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 46-내포량과 외연량[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46-내포량과 외연량
1)
앞에서 수에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단위[Eins]와 개수 그리고 총수[Einheit]¹이다. 정량에서 단위는 그 정량에 외면적인 것이지만, 정량은 이 단위의 반복을 통해 규정되므로, 자기 관계하는 것이다. 개수는 단위가 모인 집합이므로 불연속적이다. 총수는 이런 단위를 전체로 총괄하는 것이므로, 연속적이다.
주1: Eins, Eeinheit와 같은 표현은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대체로 Eins는 일자 즉 정량을 이루는 단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때로는 문맥상 어떤 수가 고유한 개별자로 존재할 때를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7은 하나의 일자이다. 또 Einhiet도 대체로 총수를 의미하는데 어떤 때는 차라리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상 더 적합할 때도 있다. 혼란이 있지만, 문맥에 따라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헤겔에서 개수도 연속성의 측면이 있으며 총수도 불연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개수가 불연속적인 것의 집합이라 할 때, 세어지는 각 일자는 서로 같은 것이므로,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 같은 것들끼리는 연속적이니, 그 점에서 개수도 연속적이다. 마찬가지로 총수가 내적으로는 연속적인 것이지만, 다른 수와 비교해 보면 단적으로 서로 구별되는 것이니, 이런 점에서 총수는 불연속적인 것이기도 하다.
2)
앞에서 말했듯이 질의 범주에서는 질이 서로 관계하여 통일되면서 대자 존재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 대자 존재는 양적인 것의 출발점이 된다. 양의 범주에서는 그 반대다. 여기 양에서 양적인 것이 서로 관계하면서 질적인 것이 다시 출현하는 과정이 다루어진다. 이처럼 질적인 것이 다시 출현하는 데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 내포량의 개념이다.
헤겔에서 내포량은 외연량과 비교된다. 양자를 구별하는 것은 바로 양적인 것을 규정하는 일자 즉 양적인 것의 원리이며 그 자체 규정성의 원리인 단위다. 외연량에서 단위는 자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다. 어떤 것의 크기는 자기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그것을 거듭 반복하면서 재어질 수 있다.
그 단위가 자기 자신이므로 여기서 규정성은 자기 관계에 머무른다. 이런 자기 관계는 아직 타자를 통해서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 아니며 추상적인 자기 관계다. 여기서는 어떤 크기는 그 단위가 몇 번 반복된 것인지가 확정된다. 이것을 통해 개수와 총수가 주어진다.
그런데 내포량은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말해지는 대로 감각의 정도를 말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사물은 경도나 강도에 따라 비교될 수 있다. 이런 경도나 강도는 자기 자신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비교될 수는 없다. 이것은 자기와 다른 것과 비교돼서 더 크고 더 작은 정도를 지닐 뿐이다. 철기는 청동기보다 더 강하다. 서로 부딪히면 청동기가 깨어지기 때문이다. 유리보다 다이아몬드는 더 큰 경도를 지닌다. 다이아몬드로 유리를 자를 수 있다.
이처럼 내포량은 오직 다른 것과 비교된 크기므로, 더 강하고 더 약하다는 비교를 통해서 서열을 매길 수는 있지만, 과연 그 정도가 몇 배나 더 큰가를 말할 수는 없다. 다이아몬드 이런 비교를 통해 서열상 20번째라고 한다면, 여기서도 개수와 총수가 나오니 이것도 하나의 정량이기는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서열상 첫 번째 사물(예를 들어 유리라고 하자)의 20배나 더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헤겔은 외연량은 배중성[Vielheit]을 가진다고 말하며 내포량은 가중성[Mehrheit]을 가진다고 한다. 즉 전자는 몇 배인지를 알 수 있지만, 후자에서는 더 많은 것인가 많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외연량에서 개수는 ‘자기 내에서의 개수’이고 내포량에서 개수는 ‘자기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개수’라고 한다.
“외연량과 내포량은 정량의 동일한 규정이다. 그 구별은 외연량은 개수를 자기 안에 가지며, 내포량은 이를 자기 바깥에 가진다는 데 있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3)
여기서 ‘자기 바깥에’라는 말은 타자와 비교된다는 말일 것이다.
“정도는 특정한 크기지만, 집합이거나 단지 자기 내에 머무르는 더 많은 것[Mehreres]은 아니다. 정도는 더 많음[Mehrheit]인데 더 많은 것은 단순한 규정 속으로 복귀한 더 많은 것[Mehere]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0)
여기서 ‘자기 내에 머무르는 더 많은 것’과 ‘단순한 규정 속으로 복귀한 더 많은 것’이 비교된다. 그 의미를 새겨 보면, 전자는 많고 적음이 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후자는 많고 적음이 세어질 수 없다는 의미다. 외연량은 세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내포량은 그저 비교될 뿐이다.
3)
어떻게 본다면, 내포량은 양적인 것에 아직 불완전하게 도달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처음에 단순히 다른 것과 비교를 통해 측정된 것들도 엄밀하게 자기 관계하면서 몇 배나 되는지가 측정되고 외연량으로 규정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체온은 처음에는 감각의 정도였다. 손으로 재면서 내 체온보다 높으면 뜨겁고 내 체온보다 낮으면 차갑다. 그러나 이제 체온계를 통해서 재어지면서 얼마나 높은지, 몇 배나 되는지가 수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꾸로다. 즉 내포량은 외연량보다 한 단계 발전된 것이다. 왜냐하면, 외연량은 추상적인 자기 관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만, 내포량은 이제 타자와 관계하면서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통해 규정된다는 것이 질적인 것이 지닌 의미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외연량은 타자와 비교되는 것이지만, 사실 이 타자는 자기와 같은 것이다. 즉 타자는 예를 들어 경도나 강도와 같은 일정한 측면에서 비교되는데, 자기와 타자는 공통으로 이 경도나 강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이 타자와의 관계는 제한적인 의미를 지니며, 여전히 자기 관계라는 추상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자기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이제 정량은 다른 정량과 관계해야 한다. 즉 서로 다른 정량인 길이와 무게가 서로 관계하면서 비중이 출현한다. 관계한다는 것[Verhaltniss]은 곧 비율[Verhaltniss] 또는 비례를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비중의 정도는 두 개의 정량이 관계 또는 비율이다.
최근 과학에 대한 실망에서 과학적 사고를 비판한다. 현상학적 철학의 계열에서는 과학적 사고는 양적인 것을 토대로 한다. 과학적 사고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양적인 것을 통해 개별적이여 구체적인 질적인 차이를 제거한다. 양적인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하는 사유가 만들어 낸 것이므로, 자연을 왜곡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과학적 사유는 자연을 파괴한다. 나아가 오늘날 시장 사회에서는 개인이 지닌 개성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오직 개인의 양적인 가치만이 중요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소외되며, 평범하고 진부한 존재로 격하되고 만다.
이런 관점에서는 질적인 감각의 정도로 규정된 내포량(흔히 감각량)은 질적인 것이 여전히 보존된 것으로서 추상적 자연과학을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감각의 정도를 측정하는 예술가는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과학자가 된다.
헤겔은 다른 의미에서 이 감각량 즉 내포량에 주목하는데 이를 통해서 추상적인 양으로부터 감각적인 질적 차이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관점은 다르지만, 동일하게 양적인 것의 극복을 내포량에서 찾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내포량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 관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기 관계하는 것이면서 그 자기 관계가 타자를 통해 측정될 뿐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내포량을 유사한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한다.
“외연적인 타자 존재를 더는 자체 내에서 갖지 않고 이를 그 밖에서 가지며, 그 자차 존재에 자기규정으로서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일자로서 수는 개수의 무차별성과 외면성을 배제하고 자기 자신을 통해 외면적인 것에 관계하는 것으로서 자기에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무차별한 규정성이 정량의 질을 이루며 즉 그 자체에서 자기에 외면적인 규정성으로 존재하는 규정성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정도는 그러한 내포성이 더 많음이라는 것 아래 있는 단순한 크기 규정이다. 이 크기 규정은 각각이 단지 자기 관계하며 동시에 서로 본질적으로 관계하는 상이한 규정이다. 그러므로 각각은 다른 것과의 연속성 속에서 자기규정을 갖는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이 자기 외면성이 내포량이고 단순한 규정성이다. 다시 말해 자기 관계하면서도 동시에 그 규정성을 타자 속에 갖는 것이며 그 규정성은 그 자체에서 자기에 외면적인 규정성이다.”(논리학 초판, GW 11, S. 133)
“정도의 각각은 자기 관계하는 크기 규정으로서 다른 크기 규정에 무차별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자체에서 이 외면성에 관계하며 다만 이 외면성과 매개해서만 그 자신의 본질로 된다.”(논리학 재판, GW 11, S. 134)
좌우의 이원론 대 민중의 다중화 [천 하룻밤 이야기]
좌우의 이원론 대 민중의 다중화
2025 10 23 상강(霜降), 이틀간 서리 내릴 듯 찬바람이 불더니 어제부터 다시 가을이다.
*
이제 나이든 몸으로 히말라야 산맥에서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오를 수 없겠지만, 개마고원을 거쳐서 백두산(2,155m)을 걸어서 오를 수는 있을까? 어느 산이든 산을 오르는 길은 매우 많다. 가까이에 북한산이 있고, 그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서쪽에서는 은평구에서, 동쪽에서는 도봉구에서, 북쪽에서는 송추로부터, 남쪽에서는 정릉에서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네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길들 사이사이에 오를 수 있는 길들도 여럿 있다. 그럼에도 북한산 꼭대기(836미터)는 하나이다. 왼편에서 오른 이는 오른편에서 오른 이와 같은 다른 길에서 보아온 것들을 이야기를 한다. 삶도 그럴지 모른다.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살아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살아온 터전을 어느 날 떠난다는 것은 숙명이며, 사람이란 ‘세상을 떠난다’ 것은 하나의 이법으로 통한다. 산꼭대기에 올랐다가 산을 내려오고 다시 오를 기회가 있지만, 세상을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떠남은 필연이며 숙명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잡다한 이야기들은 산을 오르는 길들이 달라서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 것과 닮았지만, 한번 세상을 떠나면 되돌아 올 수 없고, 각각이 살았던 이야기는 새로운 반복처럼 다르다. 오르고 내림의 반복과 살아가는 반복은 전혀 다른 반복일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반복이 남긴 것은 역사이며, 되돌아 비춰보는 통감(通鑑, speculation)이 있고, 평결론자들(les sententiaires)은 삶을 확장하고 풍요롭게 할 것이다.
*
“산다”, 사람, 살림, 삶, 살(육肉)을 이야기 하면서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터전에서 반복하는 방식들이 다르다. 그럼에도 자연의 이법에 따라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는 반복은 같은 반복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침에 나서서 일터에 가서 일하는 노력들이 다르지만 매일 노력을 더하여 자기 일의 집중과 강도를 높이며 살아가는 반복은 하루의 순환, 한해의 순환과 다르게 느껴진다. 동일하게 느끼는 해와 달의 순환과 달리,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방식에서 반복의 차이는 개인의 삶의 선호와 열정에 따라 다르다. 사람들은 자연과 터전에서 공통점을 공유하기도 하고, 각각의 역량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을 지라도 동일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다양한 방식이 공통용어로 잘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동일반복으로 일반화의 방식에서 하루, 한달, 한해에 맞는 용어들을 만든다. 그럼에도 용기 있는 인간과 정의로운 인간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각각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큰 틀에서는 같아 보인다고 할 때, 삶에서 일반적인 기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위치가 다르듯이 개별적 특성에 의해 각자는 남들과 다른 지위와 위상을 갖는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연을 다루는 방식에서 공통성을 유지하면서 질서 속에서 살아가지만, 각자의 위치의 차이가 있고 게다가 삶에서 공동체라는 제도 안에서 역할에 따라, 다른 배치와 지위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아마도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고대 그리스철학 이래로 다른 방식들을 보았을 것 같다. 한편으로 자연을 도구로서 잘 이용하려고 과학으로써 지식을 만들려고 했고, 다른 한편 자연 속에서 또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양식으로써 지혜를 찾고자 했을 것이다. 이렇게 구별하는 것은, 이미 인간이 사물 또는 물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런 차이를 알게 되면서, 외부의 자연에 대한 이중적 관심도 있었고,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신의 삶의 양식에도 이중적 또는 다양한 양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관심 또는 지식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이중화 또는 다양화는, 자연의 순환성과 인생의 일회성의 차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회성으로는 순환성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회성이지만, 세대를 거쳐 가면서 새로운 탄생의 일회성과 더불어 순환성을 이어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순환성이 지속인지 단절의 도약인지를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 도 없었을 것이다. 이즈음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연의 순환성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일회성을 해결하려고 했을 것 같다.
자연의 순환성을 하루, 한달, 한해라는 구별을 한꺼번에 생각 속에 담을 수 있는 방식을 찾으려 했다면, 순환의 운동을 수(數) 또는 길이로서 표시하는 방법이, 또는 상징으로서 공통 문자화 또는 기호화가 당연히 요구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이를 언어로서 표현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인류가 신석기에 들어서서 생산물을 축적하고 교환하는 과정에서 각 부족들이 나름의 표시들을 가졌을 것이라 한다. 이러한 표기방식에서 기호화하고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일반화의 규칙들을 생각해내었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일반화에서 사물에 대한 것과 삶의 양식에 대한 것 사이에 차이로서 양면성이 있었을 것이다.
