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들: 인민의 최종 결정권 분출
– 2024년, 6월 21일 하지(夏至), 의성 마늘이 장터에 나오고,
-하지 지나 사나흘 전에는 장마가 시작하더라‥…
류종렬(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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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사건들에 대한 상상을 정치경제학에서는 정세를 다룬다고 얘기한다. 누군가 현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고 문제 거리를 내놓는다면, 현 정세는 과거와 연관해서 어떤 관점들로 토론 할 수 있겠지만, 다음에 정세가 어떤 국면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미래는 비결정이다. ‘다음에’ 또는 ‘나중에’는 예로부터 점쟁이의 전유물이었고, 좀 더 잘 맞춘다고 하는 선지자들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나로서는 그들의 이야기는 사후 약방문(지나온 이야기), 결과를 원인에 돌려놓은 사고로 여긴다(남사고 이야기). 말하자면 결과를 원인으로 전도시켜, 과거를 미래의 이야기인 것처럼 맞추어 해석하고 설교하는 그들을 존경하거나, 또는 현자로 떠받드는 것이라 본다. 점쟁이든 선지자이든, 그 당시 그다음 이야기와 연결을 보았을 때, 맞는 이야기보다 틀린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 맞는 이야기만 전승되어 그것만 모아도, 그들의 긴 생애에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하늘만큼이나 많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유튜브식 순서대로 남겼다면, 얼마나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했을지, 지자들은 잘 안다.
‘나중에’란, 일상에서 지나가는 이야기로 해보면, 한 대 처맞은 이가 때린 녀석에게 ‘다음에’ 보자고 한다. 서로 달리 가면서 힘센 녀석은 ‘나중에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 못 봤다’고 한다. 이 경우에 때린 놈이 발 뻗고 잔다. 선지자가 말한 ‘다음에’가 언제인지 어디서인지, 그리고 그다음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가 없다. 세상을 뜨고 나서 다시 돌아온 어떠한 이도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독약), 예수(십자가), 로베스삐에르(단두대) 등은 정세에 맞지 않아 죽임을 당했다고들 한다. 나로서는 이들이 스토아적으로 죽음, 즉 스스로 의지적으로 세상을 떴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다음에, ‘나중에’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고 스토아학파는 기만(사기)이라고 했고, 에피쿠로스학파는 미신이라고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근세인은 인간이 신의 자식이 아닌 자연의 자식이라 하고, ‘다음에’ ‘나중에’를 공상 또는 망상으로 여겼고, 벩송은 그런 논리와 용어 자체가 ‘착각’이라 했으며, 들뢰즈는 넌센스(무의미)와 같은 파라독사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은 상징으로서 상상과 공상의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이 시인이라고 한다. 다른 이로써 말라르메는 주사위 놀이로 보았다.
그 이야기들 속에는 고통과 비참에서 젖어 있는 백성들에게, 인간의 삶의 가느다란 희망을 불어넣고자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삶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마도 프랑마송이든, 가톨릭 공동체든, 프랑스 공산주의자든 각각의 몫이었다. 그래도 이 시인들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세상을 상상을 넘어서 공상하고, 가끔은 아무도 모를 망상에 젖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 ‘나중에’ 또는 ‘미래’, ‘장차’를 강조하는 이들은 신앙자들이다. 신앙자는 사실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 판도라 상자 속에서 또는 천국을 꿈꾸며 상자 바깥을 상상하고 있는 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바깥과 같은, 죽은 후의 미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넘어선 신앙을 누가 심었는가? 점쟁이, 예언자, 선지자? 