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즘의 위대한 철학자-1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즘의 위대한 철학자-1

 

박종성(한철연 회원, 건국대)

Svein Olav Nyberg [노르웨이 아그데르 대학교(노르웨이어: Universitetet i Agder) 부교수]의 글, Max Stirner: The Great Philosopher Of Egoism(2021)을 번역하여 올립니다.

「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즘의 위대한 철학자」

– 차 례 –

  • 서론
  • 헤겔 좌파
  • 헤겔 좌파에 대한 슈티르너의 비판
  • 정치적 슈티르너
  • 슈티르너의 에고이즘
  • 슈티르너 이후
  • 역사적 결론
  • 페미니즘에 관한 후기

이번 글은 ‘서론’ 부분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에고이즘의 위대한 철학자?”(The Great Philosopher Of Egoism?)라는 부제로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에 대한 강연을 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좀 더 과감한 부제인 “개인주의의 위대한 철학자?”(The Great Philosopher Of Individualism)가 아마도 훨씬 더 적절했을 것입니다. 비록 슈티르너가 확실히 에고이즘의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또한 에고이즘과 더 넓은 범주의 개인주의 모두에 대해 가장 일관된 철학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궁극적 개인주의로서의 에고이즘이라는 주제는 나중으로 미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강연에서 저는 큰 기쁨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막스 슈티르너의 생각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둘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에인 랜드(Ayn Rand)1의 글에서 “에고이즘”(egoism)이라는 용어에 익숙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채 이 모임에 참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제시할 종류의 에고이즘은 랜드가 말한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그런 에고이즘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때때로 이러한 에고이즘 개념들은 다를 뿐만 아니라, 완전히 반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랜드가 “인간의 본성”(“인간으로서”(qua Man))에 관해, 도덕성에 관해, 그리고 인간 권리(Man’s rights)의 수호자인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슈티르너는 자신을 반-도덕주의자로 드러냅니다. 헨리크 입센(Henrik Ibsen)과 마찬가지로, 그는 국가를 “개인의 저주”(the curse of the individual)로 취급하며, 생물학적 분류 목적(purposes of biological classification)을 제외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모든 주장들은 슈티르너가 가장 좋아하는 표적들입니다.

그렇다면 막스 슈티르너는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막스 슈티르너는 주로 『유일자와 그의 소유』(Der Einzige und Sein Eigentum)(The Ego and His Own)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 책에서 자신의 철학적 견해 대부분을 제시합니다.

그의 철학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그 자신의 시대 내내 그리고 그의 반대자들에 의해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독일 철학의 전체 역사에서 최초로 읽어서 재미있는 책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그 글의 문체는 눈길을 사로잡으며 수사적이어서 독자의 흥미를 끌기 쉽습니다. 동시에 그 책은 다면적(multi-faceted)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구조와 내용 모두에서 과거와 현재 모두에 대한 암시적 및 명시적 언급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책은 여러 겹들으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나는 내가 그 책의 모든 겹들을 다 헤쳐 나갔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슈티르너는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의 말을 인용하면서 작업을 시작합니다. “‘인간에게 인간이 최고의 존재’라고 포이어바흐는 말한다. ‘인간이 이제 막 발견되었다’고 브루노 바우어는 얘기한다.” 이 두 철학자에 대한 비판이 슈티르너 작업의 핵심입니다. 특히 이 두 철학자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통해, 슈티르너는 그 자신의 시대까지의 모든 종류의 도덕 철학을 비판했고, 그의 비판이 우리 시대까지 확장되면서 그 비판이 더 최근의 철학자들에게도 잘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슈티르너의 도덕성 비판을 이해하기 위해 바우어와 포이어바흐에 대해 잘 알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슈티르너 자신이 충분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티르너가 어디 출신인지를 아는 것은 유용합니다. 그럼 역사적 요약을 해 보죠: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1806~56)는 요한 카스파르 슈미트(Johann Kaspar Schmidt)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막스 슈티르너”(큰(Max) 이마를 한 사람(Stirner))는 높고 넓은 이마 때문에 대학시절 얻은 별명2입니다. 그는 나중에 이 이름을 채택했고 나중에 그것을 그의 문학의 가명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헤겔을 자신의 강사 중 한명으로 삼아 철학을 공부했으며,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건강상의 문제로 박사학위는 끝내 끝나지 못했습니다. 슈티르너의 지적 배경은 헤겔 철학, 성경,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 대한 깊은 지식입니다. 따라서 『유일자와 그의 소유』에서 슈티르너의 비평의 상세한 내용은 이러한 요소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1841년에 슈티르너는 베를린에 있는 힙펠의 포도주 주점(Weinstube)에서 술을 마시고 토론하기 위해 만난 지식인들의 모임인 “자유인”(Die Freien)과의 친밀한 관계를 시작했습니다. 이들 “자유인”은 “청년 헤겔파” 또는 “헤겔 좌파”로도 알려졌습니다. 여기서 “좌파”의 의미는 1789년 혁명 이후 프랑스 의회에서 사용된 의미이자 현재의 정치적 분류에 따른 의미라는 점에 유의하세요. 이 지식인 집단에서, 슈티르너는 조금이지만 예리한penetrating 주장으로 유명했고, 쉽게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다음 그는 그 논쟁을 얄궂은(ironic) 미소를 지으며 멀리서 관찰했습니다. 1844년에 그는 악명 높은 대작(magnum opus)을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에게 즉시 악명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헤겔 좌파들의 환상도 무너뜨렸고, 모든 실천적 목적(practical purposes)을 위해 운동을 파괴했습니다.

훌륭한 전복적 책인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물론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슈티르너와 그의 출판사는 이러한 뜻하지 않은 사건에 대비하여 검열이 첫 번째 사본을 확보하기 전에 이미 꽤 많은 책을 배포했습니다. 잠시 후 들리는 바에 의하면 “너무 터무니없어서(absurd) 위험하지 않다”며 책이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터무니없음”은 칼 마르크스의 반응이기도 했습니다. 역사에 따르면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3 『유일자와 그의 소유』의 출판과 동시에 편지를 쓰고 그 책에 대해 동정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마르크스의 답변은 보존되지 않았지만, 마르크스에게 보낸 그 다음 편지에서 엥겔스는 자신이 마음이 바뀌었고 이제 “당신이 생각하는” 책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두 공범자는 원래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700쪽 분량의 작품인 『독일 이데올로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대개 막스 슈티르너에 대한 당혹스러운 인신공격(ad hominem )4을 편집한 판(版)으로 출판되는데, 이는 단지 200쪽에 불과한 판(版)이었습니다.


옮긴이 박종성: 건국대학교에서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유일자와 그의 소유』(2023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체성』(공역)이 있다. 논문으로는 「유일한 사람의 사랑」, 「슈티르너의 ‘변신’ 비판의 의미」, 「식민지 조선에서 슈티르너 철학의 변용과 그 의미 및 한계-염상섭의 「지상선을 위하여」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현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이고 건국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헤겔미학산책54-서정시와 실러 ‘종의 노래’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54-서정시와 실러 ‘종의 노래’

 

1) 서정적인 예술작품의 구조

앞에서 감정을 직관과 관념으로 객관화하는 시인의 능력을 살펴보았다. 시인은 응축된 감정을 지니면서도 그것을 객관화할 수 있는 자기 관계적(대자적) 존재이다. 시인은 이런 객관화를 통해 시대 정신을 표현하면서, 예술적 탁월성을 성취하게 된다. 이어서 헤겔은 서정시의 구조를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여기서도 헤겔은 서사시와의 비교를 설명의 지렛대로 삼는다.

우선 서사시에서 작품은 내적으로는 산만하다. 왜냐하면 작품을 이루는 사건은 자립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 전체는 그 시대 민족 정신의 전체를 보여준다. 민족 정신은 그 사건들을 내적으로 관통하고 있다.  그 사건들은 민족 정신이 일어나고 다시 쓰러지는 가운데 벌어진 사건들이다.

반면 서정시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주관적 자아가 자신으로부터 표출된 다양한 표상을 통일하고 있다. 시적 내용을 이루는 요소는 자립성을 지니지 못하고 시인의 주관적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 요소는 시인의 특수한 구체적 주관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통일적 주관은 단순하게 “동일한 자아가 말하자면 단순한 그릇으로서 그것들을 자신 속에 담는 것”은 아니다.  주관은 곧 “한편으로 정조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이렇듯 특수화된 자신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관념을 표현해야 한다.”[1] 즉 특수하고 구체적인 주관이 내면 전체를 자신의 색깔로 물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2)

서사시의 경우 그 전개과정은 느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사건들이 우연하게 전개되므로 그 과정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각 사건마다 지루하게 머무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자적으로 생생하게 전개되는 개별적 사건들이니, 그런 점에서 헤겔은 서사시의 전개는 공간적으로 확장적이라고 한다.

반면 서정시의 경우, 표출된 개별적 관념은 주관적 자아를 통해 신속하게 이행한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의 요소는 다른 요소로 평온하게 이어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 시적 상상력을 통해 도약적으로 전개된다. 헤겔은 이를 ‛서정적 도약’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도약 때문에 한편으로 개별 요소는 화려하고 수다스럽게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요소들은 마치 압축되듯이 지나가며, 공간적으로 펼쳐질 사이도 없이 시간적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런 가운데 압축된 요소들을 통해 그것을 산출하는 주관적 내면의 깊이가 표현된다.

 

“서정시인에게는 거의 침묵하다시피 하는 압축성과 능변의 명료함을 위해 완벽하게 다듬어진 관념 사이에 매우 풍부한 뉘앙스와 단계들이 열려 있다.”[2]

 

서정시의 요소들이 주관적 내면으로부터 떨어져 나오지 않으며, 압축적으로 전개하면서 주관적 내면을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서정시 역시 시 예술인 한에서 서사시 못지 않게, 개별적 요소가 가지는 자립성이 음미되어야 한다. 그것은 산문적 자의나 지성의 필연성, 철학의 사변적 전개와 구분되면서 개별적 요소가 자유로운 것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서사시의 경우 개별적 요소 하나하나가 그런 자립성을 지니고 음미되지만, 서정시에서는 오히려 그런 요소들의 일견 비약적인 연관성 자체가 개별적 요소 자체보다 더 많은 흥미를 이끌어낸다.

 

‟그런데 이 경우[서정시]에는 수미일관한 연관성이 거의 중단 없이 평온하게 이어질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서정적 도약들 속에서 하나의 표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또 다른 표상을 향해 무매개적으로 이행할 수도 있다.”[3]

 

이 경우 시인은 “얼핏 속박 없이 종횡 무진하는 것으로 그리고 이 도취된 열광의 비상 속에서” 어떤 힘에 의해 소유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 힘은 “시인의 의지에 반해 그를 다스리고 또 그의 마음을 빼앗는다.” [4]

평온한 연관성에서 열광적 비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는 시인의 특수한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

 

3) 서정시의 음악적 요소

시문학은 관념을 질료로 하지만 전달 수단으로서 언어도 간접적으로 중요하다. 시문학에서 언어적 기호가 발생시키는 음악적 효과는 마치 영화 음악에서 그렇듯이 시문학이 관념과 사유를 통해 전달하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예감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시문학에서 결여할 수 없는 요소가 된다.

특히 서정시에서는 주관적 심정이 관념과 사유로 객관화되므로, 서사시 이상으로 강한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언어적 기호로서 소리가 지니는 음악적 특성은 시적으로 표현된 감정과 어울릴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서사시 역시 이미 일정한 음악성을 지닐 수밖에 없지만 서정시에 이르면, 이런 음악성은 더욱 강조된다.

서사시의 경우 주로 6운각[Hexameter]과 같은 운율적 요소 즉 음성적 기호의 장단과 강약이 결합된 리듬적 요소가 중요하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것은 “균일하고 안정된 그런가 하면 다시 생동적이기도 하므로” 사건 자체가 스스로를 노래하는 듯한 서사시에 어울린다.

하지만 주관적 내면이 표현되는 서정시의 경우 전체를 일관하는 어떤 운율보다는 시적은 흐름에 따라서 변화하는 내적 감정의 움직임에 따라서 “다양한 운율과 한층 다면적인 내적 구조”가 요구된다고 한다. 이런 운율을 통해 그때그때마다 심정의 움직임을 예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정시의 소재는 …시인의 주관적 내적 운동인 바, 그 한결같음이나 변화, 동요와 평온, 고요한 흐름이나 들끓는 범람 및 용출이 이제 내면을 전달하는 어휘음향들의 시간적 운동으로도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5]

 

그 뿐 아니라 서정시에는 서사시와 달리 운율적 요소 이상으로 압운적 요소가 중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압운적 요소란 어떤 음절, 말이 자연적인 장단과 강약으로부터 벗어나, 시적인 주관이 부여하는 정신적 의미를 통해 강조되면서 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정시의 경우, 이런 음악성은 언어의 음성적 요소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서정시는 음악의 반주를 통해 음악적 요소를 더욱 강화하니 여기서 서정시는 선율적 요소까지 끌어들이게 된다. 이런 선율적 요소는 서정시가 단순한 민요나 가곡[Lied]의 수준에 머무를 경우 강조되면서 심지어 관념적 요소조차 종속시킨다. 그러나 서정시가 비가나 소네트, 칸초네로 발전하게 되면 그만큼 언어적 전달만으로도 비교적 큰 독자성을 얻으면서 음악적 요소는 후퇴하게 된다.

 

3) 서정시의 형식적 발전

헤겔은 서정시는 극시로 발전하게 된다고 말한다. 서정시는 행동이 억눌리면서 고양된 감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서정시는 감정의 직접적 발산을 벗어나 이를 관념으로 객관화한다. 이런 관념이 그 시대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관념만으로는 부족하니, 서정시는 점차 둘 이상의 주관의 대화로 발전한다. 이런 대화는 곧 극시의 출발점이 된다. 극시처럼 아직 행위가 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화시를 통해 서정시는 극시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의 이런 발전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서정시가 출현한다. 시인이 직접적으로 감정에 휩쓸려 있을 시기, 그리고 그 감정이 직접 정신적인 것을 표현할 때, 출현하는 것이 찬가[Himmen]이다. 이는 주로 신성한 존재인 신을 예배 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 찬가는 디오니소스교의 디티람보스적 찬가에서 보듯이 자신을 망각하는 망아적 상태를 표현한다.

이런 찬가에서 관념적 요소가 더 발전하게 되면 이제 송가[Ode]가 출현한다. 송가는 신뿐 아니라, 영웅이나 군주, 역사적 사건, 사랑이나 우정 등을 대상으로 하면서 그런 대상으로부터 시인 자신의 내면에 울리게 된 감정을 표현한다.

이제 가곡의 단계에 이르면, 특수한 주관이 지닌 내밀성이 표현된다. 송가가 세속적 사건이 아닌 역사적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면 가곡에서는 세속적 사건이 대상으로 된다. 특수한 주관은 구체적 삶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가운데 그가 느끼는 슬픔과 기쁨 등의 감정이 관념적으로 표현된다. 가곡은 한 개인의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상호 주관적인 감정으로 발전한다. 헤겔은 이런 상호 주관적 가곡으로서 대화시의 형태를 띄고 있는 괴테의 시 마왕[6]을 소개한다. 그 시는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누가 바람 부는 밤, 이리 늦게 달려가는가? 그의 아이를 데리고 가는 아버지이네, 팔에 소년을 보듬어 안았지. 어찌나 꼭 안았는지 소년은 따뜻해진다.

아들이여, 너는 왜 그렇게 불안하게 네 얼굴을 감추는가?

보세요, 아버지는 마왕을 못 보시는가요? 왕관을 쓰고 긴 옷자락을 끌고 있는 마왕을 못 보십니까?

아들이여, 그것은 넓게 퍼져 있는 띠 모양의 안개이구나..”