소통과 교환이, 이런 양면적 역할에서, 보다 넓은 공동체 안에서 일반화의 방식을 창안해 나갔을 것이다. 제도도 일반화의 토대 위에 성립할 것이다. 이런 일반화들이 인간의 상상작용과 더불어 인간으로서 후대까지 공유할 수 있는 기호화의 체계를 만들고, 다음 세대들에게도 또는 다른 터전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사유세계라고들 한다.
물론 문명의 시작으로 아나톨리아지방의 신석기 문명에서 포획의 방식이 생겼다고 하고, 농경문화에서는 인더스 문명의 영향이 기본이라고 한다. 그래도 바빌론 문명과 이집트 문명들에서도, 동양에서도 황허문명과 요하문명에서도 전승이 있었다고는 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들의 실재 활동과정에서 세는 것과 재는 것이 있어왔고, 또는 독해가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주문과 같은 암송의 언어들은 세대를 거쳐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인간이 두뇌의 용량의 확대와 구강의 발달이, 흔적을 남기지 못했던 구술언어의 단계를 거쳐서 문자화할 수 있는 언어로 역사 속에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현대인들이 독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문자기록의 전승에서 보아, 그리스 철학사가 흥미 있는 사유의 전개 과정으로 남아 이어지고 있다고들 한다. 그리스 사유에 양면성이 있다고 한다. 공간과 시간, 정지와 운동, 페라스와 아페이론.
*
사람들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좌파와 우파의 대결처럼 이항 대립으로 보는 관점을 고착시켰다고 여긴다. 21세기에도 이런 사고의 이분법적 방식이 당연하고 또한 편리한 것으로 여긴다. 하물며 이들은 이분법을 인정하면서 조화 또는 중용의 방식을 소중히 여겨, ‘하늘을 나는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고들 한다. 사람은 두 다리로 걸으면서 오른발과 왼팔이 왼발과 오른팔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한 몸 속에서도 운동 방향을 달리하는 방식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분법 또는 이원론에 익숙한가. 수에서 10진법과 60진법이 있음에도, 이분법의 방식은 두 팔과 두 다리의 걷기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나중에 사회라는 제도와 종교라는 교리가 지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이런 이분법적 추리가 논리적 사유의 배중율에서 왔다고도 한다. 배제, 배척, 부정, 적대.
생각의 폭을 넓혀진 시대 이전에, 동양의 천지인에서도 인간이 소중하다고 한다. 어릴 때 들었던 하도와 낙서로부터 주역을 이해해야 군자로서 세상사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현 시절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에서부터 산수의 계산법을 배우고 또한 도형의 기하학을 배운다. 그리고 물체들을 더 정확하게 다루기 위해 좌표기하학과 미적분을 거쳐서 허수의 등장까지 배운다. 그럼에도 또한 공동체의 삶에서 전례의 방식에 따라 규칙과 규율을 익히고, 사물을 다루는 법칙과 원리를 깨달아가면서, 세상에 나서서 장하고 훌륭한 인간이 되는 도덕을 닦고 인성을 함양한다. 이런 방식들은 현실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방편들이리라. 그 방편들을 학문이라는 체계에 맞추어 생각하는 추리와 추론이 점점 복잡해진다는 것도 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수와 도형을 익히고, 더불어 노래와 운동을 통해 건강과 신체를 안존하는 방식을 배우고, 나아가 사회생활의 필수로서 제도와 체제의 규율들을 익힌다. 이런 과정에 대해 학문은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하고, 삶의 보존에서 편리하고 유용한 방식들을 공유하게 한다. 그 공유하는 지식을 다음 세대에도 체계적으로 전수하여 공동체와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크게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현대 산업혁명까지 지식의 전승은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라고 착각하게 하였던 것 같다.
공동체의 체제와 사유하는 체계를 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은 편리하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방식이 질서와 안녕을 가져다 준 것인가, 또는 사람들이 자주 말하듯이 인간에게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쩌면 불협화음처럼 계속되었다. 정합성이 모자라더라도 체계 안에서는 지식인들뿐만이 아니라 민중도 터전을 유지하며 살만하다고 여겼다. 즉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이용 방식을 공유하고, 나아가 제도를 만들어 인간들 사이의 공통성과 개별성을 더 잘 보증해 주고 있다고 여긴다. 이런 제도와 체제가 이원론으로 구성된 또는 구축된 세상이 타당한가라는 물음을 고대 그리스로부터 죽 있어왔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세계를 이항대립 구도로 여기고, 또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에서는 거의 극단적인 대립구도를 드러냈다. 대립의 극단에서 자기편이 아닌 자들을 반국가세력이라고 하고 제거해도 된다는 착란에 빠지기도 한다.
우선 팔과 다리의 운동을 상기해 보면서 어떤 힘들의 운동에서, 양편이 조화와 중용을 이루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의 발달과 역사의 과정으로 보아도, 건전한 사유에서는 좌편이 51% 우편이 49%로 이루질 경우에 조화와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다수인 대중이 소수자처럼 살고, 소수이면서도 권력이든 재산이든 많이 소유하는 자들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의 발전이래로 이런 지배층이 대중을 강압하는 점에서 전도된 사회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전도된 사회에 혁명을 설파하는 사상가들과 혁명가들이 있다. 사유 활동의 진솔한 전개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혁명이후로 자연 안에서부터 사회로 그리고 세계 공동체로 나가는 전복적 사유의 시대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위마니스트가 아니라 위마니떼르, 리베랄리스트가 아니라 리베르떼르라고 부른다.
*
좌편과 우편의 이분법적 사유는 사회적 삶의 편리함 때문에, 앵글로색슨계에서는 유용성과 실용성이라 하면서,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사유의 깊이 또는 심층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즉 자연 속에서 삶의 숙명성을 다시 깨우치기 이전에, 사람들은 편리와 이익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동양에서도 천지인에서부터든 하도낙서로부터이든, 음양, 남녀, 천원지방 등의 이분법의 바탕 또는 기원으로 하나인 태극을 두기도 한다. 하나로부터 이원성과 4상, 8괘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화에서도 조화와 중용을 통해 세상이 평천하를 유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동양 사회는 이원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입말과 문자에서는 백성이 하늘이라 한다. 그 바탕이 태극이라는 것이 사변적이라면, 백성은 실재성일 것이다.
이와 달리 고대 그리스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영향을 입은 두 갈래의 사상이 아테네에 들어왔다고 한다. 자연의 탐구로서 이오니아학파의 사상과 수학(산술학)에 근거를 우주의 원리로 삼은 엘레아의 사상이 들어왔다. 여기 외적 자연과 사유 사이의 이중성에서, 다시 이것들 생각하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가 제기되었다. 이 탐구가 인간 또는 사유하는 권능으로서 영혼(프쉬케)이 의식 속에서인지, 의식의 대상인지에 대한 문제는 남아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철학이라고 하지만, 그 문제는 변형되어 중세의 신학에 이르렀다. 신학에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며, 인간은 신앙 속에서 진실한 활동을 한다고 믿었다.
신의 완전성과 세계의 원리 등을 추리에 앞서 보편성으로 인정한다고 했더라도, 사물들에서 또한 세상사에서 부딪히는 사실들과 환경들은 완전하지도 않았고, 원리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신과 천국, 천사와 계시라는 부분들을 젖혀두고 라서도 현실에서 경험적 사실들은 다른 영역임이 드러났다. 계시와 언어의 전달은 별개이라, 인간이 만든 기호들과 개념들의 잡다함에 통일성과 법칙성을 규정하는데 목적성이 먼저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판단들에서 명제들의 용어들에 대한 기호표기와 사물의 조작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알았듯이, 삶의 표현들에서 종교적 환희나 공동체의 즐거움과 개인의 훌륭함 등이 다른 영역임을 알았다.
많은 논제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에 의견들을 모으는 평결문들은 선전제에 의한 추리들이 아니었다. 13세기에 프란체스코파 학자든 도미니크파 학자들은 평결문들에서 구체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황청 교리성은 신과 신국 등 근원적 항목들을 대해 문제 삼지 않는 한에서, 파리와 옥스퍼드 등의 대학들에서 현실적 논의에서 이중성의 대립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한편을 들고 다른 편을 말살하는 방식은 종교재판과 마남사냥에서 여전히 남아있었다. 르네상스시기까지 종교재판으로 브루노를 산채로 화형 시켰고, 갈릴레이에게도 지동설을 외부로 발설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미 세상 사람들은 신에 의해 창조된 자연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물질세계가 어쩌면 신의 창조와도, 그리고 인간의 추상적 추론의 담론과도 다른 탐구 방법의 필요를 알게 되었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는 시기에, 데카르트는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세계에 대한 자치적 특성을 발표하려고 했다. 그런 데카르트가 두 개의 실체를 내세우면서, 자연 또는 물질의 탐구 방법이 따로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근대철학의 여명이라 불리는 방법론은 두 가지 다른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럼에도 사유와 연대하는 자연의 작용방식을 인식의 한 방향(양식)으로 여기고, 자연과 물질의 운동 현상도 사유와 상응하여 설명하려하였다. 그러나 두 사유 속성을 다루면서, 소박한 유물론자들이 다루는 물질과 관념론자들이 사유 대상의 일부로서 삼는 물체 사이에 간격이 점점 확인되어 갔다. 이로서 생명 있는 존재는 자연 속에서 산다는 인식이 “빛들 세기”에 도래할 것이고, 19세기에는 생기론과 프퓌케에 대한 학문이 전개될 것이다.
인간의 사유는 자연 밖에서도 또는 자연 안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인식의 추론체계와는 다른 생성의 양식이 있음을 알아챘다. 안과 밖이 없는 심층 세계가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리라. 다시 기원에 대한 성찰에 힘입어서, 자연을 탐구하는 기본적 요소 또는 기본 단위로서 수, 점, 원자, 이외에 스토아학자들이 말했던 정령들(프쉬케)도 한 몫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계몽기라고 하는 18세기 “빛들 세기”에서는 빛이 기본요소로서 떠올랐다. 빛의 무한 진행?에서 무한대라는 생각은 이미 브루노가 하늘의 뚜껑을 열어서 무한대를 펼쳐놓았었다. 그 빛을 통해 사물과 물체를 구별하고 있었듯이, 빛의 직진과 무한 확장과 같은 수학적 추론과 원리들을 생각하였다.
자연에서 좌표 설정과는 다른 양태인 자연의 자치성에서, 생명체가 물체처럼 자동인형 같은 것이 아니라, 생명있는 물체의 자치성과 자율성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데카르트 좌파라고 불릴 유물론자들은 그 자율성 속에, 물리학자들이 물체의 충력을 보듯이, 생명체의 조직화에 생기 또는 에너지를 보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도 겉으로 보기에 이원성을 기준으로 하는 두 갈래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자연의 물질과 물체들의 성질들을 위계적으로 무기물, 식물, 동물, 인간 (천사, 신) 등으로 보는 이해하는 방식을 떠나서, 각각의 물체들(이미지들, 형상들)이 발생적으로 다른 과정에서 생성의 길을 걷는다는 것 알게 되었다. 자연학자인 뷔퐁이 생성의 과정에서 논리학의 항목들과는 다른 항목(용어, 명사)들을 설정할 것이다. 게다가 생명체의 조직화를 다루게 되면서 생리학도 성립한다. 인간의 감각과 감정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생명체 안에서 영혼(아니마든 프쉬케든)의 위치를 다루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은 세계의 체계와 제도의 체제를 세운 정신의 성찰과는 다른 길을 열게 될 것이고, 생물학과 진화의 사유를 열기에 이를 것이다. 이원성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지식체계의 관점이었으며, 과거의 잠재적 이원성은 이를 상징으로 교회제도와 사회제도에 투사했던 것으로 여겼다.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물질의 내부의 탐구로 이어지면서, 인식의 역량이 지적 체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 일반화의 방식에서도 내재적 발생의 연관을 고려하게 된다. 지식의 발달과 도구의 발달은, 빛들 세기에 “백과전서”에서 밝히듯이 오랜 과정에 점진적 발전을 거쳐서 민중이 공유하는 기술발달의 확장으로 생산력이 높아지고, 시민의 정치의식도 활발해졌다. 심층으로부터 나온 자연의 자치성 이상으로 인간의 자율성은, 교권과 왕권에 대항하는 제3신분이라는 인민을 등장시켰다. 물질성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와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은 상위의 두 권력을 무너뜨리고, 인민의 자치와 인민의 지배권을 행사하려 하였다. 우주와 자연에서 의식의 이원성이, 제도와 체제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이분법적 사고로 전환되는 듯이 보였으나, 전승의 선전제와 체계는 공고하였고,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국가 권력이 교권과 왕권을 대신하면서, 정치적으로 좌우를 구별하여 좌편에는 인민을 대변하는 세력이, 우편에는 기존 권력을 유지하려는 왕당파들이 있었다. 1830년 이후로 산업화의 과정에서 왕당파를 대리하는 자본가들이 우파가 되고, 자본에 예속되는 노동자가 좌파가 되었다. 맑스는 대혁명에서 인민의 성장이, 정치경제학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지배가 이루질 것이라고 역사의 발전을 설명했다. 인간의 사유 방식에서 심층과 상층의 이원적 대립, 다음으로 의식 활동에서 인간에서 물질과 정신 또는 영혼과 신체의 대립, 빛을 통하여 자연의 체계와 자연의 발생의 대립을 잠시 거쳐서, 삶의 터전에서 좌와 우의 대립은 사회정치적 활동에서 대립의 양상으로 이어졌다.
