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과 모성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보살핌과 모성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조주영(서울시립대학교 박사과정)

 

 

“빗나간” 모성?

몇 년 전으로 기억된다.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청소년 남학생들이 또래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문제점들뿐만 아니라, 언론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정도가 너무 가벼운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사를 진행하여 피해자의 인권이 무시된 점(피해자에게 진술을 반복하게 하거나 상황을 재연하게 함으로써 제 2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과정에서 관련 당사자들의 신원이 공개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점 등도 논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사한 사건들이 너무나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보도된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 학생의 부모들 가운데 일부는 불법 탐정업체에 의뢰하여 피해 학생 부모의 연락처를 알아내려 했다고 한다. “피해 부모들과의 합의를 통해 처벌수위를 낮추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그 이유다. 어느 부모가 자녀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까?

자녀가 받을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이해는 해 보지만, 과연 그 행위가 자녀를 위한 올바른 행위였을지 의문이 든다. 자녀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녀가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할까, 아니면 처벌을 줄이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노력해야 할까?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바로 가해자의 부모가 겪는 고통과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다. 주인공인 미자는 중학생인 외손자를 돌보며 정부에서 주는 생활보조금과 일주일에 두 번 간병인 일을 해서 받은 돈으로 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언뜻 보기엔 팍팍해 보이는 삶이지만, 미자는 문화센터에서 하는 시 강좌에도 나가고, 아름다운 것들, 특히 꽃을 좋아하는, 소녀 같은 면모를 지닌 그런 인물이다. 그리고 미자가 가장 행복할 때는 “욱이(손자)의 입에 밥이 들어갈 때”이다.

영화 ‘시’ 포스터

팔이 아파 병원에 갔던 미자는 돌아오는 길에 병원 응급실 쪽에서 거의 정신을 놓다시피 울고 있는 어떤 여자를 목격한다. 들리는 말이, 중학생인 딸이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온 미자는 손자에게 자살한 아이가 학교도 같고 학년도 같은데 혹시 아는 아이인지 묻는다. 손자는 모른다고 하지만, 며칠 뒤, 그 여학생의 자살 동기가 같은 학교 남학생들에게 장기간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었고, 그 남학생들 중에 자신의 손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이는데, 미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아버지들이라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어떻게든 “불미스러운 사건”을 덮어 보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면서도 “여자 아이도 처음에는 좋아했다더라.”는 둥, “사진을 보니 키도 작고 얼굴도 못생겼던데 (내 아들이) 왜 그런 애랑 했는지 모르겠다.”는 둥의 이야기를 한다. 그 아버지들에게는 그 사건이 “사내아이들이 (충분히) 저지를 수도 있는 일인데, 괜히 여자아이가 자살을 해서 일이 크게 불거진 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미자는 뜬금없이 밖으로 나가 화단에 핀 꽃들을 구경한다. 꽃들이 너무 아름답지 않느냐면서.

손자가 저지른 죄를 알게 되었을 때도,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도, 미자의 시선은 오직 아름다운 것만을 쫓고,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언뜻 보면 그러한 미자의 모습은 현실을 너무 받아들이기 힘든 나머지 시 쓰는 일로 도피해 버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소녀를 추모하는 미사에 참석한 사람도, 소녀가 뛰어내린 장소에 찾아간 사람도, 왜 그런 일을 저질렀냐면서 다그치는 사람도, 오직 미자일 뿐이다.

어쩌면 미자가 그토록 시 쓰기에 매달린 것도, 아름다운 것만을 보려 했던 것도,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 그 자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소녀가 받았을 고통과 그 어머니가 느꼈을 아픔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가해 학생의 아버지들은 자살한 소녀의 어머니와 합의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일이 “잘 마무리 되게” 되었다. 그러나 미자는 묻는다. “정말 이제는 다 끝난 건가요? 이제 이 일은 없었던 일이 되는 건가요?” 그리고 결국 미자는 경찰에 자신의 손자를 고발하고, 죽은 여학생을 위한 시 한편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보살핌: 삶의 여러 관계들에 대한 자각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으면서, 미자는 왜 결국 손자를 고발할 수밖에 없었을까? 미자가 처한 상황은 “보살핌의 윤리”와 “정의의 윤리”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관계들이 약해지거나 깨지지 않도록 돌보아야 한다.”는 보살핌 윤리와 “옳고 그름의 기준, 가치들의 서열에 따라 행위 해야 한다.”는 정의의 윤리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손자를 고발한 미자의 행동은 보살핌의 윤리에 따른 행동이기 보다는 정의의 윤리에 따른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손자를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자가 저지른 행위가 도덕적으로 그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생명을 버리게 만든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손자를 고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인터뷰에서,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각 개인의 일상적인 삶과 남들의 고통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의 일상이 누군가의 고통과 연결돼 있다고 봐요.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발밑에 안 보이는 물줄기가 연결돼 있듯 모두 서로 관련이 있어요. ‘시’는 개인의 이야기이면서도 집단과 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미자의 선택은 어쩌면 자신의 삶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내린 윤리적 결단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손자를 보살펴야 한다는 보살핌의 윤리와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를 해야 한다는 정의의 윤리 가운데 하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놓여 있는 관계망 가운데 하나가 깨졌을 때 그것이 다른 관계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피고, 나머지 관계망들을 보살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보살핌과 정의는 어느 하나로 다른 하나를 대체해야 하는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살핌의 대상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국한될 때, 공동체 안에서 인간관계의 평형 상태는 깨지게 된다. 다른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들만을 보살피고자 했기 때문에, 죽은 아이가 겪었을 고통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 어머니는 단순히 “순순히 합의를 해 주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미자는 손자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다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다른 아버지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관계가 상호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윤리적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 처했을 때, 정의와 보살핌이 모두 요구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했던 최근의 성폭력 사건에서, 일부 가해자들의 부모의 행위에 대해 기사에서는 “빗나간 모성”이라고 평가했다. 흔히 모성은 사랑, 헌신, 보살핌 등과 연관된다. “빗나간 모성”이라는 표현이 함축하는 바는 아마도 자녀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보살핌과 정의가 서로 대립한다고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했듯이 보살핌과 정의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살핌은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 사건에서 가해자들의 부모들이 한 행위나, 영화에서 가해자들의 아버지들의 행동 방식을 “보살핌”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보살핌의 윤리” 자체가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행위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모성이라는 것도 현대 사회에서는 사랑, 헌신, 보살핌 등의 개념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현대 사회는 보살핌 노동, 감정노동 자체가 글로벌화되는 지구지역시대이다. 그리고 우리는 특히 출산 정책과 관련하여 국가가 모성 담론을 어떻게 진행시키고 변화시켜 왔는지를 목도해왔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조건과 관련하여 모성을 새롭게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여러 측면들, 관계들, 그리고 상황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잊으려 해도, 외면하려 해도 끝끝내 따라다니는 어떤 아픔이 있다. 미자가 보여준 것은 그 아픔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가족과 사회와 여성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가족과 사회와 여성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강지은(건국대학교)

 

MB 정부와 한국의 가족.

가족문제와 관련하여 MB 정부 최대의 쟁점은 출산과 육아이다. 이는 곧 가족, 여성의 문제이며 대한민국 가족의 현실을 반영한다.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위원장 곽승준)가 밝힌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인 1.22명이다. 언제 1.0명 이하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국가의 출산율은 그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그만큼 국가 경쟁력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한 출산율 관련 국가 정책이라는 것이 가관이다. 낙태의 문제는 여러 가지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갖는 문제이므로 섣불리 속단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할 권리 중에 하나가 낙태의 문제이며, 원치 않는 임신이나 미성년자의 임신 같은 경우 무조건 낙태를 못하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 MB정부는 출산율 하락을 저지할 목적으로 낙태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2월 3일엔 불법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를 ‘프로라이프’라 자칭하는 산부인과 의사협회가 고발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한가지 어이없는 출산율 관련 MB 정책은 초등학교 조기입학에 관한 것이다.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긴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겨 육아 비용을 줄이고 청년들이 조기에 사회 진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2009년 11월 25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국의 각 교육청이 2009년부터 ‘3월 1일부터 익년 2월말까지’인 초등학교 취학연령 기준일을 ‘1월 1일부터 12월 31일’로 고쳐 입학생을 받은 사실에 대해 한 번만이라도 숙고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정책이다. 과거에 일찍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부모는 7세 입학을 반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학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에 일찍 진출하는 것보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유아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학교에 가서는 학습내용을 빈틈없이 따라가고, 동갑네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를 바란다. 청년실업 대란의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사회진출을 늦추기 위하여 휴학을 반복한다.

정부의 인사들이 가정에서 직접 아이를 먹이고, 놀아주고, 학원 보내고, 학교에 보내 보았다면 쉽사리 뱉을 수 없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낸다. 어느 부모가 아이 유치원비 절약하는 좋은 길(?)이 생겼다고 만5세아를 학교에 보내고 아이를 더 낳겠는가. 스펙 쌓아야 한다며 학원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이제 만5세로 낮아진다. 현실적으로 아이가 학교에 간다고 부모의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는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양육을 맡아주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12시 20분이면 학교에서 밥먹고 집에 온다. 맞벌이하는 부부는 아이가 혼자 하교하고 학원갈 걱정 때문에 이제는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는 경우마저 생기고 있다.

 

가족과 사회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 가족의 고립된 현실이라고 볼 수 없다. 가족은 여러 방면에서 사회와 맞닿아 있다. 가족과 사회의 구체적인 관계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자.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해방이론가면서 가족에 관한 정치철학적 입장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미셀 바렛과 매리 매킨토시는 가족주의와 가족중심주의를 구분하여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미셀 바렛, 매리 매킨토시 지음, 김혜경 옮김, <가족은 반사회적인가>, 여성사, 1994 / 출처: www.burimbook.co.kr

가족중심주의(familism)는 정치적으로 가족옹호 이념을 유포하는 것, 가족 자체를 강화하는 것을 지칭한다. 가족주의 이데올로기(familialism)는 가족의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을 본떠 만들어진 이념을 말하기도 하고, 여러 사회 현상을 가족과 비슷하게 만들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또 더불어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가족을 유지 강화시키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족이 없으면 국민의 재생산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 국민이 없으면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가족은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가는 가족을 기본 단위로 하여 여러 가지 복지제도를 만들고 혜택을 준다. 미디어는 국가의 이러한 정책에 발맞추어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가족중심주의이다.

한편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기업 홍보물에서 ‘○○가족’이라는 말은 가족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적인 작업의 장에 사적인 가족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전 직원 모두가 회사를 내 집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주기를 바라는 의도로 이러한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회사의 직원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게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작업장에 적용시켜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기업의 계산이 깔려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사회는 가족과 상당히 유사한 면을 보인다. 우선 가족 안에서의 남녀 역할은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 고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도식이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이러한 도식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전통사회는 사실 바깥일 집안일의 구분이 확실한 사회구조가 아니었다. 여성이 담당한 직조(織造)는 국가 생산력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바깥일 집안일이라는 구도는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난 후에 굳어진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구도가 자본주의의 전개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확산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집안일이라고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요리하고 청소하고 환자를 간호하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바느질하고 봉사(서비스)하는 일들이다. 남자가 하는 바깥일은 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입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화폐를 벌어들이지 못하는 여성들의 집안일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다. 과거보다는 오늘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그 영역은 ‘집안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서, 건물 청소부, 간호사, 선생님, 식당종업원 등등의 직종은 거의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만큼 여성들의 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렇게 여성들의 일에 사회가 내리는 가치평가는 낮으며 그에 비례하여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이 지불된다. 이렇게 고정화된 남녀 역할에 대한 편견은 인간불평등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가부장주의와 사회구조

가족과 사회의 유사성을 좀 더 확대 적용해보자. 가족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주의는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평등부부, 평등가족이 많이 확산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주의는 가족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가부장주의는 한 가족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가부장(남성)이 그 집안의 실권을 쥐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모든 일이 처리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부장제에서는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남성은 여성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따라서 여성이 하는 일은 남성과의 정당한 분업 속에서 가치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하위에 속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상위에 속하는 사람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차별을 받기 마련이다. 이러한 가부장주의가 사회에 적용됨에 따라 여성이 하는 직종은 당연히 낮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임금차별을 받지 않는 여성의 공직 진출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늘고 있지만 여성은 여전히 직급이 낮은 5급 미만에 90퍼센트 이상이 몰려 있다. 또 직장 내에서 남성과 여성은 승진의 기회에서 차별을 받는다.

물론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이 뒤져서 승진을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출산과 육아를 전담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 때문에, 회사는 근무평가에서도 남성과 여성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근무 환경도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을 위해 조성되지는 않는다. 회사가 육아에 도움이 되는 조건을 직장 내에 마련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출퇴근 시간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데려 오는 시간에 맞춰 조정해 주지 않는다. 사회가 정한 시간표에 맞추어서 일하지 못하는 여성은 가족 안에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동의되고 있다.

