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운동45-상호작용과 개념론으로의 이행[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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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변증법 반성운동45-상호작용과 개념론으로의 이행

1)

특정한 인과성은 실재적인 인과성이다. 이 인과성은 원인과 결과가 인과 관계 외에 다른 독자적인 내용을 가짐으로써, 원인과 결과가 양방향으로 무한히 진행하는 것으로 된다. 이런 무한 진행이 자기로 되돌아오면서 상호작용적 인과 관계가 출현한다. 여기서 원인은 그 자신의 결과를 원인으로 하게 된다.

이런 상호 작용의 출발점은 서로 엇갈리는 관계다. 즉 한편에서는 원인은 직접적인 실존에서 자기 내로 반성하면서 원인으로 되어 결과를 자기의 결과로 정립한다. 다른 한편 원인은 자기의 기체를 전제로 하는데, 이 기체의 원인이 되는 것은 자기의 결과가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기서 원인과 그 기체의 측면은 서로 외면적이며 마찬가지로 결과에서 결과의 측면과 원인이 되는 측면은 서로 다르다. 여기서 원인이 결과가 되는 인과적 관계가 결과가 원인이 되는 인과 관계가 서로 엇갈린다. 두 측면은 상호적이지만, 서로 외면적으로 관계할 뿐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두 생산자의 교환을 생각해 보자. 하나의 생산자는 곡식을 만들어 팔고 다른 생산자는 옷을 만들어 판다. 곡식 생산자는 곡식을 옷 생산자에게 팔지만, 옷 생산자에게서 옷을 구입한다. 이 두 관계는 상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만 서로 엇갈리는 관계일 뿐이다. 즉 두 측면은 서로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인과 관계는 상호적으로 배치하지 않고 차례로 연결하여 인과의 연쇄로 삼더라도 무방하다.

“원인은 이제 작용한다. 왜냐하면, 원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위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원인은 자신에 전제된 것이다. 그러므로 원인은 자신을 타자로[기체] 즉 수동적 실체로 삼아서 자신에 작용한다. 따라서 원인은 수동적 실체가 지닌 타자성[기체]을 지양하여 이 수동적 실체[기체] 속에서 자기 자신[원인 실체]으로 되돌아온다.”(논리학, GW11, 405)

“두 번째로 원인은 이와 동일한 것을 규정한다. 원인은 이 수동적 실체의 타자성[원인에 대한 타자성]을 지양하는 것 또는 자기 내 복귀를 하나의 규정성으로 정립한다. 이 정립된 것은 동시에 원인이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므로 우선 그 원인의 결과이다. 거꾸로 이 원인은 전제하는 것인 한, 자기 자신을 자기의 타자[기체]로 규정하므로 결과를 다른 실체 즉 수동적 실체 속에 정립한다.”(논리학, GW11, 405)

즉 원인이 원인이 되려면 전제된 기체에 부정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결과는 원인에 의해 정립되면서(규정성을 지니고) 이를 통해 자신의 기체 즉 원인의 타자성을 지양한다는 것이다.

2)

특정한 인과 관계에서 상호작용적 인과 관계로 넘어가는 매개로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가 있다. 작용과 반작용은 여전히 외적인 반성에 머무르는 것인데, 원인과 결과라는 관계를 보는 관점을 전도한 것이다.

즉 원인의 측면에 서서 보면, 원인이 직접적인 것이고 결과는 그 원인에 의해 정립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의 측면에서 보면, 결과 자신이 원인이 되어 원인은 결과가 된다. 다만 여기서 작용하는 방향이 반대이다.

예를 들어 태양에 지구가 충돌한다면, 이는 하나의 관점에서는 태양이 인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반대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가 태양을 밀어내는 척력이 발휘된 것이다. 여기서 작용하는 인력의 힘이나 척력의 힘은 양적으로 동일하며 다만 방향만 대립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태양이 능동적 실체로서 원인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수동적 실체로서 결과가 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다만 관점을 달리해서 바라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3)

이렇게 관점을 뒤집어 보면, 능동성과 수동성이 전환된다. 즉 수동적 실체로서 결과가 원인의 받아들이는 것은 이 결과 내에 이미 그런 것으로 정립될 가능성[An sich Sein]이 실제로 정립되는 것일 뿐이다.

이는 능동적 실체 역시 마찬가지다. 능동적 실체가 힘을 행사하는 것은 수동적 실체가 그런 힘을 받을 만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동적 실체는 강제당한다. 강제는 위력의 현상이거나 외적인 것으로서 위력이다. 그러나 위력이 외적인 것은 다만 원인이 되는 실체가 자기 자신을 [결과로] 정립하는 가운데 동시에 [타자를] 전제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양된 것으로서 정립하기 때문일 뿐이다.”(논리학, GW11, 405)

“수동적 실체가 타자에 의해 강제당하는 것은 수동적 실체에 다만 정당한 권리가 행사되는 것이다. 수동적 실체가 잃어버리는 것은 그것이 지닌 직접성이며 즉 그것에 낯선 실체성이다. 수동적 실체가 자기에 낯선 것으로서 획득하는 것 즉 정립된 것으로 규정된다는 것은 그 자신의 고유한 규정이다.”(논리학, GW11, 406)

능동적 실체가 행사하는 것이 작용이라면, 수동적 실체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에 대한 수동적 실체 자신의 반작용이다. 그것은 수동적 실체의 잠재적 존재가 자기를 정립한 것이다.

