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 철학 연구회 2024년 12월 제15차 정기세미나 영상│『중국현대철학사론』(2020) 2장 자아의 발현과 무한생성의 실천론: 모택동(毛澤東) -발제:이병창 │2024.12.20.

이규성의 『중국현대철학사론』(2020) 발제 세미나

-주제: 2장 자아의 발현과 무한생성의 실천론: 모택동(毛澤東)
-발제: 이병창 선생님
-일시: 2024년 12월 20일(금) 오후 4시
-장소: 한철연 강의실 & 줌(zoom) 병행

모택동의 사상 즉 마오주의는 흔히 중국 현실에 적용되는 마르크스주의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것은 중국 혁명이라는 거대한 실천적 과정 속에서 피의 경험을 통해 탄생한 사상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러나 이규성 선생은 마오주의를 모택동의 청년기 사상의 영향을 통해 이해하는 독특한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규성 선생은 청년기 사상이 후일 문화혁명 이후에 등장한 것만이 아니라 마오주의의 혁명 전략 속에서 관철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 관점이 옳은가 보다 그런 관점을 취한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이규성 선생이 사상적으로 모색하는 지향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발표원고: 중국현대철학사-마오(발표)+후기(공개)

다음 세미나(2025년 2월 21일 금요일 오후 4시 한철연) – 주제 : 3장. ‘융회’의 철학과 ‘공령’의 미학: 종백화(宗白華)

○ 『중국현대철학사론』(2020) 목차
서론. 동서 ‘융회’와 현대 ‘신철학’
1장. ‘주권재민’과 사회주의: 진독수(陳獨秀)
2장. 자아의 발현과 무한생성의 실천론: 모택동(毛澤東)
3장. ‘융회’의 철학과 ‘공령’의 미학: 종백화(宗白華)
4장. ‘자기학’으로서의 ‘생명철학’과 동서문화론: 양수명(梁漱溟)
5장. ‘체용불이’와 ‘흡벽’ 생성론: 웅십력(熊十力)
6장. 동서 ‘융회’와 형식주의 신이학: 풍우란(馮友蘭)
7장. ‘도’의 형이상학과 ‘이사겸중’의 지식론: 김악림(金岳霖)
8장. 변증법의 ‘합리적 내핵’과 심미적 ‘신철학’: 장세영(張世英)
결론. 상실과 전망

유튜브 출처: https://youtu.be/MGw6ZlGY948

[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2회|1. 다시 찾은 길 (2)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두 번째 글.

1. 다시 찾은 길 (2)

 

첫 시간을 비교적 무난하게 끝내고 나서 다시 강사실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이미 강의를 끝낸 후배 학자들 몇몇의 얼굴이 보인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반가운 얼굴들이다.

“형! 점심 먹으러 가자.”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호칭이다. 사회에서는 항상 그 사람의 명함에 적힌 직급이나 성을 가지고 부른다. 하지만 대학은 그냥 형 동생이나 선 후배로 지칭한다.

“그래, 오랜만에 함께 식사하자.”

그 사이 바로 2명이 더 붙어서 4명이 함께 식사하러 밖을 나섰다. 따로 교수 식당이 없는 이곳에서 점심 때 학생들 틈에 끼여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우리는 한 후배의 차를 타고 대학 바깥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 소도시는 시내를 벗어나면 다 촌이고, 한가롭다. 곳곳에 맛있는 음식점들도 많아서 맛집 여행하듯 찾아 다닐 수 있어서 좋다. 다들 새벽같이 나와서 이때쯤이면 약간은 허기가 들 때도 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상태라 날씨가 쌀쌀했다. 우리는 추어탕이 어떤 가라는 말에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했다. 마침 대학에서 몇 킬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추어탕을 잘한다는 집이 있어서 그리로 갔다.

학자들끼리 식사를 하다 보니 많은 경우 이야기 주제도 학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형! 지난달 <학술 진흥 재단>의 연구 프로젝트 신청했어요?”

“그래,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니 나도 억지로 하나 신청했어.”

“요즘은 그것도 신청자가 많아서 경쟁이 심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3월 말이 되면 전국 대학의 수많은 강사들이 이 프로젝트 신청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래전 대학 다닐 때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역이 하나 있고, 그 앞쪽으로 이른바 방석집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등록금 철이 되면 주방 아줌마들도 화장 이쁘게 하고 손님 받느라 바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학술진흥재단의 연구 프로젝트 신청이 공지되면 한국의 대학가들 역시 그와 비슷한 형국이다. 이 프로젝트라도 따야 그나마 쥐꼬리 같은 강사료를 벌충할 수 있고 품위 유지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마치자 바로 오후 수업에 들어가는 강사들도 있지만, 나처럼 오전 수업만 마친 강사들도 있다. 휴게실은 강사들을 위해 대학에서 배려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강의 준비를 할 수 있고, 프린터와 인터넷도 활용할 수 있다. 봉지 커피나 각종 1회용 차들도 구비되어 있어서 강의 중간에 마실 수 있어서 좋다. 사실 모교의 강사들이기 때문에 이런 배려를 해주지만, 출강하는 대부분의 대학들에는 이런 서비스가 거의 없다. 그래서 교정에 차를 세워 놓고 강의 준비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나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4시 반에 서울 본교로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소파에서 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이 참으로 편안한 기분이다. 이럴 때는 이상하게 내 생각이 과거로 돌아간다. 내가 대학에 들어온 지 벌써 30년이 가까이 흘렀다. 그사이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과 모험심, 도전 의식 등으로 좌충우돌 많이 헤매고 다녔다. 내가 법대를 졸업한 다음에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한 것도 아마 이런 지적 호기심의 연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법학이 주는 미래의 안정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법학은 자유 분망하고 비판적인 나의 사고를 담기에는 너무나 고루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 4년 동안 지녀왔던 이런 나의 생각에 약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인생에도 하나의 전기가 된 10.26 사태가 발생한 것은 1979년 가을이었다.

3회에 계속.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22- 존재와 일자[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22- 존재와 일자

1)

앞에서 헤겔은 존재자와 존재를 구분했다. 존재자의 개념에 관해서, 헤겔은 존재자를 ‘어디에 있는 것[Dasein]’으로 규정한다. 존재자가 있는 곳 즉 ‘Da’는 존재자가 다른 존재자와 관계하는 곳이며 바로 시공간이다. 이 타자와의 관계 때문에 어떤 존재자는 어떤 규정성을 가지며, 그런 존재자가 있는가 없는가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제 우리는 초점을 ‘존재자’ 또는 ‘비존재자’에서 ‘존재’ 또는 ‘무’의 개념으로 이동해 보자. 한자나 독일어, 영어로 말하면 ‘존재자’와 ‘존재’의 차이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두 말이 같은 단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있음[존재자]’과 ‘임[존재]’는 그 용법이 분명하게 구분되니,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헤겔의 논리학을 다루니, 그냥 존재자[Seindes]와 존재[Sein]으로 계속 말하기로 하다. 그렇다면 헤겔의 존재라는 개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2)

헤겔은 존재를 규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존재, 순수 존재- 이것은 아무런 다른 규정을 지니지 않는 것이다. 존재는 이러한 그의 무규정적 직접성 속에서는 오직 자기자신과 동등할 뿐이며 또한 타자에 대해서 부등한 것이 아니다.”(논리학, GW21, 68-69)

여기서 헤겔은 존재의 ‘무규정성’에서 곧 ‘자기 관계’라는 말로 넘어간다. 어떻게 보면 무심히 읽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개념적 이행이 가능한 것일까, 의심스럽다.

이런 이행에는 어떤 전제가 있다. 그것은 곧 앞에서 말했듯이 헤겔에서 규정성은 타자에 대한 부정성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타자에 대한 부정은 존재자가 타자에 대한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¹, 이 점이 존재자를 고립된 실재성을 파악하는 다른 사유와 헤겔의 사유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다. 규정성이 곧 부정성을 포함한다는 전제를 놓고 보면, 순수 존재에서는 규정성이 없으니, 여기서 타자에 대한 관계가 없다는 개념적 이행은 이해된다.

주1 헤겔은 이것과 연관해 스피노자가 처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omnis determinatio est negatio 즉 모든 규정된 것은 부정적인 것이다.

3)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자기 관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어지는 헤겔의 말을 더 들어 보자.

“[자기 관계하므로] 결국 이것은 자기 내부에서 있어서나 또는 외부에 대해서도 아무런 상이성을 지니지 않는 것이다.”(논리학, GW21, 69)

상이성은 곧 차이를 말하며 구별을 말한다. 이런 상이성이 없으므로 자기 관계하는 것은 바로 하나 즉 일자이다. 헤겔에서 존재는 최종적으로 일자로 규정된다. 이렇게 하여 헤겔의 존재에 관한 논의는 급기야 일자에 관한 논의로 전환한다.

일자란 무엇인가? 거슬러 올라가면 아낙시만드로스가 만물의 근본 원인이 무규정성[apeiron]이라고 말한 것에서 이미 일자라는 개념이 암시된다. 그는 탈레스가 만물의 원인이 물이라고 한 데 대하여 만일 그렇다면 그것과 대립하는 불이 물이라는 원인에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서로 대립되는 사물로 가득 차 있는 만물이 나오는 원인이 되려면 모든 대립하는 것들이 뒤섞여 있는 것 즉 무규정성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자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파르메니데스인데, 파르메니데스에서 일자는 아낙시만드로서의 무규정자와 같은 만물의 아르케로 제시된 것이다. 헤겔은 그의 저서 <철학사>에서 파르메니데스에서 일자라는 개념의 연원을 알려주는 다음과 같은 파르메니데스의 단편을 인용한다.

“그러므로 발생은 사라지고 몰락은 믿을 수 없다. 존재는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선가 존재가 더 많을 수도 없으며 그렇지 않다면 연관되지 않는다. 또한, 어디에선가 더 적지도 않으며 오히려 모든 것은 존재자로 충만하다. 모든 것은 연관이다. 왜냐하면, 존재자는 존재자와 합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변하며, 자기 내에 머무르고 자기 내에 확고하다. 강력한 필연성의 확고한 결속의 한계 내에서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끝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결핍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비존재함을 결여한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존재자와 존재자 사이에 비존재자가 있으면 분리가 있지만, 비존재자는 없으므로 분리되지 않는 존재자는 내적으로 자기 관계하는 일자라고 한다. 일자가 되는 이유는 존재자와 존재자를 서로 비교하여 통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존재자는 추상적 존재자이며 서로 같으니, 여기서 일자가 나온다.

무규정자는 모든 규정이 뒤엉킨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자체는 공허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공허한 것을 뒤집어 보면 일자가 나온다. 모든 것이 뒤엉킨 것은 곧 순수한 연속성을 지닌 것이니 일자가 된다.

이 아르케로서 무규정자와 일자는 모두 존재자들의 ‘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나온 것이다. 무규정자와 일자는 관계의 양 측면이며 서로 동전의 양면이다. 무규정적이기 때문에 일자이며, 거꾸로 일자이기 때문에 무규정적인 것이다.