천오백년의 종교이든, 이백년의 형이상학이든 자연의 대하는 태도에서 대립에서는 인간이 막연하게 우월하다는 심정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지식의 확장을 통해 자연의 주인으로써 지위를 차지하려고 했으나, 칸트는 그런 지식이 없음을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이라고 밝혔고, 사회에서는 지식보다 도덕과 공감이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산업화의 발전에서 지식을 도구로 삼는 체제는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고, 사회의 갈등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칸트이후의 산업화 과정에서는 국가 제도와 체제에서 소수의 상층과 다수의 심층 사이의 대결은 심화되었다. 다수의 좌파와 소수의 우파의 구별은 뚜렷해졌고, 부의 사적 축적자들에 의한 산업화과정은 불평등의 해소하지 못하고, 다수의 인민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치경제적 좌우의 대결은 19세기 이래로 산업화 과정에서 점점 굳어져갔다. 상품자유주의 세계에서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이에 대립하는 인성자유주의 세계에서는 인도주의를 내세운다. 우리 남녘에서는 개인의 사적 이기심이 사회의 공공성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시하는 체제를 굳혀갔다. 21세기 임에도 급기야, 야만적 상품자유주의자들이 인도주의자이며 인성자유주의자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처형하려는 쿠데타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
탐구 방식이든, 사유 양태이든, 사회 제도이든 좌우의 구별은 사실상 불편한 것이다. 철학은 이런 이분법적 추리의 사유(로고스)를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서양 철학사에서 의식의 측면에서 2500년 과정을 상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표면에서 심층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유의 측면에서 상층의 소수의 자유에서 표면의 부르주아의 자유로, 그리고 심층의 인민의 자유로 확장되어 간다고 한다. 인민의 자유, 안양정토세상, 평천하.
고대의 사유에서는 상층의 정지가 먼저였고, 르네상스 이래로는 표면의 이분법과 이중화 현상이 있었고, 근대에 와서는 심층의 발현과 발생의 사유로 인민의 성장이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20세기 중반에 새로운 변화로서 유전자(DNA) 구조의 발견과 디지털의 발명으로 새로운 사유가 전개되고 있다. 이런 사유에는 상하와 좌우라는 사방으로 방향설정을 생각할 수 있고, 이를 세분화하여 팔방도 생각할 수 있고 확장으로 36방과 삼십육계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양방이든 36방이든, 방향의 중심을 공의 중점 또는 초점처럼 생각하면, 진자운동처럼 수많은 움직임이 마치 주변에서 중심으로 그리고 중심으로 주변들로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갈릴레이는, 사람들이 추의 진자의 운동에서 중간점이 겉보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라도, 그 중간점이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힘(충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충력이 물체 속에 있다. 이런 움직임이 지구의 자전과 관계있다고 증명한 것은 1851년의 푸꼬(Léon Foucault, 1819-1868)의 추(le pendule)이다. 운동하는 중간 또는 중심이 하나이라고 기호화할 수도 있지만, 이 하나가 수도, 점도, 원자도 아니다. 움직이는 힘 또는 에너지, 나아가 퀴니코스-스토아학파가 이야기한 소마-프쉬케(물질영혼)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인간에 내재하는 영혼의 작동에게도 상사성이 있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편리와 안락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것도 근대성일 것이다. 그런데 편리와 안정의 생산력은 산업사회의 한계에 이른 것 같은데, 사적이익 추구자(트럼프포함)들은 그 기술과 도구를 여전히 전쟁과 공포를 조장하려는데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의 발달이 소통의 방식을 바꾸었다고 하지만, 철기시대 이래로 문자화가 우선하며, 간접화법을 통한 지배방식은 여전했다. 디지털의 발전은 직접화법과 이미지전달(상상작용)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명의 발달의 한계에 이르러서 문화의 다양화가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다양성의 발현이 우선은 사유에서보다 문화 예술에서 전개되고 있다. 문학, 영화, 스포츠, 음악, 회화, 공예, 건축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기술의 발전에서 생산력의 변화에 인공지능(AI)이 첨가 되면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만큼이나 전쟁 도구로 전환도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터전 또는 개인도 다양화되고 있어서 다양체의 사회가 이루지고 있고, 전지구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그럼에도 이항 대립이 낳은 불평등과 억압은 여전히 너울을 드리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 탐만치, 즉 탐욕자와 사적 이익추종자들과 치졸한 파라노이아 환자(종교병환자)들이 문제다. – AI가 입말과 문자화를 일방통행을 넘어서 이미지들을 상호소통 시키면서, 다방향으로 빛의 속도로 소통하는 누리소통 시대에서, 제국의 지배방식과는 다른 공감과 공명이 이루어질 탈영토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 들뢰즈가 순수했다고 해야 하나.
열 달이 지나도록, 계엄과 내란 획책의 집단적 사고는 여전히 우리의 상층에서 그리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 빠르게 널리 이미지의 전송과 소통에서도 고착된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누리소통도 이항대립처럼 편가르기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이 문자화에서 용어들이 상층 편향되어 있고, 편집증의 세뇌가 깊이 작용을 하고 있는 현실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라고 말하지만 구체제와 구시대의 관습과 습관이 사유방향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재성이 내재성으로부터 발현이라고 하지만, 그 발현이 현실성의 형해화 된 이미지와 관계 속에서 고착화되는 것을 우선은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는 것이 현실의 관계에서 숫적으로 다수 임에도 지배방식에서 소수자일 때, 삶의 터전의 변화와 혁명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분법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개인이 실천하는 방식으로 우공이산이라고 하기 에는 다양체의 덩어리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을 직감한다. 시대는 입말의 소통과 더불어 이미지의 소통으로 다양체의 덩어리가 회오리처럼 커져가는 것이 분명하다. 그 덩어리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고 나가는 모습을 그 파도 속에 있는 물방울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한계 때문일까?
프로이트 위상적 사고에 따른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에서, 상징계의 영향과 더불어 사회를 생각하는 이들은 교회권력, 국가권력, 학문권력에 복속되어 자들이라고 하지만, 그 상징계를 거의 실재성으로 여기는 신앙인들, 부역자들, 이원법의 인식 추종자들이 여론과 문자화를 통해 체제를 견고히 하려 한다. 이런 고착성에 대해 중심의 운동성과 다양성이 체제 안에서 작동하여 변화를 실행하려고 하는 노력에는 강도가 축적되어가고 있다. 누리소통을 통한 공감과 공명이, 삶의 터전에서 먹고 자는 문제에 대한 해결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 소통은 상상계의 그림(이미지)과 같은 잠재성으로 그칠 것이다. 이 상상작용으로서 실재성이 현실로서 누리 소통 속에서 잠재성에서 표출되고 생성되는 것에서 의미를 새롭게 할 것이다.
벩송이 정태적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폴리네시아인들이 자연에 정령의 힘과 같은 ‘마나’가 있다고 믿었다고 하는데, 이는 인류에게 공통하는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토착민들의 종교성은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에도 있다는 것이다. 벩송이 인용한 예에서, 어느 부인이 승강기를 타려고 했을 때, 승강기문이 열렸으나 발판이 없었는데, 마담이 한 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순간에, 안에서 갑자기 앞에 검은 물체(사람)가 뛰쳐나와서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살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서 상상작용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론인 이영희 선생은 어느 글에서 함경도 지방에 ‘어덕서니’라는 귀신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려움이 닥칠 때 갑자기 앞에 나타나는 검은 기둥귀신과 같은 것인데, 위로 올려다 보면 점점 커져서 무섭고 아래로 내려다보면 점점 작아져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줄어드는 것을 설명하며 어떤 심리학자는 인간에게 귀신처럼 등장하는 검은 물체 또는 저승사자에게는 발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다보면 상상계가 줄어들어 사라지고 실재를 직시하게 된다고 한다. 이데올로기로서 상층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에서도 종교에서도 가상성은 여럿으로 그리고 과정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은 마치 포퓰리즘의 대중의 확대처럼 커져 간다. 그런데 그 밑을 또는 심층의 실재성을 들여다보면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심층의 발현으로써 어느 부인의 일화는 효과가 있다.
AI를 통한 누리소통을 통한 실재성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어덕서니의 아래를 보듯이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벩송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상상계의 이미지를 기억의 재인식의 방식으로 다시 보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작동은 실재성과 현실성의 연결에 의한 조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벩송에 이어서 들뢰즈는 상상작용(imagination)에서 형태로서 등장하려는 이미지(image)의 어렴풋한 형상화(마나, 검은 물체, 어덕서니, 저승사자)의 효과에 머물지 말고, 내재성의 실재 생성과 발현을 심층에서부터 깊이 재인식할 것을 권한다. 그 실재성의 발현이 무생물이건, 식물이건, 동물이건, 어덕서니건 그 발현은 삶의 표출로서 탈주선임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런 재인식에서 또는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인민의 권능과 그 강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자는 것이다.
(8:13, 58UMDD)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45-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5-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
1)
헤겔 논리학을 다루면서 논리학의 구조가 판단 형식 즉 범주가 전개되는 방식과 상응한다고 말했다. 그런 상응에 비추어 보면, 정량은 양적 판단 형식 가운데 첫 번째 단칭 판단 형식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겔은 질을 다룰 때도, 존재와 무의 상관관계를 통해 현존을 끌어냈다. 존재와 무는 현존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관계 즉 ‘관계있음(존재)’과 ‘관계없음(무)’를 말한 것일 뿐이고, 실제 질적 판단 형식은 현존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현존이 질적 긍정 판단에 해당한다.
이런 전개 방식은 양을 다루는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앞에서 다루었던 양적인 것 즉 연속성과 불연속성은 정량의 일반적인 상호 관계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양적 판단 형식이 처음 시작하는 것은 정량에서부터다. 질적 판단 형식에서 현존에 해당하는 것이 양적 판단 형식에서는 정량이다.
2)
정량과 수의 관계는 앞에서 말했다. 정량 속에 이미 수적 관계가 들어있다. 수는 나름대로 하나의 정량이며, 다만 다른 정량을 표현하는 기호로 사용될 뿐이다. 즉 이 정량에서 이미 존재하는 수적 관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량과 수의 관계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설명한 상품과 화폐의 관계와 같다. 상품 속에 이미 교환가치의 관계가 들어있다. 화폐도 하나의 상품이지만, 다른 상품의 교환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즉 화폐는 상품의 교환가치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수에 관한 심리주의자는 수를 인간의 셈이라는 주관적 활동으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그것에 대해 논리주의자는 반대했는데, 왜냐하면, 수는 알다시피 초월성 또는 객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플라톤은 수를 이데아로 여겼다. 양적인 존재 즉 정량은 이런 이데아가 분유 되어 나온 것일 뿐이다.
그러나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의 객관성은 마치 화폐가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마르크스는 금의 자연적 속성에서부터 화폐의 본성이 나오는 것을 일종의 물신화로 여겼는데, 마찬가지다. 수의 객관성을 수가 지닌 고유한 속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면 이는 물신화에 해당한다. 상품에서 화폐가 나오듯이 수의 객관성은 정량에서 나온다.
3)
정량은 수로 대변되므로 헤겔은 정량을 논하면서 자주 수를 끌어들인다. 정량을 다루는 2편 2장 A 절은 아예 ‘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A 절에서 헤겔은 수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것이 바로 외연량과 내포량이다.
흔히 수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연속적 수와 불연속적 수다. 연속적 수 또는 크기(정량)¹를 다루는 학문이 기하학이다. 불연속적 수 또는 크기(정량)를 다루는 것이 산술학이다. 고대에 기하학과 산술학은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기하학은 주로 이집트 그리스에서 측량술로부터 발전했다. 산술학은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에서 발전했다. 인도가 수 0을 발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주1: 헤겔은 양적인 것[Quantität]을 크기[Größe]와 구분한다. 크기는 규정성을 지니므로 정량[Quantum]에 해당한다.
그런데 수가 자연수에서나 분수에서처럼 불연속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일찍 발견됐다. 피타고라스학파에서 비밀로 여긴 무리수의 발견이 여기에 속한다. 무리수는 수이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연속적 수다. 이 수가 서로 분리된 유리수 사이에 끼어들면서 수는 단순히 불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임이 알려졌다. 수를 불연속적인 것으로만 여겼던 피타고라스학파가 무리수를 숨기려 했던 것은 이 발견이 고대에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하학은 공간적 크기를 다루고, 여기에는 수가 개입하지 않는다. 기하학은 변이나 각, 길이의 같음과 다름을 다룰 뿐이다. 물론 기하학에서도 삼각형이라든가, 사각형 등에서 보듯이 수가 부분적으로 개입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다루는 대상에 관한 것이지, 기하학이 다루는 것은 여전히 같음과 다름일 뿐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기하학적 방식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아라비아에서 대수학이 발전하면서 피타고라스 정리가 대수학적으로 증명됐고 나아가서 근대 해석기하학에서 대수학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면서, 기하학적 크기 역시 불연속적 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이 인정되기에 이른다.
대수학의 발전은 기하학의 연속적 크기가 불연속적 크기를 가지며, 거꾸로 산수적 불연속적 크기가 연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수를 이렇게 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로 나누는 것을 의미 없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헤겔은 정량을 다루면서 당시 흔히 다루었던 방식대로 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로 나누지 않고, 외연량과 내포량으로 나누었다.
4)
이제 외연량과 내포량, 외연적 크기와 내포적 크기의 관계를 다루기 전에, 이 두 가지 크기의 공동 지반이 되는 정량을 살펴보자. 정량은 개념적으로는 양적인 것이 규정성 또는 한계를 지니면서 출현한다.
