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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 [6] [내게는 이름이 없다]

하버마스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Es musste etwas besser werden

Gespräche mit Stefan Müller-Doohm und Roman Yos

 

옮긴사람 행길이(한철연 회원)

 

[6]

 

3. 실증주의 비판에서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으로 –  –

 

□ 기술 사회학(beschreibende Soziologie)도 사회적 갈등의 측면들을 충분히 잘 조명하고 있습니다이에 비해 당신의 비판 사회이론(kritische Gesellschaftstheorie)이 더 나은 점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즉 기존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legitimieren)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그저 특별한 경우일 뿐입니다사회 비판은 일반적으로 행위 주체와 그에 상응하는 제도들의 합리성 전제(Rationalitätsunterstellungen)에서부터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시민들은 법정에서 어느 정도 공정한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것은 현실주의자들이나 비판 법학(Critical Legal Studies)을 지지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주장즉 판사들이 내리는 판결에는 이해관계에 편향된 동기들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법정에서 갈등을 해결해 보고자 합니다시민들은 합리성 전제가 성립될 수 있을 경우에만 법적 해결을 신뢰하면서 참여합니다이러한 합리성 전제는 때때로 [체제 반대와 같은일탈 행위를 설명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어느 정도 기능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경청될 수 있고정치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암묵적으로 전제할 때에만 습관적으로 총선에 참여할 것입니다민주 헌법은 심지어 그들의 표가 다른 모든 시민의 표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약속하기까지 합니다이러한 것들 역시 이상화된 전제들이지만 이것들은 사회적 결과를 낳습니다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은 더 이상 선거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투표거부자들(Nichtwähler)이 종종 포퓰리즘 운동에 동원되는 것을 목격합니다그러나 이때 그들은 자신을 체제 반대자(Systemopposition)’로 이해하면서 민주적 선거의 전제 조건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작동을 가로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참여합니다이러한 [체제거부적실천들에서 문제거리가 되는 것은 참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이상화된 전제들이 아니라 제도 자체의 신뢰성입니다이를테면 소외된 투표거부자들과 그들의 이해관계를 정당정치적 차원에서 참작하지 못함(parteipolitische Nichtberücksichtigung) 사이를 돌고 도는 악순환이 발생하거나공적 의사소통의 기반구조가 붕괴하여 충실한 정보에 입각한 공적 의견이 아닌 어리석은 원한감정(dumpfe Ressentiments)이 마당[공적 의사소통 공간즉 공론장]을 장악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죠비판 사회이론은 이러한 체제 반대의 실천 경향을 민주적 절차에 함축된 이상화된 전제에서 갈라져나온 것이라는 식의 합리적으로 재구성된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바로 이것이 오로지 객관화로만 접근하는 기술 사회학적 설명보다 비판 사회 이론이 낫다고 할만 한 것입니다.

 

□ 그렇다면 당신의 견해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정치적 행위 영역에서 행위자들의 다소 합리적인 의도 및 의견을 경험 사회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그저 첫 단계에 불과하며행위자들(Handlungsakteure)의 실천은 민주적 제도들의 객관적 의미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규범적 기대를 재구성하기 위한 접근법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왜냐하면 우리가 [민주적 제도들의 객관적 의미에 비추어 행위자들의 규범적 기대를 재구성하지 않는다면 행위들에 대한비판적 판단을 형성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이나 척도도 가지지 못하게 될테니까요.

 

■ 네저는 이런 논점에 대해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가지고는 전문가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런 상황 속에서 저는 이성(Vernunft)’을 주관적 능력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의사소통적으로 사회화된 주체들이 공동의 언어를 가지고 근거들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담론적으로 규제된 주제입장논증의 교환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루만(Luhmann)의 체계이론도 자기성찰성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한다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그는 이러한 종류의 성찰성을 (전통적 철학 개념으로서의이성에 귀속시키지 않습니다그런 의미에서 루만 역시 사회이론에 종사하고 있습니다그렇지만 그는 자기성찰(Selbstreflexion)’을 처음에는 후설(Husserl)적인 생활세계(Lebenswelt)’ 개념으로 파악하다가 생물학을 모범형으로 삼아 그것을 다시 대상화합니다체계의 자기성찰은 다음과 같습니다복잡한 환경에 직면한 체계는 자기 준거적 경계 유지(selbstbezügliche Grenzerhaltung)를 고수하면서 환경에 대한 대응 기능을 자기산출적으로(autopoietisch) 제어합니다즉 그의 이론에서 자기성찰은 세계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것들(Entitäten in der Welt)을 끝내 관찰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려는 특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 힘차게 노 저어 가다보니 어느새 루만과의 논쟁 지점까지 도달버렸습니다이 논쟁은 근대에 대한 철학적 담론에 관한 당신의 설명을 배경으로 염두에 둬야만 하는 것이죠만

 

■ 맞습니다그 부분은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 주제의 범위에서 벗어난 듯 하군요제가 합리적 재구성[사회 현상이나 행위자들의 행위에 내포된 규범적 기대와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대해 너무 길게 설명했는데요이 부분은 변증법의 역할에 대한 당신의 원래 질문과는 관련이 없습니다당시 실증주의 논쟁에서 아도르노의 부정 변증법은 주제가 아니었고방법론적 담론에서도 다룰 것도 아니었습니다제가 이해한 바로는 헤겔의 변증법은 엄격한 의미에서 결코 논리학이 아닙니다오히려 범주론(Kategorienlehre)이죠헤겔은 이 범주론을 지나치게 보편화했지만 사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뚜렷하게 강조했듯이 특정한 문제의식에 맞춰진 것이었습니다즉 당시 부르주아적’ 사회다시 말해 다소 자유주의적인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위기의 전개 양상과 그 동학을 묻는 질문에 대해 어떤 개념들로 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 말입니다.

우리가 앞서 헤겔이 근대 사회의 위기 경험즉 인륜적’ 생활 형식의 해체를 야기하는 압도적 소용돌이라는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제기되었던 대답즉 해체된 생활 관계로부터의 해방의 운동을 어떻게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나타나는 배열 변화로 파악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이러한 것들은 기존의 총체성이 해체되고 다시 복원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총체성의 특징은 개별적인 것특수한 것 그리고 보편적인 것을 강제없이 통합한다(zwanglos integriert)는 것입니다저는 제 최근 저서의 헤겔 장에서 점점 늘어나는 사회적 복잡성과 심화하고 있는 개별화의 조건(Bedingungen wachsender gesellschaftlicher Komplexität und fortschreitender Individuierung아래에서 이러한 위기와 화해 경험을 언어 화용론적 방법을 통해 풀어내려 시도했습니다. 이 방식으로 풀어내보면헤겔의 총체성 개념과 그에 관련된 변증법이란 것은 서로를 만족스럽게 통합된 생활 형식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하는 개인들의 자기 서술(Selbstbeschreibung)에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는 헤겔 변증법의 논리적 기본 개념에 담긴 규범적 의미를 개인들이 참여자적 관점에서 생활 형식의 상태를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해야 하는 인칭 대명사의 수행적 의미를 통해 설명합니다즉 생활 형식에 대한 소속감이나 소외감을 표현할 때는 인칭대명사를 [관찰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참여자의 입장에서 수행적 의미로 사용한다는 겁니다왜냐하면 개별성(Individualität) –또는 비동일적인 것(das Nichtidentische)–의 모습은 기술적 관찰자의 객관화된 시각으로는 단지 지칭할 수만 있을 뿐 그 자체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즉 그것은 관찰자의 관점에서 3인칭으로 기술되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라고 말하는 1인칭의 관점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언어의 공간 속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그것이 끝없는 자서전적 맴돌기(Einkreisung)의 형태로만 가능할 뿐그 자체를 완전히 표현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죠.

제 생각에는 헤겔 변증법의 기본 개념들은 본래 특정한 경험에 불과한 것을 집합적 형식으로 자기 서술하는 것즉 헤겔이 『법철학』에서 분석한 근대 사회의 위기 경험을 우리라는 말로 행했던 자기 서술에 적합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이 개념 장치를 국지적 적용 대신에 헤겔처럼 객관화하여 모든 존재하는 것즉 자연과 정신 전체에 적용하는 경우 이는 역사 철학적인 포편화를 암묵적으로 시도하는 것입니다그래야만 위기 상황을 표현하는 모든 사회 현상을 선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즉 이 위기는 관련 당사자들의 관점에서는 해결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는 것은 물론이고변증법적 필연성의 관점에서는 (비록 잠정적일지라도해결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죠.

헤르만 둔커(Hermann Duncker), “막스 슈티르너의 철학은 실제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 ② –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헤르만 둔커(Hermann Duncker)[1]

Max Stirner’s Philosophy Is Actually Worth Reading

막스 슈티르너의 철학은 실제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 ② –

이 글은 헤르만 둔커(Hermann Duncker, 1874~1960)의 글을 2024년에 훔볼트 대학교 사회비판센터 연구원 야콥 블루멘펠트(Jacob Blumenfeld)가 영역하고 이것을 다시 우리 말로 옮기면서 옮긴이가 주석을 단 것입니다.

