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애타게 부르는데 왜 나타나지 않는 거지? 엄마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의문에 싸인 아이는 마침내 엄마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즉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고, 그래서 무엇인가 찾고 있고, 그래서 무엇인가 욕망하는 존재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이처럼 엄마의 욕망(desire)을 깨닫게 된 아이는 이제 그 자신이 욕망의 주체로 탈바꿈하게 된다. 왜냐하면 아이는 엄마가 욕망하는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를 간절히 욕망하기 때문이다.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는 아이가 무엇을 욕망할지를 엄마로부터 처음 배울 뿐 아니라, 엄마가 아이 자기 자신을 욕망해 주기를 욕망한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욕망해 주기를 욕망한다. 엄마의 욕망에 눈을 뜨고, 나아가 엄마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아이는 이제 마침내 엄마와 본격적으로 분리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아이의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이 단계를 가리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라고 이름 붙였다.

5. 욕망하는 주체의 탄생

‘오이디푸스(Oedipus)’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왕으로서 신탁에 따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비극적 운명을 겪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프로이트는 이 신화가 아이의 정신적 성장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고, 반대 성의 부모와 성적으로 결합하려고 애쓰는 반면 같은 성의 부모를 증오하는 심리상태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남자아이 같으면 엄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증오하는 심리이고, 여자아이 같으면 아버지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증오하는 심리를 말한다. 이런 오이디푸스적 삼각관계는 어떻게 해서 아이 마음 속에 자리하게 되는 걸까?

정신분석학에서는 그 원인을 엄마의 욕망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아이가 아버지의 남근에서 찾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아이는 엄마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던 차에, 엄마에게는 없고 아버지에게는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남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남근이 바로 엄마가 욕망하는 대상이라고 믿게 된다. 프로이트는 모든 아이(남아와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시기에 남근이 이처럼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고 그 시기를 남근기(2세~6세)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이 시기의 아이는 남녀 성기의 차이가 무엇인지, 즉 여자 생식기가 남자 생식기와 달리 몸 속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설령 안다 하더라도 아이의 관심은 그런 해부학적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엄마에게 없는 것이 (그래서 엄마가 아이 자신 말고 욕망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결여한 것이 엄마가 늘 사랑과 관심을 보이는 아버지가 갖고 있는 것, 바로 남근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눈에는 그것 말고 엄마에게 없는 것은 없으니까.

여기서 유의할 점은 프로이트나 라캉이 말하는 ‘남근’은 어른들이 이해하는 ‘남자의 성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는 ‘성’이 뭔지, ‘성교’나 ‘성기’라는 것이 뭔지 아무 개념이 없다. 따라서 그것은 실제의 남근이 아니라 ‘엄마가 욕망하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심리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그래서 라캉은 ‘페니스’와 구별되는 ‘팔루스’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팔루스는 아이의 눈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보물과 같은 것이다.

이리하여 아버지의 남근은 엄마와 아이의 최초의 결합을 분리, 해체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아이는 처음에는 엄마가 원하는 남근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믿고 엄마가 욕망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엄마의 결여를 자신의 남근으로 메우려고, 그래서 아무것도 결여되지 않은 예전의 일체감을 회복하려고 시도한다(근친상간 욕망). 그러나 이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거니와 그리 오래 가지도 못한다. ‘엄마에게서 당장 떨어지라!’ 하는 아버지의 금지 명령이 추상같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금지 명령은 비단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의 대리자 격인 엄마나 다른 어른들의 입을 통해 반복해서 떨어진다. 더구나 그 명령은 거세(castration) 위협까지 동반한다. ‘고추를 떼버리겠다’는 위협은 엄마에게서 거세의 표식을 이미 확인한 아이로서는 심각한 위협과 공포로 다가오게 된다.

