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6-필연[관계] 판단 형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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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6-필연[관계] 판단 형식

1)

반성 판단 형식에서 전칭 판단 형식이 보편 판단 형식으로 이행하면서 정언 판단 형식이 된다. 보편 판단 형식이나 정언 판단 형식은 일반적 유를 주어로 하는 것이므로 동일한 것을 말한다. 다만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에 따라 구별된다. 전자는 반성 운동의 운동 결과이며, 후자는 필연성 범주가 전개되는 출발점이다.

헤겔은 필연성 범주[판단 형식]이라 했지만, 이는 칸트에서는 관계 범주에 해당하는 것과 같다. 헤겔이 이를 ‘필연성’이라 이름 붙이면서, 양상 범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필연 판단‘과 오해될 여지가 있다. 물론, 흔히 말하는 필연 판단은 헤겔에서는 자명한[확증, apodiktisch] 판단이니, 헤겔에서는 구별된다.

헤겔이 왜 이렇게 이름 붙였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헤겔은 흔히 질의 범주라 부르는 것은 현존 범주라 했다. 헤겔에서 질이 곧 현존이기 때문이다. 양의 범주라 부르는 것은 반성 범주라 했는데, 질이 반성하면서 양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흔히 관계 범주라 부르는 것은 필연성인데, 이 필연성은 판단의 필연성이고 즉 판단에서 구별된 주어와 술어가 합일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가 관계 범주라 부른 것도 주어와 술어 사이의 관계가 논해지기 때문이니, 명명의 방식에서 차이는 있지만,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다.

필연성 범주의 일반적 형식은 주어는 일반적 유를 의미한다. 이 주어는 다시 술어의 일반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 반면 술어는 반성 범주에서 유지되어 온 지각적 일반성이 그대로 넘어온다.

그런데 반성 범주에서 술어의 일반성은 우선 내포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즉 그것은 개별적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연성 범주에서 술어의 일반성은 이제 외연적인 의미를 지니면서 우연적 실존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일반적 유가 실현된 개별자를 말한다.

이 우연적 실존이 서로 무차별하게 모인 집단이 곧 ‘실체[Substanz]’이다. (앞에서 본질론 실제성 편에서 ‘실체와 우연’의 관계가 상기해 보라.) 여기서 개체 사이의 구별은 어떤 원리가 없으며, 다만 우연히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이 실현된 개별자이다. 이 우연한 실존의 이면이 실체이다. 우연하게 출현한 생명이 모인 자연 생태계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2)

필연 판단 형식의 출발점에 등장하는 것은 정언 판단 형식이다. 그것은 일반적 유를 주어로 하고 일단 단순한 속성을 술어로 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장미는 가시가 있다’라는 명제를 들 수 있다.

여기서 내포적으로 ‘가시가 있다’라는 술어는 외연적으로는 ‘가시가 있는 것’이라는 하나의 실존을 의미한다. 그것은 ‘가시가 있는 식물’ 이다. 주어인 장미는 그것이 속하는 일반적 유[‘식물’]에 속하는 하나의 실존이 된다. 술어가 지닌 외연적 의미가 드러나면서 정언 판단 형식의 본래적 의미가 드러난다.

여기서 주어인 ‘장미’는 아직 그 본질적 내용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어는 다만 일반적 유를 지칭하는 이름이며, 술어인 ‘가시가 있다’라는 술어의 내용을 규정하기는 하지만, 이 규정은 아직 일반적 유의 고유한 본성 즉 종차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주어의 규정성[이름]를 통해서 주어는 술어에 대립해서 특수한 것으로 된다. 이런 주어의 규정성은 처음에는 아직 우연적인 것이다. 주어와 술어는 형식이나 필연적인 것으로서 규정성을 통해 관계하지 않는다. 따라서 필연성은 아직 내적인 것으로서 존재한다.”(논리학 2부, GW12, 78)