옮긴이 박종성(한철연 회원)

 

  •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철학

어떤 사람은 ―이론뿐만 아니라 민중을 위한 과학,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실천은 또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교육과 지식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작품을 사람들에게 제공했습니다. 디츠출판사(the Dietz publishing house)에서 나온 다양한 역사서, 노동자 도서관Workers’ Library의 과학 및 경제 서적은 프롤레타리아가 ―그 책들을 손에 넣기만 한다면―이미 이른바 “고등 교육”으로 세례를 받은 부르주아지보다 지적으로 우월해질 수 있는 지식의 보고(寶庫)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지적 산물의 다양성을 감안할 때, 한 영역이 거의 완전히 지나쳐 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은 놀랍습니다: 철학! 사회주의자의 세계관은 철학에 기반을 둘 것을 요구하지 않나요? 이러한 필요성에 대한 느낌 때문에 당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오이겐Eugen] 뒤링Dühring[1]에 대한 논쟁[2]을 더 광범위하고 대중적 방식으로 수행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과학 혁명(revolution of science)은 그의 작업의 비판적 성격이 수반하는 것처럼 철학적 파편들을 하나로 묶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일에서 체계을 뽑아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한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레오폴트 야코비(Leopold Jacoby)[3]의 『발전의 이념』(Idea of Development)[4]에서 착수되었으며, 그 중 1-2부가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 작품을 하나의 전체(a whole)로 확장하고 완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코비가 발전시킨 것은 어느 정도 자연 철학(philosophy of nature)입니다. ―그 자신의 직업은 자연 과학자(natural scientist)였습니다. 자연 과학의 부산물인 철학은 수많은 대중적 철학 논문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가설(hypotheses)의 다소 심각한 모호함은 철학을 비난합니다. 우리는 [루드비히] 뷔히너의 『힘과 물질』(Force and Matter)[5]에서 일어난 것처럼 오래 전에 쓸모없고 입증되지 않은 그들의 이론들이 값싼 대중 판의 경노(channels)을 통해 노동 대중에게 스며든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왜 현대의 인생관은 자연 과학을 통해(via) 장거리 우회를 통해서만 발전되고 촉진되어야 할까요?

칸트학파의 인식론적 철학(노동자 철학자인 [조제프Josef] 디츠겐Dietzgen[6]은 그의 저서 『철학의 긍정적 결과』(Positive Outcome of Philosophy)[7]에서 여전히 이 철학을 고수하고 있음)은 자연 철학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연 철학 역시 심리적 토대를 찾는 새로운 철학적 접근을 위한 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지평의 변화와 함께 철학자의 대상도 바뀌었는데, 이전에는 철학자의 대상이 관념론의 영혼(idealistic soul)에서 유물론의 육체(materialistic body)으로 넘어갔다면, 이제는 두 대상이 하나로 결합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in oneself) 이러한 결합을 인식했기 때문에, “현실의 나”(realistic I)는 철학적 성찰의 출발점이자 대상이 되었습니다.

[헨리크Henrik] 입센(Ibsen)[8], [표도르Fyodor] 도스토옙스키(Dostoyevsky)[9], [리하르트Richard] 데멜(Dehmel)[10] 등의 현대 예술 작품에서 격언처럼 들리기도 하고, 프리드리히 니체에서 가장 젊고 눈부신 대표자를 찾기도 했던 “나 철학”(I-philosophy)은 개인에서만 출발합니다. 전제 조건이 없다는 점, 즉 자신의 자기 지식(self-knowledge)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이 철학은 특히 노동자에게 적합합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안전(hide)을 시장에 내놓게 만든 자본주의 체제는 대학에서 자신의 나(ego)에 화려한 모자를 씌우는 부르주아 소년보다 훨씬 더 쉽게 그의 인격(personality)을 일깨워줍니다. 노동자가 존재를 위한 투쟁에서 풍부하게 수집하는 삶의 경험은 곧바로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worth) 또는 가치(value)[11]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일은 자신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자기 인격의 가치 또는 유산 계급(propertied classes)의 세계와 관련하여 그 가치(worth) 부족에 대해 쉽게 숙고하게(to reflections) 됩니다. 사회주의자 운동을 지탱하는 것이 대중의 각성된 자기의식(awakened self-awareness)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여기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과 자기확신(self-confidence)은 상호 연관되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보다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정의와 폭력, 국가와 법, 재산과 가족에 대한 생각은 상속받지 못하고 재산을 빼앗긴(dispossessed) 프롤레타리아의 머릿속에 쉽게 자리 잡습니다. 그의 생각은 현상 유지(status quo)[12]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라는 신성한(hallowed) 기관에 머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지만, 승리할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13]

 

이 나-철학의 가장 명확하고 심오한 구축자는 막스 슈티르너이며,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모든 생각하는 노동자의 손에 있어야 하는 책입니다.”

 

이 모든 사고방식은 “개인의 철학”과 평행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후자는 이미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개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훨씬 더 힘들고 불완전하게 시도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치료는 체계의 전체 구조를 통해 개인의 관찰을 일깨우고 지원하며, 철학적으로 사색하는(philosophizing)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통찰력과 전체상(overview)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습니다. 이 나-철학의 가장 명확하고 심오한 구축자는 막스 슈티르너이며,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모든 생각하는 노동자의 손에 있어야 하는 책입니다.

니체는 종종 슈티르너의 후계자라고 불렸고, 연대기적으로 볼 때 이에 반대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슈티르너는 니체보다 약 40년 전에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내용에 따르면, 슈티르너는 니체의 파편들(fragments)을 완성하고 종합하기 때문에 관계를 뒤집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철학적 교사로서 슈티르너를 우리에게 가장 추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큰 대조를 언급해야합니다.

니체는 귀족, 슈티르너는 평민(올바른 의미에서 평민을 뜻함)입니다. 니체는 문화(culture)에 지친 교양인(cultured)을 위해 세련되고 예술적 문체로 글을 썼는데, 이는 무한한 여가 시간과 이해를 위한 긍정적(positive) 지식을 전제로 하며, ―노동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어렵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슈티르너는 편견과 환상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과 착취(exploitation)라는 수 세기에 걸친 노예 상태의 멍에를 떨쳐내야 하는 자기중심적 사람(egoist)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의 언어는 꾸밈없고 거칩니다. 그리고 그는 자유로운 시선(free gaze)과 자유로운 마음만을 전제로 합니다. 그는 여러 곳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감정과 프롤레타리아의 힘에 호소합니다.[14]

먼저 슈티르너를 읽어야 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독교와 1840년대의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긴 논쟁의 일부는 건너뛰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민”(people), “자유주의”, “공산주의” 같은 용어는 역사적 맥락(historical context)에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이미 5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곧 잊어버릴 것입니다.

부르주아지 발전의 역사, 교회와 국가, 법 이론 등에 대한 그의 발언에는 광범위한 통찰력이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빈곤(pauperism) 문제, 즉 그 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가 말한 내용은 294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하지만 아마도 몇 가지 예가 가장 좋은 통찰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국가들이 집단 빈곤을 없애야만 한다고 요구하였다. 나한테 그것은 국가가 자기 자신의 머리를 베어서 자신의 발 앞에 놓아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15]

 

그리고 더 나아가 p. 296:

집단 빈곤은 나의 무가치성이고, 내가 나를 이용할 수 없다는 현상이다. [282] 그 때문에 국가와 집단 빈곤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 국가는 나를 내 가치에 도달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내 무가치함을 통해서만 계속 존재한다. 비록 국가가 나로부터 얻은 그런 소비는 오로지 내가 자식(proles)414(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을 조달하는 데 있다 하더라도, 국가는 항상 나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에, 다시 말해 나를 착취하고 철저히 이용하며, 소비하는 것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까 국가는 내가 ‘국가의 창조물’이길 원한다.

나로서의 내가 나 자신을 가치 있게 사용할(verwerte) 때, 내가 자신의 가치(Wert)를 나 자신에게 줄 때, 그리고 나 자신의 값을 스스로 만들 때, 그때만 집단 빈곤은 없어질 수 있다. 나는 번영하기 위해서(umemporzukommen) 반드시 저항해야(empören) 한다.[16]

 

이 시점에서, 불행하게도 오늘날 종종 결정적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요점을 다룰 수 있습니다.

슈티르너가 ―“아나키즘의 철학자”로 의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철학에 대한 이러한 의혹에 대해 누구도 충분히 호되게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누구에게나 이용당할(be exploited by)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슈티르너가 현대 사회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심지어 [빌헬름Wilhelm] 바이틀링(Weitling)과 [Pierre-Joseph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의 공상적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철학을 사회정치적sociopolitical 체제의 좁은 틀 안에 전혀 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나(the I) ―와 연합(the union)이기 때문입니다! 슈티르너 자신(315~318쪽)이 가장 생생한 색채로 그런 어떤 연합(union)의 파업strike을 묘사한 것처럼, 연합(The union)은 현대의 투쟁 조직인 노동조합(the trade union)의 한 유형에 지나지 않습니다![17]

프랑스의 한 비평가는 군주(monarch)로서 남긴 책인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우리가 군주를 떠나는 책(un livre qu’on quitte monarque)라고 부릅니다. 글쎄요, 프롤레타리아트는 한 번쯤 주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역할을 위해서는 주인 의식(consciousness)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슈티르너를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큰 교훈이자 결실입니다.

모든 자유는 본래—자기해방(Selbstbefreiung)이라는 말을, 다시 말해 내가 내 자신의 자기소유성(Eigenheit)을 통해 얻는 자유만큼만 나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한다. 아무도 사람들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양같이 온순한 사람들한테 무슨 쓸모가 있는가? 그들은 계속 우는소리를 한다.[18]


[1] 카를 뒤링(독일어: Karl Eugen Dühring, 1833년 1월 12일 ~ 1921년 9월 21일)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대학에서 법률학을 배운 다음 사법 실무를 수습하던 중에 실명하였다. 1864년에 베를린 대학의 철학, 경제학 사강사(私講師)가 되고 눈먼 학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과거의 거의 모든 철학과 기독교에 반대하여 일종의 유물론인 ‘현실철학’을 제창하고 과학과 인류의 변혁자로 자처하였으며, 또한 반유대주의자였다. 1870년경부터 사회주의를 표방, 파리 코뮌을 찬미하는 진보파였으나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였다. 1877년에 사강사 직에서 쫓겨나자 대학 내외에서 강력한 뒤링 지지 운동이 일어났다.