그들이 아닐 것이고, 벩송이 말하듯 용어를 언어로 만들고 그 언어가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의 것이라는 것이다. 천국이란 용어가 있으면 천국이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죽음 후에, 즉 상식으로 설명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기(기만), 미신이라 했을 때, 이런 것이 사기도 아니고 미신도 아니라고 하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잘 생각해보라고 하는 이들이 현자들이다. 싯달다가 잘 설법했다: 무소의 뿔을 설법하면서 탐만치에 벗어나라고. 그런데 서구 역사는 그렇지 않다. 이런 현자들을 마남(魔男) 사냥하듯이 없애버린 자들이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참주의 권력 속에서도 쭉 있었다. 걸리적거리고 거추장스럽다고 말이다. 그건 배제가 아니라 제거였다. 이들은 일찍이 패거리(카르텔)가 무엇을 행해야, 패거리의 사적 이익이 전유되는 지를 안다. 설화와 신화에서 영웅의 전쟁 설화를 보라. 영웅, 참주, 황제, 권력자, 등의 지시체로서 하나인데, 나라마다 기표는 무수히 많을 수 있고, 거기에 기의야 얼마나 많은 파라독사를 붙일 수 있겠는가. 무기/도구의 권력이 성립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한 권력은 하루아침에 성립한 것이 아니다. 영웅설화 이래로, 그리고 로마로 향하여 또는 하나로 향하여(uni-vers)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그 보편(le unversel)이 지배한다고 여기고, 권력에 붙어서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이 예수에다가 크리스토스를 덧붙인 것이다. 나중에, 죽은 후에 이야기한다. 염라대왕의 이야기도 크리스토스처럼 이야기이다. 미래는 아무도, 어느 귀신도 모른다. 권력과 권세의 결탁자들 또는 패거리는 서양 중세시기에, 영웅설화에서 상대들 죽여 없애듯이, 비판과 새로운 생각을 하는 자들을 마남 사냥으로 세상에서 사라지게 했다. 굴복하는 자들은 투명인간처럼 배제된 삶을 살게 하였으니, 노예와 농노, 천민과 백정이 되어야 했다. 권력과 권세의 패거리 결탁이 지식인들의 과학에 대해 대항하기에는 어려웠던 시기가 왔다. 르네상스였다. 권력과 권세는 반역과 반동으로 변신의 과정을 걷는데, 지식을 가진 지지들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저항하는 이들은 마남 사냥으로 죽이고, 그래도 타협하는 이는 살려둔다. 브루노와 갈릴레이의 삶이 다르다.
권력에서는 무기(/도구)가, 백성에게 중요한 도구(/무기)이다. 이 철기시대의 초기에 무기보다 도구로 백성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생산력이 발달하기도 하여 세상을 변하게 했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도구들의 연결 방식은 복잡한 도구를 만들었다. 기계들의 생산은, 노예 생산의 이익보다 엄청난 잉여를 생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성 또는 민중의 머릿수(인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위로하는 척하면서 대가리 수를 늘리고, 잉여 생산을 가로채는 동안에는 문자로나마 ‘백성이 하늘’이라고 했다. 게다가 백성 없이 왕(권력)도 종교(권세)도 없다는 것도 패거리들은 알았다. 그 인민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는데도, 생산도구의 변형과 생산력의 발달에서 백성 또는 민중을 그 기계에 묶어두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기계의 노예, 종속이라고 이런 노동자는 자연의 노예와는 엄청 다르다. 맑스가 일곱 살짜리를 탄광에서 석탄을 쪼개는 망치 작업을 시키는데, 얼마나 분노했던가.
도구/무기의 발달과 생산 관계는 기계와 조립의 기술 더욱 세밀하게 엮어서 다루는 데 있어도 지식인이 필요하다. 과학적이란 이름으로 기술과 기계체계가 원리와 법칙에 종속된다고 여겼다. 기계의 조립처럼, 사회제도 체제도 마찬가지로, 원리와 법칙에 종속하는 체계와 제도를 필요로 했다. 그 제도에서 두 패거리에서 셋째 패거리가 가담하여 국가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에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종교인들은 국가주의와 패거리를 만들면서, 교육을 담당하여 과학과 기술을 담당하는 지자들을 포획하였다. – 지자는 포로가 아니었는데, 세월에서 자본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 속에서 포로가 되었다. – 지자들은 원리와 원칙에 맞추어서 과학을 전개하고, 더욱 복잡한 기계들로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전개한다. 무너져가는 권력과 권세는 지자의 권위와 결탁하여 세 패거리들이 만드는 것이 제국주의였다.
