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들보다 상전들이 더 문제구나’ ? 끝없는 주한미군범죄에 대하여[썩은 뿌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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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성(대진대학교 강사)

“전대미문의 만행 – 오천년 문화민족으로서 처음 당하는 천인이 공노한 미군인의 조선부녀능욕사건”(「동아일보」, 47. 1. 11), “호남선차중에서 일어난 사건은 미국이 아모리 연합국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엄중한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연합군의 조선주둔 목적이 조선 민주과업 완수지도에만 있을진대 질적으로 가장 우수한 소수의 자격자만 남겨놓고 그 외의 제 군인은 급속히 총 철퇴를 단행하라”(「경향신문」, 47. 1. 14)

1947년 1월 7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벌어진 미군의 부녀자 강간사건의 보도이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미군범죄가 언론에 구체적으로 보도된 첫 사례이다. 이 사건은 같은 해 2월 18일 서울 대법원법정에서 피해자들이 직접 증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이 최초의 판결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판결은 관대하다. 미군의 범죄는 대부분 대국민 강력 범죄이고 미군기지 부근 지역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에 미군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민감하다. 그 동안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와 같은 단체의 지속적인 감시와 노력으로 미군과 미군범죄에 대한 국민 의식이 많이 성장했다. 그러나 성장한 국민 의식에 비해 한미 간 ‘SOFA : 주한미군지위협정’은 대미종속의 굴욕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군들이 안심하고(?) 범죄를 행하도록 방조하는 꼴이다.

199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12세 소녀가 주일미군 3명에게 윤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오키나와 지역은 물론 일본 전역에서 대중들이 폭발했다. 결국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사과를 했고 SOFA 협의를 개선하여 ‘살인ㆍ강도ㆍ강간ㆍ방화ㆍ마약 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해 기소 전 미군이 일본 경찰에 신병 인도를 호의적으로 고려한다는 합의가 도출됐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한미 SOFA 규정에 따르면 중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라 하더라도 검찰 기소 이후에 한국이 미군으로부터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다. 한국 경찰은 미군에 대한 구속수사를 선점하지 못 한다.

지난 5년간 1,463명의 미군 범죄자 가운데 SOFA가 규정하는 12대 중대 범죄에 속하는 살인, 강간, 강도 등의 흉악범이 101명에 달했으나 경찰이 구속수사 의견을 낸 것은 단 4명에 불과했다. 한국 경찰은 매번 주어져 있는 수사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동두천과 마포에서 야간에 주거침입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미 국무부 부장관과 차관보가 사과의 뜻을 표했고 미2사단장도 사과했다”며 “오키나와 사건과 이번 사건은 다르다. SOFA가 불평등 하다고 하지만 일본, 독일에 비해 절대 불평등 하지 않다”며 “이번 사건으로 SOFA 개정을 거론하기는 힘들다”고 답변했다.(「문화저널21」, 11. 11. 9) 이런 발언은 우리나라에서 장관직을 수행하는 자의 발언이 될 수 없다. 뭔가 정신이 온전한 상태인지 의심될 정도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후 한동안 ‘악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요구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개정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동두천과 마포에서 발생한 10대 소녀 성폭행 사건으로 미군은 다시 병사들의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했으나 사실 미군들의 야간통행금지는 최초 9?11테러 이후 미군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 이번 사례도 자군의 보호 차원에서 실시된 것이지 한국인의 안전과 인권에 대한 고려는 한 번도 없었다. 주둔군을 위한 정책만 있고 주둔지 주민의 안전과 인권은 무시했다.

주한미군문제는 언제나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였지만 당국의 무관심?묵살 때문에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지는 10년이 조금 넘는다. 그 동안 반공주의와 국가안보주의에 의해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대책과 존립여부에 대한 문제제기는 금기시되었고 일종 성역화 되어 있었다. 웃기는 일이다. 친미=반공=반북=안보가 되고 반미=친공=종북좌파=국가전복세력이 된다. 이 논리가 곧 바뀔 수 있다는 여론이 10년 전 얘기였다. 하지만 광복절에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들고 흔드는 미국빠들이 여전히 등장하는 상황을 두고 볼 때 웃고 넘길 일 만은 아닌 것이다.

