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혁명은 계속된다: 영국문화주의[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⑪
기나긴 혁명은 계속된다: 영국문화주의[마르크스주의 사상사]-⑪
강사 : 현남숙(가톨릭대 초빙교수)
후기 : 조배준(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되는 강좌열한번 째 시간의 주제는 ‘영국문화주의’였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던 것은 프랑스에서 1960년대 이후 맑스주의의 갱신을 주창한 알튀세르에게 영향 받은 일군의 제자들이 사유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와 달리 영국에서 2차대전 후 영국에서 개진된 맑스주의의 한 흐름 속에서 사회변혁을 고민하던 일군의 학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당대를 어떻게 분석하고 사유했을까. 현남숙 카톨릭대 교수가 소개한 영국문화주의는 맑스주의적 관점을 통해 사회구조의 분석 틀을 선취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알튀세르의 고민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영국문화주의는 1950년대 후반 미국을 필두로 한 독점자본주의의 세계지배력 강화와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파시즘적 변환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기획하던 시기에 등장했다. 그것은 정치, 경제, 문화를 분리하여 “문화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야말로” 문화와 경제가 결합된 새로운 시대에 사회의 진정한 변혁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한 것이다. 즉, 영국문화주의 연구자들은 경제적 토대와 그 위의 다른 상부구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 지배방식에서 헤게모니의 역할, “제도와 문화의 물질성에 대한 이해 없이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노동계층의 모순을 설명할 수도, 바로잡을 수도 없다”고 보았다.
경제 정책이 분배적 관점으로 조금 변화한다고 해서, 복지제도가 진보적으로 개선된다고 해서, 기득권 유지밖에 모르는 권력층이 잠시 의회권력을 잃는다고 해서 세상이 나아질 것이란 믿음은 이젠 순진한 착각이 되어버렸다. 그런 면에서 영국문화주의의 시야는 보다 넓고 그들의 인내심은 충분하다. 국가권력을 쟁취하여 정치경제적 혁신으로만 완수될 혁명이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야 할 진정한 혁명은 장구한 역사 속에서 계속되어야 할 인간과 사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개선해나가는 기나긴 혁명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정치혁명과 경제혁명을 포괄하는 ‘제3의 혁명’으로서 “인간과 제도에 관한 문화혁명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국문화주의(British Culturalism)라는 사상적 조류는 영국 사회주의 역사에서 신좌파(New Left)로 불리는 정치적 전통 위에서 발현되었으며, 영국문화이론, 문화유물론, 신(新)그람시주의, 버밍엄학파, CCCS(현대문화연구센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국문화주의의 연구자들은 무엇보다 ‘문화’라는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이데올로기 투쟁과 그 고유한 실천양식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혁명’이란 ‘사회적 존재와 의식’을 동시에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즉, 불평하고 부자유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정치적 실천 못지않게 노동계급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문화적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선 영국의 문화주의가 극적으로 변한 만남과 이별의 몇 장면들 즉, 문화 연구가 그람시의 헤게모니론과 만났을 때,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것이 문화유물론의 중핵과 결별했을 때를 중심으로 이 지적 흐름의 단면을 살펴보자.
‘문화’가 ‘헤게모니’를 만났을 때
산업혁명, 부르주아 의회혁명, 사회주의 혁명, 민주화 혁명 등이 이룩한 성과와 한계 위에서,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악몽을 딛고서, 현대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더 행복해지지 않는가? 국가의 생산량은 늘어나고 대기업의 생산력은 계속 커지지만 왜 실질적 평등은 더욱 요원해지는가? 왜 피지배 계급의 하위문화는 자생성과 저항성을 잃고 지배 계급의 문화에 종속되기 쉬우며, 어떻게 문화적 지배에 의해 정치적 지배가 더욱 고착화되는가? “노동계급은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이데올로기에 보다 철저하게 비판적이지 못하면서, 왜 지배계급이 만든 논리에 빠져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규정하는가?
이러한 의문들을 품었던 영국문화주의자들은 다양한 세대와 넓은 스펙트럼의 지향점을 가진 연구자들을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지만, 그들에겐 이론적 배경에 있어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에 입각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지배에 대처하기 위해 (정치와 경제에서) 문화로 관심을 돌렸다는 점이다.” 바로 “역사유물론의 실천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간파한 사람”인 그람시의 개념들이, 지배양식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위임된 헤게모니 체계로” 밝혀내는 방식 즉, 문화영역에서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강한 영국적 상황을 분석하는 이론적 자원으로 수용”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남숙 교수는 “문화주의는 역사적으로는 영국 맑시즘의 전통 안에서, 또 현대적 의미로는 문화연구라는 영역 안에서 문화를 통해 지배구조를 분석하고 이에 저항하고자 하는 공통의 에토스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한 지적?도덕적 주도권”으로서, 군대나 경찰이 하는 방식처럼 억압적인 물리력이나 강제가 아니라, “대중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갖추어진 지배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국문화주의는 “국가나 사회의 지배를 무력이나 강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한 지배체계로 바라본다. 일상성 속에서 문화적 지배의 면면을 살펴보며, “국가와 시장의 대중지배, 힘이나 무력이 아닌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동의의 구조를 파악”하려는 것은 영국문화주의가 가진 독특한 시각인 것이다.