이런 정량은 구성하는 요소는 우선 일자다. 이 일자[Eins]는 정량의 수를 셀 때 출발점이 되는 것 즉 기본 단위다. 이 단위를 무엇으로 하는가는 자의적이다. 물의 양을 재기 위해 우리는 부엌에서처럼 바가지로 잴 수도 있고 실험실에서처럼 비커로 잴 수도 있다. 전통적 단위인 ‘냥’으로 잴 수도 있고 국제 표준 단위인 그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어느 단위를 사용하든 자의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 고유한 객관적 단위는 없다. 헤겔은 어떤 정량을 재기 위한 단위를 그저 ‘일자’라고 한다.
정량을 단위로 재면, 두 가지 계기가 출현한다. 헤겔은 이를 개수[Anzahl]와 총수[Einheit]라고 한다. 이 두 계기가 수를 설명하는데 아마도 헤겔만이 제시한 독특한 개념이다. 우선 개수는 어떤 단위가 얼마나 여러 번 반복됐는가를 말한다. 20의 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이 스무 번 반복돼야 한다. 즉 20에는 1이 스무 개 들어있다.
20개 속에 들어있는 1 즉 일자는 서로 동일하다. 그 중 어느 것도 1일뿐이다. 또한, 이들은 서로 동등하다. 세 번째 1과 네 번째 1은 세기 나름이지, 달리 세어서 세 번째를 네 번째로 세고 네 번째를 세 번째로 세더라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20개 속에 있는 일자는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일자는 아무리 빨리 세더라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어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총수[Einheit]를 보자. 이것은 1을 스무 번 반복해서 나온 ‘20’이라는 수가 다른 수 예컨대 ‘9’라든가 ‘21’과 같은 수와 비교해서 가지는 의미다. 이 20은 개수로 보면 스무 번 반복한 것이지만, 총수로 보면, 다른 수처럼 고유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엄지와 검지는 개수로 보면 1과 2지만, 총수로 보면 각자 고유한 것 즉 엄지와 검지다. 엄지는 머리를 누르는 것이고 검지는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다. 스무 개라는 개수가 고유한 스물이 되는 게 바로 수다.
20이 스무 개라는 점에서는 불연속적인 것의 집합이다. 그러나 20을 총수로서 고유한 크기로 보면, 그 속에 모여 있는 20개라는 분리된 것들은 의미가 사라지고 전체는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것 즉 연속적인 것이 된다. 그러기에 이름이 총수[Einheit: 통일성]이다.
“수는 그 계기로 총수와 개수를 가지며 그 자체에서 양자의 통일이다. 총수는 연속성의 계기며, 개수는 분리의 계기를 이룬다. 양자는 정량 속에서 수로서 존재한다.”(논리학 초판, GW11, S. 126)
5)
정량에서 개수와 총수가 이처럼 두 계기를 이루므로, 헤겔은 정량의 규정성과 질적 현존의 규정성을 비교한다. 질적 현존에서 규정성 즉 감각적 성질은 우연적이고 개별적이고 외면적일 뿐이다. 그것은 타자에 대립해서 규정된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파란색에 대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정량에서 규정성 즉 한계는 다른 규정성과 구별되는 것만은 아니다. 동시에 다른 규정성과 연결되고 있으니, 4는 3과 5와 다른 것이지만, 동시에 단위인 일자를 셋에서 한 번 더 더한 것이며 한 번 더 더하면 다섯이 되는 것이다. 전자의 측면에서 타자에 대립해서 규정되지만, 후자의 측면에서는 자기 관계해서 규정된 것이다.
어떤 사물의 정량이 20이라고 할 때, 이 개수로서 20이든 총수로서 20이든, 그 기본 단위가 자의적이므로, 그 정량은 자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나이가 스무 살 된 대학생보고 팔십 먹은 노인네라 해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이를 셀 때 1년을 단위로 하지 않고 계절별로 세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량이라는 크기는 어떤 사물에 대해 외면적이고 그 사물의 본성과 무관한 무차별성을 지닌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정한 단위가 전제된다면, 그때 정량은 그 사물을 규정하는 고유한 한계, 규정성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군에 가는 나이는 20살이다. 누구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스무 살에는 군에 가야 한다.
정량을 재는 단위가 이처럼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정량은 타자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정량을 재는 단위가 일단 정해진다면, 정량은 그 단위의 반복을 통해 규정되는데, 그런 점에서 정량은 자기 자신을 통해 규정된 것이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헤겔은 정량은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가운데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머무른다”라고 말한다.
6)
정량의 규정성이 자의적인 규정성이라는 점에서 이 정량의 규정성은 질적 현존에서 현존의 규정성과 유사하다. 현존의 규정성 즉 감각적 성질은 주관이 파악한 우연성이며, 그 사물에 대해 외면적이다. 질적 범주에서 운동은 인식하는 주관이 이 외면성을 극복해서 사물에 고유한 성질을 찾아 나가는 운동이었다. 그 운동 끝에 마침내 대자 존재 즉 그 사물의 형상에 이르렀다.
정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량은 외면적인 규정성이다. 어떤 사물에 고유한 정량을 발견하는 것이 양적 판단 형식에서 운동의 기본 목표다. 예를 들어 도라는 음은 현의 길이를 통해 그 본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현의 길이는 도라는 음의 본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우연적 정량이 아니다. 헤겔은 척도라는 개념에 이르면 비로소 고유한 정량이 출현한다고 본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가 지양된 것이므로 이미 그 자체에서 그리고 대자적으로 그 한계에 대해 무차별하다. 그러나 동시에 양적인 것에서 그 한계 또는 정량이라는 사실은 무차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양적인 것은 일자를 즉 절대적으로 규정된 존재를 자체 내에 그 자신의 고유한 계기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일자는 그 자신의 연속성 또는 총수에 이르러 정립되면 양적인 것의 한계가 된다. 이 한계는 양적인 것이 자기를 생성해 마침내 도달한 하나의 독자적 존재[Eins]로서 머무른다.”(논리학, 재판, GW21, S. 193)
헤겔 형이상학 산책44-정량과 수(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4-정량과 수
1)
형이상학은 세계의 가장 일반적인 원리를 다룬다. 칸트의 선험철학을 원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욱 발전하겠다고 확고하게 선언했던 헤겔은 세계의 일반 원리를 사유의 근본 범주(또는 판단 형식)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문제는 양적 범주다. 양적 판단 형식 즉 양적 범주가 세계를 일반적으로 구성하는 원리가 될 수 있는지, 요즈음 철학은 많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원초적인 세계는 질적 개별자의 세계가 아닌가? 양적 범주란, 세계 밖에서 사유하는 인간의 주관적 산물이 아닐까?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개별적인 것이 존재하려면 지속적이어야 한다. 명멸하는 우연적인 것에는 이런 개별성조차 없고 그저 있었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다. 찰나생 찰나멸, 이런 세계에서는 사유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속하는 것이 있는 한, 이 지속성은 서로 대립하는 두 성질이 자기 관계하는 것 즉 대자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럴 때 대자 존재자들의 상호 관계는 양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양적인 세계의 존재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서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원자론자의 원자와 공간의 개념을 기초로 한다. 원자와 원자의 관계가 곧 양적인 관계이며, 이 양적인 관계에서는 오직 연속성과 분산성이라는 두 가지 관계밖에 없다. 원자와 원자는 동일한 대자 존재의 관계이니 연속적이며 그러면서도 이 관계 맺는 것이 서로 독자적인[fuer sich] 것이니 분산적이다. 연속적이라는 점에서 물질적인 것이며, 분산적이라는 점에서 공허로서 공간적인 것이다. 물질과 공간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지만, 서로의 이면에 떼어낼 수 없이 붙어있다.
2)
양적인 관계야말로 수학적 관계의 토대가 된다. 파르메니데스의 형이상학이 양의 세계를 밝힘으로써, 피타고라스의 수의 세계도 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인 것과 수적인 것은 다르지 않을까?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 정량이 나오고 정량에서 다시 수가 나온다고 한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의 연속과 분리라는 관계를 말할 뿐이다. 그것은 얼마나 큰가 하는 크기 규정을 갖지 않는다. 정량은 이런 양적인 것이 일정한 크기 규정을 지니게 된 것을 말한다.
이미 양적인 것은 크기 규정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은 동일한 대자 존재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대자 존재는 반복하는 만큼의 크기를 지닌다. 하지만 여기서 양적인 것에서 크기 규정은 다만 가능적인 것일 뿐이다. 그것이 특정한 크기를 지니려면 다른 것과 비교되어야 한다. 즉 잣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길이는 미터를 잣대로 하고, 무게는 그램을 잣대로 한다. 그러나 미터나 그램과 같은 잣대는 주관적으로 선택된 임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든 임의적으로 선택된 잣대를 기준으로 반복을 통해 일정한 크기가 규정된다. 이렇게 규정된 특정한 크기가 곧 정량이다.
정량은 반복되면서 이미 수적인 체계를 갖지만, 아직 수는 아니다. 그것은 가능적인 수적 체계다. 이 정량이 수가 되려면, 일정한 잣대가 지닌 수적 관계가 추상돼야 한다. 그렇게 추상된 수적 관계가 곧 수를 이룬다.
“정량은 일단 규정성이나 한계 일반을 지닌 양적인 것인데, 그것이 완전하게 규정되면 수다.”(논리학 재판, GW21, S. 193)
정량과 수의 관계는 마치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과 화폐의 관계와 같다. 화폐는 상품의 하나다. 어느 상품이 화폐인가 하는 것은 주관적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역사적 발전을 통해 어떤 상품이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화폐로 선택되면서 화폐가 출현한다. 이 화폐는 상품이 지닌 교환가치의 비례 관계라는 수적 체계를 의미할 뿐이다.
정량과 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량을 측정하는 잣대는 주관이 임의로 선택한 것이다.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선택된 대표적인 잣대가 곧 수다. 이 수는 정량의 비례 관계를 언표하는 수단이 된다.
3)
이제 수 개념에 관한 플라톤이나 러셀의 주장을 헤겔의 사유와 비교하여 살펴보자. 19세기 심리주의는 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과 같은 사유의 활동에서부터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이런 사유의 심리적 활동은 경험적이고 우연적이지만, 수적 질서는 객관적이고 필연적이니, 이런 심리주의는 수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수를 플라톤적인 이데아에서 끌어내거나, 수를 논리로 환원하려는 논리주의가 등장했다.
우선 수에 관한 플라톤적 설명은 문제가 있다. 수는 자주 이데아와 같은 초월적 존재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기하학적 크기도 일종의 수라고 할 수 있는데, 기하학적 질서야말로 플라톤이 이데아의 표본으로 설명해 왔던 것이 아닌가? 수가 이처럼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자연의 질서 속에 수를 적용한다는 것은 이 자연이 수를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플라톤의 생각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데아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는 데미우르고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창조주 신은 일단 제쳐 두자. 창조주는 굳이 이데아의 모범에 따라 세계를 창조할 필요는 없다), 자연이 초월적 이데아를 따르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데미우르고스를 인정할 수 없다면, 자연 속에 수적인 질서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만큼 자연적인 것에서부터 수적인 질서가 발생하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헤겔의 생각은 그런 점에서 수가 자연에서 발생하는 과정을 잘 이해시켜 준다. 헤겔에서 수적인 것은 양적인 것에서 나온다. 양적인 것은 일정한 크기를 지닌 정량으로, 정량에서 다시 정량을 대표하는 수로 전개된다. 정량이 이미 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다만 수일 뿐이다. 수도 하나의 정량으로서 다른 정량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선택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마르크스에서 상품에서 화폐가 나오는 과정과 같다.
4)
이번에는 현대 수 이론을 대표하는 러셀의 주장을 살펴보자. 러셀은 수를 집합의 집합으로 정의했다. 쌍으로 이루어진 것들의 집합, 예를 들어 {신발, 손, 발, 귀 등등}.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두 번째 손가락(검지, 둘)이다. 셋으로 이루어진 집합도 있다. {솥의 다리, 삼원색 등등.} 이것을 대표하는 것이 세 번째 손가락(중지, 셋)이다. 이처럼 어떤 집합을 대표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집합 즉 {둘, 셋, 넷… 등등}이 곧 수이다.
러셀의 수 개념은 간명하기는 하지만, 이 집합의 집합을 통해 수의 진정한 개념이 정립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러셀의 주장은 헤겔이 이미 말한 것처럼 수가 정량을 대표하는 것이라는 말에 불과하다. 그는 수로 사용되는 언어가 어떻게 해서 수적 질서를 의미하게 됐는지를 말할 뿐이다. 이를 통해 수가 지닌 기본적인 속성 즉 수의 연속성과 분산성은 밝혀진 바가 없다.
