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출구』(상) “여성은 자기 육신을 글로 써야 한다. 여성은 난공불락의 언어를 창안해 내야 한다.”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3.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출구()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여성은 자기 육신을 글로 써야 한다. 여성은 난공불락의 언어를 창안해 내야 한다.”

 

연효숙(여성과철학분과, 연세대)

 

<사진 1> : 엘렌 식수|https://www.thefamouspeople.com/profiles/images/hlne-cixous-1.png

 

엘렌 식수(Hélène, Cixous, 1937~ )는 뤼스 이리가레,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함께 제3세대 페미니즘을 이끈 여러 페미니스트들 가운데 신(新)프랑스 페미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다. 이들은 헤겔, 프로이트, 라캉 등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고, 라캉에게는 직접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플라톤 이래 서양 전통 형이상학, 즉 남성 이성중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해 왔고, 나아가 이를 전복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들이 썼던 주제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가운데 공통적으로 꼽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주제는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가 될 것이다. 특히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의 선두로 평가될 수 있으며, 이 글에서도 이를 주목할 것이다.

<사진 2> : 『메두사의 웃음/출구』 한글본|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57495&srsltid=AfmBOopiOG8q9cPl24ee6udTp7GYMs0HWsNys-69QJHN5yqTUs-lfZC-

 

식수의 『메두사의 웃음』(1975)과 『출구』(1975)(『메두사의 웃음/출구』, 박혜영 옮김, 동문선, 2004, 이하 인용에서는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를 분리해서 쪽수 표기)는 그녀의 다양한 저작들 가운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식수의 저작 목록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있다. 그녀는 특별히 철학자라고만 불리지 않고, 작가, 극작가, 문예 비평가로 더 주목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저작 목록에는 적지 않은 소설들과 연극 대본들이 있다. 페미니스트로 평가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저작인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 등은 철학 저작이기보다는 에세이로 분류된다.

식수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자전적인 기록이 있다. 이는 『출구』의 앞부분의 ‘타자 살해’의 부분으로 식수가 태어난 배경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본인이 겪었던 성장 배경을 잘 적고 있는데 꽤 난해하다. ‘여성의 글쓰기에 다다름’ 바로 뒤에 이 부분을 식수가 배치해 놓았는데, 식수 자신이 왜 ‘여성적 글쓰기’에 다다르게 되었는지가 자신의 탄생 배경, 기원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식수의 국적은 프랑스이며 유대인으로 알제리의 옛 수도인 오랑에서 1937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유대인이자 내과의사로 식수가 어렸을 때 죽었고, 어머니는 독일 출신의 유대인으로 남편이 죽은 후 산파(간호사)가 되었으며, 알제리에서 다른 프랑스 의사들이 마지막에 추방당했을 때 알제리를 빠져 나왔다. 식수는 프랑스인이지만, 프랑스령인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다양한 인종 차별, 소수자 차별을 경험했다. 이때의 경험을 『출구』의 ‘타자 살해’에서 상세히 적고 있다. 그녀는 18세 이후에 결혼(10년 후 이혼)과 더불어 프랑스로 건너가서 영어 교수자격 시험을 보고 『율리시즈』를 쓴 제임스 조이스로 박사 논문을 쓰면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식수의 연구 활동에서 철학 연구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가늠이 안 되지만, 그 주 무대는 주로 문학, 창작의 영역이었고 발표한 글들도 소설, 비평, 에세이들이 많다.

식수는 어렸을 때 겪었던 다양한 차별들의 경험으로 활발한 현실 참여를 하였다. 특히 미셸 푸코와 1970년대 초반 GIP(Group d’information sur les prisons : 감옥정보그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녀의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를 읽어 보면, 곳곳에서 그 당시 겪었던 차별적 경험들이 새로운 글쓰기 문체로 바뀌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진 3> 메두사의 웃음 영어본│https://0701.static.prezi.com/preview/v2/ssgknompkvnhpnbnhboyng4ww76jc3sachvcdoaizecfr3dnitcq_3_0.png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에서 ‘메두사’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카락 가닥가닥이 뱀의 얼굴인 여성 괴물이다. 메두사는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을 돌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가지며, 그만큼 남성들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역사적으로 남성들은 자신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알 수 없는 신비의 대상을 늘 악마화해 왔는데, 중세시대에 똑똑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을 시킨다든지, 잔 다르크를 마녀사냥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면에서 이 마녀사냥의 원조가 메두사인 여성 괴물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식수가 메두사를 택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고 탁월한 전략이다.

『메두사의 웃음』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는 여성적 글쓰기에 대해, 여성적 글쓰기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여성은 여성 자신을 글로 써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들이 글쓰기로 오게 만들어야 한다.”(『메두사의 웃음』, 9쪽) 이 문장에서 우리는 식수의 이 책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왜 이 글을 쓰는가? 여성들 자신이 글을 쓰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다음 말이 더 극적이다. 여성적 글쓰기의 목표와 방법은 ‘여성들이 여성의 육체로부터 격리된 만큼이나 여성이 글쓰기에서 격리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식수의 여성들의 글쓰기의 특이점은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로부터 격리되어 있어, 육체를 매개로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해 식수는 과거, 옛것, 낡은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남성적인 옛것에서 벗어나 여성적인 새로운 것을 써야 함을 강조한다. 즉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에서 최소한 두 개의 얼굴과 두 가지 목표 즉 ‘파괴하기와 부숴 버리기’,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하기와 투사하기’를 들고 있다. 스스로를 감추고 들여다보지 않았던 여성들을 향해 ‘그대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라고 식수는 외친다.

전통적으로 글쓰기가 특권층의 남성에 의해 전유되어 왔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글쓰기는 여성에게 너무나 문턱이 높지만, 여성들이 글을 써야 함을, 멀리에서부터, ‘바깥’으로부터 돌아와야 함을 촉구한다. 역사적으로 여성 작가의 숫자는 지극히 미미했으며, 글쓰기는 지금까지 남성적인 경제에 의해 주도적으로 경영되어왔고, 여성의 억압이 재생산되는 장소였다. 그러한 글쓰기의 장소에서 여성은 이제 자신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새롭게 가질 수 있으며, 전복적인 사상의 도약대가 될 수 있는 공간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글로 씀으로써 새로운 반란적인 글쓰기를 창안해 낼 것이다. 그 변화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여성은 자신에 대해 글을 쓰면서 이제까지 몰수되었던 여성의 육체로 귀향하여, 육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가 이전의 남성들의 글쓰기와 전적으로 차이나는 점은 육체를 텍스트로 하는 글쓰기라는 점이다. 이성의 무기를 가진 남성의 글쓰기에 비해, 남성의 언어를 교란할 여성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의 언어는 자신의 육체에 기반하여 새로운 난공불락의 언어가 된다. 이러한 글쓰기의 행위가 이뤄짐으로써 여성에 의한 말의 장악이 나타나고, 여성 마음대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식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성 정체성 형성의 고전적인 양성성의 발달을 비판하면서, 남성의 결핍으로 남겨져 온 ‘검은 대륙’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비유를 거부한다. 식수는 여성이 거세되었다는 최악의 진실에 맞서 실제로 여성은 거세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메두사의 이미지를 가져온다. 그리스 신화에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으로 묘사된 “메두사는 치명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존재”(『메두사의 웃음』, 29쪽)로 더군다나 웃고 있다고 식수는 새롭게 그린다. 메두사의 웃음은 무슨 뜻일까? 아마도 남성들을 조롱하고 비웃는 그런 웃음이 아닐까? 여성은 거세, 혹은 머리 잘림을 두려워하는 남성들의 공포 앞에서 흔쾌히 그 공포를 비웃는다. 그래서 식수는 정신분석적인 울타리 속에 갇히지 말고 그 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가로질러 가라고 강하게 제안한다. 이제 여성들은 길들여지지 않고,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사진 4> la Jeune nee 책│https://images-na.ssl-images-amazon.com/images/S/compressed.photo.goodreads.com/books/1325352365i/1364294.jpg

 

『메두사의 웃음』이 분량이 짧고 간단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면, 『출구』(『출구』는 『새로 태어난 여성』에 수록)는 분량도 많고, 그 내용도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출구』는 엑소더스 즉 탈출을 의미한다. 어디로부터 탈출한다는 말인가? 지옥, 적들, 남성들 세계, 가부장 세계, 억압과 차별, 배제로 점철된 모순투성이의 현실로부터의 탈출이 아닐까 싶다. 『출구』는 억압된 현실 세계로부터 탈출하여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새로운 문인 셈이다. 헤겔 등의 철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리스 비극, 문학 작품들과 근대 독일의 작가인 클라이스트 등의 문학 작품도 나온다. 『출구』의 전반부의 핵심 문제의식과 내용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남성 중심주의와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식수는 ‘여자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 속에는 남성 중심주의, 이성 중심주의의 유구한 전통의 추적과 그 비판이 담겨 있다. 그 전통과 역사에는 어머니, 여성의 자리가 없다는 것, 여성은 존재하지 않음이 전제된다. 출발점에 전통적인 이분법 도식이 굳건하게 자리한다. “능동성/수동성, 아버지/어머니, 지적인 것/감정적인 것, 로고스/파토스, 남자/여자”(『출구』, 49쪽)처럼 사고는 항상 대립을 통해 움직였다. 계급화된, 이중적 대립, 우월한 것/열등한 것 등으로 말이다. 남성의 특권은 대립성으로 유지되며, 전통적으로 성적 차이의 문제는 능동성/수동성이라는 대립과 짝지워 다뤄지고 철학 속에서 항상 여성은 수동성 쪽으로 정리된다.

만일 이성 중심주의와 남성 중심주의의 연대성, 남성들이 세우고 떠받치는 주춧돌이 산산히 부서진다면, 위대한 철학적 체계들, 전반적인 세계 질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러한 이성 중심주의의 계획이 폭로된다면, 모든 역사는 달리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은 사고 가능하지 않은, 또 다른 사고가 온 사회의 기능을 변모시킬 것이라는 주장 속에 새로운 사고를 모색하고자 하는 식수의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 즉 여성에 의한 새로운 사유 혁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말이다.

남성, 이성 중심주의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심지어 타자를 살해해 온 적나라한 현실로 이어진다. 식수는 프랑스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타자가 되고 경계인이 되는 경험을 겪었음을 토로한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식수는 ‘타자 살해’(『출구』, 64-68쪽)에서 자전적 기록을 적는다. 특히 프랑스 점령 국가인 알제리에서 원주민들이 받는 억압, 탄압 등을 얘기하고 있다. 그들이 겪는 폭력, 타자로서 대접받으면서 타자가 되어 가는 상황, 즉 타자는 다른 곳에 바깥에 존재한다고 식수는 말한다.

출신 자체가 타자의 경험을 안고 있고, 체제 재생산을 강요받지 않는, 어떤 탈출구로 식수는 글쓰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의 나라는 신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어떻게 왜 식수가 글쓰기에 전념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식수는 힘과 권력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에서 심취했던 유년 시절의 헛된 꿈에서 벗어나 여성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억압과 남성의 성차별주의에 맞서 자신이 여성으로서 설 자리를 찾은 것이다. 식수는 타자와의 이런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가 ‘글쓰기’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여성의 욕망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문제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공주에 얽힌 동화를 읽고 자랐다. 식수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 동화를 언급한다. 동화 속 잠자는 공주인 여성은 절대적으로 무력하므로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남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옛날 옛적의 동화들은 여자의 사랑과 운명에 대해 똑같이 기만적이고 잔인한 도식을 반복한다. 각각의 신화와 이야기에 늘 되풀이되는 것은 “우리 국가의 업무 안에 여성의 욕망을 위한 자리는 없다.”(『출구』, 58쪽)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의 욕망 성취를 위험한 것으로 취급해 왔다. 여자는 그림자, 남자의 빛을 위한 밤, 남자의 흰 빛을 위한 검은 빛이다. 남성의 체계, 그 공간에서 여자는 배제된 존재에 불과하다. 여성은 검은 대륙으로 취급받았고 여자들은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했으며, 자기의 집을 탐험하러 가지도 않았다. 여기서 식수는 여성에 은유된 검은 대륙이 검지도 않고, 탐험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항변하고 있다. 검은 대륙은 아직 탐험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식수가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식수는 프로이트의 거세 이론을 비판한다. 식수는 여성이 거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들의 자기 고유의 제국은 하나의 두려움으로부터 출발하며, 그 두려움은 전형적인 남성적 분리의 두려움. 즉 거세 위협의 충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이 세운 자기 고유의 제국이 거세 위협의 충격과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그에 비해 여성들에게는 그 왕국을 벗어나서 출구로 나가면서 다시 돌아와야 함을 식수는 권고한다. “나가자. 여자들이 멀리서부터, 영원, 바깥, 황무지로부터 돌아온다. 여자들은 어린 시절로부터 돌아온다. 검은 대륙에 비유된 여성들은 아름답다”(『출구』, 68쪽)라고 식수는 주장한다.

프로이트가 설정한 여성적 상황의 ‘숙명성’은 사실 해부학적 ‘결함’의 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비도는 단 하나밖에 없으며, 리비도는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다. 성적 차이는 팔루스적 단계로부터 출발해 새겨진다. 소년, 소녀는 이 단계를 거치는데, 소녀는 일종의 작은 소년으로 취급된다. 두 성 모두에게 최초의 사랑의 대상은 어머니이며, 이성의 사랑이 자연스러운 것은 단지 소년에게 해당한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식수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성적 차이는 단순히 해부학에 대한 판타즘(Phantasm)적인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 해부학은 대부분 시각 행위에 근거할 뿐이며. 이는 관음증 환자의 이론과 다르지 않다.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사람들은 질문한다. 그렇다고 이 질문이 여성의 욕망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속에서 여자의 욕망을 위한 자리는 거의 없다. 여성들은 자기 욕망에 대해 기본적인 인식도 없게 된다. 역사는 남성 중심주의만을 생산하고 기록했다. 식수가 보기에 이러한 남성 중심주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적이다. 남성 중심주의에서는 남자들도 불가피하게 손해를 본다. 물론 그 손해는 남녀, 다 심각하다. 그래서 식수는 이제 지금이야말로 변화시켜야 할 때이며, 또 다른 역사를 창안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세 번째, 여성적 글쓰기와 여성 주체성의 문제이다.

현존하는 남성적 언어 질서 즉 상징계가 아닌, 상상계의 언어는 가능할까? 식수가 시도하는 여성적 글쓰기는 일종의 여성적 상상계의 언어인가? 식수가 여성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여성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서 여성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것인가?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가 여성 주체성을 찾아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통로임을 보여 주려는 것인가?

식수는 “오늘날 글쓰기는 여성들의 것이다.”(『출구』, 98쪽)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여성적 글쓰기에는 ‘실천’이 중요하다. 그러나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에 대해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여성적 글쓰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단지 여성적 글쓰기를 여성적 글쓰기가 하는 ‘행위’ 안에서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실천은 결코 이론화되거나 제한되거나 코드화되거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적 글쓰기는 ‘이론’이기도 하다. 여성적 글쓰기는 어느 정도 ‘이론적’이지만,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의 비이론적, 경험적 측면을 전면에 내세울 것을 권한다.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가 무엇보다도 기존의 남성적 글쓰기와 차이가 나는 점은 ‘몸으로 글쓰기’라는 점이다. 이러한 몸으로 글쓰기의 전형을 식수는 어머니 됨에 있다고 본다. 어머니 됨은 자기-영속적이며, ‘남성적인’ 증여의 순환경제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공한다. 어머니 됨은 우리가 타자에게 ‘주는’ 증여/능력(gift)이다. 식수는 어머니 됨이 아마도 얻어질 수 있는 타자와의 가장 강렬하고 완전한 관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 내부의 경험, 타자를 위한 능력이라는 경험, 타자에 의해 유발되는 부정되지 않는 변화이자 긍정적인 수용성이라는 경험을 갖는다.”(『출구』, 155쪽)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여성이 다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충분한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새로운 주체를 삶으로, 낯섦 속으로 내놓는 것을 사유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의 일이다. 이런 과정이 ‘낳는’ 글쓰기는 상징계의 엄격함과 영적 공허함으로부터 일보 물러설 수 있는 글쓰기이다. 즉 언어-이전에-오는 것’의 잔향을 듣기 위해 귀 기울이며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발화와 달리 글쓰기는 자신만의 시간에, 자신만의 말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비난하는 시선에 의해 제약되지 않을 것이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글 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또한 해방의 공간이 된다. 이러한 해방은 ‘몸’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몸을 재발견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이제까지 여성은 자신의 몸을 수치스럽게 여겨왔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식수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써야만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비-언어적’이고 ‘무의식적인, 본능적 충동들과 감각들에 귀 기울여야만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몸으로 글쓰기를 통해 여성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여성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식수는 몸의 언어로 침입해서 자신을 위해 언어를 전유하는 것, 언어를 소유하고 변형시키는 것이 ‘여성의 제스처’이자 ‘여성 주체성’이 확립되는 징표임을 시사한다.

문화 전통 대 신실재론 [천 하룻밤 이야기]

동지(冬至),

문화 전통 대 신실재론

2025 12 22. 동지(冬至), 소설(小雪)때 갑자기 추웠었고 어제부터 다시 춥기 시작 한다.

 

류종렬(한철연)

 

    동지(冬至)의 글을 쓴지 스물다섯 해, 4반세기가 지나간다철학사에서 흐름을 보려고 하다가인간의 살아온 과정을 보게 되고 그리고 자연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생명과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서양철학을 간단히 표현한 말로서 박홍규 선생님보다 잘 표현한 것을 찾지 못했다서울대 박홍규 교수는 1984년 6월 15일 퇴임강연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왜냐하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사물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냐 공간이냐 둘 뿐이에요플라톤은 둘 다를 놓았고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에서 형상이론(form theory)을 놓았고베르그송은 시간에서 정리했습니다그 이외는 없어요.” (54) – 박홍규, 『형이상학 강의 1』(박홍규전집 2), 민음사, 2007(1995) 54.

    벩송(1859-1941)의 저술에서 관통하는 사상이 있다그의 관점에 따르면고중세는 하늘에근대에는 표면에그리고 19세기 후반에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이제 안에서부터 철학을 해야 한고 한다들뢰즈 식으로 표현하면 철학사는 상층의 철학에서표면의 이중성으로현대에서 심층에서 생성의 다양성을 이야기 해야 한다고 한다벩송은 따로 단행본을 쓰지 않았지만 그의 저작의 순서를 따라가면하늘에서 표면으로그리고 내부로 라는 것을 알ㄹ 수 있다들뢰즈는 벩송의 생성론을 따라서가타리와 함께 천개의 고원(1980)』을 썼다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박홍규(1919-1994)와 들뢰즈(1925-1995)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양쪽에 각각 있으면서비슷한 생각으로 서양 철학사의 관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하는 서양 철학사는 하늘과 땅의 이중화에 어떤 연대가 있다고 보았다그런데 사유는 하늘의 운행에서 운동하면서도 동일반복을 한다는 점에서 고정성과 영원성에 관심이 컸다고 한다그리고 신화학이 아니라 유일신학과 접하면서 하늘이 우선이고 땅의 사실들은 인생무상(人生無常)처럼 허상으로 보았고상층 사상과 종교의 하늘나라가 지배하는 방식이 고중세 철학사라고 한다인간의 사유가 다시 태어나는 르네상스에서표면인 터전에 사는 인간이 중심이 되었고생각하는 인간이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이로서 벩송은 말하기를인간의 생각이 하늘의 원리를 갈릴레이의 빗금을 따라 지상의 표면으로 내려왔다고 한다표면에서 인간의 사유와 자연의 변화에 대한 이중화 현상에서표면 아래로 또는 사유의 내부로 들어가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한다내부로 파악은 물질에서 원자 안으로 사유에서 심리 또는 기억의 내부로 향하였다고 한다물질의 내부로의식의 내부로 연구가 19세기 후반에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더불어 펼쳐졌다.