 

가곡이 정신을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단순한 가곡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가곡이 대상으로 하는 사건은 자기부정적인 가상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여기에 사건의 운동이 발생하게 되며 더 나가서는 하나의 드라마가 발생하게 된다. 가곡은 이를 통해 단순한 민요나 교양가곡을 넘어서, 소네트와 비가[Elegie], 서한시 등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4)

서정시의 형식적 발전은 서정시의 역사적 발전과 맥락을 같이한다. 헤겔은 서정시의 발전을 동방의 서정시에서 그리스 로마의 서정시로 마지막으로는 낭만적 서사시에 이른다.

동방의 서정시는 주로 찬가의 형태를 취한다. 여기서는 다양한 사물의 형태 속에 상징적으로 내재하는 신을 찬양한다. 여기서 신은 오직 구체적 사물에 대한 다양한 비유를 통해서 가시화된다. 시인은 세계 속에 내재하는 신의 모습 앞에서 자기를 잊고 황홀한 상태에 빠져 있다. 그의 개체성과 특수성은 그 속에 사라지고 만다. 즉 “[시인의] 내면은 경계 없는 모호함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며”, “형상화할 수 없는 실체를 서술하려” 한다[7]

그리스 로마에서 서정시는 주로 송가의 형태를 취한다. 시인은 민족적 정신과 일체화된 상태에서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영웅과 역사적 사건, 위대한 사물 앞에 느끼는 그의 감정을 표현한다. 시인은 그런 탁월한 존재가 지닌 탁월성을 마치 조각 작품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현상시킨다. 그것은 비유를 통해 언표되기 보다는 오히려 직접적으로 “가시적 형상 속에서 그 자체로서 객관화”된다. 그것은 “투명한 보편성을 지니면서도” 시인 자신의 주관성 속에 녹아 들어서 표현되니, “독자적 성향과 이해방식의 자유로운 개성을 결여하지 않는다.”[8] 이런 특징은 우리가 그리스 신상에서 보았던 것과 같다.

헤겔은 그리스적 서정시가 비극에서 합창의 형태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합창 서정시는 “관념과 반성의 풍부함, 이행과 연결의 대담함의 면에서뿐만 아니라, 외적 음송의 면에서도 가장 풍성하게 전개된다.”[9] 합창단의 노래는 여러 음성의 교대로 나타나거나, 조형적인 춤사위를 통해 가시화된다.

마지막으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서정시는 압운적인 측면이 강화되는 가곡으로 발전하고 이제 음악적 선율을 동반한다. 이런 가곡은 특수한 주관의 내밀성이 표현되는데, 이런 주관의 자기 내 복귀를 표현하기 위해 대화적 형태를 띄거나 서사적 요소를 강화하고(발라드나 소네트), 자기 부정적인 운동성을 가미하면서 극시적인 형태를 가진다.

낭만적 서정시인 가곡은 발라드와 비가를 넘어 마침내 세계 전체의 운동을 표현하는 철학적 시가로 발전하는데 그런 발전을 서술하는 끝에 헤겔은 실러의 시 ‘종의 노래’를 소개한다. 실러는 망아적인 상태로 빠져드는 디티람보스의 경우와 달리 “열광의 충동 속에서 대상의 위대성과 싸우지 않고 오히려 대상을 완벽하게 다루는 명인”[10]이었다.

 

낮은 지상의 삶 너머 높은 곳

창공에서 종이,

천둥의 이웃이, 울리매

별들의 세계에 닿으리라.

위로부터 한 소리가 있으리라.

그 창조주를 떠돌며 칭송하고

화관을 쓴 해를 인도하는

밝은 별무리처럼,

영원하고 진지한 사물들에만

쇠로 된 그 입이 헌정되리라.

그리고 매시간 빠른 진동과 더불어

접하리라, 종은 시간의 날갯짓을.

 

위의 시는 별무리가 지고 아침의 해가 떠오를 무렵 들리는 종소리를 표현한다. 시인은 이 종소리를 들으며 어떤 엄숙한 분위기에 사로잡히는데, 그는 이 엄숙함을 신들이 마침내 지상으로 내려오는 순간으로 이해한다. 이 신은 기독교 신이라기보다는 실러가 이상으로 삼았던 그리스의 신이며, 그것은 그가 바라 마지 않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의미할 것이다. 실러는 이 종소리를 통해 신들이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마침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즉 ‘시간의 날갯짓이 시작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이런 시대, 신을 맞이하는 영원하고 진지한 인간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1] 미학강의 3권, 452쪽

[2] 미학강의 3권, 453쪽

[3] 미학강의3, 456쪽

[4] 미학강의 3권, 456

[5] 미학강의 3권, 455쪽

[6] 괴테의 시 마왕은 슈베르트가 나중에 가곡으로 만들었다.

[7] 미학강의 3권, 472쪽

[8] 미학강의 3권, 475쪽

[9] 미학강의 3권, 475-476쪽

[10] 미학강의 3권, 469쪽


⇓ 다음 연재글 바로가기 ⇓

헤겔미학산책53- 서정시와 이비코스의 두루미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53-서정시와 이비코스의 두루미

 

1)

서정시에 관한 헤겔의 논의는 실러에서 시작해서 실러로 끝난다. 서정시를 논의하는 처음에 ‘이비코스의 두루미’이라는 작품이 있고 그 마지막에 ‘종의 노래’가 있다. 실러의 희극에 관해서는 상당히 혹평하는 헤겔이 실러의 시에 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특이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헤겔은 괴테의 시집 서동시집을 또 높이 평가했는데, 앞에서 우리는 괴테의 시, ‘황금의 술잔’과 ‘재회’를 소개한 바가 있다.

서정시에 관한 헤겔의 논의는 그가 높이 평가하는 쉴러와 괴테의 시를 전제로 놓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엄청나게 다양한 서정시의 영역에서 미학적 논의는 길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헤겔은 왜 실러나 괴테의 시를 전제로 놓고 시를 논하는 것일까?

 

2)

헤겔은 서정시의 본질을 서사시에 대비하여 설명한다. 서사시의 근본적 규정은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사건의 자립성에 있다. 개별 사건은 그 배후에 실체적 정신에서 출현한 것이지만, 실체적 정신은 개별 사건의 배후에 가려져 있다. 그러므로 개별적 사실은 마치 우연적으로 일어난 사건처럼 등장한다. 여기서 시인은 뒤로 물러나서 보이지 않으며 마치 사건 자체가 스스로 노래하는 듯이 전개된다.

서사시에 대비해 보면 서정시의 특징이 금방 드러나는데, 헤겔은 서정시의 핵심은 곧 시인이 자신의 내면을 외부로 표출한다는 데 두고 있다. 시인의 내면은 감정에서 표상(관념), 사유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내면은 행위로 이어지는데, 어떤 상황 앞에서 시인의 내면은 실제로 행동하지 못하면서 응축되어 감정적인 에너지가 나머지 표상과 사유를 지배하니, 헤겔은 이런 상태를 ‘단순하고 둔탁한 감정[Empfindung]’의 상태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상태는 “전체적 심정이 열정과 둔탁하게, 무의식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상태” 또는 “말없고 관념이 결여된 심정의 집중 상태”이다.[1]

이런 감정에 단순히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아직 시가 아닐 것이다. 시인이 자신의 감정이 지닌 에너지를 행동을 통해 표출하게 된다면 그 역시 시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음악이 감정을 심정의 운동 자체로 표출하는 것이라 한다면, 시인은 “심정이 개방되고 귀와 눈이 열려”, “둔탁한 감정을 직관과 관념으로 제고하고”, “내면에 어휘와 언어를 부여해야 한다.”[2] 이렇게 자신을 대상화 또는 객관화하면서, 시인은 “마음을 편집[偏執]으로부터 구출한다”.[3] 이런 시적 표현은 “각종의 우연적 분위기를 정화한 객체가 되며, 여기서 해방된 내면은 동시에 만족스러운 자의식을 가지고 자유롭게 자기에게로 회귀하여 자신 곁에 머문다.”[4]

 

3)

감정의 대상화, 객관화는 감정을 마치 설사약에 의한 것처럼 감정을 배설하는 것과 다르니, 시적 표현을 통해 감정은 배설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은 시인의 심정에서 독자의 심정으로 전달된다. 그러므로 헤겔은 시인은 “정신을 감정으로부터 해방하지 않고 감정 속에서 해방한다”[5]고 말한다.

이미 시의 출발점이 되는 감정 상태가 관념과 사유를 포함하는 복합적 사태이듯, 시적 표현을 통해 출현하는 관념과 사유 역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다만 시인의 내면에서 지배적인 것이 감정이었다면 시적 표현에서 지배적인 것은 관념과 사유이다. 시인의 내면이 그 표현에서 이렇게 전도되고 다시 그런 표현이 독자의 가슴 속에서 감정으로 다시 전도하는 과정이야 말로 시적인 신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은 시적 표현이 어떤 개인의 특수한 내면성에 머무르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특히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면 개인은 자신의 특수성을 표현하려 하는데, 그 때문에 개인의 특수한 내면이 시의 주요 주제가 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낭만주의 시대 넘치고 넘치는 사랑의 시로 보인다.

헤겔은 “직관과 감정이 아무리 개별 개인으로서 시인에게 고유하게 속하더라도” 시가 될 수 있겠지만, 탁월한 시는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그것은 보편타당성을 포함해야 한다”고 한다. 즉 탁월한 시는 “참된 감정이자 고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참된 감정과 고찰’이란 곧 그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인데, 이런 것을 통해서 서정시도 서사시와 마찬가지의 수준에 오르게 된다.

다만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은 서정시와 서사시에서 서로 구분된다. 서사시에서 시인은 개별적 자아를 버리고 그 시대 정신 자체가 되어 전체 사건을 굽어 보면서 그 전체 사건의 유기적 전체성을 통해서 명확하게 시대 정신을 표현한다.

반면 서정시에서는 시인은 자신의 개인적 내면을 우선시한다. 시인은 이런 개인적 내면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대정신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니, 여기서는 “개별적 상황, 감정, 관념 등이 한층 깊은 본질성 속에서 파악되고, 이로써 자체가 실체적 방식으로 언표된다[6]”.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개인적 내면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전체 시대의 정신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즉 시대적 정신이 개인의 내면성을 통해서 “생생하고 독창적으로 짚어 내어”[7]진다는 것이다.

서정시에 단순한 개인적 내면이 아니라 시대 정신이 표출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예술이 시대정신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헤겔 미학의 기본 요구에 따른 것이며, 헤겔은 그런 관점에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실러와 괴테의 시를 서정시의 모범으로 삼았던 것이다.

하인리히 슈베밍거의 작품, 이비코스의 두루미, 살해당하는 시인은 하늘의 두루미를 가리키고 있다

그 가운데 헤겔이 극찬하는 실러의 시, ‘이비코스의 두루미’를 보자. 이 시는 발라드 형식으로 상당히 길어서, 여기에 다 소개할 수 없다. 간단한 줄거리만 보자면, 그리스 시인 이비코스[8]는 노래 경연대회에서 참가한 이후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늘을 날던 두루미 떼가 그를 따른다. 그는 숲을 지나가던 중 도둑 떼를 만나 살해된다. 그리스 전역에서 시인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침내 온 그리스인이 모이는 포세이돈 축제가 열린다. 이때 하늘에 두루미 떼가 지나가자, 관중 속에서 ‘이비코스의 두루미다’라는 외침이 들린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무심코 내지른 사람이 바로 이비코스를 죽인 도적임을 알아차렸다. 그 가운데 이 시의 정점에 해당하는 부분만 보도록 하자.

 

“에리니에스[복수의 여신]의 노래가 그렇게 청중의/ 의식을 잃게 하고 마음을 마비시킬 정도로/ 골수에 사무치게 울려 퍼지자,/ 리라 소리도 견디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바로 그때 객석의 맨 위층에서/ 갑자기 누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비코스의 두루미다.”/ 그리고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극장 위로/ 검게 무리를 지어/ 두루미 떼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의문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전광석화처럼 모든 사람의 가슴에/ 어떤 예감이 스치고 지나간다. “여러분 주목해 주세요!/ 이것이 바로 에우메니데스[자비의 여신]의 힘입니다.!/ 마침내 신성한 시인의 복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의 전체에서 헤겔이 주목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시가 단순히 두루미 떼 덕분으로 시인을 살해한 자의 정체가 밝혀졌다는 사건이 아니다. 이 시에서 핵심은 곧 시인과 두루미 떼 즉 자연 사이의 공명이다. 자연은 시인의 노래에 공명한다. 그 때문에 두루미 떼는 시인을 따라 숲을 건너고 있었다. 시인은 죽었으나 두루미 떼 속에 영혼으로 살아 있다. 그 영혼은 다시 만물을 울리니, 그 때문에 다시 나타난 두루미 떼 앞에서 도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비밀을 내뱉고 만 것이다. 이 시가 노래하는 것은 어떤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시인과 자연과의 공감이라는 철학적 주제이다.

 

4) 서정시의 시대

시문학은 서사시이든, 서정시이든, 극시이든 어느 시대나 출현했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시문학의 질료가 언어적 표상이며, 이런 언어적 표상은 다양한 예술 형식에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문학의 특수한 장르는 특수한 예술형식에 가장 전형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서사시가 완성된 시기는 아직 민족적 정신이 지배한 영웅의 시대였다. 개인은 민족 정신을 무의식적으로 또는 관습적으로 수행할 뿐이었다. 그 언어는 정신이 자기를 직접 표현하는 말, ‛일차적인 직접적인 말’이다. 여기서 직접적인 말은 감각적 표상과 사유의 개념이 직접 통일되어 있는 말, 원초적 언어를 말한다.

무의식적인 통일을 이루었던 정신을 벗어나 개인이 자각되면서 개인과 사회적 실체 사이에 대립이 생겨나며 개인의 행동은 억눌리면서 감정이 응축되고 서정시가 출현하게 된다. 그리스에서는 대체로 기원전 4세기경 왕과 귀족에 대한 평민과 이주민의 저항이 시작될 무렵이다.

서정시의 시대에 이르러 시적이며 동시에 개념적인 원초적 언어는 사라졌다. 언어는 추상적 개념을 지시하는 언어와 구체적 감각 관념을 지시하는 언어로 구분되면서, 서정시가 일반적 정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비유의 수단 즉 ‛풍요로운 표현’이 사용되어야 한다. 여기서 비유란 곧 구체적 감각적 관념이 추상적 실체적 정신을 지시하는 기호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헤겔은 이런 비유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교양이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서정시를 민요와 예술시[Kunst Poesie]로 대별한다. 민요는 민족적 감정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개인적 주관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치 서사시에서처럼 주관이 뒤로 물러나서 그 감정을 서술한다.

반면 예술시의 경우 시인의 주관적인 감각 관념을 통해 시대 정신을 표현한다. 서정시는 정신을 표현하더라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철학적 사유와 구분된다. 헤겔은 서정시는 예술을 넘어서되 아직 철학에 정주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예술과 철학 모두에게 폭력을 가한다고 말한다.

