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1-질적 긍정 판단[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1-질적 긍정 판단
1)
앞에서 헤겔은 판단의 형식을 주어, 술어라는 용어보다는 개별성, 일반성 등 개념 규정성을 통해 규정했다. 헤겔은 이런 판단 형식을 네 개의 범주로 구분하는데, 이런 구분은 전적으로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에서 했던 것과 일치한다.
다만, 그 용어가 특이하다. 칸트가 질의 범주라 했던 것을 그는 현존 범주라 하고, 양의 범주라 한 것은 반성 범주라 한다. 칸트에서 관계 범주는 동일하게 관계 범주이며, 칸트가 양상 범주라 한 것을 헤겔은 개념 범주라 한다.
이런 범주의 이름을 보면, 헤겔이 논리학 1부 객관 논리학에서 다루었던 논리적 범주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곧 헤겔이 객관 논리학을 쓸 때, 이미 판단의 네 개 범주에 따라 범주들을 전개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으로 보이는데, 칸트가 판단 범주를 구분할 때 양의 범주를 먼저 내세웠던 것에 반해, 헤겔은 질의 범주 즉 현존 범주를 양 즉 반성 범주보다 먼저 내세우고 있다. 칸트에서는 범주 사이의 발전이라는 연관이 없으므로 양의 범주가 먼저 나온 것은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러나 헤겔에서는 범주의 발전이라는 논리적 연관이 중요하므로, 현존 범주가 반성 범주보다 먼저 나온 것은 현존 범주가 발전하여 반성 범주로 이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판단 범주 가운데 처음 등장하는 범주는 현존[Dasein] 범주인데, 이 현존 범주는 일반적으로 질의 범주로 알려진 것이다. 즉 긍정 판단, 부정 판단, 무한 판단이다. 여기서 현존이란 1부 객관 논리학에서 1편의 제목이 ‘현존’임을 생각하면, 이 1편의 내용에 상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긍정 판단은 실재성과 부정 판단은 유한성과 무한 판단은 무한성과 상응한다.
헤겔은 이런 현존 범주를 내재[inhaerieren]의 범주라 한다. 즉 판단 형식은 내재와 포섭이라는 두 가지 관계를 포함하는데, 현존 범주에서 주어의 개별성 즉 어떤 것에 대해 술어의 일반성 즉 규정성이 처음에는 외면적인 것이었으나, 판단의 운동을 통해 내재적으로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의 운동은 인식 경험의 운동과 상응한다. 인식에서 감각을 통해 얻어지는 일반성이다. 이런 일반성은 오직 개별적 사물에만 속하고, 그렇기에 그것은 개별 사물에 외면적이다. 여기서 감각이 지각으로 발전하면서, 일반적 질이 더는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것에 내재적인 것으로 발전한다. 그러므로 이 질은 그런 종류의 사물이라면, 모든 것에 속하는 일반적인 성질이 된다. 이런 내적인 일반적 질을 흔히 속성이라 하는데, 판단의 운동은 이런 질에서 속성으로의 이행을 매개하는 운동이다.
현존 범주에서 일어나는 운동은 주어에서 개별자는 그대로 유지되는 채, 술어에서 일반성이 질에서 속성으로, 즉 외재적인 일반성이 내재적 일반성으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주어의 개별자는 “직접적인 것, 최초의 것이며 본질적인 것”이고, 반면 술어의 일반성은 “비자립성의 형식을 가지며 주어에서 그 토대를 가진다.”(논리학 2부, GW12, 60)
이런 질적 긍정 판단도 또 다른 관계 즉 포섭의 관계를 지니지만, 아직 여기서 포섭 관계 자체에서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3)
이제 최초의 질적 긍정 판단을 살펴보자면, 이 판단 형식은 최초의 판단 형식이므로 판단에 내재하는 통일성은 아직 감추어져 있으니, 주어나 술어는 서로 외면적이므로 각기 추상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따라서 주어는 추상적 개별성이며 이것은 개별적인 지시어 즉 ‘이것’이나 ‘저것’으로 지시되는 것이다. 술어는 추상적인 일반성이다. 이 일반성은 감각적인 질이며,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주어에 내재하는 것,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즉 순수한 감각질이 아닌 일반적 질 즉 실재성이다.