가부장을 위주로 가족의 일들이 구성되는 위계적인 모습과 사회가 구성되는 모습은 매우 친화성을 갖는다. 위계적 구조가 효율성은 갖겠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다.

 

가족,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이렇듯 가족과 사회는 많은 측면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가족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되고 사회의 문제는 곧 가족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출산율의 문제도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바닥을 친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은 낙태 금지도 아니고 초등학교 조기 입학도 아니다. 출산에 따르는 가장 실질적인 문제, 즉 유치원 무상교육, 현실적인 육아 보조금이 필요하다. 또 공교육에서 특기교육까지 해결할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의 질적, 양적 성장만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출산율은 높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형제와 자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부담을 개인 여성에게 개개의 가족에게 지우는 것은 잘못되었다. 여성의 건강은 곧 아이의 건강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라 사회의 아이이다.

철학자들이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렸지만,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어쩌면 마르크스가 말한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욕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러한 장소는 있다. 바로 가족이다. 아버지가 되었든 어머니가 되었든 생계를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일을 하고 온 가족은 그 노동의 대가를 필요한 만큼 쓴다. 유토피아는 없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꿀 권리가 있다. 가족과 사회는 친밀성을 지녔다. 다만 지금까지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친밀성이 두드러졌을 뿐이다. 가족의 이러한 유토피아적 이상을 사회에 실현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철연 회장과 연구협력위원장의 2013 새해인사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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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성 민(한철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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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 옆을 둘러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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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서 바람의 웃음소리만 들려오는

해골의 언덕을 보았네.

슬픔과 탄식밖에 보이지 앉았지.

그러면 꿈의 즐거움은 어디로 떠나갔나?

우리 잠 속의 빛나는 광채는 어디로 숨었나?

그 빛의 이미지는 어떻게 사라졌나?

그 갈망의 그림자는 잠과 함께 돌아갈 때까지

영혼은 어떻게 참고 견뎌낼 수 있을까?

?

한 해의 끝과 한 해의 시작에서 저는 칼릴 지브란의 산문시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에서 그가 내뱉는 한탄스러운 마음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브란이 이 시에서 그러한 것처럼 반성적으로 지난 시간을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지브란의 시를 좀 더 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자신의 영혼이 가꾼 나무에서 수확한 열매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결국 그것이 썼다는 것을 알고는 사람들의 입술에 저주를 내렸다고 자조합니다. 그리고 그 영혼의 나무를 뽑아버립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심은 나무는 눈물과 피를 뿌려주면서 정성스럽게 키웠고 자신이 맛보아도 달콤했지만 이젠 사람들이 그것을 거들떠보지 않자 외로움을 느낍니다.

이제 영혼은 항해를 시작합니다. 바다를 떠다니는 것이 지루해 일곱 색채로 치장을 한 배를 타고 예언자의 모습으로 항구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을 해주었지만 아무도 그 배에 오르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배는 그 화려함과 달리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의 항해에서는 세상의 온갖 값진 것들을 가득 싣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환영은커녕 사람들은 오히려 조롱할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의 항해로 그 전에 배를 치장하였던 일곱 색채가 씻겨나가 그 배는 초라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서 지브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그의 반성적 사유의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반성적 ‘형식’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시를 끝까지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은 영혼이 그 배를 버리고 ‘주검의 도시’로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덤 한 가운데에서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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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라, 골짜기 위를 나는 비둘기와 지빠귀를.

새들과 함께 날 그대의 날개는

밤의 두려움으로 더 강해지지 않았는가?

보아라, 목자가 우리에게서 양떼를 인도하는 것을.

푸른 풀밭으로 따라가려는 그대의 바램을

밤의 그림자가 재촉하지 않았는가?

보아라 포도밭으로 서둘러 가는 젊은 청년과 아가씨를.

일어나서 그들과 함께 가지 않으려는가?

?

일어나라, 나의 마음이여.

일어나서 새벽과 함께 움직여라.

밤이 지나가고 그 두려움은

검은 꿈과 함께 사라져버릴 것이기에.

일어나라, 나의 마음이여

?

노래에 그들의 목소리를 실어버려라.

새벽에 함께 노래부르지 않는 건

어둠의 자식 뿐이기에.

?

그렇습니다. 지브란은 ‘찾아 떠나기’를 통해 ‘다시 돌아오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슬픔과 탄식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영혼은 고립성을 벗어나 강해져 다른 영혼과 조우할 수 있게 되며 어둠에 맞서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희망’, ‘긍정’과 같은 수식어가 아닌 확정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목적을 가지지 않는 목적성을 따라 탐험하고 출발점으로 돌아가기’라는 방법으로 읽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첫째, 그것은 고정된 목적을 가지지 않기에 유랑의 항로는 자유로우며 둘째, 그러한 자유로움은 무한의 가능성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생성의 힘으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출발점은 이전과 동일하지 않는 ‘낯선 것’이 됩니다. 곧 낯선 것은 이전의 것을 뚫고 들어가 파괴와 부정의 힘이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지속적 과정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무엘 베케트가 한 말처럼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를 외칠 수 있게 하는 실천성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답답한 마음과 복잡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시작한 이야기가 신년사에 적합할지 모르겠으나 아무쪼록 2013년 계사년(癸巳年)은 모두가 자유로운 항해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천적으로 전진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면서 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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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의 시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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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지 않음이 완전함을 향해 나가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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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 웅(한철연 연구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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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임기를 가진 제3기 연구협력위원회 체제가 출범한 지도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절반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앞서서 저와 같은 길을 갔던 선배님들이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그분들이 겪었을 고독, 그분들이 보여줬던 건망증이 훨씬 더 잘 이해됩니다.

신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은 마음의 짐을 덜고자 하는 목적을 갖겠지요. 배설이 정화와 한 쌍이듯이, 토해내지 않으면 안정을 찾기 어려운 때가 가끔씩 옵니다. 특히 해가 바뀌는 때는 ‘비 오는 날 막걸리 두 잔 먹고’ 나를 반성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강제력을 발휘합니다. 대중매체에서도, 주변에서도 과거를 돌아보라고 부추깁니다. 뭔가를 토해내라고 합니다.

몇 달 전, 한 후배의 질문에서 제가 미처 성찰하지 못했던 질문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그 질문을 버린 적은 없지만 깊이 생각해서 누군가에게 진지하게 얘기한 적은 아주 먼 과거였던 것 같습니다. 한철연 사람들은 모여서 뭐하는 거야? 무엇을 해야 하지? 우리는 이해관계보다는 이념지향성으로 뭉친 사람들이야. 무슨 이념을 갖고 있는데?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강한 이념지향성은 때때로 배제를 낳았습니다. 저의 경우, 완전함이란 아무 것도 없음과 동의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저 완전함을 향해서 나가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신은 완전한 존재지만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집에서 기르는 개만도 못한 존재겠지요.

새해를 맞으면서 제가 작심한 것은 완전함을 먼저 내세우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면 비판해댈 것이 아니라 완전하지 않음이 완전함을 향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늘 가슴 속에 새기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한철연은 여느 연구단체와는 다른 특수한 조직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대학이나 다른 연구단체에서는 ‘아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종종 보거든요. 한철연은 월 회비를 내는 회원만 해도 120여 명에 이릅니다. 20여 년 동안 인건비를 지출하면서 연구실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시대와 철학]은 논문 인용지수 1위입니다. 애정뿐만 아니라 자부심까지 가져도 될 듯합니다.

우리는 견뎌내야 할 5년을 또 다시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되든 5년 이후 역시 완전함과는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협은 힘이 균형상태일 때 있는 일이 아니라 강자가 주도해서 만드는 일이랍니다. 약자에게 타협은 굴종인 셈이네요.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빈 공간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정면으로 응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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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0일

연구협력위원장 이순웅

18대 대선, 분열되고 전치된 한국사회의 자화상-①[시대와 철학]

18대 대선, 분열되고 전치된 한국사회의 자화상-①[시대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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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한철연 기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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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투표율과 안철수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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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이 치러진 지난달 19일 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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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진행된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박근혜 후보의 승리와 문재인 후보의 패배 요인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처음에는 89.9%에 이르는 50대의 높은 투표율에 놀랐고 ‘50대 책임론’이 부상하더니 어느 사이엔가 50대 책임론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사라지고 민주당의 무능론을 비롯하여 다양한 책임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분석들도 그다지 설득력이 있거나 명료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18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없기 때문이다.

18대 대선이 끝난 지 20여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진보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이번 대선 결과에 의아해 하는 것은 이번 대선 결과들이 기존의 분석 틀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전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진보 대 보수의 프레임으로 단일하면 진보가 20-30대의 높은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투표율이 70%를 넘으면 진보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본 결과, 75.8%라는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후보는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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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역대 대선 투표율의 증감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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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전체

16대 대선 투표율

56.55

67.55

76.30

83.70

78.70

70.8

17대 대선 투표율

47.9

54.9

66.3

76.6

76.3

63.0

16대 대선 대비 하락율

-8.65

-12.65

-10.00

-7.10

-2.40

-6.2

18대 대선 투표율

65.2

72.5

78.7

89.9

78.8

75.8

16대 대선 대비 상승율

8.65

4.95

2.4

6.2

0.1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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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번 대선의 높은 투표율이 늙은 세대에 의해서만 견인된 것은 아니다. 위 표 1에서 보듯이 이번 대선의 높은 투표율을 견인하고 있는 세대는 20대와 50대였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16대 대선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높은 투표율 상승을 보인 것은 20대였으며 그 다음이 50대였으며 40대 또한 2.4%나 올랐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20대의 투표율이 가장 낮다고 말하면서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탓할지 모르지만 16대 대선보다 이번 대선에서의 투표율이 8.65%나 올랐다는 점에서 그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오히려 이런 높은 투표율 상승이 보여주는 것은 이번 제18대 대선이 진보 대 보수라는 양 진영 사이의 선택이 보다 분명해졌다는 점이다.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17대 대선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았다. 그것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더불어 이명박 후보로 일치감치 대세가 결정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7대 대선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중적 실망이 낮은 투표율로, ‘반의회’, ‘반정당정치’와 같은 회의와 연결되면서 ‘탈정치적 성향’으로 나타났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그와 같은 성향이 역전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역전은 민주당이나 문재인 후보가 주도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안철수현상’이다. 후보 안철수가 아니라 ‘안철수’라는 코드로 상징화된 ‘안철수현상’은 노무현정권의 실정 이후 이반되거나 정치적 무관심층을 대선이라는 장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후보를 이 정도의 경쟁력을 가진 후보로 만든 것은 민주당도 노무현도 아니고 ‘안철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도, 민주당도 ‘안철수현상’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정치 전략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막연하게 그들은 후보단일화만 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철수현상’은 이미 2004년 탄핵 정국에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이후, 노무현정권이 ‘개혁’이 실패하면서부터 급속히 진행되어 온 탈정치화 현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후, 노무현정권은 이명박정권이 탄생한 2007년 대선까지 각종 선거에서 참패를 면하지 못했다. 2007년 대선은 이런 참패의 지속적 연장선 위에 있었다. 그것은 노무현정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낮은 투표율이라는 ‘탈정치화’로 귀결되었으며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48.7%를 얻어 정동영 후보가 획득한 26.1%에 비해 압도적인 격차로 승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득표율에서 역사상 가장 적은 득표로 대통령이 되는 오명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민주통합당은 결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해본 적이 없었다. 민주통합당이 다시 대중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그들이 ‘민주단일후보’였을 때뿐이며 평상시에 당 자체가 20%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하지 못했다. 이것은 민주통합당도, 노무현이라는 아이콘도 더 이상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 대항하는 야당으로서의 세력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중들은 둘 다 신뢰하지 않았다. 따라서 문제는 둘 다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노빠’들을 정리하지 못했으며 대선의 프레임을 ‘보수 대 진보’, ‘죽은 박정희 대 죽은 노무현’의 대립이라는 프레임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은 노무현의 완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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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갈등의 격화와 세대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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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죽은 노무현의 완패’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50대의 반란으로부터 온다. 40대까지 포함하여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에 비해 각각 20대 8.0%, 30대 8.3%, 40대 11.3%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후보는 패배했다. 그것은 89.9%라는, 상상하기 힘든 50대의 투표율의 상승과 50대 이상의 세대가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16대 대선에서 이회창후보와 노무현후보 간의 격차와 비교해 볼 때, 당시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율보다 50대 7.3%, 60대 이상 16.2% 더 많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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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의 세대별 지지율 변동

지지후보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이상

이회창

34.9

34.2

47.9

57.9

63.5

노무현

59.0

59.3

48.1

40.1

34.9

이회창/노무현 지지율 격차

24.1

25.1

0.2

17.8

28.6

박근혜

33.7

33.1

44.1

62.5

72.3

문재인

65.8

66.5

55.6

37.4

27.5

박근혜/문재인 지지율 격차

32.1

33.4

11.5

25.1

44.8

16대비 지지율 증감

8.0(문재인 지지)

8.3(문재인 지지)

11.3(문재인 지지)

7.3(박근혜 지지)