결국 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금지하는 아버지의 명령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어머니와의 합일 그리고 그 합일이 안겨주던 만족감을 영원히 단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세라는 상징적 과정이다. 아이는 거세 과정을 거쳐 마침내 정신적으로 엄마와 완전히 분리되고, 하나의 ‘욕망하는’ 주체로 자리잡게 된다. 아울러 인간의 세계 곧 도덕과 법의 세계의 구성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욕망하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 맨처음 경험한, 그러나 영원히 상실하여 되찾을 수 없는, 그렇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엄마와의 행복한 일체감이다. 욕망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그 일체감을 부분적으로라도 구현하는 사람이나 대상을 찾아 평생 헤맨다. 그러나 그 욕망을 충족시켜 줄 대상은 없다. 그것은 영원히 상실된 것이기 때문이다.
6. 인간의 성

이제 마지막으로 앞에서 제기한 몇 가지 남은 문제에 대해 개괄적으로 답변해 보자. 먼저 인간의 성적 쾌감의 문제이다. 인간의 경우 성욕 만족에서 오는 쾌감은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식욕이나 갈증 같은 자연적 욕구의 해소에서 오는 단순한 쾌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근친상간 금지’라는 도덕/법에 의해 강력하게 억압된 상태에서의 성충동의 만족이기에 (라캉이 주이상스, 곧 ‘고통 속의 쾌락(pleasure in pain)’이라고 부른 데서 알 수 있듯이) 비할 바 없이 자극적이고 외설적이라는 특징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해, 금기를 위반하는 데서 오는 쾌락은 그렇지 않은 쾌락에 비해 훨씬 더 증폭된다.

성감대의 편재성(遍在性)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식기 말고도 신체 전반에서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유아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는 과정에서 느꼈던 사랑의 손길이 오이디푸스적 억압을 당한 뒤에도 신체 곳곳에 무의식적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성감대는 영원히 상실한 어머니와의 일체감의 기억과 소망이 잠들어 있는 신체 부위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성(性)이 신체적 현상이 아니라 정신적 현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성은 기본적으로 본능적, 신체적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정신적 현상이다.

그러면 내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하는 성 정체성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되풀이하지만 성 정체성은 아이가 자기 생식기를 내려다보면서 스스로 깨닫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앞서 오이디푸스 및 거세 과정을 남아 중심으로 설명했지만, ‘정상적인’ 남자아이라면 거세 이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팔루스를 소유한 아버지에 대한 존경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여자에 대한 사랑을 먼훗날로 기약하게 된다. 즉 남자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더불어 여자에 대한 이성애적 지향성을 확립하게 된다.

반면에 여자아이가 여자가 되는 길은 훨씬 더 복잡한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와 달리 생물학적으로 같은 성인 어머니가 최초의 사랑 대상이다. [* 이런 차이 때문에 정신분석학에서는 여자에게 동성애의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보며, 남자 동성애를 도착증으로 보는 반면 여자 동성애는 특수한 병리 현상으로 보지 않다. 심리학적 여성의 심리구조에는 동성애적 요소가 강하게든 약하게든 보편적으로 내재해 있다고 본다.] 그러다가 여자아이는 어머니의 결여를 인지하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어머니에게 등을 돌리고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니까 여자아이는 이미 거세를 경험한 상태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친다는 점에서 남자아이와 경로가 다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자아이는 이 시기에 자신에게 없는 남근을 선망하게 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남근 대신 아기를 소망하게 된다. ‘정상적인’ 여자아이라면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다는 근친상간 금지법을 수용하고 나서 (즉 최종적 거세가 일어나고 나면) 아버지 대신 아기를 제공해 줄 남자를 기다리게 된다. 즉 여자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더불어 남자에 대한 이성애적 지향성을 확립하게 된다.