    박홍규와 벩송을 중첩하여 보면하늘의 운동이 지상의 운동으로 이전은 지속이 아니라 위치이동과 같은 물체 운동인데물질자체의 운동이 있을 것이라는 사유는 있어왔다고중에에서는 이런 자체 운동의 과정을 위치이동처럼 설명할 수밖에 없었지만운동의 과정에 대한 반성을 우주발생론이라 부르고위치 이동처럼 설명하는 운동의 조립과 조작에 대한 관심을 우주론이라 부른다이런 관점을 고대와 근대에 연결하면우주론의 뒤에 절대자와 같은 신이 있다고 여기는 형이상학(자연배후학)이 있다이에 비해 우주의 자기 발생으로 여기는 이들은 자연에 대한 관점을 자치적이고 자율적이라고 생각했다근대에서이분법이 아니라표면을 대하는 이중화 현상에서 자연(또는 우주)의 배후는 신이 아니라 자연자체일 것이라고 여겼다그러나 고중세의 오랜 관습의 사고는 상층이 우선이듯이자연의 배후에 신의 정신과 같이 하는 인간의 정신이 있다고 여기면서자연에서부터 발생과 변화의 사유가 불합리하다고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을 칸트가 이야기했다자연의 배후에 신인지 인간인지의 문제를 인간의 역량이 알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그래도 세상 또는 국가를 유지하는 도덕과 천륜이 먼저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벩송의 표현으로 지상에서 상층으로 다시 올린 철학자가 헤겔인 셈이다벩송은 맑스와 니체를 다루지 않았지만종교의 권위와 국가의 권력이 상층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백성이 또는 인민이 주도해야 한다고 보았다종교제도든 국가체제이든상층에 대해 자연이 자체적으로 성립하듯이제도와 체제의 상부에 대해 인민이 토대이며 심급의 최종결정권자라는 의미에서 대혁명을 이어받아루소에 이어 맑스도 인민주권인민권력의 등장을 알렸다.

    상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심층으로부터 사유의 확장을 두려워 한 쪽은 제도와 체제의 옹호자들이다이들을 벩송은 네오스콜라주의라고 한다자연에서 실증적 사실들의 자료들지층과 화석은 신의 창조를 허구 또는 망상으로 만들었다상층의 절대성과 보편성은 중세 후기에서 유명론에서 지위를 잃었지만근대에서 이원성에서 정신이 상위라는 주장에 편승하여이야기(우화)로서 명맥을 유지하다가국가의 성립에서 국가의 꼭대기에 앉으려고(왕권과 참주 위에 있었듯이네오스콜라주의로 기울어졌다꽁트의 실증주의와 맑스의 공산사상에 대항하여헤겔이후에 앵글로색슨에서 현실의 이중성에서도 제도와 천륜이 먼저라고 두고 지배방식을 유지하고자하였다고중세에서 이데아와 하늘나라가 실재성이라고 했듯이관념(이데아)의 모방에서 이중화와 현실의 생성에서 이중화 사이에정신과 사유가 상위이며 이에 정합한 것을 진리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실증주의가 뒷받침하였다이런 논리와 사유의 정합성을 위한 현실의 상태에서원리에 맞는 모방을 재현 또는 표상으로 삼아표상 또는 현상이 실재성이라고 하였다이런 실재성을 고중세의 실재성과 달리 표면에서 현상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가져다준다고 하면서 신실재론이라 하였다이런 현상의 신실재론과 네오스콜라주의 개념들의 신실재론이 제국주의와 함께 패거리를 맺는 것이 1차대전과 2차대전이라 한다이 전쟁을 누가 일으켰고 누가 배를 불렸는가가 그 해답을 말해준다.

    천지의 이중성에서 언제나 상위를 설정하고 있고그 설정이 진리라고 또는 원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근대성이 정립되는 시기에 관념론자의 신실재론이 있다이들이 주장이 그럴듯하게 보였던 것은심층으로 또는 내부로 들어가는 학문적 방법이 미숙했기 때문이었다지층을 통한 연대가 억년을 넘어가는 실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1901년의 마담 뀌리의 방사능에 대한 연구이래로여러 광물에 의한 반감기의 연대측정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근대의 세포와 신체의 생리학적 흐름은 현미경이 발달해야만 가능했고원자의 단위 속에 핵과 전자핵 속에서 양성자와 중성자 등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빛의 속도를 재는 회전의 방식보다 더 깊고 정교한 사이클로트론이 발명되어야 했다철학은 지층의 유물들과 같은 추억들로서 과거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자연에서 생명의 과정 속에서 지속하고 있는 기억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심층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미 다양한 방식들과 방향들에서 다룬다는 것은 대상과 사물의 단일성(통일성속에 이미 다양성이 있다는 것이다한 생명체든 사실이든 사건처럼 다양체이며 복잡계라는 것이다이 다양체의 발현의 방식을 빛의 발산처럼 온 방향으로 퍼져나가기에한 방향을 다룬다는 것이 개연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이제 상층의 원리와 통일성으로부터 표면의 현실을 볼 것이 아니라자연의 자기 발생에서 나온 현실의 새로운 생성을 보자는 것이다이런 학문적 방향에서도권세권력권위의 패거리들이 전쟁에 일으키고 지배와 배치를 공고히 하였다여기에는 도구/무기의 생산과 활용이 있었다그 지배가 학문을 일 방향에 맞고 다른 방향은 틀렸다는 도구적이고 실용적 입장에서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였다.

    세계는 이분법으로 되어있지 않다그럼에도 사람들은 편리와 실용에 경도되어 당연히 맞고 틀리다는 진위구별의 이원화에 빠져있다산다는 것은 서로의 연관이고 이 연관은 다양하다삶에서는 솔직함과 진실함을 먼저 가늠하고 약간의 손해가 있다하더라도 사람들은 평화와 행복을 위한 방향을 찾으려 한다생성에서 우주발생론과 우주론의 관점의 차이가 있고인식면에서 형이상학의 이중화 현상에 자연배후학과 신()배후학이 있듯이삶의 품성에서 공동체의 공감이 먼저라는 쪽이 있는가 하면이익의 창출에서 부의 축적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현실의 활용에서 상층은 수학의 무한과 같이 상징의 계산논리인데 비해현실의 이중성에서 상징의 지배방식과 달리 심층의 다양한 발현에서 협의(평결)와 협약이 우선한다고 여긴다신실재론은 3패거리의 지배권을 유지하려고표면 상층의 표상과 현상을 실재라고 하는데우주론과 신()형이상학에 예속되어 그 속에서 자유니 민주니 한다이에 비해 실재론은 언제나 내부와 심층이었고그것은 자연의 생성이었다이런 자연이 자치성과 자율성을 갖기 시작한 것이 근대이며벩송 이후에 자연의 자발성을 말하게 된다자연(본성)의 자발성의 실현이 자유인 셈이다.

*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극우파들이 얼마나 설쳐대었던가를 철학자들은 잘 알고 있다. – 이상하게도 기술정보(IT) 시대가 인공지능을 만나면서도 이런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 관념 우파의 신실재론이 앵글로색슨 계열에서 헤겔주의자들이었고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앵글로색슨철학을 이루고 있다그런데 19세기 후반에 심층의 실재론은 자연 속에서 인간그리고 어느 터전에 사는 인종의 심정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그 담론들은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침잠해 있다가 20세기 중반에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이런 실증주의의 경향은 벩송처럼 삶이 먼저이고사유(반성)은 다음이라 한다산업사회를 지도한다고 여긴 패거리가 두 차례의 대전쟁 이후에도 체제를 유지하였다그리고 터전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지속을 이어가고 기억하는 반세기를 보낸 셈이다그럼에도 전쟁과정에서도 심층으로부터 연구는 있어왔다물론 제국주의에 복속되어 겉보기에 무기생산이었지만, 20세기 이후에 다른 세기를 형성할 전파망원경과 전자현미경의 발명이었다이 둘은 1953년을 기점으로기술과 생명에서 두 가지 길을즉 디지털과 DNA의 길을 열었다. 21세기에 문제제기에서 디지털의 인공지능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유역량을 외부축적(외장하드또는 크라우드(지식 공유위상)를 만들자고 한다제국은 이런 외적공유위상을 지배하는 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이 크라우드가 현실에서 적용과 활용에서 조립과 조작을 실재성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19세기의 상층의 관념이 현실의 지배에 이용되는 방식과 같이신실재론이란 용어를 끌어다 쓴 것 같다이제는 현실에서 적용과 실행 가능한 현상을 실재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그 실재의 현상에서 재현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크라우드 속에서 관념 또는 가상성을 추리할 수 있을 것이다요즘 떠도는 앵글로색슨 계열의 논문들과 논의들에서 신실재론은 19세기말 제국주의자들이 진리의 진위를 주장하며 정합성 속에 맞는 것을 신실재론이라 하는 것과 닮았다왜 이런 이야기가 학문의 경향으로 유행하고 있을까크라우드 속은 수학의 상징계 속에서 허수를 다루는 것과 닮았는지 모른다삶의 이야기는 달리 전개될 것이다.

    엉뚱하게 이재명 대통령이 산하기관의 공개점검에서 환빠의 이야기를 하여 화제라 한다문헌으로 하는 학문은 이집트의 고대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5천년 전이라 한다그렇다고 여러 삶의 터전에서 같은 시기에 기록 자료들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심층으로 내부로 삶의 과정을 본다는 것은 지층 속에서 유물과 유적들이다나로서는 심정성을 연구하였던 레비브륄이래로 르화구랑이 인류가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와 신석기의 기호들의 발전으로 보았던 것을 흥미롭게 여겼다그리고 그 후배격인 빠스칼 삐끄가 생리학적으로 인간의 입말이 짐승들의 입말과 다른 구강성을 갖는 시기를 200만년전의 호모 에르가스테르까지 소급하여 전개하는 것도 이야기 거리이다그럼에도 들뢰즈가 인간의 내재성의 발현을 소빙하기가 지나면서기원전 1만년전을 언어의 방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재배와 가축기르에서그 다음 사냥의 포획에서 말이다그래서 그가 신석기에서 동기(銅器)로 이행에 가장 빨랐던 현 터키지역인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구리의 발견과 도구화를 생각하는 역사 속에서 한 고원으로 설정하는 것도 흥미있다.

    국가 구별이전에 인종이라고 그 이전에 종족이라고 구별하는 것도 서술의 편의를 위한 것이리라인류는 마지막 소빙하기 이래로 터전의 변화에 맞게 이동을 하였을 것이고삶의 이동이 지구상의 위도가 비슷한 곳에서 일어났을 것이고그리고 그 이동은 오랜 시간을 걸렸는데동물의 가축화와 이동수단으로 동물의 사육화가 이루어지면서 이동을 훨씬 멀리까지 이루어졌을 것이다그런 이동에서 상호연관은 현재 인간이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정보의 이동이 있었을 것이다생산방식과 생산도구의 이동만큼이나 과거의 지식정보도 이동하여 살만한 북반구의 위도 대()를 형성했을 것이다이런 과정에서 먹거리 다툼에서 싸움이 있었을 것이고이런 싸움에서 먹거리와 잠자리를 지키기 위한 군대와 같은 제도를 갖추고 수장도 필요했을 것이다이런 전쟁의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과 터전에 대한 변형으로 집단화 또는 소도시화는 당연했을 것이다이 집단에서 정보의 전승을 위해 삶의 양식의 기호화 입말의 문자화도 이루어졌을 것이다인류학을 연구했던 초기 실증주의자들은지나가는 이야기로지자는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해가 지는 서쪽에 관심이 있었고새로운 삶을 동경하는 현자는 동쪽에 관심이었었다고 한다해가 지는 쪽에 죽음이후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생명은 동쪽에올 것이라고 것도 착각이지만관심의 차이는 비슷한 위도 대에서 삶의 터전의 양식을 달리 했을 것이라 상상하였다동쪽의 끝에 있는 우리나라현자의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을까이런 말을 했을 때 이미 환빠라는 소리를 들었다그러나 청동기와 같은 시기에 고인돌의 유적이 세계의 40% 이상이 우리나라에그리고 많은 수가 서유럽에 있다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당연했다.

    서양의 자의식의 발현은 데카르트시대인 16-17세기프랑스어로 문헌을 남기기 지작한 몽테뉴부터라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일찌기 언어가 아니라 입말이 문자화하였다는 것이다입말의 문자화를 갖는 15세기의 훈민정음이었다삶의 양식을 터전의 방식에 맞게 표현하는 것은 중요했을 것이로, 1우리나라의 상층은 한자로 표기해야한다고 여겼다상층에서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서로 같은 문화를 형성했다고 여겼지만백성은 달리 살았다프랑스에서 대혁명에서 상층과 다른 제3신분이 등장한 것은프랑스어 입말의 문자화가 이루어진지 200여년이 지나서였다우리나라는 상층의 지배가 16세기말 17세기 초 왜와 청나라 전쟁에서 무너졌음에도백성이 일어서지 못했다우리 입말의 문자화가 없었다프랑스에서 18세기 말 혁명은 일부 신부와 지식인들이 스스로 제3신분으로 자처하면서 이루어졌다우리나라는 16세기말 17세기 초 두 전쟁 후 피폐해진 나라에서 200여년을 지나면서도 상층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다시 일본제국주의에 먹힘으로써그때서야 지식인이 각성하였다이로서 만주로 나가서 독립운동을 하는 선구자들이 민중 또는 인민을 토대로 한 공화국을 생각하였다고 한다여기에 환빠가 있다이들은 남녘의 지배층들이 일본과 미국의 지식에 예속되어 앵글로색슨 학문을 수용과 달랐다만주의 선구자는 한자가 아니라 한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서울을 중심으로 일본 수용자들은 백성의 발현보다일본 지식에 함몰되었다지금에 미국 지식이 중요한 것도 마찬가지이다만주로 간 선각자들이 공화정을 바라면서도 한문 투로 글을 남겼는데훈민정음이래로 우리 입말을 널리 이롭게 하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지만그나마도 망국 속에서 한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그런데 이들 선각자들이 중국과도 일본과도 달리 생각하는 사유들을 남긴 전승이 해방 후에 단절되었다일제의 잔재와 앵글로색슨 학문이 성행하면서선진 유가적 전통에서 나온 공화정이라는 의미는 비판을 받고미국 제국을 수용하면서 인성자유주의가 아닌 시장자유주의인도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가 서구 사상인 것처럼 지배하였다이런 경향은요즘도 철학계의 90%정도가 앵글로색슨이라는 것과 같은 경향이다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19세기말 신실재론을 내재하고 있으면서, 21세기 크라우드 정보시대에도 신실재론의 유행을 따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여러 차례 이야기 했지만우리가 자율성과 자발성을 갖고서 입말을 하고 있으면서 문자화와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이 시대에도 9대 1정도의 사유 방식의 차이가 있는데이에 비해 우주발생론 대 우주론자연배후학 대 신()배후학심층 대 상층의 비율이 51 대 49로 변환의 시대가 되었다삶과 터전입말과 문자화가 자율성과 자발성을 통해 인민이 토대로서 기본심급과 인민의 평결과 계약(제헌헌법)으로서 최종심급의 공화정을 이룰 때이다이런 시대의 변역(變易)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문제제기를 하였다고 본다. AI의 저장고인 크라우드를 이용하는 입말의 소통은벩송의 말대로 설탕이 녹기를 기다려야 하지만속도와 강도의 노력은 우리 스스로 크라우드를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세계 문화의 새로운 변역(變易)은 동쪽의 문화에서 있을 것 같다.

(5:02, 58WME) (5:22, 58WMC)

     덧우리나라에 오랜 전통으로 선도(仙道)가 있었다고 한다왕권국가가 생기면서 한문문화권이 들어오고중국을 본뜬 체제가 성립하면서 유학(儒學)과 도가(道家)가 들어왔다고 하며선가는 도가를 닮았지만 선가는 민중신앙으로 남아있다고 한다그리고 불교가 들어오면서 유학과 더불어 천년을 이어왔다조선 시대에는 유학을 체제의 정통을 삼으로면서 스님은 천민화되어 가다가 선도와 결합하는 것이 조선 말기라고 한다조선 시대에서 상부세력의 다툼은 조광조이래로 사림파와 사장파로 갈라졌고제도 밀려나기 시작한 사림파인 남인은 실학(실증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백성이 근본으로 여겼다고 한다임란과 호란이후에 노론의 지배는 유교를 체제유지에 이용하였다가일본 제국주의에 병탄되었다이 사림파의 후예들인 남인들이 공화정을 선호하였다그런데 만주에서 독립운동의 한계를 보았고일부는 인민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입말을 통한 자주성을 찾으려했다고 한다이런 만주의 운동에서 고대의 상고사에 관심과 민족주의의 맥을 이어가고자 하여 대종교와 연계되기도 하였으며이런 사상이 환빠와 연결되었던 것 같다일본과 미국을 통한 앵글로색슨의 신스콜라주의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세기 이상을 지배한 경향이었다유럽이 보기에 우리나와 중국에서체제의 제도와 사상에서유일신 없는 제도와 체제를 만들었다고 한다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천지건곤음양은 교대라고 보았듯이또한 색()과 공()이 따로 있지 않듯이상층과 심층 사이에 대립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순환과 조화에서 공화를 보았을 같고터전에서는 이제 다양체로서 입말을 쓰는 인민이 평결과 협약의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공화제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6:01, 58WME)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56-비례 형태의 발전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56-비례 형태의 발전

1)

앞에서 헤겔은 정량이 비례로 발전하는 과정에 관해 설명했다. 그 과정은 하나의 추상적 정량이 다른 정량과 관계를 맺어 구체적인 복합적 정량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외연량, 내포량, 그리고 양적 비례[비례량]의 개념이다.