이때까지 말로는 백성이 주인이고 민중이 기본 심급이라고 하지만, 백성이든 민중의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며, 명령 복종의 대상이다. 주인이고 기본이고는 하는 말투는 세 패거리에게는 빈 말투일 뿐이었다. 맑스는 그렇지 않고 인민이 주인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1848년 공산당선언을 하면서 시대가 달라졌다고 선언했다. 이에 패거리의 느슨한 결탁이 견고한 결탁으로 바뀌는 것이 제국주의로 변형이었다. 이 제국주의는 국가 안에서 착취가 아니라 다른 식민지에서 약탈을 통하여 권력, 권세, 권위를, 통일된 방식으로, 강화하는 것이었다. 제국주의에서 세 패거리의 담합과정에서 각각의 다른 요소의 결합이 쉽지 않아서, 통일성을 만들어보겠다고, 두 번의 큰 세계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고서 세 패거리는 지금까지 원리나 법칙을 잠정적으로 신과 같은 절대적 통일성의 논리(용어)로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앎과 동시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상징이자 통일체를 세우기로 했다. 맑스의 용어로 과학적인 대상을, 자본, 즉 돈(달러, 달러는 기표의 일종이다)을 상위에 올려놓았다. 신도 황제도 진리도 아닌, 돈이 세계의 지배 원리가 되었다(브레튼 우즈). 전쟁이 끝나고 권력, 권세, 권위는 서로를 위하여 동의하고 협력하려 했다.
그런데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철기시대가 전성기를 넘어가면서, 규소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동시에 생물학에서 새로운 생명체 단위(DNA)라는 용어를 끌어들였다. 그럼에도 패거리들은 규소든 디엔에이든 지식체계에 복속된다고 주장하고, 21세기에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가고 있는 방식이 AI와 빅데이터 등이다. 그런데 모순을 타파하자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맑스-레닌의 생각과 달리, 통일성도 추상성(자본)도 없다는 저항자, 용출자가 등장했다. 현재로서는 저항자들은 포획되거나 배제되어 핍박받거나, 예외적 존재로서 투명인간처럼 취급받는다. 이 저항자들은 인민‘속에서’ 흐른다. 인민을 위하여, 의한, 의란 제국주의 시대의 결과물이다. 세 패거리와 달리 ‘자연권’에서부터 나온 인민들의 저항, 그리고 그 봉기는 20세기 후반에서부터 진행 중이다. 금본위 달러가 아니라, 무기가 뒷배를 봐주는 기표의 달러가 지배하고 있다. 이에 인민은 리좀처럼 흐르면서 여전히 생성과 연대로서 확장하며, 간헐적으로 저항과 봉기를 분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현 정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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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지만, 자연과 지구도 변하고 있고, “그 속에서” 인간들의 삶의 과정도 변하는 중이다. 절대 권력을 누리던 영웅의 시대는 정복을 통한 약탈의 부를 획득하는 시기였다. 그리고 권력이, 시대적 과정을 정리하는 종교의 권세와 결탁하여, 가끔은 약탈과 민중의 수탈을 병행했다. 이들은 하늘과 땅 사이의 연관이 불합리를 수학(기하학)과 논리(산술학)의 결합을 통해 하나의 통일성이 있다는 것으로 만들었다. 현대에 와서 보면 상징과 표시를 추상적으로 체계를 세운 논리적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구시대의 민중은 하늘의 360도를 재고 있을 수도 없고, 식량과 가축의 수를 산술적으로만 세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 결과를 측정하는 권력은 그렇게 성립했을 것이다. 수학과 언어는 일찍이 결탁하였고 샤만과 같은 참주(황제)의 시대를 이어갔을 것이다
수학과 논리의 적용이 하늘과 땅에 거의 맞아 들어가고,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겠지만, 혹시라도 제기자가 있으면 제거하거나 상부에 포획하여 편입시키는 것은 간단했을 것이다. 강압과 폭력으로 편입하지 못하는 사건이 브루노를 산채로 태워 죽이는 짓이었다. 우주와 물질계는 권력의 강압에 의해 또는 종교의 권세에 의해 결정되지도 않고, 게다가 봄 다음 여름이듯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이법은 따로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천문학과 물리학이 권력과 권세에 벗어났다. 아직도 두 패거리는 지식분자인 지자들을 포획하여 편입시키려 노력했고, 자연체계와 물질체계가 원리에 복속되기나 하는 듯이, 이런 지자들은 패거리에 끌어들이려 했다. 뉴턴과 다윈은 아직도 자신들이 발견한 자연의 이법이 권세와 권위보다 상위에 있는 신과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고, 아이슈타인까지도 이 패거리와 같이 통일성이 먼저 있다고 생각하여, 겉보기와 달리 패거리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복속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삶과 과정들을 보면 그렇다.