16.2(박근혜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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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 2에서 보듯이 20대, 30대는 투표율뿐만 아니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율도 노무현 후보 지지율보다 각각 8.0, 8.3%가 올랐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40대는 무려 11.3%나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7.3%, 60대 이상은 16.2%나 올랐다. 따라서 16대 대선과 비교하여 보면, 이번 18대 대선에서 40대까지는 더 많은 사람이 ‘보수후보(?, 보다 정확히 수구후보)’를, 50대 이상은 더 많은 사람이 ‘진보후보(?, 보다 정확히 중도보수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특징은 세대 간의 분열이 과거 지역적 분열에 대신하면서 더욱더 명확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선 이후 어떤 사람들은 ‘세대 간 갈등’으로 이번 대선을 보는 코드가 잘못되어 있으며 ‘50대 책임론’을 말하는 것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명백하다. 40대 이하는 더욱더 좌로, 50대 이상은 더욱더 우로 이동했으며 그 격차는 훨씬 더 커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세대 간의 갈등이나 분열론’은 50대 책임론이나 책임 전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 조건과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 출발해야 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런 ‘세대 간의 분열’은 이번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적어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15대 대선 이후 점차적으로 증폭되어 온 경향이기도 하다. 15대, 16대, 18대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지지율을 보면 20대 50.4→59.0→65.8%, 30대 42.7→59.3→66.5%, 40대 33.5→48.1→55.6%로 더욱더 올라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면, 50대 이상의 지지율은 더 떨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15대 대선에서 50대 이상은 33.7%만이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16대, 18대에서는 각각 50대 40.1→37.4%, 60대 이상 34.9→27.5%로 떨어지면서 반대편의 후보를 지지율은 상승해왔다. 따라서 세대 간의 분열은 증폭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세대 간의 분열 양상을 항간에서 회자되듯이 생물학적인 연령의 상승,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수화되는 것의 효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구별하지 않지만 ‘연령효과’와 ‘세대효과’는 다르며 생물학적 나이 먹음과 보수화를 등치시키는 것은 ‘연령효과’만을 보는 것이다. ‘세대효과’는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적 경험에 대한 공동체험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이런 세대효과는 지난 15대 대선 이후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40대 이하의 세대와 50대 이상의 세대 간의 분열을 설명해줄 수 있는 코드이자 40대 이하의 세대가 더욱더 좌로 움직이는 변동을 설명해줄 수 있는 요인이다.

이번 선거에 투표를 한 20대는 1982-1993년 출생자로서 현재 대학생들이 주축이며, 30대는 1972-1983년 출생자로서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으며 한국의 대중소비사회를 향유한 세대이며, 40대는 1963-1972년 출생자로서 80년대 서울의 봄과 6.10민주항쟁과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이어받은 주역들이었으며, 50대는 1953-1962년 출생자로서 1972년 유신 시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사이에 IMF를 겪었으며, 60대 이상은 1953년 이전 출생자로서 어린 시절 6.25를 경험했거나 그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세대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 결과에서 드러나듯이 기점이 되는 것은 40대이다. 소위 486세대(이전, 386)라고 하는 집단은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현재 나이가 40대인 사람들을 통칭한다. 그러나 이런 세대별 특징으로 본다면 이번 대선에서 50세부터 53세까지는 486세대에 속하며 87년 민주화운동의 주역들 중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50대를 동질적인 집단으로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5세 단위로 조사한 2012년 12월 12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를 보면 50대 전반과 후반의 정치적 성향은 다르다. 50대 전반은 진보 25.0, 보수 33.9, 중도 36.5%인 반면 후반은 진보 9.7, 보수 53.8, 중도 31.4%였다. 따라서 연령효과와 세대효과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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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과 억압된 자들의 전치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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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결과를 보면 특징적인 것은 40대 이하와 50대 이상 사이의 세대 간의 분열이 확연하게 갈라지고 있다는 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력별, 계층별로도 역전된 현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상위소득자들은 일관되게 보수후보를 지지한 반면 하위 소득자들은 더 강력하게 보수후보를 지지하며 학력이 낮을수록 보수적인 투표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난 2012년 12월 11일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1%P)에서 드러나는 바이다. 여기서 박근혜 후보는 45.3%를 얻었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41.4%를 얻었다.

직업별 지지율

월(月) 소득별 지지율

학력별 지지율

*농림어민: 朴 55.2-文 37.1%

*자영업: 朴 50.2-文 37.1%

*화이트칼라: 朴 32.7-文 53.5%

*블루칼라: 朴 43.1-文 48.1%

*가정주부: 朴 55.6-文 32.3%

*학생: 朴 27.9%-文 57.7%

*무직: 朴 60.4-文 19.3%

*200만 원 이하: 朴 56.1-文 27.6%

*201만~300만 원: 朴 40.1%-文 47.6%

*301만~400만 원: 朴 43.5-文 47.3%

*401~500만 원: 朴 39.4-文 50.6%

*501만 원 이상: 朴 40.8-文 46.4%

*중졸 이하: 朴 63.9-文 23.5%

*고졸 이하: 朴 52.8-文 33.1%

*대재 이상: 朴 37.4-文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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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투표 성향은 이번 대선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지난 3차례 대선에서 저소득층과 저학력층은 그들의 계급적 조건과 무관하게 보수후보를 강력하게 지지해왔다. 이것은 계급 배반적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후보를 지지한 것은 중간층과 고학력층이었다. 반면 상위 소득자들은 일관되게 보수후보를 지지했으며 그들만이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계급투표를 해왔다. 특히, 저학력과 고학력의 차이는 1980년대 이후, 대학이 늘어나면서 대학생의 숫자가 늘었다는 점에서 50대 이상과 이후 간의 투표 성향의 차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 나타난 독특하게 드러난 현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별에 따른 지지 성향이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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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남녀-세대별 지지율 격차

박근혜/문재인 지지율 격차

전체

20대

24.9(문재인 더 지지)

38.4(문재인 더 지지)

32.1(문재인 더 지지)

30대

36.6(문재인 더 지지)

30.4(문재인 더 지지)

33.4(문재인 더 지지)

40대

18.7(문재인 더 지지)

4.2(문재인 지지)

11.5(문재인 더 지지)

50대

19.0(박근혜 더 지지)

31.5(박근혜 더 지지)

25.1(박근혜 더 지지)

60대 이상

44.2(박근혜 더 지지)

45.2(박근혜 더 지지)

44.8(박근혜 더 지지)

하지만 이런 성별 지지 성향의 차이는 모든 세대에 동일하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대별 정치적 지지 성향의 분화는 여성의 분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박근혜 후보에 대한 남/여 지지율은 49.1 대 51.1%였고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49.8 대 47.9%로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위의 표 3에 남/여 간의 박근혜 대 문재인 지지율 격차를 보면 세대별에 따라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30대부터 여성은 남성에 비해 박근혜 후보를 더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여성대통령’이라는 구호가 먹혀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40대까지만 하더라도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표 3에서 보듯이 50대 여성에 이르면 완전히 바뀐다. 50대 남성은 59.4 대 40.4%로 박근혜 후보를 더 지지한 반면 50대 여성은 65.7 대 34.2%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문재인 대비 박근혜 지지율의 격차는 50대 남성의 문재인 대비 박근혜 지지율보다 22.5%(31.5-19.0)나 높다. 물론 60대 이상의 여성의 박근혜 지지율은 50대 여성보다 높다. 하지만 이 경우, 50대 남성의 문재인 대비 박근혜 지지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50대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율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50대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60대 여성의 높은 박근혜 후보 지지율을 상쇄하고 있는 것은 20대 여성이다. 20대는 모든 세대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박근혜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대 여성은 박근혜 30.6 대 문재인 69.0으로, 37.3 대 62.2%로 문재인 후보를 더 지지하고 있는 20대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20대 여성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50대 여성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남녀별 격차를 해소하면서 전체적으로 남/여의 지지율이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 결과를 놓고 분석되어야 할 것은 세대별 격차와 40대 이하와 50대 이상 사이의 분열에 대한 양상뿐만 아니라 ‘20대 여성과 50대 여성의 차이가 어떤 세대별 경험이나 사회구조와 관련되어 있는가?’일 것이다. 게다가 20대와 50대는 서로 모녀지간의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점에서 이번 대선 결과가 남긴 분석적 과제는 이번 대선의 반란을 만들어낸 50대의 세대경험이 역사적으로 그들의 어떤 정치-사회적 경험 및 욕망과 관련되어 있는지와 더불어 ‘박근혜 후보’의 지지를 통해 표출된 50대-20대의 여성성의 대립이 과연 어떤 역사적 체험 또는 정서체계와 관련되어 있는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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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산 가스가 뒤덮은 죽음의 그림자와 정치 [시대와 철학]

불산 가스가 뒤덮은 죽음의 그림자와 정치?[시대와 철학]

박종성(한철연 대외협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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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과 공기는 이상이 없다”, 그러나 농작물은 죽어갔다

 

추석 전인 9월 27일 오후 3시 넘어,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마을은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에 자리하고 있는 화학제품 제조업체 (주)휴브글로벌에서 유출된 ‘불산가스’로 뒤덮였다. 불산가스가 마을을 뒤덮은 이후에 마을 주민들은 마을 이장으로부터 유독가스라는 말을 듣고 대피를 하였다. (주)휴브글로벌은 LCD액정 세척제를 제조하는 업체이며, 이날 20톤의 불산가스를 옮기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5명이 사망하였다. 이날 오후 8시 구미시는 사고지점 1.3km 이내 주민에게 대피령을 내렸고 다음날 대기 중에 불산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가조치를 했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서 이러한 대처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먼저 소방방재청은 16시 20분에 행안부, 환경부에 FAX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지방환경청은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 후 1시간 15분이 지나서야 상황을 접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 4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한 밭에 있는 콩 잎이 누렇게 말라 죽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노출기준’(2012-31호)에 따르면, 불산의 작업장 기준치는 0.5ppm이고 사고 현장 반경50m안 오염도가 1ppm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주민들이 대피한 상황에서도 공장은 정상 가동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사고 현장에서 50m떨어진 노동자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 구미공단 4단지 내의 14,400여명의 노동자들은 사고 이후에도 자본의 이익을 위해 생명을 걸고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과 효율성을 제1의 가치로 간주하는 사회의 내면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자본 앞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은 언제나 무의미하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자본과 권력기관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용 노동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공장 가동여부를 감독해야만 했다. 더구나 이 사건과 관련되어 현장방문을 나온 의원의 요청에 고용노동부 직원은 “개입하고 싶지 않다”며 도망가는 사태를 보였다. 그러나 농작물은 죽어 가는데,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하는데 여전히 공장은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고용 노동부의 무개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은 추석 연휴에 일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벌이지는 것은 구미시와 무관하지 않다. 구미시는 ‘투자유치’ 1위를 내세우며 해외기업은 노조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민주노조를 억압하였다. 이번에 사고가 난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는 무노조지역이고 비정규직 비중도 상당히 높은 지역이라고 한다. 자본과 권력은 인간의 생명보다는 이윤창출이 보다 중요한 가치임을 이번 사건을 통해 자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사고 이후에 농작물과 나무가 죽어갔고 마을 주민들도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을 호소했지만,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난 10월 4일에서 이동검진 차량이 와서 진료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오후 2-4시까지이고 토 · 일은 진료를 하지 않았다. 이틀 후 진료시간은 6시간으로 늘었지만 접수된 사람이 많아서 이들을 진료하면 업무시간이 끝난다는 이유로 진료를 못 받는 이들도 있었다. 10월5일, 정부 재난합동조사단 한상권 단장이 마을회관을 찾아 “토양과 공기는 이상이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식물들은 죽어갔다. 주민들의 고통은 여전한데 유영숙 환경부 장관, 김태환 국회의원, 남유진 구미시장이 주민을 만나 악수하고 사진을 찍었다. 가식의 정치는 죽음의 그림자가 마을을 뒤덮어도 죽음과 고통을 뒤로 한 채 여전히 일관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존재 자체는 인간의 생존권을 제일 먼저 고려해야만 그 존재 가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조차도 절대국가를 지향하지만 그 전제는 인간의 생존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듯이 국가의 존재 자체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10월 8일, 정부는 봉산리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참으로도 ‘너무’ 빠른(?) 대책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10월10일까지 공무원과 소방관 등 7000여 명이 검진을 받았다고 한다. “토양과 공기는 이상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과는 다르게 전문가들은 불산은 신경조직을 손상시키고 피부에 침투하면 칼슘을 손상시켜 뼈를 녹이고 불산을 없애는 완전한 물질은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지방환경청은 고가의 간이 측정장비와 탐지측정장비, 보호복과 공기호흡기, 소석회 살포기와 분말 소석회 등을 갖추고 있었으나 불산을 물로 씻어냈을 뿐이다. 10월11일 봉산리 주민 200여 명이 구미환경자원화시설로, 임천리 주민 230여명도 해평면 청소년수련원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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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고와 함께 살아가기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의 유독물질 관리체계가 엉망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주민과 노동자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주)휴브글로벌은 이미 2009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3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던 곳이라고 한다. 2009년 6월 30일에 일어난 가스 분출로 노동자 박모씨가 얼굴과 가슴에 화상을 입었고 치료 후 근무가 불가능해 퇴사했다고 한다. 더욱이 구미시에 총 60여 곳의 불산 취급 사업장이 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앙을 품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이 사건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부는 연간 불산 취급량이 10톤 이상인 업체, 그리고 노동자 30인 이상인 업체를 대상으로 ‘화학물질 배출 · 이동량 정보 조사 · 공개 시스템’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주)휴브글로벌은 불산의 양이 20톤이지만 노동자 30인 이상이라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아서 관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대구노동청장은 불산 유출 사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동부가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도 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이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위협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제도개선보다 선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러나듯이 이와 같은 재앙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관리대상의 기준 또한 변경해야만 할 것이다.

