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음』 [청춘의 서재]

이찬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지금 오늘의 청춘이 가장 애타게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따스한 위로가 아닐까. 88만원 세대의 한없이 작아진 꿈을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맞서 몸부림치는 그들은 상처투성이에 일어설 힘조차 없어 보인다. 오늘의 청춘은 사회와 가족의 보호망이 해체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무거운 자신의 삶을 단지 혼자서 감당해야 할 뿐이다. 그러한 외로움과 고통 가운데 어떤 이는 생활전선을 위한 노동과 적금 통장에, 어떤 이는 미래를 위한 수험서와 처세서에 온 마음을 쏟아 붓는다. 야망을 위해 싸우던 기성세대들에 비해 자신이 쉴만한 빈 자리를 위해 싸우는 오늘의 청춘들의 모습에는 서글픔이 어려 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세상에 용감히 맞서기 위해 인문ㆍ사회 서적들을 들추어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나 자신은 그만 더욱 작아지고 만다. 위안과 자신감이 필요한 청년에게 “세상을 알아라! 이렇게 싸워라! 용기를 내라!”고 말하지만 마치 ‘긍정의 힘’을 갈파하는 목사님과 무슨 다른 말을 하는지 솔직히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라는 진심어린 충고가 우울한 이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위축된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지 가운데서 올바른 선택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함께 ‘곁에 있어’ 주는 것일 텐데 말이다. 청춘은 너무 힘겨워 자신의 삶을 결단해나갈 기력조차 없으며, 자신의 어려움을 말할 힘조차도 없다.

그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위로할 방법은 없을까? 자신의 아픔을 말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의 기쁨을, 희망을, 자신의 소중함을, 자신 안에 보물이 간직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자신하게 만들어줄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나는 청춘에게 시를 권한다. 그 가운데서도 청춘의 생명을 테두리지어 압박하지 않고 청춘 곁에 한 걸음 뒤로 머물러, 바라보고, 어루만지고, 기다려주는 시를 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생존을 위한 대비의 몸부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청춘에게 넉넉한 여백과 여운으로 다가서는 시 한 편은 삶에 작은 빈 자리를, 작은 마음의 여유와 안식처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불과 얼음』의 첫 시는 「목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전원적 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샘 치러 나가 볼까 합니다;

그저 물 위의 나뭇잎이나 건져 내려구요

(물이 맑아지는 걸 지켜볼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

 

엄마소 옆에 있는 어린

송아지를 데리러 가려구 해요. 너무 어려서

엄마소가 핥으면 비틀거리지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같이 가시지요.

 

이 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 무엇을 말하려 하면서도 아마 아무 것도 말하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저(only)’ 말할 뿐일 것이다. 여기서 잠시 『불과 얼음』 마지막의 해설을 훔쳐보면 프로스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되어 있다. “시는 …… 반드시 대단한 해명이 아니라 혼란과 맞선 잠정적 머무름에서 끝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살이란 스스로의 결정이나 결정당함 혹은 확정적인 해명에 둘러싸여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프로스트의 말처럼, 삶의 평온이란 해명과 선택을 강요받지 않고 가벼운 망설임과 혼란 가운데, 기대 가운데 머물러 있음 속에서 빈 자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첫 번째 시 「목장」 또한 저자의 대단한 해명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기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집착하기보다는 아무런 기대 없이, 들려오는 시의 울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가운데 그 색채들 가운데 고요히 쉴 것을 권유한다. 이 시를 읽으며 상상 속에서 그저 기분 속에서만이라도 나뭇잎이나 건져 내는 한가로운 여유를, 오래 걸리지 않는 동행을, 비틀거리는 어린 송아지의 가냘픔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걸어 보지 못한 길」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

 

이 시의 생략된 뒷 부분에서 주인공은 결국 하나의 길을 택하고 그 이유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한숨지으며 이야기한다. 여러 갈래의 길에서 고뇌하는 꿈이 많은 청춘에게 이 시는 참으로 많은 공감을 전해줄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갈래 길들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포기한 청춘에게 이 시가 동병상련의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길이 맞는 길인지 주저하고 불안해하고 무서워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지만 주인공의 한숨은 이 시를 읽는 독자에게 결코 꿈을 위한 용기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현실적인 선택이든 이상적인 선택이든 그 무엇도 우리에게 그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단지 시인은 이 시를 읽는 사람과 함께 그 길을 곁에서 같이 걸어가 줄 뿐이다. 단지 곁에 함께 걸어가 주는 것… 불안하고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과연 곁에서 기다려주고 고독한 시간을 함께 나눠줄 친구가 있는 것일까.

이 시를 읽으면 내가 겪었던 작은 방황의 경험이 생각난다. 대학생 시절 선후배 몇 명과 함께 하는 소규모 공부 모임에 속해 있었는데, 처음으로 후배를 맞이하면서 그 모임의 운영자 자리를 맡게 되었다. 비록 몇 명만이 모인 자리이지만 회의를 진행하고 주도하는 자리를 처음 맡았던 터라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회의 자리에서 정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으며, 부끄러움과 열등감으로 인한 위축감에 극도로 시달렸다. 그래서 회의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도망치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2학년 선배가 되어서 공부로나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나 내가 선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나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연 학생으로서 내가 택했던 꿈을 이룰 수 있는지, 이루기 위한 준비는 아무것도 못하고 귀중한 시간만 낭비한 건 아닌지, 이러다 졸업 후 자기 앞가림도 못하게 되지나 않을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불안감으로 생각이 멈추고, 말을 못하고, 말을 더듬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매일 나를 지진아나 바보라고 자학하곤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당시 우울증과 대인기피의 모습까지 보였던 내게 친구들과 선배들이 진심어린 조언과 충고를 해 주었지만 그 말을 듣는 그 순간만 나의 문제가 해결되는 듯 느껴질 뿐 돌아서면 다시 원점의 불안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었다. 그나마 친한 친구가 곁에서 놀아주려 하고, 같이 밥 먹고, 집에 놀러와 같이 자고 할 때면 그 순간만은 마음의 불안이 진정되곤 하였다.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이런 괴로움을 극복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장소는 학교 화장실 변기 위였다. 나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선후배들로부터 도망치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세상에서 도망쳐 피신한 곳은 고요한 화장실 안이었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아픈 머리를 감싸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였는데, 그 공간은 그야말로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지금 그 때를 돌이켜 보면 신입생 시절부터 밖으로만 배울 것을 찾아다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고, 선배들과 친구들을 찾아다녔지만 이때의 화장실 안에서의 기억처럼 오로지 안으로 나 자신을 향해 스스로 찾아 나섰던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하다 생각하다 괴로워하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던 순간 보았던 번뜩이는 섬광은 그 동안의 불안과 우울함을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나의 문제와 불안과 망설임을 해결하는 어떠한 방법으로서 ‘무엇’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경험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 스스로 그 ‘무엇’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경험은 바로. 말하자면. 나 ‘스스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자신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냥 그대로, 생긴 모습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험이었다. 나는 오직 있을 뿐이지 내가 어때야 하고 어떻게 비춰질 지에 대해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힘들어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경험했던 그것이 어쩌면 바로 실존이라고 부르는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실존은 책에서도, 선배들의 조언에서도, 친한 친구의 위로 가운데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는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화장실 안 혼자만의 불안과 고독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모습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던 시간의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나에게 어떤 충고와, 어떤 길이 정말 맞는지에만 의존하던, 아니 억눌려만 있던 나였다. 내가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세상의 가르침들과 수능 문제를 풀어 대학에 들어가면서까지 나에게 부과되었던 5지선다의 ‘무엇’은 바로 나의 있는 그대로의 ‘있음’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엇’들은 당시의 어린 나에게 그 이후부터도 미래의 자신의 삶의 길이라는 모습으로 계속해서 따라올 것이었지만, 적어도 ‘스스로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을 발견한 나는 포기하지 않고 세상 가운데 쓰러지지 않으려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선택지를 강요하는 명령과 심문은 청춘을 더욱 아프게 한다. 청춘의 슬픔은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스스로의 슬픔을 돌볼 빈 자리 가운데서 스스로 구원될 수 있다. 그 빈 자리는 청춘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고 그 빈 자리에서 청춘은 스스로 모두 말할 수 있다. 넉넉한 삶의 여백 가운데 청춘은 자신의 본래적인 온 모습을 대면하고,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고, 자신을 스스로 창조할 기회와 용기를 얻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살아 있음은 자라날 수 있고, 살아 있음의 기쁨이 춤출 무대가 마련될 수 있다. 늦은 밤 어둠을 바라보며 입에 문 담배 연기의 적막한 시간처럼. 청춘이여! 시의 여백 속에서 삶의 여백 속에서. 한순간만이라도 나의 위안을, 나의 용기와 꿈을 되찾아보자! 그리고 시를 써보자.

섬세한 삶의 감각을 찾는 연습 7-② [色 다른 책읽기]

박혜정 (산책자 에디터)

두툼해도 단숨에 읽히는 책이 읽는가 하면, 얄팍해도 읽는 도중 읽기를 멈추어 가며 생각에 잠기게 되는 책이 있다. <무미 예찬>을 만들고 있을 때에는 교정지를 보고 있다가도 문득 눈을 들어 허공을 보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구체적인 생각을 몰아간 것은 아니었다. 교정지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느슨한 행간과 넉넉한 여백, 전체적으로 건조하면서도 색이 적은 담채화처럼 적당한 물기가 있던 프랑수아 줄리앙의 사유가 내 눈길도 어떤 ‘생각 사이의 여백’으로 향하도록 했던 것이다. ‘산책자의 에쎄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인 <무미 예찬>은 그런 책이었다.

사실 산책자의 에쎄 시리즈는, 학부 졸업 정도의 교양 수준에다 당시 책을 만들기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초보편집자에게는 제법 어려운 텍스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도 <무미 예찬>은 그보다 묵직하고 사회적인 에쎄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와,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를 만든 후에 시작한 책으로 앞의 책들보다는 미학적이고, 지식보다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즉 편집자로서의 나와 독자로서의 나 양쪽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와 주었던 책이다.

‘에쎄essais’ 시리즈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에쎄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양한 에쎄가 존재하지만 누군가에게 에쎄 시리즈에 대해서 설명할 때 제목부터가 ‘에쎄Les Essais’인 몽테뉴의 <수상록>이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예로 들곤 한다. 어느 인류학 연구 논문 못지않은 학술적 성과를 담고 있는 <슬픈 열대>는 “내가 이 일을 결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라는 지극히 내밀한 어조의 수필 문체로 시작된다. 자신의 감정, 지식, 경험들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문체로 서술했기에 담고 있는 내용들이 논문이나 보고서만큼이나 단단하게 쌓아올려지는 지적인 에세이, 그것이 에쎄라고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에세이’라고 하면 인생사나 감상을 주로 표현한 부드럽고 감성적인 글들(또 다른 수필의 분류로 따지자면 ‘미셀러니’ 정도의 글)을 떠올리기 때문에 ‘에쎄’라는 단어도 종종 그런 선상에서 이해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에쎄 시리즈’라고 해서 읽기 편한 수위의 책으로 생각하고 골랐는데 왜 이렇게 학술적인가라는 독자의 불만을 간혹 듣곤 한다. 글의 형식에 대한 개념이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그런 불만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편집자로서 간단히 웃어넘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그런 불만을 감안하고 보았을 때, <무미 예찬>은 약간 유화되어있는 한국 독자의 ‘에세이’ 개념에도 제법 들어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문화에 대한 참신한 시선을 보여주는 프랑수아 줄리앙을 소개할 때 ‘푸른 눈을 가진 동양학자 중 가장 독보적인 학자’라는 표현을 쓴다. 서양인이 동양에 대한 책을 썼다고 생각하면, 오리엔탈리즘이 가미된 편견이나 열광이 아니면 정말이지 성실하고 딱딱한 학술 연구 외에 무엇이 있을까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 이후에는 그런 생각을 차츰 버리게 되었다. ‘동양 문화에 속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알 수 있겠나’ 라는 생각보다는 ‘동양 문화에 속하지 않은 눈으로 보니 우리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것들을 본다’ 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다. 사실 동양 문화에 속해있다고 해도 속도감 넘치고 자극이 가득한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저 의식만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는 중국 문화의 면면들이 던져준다. 현대인이 너무도 당연시 하는 것, 개성과 특별함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하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누구나 알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진부한 덕’, 즉 ‘중용’을 담백한 삶의 태도라는 형태라고 해석해낸 대목은 중용이라는 개념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 이상의 깨달음을 준다.

불어로는 ‘맛없음,싱거움fadeur’ 으로 번역되는 ‘담淡’의 개념은 불어에서 딱 들어맞는 표현이 없어 저런 대체어를 썼을 정도로 서양에서는 낯선 개념이었을 테지만, 프랑수아 줄리앙은 그 개념을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미, 담백함의 풍경은 정말로 모든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아주 가까운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급스러우면서도 가장 소박한 모든 풍경 속에 ‘담’이 있다.