[2] 엥겔스는 1870년대 후반 <반뒤링론>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이 책은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오이겐 뒤링의 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뒤링이라는 이름 또한 엥겔스의 저작으로만 역사에 남아 있다. 하지만 당시 오이겐 뒤링의 사상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같은 당대 독일의 주요 지식인조차 확고한 지지를 표방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뒤링은 반유대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한 사상가였다.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공상주의적 사회주의가 만연한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을 과학적 사회주의를 통해 현실화하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의도가 담긴 책이다. 지금은 이름조차 낯선 뒤링이라는 엉터리 사상가 한명을 저지하기 위해 엥겔스와 마르크스라는 두 대가는 친히 전장에 나섰다.

[3] 레오폴트 야코비(Leopold Jacoby, 1840- 1895)는 독일의 사회주의 시인이었습니다.

[4] 야코비가 쓴 Die Idee der Entwickelung, Teile 1-2는 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진화와 발전Entwicklung의 개념을 다룬 철학적 논문이다. 저자는 생물학, 역사,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화론의 개념을 탐구한다. 그는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발된 다양한 이론과 접근 방식을 설명합니다. 야코비는 또한 이 과정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과 인간의 행동을 통해 발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조명합니다. 이 책은 발전 철학Philosophie der Entwickelung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이 분야의 고전으로 간주됩니다.

[5] Kraft und Stoff는 인류에 대한 광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뷔히너는 물질의 불멸성과 물리적 힘의 최종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루트비히 뷔히너(Ludwig Büchner)의 유물론은 독일 자유사상 운동 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1881년에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자유사상가 연맹 ”(Deutsche Freidenkerbund)을 창설했습니다.

[6] 페터 조제프 디츠겐 (Peter Josef Dietzgen, 1828- 1888)은 독일의 사회주의 철학자 , 마르크스주의자 , 언론인이었습니다.

[7] https://www.marxists.org/archive/dietzgen/1887/positive-outcome/index.htm, 이 책은 1887년 출간되었다.

[8] 헨리크 요한 입센(노르웨이어: Henrik Johan Ibsen, 1828년 3월 20일 ~ 1906년 5월 23일)은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의 하나로, 근대 시민극 및 현대의 현실주의극을 세우는 데 공헌하였다. 따라서 그를 “현대극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9]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러시아어: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문자 개혁 이전: Ѳедоръ Михайловичъ Достоевскій, 영어: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끼, 1821년 11월 11일/구력 10월 30일 ~ 1881년 2월 9일/구력 1월 28일)는 러시아의 소설가이다.

[10] 리처드 페도르 레오폴트 데멜 (Richard Fedor Leopold Dehmel, 1863년 11월 18일 ~ 1920년 2월 8일)은 독일의 시인이자 작가였습니다.

[11] worth는 value와 바꿔 쓸 수도 있지만 worth는 주로 인간의 정신으로 느낄 수 있는 가치를 말함: Few knew his true worth. 아무도 그의 참 가치를 몰랐다. value 효과상의 가치, 중요성, 또는 금액으로 환산되는 가치: the vɑlue of experience 경험의 가치〔중요성〕.

[12] 기존의 사회구조, 가치관, 체제 등을 현재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13] “그러나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어떤가? [126] 그러니까 프롤레타리아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자신의 ‘아무것도 없음’을 위해 국가의 보호가 필요로 하지 않다. 국가의 보호는커녕, 피보호자에게서 저 국가의 보호를 빼앗는다면, 그는 이익을 얻을 것이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 180쪽.

[14] 『유일자와 그의 소유』, “노동자는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언젠가 그들이 엄청난 힘을 철저히 자각하고 그 힘을 사용하게 되었다면, 아무도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 그들은 동맹 파업을 하고, 노동의 산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이것이 여기저기에서 불쑥 나타나는 노동 불안의 의미이다.” 182쪽.

[15] 『유일자와 그의 소유』, 390쪽. 독일어본은 280쪽이다.

[16] 『유일자와 그의 소유』, 393쪽. 독일어를 병기한 것은 슈티르너의 글쓰기 특징을 살히고자 한 것이다. 그는 흔히 유사한 단어를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조롱하곤 한다.

[17] 『유일자와 그의 소유』, “노동자는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언젠가 그들이 엄청난 힘을 철저히 자각하고 그 힘을 사용하게 되었다면, 아무도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 그들은 동맹 파업을 하고, 노동의 산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이것이 여기저기에서 불쑥 나타나는 노동 불안의 의미이다.” 182쪽. 이 밖에도 『슈티르너 비평가들』에서 그리는 연합도 참조하면 좋습니다.

[18] 『유일자와 그의 소유』, 261쪽.

헤겔 형이상학 산책 46-내포량과 외연량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46-내포량과 외연량

1)

앞에서 수에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단위[Eins]와 개수 그리고 총수[Einheit]¹이다. 정량에서 단위는 그 정량에 외면적인 것이지만, 정량은 이 단위의 반복을 통해 규정되므로, 자기 관계하는 것이다. 개수는 단위가 모인 집합이므로 불연속적이다. 총수는 이런 단위를 전체로 총괄하는 것이므로, 연속적이다.

주1: Eins, Eeinheit와 같은 표현은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대체로 Eins는 일자 즉 정량을 이루는 단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때로는 문맥상 어떤 수가 고유한 개별자로 존재할 때를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7은 하나의 일자이다. 또 Einhiet도 대체로 총수를 의미하는데 어떤 때는 차라리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상 더 적합할 때도 있다. 혼란이 있지만, 문맥에 따라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헤겔에서 개수도 연속성의 측면이 있으며 총수도 불연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개수가 불연속적인 것의 집합이라 할 때, 세어지는 각 일자는 서로 같은 것이므로,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 같은 것들끼리는 연속적이니, 그 점에서 개수도 연속적이다. 마찬가지로 총수가 내적으로는 연속적인 것이지만, 다른 수와 비교해 보면 단적으로 서로 구별되는 것이니, 이런 점에서 총수는 불연속적인 것이기도 하다.

2)

앞에서 말했듯이 질의 범주에서는 질이 서로 관계하여 통일되면서 대자 존재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 대자 존재는 양적인 것의 출발점이 된다. 양의 범주에서는 그 반대다. 여기 양에서 양적인 것이 서로 관계하면서 질적인 것이 다시 출현하는 과정이 다루어진다. 이처럼 질적인 것이 다시 출현하는 데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 내포량의 개념이다.

헤겔에서 내포량은 외연량과 비교된다. 양자를 구별하는 것은 바로 양적인 것을 규정하는 일자 즉 양적인 것의 원리이며 그 자체 규정성의 원리인 단위다. 외연량에서 단위는 자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다. 어떤 것의 크기는 자기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그것을 거듭 반복하면서 재어질 수 있다.

그 단위가 자기 자신이므로 여기서 규정성은 자기 관계에 머무른다. 이런 자기 관계는 아직 타자를 통해서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 아니며 추상적인 자기 관계다. 여기서는 어떤 크기는 그 단위가 몇 번 반복된 것인지가 확정된다. 이것을 통해 개수와 총수가 주어진다.

그런데 내포량은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말해지는 대로 감각의 정도를 말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사물은 경도나 강도에 따라 비교될 수 있다. 이런 경도나 강도는 자기 자신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비교될 수는 없다. 이것은 자기와 다른 것과 비교돼서 더 크고 더 작은 정도를 지닐 뿐이다. 철기는 청동기보다 더 강하다. 서로 부딪히면 청동기가 깨어지기 때문이다. 유리보다 다이아몬드는 더 큰 경도를 지닌다. 다이아몬드로 유리를 자를 수 있다.

이처럼 내포량은 오직 다른 것과 비교된 크기므로, 더 강하고 더 약하다는 비교를 통해서 서열을 매길 수는 있지만, 과연 그 정도가 몇 배나 더 큰가를 말할 수는 없다. 다이아몬드 이런 비교를 통해 서열상 20번째라고 한다면, 여기서도 개수와 총수가 나오니 이것도 하나의 정량이기는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서열상 첫 번째 사물(예를 들어 유리라고 하자)의 20배나 더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헤겔은 외연량은 배중성[Vielheit]을 가진다고 말하며 내포량은 가중성[Mehrheit]을 가진다고 한다. 즉 전자는 몇 배인지를 알 수 있지만, 후자에서는 더 많은 것인가 많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외연량에서 개수는 ‘자기 내에서의 개수’이고 내포량에서 개수는 ‘자기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개수’라고 한다.

“외연량과 내포량은 정량의 동일한 규정이다. 그 구별은 외연량은 개수를 자기 안에 가지며, 내포량은 이를 자기 바깥에 가진다는 데 있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3)

여기서 ‘자기 바깥에’라는 말은 타자와 비교된다는 말일 것이다.

“정도는 특정한 크기지만, 집합이거나 단지 자기 내에 머무르는 더 많은 것[Mehreres]은 아니다. 정도는 더 많음[Mehrheit]인데 더 많은 것은 단순한 규정 속으로 복귀한 더 많은 것[Mehere]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0)

여기서 ‘자기 내에 머무르는 더 많은 것’과 ‘단순한 규정 속으로 복귀한 더 많은 것’이 비교된다. 그 의미를 새겨 보면, 전자는 많고 적음이 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후자는 많고 적음이 세어질 수 없다는 의미다. 외연량은 세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내포량은 그저 비교될 뿐이다.

