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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메를로-퐁티⑧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메를로-퐁티⑧

강사 : 조광제( (사)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화가의 시선과 몸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와 함께 20세기 새로운 철학의 지평을 열었던 사람이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이다. 메를로-퐁티 철학의 핵심 키워드는 ‘몸’이다. 그의 철학은 이른바 ‘몸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몸철학’을 가장 정교하게 잘 제시한 것이 메를로-퐁티이다.

1990년대 들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와 페미니즘 운동 등이 활발해지면서 이즈음 ‘몸’이라는 화두가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1990년대 후반에는 ‘몸’이 인문ㆍ사회과학적인 담론에 있어 핵심 키워드로 작용했다. 이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보통 ‘정신과 이성‘은 남성적인 것과 관계하지만 몸을 바탕으로 한 ‘감각‘은 여성성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전반적인 구도에서 봤을 때 이성이 일으키는 부작용을 충분히 가정할 수 있고 몸을 통해 이성을 근본적으로 한계 지을 수 있다는 사유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 된다.

배경에 메를로-퐁티의 ‘몸철학’이 있다.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사유의 중심으로 삼지 않았고 몸의 ‘감각’을 중요시 했다는 점은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이 욕망을 통해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코기토(cogito)’ 중심의 철학적 사유를 전환시켰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몸철학의 관점에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바탕은 몸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 아래 물에 잠긴 큰 얼음덩이와 같다. 메를로-퐁티는 정신과 의식 보다는 몸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여덟 번째 시간에는 ‘몸과 살, 그리고 세계’라는 제목 아래 메를로-퐁티가 얘기했던 몸철학의 세계를 경험했다. 메를로-퐁티의 특징 중 하나는 사유의 출발점을 과학적 합리성을 담보한 이론이나 철학적 반성으로 보지 않고 구체적으로 주어져 있는 삶의 현장이라고 했던 점이다. 메를로-퐁티의 몸철학을 전공한 조광제 교수는 “수업이 진행되는 지금 이 공간이 철학적 사유가 시작되는 장이면서 동시에 앞에서 말하는 자와 앉아서 듣는 자가 서로 감각적 소통이 가능함을 몸소 느끼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메를로-퐁티 사유의 출발점

 

▲ 메를로-퐁티ⓒ위키피디아

메를로-퐁티가 『행동의 구조』에서 밝히고 있는 ‘현상의 장’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서 그는 ‘실재적인 빛(lumi?re r?elle)’과 ‘현상적인 빛(lumi?re ph?nom?nale)’의 구분을 통해 객관적인 과학 세계와 현상세계 간의 대립을 이해시키고 있다. 가령 벽에 둥근 광점(光點, spotlight)이 나타나 여기저기 위치를 바꿔 옮긴다면 그것을 보고 있는 ‘나’는 광점이 주위를 끄는 대로 그것을 향해 시선의 방향을 돌릴 것이다. 이 때 광점의 움직임은 나의 행동(시선의 움직임)을 유발한다. 이런 설명은 현상 그대로를 설명하는 것이다.

과학은 이런 특징을 외현으로 취급하고 그 아래 다른 종류의 실재가 있어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재적인 빛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광점을 비추고 다시 반사되어 내 눈의 망막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된 대상을 보게 만드는 실재적인 빛은 나(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극은 실재적인 빛이고 이 자극이 주어지면 반응(결과로서 행동)을 한다.[자극→반응;행동(결과)] 하지만 실제로는 이 반응이 자극이 되어 다시 우리의 반응을 촉구하는 것이다.[반응→자극(반응)]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현상의 장’에서 볼 때 과학적인 실재의 빛이 되는 순수한 자극은 없다. 자극이 이미 반응이다.

과학은 ‘실재적인 빛’을 연구하는 것이고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들은 과학의 실재적 빛이 아니라 ‘현상적인 빛’을 얘기한다. 우리가 지각하는 빛이란 실재적인 빛이 아니라 현상적인 빛이다. 실제 우리의 행동이 이루어지는 장은 과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순수한 ‘물리적 사태(事態)’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현상의 장’ 속에 들어온 후에 과학을 연구한다.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사유의 출발점은 배후의 어떤 객관적 실재가 아니고 직접 보고 만지는 현상의 장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현상학적 태도이다. 과학주의적 태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량, 속도, 힘, 가속도 등의 개념을 다룬다. 물리학적 세계에서는 색과 소리, 밝고 어둡다는 개념도 없다. 이런 것은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감각을 쏙 빼버린 순수 이론적인 세계를 진짜 세계(진리의 세계)라고 배워 왔지만 이런 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의 생각이 현실을 떠나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과학적 태도가 아닌, 현상에서 출발해보자는 입장이 메를로-퐁티 사유의 시작이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그리고 ‘반성철학’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이 ‘현상의 장’은 과학에서 말하는 객관적 실재도 아니고 의식철학에서 말하는 순수 의식의 세계도 아니다. 흔히 주관과 객관을 나누어 세계를 설명하려 하지만 현상에서는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없다.

메를로-퐁티는 기존의 ‘반성(反省)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코기토’ 명제와 관련해서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가 반성철학의 모습이다. ‘반성’은 근대철학을 규정하는 기초인데, 이 때 ‘명석 판별함’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반성이고 이 반성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 메를로-퐁티는 반성을 통해 명석 판별함을 찾고 명석 판별함을 통해 반성이 진리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성주의’라고 규정했다.

지성주의 관점에서는 진리를 구현하는 체계 바깥의 세계를 도저히 입증해낼 길이 없다. 여기서 ‘반성=의식’이 되고, ‘의식=자기의식’이 된다. 결국 ‘반성=자기의식’이다. 지성주의는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모든 진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데카르트다. 그리고 자기의식을 최대로 발달시켜 절대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 사람이 헤겔(Hegel, 1770~1831)이고, 자기의식 ‘나는 생각한다(Ich denke)’를 중요하게 여겨서 온 세계를 구성하는 총론적 의식을 중시한 것이 칸트(Kant, 1724~1804)이다.

이런 것들을 고전주의시대의 지식 형태라고 보는 인물이 푸코(Foucault, 1926~1984)이다. 푸코는 17~18세기를 ‘고전주의시대’라고 했다. 푸코는 고전주의의 근본형태는 ‘재현(representation)’에 있다고 했고 재현은 ‘표상’이며 표상은 ‘의식의 표상’이다. ‘의식’과 ‘반성’ 중심으로 일체의 모든 지식을 말하던 시대가 바로 고전주의시대이다. 고전주의시대의 ‘에피스테메(?pist?m?)’가 표상이고 재현이다. 푸코에 의하면 그러다가 19세기 초중반부터 근대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지식에 있어 의식과 반성이라는 구도가 깨지게 된다.

조광제 교수는 푸코의 이런 구분에는 반(反)지성주의ㆍ의식주의ㆍ반성주의ㆍ재현주의가 들어있다고 하면서 비(非)반성적 영역, 혹은 선(先)반성적 영역을 앞에서도 언급했던 빙산에 비유한다. “빙산의 일각 밑의 몸체가 되는 바탕이 있다. 빙산의 일각은 반성의 영역이다. 빙산의 일각=’의식(정신)’이고, 몸체가 되는 바탕=’몸’이다. 헤겔은 ‘감각적 확실성(무엇인지는 모르고 그냥 확실히 보이는 것)’에서부터 절대적인 상태에 이르는 체계적 단계를 말하지만 메를로-퐁티는 이런 반성적 과정 이전에 사유와 철학은 바탕이 되는 몸에서 출발함을 주장한다.”

몸과 지각의 근원성

 

‘현상의 장’은 행동이 중심이다. 그리고 ‘지각’과 ‘현상’의 관계에서 보면 현상의 장이 곧 ‘지각의 장’이 된다. 모든 철학은 몸의 지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우리는 ‘몸’이라고 하면 정신보다 하찮은 존재, 혹은 그 아래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정신을 주체로, 몸을 대상이나 그 다음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본다면 몸은 나에게 ‘저항적인 존재’이다. 앞에서 말한 반성은 정신으로 생각한다. 정신으로 생각만 한다면 순간 에베레스트 정상에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정신적 자유이다. 인간은 정신은 자유로운데 몸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항이 있어야 자유가 있는 법이다. 맘대로 아무렇게나 자유로움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참된 자유인가? 주체와 대상을 의미하는 영어 ‘subject’와 ‘object’를 보자. 먼저 ‘object’는 ‘대상’이란 뜻이지만 동사로는 ‘반대하다’, ‘이의를 제기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subject’는 ‘주체’를 뜻하지만 원 뜻은 ‘신하’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대상이라는 것은 저항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주체는 대상의 아래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주체는 대상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길거리를 걷다가 장애물 있으면 피해 간다. 장애물이 우리를 피할 수는 없다. 장애물이 걷는 주체의 행동을 유발시킨다. 그렇다면 실제에서는 주체가 대상을 만들지 않고 대상이 주체를 만들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철학에서 이것이 전도되었다. 철학에서는 주체가 온갖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관념론이다. 주체는 대상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실제적인 것을 무시하면 현실감각이 없어진다. 관념론이 그렇지 않은가? 관념론은 대상을 무시한다. 사회적인 힘을 무시하면 현실에서 떠나게 된다. 그리고 황당한 생각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염력, 초능력에 대한 상상력과 집착은 ‘황당한 주체에 대한 신화‘이다. 현실을 보면 주체는 사회적 힘에 의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대상들인 자동차, 전화기, 세탁기, 스마트폰까지, 대상이 주체(인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우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데카르트 이후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면서 항상 주체와 대상(객체)이라는 존재적 위치를 부여했다. 조광제 교수는 보통 강의실에서 강사를 주체, 학생들은 대상이라고 여기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관점으로는 도저히 접근해서 분석할 수 없는 것이 몸이라는 존재라고 한다. 특히 강사의 정신이 강의하는지 아니면 몸이 강의하는지에 대해 물으면서 앎에 대한 정의와 운동과 감각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앎에는 두 가지가 있다. ① ‘~ 임을 안다'(지식, 이론, 표상)는 것과 ② ‘~ 할 줄 안다'(실천, 변형, 노동, 놀이 등)는 앎이다. ①의 경우에는 ‘주체=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②의 경우 ‘주체=몸’이다. 몸은 행동의 주체로서 행동은 감각+운동의 두 가지로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운동에 따라 감각의 내용이 달라지지만 감각에 따라서도 운동이 달라진다. 대상의 움직임을 자기의 시선이 쫓기도 하고 차 경적 소리에 사람이 몸을 피하기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바이올린연주할 때 연주자는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쓴다. 인상을 쓴다는 것은 얼굴의 운동이다. 왜 운동할까? 최상의 소리를 지금 내고 있는데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운동에 신경을 덜 쓰면 감각이 바뀌어 최상의 소리가 깨진다. 온몸이 운동을 해서 바이올린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세하기 이를 데 없는 감각’과 이에 대응하는 ‘미세하기 이를 데 없는 운동’, 이런 것이 행동을 설명하는데 같이 얘기되어야 할 것들이다.

‘인생을 사는 맛’이라는 말이 있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생을 사는 이유는 ‘감각’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면 그 사회는 ‘전면적이고 심오한 감각을 갖춘 인간들을 사회적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그 사회는 다양하게 미세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다양하게 모두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서 인생은 감각과 운동이고 이것은 ‘향유’이다.

몸의 감각과 운동을 통한 행동은 지각과 결합되어 있음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지각 할 때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런 지각을 하지 않는 행동은 예를 들면, 등산할 때 절벽에서 조심조심 걷던 걸음을 평지에 내려와서도 똑같이 하는 것이다.

또 행동은 정신에 앞서 있다. 흔히 우리가 심리학을 말하는데 심리학은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상심리(abnormal psychology)’ 즉 비정상 심리는 말 그대로 정신이 이상해서 연구하는 게 아니다. 행동이 이상해서 그렇다. 조광제 교수는 “만약 정신이 이상하다고 평가 받는 사람이 있는데 행동은 전혀 문제없다면 심리적으로 전혀 문제없는 거다. 그런데 어떤 인간이 하루에 5000번 웃는다고 치자. 이상하다. 이런 사람이 심리학에서 이상 심리의 연구대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행동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철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철학이다. 정신과 이론의 논리에 대해서만 얘기하다보면 행동에 대해서는 다 놓치게 된다. 행동에 따라 인간 존재가 달라지는 것을 잡아내야 철학이 시작된다.

‘몸틀’이라는 개념

 

▲ 『지각의 현상학(Phenomenologie de la perception)』 과 조광제의『몸의 세계 세계의몸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예전에 느꼈던 감각 운동이 차곡차곡 축적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웬만한 감각이 들어와도 충격 받지 않는다. 행동이라는 것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차곡차곡 축적된다. 감각의 축적이다. 그러면 몸이 점점 바뀐다. 이것은 일정한 방식으로 쌓이는데 메를로-퐁티는 이를 ‘몸틀(le schema corporel)’이라고 한다. 한자식으로 말하면 ‘신체도식(身體圖式)’이라고 하겠다.

메를로-퐁티식으로 말하면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것’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몸틀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과 같다. 몸틀은 한번 정해지면 오래간다. 그런데 이 몸틀은 처음에 한 동작을 할 때 온 몸이 그 동작에 집중해야 어떤 하나의 행위가 가능해진다. 자전거 배울 때도 그렇지만 글을 쓸 때는 글 쓰는 몸틀, 책을 읽을 때는 책 읽는 몸틀에 맞아야 한다. 그 행위의 몸틀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온 몸이 그 몸틀에 따라서 집중되는 것이다. 이제 온 신경을 쓰던 정신의 집중이 몸으로 들어옴으로써 몸틀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체득(體得)’이라고 한다.

행동은 반드시 어떤 상황 속에서 하게 된다. 상황은 과제이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과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상황에는 반드시 타인(타자)들이 있다. 과제는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몸과 과제와 상황은 각각 구조가 있어서 그것이 일치가 되면 몸틀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몸틀을 미리 갖추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때 사람은 ‘생각’하게 된다. 생각은 더 효율적인 행동을 위해 하는 것이다.

몸은 항상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려 한다. 이것을 메를로-퐁티는 ‘세계에의 존재(l’?tre-au- monde)’라고 한다.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를 통해 하나가 되려는 과정에 있다는 것. 또 그 과정에서 벗어나길 거부한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상황 지어진 존재’라고 한다. 힘이 들면 숨이 가빠지는 것이 그 아주 쉬운 예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계속 역동적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복합적인 세계이다. 주어지는 상황에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몸틀 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계속 새로운 몸틀을 만들어 간다. 한 인간에는 여러 몸틀이 만들어져 있고 또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다. 이것을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아주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늑대소년을 상기해보자.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의 몸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이다.

들뢰즈(Deleuze, 1925~1995)가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에게서 가져온 중요한 개념 중 ‘intensit?’라는 개념이 있다. ‘강도’, ‘강밀도’ 등으로 번역되는데 감각이 밀도가 높아지면 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강도는 어떤 몸틀을 갖추느냐에 따라 다르고 또 인간의 삶은 전혀 달라진다. 천재라고 소문난 예술가들은 그 방면으로 엄청난 몸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보다 인간들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조광제 교수는 몸틀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본주의는 한 인간을 특정한 몇 가지 몸틀 만을 가지고 살도록 만든다고 한다. 이런 것을 반영한 작품이 찰리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이다. TV프로에 나오는 달인(전문직)들을 보면 그 전문 분야에 대한 몸틀이 정말이지 대단하다. 하지만 10년 이상 그것만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몸틀은 강도가 높아지지만 여러 몸틀이 결핍된다. 그러면 몸은 왜곡된 형태로 변하게 된다.

“나는 내 몸이다” : 습관과 체화

 

“나는 내 몸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때 내 몸은 계속해서 새롭게 몸틀을 갖추게 되고 새롭게 운동하는 그 몸이다. 몸틀은 자기 무의식적이다. 몸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내 몸은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자아이기 때문에 내 몸은 나의 의식에 다 체크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의식으로는 알 수 없는 내 몸이 작동하면서 나를 형성한다. 이 때 자아는 정신적 차원의 자아가 아니다. 메를로-퐁티는 정신적 차원에서 말하는 자아를 ‘허공의 자아’라고 한다.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자아이다.

메를로-퐁티는 몸은 복합적이기에 근본적으로 ‘불투명(opacit?)’하다고 했다. 데카르트는 명석 판별함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았는데 의식으로 ‘투명(transparence)’하게 주어지는 것만 진리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메를로-퐁티는 불투명한 것이야말로 진리라고 했다. 낯낯이 밝혀지는 것이 진리가 아니다. 불투명한 것이 역량을 발휘한다. 불투명을 정신분석학에서는 트라우마, 무의식의 상태라고 설명할 것이다. 몸 철학적으로 트라우마를 설명하면, 삶의 과거 어떤 지점에서 특정하고 이상스럽게 강력한 감각이 와서 순식간에 몸틀을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잠복해 있다가 유사한 상황이 나오면 증상이 나타난다.