4)

존재가 곧 일자라는 점에서 파르메니데스와 헤겔은 일치한다. 그런데 존재론에서 헤겔의 주장과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단적으로 대립한다. 헤겔에서 존재는 곧 무, 무는 곧 존재인 데 반해서 파르메니데스에서는 존재는 존재이며, 무는 무이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상반된 주장으로 나가게 된 것일까?

이 점과 연관하여 헤겔은 주석3에서 플라톤이 지은 파르메니데스 편을 언급한다. 헤겔은 여기서 파르메니데스의 한계를 지적한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확고하게 지키면서 가장 일관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동시에 무에 관해 무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존재만이 존재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존재는 무규정적인 것이므로 타자에 대해 어떤 관계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시원으로부터 즉 존재 자체로부터 더 나갈 수 없으니 만약 전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다만 외부로부터 어떤 낯선 것이 그것과 결합되는 것을 통해서만 일어날 것이다.”(논리학, GW21, 81)

파르메니데스에서 존재는 타자에 대한 관계가 없으니, “존재 자체로부터 더 나갈 수 없으며” 즉 영원히 존재할 뿐, 무가 되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가 이런 사유에 빠져버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헤겔은 파르메니데스가 존재를 앞에서 말했듯이 일자라는 의미에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는 이 일자 개념에 충실하지 못했다. 파르메니데스는 다른 한편 존재를 주로 ‘일반적 존재자’라는 의미에서 사용하한다. 예를 들어 역시 헤겔 <철학사>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파르메니데스의 단편을 보자.

“사유와 사상이 그 때문에 존재하는 것[존재자]은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 없이는 사유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존재자가 없는 경우] 사유는 무이며, 사유는 존재자 밖에는 무로 된다.”(헤겔, 철학사)

이 자리에서 존재는 사유의 대상으로 즉 존재자로 규정된다. 여기서 존재는 존재자가 지닌 일반적 속성을 의미한다. 존재자가 ‘어디에 있는 것’이라면, 그 모든 존재자가 가진 일반적 속성으로서 존재는 ‘-에 있음’이 된다. 그러므로 이 존재는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헤겔은 앞에서 존재자에 있어서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 차이가 있다는 인정했다. 그러므로 만일 존재가 존재자 또는 존재자의 일반적 속성이라면, 이런 의미에서 존재와 비존재는 서로 다를 것은 틀림없다. 헤겔은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일반적 존재자라는 의미에서 사용하였기에 결국 존재하고 무 즉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헤겔은 파르메니데스가 존재에 관하여 일자라는 개념과 일반적 존재자라는 개념을 뒤섞어 사용하면서 사유의 혼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이미 플라톤이 <파르메니데스>편에서 밝히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플라톤이 파르메니데스 편에서 이용한 변증법은 차라리 마찬가지로 외적 반성의 변증법으로 여겨질 수 있다. 존재와 일자는 모두 엘레아적인 형식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존재와 일자는 구분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그의 대화편에서 이 양자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논리학, GW21, 87)

“플라톤은 일자로부터 여러 가지 규정들을 분리시킨다. 예를 들면 전체와 부분, 자기 내의 존재와 타자 속의 존재, 형태나 시간 등의 규정이다. 그 결과 일자는 존재가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앞에서와 같은 방식으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논리학, GW21, 87)

여기서 헤겔은 플라톤이 파르메니데스의 입을 통해 일자는 전체도 아니고 부분도 아니며 존재도 아니 형태나 시간도 갖지 않는다는 등을 변증했는데, 그런 변증은 파르메니데스가 자기 입으로 자기의 주장인 “일자는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수법이었다는 것이다.

5)

헤겔은 ‘일자’, ‘무규정자[apeiron]’라는 말 대신 ‘존재’와 ‘무[Nuchts]’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 때문에 존재자와 존재, 무와 비존재자가 혼동되면서 혼란을 자아냈다. 그 때문에 그는 주석에서 누누히 정말 지루할 정도로 존재자와 존재, 무와 비존재자가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르지만, 존재와 무 자체는 동일하다고 말한다.

헤겔은 자기의 곤란한 처지를 충분히 짐작했을 텐데도, 여전히 일자나 무규정자라는 말 대신에 존재나 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서 헤겔의 ‘존재’라는 말의 연원을 고민하게 된다.

이제 헤겔 논리학에서 시원의 문제를 다루면서 했던 생각으로 되돌아가 보자. 헤겔의 논리학은 칸트의 선험철학에서 나왔다. 칸트는 판단의 형식 즉 범주가 대상을 구성한다고 본다. 판단 형식이란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말하는데, 이 관계가 바로 계사 ‘이다’이다. 판단형식은 12개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추상적인 계사 ‘이다’가 구체화된 변형태이다.

구체적인 범주가 대상을 구성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계사가 대상을 구성한다는 말과 같다. 대상을 구성한다는 것은 곧 관계시킨다는 것이니, 범주가 대상들의 구체적 관계 예를 들어서 인과 관계 등을 통해 나타난다면 추상적 계사는 대상의 일반적인 관계 속에서 자기를 드러낸다.

이런 이유 때문에 헤겔은 대상이 지닌 가장 일반적인 관계를 계사 ‘이다’ 즉 존재라고 규정한 것이다. 우리 말로 하자면, 헤겔에서 존재는 ‘있음’ 즉 현존[Dasein]이 아니라 ‘임’ 즉 계사 ‘이다[Sein]’이다.

헤겔은 이처럼 대상의 관계가 계사의 현상태이라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혼란을 무릅쓰고 굳이 일자를 일자로 표현하지 않고 존재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 때문에 헤겔의 존재론을 읽는 우리조차도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의 존재를 존재자로 보면서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말이라면 그런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독일어나 영어, 한자는 ‘이다’와 ‘있음’을 같은 단어[sein, be, 存在]로 표현하기에 그런 혼란이 일어난다. 실제 파르메니데스가 그 때문에 혼란에 빠졌고 존재론에서 헤겔의 의도를 우리가 오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궐위상태(Interregnum)에서의 더 나은 실패를 위한 교본 – 존 홀러웨이, 『폭풍 다음에 불: 희망 없는 시대의 희망』(조정환 옮김, 갈무리, 2024)을 읽고|서평: 윤인로(『신정-정치』 저자)

궐위상태(Interregnum)에서의 더 나은 실패를 위한 교본

존 홀러웨이, 『폭풍 다음에 불: 희망 없는 시대의 희망』(조정환 옮김, 갈무리, 2024)을 읽고

 

윤인로(『신정-정치』 저자)

 

이 책 『폭풍 다음에 불』의 독서가 마무리될 때쯤, ‘12․3 친위쿠데타’가 일어났다. 독후감을 쓰는 오늘 12월 10일 현재, 탄핵안의 자동 폐기에 뒤이어 이곳 남한의 주권대행자 윤석열은 사실상 모든 행정권한을 잃고 있다(그럼에도 권리상 그는 여전히 행정부 수반이자 군통수권자이다). 내게 이 책 『폭풍 다음에 불』의 43장 「풍요를 해방하라」에 담긴 내용은, 여기 계엄의 비상시를 달리 재생산하려는 입법권력에 대해, 그 국회의사당 입법권력의 정면을 점유한 인파人波의 비상시적인 힘에 관해 살펴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회집하고 있는 그 인파를 홀러웨이가 말하는 “무리rabble” “어긋나는 자들misfitters” “비복종자들”로 새겨 보는 데에서 시작될 수 있을 듯하다.

그들 무리, 어긋나는 자들 속에는 법치주의적 시스템 혹은 자유/자본주의적 헌정질서 안에서within 그것을 거스르며Against 그 너머를 향해 가는Beyond 일상적이고도 편재하는 클리나멘(원자의 측정 불가능한 이탈/편위偏位 운동)의 계기들이 잉태되어 있다. 그들 무리의 어긋남이 일으키는 관계적 균열의 효과를 탐지․분석․구성하려는 홀러웨이의 일관된 의지가 “소망적 희망”과 “이성적 희망”을 구분하는 준칙이 된다. 이성적 희망과는 반대로 소망적 희망은 희망 없는 시대를 연장하고 위기와 절멸이 지연되게 만드는, 체제 내화되고 있는 범용한-안전한 감정, 말하자면 체제를 조바꿈하면서 보전하는 전前-종말론적 근본정조이다. 이성적 희망, 그것의 형질․벡터․이념을 달리 표출하기 위해 다시 인용하게 되는 것이 있다. 이 책에 거듭 인용되고 있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맑스, 1857)의 한 대목이 그것이다.

 

제한된 부르주아적 형식이 벗겨질 때, 풍요Reichtum란 보편적 교환을 통해 창출된 인간적 필요, 능력, 쾌락, 생산력 등의 보편성 외의 다른 무엇일까? … [풍요란] 이전의 역사적 발전 이외의 어떤 전제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발전의 총체성 [외의 다른 무엇일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모든 인간적 능력의 발전을 (사전에 결정된 잣대에 따라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목적으로 만드는 인간의 창조적 잠재력의 절대적인 전개 [외에 다른 무엇일 수 있는가?] 인간이 자신을 하나의 특수성으로 생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총체성을 생산하는 곳은 어디인가? 자신이 이미 되어진 어떤 것으로 남아 있지 않고 절대적인 생성 운동 속에 있으려고 애쓰는 곳은 어디인가?

 

