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제국의 싸움 [나인당케의 단상들]
도시와 제국의 싸움 한상원(한철연 회원)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도시와 국가가 같은 개념이었다. 그리스어로는 polis, 라틴어로는 civitas는 모두 도시와 국가를 뜻했다. 이는 ‘도시국가’별로 정치단위를 가졌던 고대적 언어관습이다(아마 이와는 상관 없겠지만, 독일어에서도 도시Stadt와 국가Staat는 모음 길이만 다른 거의 유사한 발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시란 자율성을 가진 정치적 자치공동체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을의 확장인) 도시가 이루는 자율적, 독립적 공동체로서 폴리스를 예찬한다. 그러나 고대의 도시국가 체제는 마케도니아와 로마라는 대제국의 출현으로 붕괴되었다. 도시는 제국으로 흡수된 것이다. 그러나 도시는 중세의 한복판에 재등장한다. 북부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 시민들은 영주로부터 자치권을 사고 공동방위를 통해 자치도시(코뮌) 공화국을 수립한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한 피렌체는 대표적인 자치도시 공화국이었다. 맑스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당시의 도시공화국(생캉탱)의 자유에 얼마나 분개했는지, 그에 맞서 코뮌의 시민들이 어떻게 상호방위를 실행했는지 엥겔스에게 쓰고 있다. 훗날 벤야민은 이 편지를 인용하며 이렇게 적는다. “최초의 코뮌: 도시.” 최근 중국 대륙에 대항하는 홍콩 시민의 저항을 보면, 마케도니아와 로마와 같은 대제국에 흡수되는 것에 저항하는 도시국가(폴리스), 또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항하는 중세 자치도시(코뮌)의 기운이 느껴진다. 특히나 홍콩인들이 최근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도시의 자치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앙집권적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이 21세기 도시공동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도시는 제국으로부터 살아남아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을까. 오늘날 홍콩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