 

‟서정시는 내적으로 투쟁하고 씨름하는, 그 발효 속에서 예술과 철학 모두에게 폭력을 가하는 영혼의 토로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영역을 넘어서되 다른 한 영역에 정주할 수도, 혹은 그것을 고향으로 삼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9]

 

5)서정 시인

서정시는 시인이 자신의 감정을 관념과 사유로 대상화 또는 객관화 한다. 헤겔은 그 가운데 참된 감정과 관념을 표현하는 시만이 예술적으로 가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시에 이르기 위해 시인은 “자신의 의식을 들여다보며” “주관적 심정, 가슴의 경험과 관념을 반성하며”[10], 자기에 대해 관계하는 자기 반성적인 자아는 되어야 한다. 이런 자기 관계적 자아가 되기 위해 시인은 실제로 활동하거나, 극적 갈등의 동요에 휘말려서는 안 되며, 그의 유일한 활동은 자기의 내면에 말을 부여하는 것이고 독자가 자신의 것과 같은 내면에 이르도록 자극하고 일깨우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감정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감정을 대상화하는 자아는 곧 더 이상 개인적 자아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곧 그 시대의 일반적 정신이다. 이처럼 자아가 이중적으로 분열된다는 점에서 서사적 화자나 시적 화자는 동일하다 하겠다. 다만 서사적 화자에서 주관적 자아는 전적으로 사라지며, 민족적 정신을 대변하는 자아가 표면에 등장한다.  반면 서정적 화자는 표면적으로는 전적으로 주관적 자아이다. 다만 시대 정신을 대변하는 자아는 그런 주관적 자아의 배후에서 반성하는 자아가 있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핀다르의 송가를 높이 평가하는데 핀다르는 운동경기에서 승리자를 찬양한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자신의 정신과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승자를 찬양하는 것이 그[핀다르]의 영예가 아니라, 오히려 핀다로스가 그들을 찬양했다는 것이 그들의 명예였다고”[11]말한다. 즉 시인 자신이 불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1] 미학강의 3권, 424쪽

[2] 미학강의 3권, 423쪽

[3] 미학강의 3권, 424쪽

[4] 미학강의 3권, 424쪽

[5] 미학강의 3권, 423-424쪽

[6] 미학강의 3권, 427쪽

[7] 미학강의 3권, 423쪽

[8] 이비코스(Ἴβυκος, Ibycus: 기원전 6세기 후반에 활동)는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으로, 마그나 그라에카에 위치한 레기움 시민이었고, 참주 폴뤼크라테스의 치세 동안 사모스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9] 미학강의3권, 444쪽

[10] 미학강의 3권, 423쪽

[11] 미학강의3권, 447쪽


⇓ 다음 연재글 바로가기 ⇓

입말, 체제에 대한 저항 [천 하룻밤 이야기]

입말, 체제에 대한 저항

– 입말과 언어; 상부상조와 명령체계

2024, 04, 19, 곡우(穀雨) – 언제나 자람과 생장은 터전의 것이다.

들뢰즈는 혁명의 결과(결실)를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다. 이 입말은 ‘다음(차후, 저승)’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종교와 신화에서 다음에 저 세상에서는 잘 살 것이라고 하는 그 논리를 두고 들뢰즈는 공동체를 생각하고 만들고자 하는 자들이 아니라, 천상의 세계를 이야기하면서 인민을 노예나 종으로 부리고자 하는 사악한 집단들의 논리이며, 그 다섯째 논리라고 한다. 다음에(après, 아프레)를 이야기한 자들을 선지자들 또는 예언자들이라고 할 때, 그들은 점쟁이도 마술사도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여기 사는 것을 고민했다. 이제는 어제와 아제가 연결되어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다음에”가 종교에 들어가면서, 저세상이니, 천국이니, 미래의 평등사회니 등을 말하면서, 다음에 가서야 진실로 그런 세상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 성직자들이, –입말이 아니라 언어와 문자는 명령이다– 자신들도 마술(마약, 마술, 환각)에 빠져서 천국과 모든 인간의 편안한 사회가 있다고 말하게 되고, 그것을 들은 신자들이 설마 저 학식 많고 고결한 성직자가 거짓말 하겠느냐며 믿고 따른다. 그 성직자는 ‘봐라 백성들이 믿고 있는데, 그게 진실이지 않으면 무엇이 진실이냐’고 한다.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백성에게 보냈다가, 다시 백성으로부터 나온 이야기로 만드는 것을, 순환논법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이른바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 속에 “다음에”를 넣었다. ‘다음에 천국에 갈 것이니, 지금 고생 좀 해’ 다음에, 그 다음에는 성직자도 신자도 있지 않다. 그 다음에의 판단(심판) 설화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사람은 “챠텔레부인의 사랑”을 쓴 로렌스이다. 로렌스는 새소식의 경전에서 ‘묵시록’이 악한 자의 글이라고 보았다. –이런 글을 인용해서 이 땅에서 재현하려는 이들이 신천지부류일 것이고, 그런 신도들 옆에 붙어있는 사는 이가 방사(方士)이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천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악한 것으로 여기는 데까지 갈 것 없이, 들뢰즈는 ‘5가지 악순환’의 마지막 악순환이라 했다.

   들뢰즈의 악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벩송의 우주발생론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악순환을 세 가지로 잘 이야기 했다는 것이 보인다. 나로서는 ‘무’, ‘무질서’, ‘부동’ 이 세 가지를 부정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지금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벩송을 버리러 프랑스에 갔다가 벩송을 다시 가지고 왔다”고, 그리고 “진정으로 박홍규(朴洪奎, 1919-1994: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들뢰즈는 당시 태어나지도 않아서 벩송의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을 들을 수도 없었고, 그 강의록이 2017년에 어쩌다 나온 것인데 그가 볼 수도 없었음에도, 벩송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20세기와 21세기가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날 사건들처럼 이야기했다. 들뢰즈는 “천개의 고원”에서 다섯 가지 악순환을 이야기했다. 세 가지는 벩송에서 나왔을 것인데, 그 다섯째는 ‘다음에’라고 말했다. 넷째는 무엇인가? 넷째는 ‘적용의 잘못’이라고 했다.

  우리 땅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담론 중에서, 개인에까지 억압이 스며들어 자기억제의 방식으로까지 고착되었다고 보는 것을 미세 파시즘이니, 권력의 미시화라든지 따위로 이야기한다. 나는 앵글로색슨을 읽으면서 푸꼬를 제대로 읽은 자들이 없어서 그렇다고 농담한다. 프랑스 철학이 읽히기 시작한 1995년 이후로 시작하여 2000년도 이래로 푸꼬를 읽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 이후에는 푸꼬 논문 발표자도 푸꼬를 그 문헌들의 연관 속에서 계속 읽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왜 그렇게 보냐고? 그 논문들을 읽은 그들의 머릿속에 현상과 재현을 설명하는 것이 ‘아프레’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아프레가 권력의 미시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데?라고 묻는다. 그게 잘 안보이지만, 푸꼬는 내가 보기에 진정 잘 보았는데, 학문 권력을 누리고 싶어서인지, 또는 고대 그리스를 깊이 있게 잘 몰라서, 르네상스 이래로 살아온 500년 과정을 이야기 하자고 했다. 사실상 그는 자기보다 더 잘 현상학적(후설은 수학과 물리학을 토대로 한 현상학이며, 푸꼬는 현실 삶과 연관시킨 현상학일 것이다)으로 역사나 사회를 설명한 적이 없었기에, 많은 역사적 증거들과 더불어 이야기한 것이다. 적어도 프랑스에서 250여 년 전에는 입말과 문자가 서로 상응하는 체계 속에 있었다.

   맑스가 노동력을 과학이라는 방식으로 잘 설명했지만, 입말과 현실 또는 상태가 마주하는 이야기를 과학이란 이름으로 풀 수 있는 자는 푸꼬였다. 그런데 그가 르네상스 이래 500년 역사가 억압의 역사였다고 했다. 유럽 사상계가 뒤집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크리스토스의 3개의 선전제가 그래도 유지되고 있는 것은, 넷째를 넘어서, 다섯째의 ‘다음에(아프레)’였다는 것을 푸꼬는 알아챘다. 나는 감히 이야기하지만, 푸꼬가 쓴 ‘의미의 논리’의 서평에서 이런 점을 알았기에, 푸꼬는 아이러니, 유머, 풍자 보다 깊이에서 솟아나는 것이 있다고 그책을 평했다. 나는 푸꼬의 글을 읽으면서, ‘깊이에서 솟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자연이 아니면 말이다’ 이런 생각을 했다. 푸꼬의 글이 아니었으면, “안티외디푸스”와 “천개의 고원”을 마치 소설처럼 읽지 못했을 것이다.

   500년의 논리는 추리(ratio)인데, 삶은 추리가 아니라 상상작용(imagination)이리라. 추리란 자기에 맞게 자기를 합당화시키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합당화의 마지막이 칸트가 아니겠는가? 그 시절을 살면서 합당화는 유행 같고 또는 시대의 세시풍속 같은데, 사람들은 그 삶의 양식에서 사대부(상류층, 들뢰즈의 뜻을 잘못 번역하여 다수자)의 추리에 맞는 것이 진리 또는 법칙(원리)라고 생각하는데, 벩송이 보기에 이미 세 가지 착각에 속하는 오류라는 것이다. 들뢰즈가 넷째 착각을 구분해 내면서, 벩송이 우주와 토지의 관계에서 3가지 착각을 잘 말했지만, 나로서는 토지 위의 인간들 사이에 관계 그리고 제도와 연관들 속에서 착각을 들뢰즈가 보았다고 생각했다. 벩송은 “도덕과 종교의 두원천(MR)”에서 두 가지를 구분했다. 자연에 저항과 사회의 저항을, 자연의 저항에서 고착적 종교가 생기고 사회의 저항에서 동태적 종교가 생긴다고 말이다.

   들뢰즈는 넷째 악순환의 오류를 적용의 오류라고 하였다. – 이 말의 뜻은, 자본이라는 제국이 금융을 전유하면서 인민들 속속들이 적용하고 있다고 보는데, 플라톤의 이데아가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에 접근할 수 없듯이, 적용은 인민의 심층에까지 적용이 잘 안 된다. – 이 적용의 오류는, 땅을 설명하기 위해 하늘을 대입시키거나, 또는 영혼의 활동을 잘하기 위해 신체에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는지는, 서양철학사 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늘과 땅, 신체와 영혼이라는 이항 대립을 설명할 때와 증거를 댈 때가 서로 뒤바뀌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맑스의 노동은 인간의 삶에 관해서인데, 제국에 빌붙은 수학자들은 인간의 노동력도 계산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원신세도 계산한다. 계산에 들어가는 이들은 상부(다수자)이고, 계산과 관계없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심층(소수자로 불리지만 세상에는 80%가 넘는 다수자이다)이다. 심층은 무지랭이처럼 살다가 간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럼에도 인민이 토대이고 최종심급이라는 것이, 프랑스 혁명 200여 년이 지나서도 나오는 입말이다. 인민이 아프면 위정자가 아프다는 것은 동서양에 심신(영혼과 신체)을 주제로 삼을 때이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이렇게 노동력을 주제로 삼은 이후에 전 지구상의 먹거리와 잠자리 생산량이 넘치고 넘치는 데도, 굶는 자가 억명에 가깝고, 적도와 달리 사는 곳에서 잠자리를 마련하고자 평생을 노력하는 제도를 누가 만들었겠는가. 신이 만들었나, 자연이 만들었나. 이 제도가 게으른 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자들이 사기꾼 또는 점쟁이일 것인데,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고들 한다. 그 질문에 그들에게 불평등과 불안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대해 물으면 그 사기꾼에게 말려든다.

   그렇게 문제제기 하지 않고, 왜 삶에서 다른 자연재해나 기후변화에 대해 풀려고 하지 않고, 인간들 사이에 니가 많니 내가 많니 하는 문제를 다투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만들었나? 그 문제 맞기는 맞나? 싯달다가 왕궁을 벗어나 배고파도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이미 그 시대가 이미 다른(문화) 관심을 가져도 먹고 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어째서 먹거리와 잠자리를 찾아서, 다른 이들에게 한 푼의 구걸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가. 그렇게 모자랄 것 같으면, 서구의 우생론자들 이야기처럼 인구들 줄이는 거세를 할 것이지, 왜 피지배자들에게는 많은 자식을 낳게 하고, 자신들은 전쟁하든지 간에 상부의 수를 전지구적으로 줄이면서 지배하고자 하는가? 인간을 다루는 이야기로서 작품들이 이런 이야기를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적용의 문제를, 유일신앙자들이 얼마나 착각과 오류에 빠졌는지를 들뢰즈는 니체에서 찾았다. 니체도 서양인이니깐. 유일신앙자들은 인민에게 한번은 원한을 갖게 했고, 그리고 다른 한번은 먹거리와 잠자리를 해결하는 도구/무기를 알았을 때, 인민이 상층에 저항하고 항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원죄를 심었다고 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노동을 열심히 하라고 했다. 도구/무기의 의한 생산력의 강화인, 노동력에 의한 생산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은 것을 눈치 채기 시작했을 때, 인민에게 원죄의식처럼 부채의식을 안겼다. 부채가 있다면 채권자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국가를 통하여 채권자가 부채자에게 명령과 지배를 하는 방식이 소유권이다. 누구나 자연 속에서 부채의식은 없다. 왜 제도와 국가는 부채의식을 심을까? 부채, 그것이 적용의 코드였다. 왜 원리라고도 법칙이라고도 하지 않고, 규율과 훈육으로서 코드라고 했겠는가.

   적용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들뢰즈/가타리는 정신분석학의 허구와 착각을 길게 설명한다. 종교적으로 원한과 죄의식을, 정치경제학적으로 맑스와 달리 억압과 억제로 바꾸어서 길고도 흥미있게 설명하였겠는가. 전자의 두 과정을 넘어서면, 현실에서 두 방식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본 것은 서구가 유일신앙체제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두 방식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뭣이냐고 물어야 할 것이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죽어서 천당 또는 극락이라는 저세상을 가는 것이 ‘차후에’라는 오류를 지적하듯이, 살아서 억압의 체제와 억제의 사고가 왜 나왔는지를 지적해야 할 것이다. 억압이 왜 있는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러면 제도를 벗어나는 것이 무엇인가? 생산양식을 넘어서 누가 누구를 먹어 살리는가? 인민이 위정자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을 먹여 살리자고 인민이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민이 누구하고 먹고 사는가? 인민이 인민하고 상부상조하며, 그보다 앞서서 자연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같이, 함께 나아간다는 것이지 않겠는가?

   적용의 오류는 하늘과 땅, 신체와 영혼의 문제라는 이항대립의 관계를 해결하려 하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 속에서, 생명체들의 상호연관에서, 문제의 해결방식을 찾아야 한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인가? 그것 믿는 유일신앙자들의 이기심이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그리고 산업사회에서 상업자유주의를 만들었고, 그런 방식이 광기라고 푸꼬가 왜 주장했겠는가? 그 후 250여 년 만에 인간이 이기심이 제도뿐만이 아니라 자연도 파괴하고 있다고 알았다. 자연은 자기 치유능력이 있다. 하다 안 되면 인간을 버리고 박테리아로 하여금 지구를 지배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공포나 허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게다가 지구는 언제나 돌고 있고 변하고 있다. 원래 하나의 통일성이든지, 차후에 통일성이 있다고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기심과 탐만치에 빠진 인간들이 이전에도 통일성이 있고 차후에도 통일성이 있다고 착각과 오류에 빠질 뿐이다. 

   천지와 심신의 이항 문제에서 자연 속 인간의 문제로 이전하여 심각하게 제기한 것은 그래도 정치경제학이다. 그런데 자연과 인간에서 인간의 지위를 자연 밖에다 두려고 한 책임은 자연학 배후를 형이상학이라 부르는 자들에게 있을 것이다. 자연 밖, 이것은 탐욕과 오만과 치졸함, 탐만치이다.