조광제 교수는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고 한다. 세계 속에 살다보니까 몸이 바뀌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세계와 몸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① 세계는 몸을 구조화 한다. 그리고 ② 구조화된 몸이 세계를 재구성한다. 이 때 구조화 되었다는 것은 몸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어떤 몸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지고 그 속에서 운동하는 것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요가나 국선도 수련을 해보니까 정말 좋다고 추천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사람에게는 요가나 국선도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가 들어왔고 그 몸에 요가와 국선도를 하는 몸틀이 갖추어지다 보니까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동시 상호교환’이다. 메를로-퐁티는 이를 공동체적 의미에서 ‘집단적 몸’이라고 한다. 만약 흔히 말하듯이 세계는 객관적이고 몸은 주관적이라고 해보자 이렇게 되면 상호교환이 안 된다.

‘체화(體化)’라는 개념이 있다. ‘체현’, ‘육화’라고도 한다. 우리가 어떤 과제를 수행해야하는데 몸이 따라가지 못하면 생각을 한다. 생각이 올라왔다가 몸틀을 갖추면 올라왔던 생각은 다시 사라진다. 그런데 이때 그 생각은 어디로 갔을까? 바로 몸에 체화되었다. 몸1ㆍ2ㆍ3(…), 의식1ㆍ2ㆍ3(…)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몸1이 의식1을 바꾸고 의식1이 몸2로 체화된다. 몸2는 체화된 의식을 바탕으로 의식2를 바꾸고 몸3으로 체화된다. 이것이 반복된다. 결국 의식은 몸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이걸 설명할 때 메를로-퐁티는 아메바를 예로 든다고 한다. 아메바가 환경이 좋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상황이 바뀌면 몸을 옮기는데, 방식은 자기 몸을 한 쪽으로 쭉 늘어뜨려 몸을 옮기고 나면 다시 예전의 형태를 회복한다. 이때 늘어지는 아메바의 일부를 허족(虛足)ㆍ위족(僞足)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 정신과 의식은 허족ㆍ위족과 같다. 필요가 있을 때는 쭉 뻗어 발휘했다가 필요가 없으면 거둔다. 그래서 정신적 사유를 하거나 의식하고 있을 때에는 에너지분산되어 감각이 약해진다. 그러나 ‘몰입’ 상황은 대체적으로 감각적인 것에 몰두할 때다. 이때는 정신과 사유가 없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섹스를 할 때,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면 사실 잘 안 된다. 그냥 미쳐버려야 잘되는 것이다. 가장 감각적인 상태가 되어 생각하지 않는 도취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 몰입은 순수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했지만 생각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각의 향유’이다. 조광제 교수는 내 몸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면서 또 어떤 감각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염두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은 재미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생각을 너무 오래하다 보니까 생각하기 위해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을 생각하기 위해 생각했던 것이 ‘근대’이다. 이렇게 되면 데카르트는 혹 생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인간이 늘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항상 새로운 감각, 운동, 상황에서 내 존재를 계속 역동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내 존재는 갇혀 있지 않고 결정론적이지 않으며 변화의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향해 계속 나가는 존재이다.

인간의 몸틀은 어떤 특별한 중심이 되는 몸틀이 없다. 파시즘적인 전제적 형태의 피라미드 체계가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는 서로의 위치와 배치를 바꾸기도 한다. 몸은 그래서 탈중심적인 존재이다. 메를로-퐁티는 “각각의 나는 다른 모든 나의 교차점이다”라고 했다. 세상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ㆍ역사 등등의 복합적 영향을 받으며 내 몸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내 몸은 내가 의식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인간들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몸에서 살로 : ‘살존재론’

 

▲ 조광제, (사)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몸을 철학적 사유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것은 몸 바깥에 있는 모든 세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세계와 항상 접촉한다는 것은 서로 감각적인 것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몸들은 감각적인 방식으로 주어진다. 왜 하필이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감각적으로 들어올까? 우리는 감각하면서도 감각되는 자이다. ‘본다는 것’과 ‘보인다는 것’, 악수처럼 ‘만진다는 것’과 ‘만져진다는 것’ ? ‘봄을 본다는 것’, ‘만짐을 만진다는 것’ 이런 것이 몸의 성격이다. 몸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다. 몸은 내 안의 개별적인 몸이 아니라 세계와 항상 소통하고 있는 것이고 소통은 감각을 통해서 한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끼리 보고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인간과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까?

이 부분에서 메를로-퐁티는 화가 폴 세잔(Paul C?zanne, 1839~1906)에게 영향을 받았다. 세잔은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Le paysage se pense en moi, et je suis sa conscience)”라고 했다. 세잔은 풍경을 한참 쳐다보다가 풍경이 자기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풍경이 내 속에 자기를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는 일종의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감각적 세계를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메를로-퐁티는 이를 바탕으로 ‘몸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말했다.

조광제 교수는 “보이는 것이 보는 나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보는 나는 온데간데없고 보이는 대상이 꽉 나를 채우고 있다. 사실 보는 나도 그런 것을 원한다. 본다는 것은 보이는 것이 오히려 주체가 된다. 보이는 대상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내가 사물을 만질 대 만져지는 것은 사물이 오히려 나를 만지는 것이다. 이런 나르시시즘적인 감각의 소통이 어떻게 가능하냐면 메를로-퐁티는 모든 존재는 살로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메를로-퐁티는 ‘감각덩어리(masso du sensible)’라는 말을 했다. 덩어리는 사물이다. 사물이 감각으로 덩어리져 있다는 것인데, 색도 알고 보면 시각 중심의 색 덩어리이다. 색은 사물의 표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자르면 그 단면에도 색이 있다. 사물은 모두 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물을 인식적으로 규정하지만 감각적으로 만져서 단단하게, 혹 물렁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사물 그 자체’라고 한다. 일종의 감각적 유물론이다.

마르크스가 자유를 얘기할 때 기본으로 접근하는 것이 감각이다. 노동이라는 것은 감각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것을 좀 더 존재론적인 ‘살’이라는 개념으로 심화시킨 것이 메를로-퐁티이다. 그래서 우주의 살, 세계의 살, 보는 자의 살, 보이는 것의 살 등의 얘기를 한다.

여기에 플라톤(Plato)의 이데아는 보이지 않는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가지적[可知的, 가지적인 것(no?ton)]’으로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것이다. 이데아는 아이러니 하게도 색이 없다. 예를 들어 빨강의 이데아는 전혀 빨갛지 않다. 이러한 플라톤의 사유를 끌어다 놓은 것이 과학적 세계이고 물리학적 세계인데 이것과 정반대로 보는 것이 메를로-퐁티의 ‘살존재론’이다. 이것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핵심 내용이다. 살존재론은 예술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1943)에서 “애무는 몸을 살로 바꾼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몸은 노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도구를 사용할 때 우리는 손을 이용해 도구를 잡는다. 그러나 애무는 노동과 다르다. 무엇을 도구적으로 잡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애무는 도구적인 몸이 도구성을 벗고 순수 감각적인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우리 인간은 살이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살이 된다’는 것은 사르트르의 경우 ‘즉자(卽自)’와 하나가 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인간이 완전한 살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아무리 다양한 많은 시도를 해도 완전한 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알았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내가 살이 되는 만큼 파트너를 살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사르트르는 살이라는 개념을 인간에게만 적용한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전 우주에 확대 적용시켜 온 우주가 애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살이라는 것은 늘 감각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모든 각 존재는 살의 상태에 있다. 모든 사물의 근본적인 존재의 상태는 살의 상태라는 것. 그래서 온 우주는 살로 되어있는데 이 살은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다. 온 우주는 살이라는 단 하나의 원소로 되어있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살일원론’이라고 명명한다. 우주의 정신과 물질도 살의 변형태이고 몸도 살의 변형태이다.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의 신=자연=실체는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이 다양한 양태로 변함을 언급한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메를로-퐁티가 살일원론을 다 말하지는 못하고 죽었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교직-교차’ 장에 보면 이에 대한 원론이 나오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말년에 쓴 『눈과 정신』에 메를로-퐁티의 회화론이 보인다고 한다. 회화는 살을 만나고 살을 접촉하면서 그 살을 그려내는 것이다. 순수 감각적인 상태를 회화라고 본다. 곧 존재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회화론은 ‘존재론적인 회화론’이다. 조광제 교수는 회화론적 존재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한다.

하늘의 별을 보고 바람을 맞으며 시적 감성을 느끼는 것은 온 우주가 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속에 빨려 들어가 나르시시즘을 느끼는 것이다. 온 우주가 나고, 내가 우주가 됨을 느낀다. 이것이 메를로-퐁티의 후기 살존재론이다. 유물론 치고는 매우 감각적이다. 감각적 유물론이라고 말할 만한데 유물론에서 물질은 순수 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메를로-퐁티에게 순수 객관적인 것은 찾을 수 없다.

메를로-퐁티에게 순수 객관적인 것은 없다. 주관적인 것은 의식이나 정신이 아니고 몸이다. 이것이 들뢰즈에 가게 되면 감각론으로 나오는데 『감각의 논리』(1984)에 보면 신경체계에 대한 설명에서 따가움과 같은 신체적 고통의 순간, 신경을 통해 느끼는 감각이 진짜 감각이라고 한다. 이것이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 1992)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통해 극적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메를로-퐁티의 살존재론을 들뢰즈는 극단적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감각의 논리』에서 감각은 세계의 존재라고 한다. 메를로-퐁티가 영향을 끼친 푸코나 들뢰즈는 이런 감각론에 기초하고 있다.

메를로-퐁티의 순수 감각적인 상태로서 세상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면 평소에는 별 느낌 없이 보던 예술 작품을 볼 때도 뭔가 느낌이 달라지고 길을 걷다가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들에서도 순수 감각적인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예술적인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살일원론에 입각한 살존재론은 예술존재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사르트르⑦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사르트르⑦

 

강사 : 이순웅(숭실대 외래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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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1960년대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1980년에 죽었지만 사르트르 동시대와 이후의 사상가들에게는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으로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의 경우처럼 현대에 주목받는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럼 지금 사르트르가 다시 부활하는 것인가? 부활의 여부는 모르더라도 확실한 것은 사르트르는 큰 저수지와 같은 존재로서 어디에도 물을 댈 수 있는 사상을 담은 철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는 2013년을 사르트르와 함께 시작했다. 이순웅 교수는 이 강의를 통해 사르트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폭넓고 다양한 얘기를 담은 철학자임을 알려줬다. 사실 사르트르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 미진했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실존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사르트르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는 현대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사르트르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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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철학에는 베르그송의 영향이 많았다. 지속의 개념이 그것이다. 공간화한 규칙적 시간은 의식 속에서 느끼는 참된 시간(지속)과 다르다는 것은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세계를 설명할 때 필연성이 아닌 우연성으로 설명한다.

사르트르 철학은 넓게 보면 의식의 철학이고 주체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현상학은 대상을 향해 있는 의식으로서 대상과 관계 맺는, ‘무엇인가와 관계 맺는 의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코기토(cogito)’ 명제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자동사의 ‘think’가 아닌, ‘~에 대해서 생각’하는 ‘think of’의 의미이다. 이후 사르트르의 현상학에서는 후설과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르트르와 관련하여 궁금한 부분은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사르트르의 철학이 퇴색 되었는지의 문제이다. ‘구조주의(Structuralism)’는 인간이 주체가 아니다.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 것이 구조주의이다. ‘포스트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는 구조주의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는 것인데 이순웅 교수는 ‘post’를 ‘후기’로 번역할 때와 ‘탈(脫)’로 번역할 때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한다.

‘후기 구조주의’로 번역하면 주체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주체에 대해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럴 경우 주체가 없어 자칫 허무하고 공허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탈구조주의’는 ‘주체’를 상대적으로 중요시 하여 ‘후기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을 얘기한다. 지젝(Slavoj zizek, 1949~)이나 바디우 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구조주의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구조주의자들은 구조를 장악하지 못하면 인간의 주체에 대해서도 장악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르트르의 인간관과 『존재와 무』

 

▲ 사르트르ⓒ위키피디아

사르트르 철학의 중심은 인간이다. 사르트르는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은 왜 잔혹해졌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잔혹한 존재인가?’ 그리고 ‘잔혹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두고 사르트르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인간의 삶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 간의 싸움이다. 그리고 세계대전은 유럽위시한 서구 제국주의 사이의 대결이었고 식민지라는 시장을 쟁탈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이 전쟁에서 제국주의의 대상이 된 식민지 국가의 입장은 배제되어 있었다. 결국 지배국가인 자본주의국가 간의 싸움이었지 우리가 영화소설에서 쉽게 읽었던 것처럼 정의의 연합군과 세계를 지배하려던 악마 같은 독재국가의 대결이 아니다. 결코 선과 악의 대결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어떤 인간이며 자본주의를 사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이런 면은 사르트르가 소련의 스탈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은 한 단초가 되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았고 이 계기가 인간의 문제에 대해 천착해 가는 과정이면서 기폭제가 되었다. 『존재와 무』(1943)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은 잔혹한 존재라서 절망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끈을 놓지 않는다. 그의 책에는 이런 이중적인 문제의식이 보인다.

『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가 말하는 인간관은 그 이전의 저작인 『구토』(1938)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서 사르트르는 평생 몸 편히 살 수 있는 ‘이자 생활자’인 주인공 ‘로캉탱(Roquentin)’이 자기 존재의 ‘무상성(無償性)’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주인공은 이른바 이중적 상태의 인간이다. 이자만 타먹는 무노동의 밥벌레와 같은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노동을 할 수 있는 도시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이런 인간은 ‘죽은 인간’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주인공 로캉탱은 여기서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다. 사르트르는 여기에 희망을 건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정신적 자유의 무상성과 의식의 명석함을 자각하는 과정에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을 정신적으로는 자유롭지만 자각하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conscience적 존재’라는 말로 표현한다. ‘구토’는 이 의식이 ‘존재’ 그 자체와 대면한 때에 반응하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의미와 실존

 

‘현상학(phenomenology)’에서 말하는 의식은 ‘무엇에 관한 의식’이다. ‘의식’과 ‘의식의 대상’이 있다. 이 둘의 관계를 규명하고 해석하는 것이 현상학이다. 또는 존재를 ‘지향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의식에는 ‘지향성’이 있는 것이다. 의식은 ‘존재’가 있는 한 ‘존재’를 지향하는 의식이기도 해서, ‘구토’는 ‘존재의 출현’과 ‘존재를 지향하는 의식의 출현’ 두 가지가 서로 겹쳐진 체험이 된다.

존재의 우연성이란 필연성과 반대의 의미이다. 미리 정해져 있는 방향에 의해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진리의 체계와 법칙을 상징한다. 간단한 예로 우리가 알고 있는 3단 논법의 체계가 필연성의 체계를 축약해 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변화와 유동적인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연성의 세계는 유신론적 세계질서와 관계한다.

이쯤에서 신이 미리 세계를 ‘설계(design)’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순웅 교수는 “신 존재 증명에는 ‘목적론적 증명’이 있는데 어떤 사물의 설계자를 상정하고 그 사물의 완성을 ‘end’라고 할 때, ‘end’의 어원은 ‘목적’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끝’이란 ‘신의 목적’에 도달했다는 뜻이 된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결국 신의 목적을 향한 기독교인들의 ‘기다림’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한 때 유행했던 ‘휴거(携擧, rapture)’ 따위의 소동이 바로 이것이다.

사르트르는 신이 설계한 세계의 특성으로서 목적, 본질은 없으며 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 사르트르는 보통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인간이 우연 그 자체인 어떤 존재와 만나고, 인간은 한결같이 우연을 지향하는 의식 그것으로 있으며, 따라서 인간도 또 우연으로서 무상인 것이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존재에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가 없다. 존재에는 원인도 없으며 목적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우연과 무상적 존재로서 인간이다. 인간은 정해진 길을 따라 순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히 선택하고 결단해야만 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사르트르에게는 본질보다 ‘실존’이 우선한다.

자유와 초월의 추구

 

사르트르는 어떻게 하면 자유를 잃지 않고, 자유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존재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르트르 철학은 자유와 존재, 사실(거기에 있는 것)과 초월(transcendance, 무언가 되기 위해 자신을 만드는 능력)의 결합을 얻으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유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유일한 입법자라는 것을 알고 인간은 늘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며 살아가며 자신을 둘러싼 대상을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자유는 이 ‘초월성’과 ‘주체성’의 결합으로 성립하며 이 두 가지의 결합이야말로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헛된 ‘기투(企投 또는 投企, projeter)’라고 사르트르는 명명한다.