‘제한된 부르주아적 형식이 벗겨질 때’, 또는 한계 부여됨으로써 균형 잡게 되는 국가권력적 기관들 간의 비밀리에 일원화된 연계망이 공개됨으로써 파열될 때에, 여기 계엄령의 해제 및 탄핵안 폐기 이후 친위쿠데타와 여당의 연성쿠데타가 내란죄 구성요건과 위헌정당 해산 요건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여파의 때에, 그러니까 “오래된 것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직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못한 위기의 때,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나는 그 공백 시기[인테레그눔]”(A. 그람시)에 무리는 계엄령의 목표가 공화적 분립을 파기한 내전적 통치력의 한계 없는 완전체․총체였음을 우선적으로 인식한다. 암세포가 퍼진 주권대행체와 이를 중심에 둔 말기적 권력계가 사실상 이미 폐절되고 있음에도 새로운 힘의 구축이 권리상 아직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태, 낡은 노모스의 정당성 근거와 합법성 보위가 벌써 [박]탈정초Entsetzung되고 있음에도 새로운 노모스의 취득이 여전히 수행되지 않고 있는 여기의 궐위상태[공위(空位)상태]. 이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무리는 계엄령의 벡터에 따라 재정초될 권력관계라는 것이 최종심으로서 재량적 생살여탈을 결정할 수 있게 되는 생명 통할의 총체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정하는바, 우선 무리는 ‘선량한 국민’과 불온한 비국민을 구별하는 총체적 내전권력(초법적 내전정체)의 정립을 저지하는 힘으로서, 그런 총-통에의 의지 및 총통이라는 최종목적을 절단하는 폭(권/위)력으로서, 다르게 생산되는 ‘총체성’의 이념을 체현하고 발현시킬 수 있다. 이 과정을 집약하는 홀러웨이의 중심 테제가 “풍요를 해방하라”이다. 그런 과정/소송을 홀러웨이와 함께 집약하면서도 달리 전개시켜볼 수 있게 하는 것은 ‘풍요’라는 번역어의 성립 사정에 대한 옮긴이 조정환의 문장들이다: “번역본으로 『자본』을 접한 우리는 ‘풍요’라는 단어의 자리에 대개 ‘부’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맑스가 사용한 독일어 원어는 Reichtum이다. 홀러웨이는 독일어 Reichtum을 대개의 영문 번역에서 사용된 wealth로 번역하지 않고 richness로 번역했다. 이런 독해 전략을 통해 wealth를 부르주아적 형식의 ‘부’로, richness를 부르주아적 형식이 벗겨진 ‘풍요’로 해석하는 개념 분할이 성립하는 것이다. 명사로 쓰일 때(Reich) 나라, 제국 등을 의미하게 되는 독일어 형용사 reich는 어원적으로 power(ful)을 함축하고 있다. 이 때문에 reich는 넘쳐흐르는 힘을 지시하기에 적절한 용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우리말 ‘부’가 아니라 ‘풍요’라고 옮겼다. 어원적으로 부유할 富부자는 넉넉함이 집 안에 가두어진 모양(즉 곳간의 풍요)을 가리킨다. 반면 풍년 豊풍자는 그릇 위에 가득 담긴 음식이 넘칠 것 같은 형상을 가리키고 넉넉할 饒요자도 먹을 것이 넘치는 모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풍부, 풍성 등 풍요와 결합된 넘쳐흐름의 언어들은 드물지 않다. 이 풍요는 흘러웨이에게서 존재론적 역량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풍요의 해방, 그것은 궐위상태 속의 무리에게 가장 가까이 접선되고 있는 새로운 노모스 창출의 근원이자 방법이다. 그것은 어긋나는 무리에 의해, 무엇보다 궐위상태 속에서, 구체적으로 조형될 수 있을 구원적 사회구성체의 목표이자 산물이다. 그러나 사정은 단란하게 단선적이지 않은데, 무엇보다 궐위상태가 위기이기 때문이다. 병적 증상들이 폭발하는 위기적 시간이 궐위상태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엄령이라는 순수통치의 별/이념형, 다시 말해 하달된 명령에서 벗어나는 일은 엄중히嚴 삼가도록 하는戒, 삼엄하게 자제시키는, 알아서 무념이 되게 하는 계엄령martial law, 내전권력의 법통할권. 달리 상기시키건대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치안-축적의 명령어 속으로, 그 암구호 속으로 합성된 사회를 재생산하는 군정적 노모스. 그 낡은 노모스 바깥으로 어긋나면서 모여드는 자들, 말하자면 회집하는 아웃-로out-law. 그러나 그 무리의 클리나멘은 궐위상태 속에서 탄핵-재선출이라는 법치주의적 헌정질서의 회로와 접선되기 십상이다. 그런 한에서, 궐위상태란 떠나온 안전지대/고향으로의 회귀와 그런 고향으로부터의 진정한 어긋남, 공공의 안전이라는 보험법적 보장체제로의 환류와 그런 체제로부터의 탈구out of joint라는 상충하는 벡터의 전장이자 적대적 토포스들의 연계체이다. 인용된 맑스의 질문 형식으로 된 희망의 출처, 즉 ‘스스로의 총체성을 생산하는 곳’과 ‘절대적 생성 운동의 장소’는 어디인가라는 물음에 홀러웨이는 답한다: “집회나 코뮌이란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말하면서-듣는 운동이다. 그것은 미리-정의된 선을 기초로 결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있는-곳을 기초로 결집하는 것이다. 이는 참가한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심지어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의 유토피아적 핵심, 그들의 존엄, 그들의 고통, 그들의 꿈을 만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인-나I-that-is-We와 나인 우리We-that-is-I의 상호 인정을 향해 손을 뻗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회는 풍요의 합류이다. 그것은 상품 교환, 화폐, 국가 그리고 법을 통해 확립되는 사회적 결속에 대립하는 사회적 결속의 구축이다.” 궐위상태라는 전장에서 접선되는 유토피아적 핵심. 이 블로흐적 희망-유토피아 곁에 자리매김해 놓게 되는 것은 새로운 노모스의 장소성을 표현하면서 그 노모스의 창출과 접선되고 있는 “아-토포스A-Topos” 혹은 “유-토포스U-Topos”(없는/없애는 장소)론이다: “유토피아라는 인공적인 낱말 속에는 대지의 낡은 노모스가 근거해 있는 모든 현장확정들의 거대한 지양Aufhebung 가능성이 함축적인 선율로 표명되고 있다.”(칼 슈미트) 그런 지양의 실험적 가능성과 원상회복적 불가능성이 더불어 잠재해 있는 궐위상태 속에서 “희망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은 저항이 반란으로 넘쳐흐르는 정도 만큼이며 서로 다른 억압상태들을 연결하는 점들을 적어도 도식적으로라도 잇기join 시작하는 정도 만큼이다.” 희망 없는 시대에 희망과 절망은 반대말이 아니다. 절망을 단념하지 않는 것이, 포기하지 않는 절망이 희망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반복하는 절망이, 그런 절망 속에서 차이의 조형 가능성에 내기를 거는 일이 진정한 절망의 조건이자 현명한 희망docta spes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


클릭! 폭풍다음에불-보도자료-fin

[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1회|1. 다시 찾은 길 (1)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그대에게 가는 먼 길> 연재의 변

 

앞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필자가 쓴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이 책은 격동의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2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이고, 2부는 1990년대 후반부부터 2020년대 전반부에 걸쳐 있다. 현재 1부는 완성되어 있고, 2부는 쓰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이 소설을 쓰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개인의 사적인 삶을 정리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겪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철학적으로 반성해보려는 것이다. 다들 알고 있듯, 한국의 1970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인들은 유신 독재와 광주 항쟁, 민주화 투쟁과 1987년의 민주주의의 쟁취 등으로 점철된 의미 있는 역사적 경험을 겪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사회과학의 전성시대이자 온갖 이론과 사상이 난무하던 지적 르네상스이기도 했다. 필자는 이 시기를 프랑스의 6.8 혁명 못지 않은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6.8 혁명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이론과 사상을 정립해서 세계인들에게 내 보였던 반면, 한국인들은 그런 귀중한 역사적 체험을 그저 그런 과거의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우리가 겪은 이 시대의 체험을 철학적으로 반성하고 의미화하고 싶은 욕구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구성해본 것이다.

한국철학의 고질적인 문제는 자신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구성하기 보다는 여전히 바깥의 수입 철학에 의존하고 2천년도 넘은 공맹과 노장 사상을 주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있다. 이런 지적 식민성과 사대주의가 한국의 지성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겪은 위대한 경험을 과거로 묻어 버린 채 그저 바깥에서 들어온 새로운 이론과 사상 혹은 오래된 사상에 목을 매달고 있을 뿐이다. <조선사상사>를 쓴 교토대 철학과 교수 오구라 기조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외래 사상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재구성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바꿔치기 하는 전면적 개변(改變)에만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다. 한 사상이 물밀듯 들어와서 한 시대를 지배하다가 시효가 되어 사라지고 다른 사상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개변의 일반적 형태이다. 과거 불교와 유교가 그랬고, 근대에 들어서는 유교와 맑스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 등이 그랬다. 손바닥 뒤집듯 일어나는 개변의 가장 큰 단점은 사상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 있다. 외래 사상만을 끊임없이 찾다 보니까 그런 사상의 축적이 이루어지기 힘들고, 더욱이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오늘날 한국철학계가 부닥친 커다란 딜레마의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이런 생각과 틀을 바꿔야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 필자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시대 체험과 생각, 자신들의 언어를 살려서 자신들의 철학을 정립해보자는 것이다.

이 소설은 격동의 한국 사회를 한 개인의 지적 모험을 통해 재구성해보자는 데 있지만, 사실 이런 시도는 잘못하면 죽도 밥도 되지 못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필자의 시도는 철학적 소설을 겨냥했지만 철학도 되지 못하고 소설이라는 면에서도 실패할 수 있다. 최대한 이러한 실패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 판단은 필자의 손을 떠나 읽는 독자들이 내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문제 의식에 대한 공유를 통해 우리 철학을 정립하는데 하나의 초석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필자 이종철


첫 번째 글.

  1. 다시 찾은 길

 

사위는 아직 컴컴했다. 대학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시각은 5시 45분이다. 개강을 막 시작한 3월 초니까 겨울의 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다. 나는 외투 깃을 약간 올리고 천천히 정문 쪽으로 걸었다. 정류장에서 대학 정문은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다. 희뿌연 등이 정문에 밝혀져 있고, 그 옆 수위실도 불이 밝혀 있다. 내가 타려는 학교 버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사람들도 별로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지방의 소도시의 분교로 출퇴근하는 교원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는 정확히 6시 5분 전에 도착한다.

  나는 늘 그렇듯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 다음 한 모금 들이켰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타고 담배 연기가 목젖을 파고들어 왔다. 순간 아직 잠에서 덜깬 몸처럼 목젖이 따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짜릿하면서도 약간은 고통스러운 쾌감 때문에 담배를 끊지 못하나 보다. 버스를 탈 시간이 되어 가자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얼굴이 익숙한 후배 하나가 인사를 건냈지만 다들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는 원주에 전임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강사들이다. 나도 그런 자격으로 오늘 이 버스를 타는 것이다.

  6시 정각이 되자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는 정문에서 신촌 로타리 쪽으로 난 도로를 타고 나가다가 로타리를 돌아 서강대 쪽으로 향한다. 서강대를 지나서 마포대교를 향해 꺽자 마자 우체국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태운 다음 바로 강변도로로 진입한다. 이 때 쯤이면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어둠이 걷히면서 한강 변 양쪽으로 빌딩들이 뿌연 형체를 드러내고, 강변을 따라 차들이 바쁘게 달리고 있다. 내가 탄 버스도 그 무리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거대한 자동차 물결에 휩쓸려 내 몸도 함께 달리고 있다. 버스가 한강 다리를 달릴 즈음에는 이미 해가 떠올라서 강변의 빌딩들이 더욱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침 햇살은 참으로 신기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햇살을 받아서 위용을 드러낼 때는 마치 새로운 존재들이 탄생하는 느낌마저 주었다. 그런 생각들이 일어나자 순간 지금의 내 삶도 어둠을 뚫고서 새로운 공간 속으로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 속의 저편과 밝은 햇볕 속에 드러난 이편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이나 컸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나? 지금 나는 다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왜 나는 남들처럼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만 열심히 파지 않았는가? 왜 나는 끊임없이 방황을 하는가? 방랑은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방랑자가 나의 참모습인가?

 내가 한곳에 머물지 못하리라는 운명을 나는 일찍부터 가졌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당시였을 것이다. 그때 사주 관상을 본다고 하던 엄마의 친구가 우리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 아주머니가 내 사주를 보면서 하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큰 별이 두 개가 있어. 그런데 이 아이는 어느 별에도 속하지 않아. 아마도 이 아이 사주는 떠도는 사주일 듯해.”