그러므로 여기서 주어와 술어의 관계는 필연적이지 않으며 다만 서로 외면적으로 관계한다. 정언 판단 형식에서 서로 구별된 주어와 술어에서 다시 현존 범주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내재화의 운동이 일어난다. 현존 범주에서 술어인 일반성이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발전했듯이 이제 주어와 술어는 관계는 외면적인 것에서 내면적인 것으로 발전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일반적인 것이 자기를 규정해서 즉 자기를 판단으로 정립하면, 이 객관적으로 일반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신으로부터 반발해서 나온 규정성 자체와 동일성의 관계 속에 있으니, 즉 이 반발한 규정성은 본질적으로 단순히 우연적인 것으로 정립될 수 없다.”(논리학 2부, GW12, 78)

현존 범주에서 내재화의 운동은 경험적으로 일어난다. 반면, 필연 범주에서는 주어가 이미 일반적 유이므로 이 유가 자기를 실현하는 것을 통해서 내재화의 운동이 일어난다. 이 관계의 필연성은 이미 일반적 유에 내재하며, 다만 이 필연성이 정립되면서 주어와 술어의 동일성이 회복될 것이다.

3)

현존 판단 형식의 긍정, 부정, 무한 판단 형식은 객관 논리학의 질의 범주 즉 실재성, 유한성과 무한성에 상응했다. 반성 판단 형식은 객관 논리학의 양의 범주에 상응했다. 양에서 정량, 척도와 척도 관계가 단칭 판단, 특칭 판단, 보편 판단의 형식이 된다.

가언 판단 형식은 본질과 개체의 관계이므로 객관 논리학에서 본질론에 나오는 현상 범주와 상응한다. 여기서 실존, 현상, 실체의 범주가 판단 형식으로는 정언 판단, 관계 판단, 선언 판단이 된다.

이런 주관 논리학과 객관 논리학 사이의 상관성에 관해 우리는 헤겔이 사용하는 용어를 통해 짐작할 뿐인데, 다행스럽게도 필연성의 범주와 관련해서는 그 상관성을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정언 판단에서는 실체성의 개념 형식이 출현하듯이 가언 판단에서는 인과성의 개념 형식이 출현한다. …가언 판단에서는 자립적인 측면의 관계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오히려 본질적으로 하나의 동일성이 지닌 계기로서만 존재한다.”(논리학 2부, GW12, 79)

위의 글에서 헤겔은 객관 논리학 본질론과 필연성 범주와의 상응성을 밝히고 있는데 다만 그 차이를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즉 본질론에서 현상의 인과적 관계는 한편으로 현상이 직접적인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 관계가 출현한다는 이중성을 지닌 것이었으나, 이제 필연성의 판단 형식에서는 관계의 측면들이 더는 직접성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그 관계의 계기로서만 출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언 판단 형식에서 ‘A가 있으면 B가 있다라’고 하면서, 그 관계만이 명시된 것을 말할 것이다.

이런 필연성 판단 형식에서 가언 판단 형식이나 선언 판단 형식은 더는 존재라는 계사를 통해 판단이 결합하지 않는다. 여기서 계사는 가언이나 선언과 같은 논리적 결합사인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논리적 결합사 때문에 일반 논리학은 이런 판단 형식을 추론의 영역에 속하는 복합적인 판단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헤겔은 이런 논리적 결합사로서 선언이나 가언의 형식은 연언과 부정으로 환원할 수 있고 이 연언과 부정은 판단의 계사인 존재의 의미이므로, 이런 형식도 판단에 집어넣는다.

4)

정언 판단의 형식은 일반적 유가 곧 우연한 개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한 개체 밑바닥에 일반적 유라는 본질이 있는 한, 우연한 개체들은 관계하고 있다. 이런 관계는 경험을 통해 단계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최초로 드러나는 것이 가언 판단 형식이다.