외연량은 추상적 고립적 양이다. 내포량 즉 정도[Grad]는 개별 양이지만, 이미 타자와 비교해서 규정되는 양이다. 마침내 양적 비례에 이르러, 두 정량이 관계하면서 새로운 구체적 복합적 양이 나온다. 외연량의 대표적 예가 길이, 무게다. 내포량의 대표적 예는 경도나 강도가 될 것이다. 양적 비례 또는 비례량의 대표적 예는 비중이다. 알다시피 비중은 무게와 부피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헤겔은 외연량에서 비례량에 이르는 과정은 양적 부정성 개념이 매개된다고 한다. 하나의 외연량은 자기를 부정하면서 타자 즉 다른 정량이 되는 데(일차적 부정) 이 타자로부터 다시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이차적 부정) 비례량이 된다. 이 이중 부정의 과정은 개념의 자기 전개 과정이지만, 이 과정을 매개하는 것은 경험의 발전이다. 우리는 경험 속에서 처음에는 추상적 양을 발견하지만, 좀 더 경험이 발전하면 다른 양의 비례 관계를 통해 이루어져 있는 구체적 복합적 정량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 과정에서 수 개념이 전개되는 것으로 본다. 수는 정량을 대표[또는 대리]하는 것 즉 상징, 그 기호다. 이런 수는 더하기에서 나누기로 발전하는 데, 이런 수의 발전은 수 자체가 발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량의 발전과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더하기가 외연량을 표현한다면, 분수는 내포량을 표현한다.

2)

이제 헤겔은 비례 자체의 발전을 다룬다. 이미 앞에서 우리는 비례를 다루면서, 양의 관계로서 비례가 발전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비례가 분수로 표현된다고 할 때, 이 분수는 통약 가능한 정수비에서 통약 불가능한 무리수 비로 발전한다고 했다.

헤겔은 무리수 비를 다루면서 주석에서 미분 개념의 정당화라는 거의 100쪽에 달하는 논의를 전개했다. 이 무리수 비가 미분 개념의 핵심이며(그 반대인 제곱비가 적분을 이룬다), 이 무리수 비를 통해 헤겔은 하나의 정량이 다른 정량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려 했다. 길이는 면으로 발전한다.

이런 발전은 한편으로 본다면, 동일한 정량의 한계에 머무른다. 예를 들어 선이 면이 되고, 속도가 가속도가 된다 할 때, 면은 길이의 제곱이다. 제곱이란 곧 같은 것의 반복이니, 같은 것의 한계 내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자기 반복을 통해 이미 다른 정량이 된다. 즉 길이와 면은 다른 정량이다.

이처럼 어떤 정량이 자기를 반복하는 것을 통해 다른 정량으로 발전하는 것이 곧 통약 불가능한 무리수 비례[앞으로 무리수 비라 하자]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런 무리수 비는 같은 것의 한계 내에 다른 것이 출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 그다음 단계에서 출현하는 비례 즉 다른 정량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비례를 논리적으로 예고하며 그것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새로운 비례가 곧 두 다른 정량의 관계로 이루어진 비례 즉 비중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비례는 역시 고유한 하나의 정량이다. 예를 들어 비중은 길이나 무게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정량이다. 그러나 비중은 두 정량의 관계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두 정량은 완전히 다른 서로 무차별한 정량이다. 그러므로 비중은 길이가 면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같은 것의 한계 내에 머무르는 것과는 구분된다. 그런 점에서 수 즉 무리수 비로 표현되는 것과 그 관계를 이제는 수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비중은 구분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이런 상상을 해보게 된다. 즉 어떤 정량이 무리수 비를 이루면서도 비중에서처럼 자기와 완전히 다른 정량으로 이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가속 운동의 경우는 특이하다. 가속 운동은 시간의 차원에 한정해서 본다면 거듭제곱의 관계다. 속도가 가속도로 발전한다는 점은 마치 선이 면으로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가속도는 곧 힘이 된다. 시간이 힘으로 발전한다고 보면 여기서는 전혀 다른 것으로 되는 것으로 보인다.

헤겔에서 정량은 척도를 거쳐 마침내 본질에 이르게 되는데, 이런 발전은 우리가 여기서 상상한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논의는 차후에 맡겨놓기로 하고, 우선 정량에서 비례를 거쳐 척도에 이르는 헤겔 자신의 설명으로 돌아가 보자.

3)

이상에서 헤겔은 양적 비례의 개념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정수 비와 무리수 비가 매개됐는데, 필자가 헤겔의 설명을 미리 앞당겨서 끌어들인 것이다. 나중에 나올 것을 미리 끌어들이는 것은 필자의 고육지책이었다.

필자는 이 비례의 발전과정을 수학적인 분수 형태의 발전을 통해 설명했다. 정수 비와 무리수 비다. 헤겔은 이 발전과정을 비례 형태의 발전과정을 통해 설명했다. 정수 비는 헤겔에서 정비례에 해당하며 무리수 비는 헤겔에서 제곱비례에 해당한다. 필자는 단순히 둘로 나누어 설명을 단순화했으나, 헤겔은 가운데 역 비례를 집어넣어 설명이 좀 더 복잡하고, 매개 과정이 더 잘 설명된다. 이제 헤겔 자신의 설명으로 돌아가 보자.

외연량이 비례가 되면서, 두 정량의 관계가 나온다면, 이 정량의 관계는 그 비례의 형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이 과정을 헤겔은 미분 개념을 길게 다룬 다음에 양적 비례라는 장(1부 존재론 2편 양적인 것, 2장 정량 3절 무한성에 이어서 3장에 해당한다)에서 다룬다. 여기서 헤겔은 비례의 다양한 형태를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즉 정비례와 역 비례 그리고 제곱비례다. 3절 제목인 제곱비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실은 이 부분이 미분 개념을 다루는 곳이다.

비례에서 두 정량이 관계한다. 두 정량은 이제 서로 무차별한 정량이 아니라 비례라는 관계 속에 묶여 있으니, 여기서 두 정량은 비례의 계기가 되며, 각 정량은 타자를 통해서 규정되니, 타자를 매개해서 자기 내로 복귀한다고 할 수 있다.

“두 정량은 본질상 외적인 양들로서 서로 관계하지 않는다. 각자는 그 규정성을 다른 것과 관계 속에서 갖는다. 따라서 각자는 그 타자 존재 속에서 자기 내로 복귀한다. 각자가 무엇인가는 타자 속에 들어 있다. 타자는 각자의 규정성을 이룬다.”(논리학 재판, GW21, S. 310)

4)

헤겔이 비례 형태의 발전을 다룰 때 주요 개념 장치는 곧 수 개념의 두 계기인 총수와 개수의 관계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개수는 단위가 몇 번이나 반복되는가를 말한다. 이는 집합 개념에 속한다. 반면 총수는 이 반복된 단위가 전체적으로 일정하게 규정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7이란 수는 개수로 보면 1이라는 단위가 7번 반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칭하는 말 ‘일곱’은 7개의 개수 전체를 지칭하는 고유한 말이다. 이 ‘일곱’이 총수다.

이제 x와 y가 정비례 관계[y=ax]에 있다고 할 때, 이런 비례 관계 속에서 x, y 두 계기 중 y는 독립적인 정량이 아니라 이 비례 관계에 묶여 있는 계기로 규정된다. 즉 y(종속 변수)는 타자에 의해 규정된다. x 즉 독립 변수는 무차별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 비례 지수 a는 x를 a 번 반복하라는 의미이므로, 개수다. 이때 반복되는 단위는 곧 총수 x이다. 즉 x가 a 번 반복된다. 이때 a는 x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규정된 정량이다. 총수 x가 무차별한 정량이듯이 개수 역시 무차별한 정량이다.

y는 x를 a 번 반복해서 나오는 수이므로, a와 마찬가지로 개수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수는 단순히 개수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체를 지칭하는 총수가 된다. 지수는 총수이자 개수로서 두 계기를 동시에 지니지만, 지수의 두 계기 x, a는 각기 하나의 계기만을 지닌다. x는 총수로서만 의미를 지니고, a는 개수로만 여겨진다.

5)

직접 비례에서 개수 a와 총수 x가 나뉘어 있고 서로 무차별한 데, 양자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성립하면서 지수와 총수가 통일을 향해 다가가면서 새로운 비례가 출현한다. 직접 비례에 이어서 출현한 비례는 역 비례다. 역 비례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즉 a= x*y이다.

여기서 x와 y는 서로 무차별한 독립적 정량이면서도 대립적 관계에 묶여 있다. 하나가 줄어들면 그만큼 다른 하나가 늘어나며 하나가 늘어나면 다른 하나는 감소한다. 그런 점에서 하나는 타자 속에 자기의 규정을 가지며 타자의 규정을 자기 속에 품는다. 타자를 자기의 비-존재라 할 때, 자기는 자기의 비-존재 속에 속하며, 타자의 비-존재 때문에 자기가 존재하면서 타자의 비-존재를 자기 안에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 비례 속에 서 있는 크기들 가운데 하나는 자기를 연속해서 다른 하나로 넘어가서 이 하나의 크기는 그것과 다른 측면 즉 개수의 총수로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이 하나의 측면은 다른 측면으로 부정적 측면으로 부정적 방식으로 연속된다. 하나는 자기만큼 티자 속에서 지양된다. 각자는 개수로서 타자를 부정하는 것이다. 각자는 다른 것이 줄어드는 만큼 존재한다. 각자는 이런 방식으로 다른 것을 포함한다.”(논리학 초판, GW11, S. 182)

지수는 그 자체로서는 직접적 정량이지만, 이미 그 내부에서 x, y의 구별이 출현한다. 각 구별된 계기는 전체의 계기이며, 잠재적으로 전체다. 비례 지수 a는 양자가 변화할 수 있는 한계가 된다. 각자는 자기의 한계에 다가가지만 아무리 가더라도 다가가지 못하니, 각자는 잠재적으로 한계이지만, 이는 무한진행이며 그 도달은 다만 피안이나 당위에 머무른다.

“지수는 이런 직접적 규정 속에서는 비례의 두 측면이 지닌 한계이며 이 한계 내에서 두 측면은 상호 대립적으로 증가하고 감수하지만,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지수는 그 한계, 두 측면의 비-존재를 이룬다. 왜냐하면, 지수는 존재하는 전체이지만, 두 측면은 다만 전체인데 한 면에서는 존재하는 것이며 다른 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수는 두 측면이 무한히 다가가는 두 측면의 피안이며, 무한진행의 악무한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316)

지수는 두 구별된 계기에 대해서는 접근할 수 없는 피안이지만, 그 자체로서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정량이다. 그러므로 지수는 피안이 현존하는 것이다.

“이런 양자가 다만 점차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뿐인 무한자는 곧바로 긍정적 차안으로서 출현하며 현현한다. 그것이 곧 지수의 단순한 정량이다. 이 속에서 비례의 두 측면이 부착되어 있는 피안이 도달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316)

직접 비례에서 의존 관계는 일방적이다. 그러나 역 비례에서 두 정량의 의존성은 상호적이다. 그러므로 각각은 한편으로 독립적 정량이며 다른 한편으로 자기를 벗어난 정량이다. 이 가운데 독립적인 것은 총수가 되고 의존적인 것은 개수가 된다(x가 총수이면 y는 a/y의 개수를 지닌다). 어느 것이 총수가 되든 무방하지만, 자기를 총수라 하고 타자를 개수라 한다면 그 자신 속에 총수의 측면과 아울러 개수의 측면을 지니게 된다.

정비례에서 총수와 개수는 각기 독자적이고 서로 무차별한 정량이었다. 역 비례에서 총수와 개수의 통일이 출현하지만, 이런 통일은 다만 직접적이어서 교대적으로 한번은 총수가 되고 다른 한 번은 개수가 될 뿐이다. 총수와 개수가 완전한 통일을 이루는 가운데 제곱비례가 등장한다.

6)

헤겔은 역 비례를 거쳐 제곱비례를 설명하는데 이 제곱비례가 앞에서 미분 개념을 다룰 때 출현했던 것이다. 그 기본 형식은 x*x=x²의 형식인데, 여기서 x²이 곧 비례의 지수가 된다. 이 형태는 한편으로는 정비례와 닮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 비례와 닮았다.

즉 지수 x²이 총수 x에 따라 변화하고, x는 독립 변수이고 x²은 종속 변수라는 점에서 정 비례를 닮았다. 그런데 이 제곱비례에서는 총수와 개수가 서로 같다. 그에 따라 어느 것이 총수이고 개수이든 무방하며, 자기 안에 자기의 비-존재인 타자를 포함한다는 점에서는 역 비례와 닮았다.

“이제[제곱비례] 개수는 다만 총수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서 정립된다. 이것이 제곱비례에서 나타나는 경우다. 제곱비례에서는 그 자체에서 개수인 총수가 동시에 총수로서 자신에 대립하는 개수가 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318)

이런 제곱비례에서 지수는 총수의 제곱인데, 총수가 의미하는 정량과 지수가 의미하는 정량은 서로 다른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총수가 선이라면 지수는 그 제곱 즉 면을 의미하게 된다. 면과 선을 서로 다른 것으로 본다면, 여기서 어떤 것이 다른 것으로 이행한다는 생성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정량은 제곱 속에서 자신을 지양한다. 왜냐하면, 정량은 그 자신에게 타자로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신의 타자는 동시에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통해 제한된 것이다.”(논리학 초판, GW11, S. 185)

그러나 선은 면의 한계, 그 끝이라고 본다면, 이 제곱비례는 곧 면이 자기를 통해 자기를 생성한 것이 되며, 자기의 끝, 타자로부터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 된다. 비례는 이미 질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외연량처럼 추상적인 자기 관계가 아니라 타자에 대립해서 자기가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타자를 통해 자기가 규정되는 제곱비례에 이르면 질적인 것이 비로소 완전하게 출현한다. 제곱비례의 운동은 자기가 자신을 부정하고 다시 자기로 복귀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7)

제곱비례를 넘어서면 비례는 마침내 완전히 다른 정량의 관계가 된다. 이때 비례는 새로운 정량이 되며, 두 정량의 관계는 더는 수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이것이 척도다.

질적인 것은 자기를 지양해서 양적인 것으로 된다. 질적인 것은 타자에 대립해서 타자에 의해 규정된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빨간색이 아닌 것에 대립해서 빨간색이 된다. 질적인 것은 일반적 성질로 발전하고, 두 가지 성질의 관계를 통해 대자 존재가 출현하면서 양적인 것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양적인 것은 정량으로 발전한다. 이 정량은 다시 두 개 정량의 관계를 통해 비례로 발전한다. 이렇게 해서 양적인 것은 질적인 것으로 복귀한다.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운동, 질적인 것에서 양적인 것으로, 그리고 양적인 것에서 다시 질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운동을 통해 마침내 척도가 출현한다. 이 척도는 서로 다른 두 량의 관계다. 예를 들자면 무게와 부피의 관계인 비중과 같은 것이다. 이 서로 다른 두 량은 제곱비례를 넘어서 두 정량의 비례로 출현한 것이다.

두 정량의 비례를 통해 이제 등장한 새로운 정량은 앞에서 다룬 정량과 구분된다. 앞에서 질적인 것이 일반적 성질을 거쳐 대자 존재로 발전했듯이, 여기서도 그런 발전이 일어난다. 외연량은 추상적인 개별적인 정량이었다면, 이제 등장하는 새로운 정량 즉 척도는 특수한 정량이다. 전자가 어떤 개별자에 한정되는 것이었다면, 이제 척도는 일반성을 지닌 정량이다. 그러나 마치 성질의 일반성이 특수한 주관적 일반성이듯이, 이 척도 역시 특수한 주관적 일반성에 지나지 않는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55-미적분은 정당한가(4)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55-미적분은 정당한가(4)

1)

이상에서 헤겔은 뉴턴의 미분 증명이 이론적으로는 다른 미분 증명보다 탁월한 점을 제시했다. 그것은 페르마, 라이프니츠, 칸트 등이 여전히 무한소나, 사라지는 크기 개념에 매달렸을 때, 뉴턴은 최종 비례라는 개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미분은 곧 최종 비례이다.

그런데 헤겔은 뉴턴이 이론적으로 확립한 이런 최종 비 개념이 실제 계산 과정에서는 무시되고 말았다고 말한다. 헤겔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①계산을 편리하게 한다는 욕구가 미분 계산이 지닌 문제점을 간과하게 했다.

헤겔은 뉴턴이 범한 오류를 곱하기 즉 x*y의 미분을 끌어낸 증명에서 발견했다. 이 곱하기의 미분은 (x+1/2dx)(y+1/2dy)-(x+1/2dx)(y-1/2dy)이다. 뉴턴은 그 답이 xdy+ydx라고 했는데 사실은 dxdy가 추가돼야 한다.

그런데도 계산상의 욕구가 뉴턴이 자기 답이 오류라는 것을 무시하게 했다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뉴턴은 마찬가지로 미분 계산에서 첫 번째 항을 제외한 나머지 항은 그 값이 사소하기에 계산의 편의를 위해 버려도 무방하다고 보았다고 한다.

② 운동의 함수를 보면, 등속 운동은 v=ct 로 표현되고, 등가속 운동은 s=1/2at²이며 저항은 3차 함수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뉴턴은(이는 사실 라그랑쥬에서부터 유래하는데) 미분을 위한 전개식에서 첫 번째 항은 등속 운동을 의미하고, 두 번째 항은 등가속 운동, 세 번째 항은 저항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것은 전개식의 각 항에 질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예를 들어 낙하운동의 속도를 구하는 미분에서는 첫 번째 항 속도와 무관한 두 번째 이하의 항은 관계없으니 무의미한 것이라 보면서 제거했다는 것이다.

③세 번째는 카르노처럼 미분 계산에서 나오는 이항 정리에서 각 항은 동일한 비례가 반복되는 것에 불과하니, 버려도 된다는 주장이다.

2)

이어서 헤겔은 라그랑쥬의 입장도 소개하는데, 그는 뉴턴에 귀속되는 이유 중 ②을 포함하여 새로운 이유를 갖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미분 계산 가운데 이항 전개에서 나오는 각 항은 그다음 모든 항의 합보다 크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항은 점차 미분의 거듭제곱이 더 커지는 것인데(예를 들어 dx, dx², dx³ …) dx가 아주 작은 수이니 그 제곱은 제곱으로 작아지기 때문이다. 라그랑주가 들고 있는 이 이유는 사실 첫 번째 항을 제외한 나머지 항은 그 값이 사소하다는 주장과 같은 주장이니 주장①에 통합해도 될 것이다.