사르트르는 초월을 추구하지만 초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초현실주의는 다만 부정만 할 뿐, 건설할 만한 적극적인 제안을 갖고 있지 않다. 주관과 객관 둘 다 부정하며 그 두 가지를 교차시켜 ‘혼합‘시킬 뿐, 조금도 ‘종합’하려 하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초현실주의를 비판하며 그저 ‘불가능’을 꾀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후설 현상학과의 차이

 

후설에 의하면 “의식이란 그 자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을 찾고 지향하고, 무언가를 향하려고 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의식이란 그 본성상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후설의 지향대상은 의식에 의해 파악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의식의 내용도 의식 내부에 있는 것, 의식에 내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 생각에 반대한다. 대상이 의식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의식 바깥에 있다. 이것이 후설과 사르트르의 현상학 입장에 대한 차이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대상은 의식 바깥에 있는 것이므로 의식으로부터 불거져 나온 쓸모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언가 의식의 본질에 규정되지 않은 우연·무상인 것이다. 누가 결정했든지 간에 (신이든 인간이든) 어떻게 어떤 일이든 먼저 일반적인 본질이 있고, 거기에 맞추어 삶의 방법을 생각하는 본질주의 그 자체를 거부한다.

사르트르는 후설의 현상학에 영향을 받았지만 후설과 구별되는 사르트르 현상학의 특징은 ① ‘대상이 의식 밖에 있다는 것’, ② ‘본질에 대한 거부’, ③ ‘본질적인 직관(intuition: 실험, 관찰을 통한 감각적 경험을 작동시켜 알아내는 앎의 상태)에 대한 반대’ 등을 들 수 있다.

▲ 존재와 무ⓒwww.library.usyd.edu.au

『존재와 무』에서 존재의 세 영역

 

사르트르는 존재에 있어 세 가지 영역을 설정한다. 먼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즉자존재(卽自存在, Being-in-itself)’와 ‘대자존재(對自存在, Being-for-itself)’가 그것이다. 인간은 ‘즉자존재’로도 살 수 있고 ‘대자존재’로도 살 수 있다. 『구토』에서 로캉탱처럼 즉자의 무상성을 취한 채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자유로이 사는 것도 가능하고, 반면 인간은 즉자존재의 우연성에 도전하여 이 우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마주 놓고,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 스스로 입법하고, 자기가 자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간단히 이 세상의 존재를 나누어 볼 때, ‘인간(나, 타자)-사물’로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나-타자-사물’로 보면 세 가지가 된다. 즉자존재는 타자를 설정하지 않아서, 예를 들어 속이 꽉 찬 쇠구슬에 비유할 수 있는데 자기라는 존재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자기 충족적인 존재로서 다른 것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 개는 의식이 없어서 고민도 없다. 이것은 즉자존재다. 반면에 대자존재로서 인간은 텅 빈, 비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자존재는 무엇인가? 대자존재는 ‘자기를 존재 바깥에 두는’ 존재이다. 비어있다는 것이 중요한데,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순웅 교수는 ‘의식’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비어 있는 결핍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자’ 존재는 늘 ‘결여자’이며 동시에 ‘가능성’과 짝이 되어 존재한다. 인간은 내가 나를 항상 변신시켜 나가고, 바깥으로 던져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존재가 타자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을 수가 없다. 『구토』에서 로캉탱이 대자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상업도시’를 바라보며 나에게 다른 사람들의 삶이 없음을 자각하고 ‘구토’를 통해 그 자각에 대해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웅 교수는 “‘need’라는 말은 필요를 의미하지만 ‘결핍’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어서 결핍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변화, 운동, 미래, 발전은 없다”고 한다. 즉 우리는 결핍을 알기 때문에 필요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또 대자존재의 대자의 번역인 ‘對自’와 ‘Being-for-itself’의 ‘for’의 의미는 자기 자신을 밖으로 내 던지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는 존재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존재ㆍ실재ㆍ현존이라는 의미의 ‘existence’의 어원은 라틴어 ‘existere’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ex(~로 부터)’+’sistere(서다, 존립하다)’의 합성어이다. 자기 자신을 자기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뜻이 본래 의미이다.

사르트르는 초현실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이상적인 상태로, 대자의 가능성을 잃는 법 없이, 동시에 즉자의 존재성과 일치하는 상태, ‘대자-즉자’의 상태를 바랐다. 그러나 인간은 기투가 실현되었다고 해도 기투의 실현과 동시에 가치를 잃는다. 따라서 대자인 채로 즉자인 것, 가치를 보존하면서 실현을 쟁취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실현의 어느 부분에는 가치가 없고, 가치의 어느 부분에는 실현이 없다. 존재와 가치가 일치된 것은 신의 경우이다. 신은 죽어있으면서 살아있는 존재인데, 인간은 이 상태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대자-즉자의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유를 향한 기투를 멈출 수 없고, 가치의 존재성을 바라는 것을 그칠 수 없다. 실현을 기대하지 않는 이 이로움 없는 노력을 두고 사르트르는 ‘인간은 하나의 이롭지 못한 수난(passion)’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대타존재(對他存在, Being-for-Others)’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타인’은 ‘타자(他者)’ 자체로서 떨어져 나간 존재가 아니다. ‘타자’는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인간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타인이란 나와 똑같은 개체로 자유로운 주체이다. 그래서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다.

이 때 자유로운 가능성을 가진 두 주체는 ‘시선’을 주고, 받는 것의 대립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둘은 서로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일종의 투쟁 관계이다. 사르트르는 이 경우 다른 한쪽의 인물은 ‘시선’의 대상이 되어 ‘물화(物化)’되고, 사물과 같은 것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 경우 두 개체의 자유가 공존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이순웅 교수는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나는 지금 방 안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일을 보고 싶다는 유혹에 져서, 열쇠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 나는 열중해 있었고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에서 소리가 들려와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자 누군가가 서서 나에게 ‘시선’을 주며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전신이 부끄러움 덩어리로 바뀐 것을 발견한다. 여기에는 ‘타자’가 서 있었다.”

▲ 이순웅 숭실대 외래교수ⓒ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순웅 교수는 여기서 말하는 ‘시선’이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가 말하는 시선과 유사하다고 한다. 근대인은 자발적 복종을 오히려 자유롭다고 여기는데 권력자가 누구보다 먼저 ‘시선’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내가 타자와 맺고 있는 관계의 실상이다. 이 때 타자는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매개자가 된다. 인간은 여기서 내가 타자와 동화되거나 타자를 초월하거나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 대타존재에 대한 논의는 사르트르의 도덕론을 내포한다.

대타존재에 있어서 가령 남성이 ‘시선’을 독점하고, 자유를 독차지한다면, 여성은 ‘물(物)’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르트르는 “마치 ‘지옥이란 바로 타자를 일컫는 것’이다”라고 했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원형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은 대타존재로서의 인간이 권력구조에서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구도가 사르트르에게는 인간과 인간의 차원에서 서로 시선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려는 개체의 투쟁으로 해석되는 것이고 푸코로 계승되면서 권력과 시선의 주체 관계로 해석되는 것이다.

사르트르 철학의 의의와 한계

 

사르트르는 철학자로서는 유일하게 지난 한 세기 동안 문화아이콘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사르트르의 철학 강의나 그가 행보하는 자리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고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와는 관계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유발시키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많은 철학자들이 사르트르를 극복했다고 하지만 사실 사르트르는 극복되지 않았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나 푸코의 얘기들도 모두 사르트르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주체의 문제도 그렇다. 현대철학에서는 주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관점이다. 구조주의에서 주체는 죽었다고 말했고 포스트구조주의도 주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랭 바디우는 ‘후사건적 주체(後事件的 主體)’라는 말로 어떤 사건 이후 형성되는 주체에 대해 언급한다.

예를 들어 세계대전의 경우 이기적 욕망으로 계산적 이성을 가진 자들끼리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전쟁 자체를 통해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고 비약적인 발전도 없었다. 문제는 이 사건 전반의 모든 내용을 화해와 담합이라는 봉합 없이, 끝까지 놓지 않고 계속해서 재평가의 가능성을 들이대는 것이 중요하다. 폭 넓게 보면 과거 동학혁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의지의 인간들이 이런 일을 수행하고 이들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중심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상은 이들로부터 올 수 있다. 이런 부분 역시 사르트르의 영향이 없지 않다.

사르트르가 얘기한 자유와 초월은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8?~1576)가 그린 ‘마르시아스((Marsyas)’의 표정에 나타나는 듯하다. 신에게 도전하여 살갗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고 있는 마르시아스의 표정은 역설적으로 아주 평온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1905년 북경에서 찍혔다고 전해지는 ‘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cent morceaux)’이라는 사진에서 형벌을 받는 죄수는 전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무언가 초월하여 황홀경에 빠진 듯하다.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상태가 바로 이런 것인가?

이순웅 교수는 사르트르의 ‘대자-즉자적 삶’은 사실 고문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만큼 어려운 사안일 것이라고 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늘 피할 수 없는 선택과 결단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의 의식이 깨어있어 이런 어려운 선택과 결단을 할 수 있는지 그 상태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아마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유의 경지가 아닐까, 말하자면 목적과 본질이 없어 끝이 없는 여행을 떠나는 자유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의 계보 – 화이트헤드의 발생학적 생성[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화이트헤드⑥

존재의 계보 – 화이트헤드의 발생학적 생성[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화이트헤드⑥

 

강사 : 최종덕(상지대 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화이트헤드와 자연철학

 

서양의 철학사에 있어 전통적인 ‘플라톤(Plato)의 존재론’ 관점은 ‘기독교 철학’과 함께 보편적인 실체 개념 위에서 보편의 체계를 설립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근대과학’의 정신은 보편성을 찾아가는 활동으로 이러한 정신에는 인간이 자연에 대해 ‘사물’과 ‘자연’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본능적 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반면 경험론의 철학자 흄(David Hume, 1711~1776)은 원인이나 결과가 본질적으로 내재한다는 인과율을 부정한다. 이것은 흄에게서 관찰되는 주장이다. 흄의 입장을 감안하면 과학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존재론을 상정하는 면이 있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관찰과 경험에 의존해야 한다는 흄과 같은 경험론적 방법론을 가정해야 한다.

20세기 들어오면서 근대과학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수많은 개념의 변화로 뉴턴(Isaac Newton, 1642~1727)과학이 그 안정성과 확실성을 상실하면서 화이트헤드(Alfred Whitehead, 1861~1947)는 뉴턴과학(전통, 근대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한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물질과학의 변화를 인지하고 과학의 개념이 분석의 관점에서 탈피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후에 ‘유기체 철학’의 맹아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라는 책은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로 자연철학의 시대와 형이상학의 시대를 연결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여섯 번째 시간에는 최종덕 교수의 안내로 이 책에서 화이트헤드가 만든 여러 새로운 개념들의 해석을 통해 화이트헤드가 2,500년의 서구사상의 흐름을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고 한 말이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그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화이트헤드의 전공은 원래 수학이다. 1910년경에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과 만나면서 수학에 관한 책을 같이 쓰기도 하지만 1925년 이후 두 사람은 사상적 차이 때문에 결별한다. 이후 화이트헤드는 수학으로부터 물리학생물학자연과학으로 전환한다. 이것을 ‘중기 자연철학시대’라고 한다.(1913~1924, 약 10년간) 그리고 화이트헤드는 1924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데 화이트헤드가 미국으로 간 1925년 이후를 ‘후기 형이상학시대’라고 한다.

서구과학의 특징과 플라톤주의

 

▲ Process_and_realityⓒ 위키피디아

화이트헤드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은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이다. 최종덕 교수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존재’ 개념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을 주문한다. 철학을 포함 신학, 예술, 사회과학 분야에까지 서구사상은 플라톤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플라톤을 넘지 않고는 현대까지의 서구사상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유럽에는 산업혁명 이후 환경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로 자처하던 백인들 세계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한 1차 세계대전의 경우 만해도 그렇고, 완전한 존재로 진보하는 중이라고 믿었던 인간 존재의 확실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여러 문제가 발생하면서 화이트헤드는 이런 것들의 핵심 원인으로 플라톤 철학의 사유체계를 지목한다. 화이트헤드는 철학적 사유구조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플라톤을 넘으려 하였다. 최종덕 교수는 화이트헤드가 수학을 연구하던 시기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1915~1925년 사이에 이런 생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이트헤드는 이 세계가 완전하게 플라톤적인 껍질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뉴턴과학(전통적 근대과학)의 특징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colorless(무색)’, ‘dry(건조함)’, ‘cold(냉정함)’의 표현은 서구 근대과학의 특징을 상징한다. 이 서구과학 낳게 한 것이 플라톤의 체계인데, 이것은 당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이런 흐름을 20세기 2차 세계대전이후에 ‘모더니즘(modernism)’이라고 불렀다. 모더니즘은 세 가지 서구과학의 존재론적 특징과 이것의 기반이 되는 플라토니즘과의 관계를 말한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야 세상을 진정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고 이런 생각들의 기본적인 틀은 이미 19세기 말에 형성이 된다. 그러나 당시 선봉에서 2,500년의 플라톤적인 것을 뒤집을 사람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왜냐하면 서구과학은 기독교라는 종교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체계는 너무나 굳건해서 화이트헤드는 이것을 ‘stubborn(고집이 센)’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깨부술지 솔직하게 말해보자고 나선 사람들이 니체(Nietzsche, 1844~1900), 마르크스(Marx, 1818~1883), 프로이트(Freud, 1856~1939) 세 사람이다.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존재’라는 개념은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존재만이 진리를 담고 있고 이 현상계는 존재의 그림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이 존재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로서 감각적인 것들은 존재의 축에 끼지도 못했다. 플라톤 존재의 5가지 속성은 ‘불변’, ‘유일‘, ‘독립’, ‘절대’, ‘무모순’의 다섯 가지이다. 이런 성질을 가진 것들을 플라톤은 존재라 명명했고 이 존재가 어떤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느냐가 2,500년 서양사상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데아’, ‘헤겔(Hegel, 1770~1831)-절대자’, ‘기독교-신’,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실체’ 등등.

여기에 저항한 것이 니체 계열인데 화이트헤드는 ‘변화’ㆍ’운동‘하고 ‘상관적’이며 ‘상대적’인 틀을 가지는 것을 플라톤의 존재개념에 대체해야하는 새로운 존재개념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을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라고 했다.

19세기 물리학은 확장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통계적인 확률의 측면이 강화되었는데 화이트헤드는 19세기 물리학을 바라보며 플라톤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음을 인식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의 경우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지구와 달 사이의 역학관계를 설명한 것인데 알고 보면 태양계의 수많은 행성들의 사실적 존재는 무시해버리고 이론적 틀의 상황설정을 ‘이상화’시킨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것을 빗대어 플라톤의 존재는 ‘이상화된 존재’라고 했다. 또 열에너지 개념 있어 공기 단위 안의 분자량 6×10²³ 개의 수많은 분자들이 서로 부딪히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이것은 이상화 시킬 수도 없다. 방법은 분자들이 벽에 부딪히는 압력을 통해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열에너지 개념과 같은 것들은 플라톤적 존재론과 그 영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뉴턴과학 전통의 영향 아래의 서구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고 화이트헤드는 이 새로운 존재론을 설명하기 위해 ‘현실적 존재론’을 주장한다.

현실적 존재의 운동성이라는 것은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이것을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용어 ‘파악(prehension)’으로 표현한다. 주체가 대상을 볼 때 대상이 운동 중이라면 나의 간섭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화이트헤드는 ‘과정(process)’이라는 개념 속에 ‘운동’, ‘상관’, ‘상대’, ‘통계’, ‘확률’, ‘분할‘의 개념을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현실적 존재’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실적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 量子力學 )’을 도입한다.

