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2-부정 판단에 관해[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2-부정 판단에 관해
1)
일상적으로 판단은 구체적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진리는 그런 내용이 세계 속의 사태와 일치하는가에 달려 있다. 논리적 진리로서 동일률이나 모순률은 그런 내용이 자기 동일적이거나 자기 모순적인가만을 다룬다.
그러나 헤겔은 판단 형식이 그 구체적 내용과 상관없이 형식 그 자체로 고유한 내용을 갖는다 하며, 이것을 곧 ‘논리적 내용[Gehalt]’이라 한다. 예를 들어 질적 긍정 판단 형식은 외면적으로는 ‘개별자는 일반자다’이고 내포적으로는 ‘일반자는 개별자이다’라는 것인데, 이 형식은 주어와 술어 사이의 특정한 관계 즉 포섭과 내재라는 관계를 포함한다. 이 특정한 관계가 곧 논리적 내용이다.
이처럼 판단 형식이 고유한 논리적 내용을 가지므로 여기서 판단 형식 자체가 논리적 내용과 대립하면서, 이런 모순을 통해 하나의 판단 형식은 다른 판단 형식으로 이행한다. 이런 이행의 끝에 판단의 형식과 내용 사이의 대립이 해소되면서 판단의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헤겔은 철학의 목적은 단순히 판단의 구체적 내용이 진리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아니라 한다. 그런 진리는 우연적인 진리에 불과하다. 철학의 목적은 이성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인데, 이 이성적 진리는 곧 판단의 형식 자체가 그 논리적 내용과 합일에 이른 것을 말한다.
2)
이성적 진리의 측면에서 보면, 질적 긍정 판단의 형식은 자기 모순적이다. 술어는 일반성인 동시에 개별성이니, 곧 특수성이다. 이런 특수성은 다른 특수성에 대립하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에서 부정성을 지닌 것이다. 앞에서 헤겔은 ‘현존’을 다루면서 이런 특수성 즉 그 자신에서 부정성을 지닌 실재성을 ‘유한성’이라 규정한다.
“긍정 판단은 자기의 진리를 우선 부정 판단에서 갖는다. 개별자는 추상적으로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별자[주어]의 술어는 그 자체 특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술어는 그러한 술어[특수한 것]이거나 또는 주어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고찰된다면 이 술어는 추상적인 일반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개별자는 특수자다.”(논리학 2부, GW12, 65)
유한성은 자기에 대립하는 것을 이미 자기 자신에서[an ihm selbst] 지니고 있으니, 자기 자신을 통해 자기의 대립물로 이행한다. 그러므로 질적 긍정 판단은 질적 부정 판단으로 이행한다. 이런 질적 부정 판단의 판단 형식은 우선 외면적으로는 ‘개별자는 일반성이 아니다’며 내포적으로는 ‘일반자는 개별성이 아니다’다.
이런 부정 판단은 부정적인 형식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그것이 지닌 긍정적인 의미는 오히려 긍정 판단의 형식으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있다. 즉 여기서[‘이것은 P가 아니다’] 계사의 부정 즉 ‘아니다’를 술어[P]에 붙여서 이해하면 그것에 대립하는 술어 즉 -P가 된다. 즉 부정 판단은 ‘이것은 (-P)이다’가 된다. 만일 (-P)를 Q로 이해하면, 부정 판단은 곧 ‘이것은 Q이다’라는 긍정 판단이 된다.
부정 판단 형식은 이렇게 긍정 판단 형식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부정 판단 형식은 외면적으로 보면, ‘개별자는 (일반자가 아닌 것)이다’며 내포적으로 보면, ‘일반자는 (개별자가 아닌 것)이다’가 된다. 여기서 술어는 ‘(일반자가 아닌 것)인 동시에 (개별자도 아닌 것)’이므로 이것 역시 특수자다. 따라서 질적 부정 판단 형식은 ‘주어(개별자, 일반자)는 특수자다’가 된다.
“여기서 우선 주목될 수 있는 것은 a) 술어의 자리에 특수성이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이 특수성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되었지만, 여기서 이 특수성은 외적 반성을 통해 정립된 것이 아니라 판단에서 제기된 부정성의 관계를 매개로 해서 발생했다. b) 여기서 이 특수성이라는 규정성은 술어의 자리에 자리 잡는다. 직접적 판단 즉 현존 판단에서 주어는 근거에 놓인 것이다. 따라서 그 규정성은 우선 술어에서 여러 개념 규정성을 거쳐나가는 것처럼 보인다.”(논리학 2부, GW12, 65)
3)
판단의 형식에서 보면, ‘이것은 빨갛다[P]’에서도 술어는 특수성이며 ‘이것은 빨갛지 않다[Q]’에서도 술어는 특수성이다. 이제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긍정 판단 형식과 부정적 판단의 긍정적 표현 형식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자는 근본적으로 그 논리적 내용 즉 의미가 다르다.