그러지 않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여 좌절이나 분노를 겪게 되면 (예컨대 이 시기에 엄마가 아기를 낳음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이 자기 아닌 엄마에게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이 여자아이는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아이는 이제 스스로를 아버지보다 더 남자다운 남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사랑의 대상을 이전의 어머니에게서 찾기 때문이다. 즉 성적 정체성은 아버지와 동일화하여 남자가 되지만, 성적 지향성은 여자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자의 성과 여자의 성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간략히 설명했다. 정신분석학이 성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소개하는 것이 초점이었므로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성적 정체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확립되는지를 이해했다면, 성적 소수자들의 다양한 성적 지향성, 나아가 갖가지 정신병리적 증상들[* 신경증(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증), 도착증(새디즘, 매조키즘, 관음증, 노출증, 페티시즘 등) 그리고 정신증(편집증, 분열증)]이 모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형성과 해소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대략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이 인간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 그리고 정확히 그 역도 똑같이 성립한다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의 핵심 테제이다.

[서평] 판문점 체제: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를 위한 지구사적 탐구

판문점 체제: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를 위한 지구사적 탐구 

김학재, 『판문점 체제의 기원: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기획』, 후마니타스, 2015.

 

 

조배준(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원)

 

 

1. 한국전쟁과 한반도 분단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오늘날 판문점은 한국전쟁의 기억과 고통을 상기시키는 상징적 장소이자, 어느덧 70년이 된 남북분단과 60년 넘게 지속되는 정전체제의 당위성을 강화시키는 현장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다. 한반도의 적대적 분단체제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마음의 장벽’을 더욱 단단하게 쌓아왔는가. 지금까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전쟁’의 준비와 발발에서 시작되어 ‘정전’ 상태의 지속으로 해명되는 프레임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북의 기득권 세력은 늘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과거의 전쟁을 적대적으로 기억하게 만들고,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을 강압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체제 내부를 단속하고 강화시켜왔다. 그런데 판문점으로 상징화되는 분단체제와 한국전쟁의 성격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 ‘전쟁의 기원’이 아닌 ‘평화의 기원’을 고찰해볼 수는 없을까.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나가면서 한국전쟁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결론에 이르러서는 뒤르켐의 생각에서 기초하는 ‘연대로서의 평화’를 제안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현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박사후 전임연구원인 김학재의 박사논문인 이 책은 이처럼 한국전쟁을 보다 거시적 안목에서 바라보면서 한반도의 분단 지속을 재인식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지구사(Global history)의 관점에서 유엔의 활동 및 국제법, 그리고 근대 자유주의의 기획 안에서 한국전쟁의 추이와 분단 체제의 성격을 추출해내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미국이나 유엔은 한국전쟁을 잊고 있지만, 한국전쟁에서 고착화된 한반도의 정전 및 분단체제를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주변국을 비롯한 당대의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 물론 저자는 세계와 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민족사의 틀을 벗어나 세계의 주요 흐름을 총체적인 맥락 속에서 인식하는 지구사의 위치에서 이 문제를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포착은 한국전쟁 및 정치사연구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한반도 분단 상황의 극복에도 참신한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논자는 한국전쟁에 관한 이러한 시각을 한반도 문제의 재인식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한․중일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타개하고 실질적인 협력과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지평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처럼 ‘전쟁의 기원’이 아니라 ‘평화의 기원’이라는 기획이 중요한 이유는 논자가 보기에 무엇보다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성찰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저자의 이러한 시도는 오늘날의 우리 삶의 방식과 체제의 유지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역사 속의 한국전쟁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는 현재의 문제이자 평화로운 미래를 희망하기 위한 현실적 과제로 한국전쟁을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 및 결과에 주목했던 1세대의 연구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그 전쟁의 결과가 근대적 자유주의 기획의 영향권 안에서 어떤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20세기의 세계사와 한국사의 접점을 새롭게 구상해보기 위해서도 이 연구는 가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초석을 놓았다고 할만하다. 바로 이러한 지점들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한 소장 연구자의 이 도전적인 박사논문에 석학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으리라.