– 원자상태 이하의 세계가 ‘양자역학’이다. 누가 볼 때마다 결과 값이 달라진다는 것은 파동함수로 증명해 낸다. –

‘대상(object)’은 뉴턴의 입장에서는 상호간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은 ‘색깔(colorless)이 없고’, 자연 대상은 감정이 없어 ‘dry’하다. 이상적 상황을 설정하고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 객관적 관찰이다. 객관적인 것은 누가 관찰해도 결과 값이 같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객관적인 것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설명할 때는 ‘양자역학’을 얘기한다.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것은 관찰자가 사물을 관찰할 때 관찰자가 사물에 간섭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성을 가지고 운동하지 않는 고정된 존재는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

 

화이트헤드는 근대고전과학과 뉴턴과학을 비판하기 위해 오류상황을 설정했다. 최종덕 교수는 그것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얘기를 풀어낸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어느 마을에서 해마다 너무 울창하여 두렵기까지 한 검푸른 숲에 처녀를 바치는 풍습이 있다고 치자. 그 숲 속에는 아무도 들어가 본적이 없다. 그러나 고전적 진리의 전통은 확실한 것을 찾으려면 현실세계에서의 감각적인 공포를 피해야 가능하다. 겁이나 누구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숲 속에 한 남자가 용감히 들어갔다. 이 자는 누구인가? 이성을 상징한다. 공포를 회피하지 않는 이성주의. 이로부터 우리의 과학은 발달했다. 그래서 서구를 발전시켜 온 모더니즘, 그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도 모두 이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철학자들은 모더니즘으로는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의견에 모두 합의했다. 서구의 언어는 모더니티로 무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대상을 설명하려면 어찌 할 줄을 모른다. 갈 길을 잃은 것이다.”

최종덕 교수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숲은 외경심을 가지게 하는 숭앙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다. 숭앙과 공포는 꼭 같이 간다. 그래서 과거 권력자들은 숲을 정확히 묘사하는 사람들을 다 잡아서 죽이는 짓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헛갈리는 거다. 사실 우리는 그 숲을 보면서 아름다움과 같은 감성을 느끼거나 과학적 관찰대상으로 여길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보면 인간에게는 아마 두 가지 언어가 있을 것이다. 시적 언어와 과학적 언어가 그것이다.”

최종덕 교수의 말을 정리해 보면 뉴턴의 근대과학 이후의 현대인은 그 숲의 모양을 상상만 하지 숲으로 막상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화이트헤드는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사랑을 할 때는 시적 언어를 써야하고 과학적 대상을 파악할 때는 과학적 언어를 써야하는데 이것을 헛갈려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연애에 있어 스펙을 분류하는 정량화된 과학적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 연애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이것도 이를테면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과학적 언어, 시적 언어는 호불호 대상이 아니다. 이것을 ‘혼동’하는 것이 문제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철학은 ‘내면적 성찰’ +’비판적 실천’인데 어느 하나만 기필하는 것이 문제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예를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다면 구체적인 현상들을 대입시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의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성으로 들어가게 되면 유기체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60조개 세포 하나하나는 서로 무관하지 않고 상관적이다. 그 세포 하나하나는 전체와 ‘섭동(攝動, 의미를 교환)’하고 있다. 기존의 무기체 철학에서는 모든 개체들이 서로 독립적이어서 서로 교통할 수 있는 존재론적(형이상학적) 근거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개체와 개체, 세포와 세포들이 현실적 존재로서 서로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큰 상위 존재와 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철학이며 이것이 ‘유기체 철학’의 큰 배경이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

 

▲ 화이트헤드ⓒ 위키피디아

플라톤에게 있어 창조는 신의 피조물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고백록』에서 “신이 세계를 창조한 이전의 시간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고 한다. 이것을 묻게 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결국 플라톤의 존재론과 기독교 철학의 전통의 바운더리는 신이 창조한 세계 안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금기시한 질문을 정면에서 되묻고 있다.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고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기 이전에는 ‘일자(一者, oneness)’만 존재한다. 일자인 신이 세계를 창조하면서 ‘다자(多者)’가 형성된다> 이것이 전통적인 플라톤-기독교 철학의 흐름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정반대로 여러 구체적인 존재인 ‘a’-‘b’-‘c’-‘d’-‘e’가 만나서 ‘f’가 되고 또 ‘a’-‘b’-‘c’-‘f’-‘z’-‘t’가 만나 ‘u’가 되는, 다자로부터의 또 다른 다자의 탄생을 얘기한다. 서로 교통하면서, 이른바 ‘togetherness’를 형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합생(合生)’이다. 예를 들어 펜-종이-연필 이런 것들이 문구라는 명칭으로 설명되듯이 새로운 연구적 대상이 만들어진다. 다자가 모여 일자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에서 유기체철학의 가장 큰 개념은 ‘합생’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현실적 존재란 개념, 또 창조성 개념 등이 나온다. 이미 있는 것에서 새로운 것 다른 것을 낳는 것을 ‘과정의 생성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창조를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있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가는 것이다. 과정의 생성성은 1910년대에는 ‘becoming’을 썼지만 지금은 ‘prehension’이란 영어표현으로 그 개념이 정착되었다.

화이트헤드의 실재론과 ‘영원적 대상’

 

실재론의 영역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실재론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19세기 후반에서 말하는 실재론과 유사하다. 몇몇 현상학자와 실재론자들이 착시의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 이데아계에 있다거나, 예를 들어 ‘1+2=3’이라는 명제를 가정할 때 이 둘을 더한다는 관계성의 이데아가 있다는 따위의 가설이 그것이다. ‘더한다는 것’도 구체적이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에게 실재적이라는 말은 곧 구체적이라는 의미이다. 구체적인 현실세계를 기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재를 구성하는 존재가 ‘불변’, ‘유일’, ‘독립’, ‘절대’, ‘무모순’이 아니라 운동성과 상관성으로 된 존재라는 것이고 그 실재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이 ‘영원적 대상(객체)’이다. 화이트헤드는 ‘영원적 대상’을 생명체에 비유한다. 생명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신진대사를 하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내부의 자기목적성을 가진다. 자기목적성이 ‘영원적 대상’을 생명이도록 만드는 기능을 한다.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할 때는 신의 의지대로 창조했을 것이고 신의 청사진 설계도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학에서 신의 디자인대로 모든 것이 운동하고 신이 설계한 목적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플라톤-기독교적 존재론의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의 동력 전부이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는 플라톤적인 세계관과는 무관하게 모든 존재 개체(영원적 대상)는 어떤 절대적 개체에 의해서가 아닌 자기 내부의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화이트헤드가 생각한 신은 현실적 존재의 하나이다. 신도 수많은 ‘영원적 객체’ 중 하나인 것이다. 신도 신 만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 개인 ‘철수’가 내부의 ‘합목적성’을 가지고 산다면 ‘신’도 또한 ‘합목적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실재적인 생명성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부분-부분은 모두 내적 연관을 가지고 있다.
② 부분-부분은 전체와 ‘합생(통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세포 하나하나는 별개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내적으로 상관된다. 상관성의 핵심은 자기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고 부속인 존재가 또 새로운 것을 낳을 수 있다.(창조성)

화이트헤드의 ‘초월체(superject)’개념과 합목적성

 

얼핏 보면 자기 목적성이라는 것이 칸트의 합목적성과 헛갈릴 수 있다. 목적은 ‘내재적 목적성’과 ‘외재적 목적성’이 있는데 칸트의 합목적성은 외재적 목적성이다. 그러나 내재적 목적은 ‘자기 합목적성(self-organiz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생명이 기계와 다른 중요한 점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조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기 합목적성과 등치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prehension’하는 ‘주체(subject)’가 있는데 그것을 자신만의 용어로 ‘superject(초월체 혹은 자기 초월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화이트헤드가 주장하는, 초월체가 ‘prehension’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어떤 사건에 있어서 주체와 행위는 항상 같이 있어야 성립된다고 보는 점이다. 언어의 영역에서 볼 때 주어와 동사가 함께 있어야 성립되는 것과 같아서 주어(주체)만 따로 존재하는 방식은 성립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최종덕 교수는 ‘나는 빗속을 걷는다’라는 명제가 있다면 비오는 날, 빗속을 걸어가는 것은 내가 주체이지 비가 주체는 아니다. 비가 오든 말든 내가 거기에 없으면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불교의 화엄사상에도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또 나를 의미하는 주어 하나만 가지고 문장이 성립할 수는 없고 사건이 성립할 수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어(주체)와 관련한 동사 행위를 분리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람 ‘a’, ‘b’, ‘c’가 있을 때 ‘a’가 ‘나는 빵을 먹는다’는 문장이 성립할 때 ‘b, c는 그만큼 더 배가 고프다’라는 문장 성립이 가능해진다. ‘a’의 행위는 또 다른 ‘b’, ‘c’의 상태(행위)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그런데 합목적성에 맞는다는 것은 ‘a’, ‘b’, ‘c’ 모두 배고프지 않게 그 양이 대충 맞아떨어진다는 말이다. 외재적 목적을 부정한다는 것은 이 세상이 작동하는 방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외재적 목적은 없지만 내재적 목적은 ‘superject’가 자기 합목적성을 가지는데 큰 차이가 없다. 그 이유는 생물학적 태생이 같은 균일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표현에 의하면 ‘uniformity’라고 한다. ‘oneness’란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uniformity’라는 말은 자연의 ‘제어성’을 뜻하고 ‘oneness’란 말은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세계의 통일성을 말한다. 어쨌든 주어진 목적성은 아니지만 자기 제어가 되는 통일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 존재들이 목적성에 자기 갈 길을 가지만 마구잡이로 가지는 않는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유기체의 힘

 

▲ 최종덕 상지대 교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생성은 유기체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 힘은 어디서 나올까? ‘superject’는 ‘subject’의 포괄적인 개념이다. ‘subject’가 달성되면 또 다른 ‘subject’가 만들어 진다. 생명이 가진 존재의 순환 논리이다. 존재론에 있어 존재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는다면 플라톤은 이데아, 기독교는 신에서 나온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화이트헤드는 이 자생성의 힘이 어디서 나온다고 딱 꼬집어 정확히 말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최종덕 교수는 답변한다.

왜냐하면 화이트헤드의 존재는 순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 우리가 시간을 너무 공간화 시켜 분절된 시간으로 말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와 ‘prehension’하는 주체를 분리해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도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 중의 하나가 되겠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유기체의 범주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기체만이 아닌 과학적 대상인 무생물도 유기체의 범주로 본다.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subject’는 서로 수평적이다. 이분법적 존재론에서는 ‘존재’가 현상계의 대상들을 지배하고 있지만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을 우리 삶의 정치에 접목시켜 보면, 플라톤과 기독교적인 체계의 논리는 물론 동양도 마찬가지지만 ‘존재’는 대상을 지배하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사회적 절연체를 형성한다. 넘을 수 없는 강을 만들어야 권력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는 ‘현실적 존재’와 ‘영원적 대상’을 연속성의 상관관계로 본다. 그래서 상부의 어느 한쪽이 하부를 구조적으로 지배한다는 정당성이 생길 수 없다.

사실 화이트헤드는 정치적인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1980년대 이후 화이트헤드 연구자들이 정치와 연결시켜 이렇게 해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존재들 사이의 연속성을 ‘nexus(결합)’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자체를 전체에 편제시킨다는 개념이다.

최종덕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강의 말미에 “『화엄경(華嚴經)』 마지막에 나오는 ‘입법계품(入法界品)’의 어린 구도자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도 아마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선재동자가 구도과정에서 여러 높고 낮은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며 얻은 깨달음도 결국에는 어떤 절대 불변하는 깨달음의 경지가 아니라, ‘보현행(普賢行)’이라는 실천의 한 과정에 있는 것이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화엄의 본뜻임을 상기 해보면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비트겐슈타인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비트겐슈타인⑤

 

강사 : 김성우(올인고전학당 연구소장)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현대철학은 크게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를 위시한 ‘실천 지향의 철학’과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를 위시한 ‘해체의 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둘은 기본적으로 기성의 사회제도나 기존 고정관념을 해체하여 새로운 사회제도와 인간의 출현을 도모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둘은 밀접하다.

신플라톤주의를 모토로 주체와 진리의 철학을 주장하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는 니체나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1889~1951), 라캉(Jacques Lacan, 1901~1981) 등을 ‘반철학자(antiphilosophe)’라고 규정한다. 바디우가 말하는 체계의 철학은 진리관에 기초하여 이상적 사회나 국가를 이룩하는 견고함을 보여주는데 니체 계열의 학자들은 이 견고함을 부수고 해체하려 한다. 그래서 바디우는 이들을 기존의 철학 개념에 반(反)하는 철학자라고 하였다.

그런데 언어와 분석의 철학자로 알려진 비트겐슈타인이 ‘반철학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비트겐슈타인은 ‘침묵’을 통해 철학을 이론적 사유에서 실천적 사유로 전환시켰다. 이런 모습은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의 철학에서 받은 영향이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본격적으로 불교와 인도철학을 수용한 인물이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보면 비트겐슈타인의 ‘침묵’이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행위’가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현대철학에서 해체주의는 실체를 비실체화 시키는 것을 중요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철학을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불교적 사유방식을 흡수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그 계열인 비트겐슈타인은 불교의 방식을 서양의 철학에 구현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인도와 불교의 사유체계를 본격적으로 수용하면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다섯 번째 시간, 김성우 교수는 20세기 서구인들이 어떻게 불교나 인도철학을 소화·수용하여 서구문명의 과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그 모습과 의미를 살펴보는 과정이 곧 니체 계열의 철학적 정체를 처음부터 통틀어 확인해보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를 선불교적 스타일과 상응하여 연결시켜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아울러 김성우 교수는 니체 계열의 철학을 탐구하기 이전에 근대서양철학의 기본 골격을 규명하는 공부가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했다.

▲ 비트겐슈타인 ⓒ위키피디아

관념론이 남긴 유산과 헤겔의 지평

 

서양철학은 기본적으로 ‘주체(자아)’와 ‘객체(세계)’ 양자의 구분을 두고 근거로서 ‘신(神)’을 설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것은 서양철학의 기본적 3자 구도이다. 17세기에 들어오면서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가 명제 ‘코기토(cogito, 나는 생각한다)’를 통해 근대적인 사유의 출발점을 열었고 이것은 근대적 자아의식의 출발이 된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도 실체일 수 있다는 생각이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철학 제1원리는 ‘내 생각’이 ‘내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유아론(唯我論)적 색채를 띤다. 이 유아론적 성격에 대해 로크(John Locke, 1632~1704)나 흄(David Hume, 1711~1776) 같은 경험론자들은 인간(주체)이 외부(객체)로부터 감각을 통해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존재로서 수용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의 주장은 인간이 고립된 실체로서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존재임을 인식한 것이다.

하지만 칸트(Kant, 1724~1804)는 수용성을 제외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객체는 주체가 구성한 것이라고 했다. 주체에게 포착되어 주체가 구성한 것은 ‘현상‘이고 주체에게 포착되지 않는 순수한 객체는 ‘물자체(Ding an sich)’이다. 칸트가 남긴 것은 바로 이 ‘현상’과 ‘물자체’의 이원론이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유아론적 사고방식과 경험론자들이 표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으로서 수용성을 강조하는 사고방식에 대해 칸트는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을 주체 지향적인 방식으로 재편하여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성(외부 사물을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의 형식과 지성(수학처럼 바깥사물에 의지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개념적이고 분별하는 사고)의 형식으로 나눈다. ‘감성의 형식’은 ‘직관형식’으로 시간과 공간에 관계하고 ‘지성의 형식’은 시간과 공간에 걸리지 않는 선험적인 형식으로서 ‘범주’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 속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연을 초월한 도덕적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칸트는 ‘물자체’의 세계를 ‘도덕의 세계’라 하였고 ‘객체 사물의 세계’를 ‘자연과학적인 세계’라고 하였다. 이 둘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인데 칸트의 의도대로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피히테(Fichte, 1762~1814)는 주체를 ‘절대자아’로 보아 모든 객체를 자신의 앞에 정립시킨다. 헤겔(Hegel, 1770~1831)은 이것을 주체적인 주체·객체라고 보았다. 반면 셸링(Schelling, 1775~1854)은 자연으로부터 주체와 객체의 통일을 만든다. 헤겔이 보기에는 지극히 객체적인 주체와 객체의 통일이다. 그래서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피히테와 셸링이 남겨놓은 주체와 객체의 통일 관계를 정신현상학을 통해서 정신이 어떻게 발전하여 이 단계에 이르렀는지 밝힌다. 김성우 교수는 이것으로 철학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지평이 완성되었다고 설명한다. 헤겔은 이 지평 위에 철학 체계를 세운다. 주체와 객체가 통일된 존재론적 원리가 논리학이고, 그 원리가 객체인 자연으로 드러난 것을 탐구하는 것이 자연철학, 주체의 영역에서 정신철학과 법·사회철학이 나온다. 그리고 이 둘의 결합을 ‘절대정신’이라 하여 절대정신은 ‘예술‘, ‘종교’, ‘철학’으로 발전한다.