이 긍정 판단의 형식은 ‘개별성은 일반성이다’라고 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것은 빨갛다’라거나 ‘저것은 좋은 향기가 난다’라는 것이다. 헤겔은 이 판단 형식을 일반적으로 흔히 ‘A는 B이다’라고 하는 것을 반대한다. A, B는 이름일 뿐이며 개념 규정성이 아니니, 이런 형식은 예를 들어 단칭 판단이나 정언 판단에도 적용할 수 있는 모호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판단의 형식이 그 자체로서 지닌 내용과 이 판단의 형식이 구체적으로 적용되면서 얻는 내용을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것은 빨갛다’라는 판단에서 세계 속에 있는 구체적인 사태로서 ‘이것의 빨강임’은 이 판단 형식이 구체적으로 적용된 내용이다.
반면, 이 판단 형식에서 주어와 술어의 독특한 관계 즉 개별성과 일반성의 특정한 관계 즉 포섭과 내재의 특정한 방식이 곧 판단 형식이 그 자체로 지니는 내용이다. 헤겔은 판단 형식이 형식 자체로서 지니는 내용, 즉 판단 형식의 객관적 의미를 논리적 내용[Gehalt]라고 한다. 칸트가 판단 형식 즉 논리적 범주가 지닌 구체적 도식을 제시했을 때, 바로 그런 도식이 헤겔에서 논리적 사태가 된다.
이런 긍정 판단 형식에서 판단의 주어와 술어는 전적으로 외면적, 무차별한 것이지만, 그것의 내적인 통일성이 이미 감추어져 있다. 판단의 운동은 이런 감추어진 통일성이 드러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구체적인 사태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아니라 이미 그 판단 형식 자체가 지닌 논리적 내용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다. 판단의 형식과 판단 자체의 내용, 즉 논리적 내용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하며 이 모순이 곧 판단 형식의 운동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4)
우선 ‘개별자는 일반적이다’라는 형식이 지닌 구체적 내용을 보자. 외연상으로 보면, 여기서 주어인 개별자는 술어인 일반자 속에 포섭되면서 일반자가 지닌 여러 예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니, 이런 의미에서 개별자는 ‘잠정적인 것[Vergaenglich]’한 것이다.
내포 상의 관계에서 본다면, 개별자는 여러 성질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가 드러난 것이다. 즉 개별자는 ‘자기를 결단하여[entschliessen]’ 일반자를 통해 ‘자기를 해명[Aufschiessen]’한다. 그 때문에 이 술어 속에 자기를 연속시키고, 그런 술어 속에 자신을 유지한다.
이런 내재의 관계서 본다면, 이 긍정 판단의 형식은 ‘일반자는 개별성이다’라는 형식을 취한다.
주어인 개별자는 이 일반자인 술어가 자기 내로 반성된 것이며, 주어인 개별자는 여러 술어가 자기 내로 반성된 것이므로 여러 성질이 융합된 것[zusammenwachsen]이다. 그러므로 주어는 일반자이다.
술어는 주어에 외면적이다. 즉 그 술어가 주어에 내재하고 필연적으로 속한다는 사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주어는 그런 성질을 지니지만, 그런 성질은 아직은 우연적이며 개별적인 방식으로 주어에 부착된 것일 뿐이다. 그것은 주어가 지닌 여러 성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술어는 개별적이다.
5)
질적 긍정 판단을 외연적으로 보면, 술어는 일반성이라는 형식을 지닌다. 그러나 내포적으로 보면, 술어는 개별성에 불과하다. 술어는 형식상 본래 일반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그 내용은 개별적인 것에 불과하다. 즉 이 술어는 주어가 지니기는 하지만, 우연적이며 외면적으로 지닌 것이다.
여기서 질적 긍정 판단의 모순이 출현한다. 어떤 술어가 일반적인 동시에 개별적이라면 그 자체에서 모순적인 것이다. 즉 판단의 형식과 내용 사이에 모순이 출현한 것이다.
술어에서 ‘일반성’인 동시에 ‘개별성’인 것은 개념 규정성에 따르면 ‘특수성’이다. 특수하다는 것은 이미 그 자신이 다른 것에 대해 대립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즉 특수한 것은 다른 특수한 것과 대립하는 관계 속에 있다.
구체적으로 ‘빨갛다’라든가 ‘향기가 좋다’와 같은 술어는 일반성으로는 추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특수한 것이 되면, ‘빨갛다’는 ‘파랗다’나 ‘노랗다’에 대립하는 것으로 규정되며, ‘향기가 좋다’는 ‘향기가 나쁘다’와 대립해서 규정되는 것이다.
이런 특수성으로서 실재성은 자기에 대립하는 것 즉 부정성을 이미 그 자신에서 지니고 있는 것이니 헤겔은 이런 의미에서 실재성은 곧 유한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실재성은 자기에 대립하는 것으로 이행하게 된다. 이런 이행을 통해 질적 긍정 판단은 판단 자신의 고유한 운동을 통해서 질적 부정 판단으로 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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