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9(IX)권 후반부 ~ 10(X)권[건국대학교 다자인多字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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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9(IX)권 후반부 ~ 10(X)권

 

 

건국대학교 다자인多字人

 

 

  1. <형이상학> 9(IX)권 후반부(9장~10장)

앞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태가 정의상으로, 시간상으로, 존재론적으로 가능태에 앞섬을 기술했다. 9장에서는 가치의 측면에서도 현실태가 가능태보다 더 우월함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현실적인 활동은 훌륭한 능력보다 더 좋고 고귀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능력을 가진 것은 반대의 능력 또한 함축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은 처음부터 현실태로 있으므로, 나쁜 것이 포함될 수 없다.

10장은 있음과 참 간의 관계를 다룬다.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은 참과 거짓의 의미로 쓰일 수 있다. 참과 거짓의 문제는 대상들의 결합과 분할에 따른 것이다. 결합된 것을 결합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참을 말하지만, 대상들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따라서 판단은 사물들에 대한 결합과 분리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과 거짓은 무언가를 결합하거나 분리할 때 발생하는 복합적 판단이다. 따라서 단순한 것은 참 거짓의 구조에 속하지 않는다. 합성되지 않은 실체의 경우에는 모두 가능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있기에 잘못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1. <형이상학> 10(X)권(1장~10장)

 

10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 개념으로부터 있음, 동일, 다름, 차이 등의 개념들을 구체화한다. 하나에는 크게 4가지 뜻이 있는데, 이는 각각 본성적으로 연속적인 것, 전체를 이루는 특성한 형상, 수적으로 분할불가능한 개별자, 그리고 종적으로 분할불가능한 학문적 하나이다. ‘하나이다’는 ‘분할불가능하다’는 것, 무엇보다도 각 유, 주로 양의 첫째 척도임을 뜻한다. 따라서 양을 갖는 것은 모두 하나에 의해서 인식된다. 그러므로 하나는 수인 한에서 수의 원리이다. 모든 것에서 척도와 원리는 하나이자 분할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높은 수준에서 ‘하나임’은 일종의 척도이며, 따라서 무제한적인 뜻에서나 하나인 한에서 하나는 분할불가능하다.

 

2장에서는 하나와 있음의 관계성을 다룬다. 하나와 같은 보편자는 실체일 수 없으며, 있는 것 자체도 여럿과 떨어져 있는 하나로서 실체일 수 없다. 왜냐하면 있는 것과 하나는 가장 보편적으로 모든 것에 대한 술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있는 것’과 ‘하나’는 똑같이 여러가지 뜻으로 쓰이지만 같은 개념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점에서는 ‘있는 것’과 ‘하나’가 동일한 것을 가리키는데, 이 둘은 여러 범주들에 대해 똑같이 적용되고 어떤 범주 안에 있지도 않다. 따라서 ‘하나이다’는 ’어떤 것이다’와 다른 것이 아니다.

 

3~5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 개념을 통해 여럿, 동일, 다름, 차이, 모순 개념을 구체화한다. ‘하나’와 ‘여럿’은 분할가능성을 기준으로 하여 대립한다, 분할되어 있거나 분할가능한 것은 다수이며. 분할불가능하거나 분할되지 않는 것은 하나라고 불린다. 동일은 하나에 속하고, 다름과 비동일은 다수에 속한다. 이때 ‘아님’은 ‘동일함’과 대립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서로 동일하거나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차이’와 ‘다름’은 서로 다르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 기준이 되는 동일한 것이 먼저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차이는 동일한 종이나 유 안에서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대 또한 일종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차이는 많고 적음의 정도를 가질 수 있는데, 이 중 가장 큰 차이를 ‘반대’라고 한다. 종적 차이는 반대자들이 극단을 형성하며, 극단에 있는 것들 사이의 간격이 가장 크므로 종차의 간격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차이가 상반성이라면 반대로서의 마지막 차이 또한 그러하다. 따라서 여럿은 하나에 반대되는 것일 수 없다. 여럿은 하나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많은 하나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반면 모순은 가장 강한 결여다. ‘A이다’와 ‘A가 아니다’라는 관계는 동시에 성립할 수 없으므로, 여기에는 중간이 없다. 모순의 중간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반대자들 사이에는 중간이 있을 수 있으므로 모순과 반대는 같지 않다.