(주)휴브글로벌 불산 가스누출 사건과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업체가 구미시에 60여 곳이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재앙을 안고 있는 지역이 울산시이다. 울산시 불산 취급 사업장은 6곳이다. 그런데 그 용량이 1만 5,110톤이다. 따라서 이번 구미 사고에서 누출된 불산 8톤의 2,000배 가까운 양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울산은 구미에서 일어난 사건이 현실화 될 수 있는 재앙이 매우 높게 잠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11년 8월 17일 현대EP 울산공장에서 노동자 3명이 숨지고 5명이 크게 다쳤고 같은 해 세진중공업에서도 12월 30일 폭발사고가 나 4명이 숨졌으며, 2012년 5월 6일, 태광산업에서 화재로 10명이 온몸에 1~3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울산지역 위험물은 전국 저장량의 35%을 차지하고 이러한 공단은 도심과 1∼5㎞ 거리에 있으며 대부분의 업체가 60, 70년대 건설돼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안전보건공단의 석유화학단지 내 131개 업체 조사 결과 20% 가량이 폭발, 화재 위험이 있으며 사업장이 주택가와 멀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노동자와 그 주변의 주민의 생존을 항시적으로 위협하는 인재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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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정치에 가려진 생존권

 

성범죄에 대해 직접 대책을 지시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던 MB와 이와 발맞추어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은 이번 불산 유출 사건에 대해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으면 언론들은 너도나도 그 지시에 대해 보도하느라 분주하였다. 나아가 박근혜 대선 후보는 MB에게 대선 기간 내내 ‘안전확립기간’을 요구하였고 언론의 자유를 봉인한 권력은 치안을 강조하면서 공포를 조장한다. 주폭과의 전쟁도 그것의 일종이다. 실제로 MB정부 들어서 성범죄와 같은 강력범죄에 대한 보도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금 이러한 정치 프레임을 사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응징과 복수의 정치 프레임은 보수당에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것은 사실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공포의 프레임을 조장하는 정치는 다른 문제에 대한 관심을 차단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념을 기획하는 이러한 정치는 공포에 대한 응징에 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스피노자 말하는 정치 개념이 이러한 구조이다. 이러한 결과 우리들은 이번 사태와 같은 노동자의 문제, 유독성 물질의 노출에 심각히 노출된 상태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문제 등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사망한 산모와 영 · 유아들에 대한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사건과 관련되어서 공포의 정치를 조장함으로써 공포의 이미지가 대중의 정신을 사로잡길 원한다.

물론 권력은 이러한 공포의 이미지가 사라지면 새로운 이미지를 보충적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이번 불산 유출 사건을 계기로 공포 정치에 강박적인 특징을 보이는 권력에 대하여 숙고할 필요가 있다. 정치의 핵심적 요소가 인간의 정념을 기획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은 공포의 프레임이라는 단일관념, 예들 들어 공포의 절대적 군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공포 정치의 이미지와 연합되는 고통스런 노동의 이미지, 공포 정치에 의해 탈취된 직접적인 향유의 이미지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응징이라는 공포정치에서 누락되는 이미지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즉 범죄는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불산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사건을 수습했던 국립환경과학원 화학물질안전관리센터는 총인원 13명 중 11명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복원시키는 것이다.

또한 공포 이미지에 대한 강조에서 간과되는 노동자의 생명, 주민들의 생명에 대한 권력과 자본의 태도를 직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공포정치 편집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은 인간의 생명보다 자본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회의 토대가 흔들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자본과 권력이 바라보는 인간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이번 사태로 드러나듯이, 불산으로 인하여 식물이 말라가며 죽어가듯이 인간도 충분히 그렇게 되어도 된다는 것이다. 자본에게 그리고 그것과 결탁한 권력에게는 차가운 이윤의 논리만이 있을 뿐이다. 대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에게 새로운 정치는 인간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그러한 권력일 것이다.

 

2013년 1월 한철연 월례발표회

안녕하세요, 학술1부입니다.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실천해야 할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는 무엇보다 건강하시고 모두 각자 뜻하시는 바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첫 월례발표회는 신년회와 같이 개최됩니다.

지난 1년 동안 6회의 월례발표회와 1회의 초청강연이 이루어졌습니다.

회원여러분들이 많이 참여해주시지는 않았지만 매회 진지한 토론들이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관심 있는 주제 발표가 있으면 귀찮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참여하셔서 함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논문을 미리 보기 원하시면 4일 이후 ympiao89@hanmail.net으로 연락주십시오.)

발표자: 신승철(동국대)

사회자: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논평자: 윤지영(서울시립대)

주제: <욕망 논의에서 라캉의 ‘구조’와 가타리의 ‘기계’의 차이점>

일시: 2013년 1월 10일 (목) 3시(신년회 1부) 202호 강의실

“라캉의 ‘구조’와 가타리의 ‘기계’는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핵심 개념이다.?

라캉은 분열된 주체를 응시하지만, 기표라는 구조가 분열을 극복하는 것에 대해 주목했다.

반면 가타리는 기표가 결정하는 구조로부터 벗어나 분열을 확장할 주체성 생산의 가능성을 기계에서 발견한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언어구조로 이루어진 상징계의 주도권에 의해 설명되지만,

가타리의 분열분석은 비언어적이며 실재계의 현실운동인 기계를 통해서 설명한다.

또한 라캉은 결여에 의한 욕망을 말하지만, 가타리는 욕망하는 생산을 말한다.

라캉이 프로이트의 포르트 다 놀이에서 발견한 반복현상은 objet a로 개념화되며 가타리의 욕망하는 기계 개념의 모태가 된다.

이에 따라 가타리는 사회를 거대구조가 아닌 작은 기계부품이 기능연관에 따라 접속, 이접, 연접으로 연결된다고 본다.

라캉의 기표독재체제는 자본주의의 등가교환을 유지하는 고정관념과 고정된 틀이며,

이를 넘어 가타리는 자유로우면서도 고도로 조직된 도표로 향한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②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②

 

강사 : 연효숙(연세대 외래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 ⓒ프레시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현대철학을 개시한 장본인이다. 그는 근대철학을 마감하고 현대를 새롭게 여는 경계에 서 있던 사람으로 흔히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른다. 근대를 마감하면서 플라톤(Plato) 이후 2,500년간 서구인들이 가져왔던 중심 가치를 가차 없이 깨부수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의 것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 한 철학자이다.

 

전통적 가치의 전복

 

현대성은 아직까지 정체가 명확하지만은 않다. 20세기의 시작을 현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좁게는 1968년 5월 프랑스 ’68혁명’이 진정한 현대의 분기점이며 현대성을 구현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니체의 철학의 길안내를 도와줄 연효숙 교수는 “현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분류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니체가 그 징후들을 포착했고 그것들을 니체의 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점”이라고 한다.

헤겔(Hegel)은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고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의 시대’를 말했다. 그러나 니체는 그 이성 중심의 시대를 마감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점이 니체가 당시에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가 된다. 소크라테스(Socrates) 이후 헤겔에 이르는 중심 가치는 이성의 사유를 중시하는 전통이었기에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의지’ 같은 개념은 당시 서구인이 이해하기에는 생소했다.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 또한 같은 맥락에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니체의 저작이 헤겔의 저작에서 보이는 일목요연한 체계와는 정반대의 특징을 보이는 점도 그의 사상이 당시에 평가절하 될 수밖에 없던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초기 예술적인 관점에서 쓴 저작 『비극의 탄생』(1871) 이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도덕의 계보학』(1887), 『힘에의 의지』(1887), 『니체 대 바그너』(1888) 등 그의 에세이적 글 속에 보이는 주옥같은 말과 통찰력 있는 문구들이 여전히 현대인들에게 창조적 발상의 길을 열어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현대적 사상의 기원으로서의 니체 : ‘신은 죽었다’가 의미하는 것

 

서양의 19세기 말, 서구인들은 스스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일종의 ‘위기감’이다. 헤겔이 말한 ‘역사의 주인’이었던 인간이 근대의 막바지에는 오히려 ‘악마적’인 성향에 의해 규정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측면이 드러났고 역사를 지배하던 낙관주의적이고 통일적이었던 근대의 문화가 정점에 있다가 하향 곡선을 그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800년대 말 서구 유럽의 모습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당시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그것을 예술 활동을 통해 드러냈듯이 니체는 이 징조들을 감지하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한다. 이른바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는 니체의 말은 근대적 주체인 ‘인간’의 죽음을 예고하는 말이다. 『안티 크리스트』(1888)에서 니체는 실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기독교 절대존재의 허구성과 기독교적인 덕(德)의 체계는 절대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진리를 구현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고 했다. 마르크스(Karl Marx)가 “종교(기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선언했던 것처럼 니체가 기독교를 비판했던 또 다른 요지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여 고통스러운 삶을 감내하게 하는 거짓된 모순에 있었다.

근대인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기독교 중심의 삶의 가치는 더 이상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로 인해 오히려 삶의 허무함이 드러나게 된다. 니체가 말한 ‘니힐리즘(Nihilism)’은 바로 근대 주체의 사망을 선고하는 신호탄이었고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대신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니체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삶을 긍정하는 철학’을 통해 미학ㆍ심미적인 것과 예술적 창조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상시킨다.

 

미학주의와 반관념론(anti-idealistic)적 경향

 

연효숙 교수는 니체 이전 서양에는 ‘진선미(眞善美)’의 위계가 뚜렷했다고 한다. ‘진(眞)’은 소크라테스부터 헤겔에 이르는 진리체계를 지칭하고 ‘선(善)’은 인간이 지녀야 할 윤리적 덕목의 가치이며 ‘미(美)’는 인간의 심미성과 미적 감각을 말한다. 니체는 가장 하위에 있던 미학적인 것을 가장 우위에 두면서 서양 고대의 형이상학, 근대의 인식론, 진리 위주의 경향을 전복시킨다.

니체는 이러한 가치의 전복을 통해 플라톤적 이상주의의 종말을 고하면서 근대까지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만이 아름다움과 선함을 가지는 실체라는 생각을 버린다. 인간 외의 사물(생명)에 대해 그 존재가치를 평가 절하해 버렸던 것이 근대까지 서양 인식론의 기본이었다. 이 연장선상에서 서양은 서양 이외의 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른 문화의 가치도 ‘인간 이외의 것’으로 치부하면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의식을 확고히 했다. 니체는 ‘반인간주의(anti-humanitarian)’를 주장하면서 ‘인간주의(humanism)’가 오히려 인간을 더 인간답지 않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보았다. 자연에 대한 인간 우위의 비판이다.

연효숙 교수는 이런 니체의 사상이 현대철학에 지적 영감을 불어 넣었던 작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와 피에르 클로소프스키(Pierre Klossowski, 1905~2001), 그리고 현대 철학자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와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위시한 중심가치의 전복과 전도를 시도했던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니체는 또한 탈근대(post-modern)사상으로의 전환에 있어 맹아를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근대까지 서구의 철학이 보편성에 기초하여 전체를 아우르려는 ‘동일성(identity:정체성)’의 철학이었다면 니체는 개체의 ‘차이(difference)’를 중시하는 철학을 전개하면서 개체성을 확보한다. 수직적인 사고에서 수평적인 사고로의 전환이다. 이 모든 것은 전통의 ‘해체’이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 니체 ⓒ위키피디아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비극은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말했다. 플라톤이 평가 절하하던 예술가와 예술을 오히려 높게 보고 예술 중에서도 ‘음악’에 대해 강조한다. ‘그리스 비극’은 소크라테스가 탄생하기 이전 시대를 풍미했던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을 연원으로 하는 ‘그리스 정신’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던 이성 중심의 주지주의(主知主義)와 상관없다. 삶의 원초적인 힘과 본능이 오롯이 살아있는 것이 그리스 정신이며 ‘충동(힘)과 본능과 격정(pathos)의 홍수 속에서 예술 창조의 원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리스 비극의 의미이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을 미학의 전형으로 보았고 이 ‘고전 비극의 예술’을 독일에서 재창조 하려 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처럼 ‘음악예술’은 삶의 부속물이 아닌 “상이한 매체를 이용해 삶을 총체적으로 새롭게 재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니체는 원래 인간은 비극의 정신 속, 인간의 충동 속에서 세계와 하나가 되는 것 같은 체험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성이 등장하여 인간의 자각을 통해 자아와 세계가 하나라는 통일성에 균열을 만들었다고 보았다.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이고 그리스 정신이 쇠퇴하는 지점이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이 세계의 원리 혹은 인간의 원리로서 두 가지 상반되는 원리가 잘 조화되어 있다고 평했다. 그 원리가 ‘아폴론적 원리’와 ‘디오니소스적 원리’이다. 아폴론은 질서 정연한 형식의 신, 꿈의 신으로 조형적인 미, 질서, 형식의 예술을 통해 미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며 개별적인 것의 원리가 된다. 조각, 회화 등 조형 예술에 관련한다. 반면 디오스소스는 카오스(chaos)와 황홀경의 신, 술의 신이다. 도취적이고 형식을 파괴하며 통제되지 않는다. 비조형적인 음악 예술의 영역과 관계한다. 디오니소스적이라는 것은 개인을 중시하지 않고, 개인을 말소시켜 신화적인 일체감 속에서 개인을 해체시킨다. 이 원리는 그리스 비극을 살아 있게 하는 주요 원리로 자리매김한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원리를 아폴론적 원리보다 더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연효숙 교수는 “그러나 니체가 디오니소스적 원리를 강조했지 거기에 치우친 것은 아니었다”고 부연한다.