나로서는 이 책에 종종 등장하는 ‘물 맛’이니 ‘흰 돌을 삶아 먹는’ 중국 선인들의 이미지에서 담담하고 산뜻한 흰색에 대한 여러 가지 글들이 떠오른다. 일단 박완서가 <개성사람 이야기>에서 쓴 흰색에 대한 글. “어머니는 버선만 보고도 어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면서 개성사람 버선은 옥시설처럼 희고, 서울사람 버선은 푸르뎅뎅하게 희고, 일산·금촌사람 버선은 불그죽죽하게 희다고 했다. 옥시설은 어머니가 완벽한 흰색에 바치는 최고의 찬사인데,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소설가인 강경애도 손빨래를 하며 흰 옷을 더욱 희게 빨아내는 데 크나큰 희열을 느낀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다보면 흰색을 넘어 담백한 심상에 대한 글들도 떠오른다. ‘슴슴한’ 국수를 사랑한 백석의 시,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무늬는 사람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고 하는 피천득의 <수필>로 생각이 이어진다.

현대의 풍경을 둘러보아도 ‘담’을 느낄 수 있다. 아파트에 질린 현대인들은 흰 문종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문살의 그림자가 가장 큰 인테리어 요소이며 가구로 가득차지 않아 아름다운 한옥의 아름다움에 다시 집중하곤 한다. ‘슈퍼 노멀’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가장 표준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이 탁월하다는 것 역시 의식하고 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가 가장 단순한 스타일과 옅은 화장을 고수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가?

이 책의 원제 Eloge de la fadeur를 거의 그대로 옮긴 <무미 예찬>이 큰 고심 없이 자연스럽게 가제에서 최종 제목으로 결정된 것도 알려 두고 싶다. 문화적인 사안이든 정치적인 사안이든, 시쳇말로 ‘까는’ 행위가 ‘쿨한’ 트렌드가 되어버린 시대에 무언가를 예찬하고 있는 책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제목에 ‘예찬’이라는 단어가 붙은 책이 제법 많다. 미셸 투르니에의 <예찬>부터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 프란츠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에 이르기까지 멋진 책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 <무미 예찬>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陰?禮讚>인데, 한국판은 <그늘에 대하여(눌와, 2005)>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일본 문화가 곳곳에서 그림자와 그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활용했다는 것을 해석한 글이 있는 책으로, 일본 문화에 대한 수준 높은 미학을 맛볼 수 있는 ‘동양의 에쎄’ 라 할 만하다.

<무미 예찬>은 중국 문화에 대한 책이지만 담백한 취향과 삶에 관한 포괄적인 책으로 더 다가온다. 싱거움이나 비어 있음을 강조하지만 이 모든 자극을 단호히 떨쳐버리라거나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라는 방햐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가장 감지하기 어려운 맛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하기에, 가장 미묘하고 섬세한 감각들을 일깨우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음식에서 배어나오는 미묘한 맛을 즐기는 사람을 미식가라고 한다. 자극적인 맛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둔하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금방 파악할 수 있는 뚜렷한 자극만 추구하는 둔한 사람을 진정한 삶의 향유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넓게 퍼져 있는 동시에 가장 미세하게만 느낄 수 있는 맛, 가장 까다로우면도 가장 폭넓은 삶의 취향을 찾는 감각을 이 책을 통해 연습해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허공을 바라보게 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박혜정 (산책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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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일곱 번째 책은 프랑수와 줄리앙의 <무미예찬>(최애리 옮김, 산책자 펴냄)으로, 김익균(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안세환(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박혜정(산책자 편집자)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바깥에 대한 사유와 초월하지 않는 담백함 7-① [色 다른 책읽기]

김익균 (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서구적 세계의 바깥으로서 중국

『무미예찬(無味禮讚)』의 리뷰를 쓰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이 책의 존재를 모르는 동안에도 나는 이 책을 요청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어떤 면이 독자인 ‘나’를 자극한 걸까?

책을 읽을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책읽기 행위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람 즉 저자와 독자(리뷰어)의 만남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 짧으나마 통성명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책의 저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은 프랑스의 학적 전통 속에서 성장했고 중국학을 전공했다. 나는 남한에서 성장했으며 남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국문과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남한의 정체성은, 중국의 영향을 장기지속 해온 동시에 서구화와 식민화의 복잡한 체험으로 교착된 ‘조선’의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어낸 산통의 과정, 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남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나는 해방 이후 혹은 한국전쟁 이후의 십여 년간의 서정주 시를 공부하고 있다. 해방 이후에서 사일구 이전까지 서정주의 시가 얻은 국민적인 호응과 부침의 과정을 살펴보면 당대 남한의 ‘세계감’을 풍부하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시 프랑수아 줄리앙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프랑수아 줄리앙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후에 중국을 연구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중국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서양 전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각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옮긴이의 설명을 좀 더 참조해 보면 프랑수아 줄리앙이 속해 있는 서구적 세계의 바깥이란, “언어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서양과 무관하게 형성된 독자적인 세계인바 인도-유럽 언어권의 바깥, 서양 역사 및 문화의 영향권 바깥-따라서 인도나 이슬람 문화는 제외되었다-그리고 연구 가능한 풍부한 텍스트 전통을 지닌 세계”였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 곧 중국이었다는 것이다. 서구가 그동안 행한 중국에 대한 탐구가 신기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제국주의자의 시선이 중첩된 어떤 것이었다면 프랑수아 줄리앙은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덧붙이고 있는 셈이다.

 

그 안에 들어가야 할 하나의 ‘세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프랑수아 줄리앙이 ‘서구적 세계의 바깥’으로 생각하는 ‘중국’의 특징을 그대로 남한의 그것으로 연상하거나 동양 삼국의 잃어버린(혹은 되찾아야 할) 과거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프랑수아 줄리앙에게 바깥인 것은 ‘우리’에게도 바깥이며, 50년대의 서정주에게도 바깥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근대적 신분제 하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즉 근대의 노동자 혹은 소비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인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개진한 담(淡)의 원리는 지금-여기에 있는 실체(혹은 과거에 있었다는 사실 확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서구적 세계의 바깥’의 잠재태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단적으로 말해서 이 세계는 중국이나 동양 삼국이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 소유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무미(無味)’라고 옮겨진 단어는 중국어의 ‘담(淡)’에 부여된 가치를 괄호친 의미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불어로 ‘fadeur’라고 옮겼고 한글로는 담백하다, 묽다, 싱겁다, 부드럽다, 자극이 적다 등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영어로는 ‘blandness’라고 한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담=무미’가 중국의 문화와 미학적 전통에서 중심적인 가치이자 바탕을 이루는 가치라고 한다. 담은 “특수한 시각(문체론적 심리적 윤리적 시각 등등)이 아니라 전체적 시각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중국인들의 말을 빌자면, 그것은 그 안에 들어가야 할 하나의 ‘세계’이다.” 앞에서 지적했듯 이 세계가 지금 존재하는 실체인가는 단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경험이 서구적 근대의 세계를 상대화 하는 개연성을 제공한다고는 할 수 있겠다. 가령 “‘감각적’인 것과 ‘이지적’인 것이 상반된 두 가지 현실이며 그중 하나가 다른 하나의 모방이라는 생각, 천구(天球)들의 음악이든 천사들의 음악이든 간에 음악이 다른 어떤 세계에 속하는 것이라는” 서구적 세계관은 ‘담(淡)의 가치가 주도하는 세계’ 쪽에서는 낯선 것이 될 것이다. 담(淡)의 세계에는 현실 세계와 그 너머의 바깥이라는 구분이 없다. “섬세함의 정도 차이” 즉 감각이 지각할 수 있는 것과 정신이라는 좀 더 예민한 ‘기관’이 요구되는 것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비가시적인 것들이 서구에서처럼 초월적 세계에 속하지 않고 연속적인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철학에는 존재론이 없다. 내가 보기에, 고대 중국 사상을 (그리스 사상과 대비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고대 중국 사상이 현실에 접근하는 관점은 진실로 ‘존재’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것(물자체, 이데아)이 무엇이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내재하며 생성에 그 변전의 논리를 부여하는 일관성을 묻는 것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무미 혹은 담(淡)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맛의 성질은 그 특수한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퍼져나가는 힘에 있다.”

“무미의 미덕은 우리의 정신을 사물의 더 근본적인 국면과 일치시키는 데 있다. 어떤 맛도 다른 맛보다 특별히 더 우리를 유혹하지 못할 때, 우리는 작용하는 모든 잠재태들 가운데 ‘대등한’ 균형을 유지하며 -그것이 제(齊)이다-존재에 내재하는 논리로 하여금 스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둔다.” “담(淡)의 기초는 그저 엷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강인함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인바, “담은 감지할 수 있는 것의 마지막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초입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그것은 감지할 수 있게끔 드러나는 즉시 그 초월적인 조화로움으로 돌아간다. (…)담은 사물들이 차별화되지 않는 것 속으로 돌아갈 때, 사물들이 그 변별적 특성들을 잃어버리고 차이를 흡수하며 혼돈을 향할 때 비로소 그것들에 대해 말한다. 담은 측량할 수 없는 성질이자, 그래서 필연적으로 덧없으며(…) 일체의 체계적 모색을 피하며, 손을 잡아 붙들 수도 없다.”

이러한 세계의 특징을 프랑수아 줄리앙은 상당히 풍부한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있으므로 우리는 ‘몰랐다는 듯이’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동양인 혹은 남한의 독자들이 ‘우리는 다 아는 이야기’라는 고자세로 이 책을 읽는다면 프랑수아 줄리앙이 공들여 탐색해 보이는 ‘새로운 세계’는 읽히지 않을 것이다.) “예스런 담백함에는 진정한 맛이 들어있다. 대제사의 탕에 간을 맞출 필요가 어디 있으리요.”라는 구절을 읽으며 예스러운 취향에 대한 호불호를 거론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탕의 담백한 맛이 진정한 맛으로 인정되는 세계의 가치관과 철학의 체계를 이해하고 지금-여기 남한은 그 체계 바깥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담백한 맛은 “유(儒)?불(佛)?선(仙) 모든 사상의 지원을 받으며, 시, 음악, 회화 등 다양한 예술에 공통된 이상을 환기한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주장은 강하게 논증되기보다는 풍부한 예시를 통해서 담백하게 그려지고 있다. 의미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례들에서 ‘우러나게’ 하는 것이 또한 무미의 기술일 것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지적했듯 “음미(吟味)”라는 말이 갖는 읽기와 먹기 사이의 유사성은 “(서구의 지적 시각에서처럼) 의미를 해독하기보다 그에게 외적으로 주어지는 물질성(즉 텍스트를 이루는 말들)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바깥인 중국은 바깥이 없는 세계다?

『무미예찬(無味禮讚)』(혹은 프랑수아 줄리앙)의 출발점은 고대 중국이 프랑수아 줄리앙이 속한 세계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의 판명함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판명하다고 전제한 것들이 과연 그러한지 묻는 것은 논외로 한다면, 역으로 ‘우리’에게 그것이 판명한가를 묻는 일이 요청된다. 서구는 우리의 바깥인가? 혹은 고대 중국은 우리의 바깥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혼란을 일으키는 지점은 프랑수아 줄리앙이 ‘발견한’ 중국은 바깥이 없는 세계라는 점일 것이다. 서구의 바깥에 대한 프랑수아 줄리앙의 탐구는 바깥이 없는 세계로서의 중국을 산출한다. 그렇다면 담(淡)의 체계인 중국적 사유에서 바깥은 사유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프랑수아 줄리앙이 발견한 세계는 서구적 방법으로 만든 서구의 대립항이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밀고나가는 것은 전공자들의 몫으로 남겨놓도록 하고 나는 남한의 건국 과정에서 나온 ‘우리’의 탐색이 『무미예찬(無味禮讚)』과 어떻게 서로 비출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싶다. 그 시기에 서정주는 『귀촉도』, 『서정주시선』, 『신라초』를 내놓은바 ‘국민시인’ 혹은 ‘시의 정부’, ‘부족 방언의 족장’ 등으로 호명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서정주가 모색한 이 시세계는 현실의 긴장, 갈등, 고통이 없는 세계로 비판받아 왔다. 비판자들은 시가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기를 요구했는데 그것은 고통의 너머에 놓인, 발견해야 할 이데아로서의 세계에 대한 전제와 분리되지 않았다. ‘저기’가 없다면 ‘여기’의 고통은 선명한 이미지를 갖지 못하는 것이 서구적 근대 미학이지 않은가.

이에 비해 서정주가 해방 이후 ‘신라의 내부에 대한 한 모색’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근대의 미적 세계 바깥에 대한 모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정주는- ‘우리’가 그렇듯이- 어떤 혼동 속에서 그렇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서정주가 간혹 역사적 실체라는 허상에 얽매였다면 그것은 ‘판명한 바깥’에 대한 프랑수아 줄리앙의 자의식과 맺는 모종의 차이를 생산하지 않느냐고 나는 묻고 싶다. 물론 그 차이를 근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배운 논리를 적용해보면 이 차이는 서구적인 안과 밖의 차이가 아닌 중국적인 ‘담’의 중심과 가장자리의 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서정주(와 청록파)로 대변되는,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태어나 대한민국 건국의 중추가 되었던 세대가 탐구한 세계이다. 그것은 일본에 의해 형성된 식민지 근대화를 30년 안팎의 한 생애를 통해 체현한 1910년대 생인 세대가 그 세계의 바깥을 꿈꿨던 경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주는 건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구적 가치에 대한 환멸이 심화되고 서구의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탐색하려고 노력했다. 간혹 고대사를 실체화하는 오류에도 빠져 가면서, 서정주는 서구적 가치와 유불선의 가치 그리고 더 옛날의 샤머니즘(서정주의 용어로는 영통과 혼교)을,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고 되풀이를 통해 살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시로 체현하려 했다.