권력, 권세, 권위가 식민지 정책과 제국주의에 포획된 것만큼이나, 이 패거리들은 포섭되지 않는 부류들을, 지자들과 상층 철학자들을 통해서 단죄하고자 했다. 절대공간을 넘어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은하계를 넘어서는 천문학이, 열역학과 원자 내부 물리학이, 화학에서 원자들의 결합방식이, 생물학의 발생 기원이, 심리학에서 본능과 습관을 다루는 현자들이 세 패거리에 저항하고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를 누르는 방식은 세 패거리의 방식으로 되지 않아서, 제국주의(l’empirisme) 구성보다 상위의 ‘제국(l’empire)’을 구축하고, 그 상징과 표시로서 달러는 금과도 상관없는 상징기호로(구조주의 표현으로 기표로) 대체했다. 그 대체물이 꼭 자본이어야 하는지를 문제 삼는 것이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이다. 통일성과 그 위의 상징계가, 실재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제기되고 있었다.
그래도 자본 제국이 최상위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달러라기보다, 무기이다. 무기는 무기/도구시대, 즉 철기시대의 마지막이다. 1953년 시작한 규소시대가, 철기 3천 년에 비해, 아직 백 년도 안 되었지만, 그럼에도 철기시대의 에너지가 재래식 광물이거나, 발달된 원자와 수소인 것에 비교하여, 이 규소의 시대는 태양이 에너지라는 것이다. 겨우 70년 밖에 안 되었지만,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거나, 또는 분출하고 있다. 미래는 알 수 없다. 70여 년의 속도로 보아, 그리고 유인원, 현생인, 구석기, 신석기 등등으로 전개되었던 속도에 비하면, 규소의 시대는 어마어마한 속도라서, 미래가 더욱 비결정이다. 제국이 패거리들이 더이상 예언, 점쟁이가 아니라, 사기꾼을 넘어서 약장수 야바위꾼이 될 판이다. 이 판을 유지해 주는 것이 투기로서 주식시장이다.
미래는 규정할 수 없다. 그런데 윤석열 집단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을 이어가는 방식을 답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방식과 과정에서 보아, 그에 앞선 인간들과 같은 궤도를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미래를 알 수 없으면서도, 그들과 같이 가고 있으면서, 앞에 나열한 그들처럼 미래를 포장하여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이 세상을 기만했듯이 그도 이 나라를 기만하고 있지 않은가? 뭐, 석유가 나온다고?
촛불시위에 놀라 등장한 것에 반응으로, 5년 동안 꿍꿍이 수작으로, 정치권에서는 내각제 개헌이란 소리가 들렸다. 인민의 동의 없이 또는 기본심급의 움직임과 흐름의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패거리(카르텔)들이 윤석열을 앞세워 예속 권력을 구축했다. 이 패거리들의 과거와 연결에는 1894년 동학을 무너뜨리고, 1919년 백성들이 시위에 놀라,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와 다른 한쪽은 만주로 갔다. 이 두 방향이, 우리 입말로 소통할 수 있는 79년 동안에 양 진영처럼 보인다. 만주와 일본. 중국은 1919년 5.4운동 이래로 일본에서 배우는 것에 벗어나 서구를 직접 배웠다. 우리는 일제 침탈로 그럴 기회가 놓쳤다. 우선 일본에게, 그리고 전후에 미국에게 배움을 청했다.