이런 집합의 집합으로서 수 개념은 정의 속에 이미 수를 전제로 한다. 즉 ‘쌍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나 ‘셋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라는 개념이 이미 쌍이나 셋이라는 수 개념을 포함하니, 정의될 것을 정의 속에 전제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수 개념으로서는 수가 지닌 가장 근본적인 속성인 연속성과 분산성이라는 속성을 끌어낼 수 없다. 쌍을 대표하는 수 검지(둘)와 다섯 개짜리를 대표하는 수 즉 약지(다섯) 가운데 어느 것이 큰가 또는 둘과 셋을 더하면 다섯이 나온다는 수적인 질서가 나오지는 않는다. 검지가 약지보다 작은가? 또는 검지로 찌르고 다시 중지로 찌른다고 해서 약지로 찌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러셀의 수 개념은 집합 개념에 기초하는 것인데 집합 개념은 그 자체 모순을 포함한다는 사실이 이른바 러셀의 역설을 통해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사실 잘 살펴보면, 러셀의 수 이론은 수의 개념을 설명한다기보다 수로 사용되는 언어가 어떻게 선택된 것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5)
플라톤이나 러셀은 수 개념을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부터 수 개념을 끌어냈는데, 양적인 것을 규정한 정량은 다양한 것들로 존재한다. 이런 다양한 정량적 존재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곧 수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76)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6)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영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2) 본 교과목 : 철학적 문답법 – 변증술(531d-535a)
[531d-535a]
*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룬 배울 거리들이 본 곡το νόμος을 배우기 위한 서곡το προοίμιον에 지나지 않음을 밝힌다. 아무리 그것들에 대단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은 ‘변증술에 능한 자들’οἱ διαλεκτικοὶ이 아니기 때문이다.(531d)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바로 변증술적 대화’τὸ διαλέγεσθαι가 연주하는 바로 그 본 곡을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그것은 마치 시각 능력이 마침내 생물들 자체와 별들 자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 자체 보기를 시도하듯이 누군가가 변증술적 대화에 착수해서 모든 감각을 배제하고 논변λόγος을 통해 “‘각각의 있는 것 자체’αὐτὸ ὃ ἔστιν ἕκαστον를 향해 나아가ὁρμᾶν, 있는 것인 ‘좋음 자체’αὐτὸ ὃ ἔστιν ἀγαθὸν를 지성적 이해νόησις 자체에 의해 파악λαβή하는 것”이다. 즉 마치 ‘동굴을 벗어난 수감자’가 가시적인 것의 끝점τέλος에 도달하듯이, 가지적인 것의 바로 그 끝점에 도달하는 그 여정πορεία이 곧 ‘변증술’διαλεκτική이라 불리는 것이다.(532a-b)
* 그리고 그 여정에 이르기까의 과정들 즉 결박δεσμός으로부터 풀려나기, 그림자σκιά들 쪽에서 영상εἴδωλον들과 빛 쪽τὸ φῶς을 향해 방향을 바꾸기μεταστροφή, 동굴κατάγειος에서 나와 태양ἥλιος까지 올라가기ἐπάνοδος,(532b) 그리고 거기에서 아직은 동식물들τὰ ζῷά τε καὶ φυτὰ과 태양의 빛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있는 것들의 그림자와 물ὕδωρ에 비친 ‘신적인 상들’φαντάσματα θεῖα을 보기 등은 영혼 안의 가장 훌륭한βέλτιστος 것을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좋은ἄριστος 것을 구경θέ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올리는 힘δύναμις을 가지고 있다.(532c)
* 이와 같이 소크라테스가 본 곡에 대한 운을 떼자 글라우콘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받아들이지 않기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앞서 서곡에 대해 설명 했던 것처럼 본 곡도 설명해주기를 요청한다. 우선 그는 변증술적 대화τὸ διαλέγεσθαι의 힘δύναμις은 어떤 성격τρόπος의 것이며, 어떤 식으로 분류되고διέστηκεν, 또 어떤 길들ὁδοί을 따라가는지를 묻는다.(532d). 이 길들이 드디어 바로 그곳, 거기에 도달한 사람들οἷ ἀφικομένῳ에게는 길로부터의 휴식ἀνάπαυλα이자 ‘여정의 종착지’τέλος τῆς πορείας와 같은 것이 되는 그곳으로 인도하는ἄγουσαι 길들이기 때문이다.(532e)
*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열의προθυμία야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테고, 이제부터 비유εἰκών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게 보이는 대로 참된 것 자체’αὐτὸ τὸ ἀληθές,ὅ γε δή μοι φαίνεται를 보게 될 테지만 그리고 그것이 진짜 그런지 아닌지는 더 이상 자신 있게 주장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더 이상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533a) 그리고 그는 각각의 것 자체 모두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별도의 연구 즉 변증술적 대화의 힘뿐이고 다른 모든 기술들은 사람들의 믿음δόξα들과 욕구ἐπιθυμία들과 관련되어 있거나, 생성γένεσις 또는 조립σύνθεσις된 것들과 관련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러한 것들을 보살피는 쪽πρὸς θεραπεία으로 모두 방향이 맞춰져 있다τετράφαται고 말한다.(533b) 그리고 ‘있는 것’τὸ ὄν에 어느 정도 관여한다고 우리가 주장한 나머지 것들, 즉 기하학과 그에 뒤따르는 것들도, ‘있는 것’을 깨어 있는 상태로 볼ὕπαρ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가정ὑπόθεσις들을 사용하되 그 가정들에 대한 설명λόγον διδόναι은 제공할 수 없어서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기ἐῶσι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첫 원리ἀρχὴ는 물론 결론τελευτή과 그 중간의 것들τὰ μεταξὺ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짜여진 경우’ἐξ οὗ μὴ οἶδεν συμπέπλεκται 설사 정합성ὁμολογία을 이룬다 해도 결코 앎ἐπιστήμη이 될 수 없다.
*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변증술적 연구ἡ διαλεκτικὴ μέθοδος만이 스스로 확고하게 만들기βεβαιώσηται위해 가정들을 제거하면서ἀναιροῦσα 첫 원리 자체로 나아가며πορεύεται,(533c) 우리가 설명한 기술들τέχναι을 ‘영혼의 전환을 함께 돕는 조력자’συνερίθος καὶ συμπεριαγωγός로 삼고서 그야말로 ‘야만의 늪에’ 묻혀 있는 영혼의 눈ἐν βορβόρῳ βαρβαρικῷ τινι τὸ τῆς ψυχῆς ὄμμα κατορωρυγμένον’을 ‘조용히 이끌어 위로 인도한다.’ἠρέμα ἕλκει καὶ ἀνάγει ἄνω고 말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앞서 설명한 기술들을 우리는 습관ἔθος 때문에 종종 앎ἐπιστήμη이라고 불렀지만, 이것들에게는 믿음δόξα보다는 밝고 앎보다는 어두운 다른 이름이 필요하여 앞에 어딘가에서 우리는 이것을 사고διάνοια라고 불렀지만, 내가 보기에, 살펴볼 것이 우리 앞에 이토록 많이 놓여 있으므로 이름ὄνομα을 가지고 왈가왈부ἀμφισβήτησις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533d) 그런 연후 앞에서 그랬듯이, 첫 번째 부분은 앎ἐπιστήμη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는 사고διάνοια, 세 번째는 확신πίστις, 네 번째는 짐작εἰκασία이라고 부르고 뒤의 둘은 합쳐서 믿음δόξα으로, 앞의 둘은 합쳐서 지성적 이해νόησις라고 부르면 충분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믿음은 생성γένεσις과 관련되고 지성적 이해는 있음οὐσία과 관련되며, 있음과 생성의 관계는 지성적 이해와 믿음의 관계와 같으며 지성적 이해와 믿음의 관계는 앎과 확신의 관계, 그리고 사고와 짐작의 관계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다만 이것들이 대상으로 하는 것들 사이에 어떤 비례ἀναλογία가 성립하는지와, ‘믿음의 대상과 지성적 이해의 대상 각각을 둘로 나누는 것’διαίρεσιν διχῇ ἑκατέρου, δοξαστοῦ τε καὶ νοητοῦ은 우리가 해온 논의의 몇 배나 되는 논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내버려 두자고 말한다.(534a)
*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각각의 것의 있음οὐσία에 대해 설명λόγος을 할 수 있는 자를 ‘변증술에 밝은 자’διαλεκτικός로 그리고 그럴 수 없는 자는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을 제시’λόγον διδόναι할 수 없는 자로서 지성νόος을 갖추지 못한 자로 부르고 좋음τὸ ἀγαθός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즉 ‘좋음의 형상’τὸ ἀγαθοῦ ἰδέα을 설명을 통해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구별해서 규정할 수 없는 사람,(534b) 그래서 마치 전투에서처럼 모든 논박ἔλεγχος을 헤쳐 나가면서 믿음이 아니라 있음에 의거해서 검토하고자ἐλέγχειν 애를 쓰며 그 설명λόγος을 유지한 채로ἀπτωτί 이 모든 상황을 뚫고 나가지διαπορεύηται 못하는 사람은 좋음 자체αὐτὸ τὸ ἀγαθὸν도 그리고 다른 어떤 좋은 것도 알지 못하는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사람은 행여 어떤 영상을 포착한다고 하더라도 앎이 아니라 믿음으로 포착하는 것이며, 현재의 생에서 꿈꾸고ὀνειροπολοῦντα 졸면서ὑπνώττοντα 지내다가 여기서 깨어나기ἐξεγρέσθα 전에 하데스에 먼저 도착해서 완전히 잠들 것이라고 말한다.(534c)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아이들을 논의가 아니라 언젠가 실제로 양육하게 될 경우, 그들이 마치 무리수ἄλογος 길이의 선분들과 같은 상태로 나라의 통치자ἄρχων가 되어 가장 중요한 일들을 주재하는κυρίους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가능한 한 가장 잘할 줄 아는 자가 되게 만드는’ἐξ ἧς ἐρωτᾶν τε καὶ ἀποκρίνεσθαι ἐπιστημονέστατα οἷοί τ᾽ ἔσονται 교육παιδεία에 그들이 참여하도록 법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534d)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자신의 설명이 변증술ἡ διαλεκτικὴ이 마치 갓돌θριγκός처럼 배울 거리들τὰ μαθήματα 위에 놓이고, 이것보다 위에 놓여 마땅한 다른 배울 거리μάθημα는 이제 더 없는 것으로 보이게 했는지를 확인한 후(534e) 배울 거리들에 대한 문제가 드디어 마무리τέλος되었다고 말하고 이제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방식τρόπος으로 부여할지를 배정διανομή하는 일이 남아있다고 말한다.(535a)
———————————–
* 533c ‘첫 원리archē는 물론 결론teleutē과 그 중간의 것ta metaksy들’ : 점차 밝혀지겠지만 변증술적 앎의 총체성은 철학의 총체성이 그러하듯 비록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구체적 개별자들을 하나로 관통하여 존재 세계에 대한 총체적 견지를 가져다주고 나아가 그것을 토대로 개별 존재들 각각의 본질에 대한 원리적인 포착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플라톤의 형상은 위계상 최상의 실재 세계를 구성하지만, 철학자 왕에게 그 형상적 앎이 요구되는 근원적인 이유와 목표는 오히려 형상과 무(mē on) 사이에 존재하는, 끝없이 차이를 노정하는 중간의 것들 즉 현실 세계의 인식과 구원에 있다. 즉 형상의 인식은 실천적으로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변증술을 통해 좋음의 형상을 아는 사람은 마치 전투에서처럼 모든 논박을 헤쳐 나가면서 믿음이 아니라 있음에 의거해서 검토하고자 애를 쓰면서 그 설명을 유지한 채로 현실의 모든 상황을 뚫고 나가는 사람이다.(534c) 변증술이 철학자 왕이 배우고 알아야 할 궁극의 교과인 이유이다.
* 533d ‘이름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이곳에서 다시 요약하고 있는데 제5권(474c-480a)과 제6권 선분의 비유(509c-513c)의 내용과 비교하여 epistēmē의 범위를 다소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이름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다’라는 이곳 언급은 그것을 의식하고 한 말로 보인다. 그런데 본 강해 64에서 살폈듯이 그의 그러한 용어 사용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플라톤 자신 최소한 기하학, 천문학 등 일반 학술technai이 포함하는 ‘사고’dianoia의 학적 수준을 일종의 앎이자 지성적 이해로 넓게 포함시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가 해온 논의의 몇 배나 되는 논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534a)도 인지적 상태들 사이에 성립하는 비례관계가 그 대상들 사이에 성립하는 비례관계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낳는 부분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이 역시 dianoia의 대상에 일정 부분 학적인 성격을 유연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강해 64 해당부분 참고)
* 534b ‘설명을 제시하는 것’logon didonai : logon didonai는 플라톤 철학을 설명할 때 핵심적으로 제시되는 용어의 하나이다. 플라톤에게 지성nous을 갖춘다는 것은 특정 입장의 강요나 압박, 선전·선동이 아니라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대화의 방식으로 충분히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 534d ‘무리수 길이의 선분들과 같은 상태로’ : ‘무리수’로 번역한 그리스어는 ‘alogos’이다. 그것은 logos(정수들의 비율)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비이성적’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일종의 말 유희를 포함하고 있다. 플라톤은 좋음에 대한 설명 또한 이성적 설명을 넘어선 것으로 여기고 있다.
——————————–
* 변증술의 원어 dialektikē는 어원상 ‘대화하다’, ‘토론하다’, ‘끄집어내다’를 의미하는 dialegō에서 파생된 형용사 dialektikos(문답에 능한)의 여성형이다. 그래서 그 말은 명사형으로는 그리스어 사전상 표제어로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이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문답의 기술 즉 he dialektikē technē를 나타내는 하나의 명사 ‘dialektikē’로 사용된 곳은 이곳(532b)이 처음이다. 물론 제논(Zeno of Elea)도 이 말을 문답술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하고 있지만(<단편집> 단편 65) 전거상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고도의 철학적 문답기술로 제시한 것은 플라톤이 처음이다. 이후 철학사를 통해 수많은 철학자들이 쓰고 있는 이른바 ‘변증법’dialectics이라는 이름은 바로 플라톤이 <국가>에서 명명한 이 dialektikē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말 역본에서 dialektikē를 ‘문답법’이 아닌 ‘변증술’로 번역하고 있는 것도 플라톤 고유의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그러한 철학사적 연관도 함께 고려한 것이리라.