칸트의 ‘선험적 자아’는 아직 실체가 아니었고 피히테의 ‘절대자아’도 행위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실체로서의 자아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김성우 교수는 헤겔이 자연과 정신의 종합을 과연 이루었는지, 헤겔의 ‘절대정신’이 피히테의 ‘절대자아’를 의미하는 것인지의 문제는 아직까지 이견이 분분하다고 하면서 관념론의 지평에서 칸트가 말한 ‘선험적 자아’이건 헤겔이 말한 ‘절대정신’이건 모두 ‘보편적인 이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보편적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자아의 해체와 변혁의 사고

 

김성우 교수는 현대 철학에서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해체하는 세 방향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첫 번째, 이성 대신 육체와 삶의 철학, 생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니체 계열의 ‘해체주의 철학자’들이 속하는 부분이다.
두 번째,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분배 활동을 하는 경제적인 관점과 연결하여 우리 삶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해 보자는 것이 마르크스이고 ‘역사유물론자’의 태도이다.
세 번째, 자아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배후’에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나의 생각과 나의 여러 모습들을 결정하는 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것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이다.

오늘날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전개할 때 앞의 이 세 인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 맥락이 달라진다. 예컨대 프랑크푸르트(Frankfurt)학파는 마르크스 사상의 지평 위에 프로이트를 받아들여서 독일 나치즘의 권위주의와 대중들이 그 권위에 어떻게 굴복했는지를 분석하려 시도한다.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니체를 통해서 마르크스를 새롭게 해석하고 기존과는 다르게 어떻게 선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지젝(Slavoj zizek, 1949~)은 프로이트와 라캉, 마르크스와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점이 있다. 칸트는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하거나 어떤 존재의 존재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지는 가능성의 지평을 찾아보자고 하는데 그것이 ‘선험성의 지평’이다. 이 출발점 위에서 독일 관념론은 출발하고 헤겔은 ‘절대정신’이라는 차원으로 해명한다. 중요한 것은 헤겔처럼 그 물음을 확대해서 플라톤적인 ‘체계’를 말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칸트처럼 여전히 이율배반적인 비판(고진이나 지젝이 ‘시차’라고 말하는 개념)이 중요한가의 문제이다. –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의 경우는 칸트적 사유(니체화된 칸트)를 통해 다시 변혁적 사고의 기초를 놓으려는 반면, 지젝은 비록 부정성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헤겔처럼 주체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니체 계열의 비판과 해체주의 철학

 

오늘날의 서양철학에 있어서 변혁의 두 사고는 이렇다. 중심적인 조직이 필요한가? 아니면 개별적인 분자운동과 분자들의 연합이 더 중요한가? 김성우 교수는 “다시 말하면 사회의 영역에서 집중적인 변혁의 주체를 설정할 것인지, 아니면 분산적인 자유로운 연합을 택할 것인지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니체 계열의 철학이 주장하는 것은 세계의 구성과 체계,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노력들이 경화(硬化)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사회 내부에서 폭력이란 방식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표지판과 같다. 해체주의 철학자들은 경화된 사회와 생각들을 어떻게 탈 실체화 할 것인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니체 계열의 철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① 근거가 꼭 필요한가? ② 주체는 왜 그리도 오만한가? ③ 자연과학만이 진리인가?

이것은 주체의 문제이다. 주체가 객체를 보편적인 이성에 의해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수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바로 탈 중심적인 사고와 논리를 지향함으로써 보편적인 형식의 이성이나 주체-객체의 논의를 버리고 ‘구체적인 삶’과 ‘생명력’에 주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보편적 정신에 가려진 ‘개체성(원자화된 자연과학적 단독자가 아님)’에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인간의 삶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푸코(Foucault, 1926~1984)가 말하는 ‘인간의 죽음’이나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가 말하는 ‘반휴머니즘’은 모두 이 주체가 현대 사회에서 보여주는 ‘반역성’을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중심주의 비판을 통해 ‘누구와 바꿀 수 없는 유일자로서의 나’의 삶에 대한 철학이 바로 ‘실존’하는 개체로서의 ‘나’를 규명하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들뢰즈나 가타리((F?lix Gattari, 1930~1992), 가라타니 고진,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 등이 이러한 해체론적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나 지젝은 아마 이 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철학자들일 것이다.

20세기 ‘선사(禪師)’의 측면으로 보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니체 계열의 쳘학자들에게 보이는 해체론적 입장에서 근거를 제거하고 실체 없는 사유를 한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개념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존주의로서 ‘삶의 철학’을 지향하는 중심에 서 있는 개체인 ‘나’는 부처가 말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인 존재이다. 이런 생각을 자신의 철학에 수용하여 언어와 수학적 한계를 명시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기존 서양의 언어를 해체하여 서양이 지닌 환상을 깨뜨리려는 20세기의 ‘선사(禪師)’로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해체론자를 의미하는 ‘반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불교적인 색채가 많은데 불가의 ‘선사(禪師)’들이 ‘선(禪)’을 중심으로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은 언어의 ‘매개성’을 극복하려는 태도이다. 언어는 우리를 진리에 이끄는 손가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혹시키는 손가락이기도 하다. 선종은 직접적인 깨달음을 추구한다. 선종에서는 전통적인 유학과 불교는 물론 부처도 부정한다. 이런 태도는 서양철학에 있어 기존의 전통적 학설관계를 무시하는 면모라고 볼 수 있다.

‘선사’들의 일화에는 극단적인 표현들도 많다. 김성우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비트겐슈타인도 자신의 삶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비엔나에서 유태계 철강의 부호였던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재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형제들에게 나누어주고 일부를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기부한 점이나, 안정된 대학교수의 길을 거부하고, 당시에 저명했던 지도교수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자신의 저서에 서설을 써준다는 호의를 내용이 오도될 수 있다는 자기 판단 하에 거절한 점, 그리고 스스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논리철학논고』를 참호 속에서 집필한 점 등. 이 순탄치 않은 그의 인생이 자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은 그가 죽음에 직면한 삶을 살면서도 ‘인식하는 삶’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1916년 8월 13일 일기에 “인식하는 삶이야말로 세계의 궁핍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이라고 쓴다. 그러나 “인식하는 삶은 단순히 과학적 언어의 명료화에만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의미에 대한 인식도 추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는 분석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삶과 분리된 언어의 한계를 언급하면서 “세계와 삶은 하나이며 삶이 세계”이기 때문에 ‘세계는 삶의 세계’가 된다고 말했다.

수학과 과학적 언어의 한계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김성우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비트겐슈타인의 주요 저서인 『논리철학논고』의 구조는 7개의 문장으로 압축되는데 가장 마지막 7번째 문장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학과 과학적 언어의 한계를 의미한다.

해체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이나 수학의 연구를 통해 그것들의 한계를 목도한 사람들이다. 일례로 화이트헤드(Whitehead, 1861~1947)는 가장 추상적인 수학적 기초를 탐구하다가 ‘과정철학’이라는 실존철학과 만나는 사유를 보여주었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과학과 수학의 언어가 지니는 한계를 극한까지 가보려 한 사람이고 그 안에서 절대적 진리 명제로서 완결된 인간 존재의 삶이 아닌, 삶의 과정으로서의 삶을 발견한다. –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이나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 같은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이나 수학의 연구를 통해 그 언어의 끝을 가 본 사람들이다. –

형이상학을 뜻하는 ‘metaphysics’는 ‘physics’의 meta이다. 즉 ‘physics’를 이해하지 못하면 ‘metaphysics’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연 속의 존재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 世界-內-存在)’라고 표현했다. 주체란 삶의 과정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뜻으로 서양적 주체에 대한 해체의 한 방식이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은 당시 수학과 과학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고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는 이른바 ‘윤리적 metaphysics’라고 할 수 있지만 칸트처럼 보편의 철학이 아닌 과정으로서 삶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은 ‘physics’의 문제점과 한계들의 극복을 언어의 한계를 명시하는 방식으로 이뤄낸다.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이 “사상 자체의 한계가 아니라 사상을 표현하는 것의 한계를 고려하려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과학적으로 무의미하지만 우리 삶에 의미가 있는 것들은 과학적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한다. 또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가 중요한 이유는 탐구의 대상이 의식이 아니라 언어라는 점을 강조한다. “20세기의 철학은 19세기와는 다르게 의식을 탐구하지 않고 언어를 탐구한다. 언어는 의식보다 더 객관화되고 보편화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버마스(Habermas, 1929~)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동체의 규범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언어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사적인 언어는 없다고 했다. 언어는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도 마지막에 『언어로의 도상에서』라는 책을 썼다. 이와 관련하여 김성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표현하려면 기존 언어의 한계에 맞닥뜨린다. 그렇지만 새로운 언어를 만들 수는 없다. 기존의 오류를 극복한 새로운 언어는 불가능하다. 기존 언어에 대한 ‘경고판’들만 있을 뿐이다. 이걸 언어적으로 잘 보여준 사람이 하이데거와 데리다이다. 비트겐슈타인도 초기에는 러셀의 영향을 받아서 새로운 언어를 구상하다가 한계에 부딪히자 철학적 탐구라는 새로운 작업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논증이 아닌 비유의 방법 : 선사의 화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보통 비엔나 학파나 옥스퍼드 언어철학 등의 분석철학적 전통과 연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일면이다. 다른 해석자들은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1855), 데리다, 선불교(禪佛敎), 아방가르드 예술과 연결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의 철학적 스타일이 대단히 복합적이라 규정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어(Nicholas F. Gier)는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삶의 철학(Lebensphilosophie)’이 ‘언어철학(Sprachsphilosophie)’보다 우선한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매우 중요한 평가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의 언행이 매우 독특함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삶의 세계”나 “언어는 주요한 삶의 형태”처럼 그의 언행은 마치 선사가 화두(話頭)를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또 비트겐슈타인의 ‘인식하는 삶’으로서의 ‘철학적 스타일’은 ‘비유’를 통해 드러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세계는 객관적인 과학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삶의 세계’이다. 이 세계를 위에서 비행하며 바라보는 것이 조망이다”라고 했는데 이런 문장에 논증은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창안한 것은 비유”라고 했다. 논증하지 않고 비유한다는 것은 선사들의 어법이다. “좋은 비유는 이해를 신선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말은 비트겐슈타인과 선종의 선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비유를 통한 의미 전달의 방식은 직접 진리를 상대하고 사유하는 힘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비유의 방식들은 모두 불교를 받아들인 쇼펜하우어에게서 유래한다. 기어(Nicholas F. Gier)는 “비트겐슈타인과 불교(또는 선불교)와의 연관성은 쇼펜하우어를 통해서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트겐슈타인이 즐겨 사용하는 인간과 세계와의 연관성을 상징하는 ‘눈의 비유’나 ‘사다리의 비유’는 바로 쇼펜하우어로부터 차용한 것이다”라고 했다. ‘사다리의 비유’는 사다리를 통해 높은 곳에 올라갔으면 자기가 딛고 올라간 사다리에 집착하지 말고 사다리를 걷어 차버려야 한다는 것. 여기서 말하는 ‘사다리’는 바로 ‘언어’이다. 언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의미가 전달되고 소통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언어 자체를 두고 논증을 하거나 분석하는 방식은 일종의 집착과 같은 것이다.

이런 비유를 통해 그는 이 세계가 객관적인 과학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삶의 세계이고 세계를 ‘조망(?bersicht)’하는 것이 바로 ‘인식하는 삶’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유의 길에 “세계도 계속적인 흐름이며 삶도 계속적인 흐름”이라는 이정표를 세우는데 이 말은 니체의 말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기 스스로를 독창적인 사상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새로운 사유노선들을 창조한 사람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그는 “내가 창안한 것은 비유”라고 한 것이다.

삶의 변화와 방향전환 : 치유의 철학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을 단편이 아닌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단히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이 ‘침묵’의 의미”라고 한다. ‘침묵’은 바로 삶을 드러내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깨달음이라고 할까. 깨달음이란 지극한 앎이고 삶의 의미를 체득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과 과학적 언어의 한계를 경험한 비트겐슈타인은 다시 인간의 삶으로 돌아와 삶의 철학을 전개한다. 그 과정에서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드러내는 데에는 수학과 과학적 언어를 통해서는 불가능하고 ‘침묵’이라는 방식으로 비로소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삶의 변화와 ‘방향전환(혹은 깨달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그의 윤리는 지극히 종교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바뀜이 바로 종교적 깨달음이자 ‘구원(기독교적 구원의 의미는 아님)’이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치유, 즉 구원하기를 원한 것이다. ‘사람이 달라졌다’고 하는 말이 바로 삶이 변화하여 방향전환된 것이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가 『사회계약론』을 집필할 때 귀족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된 것도 이런 의미에서 ‘방향전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런 모습이 현대철학에서 마르크스의 경우 새로운 삶에 대한 사회적인 분석으로 나타나고 니체 계열의 경우 새로운 삶을 향한 결단과 각오가 엿보인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혼합되어야만 삶의 변화에서 사회의 변화 혹은 사회적 구원이 실현될 가능성이 보일 것이라고 김성우 교수는 지적한다.

이어서 김성우 교수는 강신익 선생의 말을 빌려 “진화의학에서 질병은 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질병은 정복해야 할 적이 아닌 순간 적응해 나가야 할 조건일 뿐”이라고 하였다. 즉 건강을 이상적 상태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 변화의 과정으로 보며 질병을 삶의 문제로서 적응해야할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비트겐슈타인이 “올바로 사는 사람은 문제를 비애로, 그러니까 문제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느낀다; 말하자면 그의 삶을 둘러싼 빛나는 에테르로 느끼지, 문제성 있는 배경으로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일종의 ‘삶의 변화’와 ‘방향전환’을 통해 ‘철학적 치유’를 이뤄내는 것으로, ‘철학적 치유’란 삶의 문제로부터 기원한 질병을 사유의 길을 통해 감내하며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을 삶의 문제를 배제하고 오로지 언어분석에만 집중한 분석철학의 대표철학자로 알고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삶과 언어는 분리될 수 없고 우리의 주체는 언어와 연결되어 생겨난 산물이기에 내가 나를 인식할 때 언어를 통해서 인식하게 됨을 분명히 하였다. 특히 과학적 언어에 대한 맹신이 현대에서 인식이나 언어를 삶과 분리시켜 보게 만들어 삶을 왜곡하는 ‘마야(M?y?)’로 기능하며 우리의 의식과 삶을 지배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 대한 탐구를 통해 삶에 대한 잘못된 그림을 버리고 삶의 방향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전체 언어를 갈아 일구어야 한다(하이데거의 말)”고 주장한다.

▲ 「논리철학논고」1922년 판. 출처 ⓒ Wikipedia

침묵의 이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마법으로부터 치유되면 온전히 드러난 삶의 뜻을 명료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이 ‘침묵’을 말한 이유이다. 언어의 문법적 환상으로부터 생겨난 문제의 덩어리들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이 치유이기 때문에 치유 후에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진다. 만약 다시 말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환상에 사로잡히고 말게 될 것이다.

김성우 교수는 이것을 유리에 비유한다. “유리는 아무리 투명해도 유리이다. 사람이 맨눈으로 대상을 보는 것도 이른바 유리와 같은 수정체를 통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투명해도 유리는 유리인 것처럼 삶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는 이상언어(본질적 언어, 순수한 언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침묵해야 마땅하며 또 침묵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삶의 뜻은 스스로 드러나는데 이 직접성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이후에 사다리는 필요 없으므로 버려야 하는 ‘직접성’이다. 높은 지붕 위에서 사다리를 지니고 걸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사다리를 버린 이 직접성은 그래서 신비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신비스러운 것’이라 해도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과학이나 수학도 여전히 맑은 유리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 드러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단순한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이 바로 ‘삶의 방향전환’이고 ‘돈오(頓悟)’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윤리학’이 과학보다 더 중요한 삶과 가치로 나아가는 길을 탐구했다고 강조했다.

비트겐슈타인 사유의 선불교적 스타일

 

비트겐슈타인은 서구철학의 지적 주류인 본질주의, 유아(唯我)주의, 논리주의(형식주의 및 그 한 형태로서의 실증주의)를 모두 비판한다. 지젝이 바디우를 공격할 때 불변의 형식을 지향하는 칸트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플라톤주의의 핵심 또한 논리형식주의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세 가지를 문법적 허구에서 오는 질병으로 본다. 기존의 서양철학을 해체한다는 것의 정수가 바로 이런데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사상가는 모든 연관들을 묘사하고자 하는 소묘가와 매우 비슷하다”고 언급한다. 김성우 교수는 “언어의 한계를 명료화함으로써 논리, 자아, 신과 같은 본질주의적 신학과 같은 문법적 환상을 없애고 직접적 단순함의 ‘일별(Einsicht)’로 삶의 세계의 전체 연관을 조망하고자 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스타일에서 우리는 선사들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벤야민이 말한 ‘짜임관계(constellation;星形)’ 또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연기법(緣起法)’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 언어의 한계에 부딪히며 삶의 세계와 그 뜻이 스스로 드러나는 ‘직접적 단순성’을 추구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스타일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추구하는 선불교의 선승(주로 화두선을 하는 선승)들의 스타일과 닮아 있다.

