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거라투스트라 박헌영을 만나다 [자거라투스트라 시장에 가다]
이병창(MEGA 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
박헌영 선생님, 무고하신지요? 거기 계신 곳이 천당인가요?
글쎄요. 자거라투스트라씨, 여기가 천당인지 지옥인지 잘 모르겠소. 하느님은 ‘저 세상’에서 누구나 그의 소망을 실현시켜 주시지요. 그러니 여기가 천당이 맞을 거요. 예를 들어 살아있을 때 술을 좋아했던 사람은 죽어서 영원히 술을 먹도록 해 주시지요. 그런데 생각해보시오. 영원히 술만 먹으라 하면, 그게 지옥이지, 뭐가 아니겠소. 하느님의 자비는 곧 하느님의 심술일 거요.
그러면 소망을 바꾸면 되지 않아요?
자거라투스트라씨, 아직 안 죽어서 모르시는 모양이군,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소망을 바꾸지 못해요. 그게 죽는다는 것이요.
그러면 박헌영 선생님은 거기서 무얼 하세요?
하느님은 나에게 저 세상의 정권을 잡도록 해 주셨소. 그래서 내가 지금은 ‘저 세상’ 한반도 통일국가 주석이요.
드디어 소원을 이루셨군요.
글쎄. 방금 말했잖소. 소원은 이루었지만 그게 소원의 성취가 맞는지는 모르겠소. 왜냐하면 여기 ‘저 세상’에서는 권력은 무의미하기 때문이요. 하느님께서 이미 모든 사람의 소망을 실현시켜 주셨으니까요.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어요. 찾아오는 사람도 없죠. 게다가 여기는 죽는 사람도 없소. 이미 모두 죽었으니까. 따라서 겁박당하는 사람도 없소. 그러니 권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여기는 사람들이 왕이 왕인지를 모르고 지내요.
그러면 박헌영 선생님, 거기서 이 지상 세계의 소식은 듣나요?
그럼. 항상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나 보고, 듣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어라도 들을 수 있소. 하지만 굳이 내려다 볼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하오. 나만 그런 게 아니요. 여기서는 다들 그래요. 제상을 차려 놓으면 뭐 먹을 게 있나 가볼까 하다가도, 가 봐야 어느 집안이나 신세타령만 잔뜩 보고 들으니 요새는 여기 ‘저 세상’ 사람들은 다들 제상 보기를 돌보듯 하오.
그러면 요새 박헌영 선생님에 대해 재평가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도 모르시겠네요?
역사가들이 밥 벌어 먹고 살려고 때로 이렇게 평가했다가 때로 저렇게 평가하는데, 내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 것들을 일일이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소? 근데 자거라투스트라씨는 웬 일로 나를 찾아 왔소? 벌써 죽으려고 미리 준비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박헌영 선생님, 저야 아직 죽을 생각은 없어요. 제가 이대 출판사하고 계약을 맺어서, 박헌영 선생님의 사상에 관한 책을 쓰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요즈음 이런 저런 자료 수집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평가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정작 선생님은 그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한번 알고 싶었어요.
어디 어떤 평가인지 들어나 봅시다.
제가 요즈음 발견한 건데, 여러 가지 평가가 달라졌더군요. 그 중 한가지만 말하고 싶어요. 종파투쟁이라는 것이죠. 일제시대 ‘조선공산당’이라하면 종파투쟁 때문에 망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평가되어 왔었죠. 심지어 종파주의 때문에 1928년 12월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해체된 이후,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는 중에서도 종파투쟁이 그치지 않았다고 하죠. 나중에 해방이후 남로당이 세워질 때 박헌영 선생님은 아예 일개 종파인 ‘경성콩그룹’ 빼고는 모두 배제시켰고 결과적으로 박헌영 선생님도 종파주의의 책임을 지고 숙청되신 걸로 아는데요?
저런 무식하기는, ‘경성콩그룹’은 종파가 아니고 정통이요. 종파와 정통을 그렇게도 구분 못해요? 실례지만 자거라투스트라씨, 그 머리로 무슨 철학을 하겠소?