단순한 긍정 판단 형식에서 술어는 추상적 일반성이다. 그것은 다른 것과 무관하게 고립적으로 존재하므로 추상적인 일반성이다. 그것의 진짜 모습은 특수성이지만, 아직 그 특수성은 정립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부정 판단의 긍정적 형식에서 술어는 곧 정립된 특수성이다. 왜냐하면, 이 술어는 타자와의 매개를 통해 즉 ‘P가 아닌 것’으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P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Q이다.
긍정 판단 형식에서 부정 판단 형식으로 이행하더라도 주어는 여전히 그대로 남는다. 이런 이행의 운동은 앞에서 말했듯이 술어가 주어에 내재하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긍정 판단 형식에서 추상적 일반성이 부정 판단 형식에서 특수성으로 정립되면서, 이 특수성이 주어에 외적이고 우연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술어가 ‘특수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한 가지는 이 술어가 ① 개별자인 주어에 외적이고 우연적으로 속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며 그러므로 이 주어는 그 특수한 술어에 대립하는 다른 술어 즉 ② 다른 특수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빨갛지 않은 것[-P]’ 즉 파랗거나 노랗거나 하는 특수한 술어를 가질 수 있다.
“‘개별자는 특수한 것이다’라는 명제는 부정 판단의 긍정적 표현이다. 위의 표현은 긍정 판단 자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긍정 판단이 그 직접성 때문에 다만 추상적인 것을 자신의 극단[술어]로 갖지만, 특수한 것은 바로 이 긍정 판단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을 통해서 최초로 매개된 규정으로서 생기기 때문이다.”(논리학 2부, GW12, 65)
4)
이상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부정적 계사 즉 ‘아니다’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위에서 부정 판단 형식을 긍정 판단 형식으로 이행할 때 계사의 부정[‘아니다’]을 개념 규정[주어, 술어]의 부정[-P]으로 전환했는데, 과연 이런 전환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헤겔은 이렇게 주장한다. 즉 존재 영역의 범주나 본질 영역의 범주와 달리 개념 영역의 범주에서는 개념 규정은 이미 그 자신에서 타자와 관계하고 있으므로, 판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는 곧 이미 개념 규정 속에 있는 관계의 표현, 정립에 지나지 않는다.
개념 규정성과 판단의 관계는 서로 일치하므로 거꾸로 판단에서 부정적 관계가 출현하면, 이는 다시 개념 규정성에서 부정성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부정적 관계 즉 A와 B가 관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A와 -B가 관계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규정은 극단[술어]의 계기로서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본래 처음에는 그렇듯이 관계의 규정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 판단은 또한 부정 판단으로서 고찰될 수 있다.”(논리학 2부, GW12, 66)
“판단 규정은 개념 규정이므로 자기 자신에서 일반적인 것이고 자신의 타자 속에 연속되는 것으로서 정립된다. 거꾸로 판단의 관계는 극단이 갖는 것과 동일한 규정이다. 왜냐하면, 그 관계는 바로 이와 같은 극단이 서로 속으로 연속하는 일반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이 구별되는 한, 관계는 또한 그 자신에서 부정성을 갖는다.”(논리학 2부, GW12, 66)
5)
이런 전환을 통해 헤겔은 부정에 관한 해석을 다른 논리학자와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논리학자는 이 “부정 판단의 ‘아님[Nicht]’을 계사에 덧붙여 왔다.” 그러므로 이 부정은 명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직접적인 비존재’를 의미하며 그 결과는 “전적으로 무규정적이니 비일반자이다.” 즉 “무규정적인 범위 전체에 걸쳐서 긍정적 개념의 타자가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논리학 2부, GW12, 66) <정신현상학>에 따르면 헤겔은 이것을 ‘전적인 부정’이라 한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빨갛다’의 부정은 ‘이것은 파랗다’도 될 수 있으며, ‘이것은 수 3이다’라거나 ‘이것은 코끼리다’라는 것도 될 수 있다. 즉 ‘이것은 빨갛다’라는 명제의 부정은 그 명제가 아닌 명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러나 헤겔은 긍정 판단 형식에서 부정 판단 형식으로 이행에서 “계사의 부정은 그에 못지않게 술어에 덧붙여져야 하며 따라서 술어는 비 일반적인 것으로서 규정되어야 한다”(논리학 2부, GW12, 66)고 말한다. <정신현상학>에 따르면 이런 부정은 ‘특정한 부정’이다. 이 특정한 부정이란 ‘그것이 유래한 것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헤겔에서 어떤 것은 이미 그것의 대립물, 즉 타자와 관계 속에 있다. 현존의 영역에서 유한성은 이미 자기 자신에서 부정성을 지니며, 본질의 영역에서 긍정은 부정과 관계한다. 이런 관계는 현존이나 본질의 영역에서는 아직 내적이거나 부분적으로만 드러났으나, 이제 개념의 영역에서는 전적으로 드러낸다.
