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객관 논리학에서 주관 논리학으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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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1-객관 논리학에서 주관 논리학으로

1)

헤겔 논리학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헤겔 논리학 1부(존재론, 본질론)는 1813년 부활절 직전 발간되었다. 논리학 2부(개념론)이 발간된 것은 1816년 10월 초였다. 2부가 발간되는데 무려 3년 이상 지체된 것이다.

그는 개념론 앞에 ‘일러두기[Vorbericht]’(1816년 7월 21일 작성)에서 지연된 책임이 “그가 맡은 직책이나 다른 개인적 사정으로 산만하게 일할 수밖에 없었다”(논리학 2부, GW12, 6)는 데 있다고 한다. 이 시기 그는 뉴른베르크에서 김나지움 교장을 하고 있었으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의 번잡함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책임이라면 1부 논리학 작성 시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차라리 그가 이 일러두기에서 개념론을 작성하는데 1부를 작성하는 데서 부딪힌 것과는 다른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그런 어려움이 그의 길을 더디게 했던 것이 아닐까?

헤겔의 논리학 1부는 여기에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논리학 2부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확립된 논리학의 주요 내용(판단론, 추리론)이 들어 있으니, 논리학이라 불러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그는 1부를 쓸 때는 “발판이 되거나 재료를 주고 전개할 길잡이를 보장할 만한”(논리학 2부, GW12, 5) 이전 철학자들의 노력을 발견할 수 없어서 그야말로 황무지에 아무런 설비도 없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어려움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러나 아예 아무것도 없는데 새로운 것을 짓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2부 개념론에 이르면, 이전 논리학의 “완전히 완성되고 심지어 석화된 재료가” 마치 장애물처럼 깔려 길을 막고 있어서 게다가 저마다 이전 시대에는 진리라는 영예를 부여받은 것이니 “이를 유동화해서 그와 같은 죽은 소재에 생동적인 개념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고 한다.(논리학 2부, GW12, 5)

2)

헤겔이 부딪힌 어려움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큰 문제는 아니지만, 어떻든 논리학 3부 개념론은 한 사년 뒤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 떠오르는 진짜 문제는 이런 논리학이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내용을 담은 부분 다음에 배치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몇 가지 단서를 좇아가 보면, 어느 정도 그 이유가 짐작은 된다. 헤겔은 밤베르크 시절 니트함머로부터 학생들을 위한 논리학 교과서를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이게 그가 논리학을 작성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이다. 이에 대해 답장하면서(1808년 5월 20일) 자기의 철학적 견해가 완성되지 않아서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이 답장에서 그는 기존 논리학에 관해서 강한 불만을 드러내면서 “그것은 그런 방식으로 지속할 수 없는 것”(논리학 2부, GW12, 323)이라고 평가하며 기존 논리학의 내용이라면 “두 장[오늘날의 A4용지가 아니라 당시 작성의 기준이 된 전지를 의미할 것이다]이면 충분히 서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상의 내용이라면 “심리적으로 느끼는 가련함을 통해서 확장되는 것”(논리학 2부, GW12, 324)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미 그는 1801/2 예나 시대에서부터 기존 논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개편하려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807년 발간된 그의 예나 시대 체계화 기획 2권을 보면, 이런 시도가 눈에 띈다. 이미 여기서 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연결시켜 사유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1. 논리학, 2. 형이상학, 3. 자연철학을 다루는데, 그 가운데 논리학은 1) 단순 관계(질, 양, 무한성)와 2) [절대적] 관계로 나누어지며, 그중 [절대적] 관계는 다시 ① 존재[실체] 관계와 ② 사유 관계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존재 관계는 논리학[GW11] 1부 객관 논리학 본질론 마지막 ‘절대적 관계’와 일치하며, 사유 관계가 앞으로 다룰 2부 주관 논리학 개념론 1편의 판단, 추리론과 일치한다.

형이상학은 사유 법칙(동일율이나 배중율, 모순율)과 전체로서 세계나 영혼을 다루고 있다. 헤겔은 사유 법칙은 논리학 1부 객관 논리학 본질론 1편에서 다루고 전체로서 세계나 영혼은 2부 주관 논리학 개념론 2편에서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다룬다.