 

나는 그 당시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 말은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 아주머니의 말과 달리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쑥맥에다가 범생이나 다름없었다. 집과 학교, 그리고 기껏해야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나의 삶이었다. 나는 불편한 몸 탓에 친구들과 함께 가는 소풍을 거의 가본 적이 없고, 중학교를 들어갈 때까지 버스를 타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런 내가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방랑자라니, 남들은 물론 나 자신도 그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전날 자지 못한 잠을 보충하고 있는 듯 조용했다. 간혹 오전 강의를 준비하는 듯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부스럭거렸다. 차는 이미 중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영동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고, 창밖의 고속도로 풍경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무료하게 그런 모습을 보다가 이내 나도 첫 교시 수업에 생각이 미쳤다.

첫 교시는 내 전공과 관련된 독일관념론의 칸트 철학이다. 서울에서 강의를 할 때는 대부분 교양강의에 머무는 경우가 많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강의하는 이 수업은 전공 강의이다. 교양강의는 강의 준비는 쉬워도 막상 강의를 할 때는 그렇지가 않다. 학생들 전공 분포도 다양하고, 이해 수준도 편차가 크기 때문에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가 늘 신경이 쓰인다. 반면 전공 강의는 강의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도 수업 자체의 집중도가 높고 학생들의 수업 열의도 크기 때문에 강의 자체가 즐거운 경우가 많다. 그만큼 학생들과의 유대도 많다. 강의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교양 인문 강의를 하다 보면 단순히 글쓰기 강좌에서부터 ‘논증과 비판’ 같은 토론 수업, 문화 현상들에 관한 수업, 환경과 4차 산업 혁명 등 다양한 주제들을 섭렵해서 그야말로 백과사전적 지식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지식들이 전혀 필요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 소모품 형태로 강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학기가 끝나면 그대로 잊히는 경우도 많다.

반면 전공 강의는 심화 학습을 할 수 있고, 논문과 연계시켜 원전 강독을 병행할 수도 있다.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도 있고, 수업의 영향과 효과를 확인할 수가 있어서 좋다. 지난 첫 시간은 오리엔테이션을 겸해서 독일관념론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강의했다. 학기 초라 그런지 다들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굴리면서 집중력을 높이고 있다.

독일관념론의 전체적인 흐름을 잡기 위해 내가 질문을 먼저 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된 해가 언제이지요?” 학생들은 약간 당혹스러운듯 눈동자만 굴린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은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답한다.

“1781년이요.” 바로 맞혔다.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 학생은 이미 칸트 책을 읽어보고 들어온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헤겔의 『법철학』이 나온 해는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른 학생이 구글을 검색했는지. “1821년이요.”라고 답한다.

“예, 맞습니다. 우리가 보통 ‘독일관념론’이라고 한다면 칸트의 주저인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된 1781년으로부터 헤겔의 『법철학』이 출간된 1821년까지 40년간을 지칭합니다. 한 세대하고 1/3을 약간 넘는 이 짧은 기간 동안 칸트-피히테-셸링-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 철학의 전성기가 전개되었지요. 역사적으로 이렇게 짧은 시간에 기라성 같은 천재 사상가들이 등장한 것은 서양철학의 경우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에 이어지는 시기나 근대에 들어 데카르트 이후의 합리론자들과 경험론자들의 철학이 박진감 있게 전개된 것에 버금할 것이지요.”

“여러분들, 혹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가 언제인지는 아나요?” 학생들이 철학 수업 시간에 생뚱맞게 연도 알아맞히기 게임하는 것 아닌가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문제는 비교적 잘 알려진 사건이라 바로 답변이 나온다. “1789년이요.”

“그러면 영국의 산업 혁명이 일어난 해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요?”

이 문제는 다소 애매한지 학생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본다.

 

이러한 숫자는 강렬한 의미를 줄 수 있고, 상징적 효과도 크다. 기억하기도 좋다.

일반적으로 영국의 산업 혁명은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발명한 1760년을 꼽는 경우가 많다. 이때부터 영국은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서구의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빠르게 자본주의에 진입한다.

대충 여기 나온 숫자들 만으로 17-8세기 당대 유럽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1760년의 영국은 경제 혁명이 시작되는 해이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의 정치 혁명이 시작된 해이다. 1781년과 1821년은 칸트와 헤겔의 대표적인 저작인 『순수이성비판』과 『법철학 강의』가 출간된 해이다. 독일은 이웃 국가들의 정치와 경제와 같은 현실적 혁명을 구경하고 열광했을 뿐 자신들이 이런 혁명을 이룩하지는 못했다. 대신 이 시대 독일에서는 칸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독일관념론이 완성되고, 괴테와 쉴러와 같은 대문호들이 활약하고, 모짜르트와 베토벤같이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이 등장했다. 한 세기에 한 명 나오기도 힘든 데 40년 정도 안 되는 짧은 시기에 이런 천재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때문에 후대의 사가들은 이를 독일인이 이룩한 ‘정신혁명’이라고 기술한다.

2회에 계속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21-존재와 존재자의 구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21-존재와 존재자의 구분

1)

1부 1편 1장 존재론에서 헤겔의 주장은 단순하다. 즉 존재와 무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상식으로는 누구나 쉽게 인정하듯이 존재와 무는 동일하지 않다. 단적으로 말해 내가 존재하는 것과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헤겔은 이런 상식을 주석 1에서 비판하면서, 여기서 두 가지가 혼동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즉 존재와 무, 더 분명하게 말하자며 순수 존재와 순수 무와 어떤 존재자와 그 존재자의 부정으로서 비존재[자]는 개념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수 존재와 순수 무는 동일하지만, 어떤 존재자와 어떤 비존재자는 서로 다르다.

헤겔은 주석1에서, 존재와 존재자(또는 무의 비존재자)의 구별을 설명하면서 그 유명한 칸트의 백 탈러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칸트는 백 탈러가 내 주머니에 실제로 있는지 아니면 다만 마음속에 가능적으로 있는지가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고 말한다. 이 비유는 너무나 적실하게 가슴에 와닿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주머니에서 동전이 달랑거리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 적실성 때문에 이 비유는 유명해졌는데 칸트가 이 비유를 끄집어낸 데에는 사정이 있다.

그 출발점은 신 존재 증명이다. 이 증명은 신적 존재의 본질은 무한하고 그 속에는 현존이라는 성질도 들어 있으니, 신은 현존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칸트는 현존은 성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본질 즉 성질은 사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고 현존은 직관(시공간)의 형식에 속하는 것이라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의 본질을 아무리 분석해보아도 현존을 끌어낼 수 없으며, 현존은 다만 경험에서 주어질 뿐이다.

칸트는 이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소위 가능적 백 탈러와 현실적 백 탈러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가능적이든, 현실적이든 그 현존은 경험에 의해 주어진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백 탈러라는 내용은 줄어들지도 커지지도 않는다.

신 존재 증명에서 제기된 성질과 현존의 구분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라이프니츠의 반성 개념을 비판할 때도 제기되었던 것이다. 알다시피 라이프니츠는 ‘사물은 서로 성질이 동일하면 서로 동일한 것’이라는 동일성 테제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칸트는 두 나뭇잎의 예를 들면서, 두 나뭇잎은 모든 성질이 동일하지만, 그 현존은 서로 다르며 또 앞에서 말한 백 탈러 예를 들면서, 가능적 백 탈러와 현실적 백 탈러는 모든 성질이 동일하지만, 그 현존은 서로 다르다고 했다.

2)

헤겔이 칸트의 현존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은 칸트처럼 신 존재 증명을 비판하거나 라이프니츠의 동일성 테제를 비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헤겔은 칸트의 현존 개념을 존재와 무의 동일성과 비동일성에 관한 논쟁으로 끌어들인다.

칸트에서 현존은 헤겔에서 존재자를 말한다. 성질이 동일하면서도, 서로 현존은 다를 수 있다면, 그리고 가능적 현존과 실제적 현존이 다른 것이라면, 존재자와 비존재자는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존재하는 것과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르며, 내 주머니에 백만 원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겪어본 누구나 인정하듯이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헤겔의 논점은 상식이 주장하는 것처럼 존재자와 비존재자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 존재와 무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상식에서 존재와 무는 서로 다르다고 할 때, 그들이 ‘존재’와 ‘무’라고 말한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존재자’와 ‘비존재자’를 말한다. 이렇게 존재자와 비존재라는 측면은 현존을 포함하는 개념인데, 그럴 경우라면 상식이 말한 것처럼 존재자와 비존재자는 다르다. 그런데 상식은 이런 존재자의 예를 들면서도 여기서 끌어내는 것은 존재와 무, 즉 순수한 존재와 순수한 무가 다르다는 주장을 끌어내니, 상식은 여기서 범주의 혼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헤겔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내가 백 탈러를 갖는지 아닌지 하는 구별을 단순히 존재와 비존재로 귀결시킨다는 것은 기만이다. 이런 기만은 이미 제시되었듯이 일면적인 추상(존재와 무의 고립화)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런 추상은 그런 예들에서 출현하는 특정한 현존을 제거하고 단순히 존재와 비존재만을 확립하며 바대로 추상적인 존재와 무가 파악되어야 함에도 이런 추상적 존재와 무를 특정한 존재와 무로 즉 현존으로 전환한다.”(논리학, GW21, 75)

헤겔은 여기서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하면서 존재자의 경우는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의 경우는 존재와 무, 순수 존재와 순수 무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논증이 충분한 것일까? 누구나 금방 알아차리겠지만 헤겔의 논증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 존재자와 존재를 왜 구별해야 하는가가 제시되지 않았다. 또한, 상식이 존재와 존재자를 혼동했더라도, 아직 존재의 경우 존재와 무가 같다는 것이 직접 논증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헤겔의 논증 가운데 감추어진 일면이 있다. 사실 그 때문에 헤겔은 칸트의 현존 개념을 끌어왔던 것인데, 실제 헤겔의 논증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 현존이라는 칸트의 개념이다. 이 현존이라는 개념을 이해해 보면, 헤겔이 왜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했는지가 이해된다.

3)

현존[Dasein]은 칸트에서 시공간적 직관에 속하는 것이다. 칸트가 시공간적인 규정을 선천적 감성의 형식이라 보았다. 그 때문에 마치 시공간적 규정이 사물에는 없는데, 감성이 부여한 것으로 간주된다.

칸트의 주장은 여기서 그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당장 엄청난 문제가 등장한다. 그런 시공간성이 주관적 감성이 부여하는 것이라면 굳이 그게 직관형식이라고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관적 감성이 부여하는 것이라면 왜 어떤 사물에는 이 시공간성이 부여되고 다른 사물에는 저 시공간성이 부여되는가? 우리는 자주 몽롱한 상태에서 사물이 실제와 다른 시공간성을 가지는 경험을 한다. 감성을 통해 부여된 시공간성이 이런 몽롱한 상태에서 부여된 것과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칸트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가를 여기서 탐구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시공간성에 관한 이런 딜레마 앞에서 헤겔이 나갔던 길로 바로 들어가 보자.