3)

어떻게 본다면, 내포량은 양적인 것에 아직 불완전하게 도달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처음에 단순히 다른 것과 비교를 통해 측정된 것들도 엄밀하게 자기 관계하면서 몇 배나 되는지가 측정되고 외연량으로 규정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체온은 처음에는 감각의 정도였다. 손으로 재면서 내 체온보다 높으면 뜨겁고 내 체온보다 낮으면 차갑다. 그러나 이제 체온계를 통해서 재어지면서 얼마나 높은지, 몇 배나 되는지가 수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꾸로다. 즉 내포량은 외연량보다 한 단계 발전된 것이다. 왜냐하면, 외연량은 추상적인 자기 관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만, 내포량은 이제 타자와 관계하면서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통해 규정된다는 것이 질적인 것이 지닌 의미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외연량은 타자와 비교되는 것이지만, 사실 이 타자는 자기와 같은 것이다. 즉 타자는 예를 들어 경도나 강도와 같은 일정한 측면에서 비교되는데, 자기와 타자는 공통으로 이 경도나 강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이 타자와의 관계는 제한적인 의미를 지니며, 여전히 자기 관계라는 추상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자기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이제 정량은 다른 정량과 관계해야 한다. 즉 서로 다른 정량인 길이와 무게가 서로 관계하면서 비중이 출현한다. 관계한다는 것[Verhaltniss]은 곧 비율[Verhaltniss] 또는 비례를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비중의 정도는 두 개의 정량이 관계 또는 비율이다.

최근 과학에 대한 실망에서 과학적 사고를 비판한다. 현상학적 철학의 계열에서는 과학적 사고는 양적인 것을 토대로 한다. 과학적 사고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양적인 것을 통해 개별적이여 구체적인 질적인 차이를 제거한다. 양적인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하는 사유가 만들어 낸 것이므로, 자연을 왜곡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과학적 사유는 자연을 파괴한다. 나아가 오늘날 시장 사회에서는 개인이 지닌 개성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오직 개인의 양적인 가치만이 중요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소외되며, 평범하고 진부한 존재로 격하되고 만다.

이런 관점에서는 질적인 감각의 정도로 규정된 내포량(흔히 감각량)은 질적인 것이 여전히 보존된 것으로서 추상적 자연과학을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감각의 정도를 측정하는 예술가는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과학자가 된다.

헤겔은 다른 의미에서 이 감각량 즉 내포량에 주목하는데 이를 통해서 추상적인 양으로부터 감각적인 질적 차이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관점은 다르지만, 동일하게 양적인 것의 극복을 내포량에서 찾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내포량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 관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기 관계하는 것이면서 그 자기 관계가 타자를 통해 측정될 뿐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내포량을 유사한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한다.

“외연적인 타자 존재를 더는 자체 내에서 갖지 않고 이를 그 밖에서 가지며, 그 자차 존재에 자기규정으로서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일자로서 수는 개수의 무차별성과 외면성을 배제하고 자기 자신을 통해 외면적인 것에 관계하는 것으로서 자기에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무차별한 규정성이 정량의 질을 이루며 즉 그 자체에서 자기에 외면적인 규정성으로 존재하는 규정성이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정도는 그러한 내포성이 더 많음이라는 것 아래 있는 단순한 크기 규정이다. 이 크기 규정은 각각이 단지 자기 관계하며 동시에 서로 본질적으로 관계하는 상이한 규정이다. 그러므로 각각은 다른 것과의 연속성 속에서 자기규정을 갖는다.”(논리학 재판, GW 21, S. 211)

“이 자기 외면성이 내포량이고 단순한 규정성이다. 다시 말해 자기 관계하면서도 동시에 그 규정성을 타자 속에 갖는 것이며 그 규정성은 그 자체에서 자기에 외면적인 규정성이다.”(논리학 초판, GW 11, S. 133)

“정도의 각각은 자기 관계하는 크기 규정으로서 다른 크기 규정에 무차별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자체에서 이 외면성에 관계하며 다만 이 외면성과 매개해서만 그 자신의 본질로 된다.”(논리학 재판, GW 11, S. 134)

좌우의 이원론 대 민중의 다중화 [천 하룻밤 이야기]

좌우의 이원론 대 민중의 다중화

2025 10 23 상강(霜降), 이틀간 서리 내릴 듯 찬바람이 불더니 어제부터 다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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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이든 몸으로 히말라야 산맥에서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오를 수 없겠지만, 개마고원을 거쳐서 백두산(2,155m)을 걸어서 오를 수는 있을까? 어느 산이든 산을 오르는 길은 매우 많다. 가까이에 북한산이 있고, 그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서쪽에서는 은평구에서, 동쪽에서는 도봉구에서, 북쪽에서는 송추로부터, 남쪽에서는 정릉에서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네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길들 사이사이에 오를 수 있는 길들도 여럿 있다. 그럼에도 북한산 꼭대기(836미터)는 하나이다. 왼편에서 오른 이는 오른편에서 오른 이와 같은 다른 길에서 보아온 것들을 이야기를 한다. 삶도 그럴지 모른다.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살아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살아온 터전을 어느 날 떠난다는 것은 숙명이며, 사람이란 ‘세상을 떠난다’ 것은 하나의 이법으로 통한다. 산꼭대기에 올랐다가 산을 내려오고 다시 오를 기회가 있지만, 세상을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떠남은 필연이며 숙명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잡다한 이야기들은 산을 오르는 길들이 달라서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 것과 닮았지만, 한번 세상을 떠나면 되돌아 올 수 없고, 각각이 살았던 이야기는 새로운 반복처럼 다르다. 오르고 내림의 반복과 살아가는 반복은 전혀 다른 반복일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반복이 남긴 것은 역사이며, 되돌아 비춰보는 통감(通鑑, speculation)이 있고, 평결론자들(les sententiaires)은 삶을 확장하고 풍요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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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 사람, 살림, 삶, 살(육肉)을 이야기 하면서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터전에서 반복하는 방식들이 다르다. 그럼에도 자연의 이법에 따라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는 반복은 같은 반복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침에 나서서 일터에 가서 일하는 노력들이 다르지만 매일 노력을 더하여 자기 일의 집중과 강도를 높이며 살아가는 반복은 하루의 순환, 한해의 순환과 다르게 느껴진다. 동일하게 느끼는 해와 달의 순환과 달리,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방식에서 반복의 차이는 개인의 삶의 선호와 열정에 따라 다르다. 사람들은 자연과 터전에서 공통점을 공유하기도 하고, 각각의 역량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을 지라도 동일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다양한 방식이 공통용어로 잘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동일반복으로 일반화의 방식에서 하루, 한달, 한해에 맞는 용어들을 만든다. 그럼에도 용기 있는 인간과 정의로운 인간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각각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큰 틀에서는 같아 보인다고 할 때, 삶에서 일반적인 기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위치가 다르듯이 개별적 특성에 의해 각자는 남들과 다른 지위와 위상을 갖는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연을 다루는 방식에서 공통성을 유지하면서 질서 속에서 살아가지만, 각자의 위치의 차이가 있고 게다가 삶에서 공동체라는 제도 안에서 역할에 따라, 다른 배치와 지위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아마도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고대 그리스철학 이래로 다른 방식들을 보았을 것 같다. 한편으로 자연을 도구로서 잘 이용하려고 과학으로써 지식을 만들려고 했고, 다른 한편 자연 속에서 또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양식으로써 지혜를 찾고자 했을 것이다. 이렇게 구별하는 것은, 이미 인간이 사물 또는 물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런 차이를 알게 되면서, 외부의 자연에 대한 이중적 관심도 있었고,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신의 삶의 양식에도 이중적 또는 다양한 양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관심 또는 지식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이중화 또는 다양화는, 자연의 순환성과 인생의 일회성의 차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회성으로는 순환성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회성이지만, 세대를 거쳐 가면서 새로운 탄생의 일회성과 더불어 순환성을 이어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순환성이 지속인지 단절의 도약인지를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 도 없었을 것이다. 이즈음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연의 순환성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일회성을 해결하려고 했을 것 같다.

자연의 순환성을 하루, 한달, 한해라는 구별을 한꺼번에 생각 속에 담을 수 있는 방식을 찾으려 했다면, 순환의 운동을 수(數) 또는 길이로서 표시하는 방법이, 또는 상징으로서 공통 문자화 또는 기호화가 당연히 요구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이를 언어로서 표현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인류가 신석기에 들어서서 생산물을 축적하고 교환하는 과정에서 각 부족들이 나름의 표시들을 가졌을 것이라 한다. 이러한 표기방식에서 기호화하고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일반화의 규칙들을 생각해내었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일반화에서 사물에 대한 것과 삶의 양식에 대한 것 사이에 차이로서 양면성이 있었을 것이다.

소통과 교환이, 이런 양면적 역할에서, 보다 넓은 공동체 안에서 일반화의 방식을 창안해 나갔을 것이다. 제도도 일반화의 토대 위에 성립할 것이다. 이런 일반화들이 인간의 상상작용과 더불어 인간으로서 후대까지 공유할 수 있는 기호화의 체계를 만들고, 다음 세대들에게도 또는 다른 터전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사유세계라고들 한다.

물론 문명의 시작으로 아나톨리아지방의 신석기 문명에서 포획의 방식이 생겼다고 하고, 농경문화에서는 인더스 문명의 영향이 기본이라고 한다. 그래도 바빌론 문명과 이집트 문명들에서도, 동양에서도 황허문명과 요하문명에서도 전승이 있었다고는 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들의 실재 활동과정에서 세는 것과 재는 것이 있어왔고, 또는 독해가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주문과 같은 암송의 언어들은 세대를 거쳐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인간이 두뇌의 용량의 확대와 구강의 발달이, 흔적을 남기지 못했던 구술언어의 단계를 거쳐서 문자화할 수 있는 언어로 역사 속에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현대인들이 독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문자기록의 전승에서 보아, 그리스 철학사가 흥미 있는 사유의 전개 과정으로 남아 이어지고 있다고들 한다. 그리스 사유에 양면성이 있다고 한다. 공간과 시간, 정지와 운동, 페라스와 아페이론.

*

사람들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좌파와 우파의 대결처럼 이항 대립으로 보는 관점을 고착시켰다고 여긴다. 21세기에도 이런 사고의 이분법적 방식이 당연하고 또한 편리한 것으로 여긴다. 하물며 이들은 이분법을 인정하면서 조화 또는 중용의 방식을 소중히 여겨, ‘하늘을 나는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고들 한다. 사람은 두 다리로 걸으면서 오른발과 왼팔이 왼발과 오른팔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한 몸 속에서도 운동 방향을 달리하는 방식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분법 또는 이원론에 익숙한가. 수에서 10진법과 60진법이 있음에도, 이분법의 방식은 두 팔과 두 다리의 걷기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나중에 사회라는 제도와 종교라는 교리가 지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이런 이분법적 추리가 논리적 사유의 배중율에서 왔다고도 한다. 배제, 배척, 부정, 적대.