   언어와 입말이 또는 문자와 기록(등록)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연 속에 인간의 생물학적 등록은 유전자에 있다. 이 유전자의 생명체는 먹거리와 잠자리의 방식에 따라 달리 과거를 보존하고 기억한다. 유전자라는 기록들이 추억들이지만, 기억이 추억들을 사용하는 방식은 자연에 의존해 있을 수밖에 없다. 먹고 자지 않은 생명체는 없다. 자연은 수십 억년을 걸쳐서 자기의 모습을 그렇게 드러내왔고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 대해 진솔하게 생각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허구와 착각에 빠진 자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과거의 모든 지식을 종합 정리하면 인간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적용의 오류이다. 인간이란 생명체는 자연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지, 자연에서 예외로서 또는 자기 지칭을 제외한 논리로서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러셀도 이미 말했다. 자기 이외 방식으로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에 대한 무지이며 어처구니없는 착각이며, 적용의 오류이다.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자기 억제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 자연 속에서가 아니라 제도 속일 때, 예속과 굴종이다. 이런 자발적 예속과 굴종이 인간들 전체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들뢰즈가 말하듯이 굴종의 삶은 제도 속이고, 노마드는 자연과 더불어 산다. 그리고 자연 속에 일정한 과정을 겪으면서 가야한다 것도 안다는 것이, 적용의 오류를 벗어나는 인민들이다. 인민들은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 수많은 기괴할 정도로 크고 화려한 무덤도, 파묘의 첩장도, 인민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인민은 안다. 싯달다가 염처경에서 말하듯이 죽으면 온갖 미세 벌레가 몸을 먹어치운다는 것도 안다. 그 흔적을 태우면 없어질 것이라고 설법하는 이들도 착각하는 것이다. 태우는 것 또한 자연의 불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여러 방식들 중의 하나이다. 흙 속에서 박테리아 먹게 두는 것도, 물 속에서 고기떼에게 먹히는 것도, 산중에 버려져 짐승들과 산새들이 먹는 것도 여러 방식들 중에 하나이다.

   적용의 오류는 세상의 무수히 많은 방식 중에서 제도 속에서, 이 방식(양식)만이 맞고 정당하다고 법률을 정하고 원칙이라고 우기는 자들에게서 나온다. 그 양식을 우기는 자들을 들뢰즈가 외디푸스라고 말했지만, 서구에서 크리스토스이고 동방에서 황제(참주)였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를 황제로 받아들이고 고착시키려한 것이 로마라는 것이다. 하나로(uni – vers)가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강요하고 억압하는 것이 1600백년이 지났고, 문자보다 입말의 발전으로, 억압보다 억제를 심기 위해 훈육의 제도들(학교, 군대, 병원, 감옥, 요양원)을 만드는 것이 억압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가정에서부터 억제를 심었다. 프로이트가 19세기 말에 억압을 본 것이다. 그 억압을 죽음에다 붙인 것은, 억제를 벗어나는 떠돌이를 막기 위해 종교의 억압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억압은 떠돌이와 거지들을 만들지 않고, 훈육의 제도,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 산중 기도원의 제도를 만들어 그 속에 수용한다. 구호로는 깡패, 거지, 불량배라고 하지만, 이를 핑계로 체제의 저항자 몇을 제거하면서, 억압을 가정에서 학교에서 억제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터전은 입말이 제자리를 잡기 전에 제국의 억압과 마름들이 선진국 지식이란 이름으로 따라한 제도 속에, 가정에서 억제로서 자라서 사회에서 억압 속에 살아간다. 제국의 마름들은 인민에게 사회의 억압에 저항과 항쟁을 할 수 없는 틀에 살게 하면서, 틀 속에 자유가 있고 삶의 편리가 있다고들 한다. 그 틀에 반대하거나 그 굴종의 자유에 저항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들뢰즈가 베이트슨에 빌려와서 말하는 이중구속이다.

   이중구속은 두 가지 상반된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점에서 강제이다. 두 가지 상반된 힘의 존속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입말로 상반된 힘의 투쟁에 대한 통찰이지만, 그것을 누구에게나 보여주고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자석의 자기장이다. 지구가 돈다는 것은 남극과 북극의 양쪽 힘이 동시에 존속한다는 것이다. 생명체도 그럴까? 이런 질문보다 두 가지 힘에서 다른 길을 생각하는 것을 문자화 시대 3천여 년 동안에 왜 막았을까? 종교의 억압이었을 것이라고 본 것이 니체이고, 19세기 이후에는 제도라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교육과 훈육의 필요인 줄 알았던 것인데, 제도보다 남녀의 만남(짝짓기)에서부터 통제와 명령이 있어야, 그 다음세대도 통제 속에 들어올 수밖에 없도록, 가정에다가 심었다. 그것이 개인의 억제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채무가 있다고 여긴 것도 억압을 억제로 바꾸는 통제의 방식이다. 그런 억제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찌와 파시즘을 만들었다. 이들에게는 유일신앙이 있었고, 일본에서 이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천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와 기록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도구지만 지배하고 정복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도구/무기에서 벗어난 삶에서 입말은 상부상조에 있다. 물론 입말보다 먼저 행동하는 것이 도구/무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포틀래치(Potlatch)가 있고, 무상보시(無相布施)가 있고, 무위자연(無爲自然, 은총)이 있다. 다만 이런 실행을 시도 때도 없이 할 수는 없다. 능력으로서 생산이 많을 때 하는 것이지, 어리거나 늙거나 아무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왜 19세기 초에나 와서야 능력 있을 때 무상보시(은총, 자비)처럼 베풀고, 능력 없을 때 필요한 것을 받으면서 살자고 했겠느냐는 것이다. 맑스는 노동 가능한 인간이 능력에 따라 일해도 세상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는데,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고 한다. 삶의 터전에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고 일하다가 늙는다는 과정을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 축적을 하지 않고 공동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솔하게 깊이 숙고했을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노동력이 동등하지도, 같은 또래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지혜로운 자나 지식인이 아니라도 안다. 어찌 조화를 추구하고 이런 사회를 혼성(composer)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겠는가.

   입말이 시대적 변화 과정을 세대 간에 공유하지 못하였고, 게다가 한글을 통한 우리 입말이 공용된 지가 겨우 7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아서, 사고를 공시적 관점에서 할 수 밖에 없다. 동학 이래로 침략한 일제가 산업화의 사고를 심었다. 그런데 그 관점은 앵글로 색슨의 방식(명령과 억압)을 일제가 배워서 우리에게 적용한 것이다. 적용의 오류를 범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 제도적 억압과 입말 말살로 나갔다. 인민은 상층이 아니라 인민들 사이에서는 조선시대보다 더 입말을 펴나갔다. 미제가 우리 입말을 그들의 문자의 등록에 맞게 지배하려고 했다. 70여 년이다. 그런데 입말의 체계가 서로 맞지 않아서, 보조로서 일본을 반도에 재진입 시키려는 전략을 쓰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70여 년에는 3세대가 서로 소통이 잘 안되지만, 입말을 쓰면서 풍토(자연)와 조화를 찾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윤석열이 제국의 문자 등록으로 체제를 만들고자 했지만, 제국의 등록보다 우리 자신들의 생명 등록이 훨씬 더 확장되었다.

   일본제국이 다시 들어온다고 해도 조선시대 이후의 한문세대는 이제 갔으니 일본식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다른 하나가 문제이다. 이미지의 지배가 들어오고 있다. 시각 이미지로 만화, 영화뿐만이 아니라 청각이미지로 노래, 활동 이미지로 운동과 연관 산업들이 들어온다. 문자는 그보다 견고하게 지배하고 있다. 특히 철학에서 120년 서구 사상의 유입은 일제의 잔재로서 존속한다. 이를 넘어서는 것은 긴 과정이 필요하다. 사상사에서만은 박홍규가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을 이야기했던 것이 있다는 점에서 다를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배하에 있지만 말이다.

   입말은 토지와 풍토에서 생성하고 성장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현재의 자본(돈)이 지배하는 방식에서 입말이 돈에 밀려난다. 그러나 소수자(인구 수로는 다수자)는 먹고 자고하는 사는 데 목을 메고 있다. 먹거리와 잠자리가 불안한데, 그나마도 기아나 난민으로 살지 않기에, 교육과 의료의 차원을 달리 풀어 가면 될 것이다. 달리 살기, 달리 말하기는 이제 범위가 넓어졌다. 한류와 한-영화, 한-노래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이 인디언을 지배하면서 인디언을 몰아내듯이, 여기 인민들을 몰아내면서 억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억제는 크리스트교가 많다고 하지만 우리 전래의 선도와 샤마니즘에 중첩되어 있어서(파묘 영화가 그렇다), 문선명, 박태선, 조용기, 유병언, 김홍도, 이만희, 전광훈 등은 크리스트교라기보다 샤마니즘과 중첩된 기복신앙에 가깝다. 이런 종파 종교들은 5천년 역사에서 지나가는 하나의 유행일 수 있다.

   불교 천년, 유교 오백년. 이 다음에 125년, 신업화의 돈(자본)신앙과 유일신앙이라는 외세의 억압에 시달리지만, 억제로서 우리 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 입말이 새로이 살아있기 때문이고, 우리 입말은 제도적 언어체계와 다르고, 문자로서의 명령과 지배와도 다르다. 70여 년 만에 입말이 제 위상을 차지 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거의 경이로운 은총(무위자연)이자 기적(아자르)과 같다. 그 결과가 윤석열 정부의 레임덕을 넘어서는 새로운 풍토로 등장할 것이다. 인민의 입말은 저항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6:26, 57OLI)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신간안내] 『깜보와 보낸 11년』(이종철 지음|얼룩소출판|2024.04.26.) [한철연 소식]

『깜보와 보낸 11년』(이종철 지음)

 

이종철 회원의 신간을 소개합니다. ebook(전자책)으로 출간된 『깜보와 보낸 11년』입니다. [얼룩소]의 <에어북> 공모전에 선정되어 출간되었습니다. 키우던 반려 견과 함께 보낸 11년을 20개의 에피소드로 기록했습니다. 반려견 천만 시대에, 한국에는 반려견을 주제로 한 소설이나 영화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반려견을 키우면서 생길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평이하게 풀어낸 책입니다. 가독성 있게 잘 읽혀 재미도 쏠쏠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종의 공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책 소개

틈틈이 깜보와 지냈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글을 썼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깜보와 우리 가족은 무려 11년을 함께 지냈다. 그 사이 우리가 함께했던 경험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 경험들은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생생히 살아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다가 어느 순간에 잊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동안 깜보와 찍었던 수많은 사진이 남아 있지만, 글은 또 다른 의미를 띄고 있다. 글을 한편 두 편 쓰다 보니까 평소 거의 생각을 하지 못했던 지난 세월이 생생히 소환되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어떤 사건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경험과 장면들까지 잠재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깜보가 우리 가족을 떠난 지 6년이 넘었는데 깜보는 여전히 나의 가슴 속에 살아 있었다.
마침 ‘얼룩소’에서 ‘에어북’공모를 하길래 응모했는데 선정이 되었다. 내가 적지 않은 시간 글을 써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이번의 선정은 나 때문이 아니라 형태는 다르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깜보 때문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개가 여러 차례 환생을 하면서 자기 주인을 찾아가는 염원을 그린 ‘베일리 어게인’과 비슷하게 깜보는 이렇게 글을 통해 나에게 다시 살아온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1장. 깜보를 입양하다
 2장. 깜보의 똥을 밟다
 3장. 깜보, 중성화 수술을 받다
 4장. 깜보의 털
 5장. 깜보 운동시키기
 6장. 깜보와 흔들리는 가정
 7장. 깜보의 차멀미
 8장. 깜보와 장거리 여행
 9장. 깜보의 절대 감정
 10장. 깜보의 셀프 트레이닝
 11 장. 깜보의 사회성
 12장. 깜보와 먹거리
 13장. 깜보 실종사건
 14장. 깜보와 한강을 산책하다
 15장. 깜보와 강원도 여행을 가다
 16장. 깜보와 이별하다
 17장. 깜보, 암에 걸리다
 18장. 깜보와 마지막 산책을 하다
 19장. 깜보와 사별하다
 20장. 개를 키운다는 것
   에필로그

 

저자: 이종철(한철연 회원)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교원대, 숙명여대, 서울여대 등에서 강의했고,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 한국어과 교수, 한국학연구소장, 그리고 한남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에 재직하면서 ‘브레이크 뉴스’ 논설위원과 NGO 환경단체인 ‘푸른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네이버 프리미엄 서비스에 ‘에세이철학’ 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공저로 ‘철학자의 서재’, ‘삐뚤빼뚤 철학하기’, ‘우리와 헤겔철학’ 등이 있고, 장 이뽈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 아인슈타인의 ‘나의 노년의 기록들’, 스티븐 홀게이트의 ‘정신현상학 입문’, G. 루카치의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2, 3, 4 공역), ‘무엇이 법을 만드는가’(공역) 외 다수의 책을 옮겼다.

출처1) YES24

출처2) RIDI

헤겔미학산책52-헤겔의 시민적 서사시와 루카치의 소설론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52-헤겔의 시민적 서사시와 루카치의 소설론

 

1)

앞에서 설명했듯이 서사시의 기본적 특징은 생생한 개별적 사건, 전체에 내재하는 통일성, 영웅의 행위, 서사적 화자의 고요한 음조이다. 헤겔은 이 네 가지 특징을 본래의 서사시인 그리스 서사시를 기초로 파악했다.

헤겔은 서사시가 오직 그리스 시대에만 존재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 이전 고대 서사시도 있었으며, 그 이후 로마와 중세를 거쳐 서사시가 계속 유지됐다고 말한다. 마침내 근대에 이르면 서사시는 시민적 서사시로까지 발전하게 되는데, 이제 서사시의 이런 발전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는 특히 루카치의 소설 이론과 연관하여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위에서 말한 원래의 서사시는 고전적인 예술형식에 기초한다. 여기서 정신은 현실 속에 이상화된 방식으로 현상하다. 앞에서 거론한 서사시의 특징 가운데 세 번째 영웅적 행위는 본래 서사시에만 속하며 다른 시대 예술 형식에 이르면 사라지니, 서사시를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는 이것을 배제하고 나머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2) 고대와 중세, 근대의 서사시

헤겔은 고대 서사시로 인도의 서사시(라마야나나 마하바라타 등)이나 페르시아, 히브리, 아랍의 서사적 신화를 들고 있다. 고대 서사시는 모두 상징적 예술형식을 취하고 있는 서사시이다. 이런 서사시는 구체적 개별 사건들을 서술하지만 이 사건은 신이 자기를 변용하여 나타나는 상징적인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실재하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주로 환상적인 사건이다. 사건은 합리성을 결여한 채로 수수께끼적인 방식으로 전개며, 그 어디서나 상징적 중심은 신이다. 상징화된 신이 전체 서사시의 통일적 연관성이 된다. 사건을 일으키는 행위자는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모습 속에 숨어있는 신 자신이고 화자는 그 스스로 신성한 존재로서 이 사건을 서술해 나간다.

상징적 고대 서사시는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본래의 서사시로 발전했다. 헤겔의 역사에서는 고전 시대가 끝나고 법의 시대가 출현하는 로마에 이르면 이미 새로운 서사시가 출현한다. 여기서 그리스의 영웅적 서사시의 기본 형태를 유지하더라도 변형된다. 이제 서사적인 사건을 통일시키는 것은 개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생동하는 인륜적[민족적] 목적이 아니라 개인에게 외적으로 강요되는 윤리적[법적 국가]인 목적이 된다. 대표적인 것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와 같은 서사시이다.

중세에 이르면 낭만적 서사시가 출현하게 된다. 헤겔은 이 속에 니벨룽겐의 노래, 단테의 신곡, 기사도 문학을 포함하는데, 여기서 개별 사건들은 낭만주의의 예술적 표현인 가상 개념을 통해 전체적으로 통일된다. 사건은 자립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는 사건으로 발전되어 나가는 즉 하나의 가상이다. 그 자기부정을 통해 현실 세계는 신의 의지에 의해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신의 구원은 모든 사건에 내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의미가 된다. 이 사건을 전개하는 행위자는 고대적인 신도 아니고 그리스적인 영웅도 아니다. 행위자는 특수한 주관, 개별적 개인이다.

낭만주의 시대는 시장관계가 성숙하면서 근대로 이어지는데, 대체로 르네상스 이후가 된다. 이 시대부터 헤겔은 새로운 서사시가 출현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예로서 타소의 해방된 예루살렘이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들고 마지막으로는 밀턴의 실락원, 클롭스톡의 메시아, 볼테르의 앙리아드, 포스의 루이제나 괴테의 헤르만과 도로테이아[1] 등을 들고 있다. 이와 같은 서사시는 가상 개념을 기초로 하여 구원을 향한 낭만적 서사시를 이어받는 것이다. 다만 여기 근대 서사시에서 구원이라는 목적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계라는 근대적 이상으로 대체된다. 여기서 행위자는 낭만주의 시대 이래 등장한 특수한 개인이지만, 이제 구원을 찾는 기사가 아니라, 도시 부르주아로서 개인이다.