헤겔의 경우 이미 사물 자체가 그런 시공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즉 시공간성 자체가 사물에 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공간성을 사물의 다른 성질과 같은 것으로 본 것인가? 헤겔이 만일 그렇게 보았다면, 칸트의 신 존재 증명 비판이나 동일성 테제 비판에서와 같은 비판에 걸려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헤겔은 시공간성을 사물의 성질로 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물에 속한 시공간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오히려 헤겔에서 시공간성은 사물이 다른 사물과 맺는 관계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사물은 이 관계 속에 들어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공간성이 사물의 관계이므로 시공간성은 사물 밖에 있다. 그러나 시공간성은 사물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도 없다. 즉 시공간성은 사물이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시공간이 사물의 관계이므로, 시공간은 구체성을 띠고 있다. 관계 맺는 사물의 종류에 따라서 그 시공간은 서로 다르다. 이로부터 다양한 시공간이 나올 수 있다. 가성적 세계도 하나의 시공간을 지니며, 현실이 아닌 피안의 세계도 하나의 시공간을 지닌다. 역학이 다루는 일반적 추상적 시공간성 외에도 더 구체적 개별적 시공간성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사랑하는 남녀가 다방에 앉아서 만드는 시공간은 다른 시공간과 구별되는 독자적 시공간이다.

4)

시공간을 이처럼 사물의 관계라고 할 때, 모든 사물은 이 관계 속에 들어 있다. 이런 관계를 확장하여 모든 존재자가 자신의 구체적 성질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존재하는 한에서 맺는 관계 즉 가장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실제의 시공간을 넘어서 가상적인 시공간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인 시공간이다.

이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할 때 즉 존재자는 이런 총체적 시공간 안에 있다는 말이 된다. 어떤 것이 이 총체적 시공간 안에 있을 때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며 그런 시공간 밖에 있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시공간적 차이 때문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구별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시공간의 특정한 위치에 존재한다는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위치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위치에 존재하지만 다른 위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모순되지 않으니,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위치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모순이며 성립할 수 없다.

나는 도처에 존재한다는 말도 말이 되며, 또는 나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도 말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도처’나, 그 ‘어디’는 어떤 시공간을 전제로 한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때 이런 시공간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말이 된다. 예를 어떤 구체적 시공간을 생각해 보자. 특정 소설적 시공간이다. 그런 소설적 시공간에서 특정 주인공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런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 공간 밖에 실제 시공간에서 존재하는가 않는가를 묻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물음일 뿐이다.

가장 추상적인 시공간을 생각해 볼 때, 여기서 그런 시공간 밖에 존재자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것은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발언일 뿐이다. 모든 존재자란 아무리 추상적 존재자라도 가장 추상적인 시공간 속에 있기 때문이다.

5)

시공간이란 이처럼 어떤 것들이 관계를 맺는 곳이다. 이렇게 존재자는 시공간 속에 있으므로 이 존재자는 항상 타자와 관계하지 않을 수 없다. 시공간 자체가 이런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여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자와 관계하면서 어떤 현존은 규정성을 지니게 된다. 이 규정성은 곧 타자에 대한 부정을 통해 나온다. 예를 들어 ‘빨강’은 그것에 대한 타자인 ‘파랑’을 부정하면서 ‘빨강’이 된다. 물론 이 부정은 색깔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는 색깔이 만나는 시공간이다. 그러므로 ‘빨강’은 ‘수 3’이나 ‘코끼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으며 이들은 서로 부딪히는 시공간이 없다.

어떤 규정성이 이처럼 시공간에서 타자에 대한 부정을 통해 성립한다는 생각 즉 규정성은 부정성이다는 생각은 비판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빨강’이나 ‘파랑’이나 각자 실재하는 것이지 이것이 서로 대립하거나 서로에 대한 부정이라는 것은 인간이 주관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자연에는 부정성이 없으며 다만 실재성만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의 규정성을 이런 특정한 시공간에서 타자에 대한 부정을 통해 나오는 것으로 보는 것, 이것은 그 밑바닥에 반성적 사유를 깔고 있는 것이며 헤겔 논리학 또는 형이상학의 가장 근본적 전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일정한 시공간에 타자와 관계 속에 있으므로 이제 존재한다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헤겔은 만일 어떤 존재자가 다른 존재자와 전혀 어떤 관계를 맺지 않고 고립된 세계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런 세계라면, 전체 우주의 티끌만 한 존재인 내가 존재하거나 말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내가 타자와 관계 맺는 이 시공간과 어떤 소설가가 쓴 소설의 시공간은 전혀 관계없는 세계다. 그러니 그 소설 속에서 누가 죽든 말든, 거기서 홍수가 나든 말든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나에게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내가 소설 독자로서 그 소설의 시공간에 일종의 참여자로 들어가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주인공의 죽음에 관해 슬퍼하며 또는 기뻐한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결국 존재자와 비존재자의 차이는 그 존재자가 타자와 관계하고 그런 존재자의 존재 여부는 타자의 관계를 변화시키므로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안 하는가 하는 것은 무차별한 일일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까닭은 그것의 존재와 비존재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것의 규정성과 또한 그것을 다른 것과 관련하게 만드는 그것이 지닌 내용 때문이다.”(논리학, GW11, 46)

만일 모든 것이 상호 필연적으로 연관된 세계라면, 여기서 티끌 하나가 사라진다고 해도 전체 연관이 바뀌게 되니, 티끌 하나의 존재와 비존재는 세계 자체를 바꾸게 하는 것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20 -형이상학의 매력[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20 -형이상학의 매력

1)

계엄이다, 탄핵이다. 등 세상은 어수선하다. 옛날 같으면 이런 시기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지 못했다. 워낙 황당한 일이라 그런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잔혹한 꿈이 현실이라니, 마음은 자꾸 형이상학의 세계로 기울어진다. 

헤겔은 논리학 서문에서 형이상학이 없는 독일 민족을 한탄했다. 한때 세계사를 이끌었던 민족치고 형이상학이 없는 민족은 없었다는 것이다. 형이상학과 민족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헤겔의 한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한다. 형이상학은 시대를 극복하는 창끝이라고. 그런 창끝이 있었기에 각 민족은 그 시대 세계사의 앞을 가로막는 바위 덩어리를 부수고 세계사를 이끌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위안하면서 다시 형이상학의 책상 앞에 앉았다.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어떤 선배님은 고대철학을 하였다. 그러면서 존재와 무라는 개념을 평생 규명하려 고투에 고투를 거듭하였다. 그는 대학교수를 일찍 그만두고 변산반도에서 자연학교를 열고 일종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필자도 그의 활동에 관심이 있어서 부산에 변산반도로 한국을 가로질러 몇몇 후배들과 더불어 찾아뵌 적이 있었다.

하도 오래전이라 그때 누구와 갔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두 가지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하나는 피 이야기이다. 선배님이 가꾸는 논인지 밭인지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 곳에는 벼인지 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자라났다. 선배님은 그것을 가리켜 보이면서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맨날 게으르다고 하며 웃지만, 피도 생명이고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 것이기에 자기는 이 피를 제거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슴에 와닿는 말이었지다. 선배님의 자연주의적 인생관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보다 충격적인 기억은 그 날 밤의 일이었다. 한 두잔 술잔이 돌고, 이런저런 세상사를 간단하게(마치 플라톤의 대화편 앞부분에서 나오는 쓸데없는 말 정도의 분량에 그친다) 말한 다음, 대뜸 정말 오래간만에 말하는 것처럼 존재와 무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칠 줄 모르고 몇 시간에 걸쳐 존재와 무에 관한 알쏭달쏭한 궤변(?)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저 말이 하고 싶었으면 저렇게 미친 듯 이야기하는 것일까? 역시 철학자는 그 피를 속이지 못하는 걸까. 더구나 변산이라는 그 시골구석에서, 밤새 풀벌레 울음이 그치지 않고 오줌을 누러 문밖으로 나가면 하늘의 별이 맑게 빛나는데, 방안에서 존재는 존재고 무는 무라는 말을 들으니 무언가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십여 년 더 지난 다음, 선배님이 그동안 쓴 책을 가운데 두고 몇 회에 걸쳐서 후배들과 대화의 장을 열었던 적이 있다. 그때 선배님이 쓴 글을 전체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는데, 도처에 내가 옛날에 들었던 존재와 무에 관한 소위 궤변이 흩어져 있었다. 그게 그렇게도 재미있는 것일까?

궤변이라니, 선배님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남들이 보면 그렇게 보일 것이라는 말이다. 선배님이나 우리는 이를 궤변이라 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이게 형이상학이다. 하긴 나도 사람들과 더불어 철학에 관해 떠들 때는 이상한 행복감이 나를 사로잡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제 어느덧 형이상학에 빠지는 것 같다. 이 어수선한 시국에 형이상학적인 글을 쓰고 앉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형이상학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정말 해보지 않은 사람이면 모를 것이다.

2)

오래간만에 다시 형이상학 산책을 쓰면서 변명이 길어졌다. 헤겔 논리학은 독특하게 구성된 책이다. 1부는 객관 논리학과 2부 주관 논리학이 구분되는 것도 흥미롭다. 우리가 흔히 아는 논리학은 2부에서 주로 서술된다. 1부는 겉으로 보기에는 논리학이라기보다 오히려 존재론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 같다. 1부는 다시 1권 존재론과 2권 본질론이 구분된다.

대체 헤겔이 논리학의 구성을 왜 이렇게 했는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나름대로 이해해 보자. 일단 이 자리에서 2부 주관 논리학은 제쳐놓자. 이 부분에 관해서는 헤겔이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면서 2부 앞부분에서 ‘실체에서 주체로’의 이행을 서술해 주고 있으니, 그때 가서 논하기로 하자.

1부만 제한해서 논하자면, 1부의 구성은 칸트가 판단론에서 제시한 12개 범주표 즉 판단형식의 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권 존재론은 그 가운데 질의 범주와 양의 범주를 다룬다. 2부 본질론은 관계의 범주와 양상의 범주가 다루어진다는 것은 금방 눈에 뜨인다.

물론 칸트의 범주표는 헤겔 나름의 논리적 체계 속에 재구성된다. 여기서 그 가운데 1권만 우선 보자. 칸트는 양의 범주를 앞에서 내세웠으나 헤겔은 질의 범주를 우선시했다. 이 점에 관해서는 헤겔 자신이 ‘존재론의 일반 구분에 관하여’라는 존재론 서문 격 글에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양은 “질이 부정된 것” 이니, 질의 범주가 양의 범주보다 우선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질의 범주와 양의 범주가 균형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1권의 1편은 질을 다룬다. 반면 2편은 양을 다루고, 3편은 척도(양적 무한성)를 다룬다. 칸트 판단표와 비교해 보자면, 질의 범주가 1편에 한정된다면, 양의 범주는 2-3편에 걸쳐서 전개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차이점은 차차 다루기로 하자. 여기서는 1편 1장에 집중하자. 여기서 1장은 존재를 다루고 2장은 현존을 다룬다. 3장은 대자 존재이다. 2장 현존을 다루는 부분이 실재성 개념을 다룬다는 것을 본다면, 이것이 칸트 범주표에서는 실재성의 범주 즉 긍정 판단형식에 대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장 대자 존재라는 개념은 곧 질적 무한 판단형식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대자 존재는 ‘무한성의 자기 내 복귀’로 규정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2장 B절 끝에 부정성 개념이 나오니, 이게 부정 판단형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1편 1장 존재론은 칸트 범주표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칸트 범주표에서 그런 판단형식은 없다. 대체 왜 헤겔은 현존이라는 범주 앞에 존재론을 따로 집어넣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게 헤겔의 존재론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되지 않는가 한다. 필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제 설명하고자 한다.