그러나 니체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를 들면서 후자로 갈수록 점점 아폴론적인 색채가 강해졌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비극적 감정이 희미해지는 사이 비극은 쇠퇴하고 퇴장하게 되고 만다. 감성이 퇴장하고 이성이 등장하면서 디오니소스적 원리는 퇴조하고 아폴론적 원리가 지배적이 된다. 그리스 비극은 쇠퇴되고 이성의 등장 이전에 있었던 인간과 세계가 합일되는 황홀경의 경지는 억압받고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니체가 바라본 그리스 비극과 소크라테스 등장 사이의 관계이다.

 

도덕의 계보학

 

니체는 절대적인 선과 악이 있다는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연효숙 교수는 강의 내내 니체가 고전 문헌 학자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니체는 자신이 그리스 비극과 그리스 정신을 규명하기 위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갔듯이 도덕이라고 하는 기준을 설정하고 선과 악을 규정하는 것의 계보는 결국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덕 기준을 정하는 자에 의해 설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 결정자는 니체에 의하면 역사의 승리자이며 권력자라고 말할 수 있고 도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선악의 절대적인 기준은 어디에도 없으며 당사자가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가변적이다. 니체는 기본적으로 근대의 보편적 인간, 보편적인 도덕 법칙을 거부한다. 연효숙 교수는 “니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삶의 규범’들과 칸트나 헤겔 철학에서 얘기하는 이른바 ‘인간의 보편적인 선(善)’에 대해 비판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도덕의 실체를 두 가지로 나누어 봤다”고 설명한다. 그 하나가 ‘주인의 도덕(master morality)’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의 도덕(slave morality)’이다.

‘주인의 도덕’은 귀족계층과 같은 고매한 정신을 소유한 자들의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정신을 담고 있다. 주인의 도덕이란 가치의 창조자, 가치의 결정자가 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에 있어 주인의 도덕을 소유한 자들은 타인의 불행에 대해 연민과 동정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풍요로운 ‘힘’에서 나오는 배려의 차원에서 관심을 가진다. 반면 ‘노예의 도덕’은 사회의 최하 계층들의 도덕을 대변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의 도덕’이다. 노예를 만드는 도덕이다. 그들의 선은 단지 고통 받는 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기만’하는 행위이다. 동정, 자비, 인내, 박애, 친절이라는 덕목을 가진 자들은 선한 자들이고 악인은 고통을 주고 공포를 조장하며 억압하는 자들이 된다. 선한 자들은 악한 가해자들을 물리치고 이겨내야 한다는 스토리를 제공하는 것이 노예의 도덕이다.

니체가 보기에 서구의 도덕은 이 노예의 도덕이 주인의 도덕에 대해 도전하면서 노예들의 평범한 가치를 추켜 올린 것이다. 니체 당시는 물론 지금 현대에 있어서도 동정과 연민을 받는 대상자들이 선한 가치를 점유하고 ‘당신은 핍박받고 있고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라는 주문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노예의 도덕은 인간을 더욱 ‘약한 자’로 만들어 버리고 그 가치만이 우리 삶의 선함에 대한 기준으로 적합하다고 착각 하게 만든다. 이것이야 말로 노예의 도덕이 지배하고 있는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연효숙 교수는 ‘주인과 노예의 도덕’, 이 대목에서 니체가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하면서 특히 “니체가 ‘금발의 야수’라는 표현을 써서 창조적이고 진취적이며 능동적인 인간상을 설정했는데 이 표현이 마치백인 우월주의를 강조하는 듯이 보이고 히틀러, 나치에 영향을 주었다는 오해를 받는다. 일면 이 말 자체가 애매모호하고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 노예가 주인을 딛고 진짜 주인이 되는 얘기를 하지만 이것은 헤겔의 이야기”이다. “니체는 동정과 연민을 통해 선한 가치를 획득한 노예의 도덕이 일어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기독교의 잣대에 맞추어 그런 식의 도덕을 강요하는 사회가 정말 억압받는 자들을 구원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적 사회가 몰락하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주인의 도덕만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고 모든 도덕적 가치들은 인간의 참된 본성과 환경 위에서 재평가되고 재정립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주인의 도덕에 대한 이해에 있어 우리가 조선 당시의 사회적 현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반문화의 정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로 바라보는 사대부의 실상과 문화적 측면에서 문화적 표본으로써 바라보는 사대부의 문화는 다르다는 점을 상기할 만하다.

 

‘힘에의 의지’와 ‘위버멘쉬(?bermensch)’

 

니체는 그리스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비판하면서 이 둘을 형용하기를 ‘이성만 남아서 살과 근육은 다 발라지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형태’라고 표현한다. 이 두 문화는 동정과 연민을 유발하면서 인간을 ‘약함’을 계속 강조한다.

그래서 니체는 ‘삶(Leben)’에의 의지 강조한다. 그 삶은 창조적인 삶이고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과 정신이 삶의 원초적인 힘과 본능이 살아있고 충동(힘)과 본능과 격정(pathos)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됨을 볼 때 삶의 의지가 사라져 버린 근대의 신은 죽어야 마땅한 것이 된다.

근대적 주체에 오르고 이성적 사유만을 통해 뼈만 남아버린 인간을 니체는 극복하기를 바랐고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을 ‘위버멘쉬(?bermensch)’라고 했다. 흔히 ‘초인(超人)’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위버멘쉬는 삶의 원초적인 본능과 의지가 살아서 끊임없이 자기를 창조해나가는 능동적인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독일어 ‘?bermensch’의 동의어가 ‘Supermann’이고 영어로는 ‘Superman’이 된다. 이를 보면 니체가 당시 서구 현실에 대해 느꼈던 위기감의 경중(輕重)과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의지가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니체 사상의 의의

 

연효숙 교수는 근대는 이성이 너무 과하게 강조된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특히 헤겔과 쇼펜하우어가 서로 같은 장소와 시간에 강의를 하면서 헤겔의 수업에는 사람들이 넘쳐 났지만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에는 파리만 날렸다는 설명을 통해 당시 이성주의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니체는 이러한 이성의 과잉포장을 파토스, 감성, 미, 예술, 직관이 승리해서 깨부숴야 함을 역설했다. 연효숙 교수는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말도 있듯이 플라톤이 제시한 철학에서의 모범답안과 플라톤주의가 주는 서양철학의 ‘진리 강박증’은 사람들을 서열화 하고 줄 세워 한 가지 방식과 가치만을 기필하게 만든다. 이러한 척박한 시대에 인간의 숨통을 틔운 것이 바로 니체의 사상”이라고 한다. 플라톤주의를 전복하는 데서 니체의 철학이 출발한다.

니체의 철학 속에는 ‘분열(균열)된 주체’가 등정한다. 통일된 주체가 허구라는 것이다. ‘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규정하기는 너무 어려운 사안이다. 그러나 근대는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냈다. 도대체 통일된 주체로서의 ‘나’가 어디 있는지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니체이고 이런 문제는 이미 현대 철학에서 증명하고 있다.

연효숙 교수는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1855)가 헤겔의 철학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헤겔은 세계의 체계를 거머쥐는 큰 철학을 세웠는데 비유하자면 큰 집을 지어 놓고 헤겔 자신은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조그만 문 앞 수위실에 망만 보는 형국이다. 왜 그는 그 큰 집에 안 들어가고 있나? 왜냐하면 그 집은 실속이 없는 집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니체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해석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니체주의자들은 ‘관점주의(Perspektivismus)’라는 말을 써서 설명한다. 상대주의와 비슷한 말이다. 플라톤적 철학이 제시한 관점과 해석이 전부가 아니라 각자 자기의 눈에 맞게 도출된 의견과 해석은 존중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이 니체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주목받는 철학자가 되는 이유이다.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 [청춘의 고전 시즌2]- ⑫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⑫

일시: 2012. 9. 8.(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

– 세잔의 <대수욕도>, 그 감각적 리듬의 철학적 정체 –

강연: 조광제 (사)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

▲ 로브에서 본 생 빅토와르 산, 1904~1906 ⓒ폴 세잔(Paul C?zanne)

이 그림은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Paul C?zanne, 1839~1906)이 찬미해 마지않았던 자기 고향의 ‘생 빅토와르 산’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보이는 산의 모습은 우리가 실제로 보는 자연 풍경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 사진으로 촬영한 실제 ‘생 빅토와르 산’의 모습

실제 사진과 비교해 봤을 때 색면들을 잘게 썰어서 표현한 것처럼 보이고 색이 서로 뒤섞여 있는 듯이 보인다. 세잔은 이 그림에서 빛에 의해 반짝이는 사물의 겉모습을 표현하지 않았다. 세잔은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색채들이 서로 연관하면서 뒤섞이고 있는 움직임을 극단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세잔이 만년에 그린 이 작품은 세잔이 어느 정도로 감각적인 리듬에 크게 심취하게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세잔의 감각적인 색채의 표현에 감동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가 있다. 메를로 퐁티에 의하면 세잔이 어느 날 생 빅토와르 산의 풍경을 보고 있다가 빠져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
(Le paysage se pense en moi, et je suis sa conscience.)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랄까. 주체와 대상이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상태이다. 이 경지는 ‘나’라는 존재가 풍경의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나를 통해서 자기의 색을 보는 것이다. 마치 지독한 섹스의 경지랄까. 지독한 감각의 세계에서 사유는 불필요하다. 메를로 퐁티는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사유와 대결을 벌인다. 사유중심의 철학에서 감각중심의 철학을 구축한 학자가 바로 메를로 퐁티이다.

메를로 퐁티의 철학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몸철학’ 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몸현상학’이다. ‘현상학’은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로부터 시작되는데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실존철학’과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의 ‘실존주의(현존주의)’는 모두 후설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 메를로 퐁티의 ‘몸철학’-‘몸현상학’도 후설의 현상학에서 출발한다. 현상학에서는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을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것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만약 사유의 출발을 형이상학적인 ‘신(神)’으로부터 시작하려 한다면 그 태도는 비현상학적인 것이다. 현상학의 세계에서는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고 주어지는 것들을 바탕으로 삶이 이루어진다.

‘몸’을 바탕으로 해서 삶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정신’, ‘의식’ 같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가지고 바라볼 것인가? 메를로 퐁티는 정신을 ‘체화된 의식(conscience incarn?e)’이라고 했다. 몸을 현상학적으로 파악하면서 몸과 정신은 서로 얽혀있고 정신이라는 것은 몸의 일부가 된다. 또 메를로 퐁티가 맑스주의자라는 점에서도 그의 철학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맑스(Marx)의 유물론을 유물론적 관점이라 한다. 맑스는 “개인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의 산물이다. 사회적 존재는 물질관계와 육체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맑스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세계를 보았고 메를로 퐁티는 몸이라는 것은 통해 맑스적 유물론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직접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에 관심이 크다.

몸의 핵심 : 감각과 운동

감각과 운동은 상호간에 반드시 서로 수반되는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방향에서 소리가 울린다고 할 때 우리는 귀라는 감각기관으로 소리를 느끼는 동시에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나 눈이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감각과 운동은 같이 일어난다. 운동을 통해 새로운 감각이 주어지게 되고 다시 감각이 주어지니 신체의 운동이 발생한다.

감각과 운동은 우리의 삶과도 관계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평생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노동’과 ‘여가’이다. 노동은 ‘운동’이 중심이 되고 여가는 ‘감각’이 중심이 된다. 조광제 교수는 맑스의 말을 빌려 노동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최대한 늘려야 하며 감각적인 삶을 향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기초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을 향유한다는 것이 운동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춤을 추는 즐거움이 몸의 운동에 있지 않고 노래하는 것이 입의 운동에 있지 않다. 즐거움의 본질은 춤추고 노래하는 동안 운동을 통해 감각적인 것이 나에게 들어오면서 만들어지는 감각적 즐거움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운동을 통한 행위인 노동 자체는 우리 삶의 기초적 목표될 수 없다.