 

3)

헤겔은 이어서 그의 시대에 발전하는 소설(Roman, Erzaehlung, Novelle)을 ‘근대적, 시민적 서사시’로서 언급했다. 이 서사시는 앞에서 말한 근대 서사시와 구분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서는 이런 소설을 다루기 힘들다면서, 생략하고 만다.[2]

그런데 능력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미학강의라는 책에서 그 다양하고 수많은 작품을 다루었던 헤겔한테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그의 서사시의 개념이 현상적으로 출현한 소설을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서사시의 방계 장르로서 소설을 언급하면서 말한 다음과 같은 헤겔의 말 속에 그 고민이 엿보인다. 아래는 미학강의에 나오는 말을 정리 해 본 것이다.

 

-“여기서는 한편으로는….. 광범위한 배경 및 사건들의 서사적 서술이 완벽하게 재등장한다.”

-하지만 진정한 서사시가 출현하는 세계 상태는 근원적으로 시적인데, 여기서는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 근대적 의미의 소설은 이미 산문적 질서의 현실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극히 일상적이며 소설에 최적인 충돌 중 하나는 가슴의 시와 이에 대립적인 산문, 즉 …우연이란 산문 사이에 벌어지는 분쟁이다.”

-“처음에는 일상의 세계질서를 거스르는 성격들이 그 속에 진정한 실체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그 제반 관계들과 화해하며, 그 속에 효과적으로 편입됨으로써,”

-“산문적 현상을 지우고, 또한 이를 통해 미 내지 예술과 친밀한 혈연관계의 현실로 하여금 현금의 산문을 대신하게 함으로써 그 해결책을 발견한다.”

-“표현에 관해 보자면, 본격적 소설 역시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세계관과 인생관의 총체성을 요구하며, ..바로 이 사건이 전체를 위한 중심점을 제공한다.”

“그가 자신의 묘사들 속에 현실적 삶의 산문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스스로 산문적이며 일상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면 더 많은 유희 공간이 허용되어야 한다.”[3]

 

정리하자면 현실이 이미 산문적이라는 것이다. 즉 내적 총체성, 형식적 통일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적어도 내적 통일성을 전제로 하는 서사시적인 방식으로 이런 현실을 다룰 수 없다. 그렇다고 산문적 현실을 그대로 기술한다면 그것은 시문학 즉 예술이 아니다. 시적 충동을 지닌 예술가는 산문적 현실을 대신하여 예술적 현실을 창조할 수밖에 없다. 그게 소설인데, 소설 역시 총체성 즉 전체의 형식적 통일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창조된 인위적 통일성이다. 마지막으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즉 산문적 현실 속에서 이런 인위적 통일성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상의 구절들에서 헤겔이 소설의 현상 앞에서 부딪힌 곤혹스러움의 원인이 암시된다. 우선 헤겔에게서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통일성이 결여된 사회는 아니다. 근대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손 즉 내적으로 초월하는 통일성이 존재한다. 그 통일성은 종교적으로는 개신교적 신으로 표현되며 정치적으로는 국가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헤겔은 산문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등장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근대 소설 작가는 인위적인 통일성을 만들어내는데, 예술을 시대정신의 표현으로 보는 헤겔에게 그런 작품은 의미 없는 것이다. 헤겔이 요리술이나 향기술을 예술로 간주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작품은 예술적으로는 의미 없는 작품이 된다. 그로서는 그의 시대 등장한 소설 현상에 어떤 예술적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헤겔이 근대 낭만주의 소설 작가 즉 슐레겔이나 장 파울 등에 대해 보여주는 극히 부정적인 시각은 이런 추론을 입증해 준다고 본다.

그러므로 능력이 없어 다루지 못하겠다는 헤겔의 표현은 그런 낭만적 소설이 등장하는 이유나 예술적 가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5)

항가리 부다페스트의 성이슈반트 공원에 있는 루카치 동상

어쩌면 의도적으로 헤겔이 다루기를 거부했던 그 지점에서 루카치의 소설이론이 탄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루카치의 청년기 저서인 소설이론은 그가 신칸트 주의에서 헤겔주의로 전향하면서 탄생한 작품인데, 그 자신 “헤겔 철학의 결과를 미학적 문제에 구체적으로 응용한 최초의 정신과학적 저술”[4]이라고 평한다. 실제 그의 이론의 많은 부분에서 헤겔의 흔적이 드러나는데, 우선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험적으로 규정하고, 이런 선험적 형식을 역사적으로 구성하려 한 그 시도가 전형적인 헤겔적 철학방법론이다. 그에 못지 않게 소설 이론의 구체적 내용 속에 헤겔의 미학강의라는 저서에 나오는 내용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이는 많은 개념이 발견되다.

루카치는 이 책의 2부에서는 소설 다양한 구체적 형식을 파악하는 데로 나가는데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곳은 주로 1부이다. 여기서 그는 서사시와 극을 구분하고, 또 각각을 고대와 근대로 구분하는 가운데 소설의 선험적 형식을 제기한다.

우선 고대와 근대는 운문과 산문으로 구분된다. 이것은 단순히 운율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른 것이 아니다. 운율이라는 것은 이미 어떤 통일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고대가 운율을 지닌다는 것은 그 시대 자체가 전체적 통일성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면 근대가 산문이라는 것은 근대에 더는 전체적 통일성이 결여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루카치가 헤겔과 달리 근대 부르주아 사회가 이미 내적으로 분열된, 상호 대립된 사회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고대라고 해서, 통일성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고대에서는 통일성이 존재하던 시대를 기억 속에서 회상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므로 고대 서사시나 비극은 이미 분열된 시대에 그러나 통일성이 있었던 시대를 기억 속에서 되살리면서 출현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근대는 이제 그런 통일성을 다시 기억할 수 없는 시대일 뿐이다.

 

6)

루카치에서 서사시와 극의 구분은 외연적 총체성과 내포적 총체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외면적 총체성이란 시공간적으로 전개되는 개별적 사건들 전체를 통일하는 총체성이다. 반면 내포적 총체성이란 주관의 내면적 통일성이다. 즉 개인이 지향하는 목적의 통일성이다. 즉 서로의 목적이 상호 조화로울 경우 내포적 총체성이 된다.

서사시는 발견의 구조를 지니며, 극은 구성의 구조를 지닌다. 서사시에서 주인공은 내면적 목적을 세계 속에서의 모험을 통해 실현한다. 이는 곧 세계의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며 결국은 자기의 재확인이다. 극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당위로 파악하면서 행위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립하는 결과를 발견하게 되면서 몰락한다. 그런 가운데 그는 자신의 목적과 대립하는 목적, 두 개의 당위가 모두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현실은 이제 두 개의 원리의 종합[구성]을 통해 재구성된다.

서사시를 외연적 총체성으로 보는 것은 헤겔이 서사시를 자립적인 개별적 사건과 그것에 내재하는 통일성으로 규정한 것과 일치한다. 마찬가지로 내포적 총체성이라는 루카치 개념 역시 헤겔이 극시를 두 개의 대립하는 목적(행위자의 원리) 사이의 대립과 균형으로 규정한 것에 상응한다.

헤겔이 그렇게 했듯이 고대의 서사시나 극에서는 행위자는 모두 실체적 목적을 수행하는 영웅들이다. 이들은 이런 목적을 자신의 개성 속에 생동적으로 통일하고 있으니, 그 관계는 무의식적, 관습적 관계가 되며 그들의 행위는 자기의 내면으로부터 주저 없이 행동으로 나오게 된다. 루카치는 고대 서사시나 극에서 행위자가 지닌 측면을 명백하게 서술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소설이론 첫 문장에 고대인은 “영혼의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했을 때, 그 의미는 이런 영웅적 행위자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7)

고대 문학에 관한 헤겔적 개념을 통해서 루카치는 소설 이론으로 넘어가게 된다. 근대 부르주아 시대에 이르러 사회적인 분열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분열의 시대 개인이 가슴 속에 품었던 목적은 실현되지 않는다. 개인은 이제 알 수 없는 삶에 의해 지배당하게 된다. 개인의 목적은 추상적인 것에 머무르며, 삶은 우연과 운명이 지배하는 이질적이고 불협화음적이며 세계가 된다. 개인은 고독하게 되며 타인과 더불어 더는 소통되지 않는다. 이 시대 고대적 서사시든 고대적 비극은 더는 존재할 수 없다. 이제 행위자는 더는 영웅이 아니며 특수한 개인에 불과하다. 그는 특수한 목적 즉 욕망을 품고 이 세계 속에 타인과 관계하면서 살아간다.

근대 비극에서 개인은 고독하며 서로의 관계는 형식적 관계이다. 여기에 개인들 사이의 내포적 총체성이 없으니, 현대연극은 ‘삶을 추방하는 비극’이거나 ‘삶을 연소하는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는 세상으로부터 절연한 고독 속에 은거하는 연극이며, 후자는 자기를 영웅적으로 파괴시켜 소멸하는 연극이다.

마찬가지로 서사시의 기본 형식인 외연적 총체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은 구체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 없으니, 더 이상 서사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이 시대 새롭게 탄생한 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장르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서사시의 주인공처럼 세계 속에서 모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분열의 시대 그 모험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는 이런 실패가 예상되면서도 소설적 주인공은 자기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나가게 되니, 그 존재를 루카치는 마성적 존재라 한다. 이 세계 속에 그가 발견하는 것은 세계의 악의, 신의 침묵이다.

주인공은 이런 가운데 자신의 목적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대 서사시가 주인공의 자기 발견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를 인식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특수한 개인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자기를 벗어나 해방된 존재가 된다. 바로 이런 해방을 루카치는 낭만주의자 슐레겔의 개념을 빌어 아이러니 상태라 한다.

그러므로 루카치는 소설의 근본적 형식을 전기적 형식이라 한다. 소설은 실체적 목적을 실현하는 투쟁의 형식이 아닌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처럼 자기 부정을 통해 도달하는 자유에 도달하는 과정이기에, 그 과정은 항상 열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소설 장르의 출현을 헤겔이 모른 것은 아니지만 헤겔은 소설의 출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루카치는 헤겔의 서사시 개념을 뒤집어서 자기 개방적 전기적 형식을 지닌 소설 개념을 끌어내고 그 미학으로서 아이러니 개념을 발견했으니, 여기에 루카치의 탁월성이 존재한다.

루카치의 소설 이론은 소설 장르를 설명하는 아직도 의미 있는 이론인데, 그의 이론은 벤야민의 바로크 문학론과 더불어 헤겔의 미학 개념이 내포하는 가능성을 살려낸 대표적인 작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1] 헤겔은 특히 포스의 루이제나 괴테의 헤르만과 도로테이아는 목가적 서사시라는 이름을 붙인다. 왜냐하면 가정이나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물론 헤겔은 그런 사건이 가정사나 소도시의 삶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적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헤겔은 포스와 괴테가 이런 거대한 혁명적 사건을 가장과 소도시의 사건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2] 헤겔은 소설에 관해서는 “극히 일반적인 얼개로나마 더 이상 추적할 수 없다” (미학강의 3권, 422쪽)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헤겔은 서사시의 방계 장르를 다루는 부분에서 근대적 시민적 서사시를 언급한다. 서사시의 방계 장르로서는 그 외에도 전원시, 목가시, 기사담 등이 있다. 반면 서사시의 역사를 다루면서 낭만적 서사시 속에 중세 기사 서사시와 근대에 출현한 서사시를 묶어서 다룬다. 그러므로 밀턴, 클롭스톡, 괴테 등의 근대 서사시와 헤겔이 소설이라고 말한 근대적 시민적 서사시는 서로 다른 것이다.

[3] 미학강의 3권, 398-399쪽

[4] 루카치, 『소설이론』, 반성완 역, 심설당, 1985, 12쪽


⇓ 다음 연재글 바로가기 ⇓

헤겔미학산책51-서사시적 슬픔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51-서사시적 슬픔

 

1) 서사시의 장르적 특징

헤겔은 그리스 서사시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동방의 서사시, 낭만적 서사시, 심지어 근대적 서사시라는 것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 서사시를 개념적으로 파악한 다음에 이를 확장하여 다른 서사시의 형태로 전개했으니, 먼저 그리스 서사시 즉 헤겔이 본래의 서사시라고 말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앞에서 간단하게 서사시 장르의 근본 특징을 소개했지만[1] 여기서 좀더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서사시는 개별적 사건들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것은 “민족이나 시대의 내적, 총체적 세계와 관련된 풍부한 사건으로서 가시화”[2]된다.

이런 사건들이 단순히 산만하게 전개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건들 내에 이 사건을 전체적으로 통일하는 중심적 목적, 일반적 목적이 있어야 하며, 모든 사건들은 이 목적과 필연적으로 연관되면서, 전체가 자체 안에 유기적인 전체성을 띄고 있어야 한다.

이런 유기적 전체성은 철학에서처럼 논리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목적 적합성을 지닌 수단으로서만 등장해서도 안 된다. 개별적인 사건은 그 자체가 생생하고 자립적인 것이며, 일반적 목적의 필연성은 개별적 사건 내부에 감추어져 있어야 한다. 독자는 이 개별적 사건 자체에 머무르면서 그것을 독자적으로 향유한다. 따라서 사건은 장황하고 느슨하지는 않더라도 진행은 매우 느리게 “평온하게 점진적으로” 나아간다.

 

“이 전체는 객관적 평온함 속에서 진행되며, 이로써 우리는 개별적인 것 자체와 생생한 현실의 이미지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3]

 

일반적 목적은 추상적으로 제시되어서는 안되며, 어떤 개인적 영웅의 행위와 밀접하게 뒤얽혀서 등장하면서 서사시적인 활력이 등장한다. 여기서 일반적인 목적과 개인적 행위는 생동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그리스 민족의 실체적 목적은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전체적으로 연관된다. 개인은 자신의 행위 속에 일반적 목적이 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지만 그 관계를 무의식으로나마 또는 희미하게나마 의식하고 있다.

이는 서사시에서 인간의 행위와 신의 행위가 중첩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시인은 “영웅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객관적으로 신들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4] 설명한다. 예를 들자면 일리아드에서 분노하는 아킬레우스에게 신중함을 각성시키기 위해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 아킬레우스에게 신중을 명한다. 이것은 사실 아킬레우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이지만, 시인은 이를 신의 목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서사 시인은 전체적 사건을 굽어보면서 이를 서술할 때 개인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족 정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서술한다. 서사시의 화자는 뒤로 물러나서, 간접적으로 매개하는 화법을 통해 영웅의 역사적 사건을 회상한다. 그런 서술은 ‟단조롭고 기계적인 것에 가깝고 조용히 독자적으로 계속 굴러가듯이 흘러 나온다”[5]. 그는 “작품이 스스로 노래하는 듯이”[6] 서술하여야 한다. 이런 단순한 묘사는 그 사건을 어떤 운명의 힘에 의해 일어난 필연적 결과로 받아들여지게 하니, 여기서 서사시가 지닌 ‛서사적 슬픔’이 출현한다.

슬픔에 잠긴 호머

2) 서사시의 시대와 서사시인

서사시는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시대에나 출현하였다. 헤겔은 그리스 서사시를 최고의 완전한 서사시로 간주하지만, 그 이전 인도에도 서사시(예를 들어 라마야나, 마하바라타)가 있었으며, 기독교 시대나 근대에도 서사시(예를 들어 엘 시드와 신곡, 해방된 예루살렘 등)가 있었다[7]. 헤겔이 그리스 시대 서사시를 최고의 서사시로, 서사시의 원형으로 삼았던 것은 호메로스와 같은 탁월한 시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사시의 정신적 토대 때문이다.