3)

존재란 무엇인가? 필자에게 이 문제가 가슴으로 다가왔던 것은 대학 시절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에서 들어가자마자 대뜸 내세웠던 말이다. 즉 존재와 존재자의 구분이다. 그러면서 하이데거는 존재자의 존재를 묻기 위해서 존재 물음이 걸어지는 고리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현존재라고 했다. 하이데거는 현존재 속에서 존재는 의식의 시간성을 통해 자기를 드러낸다고 하면서 이제 시간성의 개념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하이데거에서 현존재[Dasein]는 헤겔이 1권 2편에서 말하는 현존[Dasein] 일반과 단어는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하이데거에서 현존재는 존재[Sein]가 자기를 드러내는 장소[da]로서 인간 존재를 의미한다. 반면 헤겔에서 현존[Dasein]는 존재가 자기를 드러내는 존재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규정성 예를 들어 ‘빨갛다’라든가 ‘둥글다’라는 것과 같은 규정성이다.)

존재와 존재자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존재는 ‘있음’이고, 존재자는 ‘있는 것’이니, 있음과 있는 것은 일반 명상과 개별 대상 정도의 차이 예를 들어 노랑과 노란 것들의 차이 정도이지, 그게 무슨 큰 차이인가? 설혹 플라톤적으로 생각해서 존재는 존재자의 이데아이고 존재자는 그런 이데아가 실현된 개별적 대상이라고 보더라도, 그 의미가 별로 다른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하이데거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그토록 역설했던 것일까? 처음부터 막히니 하이데거를 이해하는 데서 앞으로 더 나갈 수 없었다.

하이데거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필자는 헤겔의 논리학 1편 1장 존재론을 읽었을 때이다. 헤겔이 1장 존재론에서 전개한 핵심적인 주장, 어떻게 보면 지루할 정도로 반복해서 주장했던 것이 바로 존재와 존재자의 구분이다. 그러면서 그는 존재와 존재자를 왜 구분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헤겔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하이데거가 헤겔의 철학에 지고 있는 빚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하이데거나 존재자와 존재를 구별은 헤겔의 논리학에 나오는 착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4)

헤겔에게서 1장 존재론은 본문 내용만 본다면, 아주 짧아서 특별히 무엇을 소개할 말도 찾지 못할 정도다. 더구나 그 내용도 일종의 말장난처럼 보인다. 시원으로서 순수 존재는 아무 규정이 없으니, 무이다. 무 역시 사유에는 직관의 대상이 되니, 하나의 존재이다. 그러니 존재는 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헤겔의 주장을 들어보라.

“존재는 이러한 무규정적인 직접성 속에서는 오직 자기 자신과 동등할 뿐이며, 또한 타자에 대해서 부등한 것이 아니므로 … 순수 존재는 무규정적인 직접적인 것으로서 존재는 사실상 무이며 무 이상도 그리고 그 이하도 아니다.”(논리학, GW21, 68-69)

“우리는 직관이나 사유 속에는 무가 있다고도 하겠으며, 또는 차라리 무는 순수 존재와 마찬가지로 공허한 직관이나 사유라고 하겠다.”(논리학, GW21, 69)

헤겔의 말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아주 쉽게 받아들여진다. 그저 말의 의미만 이해하면, 전체 의미가 이해된다. 너무 쉬워서 오히려 이상하다.

언제가 존재론을 이해하려면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 대화편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영어본이지만 대화편을 펼쳐 들었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나 제논의 논변을 잃다가 마치 최면술 걸 때 보는 중첩된 동그라미를 보는 듯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결국 다시 책을 덮고 말았다.

누구라도 그 책을 읽어보면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이 소크라테스를 상대로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헤겔의 말도 그런 말장난과 같게 들리기 때문이다. 존재는 무규정적이니까 무이고, 무는 이미 우리의 생각의 대상이니, 존재다. 여기에 존재나 무라는 말의 의미를 분석하여 자기와 반대되는 것을 끌어내는 것 외에 다른 게 있는 것일까? 이런 식의 의미분석이라면 존재나 무라는 말에서 우리는 무엇이나 끌어내 수 있다. 이런 의미분석을 통해 헤겔적인 존재와 무의 동일성을 끌어낼 수도 있고 반대로 “존재는 존재고 무는 무다”라는 주장을 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헤겔이 존재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하고자 하는 근본적 주장은 오히려 본문에서라기보다 주석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주석을 중심으로 헤겔의 이야기를 설명해 보자. 그 설명의 한 가운데 바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와 존재자의 구분이 들어 있다.

헤겔은 1812년 존재론을 1827년 대폭 수정했다. 특히 주석 부분이 많이 고쳐졌는데,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 1판과 2판의 내용은 서로 대조하면 서로 의미를 더 분명하게 하니, 1판과 2판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참고로 임석진 교수의 번역본은 1판을 번역한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2권 본질론과 3권 개념론은 헤겔이 수정하지 못한 채, 죽었다. 그 결과 이 부분에 관한 2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극시대의 젊은이들에게 – 제7공화정 시대의 주인, 다양체. [천 하룻밤 이야기]

동지(冬至): 다극시대의 젊은이들에게

– 제7공화정의 시대의 주인, 다양체.

 

인간이 지적 체계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삼천 년 전 이전 시대, 즉 기원전 천년 이전 시대 정도로 잡는다. 나일강,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황허강과 장강(양쯔강) 등으로 4대문명을 이야기한다. 이런 토지 시대의 이야기는, 신화 또는 전승으로 알려지는데, 이 시대에 쓰는 입말은 사라지고 각각에 따른 기호들이 남아있다. 이 기호들이 어느 정도 체계를 갖는 시절이 기원전 오륙백 년의 시대라 한다. 그리고 입말과 기호가 상응하는 체계를 만들어지고, 그리고 기원전 삼사백 년에는 체계가 만들어지는 데, 기하학과 논리학이라 한다.

실제로 정교할 정도의 체계를 갖추었던 기하학과 논리학이, 현실의 사물들과 사건들에게 적용에 맞는 부분들보다 맞지 않는 부분들이 더 많다는 것을 왜 몰랐겠는가? 그럼에도 맞는 부분으로 체계를 세우고 조직화를 이루어 공동체보다 더 확대된 도시국가 또는 황제국가를 만드는 재미와 이권(이익)에 매몰된 부류들이 상층을 형성한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백성과 노예들은 어쩔 수 없이 사물들과 사건들의 성립에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세상은 한시적으로 살다가 간다는 것을 알지만 달리 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달리 산다는 것은 죽음이며, 이를 벗어나는 생각을 하는 것이 무서움과 두려움(공포)이라는 것도 안다. 묵묵히 이런 굴종 속에 살다가 갈 수는 없지 않는가? 이런 부류들은 성(城) 밖으로,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여기서 한 가지 성 안은 정상이고 성 밖은 비정상일까? 성 안은 성 밖에서 생산과 유통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성안의 지배를 위한 권력을 구성하였다. 그럼에도 성 밖을 제도의 여분으로서 동일성을 유지하는 동심원적 테두리 속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 성 밖의 이탈자(뻬르베르)를 동심원적 구조 속에 묶는 것은 기하학적 사고이고, 이 동심원적 사고의 지배방식을 확장하는 것은 언어(논리학)라 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경에 인류의 인식의 한계이지만, 오관[視(시)·聽(청)·嗅(후)·味(미)·觸(촉)]의 인식이 하나로 통합되어 단일성을 또는 통일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를 생명체로서 단일성의 유지하는 것으로 생리학(퓌지올로지카)이, 세계의 통일성을 이루는 것으로 천체학(코스몰로지)이 동형구조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상상했고, 이 동형구조는 동심원처럼 되어 있다고 여겨서 체계화가 일정한 정합성, 대응성을 유지하면서, 나도 우리도 서로 이해와 설득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몸(신체)과 세계(천체) 사이의 연관 또는 연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들도 관계와 조성(composition)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고, 안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인식에서 몸들의 조직화와 비슷하게 또는 동상구조로서 도시국가, 황제(참주)국가의 제도가 이루어진다고 여기며, 제도와 체제의 조직화를 생각하는 것도 생리적 조직학(퓌지올로지카)의 확장으로 여겼다. 신체의 조직화(유기체화), 사회의 조직화(체제), 우주의 조직화(우주론), 이 셋은 우선은 기하학적 동일성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기호의 동일성, 또 하나는 하늘의 별들의 동일 운행에서, 같은 방식으로 유지하고 있거나, 어느 하나를 다른 것들이 모방하고 있다고 여겼다. 이런 인식의 도구는 당연히 5관의 통합을 이룬 의식이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다섯 의식의 통합으로서 여섯째 의식은, 새로운 규칙, 법칙 등을 다루어 일반성을 만들어 낸다고 여겼다. 물론 기하학의 공리와 공준에 의한 정의를 정리하였듯이, 논리학에서는 항목(개념)을 정의하고 전제와 귀결 사이의 추론의 법칙에 맞는 인식이 성립한다고 여겼다, 이런 인식에서 진리의 성립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런 오관이 하나로 통일되는지를 실증적으로 탐구하기보다, 삶에서 일반화를 통해서 보면 성인이 되어서 당연히 오관의 통합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3천년전 이전의 사람들이 5관을 통해 당연시 여긴 항목들이 수의 단위가 성립하고 그리고 배치하여(공간화), 가축의 수나 도시 인구를 셈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서야 수학들(산술학과 기하학)과 논리학처럼 추리의 순서를 갖추고 체계화 정합성을 갖는 것이 아니었을까? 학문의 진리를 논하는 사람들이 가끔 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류가 살아온 기나긴 과정에서 인간들 사이에 대립항이 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또는 상부상조와 상호협약이 체계를 만들까?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제기는 인류가 입말을 형성할 때, 일반화에서 체계와 지배의 언어로서 명사가 먼저일까? 또는 사람들의 삶의 상부상조에서 동사가 먼저 일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벩송(Bergson)은 흥미롭게도 명사(이름)가 일반화에서 먼저이고, 명사의 움직임 방식에서는 동사가 다음으로 성립한다고 한다.