서양의 패거리 문화에 포획되고 포로가 되었다. 남한은 어쩌다가 제국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브루노처럼 제거하는 과정을 거쳤던가? 보도연맹, 조봉암, 인민혁명당, 민주청년연합, 남민전 등으로 계속되었다. 마남 사냥에 겁먹은 경북은 결과를 원인으로 세우려는 박정희를 내세우려 하고 있고, 일본과 미국을 따르는 패거리들은 단절의 역사를 만들면서 이승만의 망상까지도 불러오려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제국,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등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고, 그리고 “천하루 밤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을 배우자고? 미국은 유럽계의 패거리에 속하는 소수자가 상층을 차지하고, 나머지를 하부로 삼는 방식으로 이원화 되어 있고, 전쟁 이후에 로마 황제 이상으로 옥상옥의 체계를 구축했다. 그 속에서 인민의 자주성과 자연의 자발성은 패거리의 속성상 배제된다. 일본과 같이 가자고? 일본은 입말과 말투, 문자로 정립에서 이원화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고 한다. 그 속에서 패거리가 승리를 구축한 것이 일본의 내각제이다.
왜 미국도 일본도 아닌가? 남쪽에서 입말의 문자화가 87년 이후로 치면, 겨우 40년이 채 안 되지만, 팔천만이 공유하는 입말의 씀씀이는 79년이나 된다. 게다가 문화적으로 우리는 천년의 불교, 오백 년의 유학의 전통이 있고, 다른 한편 1446년 이래로 내재적으로 이어온 입말 있다. 이제 겨우 입말의 세대가 되어 인민이 계속하여 이끌어 갈 것이다. 그 입말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위계로서 이분화 된 내각제는 안 될 것이라 했다.
입말의 문자화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서구의 저항과 혁명이 기나긴 종교와 근대과학에서 자연의 빛을 느끼는 “권능”에서 유지하고 있듯이, 우리에서는 권능이 있어서, 패거리 방식으로 일본 제국주의, 미국의 제국이라는 단절된 계급방식으로 체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집단이 만주파가 아니라 섬나라파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내각제 물 건너갔다고 하면서도, 윤석열을 조기 퇴각시키면서 내각제로 갈려는 거대 양당의 말투가 있었다. 인민의 최종심급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상부 패거리들이 계속적으로 정치를 하려 한다. 79년 동안에 인민은 자기 소통을 상부와 달리 이루어왔고, 거대한 촛불의 경험을 느끼고 산다. 인민이 헌법 제안권과 세 패거리에 굴종하는 자와 사적이익을 취한 자들을 소환하는 소환권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권은 제도 속에서이고, 입말과 말투에서 인민이 주인이며 최종심급으로서 자연권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내각제가 아니라, 인민의 자연권에 대한 윤석열 집단에 대한 저항과 항거가 민주당 안에서 일어날 것 같다. 정당에서는 당원이 중심이 되고, 나라에서는 인민이 주인이란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사회권과 더불어 자연권이 소통될 때, 이때 생물학과 심리학이 내재성의 철학의 본류라는 것도 잘 소통될 것이다. 수학과 언어논리는 패거리의 담합 도구(Organ)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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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들 패거리는 원리와 법칙이 보편이듯이, 이 보편성이 사람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아직도 세 패거리가 자신들이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으며, 저항이 올라오면 가끔은 ‘백성이 하늘이다’라고 매체들을 통해 떠들거나, 성동격서의 방식으로 문제를 흐리게 하여 넘어간다. 백성은 잘 잊는다고 한다. 