헤겔은 그 정신적 토대를 민족국가가 출현하고 이를 영웅이 이끌던 영웅시대라는 말로 규정한다. 이 시대는 “민족이 둔중한 의식에서 깨어나, 정신이 자기의 고유한 세계를 산출하고 한 민족의 순진무구한 의식이 최초로 시적으로 언표되는”[8] 시대이다.

이 시대, 국가의 시민(공민)은 아직 국가를 자발적으로 구성한 것도 아니며 다만 정의감이나 공정의 감각, 습속이나 관습, 파토스, [자연적] 성격에 기초하여 국가에 결합할 뿐이다. 이 시대 국가의 실체적 목적이 영웅이라는 개인의 파토스, 자연적 성격을 통해 생동적으로 실현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 국가는 아직 자연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민족 국가라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서 국가와 개인, 민족과 영웅, 자연과 국가는 미분화된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와 공정성의 감각, 습속, 심정, 성격이 인륜적 관계의 유일한 근원이며 그 버팀목으로 현상하니 어떤 지성도 그런 인륜적 삶의 관계를 산문적 현실의 형식으로 간주하면서 심정과 개인의 신조와 열정에 확고하게 대립시킬 수 없을 정도이다.”[9]

 

헤겔은 최초의 민족국가의 자연적 통일성이 분열하면, 사회 자체의 이원성, 개인과 사회의 대립이 생겨나면서 서사시는 그 정신적 토대를 잃고 서정시와 극시로 발전하게 된다고 한다.

영웅 시대 서사시가 등장하면서 민족은 이 서사시를 통해 자신의 정신을 자각하게 된다. 시인은 둔중한 의식에서 깨어나 “자유로운 정신으로서 구시대적 속박을 벗어 던지며”, 민족 내에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을 예민하게 자각함으로써 이를 서사시로 표현한다. 이로써 서사시는 민족의식의 바탕이 되어 모든 종교나 예술 철학의 원천이 된다.

서사시는 민족에게 하나의 경전을 제시한다. 이 경전은 종교적 의미에서 경전이 아니라 세속적 삶의 율법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경전이다. 서사시의 많은 내용은 신구 정신의 갈등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후일 비극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서사시가 비극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비극은 갈등 자체를 내용으로 삼지만 서사시에서 이런 갈등은 전체적 사건을 전개하는 하나의 계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3) 서사시적인 사건

이상에서 헤겔은 서사시가 가지는 일반적 특성을 제시한다. 이어서 헤겔은 서사시의 구체적 내용을 상세하게 분석하는데, 이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것들만 살펴보기로 하자.

서사시에서 영웅의 모든 행동이 시적 서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서사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런 영웅이 일으키는 사건[Begebenheit]인데, 이 사건은 곧 전 민족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다. 민족 내부의 갈등이 아니라 민족과 민족 간의 전쟁이 서사시의 대상이 된다. 더구나 이 사건은 민족이 구 시대적 상황을 벗어나 민족적 삶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놓는 사건이며 이를 통해 하나의 민족이 세계사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웅이 불러일으킨 사건을 통해 전 민족의 삶과 삶의 모든 측면이 끌어들여지며 서사시는 포괄적이고 풍부한 사건으로 가득하다.

영웅의 행동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정신적 도덕적 탁월함이 아니라 신체적인 강건함과 용감성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영웅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영웅이 자연적으로 얻은 힘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전체적으로 영웅의 자연적 파토스에 의해 지배되므로 여기서 서정적 요소가 출현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영웅의 파토스를 매개로 하더라도 실상 민족적 정신 자체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영웅의 구체적 행동, 내적 목적과 열정은 민족 정신이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형식에 불과하다. 영웅 속에 “민족이 생동적이고 개별적 주관으로 응집”된다. 영웅은 “민족의 특성 속에 산재한 것을 자신 속에서 통합하는 총체적 개인이며”, 그러므로 “위대하고 자유롭고 인간적으로 아름다운 성격”[10]이다. 그는 민족의 정점에 서 있을 권리를 지니며, 주요 사건은 그의 개성과 결부된다.

서사시의 바탕이 되는 사건이 이처럼 자연적 파토스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여기서 “인간은 아직 자연과의 생동적 관계로부터 다시 말해 자연과 관계하여 힘차고 신선하며 부분적으로는 친밀하며 부분적으로는 투쟁하는 공동성으로부터 벗어나서 현상하지 못한다.[11]

이런 자연성 때문에 서사시적 사건에는 한편으로 영웅의 의지가 개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실과 관련된 많은 우연성이 개입한다. 이것은 극시와 반대되는 데 극시에서는 오직 등장인물의 행위로부터 사건이 발생하며 인물에 대립하면서 외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건도 사실은 그 자신이 일으킨 사건이 된다.


[1] 헤겔이 서사시 장르에 포함시킨 것과 관련해 약간의 혼동이 생긴다. 문제는 경구, 격언, 교훈시나 철학적 교훈시(철학시, 우주 창조론, 신통기 등)와 같은 것 때문이다. 헤겔은 시와 산문을 구별하는 경우, 위에 든 것을 산문으로 분류한다. 이런 것은 개별적인 것(사건, 사물, 행위 등)이 일반적인 것(본질, 법칙, 도덕 등)을 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개별적인 것은 자립적인 것이 아니며, 독자는 이 개별적인 것을 향유하지 않는다. 그런데 서사시 장르를 다루는 경우 헤겔은 이를 초기 서사시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 초기란 개념이 모호한데, 초기에 이미 서사시적 형식이 등장한 것이라 본다면, 이것도 서사시가 된다. 그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데, 여기서 초기란 서사시로 발전하는 과정 중에 나타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거론한 것들은 아직 시적인 것과 산문적인 것으로 구분하기 이전에 등장한 시적인 것이니, 비록 서사시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서사시 자체는 아니다. 우리로서는 헤겔이 실제의 서사시라고 말한 것으로부터 서사시 장르의 특징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2] 미학강의 3권, 332쪽

[3] 미학강의 3권, 333쪽

[4] 미학강의 3권, 338쪽

[5] 미학강의 3권, 324쪽

[6] 미학강의 3권, 338쪽

[7] 헤겔이 서사시를 그리스에만 한정했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헤겔이 그리스 서사시를 최고로 본격적인 서사시로 규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시대 이전이나 이후에 서사시가 없었던 것도 아니며, 헤겔이 이를 무시했던 것도 아니다.

[8] 미학강의 3권, 334쪽

[9] 미학강의 3권, 342쪽

[10] 미학강의 3권, 364쪽

[11] 미학강의 3권, 343쪽


⇓ 다음 연재글 바로가기 ⇓

헤겔미학산책50-시문학의 장르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50-시문학의 장르

 

1)

문학의 장르 문제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이다. 우선 문학이 포에지를 넘어 가사[가요]나 산문[에세이,웅변 등]까지 포함하기 때문인데, 헤겔처럼 문학을 시문학으로 축소해서 본다 하더라도, 그 장르를 구분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요즈음 새로운 장르가 출현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내려오던 전통적 구분 즉 서사시, 서정시, 극시라는 구분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대 시문학의 대표적 장르인 소설은 어디에 집어넣어야 될까? 보통 소설은 보통 근대적 서사시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그게 적절한 분류가 될까?

필자는 문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현재 문학 장르 구분에 관한 논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다행히 필자가 어릴 때 읽었던 ‘문학이란 무엇인가(김현 편집)’에 장르 구분에 관한 논의가 실려 있으니 참조해 보자. 그 논의는 Woffgang Kaiser의 장르의 구조라는 논문인데, 그는 이 세 가지 장르를 전통적으로는 표현형식에 따라서 구분했다고 말한다. 그는 서사 문학(서사시와 소설을 포함)은 서술하는 형식이며, 서정시는 표출하는 형식이며, 연극은 연기[재연]하는 형식이라 한다.

표현형식에 따른 구분을 결국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는가(언표내적 사용: illocutionary)에 따른 구분인데, 카이저는 H. Junker의 구분을 따라서 언어를 묘사하는 기능(서사문학), 표현적 기능(서정시), 그리고 요구하거나 유발하는 기능(연극)으로 구분했는데, 그 차이는 연극을 연기라는 표현형식에서, 언어적 요구나 유발하는 기능으로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 [1]

융커는 언어의 세 기능은 명확하게 나누어진다기보다는 혼재하며 예를 들어 ‘불이야!’라는 말은 묘사하고 표현하고, 유발하는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그 중 언어의 어느 기능이 주로 사용되었는가 하는 상대적인 문제에 그친다는 것이다.[2]

 

2)

헤겔이 장르를 구분하는 원칙은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 원칙에 비교해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헤겔의 분류 원칙은 스스로 명확하게 제시한 적은 없다. 그는 시문학의 세 종류를 구체적으로 서술해 나가는 가운데, 그 원리를 설명했는데, 대체로 본다면 앞에서 설명한 표현형식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헤겔은 서사시에서 “외적 실제성의 형식 속에서” “총체성을 내적 관념 앞에 제시하며” “이를 통해 대상적 사태 자체를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시인은 뒤로 물러서며 사태가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표현된다.”[4]

 

서사시에 대한 헤겔의 설명은 서사시에서 화자가 사건을 객관적으로 묘사 즉 ‘가시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니, 전통적 개념과 차이가 없다. 물론 서사시에서 이런 묘사는 산문처럼 객관적 사건을 그저 끌어 모으는 것은 아니며 그런 객관적 사건 속에서 감추어진 채 전개되는 총체적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 그러므로 서사시의 태도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사실 속에서 총체적 의미를 형성하려는 구성적 묘사가 될 것이다.

그런데 헤겔의 설명에서 주목되는 것은 헤겔이 단순히 표현형식 또는 언어 사용의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화자의 측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사시의 화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서사시의 화자는 “뒤에 물러선 존재”라 하는데 즉 자신을 이미 시대 정신의 위치에 둔 화자이다.

그는 전지전능하게 모든 주인공의 주관을 넘나드는 전지적 화자이지만, 이 전지적 화자는 철학적 일반 주체가 아니라, 그 시대 정신에 제약된 주체이다. 서사시의 화자는 시대 정신의 눈으로 보고, 시대정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묘사한다. 작가는 이런 시대정신의 서술을 대행하는 통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이 이처럼 시대정신을 대행하는 경우 여기서 한 시대 사회가 정점에 이르러 개인은 그 시대 사회와 합일하고 있을 때이다. 그러므로 서사시는 시대 정신이 정점에 이른 경우에 비로소 출현한다.

 

3)

서사시에 대한 설명에서 헤겔이 언어의 표현 형식에서 화자의 측면에 주목했듯이 서정시나 극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화자의 측면이 주목된다.

서정시는 언어의 표현형식을 본다면, 자아가 자신을 표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관점과 동일하지만, 헤겔은 여기서 서정시의 자아가 개인적 자아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개인적 자아가 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서정적 자아는 단순히 개인적 자아가 아니다. 헤겔은 서정적 자아가 더 이상 행동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감정은 행동으로 나간다면 소멸된다. 감정은 행동으로 나가지 못하고 응축되면서 비로서 시적인 감정으로 된다. 그러므로 서정적 자아는 “심정이 행위로 발전하는 대신 오히려 내면으로서 자신 곁에 머무르며, 그리하여 또한 주관의 자기 언표를 유일한 형식이자 마지막 목표로 취해야 한다.”[5]

서정시인이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개인이 그 시대 사회에서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대에서 사회와 개인은 균열한다. 어느 시대나 균열된 자아가 존재한다.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사회적 힘이 지배하고 있을 때, 또는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이미 내적으로 출현한 새로운 시대, 한마디로 이행기에 서정적 자아가 출현하며, 이 이행기 시대가 곧 서정시의 시대이다.

 

4)

서사시와 서정시의 구분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연극의 경우, 이미 앞에서 얘기했듯이 전통적으로는 서사시적 서술[digesis]이 아닌 직접적 재연[mimesis]이 강조되었다. 반면 카이저는 연극을 언어의 호소 및 유발기능에 두었는데, 이 경우 화자는 항상 익명의 일반적 타자가 아닌 바로 앞에 존재하는 너를 두고 대화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것이니, 사실 재연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헤겔은 극시라는 이름으로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통일을 말한다. 즉 서사시가 객관적인 것(사실의 서술)이라면 서정시는 주관적인 것(자아의 표출)인데, 극시는 양자의 통일이라는 것이다. 즉 극시는 “객관적인 것을 주관에 속하는 것으로 묘사되며”, “주관적인 것은 때로는 실제적 표출로의 이행 속에서” “때로는 열정이 행동의 필연적 결과로서 초래하는 운명 속에서 가시화”된다.[6]

즉 극시는 등장 인물의 행위가 중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사건은 객관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극 중의 행위를 통해 출현하며, 그 행위는 운명적 사건에 이른다. 이 운명적 사건은 외적으로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내부에서 자기도 모르는 채로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행위자는 자기 모순 속에 있으니 한편으로 그는 하나의 행위를 대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기의 운명을 초래한다.

행위자, 극중 인물의 자기 모순은 고대에서는 사회적 실체 자체의 분열에 원인을 두고 있지만 근대에서는 주관성의 자기 내 복귀라는 원리에 의해 불가피하다. 어느 편이든 행위자의 행위를 통해 극시가 전개된다는 측면에서, 앞에서 말했듯이 연극이 재연을 통해 일어난다는 전통적 규정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연극의 질료는 ‘살아 있는 인간’, 그의 언표와 그의 몸짓이라 한다.

그러나 헤겔은 극시에서도 화자의 독특성에 주목한다. 극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물은 행위를 하는 가운데 자기 속에 감추어진 이면을 알지 못한다. 인물은 따라서 자신의 표면적인 측면만을 대변한다. 그러나 극시를 구성하는 작가는 이런 인물의 관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는 이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 내면의 충동을 다른 인물의 행동을 통해 표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인물의 주관성을 넘어서는 일반적 화자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일반적 화자는 서사시처럼 사건의 전체를 서술해나가는 화자는 아니다. 이 일반적 화자는 또 다른 극중 인물의 모습으로 등장할 뿐이니, 일반적 화자는 극시 가운데 은폐되며 전체를 구성하는 원리로서만 암시될 뿐이다. 여기서 일반적 화자는 자신을 이원화하면서 두 인물의 화자로 분열하는 가운데 존재한다. 이런 분열 때문에 극시에서 등장인물은 각기 자체 내에서 자기 분열 속에 있다.

 

“왜냐하면 드라마에서는 인간의 내면의 성격이 한편으로는 서정시에서처럼 그 자신의 것으로 언표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 현존재 속에서 자신을 타자에 대립하는 전체적 주관으로서 효과적으로 알리기 때문이다.”[7]

 

그러므로 극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는 분열된 화자로 내적으로는 통일되어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분열된 두 대립된 인물로 등장한다. 감추어진 화자라는 측면에서 그것은 서사시적인 시대정신적 화자이며, 인물의 행위를 통해 표출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서정시적인 화자이다. 그러나 극시의 화자는 그 어느 것도 아니며, 다만 나와 너라는 두 대립된 인물 화자 속에 분열되어 나타난다.

화자의 분열은 두 개의 대립된 실체, 두 개의 대립된 성격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에 가능하다. 이런 시대가 그리스에서 혈연과 국가가 공존하는 시대이며, 낭만주의 시대 보이지 않는 시장이 지배하면서 개인이 주관성과 객관성 속으로 분열하던 시대이다.

 

5)

헤겔은 이상 시문학의 구분을 또 다른 측면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이미 헤겔은 예술의 형식을 질료에도 적용하여 예술 장르를 구분하는 원칙으로 삼았는데, 이 원리는 그 가운데 하나의 원리인 시문학에 다시금 적용된다. 여기서 조형 예술과 음악, 그리고 문학의 장르적 특성이 시문학 내부에서 서사시, 서정시, 극시의 관계로 반복된다.