 

2. ‘판문점 체제’의 성격과 실천적 과제

저자는 아시아 패러독스의 핵심 기반 중 하나인 ‘한국전쟁 군사 정전 체제’를 뒤집어 인식하여, ‘판문점’으로 표상되는 전쟁의 위협을 오히려 ‘하나의 특수한 평화체제로서 판문점 체제(Panmunjom regime)’라고 부르고 있다. 냉전의 가장 대표적인 유물인 판문점이 갖고 있는 의미를 전복하여 기존의 것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재사유하는 전략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껏 지속된 ‘판문점 체제’는 겉으로는 정전을 표방하면서도, 속으로는 서구의 자유주의 진영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서 만들어낸 기이한 평화 기획으로 재사유된다. 그래서 이 개념은 전쟁이 종식된 것이 아니라 잠시 중단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냉전적 적대관계를 60년 넘게 보존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은 역사적으로 희귀한 현상”이라고 지적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기 위해서 도출된 것이자, 민족사의 딜레마가 세계사적 맥락과 연계되기 위한 이론적 발판이 된다. 즉 특수한 역사적 사례를 보편적 세계사 안에 위치시키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와 세계사의 접점을 마련하고 한반도의 분단을 지속시키는 한국전쟁과 정전체제를 세계에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일종의 보편적 개념화 전략을 취한다. 외국의 학자들이 백낙청의 ‘분단체제’나 박명림의 ‘53년 체제’란 개념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공통 지반’으로서 국제법과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한국의 정전체제를 재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래서 ‘제네바 체제(1954)’나 ‘반둥 체제(1955)’와 함께  ‘판문점 체제(1953)’가 비교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적이고 특수한 ‘사례’의 고유명사에서 출발했지만, 그 저변에는 “근대적 자유주의의 변질과 냉전체제의 구축”이라는 세계사적 맥락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내셔널 히스토리’를 ‘글로벌 히스토리’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가’에만 주목하는 것을 벗어나, ‘왜 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연장선인 정전체제에서 살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가’라는 물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자와 후자가 만나서 공유할 수 있는 이론적 지평의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판문점 체제’란 유럽의 역사가 전쟁 과정을 통해 수립했던 ‘베스트팔렌 체제’부터 ‘베르사유․샌프란시스코 체제’처럼 냉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평화 체제였다는 것이 저자의 인식이다. 저자는 오늘날에도 판문점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배경을 미국이 취하고 있는 국제 전략의 선회 속에서 인식한다. 냉전 초기에 미국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려는 ‘홉스적 평화 기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든 면에서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 우려되는 오늘날에는 다시 국제법이나 규범들을 강조하는 ‘칸트적 평화 기획’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례로서 저자가 들고 있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하거나 보급하고 있는 미국이 주도하여 유엔에서 2013년 4월 ‘재래식 무기’ 수출을 억제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협약에 118개 회원국들이 서명한 사건이다. 과도한 비용이 드는 재래식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 첨단 무인 무기의 개발과 압도적인 정보력의 우위를 통해 국제 질서의 패권을 유지하면서, 칸트적인 수단도 적절히 활용하여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판문점 체제는 “그 협약에 찬성한 미국, 반대한 북한, 기권한 중국”의 태도에 의해 요동치면서도 굳건히 지속된다. 