이상의 편제를 보면, 대 논리학에서 객관 논리학과 주관 논리학에 속하는 부분이 예나 시대에서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에 걸쳐 흩어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이를 통해 한편으로 이미 헤겔이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연결해서 사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아직 나중에 형이상학에 가까운 객관 논리학과 기존 논리학에 가까운 주관 논리학이라는 구별이 확립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자기의 철학에 기초한 새로운 논리학을 발간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는 이미 니트함머의 권고를 받은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시도의 정체는 1813년 논리학 1부가 발간된 이후 등장한 출판사 광고문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 광고문에 따르자면, 새로운 논리학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예리함을 끝까지 함께 하며”

② “이를 자기의식으로 성장한 시대 정신에 적합한 형태로 고양하고”

③ “진정하게 해명된 형이상학을 통해 일찍이 너무 성급하게 추방된 신비를 철학에 다시 부여하고”

④ “철학에 본래적인 원리와 고유한 방법을 확신하게 하며”

⑤ “이성에 그 오래된 영원한 권리인 진리에 대한 자립적인 생산자라는 지위를 새로이 바치는 것”(논리학 2부, GW12, 327)

펠릭스마이너 판 논리학(GW12)의 편집자에 따르자면, 이 광고문의 작성자가 누군지는 전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위의 구절을 보면 헤겔 논리학에 대한 철저한 이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헤겔 논리학을 나오자 말자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헤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지 않을까 한다. 아니 필자의 생각으로는, 오늘날까지도 정말 이렇게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위의 광고문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광고문의 구절은 헤겔 논리학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는데, 한 가지가 눈에 뜨인다. 즉 자기의식 시대에 적합한 형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기의식 시대란 다름 아닌 칸트가 제시한 선험철학의 원리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후진적 독일에 살았던 헤겔로서는 그 시대 원리인 선험철학의 원리가 하나의 시대 정신으로 논리학을 비롯하여 모든 영역으로 확산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혁명이 달성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정신현상학에서 그는 이 시대를 ‘탄생과 이행의 시대’로 규정한 바 있다.

4)

칸트의 원리에 따르면 사유 범주는 직관의 다양을 구성하여 객관적으로 통일한다. 사유 범주는 곧 존재의 본질을 의미하니 그것이 곧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유 범주를 다루는 논리학은 곧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형이상학이 된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도 읽어보면 판단과 주어, 술어 등의 구조가 밑바닥에 깔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서 ‘실체’란 문장의 주어가 될 수 있는 것이며, ‘양상’이란 곧 술어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이미 나중에 칸트에서 드러나는 “논리학이 곧 형이상학”이라는 주장의 단초가 발견된다고 하겠다.

헤겔은 그런 점에서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함’이라고 보고 위의 광고문에서 보듯이 이를 계승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논리학이 형식화하면서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예리함을 놓치고 있다고 보는 비판적 의식이 담겨 있다.

논리학이 형식화함으로써 논리학은 순수한 필연성의 체계가 되었지만, 대신 공허한 형식적 동어반복에 그치며 그것은 구체적 내용을 상실한 채, 흔히 사유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진리의 인식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마치 공허한 사유의 논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논리학이 다시 진리의 생산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함을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 즉 논리적 구조 속에서 존재의 본질적인 구조를 엿보는 것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그의 시대 철학이 수학에서 방법론을 빌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수는 양적인 것이므로, 양적인 것에서나 적용되지 더 복잡하고 구체적인 생명이나 정신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비판하면서 철학은 고유한 방법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철학의 고유한 방법론은 무엇인가, 앞에서 헤겔이 호소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를 생각해 볼 때, 그의 형이상학의 방법론은 바로 논리학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논리학이 궁극적으로 판단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헤겔의 방법론은 곧 판단 즉 문장의 구조로부터 끌어낸 것이니, 어쩌면 헤겔이야말로 언어 철학의 시조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5)

논리학이 형이상학 즉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굳이 객관 논리학과 주관 논리학이라고 구분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논리학이 전개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헤겔에서 논리학은 추상적 존재가 구체화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나가는 생성 또는 근거로의 복귀 과정이다.

논리학에서 처음 출발점인 현존은 가장 개별적인 것이고 가장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적인 근거가 되는 논리적 범주가 아직 등장하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존재론이며 이 현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파악하는 형이상학이 필요하다.

그런데 1부 객관 논리학의 마지막에 일반적인 실체가 상호작용을 거쳐 주관적인 개념이 되면서 이제 논리적 범주가 우리 눈앞에 직접 등장한다. 그 결과 여기서부터는 순수한 논리학적 내용이 다루어지게 된다. 그 때문에 객관 논리학 대신 주관 논리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생각해 보면 ‘객관 논리학’에서 강조점은 논리학보다는 ‘객관’ 즉 존재론에 있으며, ‘주관 논리학’에서는 강조점이 곧 ‘논리학 자체’에 주어진다.

이상을 통해 헤겔이 객관 논리학과 주관 논리학으로 구분하고, 주관 논리학에 와서야 비로소 기존의 논리학에서 다룬 내용을 즉 판단과 추론을 다루게 된 이유가 드러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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