죄송합니다. 박헌영 선생님, 하여튼 화내지 마세요. 제가 박헌영 선생님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그런 견해가 바뀌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지요. 최근 성균관대 임경석 교수가 초기 사회주의를 연구하면서, 이런 종파주의의 책임이 조선 공산주의자한테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어요. 조선 공산주의를 지도하는 지도선 자체가 사실은 혼란스러웠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연해주 지역에 있던 소련 극동공화국 고려국에서는 상해파를 지지하고, 반면 코민테른 동양부에서는 이르크츠크파를 지원했다고 해요. 박헌영 선생님은 이르크츠크파이셨지요?
물론 나야 코민테른의 지시를 금과옥조로 여겼지요. 코민테른이야말로 정통 아니요. 소련 극동공화국 정부는 나중에 이단으로 해산된 정부인 줄 모르시오?
아 저도 임경석 교수의 책을 읽고 비로소 알았어요. 그래서 나중에 코민테른 동양부로 지시를 일원화 시켰지만 이번에는 코민테른 내부에서 혼란이 생겼다 하지요. 스탈린파와 비스탈린파 사이에 갈등이 생겼죠. 그래서 지시가 엇갈려서 어느 지시를 따를 지 혼란스러웠다고 해요.
하여튼 나 박헌영은 그 중에서도 항상 정통만 골라서 따랐소.
박헌영 선생님, 임경석 교수는 이런 혼란이 결국 민족주의의 문제였다고 합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는 반민족주의이었지요.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족주의하면 2차 코민테른의 제국주의 전쟁 참여, 나치즘과 파시즘 생각부터 나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레닌이 1922년 코민테른 2차 대회이후 민족주의를 받아들여, 서구 사회주의와 아시아 민족주의 사이의 국제적 동맹을 추구하면서부터 마르크스주의 내부에 혼란이 발생했다고 해요.
맞았소. 그 결과 중국에서 1924년 국공합작이 이루어졌소. 그런데 1927년 4월 장개석의 상해쿠데타로 공산주의자들이 숙청되자, 분위기가 바뀌었소. 여기서 스탈린파와 비스탈린파 사이에 갈등이 생긴 거요. 스탈린은 민족주의를 긍정하고, 비스탈린파는 민족주의를 부정했다 해요. 그때만 해도 코민테른에는 비스탈린파가 우위에 있었고. 코민테른은 1928년 6차 대회 이후 민족주의가 위험하다는 생각했소. 그때 코민테른의 지시는 민족주의를 폭로하라는 것이었소. 대중들을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떼어놓으라는 것이요. 그런 지침을 가장 충실히 따른 게 우리요. 그게 바로 이르크츠크파이고, 조선의 화요회파이고, 나중에 ‘경성콩그룹’파이요. 그래서 우리가 정통이라는 거요. 이젠 아시겠소?
그럼 박헌영 선생님, 1935년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 지미트로프가 새로운 테제를 제시했던 거는 아세요? 그때 그 테제는 서구에서는 인민전선을, 아시아에서는 민족통일전선을 하라는 거였어요.
물론 내가 왜 모르겠소. 코민테른이 바뀌면 그걸 따라야 하는 거는 당연하지 않겠소. 그게 정통노선이거든.
그런데 박헌영 선생님, ‘경성콩그룹’이 중심이 되고, 선생님이 지도한 해방이후 남로당은 결코 그런 노선이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요? 바타협적인 투쟁 노선, 혁명적 대중노선이라고 하면서, 민족주의자들과 통일전선은 거부하고, 내부에서도 콩그룹 일색으로 꾸려가지 않았어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가 발표한 8월 테제를 보시오. 민족통일전선을 강조한 거 아니요? 다만 이론과 달리 실제에서 우리나라에서는 해방이후 합작할 만한 부르주아가 없었어요. 우리나라 부르주아들은 대개 일제에 투항했소. 비타협적인 투쟁을 견지했던 민족주의자들은 얼마 안 되고, 그들은 정견이 고루하기 짝이 없었고, 더구나 우리를 적대해서 합작할 수 없었을 뿐이요. 게다가 경성콩그룹을 빼고는 일제시대 다 전향하지 않았소?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들과 당을 같이 하란 말이요?