생각의 폭을 넓혀진 시대 이전에, 동양의 천지인에서도 인간이 소중하다고 한다. 어릴 때 들었던 하도와 낙서로부터 주역을 이해해야 군자로서 세상사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현 시절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에서부터 산수의 계산법을 배우고 또한 도형의 기하학을 배운다. 그리고 물체들을 더 정확하게 다루기 위해 좌표기하학과 미적분을 거쳐서 허수의 등장까지 배운다. 그럼에도 또한 공동체의 삶에서 전례의 방식에 따라 규칙과 규율을 익히고, 사물을 다루는 법칙과 원리를 깨달아가면서, 세상에 나서서 장하고 훌륭한 인간이 되는 도덕을 닦고 인성을 함양한다. 이런 방식들은 현실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방편들이리라. 그 방편들을 학문이라는 체계에 맞추어 생각하는 추리와 추론이 점점 복잡해진다는 것도 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수와 도형을 익히고, 더불어 노래와 운동을 통해 건강과 신체를 안존하는 방식을 배우고, 나아가 사회생활의 필수로서 제도와 체제의 규율들을 익힌다. 이런 과정에 대해 학문은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하고, 삶의 보존에서 편리하고 유용한 방식들을 공유하게 한다. 그 공유하는 지식을 다음 세대에도 체계적으로 전수하여 공동체와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크게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현대 산업혁명까지 지식의 전승은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라고 착각하게 하였던 것 같다.

공동체의 체제와 사유하는 체계를 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은 편리하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방식이 질서와 안녕을 가져다 준 것인가, 또는 사람들이 자주 말하듯이 인간에게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쩌면 불협화음처럼 계속되었다. 정합성이 모자라더라도 체계 안에서는 지식인들뿐만이 아니라 민중도 터전을 유지하며 살만하다고 여겼다. 즉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이용 방식을 공유하고, 나아가 제도를 만들어 인간들 사이의 공통성과 개별성을 더 잘 보증해 주고 있다고 여긴다. 이런 제도와 체제가 이원론으로 구성된 또는 구축된 세상이 타당한가라는 물음을 고대 그리스로부터 죽 있어왔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세계를 이항대립 구도로 여기고, 또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에서는 거의 극단적인 대립구도를 드러냈다. 대립의 극단에서 자기편이 아닌 자들을 반국가세력이라고 하고 제거해도 된다는 착란에 빠지기도 한다.

우선 팔과 다리의 운동을 상기해 보면서 어떤 힘들의 운동에서, 양편이 조화와 중용을 이루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의 발달과 역사의 과정으로 보아도, 건전한 사유에서는 좌편이 51% 우편이 49%로 이루질 경우에 조화와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다수인 대중이 소수자처럼 살고, 소수이면서도 권력이든 재산이든 많이 소유하는 자들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의 발전이래로 이런 지배층이 대중을 강압하는 점에서 전도된 사회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전도된 사회에 혁명을 설파하는 사상가들과 혁명가들이 있다. 사유 활동의 진솔한 전개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혁명이후로 자연 안에서부터 사회로 그리고 세계 공동체로 나가는 전복적 사유의 시대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위마니스트가 아니라 위마니떼르, 리베랄리스트가 아니라 리베르떼르라고 부른다.

*

좌편과 우편의 이분법적 사유는 사회적 삶의 편리함 때문에, 앵글로색슨계에서는 유용성과 실용성이라 하면서,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사유의 깊이 또는 심층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즉 자연 속에서 삶의 숙명성을 다시 깨우치기 이전에, 사람들은 편리와 이익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동양에서도 천지인에서부터든 하도낙서로부터이든, 음양, 남녀, 천원지방 등의 이분법의 바탕 또는 기원으로 하나인 태극을 두기도 한다. 하나로부터 이원성과 4상, 8괘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화에서도 조화와 중용을 통해 세상이 평천하를 유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동양 사회는 이원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입말과 문자에서는 백성이 하늘이라 한다. 그 바탕이 태극이라는 것이 사변적이라면, 백성은 실재성일 것이다.

이와 달리 고대 그리스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영향을 입은 두 갈래의 사상이 아테네에 들어왔다고 한다. 자연의 탐구로서 이오니아학파의 사상과 수학(산술학)에 근거를 우주의 원리로 삼은 엘레아의 사상이 들어왔다. 여기 외적 자연과 사유 사이의 이중성에서, 다시 이것들 생각하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가 제기되었다. 이 탐구가 인간 또는 사유하는 권능으로서 영혼(프쉬케)이 의식 속에서인지, 의식의 대상인지에 대한 문제는 남아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철학이라고 하지만, 그 문제는 변형되어 중세의 신학에 이르렀다. 신학에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며, 인간은 신앙 속에서 진실한 활동을 한다고 믿었다.

신의 완전성과 세계의 원리 등을 추리에 앞서 보편성으로 인정한다고 했더라도, 사물들에서 또한 세상사에서 부딪히는 사실들과 환경들은 완전하지도 않았고, 원리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신과 천국, 천사와 계시라는 부분들을 젖혀두고 라서도 현실에서 경험적 사실들은 다른 영역임이 드러났다. 계시와 언어의 전달은 별개이라, 인간이 만든 기호들과 개념들의 잡다함에 통일성과 법칙성을 규정하는데 목적성이 먼저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판단들에서 명제들의 용어들에 대한 기호표기와 사물의 조작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알았듯이, 삶의 표현들에서 종교적 환희나 공동체의 즐거움과 개인의 훌륭함 등이 다른 영역임을 알았다.

많은 논제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에 의견들을 모으는 평결문들은 선전제에 의한 추리들이 아니었다. 13세기에 프란체스코파 학자든 도미니크파 학자들은 평결문들에서 구체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황청 교리성은 신과 신국 등 근원적 항목들을 대해 문제 삼지 않는 한에서, 파리와 옥스퍼드 등의 대학들에서 현실적 논의에서 이중성의 대립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한편을 들고 다른 편을 말살하는 방식은 종교재판과 마남사냥에서 여전히 남아있었다. 르네상스시기까지 종교재판으로 브루노를 산채로 화형 시켰고, 갈릴레이에게도 지동설을 외부로 발설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미 세상 사람들은 신에 의해 창조된 자연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물질세계가 어쩌면 신의 창조와도, 그리고 인간의 추상적 추론의 담론과도 다른 탐구 방법의 필요를 알게 되었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는 시기에, 데카르트는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세계에 대한 자치적 특성을 발표하려고 했다. 그런 데카르트가 두 개의 실체를 내세우면서, 자연 또는 물질의 탐구 방법이 따로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근대철학의 여명이라 불리는 방법론은 두 가지 다른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럼에도 사유와 연대하는 자연의 작용방식을 인식의 한 방향(양식)으로 여기고, 자연과 물질의 운동 현상도 사유와 상응하여 설명하려하였다. 그러나 두 사유 속성을 다루면서, 소박한 유물론자들이 다루는 물질과 관념론자들이 사유 대상의 일부로서 삼는 물체 사이에 간격이 점점 확인되어 갔다. 이로서 생명 있는 존재는 자연 속에서 산다는 인식이 “빛들 세기”에 도래할 것이고, 19세기에는 생기론과 프퓌케에 대한 학문이 전개될 것이다.

인간의 사유는 자연 밖에서도 또는 자연 안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인식의 추론체계와는 다른 생성의 양식이 있음을 알아챘다. 안과 밖이 없는 심층 세계가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리라. 다시 기원에 대한 성찰에 힘입어서, 자연을 탐구하는 기본적 요소 또는 기본 단위로서 수, 점, 원자, 이외에 스토아학자들이 말했던 정령들(프쉬케)도 한 몫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계몽기라고 하는 18세기 “빛들 세기”에서는 빛이 기본요소로서 떠올랐다. 빛의 무한 진행?에서 무한대라는 생각은 이미 브루노가 하늘의 뚜껑을 열어서 무한대를 펼쳐놓았었다. 그 빛을 통해 사물과 물체를 구별하고 있었듯이, 빛의 직진과 무한 확장과 같은 수학적 추론과 원리들을 생각하였다.