비트겐슈타인과 선승들은 똑같이 ‘우상’의 파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고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섬광’과도 같은 ‘번득이는 통찰’의 ‘직접성’과 ‘단순성’은 선승을 그대로 빼닮았다.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 삶의 문제는 ‘번뇌(煩惱)’라고 할 수 있는데 삶의 뜻이 언어화 하는 순간 그 뜻은 실체화 되어 다시 문제(번뇌)에 빠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논리철학논고』에서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김성우 교수는 “여기서 드러난 삶과 그 뜻이 신비스럽다는 것은 이 드러난 진리를 다시 새로운 우상으로 세우지 말라는 경고의 표지판이지 언어의 한계를 초월한 이상적인 영역의 존재가능성을 예고한 것은 아닌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비’라는 것은 메타가 아니라 ‘심층’이다. 선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일상이 바로 열반인 것이다. 열반은 현실을 넘어 초월한 다른 영역이 아닌 삶의 깊이에서 나온다. 결국 일상과 깨달음은 같다. 그리고 심층이기에 일상을 긍정하는 보수주의자의 태도에 머물지 않고 선승과 비트겐슈타인은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보수주의자의 일상은 환각에 빠진 일상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이나 선승은 능동적인 자기 긍정에 도달하기 위해 엄격한 자기 부정(사다리 버리기)을 요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의 길이 드러나면 기존의 길로부터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이 변화가 ‘치유’이다. 이런 이유로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침묵이란 그저 철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또는 삶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변화하도록 요구하는 길의 ‘안내판(이정표)’이다. 이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지극히 선불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침묵은 인식하는 삶의 이정표 –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로서 인식하는 삶

 

비트겐슈타인은 『문화와 가치』에서 “철학자들의 언어는 이미, 말하자면 너무 꽉 끼는 구두에 의해 변형된 언어”라고 말했다.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언어는 언어의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파리통으로 그 출구는 언어의 한계에 부딪혀 언어의 마법적 허구가 사라지면 드러난다. 언표 될 수 없는 침묵이 나의 세계를 드러내는 불교적 선수행이며 비트겐슈타인의 일생일대의 소망인 ‘인식하는 삶’의 이정표”라고 한다. 언어적 질병 속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던 삶은 이 질병의 치유 속에서 제대로 된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침묵의 수행을 통해 데카르트적인 안과 밖으로서의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이 사라진다. 안과 밖에 사라지고 삶, 즉 세계가 드러난다. 안과 밖이 사라지면 본체계와 현상계가 사라지고 선험적 주체가 사라진다. 다시 말해 ‘의식’이라는 ‘안’과 ‘감각대상으로서 객관세계’인 ‘밖’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 생겨난 문법적 허구로서의 심리주의 실증주의, 논리주의와 선험주의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든 본질주의적인 신학적 마법이 사라지면 동시에 생생한 삶의 세계의 흐름이 드러난다. 이로써 기존의 철학적 문제들이 사라지고 치유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삶의 문제가 환상일지라도 이를 해결하는 치유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방편적으로나마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트겐슈타인은 그야말로 침묵함으로써 삶의 문제는 철학적 문제가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인식하는 삶’을 겨냥하다가 ‘살아가는 삶’은 놓쳐버린 것은 아닌가?”

김성우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이 비록 삶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결국 인식하는 삶에 머물고 만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일종의 비판으로써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김성우 교수에 의하면 선불교가 지혜의 측면과 자비의 측면이 결합으로써 그 스타일의 완전성이 추구된다면 이 자비의 측면, 즉 사회적 실천이 비트겐슈타인에게는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종교로서의 선불교와 철학으로서의 비트겐슈타인 사유의 차이가 드러난다.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 시도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하이데거④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 시도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하이데거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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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서영화(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서구 사회 삶의 양식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소유의 양식’과 ‘존재의 양식’이 그것이다. 그에게 ‘존재의 삶의 양식’은 그리스도교의 순교자 인간개념이고 그 미덕은 ‘존재하기’, ‘주기’, ‘나눔’과 같은 가치들이다. 이와 대비되는 ‘소유의 삶의 양식’의 전형은 그리스 게르만 이교도의 영웅들이다. 이들의 미덕은 ‘소유’, ‘정복’, ‘승리’와 같은 ‘강함’의 가치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프롬이 얘기한 이교도의 영웅의 가치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철학이 지닌 가치가 서로 유사하다고 보았다. 호머(Homer)의 『일리아스(Ilias)』는 그리스와 게르만의 영웅이나 정복자의 도덕을 미화하고 아름답게 서술한 서사시인데 그리스 게르만 영웅들은 죽음이 도사리는 전장에 언제라도 나가 싸우다가 죽을 수 있는 명예로운 삶의 방식을 택한다.

프롬은 이교도의 삶의 방식이 서구 현대의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과 같다고 했고, 인간은 다시 그리스도교 순교자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반대로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순교자 삶은 ‘노예의 도덕’을 찬양하고 굴종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인간 모델플라톤(Plato)적 인간, 기독교적 인간이다. 니체가 말하던,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을 고양시키는 인간’은 이른바 귀족적인 인간이고 자긍심과 품위를 지니는 인간이다. 니체에게 ‘선(善)’은 인간에게 ‘힘에의 의지’를 고양시키는 모든 것이다.

서영화 교수는 오늘날에 ‘힘’이나 ‘강함’과 같은 개념이 우리 삶에 큰 가치를 줄 수는 있지만 반대로 ‘존재’, ‘주기’와 같은 개념은 주체적인 삶으로 기능하기에 어느 정도 부족하다고 인식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물론 이 가치를 판별하는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각 개인의 몫이기는 하다.

▲ 서영화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 1

 

하이데거는 프롬과 니체가 지향하는 가치의 다른 점을 지적하면서 결국 자신은 니체가 말하던 정복하고 승리하는 힘과 귀족적인 삶의 가치와는 반대의 입장에서 니체를 바라본다. 프롬의 입장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은 니체와 하이데거 둘 사이의 대결로 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전기에는 니체의 입장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니체를 해석하지만 후기로 가면서 자신의 사상과는 대척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서 니체의 철학을 해석한다. 특히 하이데거 이전에는 니체의 철학이 전통 형이상학을 극복하려 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하이데거는 니체 철학이 오히려 전통 형이상학을 완성하고 있으며 플라톤주의의 핵심개념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니체 철학에 대한 하이데거 이전의 해석을 전복하는 사유이다.

니체는 기본적으로 플라톤주의 진리체계를 비판한다. 플라톤주의의 진리는 수학적 진리와 관계하고 수학적 진리에는 시간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는 무시간적으로 참된 것이다. 삶에 있어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확고한 것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편집증적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니체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생의 보존을 위한 지지대나 의지처로 보았고 나약한 자들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서영화 교수는 “만일 성경에서 말하는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라는 구절은 니체에게는 맞지 않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니체는 플라톤의 이데아적 세계관이나 서구 기독교의 세계관은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힘에의 의지를 발산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주의와 서구 기독교는 죽음 이후 저편의 이데아계와 천국을 말하면서 지금 보이지 않는 평화롭고 안락한 세계를 통해 사기를 치는 것과 같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니힐리즘과 새로운 가치의 창출

 

니체는 서구 기독교의 가치를 전부 무의미한 것으로 바꾼 사람이다. 니체는 자신의 ‘우주론적 가치들의 붕괴’라는 제목이 달린 단편 2번(ⅩⅤ145쪽 이하)에서 니힐리즘에 대해 “그것은 ‘최고의 가치들(die obersten Werte)’이 무가치하게 된다는 것이다(sich entwerten).”라고 메모를 남겼다.

니체가 말한 니힐리즘은 새로운 것의 개시를 의미한다. 인간의 모든 가치가 허무해지고 살아야할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무기력의 대명사가 아니다. 니체 이전 플라톤적인 세계 속의 진리는 인간이 개입할 수 없었지만 니체는 이 ‘진리’를 ‘가치’의 개념으로 바꾸었고 인간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니체에게 있어 니힐리즘의 도래는 어떠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 주체에 의해서 비로소 도래되어야 할 것이고 최고의 가치들은 결코 저절로 붕괴되지 않으며, 인간에 의해 투입된 가치들을 박탈하는 것은 새로운 인간이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근거로 삼아 존재자 전체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 니힐리즘의 극복을 주장했다. 무엇보다 가치가 박탈된 후, 세계가 전적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될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결정적인 의지는 인간에게서 발원하는 것이다. 니힐리즘의 극복으로서 새로운 가치정립의 행위 주체는 인간이 된다.

서영화 교수는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조차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창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평한다. 기존의 것을 통해 새로운 기호의 대상만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이나 산업시스템의 혁신이라는 것은 ‘기호의 창출’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가치의 창출’은 될 수 없다.

주체성의 형이상학의 완성 : 니체

 

전통 형이상학의 주지주의적 관점은 사물의 본질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니체는 모든 사물에게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원리는 의지의 작용이거나 혹은 맹목적인 충동의 산물로 보는 입장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연장선에서 니체 사유의 고유성을 확인할 수 있다.

플라톤에게는 무시간적인 이데아의 세계와 일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진리였지만 니체는 생성하는 세계와 일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생의 최상의 가치로 보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니체를 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적 가치를 완전히 무너뜨린 사람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니체가 단지 플라톤주의를 전도하여 위아래를 바꾸어놨을 뿐, 플라톤주의의 핵심개념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바라본 니체의 한계점이다. 서영화 교수는 “기존의 것을 뒤집는 파격은 감행할 수 있지만 그 파격은 기존의 것에 한정되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이데거 이전에는 니체를 형이상학자로 보지 않고 니체의 잠언들을 문학적 이해의 유산으로 보았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기존에 문학가로 알려져 왔던 니체를 서구 근대 형이상학의 완성자로 위치시킨다. 하이데거에게 서구 근대의 특징은 인간이 존재자의 척도와 중심이 되는 시대이고 그것의 완성은 니체에게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니체를 플라톤적 형이상학과는 구별되는 ‘주체성의 형이상학자’로 보았다. 이후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은 니체 철학을 구분하는 큰 분기점이 된다.

니체의 초인에 대한 교설

 

▲ 서영화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니체에게 인간은 새롭게 가치를 정립하는 자이어야 한다. 니체가 말한 ‘초인(?bermensch)’은 세계 속에서 새로운 가치 정립의 주체로서 있으며,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고 명령하는 자라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어떤 인간 종보다도 근본적인 힘을 획득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니체의 이 초인에 대한 교설은 존재자 전체의 척도와 중심이라는 근대 형이상학적 인간상을 본질로 규정한다.

하이데거는 『니체와 니힐리즘』에서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시대는 인간이 존재자의 척도와 중심이 되는 것을 통해 규정된다.”고 하였다.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의 사유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았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런 근대적 사유가 칸트에서 라이프니츠로 이어지고 니체에게서 완성된다.

칸트는 표상되는 세계 이외의 것은 알 수 없어서, 물(物)자체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표상된 세계가 곧 그냥 존재하는 세계이고 이 외부에 참된 세계를 설정할 수 없으며 설정해도 곧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 형이상학자들은 우리에게 표상되고 현상된 것을 참으로 인정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칸트의 ‘공적’이다. 서구 근대인들은 인간의 표상체계에 대한 나름의 확신이 빨랐고 세계를 구상하는데 있어 백지 위에 새로운 문명을 이룩한다는 신념을 이어나간다. 서영화 교수는 “고대와 중세의 인간이 만약 퍼즐판 위에 맞는 퍼즐조각을 끼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서구 근대인들에게는 퍼즐의 원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계획 하는 대로 건물과 도시를 건축하고 산업사회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초인의 교설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의 최고의 승리를 구가한다”고 평했다. 그리고 니체에게서 발견되는 초인의 개념은 에른스트 윙어(Ernst J?nger, 1895~1998)에게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로서 노동자와 군인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오늘날 존재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현실적인 것 전체를 규정하는 형상을 노동자와 군인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이로써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자가 되었고 스스로 이데아와 신의 영역에 자리하게 되었다.

영원회귀와 소멸에의 복수의지

 

오늘날 니체는 누구보다 생성의 철학자이자 생에 대한 긍정의 철학자로서 간주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는 니체의 형이상학적 사유의 결과물로서 ‘동일한 것’은 모든 존재자의 공통적인 본질인 ‘힘에의 의지’라는 존재의 표현이라고 한다. 동일한 것이 ‘영원하게 회귀한다는 것’은 존재의 존재방식을 가리킨다.

니체는 생성과 소멸하는 것에 대해 감당 못하는 나약한 인간들이 여기에 복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초시간적인 이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정립하여 시간적인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경멸했고 또 『파이돈(Phaidon)』에 보면 소크라테스(Socrates)가 자신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구절이 나온다. 니체는 이것을 매우 비겁한 것으로 보았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소멸에 대한 복수 정신과 생에 대한 경멸의 태도인 것이다.

이러한 복수정신을 통해서 내세는 보장되겠지만 우리가 숨 쉬고 사는 이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니체에게서 시간에 대한 긍정은 ‘사라짐이 공허한 것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의욕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다. 하이데거는 니체가 생성은 긍정하지만 함께 결합될 수밖에 없는 소멸은 긍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마치 소멸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영원하게 되돌아오는 것을 긍정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이런 니체 해석은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Dasein)’라는 삶의 방식을 분석하면서 ‘죽음’에 대한 해석에 기인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기본조건은 죽음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앞에 두면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회상하게 된다고 한다. 회상은 과거 자기로의 복귀이다. 이는 통속적 인간으로서 본래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세인(世人;Das Mann)’의 삶에서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인 죽음이라는 것을 통과하면서 ‘일상의 공공의 세계’가 새로운 세계로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경험되는 죽음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고 아무도 경험해줄 수 없는 것으로 철저히 단독화 되어 자신의 삶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에게 죽음과 같은 의미인 소멸은 간과될 수 없는 것이다.

니체의 전통 형이상학의 전복은 생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전통 형이상학의 무시간적인 것, 이데아에 대한 것, 신에 대한 긍정이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니체의 생에 대한 긍정은 소멸을 영원히 회귀하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하이데거에게 소멸은 영원히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라 상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니체가 인간중심적인 철학을 전개했고 전통 형이상학을 비판했음에도 하이데거에게는 여전히 형이상학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이데거가 보기에는 니체에게서 소멸에 대한 적의가 고도의 정신화된 복수 정신으로 변형된 것일 뿐, 니체 자체도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 2 : 죽음, 나약함, 늙음의 의미

 

▲젊은 시절의 하이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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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즘은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근본입장, 즉 무(無)를 그의 본질에 있어서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 이상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입장을 향해서 치닫는 형이상학의 역사일 것이다.” – 하이데거, 『니체와 니힐리즘』 中 –

하이데거는 니체가 사유의 무능력을 보여준다고 했다. 무와 소멸의 의미를 정신화된 영원한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참된 본질에 대해 사유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에서 주요점은 니체의 생의 의지라는 것에서 늙음이나 나약함, 죽음과 같은 가치는 아예 빠져있다고 본 것이다. 하이데거는 죽음과 나약함, 늙음과 같은 가치조차 배제되지 않은 생성을 말한다. 들뢰즈(Deleuze)도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천개의 고원』에서 동일자의 영원회귀가 니체가 형이상학적인 원리로 받아들인다고 비판한다.

서영화 교수는 그 사회가 생의 약동만을 최고의 가치로 표상할 때, 그리고 생과 젊음과 같은 긍정적 힘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죽음, 늙음과 나약함은 존재의 저편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니체 개인의 삶에서 죽음은 생에 부재하는 것이면서도 끊임없이 생을 전체화시켜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하이데거에게 늙음과 나약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이 타자와 다른 여타의 존재자와 관계하면서 서로 빚을 지고 있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게 한다.

니체 철학의 대척점에서 하이데거는 죽음, 나약함, 늙음 등의 가치는 생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즉 잘 사는 법에 대한 성찰을 선사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자기에 대한 이해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 공동체 내에서의 삶에 대한 이해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이교도의 영웅인가 아니면 존재하기, 주기, 서로 나눔의 세계관인가?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아 깊이 생각해봐야할 이러한 질문을 끝으로 이번 강의는 마쳤지만 이 마지막 문제제기는 아마 우리가 우리의 삶 전반을 통해 체득해야할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48%의 좌절, 51%의 승리?; ‘어머니 박정희 혹은 박근혜 앓이’ 사성제(四聖諦)-③[시대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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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4) 도제(道諦): 방법은 없는가?