프랑수아 줄리앙이 학자로서 그리고 판명한 바깥에 선 자의 강점을 가지고 그려낸 담(淡)의 세계는 50년대 극동의 한 시인이 그려낸 ‘신라의 내부’와 서로 비추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담의 세계 바깥에서 담의 세계를 그려보는 프랑수아 줄리앙과 이미 담의 세계 바깥에 서 있으면서도 그것을 순간적으로 망각하며 시를 통해 담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서정주의 모색은 담의 세계를 재구하기 위해 마주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담(淡)의 체계에서는 현실의 바깥으로 나가는 초월이 없다’고 요약해 본다. 내가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남한의 50년대에 서정주 (세대)와 신세대의 시적 정신을 초월(의 고통)이 없는 세계의 모색과 초월을 단행하려는 고통의 실천 사이에 두는 내 문제의식에 새로운 자극을 줬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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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色 다른 책읽기>의 일곱 번째 책은 프랑수와 줄리앙의 <무미예찬>(최애리 옮김, 산책자 펴냄)으로, 김익균(동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안세환(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박혜정(산책자 편집자)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기존의 ‘4인 4색의 책읽기’의 변화된 기획입니다.

 

“제2차 인문학 페스티벌”(8. 20-21), 대천 해수욕장에서 책읽기 잔치 열려

작년 2010년에 처음으로 열린 <인문학 페스티벌>에 이어 올 해에도 보령(대천)에서 보령 책익는 마을(촌장 박종택)의 주최 주관으로 <제2차 인문학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2010년에는, 박인희(안양대 강의교수)의 김명진(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이진남(숙명여대 교수), 류호철(안양대 강의교수), 이정모(과학저술가), 김시천(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이종필(고등과학연구원), 편상범(고려대 강사), 전중환(경희대 교수), 이재현(동덕여대 교수), 이명현(천문연구원 연구원), 강양구(프레시안 기자) 등 인문학의 여러 분야는 물론 과학, 종교,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의가 한창 휴가철인 8월 13-14일 이틀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당시 인문학 페스티벌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과 학생이 세미나룸을 가득 채웠고, 아침부터 하루종일 계속되는 강의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의 열기는 내내 뜨거웠다.

처음에는 몇 명의 독서모임으로 출발한 조촐한 모임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팀으로 이루어져 매월 저자를 초청하여 모두가 읽고 강의와 토론을 하는 <저자초청토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2010년부터는 집중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강의와 토론의 축제로서 <인문학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올 해에는 2010년에 강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페스티벌의 성격을 약간 변화시켜, 저자토론회와 접목시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참여하기로 정해진 강사진은, 김주일(정암학당 연구원)의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를 비롯, 최시현(소설가), 장시복(경제학자), 이종수(문학저술가), 김태권(만화가) 등이 자신의 저술을 중심으로 강의하고 토론하는 축제가 마련하고, 8월 20-21일 이틀에 걸쳐 대천 한화콘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아래의 글은 ‘보령 책익는 마을’의 황선만(보령 책익는 마을 전 촌장)이 <제1차 인문학 페스티벌>을 마친 후에 <보령신문>에 기고한 글 “2010보령 인문학페스티벌을 마치고”을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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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뻘 되는 친척분은 내게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물었다. 직장은 잘 다니고 있는지, 사는 집은 어떤 곳인지,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는지, 돈 벌이는 괜찮은지 등등 친척 어른으로서 궁금한 점이 많았는가 보다. 그런데 헤어지면서 하시는 말씀이 날 잠시 머뭇거리게 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잘 살아야 되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야 돼! 알뜰하게 돈 잘 벌게.”

우리네 생활 속에서 의례적이고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성공과 돈이 등치관계라는 주장은 교과서에만 등장하지 않을 뿐 우리네 삶의 공간에는 도그마와 같은 명제로 또아리를 틀고 있다. 문화행사도 돈벌이가 되어야 하고, 국회의원도 돈을 벌 줄 알아야만 한다. 청소년들의 공부의 목적은 명문대를 가는 것이고, 그것도 고액 연봉의 직장으로 취업 잘되는 학과를 가는 것이다.

인문학 페스티벌이 만들어진 의도 속에는 그런 고민이 들어있다. 우리네 장롱 속에 숨어버린 것 같은 ‘가치’라는 단어를 꺼내서 펼쳐들고 다양한 무늬의 ‘성공’의 길을 생각해보고 싶었다. 몇몇 학자와 저자를 모시고 책익는마을의 조촐한 토론회를 생각했는데 횡재수가 온 것이다. 참여하겠다는 분이 12명이나 기별이 온 것 아닌가. 그동안 저자초청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을 초대하는 행사를 10여 차례 진행해온 우리들은 별 이의없이 ‘보령시민들과 함께하는 만남의 장’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사! 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12명의 강의를 넉넉하게 배치할 수가 없었다. 몇 분은 오시지 말라고 하는 것도 참으로 어렵고 기간을 하루 이틀 더 늘릴 수도 없는 처지이다 보니 1시간 강의 10분 휴식에 12시간 연강이라는 수험생 시간표가 나오고 말았다.

게다가 제목을 붙이는 것 또한 고민거리였다. 도대체가 한 단어로 표현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약간은 겸연쩍은 일이지만 12강 중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주제를 포괄하는 단어를 생각했고 그 결과물이 인문학 페스티벌이었다. 책익는 마을의 저자초청토론회가 ‘인문학’ 중심이었고 우리들의 월별 선정도서 또한 그러하기에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구미를 확, 땡겨왔다. 그리고 인문학페스티벌이라는 제목만 읽어보고 찾아올 위인이 어디있겠는가. 이야기 주제와 강사프로필이 있으니 사전에 생각해볼 여유는 충분할 것이었다.

그래서 참가자들에게 사전에 자세히 안내하는 차원에서 강사의 소속, 저서, 강의주제, 자세한 시간 안내까지 포스터, 전단지 등에 담아두었던 것이다. 듣고 싶은 강의만 들어도 상관없으니 주제와 강의시간을 살펴서 원하는 강의시간별로 참석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넣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시간을 맞춰서 원하는 강의에 참여했는데, 12강을 계속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떤 강의시간에는 넓은 세미나실에 보조의자까지 채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세상에 일없는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귀한 시간들을 아낌없이 배려하는 것을 볼 때 시민들의 지적 욕구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참여자는 보령시민들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인천, 수원, 부여에서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고, 익산과 천안에서도 다녀갔다. 또 어떤 사람은 보령시 홈페이지에 난 홍보를 보고 대구에서 올라와 1박2일 동안 꼬박 강의실을 지켰다.

강사들도 행사의 의도에 공감해서인지 자신의 강의시간만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청중으로 앉아있었고 쉬는 시간에는 참가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했다. 약간은 우려했던 과학 관련된 강사들의 강의내용도 행사의 제목을 의식해서인지 순수자연과학에 치우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날의 인문학페스티벌이 전공학자들의 세미나도 아니고 이른바 대중강연 아닌가. 아무리 수준을 맞춘다하여도 주제에 따라서 어떤 이에게는 부족할 터이고, 어떤 청중에게는 넘칠 것 아닌가. 배정된 시간이라도 넉넉했다면 좀 나았겠지만 강의시간표를 받아든 누구라도 예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강사들이 자신의 강의 앞뒤에도 자리를 지켜주어서 관심있는 사람들과의 개별적 소통이 이루어진 것은 흐믓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책익는마을의 저자초청 토론회처럼 선정도서를 읽은 사람에 한해 참가하고 30분 저자의 강의에 90분 질의응답으로 이어지는 토론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그런식으로 그렇게 많은 강사들을 만날려면 우리들 일상을 참으로 많이 할애해야 했을 것이다.

1박2일 동안 이어진 릴레이 강의를 듣고 다소 피곤해진 몸으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연세 지긋한 한 선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유익한 시간들이었어. 우리가 젊어지는 느낌이었고 행복했어.”

도대체 내가 왜 이틀 동안 아니, 준비해온 한 달 동안 생업도 소홀히 하면서 왜 그렇게 달뜬 나날을 보냈을까. 책익는 마을 회원들은 또 무슨 이득을 보자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나누고 후원금까지 내면서 달려왔을까. 직장에서 휴가를 내면서까지 참여했다는 낯선 청중들은 또 어떤 열정이 있기에 그런 용기를 내었을까. 그 자리는 흔히 만나는 ‘금융자산관리법’ 강의도, 돈 많이 번 유명인사의 ‘인생 성공법’ 강의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진중하고 고리타분해서 우리가 학창시절에 얼핏 스쳐갔을 뿐 대체로 거들떠보지 않는 어려운 주제들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 열정을 지적인 욕구,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고미숙은 『호모쿵푸스』에서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에게 ‘책읽지 말고 공부하라’고 말해야하는 시대이기에, ‘대학을 졸업하면 공부 끝!’이라고 하는 세상이기에 나는 행복해지는 조건으로 인문학적 독서를 소망한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의 성적을 다 늙어서까지 외고 다니면서 자신의 두뇌가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들을 흔히 만난다. 또 학교 때 성적이 안 좋았던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책과는 인연이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만나곤 한다. 모두가 잘못된 성장기가 만들어준 허상이다. 한 번 책을 함께 읽고 터놓고 만나보라. 나이도 학력도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도 전제하지 말고 책을 놓고 함께 토론해보라. 권위와 잘난체를 소거하고 함께하는 공부가 얼마나 따스한 인간애를 샘솟게 하고 행복한 기운이 넘쳐나게 하는지를 경험해보시라. 우리나라 근대적 사유의 물꼬를 튼 연암 박지원은 13살 연하인 박제가와 평생 벗으로 함께했다. 책을 읽는 공부는 누구나가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다양한 무늬를 한 역동적 행복의 길을 만날 수 있다.

2010보령 인문학 페스티벌은 보령 시민들의 그런 공부를 향한 열정을 확인하는 계기에 다름 아니었다. 평생교육이라해서 실용적 기능을 배우는 것 만이 어찌 평생교육이겠는가. 아니, 우리는 대학에서까지 기업에서 요구하는 기능 중심의 스펙 쌓기 공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성인사회에 독서가 필요하다. 사회인으로 시작하는 그 시점이야말로 비로소 진짜 공부를 해야하는 출발점이다. 마지막 강의를 듣고 일어서는 그 순간에 내 마음속에는 읽고 싶은 책이 여러 권 떠올랐다. 또 이틀 동안 특별한 기능을 익히지도 않았고 대단한 지식을 배운 것도 아니지만 뿌듯한 기운이 충만해지고 있었다.

<보령신문 2010년 8월 24일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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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e시대와 철학>에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를 연재하는 보령 책익는 마을의 인문학 축전이 인문학과 삶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시민 축전으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라며, 이에 소식을 알립니다.

일시 및 장소 : 2011년 8월 20-21일 대천 한화콘도 세미나실

참고 문의 및 연락처 : 017-432-9558

카페주소 : http://cafe.daum.net/thinders

주술은 나의 일상에 숨어있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박종택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

 

방사능비가 내리는 아침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그건 희곡의 제목이고 나는 날씨에 따라 변하는 존재로 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비가 오는지의 여부 정도는 몸으로 느낀다. 그것은 때로는 슈퍼컴퓨터와 인공위성에 의지한 일기예보 보다 정확하다. 늙어서 그렇다고?

개구리가 많았던 시절, 개구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울고, 제비가 낮게 날면 농부들은 논의 물고를 터놓았고, 어머니는 아침에 종달새가 높이 나는 것을 보고는 2km 거리에 있는 학교로 향하는 나의 등하교 길을 걱정하지 않으셨다. 기상과학을 공부하지 못한 나의 어머니와 농부들의 예측이 미신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개구리의 피부가 습도에 민감하고 대기의 기압에 따라 새와 헬리콥터의 비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비를 느끼며 일어나서 일본 원전사고와 오늘 강우의 연관성에 관하여 인터넷을 검색한다. 결론은 ‘인체에 해롭지 않으니 비 맞지 마십시오.’라는 전문가의 유능한 견해다. 어느 신문사를 막론하고 본질 보다는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기사화 할 뿐이다. 넝마를 시간과 돈을 주고 구매하는 현실이다. 물론 나는 넝마를 돈 주고 사지는 않지만 가끔은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아이가 응아가 급하다고 할 때마다, 그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며 신문을 활짝 편다. 물론 이쯤에서 오감을 넘어 예지 능력과 예감이 발달한 분이라면 식사직전에는 이런 ‘응아’ 이야기가 나오는 글은 절대 읽지 않으리라 믿는다. 각설하고 화장실에 앉아 배설의 쾌락을 만끽하며 시원한 결정을 내린다. 강우에 의한 방사능 피폭의 유무에 관계없이 하루 종일 불안해할 수도 있는 아이 엄마의 정신적 고통을 줄이기 위하여 아이의 유치원 등원을 거부한다. 오늘 하루 더불어 놀아줄 아이들과 집단놀이가 사라지게 됨을 예감한 아이가 아빠에 집착하며 출근을 저지한다. 나는 자본주의와 느림의 미학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다가 아이의 미래를 위하여 전쟁놀이를 선택한다. 점보블럭으로 성을 쌓고 나는 도깨비 가면을 쓰고 아이는 파워레인저 가면을 쓴 뒤 매복과 기습을 반복하던 두 시간 동안의 전쟁에서 아이를 두 번 울리고 밥상 앞에서 평화협정을 제안한다. 경제 논리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나의 행동은 혀를 찰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오늘 아침의 두 시간은 훗날에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며 회고할 때 감미로운 행복으로 기억되는 좋은 시간이리라 믿는다.