현존 판단 형식에서 술어인 일반성이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발전하는 것이 경험의 발전을 따라 일어났듯이 여기서도 술어인 우연한 개체들 사이의 필연적 연관성이 경험의 발전에 따라 드러난다.

우선 그 관계는 우연한 개체들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이다. 이 관계를 통해 정언 판단 형식은 가언 판단 형식으로 이행한다. 가언 판단 형식은 ‘A가 있으면, B가 있다’라는 형식이다. 이런 가언 판단 형식에서 A의 존재는 그 자신의 존재를 넘어서 B의 존재를 의미하므로 A와 B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정립된다.

정언 판단 형식은 하나의 판단이지만, 사실 그 밑에는 실체 전체에 관련된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정언 판단 형식에서 A의 존재나 B의 존재는 우연적이며 그 밑바닥에는 실체적 연관이 있지만, 이 연관은 사실 무차별한 것의 연관이다. 그러므로 ‘장미는 가시 있는 식물이다’라거나 ‘국화는 형기가 강한 식물이다’라거나, ‘수선화는 우아한 식물이다’라거나 등이다. 이는 무차별한 선언[‘이거나’)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이런 판단 형식은 ‘공허한 형식을 지닌 명제’(논리학 2부, GW12, 79)이다. 이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집단 즉 실체[‘식물’]는 외적이니

반면, 가언 판단 형식에 이르면, A의 존재나 B의 존재는 각기 그 자체로 자립적인 구체적 존재가 아니며 다만 서로 맺고 있는 관계만이 표현된다. 정언 판단 형식에서 감추어져 있던 관계가 여기서 정립되면서 드러난다.

여기서는 A의 존재나, B의 존재는 이런 관계에 내재하는 가능성으로서 주어진다. 즉 A가 만일 존재한다면, 가언 판단의 형식에 따라서 B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언 판단은 A가 있다거나 B가 있다는 것을 포함하지 않고, 오히려 다만 하나가 있으면 다른 것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양극 자체가 아니라 양극의 연관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정립되며, 차라리 이런 필연성 속에서 각자는 자기에 못지않게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으로서 정립된다.”(논리학 2부, GW12, 79)

5)

헤겔은 이런 가언 판단 형식에서 계사가 ‘존재’라는 계사가 아니라 논리적 결합사로서 ‘가언’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가언 판단은 그런 한 차라리 [복합] 명제의 형태를 갖는다. 마치 특칭 판단이 무규정적인 내용을 지닌 것이듯이 가언 판단은 무규정적인 형식을 지닌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주어와 술어라는 규정 아래서 관계하지 않기 때문이다.”(논리학 2부, GW12, 79-80)

헤겔은 이 구절에서 가언 판단 형식이 복합명제의 형태를 취하는 까닭을 무규정성 때문이라 한다. 앞에서 특칭 판단 형식에서 주어는 몇몇이며, 여기서 정확한 수가 밝혀지지 않아서 무규정적이었다. 가언 판단 형식이 무규정적인 것은 논리적 결합사 가언을 선언으로 전환하면 잘 알 수 있다.

‘P이면 Q이다’라는 것은 ‘P가 아니거나 Q이다(-P or Q)’로 환원된다. 그러면, 여기서 P가 아닌 것은 무수히 많은 것이니, 이런 점에서 헤겔은 가언 판단 형식이 무규정적이라고 한다. 가언 판단 형식은 현존 판단 형식에서 부정 판단 형식이나 반성 판단 형식에서 특칭 판단 형식과 같이 무규정성을 지닌 것이다.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서 계사 존재는 주어, 술어가 한정적일 경우에만 될 수 있다. ‘아니다’, ‘또한’, ‘또는’은 논리적 결합사인데, 주어나 술어가 비한정적일 경우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부정 판단 형식, 특칭 판단 형식, 가언 판단 형식이나 뒤에 나오는 선언 판단 형식은 존재가 아니라 논리적 결합사를 통해 관계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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