자연에서 좌표 설정과는 다른 양태인 자연의 자치성에서, 생명체가 물체처럼 자동인형 같은 것이 아니라, 생명있는 물체의 자치성과 자율성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데카르트 좌파라고 불릴 유물론자들은 그 자율성 속에, 물리학자들이 물체의 충력을 보듯이, 생명체의 조직화에 생기 또는 에너지를 보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도 겉으로 보기에 이원성을 기준으로 하는 두 갈래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자연의 물질과 물체들의 성질들을 위계적으로 무기물, 식물, 동물, 인간 (천사, 신) 등으로 보는 이해하는 방식을 떠나서, 각각의 물체들(이미지들, 형상들)이 발생적으로 다른 과정에서 생성의 길을 걷는다는 것 알게 되었다. 자연학자인 뷔퐁이 생성의 과정에서 논리학의 항목들과는 다른 항목(용어, 명사)들을 설정할 것이다. 게다가 생명체의 조직화를 다루게 되면서 생리학도 성립한다. 인간의 감각과 감정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생명체 안에서 영혼(아니마든 프쉬케든)의 위치를 다루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은 세계의 체계와 제도의 체제를 세운 정신의 성찰과는 다른 길을 열게 될 것이고, 생물학과 진화의 사유를 열기에 이를 것이다. 이원성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지식체계의 관점이었으며, 과거의 잠재적 이원성은 이를 상징으로 교회제도와 사회제도에 투사했던 것으로 여겼다.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물질의 내부의 탐구로 이어지면서, 인식의 역량이 지적 체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 일반화의 방식에서도 내재적 발생의 연관을 고려하게 된다. 지식의 발달과 도구의 발달은, 빛들 세기에 “백과전서”에서 밝히듯이 오랜 과정에 점진적 발전을 거쳐서 민중이 공유하는 기술발달의 확장으로 생산력이 높아지고, 시민의 정치의식도 활발해졌다. 심층으로부터 나온 자연의 자치성 이상으로 인간의 자율성은, 교권과 왕권에 대항하는 제3신분이라는 인민을 등장시켰다. 물질성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와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은 상위의 두 권력을 무너뜨리고, 인민의 자치와 인민의 지배권을 행사하려 하였다. 우주와 자연에서 의식의 이원성이, 제도와 체제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이분법적 사고로 전환되는 듯이 보였으나, 전승의 선전제와 체계는 공고하였고,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국가 권력이 교권과 왕권을 대신하면서, 정치적으로 좌우를 구별하여 좌편에는 인민을 대변하는 세력이, 우편에는 기존 권력을 유지하려는 왕당파들이 있었다. 1830년 이후로 산업화의 과정에서 왕당파를 대리하는 자본가들이 우파가 되고, 자본에 예속되는 노동자가 좌파가 되었다. 맑스는 대혁명에서 인민의 성장이, 정치경제학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지배가 이루질 것이라고 역사의 발전을 설명했다. 인간의 사유 방식에서 심층과 상층의 이원적 대립, 다음으로 의식 활동에서 인간에서 물질과 정신 또는 영혼과 신체의 대립, 빛을 통하여 자연의 체계와 자연의 발생의 대립을 잠시 거쳐서, 삶의 터전에서 좌와 우의 대립은 사회정치적 활동에서 대립의 양상으로 이어졌다.

천오백년의 종교이든, 이백년의 형이상학이든 자연의 대하는 태도에서 대립에서는 인간이 막연하게 우월하다는 심정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지식의 확장을 통해 자연의 주인으로써 지위를 차지하려고 했으나, 칸트는 그런 지식이 없음을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이라고 밝혔고, 사회에서는 지식보다 도덕과 공감이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산업화의 발전에서 지식을 도구로 삼는 체제는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고, 사회의 갈등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칸트이후의 산업화 과정에서는 국가 제도와 체제에서 소수의 상층과 다수의 심층 사이의 대결은 심화되었다. 다수의 좌파와 소수의 우파의 구별은 뚜렷해졌고, 부의 사적 축적자들에 의한 산업화과정은 불평등의 해소하지 못하고, 다수의 인민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치경제적 좌우의 대결은 19세기 이래로 산업화 과정에서 점점 굳어져갔다. 상품자유주의 세계에서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이에 대립하는 인성자유주의 세계에서는 인도주의를 내세운다. 우리 남녘에서는 개인의 사적 이기심이 사회의 공공성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시하는 체제를 굳혀갔다. 21세기 임에도 급기야, 야만적 상품자유주의자들이 인도주의자이며 인성자유주의자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처형하려는 쿠데타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

탐구 방식이든, 사유 양태이든, 사회 제도이든 좌우의 구별은 사실상 불편한 것이다. 철학은 이런 이분법적 추리의 사유(로고스)를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서양 철학사에서 의식의 측면에서 2500년 과정을 상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표면에서 심층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유의 측면에서 상층의 소수의 자유에서 표면의 부르주아의 자유로, 그리고 심층의 인민의 자유로 확장되어 간다고 한다. 인민의 자유, 안양정토세상, 평천하.

고대의 사유에서는 상층의 정지가 먼저였고, 르네상스 이래로는 표면의 이분법과 이중화 현상이 있었고, 근대에 와서는 심층의 발현과 발생의 사유로 인민의 성장이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20세기 중반에 새로운 변화로서 유전자(DNA) 구조의 발견과 디지털의 발명으로 새로운 사유가 전개되고 있다. 이런 사유에는 상하와 좌우라는 사방으로 방향설정을 생각할 수 있고, 이를 세분화하여 팔방도 생각할 수 있고 확장으로 36방과 삼십육계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양방이든 36방이든, 방향의 중심을 공의 중점 또는 초점처럼 생각하면, 진자운동처럼 수많은 움직임이 마치 주변에서 중심으로 그리고 중심으로 주변들로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갈릴레이는, 사람들이 추의 진자의 운동에서 중간점이 겉보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라도, 그 중간점이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힘(충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충력이 물체 속에 있다. 이런 움직임이 지구의 자전과 관계있다고 증명한 것은 1851년의 푸꼬(Léon Foucault, 1819-1868)의 추(le pendule)이다. 운동하는 중간 또는 중심이 하나이라고 기호화할 수도 있지만, 이 하나가 수도, 점도, 원자도 아니다. 움직이는 힘 또는 에너지, 나아가 퀴니코스-스토아학파가 이야기한 소마-프쉬케(물질영혼)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인간에 내재하는 영혼의 작동에게도 상사성이 있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편리와 안락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것도 근대성일 것이다. 그런데 편리와 안정의 생산력은 산업사회의 한계에 이른 것 같은데, 사적이익 추구자(트럼프포함)들은 그 기술과 도구를 여전히 전쟁과 공포를 조장하려는데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의 발달이 소통의 방식을 바꾸었다고 하지만, 철기시대 이래로 문자화가 우선하며, 간접화법을 통한 지배방식은 여전했다. 디지털의 발전은 직접화법과 이미지전달(상상작용)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명의 발달의 한계에 이르러서 문화의 다양화가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다양성의 발현이 우선은 사유에서보다 문화 예술에서 전개되고 있다. 문학, 영화, 스포츠, 음악, 회화, 공예, 건축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기술의 발전에서 생산력의 변화에 인공지능(AI)이 첨가 되면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만큼이나 전쟁 도구로 전환도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터전 또는 개인도 다양화되고 있어서 다양체의 사회가 이루지고 있고, 전지구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그럼에도 이항 대립이 낳은 불평등과 억압은 여전히 너울을 드리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 탐만치, 즉 탐욕자와 사적 이익추종자들과 치졸한 파라노이아 환자(종교병환자)들이 문제다. – AI가 입말과 문자화를 일방통행을 넘어서 이미지들을 상호소통 시키면서, 다방향으로 빛의 속도로 소통하는 누리소통 시대에서, 제국의 지배방식과는 다른 공감과 공명이 이루어질 탈영토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 들뢰즈가 순수했다고 해야 하나.

열 달이 지나도록, 계엄과 내란 획책의 집단적 사고는 여전히 우리의 상층에서 그리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 빠르게 널리 이미지의 전송과 소통에서도 고착된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누리소통도 이항대립처럼 편가르기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이 문자화에서 용어들이 상층 편향되어 있고, 편집증의 세뇌가 깊이 작용을 하고 있는 현실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라고 말하지만 구체제와 구시대의 관습과 습관이 사유방향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재성이 내재성으로부터 발현이라고 하지만, 그 발현이 현실성의 형해화 된 이미지와 관계 속에서 고착화되는 것을 우선은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는 것이 현실의 관계에서 숫적으로 다수 임에도 지배방식에서 소수자일 때, 삶의 터전의 변화와 혁명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분법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개인이 실천하는 방식으로 우공이산이라고 하기 에는 다양체의 덩어리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을 직감한다. 시대는 입말의 소통과 더불어 이미지의 소통으로 다양체의 덩어리가 회오리처럼 커져가는 것이 분명하다. 그 덩어리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고 나가는 모습을 그 파도 속에 있는 물방울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한계 때문일까?

프로이트 위상적 사고에 따른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에서, 상징계의 영향과 더불어 사회를 생각하는 이들은 교회권력, 국가권력, 학문권력에 복속되어 자들이라고 하지만, 그 상징계를 거의 실재성으로 여기는 신앙인들, 부역자들, 이원법의 인식 추종자들이 여론과 문자화를 통해 체제를 견고히 하려 한다. 이런 고착성에 대해 중심의 운동성과 다양성이 체제 안에서 작동하여 변화를 실행하려고 하는 노력에는 강도가 축적되어가고 있다. 누리소통을 통한 공감과 공명이, 삶의 터전에서 먹고 자는 문제에 대한 해결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 소통은 상상계의 그림(이미지)과 같은 잠재성으로 그칠 것이다. 이 상상작용으로서 실재성이 현실로서 누리 소통 속에서 잠재성에서 표출되고 생성되는 것에서 의미를 새롭게 할 것이다.

벩송이 정태적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폴리네시아인들이 자연에 정령의 힘과 같은 ‘마나’가 있다고 믿었다고 하는데, 이는 인류에게 공통하는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토착민들의 종교성은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에도 있다는 것이다. 벩송이 인용한 예에서, 어느 부인이 승강기를 타려고 했을 때, 승강기문이 열렸으나 발판이 없었는데, 마담이 한 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순간에, 안에서 갑자기 앞에 검은 물체(사람)가 뛰쳐나와서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살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서 상상작용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론인 이영희 선생은 어느 글에서 함경도 지방에 ‘어덕서니’라는 귀신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려움이 닥칠 때 갑자기 앞에 나타나는 검은 기둥귀신과 같은 것인데, 위로 올려다 보면 점점 커져서 무섭고 아래로 내려다보면 점점 작아져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줄어드는 것을 설명하며 어떤 심리학자는 인간에게 귀신처럼 등장하는 검은 물체 또는 저승사자에게는 발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다보면 상상계가 줄어들어 사라지고 실재를 직시하게 된다고 한다. 이데올로기로서 상층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에서도 종교에서도 가상성은 여럿으로 그리고 과정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은 마치 포퓰리즘의 대중의 확대처럼 커져 간다. 그런데 그 밑을 또는 심층의 실재성을 들여다보면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심층의 발현으로써 어느 부인의 일화는 효과가 있다.