 

점심시간에 본 미술작품에 대한 소고

친구와 함께 방사능 낙진이 우려되는 빗속을 뚫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살림집을 개조한 식당의 방을 보니 사방에 집주인이 취미로 그렸다는 그림이 가득하다.

함께 한 친구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교단에 섰다가 미술입시학원을 운영했던 관계로 이야기 소재가 궁색하지 않다.

“이 분은 대범한 사람은 아닐걸. 여백을 두려하는 것을 보니 소심하고 꼼꼼하되 사람은 좋을 것 같아.” 라고 말을 건넨다.

“학식이 많지는 않으나 시골 선비 같은 사람일걸. 정통 미술을 가르치려면 힘 좀 들어야 할 걸.” 하고 말을 받는다.

잠시 후 음식을 내어 온 주인장의 얼굴을 살펴보니 아까 둘이서 나누었던 대화와 다를 바 없이 ‘굽히지 않되 불친절 하지는 않은 소박한 분’이시다. 점심을 맛있게 들고 나서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료증과 명분 없는 봉황무늬 새겨진 감사패 무리를 살펴보고 밖으로 나온다.

친구가 끽연을 즐기는 사이 어제 마신 주님의 은총으로 발길이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을 살펴보니 생각해서 꾸민 물건들이 치워 버려야 시원 할 상황이다. 이 식당에 걸린 여백 없는 그림들과 주인에게서 느낀 인상, 오직 한 기관에서 발행한 수많은 수료증, 화장실의 불필요한 물건들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점심시간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물을 보면서 생물학적 시각으로 보이는 그 자체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차를 몰고 식당을 벗어나면서 오만방자하게 오늘날의 미술을 들었다 놓는다. 기능은 있지만 예능은 없고, 학력은 있으되 학식은 없고, 수업은 있으되 교육은 없는 자들이 미술교육의 전방에 서서 유해한 방사능을 살포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현실의 출처는 미대 입시제도에서 그 근본을 찾고 싶다. 홍익대 미대가 수년전부터 입시 제도를 변경하기는 했지만 미대 입시의 실기고사는 석고 데생이 중심이다.

오늘날 석고 데생으로 미대 입시를 치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밖에 없다. 미대 지망생들은 고등하교 내내 석고상만 바라보다 대입 실기고사를 치르게 되고 대학은 석고 데생의 숙련공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양성된 기능공이 강단에 서게 되면 ‘美術’의 개념부터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술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뛰어난 상상력과 발상의 참신함이지 기능이 아니다. 기능은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전시장에 서서 <무제>라는 제목 앞에서면 경멸과 분노를 느낀다. 그 작품을 제작한 본인도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의도를 품고 진행되었는지를 모른다면 핵물리학자가 방사능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정신병자가 변기를 묶어 끌고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만든 사람도 무엇인지 모르는 <무제>에서 관람자가 뭔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런 노력은 정신적 피폐를 불러오는 악성 방사능이다. 그림 자체에 제작 의도와 의미, 그리고 상징이 결여 되어 있다면 미술작품이 벽면의 벽지만도, 화장실 벽의 타일만한 의미도 없다는 말인가? 왜 대개의 사람이 미술에 관해서라면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 젓게 만드는가?

실제로 미술이 우리의 일상적 삶의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미술만큼 눈에 보이도록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예술이 없는 데도 미술은 뜻 모를 개념들과 추상적 관념만이 난무할 뿐이다. 각종 전시회도 그들만의 잔치로서 유파를 같이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축하를 받고 그들의 찬사를 듣는 행사일 뿐이다. 일반인들에게 곤혹스런 그림을 걸어 놓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것은 잔칫집에 오기 전에 먹을 것을 싸서 오든가 굶으라는 논리다.

 

내 주변 그림과의 주술적 소통

점심식사로 목구멍에 풀칠을 한 후, 나의 직업인 풀칠을 위하여 작업장으로 돌아온다. 나는 현재 표구(일본말이다. 우리말로는 장황, 장배, 표장, 배첩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어(死語)에 가깝다.)와 액자(이것도 일본말이다.) 제작으로 인해 진정한 풀칠을 하며 산다. 고객이 그림 선택의 조언을 구하면(어차피 듣지 않을 것이면서), 자신의 눈을 믿고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라이벌인 부자 친구의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은 잊으라고 권한다. 그 친구가 돈이 많은 것이지 안목이 높은 것은 아니니까.

 

그럼 전시장에서 그림을 감상 할 때 어떻게 보아야 잘 보는 것인가?

아내를 고를 때 옆집 남자의 눈으로 고르고, 남편을 고를 때 위층 여자의 시선으로 골랐는가? 마음으로 보라, 자기중심으로 보라, 내 영혼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라. 좋은 것은 좋고, 좋지 않은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모든 작품에 동일한 시간을 배려하지 말라. 모든 친구와 똑같이 친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있는가? 마음이 이끄는 작품에게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자. 이성이 마음에 들 때 혼자서 끙끙 앓으며 바라만 보았는가? 친구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가? 전시장에는 큐레이터와 작가라는 친구가 그대를 돕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다.

 

그림 구매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옷을 구매할 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게 된다. 그 옷을 입으면 단아해 보이기 때문에, 또는 듬직해 보이기 때문에, 섹시해 보이기 때문에, 경쾌해 보이기 때문에, 세련되어 보이기 때문에 등 여러 가지 선택의 까닭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옷이란 편하고 따뜻하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이 옷 색상은 더워 보여, 이 옷 스타일은 추워 보여’ 정도는 따져보기 마련이다.

그림 구매도 말 그대로 구매다.

우리는 과시용으로 더운 나라에 살면서 밍크코트를 구매하고 3,000켤레의 구두를 사서 모았던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즐기고 느끼기 위하여 그림을 구매하는 것이다. 자신의 눈이 가장 현명한 감식안이다.

 

야심한 밤, 칼을 빼어든다

방사능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밤이다. 한 손에 망치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집어 든다. 수일 전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을 사훈으로 정했는데, 서예작품 보다는 독특하게 서각작품으로 걸고 싶다는 주문이 있었다. 그 주문에 따라 표피적인 감각과 알량한 수준의 손재주로 나무를 판다. 내 얄팍한 생각으로는 나무속에 숨어 있는 글을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서각작품인데, 나의 재주는 글씨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파내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나의 감각과 감성이 부족하니 마부작침의 자세로라도 각을 해야 할 텐데 시장논리가 작용하여 도끼를 가는 것이 아니라 도끼날만 갈고 만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작품의 상업성, 작품의 환금성이라는 단어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몇몇 친구들은 나를 보고 작가가 아닌 잡가(雜家)라 부른다. 고객에게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고 가액(價額)과 임금을 받는 상업성이 뚜렷한 잡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 하는 배려를 잊지 않는다.

“어차피 요즘 세상은 작품의 질과는 별 상관없이 풍부하고 번뜩이는 상상력과 감각적 문장을 구사하고, 세련되고 현란한 말재주를 소유한 사람이 작가여.”

“예술은 하나의 형식이나 내용으로 정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야. 예술의 불확실성이 또 다른 예술적 행위를 이끄는 원동력이야.” 하며 내 귀도 못 알아들을 소리를 내 입으로 중얼거린다.

각이 끝나고 아크릴 물감을 짜기 시작한다. 원래 의도는 금분을 사용할 예정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시장성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몰아낼 시간이다. 간단히 날려 칠하고 인테리어 수준으로 마무리 한다. 이 때 쯤 목소리를 높여 중얼거려야 한다.

“의뢰하신 분께서 원청회사가 부도나는 통에 여러 번 사업에 실패하시고 ‘이번이 마지막 재기의 기회일 것 같다’고 했으니 기를 돋우는 주술적 의미에서 강렬한 빨강색을 써 봤어.” 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한다. 그런데 왜 이 순간 ‘예술은 사기다.’ 라는 백남준씨의 말이 떠오르는 거지? 그건 그렇고 어제 술 마신 것이 24시간도 넘었는데 왜 서각 하는 내내 방귀가 계속 나오는 거야? 일본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의 영향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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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김융희 지음, <예술, 주술적 세계와의 소통>(책세상 펴냄>에 관한 박종택 책익는 마을 촌장의 글입니다.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7)

[기획연재] 서구 지성의 원천 – 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7)

글: 이정호 교수(방송통신대)
주제 1: 그리스인의 사랑

 

4. 플라톤의 에로스(1)

플라톤고대 그리스에서 소년 사랑이 교육적 동성애로서의 성격을 가졌다는 것은 에로스가 개인들의 사적 영역을 넘어서 정치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앞에서도 살폈듯이 소년 사랑은 분명 전사 공동체로서의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엘리트 그룹들의 내적 연대와 자기 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공동체의 보존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소년 사랑을 구성하는 관능적 요소들과 정신적인 요소들 사이의 긴장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 귀족사회가 붕괴되면서 서서히 와해되었고 아테네 민주정하에서 더욱 통속화되었다.

플라톤(기원전 429-347)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은 이러한 시대적 국면에서 소년 사랑이 내포하고 있는 에로스의 관능적 측면을 비판하고 에로스를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 즉 철학으로 승화시키려는 플라톤의 고뇌어린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늘 그러하듯이 자기 생각을 처음부터 드러내지 않고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에로스에 대한 논의들을 먼저 제시하게 한 후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종합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펼치는 형식으로 논의를 이끌어간다. 다만 「향연」은 형식면에서는 다소 특이한 도입부를 가지고 있다. 보통의 경우에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약간의 도입부 대화를 거쳐 바로 해당 주제에 대해 다른 대화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유독 이 대화편에서는 옛날에 대화를 들었던 사람이 훗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이 다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다소 복잡한 이야기 전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오늘날 영화에서 창틀을 끼어 과거 시점을 현재와 병존시키는 기법과 유사한데, 플라톤이 도입부를 왜 그와 같이 복잡하게 설정해 놓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학자들은 「향연」에서 종국적으로 플라톤이 드러내고자 하는 에로스의 비의적(秘儀的)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포석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알키비아데스가 죽은 후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와의 관계에 대해 세간에 퍼져있는 오해를 알키비아데스를 등장시켜 그의 입을 통해 불식시키고, 동시에 소크라테스의 진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작품 구성상의 기법이라고도 해석한다.

플라톤의 「향연」파퓌로스 필사본 일부

「향연」은 플라톤의 첫 번째 시켈리아 여행(기원전 390년)과 두 번째 여행(기원전 366년경)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향연」의 작품상 설정 연대는 그 보다 훨씬 이전이다.「향연」은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아가톤(Agath?n)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와 참석자들이 벌인 에로스에 관한 연설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경연이 있었던 레나이아(l?naia) 축제가 기록상 기원전 416년에 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향연 즉 심포지온은 우리나라 옛날 양반들이 모여 술을 나누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귀족남성들이 모여 경연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펼치며 놀았던 일종의 특권층의 오락모임이자 술자리였다. 그런데 이날은 모두가 전날의 축제에서 이미 통음을 하였던 까닭에 술자리 보다는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하자고 모두 동의하고 통상 자리를 같이 하던 피리 부는 소녀들과 여인들까지 물리친다. 이처럼 「향연」에서의 향연(symposion : ‘drinking together’의 의미)은 처음부터 ‘술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말(logos)을 나누는 자리’로 규정되고 각자가 펼칠 연설의 주제 또한 에뤽시마코스(Eryximachos)의 제안에 따라 에로스에 대한 찬미로 정해지고, 연설의 순서 또한 앉아 있는 자리에서 오른쪽 순으로 펼치기로 합의된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은 에로스에 관한 일 말고 다른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을 한다.(177d) 이 부분도 의견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知)’를 늘 강조해 왔는데 이 부분에서는 에로스에 대해서만은 잘 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도입부에서 소크라테스가 에로스에 관한 이야기의 최종 청취자로서 일반대중을 상정하였듯이, 사랑에 대해서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서 함께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소크라테스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소크라테스의 에로스가 어떤 지식 내지 결론적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열망자체’라는 점에서 그렇게 발언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고대 아테네 향연의 한 장면(도기 그림)

이렇게 해서 에로스에 대한 찬미 연설이 시작되고 파이드로스(Phaidros)가 그 첫 번째 주자로 나선다. 그는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탄생(Theogonia)」을 인용하여 에로스를 태초의 신들에 속하는 가장 오래된 신으로 내세우면서, 에로스가 가장 좋은 것들의 원인이므로 찬양받아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 파이드로스가 말하는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소년 사랑이다. 그러면 소년사랑이 가장 좋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소년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추한 것을 멀리하고 오직 아름다운 것만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치심에 대한 민감함과 명예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없이는 국가든 개인이든 크고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없다. 요컨대 소년 사랑은 추한 일을 멀리하게 하고 덕과 명예를 추구하게 하여 나라를 위해 전투에 나가서도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싸우게 만든다. 파이드로스는 여기서 소년 사랑이 결국 나라를 잘 운영하는 방법 및 전투수행능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178e)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에로스라는 것이다. 파이드로스는 이 부분에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를 인용하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앞에서 살핀 테바이 신성부대가 먼저 생각날 것이다. 실제로 테바이 신성부대의 창설은 이 향연의 내용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파이드로스의 에로스에 대한 연설은 전사 공동체 사회에서 소년 사랑에 대해 기존에 확립된 교육적 동성애의 전통을 그대로 대변한다.