 

우리가 상식(sens commun)의 시대, 양식(bon sens)의 시대, 다양성(multiplicité, 발산)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서양철학사의 변천과정을 설명하는 한 방식이다. 상식의 시대에 중요점은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고대 그리스이래로 ‘산다’, ‘착하다’, ‘장하다’, ‘훌륭타’에 대한 막연한 합의와 일반화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양식의 시대는 데카르트 이래로 물체(신체)를 사유의 방법과 어느 정도 상응한다는 점에서 사유의 의미(sens, 방향)를 잘 닦아서, 추론의 길을 열면, 세상의 편리와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17세기의 데카르트 시대에도 물체의 운동에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이들이 많았고 그리고 18세기의 “빛의 세기”에는 삶(의식)의 의미(방향)은 사회제도와 지식체계처럼 의미가 하나가 아니라, 빛의 발산처럼 여러 방향임을 제시하기도 한다. 오죽 했으면 유일신앙의 종교가 빛의 발산처럼 다양한 프로테스탄트가 생겼겠는가? 그럼에도 이런 다양한 방향의 길들의 전제로서, 신앙인으로서 철학자들은 신의 방향을 생각했을 것이고, 자연주의자 또는 유물론자는 자연의 이법을 아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상식에서 양식의 시대로 이행에서도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착하다’, ‘훌륭타’에 대해 공통감각은 토대로서 유지되고 있었다. 17세기 18세기 철학자가 인간의 자연(인성)을 말할 때도 인간이 자연의 이법에 따라 ‘착하다’와 ‘훌륭타’의 공통감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여겼다.

이 자연에서 생명은 또 다른 방향이라는 것을 알린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이런 다양한 길들은 서양철학사에서 여러 과학들이 자기 방향과 범위에서 학문을 성립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루소의 정치경제학 제기에서 맑스(Marx)의 정치경제학 정립, 공산주의의 제기는 인식의 방식에서, 이항대립의 관계를 봉상스(양식)의 방향을 전도된 방향으로 보고, 앞뒤 상하를 뒤집어 놓았다. 그럼에도 같은 시기의 인류학과 언어학은 방향을 뒤집는 것이라 하기보다는 다방향의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산업사회의 편리와 풍요는 다방향의 성립보다, 제도 속에서 민중과 인민의 뒤집기(혁명)에 두려움으로 상층의 강화의 길로 갔다. 이 길이 봉상스와 같은 궤도에서 국가주의에 이어 제국주의를 형성하였다. 제국주의가 식민지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피식민지의 착취와 약탈을 일삼았다. 이런 시기에 생산력의 발달로, 벩송의 표현으로 원동기(모터)의 발명 이래로, 인간의 손이 기계에서 떨어져 나와 잠시라도 사유할 수 있는 여유를 맛보았다. 이로서 자유의 문제가 과거와 달리 인민에게도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상층이 봉상스에서 ‘훌륭타’와 ‘잘 안다’를 결합하여, 국가제도를 체계에 맞게 위계제도를 굳건히 하고, ‘훌륭타’와 ‘잘 안다’는 산업사회에도 적합하며, 상층은 부를 누리고 위계의 상위를 당연하다고 여겼다. 상식의 시대에서는, 중국에서 평천하(平天下)든, 불교에서 안양정토(安養淨土, 불국토), 유럽에서 신 앞에 평등이든, 삶의 터전에서 사람들 사이의 위계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토지와 사회에서 역할을 차이정도가 있을 뿐이라 여겼다. 그런데 봉상스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상층은, 계급의 형성을 체계와 체제에 대입하여, 현상의 인식을 바탕으로 권력과 권세를 백성과 대중에게 강요하였다. 여기에 지식의 권위가 봉상스의 방향과 일치를 내세우며 통일성을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지식의 통일성에 의한 정합성은 세계의 단일성도 당연히 여겼다.

맑스의 공산사회의 제기에 이어서, 레닌은 제국주의가 백성과 대중을 피식민지의 노예로 삼으려는 전략이라고 반대하였다. 산업의 발달에서 상층은 하늘 길, 땅 길, 물 길의 도구를 지배하여, 도구를 무기화 하면서 제국주의를 강화하였을 때, 유럽의 국가들은 국가들 사이의 상층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대항하여 식민지 제국주의의 대립각에서 소비에트 연방이 등장했다. 그리고 상층주의자들은 소련을 악마화하고, 소련이 피식민지 신생국가들의 지원을 막았다. 상층은 새로운 질서의 재편을 도모하는 가운데, 또다시 후발 제국주의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 20세기 초 소련의 등장이래로, 중후반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등장하였다.

상식의 시대에는 장하다 ‘훌륭타’라는 주제가 현실의 표면에 있었다. 봉상스 시대에서는 인간의 능력과 추론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여겼고, 국가주의를 넘어서 식민지 지배의 제국주의로 확대 강화하면서, 하나의 길이 정당하다는 강조의 길은 인간이 인간의 지배라는 광기(folie)로 들어섰다. 두 번의 전쟁은 광기의 극한으로, 유럽 우월주의 또는 유일신앙 지배를 봉상스로 착각하는 편집증의 망상에 이르렀다. 세계사는 소련과 중국이라는 체제가 자기 방향을 찾는 동안에,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재편된 미국은 두 나라를 악마화 하였다. 즉 20세기 후반에 미국과 유럽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로, 소련과 중국은 사회와 인간의 상부상조를 도모하는 사회주의로 재편되었다. 20세기 후반에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었지만 기본토대로서 사익보다 공공성 우선이 여전하다고들 한다. 제국은 이들과 소통하지 않을 수 없지만, 식민지 대중들에게, 특히 남녘에서는 여전히 이들 두 나라의 사상을 악마화 또는 빨갱이로 마남(魔男)사냥을 강제하고 있다. 역사의 과정에서 벩송의 표현으로, 인민의 자유 실현은 간헐적이지만 지속하고 있다고 하고, 들뢰즈는 혁명은 간헐적이지만 폭발적이라고 한다. 어느 시절에서든지 평등과 자유의 의식은, 상식의 시대에 ‘훌륭타’는 봉상스에 가려 표면 밑에 있는 것 같지만, 20세기 두 차례나 솟아난다.

유럽 중심주의의 두 전쟁 동안에 세계지도와 인구지도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평면을 비교하면 사회주의 평면이 더 크다고 한다. 산업화에서 맑스와 레닌 다음으로, 어느 사람이 세계사에 빛을 던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즉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표면의 균열과 변화의 조짐은 다른 두 학문의 영역에서 나왔다. 하나는 1953년에 반도체의 부분이며, 정보기술(IT)이라 부르는 영역의 발명과 확장이다. 다른 하나는 그래도 생명과 연관된 DNA의 나선구조의 발견이다. 세계사는 표면 위에 사상의 다른 영토화를 제시하고 있다. 푸꼬(Foucault)의 용어로 보면, 세계의 표면에서 배치와 배열이 달라지고 있다.

상식, 양식, 20세기는 벩송의 표현으로 고등양식의 시대에 들어섰다. 인식은 표면의 현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포함하여 현재와 미래에 예상 참여하는 덩어리가 현존(현전)한다. 이런 과거-현재-예참의 재인식은 갑자기 도래한 것이 아니다.

상식의 시대에는 과거의 상상의 영역에서 원인에 대한 추구로서 공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상식이전의 의식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했다. 즉 내재의식이 있다. 이런 의식을 양심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5식(5관) 이전에 기억(1식)을 실증적으로 탐구하고 인정한 것은 인류학과 고고학의 발달이었다. 기억의 현존을 실증하면서, 마치 지층의 단면들을 잘라놓은 것 같은, (과거와 현재의) 의식의 현존, 그 다음(예참)과 더불어 긴 덩어리(지속)를 이어가는 토대는 자연이지 신도 원리도 공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상식이 양식의 토대가 아니라, 상식은 오관과 더불어 의식을 형성하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이다. ‘훌륭타’는 공감하는 의식, 착하다는 실행하는 실천은 양식의 방향과 다른 방향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의미는 마치 언어에서 파라독사의 해결이 있었듯이, DNA의 구조와 독해 방식은 코로나19에 발생과 극복에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과학의 발달이 없었다면, 14세기 흑사병(페스트?)의 피폐 이상으로 인류 전체를 위협했을 것이다. 생명의 영역은 사적 이익과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조직화(유기체화)로서 다양체는 수학과 물리학의 연관을 넘어서는(도피안)의 영역으로 사유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질병 역학관계의 해결이 안정을 가져왔다고 여긴다. 자연은 자치, 자율을 넘어서 자발성이 있다는 것을 아직도 사유하지 못하는 유일신앙자들이 사적 이익으로 역학관계를 유지하며, 무기의 지배와 더불어 백신제작의 독점등과 같은 제국이라는 공상을 확장할 수 있다고 여긴다.

반도체, 즉 전류가 흐르지 않은 간격이 있으면서도 흘러가는 현상이 있다. 들뢰즈가 규소의 시대라고 하였다. 맑스의 표현을 빌면, 생산력 발달과 생산된 물질들이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다. 철을 중심으로 다룬 근 3천년의 시대에서 규소를 다루는 시대로 넘어가는 의식의 변화는 다양체라는 개념을 창안하였다. 철학 분야에서는 문명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전환 중이라 한다.

식민지 쟁탈의 제국주의가 지나가고, 화폐의 지폐로서 제국을 형성했던 미국도 현재로서는 단일화폐를 통한 지배체제가 와해되고 있다. 블록체인의 기술은 우선은 제국 하에서 비트 코인이 대리(표상)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정보기술의 시대에서 의식의 확장은 18세기의 “빛의 세기”처럼 봉상스의 방향과 다른 방향을, 차히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차히의 생성은, 21세기에 지구상에서 국가들 사이의 다극체를 열었고 한다. 1953년 이래로 꾸준히 계속된 지식 소통의 연결은 다극체의 형성 이전에 이미 다양체들의 연결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느끼며 살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유의 갈래에서 이중성이 있었다. 이오니아의 자연과 엘레아의 존재의 대비였고, 알렉산드리아의 자연조직학(푸지올로지카)의 이중성도 있었다. 르네상스에서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의 천체의 구조에 대해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나왔고, 같은 해 베살리우스(Vesalius, 1514-1564)의 인체의 구조에 대해 『인체 해부학 대계』가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17세기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이원성의 논리전개, 18세기 자연권의 등장, 19세기에 사회학과 정치경제학만큼이나 의학(두뇌생리학)과 심리학의 정립이 있었다. 20세기에 미국과 유럽(일본 포함) 대 러시아와 중국(쿠바와 베트남 포함)의 대립구도가 있고, 21세기에 국가 간의 다극화시대 이상으로, 전지구적으로 누리소통(SNS)의 다양체화를 실행되고 있다. 소통의 도구로서 화폐의 지위가 어떻게 설정될 것인지가 문제로 남아있다.

 

우리 젊은이는 다극체의 시대에 러시아, 중국, 인도, 미국, 일본을 어느 쪽도 악마화 하거나 먼저 판단을 하지 말고, 역사의 과정에 대한 통찰과 통감(統監), 상호 비교할 수 있는 대조의 노력, 그리고 각각이 지향하는 여러 방향들에 대한 터전(토지, 영토), 등에 대한 탐색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다양체의 시대에 얼마나 다양한 발신자들(블로거, 카페, 유튜버, 신문, 방송)과 젊은이 자신이 이들 매체들과 접속을 통한 연결방식(배치와 배열)에서, 푸꼬가 말하는 주체화가 성립할 것이다. 주체화는 자아의 위상 정립에 있다. 한 개인의 인격을 판단할 때, 그의 친구들과 읽는 책을 보면, 그 인품을 판별할 수 있다. 말하자면 김어준 겸공, 최욱의 매불쇼, 유시민의 민들레 등에서 접속에 의한 연결망과 태극기부대, 전광훈, 천공 등과 연결망의 연결은 전혀 다른 자아의 형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기술 정보 시대에 접속망에서 트래픽에 따는 도표가 그 사람의 인품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는 것이다.