이렇게 어떤 것이 자신의 타자와 관계 속에 있을 때 그 어떤 것에 대한 부정은 동일한 관계 속에 있는 자신의 타자가 된다. 즉 “부정적인 것은 자기에 긍정적인 것이 대립하는 가운데서만 존재할 뿐”(논리학 2부, GW12, 67)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빨강의 부정은 파랑이나, 노랑과 같이 색이라는 일반성의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일 뿐이다.
“여기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해 제삼의 것이 양자의 근거가 되면서, 이를 통해 부정적인 것은 닫힌 영역에 보존되며 이 영역 속에서 하나의 것이 아닌 것은 어떤 특정한 것이다. 그러나 개념과 개념 규정성의 절대적 유동성 속에서 아님은 더욱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것이 되며 부정은 규정성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일반성 속에 받아들여지고 일반성과 동일하게 정립된다. 따라서 비 일반적인 것은 특수한 것이다.”(논리학 2부, GW12, 67)
5)
이와 같이 질적 부정 판단 형식에서 부정되는 것은 다만 특수성이며 여전히 일반성은 보존된다. 그러므로 부정 판단 형식은 그 역시 일반성 아래 있는 어떤 특수성이다. 다만 긍정 판단에서 특수성과 대립하는 특수성일 뿐이다. 이런 부정을 통해 긍정 판단에서 추상적인 일반성이 감추고 있던 특수성이 부정 판단에서 정립된다.
“부정되는 것은 술어에 있는 일반성 일반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일반성에 대립하여 내용으로 나타나는 것이 지닌 추상성과 규정성이다.”(논리학 2부, GW12, 67)
부정 판단의 특수성[Q]은 부정적 관계[-P] 매개로 한 특수성이니 이것은 주어인 개별자에 대해 외적인 것이라는 사실도 드러낸다. 이런 외적 관계 역시 긍정 판단 형식에서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부정 판단 형식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 외적인 관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이제 살펴보기로 하자.
긍정 판단 형식도 이미 특수성이지만, 표면은 아직 추상적 일반성에 머물렀다. 부정 판단 형식에서 특수성이 정립되는데 이때 특수성은 하나의 실재성이면서 이미 자기 자신에서 자신의 부정성을 지닌 것 즉 유한성이 된다.
이 특수성은 유한성이며 자기의 타자인 자기의 부정성으로 이행하지만, 이런 자기 부정성 역시 하나의 특수성이며 유한성이니, 다시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 부정 판단 형식에서 예를 들어 ‘빨갛다’는 ‘빨갛지 않은 것’에 대립해서 규정된 빨간 것이므로, 자기의 부정인 ‘빨갛지 않은 것’으로 이행한다. 이 ‘빨갛지 않은 것’은 처음에는 하나의 특수한 색깔인 ‘파랗다’이지만, 이것 역시 유한한 것이므로 자기를 부정하여, 다른 것 예를 들어 ‘노랗다’로 이행한다.
그러므로 ‘빨갛다’의 부정은 무 규정적이다. 그것은 적어도 일반성인 색에 속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파란색도 될 수 있고 노란색도 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빨갛다’라는 술어가 잠정적인 것, 이행하는 것, 우연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술어는 주어인 개별자에 대해 외면적인 것임이 폭로된다.
“그러므로 특수성은 주어에 상응하지 않는 술어이다. 그러므로 주어는 그런 술어 속에서 아직 자신의 진리를 갖지 않는다. 개별자[주어]는 다만 개별자이고 개별자의 부정성은 자신의 타자[술어]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이런 타자에 관계하지 않고 오히려 다만 자기 자신에 관계하는 부정성이다.”(논리학 2부, GW12, 68)
이런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은 술어와 무관하게 자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부정 판단은 이런 무규정적인 부정이라는 것을 통해서 무한판단으로 이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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