라그랑쥬의 주장을 제쳐 놓으면, 남은 것은 뉴턴이 말한 세 가지 이유다. 이 가운데 ②, ③ 주장은 그 주장 자체가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그럴 것 같지 않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뉴턴이 정말 그랬을까 싶은데, 일단 헤겔은 그렇게 파악한다는 사실만 말하고자 한다. 헤겔 자신도 그런 주장을 소개만 할 뿐, 정당한지는 따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핵심은 역시 첫 번째 주장에 있다. 뉴턴은 이론적으로는 최종 비례라는 개념을 끌어냈으나, 실제 계산에서는 다시 최종적 크기, 또는 사라지는 크기라는 개념으로 되돌아가면서, 라이프니츠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항은 크기가 작으므로 버려도 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헤겔은 뉴턴이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크기로 되돌아간 것은 수학적 증명 과정에서 dx와 dy가 비례 관계로 묶이지 않고 각자 독립적으로 출현하므로, 이를 최종 비례의 계기로 보지 않고, 사라지는 크기로 파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헤겔은 미분 계산에서 dx, dy는 단적으로 dy/dx의 계기로서만 여겨져야 하는데도 “특히 그런 기호를 적용하는 데서 기계적으로 계산하는 가운데 미분 계수의 양 측면[dx, dy]이 서로 떼어 내진다는 것으로부터 그런 계산이 끌어내는 장점이 사라진다”(논리학 재판, GW21, S. 265)고 한다. 여기서 그 계산이 지닌 장점이란 곧 미분을 비례로 이해함으로써, 미분 계산이 부딪힌 모순이 해결되는 장점을 말할 것이다.

3)

이상과 같이 헤겔은 뉴턴의 미분을 이론에서는 최종 비로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용에서는 이를 다시 사라지는 크기로 이해하는 잘못을 서술한 다음, 최종 비의 개념이 비례의 한계라는 개념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례의 한계란 곧 dy/dx가 질적인 크기로서,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 한계는 곧 가변적 크기의 함수 즉 원래 함수 관계에 있는 x, y 즉 F(x)가 지닌 한계다. 질적 한계(dy/dx)를 이루는 두 요소 dx, dy는 오직 이런 관계 속에서 계기로서만 존재하며 더는 독자적인 정량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말했듯이 정량에서는 한계가 자기에 외면적이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 스스로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 이런 정량은 그 한계 즉 규정이 자기에 외면적이니, 서로 동일하면서도 서로 무차별하다. 여기서 독특한 양적 관계 즉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이중성이 출현한다.

그러나 비례에 이르면, 한계는 다시 내면화하면서 고정된다. 하나의 질적인 한계 즉 어떤 규정은 내면화되는 동시에 다른 질적 한계나 규정과 대립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이제 하나의 비례 규정은 타자와 대립해서 자기를 규정한다.

이런 비례의 한계 개념에서는 앞에서 말했듯이 dx가 0으로 수렴하더라도, 비례의 한계 즉 dy/dx는 0/0이 아니라 일정한 값을 지니게 된다. dx 즉 증분은 끊임없이 0에 다가가는 점근적인 것이더라도, 비례의 한계는 일정하다. 그러므로 이런 비례의 한계 개념은 사라지는 크기로서 증분 또는 미분이라는 개념에서 해방된다.

“미분 계산에서 dx, dy로 출현하는 무한소는 어떤 유한적이지 않은, 주어지지 않는 크기가 지닌 부정적 공허한 의미를 더는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양적인 것의 질적 규정 즉 비례의 계기 그 자체라는 특정한 의미를 지닌다.” ”(논리학 재판, GW21, S. 265)

사라지는 크기라는 개념은 여전히 정량의 개념에 머무른다. 그러나 최종 비, 또는 비례의 한계라는 개념을 통해 진정한 무한의 개념이 출현하며, 정량은 그 자체로서 지양되면서 질적인 크기 즉 비례의 계기가 된다. 헤겔은 이를 “유한한 크기가 무한한 크기로 전환한다”라고 말한다.

“지적된 바와 같이 소위 미분은 비례의 양 측면 즉 정량이 사라짐을 표현하며[사라지는 크기] 남아 있는 것은 양적 비례이어서 그런 한 순수하게 질적인 방식으로 규정된다. 질적 관계는 여기서 사라지지 않으니, 오히려 바로 유한한 크기가 무한한 크기로 전환하는 결과로 나오는 것이다.” ”(논리학 재판, GW21, S. 268)

유한한 크기 즉 정량과 무한한 크기 즉 비례는 서로 다르다. 구체적 예를 들어 원호는 정량으로 본다면, 할선보다 클 수밖에 없다. 할선은 직선이며 두 점 사이에 최단 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호를 무한한 할선으로 구분하면, 무한한 원호는 무한한 할선과 같게 된다.

또 운동을 예로 들어 볼 때, 곡선 운동과 직선 운동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양적으로 양자는 다르지만, 무한한 크기로서는 양자는 같다. 즉 가속 운동[ungleichfoermige Bewegung]에서 무한히 작은 시간에 지나가는 거리는 등속 운동[gleichfoermige Bewefung]에서 무한히 작은 시간에 지나가는 거리와 같다.

4)

주석1을 마치면서 헤겔은 마지막으로 수학적 방법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옛날의 해석학자는 해석학을 어디까지나 구체적 대상과 관계하여 전개했다. 이때 구체적 대상이란 바로 공간적 관계나 역학적 운동을 말한다. 사실 뉴턴은 경험적으로 증명된 것 즉 갈릴레오에 의해 발견된 낙하 법칙이나 케플러에 의해 발견된 천체 운동 법칙을 그의 미적분론을 통해 정당화했을 뿐이다.

그러나 헤겔 당시 해석학자는 구체적 대상과 관계 속에서 지닌 실질적 의미를 무시하고 전적으로 추상적인 수학적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이를 모든 대상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려 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수학의 지위를 경험을 넘어 고양하면서 수학적 사유에서 자연법칙을 끌어내려 했다.

“그런 명제는 역학의 근대 해석학적 형태에서는 전적으로 계산의 성과로서 소개되며 그런 명제가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즉 어떤 실존이 그런 명제 자체에서 독자적으로 어떤 상응하는 의미를 지니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또한 그런 것의 증명도 고려하지 않는다.””(논리학 재판, GW21, S. 271)

“단순한 계산을 통해 경험을 넘어서 제시되는 법칙, 어떤 실존도 갖지 않은 실존 명제를 발견하려는 시도가 학문의 승리로 과장되고 있다.””(논리학 재판, GW21, S. 271)

“그와 같은 가상을 사람들은 단순한 믿음이나 경험적 지식보다 항상 더 우선시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방식이 단순한 주머니 돌리기 요술이나 증명하는 체하는 것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며 그 아래에 뉴턴의 증명조차 집어넣는데 굳이 숙고해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272)

그러나 헤겔은 이런 수학의 월권을 비판한다. 수학은 경험을 통해 이미 발견된 법칙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미적분론은 자기 제곱이 가능한 대상 즉 공간이나 역학적 운동에서나 타당할 뿐이라고 한다.

5) 이상 헤겔이 수학적 무한성이라는 이름으로 주석 1에서 전개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주석 2와 주석 3은 재판에서 추가한 것이다. 주석 2는 방정식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제외하고는 주석 1의 내용과 거의 합치한다. 주석 3은 적분 개념을 통해 다시 수학적 무산성을 소개하는데, 주요 내용은 미적분은 수적으로는 거듭제곱의 함수에서 적용되며 구체적으로는 공간 운동이나 역학적 운동에 적용될 수 있을 뿐, 모든 운동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미 주석 1에서 충분히 설명한 부분이라 더 구체적인 소개는 생략하려 한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54-미적분은 정당한가(3)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54-미적분은 정당한가(3)

1)

앞에서 헤겔은 자신의 진정한 무한성 개념을 소개했다.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것은 곧 두 정량 사이의 관계 또는 비례다. 여기서 각 계기는 다른 계기에 관계하여 규정되는 것이므로, 이런 관계는 질적인 것으로 된다.

이 질적 크기는 수적으로는 분수로 표현된다. 이런 무한량 가운데 거듭 제곱의 관계에 있는 것이 곧 분수 가운데 정수비로 환원되지 않는 루트나 파이로 표현되는 분수다. 수적인 제곱 관계는 구체적으로는 길이나 면적, 부피의 관계나 물체의 공간적 운동을 표현한다. 바로 이런 거듭제곱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이 미적분이다.

헤겔은 이처럼 미적분이 적용되는 무한량, 그 가운데서도 거듭제곱의 관계를 소개한 다음, 드디어 미적분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때 특히 뉴턴의 방식에 주목했는데, 그 이유는 뉴턴에 이미 진정한 무한성 개념이 비록 뉴턴 자신은 알지 못했더라도 출현했다는 것이다. 헤겔은 “그 규정의 발견자(즉 뉴턴이다)는 그 사상을 개념으로 아직 정초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적용할 때에는 그와 같은 더 나은 상태에 모순되는 방편이 필요했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3)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뉴턴이 발견하지만, 자각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2)

뉴턴은 미적분을 유출법이라고 했다. 이 유출법의 방식은 그 이전(페르마와 데카르트 그리고 뉴턴의 스승 배로우에 이르기까지)의 무한소 개념에서 기초하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무한소 또는 “불가분적인 것이라고 이해한” 무한 개념을 뉴턴은 다르게 이해한 것이다. 즉 “사라지는 가분적인 것”(논리학 재판, GW 21, S. 253)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뉴턴은 이 사라지는 것이 단순히 정량이 아니라 정량의 관계 즉 비례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그 점은 나중에 보도록 하자)

우선 미분법을 이해하기 쉽게 다음과 같은 도해를 보기로 하자. 아래의 도해에서 보듯이 곡선 F(x) 상에서 점 p1, p2가 있다고 할 때 두 점을 이으면서 곡선을 자르는 할선의 기울기는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작은 삼각형의 세로/가로 곧 F(x+h)-F(x)/ h이다. 이 식을 풀어서 두 번째 항 이하를 버리면, 미분식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F(x)가 이차함수 x²이라면, 이 할선의 기울기는 (x+h)²-x²/h이며 이 식을 이항 정리를 통해 풀어보면 2x*h/h+h/h*h가 된다. 이 식 가운데 h/h는 1이니 남는 것은 2x+h이다. 미분의 계산법에서는 이 h는 0으로 간주하고 버리며, 그 결과 미분은 곧 2x로 규정된다.

문제는 h/h가 1이라는 것과 남는 h가 0이라면서 버리는 이유 또는 정당성에 관한 것이다 페르마에서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h는 무한소이며 크기가 없는 것 즉 0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h를 버리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h/h다. 이것은 0/0이 되면서 악마의 소굴에 빠져 버리고 만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무한소 개념이 가지는 모순이라고 했다.

이 모순을 벗어나기 위해 라이프니츠는 이 무한소를 최소값으로서 0이 아니라, 무한히 작아질 수 있는 크기로 보았다. 그것은 0은 아니고 0에 다가가는 수로 규정되는데, 이것이 바로 앞에서 칸트가 설명한 무한진행이라는 개념이다.

라이프니츠의 무한진행으로서 무한소를 헤겔은 ‘사라지는 크기’ 즉 ‘무한히 가분적인 것’로 규정한다. 이 말 자체는 뉴턴이 쓴 말과 같지만, 라이프니츠에서 사라지는 것은 곧 정량, 크기다. 그러면 h/h가 1이라는 것은 이해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머지 h를 버리는 것이 문제다. 라이프니츠는 이 사라지는 크기를 아주 사소한 크기니, 버려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울프는 라이프니츠를 옹호하면서 실제 측정술에서 산의 높이를 잴 때 순간적으로 부는 바람 때문에 모래가 날아가 사라진 것은 계산에 빼도 무방한 것처럼 또는 일식이나 월식을 잴 때 집이나 탑의 높이를 무시하는 것처럼 미분 계산법에서도 아주 작은 크기는 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h는 무한히 사라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정한 크기를 가진 것이니, 수학적 엄밀성을 위해서는 버릴 수 없다.

3)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뉴턴은 ‘최종 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뉴턴은 이를 사라지는 크기라고도 했는데 여기서 크기는 곧 비례를 의미한다.) 즉 h가 아무리 작아지더라도 h/h는 일정한 크기의 한계를 지닌다는 것이다. 아래 도해를 보면, 할선의 기울기가 점차 접선에 다가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최종적으로 h=o가 되더라도 h/h는 일정한 비율(즉 접선의 기울기)로 남는다. 이것이 바로 최종 비이다.

헤겔은 이처럼 일정한 크기가 유지될 때 그 비례를 뉴턴이 최종 비라고 할 때 마음에 품었던 것이라고 본다. 이런 최종 비에서는 분자와 분모를 이루는 두 정량은 독자적인 정량이 아니다. 두 정량은 하나의 관계 속에서 통일되어 있으니, 여기서 두 정량은 비례의 계기에 불과하며, 서로가 아무리 줄어들더라도 일정한 비례를 유지하면서 줄어드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의 계기는 다른 계기를 통해서만 규정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뉴턴이 자기가 말하는 진정한 무한성으로서 비례 개념에 도달했다고 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h/h는 1로 받아들이고 반면 h는 버리는 이유가 정당화된다. 전자는 최종 비이며 h가 아무리 줄어들더라도 비례를 유지하지만, 후자 h는 줄어들면 마침내 0이 되면서 사라지는 것이다.

h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미분 계산의 정확성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정확성이 오히려 회복된다는 사실은 기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 아래와 같은 도해를 보자.

이 도해에서 보듯이 h가 줄어 들면(h->h’->h’->0′) 할선이 점차 점p에서의 접선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접선이 바로 구하려던 곡선의 기울기 즉 미분이다. 이처럼 기하학적으로 보면, 미분은 기울기가 지니는 한계 즉 극한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비례 아래서 사라지는 크기는 사라지기 전에서도 아니고 사라진 이후에서도 아니며 오히려 그와 더불어 사라지는 가운데 있는 비례로 이해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성하는 크기의 최초 비례는 그것이 생성하는 비례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3)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는 최종 비는 최후의 크기가 지닌 비례가 아니라 한계 없이 줄어드는 크기의 비례가 주어진 모든 유한한 차이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한계다. 그런 한계를 최종 비는 무가 될 만큼 넘어서지는 못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4)

현대에서 수리철학자 코헨과 바이어스트라세는 미분을 정의하면서 이런 극한 개념을 사용한다. 이 극한 개념은 헤겔이 뉴턴으로부터 발굴한 최종적 비례, 또는 비례의 한계를 의미하며 그런 한 코헨과 바이어스트라세는 헤겔의 개념 분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겠다.

“한계라는 표상에는 사실 가변적 크기의 질적 비례 규정이라는, 앞에서 제시된 진정한 범주가 들어 있다. 왜냐하면, 그런 가변적 크기로부터 등장하는 형식 즉 dx, dy는 단적으로 dy/dx의 계기로서만 여겨져야 하며, dy/dx 라는 기호 자체는 불가분적인 유일한 기호로 여겨져야 하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65)

3)

뉴턴은 이 최종비라는 개념을 이제 ‘생성하는 크기[genita]’, ‘생성의 원리’로 이해한다. 그것은 순간적인 증분이나 감분인데 곧 이 생성하는 크기는 무한소나 무한진행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증분이나 감분은 어디까지나 비례 관계 속에 있는 하나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적 증분이나 감분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 변화된 운동은 하나의 독자적 정량이며, 뉴턴은 이를 생성의 원리로부터 생성된 크기로 간주한다. 양자는 생성에서 저차적인 질서와 고차적 질서로 구분된다.

이런 설명은 뉴턴이 미분을 이처럼 운동, 생성의 개념으로 이해한 것을 잘 보여준다. 미분은 어떤 것이 운동할 때 어떤 순간에 운동을 변화시키는 힘을 말한다. 생성된 크기가 어떤 정량이라면, 생성하는 크기는 질적인 것이다. 전자는 현존의 무차별성, 외면성 속으로 이행한 것이며 후자는 타자와 관계 속에 규정되는 계기다. 그러므로 헤겔은 전자와 후자가 수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다르다 한다. 전자가 x, y로 규정된다면 후자는 dx, dy로 규정된다.

‘사라지는 크기[Letzte Groesse]’ 즉 정량의 무한진행이나 ‘최종 비[Letzte Verhaltnisse]’ 즉 비례의 무한진행은 유사한 듯 보이는데도 마땅히 구별돼야 한다. 정량은 무한히 사라지더라도 일정한 크기를 유지한다. 그것은 결코 0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비례의 무한진행은 비례 자체에서 분자와 분모를 이루는 크기는 비례 관계에 묶여 있어 아무리 줄어들더라도 일정한 비례 관계를 유지하지만, 비례를 벗어나게 되면 각 정량은 독자적으로 줄어들면서 마침내 0에 이르게 된다. 아래 두 인용문을 비교해 보라.

-사라지는 크기

“이런 표상이 사태의 진정한 본성을 표현하는 조건은 정량이 무한진행 속에서 갖는 정량의 항상성이 정량이 사라지는 가운데 자기를 연속하면서, 자신의 피안에 다시 다만 어떤 유한한 정량을 즉 급수[계열]의 새로운 항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4)

-사라지는 비례

“그러나 진정한 무한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행에서는 항상적인 것은 비례다. 그 비례는 아주 항상적이고 자기를 보존하기에 그런 이행은 오히려 다만 그 비례를 순수하게 드러내는 데 성립하며 또한 비례의 두 측면을 이루는 정량이 이 비례 밖에 놓이면서도 여전히 정량이 되게 한다는 사실 즉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규정이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4-255)

헤겔은 이와 연관하여 오일러의 주장을 소개한다. 오일러는 뉴턴의 최종비 개념을 근거로 하여 h/h는 1이지만, h=0이라는 주장을 이렇게 설명한다.