박헌영 선생님, 노여워하지 마세요. 제가 최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문제를 바라보다 보니, 그 옛날 종파투쟁이 아직도 전개되는 것 같아서, 그래요. 임경석 교수는 조선공산당의 종파투쟁을 이론적인 차이에로 귀결시키려 했는데, 표면적으로 보면 결국 이번에도 민족주의가 문제더군요. 민족주의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고, 이어서 민주당과 같은 부르주아 정당에 대한 관계의 문제이죠. 내부적으로는 민족주의자들과 연대하려는 자와 단절하려는 자 사이의 갈등이구요. 일파만파이죠.
그렇다면 자거라투스트라씨, 단호한 이론적 투쟁이 필요해요. 그래서 순결한 원칙적인 통일을 이루어야 하지요. 그것만이 종파를 없애는 유일한 방식이요. 그때는 오직 정통만이 남아있죠. 이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항상 정통이요. 이 세상은 정통만이 정통이요.
원칙적인 통합, 그게 바로 선생님의 주장이죠. 하기는 지금 민노당과 진보신당 사이의 통합 논쟁도 항상 그런 쪽으로 흘러가더라고요. 통합에 원칙이 없다는 거죠. 그러니 언젠가 깨어질지 모른다는 거고, 그래서 통합이 안 된다는 주장이에요. 절대 통합하지 않겠다는 거죠.
자거라투스트라씨, 역시 순결한 원칙을 따르고자 하는 순전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없는 게 아니군. 나야 항상 그런 대중들을 대변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박헌영 선생님, 저는 임경석 교수가 틀렸다고 보아요. 역사적인 운동이 무슨 자연과학적 운동이 아니라면, 거기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판가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겠죠? 운동이란 때로는 이게 옳은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저게 옳은 것처럼 보이니, 당연히 역사적 운동에는 이런 저런 분파, 이런 저런 종파들이 혼재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종파투쟁이란 역사의 불가결한 과정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루는 것이 역사적 승리를 위한 필연적인 요구이구요. 하지만 여기서 순수한 원칙적 통일이란 좋은 말이지만 역사적 운동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자거라투스트라씨,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소. 하여튼 당신도 항상 정통을 따르도록 해요. 그러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소.
박헌영 선생님, 이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통합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이론이 틀린 사람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잘못된 이론 때문에 나까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감이 들 때조차, 그래도 서로 협력하면서 함께 일을 할 수 있어야 종파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웬 궤변이요. 이론이 틀린데 어떻게 함께 해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몰라요?
하지만 박헌영 선생님, 이 세상에 이론이 같아서 함께 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함께 가는 묘안을 짜내는 것은 오직 마음만이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요? 바로 열려진 마음. 서로에게 기회를 주면서 파국을 피하고, 진실이 드러날 때가지 위험을 무릎 쓰고 참고 견디고,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추구해 왔던 일들이 상생의 효과를 이루도록 만드는 것. 이것은 이론이 아니고 오직 마음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분열이 있었다면, 일단 무조건적으로 통합하고 모든 것을 상대편에게 넘겨준 다음,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게 옳지 않아요?
자거라투스트라씨, 마음이 아니요. 이론이요. 철두철미 정통만을 따르고자하는 마음, 그게 바로 우리 혁명가의 마음이요.
박헌영 선생님, 마오의 경우를 보시죠?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위와 코민테른의 극좌적 투쟁방침 때문에 그는 정권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탈당하지 않았고, 수년간 절에 거의 유폐되면서도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기꺼이 협조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만리장정 가운데 비로소 지도권을 회복했었죠.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대장정’이란 소설을 읽어보세요.
거 뭐 시답지 않는 소리요. 자거라투스트라씨, 그냥 잠이나 자시오. 나는 이 ‘저 세상’에서도 항상 정통만을 따르는 사람이요. 그래서 나의 공화국에 아예 이름도 이렇게 붙였소. 한반도 통일 정통 공화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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