* 물론 dialektikē라는 말이 <국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해서 플라톤의 변증술이 <국가>에서 처음 제시된 철학적 방법론은 아니다. 나중 살피겠지만 dialektikē와 거의 병용하다피시 사용되고 있는 dialegesthai(변증술적 대화 – dialegō의 중간태 현재 부정사. 중간태는 동사가 의미하는 행동이 자신에게 미치는 경우 쓰이는 그리스어 특유의 변화형)란 말과 ‘변증술에 능한’을 의미하는 dialektikos란 말이 이미 그 이전 대화편들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곳 <국가>에서 변증술에 관한 플라톤의 언급이 중요한 것은 그 자신 앞서 본문 요약이 보여주듯 동굴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를 모두 끌여들여 변증술의 핵심을 매우 적극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플라톤은 변증술을 ‘동굴을 벗어난 수감자가 동물들 자체와 별들 자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 자체를 보기를 시도하는 것’에 비유하면서 구체적으로 “dialegesthai에 착수해서 모든 감각을 배제하고 논변logos을 통해 각각의 있는 것 자체를 향해 나아가, 있는 것인 ‘좋음 자체’를 지성적 이해 자체에 의해 파악하는 것”, “마치 수감자가 동굴 바깥 가시적인 것의 끝점에 도달하듯이, 가지적인 것의 바로 그 끝점에 도달하는 여정poreia”’(532a-b)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결박으로부터 풀려나기부터 있는 것들의 그림자와 물에 비친 사람들이나 신적인 상들을 보기까지의 과정을 앞서 설명한 산술과 기하학 등 학술들이 수행한 작업으로서 ‘야만의 늪에 묻혀 있는 영혼의 눈을 조용히 위로 이끌어’ 종착지인 좋음의 형상에 이르게 하는 힘, 즉 변증술을 가능케 만드는 힘으로 규정하고 있다.(532c) 동굴의 비유 해당 부분(516a)에 따르면 이 신적인 상들을 본 연후 눈이 익숙synētheia해져 비로소 동굴 바깥 실물들을 보게 되고 이어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하늘 자체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플라톤이 수감자가 결박에서 풀려나 동굴 바깥에 이르러 물에 비친 사람들과 신적인 상들을 보는 단계까지의 과정과 그 단계를 넘어 실물들을 보고 하늘을 본 후 끝내 태양을 보기까지의 여정을 구분함과 동시에 후자의 여정 즉 “실재 세계로 들어와 실물들 즉 ‘각각 있는 것 자체’auto ho estin hekaston인 형상들을 본 후 지성적 이해를 통해 형상들 전체를 하나로 꿰뚫고 있는 ‘좋음의 형상’이라는 끝점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변증술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그리고 플라톤은 <국가>에서 위와 같이 변증술을 규정한 후, 이후의 대화편들 구체적으로 <파이드로스>, <소피스트>, <필레보스>, <정치가>에 이르러 이른바 모음(종합)synagē과 나눔(분할)diairesis의 방법을 끌어들여 최고류는 물론 형상 세계 전체의 상호 관계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면서 그 탐문의 기술을 다시 한 번 ‘변증술’로 부르고 있다. 이것이 곧 많은 학자들이 공통으로 이름을 붙인 이른바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이다. 나중 이 후기 변증술을 간략히 살펴보겠지만 나눔과 모음을 변증술의 방법으로 처음 제시하고 있는 <파이드로스>의 경우 그 모음의 방법은 ‘흩어져 있는 여럿들 모두를 함께 보면서 단일한 형상으로 이끄는 것’으로, 그리고 나눔의 방법은 ‘서투른 푸주한처럼 부분 부분을 부숴트리는 것이 아니라, 형상에 따라 자연적인 마디 그대로 자를 줄 아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265d-266c) 그러나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서 새롭게 제시된 이른바 후기 변증술이라고 해서 앞서 <국가>에서 정의된 변증술과 무관하거나 다른 성격의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용상 모음과 나눔이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국가>에서도 오름길의 마지막 단계 즉 형상들과 그것들의 관계와 위계 그리고 좋음의 형상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변증술로 규정하고 있고, 내림의 과정에서도 형상들 각각의 진상과 상호 관계가 다시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앞서 살폈듯이 동굴의 비유에서 수감자는 동굴 바깥으로 나와 각각의 사물들과 동식물들 자체와 별들 자체 등 사물세계 전체를 본 후 마지막으로 태양 자체를 본다. 다시 말해 수감자는 형상으로서 각각의 실물들을 본 다음 그 실물들과 그 실물들의 결합물로 가득한 바깥 세계 즉 지상과 하늘에 존재하는 실재 세계 전체는 물론 그 결합의 궁극 원리로서 좋음 자체도 인식한다. 그뿐만 아니라 선분의 비유에서도 플라톤은 그러한 과정을 간략하지만 보다 명시적인 방식으로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변증술을 통해 오름의 과정에서 “이성 자체가 첫 원리를 포착한 다음 이번에는 이 원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들을 고수하면서 다시 결론 쪽으로 내려가되 그 어떤 감각적인 것도 전혀 이용하지 않고 형상들 자체만을 이용하여 이것들을 통해 이것들 속으로 들어가서 형상들에서 또한 끝을 맺는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511b-c) 이 언급은 앞서 언급한 후기 변증술 즉 모음의 방법으로 하나의 유(類)genos를 포착한 다음 나눔의 방법으로 그 유를 종(種)들eidē로 나누되 정의할 부류의 본질적 성질이 드러날 수 있도록 최하종atoma eidē에 이르기까지 나누는 절차와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 그러나 이러한 후기 변증술이 비록 <국가> 이후 후기 대화편들에 와서 모음과 나눔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제기되었다고 해도 그 변증술의 기본 성격과 목표와 지향은 <국가>에서 ‘변증술적 힘의 성격과 분류, 방향’을 묻는 글라우콘의 문제의식(532d-e)이 보여주듯 <국가>를 포함해서 그 이전 대화편들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제기되어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실은 플라톤이 변증술을 다루면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만 추적해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살폈듯이 dialektikē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분명 이곳 <국가>가 처음이다. 그렇지만 <국가>에서 조차 그 말은 532b, 536d 두 군데 정도에서 사용할 뿐, 변증술을 거론할 때면 그 이전부터 사용했던 dialektikos와 dialegesthai를 그대로 쓰고 있다. 아니 <국가>에서 변증술을 나타내는 말로 오히려 그 말들이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다.(dialegesthai : 511b, 511c, 525d, 532a, 532d, 533a, 537d, 537e, 539c, dialektikos : 290c, 531d, 534b). 그에 따라 그 말들은 이른바 후기 변증술을 본격적인 주제로 포함하고 있는 대화편들 즉 <파이드로스>, <소피스트>, <필레보스>, <정치가>에서도 너무나 당연하듯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게다가 이제 주목할 것은 그 말들은 그곳에서만이 아니라 쟁론술eristikē과 대비하여 함께 참과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적 문답법의 의미로 이미 <국가> 이전부터 사용되어왔다는 점이다. 물론 그 말들은 상용어라는 점에서 꼭 변증술적 문답의 의미로만 쓰인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변명>에서는 물론(40c), <프로타고라스>에서도 소크라테스와 대화자들 사이에서 dialegesthai가 철학적 문답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335a, 336c) <고르기아스>(448d)에서도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철학적 문답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메논>(75d)에서는 dilektikos가 ‘진리를 답하는 것뿐만 아니라 묻는 사람이 안다고 인정하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답하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고 <크라튈로스>(389d)에서도 dialektikos가 변증술 관련 용어로 사용되면서 ‘입법가의 일을 잘 감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다. 중기 대화편이기는 하지만 <에우튀데모스>(290c)에서도 그 말이 나온다. 그리고 <테아이테토스>(167e)에서도 <필레보스>(17a)에서처럼 dialegesthai가 쟁론술과 구분되는 진정한 철학의 방법임이 강조되고 있다. 서양 역본은 물론 우리말 역본에서 ‘dialectics’, ‘변증술’이란 단어가 수없이 등장함에도 정작 그것의 원어가 꼭 dialektikē가 아닌 이유도, 그리고 변증술 관련 원어 색인에 dialektikē만이 아니라 dialektikos, dialegesthai가 병기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dialektikē라는 말이 비록 <국가>에서 처음 사용되었을지라도 <국가> 등 중기대화편에서는 물론 그 이전의 대화편들에서도 참과 존재를 탐구하는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문답법으로서 변증술이 두루 개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플라톤의 변증술을 가장 좁은 의미에서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서 후기 변증술로 규정할 수도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가>의 동굴의 비유 전체 과정이 그러하듯 감각지로부터 벗어나 좋음의 형상에 이르기까지의 진리 탐구 과정 전체 즉 초기 대화편들에서부터 후기 대화편들에 이르기까지 플라톤이 사용하고 있는 철학적 문답법 모두를 변증술로 부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플라톤이 사용하는 철학적 문답법 일반을 넓은 의미의 변증술로 규정하고 그것이 논의하는 주제와 구체적인 방식에 따라 그 변증술을 내용적으로 세 단계의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국가>의 변증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철학적 문답법으로서 변증술 일반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간단히 살피면 아래와 같다.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플라톤의 대화편은 우연과 편견이 가득한 일상에서 참을 찾기 위한 dialogs 즉 대화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라 초기 대화편들은 대체로 일상적 믿음과 편견에 대해 비판적 물음을 던지는 방식으로 ti esti 즉 사물과 사태에 대한 ‘정의(定義)’를 근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때 그러한 정의를 다루는 과정에서 문답의 방식으로 사용된 것이 이른바 소크라테스의 논박elenchos의 방법과 산파술maieutikē이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방법들 또한 넒은 의미의 변증술의 하나로서 앞에서 언급한 변증술의 단계별 형태를 기준으로 가장 첫 번째 것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답 끝에 제시되고 있는 마지막 결론은 늘 유보된 상태에서 ‘무지의 지’를 깨닫는 데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점차 이러한 무지의 지에 대한 깨달음은 참된 실재에 대한 앎의 욕구를 다시 촉발시키고 그에 따라 물음은 ‘정의’의 문제를 넘어서서 즉 실재에 대한 탐문으로 이어져 믿음doxa와 구분되는 ‘있는 것 그 자체’to on kath’ hauto‘ 즉 ’형상‘에 대한 앎epistēmē이 보다 진전된 철학적 문답법의 주제로서 탐색되기에 이른다. <국가>의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를 보면 일상의 대화에서 시작한 이러한 탐문의 과정이 앎을 향한 오름길anodos의 모습으로 잘 그려져 있다. 그래서 그 단계의 오름길에서는 어떤 한 부류의 사물들과 하나의 어떤 이데아 내지 형상이 맺고 있는 관계가 논의의 주제를 이루면서 이른바 methesis, parousia, koinōnia라는 용어가 그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것은 초기대화편에서 제기된 ti esti의 물음이 ’무지의 지‘에 대한 깨달음을 넘어서 사물들에 분유된 실재의 흔적을 추적하여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를 적극적으로 발견하려는 탐문으로 진전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파이돈>, <국가> 등 중기 대화편의 주제가 그에 해당하는데 우선 <국가>만 보더라도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를 통해 그러한 실재 내지 참된 앎의 조건과 성격 그리고 그 대상을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특히 <파이돈>에서는 거짓을 폭로하는 논박을 뛰어넘어 참된 앎과 실재로 육박하려는 플라톤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방법으로서 이른바 ‘가정hypothesis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99c-100a) 플라톤은 그곳에서 영혼 불멸을 증명하는 차선의 방법으로 가장 강하다고 판단되는 명제를 가정한 다음 그야말로 정립과 반정립의 방식으로 참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보다 상위의 가정에로 끊임없이 고양시켜 그렇게 이른 최선의 원리를 가정하여 그것을 근거로 답을 제시한다. 이것은 <국가>에서 가정들을 끊임없이 제거하면서 형상적 앎에 이르는 이성 자체의 문답법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점에서 가정의 방법 또한 변증술의 한 형태로 앞서 언급한 단계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에서 이 두 번째 형태는 동굴의 비유로 보자면 동굴을 벗어나 바깥 세계에 들어서 눈이 익숙해져 마침내 실물들을 마주한 상태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 그런데 플라톤은 개별 실재들에 대한 앎에 도달한 것을 넘어 그 실재 세계 전체에 대한 앎 즉 모든 형상들의 결합과 그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 영혼의 힘을 더욱 고양시켜 마침내 그러한 형상들 모두를 포괄하는 종국의 원리를 포착한 후 그것을 통해 최고류에서 최하종에 이르기까지 형상들 서로의 관계 또한 해명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앞서 간략하게 언급한 후기 대화편들에서 제시되고 있는 모음(종합)synagogē과 나눔(분할)diairesis의 방법으로서 후기 변증술 즉 변증술의 단계별 형태상 세 번째 것이다. 이 단계에서도 methesis, parousia, koinōnia란 말이 나오는데 이때 그 말은 사물과 형상 간의 관계가 아닌 형상들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실제로 <파이드로스>(266b), <필레보스>(16b)에선 ‘변증술이 가장 바람직한 철학적 방법’임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언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국가> 이후 대화편들 모두에서도 이른바 후기 변증술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논의 주제의 하나로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대로 그 대화편들 모두 변증술과 관련하여 주제적으로 변증술을 모음(종합)과 나눔(분할)의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이러한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요체를 개요 수준에서나마 몇 대화편을 소재로 좀 더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우선 <파이드로스>의 경우는 ‘dialektikos’를 ‘하나를 그리고 여럿을 볼 수 있는 자’라고 부르고 광기mania를 예로 들어 바로 나눔과 모음에 의해 그 구분이 가능함을 설명한다. 즉 모음이란 앞서 인용한 대로 ‘흩어져 있는 여럿들 모두를 함께 보면서 단일한 형상으로 이끄는 것’이되 그 목적은 각각을 규정하면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항상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눔이란 ‘형상들의 결합 관계를 하나로 꿰뚫은 다음 그것에 따라 개별 형상들을 본래의 자연적인 마디 그대로 자를 줄 아는 것’으로 정의된다.(265d-266c) 그리고 <소피스트>는 변증술적 앎을 ‘유에 따라서 분리하고 동일한 형상을 다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다른 형상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 앎을 행할 수 있는 자는 하나의 형상이 많은 – 각각 하나가 따로 떨어져 놓여 있는 – 것들을 관통하여 모든 곳에 퍼져 있음을 그리고 서로 다른 많은 형상들이 하나의 형상에 의해 바깥으로부터 둘러싸여 있음을 분명하게 지각한다. 또 그는 다른 한편으로 하나의 형상이 다른 많은 전체들을 관통하여 하나 속에서 합쳐 있음을 그리고 많은 형상들이 전적으로 분리되어 구별돼 있음을 분명하게 지각한다. 즉 이것이, 그것들 각각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고 또 그럴 수 없는지를 유에 따라서 분리할 줄 아는 기술 즉 변증술이다.(253d-e) 그리고 <필레보스>, <정치가>에서도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서 이를테면 에로스, 소피스트. 정치가 등을 정의하는 데 변증술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필레보스>에서는 변증술이 무엇보다도 어떤 하나의 유genos와 무수한 것들의 중간에 있는 종들eidē이 얼마나 되는지를 밝혀내는 방법임도 새삼 강조된다.(16d-17a) 즉 중간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것 또한 그 분야에 밝은 사람이라는 게 플라톤의 생각이다. 이곳 <국가> 533c에서 첫 원리, 결론과 더불어 변증술적 앎의 대상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는 ‘중간의 것들ta metaksy도 위에서 언급한 중간에 있는 것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보면 변증술은 인간의 정신이 존재 세계 전체를 파악하고자 할 때 이 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밟을 수밖에 없는 사유의 통로로서 제안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변증술에 능한dialktikos 사람’을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ho synoptikē이라고도 부른다.(537c) 다시 말해 변증술은 플라톤의 실재에 관한 탐문과정에서 부분들로부터 그 부분이 속해 있는 전체에 관한 관심으로 또는 전체 속에서의 부분들의 위치로 관심이 이동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앞서 ‘철학자의 자질'(제6권 484a-487a)을 논하면서도 철학자를 이미 ‘신적인 것 전체to holon와 인간적인 것 전체를 항상 모두pantos 추구하려는 영혼’을 그리고 ‘모든 시간과 존재를 관조theōria하는 정신’을 가진 자로 언급하고 있다.(486a)
* 후기 변증술과 관련한 위와 같은 내용들은 각 대화별로 이미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세부적인 분석은 물론 그것의 통일적 설명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전개되어 왔다. 그 점에서 <국가>를 다루는 본 강해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본 강해는 철학적 문답법으로서 <국가>가 다루고 있는 dialektikē의 기본적인 의미와 후기 변증술에 관한 논의들을 최대한 간명하게 살펴보는 것에 머물되, 다만 추가적인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하여 해당 대화편들에서 변증술이 다루어진 주요 부분과, 그것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관련 논문들 몇 개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논문들의 경우 국회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에서 제목들을 검색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텍스트의 경우는 원문 역본을 참고해야만 기본적인 학술적 이해가 가능하다.