“무한한 차이[미분]은 다만 정량의 0이지, 질적인 0은 아니며, 정량의 0이더라도 단지 비례의 순수 계기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57)

오일러는 0/0의 모순을 피하기 위해 산술적 비례와 기하학적 비례를 구분했다. 수학적 비례에서 0/0은 악마의 소굴이 되더라도 기하학적 비례에서는 0/0은 일정한 값을 지닐 수 있다고 한다. 헤겔은 오일러가 기하학적 비례라고 한 것은 다름 아닌 뉴턴이 최종비라고 말한 것에 해당한다고 본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78)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8)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1. 도입부 : 원래 문제로 복귀. 고찰의 방법과 순서(제8권 543a-545c)

 

* 소크라테스는 말로 세운 정의로운 나라와 사람에 대한 논의를 마친 후 제5권에 들어와 애초의 논의 목적 즉 정의와 부정의 중 어느 것이 진정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를 비교 판정하기 위해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을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그러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앞서 말로 세운 나라에서 처자 공유에 관해 갖고 있던 자신들의 의문부터 해명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마지못해 그들의 요구에 응하게 되면서 제5권부터 논의는 애초의 계획에서 벗어나 처자 공유가 필요하고 가능할 수 있는 조건들로서 철학자와 철학자 왕정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다루어진다. 일탈의 형식으로 진행된 위와 같은 논의가 제7권 말미에서 모두 마무리되자 소크라테스는 이제 애초의 계획에 따라 다루려고 했던 주제 즉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에 대한 문제를 다시 꺼내든다. 이렇게 제8권은 주제 상 제7권이 아닌 제4권을 이어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543a-545c]

* 소크라테스는 여인γυνή들과 아이παῖς들의 공유κοινός는 물론 모든 교육παιδεία과 전시나 평시 활동에서 남녀가 공동으로 해야 하고 철학과 전쟁 관련 일 모두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이 왕들βασιλέας이 되어야 한다는 것(543a) 그리고 일단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이 세워지면, 전쟁의 선수ἀθλητής와 수호자φύλαξ로서 그들이 함께 지내야 할 거처οἰκήσεις를 포함하여 소유와 보수μισθός 그리고 임무와 관련해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가 동의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543b) 그런 연후 그는 글라우콘에게 원래의 논의를 벗어났다가 다시 여기로 오게 된 사정을 기억해 볼 것을 요구한다. 이에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가 좋은ἀγαθός 나라와 그것을 닮은 좋은 사람을 세웠음을(543d) 그리고 사실 그보다 한층 더 아름다운καλλίω 나라와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도 그랬음을 환기시킨 후 제대로 된ὀρθός 그 나라 외에 결함 있는ἡμαρτημένας 네 종류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기로 했음을 기억해 낸다.(543e) 그리고 그 목적 또한 누가 가장 뛰어나고ἄριστον 누가 가장 못났는지κάκιστον 의견의 일치를 본 후, 그들 중 누가 가장 행복하고 εὐδαιμονέστατος 누가 가장 못난 자이자 가장 비참한ἀθλιώτατος 자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확인한다.(544a) 그리고 글라우콘은 그때 폴레마르코스와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처자 공유와 관련한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네 종류의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가 중지되었다가 여기로 이어진 것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낸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기억을 칭찬한다. 그러자 글라우콘은 레슬링선수처럼 그때와 똑같은 붙들기 자세로 전 같은 질문을 드릴 테니 그때의 주제로 돌아가 네 종류의 정치체제에 대해 말해줄 것을 요구한다.(544b)

*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요구를 받아 그 네 종류의 정치체제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첫 번째는 우선 크레타체제Κρητική 또는 스파르타체제Λακωνικὴ이고 두 번째 체제는 과두정ὀλιγαρχία 체제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체제와 대립하는 것이면서 이것에 이어서 생기는ἐφεξῆς γιγνομένη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 체제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 모든 정치체제로부터 벗어나 있는διαφέρουσα 것이자 가장 말기에 이른 질병νόσημα과 같은 체제로서 참주정τυραννὶς 체제이다.(544c) 그리고 세습왕정δυναστεῖαι βασιλεῖαι이나 매매왕정ὠνηταὶ βασιλεῖαι 같은 정치체제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저 네 개의 체제들 사이 어디 쯤 속할 법한 것들이다.(544d)

* 소크라테스는 정치체제에 상응하여 인간 성격의 종류ἀνθρώπων τρόπων εἴδη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최선자정으로서 철학자왕정과 앞서 다룬 네 개의 결함 있는 정치체제에 상응하여 개인의 영혼도 다섯 가지로 존재한다. 우선 최선자정ἀριστοκρατίᾳ을 닮은 사람은 이미 설명했듯이 뛰어나고 정의로운 사람이다.(544e) 그리고 이보다 못난 나머지 네 종류의 사람으로서 첫 번째는 스파르타 정치체제에 상응하는, 승리를 사랑하고φιλόνικος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인간, 두 번째는 과두정적인ὀλιγαρχικός 인간, 세 번째는 민주정적인δημοκρατικός 인간, 그리고 네 번째는 참주정적인τυραννικός 인간이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들을 살펴 가장 부정의한ἀδικώτατον 자와 가장 정의로운 사람을τῷ δικαιοτάτῳ 맞세워 놓으면 순수한ἄκρατος 정의δικαιοσύνη와 순수한 부정의ἀδικία가 그것을 지닌 사람들의 행복εὐδαιμονία과 불행ἀθλιότης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견주어 보려는 우리의 고찰도 완결될 것이라고 말한다.(545a) 그러면 트라쉬마코스에 설득되어 부정의를 추구할지, 아니면 지금 드러나고 있는 논의에 설득되어 정의를 추구할지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545b)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네 종류의 인간, 네 종류의 영혼을 살피면서 앞서 성품ἦθος에 대한 고찰σκοπεῖν을 시작할 때 방식 그대로 개인ἰδιώτης보다는 정치체제를 먼저 살핀다. 그래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도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정치체제 즉 명예정τιμοκρατία이나 명예통치정τιμαρχία을 먼저 살피고 그 정치체제와 상응하는 인간을 고찰하고 같은 방식으로 이어서 과두정과 과두정적인 인간,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을 관찰하고 마지막으로 참주정과 참주정적인 영혼을 살피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애초 제기한 문제들을 판정κριτής하기에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54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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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3a – 543b : 이곳에서 동의된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 내용들은 제3권, 제4권에서 다룬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415d-421c)과 임무(421c-427c) 그리고 철학자의 자질(484a-487a)과 철학자 왕(497a-502c)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참고.

* 543b ‘전쟁의 선수athlētēs’ : 403e에서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을 가장 큰 시합의 선수들로 언급하고 있다.

* 543d ‘좋은 나라와 그것을 닮을 좋은 사람을 세웠음을’ : 제5권 서두 449a 참고

* 543e ‘그보다 한층 더 아름다운 나라와 사람’ :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굳이 구분하려고 하면 제2권에서 제4권까지 말로 세운 나라와 나중 제7권에서 제시된 철학자 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나눌 수 있다. ‘한층 더 아름다운 나라와 사람’은 그 두 나라 중 후자를 가리키는 것이긴 하지만 말로 세운 나라에서 언급된 통치자의 자질을 보면 내용적으로 이미 철학자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 두 나라는 다른 나라가 아니다. 이곳의 표현은 다만 논의의 단계상 말로 세운 나라의 통치자가 명시적으로 철학자임이 드러났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543e ‘그 나라 외에 결함 있는 네 종류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기로 했음을 기억해낸다. : 제4권 445c, 제5권 449a 참고

* 544a ‘누가 가장 행복하고 누가 가장 못난 자이자 가장 비참한 자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었다’ : 제2권 361d 참고

* 544c 크레타체제와 스파르타체제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제2권 제9장-제10장 (1269a30 – 1272b20) 참고. 플라톤은 이곳에서 이 체제를 명예를 사랑하는 정치체제 즉 명예정timokratia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 544c 질병nosēma : 참주정은 플라톤뿐만 아니라 당대 민주정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질병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그렇게 불렸다. 이소크라테스 <헬레네 찬가> 34 참고.

* 544d 매매왕정ōnētai basileiaiι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정치제제를 ‘관직을 높은 재산 자격 조건에 따라서 임명하고 그들 자신 그러한 자격을 지니는 남아 있는 자들을 임명하는 경우’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예정이라는 명칭을 평가재산timēma에 기반하여 수립된 금권정의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이 규정하고 있는 이곳의 명예정과 내용상 차이가 있다. 그만큼 명예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칭은 아니다. 플라톤에게 금권정은 이곳에서는 과두정에 해당한다(550c). <정치학> 제4권 1292b. 플라톤 <법률> 680a-b,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9권 제10장 참고.

* 544e ‘최선자정’aristokratia : 플라톤의 철학자 왕정에서 왕은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다.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왕의 수가 아니라 그 왕이 철학자인가이다. 플라톤은 직위명이 아니라 실제 최고 권력자dynatēs를 거론할 때 기본적으로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473d) 그래서 플라톤 스스로도 철학자 왕들이 여럿인 체제를 최선자정aristokratia으로 부르기도 한다.(445d) 철학자의 지배라는 점에서 플라톤에게 철학자왕정basileia과 최선자정aristokratia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aristokratia는 이후 정치사에서 귀족정aristocracy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면서 플라톤의 철인왕정이 귀족정으로 불리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귀족정은 귀족이 곧 철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철학자왕정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곳 기준에서 보면 높게는 명예정에 낮게는 과두정에 가깝다.

* 545d ‘개인보다는 정치체제들에서 먼저 시작했듯’ : 제2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대문자 비유를 끌어들여 소문자보다 대문자가 보기 쉽듯이 인간 개인의 영혼에 대한 논의를 나라의 계층에 대한 논의로 확대해 정치체제를 먼저 다루고 있다.(368d-369a). 이곳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나라를 먼저 살핀 후 개인의 영혼을 유추하던 앞의 논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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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권은 나라의 타락 과정과 그에 닮은꼴로 대응해 있는 영혼의 타락 과정을 일련의 연속된 흐름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제8권에서 플라톤이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타락 과정 각각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피기 전에 그 흐름 전체를 크게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플라톤이 논의에 앞서 타락 과정에 포함된 정치체제 전체를 미리 순서에 따라 제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점을 고려하여 그 전체 흐름을 내용적으로 좀 더 풀어서 정리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무엇보다 타락은 이상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층 가운데 통치 계층의 타락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통치 계층의 변화는 마치 도미노처럼 계층 간 내분stasis을 일으켜 우선 전사 계층의 변화를 초래하고 끝내는 생산자 계층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먼저 통치계층이 이성 능력의 결함에 따라 후계 권력으로 갈수록 통치 능력을 상실하여 전사 역할 정도만을 수행할 정도로 타락하면 철인왕정은 명예정timokratia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통치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전사 계층들도 점차 본분을 넘어 통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수호자 계층 간 권력 투쟁이 일어나고 끝내는 그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소수 전사들이 통치하는 과두정oligarchia이 들어선다. 이미 명예심조차 상실하고 부와 권력의 맛을 본 과두주의자들은 권력을 부를 축적하는 최상의 방편으로 여겨 매관매직은 물론 생산자 계층의 재산마저 착취하여 나라는 갈수록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로 양극화된다. 민주정dēmokratia은 이러한 소수 과두주의자들의 착취로 빈곤의 나락에 빠진 민중들이 혁명을 통해 과두정을 무너뜨리고 수립한 정체이다. 민주정에 이르면 기능 분업적 계층은 남아 있어도 적성에 따라 소속을 구분하는 장치는 모두 와해되어 본래 소질이나 직분에 상관없이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 추첨에 따라 관직도 맡을 수 있고 전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싸울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방임의 상태에서 모든 사람의 욕구만은 이미 물질적 욕구로 일양화되어 있다. 그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건 부의 획득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 날로 경쟁이 격화되고 급기야 서로에 대한 모함과 소송이 판을 치면서 나라는 극도의 분열과 혼란에 빠져든다. 그러자 이러한 혼란을 틈타 민회를 조종하는 자들 중 가장 사나운 무리들이 가난한 민중을 등에 업고 최고 권력을 탈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장악한 후 빈민층을 구제하기는커녕 되레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이용해 오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몰두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기 위해 폭압적인 독재 권력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민주정은 가장 나쁜 정치체제로서 참주정tyrannis으로 전락한다.

* 앞으로 이러한 타락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둘 것이 이밖에 몇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이러한 나라의 타락과정 모두 이를테면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에로의 타락 과정 모두 자신이 속한 계층이 본래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본래의 분업적 계층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자신이 속한 계층의 본래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명예정이 전사 중심의 과두정으로 타락했다고 해서 통치 계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통치 계층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다 자신의 직분을 버린 채 전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과두정이 민주정으로 변모했다고 하더라도 통치 계층, 전사 계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들 모두가 자신의 직분을 잃고 생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타락이라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다만 자신이 속한 계층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이른바 주도권을 상실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의 타락 과정도 나라의 타락 과정과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영혼 세 가지 부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그들 세 부분의 영혼들 내부 간 갈등이 진행되면서 그들 상호 간의 지배 관계가 점차 다르게 변모한다. 이를테면 명예정적인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영혼이 모두 기개적 영혼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영혼 삼분설에 따라 이성적 부분의 영혼, 기개적 부분의 영혼, 욕구적 부분의 영혼을 다 갖고 있되, 기개적 부분의 영혼과 다른 영혼과의 지배 관계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즉 기개적인 영혼의 부분이 그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결정하는 주도권을 갖고 나머지 부분 이를테면 이성 부분을 도구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과두정적 인간, 민주정적인 인간, 참주정적인 인간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인간들 모두 각기 서로 다른 영혼 부분들을 가지고 있되, 그러한 그들 서로의 관계에서 이성적 영혼 부분이 약화되어 본래의 조화로운 관계가 무너지고 그에 비례하여 타락한 영혼 부분이 다른 영혼 부분을 압도하여 자신의 성향에 맞추어 주도적인 역할을 행사함에 따라 각기 그러한 인간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이것을 뒤집어 보면 타락 과정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필연의 과정이 아니라 비록 쉽지는 않지만 여전히 온전한 영혼을 보전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 극복과 반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 즉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 이밖에 제8권의 논의가 이루어지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점이 또 있다. 그것은 나라의 타락 과정과 개인 영혼의 타락 과정 모두 대문자와 소문자의 관계가 그렇듯이 형식적으로는 서로 대응 관계를 갖고 각기 독립적으로 서술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용에서 보면 그것들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서 이상 국가를 다룰 때 나라와 영혼의 유기적 성격을 강조했던 것 그대로 플라톤은 결함 있는 나라들의 변화를 언급하면서도 각각의 나라들과 그 계층을 구성하는 개인들 영혼의 변화를 유기적으로 연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점은 이제 우리가 제8권을 살피면서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주제 즉 플라톤의 정치체제 변동론이 근대적인 의미에서 일반적인 정치철학적 주제로서 다루고 있는 정체체제 변동론과 그 본질적 성격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점차 밝혀지겠지만 화두 차원에서 미리 이야기하자면 플라톤의 정치체제 변동론의 특징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전제로 두고 성립된 근대적 의미의 정치체제 변동론과 달리 인간 본성의 중층성을 토대로 인간의 내적 영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정치체제 변동론 즉 인간 욕망구조의 변화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그 결과로서 드러나는 정치체제 변동론이라는 점이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이른바 영혼의 정치철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정의로운 나라는 계층 간 조화라는 사회적 조건에서만이 아니라 개인들의 내적 상태, 즉 정의로운 영혼에로의 자기 고양이 담보될 때 비로소 가능하고, 부정의한 나라 역시 같은 방식으로 부정의한 영혼들의 내적 관계에 상응하여 그 관계가 본래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에 비례하여 각각 그에 상응하는 부정의한 나라로 전락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최상의 정치체제로 여겨지고 있는 민주정은 본래의 각기 다른 영혼들이 이성 부분의 주도하에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관계에서 최하급의 영혼 즉 물질적 욕구가 주도하는 관계로 전락한 상태 즉 본래의 다양하고도 중층적인 본성 상태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마치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물질적인 욕구만 갖고 태어난 것처럼 여기고 있는 상태에서 채택된 정치체제, 다시 말해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고양과 회복을 통해 극복해야 할 정치체제인 것이다.

* 그리고 위에 추가해서 미리 논의해 볼 사안이 있다면 그것은 제8권에서 플라톤이 그리고 있는 나라와 개인의 타락 과정이 실제 정치체제의 역사적 변화와 관련하여 플라톤의 퇴행사적 역사관 내지 그 자신의 비관적인 숙명론을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토인비(A. Toynbee)가 그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정치체제 변화는 비록 타락하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것을 근거로 플라톤이 실제로 정치체제가 그렇게 변화해왔고 변화해 갈 것이라고 여겼다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곳에서 서술되고 있는 타락 과정은 원천적으로 정의로운 나라와 부정의한 나라를 서로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를 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애초부터 상정이 예고된 것이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나라가 갖고 있는 특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가장 부정의한 나라가 있다면 그런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점에서 그러한 나라가 되었는지를 드러낸 후 그 결함들과 나쁜 점들을 근거로 그 나라가 좋음과 행복의 측면에서 정의로운 나라와 결코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의 나라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논의 목적상 일종의 설명을 위해 채택된 논리적 심리적 귀결 방식에 따라 이르게 된 나라일 뿐 실제 역사적 전개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러한 귀결을 이끄는 조건들이 결코 일양적일 수 없고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한, 그 변화의 실제적 방향과 흐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플라톤에게 바람직한 방향과 목표는 분명 주어져 있지만, 그것의 도달 여부는 능력에 따른 가능성의 영역이지 필연의 영역이 아니다. 게다가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플라톤의 <국가>의 근본 주제가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고려하면 오히려 퇴행사적 역사관보다는 절망적인 현실을 딛고 일어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진취적인 역사관으로 평가하는 것이 플라톤의 근본 의도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번 밝혔듯이 플라톤 철학은 경직된 정적인 목적론이 아니라 목적을 행한 분투 어린 노력, 가능적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동적인 함양을 강조하는 역동적 목적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말년의 <법률> 또한 가능성 차원에서 현실에 부합하는 최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조건들의 탐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굳이 실제 역사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해도 플라톤이 그린 이상 국가는 아테네 정치사에서 존재한 적도 없거니와 실제 역사적 전개 과정 또한 이곳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타락의 과정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문맥에는 플라톤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역사적 경험들이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플라톤이 제시하고 있는 특정 정치적 변화 국면에 대한 설명들은 실제 일어난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곳의 서술과 설명의 초점은 정치체제들의 역사적 변화를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행복임을 증명하려는 애초의 논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정치체제와 인간 본성의 유기적 관계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데 모아져 있다. 특히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그러한 해명과정에서 인간의 본성과 관련한 개인의 심리 내지 욕망 구조의 변화가 정치체제를 결정하는 중대 변수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지닌다.

* 이상이 제8권의 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두어야할 몇 가지 사항들이다. 제8권을 살피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사항들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음미하게 될 것이다.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

  2. 최우수자 통치로부터 명예정으로 체제 변동 : 명예정과 명예정적인 인간(545C-550C)


 

헤겔 형이상학 산책53-미적분은 정당한가(2)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53-미적분은 정당한가(2)

1)

앞의 글에서 헤겔은 미적분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무한소나 무한진행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무한 개념 즉 진정한 무한을 설명했다. 진정한 무한은 두 정량 사이의 비례 관계이며, 타자를 통해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며 질적인 크기라고 했다.

이런 무한량의 개념은 이미 양적 무한성을 다룰 때 헤겔이 설명한 것인데, 아직 이 무한량이 미적분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 설명은 주석 1의 후반부에 들어가서 구체적으로 소개되는데, 이에 앞서서 헤겔은 이런 진정한 무한성의 개념을 수적으로 표현하는 문제에 다시 골몰한다.

무한량은 수적으로는 분수로 표현된다. 헤겔에서 셈은 곧 새로운 수를 낳는데, 더하기 빼기는 정수에 머무른다. 곱하기에 이르면 이미 두 개 정량의 관계가 출현한다. 곱하기는 더하기로 환원될 수 있다. 3*4는 세 번씩 더하기를 네 차례 걸쳐 계속하면 얻어진다. 그러나 곱하기의 진정한 의미는 두 정량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3미터 길이를 폭으로 4미터 이동한 것일 수 있으며, 시간 당 3키로 속도로 네 시간째 달린 거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곱하기는 흔히 더하기로 환원되면서 두 정량의 관계는 감추어지고 마는데, 이 두 정량의 관계는 곱하기를 뒤집은 셈인 나누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누기는 두 개의 정량이 서로 관계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2/7이 그렇다. 두 개 정량의 차이와 동시에 관계가 빗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2)

나누기를 표현하는 분수는 두 개 정량의 관계라는 점에서 이미 무한량을 표현한다. 그러나 정수비로 환원될 수 있는 분수는 무한량을 은폐한다. 그것은 독자적인 하나의 정량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수비로 환원될 수 없는 분수가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무리수나 통약불가능한 수(예를 들어 원주율)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에 이르면 이런 분수가 무한량을 표현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헤겔은 무한량을 표현하는 두 개의 표현 형식을 비교한다. 이 두 표현 형식은 정수비가 되는 분수에서도 성립하지만, 여기서는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정수비가 아닌 분수에서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후자의 측면에서 두 표현 형식의 차이를 살펴보자. 하나는 무한 계열[Reihe: 급수]의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분수 표현이다.