윌리엄즈와 홀이 그람시를 만났을 때
일찍이 그람시가에서 강조했던 것도 헤게모니를 활용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분석 자체가 아니라, 그 지배양식의 인식 속에서 대중이 주체로 자립하여 그들이 문화혁명에서 대항문화를 생산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을 이어 받은 문화주의에서도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인 하위 주체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실천을 중시한다. 그것은 영국문화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 1921-1988)가 그의 책에서 말하고 있는, “미완의 혁명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의 장구한 문화혁명”으로서 ‘문화유물론(cultural materialism)’이 지향하는 바인 것이다. 그는 문화유물론을 역사유물론과 관련지어 “사회적이며 물질적인 생산적 과정으로서의 문화이론, 생산의 물질적 수단의 사회적 사용으로서의 특수한 실천이론”으로 규정했다.
그 자신이 노동계급의 아들인 윌리엄즈는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보다 정교화하여 ‘지배 헤게모니(dominant hegemony)’와 ‘대항 헤게모니(counter hegemony)’ 혹은 ‘대안적 헤게모니(alternative hegemony)’로 구분하고, “헤게모니는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늘 사회적 관계의 ‘사이’에 존재하며, 끊임없이 전복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노동계급의 문화를 분석하면서 지배문화에 의해 규정되고 구성된 그 문화 내부에 지배 이데올로기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것에 저항의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대항문화(counter culture)가 역동적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미 “노동계급의 정서적 구조에 새로운 의미 체계, 가치관, 관행,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것(the emergent)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남숙 교수가 소개한 또 한명의 문화유물론자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 1937-)인데, 그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옥스퍼드대에서 수학했으며 윌리엄즈를 통해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접했다. 윌리엄즈가 영국문화주의를 “역사유물론의 새로운 변형으로 이론화”했다면, 그는 “그 토대를 딛고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문화의 영역과 사회적 갈등의 영역을 계급을 넘어 인종, 세대, 종족성, 식민적 경험 등의 다른 배제된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홀은 사회적 삶에서 개인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형성하게 되고 진보적 문화의 확장 역시 다양한 집단적 정체성의 블록을 통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홀은 대처리즘 시기의 이데올로기 분석으로 유명한데, 그는 “대처리즘을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대처가 ‘시장에서의 자유주의와 일상에서의 보수주의’를 기치로 대중을 지배하는 방식을 관찰했다. 당시 한편으로는 복지정책 축소와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의 가치, 전통적 여성상, 근면한 노동자상”을 강조하던 지배 이데올로기는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었고 대중은 이러한 문화적 지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대중들의 동의를 자발적으로 얻어 합법적이고 도덕적으로 “주도권을 얻어가는 대처리즘에 속수무책이었다.” 그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변혁의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여전히 교조적 맑스주의의” 미래만을 되뇌었던 것이다.
여기서 홀은 문화적 주체가 복수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고, 중층적으로 결합된 주체의 구조를 설정하기 위해 ‘접합(articul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트레일러를 트럭의 운전실과 떼었다 붙였다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 관계 속의 주체들은 어떤 조건 아래에서 서로 서로 ‘탈접합’되거나 ‘재접합’되는 연결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현남숙 교수는 홀이 “필연적으로 결정되거나 절대적이거나 필수적인 것이 아닌, 다양하고 서로 구분되는 요소의 결합”이라는 관점을 통해 문화연구의 지평을 넓혔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계급+세대, 계급+인종, 계급+여성+식민경험 등과 같이 문화연구에서 집단 내의 세부적인 차이까지 고려하며 다양한 주제와 요소의 접합이 가능해진 것이다.
‘문화’가 ‘계급적 관점’과 헤어졌을 때
만약 그렇게 ‘계급’과 ‘여성’이 중첩된 여성의 현실에 관한 영화가 있고, 그 영화에 대한 비평에서 연구자가 “생산관계에서의 억압과 저항”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단지 여성을 대상화하는 영화와 여성의 문제만 다룬 비평이 되고 만다. 윌리엄즈와 홀이 주장했던 문화비평은 단지 문화 자체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더불어 노동계급의 의식변화를 유도하는 것에 그 주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영국문화주의는 제도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그 정치적 실천성을 잃어버렸고, 문화를 소비적 행위로 용해시키는 단순한 문화연구로 전락하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구조주의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이론들이 문화연구의 방법론을 풍부하게 해주더라도, “헤게모니가 동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그 너머의 진정한 현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영미 문화주의는 문화유물론적 관점이라는 문제의식을 거의 상실하고 “국적불명의 학제간 연구”를 표명하거나 시민운동의 한 경향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일상문화 연구가 사회분석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화가 “토대와 분리되는 순간, 인간의 사회적 존재조건에는 무심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뜻에서 유의미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남숙 교수는 영국문화이론이 “맑스주의와 가깝든 멀든, 문화연구라는 하나의 ‘의제’를 형성했다”고 그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바라본다면, 영국문화 이론은 처음에는 문화‘유물론’이었지만, 지금은 ‘문화’유물론이 되어버린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영국문화주의가 그 유물론적 문제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비평의 정치’를 넘어 그러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문화의 물질적 구성’에 관한 분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저항적 이론을 통해 학문적 관점과 성과 속에서 대중의 대항문화가 온전한 평가를 받을 수 있고, 99%의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구성해내는 문화혁명의 과정은 1% 지배문화의 허위성을 제 스스로 폭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치혁명도 산업혁명도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주지 못했”다면, ‘그럭저럭 먹고살만하기에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이 세계가 그냥저냥 만족스러운’ 사람들의 무심함이 우리 곁에 넘쳐난다면, “기나긴 문화혁명”의 시간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아니,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