그래서 노동보다는 여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는 최대한 감각적인 것을 추구해봐야 한다. 인간 삶의 기본적인 목표가 여가적인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끝나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이 사회가 도래하면 그 사회는 ‘전면적이고 심오한 감각을 갖춘 인간들을 사회적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맑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를 참고하길 바란다. 맑스의 감각론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맑스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이념을 중심으로 완성된 사회가 아니고 심오한 ‘감각적 인간’들이 많이 양산되는 사회를 추구하는 과정으로서의 사회를 말한다. 그런 사회를 구성하려면 이성적 사유와 분절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감각적 세계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잔은 분명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각의 영역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최대한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폴 세잔의 그림은 운동의 부분보다는 감각적인 부분이 훨씬 강하다. 영어로 ‘에스테틱(aesthetic)’이라는 말이 있다. ‘미학’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독일어로 ‘?sthetik’이고 이 말은 그리스어 ‘Aisthesis’에서 왔다. ‘Aisthesis’은 ‘감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미학이라는 말보다 ‘감각하기’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조광제 교수는 미술도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감각을 추구하는 것이다.(미술보다는 ‘감각술’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미술에서는 감각문제에 집중을 한다. 어떻게 감각을 재구성해서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우리는 세잔의 그림에서 세잔이 감각을 어떻게 소화해서 처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존재의 우연성과 현존주의

세잔은 색의 존재성에 대해 언급했고 메를로 퐁티는 세잔의 그림에 감동받아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 ‘살존재론’의 철학을 만들어 냈다. 참고로 메를로 퐁티 철학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보면 전기는 ‘몸현상학’이고 후기는 ‘살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살존재’란 무엇인가? 조광제 교수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일단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천체물리학에서 말하는 빅뱅 이후 최초 무한에너지에 대해 종교에서는 ‘신’이라고 말한다. 무한적인 존재를 신으로 설정하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신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이 우주는 중요한 존재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고 말 그대로 야단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이른바 ‘필연성 중심의 사유’를 하게 된다. 그러나 철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신이 어디 있나?’ 나는 우연히 태어났고 내 삶을 유지하는 것은 우연성이다. 만약 나라는 존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 우주에는 아무 상관도 없다. 바로 이것이 사르트르의 ‘존재의 우연성’이다.

필연성을 바탕으로 살게 되면 인간은 삶에 있어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상정하게 되고 우연성을 바탕으로 살아간다면 ‘현존’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우연성의 삶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이 순간 아무 이유 없이 움직이고 꿈틀거리며 폭발하는 그 상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엄밀히 말해 현존주의라 할 수 있고 본질주의와 대비된다. 이 현존주의는 절대적인 자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색체주의자 세잔과 색의 존재성

본질주의는 인간의 감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조광제 교수는 묻는다. 우리가 물리학 공부할 때 질량, 가속도, 운동량, 에너지에 대해서는 언급했지만 ‘색’에 대해 거론한 적이 있는가? 물리학에서 설명하는 색이란 빛이 있어 사물에 빛이 반응하면서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색은 원리가 아니다. 물리학에서 빛 자체가 색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색은 인간에 의존해서 성립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 세잔이다.

“온 우주는 색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나 자신도 색으로 되어 있다”, “마치 내가 끝없이 무한한 색채로 덮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바로 이 순간이네. 내가 그림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카오스 상태라고나 할까. 나는 내 그림의 배경 앞에 서서 몰아의 경지에 빠지고 마는 거야” – 세잔이 친구 조아생 가스케과 나눈 대화 中 –

세잔은 색이 인간과 무관하게 본래 우주에 있고 온 우주를 뒤덮고 있다고 했다. 하나하나 관통하고 속속들이 존재한다는 것. 예를 들어서 방 안에 사람이 있을 때는 사물들이 색을 가지고 있다가 사람이 방을 나가면 그 공간 안의 모든 물체의 색이 소멸하고 촉각적 질감마저 사라지는가? 그리고 사람이 문을 살짝 열고 방을 훔쳐보면 물질은 다시 색과 물체의 질감을 만들어내는가? 그렇지 않다. 물리학에 의하면 색은 주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세잔에 의하면 색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색이 원래 그 자체로 있다는 것을 주장한 세잔은 매우 강력한 색체주의자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자신의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메를로 퐁티는 무엇인가에게 색이 주어져있고 사물이 우리에게 감각된다는 사실을 매우 신비하게 느꼈다. 그런데 조광제 교수는 사물이 감각된다는 사실을 무시했던 것이 서양철학의 역사라고 한다. 플라톤(Plato)의 이데아(Idea)는 감각되지 않고 사유되는 것이다. 생각되기만 할뿐 이데아는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플라톤에게 감각되는 것은 모두 가짜이다. 플라톤은 사물을 비감각적으로 본다. 감각은 그저 생각을 돕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 현대 물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어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고 만져지는 것은 속성이다. 실체[장미꽃]+속성[붉다, 둥근 잎의 형태]의 경우에서 실체라는 것은 우연히 속성이 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실체는 결국 ‘감각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진짜 존재라는 것은 색으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 실체라고 하는 것은 속성이 뒷받침할 수 없고 속성 자체는 실체가 될 수 없기에 실체에 우연히 속성이 들러붙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가 데카르트(Descartes)에 오게 되면서 감각적인 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진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서양철학 전반을 관통하게 된다.

색의 존재성과 살존재론

감각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던 서양철학의 역사와 달리 동양에서는 ‘사물’=’색’으로 본다. 혹은 색을 성적인 것과 결부시켜 얘기하기도 한다. 색기(色氣)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색(色)’과 ‘성(性)’은 서로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둘은 서로 가장 감각적인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광제 교수는 이 대목에서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즉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만약 내가 여러분을 지금 보고 있는데 내가 본다는 것이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내가 여러분을 보는 것이 보이는 것이죠, 내가 여러분을 본다는 것이 보입니까? 그렇죠, 보입니다. 그렇다면 보는 내가 주체가 아니라 내가 봄이 여러분에게 보이는 대상이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전도되는 것이죠” 사람과 사람이 악수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만짐’을 만진다는 말이 성립한다. 악수도 일종의 감각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좀 더 수위를 높여보자. 남녀의 키스와 섹스도 마찬가지다. 주체적인 활동에 대한 감각은 주체와 대상의 활동이 뚜렷이 구별될 수 없다. 생각해서 구분하기 전에는 하나로 ‘혼융’되어 있는 상태이다. 섹스가 그렇지 않은가? 내가 저이를 만지는지 저이가 나를 만지는지… 섹스에서 논리적인 사유는 필요하지 않다. 논리적 사유가 없어야 관계가 가능해진다.

이 혼융된 상태가 되었을 때를 사르트르는 ‘살’이 되었다고 한다. 사르트르는 “애무는 몸을 살로 바꾼다”고 하였다. 프랑스말로 ‘몸’은 ‘corps(남성명사)’이고 ‘살’은 ‘chair(여성명사)’이다. 몸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고 살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도구를 쓰다듬으면서 사용할 수 있는가? 없다. 쓰다듬는 행위자체는 문명을 벗어난 행위이다. 도구는 과학기술이라고 할 수 있고 도구는 기능성, 이용성, 유용성을 가진다. 이 도구적 성격 안에 있을 때는 감각자체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문명생활에 있어 감각은 부수적인 것이 된다. 현대 산업디자인만 보더라도 모든 디자인은 기능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디자인된다. 현대 자본주의적 시장가치가 지배하는 문명의 세계에서는 기능과 감각의 자리가 본말이 전도된다. 세잔의 그림은 본말이 전도된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감각의 세계에 온전히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순수 감각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몸’에서 ‘살’로 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유를 통해 주체와 객체의 주고받는 관계를 구분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사물과 감각이 완전 혼연일체가 되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 경지는 마치 남녀가 서로를 쓰다듬으며 키스에 몰입해있는 순간이며, 이 순간은 이른바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와 같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이렇다는 것이 세잔과 메를로 퐁티의 생각이다.

모든 존재는 감각덩어리

조광제 교수는 언어연구에서 인간이 내뱉는 최초의 말의 근본적 형태는 ‘외침(비명)’이라고 한다.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상태는 도저히 비명을 지르면 안 될 상태일 것이다. 이 상태는 가장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가장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상태에서 인간은 말을 잘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기도 한다. 세잔이 풍경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세잔은 인간의 이해관계와 도구적 시각 등을 모두 배제한 순전(純全)한 광경을 원했다. 그리고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만지는가(쓰다듬는지)를 볼 수 있도록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사람끼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사물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서로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는가?

조광제 교수는 자신의 저서 『미술 속 발기하는 사물들』의 내용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인간이건 또는 어떤 사물이건 등속도로 살살 쓰다듬으면 발기한다. 사물이 나(사람)를 쓰다듬는 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온 우주는 아주 감각적인 것으로 뭉쳐져 있는 성기(性器)라고 할 수 있다. 메를로 퐁티는 온 우주가 ‘살’로 되어있다고 했는데 ‘살’이라는 것은 모든 사물이 온통 ‘감각덩어리’라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메를로 퐁티의 존재론을 ‘살일원론’이라고 이름 붙인다. “우주와 감각한다는 것은 온 도시를, 온 산 속을 걸어 다니면서, 그것이 곧 성기 속을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고 느끼는 것이고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세잔이 말한 경지”라고 한다.

조광제 교수는 이 경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방법을 넌지시 알려줬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 앞의 광경을 본다. 그렇게 자신을 감각에 맡기고 있다 보면 음악이 광경으로 나타나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이런 순간이 이른바 공감각(Synesthesia, 共感覺)이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처럼 소리를 들을 때 색을 보고,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처럼 색을 볼 때 소리를 듣는 사람이 공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기의(記意)’를 빼고 순수 ‘기표(記標)’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 이 상태는 비유하자면 마치 성기 속을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살’은 프랑스어로 ‘chair’이고 형용사는 ‘charenl’이다. ‘육체적인’, ‘관능적인’ 이란 뜻이다. 온 우주가 살로 되어있다는 말은 온 우주는 ‘관능적’이라는 것. 다시 말해 온 우주는 성기다. 그리고 발기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그렇다. 세잔은 “세상이 ‘색’으로 되어있다”고 했고 메를로 퐁티는 “세상은 ‘살’로 되어있다”고 했다. ‘색’을 느끼고 ‘살’ 자체를 느끼는 것이 이 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세잔의 그림들

▲ 농부, 1891 ⓒ폴 세잔(Paul C?zanne)

이 그림에서 눈은 덕지덕지 여러 색깔로 표현되어 있다. 인상주의적 기법인데 그림 속 대상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주변의 사물들과 동일한 근원을 지닌 하나의 사물임을 드러낸다. 세잔의 인물화는 대부분 눈에 초점이 없다. 세잔은 사람의 주체성과 인격을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존재하는 사물을 그리려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방법을 썼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농부가 입고 있는 옷의 중량감이다. 이 부분에서 세잔이 인상주의를 극복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세잔은 인상주의에 대해 사물의 ‘옹골찬 사물성’을 다 사라지게 만든다고 평한다. 인상주의는 빛이 사물의 표면에 번뜩일 때 그 표면 자체를 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잔은 육중한 ‘사물성’을 그림 안에서 다시 회복시키려 한다.

▲ 과일접시가 있는 정물, 1879~1880 ⓒ폴 세잔(Paul C?zanne)

세잔을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행태를 왜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세히 보면 과일 그림의 받침대가 오른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든다. 뭔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오른쪽 반대편에 식탁보가 어지럽게 놓여 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에 대한 메를로 퐁티의 해석은 ‘보이지 않는 시선의 운동을 보이는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과일그릇의 어색한 묘사와 널브러진 식탁보는 그림의 균형을 잡아준다. 색채의 표현도 독특하다. 흰색에는 녹색의 느낌이 남아있고 벽을 보면 녹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이런 표현은 벽 속에 갇혀있는 녹색을 해방시켜서 주변의 색이 주변의 다른 여러 대상물의 색에 와서 붙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색이 마치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색이 흘러넘친다고 할까. 이제 사과를 보자. 어둡게 채색된 부분이 있어서 무게와 깊이가 있어 보인다. 인상주의자들은 짙은 색을 쓰지 않았지만 세잔은 짙은 채색을 통해 사물의 무게와 깊이를 표현한다. 또 접시 위의 사과는 초록색과 붉은 빛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사물이 색들을 서로 주고받음을 표현한 것이다. 색깔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 실생활에서도 빛의 대비와 같은 효과로 인해 색이 서로 주고받는 것을 경험한다. 색깔은 따로 놀지 않는다. 하나의 색깔은 주변의 여러 색깔이 연동해서 하나의 색깔을 드러낸다. 이것이 실제로는 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잔의 그림은 실제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그렸다. 실제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지각할 때 이런 내적인 구조가 없이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내적인 구조를 눈에 보이게끔 반영하는 방식으로 그림에서 드러낸 것이다. 대단히 깊이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에네시 호수, 1896 ⓒ폴 세잔(Paul C?zanne)

세잔은 색이 서로 연동하는 것을 표현하면서 그림 속 대상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왼쪽에 보이는 나무 색깔은 매우 짙다. 나뭇잎의 무성함을 검게 처리해서 깊이를 나타낸다. 그리고 원래 잎의 초록색은 바위에 맺혀 있다. 바위의 초록색과 무성한 잎을 표현한 검정색을 동시에 보게 된다. 재밌는 것은 나뭇가지가 뻗쳐서 산의 능선을 구성하고 있는 모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나무와 아주 멀리 있는 산을 결합시켜서 아주 묘한 이중성을 나타낸다. 이 그림의 느낌은 아주 고요해 보이지만 산의 모습과 바위 위에 있는 집의 모습이 호수 면에 수직으로 비추어져 있고 그 사이로 여러 색채들이 흐르고 있다. 고요하고 정적인 호수의 풍경이지만 그 속에서 색 감각의 리듬에 의한 운동성을 표현해 내고 있다.