“수동적 실체의 반작용은 이중적인 것이다. 즉 우선 이 수동적 실체가 지닌 모습이 정립된다. 두 번째로 수동적 실체가 그것으로 정립되는 것이 그것의 그 자체 존재로서 서술된다는 것이다.”(논리학, GW11, 406)

“둘째로 반작용은 최초의 작용하는 원인에 대립한다. 이전에 수동적 실체가 자기 내에서 지양한 작용은 바로 최초의 원인이 작용한 것이다. 이 작용이 지양되면서 그 원인이 되는 실체성도 지양된다.”(논리학, GW11, 406)

4)

이런 작용과 반작용을 거쳐서 마침내 원인과 결과의 상호 작용이 출현한다. 여기서 원인은 능동적 실체이며 동시에 수동적 실체 즉 결과이니, 원인과 결과가 단순히 엇갈리는 경우와 달리 여기서는 원인 자체가 곧 결과이다. 또한, 작용과 반작용처럼 단순히 관점의 전환에 의해 원인이 결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원인을 원인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결과이고 결과를 원인으로 만드는 것이 원인 자체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인과에서 원인과 결과라는 형식 구별은 더는 구별이 되지 못하고 투명하게 된다.

이전에 특정한 인과성에서 기체와 실체, 토대와 인과 관계가 서로 외면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구분 자체가 해소된다. 원인의 기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인 자체가 자신의 기체이다. 그것은 결과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과도 결과가 아닌 독자적 기체가 있어서 그것이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 자체가 자기를 원인으로 만드는 기체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바이메탈을 보자. 열을 받으면 많이 늘어나는 물질과 적게 늘어나는 물질 즉 서로 대립하는 성질을 지닌 두 물질이 결합한다. 이 바이메탈에 냉장 콤프레서가 연결되면, 냉장고가 된다.

냉장고 온도가 올라가면 바이메탈이 굽어져서 냉장 콤플레서가 작동하여 온도가 내려간다. 온도가 내려가면 바이메탈이 반대로 펼쳐져서 냉장 콤플레서의 작동이 중지하면서 온도가 다시 올라간다. 이런 상호적 운동을 통해 냉장고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여기서 냉장 콤플레서 작동의 원인이 미친 결과가 냉장 콤플레서 중지의 원인이며 이 중지의 원인이 미친 결과가 곧 작동의 원인이다. 원인이 곧 결과이고 결과가 곧 원인이다.

5)

원인은 결과를 통해 원인으로 되므로 자기 매개하는 것이다. 결과 역시 자기의 결과를 통해 결과로 되는 자기 매개이다. 곧 원인은 자기 자신을 원인으로 하고 결과는 자기 자신을 결과로 하는 것이다.

이런 자기 매개, 자기 근거를 통해 지금까지 특정한 인과 관계에서 일어난 상대적 필연성의 운동은 절대적인 필연성으로 발전한다. 자기 자신을 근거로 하기에 더는 타자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니 항상적으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필연성과 우연성이 통일로서 절대적 필연성이 출현한다. 즉 “한편으로 결합과 관계로서 직접적 동일성”과 다른 한편으로 “구별이 지닌 절대적 우연성”을 동시에 포함한다.

“이런[특정한 인과성에서] 내적 필연성이나 잠재성은 인과성의 운동을 지양한다. 이를 통해 양 측면이 지닌 실체성[우발성]은 상실되며 필연성이 은폐를 벗어난다.”(논리학, GW11, 409)

이런 절대적 필연성은 동시에 자유(자발성)의 체계이다. 냉장고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므로 이 냉장고는 마치 목적론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즉 목적을 추구하는 자발적 존재다. 그러나 사실 이 합목적적 운동의 구조는 서로 대립하는 물질의 상호 작용에 있다.

“거꾸로 동시에 우연성은 자유로 된다. 왜냐하면, 필연성을 이루는 측면들은 독자적으로 자유롭지만, 서로 비추는 실제성이라는 형태를 가지지 않으나 이제부터 동일성으로 정립되면서 구별되는 가운데서도 자기 내로 반성하면서 이루는 총체성이 이제 또한 서로 동일한 총체성으로 비추거나 서로 동일한 반성으로 정립되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409)

6)

이와 같은 자유는 아직 단초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 자유는 마침내 개념 운동에 이르러 등장하며, 아직은 단순히 자발적인 합목적적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여기서 개념 운동의 출발점이 놓인다.

능동적 실체는 개별적 개념이 된다. 이것은 자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관계하는 것 또는 “자기와 동일한 부정성”이다.(논리학, GW11, 398)

수동적 실체는 일반적 개념이 된다. 여기서 직접적인 것이 원인의 결과가 되면서, 단순한 동일성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규정성으로부터 자기 내로 반성하여”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정립된 것” 이다.(논리학, GW11, 398)

양자를 매개하는 것이 특수성으로서 개념이다. 이 매개는 구별된 개체다. 이 개체는 자립적이며 구별된 것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잠재적으로는 일반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이며 상호 작용 속에 들어가 자기를 부정하는 것 즉 개별자로 된다. 그러므로 이 특수성이 곧 가상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구별된 계기이지만, 동시에 각자 자기 속에 이미 타자를 포함하고 있다. 개별성의 부정성은 자기 부정성이므로 곧 동일성이다. 일반성의 자기 동일성은 부정의 부정을 통한 동일성이다. 특수성의 자립적 개체는 이미 부정적인 것이며 앞으로 부정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부정의 부정을 통해 통일되어 있다.

“이 세 가지 총체성은 동일한 반성이어서 자기에 부정적으로 관계하면서 앞에서 말한 두 가지로 자기를 구분하지만, 그런 구별은 완전히 투명한 구별 속에 즉 특정한 단순성 속에 또는 양자에 동일한 동일성인 단순한 규정성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개념이고 주관성의 영역 또는 자유의 영역이다.”(논리학, GW11,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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