백성은, 생명체로서 살 듯이, 기억을 지니고 있어서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긴 역사를 기억하고 있고, 생명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패거리들은 인민에게서 배척되거나 밀려난다면, 자신들의 부정 축적과 갈취의 삶이 더이상 없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을 만들지 않았으면, 어떻게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통해 수억을 벌겠는가? 이런 집단들은 개미의 피를 빨아서 번다는 것도 잘 안다. 제국의 시대에 돈을 번다는 것은 무기/도구와 다른 지배방식임을 그들은 잘 안다. 그 집단은 패거리에게서 배웠고, 패거리들에게 마름의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세 패거리가 이미 제국주의 이래로 돈을 통하여 돈을 통일과 절대의 상위에 두면서, 이제 까지 상위였던 신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게다가 세 패거리 중에는, 생물학과 기상학 등의 자연에 비추어보아, 지자의 권위가 통일성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 우리 땅의 국가 권력을 세 패거리 수준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패거리가 아니라 패거리의 똘마니이다. 이들의 공통성은 1894년 이래로, 과학에 대한 경외와 1905년 일본이 러시아함대를 이겼다는 사실에 배울 것도 일본이고, 일본을 따르면 해결된다고 한다. 이 자들이 130여 년 전부터 지금도 믿고 따르고 있다. 토착 왜구 또는 부일자들이 있다. 이들은 제국의 세 패거리에 속하지도 못한다. 국가 권력도 없었고, 오랜 전통을 버렸으니 종교와 도덕의 권세도 없고, 단지 조선의 무지렁이가 아닌, 일본과 독일을 통해 19세기 철기의 마지막 지식을 받아서 합류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합류에 국가를 일본에 넘겨주는 것과 같은 줄 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미제의 마름인 일제의 똘마니로서 세 패거리로 합류하고 싶었지만, 일본 제국이 용납했겠는가? 어째거나 그래도 일본 제국주의의 권력에 아부하여야지. 그 추종하는 지식분자들의 세력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이어 일본의 합류가 아니라 봉사(service, 하녀라는 뜻도 있다)로 나섰다. – 당연하게도 이런 지자들은 독일을 이어받은 일본의 지식과 영국과 독일(앵글로 색슨)의 체계에 관한 책들을 읽고, 매체를 통해 선전한다. 잘 들어 보시라, 극우 매체에 인용된 인물과 책은 앵글로 색슨의 책이 아닌 것이 있는가?
일제 강점기에 일부 지식인들은 일본이 제국주의로 유럽의 절대 국가처럼 오래 간다고 생각했는데, 1945년에 미국 제국주의에 패배했지. 이 일본을 통해 배운 어설픈 지식인의 권위는 폭상 망했지. 그래서 미국의 과학으로 갈아탔지. 미국 제국주의는 세 패거리가 모습을 분명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따라갈 수 없었다. 반도의 전쟁은 기회를 주었지. 그리고 미국을 숭배하며 따랐지. 숭미주의자들은 미국에 복속하고자 원했다. 그런데 웬걸 미국은 남한에 관심이 아니라 중국 대륙이라. 이 계륵 같은 남한을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인민은 잘 구슬리어지지 않고, 게다가 입말 방식이 서로 사맛디 않아서 말투의 상위로서 영어를 심는 데 실패했다. 미국은 자국보다 긴 역사를 지닌 한국 인민이 반미를 하기도 한다. 그 반미의 입말을 미국이 모른다. 아마도 촛불시위 같은 것을 보고서야, 총독 같은 주한 미국대사가 놀랐을 것이다. 미국이 반도 남쪽을 직접 식민 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복속을 시키려면,
그래도 반도 내부에 일본에 복속하는 부일자들이 남아있으니, 미국은 정복자로서 중국을 향한다는 명목으로(1592년에도 일본이 중국을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 했듯이) 무력(군대)으로 반도 남쪽을 차지하고, 저항하는 민중이 사는 것에 관해서는 경제적 방책으로 일본에게 넘기는 전술을 쓰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보수정당과 극우 정당이 내각제를 상상했던 것에 한몫했을 것이다. 이들의 말투가 얼마나 앵글로 색슨인지를 보라. 미국과 일본의 하부로서, 이에 협조자는 박정희에서부터, 이명박, 박근혜를 이어오다가 노골적으로 윤석열 집단이, 언론과 지식이 이미 포획되고 포로가 되었기에, 하부로 들어가자고 실행에 옮기고 있을 뿐이다. 