 

기억의 전이

 

구제금융기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거치면서 우리는 빈곤의 재림이라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공포에 직면한 51%들은 무의식적으로 박정희식 개발 모델을 대안으로 떠올렸다. 지금까지 효과를 봤던 익숙한 삶의 방식을 다시 한 번 적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몸과 정신에 깊숙이 각인된 개발주의적 기억은 성장 모델이 효과적이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의 51%는 필연적 삶의 욕구를 다시 한 번 집단화함으로써 이 환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업식(業識)에 끌려다니다가 호되게 당하고 있다.

현재는 과거가 아니다. 우리가 겪는 현재의 고난은 과거의 어려움과는 다르다. 물론 그것의 겉모습은 실업, 부도, 빈곤 등과 같이 과거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출현한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은 과거와 같이 재화량의 절대 부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재화량의 과도한 잉여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 데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적 공포를 과거의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고, 과거에 효과를 봤던 방법을 다시 사용하려다가 재난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현재가 과거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의 경제 위기를 과거의 그것과 동일하게 해석하게 된 이유는 현재의 빈곤에서 과거의 적빈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이 부당한 기억의 전이는 과거의 독재자를 경제적 영웅으로만 회상하게 하는 기억의 선택을 만들어냈다. 또한 한국의 대중은 이제는 낡아버린 시대의 욕구인 개발주의적 삶의 방식을 다시 한 번 관철해서 그때의 기쁨을 또 다시 맛보고자 했다. 기억의 부당한 전이와 필연적 삶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한 이른바 ‘응답하라 70년대’의 간절한 외침은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추억 놀이를 불러일으켰고 불행하게도 그것은 정치적 세력의 형성으로까지 이어졌다. 기억의 부당한 전이를 교정하고 필연적 삶에 대한 집착의 업식을 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그것은 필연적 삶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적 삶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성취될 수 있다.

 

무임승차를 넘어서

 

필연적 삶에 대한 집착을 끊는 길은 정치적 삶의 양식을 다방면에서 시도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 현재 국민 대중의 관심사는 소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거주의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자식을 바르게 교육시키고, 안온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 경제 구조 혁신을 통한 질 좋은 일자리 확보와 복지 제도의 확충으로 호응하고자 한다. 성장 일변도의 경제 운영의 방식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흐름은 이미 거스르기 힘든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게 분화된 계층 및 세력과의 정치적 합의 과정을 요구한다. 과거에는 이 과정이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나 정당에 의해 추진되었다. 특정 정당이나 대통령에게 권력을 몰아줌으로써 국민의 요구를 대리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리인을 통한 추진 방식은 현대 복잡사회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현대 사회는 단일한 지도력을 토대로 사회적 갈등을 무마시킬 수 있는 단순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기 기획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시민들이 경제 활동을 자기 삶의 중심축으로 삼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민주적 참여를 자기 삶의 핵심으로 여기게끔 하는 정치적 삶의 수행을 요구한다.

하지만 국민국가적 규모의 정치 공동체에서는 이러한 대의제적 방식을 채택해야만 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근대 민주주의의 선진국들은 의회 민주주의와 거대 행정 체제를 결합하는 국가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 체제는 사실 시민들의 자치적 활동과 그 활동의 역사에서 노출된 단점을 극복하면서 형성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의 정치 체제는 시민의 자율적 구성 활동의 오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법적, 행정적 요구에 직면하여 정치 엘리트들의 인위적 구상에 의해 단기간에 만들어짐으로써 시작된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한국 국민의 의식 속에는 자신들이 오늘날의 정치 공동체를 건립한 주인이라는 의식이 희박하다. 더구나 많은 한국인들은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폭력적으로 취급당한 상흔을 간직하고 있기에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정치 공동체는 개인적 삶의 보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수단으로서의 이해되는 경향성을 띤다.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군사 정부 는 국민들이 자율적 시민으로서 공적 활동에 임할 수 있는 공간을 아예 봉쇄했기 때문에 필연적 삶 외에 정치적 삶을 경험하는 것은 소수 예외적 인물들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까닭에 대다수 한국인이 필연적 삶의 방식에 익숙할 뿐, 정치적 삶의 양식에는 이물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자료사진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분명히 민주적 입헌국가 체제를 자율적으로 수립했던 경험이 있다. 1987년 6월 항쟁이 그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우리는 필연적 삶 이외의 공적 시민으로서의 자치의 경험을 끊임없이 늘려나가고 있다. 정치적 삶의 방식이 필연적 삶의 습관을 압도할 수 있으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민주적 의사소통과 합의의 절차를 존중하는 삶의 양태는 온갖 꼼수의 방해를 헤쳐 나가고, 구성원 간의 지난한 이해의 과정을 참아내야 하기 때문에 시민 자치라는 정치적 삶을 중단하고 특정 대리인이나 체계에 임무를 맡기는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민주적 헌정 체제의 수립 이후 한국 국민들이 범한 실수도 바로 이러한 유혹에 빠진 것이었다. 시민적 자치의 발걸음을 이어가지 못하고 대의적 기관과 정치인에게 정치적 업무를 맡겨버리면서 혼란은 가중되었다.

한국 사회의 복잡한 갈등과 요구는 특정 인물, 정당, 행정 기관 체계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 프로그램과 경제 구조의 혁신을 기획하는 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답과 해결책을 시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제안하거나 추종할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한 한국의 대중은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잘 시행되는지 간이나 보려는 무임승차자의 자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은 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주도하는 역할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노력들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는 여건 조성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들은 시민의 적극적 활동을 통해 제안된 대안들을 정부 정책과 연결하는 노력을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자신들의 이념이나 정책 방향과 부딪힌다 해도 정치 엘리트는 그것을 수용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대리인 혹은 대리 기관들이 아무리 순정을 다 바쳐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복잡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의 현실은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켜 버릴 것이다.

현대 한국은 숲의 왕을 옹립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황금가지적 주술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대통령에게 모든 희망과 기대를 걸고 권력을 몰아주는 수동적 해결책을 고수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구원자 신드롬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51%의 승리감과 48%의 절망은 결국 100%의 배신감으로 보복할 것이다. 구원자가 추진하던 개혁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대중의 좌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좌절은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자극하여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회의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낳을 수 있다. 이 움직임은 박정희 신드롬 정도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주의 운동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튀어

 

황금가지적 민주주의, 즉 구원자적 대의제 민주주의를 정치적 삶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적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적 제도의 수혜자로 멈춰 서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활로서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시민들이 공동체적 협력을 통해 새로운 삶의 대안을 마련하고 기존과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하는 노력을 어려워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야 말로 제도가 기획해주는 삶이 아니라 자기가 기획하여 실현시키고 그것의 지속을 제도에게 압박하는 정치적 삶을 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영원토록 남한테 얻어먹는 신세로 남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직접 해먹는 요리가 더 맛나듯이 직접 마련하는 삶의 양식이 더 빛날 수 있다. 제도가 우리가 원하는 일자리도, 교육도, 의료도, 주택도, 문화도 주지 않는다면 직접 만들어 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작고 빈약하며 불편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삶의 대안들은 늘어나기 마련일 게다.

체계의 시선에서 방치된 서민들에게 기존 제도 정치와 경제는 이미 ‘차가운 북쪽’이다. ‘북쪽의 제도’에서 얼어죽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난 앉아서 죽기 싫다. 어차피 버려진 몸, 자치의 삶을 상상하고 구현해보는 ‘남쪽’으로 튈 테다. 모든 버려진 이들의 동참을 바란다.

 

(끝)

 

당신은 진짜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나?[철학자의 서재]

당신은 진짜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나?[철학자의 서재]

샹탈 무페의 <민주주의의 역설>

남기호 연세대학교 강사

 

*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얼마 전 대선으로 국민의 절반은 무척 기뻐하고 나머지 절반은 무척 낙담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든 사회 복지가 정책의 전면에 등장할 것이며, 비리 척결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기에 어느 정도 정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됐든 이제 선거는 비교적 공정하게 치러지기에 정치 행위는 대다수 선거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정치의 개선은 국민 모두의 사회 문화적 책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주변에 늘 전경들을 볼 수 있었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꽤나 좋은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정권 말기가 되면 비슷한 문제들이 터지고 고질적인 병폐가 반복된다.

흔히들 지금한국 사회를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 실질적 민주주의 시대라 부르곤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제 정치적으로 안착한 상태이니 무엇보다 시민 삶과 관련된 민주주의의 내실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 민주화니 교육 민주화니 사회 복지니 반값 등록금이니 하는 말들은 다 비슷한 말들이다. 그러나 내실을 기하는 이 모든 문제의식들은 한 가지 논점을 기정사실로 전제한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민주화된 사회이다. 정치, 문화, 경제,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의사 표현할 수 있고 단체를 결성할 수 있으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말 그런가.

민주주의의 역설

▲ <민주주의의 역설>(샹탈 무페 지음, 이행 옮김, 인간사랑 펴냄). ⓒ인간사랑

일반적으로 현대 민주주의는 근대 정치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근대 정치사상가 중 자신의 이론에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가며 논의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기적인 인민 집회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려던 장 자크 루소조차도 민주정은 역사상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제도라 말한다. 오늘날 민주적이라 평가되는 사상들을 피력할 때 그들은 오히려 공화주의나 입헌주의란 표현을 즐겨 사용하곤 했다.

근대인들에게 민주주의란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를 의미했으며, 쉽게 대중 선동에 휘말려 소크라테스를 죽일 수도 있는 정치 제도 정도였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그렇게 목말라하고 찬양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과연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테네 중우 정치의 위험을 극복했는가. 민주적 자유는 정치적 억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가. 민주적 평등은 사회적 차별을 능동적으로 극복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절차적으로 보장된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더 쉽게 억압과 차별을 조성하지는 않는가.

샹탈 무페는 바로 이 역설의 관점에서 현대 민주주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란 간단히 말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긴장을 의미한다. 언뜻 보면 이상한 말처럼 들린다. 우린 분명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기에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 민주주의의 계보를 좇아가며 힘들게 에둘러 갈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 흔히 문제되는 것들은 자유와 평등 간의 충돌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기업에게 영업의 자유를 먼저 보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골목 상인들의 평등한 상권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하는가. 교육의 평등을 고려해 등록금을 없애야 하는가, 아니면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자유롭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가. 왜 내가 자유로운 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타인의 평등한 복지를 위해 세금으로 내야 하는가. 나는 정치가를 자유롭게 비판한 것뿐인데, 왜 그 정치가는 자신의 평등한 인권이 침해되었다고 고소하는가.

사실 근대의 많은 사상가들이 꺼려했던 민주주의란 표현이 대중적으로 일상화된 것은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한 프랑스 혁명 전후 시기였다. 이 혁명 이념들이 민주주의 정치사상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논의들은 대부분 자유와 평등을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들로 가정한다. 나치에 이론적으로 봉사독일의 칼 슈미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페의 역설은 이 슈미트의 민주주의 이론에 의거한다.

슈미트의 경고

독재에 봉사한 사람의 이론은 물론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해서 전혀 교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슈미트는 나치 당원에 가입하기 이전부터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democracy)는 원래 인민 즉 데모스(demos)의 지배(kratia)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민이 있어야 하고, 이들의 지배권이 있어야 한다. 인민 주권이란 말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지닌 인민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일 수 없다. 주권을 지닌 인민이란 엄밀히 말해 민족적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동질적인 공동생활을 영위해 온 사람들로 국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권을 지닌 인민이란 그런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평등 개념이지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인 개념일 수 없다. 이러한 인민 주권 개념에 기초해서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제한을 철폐하려는 흐름이 있다. 자유(freedom)란 본래 어떤 제한이나 속박으로부터(from) 벗어남(free)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어야 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거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슈미트는 자유주의가 경제적 개념이지 결코 정치적 개념이 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의거해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이 많은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즈음 글로벌 세계 시장이니 인터넷 국제 소통이니 하는 것들도 슈미트에겐 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해치는 흐름일 뿐일 것이다. 막대한 피해 보상금을 떠안고 허덕이던 패전국 독일의 인민으로서 슈미트의 고민은 그러했다.

따라서 슈미트의 결론은 이렇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제한적 인민의 평등한 주권을 해체하는 모든 요소는 제거되어야 한다. 히틀러의 민족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가 인종을 차별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과 잘 맞닿는다. 그렇다고 슈미트의 결론을 무조건 부정할 수만도 없다. 우파든 좌파든 민주주의 정치는 어느 정도 제한된 평등 개념에 기반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가 자유주의를 무제한 허용하게 되면, 국가적 정체성이 뒤흔들릴 수 있고 시민의 공동체적 삶이 파괴될 수 있다. 과도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점점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무페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평등과 자유의 결코 화해될 수 없는 긴장을 슈미트처럼 상호 배척적인 권력관계로만 보지 말고 항상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경쟁적 대립 관계로 보자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설은 결코 조화되거나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 편의 승리만 노릴 수도 없다. 차라리 이 역설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인정하고 상호 다원적 경쟁의 관계로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실 민주주의 진단

민주주의의 역설을 한 편의 승리를 통해서만 해결하려 할 때 생기는 문제점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한적 평등이 극단화되면 북한 같은 사회가 될 것이다. 시민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다른 민족이나 시민에 대한 차별 의식이 기세를 발휘할 것이다. 민족의 평등한 주권 운운하며 매년 북쪽에 풍선을 날리는 사람들의 극단적 민족주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유주의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면 양육강식의 사회가 될 것이다.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입도 자유라는 인권에 의거해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흔히 받아들이는 위험한 자유주의도 있다. 이른바 재테크라는 말로 통용되는 우리 일상의 돈놀이가 전부 그렇다. 집이 기본적인 거주의 평등한 보장을 넘어서 개인의 자유로운 자본으로 인식된다.

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가만 자본가가 아니라 집이나 땅, 어떤 것이든지 팔 수 있는 것을 가진 자는 다 자본가이다. 재산 증식을 위해 대출까지 받아가며 집을 사고 땅을 사고 주식 시장으로 몰려간다. 그 속성으로 볼 때 자본주의가 이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과도한 자유주의는 의회 정치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자유로운 의사 진행 발언으로 끊임없이 회의만 하고 국가 중대 사안의 결정은 한없이 지연된다. 그러다 안 되면 날치기를 한다. 모두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침식해 평등을 무제한적으로 허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무페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자유주의에 침식당한 것으로 진단한다. 특히 시민의 자유라는 수식어로 재산 증식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을 무수히 쏟아내는 인기 영합적 우파 정당이 많은 국가들에서 권력을 잡았다. 전통적으로 복지를 주장하던 좌파 정당들은 이미 신자유주의에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그래서 복지조차도 승리한 우파의 담론이 되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우파의 복지 정책이란 자유로운 경쟁에서 이긴 자가 자비롭게 나눠주는 혜택 그 이상이기 어렵다. 언제쯤 우리는 가난한 자가 자존심을 구겨가며 혜택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복지는 목마르게 간청하는 혜택이 아니라 평등한 시민의 기본권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페의 경쟁적 다원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좌우 경쟁 세력들 간의 상호 인정이 필요하다. 복지가 경제 논리에 의해 희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좌파가 필요하고 자유로운 삶이 인민의 평등 논리에 의해 억압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파가 필요하다. 이렇게 경쟁적 다원주의는 좌우파 정당의 존립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런 구도 하에서 매번 선거를 통해 한 쪽이 권력을 잡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다른 한 쪽을 정치적 심의 과정에서 배제해서도 안 된다.

민주적 합의의 조건

그렇다면, 경쟁적 다원주의에서 민주적 합의는 어떻게 도출될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무페는 민주적 합의 모델로서 존 롤스나 위르겐 하버마스가 아니라 분석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참조한다. 그가 보기에 롤스는 자유주의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에 너무 편향되어 있다. 어느 쪽으로 편향되어 있든 이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권력을 잡는 데에 있지 합리성을 내세우는 데에 있지 않다. 그리고 선거를 통한 권력 획득의 기준은 언제나 시민들의 삶의 형태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있다. 자유주의가 더 옳은지, 민주주의가 더 옳은지, 자유민주주의 말고 더 좋은 체제가 있는지, 이런 문제들은 모두 경쟁적 다원주의의 과정을 통해 결정될 열린 문제이지, 정치 행위 이전에 미리 결정되어야 할 닫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 획득을 본질로 하는 정치 행위는 차라리 비트겐슈타인의 맥락주의에 의거해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에 따르면 경쟁하는 다원적 정치 세력들은 정치 현장에서 시민의 삶을 놓고 언어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더 나은 시민의 삶의 형식을 제공한 쪽이 권력을 획득한다.

