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3-무한 판단에 관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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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3-무한 판단에 관해

1)

현존(질) 범주에 속하는 판단의 마지막은 무한 판단이다. 무한 판단이 무엇인가에 관해 논의가 분분하다. 철학자나 논리학자마다 무한 판단은 다르게 설정된다.

① 일반적으로는 무한 판단은 부정 판단에서 부정적 술어를 다시 부정하면서 생긴다. 즉 ‘S는 P가 아니다[-P]’에서 술어를 다시 부정하면 무한 판단 ‘S는 (-P)가 아니다’가 나온다. 예를 들자면, “장미는 붉은 것이 아닌 것이 아니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판단은 일반적으로 긍정 판단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P)는 곧 P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 논리학은 무한 판단을 독립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판단 형식에서 배제한다.

2)

② 칸트는 무한 판단을 이와 달리 해석한다. 칸트에서 무한 판단은 긍정적인 형식이지만, 술어가 무규정적인 것일 경우다. 칸트가 들고 있는 예는 ‘영혼은 불사이다’와 같은 판단이다.

여기서 술어는 ‘불사’ 즉 ‘죽지 않은 것’인데, 이 세상 가사적인 것을 모두 경험할 수는 없으니, 그 바깥에 있는 불사적인 것이 있는지 또는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이 ‘불사’는 무규정적인 것이다.

칸트는 이 ‘불사’가 고유한 의미를 지닌 술어로 본다. ‘불사’는 죽음에 대립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규정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칸트는 여기서 이미 부정을 규정적인(특정한) 부정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외연적으로는 무규정적이지만, 의미상으로는 제한적이므로 독자적인 판단이 된다는 것이다.

“무릇 가능한 존재들의 전 외연 중에서 가사적인 것이 그 일부요, 불멸적인 것이 나머지 부분이다. 그러므로 나의 명제[영혼은 불사적이다]에 의해서 내가 말한 것은 영혼은 내가 가멸적인 것을 모두 제거한 뒤에 남는 바 무한한 사물 중에 하나라는 의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모든 가능적인 것의 무한한 분야에서 가멸적인 것이 제거되고 공간의 그 나머지 분야 중에 영혼이 들어가는 한, 모든 가능적인 것의 무한한 분야라도 제한을 받는 셈이다. ..즉 논리적 외연에 관한 한 이 무한 판단은 인식 일반의 내용에 관해서는 사실 제한적이다.”(칸트, 순수이성비판, A판, 97, 최재희 역, 박영사, 1985, 109)

이런 경우라면, 형식상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의미는 사실상 부정 판단이다. 그러므로 부정 판단에 집어넣을 수 있다. 즉 ‘불사’라는 술어를 ‘죽지 않는다’로 바꾸면 된다.

더구나 술어가 무규정적일 때 무한 판단이라면, 부정을 칸트처럼 규정적 부정으로 이해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이해하듯이 전적인 부정으로 이해할 때는 모든 부정적인 술어의 의미는 무규정적으로 된다. ‘빨갛다’의 부정은 ‘파랗다’도 되고, ‘수3’도 되고, ‘코끼리’도 된다. 그러면 부정 판단 자체가 무한 판단이 된다. 그러므로 칸트와 같은 방식으로 무한 판단을 설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3)

③ 헤겔은 또 다른 무한 판단의 예를 거론한다. ‘정신은 붉다’라거나 ‘장미는 코끼리다’라거나 ‘지성은 책상이다’ 등과 예다. 이 무한 판단은 주어와 술어가 서로 무관한 것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판단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판단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판단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니, 이런 판단은 부조리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헤겔은 범법도 이런 부조리한 판단에 집어넣는다. 일반적으로 악한(잘못된) 행위는 법을 인정하고 그 법을 여러 이유로(욕망이나 분노 등에 의해) 어기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죄의식이 전제된다.

그러나 범법[Verberechen]은 법을 부정하되, 이 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에 부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양심범이나 확신범의 행위다. 행위는 법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런 행위는 행위 자신의 지반인 법을 부정하므로 여기서 주어인 법과 술어인 행위는 무관한 것이다.

(헤겔이 양심적 범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행위는 한편으로 부조리한 무한 판단이지만, 다른 편으로는 기존의 법의 체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법의 체계를 구성하는 매개가 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이런 판단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은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주어와 술어가 서로 연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다. 만일 경험이 없는 어린아이의 경우는 이런 판단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이런 판단은 허위인 판단이지만, 이런 판단을 부정하면 ‘정신은 붉지 않다’거나 ‘장미는 코끼리가 아니다’라거나 ‘지성은 책상이 아니다’는 진리인 판단이고, 저겅도 세계를 분류하는 차원에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판단이다. 그러므로 거꾸로 ‘정신은 붉다’와 같은 판단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러므로 이상 ③의 예는 비록 부조리한 것은 아니더라도 거꾸로 만일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차라리 긍정 판단이나 부정 판단 속에 집어넣더라도 문제는 없으니 굳이 무한 판단이라는 독자적 판단을 설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4)

헤겔은 무한 판단을 의미 있는 독자적 판단 형식으로 규정하는데, 이때 헤겔이 무한 판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부정적 무한 판단이다. 예를 들어 ‘이것은 빨간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니며, 노란색도 아니다…등’과 같이 “술어의 전체 영역이 부정되는”(논리학 2부, GW12, 69) 경우다. 이런 경우를 더 단순화하면, 어떤 술어 P의 부정과 그 부정적 술어 -P의 부정이 결합된 형태다. 즉 -P&-(-P)이다.