주한미군의 범죄는 지금까지 소수 문제 사병들의 잘못된 행동이라고 미군 당국과 한국 정부는 주장해 왔다. 매번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주한미군은 안전 대책으로 ‘버디 시스템’과 ‘컴벳 윙맨’과 같은 규정을 두는데 이는 외출할 때 미군 병사 혼자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오히려 역으로 미군 여럿이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군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 당국에는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애초부터 이런 기대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

주한미군이 미군범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친미수구세력의 순진한 바램이다. 주한미군은 사실상 점령군이다. 점령군은 점령지 주민들의 안정과 평화, 행복에는 별 관심 없다. 얼마나 더 적은 비용과 행위로 자기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미군의 점령군적 지위를 인식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우리 정부는 항상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서 국가안보가 확립되고 동북아 평화유지에 필수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하지만 MB의 말을 빌려, 이거 다~ 거짓말인거,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실질적인 이유를 오도하는 것도 문제지만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자국민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국민 개개인이 고통을 감내해야 안보가 지켜진다는 주장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독점하는 안보주의의 한계이다. 오히려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인들과 미군부대 주변 사람들에게 일상적 안보의 허점을 노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구원군이란 명목으로 조선에 들어왔을 때 명나라 군대의 모습도 지금 미군의 모습과 똑같이 닮아 있고 지금 정부의 대응과 과거 조정의 대응도 닮아있다. 전쟁 후 외상 스트레스에 의한 명군들의 횡포는 말도 못했다. 거주민들의 가옥을 차지하고 약탈과 부녀자 희롱은 물론이고 심지어 비협조적인 지역관료의 목을 끈으로 묶고 끌고 다니면서 폭행하여 목숨을 빼앗는 경우도 있었다. 군기해이로 인한 사건 뿐 아니라 명군의 군량 공급에 막대한 돈을 들이면서 조선민의 고통은 막심했다. 당시 명군 지휘부는 병사들의 작폐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비호하거나 문책하지 않았다. 조선 조정에서는 백성들의 탄원을 듣고도 명나라가 베푼 ‘재조지은(再造之恩)’에 감사하기에도 겨를이 없어야 할 처지에 “어느 벌레 같은 백성이 감히 이런 짓을 했느냐”고 대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용산에는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용산 지역은 우리역사에서 외세가 침략한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증언하는 땅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지금의 효창원 부근에 보급기지를 설치하고 명나라 군대와 강화조약을 체결했으며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하였다. 1884년 청일전쟁 때는 일본 군대가 주둔하였다가 1885년 을미사변 때 민비 시해에 개입하였다. 또 일제는 1908년 조선군 사령부를 용산에 세워 동북아 침략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미군이 주둔했고 이제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오늘의 상황에 이르고 있다.(「국민일보」, 04. 4. 22)

외세침탈의 역사를 겪으면서 동족은 외세가 돼버렸고 외세는 과거 존명(尊明) 사대주의를 뛰어넘어 항상 고마워하고 감사해야할 아버지(국부 이승만)의 아버지 나라쯤으로 여긴다. 과거 ‘재조지은’과 ‘자유주의의 은인’이라는 상징은 오버랩 된다. 이런 오버랩이 너무 남발되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리고 국가주의적 안보유지라는 미명 아래에서 정작 미군의 범죄를 우리 현실에서 일상과는 아주 먼 얘기로 인식해 온 듯하다.

문제가 생길 때만 반짝 관심을 가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미군문제와 관련하여 항상 정치적 구호와 같은 큰 얘기만 한다. 그리고 작은 이야기, 실제 삶의 목소리는 일단 제쳐둔다.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이해와 대책」에서 김혜순은 주한미군 관련지역 이외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미군은 “군사적, 추상적으로만 존재해 온 듯하다.”고 말한다. 미군의 존재는 관련 연구자, 기지촌 경험자들, 활동가들에게만 존재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여론이 들끓다가 식으면서 구체적 미군의 존재는 다시 잊혀지고 미군철수논란, 남북문제 속에서 미군은 다시 군사적, 추상적 존재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안보문제를 추상적으로 생각해 왔다. 한미동맹은 무엇을 위한 동맹이고 국가안보는 무엇을 위한 안보인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미군범죄 사안 자체는 한미 양국의 관계가 치우쳐 편향되었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명하게 알려주는 사실이다. 2000년에 매향리 주민들이 미공군사격장 폐쇄를 주장하며,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정부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부끄럽다”며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던 일을 상기해 보자. 국가가 주장하던 국가안보가 구체적인 안보대상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자국민에게 오히려 피해와 고통을 준다면 그 안보는 허상이고 국가폭력이다. 허상에 충성하도록 국가가 폭력을 남용한다면 국민 역시 그 국가의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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