중국과 싸워야 하는 미국이, 군대를 남겨둘 자리로서 남한을 지배하면서, 일본에게 남한의 경제를 넘기려는 것이다. 라인을 일본에 넘겨주고, SK의 지분을 일본에 넘기고서, 그리고 마치 시혜를 베풀 듯이, 남한이 먹고 살 수 없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럴 경우가 내각제로 가는 징표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가 내각제를 물 건너갔다고 하는데, 이는 인민을 현혹하는 수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윤석열 집단뿐만 아니라 이들 이전에도 남한의 권력, 그리고 권세도, 권위도 제국주의 또는 제국의 전략에 협력하는 길이 살길이라고들 했었다. 묻지마 투표는 이에 기인한다. 이는 1905년 이후 나라 팔아먹은 5적들도 당시에 그렇게 생각하고 넘겨주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들 5적 연관자들을 해방 후에 처벌하고, 중요한 것은 재산을 몰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도 윤석열 집단이 1910년 그 이상의 작업을 법률적으로 하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결제의 권리인 최종심급은 인민에게 있다. 아직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민이 제헌입법권과 소환권을 쟁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각제라는 말은 들어간다. 교육과 제도에서도 인민은 기본심급이자 최종심급이다. 이 최종심급으로 세 패거리에 아부하고 마름을 자청하는 이들을 엄벌하고, 부정 재산을 몰수해야 할 것이다.
다시, 내각제를 입에 올리는 정치인들을 매국노와 손잡는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총선이 있기 전에 떠돌던, 내각제 개헌의 이야기가 또다시 돈다. 윤석열을 명예롭게 퇴각시키는 방법도 말한다. 인민의 최종심급을 받아야 할 자들을, 위임받은 국회의원들에 처분을 맡기는 것에서, 해방 후 부일자들에게 속았듯이, 제국의 마름들에게 속는 것이다. 이들이 일본세력에 부역하는 자들이라고 여기는 것이 인민만이 아닐 것이다. 인민의 저항, 봉기, 혁명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현재 시점에서도 일본의 종속과 예속을 넘어서, 나라를 넘겨주려는 자들이 있다고들 한다. 그 세력들은 세 패거리가 역사의 주류라고 망상한다. 백성, 민중, 인민은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으로 자각하고, 입말과 말투, 규소의 시대의 이미지와 문자로서, 새로운 생성과 창조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75년의 세월이 세계사에서 매우 짧지만, 우리나라만큼이나 역동적이고 속도와 강도(내공)를 가진 나라가 없다. 현재의 노력으로 보아, 그리고 내년으로 가는 과정에서 더 빠른 속도의 더 깊은 강도의 역동성이 분출할 것이다. 그 분출이 시대를 바꿀 것이다.
내각제라는 용어를 말을 입에 올리는 자들을 조심하라, 그가 이완용처럼 시대의 타협자이며, 적군의 세작이다. 그들이 끌어들여 인용하는 앵글로 색슨의 책들과 학자들의 말투와 용어를 들을 때 조심하라. 마치 철학사에서 ‘누스’라는 용어를 말할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인민의 기본심급과 최종심금, 적어도 사회권과 자연권의 전개를 분출하는 자들과 같은 발걸음을 걷기를 노력하자. 75년의 입말과 말투의 기간이 짧지만, 그 속도와 강도는 규소시대 만큼이나 기하급수 이상으로 상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당신의 노력과 내공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소요, 반역, 폭동이라는 용어를 쓰는 자들이 나라를 왜놈과 제국에 넘겨주는 자들이다. 저항, 봉기, 항거는 인민의 미덕이다. 한 인간의 삶은 기나긴 생명의 역사에서 보아 찰나이다. 45억 년 역사에서 눈 깜짝할 사이. 그 찰나를 노력과 내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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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