우선 서사시에서 정신은 외적 사건을 통해 출현한다. 시인은 이런 사건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이를 서사적 화법을 통해 표현한다. 정신이 외적으로 가시화하여 표현되지만 그 외면 속에 감추어진다는 점에서 서사시는 조형예술을 닮았다. 다만 조형예술이 공간적 형태를 통해 표현하는 것과 달리 서사시는 이를 시간적 표상을 통해 표현할 뿐이다.

서정시는 개인적 자아가 출현하는 시대에 출현한다. 개인적 자아는 외적인 사건에 부딪혀 행동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자신을 직접적으로 언어로 표출하니, 이런 주체의 자기 언표가 곧 서정시이다. 이런 서정시는 자기 언표라는 점에서 정신을 내적인 소리로 표현하는 음악의 원리와 같다. 다만 음이 무규정적인 소리인 반면 서정시는 구체적인 표상을 통해 정신을 표현한다.

극시의 경우, 개인적 내면이 비록 언어가 아니라 행동으로 표출되지만 직접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극시는 서정시적 요소를 지닌다. 또한 세계의 필연성이 외적 사건으로 출현한다는 점에서 극시는 서사시적 요소조차 지닌다. 다만 극시에서 필연성은 서사시에서처럼 감추어져 있지 않으며 자신을 대립하는 행동으로 직접 출현시킨다. 그러므로 헤겔은 극시를 서사시와 서정시의 통일이라고 한다.


[1] 연극을 언어적 요구나 유발하는 기능으로 규정하는 것은 연극이 단순히 언어가 아니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이때 연극적 행위 자체도 요구하고 유발하는 것이니, 연극적 언어의 한 종류로 볼 수 있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2] 문학의 구분 원리로 운율을 든다면 운율이 없는 소설이나 시는 산문에 속하게 된다. 헤겔이 말하듯이 시문학에 나름대로 운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시문학 장르를 구분하는 핵심 원리는 아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참고로 헤겔은 서사시는 “고요히 굽이치는 파동을 갖는 6보격”이 적당하며, “급격하게 진행하는 단장격”은 극시에 적당하며, “오보격 또는 균제적으로 고정된 휴지와 결합하는 육보격”은 서정적인 만가의 표현에 적당하다고 말한다.

[3] 헤겔은 시문학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그 세 가지란 곧 서사시, 서정시, 극시이다. 헤겔은 이런 구분에 정확하게 들어가지 않는 다른 장르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헤겔은 서사시의 근본 규정을 검토한 다음 마지막으로 그리스 로마의 전원시, 교훈시, 기사담[Romanz]과 담시[Ballade] 등을 거론하며 마지막으로는 근대적 서사시로서 소설[Roman]을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헤겔은 시의 이런 장르는 방계의 장르로 간주하며, 시문학의 개념에 따르자면, 이상 세 가지 장르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4] 미학강의 3권, 323-324쪽

[5] 미학강의 3권, 324쪽

[6] 미학강의 3권, 325쪽

[7] 미학강의 3권, 326쪽


⇓ 다음 연재글 바로가기 ⇓

헤겔미학산책49-작가와 독자의 공동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49-작가와 독자의 공동체

 

1) 절대정신

지금까지 서술의 필요성 때문에 예술의 목적과 관련된 작가 독자 관계에 대한 서술은 생략하였다. 하지만 예술 장르에 대한 대체적인 소개가 끝난 이즈음에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시문학에서 작가 독자 관계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독특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논의는 거슬러 올라가 예술의 목적에서부터 시작하자.

헤겔에서 예술은 정신 또는 이념의 표현이다. 이때 정신이란 한 역사적 사회를 형성하는 공동의 목적과 공동의 의지를 의미한다. 헤겔은 이런 정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절대정신이라 한다. 이 절대정신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즉 종교와 예술, 철학이다. 종교적으로는 신으로 환상적 방식으로 출현하며, 철학적으로는 사유의 체계를 통해 전개된다. 예술적으로 정신 감각적 기호를 통해 표현된다.

그렇다면 절대정신 즉 정신을 표현하려는 활동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시대의 정신은 이미 내적으로 출현하고 있으나 이것은 구체적으로 자각되지 않은 상태이다. 절대정신은 그 시대 정신을 자각하고 이를 표현하며 이를 통해 대중적으로 일반화하는 것이다. 절대정신은 대중의 주관적 내면을 변화시키는 실천적 힘을 지니며, 이를 통해 집단의 공동 의지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정신에 적합한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실천적 목표를 지닌다.

절대정신이 실천적 힘이며, 또한 실천적 목표를 갖는 것이기에 절대정신은 불가피하게 그 시대 사회정치적 투쟁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절대정신 자체가 직접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 것은 아니다. 직접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치적 투쟁이다. 절대정신은 다만 주관적 내면을 변화시키며, 이를 통해 새로운 사회 형성에 기여하려 한다.

 

2) 예술의 목적

종교나 예술, 철학은 각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그 가운데 특히 예술은 감각적 직관의 방식으로 이런 역할을 수행하니, 다른 절대정신에 비추어 장단점을 지닌다.

종교는 환상 속에서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을 지닌다. 이런 능력을 지닌 자는 극히 소수이며 대중은 이 소수의 외적 환상에 수동적으로 종속한다. 철학은 논리적 사유를 통해 전개하니 대중이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것이지만 합리적 사유가 전개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술은 시대의 정신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감각적 직관의 방식을 통해 자각하니, 시대정신을 철학보다 명확하게 자각한다는 데 예술가의 탁월성이 놓여 있다. 또한 예술은 감각적 직관을 사용하기에 대중적 영향력에서 종교적 수동성과 철학적 자발성의 중간에 머무른다.

헤겔에서 예술의 목적은 오락이나 장식이나 유희가 아니며 학문처럼 인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관계된 정신을 표현하여 주관적 내면 자체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힘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의 미학은 20세기 초 중반에 등장한 아방가르드 미학의 입장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20세기 초 중반 아방가르드 모더니스트들은 미래의 새로운 사회의 이념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예술에 맡겨진 과제라 보았다. 이들은 합리적 인식을 거부하면서 직관적으로 그 이념에 도달하려 하였다. 이들 아방가르드들은 나아가서 예술은 주관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실천적 힘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고 보면서 예술이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예술적 기법을 실험하였다.

 

3) 예술가의 천재성

시대정신과 예술가 사이의 관계에서 예술가의 천재성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헤겔은 예술가의 재능과 천재성을 구분한다. 전자는 예술의 질료를 다루는 솜씨를 말한다. 이런 솜씨는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오랜 훈련을 통해 습득된다.

반면 후자는 감각적인 방식으로 시대의 일반적 정신에 도달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예술가는 여기서 시대의 정신을 먼저 파악한 다음 그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수단 자체를 통해 시대의 정신을 파악하는 것이니, 정신의 인식과 감각적 표현은 서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감각적 방식으로 정신을 인식하는 능력에서 예술가는 다른 사람보다 더 탁월하며 이런 탁월성은 단순히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 이상이니, 이 능력은 상당한 정도 자연적으로 타고난다고 하겠다. 그 때문에 헤겔은 이런 예술가의 능력을 천재성이라고 하였다.

헤겔에서 예술적 천재는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존재는 아니다. 헤겔에서 예술가의 탁월성은 이미 내재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예민하게 파악하는 데 있다. 새로운 시대 정신이 내적으로 성숙되지 않는 한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자기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 정신을 깨달을 수 없으니, 예술적 천재성 역시 시대 정신의 역사적 발전에 제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천재의 영감은 재능에 속하는 감각의 훈련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인식에 속하는 생산 의도를 통해 환기되는 것도 아니다. 천재의 영감은 오직 정신적 내용에서 출현한다. 그러므로 영감은 외적인 동기(주문 등)에 의해서도 개인적인 감동을 통해서도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는 소재 자체 속으로 침잠해야 한다.

 

“참된 영감은 판타지가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붙들고 있는 어떤 특정한 내용에서 점화된다” [1]

“그는 역으로 자신의 주관적 특수성과 그 우연적 특칭성을 망각할 줄 알아야 하고 또한 자기의 편에서 소재 속으로 침잠해야만 한다.”[2]

 

이처럼 천재의 영감이 시대 정신 자체 속에 성숙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시대정신이 오히려 진정한 주관이고 내용이며, 천재는 시대정신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나 형식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주관으로서 그는 말하자면 그를 사로잡은 내용의 구성을 위한 형식으로 존재할 뿐이다.“[3]

 

4) 독자와의 관계

예술이 시대정신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오직 작가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 작품이 제작되는 경우는 없다. 예술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정치적 선동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예술은 자주 이런 목적성을 기피한다.

자주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순수한 고독 속에서 오직 미적인 창조의 산물로 간주되기도 한다. 시대로부터 외면당한 저주받은 작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파괴하는 작가라는 이미지가 흔히 돌아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헤겔의 관점에서 예술은 절대정신의 표현인 만큼, 예술은 항상 그것이 전달되는 대상(사용자, 관람자, 청중, 독자, 관객 등)을 향하여 작품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예술은 다른 사회관계와 구별되는 독특한 작가-독자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작가-독자 관계는 예술 장르마다 독특하다. 헤겔은 각 장르를 설명할 때마다 부분씩 이 관계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것을 이제 종합해서 설명하여 보자.

헤겔은 조각과 건축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건축의 경우 자신의 목적을 외부에 지닌다고 한다. 즉 건축적으로 구축되는 공간은 삶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신전이며 왕궁이며 주택이다. 여기서 사용자는 건축 자체에 대해 외면적이다.

반면 조각은 정신의 현상적 형태이니, 그것은 “그 스스로 존재한다[ihrer selber wegen da][4].” 조각 작품은 작가의 주관성 넘어 있는 것이며, 조각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주관성과도 무관한 것이다. 작품 자체에 어떤 주관성도 배제되어 있다. 그것은 정신의 현존 형태일 뿐이다. 그것은 숭배의 대상이다.

낭만적 예술에 이르면 작가와 독자는 특수한 주관성으로서 서로 관계를 맺는다. 낭만적 예술 자체가 주관성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작품 속에 주관성이 새겨져 있다.

 

“조각상은 대개 그 자체로 독자적이어서 감상자가 어디에 서고자 하는가를 걱정하지 않는다. … 감상자는 작품에 대해 무차별적이다. …그 내용이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자신에게서 기인하고 완결되었으며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회화의 이미 내용을 이루는 것은 주관성 그것도 동시에 내적으로 특칭화된 내면성이다…. 까닭인즉 회화는 주관적인 것을 묘사하는 작품으로서 이제 본질적으로 오로지 주관을 위해 감상자를 위해 현존할 뿐, 그 자체로서는 현존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그 전체 표현방식에서도 역시 보여주기 때문이다.”[5]

 

물론 여기서 표현되는 주관성은 자립적인 주관성이 아니며, 자기 내로 복귀하는[in sich zuruekehren] 따라서 내밀한[innig] 주관성이다. 작가도 작품을 통해 자기 내로 복귀하며 독자 역시 작품을 통해 자기 내로 복귀하니, 이런 내면의 실천적 변화가 작품을 통해 매개된다.

 

5)

회화에서 시작된 작가와 독자의 관계 즉 한편으로 특수한 주관성의 만남이며 다른 한편으로 작품을 통해 서로 자기를 지양하는 관계는 음악이나 시문학을 통해 더욱 발전하게 된다.

회화의 경우 색채의 마법을 통해 작가의 주관적 감정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정신적 내용에 관한 한 작가의 주관성은 대상에 대한 주관의 위치, 시점에 제한된다. 또한 공간적 평면에 현존하는 작가로부터 분리되어 공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작가로서는 알지 못하는 독자를 만나게 된다. 작품은 특정한 장소에 걸리게 되면서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외적 환경에 의존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6].

반면 음악의 경우 소리는 작가와 독자의 시간적 주관성과 심정의 차원에서만 존재한다. 음악은 간접적으로는 정신적 내용이 표현되지만 그것은 모호할 뿐이며, 직접적으로는 작가의 감정이 표현될 뿐이다. 여기서 작가와 청중의 관계는 긴밀하다. 음은 “감각적 현존재를 가지지만” “직접적 순간적으로 소멸한다”[7]. 즉 작가(또는 연주자)가 연주하는 가운데서 존재하므로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아주 긴밀한 관계를 지니게 된다. 동일한 작가가 작품에 부여하는 의미는 연주하는 순간에 다르게 출현한다.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일시적이고 부유할 뿐이다.

같은 낭만주의 장르더라도 시문학의 경우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매우 독특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회화나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작가의 주관성은 관점이나 감정에 제한되니 매우 제한적일 뿐이다. 그러나 시문학의 경우 작품의 모든 내용에 작가의 주관성이 낙인 찍혀 있으며 그 내용은 감정에서 사유에 이르기까지 시간적으로 과거에서 미래에 걸친 다양성을 담고 있다.

 

“언어는 의식의 높은 곳, 깊은 곳을 두루 섭렴하여 내면에 현재하는 일체의 것을 포착하고 알릴 수 있는 최고의 지성적 정신적 전달수단이기 때문이다.”[8]

 

그런 가운데 작가와 독자가 만나게 되므로, 독자는 작가의 주관성에 아주 긴밀하게 그리고 매우 포괄적으로 동화된다. 회화의 외적 관계, 음악의 일시적 관계를 넘어선 장기적이고도 두터운 관계가 여기서 형성된다. 그 때문에 회화나 음악에서 애호가는 있어도 공동체는 없지만 문학에서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일정한 공동체가 형성된다.

음악이나 회화의 경우 작가는 일방적으로 전달하며 독자는 다만 그것을 선호하거나 거부하는 방식으로만 관계하게 된다. 그러나 시문학의 경우 작가의 작품에 대해 독자는 동일한 언어를 통해 반응(비평이나 감상 등)할 수 있으니, 작가 역시 거꾸로 독자로부터 영향을 받는 상호적 관계가 수립된다. 여기서 독특한 상호작용적인 문학 공동체가 세워지게 된다.

물론 문학적 공동체의 한계도 있다. 회화와 음악은 단순한 직관적 능력만 있으면 그 속에 표현된 정신이 전달될 수 있다. 이런 직관 능력은 민족의 차이에 대해 상당히 독립적인 인간의 일반적 특성이다. 회화나 음악은 범인류적, 세계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시문학의 경우 언어는 고유한 민족성을 지니게 된다. 타민족의 경우 언어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장애를 지니게 되고 번역이 가능하기는 하더라도 일정한 한계를 지니므로 시문학의 독자는 민족적으로 제한된다.

 

6)

헤겔이 밝힌 것처럼, 시문학에서 작가와 독자의 독특한 관계 때문에 시문학에서는 자주 작가와 독자의 공동체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사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와 독자의 공동체일 것이다.

카페가 아닌 곳에 있는 사르트르를 생각할 수 있을까? 1966년 모습

사르트르에 따르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을 대상화한 것이다. 사르트르에게서 작품과 그 대상[주제, 내용]의 관계는 지향성의 관계에 있다. 즉 작품의 대상은 지향작용에 내재하면서도 초월하는 의미[sense: 의의]이며, 작품은 지향작용 내에서 의미를 지향하는 단편[signification: 의미]이다. 작가는 언제나 의미의 단편에 머무르며, 끝내 초월적 의미에 도달하지 못하며 작품 속에서 이 의미는 침묵, 말하지 못한 것으로 남는다.

이 의미가 마침내 실제하는 것으로 출현하는 것은 독자의 참여를 통해서이다. 독자는 작가가 제시한 단편을 징검다리 삼아 좇아가는 가운데 어느 순간 작가가 상정한 의미에 도달한다. 이 과정은 현상학에서 의미를 인식하는 변용[variation]의 작업에 속할 것이다.

독자가 발견한 의미는 정말로 작가가 작품 속에 추구했던 의미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독자가 나름대로 해석한 의미가 될 것이니, 독자가 작품을 읽는 것은 단순한 수동적인 인식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제시한 징검다리를 독자 자신이 해석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이다. 독자는 작품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작품을 존재하게 하니, 작품을 최종적으로 창조하는 이는 다름 아닌 독자이다.