①: 2/7, 루트 2, 파이

②: 0.285714.., 1.141…, 3.14…

②의 표현 형식을 보면, 무한 계열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표현은 ①을 개수[Anzahl]로 표현한 것인데, 이 경우는 정수비와 달리 결코 최종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기서 표현된 것은 진정한 전체에 비해 모자라며 항을 추가해서 필요한 만큼 더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항을 추가하더라도 모자라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 규정은 당위에 불과하며 악-무한 또는 무한 진행을 표현한다.

헤겔은 이런 표현은 “질적인 규정성에 기초하는 것을 개수로 표현하려는 것”(논리학 재판, GW21, S. 244)이기 때문에 그런 모순은 해소되지 않는 모순이라고 한다. 또는 표현하는 것은 정량이고 표현되는 것은 무한이니, 양사의 상이성 때문에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달해야 하는 한계는 자기의 항 밖에 있다.

반면 ①의 표현 형식을 보면 이런 무한 계열로 표현되는 것이 일정한 합에 이미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합이 곧 분수며 루트며 파이다. 이런 표현 형식에서는 ②의 표현에서 드러났던 무한성이 다시 감추어진다. 그러나 ①의 표현 형식은 이 무한성이 사실은 두 개의 정량의 관계라는 점이 그것도 일정한 비례 지수 즉 질적인 크기를 가지고 있음을 표현한다. 이런 표현은 무한량의 한계를 직접 표현한다.

“급수는 정립된 항 때문에 무한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즉 그 항에 본질적으로 속하는 타자가 그 급수의 피안에 있기 때문에 무한하다.”(논리학 재판, GW21, S. 245)

“그러나 그 급수에 반해서 유한한 표현 또는 그런 급수의 합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결함이 없다. 그런 표현은 급수가 다만 추구하는 값을 완전하게 포함한다. 피안은 도주하는 것으로부터 소환되어서 그런 표현의 본질과 본질이어야 하는 것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동이한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45)

3)

헤겔은 여기서 스피노자의 무한 개념을 소환한다. 흔히 유한은 긍정이고 그 부정인 무한은 부정으로 규정되지만, 스피노자는 유한을 오히려 타자의 부정으로, 무한을 자기 긍정으로 규정한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스피노자의 무한 개념이 진정한 무한성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스피노자는 이런 절대적 긍정성으로서 무한 개념을 예를 들어 두 개의 원을 통해 설명했다. 즉 서로 부등한 원이며 하나의 원이 다른 원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중심이 다르면서 서로 접촉하지 않을 때 두 개 원 사이의 공간은 일정한 크기를 지닌 것이지만, 그것을 수를 통해 표현하려 하자면 무한한 계열이 필요하니, 바로 이것이 현존하는 무한성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무한에 관한 무한을 급수나 집합으로 표상하는 것을 내버리고 무한히 현재적이고[gegenwaertig] 완전하다는[in sich vollendet] 사실을 위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스피노자는 전자를 상상의 무한으로 후자를 사유의 무한으로 부른다. 이 후자가 진정한 무한성[wirkliche Unendlichkeit]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에서 자기 긍정으로서 무한성은 절대적 통일, 부동의 통일이며, 그런 점에서 타자를 매개로 해서 자기 내로 복귀한 자기 긍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고 한다.

4)

이상 헤겔은 진정한 무한성의 개념을 소개했다. 그 무한량은 두 개 정량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이는 수적으로는 분수로 표현된다. 이 분수적 표현을 곱하기의 표현 즉 함수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수적으로 같은 분수로 표현되더라도, 정수비로서 분수와 무리수와 같은 분수는 구분된다. 정수비는 곱하기로는 y=ax와 같은 함수로 표현된다. 여기서 정수비 a는 고정된 정량 즉 개수를 의미한다. 여기서 서로 함수 관계에 있는 두 정량은 “각자 고립적으로 독자적인 정량이며, 그 함수 관계는 그 수[정량]에 본질적이 아니다.” 즉 그 함수 관계는 두 정량에 대해 무차별하다.

물론 이 사이에도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는 곧 무한량이다. 그러나 그런 무한량은 무한성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처럼 관계 즉 비례가 그 정량에 외면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수비에서 무한량은 운동에서는 등속운동과 같은 것이거나 비중(=무게/ 부피)인데, 여기서 미분은 제로라는 점을 생각하면 헤겔이 왜 무한량이 충분히 자기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말하는가가 이해된다.

반면, 등가속 운동 즉 Y=1/2at² 이나 포물선 운동 y²=x 는 이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함수의 양 측면은 특정한 정량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함수 자체가 고정된 정량이 아니라 가변적 크기다. 양자는 제곱 비례하며, 이런 제곱 비례는 비례를 이루는 두 정량과 외면적인 관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계를 지닌다.

그러므로 여기서 관계하는 정량은 더는 독자적 정량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다른 정량과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고 따라서 타자에 대한 관계를 자기에 내재하는 것으로 함축하고 있다.

헤겔이 미적분을 정당화할 때 결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바로 정수비와 달리 제곱 비례는 관계하는 정량에 대해 내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함수 관계에 있는 x와 y는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즉 dy와 dx인데 이 표현은 사실 라이프니츠가 무한소, 미분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지만, 헤겔은 이를 y/x에서처럼 외면적 관계가 아니라 내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dy, dx는 더는 정량이 아니며 단지 비례 속에서만 의미를 지닌다”(논리학 재판, GW21, S. 251)는 것이다.

5)

무한량은 두 정량의 관계라 했다. 이 두 정량은 동일한 정량에서 서로 다른 정량일 수도 있고, 종류가 다른 정량일 수도 있다.

처음은 곱해진 것[또는 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 동일한 정량일 때다. 이때 두 정량의 사이는 무차별하며, 외면적이니, 이런 동일한 정량의 관계는 정수비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수비에서도 미적분이 성립하지만, 실상 여기서는 그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이 경우 미분은 0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 정량이 다른 종류일 때 그 관계는 물질적 결합을 의미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원소의 상호침투적인 화학적인 결합이 이에 속한다. 이런 화학적 결합에서는 하나의 정량이 자기를 지양해서 완전히 다른 정량으로 이행하니, 이는 구조적으로는 미분적 관계이지만(상호 침투가 그런 미적분의 관계를 보여준다), 더 이상 수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수는 없다. 이것은 수학적 운동을 넘어선 물질의 구체적 운동에 속한다.

수학적인 미적분이 다루어지는 영역은 이 가운데 특히 동일 정량이 거듭제곱의 관계에 있는 경우다.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곧 거듭제곱 도는 자기 제곱이다. 이제 곱하기가 자기 제곱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 결과 새로운 정량이 출현할 때 이런 곱하기는 자기 자신을 제곱하는 것이니, 자기에 내면적인 것이며 이때 곱해진 것들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비례가 아닌 제곱근의 관계에 있다. 이때 비례는 정수화할 수 없는 무한급수의 형태로 출현한다.

자기를 제곱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길이를 길이로 곱해 면적으로 구하거나 면적을 면적에 곱해 부피를 구하는 것과 같은 운동이다. 물질의 운동 가운데 속도와 가속도, 운동 에너지 사이의 관계도 이런 거듭제곱에 속한다.(여기서 시간은 공간적 길이의 하나로 여겨진다)

“무한은 이런저런 정량으로서 지양될 뿐만 아니라 양 일반으로서 지양된다. 그러나 양적 규정성은 남는다. 그것은 정량의 지반, 원리다. 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데 최초의 개념에 도달한 양적 규정성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51)

미분이 이처럼 공간운동이나 역학적 운동에 한정된다는 사실은 헤겔이 철학의 방법론으로 수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기피하는 까닭이 된다. 하지만, 헤겔이 수학적 방법이 양을 다루는 역학의 영역에서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양적인 것의 영역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은 곧 이런 수학적 방법 즉 미적분이라 본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52-미적분은 정당한가(1)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52- 미적분은 정당한가?(1)

1)

헤겔은 양적 무한성을 다룬 끝에 주석을 세 개 붙였는데 그 가운데 주석 1은 초판에서 이미 나오지만(내용을 약간 수정했으나 그 수정은 언어적 표현에 그친다), 주석 2와 3은 재판에서 추가한 부분이다. 이 세 주석에서 헤겔이 다룬 것은 소위 미적분의 정당화 문제다.

먼저 주석 1 앞부분에서 헤겔은 자신이 왜 미적분의 정당화에 뛰어들었는가를 설명하는데, 이 부분을 읽어보면, 그의 의도와 그의 목표가 잘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이 부분은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로서는 지극히 난해하다. 더구나 헤겔이 수학의 공식을 철학적 개념으로 서술하기에 그의 말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기도 힘들다. 그 때문인지, 이 부분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거의 없다. 그런 까닭에 필자는 부득이 헤겔이 주석에서 자기의 논지를 전개한 대로 따라가면서 그의 주장을 요약하려 한다.

주석 1을 시작하면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미적분의 정당성은 주로 ‘성과’의 ‘올바름’에 기인하지만, 그 증명은 정당화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그 자체로 잘못으로 인정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미적분이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의 본성을 알지 못하고 비판 없이 사용된다면 “그 적용의 범위를 결정하지 못하거나 그 오용을 막을 수 없는”(논리학 재판, GW21, S. 236-237) 것이 아닐까?

헤겔은 이런 미적분의 정당화를 수학자의 손에 맡겨두지 않고 자기가 직접 다루게 된 이유로 이 미적분의 토대가 되는 개념이 철학에서 다루는 무한 개념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그는 심지어 “수학적 무한[미적분]에 근저에는 진정한 무한 개념이 놓여 있으며” 이것은 기존의 철학에서 논의된 형이상학적 무한 개념(즉 헤겔의 말로 악무한이나 무한 진행)보다 더 차원 높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수학은 자신의 근저에 있는 무한성 개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을 정당화하지도 못한 채, 그런 철학적 정당화는 자기들이 할 바는 아니며, 자기들은 그저 자기가 처한 고유한 지반 위에서 일관적으로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믿으니, 그 때문에 자기가 개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2)

헤겔은 미적분이 증명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다고 했을 때, 그 오류는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다. 즉 미적분은 “유한한 크기를 한번은 무한소만큼 증가시키고 이 무한히 작은 크기를 부분적으로는 그다음 계산에 보존하지만, 일부분은 무시함으로써” 일어난다고 한다. 이처럼 일부를 무시하는 이유는 “그 일부가 영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정량이어서 무시될 만한 것이기”(논리학 재판, GW21, S. 237)때문이라 한다.

예를 들어 y=x² 의 미분 계산에서 도중에 전개한 항 가운데 미분을 포함하는 첫 번째 항 2x*dx/dx는 남기고 두 번째 항 dx²/dx는 제거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일상적 삶에서와 달리 수학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수학은 엄밀하고 정확한 학문이며 더구나 “수학적 인식에서는 증명이 본질적이기에” 조금이라도 잘못된 증명은 수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헤겔의 이 주장은 나중에 상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미적분에 관한 기초만 이해하더라도 충분히 인정할 만한 주장이다.

3)

헤겔은 미적분의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 일단 이렇게 문제점만 던져놓고는 무한량에 대한 앞에서 설명한 개념으로 다시 돌아간다. 왜냐하면, 미적분에서 주로 사용하는 무한 개념이 무한소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무한소 개념은 역사적으로 고대에서(알키메데스나 카발리에, 페르마 등) 등장해 라이프니츠 직전까지 계속됐기 때문인데 이 개념은 미적분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본다. 헤겔은 이 논의에서 미적분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은 이런 무한소 개념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무한성 개념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우선 그는 무한히 작은 양은 정량이 아니라고 한다. 이 무한소는 최소치라는 의미인데 즉 “그것을 넘어서 더 적은 것이 없는 크기”(논리학 재판, GW21, S. 239)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정량인 한에서는 항상 증감할 수 있다. 증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량의 본성에 속한다. 따라서 최소치란 즉 더 적어질 수 없는 것은 더는 정량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도 무한소는 하나의 크기로 받아들여지니, 무한소란 개념 자체에 자기모순을 지닌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량은 무한한 한에서 지양된 것으로 사용되기를 요구하며 즉 정량은 아니면서도 그것의 양적인 규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서 사유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39)

헤겔은 이때 즉 무한자가 일정한 크기를 가지게 된다면, “그런 무한에 대해 더 큰 것과 더 적은 것의 구별이 성립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240)라고 하니, 나중에 칸토르가 무한 집합론의 모순으로 설명했던 것을 헤겔은 이미 선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칸토르의 모순은 예를 들어 흔히 자연수의 집합은 정수의 집합보다 작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연수와 정수는 둘 다 무한한 원소를 지니고 각 원소는 서로 대응하니, 양자는 일대일 대응 관계에 있고 따라서 크기가 같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연수의 무한은 정수의 무한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상식은 무한을 일정한 값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4)

최소치라는 개념을 비판하면서 칸트는 무한량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라는 일정한 값이 있어서는 안 되며 이 무한량-칸트는 무한한 전체라는 말로 대체한다.-은 끊임없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운동 중인 것 즉 무한 진행으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여기서는 앞에서 주어진 것을 넘어가는 관계만이 들어 있고 주어진 것에 따라서 그것을 넘어선 무한한 전체는 다른 무한한 전체보다 더 클 수도 있고 더 적을 수도 있게 된다. 무한한 전체의 절대적 크기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칸트에서 무한량에서 이처럼 주어진 양을 넘어가는 운동은 주관의 작용에 속한다. 주관은 끝없이 주어진 양을 넘어가는 가운데 전체를 동시에 파악하는 “종합은 결코 완성될 수 없게”(논리학 재판, GW21, S. 240, 이 구절은 칸트 재인용) 된다.

이를 거꾸로 보면 주관이 넘어가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대상인 수 자체는 마침내 완성된 최대치라는 일정한 값을 지니게 되니, 여전히 앞에서 모순으로 여겨진 최대치, 최소치라는 개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는 넘어가는 운동은 주관에 속하고 정량이라는 크기는 대상에 속하면서 “모순이 객체와 주관에 나누어 배당될 뿐”(논리학 재판, GW21, S. 240)이다.

헤겔은 이런 무한 진행 역시 모순을 피할 수 없는데, 이 모순은 미적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앞에서 든 이차함수의 예에서 항을 전개하면 첫 번째 항은 2x*dx/dx이다. 이때 뒷부분 dx/dx는 결국 1이니, 여기서는 2x만이 남는다. 그러나 만일 dx가 무한소로서 어떤 값을 지니지 않는다면 즉 마침내 0에 도달하고 마는 무한히 작은 양이라면, dx/dx는 곧 0/0이 되면서 판단 불능에 빠지게 된다.

0/0은 1도 되고 100도 되는 무의미한 수다. 이런 판단 불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dx는 최소의 값을 지녀야 하며 그때 비로소 미분 계산에서 첫째 항에서 2x만을 남기는 이유가 이해된다.

5)

헤겔은 마침내 자신의 무한성 개념을 제시한다. 그의 무한성 개념은 이미 앞에서 제시한 대로 비례(또는 관계 Verhaltnisse]의 개념과 연관된다. 그는 앞에서 외연량과 내포량을 설명한 다음, 무한량을 제시했다.

외연량은 단순한 자기 관계다. 이는 추상적이며 개별적인 정량이다. 이 정량이 자기의 임의적인 한 부분을 단위(예를 들어 보폭이나 팔길이)로 측정되면, 일정한 정량이 된다. 예를 들어 길이나, 무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외연량은 ‘배중성[Vielfachheit]’으로 규정된다.

내포량은 여전히 개별적이며 추상적 정량이지만, 타자와 비교된 정량이다. 더 크거나 더 적은 것을 순서대로 하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등이다. 예를 들어 경도나 강도가 여기에 속한다. 헤겔은 이런 외연량을 ‘다중성[Mehrheit]’이라고 한다.

무한량은 타자를 통해서 측정된 정량이다. 예를 들자면 속도(=거리/시간)나 비중(=무게/부피)다. 이는 두 개의 정량 사이의 관계가 바탕이 된다. 즉 그 관계를 통해서 어떤 것이 자기를 규정할 때, 그것이 무한량이다. 타자를 통해 자기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이 무한량은 부정성을 지니고 따라서 질적인 규정성을 지닌다. 그러나 무한량은 독자적으로 하나의 정량이므로 이는 “질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크기 규정”(논리학 재판, GW21, S. 241)이다.

“무한 정량은 계기로서 그 타자와 본질적으로 통일 속에 있으며 다만 그의 타자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즉 무한 정량은 그의 타자 존재와 관계 속에 있는 것과 연관해서만 의미 있는 것일 뿐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41)

6)

질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이다. 빨간색은 꽃의 빨간색일 수도 있고 석양의 빨간색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무한량이 질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은 그 성격이 일반적이라는 말이 된다. 여기서 일반성은 비례의 일반성이다. 헤겔은 이 무한량을 ‘비례의 지수[Exponent]’라고 말한다.

즉 어떤 정량의 크기가 다른 정량의 일정한 크기를 단위로 해서 측정된 것이므로, 이 관계 즉 비례 관계는 일정하다. 다른 정량의 단위가 증가하면 그것에 비례해서 어떤 정량의 크기도 변화한다. 예를 들어 속도나 시간당 4키로라면 두 시간에는 8키로 거리를 지나가며 세 시간에는 12키로 거리를 지나간다.

무한량에서 서로 관계하는 두 정량은 독자적으로 보면 하나의 정량이지만, 이 관계에 들어가면 더는 정량이 아니라 전체 정량의 한 계기로서만 존재한다. 하나의 정량은 양적인 것으로서 다른 정량에 대해 무차별하겠지만, 전체의 계기로서의 정량은 자신과 관계하는 타자(다른 정량)에 대해 일정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 무한량은 자기 관계하는 것이다. 즉 자기가 자기를 단위로 측정된다. 그러나 이는 외연량처럼 추상적인 자기 관계가 아니라 타자를 매개로 해서 측정된 자기 관계다. 예를 들어 속도는 거리의 크기를 말한다. 크기는 자의적인 척도를 통해 측정된다면, 단순한 자기 관계다. 그러나 이 크기가 다른 정량인 시간에 관계하여 측정된다면 그것이 속도다.