▲ 앉아있는 소케, 1877 ⓒ폴 세잔(Paul C?zanne)

이 그림은 세잔의 회화에서 보이는 작가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그림이다.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색방울은 가구에 그려진 문양의 색과 같다. 이를 통해 색이라는 것의 속성은 한 사물의 색이 다른 사물에도 떨어진다는 색 감각의 반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 대수욕도, 1900~1905 ⓒ폴 세잔(Paul C?zanne)

‘대수욕도’는 처음 볼 때 약간 황당할 수 있는 그림이다. 왼쪽의 여자는 얼굴도 없는 듯하고 대체적으로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자들의 얼굴색은 푸른빛이 감돌기도 하는데 이 푸른색은 위에 있는 나무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나무는 다시 검게 표현했다. 여체들에는 곳곳에 초록색이 보이는데. 이것은 숲 전체가 초록색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여체만 보아도 숲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세잔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이 주변의 것들을 다 그려 넣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의 바깥은 전문용어로 ‘외화면’이라고 하는데 회화는 외화면이 작고 사진은 외화면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는 사진에 비해 독자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세잔은 외화면을 상당히 이상한 방식으로 그렸다. 여체의 붉은 색은 무엇일까? 황토가 앞에 펼쳐져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무도 그렇고 색이 서로 ‘왔다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세잔의 ‘감각의 리듬’이라고 한다. 다시 그림을 보자. 맨 왼쪽의 여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수건이다. 수건과 연결되는 뒤의 희푸른 배경은 뒤의 것이 앞으로까지 나오는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보면 오른쪽의 비스듬한 나무와 대칭되는 왼쪽의 작은 나뭇가지는 그림의 균형을 이루어준다. 세잔의 그림은 구도는 정적으로 가지만 색의 리듬을 통해 동적인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 로브에서 본 생 빅토와르 산, 1904~1906 ⓒ폴 세잔(Paul C?zanne)

생 빅토와르 산을 그린 또 다른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풍경의 색이 여러 겹 붙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선의 구분이 보인다. 선을 일부러 그린 것이 아니라 배치하다보니까 선이 형성된 것처럼 보이게 그렸다. 마치 모자이크처럼 색깔들을 다 쪼갠다. 이것이 심해지면 피카소의 분석적 큐비즘(cubism)이 된다. 세잔은 세상에는 선이 없다고 했다. 입체물은 단면으로 보면 선이 분명 있다고 느껴지지만 몸을 틀어 보이면 시각적으로 선이라고 인지되던 것은 모두 면으로 흡수된다.

▲ 발리에르의 초상, 1906 ⓒ폴 세잔(Paul C?zanne)

이 그림에서는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의 선을 서로 겹치도록 겹겹이 그렸다. 세잔에게 있어 윤곽을 뚜렷하게 그린다는 것은 실제 윤곽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고 색을 선속에 잡아 가두는 것이다. 세잔 그림의 핵심은 사물이 서로 색깔을 주고받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고 어떤 형태 속에 있느냐에 따라 형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문명은 예술의 적

세잔은 이런 말을 했다. “문명은 예술의 적이다”

친구인 가스케가 세잔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묻는다. “당신은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풍경 앞에서 그토록 오래 준비하고 명상하는 까닭은 뭔가요?” 세잔이 답한다. “오, 그건 내가 더 이상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는 문명화되어 있어. 원하든 원치 안든 우린 고전적인 고민들에 직면해 있는 거지. 나는 그림을 통해 명철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학교라는 제도보다 더 가증스런 일은 무식을 사칭하는 이른바 야만인들이야. 오늘날엔 더 이상 무지해질 수가 없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문명의 이기에 적응하게 되어 있네. 그것을 부수어야 하네. 문명의 이기는 곧 예술의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지. (…) 이럴 때 나는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한 사람처럼 되는 거야.”

문명은 도구적인 것이다. 도구적인 것은 개념적인 것이고 개념적인 것은 또 유용한 것이 된다. 이런 것들을 다 제거하고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사물이 순수한 감각적인 상태로 다가오게 되는데 세잔 자신도 문명의 때를 벗겨내기 힘들기 때문에 한참 바라보면서 그런 것이 없어지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인간과 사물의 일체 구분이 사라지게 되면서 색이 주고받는 색 자체의 세계가 느껴지면 그 때 막 그림을 시작한 사람처럼 된다는 것이다.

세잔은 우리에게 문명에 찌들어 시선자체가 얼마나 곪아 있는가를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잔을 통해 예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명화된 눈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인간관계나 성생활도 훨씬도 감각적으로 순수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삶도 순화 또는 거룩하게 ‘성화(聖化)’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조광제 교수는 이런 도식을 제시한다.감각적인 존재자체가 신성덩어리이라는 것이다. ‘신성(神聖)’은 도저히 출처를 알 수 없을 때 생긴다. 이유를 알 수 있으면 신성하지 않다. 메를로 퐁티가 세잔의 그림을 보면서 느낀 신비로움은 필연적 법칙성에 속박된 사물을 봤기 때문이 아니다. 거기에 현존하고 있는 사물의 참 존재를 본 것이다. 철저히 우연적인 존재는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고 그 때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살’, ‘감각자체’, 감각과 사물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감각덩어리 자체’로서의 삶의 세계이다. 이것이 넘쳐나는 것에는 신성이 깔려있다. 이것을 엄폐하고 함몰시켜 깔고 앉아 있는 것이 문명이며 도시인의 생활이다. 자본주의의 상품화, 상품화폐경제가 우리를 더욱 찌들게 한다. 조광제 교수는 강의를 마치면서 이런 것들을 세잔을 통해서 벗겨냈으면 좋겠고 감각적 향유가 넘쳐나는 삶을 누구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아마도 세잔이 치열하게 그림을 그린 것과 메를로 퐁티가 ‘살존재론’의 철학을 전개한 이유도 조광제 교수가 남긴 말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후기: 진보성 (한철연 회원)

톨루엔[노동이야기]-③

톨루엔[노동이야기]-③

이재원(한철연 회원)

 

1. 겨울

 

숙소는 성남에 있었다. 어떤 사람이 숙소를 썼으나, 퇴사하는 바람에 내가 쓰게 되었다.

지하도 방수작업을 했다. 작업 순서는 크게, 다음과 같다.

ⅰ) 토목회사(이하 토목)에서 버림(버팀 콘크리트였는데, 어느새 버림으로 고정되었다) 콘크리트를 타설한다. 방석 콘크리트(이하 방석)라고도 한다.

ⅱ) 방석 위에 특수본드를 바르고, 합성수지 시트(이하 시트)를 붙인다.

ⅲ) 토목은 그 위에, 1미터 정도의 기초 철근 콘크리트(이하 기초)를 타설한다. 이 때, 양 측면은 30센티미터를 뗀다. 기초 위에 도로를 따라 약 4미터 높이의 벽체를 올린다.

ⅳ) 벽체를 따라 시트를 시공한다.

ⅴ) 시트 보호 모르터(몰탈)를 바른다.

ⅵ) 방수작업이 끝나면 토목회사는 흙, 중요 부위는 콘크리트로 백필(되메우기) 작업을 한다.

ⅴ) 마지막으로, 토목에서 슬라브를 타설하면 그 위에 시트 방수를 하고, 보호 모르터로 마감한다.

 

이렇게 적어보면 무척 쉽다. 그러나 실제는 냉엄하다. 날씨는 영하 15도를 오간다. 온 몸을 싸매었으나, 왼 손 엄지와 검지가 무척 시렸다. 동상인가, 하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동상이라면 살이 썩죠. (당신의 경우)동상이 아니라, 손가락의 실핏줄이 막힌 것 같습니다”라고 진단했다.

휴대용 찜질팩을 반으로 자르고, 자른 부의 내용물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테이프로 밀봉한 후, 면장갑 위에 붙였다. 면장갑 위에 커다란 공업용 고무장갑을 끼었다. 한결 따뜻하고 손도 시리지 않았다.

한겨울이지만 지하도 공사장 내부는 춥지 않다. 영상 1도 정도이다. 지금 우리 팀 9명이 작업하는 구간은 세 군데이다. 벽체 시트작업 두 석방(한 석방은 길이 20미터, 높이 5미터 정도), 바닥 두 석방(바닥 한 석방은 가로세로 약 20미터), 벽체 모르터 두 석방이다.

두목노동자 신반장이 총 반장이며, 유반장이 작업을 진행한다. 신 반장은 우선 벽체 모르 터를 끝낸 후, 벽체 시트방수 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 와중에 몇몇은 빠져서 벽제 면 정리, 바닥 청소를 해야 한다. 신 반장은 조 반장을 시켜, 권 씨 아줌마와 김 씨 아줌마를 데리고 바닥 정리하러 보냈다. 나머지는 벽체 몰탈을 해야 한다. 조 반장은 오 반장과 함께 아파트 현장에서 작업한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아파트 방수 작업을 할 수 없어 이 현장으로 왔다.

벽체 모르터는 쉽지 않다. 작업 재료 준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토목회사는 한꺼번에 작업하는 것이 아니다. 바닥에서 우선 3분의 2 쯤 벽체를 올린 후, 나머지는 슬래브와 함께 벽체를 마감하는 식이다. 따라서 후속 작업을 위해 철근을 1미터 쯤 위로 뽑아 놓는다. 방수보호 모르터는 이 와중에서 작업준비를 해야 한다.

방수 작업을 서두르는 이유가 있다. 백필(되메우기)의 긴급한 필요성 때문이다. 공사구간 양 옆으로 철골과 볼링 콘크리트(볼링 장비로 땅을 뚫어 흙을 끄집어 낸 후 그 안에 철근과 콘크리트로 채워 기둥을 세운 것)를 세워놓았다. 그러나 이는 공사를 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따라서 방수 공사를 한 후 되도록 빨리 되메우기 해야만 임시벽체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유반장이 작은 김 씨를 데리고 복강판 위에서 레미탈을 내리면 젊은 한 씨와 내가 아래에서 받았다. 복강 판이 벽체 외부로 열려 있다면 작업이 조금 수월하다. 직접 외부 벽체로 레미탈을 받아서 작업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 사정으로, 이를테면 외부 복강 판이 차도로 이용되고 있다면 일이 좀 더 많아지고 어렵다. 레미탈을 벽체 안쪽으로 내린 후, 여기에서 믹서 하여 통으로 담아 철근 너머로 옮겨주어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이다.

작은 김 씨는 성격이 온순하다. 일도 물론 잘 한다. 레미탈 믹서기는 위험한 기계이다. 잘못 작업하면 기계의 회전력에 의해 손목을 다치거나 또는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한다. 작은 김 씨가 레미탈 섞는 작업을 도맡아 한다. 나와 한 씨는 한 명은 위에서 밧줄로 레미탈을 믹서한 몰탈을 매달아 끌어올려, 벽체 외부로 전달해 준다. 큰 김 씨는 우마에 올라서서 위쪽을 발라간다. 권 씨는 서서, 중간을 발라간다. 박 씨 형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레미탈을 받아서 큰 김 씨와 권 씨에게 전달해 주는 한 편 쭈그려 앉아, 바닥을 마무리해 간다.

큰 김씨는 66세이다. 그가 하는 말은 뻥이 심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며칠 전에는 아침 식사하다가, “며느리가 5억 해 먹고 (도망)갔어” 라고 말하는 거다. 작은 김 씨는 친절하다. 그냥 흘려버려도 좋을 이야기를 꼬치꼬치 물었다. “왜 며느리가 돈 먹고 도망가게 놔 두냐” 로부터 시작해서 “아저시가 그토록 돈이 많았더냐”는 식으로 이야기 해 가니, 옆에서 듣기 피곤하다. 차라리 노망난 노인네 말로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큰 김 씨는 기골이 장대하다. 그러나 그의 나이는 어쩔 수 없어서 빨리 지친다. 그러면 박 씨가 거들어준다. 미리 앞에 가서 까치발로 서서 벽체를 발라나간다. 그러면 큰 김 씨는 조금 쉬면서 진도를 맞춰 나갈 수 있다.