* <국가> 이후 변증술이 다루어진 주요 전거들 : <파이드로스> 265a-266d, 276e-277c, <소피스트> 252c-259d, 264c-268d, <필레보스> 16a-18d, 55c-59d, <정치가> 260a-263b, 285a-287c, 303d.
* 변증술 관련 우리나라 학자들의 주요 논문들 : 플라톤의 dialektikē와 측정술(박종현), 플라톤의 전기 변증론 연구(김남두), 플라톤의 <필레보스>편을 통해 본 변증술의 성격과 쓰임새(이기백),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 연구(김대오), <소피스트>를 중심으로 한 플라톤 존재론과 변증법 개념(김혜경), <politeia>에서 hypothesis와 dialektikē(정준영), 플라톤의 <소피스테스>편에서 변증술과 존재론(김태경),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김태경), 플라톤의 <정치가>에서 정치술과 변증술의 관계(이성훈) 등.
* 위의 모든 논의들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플라톤은 <국가>에서 변증술을 ‘각각의 실물들에 대한 앎을 넘어 실물 세계 전체 즉 모든 형상들을 포괄하고 관통하는 궁극적인 기초이자 첫 원리로서 좋음의 형상을 지성적 이해로 파악하는 기술’로 처음 규정하고 있다. 2) 그러나 철학적 문답을 통한 참된 앎의 탐문과정 일반으로서 넓은 의미의 변증술은 <국가>이전에 이미 초기 대화편부터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방법으로 제시되어왔다. 3) <국가>는 사물과 실재의 관계 차원에서 실재에 대한 앎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 존재 세계를 구성하는 전체 형상들의 관계에 대한 견해 또한 큰 그림 차원에서 표명하고 있다. 4) 이른바 <국가> 이후 후기 변증술이란 이러한 <국가> 변증술의 큰 그림을 토대로 유와 종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앎에 확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한bebaiōsētai 실제적인 목표를 갖고 제시된 것이다. 요컨대 플라톤의 변증술은 여럿을 꿰뚫고 있는 하나로서 최종적 진실인 ‘좋음의 형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토대로 현실 세계 여럿의 본질과 관계를 규명해내는 즉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진실을 최대한 명백하게 밝혀내는 철학 방법이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국가>에서 표명된 ‘좋음의 형상’은 존재 세계를 구성하는 여럿들 각각의 저다움과 그것들의 선하고 조화로운 하나됨을 담보하는 궁극의 원리로서 변증술의 궁극의 목표가 된다.
* 그러나 전체 개별과학에 통달한 신적 존재나 만물박사라면 모를까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진실을 하나하나에서부터 원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플라톤의 변증술을 근대 이후 철학과 개별과학의 관계와 관련하여 제시된 철학에 관한 정의들과 연관지어 음미한다면 철학적 방법론의 고전적 시원으로서 플라톤의 변증술이 갖고 있는 의미를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철학의 정의로서 두 가지 정도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철학은 여러 개별과학의 기본 개념을 명확하게 하며 서로 다른 개별과학들의 성과를 종합하여 존재 세계에 대한 하나의 종합적인 관점을 갖게 하는 원리적 지식이다”(B. Russell). “철학은 특수과학에서 얻은 인식을 모순 없는 체계로 통일하여 과학에서 사용되는 인식의 방법과 전제들을 그 통일된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보편학”(W. Wundt)이다. 요컨대 플라톤의 변증술은 세계에 대한 총체적 앎을 추구하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철학적 방법론의 이상적 푯대이자 끝없는 질문을 통해 앎의 명백성을 근거지우려는 철학 정신의 토대이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변증술의 기본 방법으로서 모음(여럿에서 그것을 꿰뚫고 있는 하나를 포착하는 것)과 나눔(하나로부터 그것이 꿰뚫고 있는 여럿을 구분해내는 것)의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형식논리적 귀납법과 연역법을 넘어 치열한 문답 과정을 통해, 추상적 개념들이 아닌 존재 세계의 실상으로서 형상들의 결합 관계를 해명하는 실질적인 연역과 귀납 능력으로서 철학적 분석과 종합의 토대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정치가로서 철학자왕에게 요구되는 측정술metrētikē과 직조술hypanitiē 또한 지행합일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증술적 앎을 포착한 후 그것을 토대로 온갖 양상으로 뒤섞여 있는 이른바 현실세계 중간의 것들을 적도(to metron)에 따라 분별 있게 헤아리고 상호 반대적인 것조차 하나로 묶어내는 고도의 실천기술이자 이상적 정치술이라 할 것이다. 이곳에서 철학자왕이 배워야 할 지고의 배울 거리로 변증술이 제시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바로하기 위함이다.
* 한편 흥미롭게도 크세노폰(Xenophon)의 <소크라테스의 회상>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dialegesthai란 말은 모여서 종에 따라 사물들을 분류하고 의논하는 것에서 나왔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4권 5장 12절) 이때 dialegesthai의 의미를 단순히 ‘대화하다’로 옮길 경우 뭔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오히려 앞의 논의와 연관하여 생각하면 그 말은 ‘변증술적 문답’으로 옮기는 것이 딱 맞아 보인다. 크세노폰이 인용한 내용이 정말 역사적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면 이것은 역사적 소크라테스와 후기의 플라톤 사이에 최소한 dialegesthai의 의미와 관련해선 별다른 견해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엽적이나마 역사적 소크라테스가 무지의 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 끝으로 플라톤 철학에서 대화와 문답의 방법으로서 변증술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앞에서도 살폈듯이 dialektikē와 dialegesthai, dialektikos는 모두 동사 dialegō에서 나온 말로서 각기 어원상 ‘문답을 나누다’, ‘토론하다’, ‘끄집어내다’, ‘문답에 능하다’ 등을 나타내는 일상적 상용구로 쓰이다가 플라톤에 이르러 명실 공히 플라톤 철학의 방법론 즉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진리 내지 해결책을 구해가는 절차 또는 과정’으로 확립된 말이다. 물론 이러한 말들은 점차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방법론으로 구체화되어 가지만, 나중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플라톤 철학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dialektikē의 근본정신 즉 그것이 원천적으로 dialegein, dialogos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갖는 철학적 의미와 가치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근본정신을 풀어서 말하자면 곧 1) 대화dialogos라는 가장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시작하여 일단의 의문을 제시한 후 그 답을 끌어내고 2) 다시 한 발짝 더 나가 그 답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다시 또 그에 대한 답을 내놓으면서 3) 갈수록 고도화되는 추상적 논변까지도 감내해가며 4) 끝내 ‘모두가 진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답이 나올 때까지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고 끝내 설명이 가능한 대답을 내놓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dialektikē가 철학 정신의 빛나는 토대이자 이념적 시원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훗날 테제와 반테제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모순 극복의 논변들 또는 존재 세계의 모순을 상호지양의 방식으로 끝까지 끌어올려 존재 세계의 운동과 변화, 방향과 목적을 해명하려는 일련의 세계관 철학을 왜 ‘변증법’(dialectics)라 부르는지, 그리고 인간이 다가설 수 있는 지적 궁리의 궁극적인 정점에서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불현듯eksaiphnēs’(<일곱번째 편지> 341c-d) 직관으로 마주하는 진리의 빛이 왜 불가불 형이상학적 초월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도 그리고 그럼에도 왜 나름의 설명력과 설득력을 갖는지도 이미 플라톤의 dialektikē가 함축하고 있는 근본정신을 통해 해명되고 있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궁극의 직관적 진리마저 궁극의 끝점이되 실제로는 끝없이 살아 숨 쉬며 약동하는 끝점으로, 철학자는 첫 원리 좋음의 형상을 본 후에도 다시 동굴로 내려가 문답을 지속하며 영혼의 고양과 실천을 통해 그 진리를 끝없이 충전하고 구현한다.
* 참고로 dialektikē, dialegesthai가 복수의 사람들 또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 또는 토론의 의미를 갖지만 플라톤 말대로 ‘영혼이 영혼 자신과 나누는 말 또한 대화'(<테아이테토스> 189e, <소피스트> 264a-b)인 한, 개인이 치열한 내면의 사색을 통해 궁극의 진리를 직관하는 것 또한 진리 탐구의 치열한 과정으로서 dialektikē의 극치에서 충분히 주어질 수 있는 일이다. 533a에서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에게 비록 상호 문답을 통해 이어져 온 진리 탐색의 과정임에도 이제 더 이상 따라올 수 없다(533a)고 말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홀로 하나의 화두를 두고 치열한 사색과 명상을 통해 끝내 돈오(頓悟)에 이르는 불가의 견성론도 방법론적으로는 dialektikē와 일정부분 상통한다 할 것이다. 종종 우리는 플라톤 철학 내지 그의 형이상학적 논변이 갖는 독단주의(dogmatism)를 비판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적 역량을 총동원해 더 이상 의문을 던지기 힘들 정도의 수준까지 치열하게 끌고 가는 그 변증술적 문답의 과정 자체가 그것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플라톤 철학이 독단의 철학 이전에 끊임없는 질문의 철학, 의심의 철학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섣부른 답도 문제이지만 답을 내놓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플라톤이 내놓는 답은 문제상황 하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궁극에 이를 정도의 모든 의문과 절실함을 바탕으로 한다. 이처럼 삶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입장이나 주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묻고 또 물으며 설명이 가능한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플라톤의 변증술의 기본 정신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이 의심이라면 플라톤 철학은 그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철학적 토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곳에서도 우리가 법제화하여야 할 교육의 목표를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 있다. 교육paideia은 ’무엇보다도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가능한 한 가장 잘할 줄 아는 자를 만드는 일‘이다.(534d) -끝-
다음 주제 :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영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3) 교과목들의 대상과 부과 방법, 시기와 구체적 프로그램(535a-541b)
헤겔 형이상학 산책 43-양에 관한 칸트의 이율 배반 논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43-양에 관한 칸트의 이율 배반 논증
1)
양은 대자 존재의 관계다. 대자 존재는 동일한 것이 여럿으로 존재하니, 예를 들어 나뭇잎이나 물발울과 같은 것이다.