전쟁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첨예한 갈등 지대인 한반도는 주변 국민국가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체제는 평화를 지향하는 칸트적 기획과 홉스적 기획 사이의 갈등과 공존이라는 기묘한 관계로 유지된 ‘모순적 체제’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판문점 체제는 처음부터 국제법과 국제기구 및 여러 국가들의 기획과 협상의 산물이며, 당시에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들이 현재까지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존속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인식 위에서 저자는 판문점 체제의 성격을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첫째, 6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불안하고 유동적인 임시 군사 정전 체제”이다. 판문점 체제는 국가 사이의 권력이 균형을 이룬 질서도 아닐뿐더러, 당사국 사이의 타협으로 체결된 불완전한 평화 협약 체제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지 주변 강대국들이 기존 질서에서 얻어 온 이해관계의 강박에 의존하며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국제적 보편성이 결여된 협소한 군사 동맹 체제”이다. 판문점 체제는 칸트식 국제 연방이 가지는 권위와 홉스식의 세계국가의 힘에 의존한 질서 구축이 모두 실패한 후, 더 이상의 소모전을 막기 위해 마련된 군사적 동맹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셋째, 자유주의적 제도를 물신화한 “냉전적 반공-자유주의 체제”이다. 판문점 체제는 정치 이념이자 공화국의 운영 원리로서의 자유주의에 의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우월한 문명론으로 격상시키고 다른 모든 대항․대안 이념들을 문명/야만의 이분법으로 배제하는 극우적 자유주의에 기초한 체제라는 것이다. 넷째, “동아시아 사회의 요구를 회피하고 유예시킨 탈정치적 군사․경제 질서”이다. 판문점 체제에서는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된 이후에 청산할 문제와 전후 처리할 문제 같은 한국전쟁 당시 표출된 다양한 갈등과 모순이 민주적 정치 과정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묵살되었고, 그것들은 단지 군사와 경제라는 특화된 기능에 근거한 양자 관계들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분리된 평화와 특수한 발전주의 기획의 상징”이다. 판문점 체제는 보편적 평화와 정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양자 군사동맹 체제의 결탁이라는 아주 제한된 평화와 적대적이고 경직된 체제경쟁을 가속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의 결과물로서 판문점 체제의 이러한 성격은 이 체제가 서구 자유주의 사상에서 두 가지 평화 구축 모델인 칸트의 안정적인 영구 평화 체제도 아니고, 홉스 식의 국가 간 타협에 의한 불완전한 평화 협약 체제도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즉 국제 연방 체제의 ‘권위’에 근거하지도 않고, 패권국가의 ‘힘’이 수립한 체제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판문점 체제’는 유럽의 보편적 국제 질서와는 구별되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특수한 성격, 즉 저자가 ‘동아시아 패러독스’라고 지적했던 “지역 전반에 걸친 불안한 권력 균형 상태”를 확대재생산하는 원형이 된다. 그렇다면 현재의 불안하고 협소한 일시적 평화 상태를 좀 더 완성된 평화 체제로 전환하고,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판문점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목표는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아래의 다섯 가지를 제시하는데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시 군사 정전 체제인 판문점 체제는 전투의 부재를 의미하는 부정적 의미를 벗어나, 평화를 지향하고 적대성을 완화하는 긍정적 의미를 통해 적극적 평화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경쟁적 군사 동맹 체제 간 군비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공동 안보 기구가 수립되어야 한다. 셋째, 탈정치적이고 일방적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 포괄적 합의에 기반한 동아시아 협의 체제가 필요하다. 넷째, 적대적이고 배제적인 냉전 자유주의 체제와 배제적 민족주의는 지양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외주의와 인정 투쟁을 넘어 평화와 정의의 보편성을 고양시켜야 한다.”