헤겔은 미적분에서 핵심 개념인 무한은 알키메데스의 무한소도 아니며, 칸트의 무한 진행도 아니고 바로 이런 관계로서의 무한량을 의미한다고 본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51-시공간은 무한한 것인가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51-시공간은 무한한 것인가?

1)

시간, 공간은 무한한가? 앞에서도 밤하늘 무한한 천공 앞에서 숭고함을 느끼거나 시냇가 조약돌에서 아득한 시대 화석으로 남은 생물을 발견하면, 그 아득히 먼 시대를 상상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시간과 공간의 아득함에 관해 시인들은 많은 시를 지었는데, 헤겔은 양적 무한성을 다루면서 주석에서 할러의 시를 하나 인용한다.

숱한 산들처럼
엄청난 수를 쌓아 올리고
시간의 더미에 시간을, 세계의 더미에 세계를 쌓아 올리고
그리고 소스라칠 정도로 높은 곳에 올라가
아득하게 다시 너를 내려다보면,
수의 위력이 천 배가 증가하더라도,
아직도 너는 단 한 귀퉁이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수의 위력을 떨쳐버릴 때
너의 모습은 생생하게 내 앞에 떠오를 것이다.

헤겔은 이 시의 앞부분은 무한한 시공간 앞에 느끼는 숭고함을 표현했으나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이 오히려 의미심장하다 한다. 즉 차라리 무한한 수의 위력을 떨쳐 버릴 때 오히려 무한의 진정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헤겔이 말하는 수의 위력이란 곧 무한 진행으로서 악 무한을 의미할 것이다. 반면 진정한 무한의 모습은 곧 내재하는 무한성 즉 자기 부정성으로서 무한성일 것이다.

2)

우리 앞에 있는 세계의 무한성에 관한 논의는 곧바로 세계의 유한성이라는 주장으로부터 반박당한다. 세계에 시초가 있어야 하고 우주는 그 한계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주장을 통해서도 무한성에 관한 주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니, 형이상학의 세계는 곧 세계의 무한성과 유한성이라는 주장의 전장터가 되었다.

이런 전장을 최종적으로 흽쓸어 버리려 했던 철학자가 곧 칸트였으니,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무한성이라는 주장이든 유한성이라는 주장은 이율 배반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논증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칸트는 알다시피 순수이성 비판 변증론 2편 2장에서 순수이성의 이율 배반을 다루면서 네 가지 이율 배반을 제시했다. 이 네 가지 이율 배반은 네 가지 판단형식의 범주 즉 질적 범주, 양적 범주, 관계적 범주, 양상적 범주에 각기 해당한다.

그 가운데 질적 범주에서 나타나는 이율 배반은 사물이 합성체인지 단순 실체인지 하는 이율 배반인데, 칸트는 이를 두 번째 이율 배반으로 다루었지만, 양적 범주보다 질적 범주를 우선하는 헤겔은 오히려 앞에서 질적 판단형식을 다룰 때 이미 다루었다.

헤겔은 양의 무한성을 논하는 가운데 칸트가 말한 첫 번째 이율 배반을 다룬다. 헤겔은 이 이율 배반이 양적인 것과 관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헤겔에서는 이 이율 배반이 두 번째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곧 시간과 공간이 시초나 한계를 지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는 다시 말하면 세계가 양적으로 유한한가 아니면 무한한가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3)

헤겔은 이 문제를 다루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자신과 칸트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직관의 형식으로 보았다. 반면 헤겔은 시간과 공간은 사물의 상호 관계하는 방식이라고 규정한다.

이때 관계 방식은 바로 양적인 것의 방식인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방식은 서로 동일한 일자와 일자의 외면적인 관계다. 나뭇잎과 나뭇잎, 물방울과 물방울의 관계에서 나뭇잎이나 물방울과 같은 구체적 대상을 제거한다면 바로 시간 공간적 관계가 된다. 이런 시간, 공간적 관계는 사물이 가진 모든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이 지닌 모든 구체적 관계를 추상한 가장 외면적인 관계일 뿐이다.

칸트와 같이 추상적인 직관의 형식으로 보든, 헤겔과 같이 사물의 가장 외면적인 관계로 보든 일단 양적인 관계 즉 일자와 일자의 관계라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헤겔은 이런 양적인 관계에서 시간과 공간의 유한성과 무한성의 문제를 여기서(정량, c 절 양적 무한성, b 항 무한 진행, 주석 2) 다룬다.

4)

우선 정립은 세계가 유한하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시간에는 시초가 있으며 공간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헤겔은 우선 이 정립에 관한 칸트의 증명을 인용하면서 소개하는데, 다음과 같다.

“세계가 시간상 시초를 갖지 않는다면 주어진 시점에 이르기까지 영원이 흘러가야 하며 세계 속에 상호 뒤따르는 사물 상태의 무한한 계열이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제 이런 계열이 무한하다는 것은 곧 이 계열이 계기적 종합을 통해서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한히 흐르는 세계 계열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계의 시초는 세계가 현존하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고 이것은 처음 증명되어야 했던 것이다.”(칸트 재인용, 논리학 재판, GW21, S.229)

칸트의 증명은 간단하다. 시초가 없다면 어떤 현존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존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한한 계열이 지나가야 하는데 이 무한한 계열을 다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 어떤 현존이 있는 것을 분명하므로, 시초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어서 공간의 한계에 관한 칸트의 증명을 소개한다. 이 부분은 칸트의 증명을 헤겔이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된다.

“공간상 무한한 세계 부분들의 총괄을 위해서는 무한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세계가 공간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완전히 주어진 것으로서 여겨지는 한, 무한한 시간은 이미 흘러간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시간에 관한 증명의 앞부분에서 제시됐듯이 무한한 시간이 흘러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논리학 재판, GW21, S.229)

이 증명의 핵심은 곧 공간이 한계가 없다면, 이 공간을 총괄하기 위해 무한한 시간이 걸리는데, 무한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공간은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간을 우리가 총괄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된다.

5)

위와 같이 칸트의 정립을 소개한 다음 헤겔은 이를 비판하는데, 그의 비판은 칸트의 소위 귀류법적인 증명은 증명 속에 증명돼야 하는 것이 이미 전제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미 칸트는 시간에는 시초가 있고, 공간은 한계가 있어서 총괄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세계에서 현존이 있으려면 요청되는 것인데, 증명을 통해 증명돼야 하는 사실이다. 칸트의 정립 증명은 시간의 시초가 있고 공간의 한계가 있어야 하므로,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니, 사실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존이 있기 위해서 반드시 시간의 시초와 공간의 한계가 있어야 하는가? 어떤 것은 그 시초를 모르는 것이거나 공간상 한계 없이 펼쳐지는 것이더라도 현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내 앞의 우주가 언제 생겼는지, 어디까지 펼쳐지는지 모르더라도, 내 앞에 우주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증명되어야 하는 주장이 증명의 근저에 직접 놓여 있으므로 증명을 우회적으로 만들거나 증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영원(영원은 여기서 다만 악 무한적인 시간이라는 형편없는 의미를 지닌다)이 흘러가야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시점 또는 각 주어진 시점이 전제된다. 주어진 시점이란 곧 시간 속에 일정한 한계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증명에는 시간의 한계가 실제로 있는 것으로 전제된다. 그러나 그런 한계는 증명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립이 주장하는 것은 곧 세계가 시간상 시초를 갖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S.229)

6)

이어서 헤겔은 반정립을 살펴본다. 칸트가 말한 반정립은 세계는 시초를 갖지 않으며 공간상 한계도 갖지 않고 오히려 시간상이나 공간상으로 무한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칸트의 증명은 다음과 같다.

“세계가 시초를 갖는다 하자. 현존하는 이 시초에 앞서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선행한다. 그러므로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즉 공허한 시간이 선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공허한 시간 속에 어떤 사물의 발생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같은 시간의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 앞에서 비 현존의 조건에 앞서 구별된 현존의 조건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속에서 사물의 많은 계열이 시작할 수 있지만, 세계 자체는 시초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계는 지나간 시간과 관계하여 무한하다.”(칸트 재인용, 논리학 재판, GW21, S.231)

이 증명은 사물의 발생이 시간 속에 현존하는 조건을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만일 아무것도 없는 공허의 시간에는 사물의 발생할 조건이 존재하지 않으니 사물이 발생하려면 시초 앞에 시간에도 사물이 있어야 한다. 결국, 세계의 시초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물이 반드시 그 앞에 발생 조건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 아무 조건 없이 출현하는 사물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시초 앞에 공허한 시간이 있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헤겔은 이런 생각 끝에, 칸트의 증명이 정립에 대한 증명과 마찬가지로 증명돼야 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는 발생 조건이 전제되는데, 이 발생 조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시초가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시초가 없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는 과제인데 이미 발생 조건이라는 말 속에 함축적으로 전제되고 있다.

이어서 칸트는 공간에 한계가 없다는 주장을 증명하는데, 이 증명은 시간의 무한성 증명과 같은 논리를 반복한다. 즉 사물의 공간이 한계가 있다면, 그 밖은 공허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면 공허한 공간 속에 사물의 공간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시간의 무한성 증명에서는 조건이라는 개념이 이용됐다면 공간의 무한성 증명에는 관계 개념이 이용된다. 어떤 것이 공허와 관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무와 관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계가 있으려면 공허가 아니어야 하고 사물의 공간은 다시 더 큰 사물 공간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결국, 사물의 공간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발생 조건을 전제하는 것이 시간 앞의 시간을 전제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관계를 전제로 하면, 이미 공간 너머 공간을 전제하는 것과 같으니,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증명돼야 할 것이 미리 전제된다고 하겠다.

7)

시공간이 유한하다거나 무한하다는 중장은 동시에 성립하지 않으니, 칸트는 이를 이율 배반이라고 주장한다. 칸트는 이런 이율 배반이 나오는 이유는 사유의 범주, 판단의 형식을 경험적 개념에 적용하지 않고 물 자체의 개념 즉 시간, 공간, 우주, 세계와 같은 물 자체의 개념에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칸트는 이런 물 자체에는 유한성이나 무한성과 같은 사유의 범주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을 비판하면서 거꾸로 말하자면 유한성과 무한성이라는 주장이 시간과 공간에 동시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곧 양적인 관계 즉 일자와 일자의 관계가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적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한 불가피하게 나오는 것이다.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적이라는 것은 곧 한계가 자기를 자기가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어떤 정량은 자기 내에 무한성을 내포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을 비판함으로써 양적 무한성을 설명하려 했다.

헤겔은 칸트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세계에서 모순을 제거하고 반대로 모순을 정신 속으로 또는 이성 속으로 옮기고 그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로 존립시키는 것은 세계에 대해 너무나 나약한 태도다. 사실상 정신은 모순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력하며 그러나 또한 모순을 해소할 줄도 알고 있다. 그러나 소위 세계는 어디에서도 모순이 없지 않으며 모순을 견딜 수 없고 그러므로 생성과 소멸에 희생된다.”(논리학 재판, GW21, S.232)

세계의 모순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분투의 정신이 여기에 표현돼 있다.

산다, 생각한다, 떠난다 : 삶, 생각, 떠남 – 삶의 다양화, 사유의 다중화 [천 하룻밤 이야기]

산다, 생각한다, 떠난다: 삶, 생각, 떠남.

– 삶의 다양화, 사유의 다중화,

2025 11 22. 소설(小雪), 며칠 전 갑자기 겨울이 오는 것 같더니, 오늘은 풀렸다.

 

해안 보초를 서는 군대시절에 야간근무를 함께 한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논문을 쓰는 방위병이 있었다. 그는 이틀에 한번 만나면, 흥미 있는 선문답의 과제를 나에게 이야기 했다. 서너 달을 같이 하면서, 당시에는 선문답이 한 주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물을 수도 있고, 같은 문제에 대해 달리 대답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내무반에는 다른 책이라곤 기드온에서 나온 영어 대역본 신약경전이 전부였기에, 이를 여러 번 읽고 있었다. 그와 대화에서 남은 것은 “깨달은 자 떠난다” 것인데, 기억으로는 각자이출(覺者而出)인 것 같았는데, 중이 절을 지고 갈 수 없듯이 깨달은 자가 떠난다고 여겼고, 뭔가 체계를 알았을 때 출세간(出世間)하듯이 스님의 출가(出家)가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정도였다. 이 출(出)인지 행(行)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학문의 노력 또는 깊은 수련이 있어야하고 그리고 세상에 나가 활동한다고 여겼다. 이제는 들뢰즈의 용출선(탈주선)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한다.

서울에 와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세상에는 수재들과 천재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야기에서 서로가 길이 다르고 대척점이 있어도, 변증법이 아니더라도 하나로 모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이야기하던 자리를 떠나면, 서로는 현실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는 달리 살아간다는 것이 자연의 이법과 같다고 여겼다. 그래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완벽한 학문적 체계와 거의 완전한 제도적 체제를 창안하거나 만들어가는 것이 변역(變易)의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각자(各自)는 자기 생각대로 습관 또는 고집 같은 것이 안으로 있어서, 자기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시기 쯤에서 생각이 다른 삶의 양식들은 각자의 세계관이 다르다는 표현으로 쓰였던 것 같다. 여러 만남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학술적으로 왜 다양할까? 그리고 각자는 자기 방식을 좀 더 정합적으로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세상의 관례와 맞는 이들은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의 체제와 제도와 어긋나는 이들 중에는 고민하며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냉소하고 회의하며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 학술적 습득 과정에는 공통점이 없더라도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히 동일 표면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

철학이라는 학문에 접한 지 쉰셋 해가 지나간다. 되돌아 보건데, 사람들은 먹물들 사이에 학문적 관심의 차이가 여전히 있다고 알고 있으면서, 삶의 터전을 무시하지 못하여, 이런 저런 방식으로 종합 또는 일반화라는 이름으로 통일성 또는 단일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마음속에는 다른 길 또는 다른 관점이 있지만, 드러내고 말하는 것이 터전에서 쫒겨 날 것 같아서, 그저 속으로 삭힌다. 마치 속앓이 하듯이, 응어리로 남아있지만, 제도 속에 산다는 것이 그 제도에 알맞은 내용을 제외하고는 망각 속으로 밀어 넣는다. 다시 나오지 못하게. 그런데도 불쑥 불쑥 솓아날 때가 있지만, 애써 누르고 살다보면 늙어간다. 윤구병은 그의 저술의 화두로서 “산다는 것이 먼저이고 철학한다는 다음이라”(primum vivere, deiende philosophari)라고 하면서 삶, 앎, 함을 서술하려하였다. 벩송은 이런 말투를 처음 쓸 때는 산다가 먼저이고 그리고 비춰본다(speculer, 사색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벩송은 이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어느 연구자는 이 다음으로는 플라톤의 “철학한다는 죽는다를 배우다”는 것을 덧보태기도 한다.

세상에서 비추어본다고 하는데, 비추어본다면 세상 속에서 무엇을 비추어 볼까? 브레이어의 [서양] 철학사의 견해는 12세기쯤에서 평론파들이 등장하는 시기에 비춰본다는 용어가 등장한다고 했고, 중국에서 11세기에 통감(通鑑)한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살아온 과정에서 비춰본다는 것, 즉 역사적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인류가 자연에서 인간의 지위를 누리며 사는 것을 비춰 보리라. 그러나 기나긴 자연사에서 보면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두발로 걷는 곧추선 인류(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시작하지 않더라도, 문화적 표현이 남아있는 구석기 동굴의 예술을 생각하면, 거의 3만년 전이고, 신석기로부터 구리의 제련으로 청동기 시대는, 거의 5천년 전일 뿐이다. 인간이 긴 세월에서 손발의 움직임을 잘하여 도구 생산의 발달과 더불어, 집단적 삶에서 두뇌가 커지고 구강의 발달로 입말을 통한 소통을 문자화하여 소통한 것이 3천년 전(기원전 천년)쯤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홍산문명과 요하문명의 상고사를 생각하면, 문자화를 중국에 빌려오기 시작한 고조선의 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인류는 문자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더불어 살았으며, 자연을 피조물처럼 대상으로 삼지 못했다. 더 좋은 삶의 터전을 찾아다니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와 쇠를 다룰 수 있는 산악을 함께 하는 지역에서 도구 문명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도구의 발달은 생산력을 높이기도 하고, 이로부터 축적과 분업을 보다 잘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던 것은 인간이 공동체에서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리라. 공동체의 생활은 채집과 사냥에서 재배와 목축으로 전환이후 일 것이다. 그런 공동체가 지구상의 좁은 지역과 집단에서 한정되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도구의 발달 이후로 주거와 축적방식의 발달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쯤에서 사물에 대한 수적 센다는 사유가 정초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공동체 생활의 규모가 커지고, 도시화를 이루면서 제도가 성립하는 시기에는 산술의 계산과 생활에서 배치와 배열이 이루어질 것이고, 산술에 체계화와 더불어 영토의 분할과 토지의 경작을 위한 측량술도 발달하리라. 이런 삶에서 토지와 하늘의 관계는 우주(코스모스 또는 세계)에 대한 체계적 관점을 구성하기에 이를 것이다. 하늘의 운행이 지상과 연대 또는 대응할 것이라는 관심일 일어났다. 토지 위에서 배치와 순서도 필요하지만, 세월의 변화에 종속되는 생명체들과 연관에서 나이를 세는 하늘의 운행도 숫적으로 세어 보았을 것이다. 하늘의 운행의 수는, 토지의 평면과 달리, 원이라는 기하학적 도형에서 찾았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하는 기술의 발달이 일반적으로, 고대 이집트와 영향 속에서 그리스의 학문의 발달과 연관이 많아서 서양 철학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점을 찾고 있다.