이들의 관계 속에서 관계 맺는 것이 동일한 일자므로, 이들은 서로 견인하면서 연속적인 것으로 되고, 동시에 여기서 관계 맺는 것이 서로 다른 일자므로 이들은 서로 반발하면서 이 관계는 분산된 관계다.
“연속성 속에는 다의 병열이 여전히 내포되어 있으며 그러나 동시에 구별되지 않은 것, 중단되지 않은 것으로 포함되어 있다. 다는 연속성 속에 본래 그대로 정립되어 있다. 다는 다른 것과 같은 일자이며 각자는 다른 것과 동일하며 따라서 다는 단순한 구별이 없는 동등성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176)
대자 존재의 견인과 반발은 상호 작용적이니, 반발하는 가운데 견인이 일어나고 견인하는 가운데 반발하게 된다. 반발 가운데 견인하면서 연속하고 견인하는 가운데 반발하므로 분리된다. 헤겔은 이런 분리와 연속성이 동시에 존재할 때 한편으로 자기를 넘어 연장(지속)하는 것 즉 생산적인 지속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를 벗어나 분리되는 것 즉 영속적인 탈자태가 있다.
“양은 그 규정상 자기에 대한 지양하는 관계이며 영속적인 탈자화[Aussersichkommen]이다. 그러나 반발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반발은 자기 자신의 생산적인 지속[Fortfliessen]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177)
생산적인 지속이 양적인 것이며 영속적인 탈자태가 공허다. 물질은 양적이며 시공간은 공허다. 그러나 물질도 배후에는 탈자성이 있으며, 시공간도 배후에는 하나의 양적인 연속체다.
2)
헤겔은 이런 관계 개념들 즉 ‘대자 존재와 일자’/ ‘견인과 반발’/ ‘연속과 분리’/ ‘지속과 탈자’라는 개념을 통해 양적인 것을 규정한다. 이런 ‘양적인 것[Quantitaet]’은 아직 ‘정량[Quantum]’ 또는 ‘크기[Groesse]’는 아니다.
양적인 것은 지속과 탈자라는 관계만을 말한다. 여기서는 아직 어떤 한계가 주어져 있지 않다. 단순히 물질 또는 시공간을 말할 때 우리는 그 크기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일정한 크기가 규정되지 않고 다만 지속과 분리만 말할 때, 즉 무규정적인 크기가 양적인 것이다. 대표적으로 시공간이 그렇다. 시공간에 관해서 또는 물질에 대해 누가 그것은 얼마나 큰 것인가 하고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비로소 정량 또는 크기는 일정한 크기를 통해 규정된 것을 말한다. 그런 어떤 것이 정량이 되려면 일정한 크기 즉 한계를 지녀야 한다. 예를 들어 물방울은 일정한 폭을 지닌 크기를 가진다. 그것을 우리는 분자 단위나 원자 단위로 세지 않는다. 물 분자의 일정한 집합체를 하나의 물방울로 보고, 비로소 물방울의 수를 센다. 물 분자가 물방울의 크기를 이루지 못하면, 물 분자는 그대로 있지만, 물방울을 사라진다고 말한다. 물방울이 더욱 뭉쳐서 물줄기가 되면, 이제 물줄기라 하지 이를 물방울로 보지 않는다. 이처럼 일정한의 크기를 지닌 어떤 것이 곧 정량이다.
3)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 정량, 크기로 넘어가면서 긴 주석을 통해 양의 연속성과 가분성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소개한다. 원자론자는 가분성을 주장하는 대표자다. 스피노자는 연속성을 주장하는 대표자로 소개된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 독자적으로 관심을 지닌 것이 아니라, 양에 관한 칸트의 이율 배반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언급될 뿐으로 보인다.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 연속성과 분리를 동시에 인정하므로 양에 관해 칸트가 주장한 이율 배반이 특별히 흥미로웠을 것이다.
헤겔은 칸트의 양에 관한 이율 배반론을 살피기 전에, 칸트의 이율 배반론 전반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서술한다.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론의 공적을 인정하면서 칸트의 이율 배반론은 “이전의 형이상학이 전복이며 새로운 철학으로 이행의 주요 계기다”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율 배반론은 “유한성의 범주를 내용의 측면으로부터 무화시키기” 때문이다.
즉 이전의 형이상학은 지성의 개념 즉 판단 범주를 실체화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는 긍정하고 그것에 대립하는 것은 반박하였는데, 칸트는 두 가지 모두가 자기 모순적인 것을 밝힘으로써 어느 개념도 실체화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론이 지닌 한계를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칸트는 이율 배반에 속하는 네 가지 개념쌍을 네 가지 판단 범주에서 끌어내 “완전성이라는 가상을” 주려 했으나, 사실 지성의 모든 범주가 “이런 대립된 계기의 통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칸트는 지성의 개념을 물 자체에 적용하는 가운데서 이율 배반이 나온다고 보았으나, 이런 관점은 이율 배반이 개념 자체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물 자체에 적용되면서 구체화되는 가운데(즉 구체적 개념) 출현하는 것인지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칸트 자신은 지성 개념은 현상에 적용하면 문제가 없고 다만 물 자체에 적용함으로써 이율 배반이 생긴다고 했는데, 이는 이율 배반을 주관에 귀속시킴으로써 “모순을 주관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니” 현상 자체에서도 마찬가지 이율 배반이 생긴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4)
이상 관점을 기본적으로 전제하면서 헤겔은 이제 양적인 것에 관한 칸트의 이율 배반을 비판하는 데로 들어간다. 이제 양적인 것에 관한 이율 배반은 두 대립하는 정립과 반정립을 모두 긍정하는 이율 배반이다. 모순이 존재할 수는 없으니, 두 주장 다 배척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헤겔은 칸트가 논증했다고 믿는 것은 사실은 진정으로 논증한 것이 아니라 전제 속에 감추어놓고 이것을 마치 논증한 결과처럼 떠벌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칸트는 논박 요술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항의한다. 고찰된 증명은 요술은 아니지만, 증명이라는 외적인 형태를 갖고 있어서 결론으로 출현해야 하는 것이 괄호 속에 증명의 축이 된다는 것을 투시하지 못하게 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184)
정립부터 보자. 이 정립은 “세계 속의 모든 합성된 실체는 단순한 부분들로 합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즉 더는 나누어지지 않는 단순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어가 ‘합성된 실체’인데, 정립에서 칸트는 이 주어를 실체보다는 합성된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칸트는 이 주장을 논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합성된 것을 구성하는 단순한 것이 없다고 해 보자.
-그러면 합성된 것을 구성하는 것은 다시 합성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무한히 이어가면, 마지막으로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만 남는다.
-합성된 것이 무로 구성될 수는 없으니, 단순한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칸트의 이런 논증에 대해 헤겔은 불필요한 우회를 해서 증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구성 또는 합성된 것이라는 말 속에 이미 단순한 것의 합성이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이것은 합성된 것은 합성된 것이라는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합성된 실체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모든 합성은 사유 속에서 지양될 수 있으니, 어떤 합성된 부분도 남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단순한 부분도 없으므로 어떤 단순한 것도 따라서 어떤 것도 결과적으로 어떤 실체도 있을 수 없다.”(논리학 재판, GW21, S. 182)
“다음 사실이 밝혀진다…. 즉 증명으로 제시된 근거는 직접 추론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합성은 단순히 실체의 우연적 관계이며, 이 관계는 실체들에 외적이어서 실체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논리학 재판, GW21, S. 183)
5)
이제 반정립을 보자. “세계 속에 어떤 합성된 사물도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계 속에 어떤 단순한 것도 현존하지 않는다.”
여기서 칸트는 정립과 다른 주어를 사용한다. 즉 ‘합성된 사물’이다. 흔히 그렇게 하듯이 ‘사물’을 ‘실체’와 같은 말로 보면, 정립과 같은 주어가 된다. 그런데 이 반정립된 합성된 실체(사물) 가운데 칸트가 초점을 두는 것은 정립에서와 달리 ‘합성체’가 아니라 실체 즉 ‘단순한 것’에 있다.
칸트는 이 반정립 역시 타당한데 그것의 논증은 이러하다.
-실체가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진다면
-모든 실체의 합성은 공간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 부분들은 각기 공간을 차지한다.
-그런데 어떤 공간도 부분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합성된 것을 이루는 부분도 공간을 차지하는 공간은 다시 부분으로 나누어지니, 단순한 것은 합성된 것이 된다. 이는 자기모순이다.
-결론적으로 실체는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칸트가 이 논증에서 목적으로 하는 것은 단순한 실체가 연속적인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는데, 헤겔은 칸트의 이런 논증 역시 잘못이라 한다. 여기서 이미 공간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전제된다. (칸트는 공간은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단순한 전체라고 본다.),
칸트는 반정립의 논증에서 사물을 공간 속에 집어넣었는데, 이는 곧 사물이 이미 공간적인 것 즉 연속적이어서,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을 전제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이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정립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제에 몰래 집어넣은 것을 추론이라면서 끄집어낸 것에 불과하다.
“공간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가정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의 직접적인 근거로 되었다.”(논리학 재판, GW21, S. 185)
“공간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가정된다. 그러므로 단순한 것을 이런 공간이라는 지반으로 옮겨놓는 것은 근거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지반은 단순한 것이라는 규정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186)
6)
이 논증은 칸트가 공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간주하므로 발생하는데, 그렇다면 그런 공간 속에서 합성이라는 외면적 관계가 성립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칸트는 물체를 공간 속에 집어넣고 물체의 합성을 공간적 관계로 설정했는데, 이것은 그 자신 공간을 다시 부분으로 합성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헤겔은 칸트의 혼란을 이렇게 지적한다.
“여기서 특히 공간에 대해 연속성이 매우 올바르게 부분의 합성과 대립하여 제시되었다. 반면 논증에서는 실체가 공간 속에 옮겨져 서로에 대해 외적으로 발견되는 관계가 즉 합성된 것이라는 관계가 동반된다고 가정된다. 그런 논증과 달리 공간 속에서 다양성이 발견되는 방식은 명백히 합성과 선행하는 부분들의 합일을 배제해야 한다.” (논리학 재판, GW21, S. 186)
사실 헤겔에서 물질과 공간은 양적인 것이면서도 서로 대립한다. 물질은 연속적인 것이면서 그 이면이 분리된 것이다. 공간은 분리된 것이면서 그 이면이 연속된 것이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물질은 공간에 들어있고 공간은 물질을 수용할 수 있다..
칸트는 정립에서 처음에 주어는 ‘합성체’라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 만일 정립의 주어를 ‘실체에 맞추어 보면 즉 단순한 실체라고 본다면, 단순한 실체가 단순한 것으로 이루어진다( 즉 합성된다)는 말은 모순이다.
마찬가지로 칸트는 반정립에서 주어의 초점이 단순한 ‘실체(사물)’에 있었는데, 만일 이 초점이 ‘합성체’에 있다고 한다면, 반정립은 합성체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연속체라고 주장하니 그 자체로 모순이다.
결국, 정립과 반정립에서 칸트는 주어를 모호하게 했다. 정립의 주어는 ‘합성된 실체’고 반정립에서는 ‘합성된 사물’이다. (사물과 실체를 같은 것으로 보더라도)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각기 그 의미가 달리 해석된다. 칸트는 정립과 반정립 자체에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면서 논증했으니, 철저한 논증이라 할 수 없다.
7)
헤겔의 입장은 ‘이율 배반이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아니다. 모호한 주어를 명확하게 하더라도, 정립과 반정립은 동어반복이든 아니면 자기모순이니 두 가지 주장이 동시에 성립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헤겔은 칸트의 주장을 통해 대립하는 것의 통일, 모순이라는 그의 변증법적 원리를 확인할 뿐이다.
헤겔의 비판은 칸트의 의도를 비판하는 데 있다. 칸트는 정립과 반정립을 동시에 긍정하면서 이런 서로 대립된 것이 동시에 긍정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율 배반을 발견했다. 칸트는 그러므로 단순성과 합성된 것, 연속성과 분리라는 범주는 어디까지나 경험적 현상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즉 물 자체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런 이율 배반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은 모든 양적인 것이 지닌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성질이라고 보았으며, 이것이 우리가 양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들 물질, 시간, 공간 등의 본질적 특성이라 하였다.
“연속성 자체 내에 원자의 계기가 있다. 연속성은 단적인 분할의 가능성[즉 무한 분할가능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분리는 모든 구별을 지양한다. 왜냐하면, 단순한 일자는 다른 것과 같은 일자이기 때문이다. …. 각각은 다른 측면을 그 자체에서 가지므로 다른 것 없이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이 규정의 어느 것도 진리가 아니다.”(논리학 재판, GW21, S. 187)
헤겔은 이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높이 평가한다.
“그는[아리스토텔레스] 무한 가분성을 연속성에 대립해서 무한한 추상적 다를 그 자체에서 또는 가능성에서 연속성 속에 포함시켰다. 현실적인 것은 추상적 다수성에 대립하는 동시에 추상적 연속성에 대립하는 것이니 구체적인 것이다.” (논리학 재판, GW21, S. 1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