그러나 파이드로스의 연설은 다소 상투적이고 소년 사랑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운 사례들도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남편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한 알케스티스(Aik?stis)의 경우는 이성애 관계이고, 아킬레우스의 경우(아이스퀼로스에서는 아킬레우스가 에라스테스로 나온다)도 에로메노스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비록 신이 마음에 들어 할 정도로 더 소중한 것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에로스를 품는 자, 즉 에라스테스의 경우는 아니다. 오르페우스의 경우도 일반적인 견해와 동떨어져 있다. 이처럼 파이드로스의 에로스론은 기성의 상식을 대변하지만 대부분의 상식이 그러하듯 근거가 논리정연하지 못하고 늘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무턱대고 끌어들인다.

그 다음 연설자로 나오는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소년 사랑의 이중성을 간과한 채 기성의 관점에서 단순히 찬사만 늘어놓는 파이드로스의 연설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에로스에는 범속의 에로스(pand?mos eros)와 천상의 에로스(ouranios eros)가 있는데 이 중 전자는 찬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고 영혼(psych?)보다 몸(s?ma)을 사랑하며 그저 ‘일을 치러내는 것'(exergazesthai : 이 문맥(181b)에서는 성행위를 뜻함)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출생이 제우스와 디오네(Di?n?)의 딸인지라 저급한 이성애도 추구하기 때문이다.

파우사니아스는 소년 사랑이 종래의 교육적 동성애로서의 전통에서 벗어나 성적 충동이 이끄는 대로 이성애건 동성애건 닥치는 대로 애정행각을 벌이는 타락한 현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파우사니아스 역시 교육적 동성애로서 소년 사랑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천상의 에로스란 단순히 소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nous)을 갖기 시작할 때의 소년을 사랑하며 늘 덕(aret?)으로 이끄는 사랑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천상의 에로스를 추구하는 에라스테스에게 소년이 살갑게 대하는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에라스테스가 아름다운 소년 애인을 취하려고 벌이는 그 어떤 행위도 그것이 설령 노예노릇처럼 비쳐질지라도 결코 추한 것이 아니며, 소년이 최대한 훌륭한 에라스테스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끌며 그들을 시험하고 경쟁시키는 것 역시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다. 오히려 무능한 나라 또는 참주정(tyrannis) 치하에 있는 나라일수록 이러한 일들을 추한 것으로 여기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년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사랑을 나눔으로써 생기게 될 대단한 생각(pronemata megala : 높은 사리분별력)과 강력한 친애 및 연대감을 참주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파우사니아스는 이곳에서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아리스토게이톤과 하르모디오스의 사례를 인용한다.

그러나 파우사니아스는 이러한 천상의 에로스가 아닌 범속의 에로스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돈이나 권력으로 소년 사랑을 구하는 자들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소년들의 부모들도 아이들을 감독할 보호자를 두어 어른들과의 대화를 허용하지 않게 되었고 급기야 소년 사랑이 공공연히 추한 일로 비난받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그러므로 소년 사랑의 전통이 제자리를 잡아 소년 애인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살갑게 대하는 일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게 하려면 이제 소년 사랑에 관한 법(nomos)과 지혜 사랑(phiosophia) 및 다른 덕에 관한 법이 같은 곳에서 함께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184d) 그렇게 될 때에만 에라스테스는 에로메노스를 위해 사리분별 및 기타의 덕을 가르칠 수가 있고, 에로메노스는 에라스테스로부터 올바른 교육을 통해 지혜를 습득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에로메노스가 에라스테스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charizesthai : 신체적 애무를 포함하여 기쁨을 주는 것)이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에는 파이드로스가 간과하고 있는 아테네 사회에서의 소년 사랑의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천상의 에로스에 대한 찬미를 통해 소년 사랑의 정신적 측면을 현실적으로 되살려 보려는 각고의 노력이 담겨 있다. 그러나 파우사니아스 역시 파이드로스와 마찬가지로 소년 사랑에 수반하는 육체적 관계를 폄하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적으로 살갑게 대하는 것은 이상적인 여러 가지 동기들과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으로 찬양하고 있다.

세 번째 연설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s) 차례지만 그가 딸꾹질을 하는 바람에 에뤽시마코스가 대신 나선다. 에뤽시마코스 역시 파우사니아스처럼 에로스를 둘로 구분한다. 그러나 앞의 연설자들처럼 에로스가 사람들의 영혼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에로스는 모든 동물과 땅에서 자라는 것들 즉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다 있는 것이다.(186a) 이처럼 에뤽시마코스는 에로스를 우주적 에로스로 확장시킨다. 인간이건 우주 자연이건 어디에나 좋은 에로스와 나쁜 에로스가 있으며, 그에 따라 좋은 에로스가 사랑하는 것과 나쁜 에로스가 사랑하는 것이 따로 있다. 좋은 에로스가 하는 일은 적대적인 것들을 조화시키는 것이고 나쁜 에로스는 그것들을 부조화시켜 더욱 적대적으로 만든다. 좋은 에로스가 하는 일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대로 마치 활(toxon:현악기를 켜는 활)과 뤼라가 서로 부딪치면서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의술은 몸의 조화를 이끄는 에로스에 대한 앎(epist?m?)이고, 시가술(mousik?)은 음의 조화와 리듬을 이끄는 에로스에 대한 앎이고 천문학은 계절의 조화를 이끄는 에로스에 대한 앎이다. 그리고 예언술(mantik?)은 신들과 인간들의 친애를 만들어 내는 에로스에 대한 앎이다.(186c-188d) 이처럼 에뤽시마코스에게서 에로스는 우주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내적인 조화를 관장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기술(techn?)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추구하고 습득해야할 자연학적 원리의 성격을 갖는 에로스이다. 에뤽시마코스는 이러한 에로스야 말로 ‘절제와 정의’(앞뒤 문맥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 생뚱맞게 인용되어 있다)로써 일을 이루어내는 에로스이고 우리에게 신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일체의 행복을 마련해주는 에로스라고 주장한다. (188d)

파이드로스와 파우사니아스의 에로스가 사랑하는 사람과 소년 사이에 강한 친애(philia)와 연대(koinonia)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명예(tim?)와 덕에로 이끄는 정서적 성격의 힘이라고 한다면, 에뤽시마코스의 에로스는 마치 동양 유가의 도(道)와 성(誠)을 연상시키듯 우주 자연으로까지 확장된 우주론적 에로스로서 대립된 힘들로 구성된 일체의 것들을 질서(taxis)와 조화(harmonia)로 이끄는 원리적 성격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들 모두의 주장은 향연의 전체내용을 이끌고 가는 플라톤의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창작된 것으로서, 당대 지식인들의 에로스론에 대한 플라톤 나름의 평가를 반영하면서 장차 소크라테스의 연설을 통해 표명될 플라톤의 에로스론을 구성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상의 세 사람의 연설이 끝난 후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이 이어진다. 그런데 플라톤이 아리스토파네스를 「향연」의 등장인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다. 그는 기원전 423년에 상연된 「구름(nephel?)」이라는 희극에서 소크라테스를 우스꽝스러운 사기꾼으로 조롱했던 사람이다.(218-226) 그래서 플라톤은「변명(Apologia)」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그의 그러한 짓이야말로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밝히고 있다.(19c) 그럼에도 플라톤은 왜 아리스토파네스를 「향연」의 연설자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일까. 일단 겉으로 보면 플라톤은 마치 역사적 아리스토파네스를 그대로 옮겨 놓기라도 하듯이 우화를 인용하며 이끌어가는 아리스토파네스 고유의 익살과 페이소스를 실감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으로 들어가면 그의 연설은 에로스와 관련하여 소크라테스가 반드시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몇 가지 안티테제들을 포함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아마도 플라톤은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을 비판의 표적이자 반동의 디딤판으로 삼아「향연」의 절정인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연설을 통해, 다시는 스승 소크라테스를 넘보거나 능멸하지 못할 정도로, 에로스를 저 빛나는 정신의 세계로 하늘 높이 도약시키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아리스토파네스에게 에로스란 무엇이었을까?

(다음에 “플라톤의 에로스(2)” 계속)

잃어버린 나를 찾다[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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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마쓰시타를 만나다

요시코가 17세 때 마쓰시타를 만났다. 주말이면 학교가 있는 부산에서 집이 있는 울산으로 갔다. 일제 강점기임에도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은 사각모를 쓴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 전신) 남학생들이 많았다. 명랑하고 활발한 요시코였지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많지 않던 때이기도 하고 남학생들의 모습이 눈이 부시게 보여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오바상, 일본어로 아주머니를 오바상이라고 불렀거든. 오바상이 나를 툭툭 치대.”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눈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다가 한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드니까 나를 보고 있는 기라. 그래 좀 있다 내가 보나 안 보나 한 번 더 보니까 아직까지 보고 있는 기라.” 마쓰시타는 읽고 있던 책을 아예 무릎 위에 내려놓고 요시코만 보고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64년이라는 시간은 멈추었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서 듣는 것 같은 가벼운 흥분마저 느껴졌다. 마쓰시타는 할머니의 작은 방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것처럼 시간의 강을 건너 할머니 앞에 앉아 있었다. 뭉툭한 손으로 뒤틀린 얼굴을 살짝 가리며 웃는 모습은 17살 소녀, 요시코였다.

부산이 가까워 오자 마쓰시타는 요시코가 앉아 있는 자리를 스쳐 지나가며 메모지를 교복 치마 위로 툭 던졌다. 그녀는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메모지를 치마 위에 그대로 두었다. 부산에 도착할 때쯤 치마 위에는 메모지가 수북했다. 차마 그것을 버릴 수가 없어서 반찬을 싼 보자기 안으로 밀어 넣고 기차에서 내렸다.

마쓰시타는 요시코를 쫓아와서 반찬 보따리를 뺏다시피 가져가서 들었다. 요시코는 마지막 전차를 타야만 하숙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빠르게 걷는 그녀 옆에서 마쓰시타도 함께 걸었다. “대신동 갈라면 어떻게 가느냐 이라데” 할머니의 말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마쓰시타는 대신동이 아닌 기라. 그 학교는 대신동하고 반대편에 있는 학교라.”

많은 경험들 중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경험은 시간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들의 과거를 뒤죽박죽 섞어 놓기도 하고, 낯익은 얼굴들을 기억 속에서 지우기도 하고, 어느 날 낯익은 얼굴이 낯설어 보이게도 한다. 생기를 띠며 소녀 같은 미소를 짓는 할머니의 얼굴은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었다.

 

사랑을 맹세하다

마쓰시타는 말이 없는 요시코를 따라 전차를 타고 대신동까지 가서 그녀가 내리자 따라서 내렸다. “자꾸 묻더라. 이름이 뭐꼬? 주소가 어찌 되노? 어디서 사노? 주말마다 울산 가나? 울산 집은 어데고?” 처음 듣는 할머니의 웃음 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지만, 이른 새벽 풀잎 끝을 또르르 구르며 떨어지는 이슬방울 소리를 냈다.

마쓰시타는 자기가 사는 집 주소를 요시코의 손에 쥐어 주면서, 역 앞이니 울산에 오면 꼭 들려주기를 당부하며 돌아갔다. 마쓰시타가 사는 집은 경찰서와 거의 붙어 있었고, 그녀의 집은 경찰서 뒤로 조금만 가면 되는 거리에 있었지만, 애써 피해 다녔다. 마쓰시타가 순사 부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방학 때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우체국에 가는 길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쓰시타는 자전거를 타고 쫓아오며 어떻게 알았는지 “요시코 요시코”라며 그녀를 불렀다. 우체국 안에까지 막무가내로 따라 들어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뛰다시피 집으로 오는 내내 요시코의 가슴은 콩당콩당 뛰고 있었고, 마쓰시타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이름을 부르(<첫사랑 1>부분>)”며 그녀를 따라왔다.

그날 저녁에 잡지 책 안에

편지 한 통이

담으로 던져 마당에 있더라.