그 만큼이나 러시아, 중국, 프랑스의 문화를 읽는 것과 미국, 영국, 일본을 읽는 것과 대비에서도 트래픽처럼 드러날 것이다. 전자에 연결방식이 많다면 ‘훌륭타’와 공공의 이익에 연관이 많고, 후자에 연결망이 많다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악마의 속삭임에 빠질 것이다. 르네상스에서 철기시대 마지막까지는 공적이익과 공산화를 악마화 하는 교육을 받았더라도, 그럼에도 다극화 시대, 누리 소통의 시대의 젊은이들은 70여년의 규소의 시대의 선두로서 ‘장하다’와 ‘훌륭타’로서 노력과 내공을 쌓기를 바란다.

철의 시대에 사는 늙이(노인)들은 생물학적으로 이제 곧 간다. 이제 규소 시대에는 젊이(청년)들이 살아갈 시대이다. 젊이는 자기 시대를 맞이하여, 세계를 그리고 자아를 접속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 지도 그리기의 일종인 트래픽이 말해준다 – 달리 접속하기를 통해서 푸꼬가 말하는 지도 제작보다 더 유쾌하고 즐겁게 세계(세상) 지도 그리기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마지막 달력에서 12.3 계엄령의 발표와 해제, 14일 반란 수괴로서 윤석열의 탄핵안 가결 등으로 한 줄로 표현할 수 없는 유기체들 사이에 새로운 조직화가 그려지는 숨가쁜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젊은이들 대거 참여하였다. 다극화 시대, 다양체 시대의 주역은 21세기를 사는 젊은이들이다. “산자의 따르라”를 부르는 세대와 동시에 “다만세(다시 만난 세계)”를 부는 세대가 어우르고 있다. 과거-현재-예참을 내재하는 젊은이가 노래와 율동으로 추운 나날을 건강하고 힘차게 이끌고 가고 있다.

새로운 지도 만들기, 7공화정을 이끌 젊은이 만세! 혁명 만세!

(4:41, 57WLI) (5:22, 57WMB)

 

윤석열의 망상과 분열에 대하여: 과학철학자가 보는 윤석열의 망상과 중독, 그리고 시급한 우리 문제 [윤석열 탄핵과 우리의 민주주의 – 시대와 철학] ②

윤석열의 망상과 분열에 대하여

 

과학철학자가 보는

윤석열의 망상과 중독,

그리고 시급한 우리 문제

최종덕(독립학자, philonatu.com)

원글 출처: https://philonatu.com/home/mainpage_view.php?id=361

 

윤석열의 기이한 행동 양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기고 정치 권력을 쥐면서 한국사회의 정치-경제-문화-군사 모든 분야에서 퇴락은 시작되었다.

그의 정치적 미숙함에서 비롯된 권력 망상은 일제부터 이어져 온 기득권 집단이 잠재적으로 조직해 온 기회주의적 기획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검찰에서 국회까지 그리고 보수언론에서 대재벌까지 연쇄된 그들의 권력 유지 전략은 상시적이고 포괄적이며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라서, 그들은 이명박에서부터 박근혜를 거쳐 윤석열이라는 욕망의 캐릭터를 조립하여 말초 권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국회, 행정부와 사법부 및 군부까지 골고루 퍼져있는 권력 욕망 중독자들은 그들의 집단 아바타를 만들기 위한 중독 증상을 발현시키고 있다. 그 증상은 바로 난폭성과 기만성이다. 난폭과 기만의 증상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간단한 사례로 그들의 의도를 직파할 수 있다.

첫째, 난폭의 증상이다. 판사 출신 어느 인물은 윤석열의 계엄 행위가 “유혈사태”까지 간 것이 아니라서 내란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끔찍할 정도로 섬뜩한 그러한 괴성은 피의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둘째, 기만의 증상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쥔 검찰과 안락함을 갖춘 대학교수에서부터 극우 유튜버에 이르는 사람들은 정적들을 비난하는 데 한결같이 ‘위선자’라는 기만적 프레임을 악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대죄를 묻어 놓은 채 상대방 일상생활의 소소한 흠결을 찾아내어 악성 공격에 몰두하는 그들의 모습은 자기-기만의 전형이다.

낭자한 선혈의 폭력이 아니라서 괜찮다는 난폭과 기만이라는 그들의 일상적 성정은 윤석열 개인의 심리를 이용하여 오늘의 끔찍한 내란을 유도하였다. 그렇게 결탁된 윤석열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는 일이 지금 상황에서 당면한 문제일 수 있다.

 

심리철학의 관점에서 윤석열의 심리상태는 다음의 다섯 가지 행동 양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1) 폭압적 행동 양식

(2) 악성 중독 증상

(3) 사회적 소통 장애

(4) 자기기만의 인지 부조화

(5) 주술 의존 망상장애라는 다섯 가지 행동 양식이다.

 

(1) 폭압적 행동 양식

폭력성과 타자 억압성은 윤석열 행동 전반에 깔린 심리기저이다. 심리적 폭력성 행동 양식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의 후유증이 거나 과도한 자기중심적 인물이 상당한 권력을 소유했을 때 나타나 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윤석열의 경우, PTSD 사례로 보기보다는 후 자 즉 과도한 자기 중심성 심리가 그의 폭압적 행동 양식의 밑에 있다고 파악된다.

이런 행동 양식의 특징으로서 자기통제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고 상대를 적반하장으로 공격하는 이중적 행태들이 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의 행동 양식에 대해 고치거나 변화하려는 태도를 일체 부정한다.

 

(2) 악성 중독 증상

윤석열의 술 중독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술 중독은 다른 양상의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술 중독은 언어폭력 중독과 자기제어 불능증을 배가시킨다.

술좌석에서 대장처럼 으쓱거리는 행동 양태들은 술좌석이 아닌 시간과 공간에서는 이성적 행위가 아닌 언어폭력 증상 그리고 술 마시는 자아와 술 못 마시는 자아가 분리되는 이인화 증상(離人症, Depersonalization)을 유도한다.

 

(3) 사회적 소통 장애

소통장애의 윤석열은 남들과 정서를 공유하는 데 결정적인 결핍상태에 있으며 나아가 공공성 있는 대외적 활동을 피하거나 심각하게 서툴다. 이미 대중매체에서 익숙히 봐왔듯이 윤석열은 대화상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부하거나 혹은 2.5 개 이상의 짧은 문장을 논리적으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 장애 social communication disorder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소통 장애는 상황 인지 불능을 수반한다. 상식적으로 독재자는 거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관련자들에게 작은 권력을 적절히 분산하는 포섭전략을 사용하는 데 반해 윤석열의 독재방식은 소통 장애로 인한 포섭력을 갖추지 못해서 결국 그 스스로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의 권력은 그 자신의 심리구조 때문에 오래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설명은 너무나 일반화된 것이라서, 이를 조금이라도 눈치채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윤석열 권력의 파멸을 쉽게 짐작하기도 했다.

 

(4) 자기기만의 인지부조화

인지편향의 특징 중 하나는 인지편향 난관에 닥쳤을 때 탈출하는 방법이 자기-기만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반대 증거가 아무리 많이 드러난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부딪혀도, 양심에 벗어난 부정불법이 가득해도 자기만이 만든 자기합리화 속에서 자신을 변명하고 타인을 부정한다.

윤석열의 심리구조에서 자기기만의 인지 부조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외경제력의 손상과 국민의 피해를 가져온 공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손상과 폐해를 시급히 회복해야만 대한민국이 다시 살 수 있다.

 

(5) 주술 의존 망상장애

윤석열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주변에 주술과

미신을 권력의 도구로 악용한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대중을 위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 대신에 자기 이익을 위한 가짜 정치를 선택한 정치인 일반은 필연적으로 미신을 쫓게 되어 있다.

가짜 정치인은 자신조차도 규정하지 못하는 불안감에 쫓기게 되기 때문이다. 내면의 불안감에 쫓겨 외면의 미신을 쫓게 된다는 것이 주술의존 망상장애의 현상이다.

정치인을 포함한 다수의 권력자들이 점집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12.3 계엄을 공모한 이들 가운데 아예 무당이나 주술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정도로 무당 정치의 괴이한 권력 구조가 실감 나게 연회되었다.

미신과 권력을 혼재시킨 개인적 망상들이 그들 사이에서 묵시적 합의로 변질되면서 거대한 집단적 주술 상징계로 정착된 것이 한국 권력사회의 특징이다. 이제는 그들 각각이 믿고 있는 미신을 실행할 수 있는 실질 권력을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의 암투일 뿐이다.

왕王의 망상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주술적 집단 상징계로부터 보호받은 셈이다. 그리고 왕의 망상이 강할수록 뭇사람들의 상상은 갈가리 찢긴다.

주술 의존성은 망상과 자기 통제 불능의 일상을 대신하는 특징을 지닌다. 일상의 생활인이 재미 삼아 점집에 방문하는 것과 다르게 대통령의 주술 의존성은 국가의 정체를 무너트리고 공공성의 파멸을 가져온다.

 

자행된 폭압과 소통 장애, 미신과 중독 증상들을 그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거꾸로 자신의 불법과 폭력, 부정과 독단을 확대 재생산하려는 오도된 윤석열의 의지를 방치하는 것은 곧 국가의 시민으로서 시민 됨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윤석열 개인 차원의 심적 증상은 윤석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온 국민의 문제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윤석열의 행동 양식과 의지 양태가 발현되지 못하도록 대통령 행위를 시급히 단절시켜야 한다.

시간이 정말 급하다.

그런 다음 술중독이나 주술중독 치료 등 그에 대한 개인적 심리치료를 나중에 천천히 하도록 배려하면 더 좋다.


문구: 조배준, 편집: 정희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시국선언〉 영상|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탄핵과 우리의 민주주의 – 시대와 철학]

사단법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는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을 독재자의 야만적 폭거이자 반란으로 규정하는 대다수 시민들과 뜻을 함께하여 2024년 12월 12일 시국선언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시국선언문은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 웹진〈ⓔ시대와 철학〉에 게시(http://ephilosophy.kr/han/57059) 하였으며 이어 12월 14일(토) 숭실대학교에서 거행된 제66회 정기학술대회에 연효숙 회원(전 한철연 회장)의 주도로 참석한 회원들이 함께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탄핵구호를 외쳤습니다.

같은날 오후 4~5시 경 국회에서는 찬성 204명, 반대 85명, 기권 3명, 무효 8명으로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습니다.

한철연은 헌정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윤석열을 즉각 체포하여 구속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 잘못된 권력의 범죄에 복무한 김건희 및 그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할 것을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에 강력히 요구합니다.

유튜브 출처 https://youtu.be/ITJ3EVBCcSw?si=E3IVogLdVwNfJJyI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시국선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