그러나 물론 권력 획득과 행사에는 엄중한 책임이 따르며 경쟁 세력들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 늘 심판받는다. 경쟁적 다원주의에서 집권 세력은 언제나 일시적인 승리자일 뿐이며, 모든 합의는 잠정적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결과일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라면 언제나 민주적 대립 자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결정이든지 늘 배제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시적 결정을 절대화해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려 해서는 안 된다. 경쟁자 없는 정치는 항상 독재로 치달았다. 그때마다의 결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정에 반대하는 세력을 경쟁자로서 인정하고 표출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페가 제시하는 문제의식과 그 대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역설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것은 참된 민주주의가 아니다. 갈등과 대립은 민주주의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건강성의 지표인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이론적인 흥미만 생기지 않는다. 지난 선거철에 모 대학 교수는 좌파의 비판을 재비판하는 일방적인 보고서를 학생들에게 과제로 냈다고 한다. 요즈음은 과격한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인터넷을 도배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누구는 처벌받고 누구는 점잖게 계도된다. 비리로 투옥된 전직 대통령 가족은 벌써부터 사면한다고 난리다.

우리에게 한번이라도 건강하고 책임 있는 경쟁 관계가 유지된 적이 있는가. 교육도 직업도 재산도 승자독식이 합리화되는 사회에서 정치마저 날치기를 빈번하게 일삼는다. 우리는 진정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교환가치[자본론 강독]-③

교환가치[자본론 강독]-③

*상품은 다른 것과 교환되는 사용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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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참석 : 이재유, 김선이, 김성심, 나태영, 박종호, 신재길, 신준하, 윤지미, 최혜진

정리 : 신재길(2012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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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도 교육강좌 후속 세미나로 [자본]을 읽고 있습니다. 세미나 팀에서 매번 정리하여 웹진에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앞에서 상품의 유용성인 사용가치를 살펴보았는데 물건은 사용가치만 가지고는 상품이 되지 못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생명에 필요한 공기는 그 사용가치 면에서 보면 비할 바 없이 크지만 아직까지는 교환되고 있지 않다, 즉 교환가치가 없다. 어떤 사용가치가 상품이 되는 것은 교환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상품을 분석한다는 것은 교환가치를 분석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교환가치는 우연적이고 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맑스는 교환가치가 나타나는 현상에서부터 시작한다.

 

“교환가치는 우선 양적 관계, 즉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비율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동하므로, 교환가치는 어떤 우연적이며 순전히 상대적인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상품 자체에 고유한 내재적인 교환가치라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처럼 보인다.”(김수행역 자본1상 45p)

 

?맑스는 이렇게 간단히 교환가치의 현상을 표현한다. 위 문장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교환가치의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교환가치는 사용가치간의 교환비율로 양적 관계라는 것. 둘째로 그 비율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즉 1쿼터의 밀 = x량의 구두약 = y량의 명주 = z량의 금 등등으로? 상이한 상품과 다양한 비율로 교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교환가치는 우연적이고 상대적이며 내재적 가치란 있을 수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우연적이란 외적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나 결과를 말하고, 상대적이란 다른 것과의 비교에 의에서만 규정되는 것으로 다른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상품의 교환가치는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되기 때문에 우연적이고 상대적으로 보인다. 즉 밀은 구두약, 명주, 금 등의 다른 사용가치로 표현된다. 1쿼터의 밀 = 1쿼터의 밀의 등식으로 표현한다면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결국 밀은 밀 자체적으로 그 교환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품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이 보인다.

내재적이란 어떤 결과나 현상이 내적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며 다른 것과의 비교가 필요 없이 그 자체로 규정되는 것이다. 내재적인 것은 다른 것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따라서 다른 것의 변화로 자신이 변하지는 않는다. 이렇다 할 때 다른 상품과의 비교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교환가치는 내재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 같다. 즉 밀의 교환가치는 구두약이나 명주, 금 등의 교환가치의 변화에 따라 그 교환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밀의 내재적 가치는 없는 듯 하다.

그런데 맑스는 이와 같은 상품교환의 현상으로부터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낸다.

 

?*교환가치는 서로 다른 상품의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한다.

 

맑스는 상품교환이라는 현상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교환되기 위한 전제조건에 눈을 돌린다. 맑스는 1쿼터의 밀= x량의 철 이라는 한가지 등식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 교환등식은 등식이기에 어떤 ‘같은 것’을 표현한다 즉 “양자에 공통된 어떤 것의 동일량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것들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는 없다. 사람을 비교할 때 키와 몸무게를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A는 키가 180cm = B는 몸무게가 100kg라고 하면 바보취급 받는다. A의 키 180cm = B의 키 180cm 이든지 A의 몸무게 100km = B의 몸무게 100kg 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등호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을 비교할 때 몸무게나 키가 그 기준이 되듯이 1쿼터의 밀과 x량의 철을 등호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서로 공통된 기준이 필요하다. 즉 상품이 교환되기 위해서는 내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 공통된 내적 기준이 상품이 교환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교환가치가 표현하는 동일한 그 무엇은 자연적 속성일 수 없다.

 

그러나 공통된 기준은 사용가치일 수 는 없다. 상품의 교환은 사용가치의 교환이며 사용가치의 차이를 전제로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연필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꼭 같은 연필과 서로 교환해 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공통물은 상품의 기하학적. 물리학적. 화학적 또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자연적인 속성일 수가 없다” 이런 자연적 속성은 바로 사용가치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나 무게 부피 등등의 자연적 속성은 교환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밀과 철을 에너지로 환원해도 에너지나 무게를 기준으로 교환되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철과 금을 같은 무게로 교환할 바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그 무엇이 자연적 속성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속성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교환가치는 동일한 그 무엇의 표현양식(현상형태)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특정한 상품의 서로 다른 교환가치는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둘째 교환가치는 교환가치와는 구별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김수행역 자본론1권 상 45p)

 

교환가치는 동일한 그 무엇을 전제할 뿐만 아니라 그 무엇을 표현하는 양식이나 형태이다. 이점이 교환가치의 의의가 될 것이다. 교환가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이나 현상형태에 지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그 동일한 무엇을 표현형태로 보여준다. 교환가치는 동일한 그 무엇이라는 내용자체는 아니지만 교환가치가 없이는 그 동일한 무엇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동일한 그 무엇이 내용이라면 교환가치는 형식이다. 일정한 내용은 반드시 일정한 형식을 가지며 일정한 형식은 일정한 내용을 담으면서 그것을 표현한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비유적으로 한 물체의 온도를 상품의 ‘동일한 그 무엇’이라 가정한다면 수은주의 높이는 그 상품의 교환가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온도는 그 자체로 보이지 않지만 수은주라는 다른 물질의 변화로 온도 변화를 나타낼 수 있다. 수은주의 높이라는 형식적이고 수량적 수단으로 온도를 나타낼 수 있다고 해서 수은주의 변화가 온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수은주가 온도의 변화를 나타낼 뿐이듯이 교환가치도 ‘동일한 그 무엇’의 변화를 나타낼 뿐이다.

이제 맑스는 ‘동일한 그 무엇’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푸른 하늘 밑에는 내 살던 집이 있겠지[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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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오래된 풍경

 

기억 속의 풍경은 원색보다는 무채색에 가깝다. 아주 오래된 시간 속의 풍경이 원색으로 재현된다는 것은 그 기억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색깔만이 아니라 어떤 소리, 어떤 풍경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점점 더 뚜렷하게 기억으로부터 떠오른다.

나에게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시간은 유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교실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 주변에는 가지가 늘어져 땅에 닿는 버드나무가 있었다. 버드나무 잎은 처음에 연한 노랑을 띤 연둣빛에서 점점 초록으로 물들어갔다. 연못에 담긴 버드나무 잎을 보는 내내 나는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매일 걸어 다니는 등교 길에서 이른 아침에 만나던 초록빛 군무는 가끔 꿈에서도 만난다. 보리가 익기 전, 바람 따라 춤을 추던 보리들은 초록빛 바다였고, 나는 그 초록빛 군무에 넋을 잃고 서 있곤 했다. 마치 바람마저 초록빛이 되어 그 바람 속에 서 있는 나는 투명한 초록빛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착각에 빠졌다.

나이 들어가면서 힘들거나 분노를 느낄 때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은 나의 마음을 평화롭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땐 참 행복했지.’라는 생각에 젖어들고,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고 나는 살아야 할 의미가 있는 가치로운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고, 그 행복에는 이유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또 다른 행복감을 느꼈다.

유년의 시간은 그런 것이다. 시인 김춘수도 유년의 기억을 천사와 함께 하고 있다. 남녀의 구별이 없고 선과 악의 구별이 없는 시간, 그 시간이 천사와 같은 유년이 아닐까.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시간, 본성과 자연에 충실한 시간이 유년이 아닐까. 따라서 유년은 순수 그 자체일지 모른다. 유년은 온전함 그 자체일지 모른다.

시인 천상병은 ‘뼈와 살을 태우던’ 고통의 기억을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지워낸다. 천상병의 초기 시는 매우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면이 있지만, 고통의 시간 이후에 쓴 시들은 점점 후기로 갈수록 어린 아이처럼 기교가 없어진 단순?간결한 미를 지닌다. 천상병의 아내 목순옥은 약을 먹기 때문에 단순해진다고 말했다지만, 천상병은 본성에 충실하고 자연에 가까웠던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했다고 본다.

어떤 인위성도 없고 강압적인 힘도 없던 그 시절이 유년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본성과 자연성을 하나씩 상실해 갈 때마다 유년의 기억도 하나씩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가라앉는 것이리라. 그러다 지극한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그 시간의 끝에서 나를 바라볼 때 유년의 기억은 마치 거짓말처럼 하나씩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고향을 노래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의 시는 유년의 기억으로 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에 돌고 도니

부평 같은 신세가 되어

어언간 60여년이 되었구나.

세월은 빨라 유수와 같으니

내 청춘은 흘러흘러

머리에는 벌써 백발이 휘날리네.

아, 고향에 가고 싶다

보고 싶기도 하다

못 가는 신세가 되었으니

저 푸른 하늘 밑에는

내 고향 내 살던 집이 있겠지.

 

집옆에서는 올해에도 살구나무에

활짝 핀 살구꽃이 피었겠지

마당 뒤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꽃이 떨어지면

바가지로 주워담아

실로 꿰어서 목에 걸던

그 어린 시절이 그립구나

장독 뒤에는 목단꽃이

활짝 피어 그 옆에는 나리꽃이

돌담 위에는 호박 덩굴이 올라가서

금년에도 익은 호박이

주렁주렁 누렇게 매달렸겠지.

삽짝거리로 나와서

돌다리를 건너

사랑하는 모교에 가고 싶구나

칠계단을 올라가면

우편에는 벚꽃나무와

좌편에도 벚꽃나무가

엉겨 붙어서 봄이 되면

벚꽃이 장관이더라.

사계단으로 올라가니

매실 열매가 무르익어서

벌겋게 익으면 많은 사람 보시기에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칠계단으로 올라가 서니

큰 운동장에서는

우리가 뛰놀던

그 모습들이 떠오르네.

운동장 옆에는

전부 벚꽃나무가 줄을 서서

너무나도 아름답더라.

친구들과 사진 찍던

그 추억이 떠오르며

선생님과 기념촬영도 했건만

모교가 잊혀지지 않고

사무치도록, 꿈속에서도 그리워지네.

 

언제나 가보리

언제나 보고 싶어

먼 산만 바라보네.

-<고향> 전문-

 

9번째 시 [고향]에서 할머니는 고향을 회상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말과 말 사이에 으레 있던 침묵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 보며 천천히 말을 하던 평소와 달리 나를 보며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봐라, 김선생. 니 감꽃으로 목걸이 걸어봤다 했제?” “니 감꽃 냄새 기억하나?” 할머니는 나의 맞장구에 씨익 웃으며 시를 읊었다.

특히 시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과 동네, 그리고 학교를 정확하게 묘사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그 곳을 걷고 있는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한 구절 한 구절 시를 읊어 나갔다. 할머니의 시를 받아 적는 동안 잔잔한 호수 가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왔다. 기억 속의 고향은 꽃밭이었다.

할머니는 시 [고향]에서 ‘가고 싶다’ ‘그립구나’ ‘아름답더라’는 표현으로 고향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갈 수 없는 마음을 “저 푸른 하늘 밑에는/내 고향 내 살던 집이 있겠지.” “언제나 가보리/언제나 보고 싶어/먼 산만 바라보네”라는 표현으로 묘사했지만, 그 그리움마저도 할머니에게 찾아온 작은 행복을 어쩌지 못했다.

시 [고향]에 묘사되는 여러 종류의 꽃은 “사무치도록, 꿈속에서도 그리워지”는 고향이 할머니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말해 준다. ‘집 옆에는 활짝 핀 살구꽃’이 있었고, ‘마당 뒤에는 감꽃’이 가득 떨어져 ‘바가지로 주워 담아 실로 꿰어 목에 걸’고 다녔다. ‘장독 뒤의 목단꽃과 그 뒤에 피어 있는 나리꽃’ ‘돌담 위를 오르는 호박 덩굴’에는 ‘누렇게 익은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유년의 집은 이제 갈 수 없지만 할머니의 기억 속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삽짝거리로 나와서/돌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면 그 곳은 벚꽃천지였다. “벚꽃이 그렇게 많았어요?” “하모. 요요 칠계단이 있었거든. 조게는 사계단이 있었고”라며 말을 이어가는 할머니는 마치 나의 손을 잡고 그 계단을 오르는 듯이 보였다. 두 팔을 넓게 벌려 한 손으로는 “여게 칠계단이 있는 기라”하며 허공의 한 지점을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는 허공의 어딘가를 가리키며 “여게는 사계단인데, 계단을 오르다 서서 돌아보면 온통 벚꽃천지제.”

뭉툭한 할머니의 손끝을 따라 좁은 방안 가득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큰 운동장 한쪽에서는 어린 할머니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뛰고 있었고, 계단 위에서는 또 다른 어린 할머니가 학교를 가득 덮고 있는 벚꽃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어린 할머니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벚꽃들은 우리가 앉아 있는 방안 가득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덥던 여름 날 할머니의 집을 처음 방문하던 그날, 나를 맨 먼저 반겨준 것도 꽃이었다. 대문도 없고 울도 없는 집에 울타리 대신 피어 있던 코스모스가 생각났다. 그 마을은 꽃이 없는 집이 많았다. 많은 집들이 마당을 시멘트로 개조하였고, 마을 곳곳에도 산속 시골마을치고 꽃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입구 교회 옆에 있던 키 큰 야생화가 그나마 눈에 띄었다. 교회 예배실 앞에는 화분에 꽃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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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문이 열리다

 

할머니의 유년 기억 속에 유난히 꽃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잊고 있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꽃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발병을 알고 난 뒤부터 할머니의 삶에서 꽃은 사치였는지 모른다. 발병과 함께 시작된 할머니의 고통 속에서 꽃은 더 큰 상처로 남았던 게 아닐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는 꽃으로부터 할머니는 상실의 아픔을 더 크게 느꼈을지 모른다.

시인 김춘수는 꽃을 보며 환희와 행복을 노래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가지의 끝에서 수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시간의 운명을 보았다. 김소월은 저만치 홀로 피어 있는 꽃으로부터 끝없이 순환하고 있는 시간의 흔적을 찾았다. 삶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꽃은 아름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할머니에게도 유년의 꽃은 깊은 절망과 메울 수 없는 상실의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 즉 쾌락은 매우 간단하다. 보고 싶으면 보고, 보아서 좋으면 즐기면 된다. 간단한 쾌락 대신 고통이 자리 잡는 것은 자아의 붕괴를 의미한다. 더 이상 내가 나를 즐겁게 바라보지 못할 때, 나 자신으로부터 행복을 찾을 수 없을 때 우리의 자아는 이미 붕괴되어 있는 것이다.

자아의 붕괴는 지극한 심적 고통을 동반한다. 고통은 그것과 연관된 것들을 무의식의 세계로 밀어 넣고 문을 잠가 버린다. 이 고통의 끝에서 유년의 기억이, 꽃의 기억이 되살아나 그 기억을 이야기하며 지금 현재를 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무엇이 60년 동안 굳게 닫혔던 무의식의 문을 열게 했을까?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아니 오히려 꽃의 기억이 할머니의 얼굴에 홍조를 가져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야야, 김선생. 벚꽃나무가 얼매나 큰지 모른다. 그 큰 나무들이 전부 꽃을 활짝 피우면 학교는 꽃밖에 안 보이는 기라. 이리이리 계단에 서서 손을 내밀면 꽃이파리가 손바닥에 떨어진다. 후 하고 불면 또 날아가는 기라.” 나도 할머니를 따라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바닥을 떠난 벚꽃 하나가 내 손바닥 위에 앉는 환상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