주워보니 그 얄미운

마쓰시타더라.

그리고 이것이

일 년 동안 지속되었다.

옛날 속담과 같이

열 번 찍어서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더니

이것이 나를 두고 하는 소리더라.

결코 만나자기에

일 년 후에 둘이가 만났더라.

<첫사랑 1>의 부분

둘의 사랑 앞에서 그가 일본인 순사 부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장애가 될 수 없었다. 17세의 요시코와 마쓰시타는 “둘은 손을 꼭 잡고/동백섬에 들어가서 동백꽃을 꺾어/내 머리에 꽂아주고/내 역시 동백꽃을 꺾어서/그대의 윗 포켓에 꼽아 주며” “변치 말자고/손을 굳게 잡고 다짐하며/(< 첫사랑 1>의 부분) 맹세”했다.

그리고 이후 요시코의 삶은 두 손을 꼭 맞잡고 한 맹세에 갇혀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결혼을 한 다른 남자가 곁에 있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64년 전의 맹세에 묶여 있었다. 할머니는 시 <눈 내리는 날>에서 마쓰시타와 함께 한 시간들을 “팔십 평생을 살아도/눈 나리는 이 날이/잊혀 지지 않고/옛 추억이 그립더라.(<눈 내리는 날>부분)”고 말한다.

사랑에 대한 맹세의 기억이 없었다면, 어쩌면 할머니의 삶은 좀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사람 목숨이 먼저이니 일단 살고 보자’고 그녀를 설득했던 청년 김철수와 결혼하여 59년을 함께 살았지만, 요시코의 영혼은 굳은 사랑을 맹세했던 마쓰시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별한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런 마음을 이야기 내내 표현하면서도 마쓰시타라는 이름 앞에서 17세의 소녀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 <이 여자, 이숙의>의 주인공인 이숙의 역시 결혼 생활 6개월 만에 월북한 남편을 잊지 못하고 53년 동안 홀로 지낸다. 불같은 사랑을 했지만 남편은 임신한 아내를 남쪽에 두고 월북하였다. 6?25가 발발하자 남하하여 빨치산을 조직하고 남부군으로 활동하다 잡혀 사형되고, 이숙의는 홀로 딸을 낳아 기르며 남편을 그리워했다. 이숙의도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남기고자 글을 썼지만, 책이 출판되기 전에 생을 마쳤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로즈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잭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몸을 바다에 담근 채 “넌 꼭 살아야 해. 네가 원하는 삶을 행복하게 살아야 해”하며 바다 밑으로 가라앉던 잭을 죽는 순간까지 마음에 간직한 채 삶을 이어갔다. 다른 남자를 만나 아내로 어머니로 살면서도 잭을 떠나보내지 못했던 것이다.

요시코, 이숙의 그리고 로즈는 우연히 만나 사랑했고, 그 사랑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죽음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회상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사랑의 기억은 그녀들의 삶을 때로는 기쁨으로도, 때로는 슬픔으로도 채우면서 출렁거렸던 것은 아닐까.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르다

17세에 만나 채 3년이 되지 않는 시간의 기억들이 한 사람의 삶을 64년 동안 지배한다는 현실 앞에서 망각의 힘은 무력했다. 할머니가 마쓰시타의 생사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한 기억들이 의식의 흐름을 통해 지속되고 있었기에 현재까지 설레임과 그리움을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이숙의, 그리고 로즈에게 공통적인 것은 사랑의 기억이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요시코와 마쓰시타의 이별은 개인이 저항할 수 없는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때문이었다. 한 인간의 힘으로 역사의 흐름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할머니가 했던 저항은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하고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며 사는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무사히 삶의 저편에 닿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한 가운데에서 추억을 되살림으로써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마쓰시타와의 재회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이루어질 것으로 믿으면서 할머니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었으리라.

17세의 그녀는 마쓰시타와의 우연한 만남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1년 동안 이어지는 마쓰시타의 구애를 받아들일 때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디로 굴러갈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받았으며, 사랑만이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우리는 본다. 사랑은 한 사람의 삶의 축을 가로지르며 척박한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교사였던 이숙의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회주의자를 사랑했지만, 남편이 남긴 딸과 함께 역사와 이념의 장벽을 넘었다. 로즈는 자기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잭의 마지막 부탁이었기 때문에 잭을 가슴에 품고 또 다른 삶을 찾았다.

그러나 할머니의 사랑은 그들과 달랐다. 마쓰시타를 다시 만난다 해도 한센 병 때문에 그 앞에 나설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자신의 손으로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낸 아들의 얼굴은 한 살 젖먹이 얼굴 그대로 가슴 속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날마다 조금씩 변해 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할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죽음마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을 때 할머니는 스스로 자신을 가두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추억은 그러나 죽음과 같은 현실의 삶에 때때로 생기를 주었다. 마쓰시타와 함께 했던 해운대 모래사장과 동백섬은 척박한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회상의 공간이었으며, 눈 내리던 날에 함께 만들었던 눈사람은 잊혀지지 않는 순수의 지점이었다. 현실의 고통을 과거의 기억에 의해 버틸 수 있었던 것, 이것이 할머니의 삶에서 추억이 지닌 가치였다.

 

나를 찾아서 길을 떠나다

할머니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잃어버린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단히 흘러가는 속성을 지닌 자연적인 시간은 추억에 의해서 할머니만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것은 단순한 현실부정이 아니라 과거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그녀만의 심리적 시간은 할머니의 의식이 의지적이든 무의지적이든 한센 병이 발병하기 이전의 시간 속에 자신을 두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욕구는 할머니의 사진이 한 장도 없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할머니가 보여 준 앨범 속에는 젊은 시절의 청년 김철수에서 영정 속에서 웃고 있는 모습 등 모두 사별한 할아버지의 모습만 있었다. 한센 병 발병 이전의 할머니는 그녀의 기억 속에 요시코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물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지만, 오히려 과거에 갇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할머니가 나를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이숙의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던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짧았던 사랑의 기억만으로 살아왔지만, 그 기억 속에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의 실존성을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온전함을 회복하는 길, 이숙의에게는 자전적 소설이었지만, 할머니에게는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시를 쓰고 자신의 시를 읽으며 스스로 치유하고, 치유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찾는 데에 마쓰시타는 할머니가 건너야 할 또 다른 장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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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게이아(Hyge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이는 흔히 의약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us)와는 또 다른 치유의 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이나 약으로 환자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신이라면, 히게이아는 환자 자신의 자연치유력을 돌봐주고 길러주는 치유의 신입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의학의 수호신이라면, 히게이아는 간호학과 위생학의 수호천사로 불립니다. [히게이아의 시학]은, <e시대와 철학>과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서 바로 치유의 여신 히게이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문학 특히 시를 통해 환자의 삶과 소통하고 환자의 자기 치유를 유도하는 하나의 치유인문학이자 인문의학의 성격과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의 말]

영화로 사유하기 (4) : 영화적 시점

글: 이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시각예술인 영화의 가장 큰 특수성은 일단 ‘보여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어져 나오는 물음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동일한 대상이나 사태라 하더라도 ‘누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보여지는 ‘무엇’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무엇’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가시적인 ‘누가’와 ‘어떻게’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릴적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떠올려보자. 어른이 된 지금 그곳을 가면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어린 나의 눈에는 그토록 넓었던 운동장은 사실 아담한 크기의 운동장일 뿐이다. 운동장이라는 대상의 크기는 동일한데도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지 혹은 어른의 눈으로 보는지에 따라 다른 크기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단지 대상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의미까지도 다르게 나타난다. 만일 어른 눈에는 아담하지만, 아이에게는 거대한 어떤 장소를 영화가 보여주려고 한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아마도 아이의 눈높이 혹은 그보다 더 낮은 앵글을 선택할 것이고, 광각렌즈처럼 공간의 깊이감을 강조하는 렌즈를 사용하여 실제 장소보다 더 넓어보이게 촬영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대상이 완전히 동일한 크기와 앵글로 보이더라도 의미는 달라질 수도 있다. 영화 처음에 누군가의 시점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바다를 보여주고, 이야기가 진행된 이후에 동일한 이미지가 다시 등장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더이상 동일한 의미를 지닌 이미지는 아니다. 결국 영화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엇’은 언제나 누군가가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본 무엇이다. 따라서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는 누군가의 특정한 시점과 관점을 전제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영화의 시점 문제는 지각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화적 시점-지각 문제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영화에서의 시점을 (누군가의 시점으로 귀속되는) 주관적 쇼트와 (누구의 시점으로도 귀속되지 않는) 객관적 쇼트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영화의 초반에 사건이 일어나게 될 뉴욕 도심의 빌딩숲을 보여주는 설정쇼트 (사건이 일어날 배경 장소를 먼저 보여주는 ‘소위’ 객관적인 배경 제시 쇼트) 를 생각해보자. 일단 이는 누구의 시점으로도 귀속되는 장면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쇼트를 흔히 객관적 쇼트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어지는 쇼트에서 건물의 옥상에 있는 누군가가 그 빌딩숲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면, 앞의 객관적 쇼트는 주관적 시점 쇼트로 순식간에 위상이 변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 인물이 어떤 건물을 바라보는 쇼트에 이어, 건물을 빙 둘러가며 보여주는 쇼트가 이어진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건물을 보여주는 쇼트를 앞 쇼트의 인물에게 귀속된 주관적 시점 쇼트라고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을 보여주는 쇼트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화면 안으로 앞 쇼트의 인물이 들어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기존의 구분법에 의하면 이 쇼트는 주관적이었다가 객관적인 쇼트로 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보여주는 자를 보여준다고 이 쇼트가 그리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술에 취해 혼자 걸어가는 남자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마치 카메라가 술취한 남자의 시점인 듯 비틀거리며 술취한 남자 본인을 보여줄 때, 이 경우는 주관적 시점 쇼트와 객관적 쇼트가 압축(contraction)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경우 1인칭과 3인칭 시점은 문법적으로도 명확히 구분되며 그 위치를 쉽사리 변경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객관적 쇼트와 주관적 쇼트의 구분을 확정짓는 것이 곤란한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만일 이런 일이 예외적인 예술영화에만 등장한다면 상황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이런 상황은 일반적인 서사 영화는 물론 심지어 관습적인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빈번히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화적 지각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주관과 객관을 계속해서 오고간다? 이에 대해 들뢰즈는 영화적 지각을 ‘반-주관적 이미지(image mi-subjective)’라고 부른 장 미트리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카메라는 인물 속으로 완전히 동화되지도(주관적 시점), 그렇다고 인물과 완전히 구분되는 바깥에 있는 것(객관적 시점)도 아닌 영화와 함께 있는 공존재(Mitsein)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객관적으로 보이는 쇼트라 하더라도 실은 (주관적인)카메라가 그것을 보여주며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아주 주관적으로 보이는 쇼트라 하더라도 그 인물의 시점으로 온전히 종속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성격을 일정 정도 담보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공존재로서의 반주관적 성격이 영화적 지각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히든’의 인트로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특성을 통해 영화의 긴장감과 주제를 아주 극명히 드러내주는 사례로 미하엘 하네케(Michael Haneke)의 <히든 Hidden>(2005)이라는 영화를 들고 싶다. 고정 카메라로 조용한 중산층 주택가 골목을 비추는 영상 위로 오프닝 타이틀이 뜬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사건도 등장하지 않고 오래도록 같은 장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 오프닝 장면을 설정쇼트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즉 누군가의 시점에 의한 장면이 아니라 그저 객관적으로 주택가 골목을 비춰주는 장면으로 말이다. 영상의 변화조차 없이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있을 때, 외화면 사운드로 남자와 여자의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때까지도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잠시 후 화면 중간에 가로줄의 노이즈가 발생한다. (컴퓨터 모니터로 다운받은 영화 파일을 보고 있던 필자로서는 ‘다운받은 파일이 잘못 되었나?’하는 의아한 시선으로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은 다운받은 파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감시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주인공 부부에게 보냈으며, 가로줄 노이즈가 만들어진 영상 속의 골목길 풍경은 감시카메라의 시선이자 주인공 부부가 보고 있는 화면을 리와인드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객관적인 설정쇼트라고 의심없이 믿고 있던 관객들이 뒷통수를 크게 한대 얻어맞는 순간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히든>의 시점은 마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ninas>에서 화가의 시선과 왕과 왕비의 시선 그리고 관람객의 시선이 그림 바깥의 한 점, 즉 그림 외부의 관람객의 공간으로 연장된 그림 내부의 소실점과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점에서 중첩되고 교환되는 것과 유사한 구조를 형성한다.(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미쉘 푸코(Michel Foucault)의 <말과 사물> 1장을 참고하라. 내용도 길지 않으며 재미있는 분석이다.)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 내부의 공간(가시적 공간)을 그림 바깥의 공간(비가시적 공간)으로 연장하여 그 안에서 교환되는 시선의 작용과 소실점의 의미 등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처럼, 하네케의 <히든> 역시 영화 내부의 디제시스 공간(영화의 서사로 형성된 이야기 공간)만으로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숨겨진(hidden) 의미들을 파악할 수 없다. 결국 비가시적으로 숨겨진 의미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객의 시선까지 연루시키는 영화적 시선의 교호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오프닝 장면 이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또 등장한다. 이번엔 아니겠지 하는 순간 이 기대 역시 여지없이 배반당한다. 이런 식의 시선의 장난에 몇번을 속은 관객들은 이제 그냥 보여주는 ‘소위’ 객관적인 쇼트가 나와도 불안해진다. 매 장면마다 이것이 누구의 시선인지를 긴장하며 살피게 된다. 결국 조마 조마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도 관객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영화 ‘히든’의 한 장면 사실 영화의 엔딩크레딧까지 유심히 보는 관객은 매우 극소수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하네케의 이러한 장치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를테면 영화 속 디제시스 공간이 이 영화가 제시하는 전체 공간이 아니며, 엔딩크레딧과 함께 영화는 끝나도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진짜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스크린을 뛰쳐나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긴밀한 연관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장르 영화나 오락 영화의 경우,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영화가 끝나면 영화 속 사건이나 인물의 삶도 끝난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저 두어시간 즐거웠으면 그뿐이다.) 하네케의 <히든>은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현실 사이의 명확했던 경계선을 뭉개버린다. <히든>에서는 주관적 쇼트/객관적 쇼트, 가해자/피해자, 영화/현실, 상상적인 것/실제적인 것의 모든 식별가능했던 경계들을 넘나들며, 각각의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서로의 차이를 무화시키지 않은 채 함께 웅성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매우 불편한 마음으로! 바로 이러한 사태를 들뢰즈는 자유간접화법(discours indirect libr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들뢰즈는 이 자유간접화법이 앞서 설명했던 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성격의 대응물이라는 파졸리니(P. P. Pasolini)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히든>이라는 차갑고, 불편한 영화의 우회로를 돌아, 다시 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성격으로 되돌아왔다. 파졸리니는 언어학자 바흐찐(M. Bakhtin)의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논의를 받아들여, 이것이야말로 자연적 대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영화적 지각의 반주관적 성격의 대응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질적인 주체들의 차별화, 이질적 목소리들의 혼재 등으로 설명되는 자유간접화법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직접화법과 간접화법부터 살펴보자. 아마도 중학교 영어시간에 배웠으리라 짐작되는 매우 쉬운 문법이다. 예를 들어, 직접화법은 He said, “I will go to the beach tomorrow”.와 같은 방식으로 두 개의 분명히 구분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문장을 간접화법으로 바꿔보자. He said that he would go to the beach the next day.로 바뀐다. 문장부호를 없애주면서 관계대명사 that으로 연결하고, 주절과 종속절의 주어와 시제를 일치시키면, “내일 해변에 가겠다”고 외치던 생생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보고자의 목소리라는 하나의 체계로 목소리들은 균질화된다. 바로 이 간접화법에서 주절을 생략하면, 자유간접화법이 된다. He would go to the beach the next day. 이 자유간접화법에서는 보고자의 뚜렷한 위치가 생략되고, 보고되는 자의 목소리가 간접화법에 비해 두드러진다. 하지만 직접화법에서 나타났던 생생한 보고되는 자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자유간접화법에서는 두 언술행위의 주체들 간의 단순한 뒤섞임이나 균등함은 존재하지 않고, 이질적이면서 상관적인 두 주체 간의 차별화만이 존재한다. 목소리들이 동질적이거나 균형을 이루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다성적인(polyphonic) 관계라 할 수 있다.