사르트르는 이 관계가 수동적이면서 동시에 능동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독자 자신의 자유로운 창조적 작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자유로운 창조는 어디까지나 작가가 제시한 징검다리를 따라 수동적으로 건너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니, 동시에 수동적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 과정을 마치 ‘자유로운 꿈’ 또는 “결연히 수동적 입장에 서려는 자유”라고 말한다.

 

“읽기란 자유로운 꿈이다. 나는 어느 때나 꿈에서 깨어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읽기란 자유로운 꿈이기 때문이다.”[9]

 

독자는 이렇게 자신이 창조한 의미를 자신이 창조한 것이라 보지 않는다. 독자는 이런 의미를 작가가 이미 숨겨놓은 의미라고 믿는다. 독자에게 작가는 신 자체이며,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이런 상정에 따라서 거꾸로 작가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우리들 독자는 우리의 자유를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타인인 작가의 자유를 인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작가가 우리에게 요구하면 할수록 우리도 더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다.”[10]

 

독자는 작가가 진정한 의미를 숨겨놓았다고 본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더 이상의 많은 요구를 하지만, 독자의 이런 요구는 바로 작가가 작품 속에서 징검다리를 놓아줌으로써 독자에게 바라는 것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자유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며, 독자는 작가의 자유를 인정하는데, 그것은 작가가 명령하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가 그런 것을 과제로서 제시했기 때문이다. 독자는 전적으로 자유롭게 작가의 자유를 인정하고 작가를 숨겨놓은 의미의 진정한 창조자로서 인정한다.

바로 이 관계가 사르트르가 말하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이며, 이 관계를 통해 작가도 자유로운 존재에 이르고 독자 역시 자유로운 존재에 이르는 관계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자유를 고매하게 증여하며, 독자는 작가에게 마찬가지로 고매하게 주체가 되게 한다. 사르트르는 이런 관계를 곧 ‘고매성의 협약’이라 이름 붙인다.

작품에 숨겨놓은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은 작가나 독자가 주어진 세계를 넘어서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이데거 식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존재자를 넘어 존재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작업이다. 작가와 독자는 작품을 통해 이런 존재 전체를 다시 인간에게 귀속시키니, 바로 이것이 작품의 진정한 목적이다. 작품은 자유의 세계를 만인에게 호소한다. 작가와 독자는 작품을 통해 만인이 존재자의 세계를 넘어가기를 호소한다.

 

“작가가 남들의 자유에 호소하기를 선택한 것은 양자 간의 요구의 연계를 통해서 그들이 존재의 전체를 인간에게 다시 귀속시키고 인간의 수중에 세계를 사로잡기 이해서이다.”[11]

 

헤겔이 미학강의에서 작가와 독자 사이의 상호작용적 관계에 주목했는데 사르트르는 현상학적인 의미론을 통해서 이 관계를 작가와 독자가 구축하는 자유의 공동체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1] 미학강의 1권, 389쪽

[2] 미학강의 1권, 390쪽

[3] 미학강의 1권, 390쪽

[4] 미학가의 2권, 380쪽

[5] 미학강의 3권, 32쪽

[6]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원래 계획된 성당에서 시청으로 이전되면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을 생각해 보라. 즉 작품은 작가에 의해 부여된 의미 이상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7] 미학강의 3권, 160쪽

[8] 미학강의 3권, 276쪽 그러므로 헤겔은 시문학은 노년의 깊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한다. 말년의 괴테가 대표적이다.

[9]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명환 역, 민음사, 1998, 73쪽

[10]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75쪽

[11]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82쪽


⇓ 다음 연재 글 바로가기 ⇓

헤겔미학산책48-시문학의 삼각형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48-시문학의 삼각형

 

1)

앞에서 다양한 예술 장르를 살펴보았는데, 각 장르를 규정하는 매체는 어느 경우에나 이중적이었다. 건축은 공간적 덩어리를 통해 정신을 표현하지만, 이 공간적 덩어리는 물질적 형상을 지니므로, 건축의 외적 형태도 정신을 표현하는 데서 간접적인 역할을 갖는다.

조각은 물질적 형상을 통해 정신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형상은 공간적 덩어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 조각에서 공간적 덩어리는 물질적 형상의 이면이 된다.

회화에서 질료는 색채이다. 그러나 이 색채는 빛이 공간적 평면에 반사해서 출현하는 것이므로, 회화는 공간적 평면을 떠날 수 없다. 색채는 이 공간적 평면 위에서 정신을 표현한다.

음악의 질료는 소리이지만 이 소리가 주관의 시간적 평면에서 종합되지 않는 한, 대립하거나 조화할 수 없다. 음악은 이 시간적 평면이 실천적 감정의 차원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예술 장르에서 그 본질을 규정하는 질료는 각자 고유한 토대를 지니니, 엄밀하게 말하면 예술은 정신과 질료, 그리고 그 토대라는 삼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 점은 시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문학의 질료인 관념은 언어적 기호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관념과 언어적 기호의 연관이라는 어려운 언어철학적 문제가 제기된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 논의는 생략하자.[1] 헤겔의 경우 기호와 그것의 의미인 관념 사이의 관계는 우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기호와 그 관념 사이에는 비본질적인 관계가 없을 수 없다. 특히 기호가 소리로 이루어질 때, 소리가 지니는 다양한 리듬은 기호가 표현하는 관념과 무관할 수 없다. 어떻든 정신과 관념, 그리고 기호는 시문학의 세 가지 요소이다. 이를 우리는 시문학의 삼각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

먼저 정신과 관념 사이의 관계를 보자. 시문학은 추상적인 정신을 구체적 감각적 관념을 통해 표현한다. 그러므로 시문학에서는 많은 비유법이 사용된다.

이 비유법에 관해서는 헤겔이 상징적 예술 형식을 다룰 때 상징적 예술의 마지막 형식으로 상세하게 설명했다. 우리로서는 문학적 기술[技術]에 속하는 비유법을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시적 표현의 특징으로서 비유법이 지니는 의미만 설명하자.

앞에서 설명했듯이 시문학이 정신을 표현하는 비유는 자립적이고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은밀하게 정신을 표현할 뿐, 직접적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나 독자는 이 감각적 비유 자체에 머무르면서 그것을 음미하고 향유한다.

산문적 표현은 사태를 정확하고[Richterlichkeit] 규정적[Bestimmtheit]이며 이해 가능하게[Verstaend lichkeit]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니 이런 산문적 표현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문학에서 등장하는 비유는 불필요한 우회 또는 과잉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시문학은 비유를 벗어 던질 수 없으니, 시문학에서 비유의 목적은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려는 것도 아니고(그렇다면 그것은 시문학이 아니라 설득술이다), 화려하게 수식하기 위해서도 아니다(그렇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닌 장식술에 속할 것이다).

헤겔은 시문학이 비유를 사용하는 이유는 시문학이 예술인 한, 구체적 감각적인 것을 통해 정신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표현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면 비유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즉 정신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만을 비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3)

이런 적절성은 그 시대 정신의 특징에 따라 변화하므로 사용되는 비유법도 시대성을 지닌다. 헤겔은 예를 들어 동양의 시문학에서 이미지가 화려하고 풍부한 직유법이 사용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동양의 정신이 추상적인 정신에 머무르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상징적 이미지는 자립적인 것이니 직유를 통해 정신과 외적으로 연관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감각적 상징은 아무리 표현해도 추상적 정신에 비추어서는 부족하니 무한히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상징의 시대에 모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물은 그 속에 정신이 현현하고 있으니 추상적 정신을 표현하는 상징은 도처에서 발견되고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다.

 

“동방의 시는 특히 이러한 이미지와 비유로 화려하게 가득 차 있는데, 까닭인즉 그 상징적 입장이 한편으로는 가까운 관계의 것을 필히 섭렵하여 의미의 보편성에 광범위한 구체적 유사 현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직관의 숭고성 탓으로 의식이 찬양할 유일한 것으로 있는 일자의 장식에만 매우 다채롭고 다양한 찬란하기 그지 없는 것이 사용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2]

 

또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게 되면, 은유가 비유법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정신의 무한한 주관성으로 회귀하므로, 정신을 표현하는 개별적 비유는 자립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지양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는 헤겔이 은유를 자기 부정적인 가상으로 파악한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낭만주의 시대 은유의 세계에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이런 자기 부정성을 통해 서로 만난다는 사실이 시문학에 기지에 넘치는 생동적 활력을 불어넣는다.

 

“자신을 즐겨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낭만적 판타지는 이와 반대이니, 까닭인즉 여기서는 외물이 자신 안으로 물러간 주관성에 대해 하나의 부수물로 간주될 뿐 그에 적합한 현실성 자체로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 멀리 떨어진 이 현상들의 은유적 사용은 자체가 목적이 된다. 감응은 중심점이 되고 그 풍부한 환경을 빛나게 하며, 그것을 자신에게 끌어들여 재기 넘치게 자신의 장식으로 사용하고 그것에 생명을 부여한다.”[3]

 

각 시대 마다 고유한 비유법이 있다는 헤겔의 주장은 후일 벤야민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벤야민은 박사 학위 논문에서 바로크 시대 비애극을 분석해 그 비애극의 기본 원리가 알레고리적 형식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이런 알레고리적 형식을 다시 바로크 시대의 이행기적 성격에서 찾았다. 이런 알레고리적 형식은 비단 예술에서만 출현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정신의 일반적 구조 속에 들어 있으니 벤야민은 그 시대 출현한 개신교의 특징 속에서도 그런 알레고리적 성격을 발견한다.

벤야민의 분석이 옳은가는 제쳐놓더라도 벤야민의 문제의식이 헤겔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헤겔 역시 직유와 은유를 역사적 시대와 연결시켰으니 말이다.

 

4)

이번에는 기호와 관념 사이의 관계를 보자. 이는 포에지의 측면이 아니라 시인적인 측면이다. 헤겔은 정신을 관념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시적인 제작[Poetisch]으로 규정한다면, 이를 전달하기 위해 기호적 요소를 형성하는 것은 시인적인 것[dichterish]이라고 해서 구별한다.

시문학의 질료는 관념이고 언어는 전달을 위한 기호에 불과하다. 헤겔은 시문학에서 핵심은 포에지에 있으므로, 시문학은 굳이 낭독할 필요가 없으며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전달되는 데 충분하다. 그것은 음악이 연주되지 않고 악보상으로 존재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정 반대가 된다. 악보를 읽으면서 즐기는 사람이 있을까?

시문학에서 부차적 요소에 불과한 기호를 시인은 전혀 무시할 수 없다. 기호적 요소는 간접적으로는 그 의미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기호인 소리와 그 의미인 관념 사이의 연관은 음악에서 음과 가사의 관계와 정반대가 된다.

음악에서 음의 전개는 그 자체로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 음악이 표현하려는 정신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관계를 가질 뿐이며, 그 때문에 정신을 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가사를 필요로 한다. 가사는 음악적 표현의 한계 내에 머물러야 하므로, 가능한 한 단순해 진다. 위대한 음악에서 사용된 가사는 의외로 단순하다.

반면 시문학에서 오히려 관념이 그것을 표현하는 기호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의미를 강조할 경우, 그 의미와 연관된 기호를 강하게 발음한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에서 어느 말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렇다고 기호적 요소가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소리라는 기호적 요소는 그 음악적 특성 때문에 감정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감정적 분위기는 시문학이 관념을 통해 표현하려는 정신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관계에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데 주요하게 기여한다. 그것은 마치 영화 음악이 영화적 내용을 전개하는 데 기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기호의 형식적 측면을 포기하자는 주장에 반대한다. 오히려 위대한 시인 이런 외적 형식을 매개로 내적인 정신을 표현할 수 있고 이런 외적 형식이 내적 정신의 표현을 더욱 촉발한다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헤겔은 레싱의 시도를 소개한다. 레싱은 운문적인 프랑스 희극에 반대하여, 산문적 어법을 도입하려 했다. 괴테와 실러도 처음에는 레싱의 주장에 동조하였으나, 나중에 모두 이런 시도를 포기했다고 한다. 레싱은 <현자 나탄>에서, 단장격으로 복귀했으며, 실러도 <돈 카를로스>에서 운율을 회복했고 그것은 괴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5)

헤겔은 시문학에서 기호적 요소가 지닌 특징을 상세하게 파악하는데, 이 자리에서는 그런 논의는 불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의 논의 가운데 핵심이 되는 것은 운율과 압운에 있다[4]는 점만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헤겔은 고대어는 운율이 중심이 되었으나 낭만주의 이후 압운이 중심이 된다고 한다. 운율은 음소의 장단과 강약 등 자연적인 발화에 기초한다. 자연어는 접두사나 접미사, 그 밖의 음운변화를 통해 운율을 발달시키는데, 고대의 시문학은 주로 이런 운율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격변화와 동사변화를 통해 어간이 여러 음향의 풍부한 음절로 발전되는데,… 그 수효와 확장을 통해 악센트가 즉각 어간음절로부터 실질적으로 분리되며, 이로써 주 의미와 강조의 악센트가 서로 분리되기 때문이다. … 이미 이를 통해 귀는 상이한 음절들의 음향을 듣게 되며, 또 그들의 운동[즉 운율]에 보조를 맞출 수 있다.”[5]

 

근대 게르만어에 이르면 시제 및 다양한 화법 조동사가 발달하여 음운변화를 대체하고 대명사가 분리되면서 동사변화, 격변화 등이 점차 소멸한 결과 압운법이 발달한다.

 

“이제 강조는 주 의미에 결속된 관계로, ..그 밖의 음절의 자연적 장단이 더 이상 부상하도록 두지 않고… 이러한 어근이…악센트를 거의 배타적으로 자신을 위해 요구한다면 이것은 의의와 의미를 철저히 우선시하는 악센트일뿐, 질료 즉 울림이 자유로울 법한 그리고 음절의 장단과 그 강세 두기가 어휘들의 관념 내용과 무관하게 주어질 법한 규정은 아니다.”[6]

 

압운은 동일한 음절이나 음소가 반복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압운적 요소는 자아가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은 게르만어에서 나타나는 압운을 해석하면서 이런 반복을 통해 자아가 드러나며 그 때문에 자아는 이런 반복 속에 만족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자아가 개입한다는 것은 자아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성숙은 낭만주의 이후에 이르러 완성되므로, 중세 이후 언어에서 시문학은 주로 이런 압운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이 점과 연관해 한국어의 경우 압운은 배제되어 왔고 전체적으로 운율이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압운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말 서태지의 가요가 등장하면서이다. 서태지는 랩을 한국어에 도입했는데, 그것은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이후 한국어에서 압운이 등장했다. 다만 여전히 시가 아닌 가요에서 한정된다. 이것도 헤겔처럼 1980년대 말 이후 한국사회에서 개인 자유가 확장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1] 관념은 기호와 무관한 것일까? 구조주의자에서는 기호 사이의 변별적 차이가 기호가 기호로서 사용되는 자격을 부여한다. 물론 그런 기호가 어떤 관념을 의미로 갖는가는 우연적이다. 반면 본질론적 언어학은 기호와 관념 사이의 본질적 연관성을 주장한다.

[2] 미학강의 3권, 282-283쪽

[3] 미학강의 3권, 283쪽

[4] 헤겔은 시문학에서 언어적 요소의 형식과 관련하여 다양한 요소를 제기한다. 그는 운율과 압운 외에도 표현법[Bezeichnung], 문채[Redefigur]와 문장 형성, 어투[Diktion]을 들고 있다. 이런 요소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관심 있는 사람은 헤겔의 미학강의 3건 287-291까지를 읽어보기 바란다. 이미 비유법에 관한 설명에서 보았듯이 헤겔의 설명은 개념적, 체계적이다.

[5] 미학강의 3권, 303쪽

[6] 미학강의 3권, 304쪽


⇓ 다음 연재 글 바로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