대부분의 고대 수학사의 설명은 계산하는 기술로서 산술학 발달, 그 다음으로 하늘의 운행을 땅위에 비추어서 그려보는 시간의 관념이 성립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사상은 체계와 관련하여 산술학이 성립되고, 수라는 단위의 설정을 본떠서 사물들의 항목들을 정하는 언어의 논리학의 발달도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의 나일강의 범람시기를 측정하는 책력의 발달과 더불어 토지의 측정을 보태어 알렉산드리아에서 기하학의 체계가 이루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수의 산술학과 하늘에 투영한 시간의 측정과 더불어 기하학, 사물의 항목에 대한 논리학과 수와 점을 함께 다루는 기하학이 성립했다고 순서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생각하는 기술로서 산술학, 기하학, 논리학, 도형학 등의 전개, 그리고 기초 학문의 정립과 발전은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이롭게 하여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리라. 여전히 삶이 먼저이고, 생각하는 것은 다음일 것이다. 이런 시기에 도시국가의 체제가 갖추어지고, 생각하는 얼개들을 종합하는 지식의 발달이 있듯이, 인간의 자기반성과 자기 성립에 관심이 확장되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리스 반도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그리고 로마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서양사상사의 흐름이라 한다. [인용에서 이상하게도 우파는 로마 황제 시대에, 좌파는 아테네 민주제에 이야기 거리를 끌어오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행복과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나아가 자연을 다루면서, 인간이 자연을 이법을 찾아 자기완성과 자유에 대한 생각을 이어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이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떠난다는 자연의 섭리에서,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필연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연을 극복하여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에 상응하여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여겨, 자연의 법칙과 운행을 관통하는 지식 체계를 갖는다면 영원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한 진리를 안다면 영원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지식 체계에서 난점들과 부조리를 제거할 수 있다면, 영원성에 다가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이런 지적 체계에 전념하는 지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 일찍이 천원지방(天圓地方)처럼 원과 네모가 서로 환원이 안 되듯이, 원을 선으로 바꿀 수 없다는 논리적 귀결을 깨달은 현자들은 널리 이롭게 하는 방식으로 삶의 터전에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것이다. 간단하게 고대로부터 이론과 실천의 영역이 다르다(차히)는 것은 이미 내재해 있었던 것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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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을 일으킨 일당들과 이를 지지하는 자들은 종북좌파 빨갱이들을 척결해야 한다고들 한다. 이들을 극우라고 명명하는데, 이들의 사고에는 오랜 습관 또는 세뇌와 같은 사유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통일성에 대한 믿음(신앙)이 있다. 수를 기본으로 항목 논리를 전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체제에서는 참주제 또는 황제제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자연을 지배하려는 사고가 지배하였고, 이들은 나중에 개인의 탐욕을 부추기는 인문주의자, 시장자유주의자로 불린다. 이들은 학문적으로 단일화 또는 통일화가 먼저 있다고 착각하며, 이들 스스로도 실행하지 못하면서, 백성, 대중, 인민에게 자기들의 생각을 강요한다. 이들의 사고는 하나의 믿음의 길 이외에는 악마의 것이라고 하는 유일신앙자들의 사고 양태를 따르고 있다. 이들은 지난 세기에는 유일신, 국가주의, 제국주의를 숭배하는 독단과 탐만치에 빠져있었다. 이들의 사고에서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의 창조로부터 생겨났다는 공상에 빠져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화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통일성이라기보다 조화와 공감을 사유하는 자들은 생각하는 방법도 자연으로부터이며, 삶은 자연의 지배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여전히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을 지니고, 자연과 함께 살려고 이법을 탐구하며, 또한 체제와 제도 속에서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상부상조와 토대마련에 중점을 두어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이들 인도주의자와 인성자유주의자들은 인간들의 자의식의 발현으로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 각자는 능력에 따라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인간 종이 자연에서 생겨나서 자연의 재해와 타생명체로부터 발생하는 질병들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오래 지식을 축적하면서 노력해 왔는지를 성찰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의 생태계도 보존하면서 살아야한다는 반성을 하는 면에서 인도주의를 넘어서 자연주의에 가깝다.

[지식체계 정립도 창안도 필요하고, 자연 속에서 함께 산다는 지혜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신앙 체계가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오랜 걱정거리였다. 철학사에서는 이런 생각이 우파 또는 상층사고라고 한다. 좌파는 지식체계가 필요하고 더불어 인간과 자연을 보존하는데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이를 위해 인간은 새로운 발명과 창안도 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 나로서는 한 영토에서 같은 입말의 사용의 경우에, 좌파의 사유가 51% 우파의 사고가 49%의 비례이라면, 세상에서 행복과 안녕, 평등과 자유를 더 잘 이루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례라는 것은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갈래들에서, 중세 평결론자의 논의들이나 비유클리드 기하학 이후에 쁘왕까레의 협약주의에서처럼, 조화로운 비례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우파의 사고는 편을 가르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사유의 다양한 갈래는, 산업사회의 문명사관으로부터 21세기 문화의 관점으로 변역(變域)의 시대를 맞이하여, 다양체의 사유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극우든 우파이든 외통수의 사고는 사고하는 자에게 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서로 적대감을 심으려 피폐하게 만들었다. 우파에게서 난제 해결을 전쟁을 통해서 하려는 사고는 참주제, 황제제, 유일신앙, 제국주의와 제국 등에 오랫동안 보아왔다 그럼에도 왜 이런 편집증적(파라노이아)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나로서는 탐욕과 지배욕에서 나온다고 본다. 탐만치를 버리고, 상부상조와 조화의 세상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두뇌(또는 정신)를 외장하드처럼 외부에 둘 수 있다는 생각도, 지식체계의 통일성을 믿는 쪽이다. 지식은 삶을 이롭게 보존하게 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도구란 인간이 자기 특이성을 깨닫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 그 외부지식이 인간의 삶의 목표도 목적도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목표는 조화로운 삶이다. 플라톤이 일찍이 정의는 세 역량, 즉 지혜, 용기, 절제의 조화라고 하였듯이, 21세기에는 여러 갈래로 된 다양체로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찾아야 할 것이다. (58V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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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는 삶의 실천과 지식의 탐구 사이에 간격을 메우려는 노력의 역사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삶에서 상부상조와 조화를 통하여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노력이 있는가 하면, 이와 달리 지식의 체계와 확장을 통해 삶을 편리하고 유용하게 하면서 인간에게 이익이 되게 잘 살자고 한다고 한다. 이를 인간적 용어로 표현하면, 전자는 인도주의(위마니떼르)이고 후자는 인본주의(위마니스트)이다 또한 삶에서 조화로운 정의를 실현하면서 인민이 함께 자유를 누리자는 인성자유주의자(리베르떼르)가 있는가 하면, 권력과 권위를 통하여 상층의 자유를 최대화하려는 상품자유주의자(리베랄리스트)가 있다. 또한 세상은 양자의 뒤섞여 있을 진데, 중경과 선후를 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품성들을 표출할 수 있다. 서양철학사의 발전은 이처럼 이중화 현상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표면에서 양면성을 지니고, 엎치락뒤치락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철학 이래로 양면성은 주로 세계(코스모스)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자주 언급했듯이 하늘의 운행의 기하학과 지상의 길이의 산술학이 사유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고대에서도 이 양자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그 시대의 지식체계의 한계 때문에 통합되지도 통일되지도 못했지만, 사람들은 세계가 하나의 뚜껑 같은 하늘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로서 하나의 통일성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오니아학파의 자연에 대한 탐구와 엘레아학파의 존재에 대한 추론은 생각한다는 이중화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후대의 철학 사가들은 이 양면성이 인간의 사유에서 이중화의 양태들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이런 양면성이 형상과 질료처럼 인간에게 영혼과 신체의 연관처럼 보였다. 형상과 질료가 일대일 대응이 아니듯이, 영혼과 신체는 하나로 통일할 방법이 없어서, 결국은 영혼을 밖으로 내보낸다. 그것이 하늘나라를 믿는 신학이 개입하는 찰나일 것이다. 이러한 사유에는 생리학적으로도 심리학적으로 이중화를 해명할 방법을 갖추지 못하여, 하늘과 땅에 투사된 세계관(우주관)처럼 대우주와 소우주의 연관 관계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체계의 심층으로 들어가 보면, 플라톤은 우주의 발생론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론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오니아학파가 좌파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엘레아학파는 우파이다.] 그 우주론은 하늘아래 땅위에 있다는 의미에서 세상살이인데, 세상살이에서도 자연의 섭리를 해명하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우주발생론을 해명할 과학들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플라톤의 우주발생론이 이집트의 학문을 수용했다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우주론은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의 변형이라고들 한다. 플라톤은 이오니아학파의 자연탐구 전통에서 자연의 생성과 변형에 관심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자연의 사물들을 파악하는 유물론자들의 원자들의 조립과 조합의 방식이 기계적이라 보았고, 그래서 인간의 사유능력에 의해 항목들을 설정하고 관계들을 다룰 수 있다고 여겼다. 유물론자들이 다룬 자연의 대상으로서 사물은 물체들인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사유의 대상을 생물체로부터 시작하여, 생물체들 사이에 차이를 규정하고 이들의 치이에 의해 류(類)와 종(種)을 구별하였다. 이런 류의 상위에서는 생각하는 정신(또는 영혼)의 능력이 있고 그 능력에 의해 자연을 다루는 분류화작업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덧말이지만, 플라톤의 사유에는 시간과 운동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는 공간과 위치 이동에 대한 사고에 젖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이어받은 로마의 황제제는 점과 수에 의한 세계의 해명을 실용적이고 제도적으로 옮겨놓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하나의 체계 속에다가 모든 방법을 수렴시키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생각은 하나의 길 또는 세계의 통일성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 제국은 무너졌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류와 종의 이원적 분류에서 최고의 상층으로서 사유의 사유를 따라 크리스트라는 유일자를 상층에 올렸던 중세사유는 우주 발생론의 사유가 심층(深層)으로 가라안고, 황제의 체제를 닮은 위계제도 우주론이든 계급제도를 구축하였다. 삶에서 도구/무기의 발전과 지적 노력은 계속되어 둥근 지구와 하늘의 뚜껑을 열고, 진솔한 세계 즉 코스모스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로마 황제제로부터 중세 독단론에까지 우주론인 한에서 공간적 사고였으며, 르네상스에 이르러 시간의 사유가 표면으로 올랐다. 이오니아학파 이래로 좌파가 표면위로 표출되었다.]

항목의 논리학이 최고의 사유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브루노에게서 우주의 무한이 열리면서, 그리고 위치 이동의 동시성이란 제논의 난점을 해결에서 시간의 측정 방식의 도래는 수학에서도 ‘생각하다’에서도 다른 길을 열었다. 공간을 기준으로 하는 항목의 고정성은 위치 이동의 운동에 난점 있었다. 이제 산술 수와 기하의 점을 결합하는 데카르트의 분석기하학은 “생각한다”의 방법을 수, 점, 항목의 추론에 한정하지 않았다. 점은 길이를 따라 무한히 나아가고, 점과 점 사이에 수가 정수가 아니라도 선들 위에 점의 연속성을 부정할 수 없다. 점의 운동은 공간의 운동이라기보다 사유의 운동이 되었다. 사유와 물체, 또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성이 있다고 하는 두 개의 실체론을 전개하였다.

하늘과 땅, 이 두 가지의 이론화와 조직화는 인간의 영혼과 신체의 두 가지 조직화로 변환되었다. 그럼에도 초기 근대철학자들은 고대 이래로 시간과 공간 사이의 변환이 사유하는 방식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았듯이, 생각하는 자아가 움직이는 신체의 변환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착각하였다. 두 실체는 고대 철학이 하늘과 땅의 연대 또는 투사라고 사유하던 방식을 넘어서, 양자 사이에 대응하고 있거나, 또는 각각의 정합성이 서로 상응하는 것으로 여겼다. 여기서 각각의 정합성에서 사유의 정합성은 고중세의 사유에 이어져 왔지만, 물질 또는 신체의 정합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물질과 물체의 운동이 따로 독립적으로 자치성을 인정해야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관점은 자연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빛들 세기”의 소박한 유물론자는, 자연에게 자치성을 넘어서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신의 부속물 또는 속성으로서 자연과는 다른 자연의 생성과 발산을 다루게 되었다. 이로서 정신과 ‘생각하다’(코기토)를 다루는 쪽이 데카르트 우파가 되고, 물질의 생성과 발전을 다루는 쪽이 데카르트 좌파가 될 것이다.

“빛들 세기”의 마지막에는 제도에서 교권과 왕권에 기댄 상층과 대비로, 민중에서 제3신분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기술과 과학의 체계화에서 생산도구의 발달로 삶의 터전을 성안에서 성밖으로 나아가 다른 세상으로 확장하였다. 생산력의 발전은 민중 또는 인민의 사유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상층의 두 권리의 지배와 강압에서 벗어나, 인민의 자치와 제헌을 주장하며 혁명을 일으켰다. 이 혁명에서 인민의 자치를 주장하며, 루소를 본따서 인민의 자연권과 정치권을 주장하는 자꼬방 산악파들이 혁명을 실천하였다. 이들이 제헌의회를 소집하였고, 그래도 과거의 사상에 의존하는 의원들이 의회의 오른편에, 자꼬방 당원들이 좌측에 앉았다. 이 시기에는 상층이 권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권력을 생산하고 통제권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인민주권, 즉 인민이 기본 권력이며, 정부와 제도는 인민의 최종심급에 동의를 받아야 했다. 혁명은 공화정을 성립시키면서 삼색기를 선택하였고, 역사는 좌측이 붉은색을, 우측이 푸른색을 상징으로 삼았다. 통상적으로 좌파와 우파 구별은 이를 기준으로 한다. 자꼬방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바뵈프, 루이 블랑, 파리꼬뮨의 블랑키 등은 공산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붉은 깃발을 들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전파는 유럽에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정열을 불러일으켰으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공화정을 세우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영국으로 망명한 맑스는 과학적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정치경제학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대 자본가의 대립을 보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선언하는 공산당 선언을 하고, 계속하여 혁명을 주장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인민과 프롤레타리아에게 좌파를, 왕당파와 자본가에게 우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선진 산업 국가들은 부강한 국가를 세우고자 식민지 수탈을 확대하였다. 이 시기에 유럽은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국가 권력과 교회 권세에 저항하는 무권위주의자들도 등장하였고, 식민지 착취에 반대하는 제국주의 반대운동도 일어났다. 프랑스에서 장 조레스가, 다른 한편 러시아의 망명자인 레닌이 있었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들에 쟁탈전이 일어나면서 결국에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로부터 세계사에서 좌파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좌파 정부가 등장하였다. 두 국가는 다른 다양체였다. 세계사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여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을 하부에 두는 새로운 질서로서 냉전시대를 맞이했다. 전후에는 러시아의 혁명파급을 막기 위해 패전국인 독일을, 중국의 확장을 막기 위해 패전국인 일본을 이용하는 미국 제국의 시대였다. 이런 좌파와 우파라는 국가주의 개념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에 대한 빨갱이 취급으로 악마화 하는 것은 부일파와 일제 잔재의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그리고 적대 의식의 강화에는 미국의 제국세력이 소련과 중국에 대한 적대의식으로 우리나라 남녘에 심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일제 강점기의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차대전 이후에 러시아의 민족해방에 대한 억압정책을 심었을 것이고,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점령하여 새로이 등장한 중국 공산주의의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남녘의 교육제도를 반공주의로 방향을 잡은 데서 기인한다. 이런 경향은 군부독재에 이어서 극우의 준동을 낳았다.

일본과 미국의 학문지배가 120년 정도 지나면서, 근래에 좌파척결을 내세우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주도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낳았다. 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을 제거하려는 지난해 계엄령에는 국회의장 우원식, 민주당 대표 이재명, 계엄에 반대하는 한동훈 등 정치인뿐만 아니라, 뉴스공장의 김어준 등을 잡아서 처단하려 했다는 끔직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왜 이렇게 우파는 다른 생각을 하는 자들을 악마화 할까? 시간과 우주발생론적 사유와 달리, 공간과 우주론적 사고는 유아적 사고의 고착, 즉 파라노이아에 빠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고가 민중들에게 확장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교육과 미국의 반공교육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교육의 배경은 위에서 말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 대비에서 공간론 쪽에 극단적으로 경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은 “시간 사유”가 서양 철학사에서도 늦게서야 벩송에게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알아 챈 우리나라 철학자 박홍규(1919-1994)가 있었고,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들뢰즈(1925-1995)가 거의 동시대에 살았는데, 지역을 달리하고 소통하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잡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데 놀랐다. 프랑스에 자료 수집차 가면서 벩송의 전집을 다 읽고 나서, 이것을 버리고, 루소와 프랑스 혁명을 다시 들고 들어오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벩송의 전집과 잡문집을 여러 차례 읽으면서 벩송이 루소 이상으로 새로운 혁명의 시발점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들뢰즈를 읽으면서 벩송과 프로이트 사이의 차이가 시간론과 공간론 이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공간론과 우주론과 형상(신학) 형이상학을 읽으면 혁명에서 멀어지고, 시간론과 우주발생론과 질료(자연)형이상학에서 사유할 때 혁명은 지속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브레이어의 철학사를 읽으면서 형이상학의 두 종류, 신학(독단) 형이상학과 자연(실증) 형이상학이 있다고 느꼈고, 사유의 이중화에서 좌파의 길과 우파의 길이 다르다는 것을 보았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코로나 발생 전 해에 라깡의 세미나의 참여하라는 선배와 또 같이 하자는 한철연 회원의 제안을 받았는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두 가지 방향(들뢰즈 대 라깡, 생성론 대 상징계)을 한꺼번에 공부할 머리도 안 된다고 했었다. 그 때만 해도 벩송의 새로 나온 강의록들도 읽지 못했고, 들뢰즈의 저술들도 10여권 정도 읽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방콕하면서 벩송의 강의록 4권도 읽었고, 이제는 들뢰즈 저술을 20권을 넘게 읽고 있고, 에밀 브레이어 철학사를 세 차례나 읽고 나서 보니, 프랑스 철학이 신학에 대한 철학의 대립구도라는 것을 보았다. 앙드레 로비네는 일찍이 프랑스 철학의 특징이 신앙과 이법의 대립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 저술을 읽는다는 것의 어려운 점은 각 철학자가 자기 용어를 창안하여 쓰기에, 그 철학자의 용어와 어휘를 익히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봐도, 내 머리로서는 벩송과 들뢰즈의 어휘와 흐름을 잡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서는 데는 철학사, 수학사, 생물학사의 세 가지 실증적 연구사를 읽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한계의 인식에는 산다, 사유한다, 떠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자연에서 출발하는 좌파와 사유의 완전성으로 풀어가는 우파 사이에서, 51대 49의 비율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여긴다. 그런데 우리 입말을 쓰면서 문자화와 이미지화 하는 누리소통의 시대에, 체제에서도 제도에서도 언론지형에서도, 그리고 학문에서도 합하여 남녘에는 2 대 98정도로 우편향 되어 있다고 본다. 그나마 우리 입말과 이지미의 전지구적 확장이 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좌와 우의 대립이 아니라, 중세의 평결론의 시대, 자연에 대한 형이상학의 이중화 사유, 개연성이 높아지는 수학에서 쁘왕까레의 협약주의, 전지구에 대한 의식의 다원화 시대를 거치면서, 들뢰즈가 다양체로서 리좀이 움직이지 않고서도 세계와 연결(접선)이 빛살처럼 펼쳐져 있다는 설명을 이해할 것 같다. 그 리좀은 종교의 권세, 제국의 권력, 지식의 권위라는 세 패거리에 대해, 니체의 망치작업처럼, 무권위주의로부터 자연에서 출발이 필요할 것이다. 변역(變易)은 정태적이 아니라 동태적이고, 즉 열린 세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 덧글:

나로서는 기댈 언덕으로 한철연이 있었기에 행운이었고, 그 속에서 세상과 달리 생각하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즐겁고 유쾌하다. 요즘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상호 연결하는 누리소통의 활동을 시작해 본다. 한철연의 “시대와 철학”의 최근 2년 치의 논문을 쭈욱 읽으면서, 한철연의 분위기가 우측으로 기울고 있다고 느낀다. 그 논문들에 대한 감상문은 다음카페 “천사흘밤”의 ‘한철연’ 항목, ( https://cafe.daum.net/milletune/S6O4 )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7:05, 58VMA) (8:16, 58VMB)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