영어 문법에서 다시 영화로 되돌아오자. 이 이질적인 다성적 목소리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명확히 식별해낼 수 없는 주관적 시점/객관적 시점의 문제가 되며, 이 모든 시점과 더불어 존재하는 카메라의 시점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자유간접화법이 드러나는 방식은 다양해진다. 주관과 객관이 식별불가능하게 혼재된 영화적 지각 자체도 자유간접적이고, 카메라의 존재를 관객에게 느끼게 하는 방식 역시 자유간접적이다. 카메라의 존재를 느끼게 만드는 방식은 안토니오니(M. Antonioni)나 고다르(J. L. Godard)처럼 카메라가 인물과 서사를 따라가지 않고 마치 자신도 하나의 등장인물인양 강박적인(obsessive) 방식으로 버티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파졸리니가 많이 보여줬던 방식으로 서사의 구성에서 주절과 삽입절의 위계질서를 페기하는 방식들을 들 수도 있다. 우리는 서사에서 주절과 삽입절에 해당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야기의 경우, 세라자데 공주가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밤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절에 해당되고, 공주가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이 삽입절에 해당된다. 그런데 파졸리니의 영화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세라자데 공주가 아예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주절의 확고한 위치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야기되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등으로 이어지면서, 중심과 주변의 위계질서는 더이상 유지되지 않고 여러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불균등한 방식으로 혼재된다. 카메라의 움직임, 서사의 구성 뿐만 아니라, 영화의 자유간접화법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로까지 확장된다. 허구와 실제의 구분이 유지되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의 형식에 대한 논의에서도 영화작가는 이제 더이상 창조자라기보다는 이 이질적인 목소리들을 배치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담지자로 역할이 변경된다. (이 새로운 이야기의 형식에 대해서는 이후 연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므로 이번 호에서는 이쯤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결국 영화에서 시점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영화가 누구의 목소리에 중심적인 지위를 주는지를 파악해보는 일이고, 더불어 카메라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영화가 중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인물이 세계와 다른 인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살피는 것은 영화가 무엇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사유하는 것이 된다. 또한 카메라가 자신을 숨기며 말을 하는지 혹은 자신을 드러내며 말을 하는지 역시 영화가 영화속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준다.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예로, 카메라가 자신의 존재를 가능한 숨기려고 노력하는 경우 영화는 마치 자신이 객관적이고 투명한 보고자처럼 시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의 경우로 브레히트가 말하는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의 영화적 버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영화가 주장하는 바를 거칠게 말한다면, 영화는 누군가의 시선에서 해석되고 만들어진, 절대 투명하거나 객관적이지 않은 것임을 카메라가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는 (가시적인) 영화가 (비가시적인)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사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그것이 투명성을 주장하든 아니든간에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직접적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을 해야지만 영화와 현실이 관계맺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관계없는 척한다 하더라도 영화는 현실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왜곡되었든 간에 관계를 맺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사유하게 해주는 것이 영화적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5

김남우(정암학당)

[에라스무스는 군주들과 귀족들과, 이어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을 비판한다. 그들은 주어진 본연의 과업을 남들에게 맡겨두고 자신들은 어리석은 행동만을 일삼는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연재에서는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갈 예정이다.]
우신 Stultitia이렇게 여러분은 내 생각에 어느 정도 나 우신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수사들의 부류들에 관하여, 이들이 예배에 있어서 웃지 못 할 여러 가지 것들과 고함소리를 가지고 일종의 독재 권력을 사람들 사이에서 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바오로와 안토니오라고 믿습니다. 이제 나는 이렇게 내가 베푼 은공을 모른 체하는 배은망덕한 배우 나부랭이, 경건함을 가장하는 불경한 위선자들에 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군주들과 궁정 귀족들에 관해 몇 가지 언급하겠습니다. 이들은 타고난 혈통에 어울린다 싶게 탁 터놓고 솔직 담백하게 나 우신을 숭배합니다. 콩알 반쪽만큼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삶을 무엇보다 시답지 못한 것으로 기피할 것입니다. 군주의 자리에 앉는 것으로 인해 어깨에 엄청나게 커다란 짐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배신과 부친 살해를 저지르면서까지 권력을 얻으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군주의 자리란 곧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함이며, 국가의 공익 이외에는 어느 것도 생각하지 않음이며, 법률의 제정자이며 승인자로서 법률에서 손톱만치도 벗어나지 않음이며, 모든 공직자들과 행정관들이 청렴결백하게끔 이끌어 감이며, 행운별처럼 도덕적 탁월함으로 인민에게 커다란 안녕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불운의 행성처럼 심각한 불행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자로서 만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자리이며, 필부의 과오처럼 그의 잘못을 장차 아무도 모르게 깊이 숨길 수 없는 자리이며, 아주 조금이나마 정직함을 잃으면 그 결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역병을 초래하는 자리이며, 군주의 운명에 동반하는 많은 것이 그를 정의로부터 끌어내릴 것이기 때문에 설령 속임수에 의해서라도 쾌락과 방종과 아첨과 사치 등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고 더욱 염려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반역과 원한과 전쟁과 폭력은 말고라도 제 아무리 사소한 잘못일지라도 죗값을 치르게 하시며 행사한 권력만큼 이를 더욱 엄중히 따져 물으실 왕 중 왕에게 두려움을 가져야 할 자리가 군주의 자리입니다. 내 말하노니, 이런 것들과 이런 종류의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면, 물론 이를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하다면 말이지만, 결코 군주 된 자는 잠과 식사를 즐겁고 유쾌하게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군주들은 나 우신의 도움을 받아 모든 근심걱정을 신들에게 맡겨 두고 염려와 고민을 치워 둔 채, 영혼에 불쾌감이 들지 않도록 듣기 좋은 말만을 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이들은 열심히 사냥하고, 명마를 사육하고, 행정과 군인 요직을 판매하고,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의 금고를 채울 새로운 방법을 매일매일 고안하고, 제 아무리 불공정한 일이지라도 명목을 바꾸어 공정하게 포장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군주의 본분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백성들의 마음을 제 편으로 얻기 위해 백성들에게 아첨하는데도 힘을 기울입니다. 여러분은 그려 보기 바랍니다. 법률적 지식은 전무하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흡사 적대자이고, 개인적인 유익만을 추구하고, 쾌락에 흠뻑 젖어 학문과 자유와 진리를 혐오하고, 국가의 안녕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모든 것을 자신의 욕망과 편리에 따라 측량하는 인간들을 말입니다. 더불어 이들이, 관련된 모든 덕목을 하나로 묶어 상징하는 황금 목걸이를 걸고 있으며, 모든 영웅적 용기에 있어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음을 뜻하는 진귀한 보석 왕관을 쓰고 있으며, 정의와 어느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정을 상징하는 왕홀을 쥐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국가에 대한 어떤 극진한 헌신을 뜻하는 자줏빛 용포를 입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오늘날 군주들이 이런 장식물들에 비추어 자신들의 삶을 돌아본다면, 내 생각에 이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행여 익살스러운 해설자가 나타나 이런 모든 비극적 의복을 조롱하지 않을까 염려할 것입니다.

그럼 궁정 귀족들은 어떻습니까? 이들 대부분은 더할 수 없을 만큼 알랑거리며 비굴하고 어리석고 천박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모든 일에 있어 제일 앞서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 겸손을 보이며 양보하는 것이 있는바, 금붙이며 보석들이며 자줏빛 관복 등 덕과 지혜를 상징하는 장신구들로 몸을 휘감은 반면 정작 덕과 지혜의 연마 자체는 남들에게 양보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군주를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위가 주었음에, 군주에게 몇 마디 인사를 건넬 수 있음에, 군주를 부르며 ‘근엄하시고 존엄하시고 위대하신’ 등의 굉장한 호칭을 줄줄이 엮어 넣을 줄 앎에, 이런 낯간지러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함에, 이런 아부를 멋들어지게 해냄에 즐거워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궁정 귀족 된 자들이 갖추어야 할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본다면, 여러분은 이들이 진정한 파이아케스 사람들 혹은 페넬로페의 청혼자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나보다 메아리의 여신이 더 잘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들은 벌건 대낮까지 잠을 자는데, 사제들을 고용하여 침대 옆에 대기시켜 놓았다가 침대에 누운 채로 재빠르게 예배를 마치고 나서 곧 조반을 먹는데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 점심 식사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주사위 놀이, 장기 놀이, 점치기, 어릿광대, 익살꾼, 매춘부, 색정 희롱, 음담패설 등이 이어집니다. 그 사이 한두 번의 간식이 있습니다. 다시 이어 저녁 식사, 그리고 술잔치가 유피테르에게 맹세코 한 판 이상 벌어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이런 삶에 물리지도 않는지 몇 시간, 며칠, 몇 달, 몇 년, 몇 백 년이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나 우신조차도 때로 이들이 허풍 허세를 칠 때면 역겨움을 느낄 정도인바, 귀족 여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치맛자락을 남들보다 길게 늘어뜨릴수록 더욱 신적으로 보인다고 믿는가 하면, 귀족 사내들은 그들의 유피테르와 남들보다 가까운 사이로 보일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팔꿈치로 밀쳐 내며,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가 남들보다 무거울수록 더욱 스스로 대견해합니다. 그래 봐야 결국 돈 자랑에 힘자랑하는 것밖에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왕정 귀족들의 모습에 열심으로 도전하는 혹은 거의 능가하는 자들로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외관을 가까이 자세히 살펴볼 것 같으면 이렇습니다. 줄무늬 장식이 있고 눈처럼 흰 것이 인상적인 복장은 한 점의 과오가 없는 삶을 의미하며, 쌍으로 모자뿔을 세우고 그 꼭지에 매듭 하나를 매어 둔 주교관은 이를 테면 구약과 신약에 대한 공히 절대적인 지식을 상징하며, 손을 두루 감싸고 있는 주교 장갑은 인간 세속 어떤 일에도 손대지 않으며 오로지 성사만을 주관하는 정결함을 나타내며, 지팡이는 그들에게 맡겨진 양 떼를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며 깨어 있음을 가리키며, 앞에 내세운 십자가는 분명코 모든 인간적 욕망을 이겨 냈음을 웅변합니다. 만약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의 복장과 기구가 갖는 이런 의미들을 음미해 보았다면, 내 말하노니, 그의 삶은 온통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은 스스로의 만족에만 매달려 매사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과업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혹은 거느린 수사들에게나 혹은 소위 보좌 사제들에게 맡겨 둔 상태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호칭 가운데 ‘주교’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의식하지 못하며, 주교란 수고하고 돌보고 간수하는 자임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 관하여 그들은 ‘주교직’을 아주 정확히 수행하는바, ‘눈먼 파수를 보지’ 않습니다.