AI를 통한 누리소통을 통한 실재성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어덕서니의 아래를 보듯이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벩송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상상계의 이미지를 기억의 재인식의 방식으로 다시 보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작동은 실재성과 현실성의 연결에 의한 조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벩송에 이어서 들뢰즈는 상상작용(imagination)에서 형태로서 등장하려는 이미지(image)의 어렴풋한 형상화(마나, 검은 물체, 어덕서니, 저승사자)의 효과에 머물지 말고, 내재성의 실재 생성과 발현을 심층에서부터 깊이 재인식할 것을 권한다. 그 실재성의 발현이 무생물이건, 식물이건, 동물이건, 어덕서니건 그 발현은 삶의 표출로서 탈주선임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런 재인식에서 또는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인민의 권능과 그 강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자는 것이다.

(8:13, 58UMDD)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45-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5-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

1)

헤겔 논리학을 다루면서 논리학의 구조가 판단 형식 즉 범주가 전개되는 방식과 상응한다고 말했다. 그런 상응에 비추어 보면, 정량은 양적 판단 형식 가운데 첫 번째 단칭 판단 형식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겔은 질을 다룰 때도, 존재와 무의 상관관계를 통해 현존을 끌어냈다. 존재와 무는 현존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관계 즉 ‘관계있음(존재)’과 ‘관계없음(무)’를 말한 것일 뿐이고, 실제 질적 판단 형식은 현존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현존이 질적 긍정 판단에 해당한다.

이런 전개 방식은 양을 다루는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앞에서 다루었던 양적인 것 즉 연속성과 불연속성은 정량의 일반적인 상호 관계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양적 판단 형식이 처음 시작하는 것은 정량에서부터다. 질적 판단 형식에서 현존에 해당하는 것이 양적 판단 형식에서는 정량이다.

2)

정량과 수의 관계는 앞에서 말했다. 정량 속에 이미 수적 관계가 들어있다. 수는 나름대로 하나의 정량이며, 다만 다른 정량을 표현하는 기호로 사용될 뿐이다. 즉 이 정량에서 이미 존재하는 수적 관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량과 수의 관계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설명한 상품과 화폐의 관계와 같다. 상품 속에 이미 교환가치의 관계가 들어있다. 화폐도 하나의 상품이지만, 다른 상품의 교환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즉 화폐는 상품의 교환가치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수에 관한 심리주의자는 수를 인간의 셈이라는 주관적 활동으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그것에 대해 논리주의자는 반대했는데, 왜냐하면, 수는 알다시피 초월성 또는 객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플라톤은 수를 이데아로 여겼다. 양적인 존재 즉 정량은 이런 이데아가 분유 되어 나온 것일 뿐이다.

그러나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의 객관성은 마치 화폐가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마르크스는 금의 자연적 속성에서부터 화폐의 본성이 나오는 것을 일종의 물신화로 여겼는데, 마찬가지다. 수의 객관성을 수가 지닌 고유한 속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면 이는 물신화에 해당한다. 상품에서 화폐가 나오듯이 수의 객관성은 정량에서 나온다.

3)

정량은 수로 대변되므로 헤겔은 정량을 논하면서 자주 수를 끌어들인다. 정량을 다루는 2편 2장 A 절은 아예 ‘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A 절에서 헤겔은 수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것이 바로 외연량과 내포량이다.

흔히 수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연속적 수와 불연속적 수다. 연속적 수 또는 크기(정량)¹를 다루는 학문이 기하학이다. 불연속적 수 또는 크기(정량)를 다루는 것이 산술학이다. 고대에 기하학과 산술학은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기하학은 주로 이집트 그리스에서 측량술로부터 발전했다. 산술학은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에서 발전했다. 인도가 수 0을 발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주1: 헤겔은 양적인 것[Quantität]을 크기[Größe]와 구분한다. 크기는 규정성을 지니므로 정량[Quantum]에 해당한다.

그런데 수가 자연수에서나 분수에서처럼 불연속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일찍 발견됐다. 피타고라스학파에서 비밀로 여긴 무리수의 발견이 여기에 속한다. 무리수는 수이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연속적 수다. 이 수가 서로 분리된 유리수 사이에 끼어들면서 수는 단순히 불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임이 알려졌다. 수를 불연속적인 것으로만 여겼던 피타고라스학파가 무리수를 숨기려 했던 것은 이 발견이 고대에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하학은 공간적 크기를 다루고, 여기에는 수가 개입하지 않는다. 기하학은 변이나 각, 길이의 같음과 다름을 다룰 뿐이다. 물론 기하학에서도 삼각형이라든가, 사각형 등에서 보듯이 수가 부분적으로 개입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다루는 대상에 관한 것이지, 기하학이 다루는 것은 여전히 같음과 다름일 뿐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기하학적 방식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아라비아에서 대수학이 발전하면서 피타고라스 정리가 대수학적으로 증명됐고 나아가서 근대 해석기하학에서 대수학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면서, 기하학적 크기 역시 불연속적 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이 인정되기에 이른다.

대수학의 발전은 기하학의 연속적 크기가 불연속적 크기를 가지며, 거꾸로 산수적 불연속적 크기가 연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수를 이렇게 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로 나누는 것을 의미 없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헤겔은 정량을 다루면서 당시 흔히 다루었던 방식대로 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로 나누지 않고, 외연량과 내포량으로 나누었다.

4)

이제 외연량과 내포량, 외연적 크기와 내포적 크기의 관계를 다루기 전에, 이 두 가지 크기의 공동 지반이 되는 정량을 살펴보자. 정량은 개념적으로는 양적인 것이 규정성 또는 한계를 지니면서 출현한다.

이런 정량은 구성하는 요소는 우선 일자다. 이 일자[Eins]는 정량의 수를 셀 때 출발점이 되는 것 즉 기본 단위다. 이 단위를 무엇으로 하는가는 자의적이다. 물의 양을 재기 위해 우리는 부엌에서처럼 바가지로 잴 수도 있고 실험실에서처럼 비커로 잴 수도 있다. 전통적 단위인 ‘냥’으로 잴 수도 있고 국제 표준 단위인 그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어느 단위를 사용하든 자의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 고유한 객관적 단위는 없다. 헤겔은 어떤 정량을 재기 위한 단위를 그저 ‘일자’라고 한다.

정량을 단위로 재면, 두 가지 계기가 출현한다. 헤겔은 이를 개수[Anzahl]와 총수[Einheit]라고 한다. 이 두 계기가 수를 설명하는데 아마도 헤겔만이 제시한 독특한 개념이다. 우선 개수는 어떤 단위가 얼마나 여러 번 반복됐는가를 말한다. 20의 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이 스무 번 반복돼야 한다. 즉 20에는 1이 스무 개 들어있다.

20개 속에 들어있는 1 즉 일자는 서로 동일하다. 그 중 어느 것도 1일뿐이다. 또한, 이들은 서로 동등하다. 세 번째 1과 네 번째 1은 세기 나름이지, 달리 세어서 세 번째를 네 번째로 세고 네 번째를 세 번째로 세더라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20개 속에 있는 일자는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일자는 아무리 빨리 세더라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어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총수[Einheit]를 보자. 이것은 1을 스무 번 반복해서 나온 ‘20’이라는 수가 다른 수 예컨대 ‘9’라든가 ‘21’과 같은 수와 비교해서 가지는 의미다. 이 20은 개수로 보면 스무 번 반복한 것이지만, 총수로 보면, 다른 수처럼 고유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엄지와 검지는 개수로 보면 1과 2지만, 총수로 보면 각자 고유한 것 즉 엄지와 검지다. 엄지는 머리를 누르는 것이고 검지는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다. 스무 개라는 개수가 고유한 스물이 되는 게 바로 수다.

20이 스무 개라는 점에서는 불연속적인 것의 집합이다. 그러나 20을 총수로서 고유한 크기로 보면, 그 속에 모여 있는 20개라는 분리된 것들은 의미가 사라지고 전체는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것 즉 연속적인 것이 된다. 그러기에 이름이 총수[Einheit: 통일성]이다.

“수는 그 계기로 총수와 개수를 가지며 그 자체에서 양자의 통일이다. 총수는 연속성의 계기며, 개수는 분리의 계기를 이룬다. 양자는 정량 속에서 수로서 존재한다.”(논리학 초판, GW11, S. 126)

5)

정량에서 개수와 총수가 이처럼 두 계기를 이루므로, 헤겔은 정량의 규정성과 질적 현존의 규정성을 비교한다. 질적 현존에서 규정성 즉 감각적 성질은 우연적이고 개별적이고 외면적일 뿐이다. 그것은 타자에 대립해서 규정된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파란색에 대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정량에서 규정성 즉 한계는 다른 규정성과 구별되는 것만은 아니다. 동시에 다른 규정성과 연결되고 있으니, 4는 3과 5와 다른 것이지만, 동시에 단위인 일자를 셋에서 한 번 더 더한 것이며 한 번 더 더하면 다섯이 되는 것이다. 전자의 측면에서 타자에 대립해서 규정되지만, 후자의 측면에서는 자기 관계해서 규정된 것이다.

어떤 사물의 정량이 20이라고 할 때, 이 개수로서 20이든 총수로서 20이든, 그 기본 단위가 자의적이므로, 그 정량은 자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나이가 스무 살 된 대학생보고 팔십 먹은 노인네라 해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이를 셀 때 1년을 단위로 하지 않고 계절별로 세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량이라는 크기는 어떤 사물에 대해 외면적이고 그 사물의 본성과 무관한 무차별성을 지닌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정한 단위가 전제된다면, 그때 정량은 그 사물을 규정하는 고유한 한계, 규정성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군에 가는 나이는 20살이다. 누구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스무 살에는 군에 가야 한다.