이런 경우는 부정 판단의 연속적인 결합체로 다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일반 논리학에서는 이런 판단은 부정 판단의 결합체로 여긴다. 그런데 헤겔은 이런 판단이 부정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판단을 단순한 부정 판단과 구별하며, 무한 판단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때 연속된 술어의 부정이 단순히 부정적인 형식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헤겔에서 부정이 ‘특정한 부정’이며 이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어떤 특수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반성 속에서 그런 부정이 일어나고 일반성은 보존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술어의 부정은 단순히 무한 진행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특수성을 넘어서 일반성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든 술어의 부정은 그 술어의 토대가 되는 일반성을 긍정하는 것이 된다. 위의 예에서 ‘빨간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니다..’ 등이라면 그것은 일반적인 색깔이 된다.

본래 긍정 판단에서 술어는 추상적 일반성(이는 곧 감각적 개별성이다)이지만, 그 진리는 특수성이고 그것은 부정 판단에서 정립된다. 부정 판단에서 특수성은 이미 지각적 일반성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내적인 것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부정 판단이 무한 판단으로 되면서 이런 일반성이 마침내 정립된다.

이 새로운 일반성은 추상적 일반성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즉 이 일반성으로서 술어는 지금까지 다루었던 주어에 외면적이며 우연적인 술어, 특수성으로서 술어가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며 따라서 주어에 내재하는 필연적 술어가 된다. 지금까지 현존 범주에서 술어는 감각적 성질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이제 무한한 판단을 통해 형성되는 것은 지각적 일반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4)

부정적 무한 판단에서 일반성이 정립되면, 이는 긍정적 무한 판단이 된다. 예를 들어 ‘이것은 색깔을 지닌 것이다’라고 할 때 이 술어는 빨간색, 노란색 등의 토대가 되는 일반성으로서 색깔이면서 동시에 개별자에 고유한 일반성이다. 즉 주어인 어떤 것은 어느 것이든 색깔을 지니며 이 색깔은 이 어떤 것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런 개별자에 내재하는 일반성을 ‘자기 반성된 개별성’이라 한다. 앞에서 긍정 판단에서 추상적 일반성이 부정 판단에서 특수성으로 다시 무한 판단에서 ‘자기 반성적 개별성’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무한 판단의 형식은 ‘개별자는 자기 반성적 개별자다’가 되면서

이 개별성은 직접적인 개별성 즉 실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직접적 개별자는 오히려 앞에서 추상적 일반성으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별성은 주어에 내재한다는 측면에서 자기 반성적 개별성이며, 규정된 규정성[Bestimmte Bestimmtheit]이며 주어가 그 속에서 연속된다는 측면에서 자기 관계하는 것이니 구체적 일반성을 의미한다. 헤겔에서 추상적 일반성은 직접적 개별성이며, 자기 반성적 개별성은 곧 구체적 일반성을 의미한다.

“무한 판단 즉 부정의 부정이 지닌 긍정적 형태는 개별성의 자기 자신 내로의 반성이다. 이를 통해 개별성은 비로소 특정한 규정성으로서 정립된다. 개별자는 개별자라는 명제는 무한 판단을 그런 반성에 따라서 표현한 것이다.”(논리학 2부, GW12, 70)

5)

무한 판단에서 술어에서의 변화와 더불어 주어도 변화하게 된다. 주어의 개별자는 술어 속에서 자기를 연속하게 한다. 그러므로 술어는 구체적 일반성이다. 개별적 술어는 주어에 내재하는 개별성이면서 또 마찬가지로 구체적 개별성인 다른 술어와 주어 속에서 융합한다. 그러므로 주어는 이제 여러 구체적 일반성이 융합된 일반자가 된다.

“이를 통해 개별자는 주어와 동일한 그 술어[자기 반성적 개별성]에서 자기를 연속하게 하는 것으로서 정립된다. 따라서 또한 일반성도 마찬가지로 더는 직접적 일반성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별된 것을 총괄하는 것으로서 존재한다. 긍정적 무한 판단은 이와[‘개별자는 구체적 일반성 즉 개별성이다’]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일반자는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긍정적 무한 판단에서 개별자는 개별자인 것에 못지않게 자기 자신 내로의 복귀로서 정립된다.”(논리학 2부, GW12, 70)

이상 두 관계를 결합해서 무한 판단을 표현하면 ‘개별자[일반자]는 일반성[개별성]이다’가 된다. 여기서 외연적 표현은 ‘개별자는 일반성이다’. 그 내포적으로는 ‘일반자는 개별성이다.’ 이런 형식만 보면, 다시 질적 긍정 판단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술어의 일반성이 구체적 일반성이고 주어의 개별자는 내재하는 일반성의 융합으로서 개별자이다.

현존 범주 즉 질적 판단 형식에서 운동은 외재하는 술어가 주어에 내재하는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내재의 관계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이제 술어에서 구체적 일반성이 출현하면서 주어인 개별성이 이 술어와 일치하게 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운동이 양적 범주 즉 반성 판단 형식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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