 

 

6장에서는 하나와 여럿 사이의 대립관계에 대해 다룬다. 하나와 많음이 무제한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하나도 그저 수가 적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많음에 대립하는 것은 수가 적은 것인데, 다수인 둘의 경우에도 수가 적은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수가 적은 것이 다수일 수 있다면, 그리고 많음이 하나와 무제한적으로 대립한다면 하나도 다수에 해당한다는 의미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하나는 무제한적으로 많음과 대립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많음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데, 첫째는 양이 많은 것이고, 둘째는 수가 많은 것이다. 이 중 분할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는 수가 많다는 의미만이 사용되는데, 이 경우에만 많음은 하나와 대립한다. 왜냐하면 수가 많음을 표현할 때, 하나는 많음을 이루는 수들에 대한 척도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와 많음의 대립은 척도와 척도에 의해 측정되는 것 사이의 대립과 같다.

 

7~9장에서는 반대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반대자들은 그 사이에 중간자가 있는 것이다. 이 중간자들은 필연적으로 반대자들로부터 유래해야 한다. 이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중간자는 중간자를 갖는 것들과 동일한 유에 속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중간자는 변화하는 것이 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중간자는 어떤 대립자들 사이에 있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한쪽의 대립자를 출발점으로 해서 이 대립자들의 본성에 따르는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간자들이 동일한 유이고 반대자들 사이에서 성립한다면, 중간자는 필연적으로 반대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반대자들은 합성체가 아닌 원리들인 반면, 중간자들은 한쪽의 반대자에서 다른 쪽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양쪽의 반대자들의 일부를 갖는다. 따라서 중간자는 모두 합성적이며 반대자들로 이루어진다.

 

종이 다른 것은 어떤 유 안에서 서로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동일한 것 안에 서로 다른 둘에 대한 술어와 부수적인 의미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유이기 때문이다. 이 서로 다른 것은 하나의 공통적인 것 안에 있으므로 이 다름은 같은 유에 속한 다름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반대일 것이다. 왜냐하면 반대자들은 동일한 유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종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 둘은 같은 유에 속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반대 중에 종을 나누는 반대와 종을 나누지 않는 반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차이는 반대가 종을 나누는 그 유의 고유한 속성인지 아닌지에 따라 구별된다고 설명한다. 서로 다른 이름이 붙거나 복합체의 경우에도 반드시 이들이 각각 다른 종에 속하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정식에서 반대가 있음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개체의 경우에는 최종적이고 불가분적인 것이기 때문에 하위 종으로 나뉘지 않는다.

 

10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불멸하는 것과 가멸하는 것이 반대자가 아니며 서로 다른 유에 속함을 밝힌다. 반대자들은 서로 형태가 다르고, 가멸적인 것과 불멸적인 것은 서로 반대자이기 때문에 가멸적인 것과 불멸적인 것은 그 부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멸성과 불멸성은 부수적인 뜻에서 다른 것에 속할 수 없는데, 부수적인 뜻에서 소멸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멸성과 불멸성은 그것이 속하는 대상의 필연적으로 속한다. 또한 가멸적인 것에 있어 가멸성, 불멸적인 것에 있어 불멸성은 그것의 실체이거나 실체 안에 속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둘 모두 어떤 것 안에 필연적으로 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멸적인 것과 불멸하는 것은 대립적인 서로 다른 실체 안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나므로, 둘은 서로 부류가 다를 수밖에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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