몰탈 작업에서 한 씨와 나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둘 다 몰탈을 바르지 못한다. 미장은 기능이되 손목을 많이 사용한다. 전에는 미장의 일당이 가장 비쌌었다. 그만큼 육체적으로도 어렵고 기능을 익히기도 어렵다.

한 씨와 내가 자주 손을 맞추어 하는 일은 벽체 면정리 작업이다. 토목의 일은 항상 거칠어서, 폼과 폼 사이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하고, 단차도 많다. 토목 일은 대개, 콘크리트 면을 땅 속에 묻어버리는 탓에 외부에 드러나는 건물을 짓듯이, 벽체 면을 매끄럽도록 신경 쓰지 않는 탓이다.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 벽체 외벽에 방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벽체 면정리 작업은,

ⅰ) 망치와 노미를 이용해서 반생이(콘크리트 중량과 폼 중량을 버티기 위해 철근과 폼을 연결시킨 부드러운 재질의 굵은 철사)를 끊어낸다.

ⅱ) 단차 부분을 몰탈로 메운다.

ⅲ) 4인치 그라인더로 폼과 폼 연결 부위의 매끄럽지 못 한 부분을 갈아낸다.

 

그라인더 작업 시, 콘크리트 찌꺼기나 튀거나 먼지가 많이 발생하므로, 보안경과 방진 마스크는 필수이다.

한 씨와 나는 비교적 죽이 잘 맞았다. 사다리를 타고 작업해야 할 경우에는 한 사람은 사다리를 잡아주어야 한다. 사다리는 항상 넘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씨는 우리 작업하는 원청회사의 직원이었다. 입사하기 어렵다는 회사이다. 그는 5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겉으로는 멀쩡해서, 의사는 장애 진단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한 씨는 업무를 볼 수 없었다. 한직에서 한직으로 밀려가도 업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자진 퇴사했다. 퇴사 3년 만에 집은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작은 집에서 전세로 옮겨않았다. 금전적으로 견딜 수가 없어서 이 회사 사장에게 연락했다. 단순 노동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장은 한 씨의 대학 동기라고 했다. 한 씨는 지금 이 회사에 2년째 다니고 있다. 때로는 도급 공사도 해 보았다. 그러나 도급은 돈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일용직으로만 일한다. 그러나 매일 일 하기에는 힘에 부쳐서, 한 달 15일 정도만 일한다고 했다.

일 끝나면 작업자들은 거의 매일 한 잔씩 한다. 큰 김 씨와 작은 김 씨, 그리고 김 씨 아줌마의 집은 안산이라서, 술자리에 없다. 김 씨 아줌마는 자주 “야, 수원서 한 잔 하고 헤어지자. 니들만 입이냐” 라고 불평했다.

모란시장 뒷골목 대포 집에 자주 갔다. 술 한 접시 5천원, 어마어마한 냄비에 끓여 내오는 홍어찜(실은 가오리 찜) 1만원이다. 때로는 생선 매운탕이 나오는데, 역시 5-6명 술안주 될 만 한 양이 1만원이다.

장날이면 포장마차가 문을 연다. 포장마차는 막걸리 집보다 안주가 비싸다. 양미리 구이, 돼지 사태구이, 횟감도 판다. 1인당 1만 원 정도 꼴이 든다.

뷔페식 오리구이 파는 곳도 있다. 1인당 6천원을 내면 막걸리 한 병에 고기는 무제한이다.

또 다른 포장마차는 좀 더 비싸다. 술값만 내면 안주는 공짜다. 대신 맥주 1병에 5천원이다. 안주는 내장구이가 주를 이룬다. 어느 날 이곳에서 비참한 사람을 보았다. 지능이 모자란 여성이 껌을 팔러 왔다. 술손님들이 장난 반, 욕망 반으로 그녀에게 자주 술을 권한다. 그녀는 이미 취했다. 그녀가 누구에게 라고 할 것 없이 소리쳤다.

“야 한번 빨러 가자. 만 원 만 줘.”

포장마차 주인이 말했다.

“야 야. 정신 차려라. 집에 가라.”

그녀가 포장마차를 나간 후 주인이 말했다.

“남자들이 재를 데리고 가려 해. 따라가는 걸 내가 여러 번 말렸지.”

내가 말했다.

“정신 치료를 받을 수준이네.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지옥같이 사는 것보다 그냥 저렇게 사는 게 나으려나?”

작은 김 씨에 의하면 박 씨 형님의 사모님은 상당한 미인이시다. 술자리에서 박 씨 형님에게 사모님에 대해서 물었다.

“사모님이 미인이시라면서요? 노인인데도 그리 미인이세요?”

빙긋 웃으며 박 씨가 말했다.

“아직 노인은 아냐. 나하고 7살 차이거든.”

“결혼은 연애하셨어요? 중매? 사모님 고향은?”

“강 아래(금강 건너, 즉 호남). 그 때는 모두 중매지 뭐.”

“사모님을 사랑하세요?”

“안 그러면 어쩌겠어. 그나마 없으면 늙어 어찌할 거야?”

“평생 돈을 잘 벌어다 주셨어요?”

“평생 이렇게 일했지. 그런데 전에는 일 해서 먹고 살 만 했어. 미장 일이 많기도 하고 일당도 비쌌거든.”

“나는 이해가 안 가더라, 부인을 사랑한다는 사람이나 남편을 사랑한다는 사람. 산에 가면 부부가 함께 오는 것이 통 이해가 안 가. 집에서 내내 잔소리 듣거나 싸울 텐데 산에까지 와서 그러는 거.”

“뭐 사랑하는 척 하는 거겠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박 씨 형님은 여기에 기록할 수 없는, 부부간의 내밀한 이야기도 했다.

구정이 왔다. 노동자들은 무사히 겨울을 넘긴 셈이다. 구정을 끼고 한 일주일 일을 쉬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신 반장은 이번 구정은 딱 5일만 쉬자고 했다. 그만큼 일이 바쁘다는 뜻이다. 신 반장은 5만원이 든 봉투 하나씩 돌렸다. 유 반장이 신 반장에게 말했다.

“신사장님 정말 감사해요. 이번 겨울 일 못했으면 그냥 몇 백 만원 마이너스거든요. 그러면 내년 일 년 내내 허덕이는데, 이번 겨울에는 일해서 무사히 넘어갔네요.”

유 반장의 말에는 노동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이 말에는 동시에, 노동에 대한 적대적 표현이 숨어있다. 유 반장의 책임은 아니되, 그에게 노동은 살아남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노동이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기본적 이데는 생략되어 있다.

유반장의 말에는 해결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 유 반장은 내년 겨울에는 어쩔 것인가? 내년 겨울에도 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과 노동하는 우리의 현실여건에서 노동에 대한 모든 이데와 앙가주망은 소멸한다. 현장에서는 이렇게 말 할 틈새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뎅커(Danker)로서 갈등이 있다. 그러나 결코 이론을 포기할 수 없다. 이론을 포기하면 패배주의이다.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기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론을 모색하는 작업은 오직 하나, 씩씩한 마음을 갖는 수밖에 없다. 허공에 대고 헛소리하듯, 실패할 각오를 하고 이데를 이야기 할 용기가 필요하다.

“한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하는 사람이 노동을 통하여 더욱 자기를 발전시켜나갈 조건을 형성하는 노동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사회는 탐욕이나 경쟁이 아니라 상호 신뢰와 협동에 기초하여 노동을 조직하는 사회요, 경직되고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타심과 온화한 인격주의에 기초한 사회이다. 이런 경우, 경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 동료가 내 협조자라는 관점에서 서로 돕는 신뢰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인간적 욕구에 응답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구상해야 한다.”

 

2. 여름

 

회사는 내 숙소를 성남에서 영통으로 옮겨주었다. 현장이 가까워서, 통근하는 시간이 짧아서 좋았다. 성남의 그것 보다 깨끗했다. 몇 년 전에 함께 일 한 적이 있는 조반장이, “이 씨, 그냥 성남에 있지 그래. 수원에 홀로 떨어지면 외톨이 아냐, 외톨이” 라고 말 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외톨이가 두렵지 않다.

여름이 되자, 햇빛에 달구어진 복강 판이 열을 전도해, 지하도 온도는 35도가 넘었다. 작업자들은 교대로 캔 맥주를 사 마셨다. 아침 참에 하나, 오후 참 시간에 하나, 그리고 퇴근하면서 한 캔 씩 마시는 식이다. 그러나 술자리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성남 팀이 떠나면 작은 김 씨랑 맥주를 더 마시고 헤어지곤 했다.

작은 김 씨의 화제는 단연 고등학교 3학년인 딸 이야기이다. 실업학교를 다니는데, 은행에 인턴사원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취직을 보장해 준다고 했다. 그에게, ‘왜 딸 하나냐, 대개 아들을 바라는 법 아니냐’라고 물었다. 내가 그렇게 믿어서가 아니라, 대화 거리를 만든 셈이다. 김 씨는, “돈이 있어야 키우제, 돈이. 내 처지에 딸 하나 키운 것도 감지덕지요,” 라고 했다.

중국 동포 큰 박 씨와 작은 박 씨가 합세했다. 조 반장은 권 씨와 오 반장, 아줌마 둘을 데리고 신반장의 아파트 현장에서 일한다.

큰 박 씨는 은밀히, 한약재로 만들었다는 중국산 ‘파란’ 약을 팔았다. 작업자들이 사갔다. 약을 써 본 이의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약 성분은 한약재가 아니라 도파민 같은, 일종의 화학 작용제인 듯 했다.

벽체 시트 작업 순서는 다음과 같다.

ⅰ) 콘크리트 이어 친 부분(조인트)과 조인트필터(석방 연결 부위에 콘크리트의 팽창과 수축을 고려해서 넣은 고무판) 부분에 40센티미터 넓이로 특수 본드를 칠한 다음,

ⅱ) 시트(합성수지 방수재, 길이 10미터, 넓이 1미터, 두께 3밀리미터)를 30센티미터 넓이로 잘라 붙인다.

ⅲ) 벽체에 본드를 칠한 다음,

ⅳ) 벽체 길이에 맞춰 시트를 잘라 붙인다.

본드가 문제이다. 겨울에는 휘발성이 약하므로 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름이 되자, 냄새가 지독했다. 나는 시트작업 할 때는 항상 화학약품을 걸러주는 안면 마스크를 착용했다. 동포 큰 박 씨가 본드를 칠하면서 나가면 나와 박 씨 형님이 시트를 붙인다. 나는 우마 위에서 시트를 받아 펼쳐 벽체에 대면, 박 씨 형님은 바닥에서 랩(시트의 겹쳐 붙임 부위-대개 옆과 아래에 10센티미터를 겹친다)을 보아주는 식으로 붙여나간다.

안면식 마스크를 했으나 식사하러 갈 때 마스크를 벗으면 옷에 냄새가 배어 있었다. 모두들 그 냄새를 싫어했다.

작은 김 씨가 처음부터 이곳 현장에서 작업했다. 시범 시공할 때 원청 소장이 감리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원청 소장은 이 특별한 방수재료를 구하기 위해 자기가 무척 애썼다고 하더란다.

대개 발주처는 입찰시 작업 제품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제품을 만드는 회사마다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재료가 있다. 본드를 쓰지 않는 제품도 있다. 합성수지가 아닌, 고무 시트의 경우에는 프라이머를 도포한 후, 가스 토치를 이용해 작업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가 작업하는 재료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본드 통 표지, 품질 표시 항목을 읽어보았다. 용매제로 ‘톨루엔’을 썼다고 밝혔다. 톨루엔은 신장과 심장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1급 발암물질이다. 작업자들은 한결같이, 하고 많은 제품 중에 하필 왜 이 재료냐는 불평을 했다.

유반 장은 시트작업 시 마스크를 안 썼다. 안면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다가, 본드 냄새가 마스크 안에 들어오면 나가지 않아 더 위험하다고 했다. 일이 벌어졌다. 작업을 끝내고 나온 유반장이 구토했다. 다시 일어나 걸어가다가 또 구토했다. 사람들이 부축해서 병원으로 갔다. 후에 들으니, 병원에서는 링거 외에는 별 해독제가 없다고 하더란다.

유 반장 사건이 회사에 보고되자, 이 곳 현장 담당이라는 인간이 와서 작업장의 산소농도를 측정했다. 그 후 신 반장은 홴 두 개를 가져왔다. 작업장 양 옆에 설치하자, 냄새가 잘 빠져나갔다.

유 반장은 몇 개월 후 심장 혈관에 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했다. 400만 원 수술비는 신 반장 보증 하에 회사에서 빌려줬다고 한다. 심장 수술과 톨루엔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