 

3. 한반도 분단의 극복과 동아시아의 실질적인 평화를 위해

이러한 인식 위에서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할 새로운 평화의 기준은 기존의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권위에 의존하는 칸트적 방식이나, 내전에 대항해 안보를 강조하며 파워게임을 강조하는 홉스적 방식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이제 필요한 평화 전략은 “교류와 접촉을 통해 관계와 사회를 형성하고, 관계의 구조적 불평등을 극복하며 사회정의라는 가치의 달성을 지향하는 사회적 평화”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권위의 부재’를 통해 판문점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자유주의의 기만적 이념을 넘어서, 뒤르켐이 강조했던 ‘연대’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강력한 국가의 건설이나 보편적 국제법의 구축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분업이 활성화되면서 발전하는 사회적 연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간의 갈등과 평화의 문제로 사태를 인식하는 ‘정치철학적 고려’에서 사회 자체에서 평화의 동력을 구상하는 ‘사회철학적 성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뒤르켐은 개인들을 규합하는 전통적 민족주의 또는 다른 집단의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만으로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서로 연대 의식을 가진 기관들이 충분히 접촉하고 그 소통의 과정을 지속하면서, 공통의 규범을 형성해가면 어디에서도 ‘아노미’ 상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 내부의 연대를 강화하여 자연스럽게 완전한 평화를 요구하는 상태를 상정하는 뒤르켐에서 연유한 이 새로운 평화 전략은 한국전쟁이 초래한 판문점 체제의 ‘평화’가 얼마나 반사회적․반연대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최종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당연시했던 “자유주의적 평화 추구에서 사회적 연대를 통한 평화 추구로 그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방향은 단지 한국전쟁의 종식과 한반도 분단의 극복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연대 네트워크’의 구축을 지향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뒤르켐을 빌려와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결국 국가 간 연대와 국가 내부의 사회 연대가 동시에 파괴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차원에서 지역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붕괴된 사회적 연대의 현실이 오늘날의 판문점 체제를 영구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만든다. 논자도 저자의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며 남북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인식적 지평을 공유한다면, 남북이 그 동안의 이념적․제도적․무의식적 분단을 극복해나가는 진정한 통일에 다가갈 수 있고, 그 모든 통일의 과정이 동아시아 평화 구축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변화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전망을 해본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유엔은 국제적 참전과 정전협상의 핵심적인 당사자이지만 60년 넘게 이 불안한 체제의 특성을 방치해왔다. 저자가 어느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을 위한 한국의 정전협상에 관한 유엔의 공식적인 해석은커녕, 향후 연구와 국제 활동을 위한 관련 자료의 취합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의 조건이다. 그래서 냉전 이후 끊임없이 지속된 미국의 국제관계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과 앞으로 더욱 첨예해질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고려하자면, ‘유엔을 통한 해결 노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과연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는 의문스럽다. 앞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동시에 보면서 또 다른 국제관계의 굴레에 다시 종속된 채 한반도 평화 체제의 구축을 기대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보편적 평화와 보편적 정의에 대한 지향의 부족으로 인해 판문점 체제가 내포하고 있던 부정적 유산들이 고착화”되는 것을 우려하지만, 논자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한반도 문제에 관해 지금까지 한국에서 문제가 된 것은 아시아적 가치와 제도에 대한 보편적 차원의 인식이 부족했던 점이 아니라, 냉전시대의 종식 이후에도 한국정치외교사에 관해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기를 주저했던 주류 학계의 편협함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한쪽에서는 미국 중심적․의존적 시각을 보편적 관점으로 수용하는 입장이오히려 과잉되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과도하게 축적된 민족주의적 입장을 대항 담론으로 구축하게 되었다. 결국 전향적인 역사 인식이 국가의 실천적 지향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에 관한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물론 ‘특수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구적 차원으로 문제를 확장하기 위한 ‘보편성’의 추구가 자칫 또 다른 종속적 시각에 매몰될 우려가 있는 것은 비단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근대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문제 자체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험한 ‘근대’의 비극과 그것에서 연유하여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이 고난의 역사가 단지 우리 민족국가의 불완전함과 정치적 주체의 무능력함에서만 연유한 것이 아니라, 서구적 합리성이 내포하고 있던 역사적 모순들의 비극적인 중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은 한국의 미래 세대가 전 지구적 연대 속에서 추구해나갈 평화를 상상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자극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판문점 체제’라는 창을 통해 광복-분단 70년을 맞이한 오늘날의 한반도가 그 동안 각자의 체제 유지를 위해 활용했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이데올로기의 근원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다소 단적으로 말하자면, 남북이 구축해 온 분단체제는 모두 판문점 체제, 즉 근대 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실패가 폭로된 이 기이한 국제질서에 편승하고 기생한 결과였다. 서울시 한 가운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 보듯이 그 동안 한반도의 두 국가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기념하며, 공포와 증오의 정치, 안보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 기존 체제를 존속시켜 온 사회였던 것이다. 평화를 전쟁의 가면쯤으로 여기는 것을 당연시해 온 남북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벗어나, 미래의 남북 지도자와 인민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보편적 전망’의 출발은 한반도의 분단 문제가 단지 ‘통일로 인한 경제적 손익계산서’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평화 구축의 문제임을 자각하는 데 있을 것이다.

 

판문점 체제의 기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