비극에서 희망을 줍는 광대, 안병대 [청춘의 서재]

연효숙 (아주대 연구교수)

 

어두운 무대 한 귀퉁이, 비탄에 잠긴 여배우가 핀 조명을 받으며 주저앉아 있다. 삶의 전부라 여겼던 연인과 이별한 뒤 반쯤 정신을 놓은 듯 보인다. 힘없이 혼잣말을 내뱉던 여배우는 점차 분노와 허탈감, 애증과 모멸감에 몸을 떨며 격앙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며 격한 대사를 토해내다 끝내 실신하는 장면이 이 연극의 절정이다. 나는 여배우로 분장한 딸의 눈에서 순간 ‘번쩍!’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배우가 먼저 울음을 터뜨리면 안 돼.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야지.. 조바심으로 입이 마른다. 절규하며 쓰러진 여배우, 그리고 암전.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이어지고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끝내 눈물 흘리지 않은 채 슬픔과 고통의 연기를 해낸 딸이 자랑스러웠다.

 

청년 ‘햄릿’을 만나 평생의 인연 ‘셰익스피어’를 끼고 살다.

<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안병대 씨의 말처럼 ‘연극은 지독한 중독’이다. 무대 중독에 빠져 지내던 딸과 가슴 졸이며 함께 울고 웃었던 어미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 어린 십대의 딸이 혹독한 연습을 견뎌내며 수없이 오르내리던 무대, 그것은 땀과 눈물과 고행을 거쳐 새롭게 탄생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기적 같은 체험이었다. 한바탕 꿈을 꾸듯이 나를 잊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펼치고 나면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져 내리는 무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곳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날개 없이도 날아다닐 수 있는 꿈과 상상의 세계이다. 그 무대에 서 본 이, 그 무대를 만들고 꾸민 이, 무대에서 함께 호흡해본 모든 이들은 기꺼이 이 중독에 함께 빠져든다. 셰익스피어를 읽어주며 조용한 발걸음을 이끈 저자는 어느새 훌쩍 무대 위로 뛰어올라 광대로 변신해 있었다.

이 책 프롤로그의 제목처럼 ‘독한 인연은 운명’인가 보다

안병대 씨는 ‘햄릿’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대학시절 야학활동을 하며 만난 ‘햄릿’은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에 금방 잡히지도 않았고, 연하기도 강하기도 달기도 쓰기도 떫기도 맵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날 이후 30년 동안 껴안고 산 셰익스피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독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햄릿’을 만나 처음 맛 본 인생의 온갖 맛과 냄새와 감촉은 청년 안병대에게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으로 각인되었을지 모른다. 유한하고 변덕스런 인간과의 첫사랑이 아닌 자기 생애의 첫 궤적을 뚫고 들어온 강렬한 체험이기 때문에. 나무 주걱으로 엉덩이를 맞아가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땀과 눈물로 익히고 올라선 소녀의 첫 무대, 나의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헌납해 버린 문고판 명작선 50권과의 만남, ‘햄릿’을 만난 저자의 떨림이 나의 추억 속에서도 파문을 일으킨다.

 

원형극장의 회전 무대 관람하듯 입체적인 내용 전개, ‘희망’의 다른 이름, 셰익스피어 비극

저자는 셰익스피어에게 고리타분한 학술적 접근으로 다가서지 않고 400년이란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연출가이자, 배우, 작가, 관객의 입장에서 친근하게 소개한다. 특히 ‘성격 비극’이라 명명한 셰익스피어의 비극 세계로 이끌면서 황홀하고 거친, 그렇지만 발을 빼고 싶지 않을 만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숲으로 과감히 이끈다.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한 독자에게 저자의 이 같은 시도는 매우 참신하고 친근하다. 마치 무대 전체가 회전하는 원형 극장에 앉아 무대의 뒷면까지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관객의 속마음을 꿰뚫는 노련한 솜씨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중세 연극에 빠져들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이다’라는 프롤로그의 소제목에서 저자가 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몰입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총 37편의 희곡, 4편의 장시, 154편의 소네트를 남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작품 중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4편의 비극을 추려낸 저자는 꿈을 빌어 셰익스피어의 말을 옮긴다. “우주를 움직이는 궁극적인 힘은 완전한 선이지만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언제나 선이 이길 수는 없다” 지뢰처럼 널린 악에 의해 선도 함께 폭발하고 폐허가 된 우주는 새로운 선의 질서로 다시 세워진다는 셰익스피어의 법칙을 전하면서 저자는 선이 제물로 바쳐지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토록 강렬한 비극의 세계가 슬프지만 우울하지 않고 그 자체로 희망이 될 수 있어서 비극에 사로잡힌다고 덧붙인다. 나는 이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비극이 그 자체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셰익스피어는 도대체 인간을 선한 존재로 본 것인가, 악한 존재로 본 것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이끌고 저자는 다시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직접 답을 찾아보라고.

 

‘햄릿’, 중세를 걷어내고 고통스런 인간의 삶 투영하다

‘햄릿’은 표면적으로는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저자는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 존재론의 철학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엄숙한 소명을 스스로 짊어진,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존재'(114쪽)였던 ‘햄릿’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무엇이 진리이고, 진실인가를 묻는 자였다. ‘햄릿’은 마치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온실 속의 화초와 같아서 세상의 악에 맞서 복수를 꿈꾸다 허망하게 쓰러지는 유약한 청춘으로 그려진다. 그는 세상도, 여자도 모두 역겨울 뿐만 아니라 복수를 꿈꾸더라도 마음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는 완벽주의자이며,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고뇌하기만 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다.

그는 그대로 중세시대의 인간이며, 셰익스피어 자신이기도 하다. 16세기 중세의 화두는 ‘신’에 맞서는 ‘인간’의 성찰이 아니었는가. “마음속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고 엉뚱한 생각일랑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지 마라. 남의 의견은 들어주되, 시비판단은 삼가야 한다”(83쪽)는 ‘플로니어스’의 대사가 운명 앞에서 촛불처럼 흔들리는 ‘햄릿’을 조롱한다. ‘햄릿’은 인간의 비극이 ‘신’과 ‘인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원형이다. 저자는 ‘햄릿’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중세의 어둠을 걷어내고 고통스런 삶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한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고통의 삶이 ‘시지프스’를 떠올리게 하는 우리의 삶 자체라고 덧붙인다.
‘죽이고 사랑하리라’ 핏빛 사랑의 파국, 천성만 남은 ‘왕’과 ‘광대’는 다를 바 없다

“앞으로는 슬픔이 사랑에 따르리라

사랑은 의심에 사로잡혀

시초는 달콤해도 끝내는 쓴맛으로 변하리라” (<비너스와 아도니스> 1136-1138행)

비너스의 구애를 뿌리치고 죽음을 맞은 아도니스가 자줏빛 아네모네로 핀 것을 보고 비너스가 한 예언이다.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모든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한 저주는 없을 것이다.

‘죽이고 사랑하리라’는 ‘오셀로’의 소제목은 비너스의 저주보다 더 짙고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긴다. 사랑 자체가 인간을 짧은 행복과 긴 슬픔, 그리고 때때로 피할 수 없는 비극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믿으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걷어치운 사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 맞는 말일까? 질투와 의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인 ‘오셀로’, 한순간의 광기에 휩싸여 평생토록 사랑한 아내를 목 졸라 죽인 철학자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98~1990)가 문득 겹쳐진다.

흑인 장군이었던 ‘오셀로’의 불같은 성격이 지고지순한 백인 아내 ‘데스데모나’와의 역설적인 사랑을 비극으로 몰아갔지만, 오히려 이들의 파격적인 사랑을 등불 삼아 현대인의 얕고, 약은 사랑을 들추어보게 된다. 나이도, 신분도, 조건도 뛰어넘은 이들의 사랑은 끝내 간교한 ‘이아고’에 의해 파멸의 쓴맛을 보았지만 21세기의 사랑은 시작부터 달콤하지도, 조건을 뛰어넘지도 않기에 방해받지 않고 안전하게 이어진다. 쓴맛을 보지 않는 사랑의 씁쓸함이 더 오래 남는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파탄에 빠지는 가장 불우한 왕 ‘리어 왕’이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사랑하는 부모에 비해 효도하는 자식이 턱없이 희소하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오죽 충성스런 신하, 효도하는 자식이 없었으면 ‘충효’라는 덕목을 유교의 첫째가는 가치로 내세웠을까하는 삐딱한 시선이 생기기도 한다. 백두난발을 하고 광풍 속을 미쳐 날뛰는 ‘리어 왕’을 보면서 죽을 때까지 오래 오래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한 희망을 보는 듯해 서글퍼졌다. ‘늙음’은 약한 인간을 더욱 비굴하고 나약하게 만드는데, 그것조차 인정하지 못한 ‘리어 왕’은 마음의 눈을 갖지 못하고 나이 먹은 댓가를 가혹하게 받은 셈이다.

“모든 것을 다 주고 타고난 천성만 남았으니, 왕이나 광대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195쪽)라고 조롱하는 광대의 목소리, “노인이 쓰러지면 젊은이가 일어서는 법이지”(206쪽)라고 내뱉는 에드먼드의 대사가 인생의 비정함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숨도 멎지 않은 부모의 곁에서 물려받은 재산 다툼으로 혈안이 된 자식들을 보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양의 ‘양심’과 이리의 ‘욕망’을 지닌 나약한 인간, 무사는 시대를 바꾸고 광대는 역사를 바꾼다.

어느새 ‘맥베스’를 공연하는 극장으로 우리를 인도한 저자는 셰익스피어와의 대화로 압도해나간다.

 

셰익스피어에게 묻는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셰익스피어가 답한다.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쩔 수가 없답니다.”

또 묻는다.

“희망은 없습니까?”

셰익스피어가 답한다.

“양심이 있습니다.”

악마 맥베스가 웃는다. (269쪽)

 

저자는 또 맥베스에게 묻는다.

“인간은 그렇게 나약한 것인가요?”

“양심은 양처럼 온순하고 욕망은 이리처럼 사납소” (276쪽)

왕의 살해에 동참하여 함께 손에 피를 묻혔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맥베스’. “인생이란 단지 걸어가는 그림자, 무대 위에 있는 동안은 뽐내고 떠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한 것”이라고 읊조린다. 인간의 생에 대한 통찰이 저절로 묻어나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가 아닌가! 셰익스피어는 무대 위에서 뽐내며 떠드는 인간의 유형을 ‘무사’와 ‘광대’ 두 유형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무사는 세상을 움직이나 광대는 무사를 움직인다. 무사는 시대를 바꾸지만 광대는 역사를 바꾼다’는 말로 에필로그를 장식한 저자, 그는 진정한 ‘광대’를 꿈꾸는 자이며, 위대한 ‘광대’였던 셰익스피어를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이다.

 

참담한 비극 속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광대’

인간을 꿈의 세계로 이끄는 무대, 그 무대를 제멋대로 활보하며 주인공을 빛나게도 하고, 날카로운 유머와 조롱을 날리며 관객을 손안에서 쥐락펴락하는 ‘광대’. 세상을 무대로 삼고, 인간을 배우이자 관객으로 삼아 4백년을 죽지 않고 살아가는 광대 셰익스피어를 만나게 한 또 한 사람의 광대, 그는 저자이다. 무겁고 암울하고 참담한 비극을 소재로 한 무대를 순회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보게 한 저자의 수고로움이 광대에 버금간다.

주인공인 남자를 파멸로 몰아가는 악한 여자들을 등장시켜 페미니스트들을 열 받게 했을 법한 중세인 셰익스피어의 한계는 동시대 조선에서 횡행하던 ‘여인잔혹사’를 떠올리면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다. 오히려 중세도, 근대도, 현대도 한참 지난 21세기 한국에서, 강요된 술 접대와 성 접대로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의 속절없고 어이없는 이야기는 과연 몇 등급의 비극에 속하는지 셰익스피어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 여배우의 복수는 ‘햄릿’의 복수보다 더 실현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이집트의 독재자 ‘카다피’를 보면 아직도 세상은 ‘무사’의 차지인 것만 같고, 일본이 당한 참혹한 비극 앞에서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망설여진다. 이 악물고, 두 눈 질끈 감고 버텨도 더욱 모질고 독해지기만 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장악하는 비극의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어 기어이 ‘희망’을 끄집어내라고 말해 주는 셰익스피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