정량을 재는 단위가 이처럼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정량은 타자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정량을 재는 단위가 일단 정해진다면, 정량은 그 단위의 반복을 통해 규정되는데, 그런 점에서 정량은 자기 자신을 통해 규정된 것이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헤겔은 정량은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가운데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머무른다”라고 말한다.

6)

정량의 규정성이 자의적인 규정성이라는 점에서 이 정량의 규정성은 질적 현존에서 현존의 규정성과 유사하다. 현존의 규정성 즉 감각적 성질은 주관이 파악한 우연성이며, 그 사물에 대해 외면적이다. 질적 범주에서 운동은 인식하는 주관이 이 외면성을 극복해서 사물에 고유한 성질을 찾아 나가는 운동이었다. 그 운동 끝에 마침내 대자 존재 즉 그 사물의 형상에 이르렀다.

정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량은 외면적인 규정성이다. 어떤 사물에 고유한 정량을 발견하는 것이 양적 판단 형식에서 운동의 기본 목표다. 예를 들어 도라는 음은 현의 길이를 통해 그 본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현의 길이는 도라는 음의 본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우연적 정량이 아니다. 헤겔은 척도라는 개념에 이르면 비로소 고유한 정량이 출현한다고 본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가 지양된 것이므로 이미 그 자체에서 그리고 대자적으로 그 한계에 대해 무차별하다. 그러나 동시에 양적인 것에서 그 한계 또는 정량이라는 사실은 무차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양적인 것은 일자를 즉 절대적으로 규정된 존재를 자체 내에 그 자신의 고유한 계기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일자는 그 자신의 연속성 또는 총수에 이르러 정립되면 양적인 것의 한계가 된다. 이 한계는 양적인 것이 자기를 생성해 마침내 도달한 하나의 독자적 존재[Eins]로서 머무른다.”(논리학, 재판, GW21, S. 193)

헤겔 형이상학 산책44-정량과 수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4-정량과 수

1)

형이상학은 세계의 가장 일반적인 원리를 다룬다. 칸트의 선험철학을 원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욱 발전하겠다고 확고하게 선언했던 헤겔은 세계의 일반 원리를 사유의 근본 범주(또는 판단 형식)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문제는 양적 범주다. 양적 판단 형식 즉 양적 범주가 세계를 일반적으로 구성하는 원리가 될 수 있는지, 요즈음 철학은 많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원초적인 세계는 질적 개별자의 세계가 아닌가? 양적 범주란, 세계 밖에서 사유하는 인간의 주관적 산물이 아닐까?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개별적인 것이 존재하려면 지속적이어야 한다. 명멸하는 우연적인 것에는 이런 개별성조차 없고 그저 있었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다. 찰나생 찰나멸, 이런 세계에서는 사유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속하는 것이 있는 한, 이 지속성은 서로 대립하는 두 성질이 자기 관계하는 것 즉 대자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럴 때 대자 존재자들의 상호 관계는 양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양적인 세계의 존재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서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원자론자의 원자와 공간의 개념을 기초로 한다. 원자와 원자의 관계가 곧 양적인 관계이며, 이 양적인 관계에서는 오직 연속성과 분산성이라는 두 가지 관계밖에 없다. 원자와 원자는 동일한 대자 존재의 관계이니 연속적이며 그러면서도 이 관계 맺는 것이 서로 독자적인[fuer sich] 것이니 분산적이다. 연속적이라는 점에서 물질적인 것이며, 분산적이라는 점에서 공허로서 공간적인 것이다. 물질과 공간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지만, 서로의 이면에 떼어낼 수 없이 붙어있다.

2)

양적인 관계야말로 수학적 관계의 토대가 된다. 파르메니데스의 형이상학이 양의 세계를 밝힘으로써, 피타고라스의 수의 세계도 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인 것과 수적인 것은 다르지 않을까?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 정량이 나오고 정량에서 다시 수가 나온다고 한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의 연속과 분리라는 관계를 말할 뿐이다. 그것은 얼마나 큰가 하는 크기 규정을 갖지 않는다. 정량은 이런 양적인 것이 일정한 크기 규정을 지니게 된 것을 말한다.

이미 양적인 것은 크기 규정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은 동일한 대자 존재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대자 존재는 반복하는 만큼의 크기를 지닌다. 하지만 여기서 양적인 것에서 크기 규정은 다만 가능적인 것일 뿐이다. 그것이 특정한 크기를 지니려면 다른 것과 비교되어야 한다. 즉 잣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길이는 미터를 잣대로 하고, 무게는 그램을 잣대로 한다. 그러나 미터나 그램과 같은 잣대는 주관적으로 선택된 임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든 임의적으로 선택된 잣대를 기준으로 반복을 통해 일정한 크기가 규정된다. 이렇게 규정된 특정한 크기가 곧 정량이다.

정량은 반복되면서 이미 수적인 체계를 갖지만, 아직 수는 아니다. 그것은 가능적인 수적 체계다. 이 정량이 수가 되려면, 일정한 잣대가 지닌 수적 관계가 추상돼야 한다. 그렇게 추상된 수적 관계가 곧 수를 이룬다.

“정량은 일단 규정성이나 한계 일반을 지닌 양적인 것인데, 그것이 완전하게 규정되면 수다.”(논리학 재판, GW21, S. 193)

정량과 수의 관계는 마치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과 화폐의 관계와 같다. 화폐는 상품의 하나다. 어느 상품이 화폐인가 하는 것은 주관적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역사적 발전을 통해 어떤 상품이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화폐로 선택되면서 화폐가 출현한다. 이 화폐는 상품이 지닌 교환가치의 비례 관계라는 수적 체계를 의미할 뿐이다.

정량과 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량을 측정하는 잣대는 주관이 임의로 선택한 것이다.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선택된 대표적인 잣대가 곧 수다. 이 수는 정량의 비례 관계를 언표하는 수단이 된다.

3)

이제 수 개념에 관한 플라톤이나 러셀의 주장을 헤겔의 사유와 비교하여 살펴보자. 19세기 심리주의는 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과 같은 사유의 활동에서부터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이런 사유의 심리적 활동은 경험적이고 우연적이지만, 수적 질서는 객관적이고 필연적이니, 이런 심리주의는 수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수를 플라톤적인 이데아에서 끌어내거나, 수를 논리로 환원하려는 논리주의가 등장했다.

우선 수에 관한 플라톤적 설명은 문제가 있다. 수는 자주 이데아와 같은 초월적 존재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기하학적 크기도 일종의 수라고 할 수 있는데, 기하학적 질서야말로 플라톤이 이데아의 표본으로 설명해 왔던 것이 아닌가? 수가 이처럼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자연의 질서 속에 수를 적용한다는 것은 이 자연이 수를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플라톤의 생각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데아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는 데미우르고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창조주 신은 일단 제쳐 두자. 창조주는 굳이 이데아의 모범에 따라 세계를 창조할 필요는 없다), 자연이 초월적 이데아를 따르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데미우르고스를 인정할 수 없다면, 자연 속에 수적인 질서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만큼 자연적인 것에서부터 수적인 질서가 발생하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헤겔의 생각은 그런 점에서 수가 자연에서 발생하는 과정을 잘 이해시켜 준다. 헤겔에서 수적인 것은 양적인 것에서 나온다. 양적인 것은 일정한 크기를 지닌 정량으로, 정량에서 다시 정량을 대표하는 수로 전개된다. 정량이 이미 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다만 수일 뿐이다. 수도 하나의 정량으로서 다른 정량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선택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마르크스에서 상품에서 화폐가 나오는 과정과 같다.

4)

이번에는 현대 수 이론을 대표하는 러셀의 주장을 살펴보자. 러셀은 수를 집합의 집합으로 정의했다. 쌍으로 이루어진 것들의 집합, 예를 들어 {신발, 손, 발, 귀 등등}.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두 번째 손가락(검지, 둘)이다. 셋으로 이루어진 집합도 있다. {솥의 다리, 삼원색 등등.} 이것을 대표하는 것이 세 번째 손가락(중지, 셋)이다. 이처럼 어떤 집합을 대표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집합 즉 {둘, 셋, 넷… 등등}이 곧 수이다.

러셀의 수 개념은 간명하기는 하지만, 이 집합의 집합을 통해 수의 진정한 개념이 정립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러셀의 주장은 헤겔이 이미 말한 것처럼 수가 정량을 대표하는 것이라는 말에 불과하다. 그는 수로 사용되는 언어가 어떻게 해서 수적 질서를 의미하게 됐는지를 말할 뿐이다. 이를 통해 수가 지닌 기본적인 속성 즉 수의 연속성과 분산성은 밝혀진 바가 없다.

이런 집합의 집합으로서 수 개념은 정의 속에 이미 수를 전제로 한다. 즉 ‘쌍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나 ‘셋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라는 개념이 이미 쌍이나 셋이라는 수 개념을 포함하니, 정의될 것을 정의 속에 전제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수 개념으로서는 수가 지닌 가장 근본적인 속성인 연속성과 분산성이라는 속성을 끌어낼 수 없다. 쌍을 대표하는 수 검지(둘)와 다섯 개짜리를 대표하는 수 즉 약지(다섯) 가운데 어느 것이 큰가 또는 둘과 셋을 더하면 다섯이 나온다는 수적인 질서가 나오지는 않는다. 검지가 약지보다 작은가? 또는 검지로 찌르고 다시 중지로 찌른다고 해서 약지로 찌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러셀의 수 개념은 집합 개념에 기초하는 것인데 집합 개념은 그 자체 모순을 포함한다는 사실이 이른바 러셀의 역설을 통해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사실 잘 살펴보면, 러셀의 수 이론은 수의 개념을 설명한다기보다 수로 사용되는 언어가 어떻게 선택된 것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5)

플라톤이나 러셀은 수 개념을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부터 수 개념을 끌어냈는데, 양적인 것을 규정한 정량은 다양한 것들로 존재한다. 이런 다양한 정량적 존재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곧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